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Current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4 , No. 1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No. 7, pp. 51-71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19
Received 06 Aug 2019 Revised 23 Aug 2019 Accepted 27 Sep 2019
DOI: https://doi.org/10.7233/jksc.2019.69.7.051

조선후기 면제갑주(綿製甲冑) 문양에 대한 연구 II : 문양의 상징적 의미와 해석을 중심으로
이민정 ; 박경자 ; 안인실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경운박물관 부관장
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The Historical and Symbolic Value of the Stamp Patterns on the Cotton Armor and Helmet of the Late Joseon Period
Minjung Lee ; Kyungja Park ; Insil An
Researcher,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Vice Director, Kyungwoon Museum
Lecturer,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e
Correspondence to : Minjung Lee, e-mail: sephilotte@hanmail.net


Abstract

This study is a follow-up study to “A study of the pattern stamped on the Cotton Armor and Helmet of the late Joseon period: Analysis and restoration of the stamp patterns” (Lee, Park, & An, 2019). It examines the origin and the meaning of the stamp patterns on the Cotton Armor and Helmet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body armor which is the only remaining part of the Cotton Armor of the late Joseon period (Registered Cultural Property No. 459) in Korea has been considered as “the world’s first scientific bulletproof armor” or an “uncivilized heavy armor” reflecting either emphasizing superlative achievement or a defeatist attitude by scholars or the press. However, by focusing on the historical and symbolic value of the stamp patterns, different aspects of the armor and helmet are revealed. As a result, the patterns are classified into three categories: the Om Mani Padme Hum, the icons of the Five Great Mountains, and the Nine Stars and Eight Doors talisman. These magical and superstitious patterns reveal to be the national, military, and cosmic patterns reflecting the Neo-Confucian worldview of the Joseon Dynasty. These symbols provide a hint to assume that the Cotton Armors and Helmets were originated in the 18th century as an armor for the artillery before they appeared in the wars such as French campaign against Korea in 1866 and American expedition in 1871.


Keywords: cotton armor and helmet, neo-confucian worldview, om mani padme hum, icons of the five great mountains, nine stars and eight doors talisman
키워드: 면제갑주, 성리학적 세계관, 관음밀주(觀音密呪), 오악진형도, 구성팔문부

Ⅰ. 서론

문양의 실체는 그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며, 아름다움 이전에 상징적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경우도 있다. 아주 단순한 무늬라도 그 속에 우주의 섭리가 깃들어 있을 수도 있고, 시대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문양의 실체를 이해해야 한다(Im, 2004).

본 연구는 조선후기 면제갑주(綿製甲冑) 문양에 대한 연구 I: 문양의 분석과 복원을 중심으로(Lee, Park, & An, 2019)에 대한 후속 연구이다. I편에서 등록문화재 제459호로 지정된 ‘면제갑옷’(이하 면갑)과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면제갑주(면제갑옷과 그 부속품, 투구 일습)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문양의 배치와 형태를 분석하고 문양을 복원하였다면, II편에서는 면제갑주 유물에 찍혀있는 문양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보고 그 문양이 시사(示唆)하는 바를 밝혔다. 이를 통해 면갑에 대해 사람들이 가져왔던 통념을 재고하고, 면제갑주의 진실을 바로 보고자 하였다.

면갑의 문양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해외에 소장된 유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어 왔다(Chung, 2011; GallimardㆍMusée de l’Armée, 2017; La-Rocca, 1996; Park, 2019; Pitt Rivers Museum Collection Database, n.d.). 국내에서 연구가 부진했던 이유는 국내에는 몸판 부분인 갑의(甲衣) 밖에 존재하지 않아 문양을 일부 밖에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광대에 찍힌 글자 부적 문양은 아직 해독되지 못하였고, 문양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한 연구도 아직 부족하다.

본 연구를 위해 설정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면제갑주에 대해 가졌던 국내의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살펴보고, 왜 이와 같은 통념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반추해본다. 그리고 그동안의 면제갑주에 대한 통념을 바꾸기 위해서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에 대한 연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한다. 둘째,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의 유래와 의미를 파악한다. 셋째, 문양의 의미를 종합하여 조선후기에 면제갑주에 부여된 의미를 파악해보고, 현재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재조명해본다.

