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No. 5, pp.35-49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19
Received 03 May 2019 Revised 19 May 2019 Accepted 21 Jun 2019
DOI: https://doi.org/10.7233/jksc.2019.69.5.035

고대 히타이트 제국 야질리카야 부조에 새겨진 복식연구

조현진
계명대학교 패션마케팅학과 조교수
A Study on the Costumes Carved in Yazilikaya Relief of the Ancient Hittite Empire
Hyunjin Cho
Assistant Professor, Dept. of Fashion Marketing, Keimyung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Hyunjin Cho, e-mail: hyunjin7@kmu.ac.kr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Hittite costume culture and to increase an understanding of costume culture in Egypt, Mesopotamia, and the Mediterranean region. In particular, this study focuses on the costumes carved in Yazilikaya relief of the ancient Hittite Empire. The basic attire of Hittite man are a loincloth, a wide belt, a pointed hat, and shoes with upward toecaps. It also consisted of a long overskirt with open front, a floor-length skirt that jutted out on the sides, an ankle-length robe, a shawl with pointed ends, and a round hat. It seems that these were variously worn according to the wearer's status. The basic costumes of Hittite women are a blouse and a pleated skirt, a wide belt, a cylindrical pleated cap, and shoes with upward toecaps. The blouse featured dolman sleeves and the waist of blouse is pleated vertically with a wide belt tightened. The ankle length skirts are pleated in the vertical and oblique directions, although it is not clear whether this is the difference in how to dress or pattern making. These Hittite costume is a combination of ancient Egyptian, Mesopotamian, and Cretan costumes, which is reborn as Hittite 's unique costume. Based on this, it is evident that there existed a flow of cultural exchange in the development of ancient costumes.

Keywords:

cultural exchange, Hittite, relief, Yazilikaya

키워드:

문화교류, 히타이트, 부조, 야질리카야

Ⅰ. 서론

고대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700년경 시작하여 기원전 1200년경까지 약 500년간 역사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런데 제국의 멸망과 함께 그들이 남긴 역사의 기록이나 흔적이 땅속에 묻히는 바람에 너무 철저하게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히타이트의 역사가 인류 문명사에서 자리매김을 한 것은 1900년대 초반 그들이 남긴 점토판이 발굴되면서 시작되었다. 3000여 년이 넘도록 암흑 속에 묻힌 그들의 역사가 히타이트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인류 역사와 문명사 속에서 한 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러한 점토판의 기록에 의하면 히타이트인들은 인류가 최초로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며 살았던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최초의 정치 세력을 가진 국가로 등장하였다. 히타이트는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중근동 패권국가로 등장하려는 아시리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한편, 이집트와는 카데시 전투를 치른 후 인류 최초의 평화 조약체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었을 만큼 이집트, 아시리아와 함께 고대 오리엔트 3대 제국으로 부상한 강대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Lee, 2012).

위의 사실을 비추어 볼 때 히타이트에 대한 연구는 고대 중근동 세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이에 본 연구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 야질리카야(Yazilikaya)의 부조에 묘사된 복식에 한정하여 히타이트 복식문화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및 지중해 지역의 복식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이는데 연구의 목적를 두고자 한다.

본 연구의 주 연구대상인 야질리카야는 터키 동부에 위치한 고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사(Hattusa)의 유적인 보아즈쾨이(Bogazkoy, Boghazkeui) 북동쪽 1.6㎞지점에 ‘글자가 새겨진 암벽’이라는 뜻을 지닌 거대한 옥외 바위 신전으로서 히타이트 제국의 왕 투달리야 4세(Tudhaliya Ⅳ. BC 1250~1220)가 기원전 13세기에 세운 곳이다(Yazici, 2015). 이 바위 신전에 들어서면 당시 히타이트 제국이 섬겼던 수많은 신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은 모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신전을 건립한 투달리야 4세의 염원과 당시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복식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를 위한 방법으로는 문헌조사와 2018년 7월 터키학술답사를 통해 직접 촬영하여 수집한 야질리카야의 부조 자료를 분석하는 실증적 연구방법을 병행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인 야질리카야 부조의 훼손 정도가 심각한 점을 감안하여 앙카라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에 소장된 히타이트 복식관련 유물자료도 함께 다룸으로써 연구 자료의 부족을 보완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히타이트 제국의 개요

