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No. 5, pp.1-14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19
Received 08 Mar 2019 Revised 19 Apr 2019 Accepted 20 May 2019
DOI: https://doi.org/10.7233/jksc.2019.69.5.001

20세기 한국의 신여성과 모던 걸 패션의 비교 연구

이상례 ; 소황옥
중앙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박사수료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패션디자인 전공 교수
A Comparative Study on the Fashion of Modern Girl and New Women in 20th Century Korea
Sang Rae Lee ; Hwang Oak Soh
Ph. D Candidate, Dept. Fashion Design, Chung-Ang University
Professor, Dept. Fashion Design, Chung-Ang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Hwang Oak Soh, e-mail: oaksoh@cau.ac.kr

Abstract

Korean fashion in the 1910s and 1930s, particularly women’s wear, was influenced by Western culture; all aspects of style, including fashion and consumption, were products of a culture that sought "modernization." In the 1910s, the modern woman raise liberal viewpoints regarding women's rights as part the intellectual movement. By the 1920s, liberalism had expanded to the “educated” public. The “new woman” in the 1910s realized ethnic consciousness, class consciousness, and gender equality through social and economic activities, and led Korean fashion with apparel improvements by wearing western-style clothing comfortable for daily activities. The “modern girl” that appeared in the late 1920s was a group of women who were obsessed with consumption culture rather than having enlightened ideas; they appeared in certain occupational groups or high school girls. It was a generation that established a new class that can consume modern culture, such as free love, bobbed hair, Tre-mu-ri, high heels, jazz, and Western brand goods.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fashion leaders of Korean society at that time by conducting analysis on the different consciousness of new women and modern girls in the 1910s and 1930s , which were established in modern civilization after the time of enlightenment.

Keywords:

difference of consciousness, fashion, modern girls, new women

키워드:

의식의 차이, 패션, 모던 걸, 신여성

Ⅰ. 서론

개화기 이후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의식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서구의 신문화와 신교육을 수용함에 따라 전통적인 가치관과 갈등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계층들이 증가하게 되었고, 여성들 역시 의식의 개혁과 복식개혁을 주장하며 사회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1910년대에는 여성들이 각종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여성운동은 모두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였다. 1920년~1930년대에는 구한말에서 일제시기에 전개된 여성교육을 통하여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로 활발히 사회에 진출하여 신여성으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모았다.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모던 걸은 외모와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모던 걸의 등장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다(Lee & Jung, 2013). 모던 걸은 1920년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여성 아이콘으로 모던풍의 첨단에 놓인 존재들로 당시에는 모든 유행에 ‘모던’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경향이 있었고, 모던 걸은 근대적 패션인의 집단, 하이칼라의 집단을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였다(J. Kim, 2005a).

1910년대 이후의 신여성과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하는 모던 걸과는 차이가 있다. 신여성과 모던걸을 선행 연구한 논문 『1920년대~30년대 한국의 이상적 ‘신여성’ 이미지와 패션』(Yi, 2014), 『1930년대 한국 모던 걸의 화장 문화』(Lee & Jung, 2013), 『근대적 표상으로서의 여성 패션 연구: 모던 걸(개화기~1945)을 중심으로』(E. Kim, 2004) 등에서는 ‘신여성을 모던 걸이라고 한다’, ‘한국의 신여성은 단발을 의미하는 모단 걸로도 불려졌다.’와 같이 신여성과 모던 걸을 같은 개념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도 한복의 개량과 서양복에 단발, 화장, 때로는 실크 스타킹이나 금시계와 같은 사치품과의 조합을 혼용하여 다루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층으로 전통적 사고나 인습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1910년대 이후부터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인 김주원(1896~1971), 김활란(1899~1970), 나혜석(1896~1948), 윤심덕(1897~1926)등을 1920년대 이후 모던 걸로 부르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Joo, 2008). 신문 기사나 잡지에 이들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에도 이들을 모던 걸로 부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신여성들은 1920년대 말 모두 30대 초반이었으나 모던 걸은 1920년대 중후반 10대 말에서 20대 초중반에 속해 있었던 부르주아 출신 여학생, 예술가, 대중문화 종사자인 배우, 가수, 카페 여급, 숍걸인 백화점 여점원 등이면서 모던 스타일의 패션을 주도했던 집단이었던 것으로, 신여성과 모던걸 사이에는 적어도 10년 정도 연령 차이가 발생한다(Joo, 2008). 1920년대 후반이 되면 신여성은 모던 걸과 명확히 구분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에 들어오면서 신여성과 모던 걸은 다른 의미로 사용 되었다. 신여성은 1910년대 신지식 층의 일부로서 자유주의와 여권 신장론 등을 제기한 여성들 이었으며, 이들은 1920년대에 ‘교육받은’ 일부 대중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반 모던 걸은 계몽적 사상이나 민족의식을 갖기보다는 특정 직업군이나 고등보통학교 이상 여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소비문화 스타일에 집착하는 여성 집단을 지칭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신여성과 모던 걸이 함께 사용되었지만, 1930년대 초반부터 신여성과 모던 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패션이란 특정한 시기에 흔히 받아들여지는 지배적인 스타일로 일정기간에 인기 있고 수용된 스타일에 대한 집단행동의 표현이다(Horn, 1981). 그런 의미에서 신여성과 대립되었던 구여성은 사상이나 교육, 스타일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세대 내 다른 집단이지 신여성과 모던 걸은 같은 세대가 아니라,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다른 세대라고 볼 수 있다(Joo, 2008).

