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Current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8 , No. 6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8, No. 6, pp.98-118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Sep 2018
Received 29 May 2018 Revised 21 Aug 2018 Accepted 22 Aug 2018
DOI: https://doi.org/10.7233/jksc.2018.68.6.098

경순왕 영정에 표현된 복식 연구
권준희
부산대학교 한국전통복식연구소, 전임연구원

A Study on the Costume of King Gyeongsun in Portraits
Kweon, Junhee
Researcher, Korean Traditional Costume Research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Junhee, Kweon, E-mail: sillalala@hanmail.net


Abstract

Five portraits of King Gyeongsun are displayed in the Gyeongju National Museum: one copy is from Gojaam, and four copies are from Sangyongam.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costume of King Gyeongsun in the portraits. First, the shape of the costume is examined for each component of the clothes. Second, historical background and changing aspects of clothing are analyzed through relevant historical literature and visual analysis. Third, the similarities and influences of the costume are determined by comparing the portrait with the Buddhist painting. In the portrait, King Gyeongsun is wearing a headgear and a round-necked coat, holding a scepter and wearing shoes. The following are the two types of headgear: a cylindrical crown in the Gojaam copy and Myeollyugwan in the Sangyongam copy. The cylindrical crown is similar in shape to that of the Buddha and the Buddhist saint. Furthermore, the crown's partial decorations are similar to 12 zodiac signs' Ryanggwan inscribed on the royal tombs of the Goryeo Dynasty. In the portraits, King Gyeongsun is wearing a round-necked coat with cylindrical crown or Myeollyugwan. The ensemble of headgear and clothing varies on the wearing style during the Goryeo Dynasty. In addition, the king wears a long fabric belt with front cloth panel, which was also seen in the statue of Queen Jindeok of Silla. The circular design in the Gojaam copy is most likely to have been added as it was replicated in the 17th century. The costume depicted in the portraits is very similar to that of Siwangdo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compared with Obangojewido among the Buddhist paintings. Similar clothing design also resembles the 12 zodiac signs inscribed on the tombs of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Keywords: costume, obangojewido(five emperors of the five cardinal directions), portrait of King Gyeongsun, round-necked coat, siwangdo(Ten kings of hell painting), 12 zodiac signs
키워드: 복식, 오방오제위도, 경순왕 영정, 단령포, 시왕도, 십이지

Ⅰ. 서론

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한편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영정(影幀)1)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인이 묘사된 시각자료는 대부분 토우나 토용, 혹은 석각의 형태가 많은데, 경순왕 영정은 회화자료이고 더욱이 왕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신라말 고려초에 경순왕 영정은 금강산본, 해인사본, 고자암본으로 모두 세 점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재 전해지고 있는 영정은 총 5점으로 해인사본을 모사한 4점, 고자암본을 모사한 1점인데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은 해인사본을 모사한 작품 중 하나이다.

현존 경순왕 영정 5점은 모두 사찰에 봉안되어 부분적으로 불화적 표현기법의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모된 것으로 통일신라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경순왕 영정만 보더라도 붉은 색 단령포에 화려한 보석 장식의 면류관(冕旒冠)으로 매우 낯선 모습이다. 그런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언할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는 처음 제작 당시의 왕의 복식 혹은 현재는 조선시대 모사본만 전해지지만 조선시대 이전 고려시대에도 이모되었다면 그 당시 왕의 복식에 어느 정도 근거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에 영정에 표현된 복식에서 실제왕의 복식으로 착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요소는 무엇인지 그리고 불화적 형식을 취하면서 변형이나 왜곡 혹은 창작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본 연구는 현존 경순왕 영정 5점에 표현된 복식 규명을 목적으로 첫째, 영정에 보이는 복식을 관모와 의복, 홀로 나누어 각 구성품목별 형태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둘째, 영정에 표현된 복식 관련 문헌자료 및 시각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복식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영정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불교 회화와의 비교를 통해 복식상의 유사점과 영향관계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경순왕 영정의 복식 고찰을 위해서는 영정이 처음 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신라말 고려초부터 이후 몇 차례 모사를 거치며 현존 모사본이 제작되었던 조선시대까지 왕의 복식을 비교해 보아야할 것이다. 이 중 조선시대 왕의 복식은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 연구가 진행된 바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선행연구를 참고하고자 하며, 본 연구에서는 신라와 고려시대 왕의 복식에 집중해서 경순왕 영정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문헌기록과 더불어 시각자료로는 신라 왕의 복식을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진덕왕상, 고려 왕건상 및 공민왕 초상을 비롯하여 왕은 아니나 관복을 표현하고 있는 신라 왕릉의 석인상, 고려 및 조선 왕릉의 십이지상을 참고하고자 하며, 불화에서는 오방오제위도(五方五帝位圖)는 물론 시왕도(十王圖)에 표현된 왕복을 함께 고찰할 것이다.

경순왕 영정에 표현된 복식과 이와 관련한 영 향요소에 대한 고찰은 첫째, 무엇보다 박물관에 복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전시되고 있는 경순왕 영정에서 착용 복식에 대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고, 둘째, 고찰과정에서 아직 복식사학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진덕왕상, 왕건상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고려에서 조선까지의 십이지상 복식 고찰을 통해 관복의 일단을 규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Ⅱ. 경순왕 영정 개관

경순왕 영정은 신라말 고려초에 3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장자인 마의태자 일(鎰)왕자가 금강산에 가져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자인 황(滉)왕자가 해인사에 봉안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삼자인 명종왕자가 경순왕 사후 신라유민들과 더불어 고자암에서 제작 봉안한 것이다. 아쉽게도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가져간 것은 행방을 알 수 없고, 해인사본을 모사한 4점과 고자암본을 모사한 1점만이 전해지고 있다. Chung(2010)은 해인사본은 화재로 인해서 은해사 상용암으로 옮겨진 후 1749년에 이모(상용암 모사본)되었는데 이후 상용암 모사본을 모본으로 하여 다시 1794년 이명기(李命基)에 의해 1점, 1904년 이진춘(李瑨春)에 의해 2점(초본 포함)이 모사되었고, 고자암본은 1677년 모사된 것으로 추정하며, 이들 영정은 비록 조선시대 제작된 것이지만 고려시대부터 이모되어 내려온 것이라 원본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였다. 5점의 영정은 경주 숭혜전에 소장되어 전해져 오다가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위탁 기증된 상태이다. 영정별 계보를 요약하면 <Fig. 1>과 같다.