히타이트인들이 살았던 지역은 오늘날 인류 문명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터키가 자리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이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고대의 다양한 인류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소아시아라고도 불리우며, 이 지역은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터키 제국이 탄생하여 아나톨리아를 ‘제국의 땅’이라고 부른다.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7세기경 아나톨리아 중부 하티(Hatti)라는 지역에 정착하여 기원전 12세기까지 약 500년간 아나톨리아 전역과 시리아북부 및 메소포타미아 서부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Hoffner, 1991). 하투샤는 히타이트의 종교와 행정의 수도이며, 히타이트의 공식어는 네쉬테(Neshite)라는 인도-유러피안 언어를 사용하였다. 네쉬테는 현재 이란 북부 알보르즈(Alborz)지방의 고대 도시 내사(Nesa)에서 사용된 언어로서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기원전 3000년 경 중부 아나톨리아로 유입되었다. 하티라는 지역명에 따라 하티인(Hattian)이라 불리웠던 히타이트인들은 인도-유러피안 문화를 흡수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결합하였다. 히타이트는 시대가 흐름과 함께 군사적 정복뿐만 아니라 이문화의 영향과 상업적 접촉을 통해 많은 주변국들의 문화를 받아들였다(Bryce, 2004). 이러한 주변국들의 병합을 통해 히타이트는 이들과 연방체를 형성하였다. 연방체에 편입된 소공국들은 히타이트의 소위 중앙 정부가 있는 하투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래서 아나톨리아에 산재해 있던 소공국들은 힘 있는 몇 개 공국의 지배로 들어갔고 소공국들과의 연방체가 형성되면서 히타이트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River, 2015).

히타이트는 성서에 등장하는데 히브리어판 성서에서 히타이트인들은 히팀(Hittim)이라고 불린다. 성서에서 그들은 소수 민족 중 하나로만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3장 10절에는 “가나안족, 헷족(Hittites), 히위족, 브리즈족, 기르갓족, 아모리족, 여부스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창세기> 23장 3~4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헷(Heth)의 자식들에게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하며, “내 아내를 안장”할 땅을 좀 달라고 한다. 이 대목은 히타이트 민족이 한때는 약속된 땅의 실제 통치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열왕기 하> 7장 6절에는 “주께서 시리아 군에게 대군이 쳐들어오는 소리를, 전차대가 밀려오고 기마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큰일났다. 이스라엘 왕이 헷(히타이트 민족)의 왕들과 이집트 왕들에게 돈을 주고 군대를 사다가 우리를 치는구나!’”라고 기록되어 있다(Ceram, 1999). 여기서 고대 최강의 군주였던 이집트의 파라오보다 앞서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히타이트 제국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2. 야질리카야(Yazilikaya)의 의미와 구조

야질리카야는 히타이트의 신년 축제가 열렸던 종교적인 장소로서 2개의 석실로 이루어진 자연의 암벽 신전이며<Fig. 1>, 투달리야 4세를 포함하여 총 83명의 다양한 신들을 모신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이다. 이처럼 다양한 신들이 하나의 신전에 모일 수 있었던 요인은 히타이트 제국이 주변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다른 종족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제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수용하려는 태도에 기인한다. 그들은 속국의 신들도 모두 자신들의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수메르, 아카드인들의 신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함으로써 종교적인 사고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히타이트인들이 믿는 신의 수는 적었으나, 제국을 확장함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여 신의 근원이나 종류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히타이트인들이 믿는 신이 수적으로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신의 족보도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유형상으로 다양하여, 그들은 ‘천의 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불려지게 되었다(Macqueen, 1996). 이를 통해 히타이트 제국의 문화적 포용력을 짐작할 수 있다.

<Fig. 1>

Internal view of Yazilikaya(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초기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야질리카야는 <Fig. 2>처럼 2개의 석실과 입구에 위치한 복합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Seeher, 2011). 이 복합 건물들은 다양한 크기의 방들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터만 남은 상태이며, 당시 바위 신전에 입장하기 전 머물던 장소로서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2개 석실의 명칭은 초기 발굴 보고서에 기재된 알파벳 A와 B석실의 명명대로 본 연구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두 개의 석실 중 A석실은 규모나 신들의 수에 있어서 B석실보다 크고 많은 것으로 보아 A석실이 주(主)신전이고 B석실은 부(副)신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Fig. 2>

Plan of Yazilikaya(Seeher, 2011, p. 18)


Ⅲ. 야질리카야 부조에 묘사된 복식

A석실은 <Fig. 3>처럼 불규칙하게 돌출된 12m 높이의 바위들이 약 30m의 길이로 둘러싸인 곳이다. 부조들은 석실 내부를 따라 수직으로 조각되어 있으나, 석실이 약 3200여년 동안 외부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부조의 훼손 상태는 심각한 편이다. B석실은 18m 길이로 북쪽 끝의 폭이 4.5m, 남쪽 끝의 폭이 2.15m로 <Fig. 30>처럼 좁은 통로처럼 보인다(Seeher, 2011).