본 연구의 목적은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을 비교하여 신여성과 모던 걸이 인식과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아보고, 신여성과 모던 걸은 다른 존재임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과 관련된 당시의 신문기사, 전문서적, 선행논문,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신여성과 모던 걸의 발생 배경과 개념. 이들과 연관된 선행 연구 동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연구의 시대적 범위는 근대가 시작되고, 신여성이 등장하는 1910년대부터 모던 걸이 활발하게 활동한 1930년대로 한다.


Ⅱ. 이론적 고찰

1. 신여성의 개념

1910년대에는 전통적 사고방식과 문화 의식을 지닌 계층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계층들이 근대시기의 문화 현상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주체로서 공존하게 되었다(Jeon, 2016). ‘신지식층’은 근대적 문화와 교육 습득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계층으로, 기존의 유학생이나 개화 지식인과 함께 실질인 학문의 습득을 강조하고 문화적인 근대화를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은 1910년 실력 양성론과 구사상ㆍ구습 개론의 주창자로서 계몽주의, 실천 지도자 의식, 목적의식 문학, 구제도에 대한 반항, 선구자와 같은 단어들로 대표된다(Park, 1992; Maeng, 2003; J. Kim, 2004). 1910년대 신지식층의 다른 경향은 여성의 교육 기회 및 사회 활동증가에 의한 여성계의 발달이다. 1800년대 말부터 기독교 선교사들과 황실의 후원으로 시작된 한국의 여성 교육은 조선인 주도의 교육기관 설립(Korean Daily News [KDN], 1910) 및 여성의 권리 향상과 전문직 진출이라는 결과(Jeon, 2016)로 나타났으며,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수는 점차 증가하였다. 첫 학교는 이화학당으로 미국 메소디스트 교회의 선교사였던 Mary F. Scranton에 의해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발전하여 1904년 중학교 과정을 열고 1908년 최초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등장한 신여성은 1900년대 한국에 새로 등장한 여성 집단을 가리켜 칭하는 말이며, 광의로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여성들’을 지칭한다(Yi, 2014).

신여성에 관한 논의는 그 당시 계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10년대에 ‘신여자’로 처음 소개되었으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운동가 김일엽에 의해 1920년 3월에 창간된 ‘신여자’라는 잡지를 통해 등장하였다. 이 잡지는 일본에서 아타라시이-온나(新しい女)라고 불리우던 여성 그룹에 의해 운영되던 잡지 세이토(靑鞜)와 유사한 급진적 여성주의 잡지였다(J. Kim, 2004). 세이토 지는 스웨덴의 여성주의자 엘렌 케이에 영향을 받은 급진적 여성주의자 히라츠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에 의해 창간되었다. ‘세이토’라는 말은 푸른 스타킹을 의미하는데 이는 본래 18세기 영국 런던의 진보적 여성들이 Elizabeth Montagu의 살롱에서 모임을 가질 때 푸른 스타킹을 신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신여자’ 잡지에서는 세이토의 영향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신여자 2호에서, ‘우리는 청탑이외다. 저 혁혁한 남성작가와 마주 선 청탑 여사들이외다. 청탑이라 함은 아시는 바와 같이 푸른 버선 곧 불루 스타킹이외다.’라고 하여 그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으며(Kim, 2011), 이 잡지의 주간이었던 김일엽은 ‘신여자’를 편집할 때 ‘청탑회’라는 연구회를 만들어 공부했을 뿐 아니라, 가사 중에도 심사가 “우리는 청탑이다”라고 명언하고, “숨어 있는 천재” 라는 히라츠카 라이초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 신여성은 부르주아 신지식 계층 또는 여학교를 졸업한 지식인 여성을 의미하기도 했고, ‘지식 여성 중에서도 전통적인 사고, 제도나 인습에서 벗어난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는 여성’(Oh, 1987)으로 이해되었으며, 여성에 대한 평가는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신여성이 되는 것은 신식사고를 가지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으로 인지되었다. 1910년대 후반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김주원(1896~1971), 김활란(1899~1970), 나혜석(1896~1948), 윤심덕(1897~1926)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부르주아 계층으로 전통적 사고나 인습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개벽사에서 1923년 출간한 “신여성”이라는 여성 독자층을 위한 잡지의 제목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1920년 중반에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개벽사에서는 1922년 ‘부인’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는데,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을 계몽하여 현모양처가 되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곧 교육받은 독자층의 기호에 부응하도록 잡지의 방향을 전환하였고, 결국 1년 후인 1923년 9월 15일 ‘신여성“을 창간하였다. 1926년 10월까지 계속되다가 1931년 1월까지 휴간하였고, 이후 1934년까지 계속되어 총 77호를 출간하였다(Lee, 2010). 또한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26년 동아일보와 1925년 조선일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당시 ‘새로운 관점을 가진 여성들’이라는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Yi, 2014).