<Fig. 1> 
Diagram of King Gyeongsun's Portraits

현재 전해지는 경순왕 영정 5점을 모사된 시대 순으로 살펴보면 ➀ 고자암 모사본(1677년 추정)<Fig. 2>, ➁ 상용암 모사본(1749)<Fig. 3>, ➂ 이명기필 모사본(1794년)<Fig. 4>, ➃ 이진춘필 모사본(1904년) 2점<Fig. 5,6>과 같다. 고자암 모사본<Fig. 2>과 상용암 모사본<Fig. 3>이 가장 원본에 충실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보존 수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 두 모사본에서의 복식은 모두 단령포(團領袍)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관모(冠帽)와 홀(笏)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리고 상용암 모사본에 근거하여 이모된 이명기필 모사본2)<Fig. 4>과 이진춘필 모사본<Fig. 5,6>은 상용암 모사본에서 좌우에 시위하고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경순왕만을 중앙에 배치한 것으로 경순왕의 복식은 상용암 모사본과 거의 유사하다. 이에 경순왕 영정 5점에 표현된 복식은 고자암 모사본과 상용암 모사본 및 이에 근거하여 모사된 다른 3점을 포함한 상용암 모사본류3)의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Fig. 2> 
Gojaam Copy of King Gyeongsun's portrait (Sunghyejeon Preservation Society [SPS], 2008, p. 6)


<Fig. 3> 
Sangyongam Copy of King Gyeongsun's portrait (SPS, 2008, front cover)


<Fig. 4> 
Copy of King Gyeongsun's portrait by Lee Myeong Gi (SPS, 2008, p. 142)


<Fig. 5> 
Copy of King Gyeongsun's portrait by Lee Jin Chun (SPS, 2008, p. 10)


<Fig. 6> 
Copy of King Gyeongsun's portrait by Lee Jin Chun (sketch) (SPS, 2008, p. 11)


Ⅲ. 영정에 표현된 복식 고찰

영정 5점에서 경순왕은 모두 관모와 단령포를 착용하고 손에는 홀을 들며 신발로 리(履)를 신고 있다.

1. 관모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와 상용암 모사본류의 면류관으로 대별되고, 이에 각각을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Fig. 7>는 앞이 솟아 있고 측면이 낮은 형태를 이루며 위로 향하면서 약간 벌어진 원통형으로 추정된다. 관모는 이마에 닿는 테두리 부분과 모체(帽體) 부분으로 나뉘는데 테두리 부분에는 가로로 긴 장방형 구획에 화문(花紋)이 그려져 있다. 장방형 구분은 3개가 확인되고 좌우의 장방형에는 안쪽에 화문이 있으며, 정면에는 장방형 위쪽에 화문이 있다. 그리고 모체 정면의 솟은 부분은 모체와 연결된 부분을 아랫변이라 본다면 오각형에 가깝고, 관모의 상단은 호선(弧線)을 이룬다. 또한 영정 자체가 손상된 부분이 많아 명확하지 않으나 관모의 우측상단 부분에 붉은 색 원형 장식이 확인된다. 이에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에서 주목되는 점은 원통형의 외형과 부분장식으로 대별되고, 부분장식은 정면의 오각형 솟은 장식, 관테의 장방형 구분과 화문, 우측 상단의 원형 장식 세 가지로 요약된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까지의 시각자료를 토대로 원통형 관모 형태 혹은 유사한 부분 장식을 지닌 관모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해 보고자 한다.


<Fig. 7> 
Hat of Gojaam Copy (SPS, 2008, p. 6)

(1) 원통형 관모

통일신라말에서 고려까지의 원통형 관모에 대한 시각자료로는 불상 및 보살상의 보관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대구 동화사 금동사리외함(863)의 비로자나불에서 원통형 관모<Fig. 8>를 찾을 수 있고, 이후 고려시대에는 금동불에서 석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살상의 보관에서 원통형 관모를 접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전면부가 높은 형태를 취하고 전면부터 후면까지 통형을 이루며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Fig. 9>,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Fig. 10> 등의 관모에서 보인다. 이들 원통형 관모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기, 중국에서는 요(遼)대 보살상에서 특히 유행하는데, 당말 오대 시기 보살상의 양식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Chae, 1997). 그런데 요에서 사용하던 관은 거란족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관이 불교 유입 후 보살상의 보관으로 편입되어 정립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건평현(建坪縣) 장가영자(張家營子) 고분 출토 금속제 관모<Fig, 11> 등의 존재로부터 보살상의 원통형 관모가 실제 거란 귀족들 사이에서 착용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Kwon, 2013).


<Fig. 8> 
Gilt-bronze Sarira Reliquary of Donghwasa Temple (Yonhapnews, 2015)


<Fig. 9> 
Stone Bodhisattva of Kwangdukri in Kimchun.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online, n.d.)


<Fig. 10> 
Stone Bodhisattva of Hansongsa temple site (National cultural heritage portal, n.d.)


<Fig. 11> 
Gilt-silver Hat of Liao (Kwon, 2013, p. 67)

통일신라 내지는 고려에서는 아직 통형 금속제 관모 유물의 발견 사례가 없어 실제 착용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불상과 고려 보살상에서 원통형 관모가 출현된다는 점으로부터 적어도 9세기 후반부터는 원통형 관모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2) 부분장식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에서 특징적인 부분장식은 정면의 오각형 솟은 장식, 관테의 장방형 구분과 화문 장식 그리고 우측 상단의 원형 장식 세 가지였다. 그런데 이와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으나 왕건 동상에서의 관모<Fig. 12>를 보면 정면의 오각형 장식과 관 상단부 원형 장식에서 유사점이 확인된다. 왕건 동상은 광종 2년(951) 경 만들어져 고려 일대를 통해 왕실의 가장 신성한 상징물로 국가의례에서도 숭앙의 대상이었으나, 세종 11년(1429) 현릉(顯陵) 옆에 묻히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상의 관모는 정면에서 후면을 향하는 세로줄의 존재로부터 양관(梁冠)임을 알 수 있는데, 좌우 12량씩 24량의 통천관(通天冠)이다. 고려는 왕건 당시인 10세기 전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 자체적으로 고려 군주를 황제로 칭하였고 제반제도 역시 황제국의 제도들을 채택하였기에 왕건 동상의 관이 천자의 관인 통천관 형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No, 2006).