<Fig. 3>

Chamber A of Yazilikaya(Seeher, 2011, p. 32)

본 연구에서는 부조의 훼손 정도가 심각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야질리카야 발굴 조사에 참여했던 독일의 고고학자 Seeher의 저서 Gods Carved in Stone The Hittite Rock Sanctuary of Yazilikaya에 수록된 도식화와 넘버링(numbering), 신들의 명칭을 사용하고, 필자가 촬영한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에 소장된 히타이트 복식 관련 유물자료 사진들을 토대로 히타이트 복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A 석실의 히타이트 복식에 대한 유형 분석

A석실에는 No.1에서 No.66까지 다양한 신들과 투달리야 4세의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석실을 들어섰을 때 정면에 히타이트의 최고신인 폭풍의 신 테숩(Tesup)과 그의 부인인 태양의 여신 헤파트(Hepat)가 조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에 위치한 테숩 뒤로 41명의 남자 신들이 열을 지어 서 있고, 오른쪽에 위치한 헤파트의 뒤로는 아들 샤루마(Sharruma)와 19명의 여신들, 투달리야 4세,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남녀 신, 사자 얼굴에 날개가 달린 인간의 몸을 한 2명의 신들이 묘사되어 있다(Seeher, 2011).

이들이 착용한 복식은 <Table 1>에 도식화로 정리하였으며, 이들의 복식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llustration of gods’ costumes in Chamber A

1) 테숩의 편에 늘어선 신들의 복식(No.1~42)

먼저 No.1~12는 지하세계의 신들이다. 이들은 짧은 스커트형의 요의(腰衣, loin cloth)와 이마 부분에 뿔이 달린 높은 고깔형의 모자,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을 착용하고 있다. 그들의 오른손에는 둥근 낫 모양의 칼이 쥐어져 있고, 칼날의 끝은 뒤쪽을 향하게 어깨에 걸치고 있다. 이들이 착용한 요의는 신원이 미확인된 No.16,18,19,21,23,25,27,30~33의 신들이 공통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히타이트의 기본 복식으로 보여진다<Fig. 5~8>.

이들이 착용한 요의는 앞이 막힌 스커트형이나 사선으로 여미어지는 랩(wrap)스커트형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앞이 막힌 스커트형은 터키 중부 시바스(Sivas)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16~15세기로 추정되는 청동제 남자 신상에서 확인할 수 있고<Fig. 16>, 랩스커트형의 요의는 터키 중동부 말라티아(Malatya)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1200년에서 7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조에 표현된 폭풍의 신 테숩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Fig. 17>. 두 요의의 허리에는 넓은 벨트가 타이트하게 매어져 있으며, 테숩은 반소매의 상의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Fig. 16>

Statue of the Man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17>

Tesup(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고깔형 모자의 디테일을 보면 시바스 지역의 남자 신상보다 테숩의 모자에 세로줄과 고리 장식이 있는 것이 차이가 있다. 테숩의 모자는 <Fig. 16>과 동일한 형태이지만 가로 길이 방향으로 부조된 구도상 높이가 정해진 구도의 한계로 <Fig. 16>보다 낮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No.1~33의 신들 중에서 No.31 둥근 모자를 착용한 날개 달린 신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고깔형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이들 고깔형의 모자는 세로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되고, 고리 장식과 No.17,22 신들의 경우 모자 끝 부분이 앞을 향하고 있어 이러한 요소들은 신분의 차이를 표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Fig. 16>의 모자를 자세히 보면 부조에 표현된 이마 부분의 뿔이 모자의 오른쪽에 부착된 것으로 보아 입체를 평면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대상의 본질적인 특징을 반영하는 이집트 미술양식과 유사한 표현방식으로 부조에 표현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No.13,15,16a,17에서 보이는 산(山)의 신이 착용한 양 옆에 돌기가 달린 긴 스커트형의 복식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지 않은 형태로서 높은 산지가 많은 히타이트의 지형적 특성이 복식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스커트형 복식은 보아즈쾨이 지역에서 발굴된 상아로 만든 기원전 1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산의 신상이다<Fig. 18>. 먼저 스커트의 형태는 바닥까지 닿는 원뿔형으로 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스커트 위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수많은 디테일은 험준한 산에서 볼 수 있는 바위들로 추정된다. 그리고 부조에서 표현된 양쪽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나온 디테일들은 장식적인 목적으로 부착된 것으로 보인다.