2. 모던세대의 모던 걸의 개념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사이에는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영역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인 문화정치와 3 . 1운동의 실패 등과 관련이 있지만, 근대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남을 간과 할 수 없으며, 이 새로운 계층이 모던 세대였다. 1920~1930년대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자는 특정 여성 집단이 아니라 젊은 세대였다. 이 젊은 세대는 1920년대 중후반에서 1930년대 중반 특정세대에 속하며, 그 안에서 근대성을 구현한 하위 집단을 의미한다(Joo, 2008).

1919년 만세운동(3ㆍ1 운동) 이후 당시 한국사회는 이념적 분리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사회주의 경향, 민족주의 경향, 낭만주의 경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모던 세대는 이러한 사회적 이념 현상과는 떨어져 있었으며, 192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식민지 소비문화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는 방향성이 없었는데, 이것은 1920년대 이후 일제가 시행한 문화정치로의 흡수를 의미한다. 모던 세대가 하나의 세대로서 공론화된 것은 1927년 즈음이며, 1929년 일제가 시정 20주년기념(施政20週年紀念)으로 개최한 조선 박람회, 모던 세대는 아니었지만 신여성과 신청년의 상징으로 개인주의적 가치와 자유연애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1926년 윤심덕·김우진의 정사사건, 1920년대 후반 영화와 대중음악의 확산 등은 모던 세대가 형성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모던 걸이라는 용어는 가타자와 히데카즈(北澤秀一)가 일본의 『여성』지 1924년 8월호에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1926년부터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G. Kim, 2004) 모던 걸, 모던 보이는 일본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박영희가 『別乾坤』 12월호에서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용어를 들은 것이 반년 남짓하다고 말한 것을 보면, 모던 걸, 모던 보이는 일본에서 1926년 대중적으로 사용되다가 1927년 중반 경 조선에 들어와서 유행어가 되었다(Joo, 2008).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27년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은 퇴폐적인 개인들의 출현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었다. 일군의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스타일인 의상, 두발, 장식, 언어, 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모던 세대 문화가 나타내는 문화사적 의미는 이전의 기성문화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 모던 세대는 취미독물(趣味讀物)로서, 『별건곤』 창간사에는 “무산계급의 취미 증진”을 위해서 ‘취미 독물’을 발간한다고 씌어있는데, 여기서 무산계급은 대중의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중잡지, 연애, 미디어 문화의 소비, 새로운 패션 스타일 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개인성을 추구했으나 ‘계몽’, ‘민족’, ‘계급’ 등에 대한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둘째, 미국의 경우,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 ‘플래퍼(Flapper)’, ‘시크(sheik) 세대’로 불리운다. 플래퍼(Flapper)는 말괄량이를 의미하는데 용어로 단말머리(bobbed haìr), 짧은 치마, 몸에 달라붙는 옷, 긴 목걸이, 재즈 바에서 춤추기를 즐기는 여성 신세대를, 시크(Sheik)는 플래퍼와 함께 어울리는 젊은 남성으로 챙 있는 모자, 무릎까지 오는 바지, 마름모 색무늬 양말 등을 입고 있는 꽃미남 신세대를 의미한다(H. Park, 2007). 이러한 플래퍼나 시크의 유행 스타일이 1920년대 중후반 모던 세대에도 유사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모던세대 문화는 1920년대 서구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20년 대 후반 시크나 플래퍼와 같은 용어는 『별건곤』이나 『신여성』에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모던 세대는 한국 현대문화사에서 서구문화와 공통성을 경험한 첫 세대였다. 그러나 모던 세대문화는 서구,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 세대와 공통적 경험을 공유했지만, 서구 대중문화의 외양만을 공유한 세대이기도 하다.

패션에 적극적이던 모던 걸의 패션을 대부분의 남성 지식인들은 비판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모던걸의 패션은 부도덕과 허영으로 연결되는 손쉬운 비판의 대상이었다. ‘모던 걸’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사회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이상이나 책임감이 없는 여성들로, 모던보이와 더불어 가장 비난 받는 집단이었다. 모던 걸은 근대적 소비의 화신이었고 서양적 사고와 퇴폐적 이미지로 비난받았으며, 사회적 지위와 관계가 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보다는 분별없이 새로운 외모만을 추구하는 여성의 허영심을 비난하는 것에 “모던 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Fig. 1>은 모던 걸의 상징적 스타일로 주로 서양복이나 사치품 등과 연결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그 스타일 자체보다는 분별없는 소비에 대한 비난을 함축한 의미가 크다. <Fig. 2>는 전차 좌석이 텅 비어 있는데도 앉지 않고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어 손목시계를 자랑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으로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지만 만평 소재로까지 등장하였다.