<Fig. 12> 
Sculpture of King Taejo (National Museum of Korea[NMK], 2006, p. 112)


<Fig. 13> 
Hat Ornament of Dongjin (Lee, 2004, p. 55)

중국의 경우 관모 중앙부분의 오각형 금관식은 4-5세기 남북조시기 묘에서 다수 출토되었고, 천자(天子)의 통천관 이외에 군신의 진현관(進賢冠)에 장식되었으며 명대(明代)까지 지속되었는데, 문헌기록에 의하면 황제의 통천관에서는 ‘금박산(金博山)’, 군신의 진현관에는 ‘금부선(金附蟬)’, ‘황금당부선(黃金璫附蟬)’, ‘황금부선(黃金附蟬)’이라 칭하고 있다.4) ‘부선’ 즉 매미장식은 통천관에도 가해졌으나 동진(東晉)의 남경(南京) 선학관(仙鶴觀)묘 출토 관식<Fig. 13>과 같이 금관식 자체에 매미문양을 표현하면서 이를 함께 칭하게 된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신당서』와 『송사』의 통천관 기록에 의하면 통천관에는 주취(珠翠)를 장식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에 왕건 동상에서 관모 상단부에 표현된 둥근 장식은 문헌기록의 주취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상에서 고자암모사본에 표현된 관모에서 정면에 솟아있는 오각형 모양 장식과 관모 우측 상단의 원형 장식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왕건 동상의 관모와 유사점이 있으며, 이는 라말여초의 통천관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는 왕건 동상에 보이지 않는 관테의 장방형 구분과 화문 장식이 더해져 있다. 이러한 관테 장식은 13세기 개풍 수락암동 고분과 장단 법당방 고분의 십이지상 관모에서 찾을 수 있다. 수락암동 고분 십이지상에서는 <Fig. 14>와 같이 관모에 12지의 동물을 넣어 량(梁)이 표현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Fig. 15>에 의하면 진현관을 착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관테의 장방형 구분과 화문장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법당방 고분 십이지상<Fig. 16>에서는 관테의 장방형 구분 안에 화문은 아니지만 원형 장식이 가해져 있어 유사한 양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고려 십이지상의 관모는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와 동일한 관테 이외에도 <Fig. 14>에서는 정면에 오각형 장식판을 덧대고 있고, <Fig. 16>에서는 관모 상단부에 둥근 주취 장식을 더하고 있어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와 유사함을 보인다.


<Fig. 14> 
Cow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Suragamdong tomb (Kim, 1974, p. 127)


<Fig. 15> 
Rabbit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Suragamdong tomb (Kim, 1974, p. 111)


<Fig. 16> 
Cow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Bubdangbang tomb (NMK, n.d., http://dryplate.museum.go.kr)

그런데 수락암동과 법당방 고분 십이지상의 진현관과 왕건 동상의 통천관은 모두 양관(梁冠)류 관모에 속한다. 이들 관모와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는 부분적으로 유사점이 확인되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고자암 모사본에서는 양(梁)의 표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십이지상과 왕건 동상의 관모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관모의 좌우를 관통하는 비녀(簪)의 표현이 없다. 그런데 비녀가 없는 양관의 존재는 14세기 공민왕릉 벽화 중 십이지상의 관모<Fig. 17>에서도 확인된다. 이로부터 고려시대 동일한 양관임에도 비녀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Fig. 17> 
Rabbit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King Kongmin's tomb (The Compilation Committee of “The Illustrated Book of Ruins and Relics of Korea”[CCIBRK], 2000, p. 109)

그리고 통일신라 왕릉의 양당개(裲襠鎧) 착용 석인상의 관모는 <Table 1>과 같은데 특히 흥덕왕릉 좌측 석인상의 관모는 정면의 오각형 장식과 더불어 관테에 화문 장식을 하고 있으며 우측 석인상은 정면에는 오각형 장식이 아닌 여의두문 장식이지만 관테의 화문 장식은 우측 석인상과 동일하고 모정(帽頂)에 양(梁)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 신라 석인상의 관모는 전면부 오각형 장식과 관테의 화문 장식이 이미 9세기에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또한 흥덕왕릉 우측 석인상의 관모로부터 통일신라에도 비녀가 없는 양관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Table 1> 
Hats of Stone Guardian Figures at Unified Silla royal tombs
Tomb of King Seong-deok Tomb of King Won-seong Tomb of King Heung-deok
left right left right
(Kweon, 2017, p. 35)

이상에서 고자암 모사본에서 보이는 원통형 관모는 라말 여초 불상 및 보살상의 통형 관모와 형태적으로 유사하고, 부분 장식인 정면의 오각형 솟은 장식, 관테의 장방형 구분과 화문, 우측 상단의 원형 장식은 고려시대 왕릉 십이지상의 양관과 유사한 면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부분장식 중 전면부 오각형 장식과 관테의 화문장식 그리고 양관의 존재는 9세기 통일신라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왕릉의 석인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자암 모사본의 관모는 양(梁)의 표현을 확인하기 어려워 명확하게 양관이라고 할 수는 없고, 엄격하게 말하자면 양관의 부분장식을 공유하는 통형 관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상용암 모사본류의 면류관

상용암 모사본<Fig. 3>과 이를 모본으로 한 이명기필 모사본<Fig. 4>과 이진춘필 모사본<Fig. 5,6>의 관모는 모두 면류관이다. 면류관의 면판은 앞뒤가 아닌 양옆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며 모두 일월(日月)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류(旒)는 청녹황적 4가지 색상의 보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면판의 앞뒤가 아닌 양옆에 늘어뜨려져 있다. 그리고 색상이 표현된 모사본들을 비교해 보면 머리통을 감싸는 무(武)부분은 모두 붉은 색이지만 그 위에 올린 면판은 상용암 모사본은 연한 황색이고 이명기필 모사본과 이진춘필 모사본에서는 청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까지의 면류관 관련 자료로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6세기 오회분 4,5호묘 및 사신총의 면류관 착용 시각자료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법흥왕 26년(539)과 원성왕(785-798) 즉위전 면류관에 대한 문헌자료5)가 있다. 이에 삼국시대 이미 중국의 면복제(冕服制) 도입에 대한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선인(仙人)들은 길이가 긴 형식의 포(袍)가 아닌 저고리와 바지의 고유 복식과 함께 면류관을 착용하고 있어 면류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관념적인 형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 법흥왕대의 기록은 왕의 면류관 기록뿐 아니라 재상의 관(冠)으로 선면(蟬冕)을 언급하고 있지만 법흥왕 7년 복식령에서 금관(錦冠), 비관(緋冠), 조영(組纓) 이외에 중국식 관 명칭이 보이지 않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도 법흥대의 복식령을 언급하며 ‘비로소 6부인의 복색으로 존비의 제를 정했지만 이속(夷俗)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당시 면류관의 도입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Table 2> 
Hats of Sangyongam Copies of King Gyeongsun's portrait
Sangyongam Copy Copy by Lee Myeong Gi Copy by Lee Jin Chun Copy by Lee Jin Chun (sketch)