<Fig. 18>

Statue of the Mountain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No.28,29는 황소의 신으로서 머리 위로 4개의 돌출 장식이 달린 초승달을 떠받치고 있다. 히타이트에서 땅은 지하세계를 상징하는 반면에 초승달은 하늘을 상징한다(Seeher, 2011). 이들의 복식은 부조에 잘 확인되지 않으나, 터키 중남부 가지안텝(Gaziantep)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900~700년 경으로 추정되는 황소의 신 부조에서 그 복식을 유추해 볼 수 있다<Fig. 19>. 이 부조에 묘사된 황소의 신은 2장의 직사각형 천으로 앞뒤를 가리고 허리부분에 띠가 달린 요의 형식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다.

<Fig. 19>

Bull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No.20,22,24,26,35,39~41의 신들은 앞이 트인 오버스커트(over skirt)와 짧은 요의형의 언더스커트(under skirt)가 결합된 형태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복식은 말라티아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1200년에서 7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조에 표현된 날개가 달린 신<Fig. 20>과 가지안텝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900~700년경으로 추정되는 부조에 표현된 신의 복식<Fig. 21>에서 확인할 수 있다. <Fig. 20>에서는 언더스커트가 확인되지 않으나, 무릎 위부터 바닥까지 앞이 트인 오버스커트가 확인되고 스커트 앞부분에는 허리에서 아래로 술장식이 확인된다. <Fig. 20>의 오버스커트에 표현된 주름은 No.38의 스커트 주름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Fig. 21>은 언더스커트와 오버스커트 명확하게 확인되며, 오버스커트가 3단으로 구성되고 가장자리에 술장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후대로 갈수록 장식성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ig. 20>

Unidentified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1>

Unidentified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2>

King of the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그리고 <Fig. 20>의 신이 양손에 들고 있는 양날이 있는 도끼 모양의 무기는 그리스 시대 에게해 연안의 지역으로 전해졌고, 카리아 지역의 제우스신(Karian Zeus)과 에게 해 북동부의 섬인 테네도스(Tenedos)의 상징이 되었다(Sayce, 2015). 이를 통해 청동기 무기가 지중해를 통해 지중해 연안의 지역들로 전파된 것처럼 복식 또한 이러한 경로를 통해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여러 문명들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No.34는 머리 위에 날개가 있는 태양이 묘사되어 있어 태양신으로 보고 있다. 이 태양신의 복식은 알라카회육(Alacahőyűk)에서 발굴된 기원전 1339~1301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왕의 부조에 묘사된 복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히타이트의 왕궁 하투사(Hattusa)의 기록문서 보관소에서 발굴된 기록에 의하면 히타이트의 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Bryce, 2004).

“왕은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단순한 스타일의 백색 의상과 푸른 로브(robe)에 목자(牧者)의 망토를 걸치고 검정 신발을 착용하고 머리에는 꼭 맞는 둥근 모자를 착용하고 금 귀걸이로 치장을 마친다. 치장을 마친 후 왕좌가 있는 알현실에 들어서면 그의 배우자이자 여사제인 여왕이 대기하고 있다. 알현실에서 왕은 왕실 선임 대장장이로부터 끝이 굽은 지팡이(crook)와 창을 건네받는다. 지팡이와 창은 격식의 높고 낮음에 따라 철, 금, 은으로 제작되며, 손잡이가 굽은 지팡이는 태양신의 대리자로서 재판을 수행하는 왕의 사법적 힘을, 창은 군사적 힘을 상징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기록과 더불어 알라카회육의 부조에 묘사된 왕의 의상을 자세히 보면 긴 로브 위로 끝이 뾰족한 숄을 걸치고 있으며, 그 한쪽 자락이 왼쪽 어깨에서 가슴을 지나 오른쪽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숄의 가장자리는 선 장식이 있다. 왕의 팔 부분은 보면 숄 사이로 로브의 소매가 보인다. 로브의 소매는 팔꿈치 바로 아래 길이이며, 세 줄의 선 장식이 있고 양 손목에는 두 개의 링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태양신의 복식과 왕의 복식이 유사함을 확인하였고, 이는 신의 대리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왕의 막강한 힘을 짐작할 수 있다.