설정된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헌조사, 유물실측조사, 현지답사,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문헌자료로서 『조선왕조실록』, 『오주연문장전산고』, 『고려도경』, 『열하일기』, 『지봉유설』, 중국 병서인 『무비지』와 중국 청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 일본 사료인 『여행용심집』, 도교 관련 사료로서 『서경』, 『포박자』, 『회남자』, 『성명규지』를 조사하였다. 유물 실측조사는 2014년 5월 26일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면제갑옷(유물번호: 본관 53)을, 2018년 2월 14일 2시부터 4시까지 MMA 소장 Fabric Armor and Helmet with Buddhist and Taoist symbols(Accession Number: 36.25.10a–c)에 대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연구대상을 면갑뿐 아니라 그 부속품(광대, 엄심갑), 그리고 투구로 넓힐 수 있었다. 연구대상에 투구가 포함되기 때문에 논문의 제목과 내용에 문화재 공식명칭인 ‘면제갑옷’을 사용하기 보다는 갑옷과 투구를 포함하는 단어인 ‘갑주(甲冑)’를 사용하여 ‘면제갑주’로 표기하였다. 전주 남고사(2019.3.31.), 영국 Pitt Rivers Museum, Oxford(2019.7.8.), 국립진주박물관(2019.7.12.)에 답사하여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인터뷰는 전 육군박물관 부관장 김성혜와 다라니와 부적 해석이 가능한 티벳 스님에게 진행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그동안 밝혀내지 못한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문양이 시사하고 있는 바를 유추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는 조선후기 면제갑주에 대한 선행연구를 보완하고, 면제갑주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Ⅱ. 면갑에 대한 기존 인식: 패배주의 또는 ‘세계 최초’라는 신화 만들기

국내에 유일하게 한 점 남아있는 면갑<Fig. 1>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인식은 두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식민지 사관에 영향을 받은 패배주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최초의 (과학적인) 방탄복’이라는 애국주의적이고 신화적 시각이다.

1980년대 육군박물관장을 역임한 이강칠은 면갑에 대해 “무거워서 과연 이 옷을 입고 실전에 참가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총탄을 뚫는 정도를 실험하기 위해 만든 것인지 의혹스럽다”(BCPI&CPMK, 1987)라고 평하였다. 한편, 최근까지도 면갑을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는 2015년 2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실에서 보존 처리된 면갑이 상설전시실에 전시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총알 막아주리라 믿었던 조선 말 면 갑옷, 실제론 탈진만”이라는 제목을 붙혔다.

면갑이 탄환을 막는 방탄 성능을 가진 과학적 갑옷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기 시작한 것은 국방일보 김병륜 기자가 면갑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Kim(2004)은 면갑이 병인양요를 겪은 직후인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새롭게 개발된 방탄 갑옷으로, 1871년 6월에 벌어진 신미양요에서 조선군에게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본격적으로 면갑을 애국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2007년 초부터 진행된 수자기(帥字旗) 반환 운동부터이다. 신미양요 때 전리품으로 미국 해군이 가져간 수자기(미국 메릴랜드 주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를 반환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Shin, 2007). 2008년 문화재청이 수자기를 장기 임대 조건으로 대여해 국내에 들여왔고, 2008년 4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수자기帥字旗-136년 만의 귀환」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에 바로 면갑이 전시되었다.

수자기 반환 운동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시기에 쓰여진 한겨레 과학전문기자 이정호의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조선군의 ‘면제배갑’”(Lee, 2007), 사이언스타임즈 이성규의 이야기 과학 실록 시리즈 6, 7 “사진 속 조선군의 솜옷 미스터리(상)·(하)”편(Lee, 2008a; Lee, 2008b)은 면갑의 “총탄으로부터의 방호”라는 방탄조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였다. 2008년 12월, 한국 최대의 군사안보 커뮤니티인 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는 전쟁 무기, 갑옷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신미양요 때의 조선군 방탄복”와 관련하여 열띤 토론을 진행하였다(Dryice12, 2008). 당시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이었던 박재광은 면갑에 대해서 대원군이 서양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방탄조끼"라 하였다(Park, 2009). KBS에서는 설특집 『시간여행 호기심』(KBS(Planning) & Hankuk Cinetel Co. Ltd(Production), 2010)을 통해 면갑의 방탄 성능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으며, 군사관련 컨설턴트 양욱은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방탄 조끼는 조선에서 발명”이라는 부제를 통해 면갑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였다(Yang, 2010). 2010년 5월, 면갑이 근대군사유물로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한 심의 절차를 거칠 때에도 면갑은 개인화기인 총탄 방어용 갑옷이며, 1866년 병인양요 이후에 개발되어 1871년 신미양요에 첫 실전 투입된 ‘면포(綿布) 30겹’으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갑옷으로 설명되었다(Cultural Properties Committee of Korea, 2010). 2018년 11월에 방영된 『천상의 컬렉션』 38회 “면제배갑, 뉴욕타임스에서도 다뤘던 세계 최초 방탄조끼”(Jeon, Yoo, & Kim, 2018)에서도 면갑은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에도 등장한 “방탄조끼”로 소개되었다.