(SPS, 2008, front cover)

(SPS, 2008, p. 142)

(SPS, 2008, p. 10)

(SPS, 2008, p. 11)

고려시대에는 『고려사(高麗史)』기록에서 정종 9년(1043) 이후 요(遼), 금(金)으로부터 왕의 관복사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관복’이 아닌 정확한 ‘면류관’ 사여 기록은 문종 19년(1065)에 확인된다6) 그리고 1123년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7)에서 늦어도 12세기 전반에는 왕의 면복착용이 실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인종 18년(1140) 체례복장(禘禮服章)제도8)와 의종대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에서의 제복(祭服)제도9)를 참고하자면 12세기 후반에는 면류관이 왕뿐만 아니라 관리들도 착용 가능한 관모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순왕 영정에서의 면류관과 단령포 조합은 전통적인 면복과는 거리가 있다. 관복의 하나로 편입되기 이전, 면류관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신선의 관모로 착용되거나 혹은 『삼국유사』에서 왕의 상징물로 표현된 것10)처럼 상당히 추상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려 초기 불교에 도입되면서 장식적 측면이 더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0세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Fig. 18>과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관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보살입상은 전통적인 불상관(佛像觀)과는 전혀 다른 비례와 표현법으로 토속적인 미의식이 어우러진 형태로 인식되고, 관모는 원통 위에 직사각형 판을 올린 형태인데 직사각형 판의 네 모서리부분에는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어 면류관을 연상케 한다. 불교미술에서 면류관의 장식화는 돈황 막고굴 98굴(920) 호탄(于闐) 왕의 면류관<Fig. 19>과 헤이안 시대(974-1185) 성덕태자의 면류관<Fig. 20>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Fig. 18> 
Stone Bodhisattva of Gwanchoksa (National cultural heritage portal, n.d.)


<Fig. 19> 
Mogao Caves No.98 (Whitfield. R., 1995, p. 255)


<Fig. 20> 
Statue of Prince Shoudoku in Horyu temple (http://blog.daum.net/gaia12/147)

상용암 모사본류의 경순왕 영정에 보이는 면류관의 이질성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근거하였는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요ㆍ금으로부터의 면류관 사여가 11세기부터이고, 기록에서 명확하게 관복 중 하나로 면류관이 확인되는 것이 12세기라면 그 이전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된 면류관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인물이나 우상을 형상화하는 단계에서 <Fig. 19>의 호탄왕이나 <Fig. 20> 성덕태자의 면류관처럼 장식화된 형태로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2. 의복

고자암 모사본과 상용암 모사본류에서 경순왕의 의복은 모두 붉은 색 단령포다. 단령포는 소매통이 매우 넓어 수구의 끝이 바닥에 닿을 정도이며, 깃과 수구에는 선장식을 하고 있는데, 고자암모사본에서의 선장식은 연한 갈색 바탕에 청홍색의 문양이 있고 상용암 모사본류의 선장식은 단령포의 붉은 색과 대비되는 녹색 계열이다. 또한, 고자암 모사본과 상용암 모사본류 모두 좌우의 넓은 소매 사이로 허리 아래 폐슬을 두르고 가운데 장식적인 끈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상용암 모사본류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고자암 모사본의 단령포에는 어깨와 가슴에 원형의 보(補)를 부착하였고, 가슴의 원형보에는 금박이 사용되었는데 문양은 명확하지 않다.

주목되는 점은 첫째, 영정에서 보이는 관모가 복두가 아닌 통형 관모 혹은 면류관인데 의복으로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 둘째, 폐슬과 끈 장식, 셋째, 고자암 모사본에서의 원형 보 장식이다. 이에 각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단령포와 관모의 관계

통일신라시대 단령포의 착용은 경주 황성동, 용강동 토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 관모로는 복두를 쓰고 있다. 이후 고려시대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초상화<Fig. 21>, 강민첨 초상화 그리고 13세기 초 수락암동 고분<Fig. 22>과 14세기 후반 공민왕릉의 십이지상 <Fig. 23>에서 단령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수락암동 고분과 공민왕릉 십이지상에서는 양관(梁冠)을, 공민왕과 강민첨 초상화에서는 복두를 착용하고 있다.


<Fig. 21> 
Portrait of King Kongmin and Princess Noguk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n.d., http://www.gogung.go.kr)


<Fig. 22> 
Sheep and Cow figures of 12 zodiac signs in Suragamdong tomb (Kim, 1974, pp. 126, 127)


<Fig. 23> 
Cow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King Kongmin's tomb (CCIBRK, 2000, p. 108)

조선시대 관복에서의 단령포는 공ㆍ상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복두 혹은 사모와 함께 착용하고, 양관은 조복 착용시의 관모로 의복은 단령포가 아닌 직령의 강사포를 착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형화된 틀이 고려시대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1123년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이 국관(國官)과 사민(士民)을 만나는 조복 착용 상황에서의 관모로 복두를 기록11)하고 있으며, Kim(2008)은 『고려사(高麗史)』여복지와 예지의 기록으로부터 고려시대 왕의 조복은 자황(柘黃), 자황(赭黃), 치황(梔黃)의 황색 계열 포와 홍색 계열의 강사포 2가지이며, 관모 또한 복두와 양관이 있어 의례의 규모에 따라 포와 쓰개의 종류를 선택하여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고려도경』과 『고려사』의 관복 기록은 관모와 의복 색상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 의복이 직령포인지, 단령포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십이지상에 표현된 복식이라는 동일한 범주에서 살펴보더라도 수락암동 고분<Fig. 22>이나 공민왕릉의 십이지상<Fig. 23>이 단령포를 착용한 것과 달리 13세기 전반 법당방 고분과 권준(1281-1352)묘 벽화고분의 십이지상<Fig. 24, 25>는 직령포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법당방 고분의 십이지상과 공민왕릉 십이지상은 유사한 형태의 양관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령포와 단령포로 의복을 달리하고 있으며, 법당방 고분과 권준묘 십이지상 또한 동일한 직령포임에도 서로 다른 관모를 착용하고 있다. 시각자료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다양성은 문헌기록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착용 상황에 따라 관모와 의복의 조합이 가변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Fig. 24> 
Sheep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Bubdangbang tomb (NMK, n.d., http://dryplate.museum.go.kr)