2) 헤파트(Hepat)의 편에 늘어선 신들의 복식(No.43~66)

No.43~66은 태양의 여신 헤파트의 뒤로 늘어선 신들의 도식화로서 No.44, 64~66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여성이다. 부조에 묘사된 여자 신들의 복식은 블라우스와 주름스커트에 벨트를 매고 원통형의 모자를 공통적으로 착용하고 있다<Fig. 23>. 먼저 No.43 헤파트의 복식은 알라카회육에서 발굴된 기원전 1339~1301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왕의 복식에서 그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Fig. 24>. 여왕은 주름들이 뒤에서 앞으로 올라가 있는 형태의 스커트와 몸에 꼭 맞는 상의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는 No.54~57,59,60의 여신 의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스커트의 주름 형태를 자세히 보면 허리 뒤에서 주름이 겨드랑이 아래 지점으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올라간 주름은 가슴 아래로 팔짱을 끼듯이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내려온 왼손에 잡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팔은 팔꿈치를 구부려 손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자세로 추정되며, 여왕 역시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부조에 묘사된 스커트의 주름은 세로방향과 사선방향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주름의 방향은 기원전 900년에서 600년으로 추정되는 터키 남서부 안탈리아(Antalya) 지역에서 발굴된 대지의 여신 키벨레(Kybele)의 동상에 표현된 주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키벨레의 복식을 보면 상반신은 나체이며, 허리 아래로 주름스커트를 착용하고 있다<Fig. 25>. 먼저 스커트의 앞중심에서 왼쪽 부분은 세로 주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중심의 오른쪽에서 허리 바로 아래를 보면 중심을 기준으로 3분의 1부분은 사선으로, 나머지 3분의 2부분은 세로 주름이 보이다가 힙선 부분에서 중심부의 사선과 바깥쪽의 수평 주름이 산처럼 솟은 것처럼 합쳐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주름 형태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한 장의 통으로 된 주름이 많은 스커트의 주름을 착용자가 왼쪽 골반부의 스커트 자락을 올려 힙선에서 핀의 일종인 피블라(fibula)로 주름을 고정시킴으로써 만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앞중심에서 절개하여 왼쪽은 세로로 주름을 잡고, 오른쪽은 가로로 주름을 잡아 봉제하여 이어 붙인 후 왼쪽 골반부의 스커트 자락을 올려 힙선에서 피블라로 주름을 고정시킨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블라우스의 형태는 손목부분이 좁은 돌만(dolman)슬리브가 달린 형태로서 이는 No.43 헤파트의 허리부분에 세로로 주름이 잡힌 것으로 볼 때 품이 넓어 허리에 벨트로 조임에 따라 주름이 잡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히타이트 여자복식은 앙카라 북동쪽에 위치한 이난딕(Inandik)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17세기로 추정되는 항아리에 묘사된 여자 악사의 모습에서 히타이트 초기 여자복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Fig. 26>, 후대로 갈수록 블라우스의 품이 커지고 스커트의 볼품이 커짐에 따라 주름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히타이트인들은 황색 피부에 검정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 길고 뾰족한 코, 사각턱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로 묘사하고 있는데(Auerbach, 2016), 이 여인의 얼굴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Fig. 23>

Unidentified goddess(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24>

Queen of the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5>

Kybel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6>

Female musician(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여자 신들의 모자는 모두 세로로 주름이 있는 원통형으로서, 이러한 형태는 터키 북부 흑해 연안의 살만(Salman) 지역에서 출토된 기원전 600년경으로 추정되는 대지의 여신 키벨레의 두상으로서, 초기 원통형의 관모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세로 주름장식이 꽃과 꽃잎 장식으로,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모자로, 여기에 <Fig. 25> 키벨레의 모자처럼 진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No.65,66은 왼편에 테숩과 오른편에 투달리야 4세가 의자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은 알라카회육에서 발굴된 기원전 1339~1301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테숩과 왕의 복식에서 그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 테숩은 장식이 달린 고깔형 모자에 긴 로브를 착용하고 있으며, 왕은 <Fig. 22>에서 보여지는 복식과 동일하지만 No.66과 달리 서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A석실의 신들이 착용한 신발은 반인반수의 신들인 No.28,29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을 착용하고 있으며, 앞코가 위를 향하는 형태의 신발은 고대 히타이트의 특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발의 형태는 가지안텝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900년에서 700년 사이로 추정되는 부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Fig. 29>, 발목길이의 가죽소재로 만든 신발로 추정된다.