<Fig. 1>

Modern Girl (Yi, 2014, p. 180)

<Fig. 2>

Tall girl movement of Modern Girl, Ahn, S. J.(Chosun Ilbo, 1928, February 5)


Ⅲ 신여성과 모던 걸 패션 비교

1. 신여성의 패션

갑오개혁 이후 여성의 의복에도 변화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복장 변화의 경향을 크게 나누면 전통 복식인 한복의 개량과 양장의 혼재 및 색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외출이 가능해지고 외부 활동이 허용되어 여성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던 장옷 폐지에 의해 검정 옷이 유행하고, 우산 쓰기가 새롭게 등장했다. 지나치게 짧은 저고리 길이의 개선으로 어깨끈이나 조끼허리가 보급되고, 활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치마길이를 줄이고 통치마가 개발되었다. 단추달기, 대님 폐지, 풀 먹이기 폐지가 이뤄지고, 속옷의 간소화와 물색 옷 입기, 검정 색 입기 등 색의 변화도 나타난다(Ko, 2001). 이러한 한복 개량은 실용성, 활동성, 경제성, 위생적인 면, 미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Yang & Park, 2015). 서구와의 접촉으로 조금씩 소개되던 여성의 양장착용은 1910년의 한·일 합방으로 민족의식이 고취되면서 한복 개량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양장이 여성들의 옷으로 보편화된 것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이고 신여성들의 시대에는 아직 한복이 여성들의 일상복이었다. 그러나 한복이 활동성이나 경제성에서 열악한 것은 사실이어서 한복 개량의 필요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을 김주원이 「부인의복 개량에 대한 의견-한가지 의견을 드리나이다」 (Kim, 1921) 에서 한복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의복의 3대 조건인 위생, 의례, 미(자태)를 갖춘 개량의복을 제창했다. 김주원은 「여자 한복의 가장 큰 병폐는 가슴을 졸라매는 것으로 건강에 크게 해가 되는 것이니 어깨허리를 해서 달고, 개량복의 상의는 약 24㎝로 길게 하며, 깃과 도련을 직선으로 간편하게 하고 치마의 폭은 줄이고 짧게 만든다. 여름 옷이 아닌 것은 검은 빛 계통으로 하여 빨래를 덜하게 하자. 개량할 때 주의할 점은 조선적인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였다. 김주원이 제창한 개량복은 흉부 결박의 제거가 주요한 목적으로, 활동의 편리성을 제일로 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나혜석은 같은 ≪동아일보≫ 지상에서(Na, 1921) 활동하기 편하고 바느질하기 편하면서도 한복 고유의 미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개량의 본뜻인데 김주원의 주장대로 만들면 고유의 미감은 사라진 운동복 같아지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어깨허리를 달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나 깃과 도련은 전통적인 모습을 살리는 것이 좋겠으며<Fig. 3>, 호주머니를 안으로 만들어 실용성을 높이자고 주장했다. 또 치마통을 좁게 하는 것은 활동성에 문제가 있고 은근히 가리는 동양적 미감을 무시하는 주장이라 하여 반대했다(Lee, 1976). 나혜석이 가장 강조한 것은 옷감과 색채이다. 옷감의 경우는 빨아 입기에 편한 것이어야 하므로 겉옷은 양복지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과 검은 옷을 입자는 김일엽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우리 의복의 특색이 선에 있지만 선에 색의 조화를 더하며 흰색이나 검은색을 배척하고 다양한 색채를 쓸 것을 주장했다.

<Fig. 3>

I want to live as a human being (Lee, 1976, p. 1)

조선 여성의 근대를 생각하는데 있어 복장의 변혁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복장의 변화야말로 ‘신여성’의 자기표현, 해방의 상징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신여성들은 한복 고유의 미와 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중시하면서 서양복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절충을 강조하였다. 신여성을 대표하는 복장은 흰색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이다. 통치마는 치마의 트인 곳을 막아 통으로 하고 길이를 짧게 한 것으로, 자락치마는 길이가 길고 옷감이 많이 드는 등 비경제적이고 활동하기에도 불편했다. 이에 간편한 것으로 고안해 낸 것이 통치마이며 외국 유학생이나 신식 여성이 먼저 입으면서 널리 보급되었다(Ko, 2001). 통치마의 색상은 검정색이 유행하는데 특히 검정치마에 흰색 저고리는 여학생이나 신식여성이 많이 입었으므로 이들을 상징하였다(Ko, 2001)<Fig. 4>. 이처럼 신여성의 여성복 개량은 여성의식 개혁의 표현인 동시에 실용성, 활동성, 경제성을 추구한 의복의 변화였다. 이로 인해 길이가 긴 흰 저고리, 검정 통치마의 유행이 보편화되었다.