<Fig. 25> 
Sheep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Gwonjun's tomb (National Cultural Properties Research Institute, 1993, p. 163)

경순왕 영정에서는 단령포와 통형 관모 그리고 단령포와 면류관의 조합을 보인다. 면류관은 정치적 인물을 형상화하는 단계에서 장식화된 형태로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지만, 단령포와 통형 관모의 조합은 고려시대 실제 착용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2) 폐슬과 끈 장식

경순왕 영정에서는 <Table 3>과 같이 고자암모사본, 상용암 모사본류 모두 허리 아래에는 단령포의 붉은 색과 대비되는 녹색계의 폐슬을 하고, 가운데는 장식적인 끈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Table 3> 
Ornaments in the lower part of waist in copies
Gojaam Copy Sangyongam Copy Copy by Lee Myeong Gi Copy by Lee Jin Chun

(SPS, 2008, p. 6)

(SPS, 2008, front cover)

(SPS, 2008, p. 142)

(SPS, 2008, p. 10)

폐슬과 끈 장식의 모습은 경순왕 영정과 같이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는 수락암동 고분과 공민왕릉 십이지상<Fig. 22, 23>에서도 찾을 수 있다. Lee(2004)는 십이지상 복식을 고찰하며 끈 장식에 대해 면복에는 한 쌍의 패옥(佩玉)과 패수(佩綬)를 착용했지만, 십이지상의 복식은 약장(略裝)으로 중앙에 패옥환과 함께 드리운 수(綬)로 언급한 바 있다(p. 73). 그런데 허리 아래 중앙부에 늘어뜨리는 끈 장식은 예복 착용 모습 뿐 아니라 서하(西夏)시기 내몽고박물관 소장 남녀공양인상<Fig. 26>, 금(金)대 신이봉촌(新李封村) 출토 여용<Fig. 2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꼭 면복이나 조복에 한정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이는 모든 의복에 함께 할 수 있는 허리띠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원(元)대 장사성(張士誠)의 모(母) 조씨묘(曹氏墓)에서는 실제 묘주의 치마 앞에 장식된 모습으로 허리띠<Fig. 28>이 출토된 바 있다.


<Fig. 26> 
Men's and women's clay figures in Xixia dynasty (Zhongguo zhixiu fushi quanji bianji weiyuanhui[ZZFQBW], 2004, p. 44, 50)


<Fig. 27> 
Women's figure in Jin dynasty (Zhonghua wuqiannian wenwujikan, 1995, p. 338)


<Fig. 28> 
Women's long belt in Yuan dynasty (ZZFQBW, 2004, p. 122)

또한 이와 유사한 허리띠 장식은 신라 진덕여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석상<Fig. 29>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당(唐) 소릉(昭陵)에 전하는 태종(626-649) 시기 당과 대외관계를 맺었던 14국 군장의 석상(石像) 중 하나로, 하반신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복식의 형태를 알 수는 없으나 하반신에 드러난 3단의 도련선은 상의(上衣) 아래 표상(表裳)과 내상(內裳)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가운데 길게 늘어뜨린 3겹 장식에 대해 Park(2007)은 아래 겹은 가장 크고, 중간 겹과 위 겹은 점진적으로 축소된 모습인데, 매 겹의 하단 끝에는 모두 꽃잎 모양의 장식이 있다고 하였다(p. 236). 하반신 일부만 남아있어 단정할 수는 없으나 허리에서 늘어뜨린 허리띠 장식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Fig. 29> 
Stone statue of Queen Jindeok (No, 2006, http://www.hani.co.kr)

그리고 주목되는 점은 고려시대 포백대(布帛帶)의 하나로 생각되는 륵백(勒帛) 혹은 륵건(勒巾)의 존재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왕의 상복에는 자색 라직물에 금벽(金碧)으로 자수 장식을 한륵건을 하였고12), 『고려사』기록13)에 의하면 문종 32년(1078) 송에서 고려에 보낸 왕의 공복 일습 중에는 홍화라수륵백(紅花羅繡勒帛)이 있다. 또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14)에 현종 18년(1027) 승복에서의 능라륵백(綾羅勒帛) 사용을 금하였고, 『고려도경』에 귀부인이 감람륵건(橄欖勒巾)에 금방울과 향낭을 장식했다는 기록15)으로부터 륵백(륵건)은 왕의 관복에서 승복 및 부녀복식까지 다양한 신분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경순왕 영정에 보이는 폐슬 가운데의 긴 끈은 고려시대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륵백(륵건)과 같이 긴 포백대를 허리에 맨 후 나머지 부분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허리끈 장식은 진덕여왕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신라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3) 원형의 보(補) 장식

상용암 모사본과 달리 고자암 모사본의 단령포에는 어깨와 가슴에 원형의 보를 장식하고 이금(泥金)을 사용하였으나 문양은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서 원형의 문양이 있는 단령포는 이미 당대부터 존재하기는 하나 남장 여시(女侍) 혹은 의장대 인물 등의 복식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단령포에서의 원형 문양이 신분을 상징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그리고 Zhao(2006)는 요대 묘 출토의 용포<Fig. 30>와 남송대 회화 효경도<Fig. 31>을 들어 요(遼)ㆍ금(金)ㆍ송(宋)을 거치며 원형의 용문이 있는 용포가 천자의 복식으로 착용되었고, 이에 송대 천자의 통천관과 함께 착용되었던 직성운룡홍금조사(織成雲龍紅金條紗)로 만든 강사포는 단룡포(團龍袍) 형식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후 명의 주원장(朱元璋)에 의해 천자의 복식으로 정식 채택되었다고 보았다(p. 94).