<Fig. 27>

head of Kybel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8>

Tesup and King(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9>

Shoes of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30>

Chamber B of Yazilikaya(Seeher, 2011, p. 100)

2. B 석실의 히타이트 복식

B석실은 좁은 통로처럼 생겨 A석실에 비해 부조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B석실에는 No.67에서 No.83까지 다양한 신들과 투달리야 4세의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석실의 입구에는 사자 얼굴에 인간의 모습을 한 날개 달린 반인반수의 신 2명이 좌우에 새겨져 있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A석실의 시작부분에 위치했던 지하세계의 신들 12명이 열을 지어 있다. 그 다음으로는 테숩과 헤파트의 아들 샤루마가 투달리야 4세를 왼팔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사각형의 움푹 들어간 곳에 새겨져 있다. 바로 옆에는 칼의 신이 위치하고 마지막에 투달리야 4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인장(印章) 해당하는 카투시(cartouche)가 있다(Seeher, 2011).

이들이 착용한 복식은 <Table 2>에 도식화로 정리하였으며, 이들의 복식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llustration of gods’ costumes in Chamber B

B석실의 입구에 서 있는 No.67,68 사자 얼굴과 인간을 몸을 한 날개 달린 반인반수의 신들이며, 이러한 형상의 신은 가지안텝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900~700년 경으로 추정되는 부조에 표현된 사자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한 신과 날개 달린 것만 빼고 동작과 복식이 매우 유사하다. 가지안텝의 부조에 새겨진 신의 복식은 시기적으로 후대임을 감안할 때 단순한 요의 착장에서 후대로 갈수록 반소매의 상의를 추가해서 착용했음을 볼 수 있다. <Fig. 37>은 B석실에 새겨진 지하세계의 신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A석실에 새겨진 지하세계의 신들보다 전체적인 모습이 명확하게 남아있다. 이들이 착용한 복식은 A석실 지하세계의 신들과 같다.

<Fig. 36>

God with lion head and human body(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37>

Gods of the underworld(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다음으로 No. 81 샤루마와 투달리야 4세의 복식 또한 테숩과 No.64의 복식과 동일하게 묘사되어 있다<Fig. 38>. No.82은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칼의 신으로서 네르갈(Nergal)로 불리우기도 한다. 칼의 신은 고깔형태의 관모를 착용하고 귀걸이를 하고 있는 얼굴을 제외하고 그 아래는 네 마리의 사자가 상하에 배치되어 있고 양날이 있는 칼이 땅에 꽂혀 있다<Fig. 39>. 여기서 네 마리의 사자가 위치하는 부분은 칼의 손잡이로 추정된다. 칼의 신 뒤에는 항상 지하세계의 신 12명이 수행하고 있다. <Fig. 40>은 투달리야 4세의 카투시로서 대개 히타이트 왕의 카투시는 중앙에 왕의 존칭과 이름, 칭호가 상형문자로 씌여 있고, 바깥둘레에는 설형문자가 씌여진 것이 일반적이다(Brandau & Schickert, 2002). 이 투달리야 4세의 카투시에는 누워 있는 부츠 모양의 상형문자 “tu”위에 산의 신을 조합하여 왕의 이름으로 새겨 넣었다. 산의 신은 오른손에 곤봉을 치켜들고 있다. 산의 신 좌우에는 기원전 16세기 초 히타이트의 위대한 왕 라바르나 1세(Labarna Ⅰ)를 상징하는 상형문자를 새김으로써 투달리야 4세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바로 위에 새겨진 좌우에 날개가 있는 태양은 태양신의 보호를 의미한다(Seeher, 2011).

<Fig. 38>

Sharruma and King(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39>

God of sword(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40>

Cartouche of Tudhaliya Ⅳ(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Ⅳ. 히타이트 복식의 특징

이상에서 살펴본 야질리카야 부조에 묘사된 복식은 크게 남자복식과 여자복식으로 나누어 그 유형을 분류할 수 있으며, 본 장에서는 야질리카야 부조에 묘사된 기원전 13세기 히타이트 남녀복식의 특징을 주변국들의 복식과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히타이트의 남자복식

히타이트의 남자복식은 넓은 벨트를 맨 짧은 스커트형의 요의와 요의 위에 앞이 트인 발목길이의 긴 오버스커트, 발목길이의 긴 로브와 끝이 뾰족한 숄,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 고깔형태의 모자가 특징적이다.