<Fig. 4>

Improved Chokoli & Black Tongchima (Yoo, 1990 p. 200)

1895년 말의 단발령은 남성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위로부터 짧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근대 한국 여성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킨 여성의 단발은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아래로부터 서서히 이루어졌다. 남성의 단발이 개화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면 여성의 단발은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대한 거부행위였고, 구시대의 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장옷과 쓰개치마가 사라지고 짧은 치마가 등장한 것은 감추는 것이 비도덕적이고 억압적으로 간주되고, 겉으로 나타내는 것은 자유와 여성의 해방을 나타내는 것으로 강조되었다. 신여성의 머리모양은 쪽진 머리, 단발머리로 나타나는데, 특히 쪽진머리 양식은 머리 중앙에서 가르마를 중심으로 기름을 발라 참빗으로 곱게 빗어 머리에 딱 붙도록 잔머리 하나 없이 말끔히 빗었던 양식에서 정중앙인 가르마의 위치를 좌, 우로 이동하여 정갈함과 멋스러움을 주었고 부피감을 형성하는 여유를 주었다(Lim & Kim, 1996).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패션을 살펴보면, 양장보다는 전통적 보수 경향 스타일의 대표적인 신여성은 김활란이다. 김활란은 전통성을 추구하였으나 전통복식 그대로가 아닌 개량된 통치마를 착용하였는데, 저고리와 종아리 길이까지 오는 통치마를 입었으며 상하동색의 저고리와 통치마를 주로 입었다. 김활란은 단발을, 편리하고 위생적이며 경제적이라는 이유와 함께 여성 해방의 표상으로 주장하면서 머리 모양은 전반적으로 단발을 하였고, 통치마와 함께 스타킹을 신고 메리제인 슈즈를 신었다<Fig. 5>. 미술가이며 예술문화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한 나혜석은 신여성으로서 가치관이 확고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앞장섰던 인물로, 그의 패션은 전통한복, 개량한복, 우리 옷과 양장의 혼용 착용, 양장 등 다양한 스타일이 나타났다. 초반에는 치마, 저고리의 전통한복을 착용하고, 이후 전통 한복을 안에 입고 겉에 양장 코트를 착용하는 우리 옷과 양장의 혼용 착용을 볼 수 있다. 결혼식 당시 착용했던 의상도 흰색 전통한복에 서양식 면사포를 둘러 우리 옷과 양장을 함께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혼용양식은 토털 패션으로 나타났는데 한복과 개량한복의 전통복식을 착용할 때는 쪽진 머리를 하고 화장은 짙은 눈썹 화장을 하였다. 또한 1920-30년 패션이었던 개량한복인 통치마 스타일도 착용하는 데 흰저고리에 검정 통치마를 입고 검정스타킹과 흰색 고무신을 신었다. 해외여행을 할 때와 1930년 화가로서 활동 할 때는 서양복식을 착용하는데 직선인 실루엣의 가르손느 스타일의 의상들을 착용했으며 헤어스타일은 단발을 하였다<Fig. 6>, <Fig. 7>. 이와 같이 나혜석의 신여성으로서 개방적인 의식은 당시 패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주부로, 엄마로, 전통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화가로 활동하거나 해외 활동 등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적절한 외적 표현을 한 것이다. 나혜석의 패션은 적극적인 의식표현과 패션의 수용으로 패션을 활용하였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통복식이 서양복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Fig. 5>

Dr. Kim Hwallan (1920). (http://newwomanculturecontent.com)

<Fig. 6>

In 1927, before traveling to Europe, Na Hye-seok and Kim Woo-young (Han, 2008, p. 119)

<Fig. 7>

In 1928, in Paris, Na Hye-seok (Han, 2008, p. 119)

2. 모던 걸의 패션

모던 걸을 대표하는 여성들은 1920년대 중후반 10대 말에서 20대 초중반의 부루주아 출신 여학생, 예술가, 대중문화 종사자인 배우, 가수, 카페여급, 숍 걸인 백화점 여직원 등이며, 이들이 모던 스타일의 패션을 주도하였다<Fig. 8>, <Fig. 9>. 모던 걸이 다른 이들과 특히 구분되는 것은 패션이었다. 모던 걸의 패션은 대부분 서양복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구적 외양과 도시취미를 추구하였다. 모던 걸의 이와 같은 경향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등 언어나 그들의 행동에서 나타난다(Joo, 2008).