우리나라에서 원룡보(圓龍補)를 장식한 왕의 홍색 단령포는 조선시대 곤룡포(袞龍袍)로 익선관과 함께 상복으로 착용된 것으로, 세종 26년(1444) 명에서 들여온 관복기록16)에서 최초로 보인다. 그런데 고려 혜종 2년(945) 고려에서 후진(後晉)에 보낸 물품 중에는 오(襖)를 만들 수 있는 옷감 2매가 있는데 홍색 바탕에 금은사와 오색사로 일월용봉(日月龍鳳)을 직성(織成)한 것이었다.17) 물론 이때의 직물 문양이 원형으로 표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혜종대 기록은 10세기 고려에서 이미 용을 포함한 일월용봉의 문양이 통치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또 이를 직조로 표현할 수 있는 제직기술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모본이기는 하나 명으로부터 곤룡포를 들여온 세종 이전 태조 어진에서도 곤룡포를 착용하고 있다. 따라서 곤룡포를 들여온 1444년 이전에도 유사한 형식의 단령포가 착용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영정의 보 장식은 17세기 이모되면서 부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Fig. 30> 
Dragon robe in Liao Dynasty (Zhao, F., Wardwell, A. E., & Holborn, M., 2004, p. 16, 17)

3. 홀(笏)

영정에서의 경순왕은 모두 홀을 쥐고 있는데 <Table 4>와 같이 고자암 모사본의 홀은 직사각형이고, 상용암 모사본의 홀은 좌우가 깎여 뾰족한 모양이다.

<Table 4> 
Scepters in Copies of King Gyeongsun's portrait
Gojaam Copy Sangyongam Copy Copy by Lee Myeong Gi Copy by Lee Jin Chun

(SPS, 2008, p. 6)

(SPS, 2008, front cover)

(SPS, 2008, p. 142)

(SPS, 2008, p. 10)

홀은 『삼국사기』법흥왕7년(520)의 아홀(牙笏) 기록으로 6세기 신라에서 이미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용강동 토용에서 홀을 쥐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나 토용이라는 소재 특성상 홀의 형태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후 고려시대 시각자료에서의 홀은 네 가지 모양이 확인되는데, 첫째는 고자암 모사본의 홀과 같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권준(1281-1352)묘 벽화고분의 십이지상<Fig. 25>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째는 상용암 모사본의 홀과 같이 좌우가 깎인 뾰족한 형태로 공민왕과 노국공주 초상화<Fig. 21>, 13세기 초 수락암동 고분 십이지상<Fig. 22>, 13세기 전반 법당방 고분 십이지상<Fig. 24>, 최유선(?-1075) 초상화에서 확인된다. 다음 셋째는 14세기 후반 공민왕릉의 십이지상 <Fig. 23>과 같이 위가 둥글고 아래가 각진 모양의 홀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민첨(963-1021) 초상화에서 한쪽만 둥글게 처리하고 아래는 각진 모양의 홀이 보인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홀은 그 형태가 다양하게 존재했고, 따라서 영정에서 보이는 직사각형 홀과 좌우가 깎인 뾰족한 홀 모두 당시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요(遼)ㆍ금(金)에서 고려로의 사여 관복에서 규(圭)의 존재는 확인되지만 『고려사』 기록에서 규와 홀의 병용, 공민왕과 최유선의 초상화에 동일하게 뾰족한 모양의 홀이 들려있다는 점 등으로부터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처럼 왕의 규, 신하들의 홀과 같은 명칭 및 형태의 명확한 구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Ⅳ. 영정복식과 불화복식의 비교

Chung(2010)은 경순왕 영정과 오방오제위도(五方五帝位圖)가 형식상 매우 유사함을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p. 45). 오방오제위도는 조선시대 16세기경부터 동서남북과 중방의 다섯 방향을 다스리는 오제를 그린 소형 불화 중 하나이다. 현존하는 오방오제위도는 양산 통도사, 서산 개심사<Fig. 32>, 문경 김룡사, 안동 봉정사, 봉황사의 예가 남아 있는데, 모두 조선후기의 것으로 면류관(冕旒冠)에 직령포, 폐슬을 착용하고 가운데 허리끈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하며 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Jeong(2016)은 오방오제위도에서 오제의 경우 현왕도나 명부전의 시왕도(十王圖)처럼 제왕의 모습을 특징으로 하는 불화와 도상적으로 구별되지 않고 특히 중국 도교의 존상을 그린 천존도(天尊圖)<Fig. 33>와도 유사함을 지적하고(p. 102) 이들의 정형성이 화파의 차이나 시기에 따른 큰 변화 없이 지속되는 특징으로부터 고대 왕의 표현에 통용되던 하나의 규범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pp. 90-91).


<Fig. 32> 
Obangojewido of Gaesimsa (1676) (Jeong, 2016, p. 92)


<Fig. 33> 
Tianzun of Taoism in Yuan Dynasty (Jeong, 2016, p. 102)

그런데 오방오제위도에서의 관모가 면류관 하나로 표현된 것과 달리 시왕도에서 10인의 왕은 갑주착용의 1인을 제외하면 제5대왕과 제8대왕은 면류관, 나머지 7인의 왕은 양관(梁冠)을 착용하고 있다. 그리고 오방오제위도가 조선시대 후기 17, 18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과 달리 시왕도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고려후기 시왕도<Fig. 34>에서 조선시대 전기 시왕도<Fig. 35>에 표현된 복식은 대체적으로 면류관 혹은 양관에 직령대수포, 폐슬을 착용하고 가운데 긴 끈 장식을 늘어뜨리며 방심곡령을 하고 홀을 들고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에는 철현(哲玄) 작(作) 제5염라대왕도<Fig. 36>나 옥천사소장 제6변성대왕도<Fig. 37>에서 볼 수 있듯이 폐슬이나 허리의 긴 끈장식은 동일하지만 17세기 이후 점차 직령포 대신 단령포를 착용하고 방심곡령은 사라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불화에서 시왕의 표현이 정형화되었다고는 하나 복식의 표현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어서,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의 변상도 부분에 표현된 시왕<Fig. 38>은 조선전기 자료임에도 단령 대수포를 착용하고 있고, 조선후기 해인사 소장 시왕도<Fig. 39>에서는 후기 자료임에도 단령이 아닌 직령의 대수포 2개를 겹쳐 착용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Fig. 34> 
Siwangdo in the Museum für Ostasiatische Kunst, Berlin (NMK, 2010, p. 162)


<Fig. 35> 
Siwangdo(1586) in Kokubunzy, Japan (Jeong, 2013, p. 295)


<Fig. 36> 
One of ten kings of hell painting in the Museum of Korean Art (Y. Kim, 2013, p. 179)


<Fig. 37> 
One of ten kings of hell painting(1744) in Okchunsa (Y. Kim, 2013, p. 187)


<Fig. 38> 
Byeonsangdo painting of Ksitigarbha pranidhana Sutra(1574) (Baek, 2013, p. 140)


<Fig. 39> 
One of ten kings of hell painting(1742) in Haeinsa (Y. Kim, 2013, p. 186)