먼저 요의는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복식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Fig 41>은 이집트 제 3왕조(2649-2575 BC)의 목판에 부조된 이집트인이며 야질리카야의 부조에 표현된 요의를 착용한 남자신의 복식과 비교했을 때 시기적으로 약 14세기의 차이가 있으나 정면을 향한 상체와 옆모양의 다리, 짧은 요의는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더해 야질리카야 남자신의 벨트는 크리트의 요의에서 볼 수 있다. <Fig 42>는 기원전 17세기 크리트의 왕자로 추정되는 벽화로서 왼쪽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요의 허리에 벨트를 착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 벨트의 소재를 가죽이나 금속으로 추정하고 있으며(Chung, 2010), 착용상태를 볼 때 이집트의 요의에서 보여지는 끈 형태와 구분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바탕으로 히타이트의 벨트의 소재는 크리트의 것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Fig. 41>

Loin cloth 1(Ferrero, 2007, p. 39)

<Fig. 42>

Loin cloth 2(Boucher, 1987, p. 89)

발목길이의 긴 로브와 숄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왕 함무라비(Hammurabi, 1792-1750 BC)의 복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Fig 43>. 함무라비의 복식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로브를 착용하고 왼쪽 어깨에 긴 숄을 늘어뜨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복식 스타일이 히타이트에서는 양 어깨를 가리는 로브에 끝이 뾰족한 스타일의 숄로 변형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Fig. 43>

Robe and shawl(Curatola, 2007, p. 69)

이처럼 복식은 전반적으로 이집트와 크리트, 메소포타미아의 복식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히타이트화한 복식으로 변형되었고, 고깔형태의 관모, 요의 위에 앞이 오픈된 발목길이의 긴 오버스커트,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은 당시 주변국들과 구분되는 히타이트 고유의 스타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2. 히타이트의 여자복식

히타이트의 여자복식은 블라우스 형태의 상의와 스커트로 구성된 고대 복식에서 드문 투피스 형태이다. 소매의 형태를 보면 손목은 좁고 암홀 부분이 매우 넓은 돌만 슬리브처럼 보이며, 바디스의 경우 품이 넓어 허리를 조인 벨트와 많은 양의 주름이 있는 스커트가 특징적이다.

히타이트 여자복식의 투피스 형태는 크리트의 여자복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Fig 44>는 크리트의 후기 미노아시대(1580-1200 BC)의 여신으로서 가슴을 드러낸 채 팔꿈치 위까지 오는 타이트한 소매와 몸을 꼭 조이는 상의를 착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하의는 7단의 티어드 스커트 형태이며 허리에는 크리트 남자의 벨트와 유사한 것을 착용하고 있다. 복식의 구성법을 비교해 보면 시기적으로 큰 차이는 없으나 크리트의 복식 구성법이 앞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 크리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Fig 45>는 기원전 2100년경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여인상으로서 스커트를 꽉 조인 넓은 벨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넓은 벨트의 착용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스커트의 주름은 이집트의 복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Fig 46>은 기원전 16세기경 이집트 왕족 여성의 칼라시리스(kalasiris)와 시녀들의 킬트스커트(kilt skirt)가 묘사된 벽화이다. 칼라시리스는 직사각형의 반투명한 리넨 천을 가운데에 목둘레선을 내고 양 옆선을 앞으로 접거나 앞자락을 뒤로 돌리고 뒷자락을 앞으로 돌린 후 허리띠를 매거나 핀을 꽂아 착용한다. 이처럼 수많은 주름을 잡기 위해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칼라시리스의 구성법에서 히타이트 스커트의 주름의 원형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시녀들이 착용한 킬트스커트에서도 히타이트 스커트의 수직과 사선으로 표현된 주름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의 자료들을 토대로 히타이트의 여자복식은 남자복식처럼 크리트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 또한 히타이트화하여 히타이트만의 독특한 복식문화를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ig. 44>

Blouse and skirt(Boucher, 1987, p. 81)

<Fig. 45>

Skirt and belt(Curatola, 2007, p. 59)

<Fig. 46>

Kalasiris and kilt skirt(Chung, 2010, p. 20)