<Fig. 8>

Uniform in the form of a dress (Seoul special edition compilation committee, 2002)

<Fig. 9>

1930s Singers' Meeting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7, p. 183)

모던 걸들의 의복은 테일러드 쟈켓, 치마 저고리에 입은 외투 코트<Fig. 10>, 직선적인 튜닉 블라우스, 짧은 반팔소매의 원피스 <Fig. 11> 등 양장이 주를 이루었고 스커트 또한 점퍼 스커트, 세미 타이트 스커트, 플레어 스커트, A-라인 스커트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Yoo, 1989). 머리모양은 펌프도어(히사시가미)나 트레머리가 유행하기도 하였고 모던 걸 세대는 퍼머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Fig. 10>

Coat (E. Kim, 2004, p. 38)

<Fig. 11>

Short sleeve short sleeve dress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7, p. 106)

1910년대 신여성이 흰색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와 함께 토씨 정도의 소품을 착용한 것에 비하면 모던 걸 세대는 서양식 머리 스타일인 단발과 퍼머, 화장법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모자, 구두, 숄, 핸드백과 같은 다양한 소품을 활용하였다. 헤어스타일이 바뀌며 모자가 크게 유행하였으며, 이 시대에 발간된 『 여성』의 표지를 보면 초창기에는 고종의 딸인 덕혜공주가 쓰고 다닌 챙이 좁은 클로쉐(cloche) <Fig. 12>가 유행하였는데 후반기로 갈수록 챙이 넓은 카플린 스타일(capeline style)<Fig. 13>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Maeng, 2003). 구두는 굽의 높이는 대부분이 중힐 이하의 로우 힐(low heel)이었고,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Yoo, 1989). 1920년 이후에는 옥스퍼드 슈즈(oxford shoes)-끈으로 매는 장화와 단화, 콤비(combination shoes), 고무신, 운동화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마침 창간된 조선ㆍ동아의 지면광고를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인기를 독점하게 되었다(Yoo, 1990)<Fig. 14>. 각 학교에서 검은 색 운동화와 구두를 지정해서 신은 것이 큰 영향을 주어 구두의 발등에 꽃무늬의 수를 놓거나 끈 장식을 다는 등 보다 우아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일부 상류층에서만 착용되었으나 점차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짧아진 헤어스타일, 여성들의 사회진출, 낮과 밤의 의상 구별, 토털 코디네이션의 개념이 등장하는 서구적 문화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서양식 근대 교육을 받은 모던 걸들은 양장차림에 양산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끼었는데, 양산은 양장 착용 시 필수품처럼 애용되었는데, 여학생들이 유행을 주도하였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양산은 쓰개치마와 장옷의 착용을 대신한 과도기적 모습으로, 이러한 유행은 기생들에게로 옮겨졌고,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유행하기도 했다<Fig. 15>. 1920년대에는 짧아진 치마의 영향으로 양말이 유행하였다. 근대화로 들어서며 시간을 중히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시계를 또 하나의 장신구로 각광받게 하였다. 당시 외국에서 수입된 시계는 값비싼 물품으로 모던을 추구하는 모던 걸과 부유층 사람들에게는 필수품목으로 취급되었다<Fig. 16>.

<Fig. 12>

Cloche Hat (Yu, 2007, p. 47)

<Fig. 13>

Capeline Hat (New Women, 1937, July)

<Fig. 14>

Oxford Shoes (Dong-A Ilbo, 1920, Jun 22)

<Fig. 15>

Sunshade (1910~1945) (Newspaper Museum, 2004)

<Fig. 16>

New Women’s handbag, Watch (Kcdf, 2011)

또한 화장이 기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여성들 사이에서도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1920년대 이후부터는 신문지면이나 여성잡지를 중심으로 화장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광고를 통해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Fig. 17>.

<Fig. 17>

New Women’s cosmetics (Kcdf, 2011)

1920년대에서 1930년대로 넘어가면서 생겨난 소비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각 상품이 그냥 시계 혹은 금시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브랜드 네임이 거론된다. 반지와 보석반지, 금테안경에 금니, 금시계도 사치스러운 모던 걸의 기호품이었고, 동물의 털목도리도 인기였는데, 여우털 목도리는 모던걸의 장신구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J. Kim, 2005a). “여호털 목도리”를 두른 “모껄”이 몇 푼 안 되는 배추가 비싸다고 타박하다 조롱거리가 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였으며, 숄은 온몸을 감쌀 만큼 길었던 탓에 당시 신문에 연재된 만문만화에 등장해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Fig. 18>. 방한용 겉옷이 없던 여학생들은 박래품<수입품)이 유행하면서 곱게 염색된 털실이 들어오자 털실로 크고 두툼한 자주빛 숄을 뜨개질하여 크게 유행하였으며, 모던 걸과 기생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은 방한용으로 거추장스러운 두루마기 대신 간편한 숄과 스카프를 두르기도 하였다(Geum et al., 2002). 스카프는 숄보다 얇은 옷감을 사용하여 방한용이 아닌 장식용으로 주로 사용하였으나. 스카프와 숄은 모두 어깨에 걸치거나 베일처럼 머리에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의복의 형태와 소품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의복의 색채도 자신이 선호하는 색상을 선택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모던 걸들은 서민적 옷감인 무명이나 삼베가 아닌 비단, 명주로 옷을 해 입고, 여름 이면 속이 훤히 비치는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어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J. Kim, 2005b).