경순왕 영정에 표현된 복식은 무엇보다 단령포이고 관모에서 면류관 이외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양관의 부분 장식과 매우 유사한 통형관모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방오제위도보다는 조선 후기의 시왕도 복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시왕도의 복식에서 전기와 달리 단령포가 주류를 이루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많은 사찰이 피해를 입었고 17세기 중엽 이후 활발한 사원의 재건과 함께 당시 많은 불화들이 일시에 조성되었는데, 이때부터 시왕도에서의 복식표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복식의 형태면에서 볼 때 양관에 단령포를 착용하고 폐슬 및 허리띠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는 수락암동과 공민왕릉 십이지상의 모습은 조선후기 시왕도의 복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수락암동과 공민왕릉 벽화에서 십이지상은 왕을 표현한 것은 아니나 양관 착용의 관복에서 왕과 신하의 구분은량(粱)의 수에 따르고 의복의 형태는 서로 유사하였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시왕도나 오방오제위도와 같은 불화에서의 제왕표현이 도교에서의 천존도와 그 형식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데, 고려 벽화고분의 십이지상은 사신도와 함께 표현된다는 점에서 도교와의 결합이 이루어진 도상으로 해석된다(Chong, 2001). 그리고 공민왕릉의 십이지상은 벽화뿐만 아니라 릉의 병풍석<Fig. 40>으로도 표현되었고 조선 후기 십이지문자로 대체되기 전까지 양관에 단령포를 착용하며 홀을 든 모습의 십이지상은 전기 왕릉<Fig. 41>에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다(E. Kim, 2013).

따라서 불교와 도교에서 양관에 단령포를 착용한 왕의 도상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선시대 왕릉병풍석의 십이지상은 관모의 표현에 있어 형태상으로는 공민왕릉 벽화의 십이지상 관모와 유사하나 양의 표현이 명확하지 않아, 사실성을 담기보다는 하나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Fig. 40> 
Engraving on the stone hedge in king Kongmin's tomb (CCIBRK, 2000, p. 103)


<Fig. 41> 
Mouse figure of 12 zodiac signs in Geonwonreung (1408) (E. Kim, 2013, p. 152)


Ⅴ. 결론

경주박물관에서 위탁보관 중인 경순왕 영정은 고자암 모사본 1점, 상용암 모사본류 4점으로 총5점인데, 관모와 단령포를 착용하고 홀을 들며 리를 신고 있는 모습이다. 본 연구는 이에 표현된 복식 규명을 목적으로 첫째, 영정에 보이는 복식의 각 구성품목별로 형태를 고찰하고 둘째, 관련 문헌자료 및 시각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복식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변화 양상을 살피며 셋째, 영정과 불교 회화와의 비교를 통해 복식상의 유사점과 영향관계를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1. 관모는 고자암 모사본의 통형 관모와 상용암 모사본류의 면류관으로 대별된다. 고자암 모사본에서 보이는 원통형 관모는 라말 여초 불상 및 보살상의 통형 관모와 형태적으로 유사하고, 부분 장식인 정면의 오각형 솟은 장식, 관테의 장방형구분과 화문, 우측 상단의 원형 장식은 고려시대왕릉 십이지상의 양관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양(梁)의 표현을 확인하기 어려워 명확하게 양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부분 장식 중 전면부 오각형 장식과 관테의 화문장식, 그리고 양관은 9세기 통일신라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상용암 모사본류의 영정에서는 면류관을 착용하고 있는데 관복으로 제도화되기 이전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된 면류관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인물이나 우상을 형상화하는 단계에서 장식화된 형태로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의복에서는 통형 관모 혹은 면류관과 단령포의 결합, 폐슬과 끈 장식, 고자암 모사본에서의 원형 보 장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복두가 아닌 통형 관모와 단령포의 결합은 관모의 부분 장식을 공유하는 양관과 단령포를 착용한 고려 십이지상의 존재와 고려시대 관복에서 착용 상황에 따른 관모와 의복의 조합이 가변적이었던 점으로부터 실제 착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영정에서 보이는 통형 관모 그대로의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경순왕 영정의 폐슬 가운데 긴 끈은 고려시대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륵백(륵건)과 같이 긴 포백대를 허리에 맨 후 나머지 부분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것으로, 진덕여왕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신라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고자암 모사본에서 원형의 보 장식은 문양은 알 수 없고, 곤룡포가 제도화되는 1444년 이전 유사한 형식의 단령포로 착용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17세기 이모되면서 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3. 홀은 고려시대 시각자료를 통해 영정의 직사각형 홀과 좌우가 깎인 뾰족한 홀 모두 고려시대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4. 경순왕 영정에 표현된 복식은 불화 중 오방오제위도 보다는 면류관과 양관, 그리고 단령포착용이 확인되는 시왕도, 특히 조선후기 시왕도의 복식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도상은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왕릉의 십이지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의 고찰과정에서 경순왕 영정의 복식을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각자료와 함께 검토해 봄으로써 영정에 보이는 복식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복식 요소별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복식의 도입 가능성을 최대한 짚어보려 하였으나,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는 시각자료가 워낙 제한되어 있어 일정 부분 추정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연구를 진행하는 기간 중 경순왕 영정에 대한 보존처리가 진행 중이어서 실물조사의 기회를 갖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진자료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금번 연구에서는 형태 위주의 고찰이었으므로 사진자료만으로도 분석이 가능하였지만, 영정 복식에 표현된 문양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고찰이 불가하였다. 이에 실물조사를 통한 문양 고찰은 후속연구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Notes
1) 일반적으로 왕의 초상은 ‘어진(御眞)’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숭혜전에 소장된 『崇惠殿誌』 의 『影幀記』를 비롯한 경순왕 초상 관련 기록에서 모두 ‘영정(影幀)’이라 표기하고 있고, 경주박물관 유물설명에서도 ‘영정’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본 연구에서는 이를 따르고자 한다.
2) 1794년 이명기에 의해 제작된 모사본은 원래 전신상과 반신상 2점으로 반신상 1점은 현재 하동 경천묘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숭혜전 소장의 전신상과 동일한 모습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반신상을 제외한 나머지 전신상만으로 연구 대상을 한정하고자 한다.
3) 이하 상용암 모사본류란 상용암 모사본(1749)과 이를 모본으로 한 이명기필 모사본(1794년), 이진춘필 모사본(1904년) 2점을 총칭한다.
4) 隋書 권12 志7 禮儀7, “於是定令,採用東齊之法。乘輿袞冕......通天冠 加金博山 附蟬十二 首施珠翠 黑介幘 玉簪導....武弁 金附蟬 平巾幘 餘服具服 講武出征四時蒐狩大射禡類宜社賞祖罰社纂嚴 則服之...皇太子...遠遊三梁冠加金附蟬”