Ⅴ. 결론

본 연구에서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 야질리카야 부조에 새겨진 복식을 남자복식과 여자복식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고,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히타이트 남자의 기본 복식은 짧은 스커트형의 요의와 넓은 벨트, 고깔형의 모자,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로 보여진다. 여기에 앞이 오픈된 발목길이의 긴 오버스커트, 바닥길이의 양 옆에 돌기가 달린 긴 스커트의 복식, 발목길이의 긴 로브와 끝이 뾰족한 숄 형태의 복식, 둥근 모자가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달리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깔형의 모자는 히타이트만의 특징적인 복식 요소로서 이마부분에 뿔이 부착되어있고, 세로줄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세로줄에 고리장식이 있는 것, 모자의 끝부분이 앞을 하나는 형태 등 신분에 따라 다양하게 장식되고 형태가 변형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그리고 바닥 길이의 양 옆에 돌기기 달린 긴 스커트의 복식은 높은 산지가 많은 히타이트의 지형적 특성이 복식에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투달리야 4세의 로브와 숄, 둥근 모자는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착용하는 제례복 일습으로서 주변국들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착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히타이트 여자의 기본 복식은 블라우스와 주름스커트, 넓은 벨트, 세로로 주름이 있는 원통형의 모자, 앞코가 위를 향하는 신발로 보여진다. 블라우스의 형태는 손목부분이 좁은 돌만 슬리브가 달린 형태로서 허리부분을 넓은 벨트로 조임에 따라 세로로 주름이 잡혀 있다. 부조에 묘사된 발목 길이의 긴 스커트는 주름의 방향이 세로방향과 사선방향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착장방식에서 달리 표현된 것인지 의복구성상의 차이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주름 형태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한 장의 통으로 된 주름이 많은 스커트의 주름을 착용자가 왼쪽 골반부의 스커트 자락을 올려 힙선에서 피블라로 주름을 고정시킴으로써 만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앞중심에서 절개하여 왼쪽은 세로로 주름을 잡고, 오른쪽은 가로로 주름을 잡아 봉제하여 이어 붙인 후 왼쪽 골반부의 스커트 자락을 올려 힙선에서 피블라로 주름을 고정시킨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모자는 세로로 주름이 있는 원통형으로서 초기 원통형의 관모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세로 주름장식이 꽃과 꽃잎 장식으로,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모자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히타이트의 복식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크리트 복식이 결합하여 히타이트만의 독특한 복식으로 재탄생한 것으로서 이를 토대로 고대 복식문화교류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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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zici, C., (2015), Anatolia: On the Trail of the Hittite Civilization, Istanbul, Turkey, Uranus.

<Fig. 1>

<Fig. 1>
Internal view of Yazilikaya(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2>

<Fig. 2>
Plan of Yazilikaya(Seeher, 2011, p. 18)

<Fig. 3>

<Fig. 3>
Chamber A of Yazilikaya(Seeher, 2011, p. 32)

<Fig. 16>

<Fig. 16>
Statue of the Man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17>

<Fig. 17>
Tesup(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18>

<Fig. 18>
Statue of the Mountain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19>

<Fig. 19>
Bull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0>

<Fig. 20>
Unidentified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1>

<Fig. 21>
Unidentified God(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2>

<Fig. 22>
King of the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3>

<Fig. 23>
Unidentified goddess(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24>

<Fig. 24>
Queen of the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5>

<Fig. 25>
Kybel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6>

<Fig. 26>
Female musician(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7>

<Fig. 27>
head of Kybel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8>

<Fig. 28>
Tesup and King(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29>

<Fig. 29>
Shoes of Hittite(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30>

<Fig. 30>
Chamber B of Yazilikaya(Seeher, 2011, p. 100)

<Fig. 36>

<Fig. 36>
God with lion head and human body(Photographed at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2018.7.5)

<Fig. 37>

<Fig. 37>
Gods of the underworld(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38>

<Fig. 38>
Sharruma and King(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39>

<Fig. 39>
God of sword(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40>

<Fig. 40>
Cartouche of Tudhaliya Ⅳ(Photographed at Yazilikaya, 2018.7.6.)

<Fig. 41>

<Fig. 41>
Loin cloth 1(Ferrero, 2007, p. 39)

<Fig. 42>

<Fig. 42>
Loin cloth 2(Boucher, 1987, p. 89)

<Fig. 43>

<Fig. 43>
Robe and shawl(Curatola, 2007, p. 69)

<Fig. 44>

<Fig. 44>
Blouse and skirt(Boucher, 1987, p. 81)

<Fig. 45>

<Fig. 45>
Skirt and belt(Curatola, 2007, p. 59)

<Fig. 46>

<Fig. 46>
Kalasiris and kilt skirt(Chung, 2010, p. 20)

<Table 1>

Illustration of gods’ costumes in Chamber A


<Fig. 4>No.1~13

<Fig. 5>No.14~16

<Fig. 6>No.16a~24

<Fig. 7>No.25~33

<Fig. 8>No.34~35

<Fig. 9>No.36~39

<Fig. 10>No.40~46

<Fig. 11>No.47~48

<Fig. 12>No.49~55

<Fig. 13>No.56~63

<Fig. 14>No. 64

<Fig. 15>No.65~66

<Table 2>

Illustration of gods’ costumes in Chamber B


<Fig. 31> No.67,68

<Fig. 32> No.69~80

<Fig. 35> No. 82

<Fig. 33> No.81

<Fig. 34> No.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