<Fig. 18>

Blanket like shawl (Dong-A Ilbo, 1924, March 8)

3.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 비교

신여성의 의복 형태는 양장보다는 전통성을 추구하였지만, 전통복식 그대로 보다는 개혁의 상징인 흰색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를 착용하였다. 신여성은 한복의 간소화와 개량화로 어깨끈이나 조끼허리의 보급으로 저고리의 길이를 개선하고 검정 통치마를 착용하였고, 모던 걸은 테일러드 쟈켓, 허리에 벨트를 한 코트, 직선적인 튜닉 블라우스, 점퍼 스카트, 쎄미 타이트 스커트 플레어스커트, A-Line스커트의 서양복식을 추구하였다. 머리모양에 있어서 신여성은 땋은 머리나 쪽진머리, 트레머리가 주를 이루었으나 1920년대 말에는 단발머리를 하기도 하였으며, 모던 걸은 단발머리, 퍼머넌트 스타일로 유행의 첨단을 나타내었다. 신발 착용에 있어서 신여성은 메리제인 구두를 신기도 하였지만, 우리 고유의 신발인 짚신과 미투리를 신고 다녔고, 모던 걸은 옥스포드 구두와 같은 서양의 신발을 선호하였다.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장신구에 있었다. 신여성이 토씨 정도의 장신구를 착용 하였다면, 모던 걸은 실크 스타킹, 핸드백, 양산, 모자, 금테 안경, 손목시계, 목도리 등의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을 하여 개성을 나타내었다.

신여성과 모던 걸의 패션 비교는 <Table 1>에서 정리한 바와 같다.

A comparison of the Fashion of Modern girl and New Woman

신여성이 사회, 경제적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 계급의식, 남녀평등의식 등을 깨닫고 이러한 의식 변화와 함께 활동에 편한 의복 개량으로 한국 패션사를 이끌어 갔다면 모던 걸은, 자유연애, 단발, 트레머리, 하이힐, 재즈, 서구 브랜드의 상품 등 근대적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을 성립한 세대이다. 그들은 미디어 문화의 소비와 그에 따른 세대문화 스타일을 구성해 갔으며 이 시대에는 취미독물이라고 불리는 「별건곤」, 「신여성」 같은 잡지에도 출현하여 대중문화로서의 기틀을 잡았다. 모던 걸들은 영화나 음악이나 여성지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유행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구했다. 영화배우들이 착용한 안경과 모자 등의 소품과 외투를 비롯한 양장을 모던 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정서와 미의식에 반영하여 변화를 일으켰다. 치마저고리 대신 양장을 입었고 땋거나 쪽진 머리 대신 단발과 퍼머로 바꾸며, 버선발 대신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었으며, 고무신 대신 구두를 착용했다. 신여성과 모던 걸의 가장 큰 차이는 의복을 착용하는 데 있어서 의식의 차이이다.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은 의식개혁과 사회 운동을 주도했고 아울러 단발과 의복개량 등 생활에 있어서 개선운동을 펼쳤으나, 의복 개량 시에는 조선의 옷임을 강조하고 한복의 미를 살릴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서구의 근대적 사상을 접함으로써 자아를 각성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인식하여 과거의 봉건 질서에 매어 있던 관습이나 윤리제도 등에서 과감히 탈피하였지만. 서양복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으며 전통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 모던 걸들은 1920 후반 소비문화의 주요한 소비계층으로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라기보다 다방, 영화, 레코드 등 서구적 대중 문화를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로, 패션에 있어서도 유행의 첨단을 걸었다. 단발이나 커트 머리를 하고 모자와 양장에 어울리는 구두인 하이 힐, 핸드백, 실크스타킹, 금테안경에 금니, 반지와 보석, 때로는 금시계와 여우목도리와 같은 사치품과 조합을 하였다. 화장품의 사용과 새로운 화장법으로 얼굴에 분을 많이 바르거나 눈썹을 가늘게 그리기가 유행하고, 갖춰야 할 소품에 대한 인식도 생겨나서 여성패션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자신의 미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이끌어 갔으며, 기존의 여성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펼친 것이다. 그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들은 여성의 사회활동과 경제 참여에 따라 증가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으로 우리나라 패션 변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신여성과는 달리, 한국 근대성 경험 이후에 첫 번째 나타난 모던 걸은 서구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서구의 젊은 세대와 동시대를 경험한 세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과 비판 없이 무분별하게 서양문화를 모방한 것은 모던 걸의 한계이다.