新唐書 권24 志14 車服 天子之服, “通天冠者 冬至受朝賀 祭還 燕羣臣 養老之服也 二十四梁 附蟬十二 首施珠翠 博山 黑介幘 組纓翠緌 玉犀簪導 絳紗袍 朱裏紅羅裳白紗中單 朱領褾襈裾 白裙襦 絳紗蔽膝 白羅方心曲領白韈 黑舄”

新唐書 권24 志14 車服 羣臣之服, “進賢冠者 文官朝參三老五更之服也 黑介幘 青緌 紛長六尺四寸 廣四寸 色如其綬 三品以上三梁 五品以上兩梁 九品以上及國官一梁 六品以下私祭皆服之 侍中中書令左右散騎常侍 有黃金璫附蟬貂尾 侍左者左珥 侍右者右珥”

宋史 권151 志104 輿服3 天子之服, “通天冠 二十四梁加金博山 附蟬十二 高廣各一尺 青表朱裏 首施珠翠 黑介幘 組纓翠緌 玉犀簪導 絳紗袍 以織成雲龍紅金條紗為之 紅裏 皂褾襈裾 絳紗裙 蔽膝如袍飾 並皂褾襈 白紗中單 朱領褾襈裾 白羅方心曲領 白韈 黑舄 佩綬如袞”

宋史 권152 志105 輿服4 諸臣服上, “貂蟬籠巾七梁冠天下樂暈錦綬 為第一等 蟬舊以玳瑁為蝴蝶狀 今請改為黃金附蟬 宰相親王使相三師三公服之”

明史 권66 志42 輿服2 皇帝通天冠服, “皇帝通天冠服洪武元年定 郊廟 省牲 皇太子諸王冠婚 醮戒 則服 通天冠 絳紗袍 冠加金博山 附蟬十二 首施珠翠 黑介幘 組纓玉簪導 絳紗袍 深衣製 白紗內單 皂領褾襈裾 絳紗蔽膝白假帶 方心曲領 白韈 赤舄 其革帶 佩綬 與袞服同”

5) 三國遺事 권3 興法 제3 原宗興法 厭髑滅身, “..聖人哀戚沾悲淚於龍衣 冢宰憂傷 流輕汗於蟬冕....法興王旣擧廢立寺 寺成 謝冕旒 披方袍 施宮戚爲寺隷”

三國遺事 권2 紀異 제2 元聖大王, “脫幞頭者 入無居上也 著素笠者 冕旒之兆也 把十二絃琴者 十二孫傳世之兆也 入天官井 入宮禁之瑞也”

6) 高麗史 권72 志 권26 輿服 一, “靖宗九年十一月 契丹主, 賜冠服”

高麗史 권8 世家 권8, “癸卯 太子受冊于南郊 其賜物 則九旒冠ㆍ九章服ㆍ牙笏ㆍ竹冊ㆍ革輅ㆍ衣襨ㆍ匹段ㆍ鞍馬ㆍ弓箭ㆍ酒等物”

7) 宣和奉使高麗圖經 권7 冠服 王服, “高麗王 常服烏紗高帽 窄緗袍 紫羅勒巾間繡金碧 其會國官士民 則加幞頭束帶 祭則冕圭 唯中朝人使至 則紫羅公服 象笏玉帶”
8) 高麗史 권72 志 권26 輿服 一, “仁宗十八年四月 詔定禘禮服章之制 一品服 亞獻以下 侍中以上六員 七旒冕五章二品服 大常卿以下 五祀獻官以上十五員 五旒冕三章 三品8) 服 功臣獻官ㆍ通事舍人ㆍ監察御史以下四十一員 無旒冕”
9) 高麗史 권72 志 권26 輿服 一, “毅宗朝 平章事崔允儀裒集祖宗憲章 雜采唐制 詳定古今禮 上而王之冕服輿輅以及儀衛鹵簿 下而百官冠服 莫不具載 一代之制 備矣”
10) 『삼국유사(三國遺事)』법흥왕 26년(539)과 원성왕(785-798) 즉위전 면류관 기록을 보면 법흥왕대 재상의 관(冠)으로 선면(蟬冕)을 언급하면서도 원성왕대 기록에서 소립을 면류관을 쓰는 왕이 될 징조로 보고 있다. 이로부터 면류관이 왕을 상징하는 관모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11) 주7) 참고
12) 주7) 참고
13) 高麗史 卷72 志 卷26 輿服一, “三十二年六月 宋神宗賜 衣二對 各金銀葉裝柒匣盛 一對 紫花羅夾公服一領 淺色花羅汗衫一領 紅花羅繡夾三襜一條 紅花羅繡夾包肚 一條 紅花羅繡勒帛一條 白緜綾夾袴一腰, 靴一緉 紅透 背袋盛 紅羅繡夾複二條 腰帶二條 各紅透背袋盛 羅繡 複一條 金鍍銀匣盛 一條玉一十六稻 鏤塵百戱孩兒頭尾 共一十事 玳瑁襯金襻紅鞓成釘 一條透犀一十七稻 頭尾 共一十事 玳瑁襯金襻紅鞓成釘”
14) 高麗史節要 卷3, “丁卯十八年....禁僧服白衫韈頭袴綾羅勒 帛旋襴衫皮鞋彩冒笠子冠纓”
15) 宣和奉使高麗圖經 卷20 婦人 貴婦, “婦人之飾...白紵爲 袍 略如男子 製文綾寛袴 裏以生綃 欲其褒裕 不使箸體 橄欖勒巾 加以采絛金鐸 佩錦香嚢 以多爲貴富家”
16) 世宗實錄 卷103 世宗26年 3月 26日, “常服香皂皺紗翼 善冠一頂 玉帶一 袍服三襲各三件 紵絲大紅織金袞龍暗 骨朶雲袍靑暗花褡黑綠暗花貼裏紗大紅織金袞龍暗骨 朶雲袍靑暗花褡鸚哥綠花貼裏羅大紅織金袞龍袍靑素 褡柳靑素貼裏皂鹿皮靴一雙”
17) 高麗史 卷2 世家 卷第二 惠宗 2年, “(乙巳)二年 晋遣 范匡政ㆍ張季凝來冊王.....又勑高麗國王 省所奏進奉謝恩 紅地金銀五色線織成日月龍鳳襖段二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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