Ⅴ. 결론

본 연구는 개화기 이후 근대시기인 1910년대에 등장한 신여성과 1920년대 중반에 나타난 모던 걸과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들의 패션을 비교하여, 신여성과 모던 걸이 인식과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아보고, 신여성과 모던 걸은 다른 존재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신여성의 의식과 패션, 그리고 모던 걸들의 유행 의상과 소품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여성은 지식층의 일부로 주체의식과 계몽적 사상을 가진 부르주아 계층이며, 전통적 인습과 사고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장했지만, 복식에 있어서는 한복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 활동성과 기능성, 편리함을 추구하여 개량한복인 통치마와 전통한복을 개선한 의복을 착용하였다. 근대성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그들만의 과학적 삶의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1920년대 후반 모던 걸은 주체의식이나 계몽사상보다는 소비문화의 주요한 소비계층으로 사회나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 책임감이 없는 여성들로 비난 받는 집단이었으며, 서양복에 단발, 화장, 실크 스타킹이나 금시계와 같은 사치품이 모던 걸을 상징했다.

신여성에 의해 나타난 개량한복과 양장착용은 여성의 사회활동과 경제 참여에 따라 증가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으로 세대를 형성한 모던 걸에도 영향을 주어 우리나라 패션 변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신여성과는 달리, 한국 근대성 경험 이후에 첫 번째 나타난 모던 세대는 서구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서구의 젊은 세대와 동시대를 경험한 세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던 걸은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라기보다 다방, 영화, 레코드 등 서구적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로 패션에 있어서도 유행의 첨단을 걸었다. 자신의 미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이끌어 갔으며, 기존의 여성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펼친 것이다.

신여성과 모던 걸은 세대 간 의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국 복식이 현대 복식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시대에 패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근대성을 성취하였다. 신여성이 과학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새로움과 계몽의 상징으로 입은 개량한복의 통치마와 저고리는 전통복식에서 양장으로 가는 길의 밑바탕이 되었다면,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서 서양 패션을 과감히 받아들여 패션의 중심에 서있던 모던 걸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패션 스타일링을 했던 패션 리더였다.

이상의 본 연구 결과는 신여성과 모던 걸의 개념과 패션 스타일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한국 복식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연구의 대상이 신여성과 모던 걸로 국한되어 남성, 즉, 모던 보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한국 사회 전반에 나타난 사회현상과 복식의 변화, 소비문화를 살펴보기에는 부족하다. 앞으로 모던 보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7년도 중앙대학교 CAU GRS 지원에 의하여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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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g. 1>
Modern Girl (Yi, 2014, p. 180)

<Fig. 2>

<Fig. 2>
Tall girl movement of Modern Girl, Ahn, S. J.(Chosun Ilbo, 1928, February 5)

<Fig. 3>

<Fig. 3>
I want to live as a human being (Lee, 1976, p. 1)

<Fig. 4>

<Fig. 4>
Improved Chokoli & Black Tongchima (Yoo, 1990 p. 200)

<Fig. 5>

<Fig. 5>
Dr. Kim Hwallan (1920). (http://newwomanculturecontent.com)

<Fig. 6>

<Fig. 6>
In 1927, before traveling to Europe, Na Hye-seok and Kim Woo-young (Han, 2008, p. 119)

<Fig. 7>

<Fig. 7>
In 1928, in Paris, Na Hye-seok (Han, 2008, p. 119)

<Fig. 8>

<Fig. 8>
Uniform in the form of a dress (Seoul special edition compilation committee, 2002)

<Fig. 9>

<Fig. 9>
1930s Singers' Meeting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7, p. 183)

<Fig. 10>

<Fig. 10>
Coat (E. Kim, 2004, p. 38)

<Fig. 11>

<Fig. 11>
Short sleeve short sleeve dress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7, p. 106)

<Fig. 12>

<Fig. 12>
Cloche Hat (Yu, 2007, p. 47)

<Fig. 13>

<Fig. 13>
Capeline Hat (New Women, 1937, July)

<Fig. 14>

<Fig. 14>
Oxford Shoes (Dong-A Ilbo, 1920, Jun 22)

<Fig. 15>

<Fig. 15>
Sunshade (1910~1945) (Newspaper Museum, 2004)

<Fig. 16>

<Fig. 16>
New Women’s handbag, Watch (Kcdf, 2011)

<Fig. 17>

<Fig. 17>
New Women’s cosmetics (Kcdf, 2011)

<Fig. 18>

<Fig. 18>
Blanket like shawl (Dong-A Ilbo, 1924, March 8)

<Table 1>

A comparison of the Fashion of Modern girl and New Woman

New Women Modern Girl
Form of clothing ● Simplification of Hanbok
● Improvement of length of jeogori
(shoulder strap. Waist spread of waist).
● White Jeonegori and Black seamless onepiece skirt
● Tailored jacket
● Straight tunic blouse
● Jumper skirt
● Semite tight skirt
● Flared skirt
● A-Line skirt
Hair ● Chignon
● Bobbed hair
● Chignon,
● Permanent Style
Shoes ● jipsin and namagsin
● Mituli
● Mary Jane Shoes
● Oxford Shoes
Accessories ● Tossi ● handbag,
● sunshade
● hat
● Gold rimmed glasses
● wristw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