국내에 소장된 면갑을 평가절하하거나 ‘세계 최초의 과학적 방탄복’이라는 애국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면포 30겹의 두께가 만들어내는 방탄 원리라는 과학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대원군의 방탄 갑옷 개발 노력에 대한 실증적 사료(史料)를 접목시킨 구조를 공고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면갑의 구조 또는 그 위에 찍힌 문양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 만약, 문양이 면갑에서 중요한 부분이 된다면 면갑은 서양을 앞서가는 과학적인 옷이 아니라 상당히 미신(迷信)적이며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배태(胚胎)한 옷이 된다. 그동안 한국은 서양을 앞서나가기 위해 한국적 정체성을 버리고, 과학성을 강조해왔다. 그렇기에 면갑에서도 비과학적인 부적 문양에 대해 주목하기 보다는 겉모습으로서의 재료, 겉감과 안감 사이를 충전하고 있는 면포의 개수, 그리고 그 겹쳐진 면포의 방탄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면갑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주목한 연구자들은 군복식에 관심을 둔 복식학자들이었다. Kim(1997)은 면갑을 조선시대 갑주 편에 포함시켜 다루었으나, 면갑의 문양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접근하지 않았다. Park(2003)은 면갑 뿐 아니라 면제투구까지를 연구 범위에 포함시키며, ‘木棉甲’과 ‘木棉冑’ 항목에 대해 서술하였다. Park은 1871년 미군이 강화도 요새를 점령하였을 때 40겹의 무명베로 된 갑옷과 투구를 발견하였다는 프랑스 가톨릭계 선교사 샤를르 달레의 기록을 발굴하며, 육군박물관에 한 점 유일하게 남아있는 면갑이 “실험용” 갑옷이었을 것으로 추측한 이강칠의 주장을 반박하고, 면갑이 실제로 입고 훈련한 갑옷임을 밝혔다. Park & Song(2013)은 2010년 「근대군사유물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에 포함된 면갑 관련 복식사적 조사 의견에 연구 결과를 추가하여 발표하였다. An(2014)은 육군박물관과 강화전쟁박물관에 전시될 면갑 복원품을 재현하면서 그 제작하는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후 해외에 소장된 면갑 유물에까지 관심이 확대되면서 면갑에서 ‘면제갑주’로 개념이 확장되었고,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면제갑주 유물을 조사한 결과가 최근 발표되고 있다(Park, 2019; Lee, An, & Park, 2019).

면갑이라 불리는 갑의<Fig. 1>와 갑의와 일습인 요대, 투구, 엄심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의 면제갑주<Fig. 2><Fig. 3>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검은 문양이 찍혀있다. <Table 1>은 『조선후기 면제갑주(綿製甲冑) 문양에 대한 연구 I: 문양의 분석과 복원을 중심으로』(Lee, Park, & An, 2019)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표이다. MMA 소장 면제갑주 유물조사를 통해 문양을 복원한 후, 면제갑주 도식화에 문양을 배치하였다.


<Fig. 1> 
Cotton Armor (vest)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ollection, Seoul, Korea. (National Museum of Korea Collection Database, n.d.)


<Fig. 2> 
Padded Armour (vest) of the Pitt Rivers Museum collection (Chung, 2011, p. 118)


<Fig. 3> 
Fabric Armor and Helmet of the MMA collection (Photographed at MMA, Feb. 14, 2018)

<Table 1> 
Restored stamp patterns on the Fabric Armor and Helmet fro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llection (Illustrated by author)
Stamp patterns on the helmet Stamp patterns on the vest
Stamp patterns on the belt

이와 같은 문양이 갑옷에 배치되기까지의 세월 뒤에는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 민족의 사상과 철학, 정서와 심성이 꽃피워 낸 신비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Gu, 2000). 이에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그 상징과 본질을 규명하는 문화적 연구라 할 수 있다.


Ⅲ.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의 유래와 의미
1. 옴마니반메훔(Om Mani Padme Hum) 문양

면제갑주에 찍힌 옴마니반메훔 문양은 장식 테두리가 유무에 따라 두 가지 형태가 있다<Fig. 3>. 장식 테두리가 있는 옴마니반메훔 문양은 광대의 앞과 엄심에 찍혀있다. 장식 테두리가 없는 옴마니반메훔 문양은 투구 감투 부분에 모정에서 내려오는 4개의 근철이 나누고 있는 4분면마다 찍혀있다.

옴마니반메훔 문양은 Kim(1987)이 <Fig. 4>에 병기한 것과 같이 각각의 다라니 문자가 하나의 음을 나타내고 있다. 옴마니반메훔은 가운데 ‘옴’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배치되었고, 가장 마지막 문자인 ‘훔’은 가장 윗 중앙에 위치해있다. 다라니는 범자(梵字) 중 주로 경전을 적는 데 쓰인 성스러운 문자라는 의미의 실담(悉曇, Sid-dham) 또는 브라흐미 문자이다. 옴마니반메훔은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지혜와 자비를 갖춘 본존인 관세음보살의 보호(寶號)로서 다라니를 읽는 음을 그대로 사용한 명칭이다.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 육자대명왕진언(六子大明王眞言), 육자진언이라고도 불린다.


<Fig. 4> 
Restored Om Mani Padme Hum patterns on the Cotton Armor and Helmet (illustrated by author)

옴마니반메훔은 가장 대표적인 불교적 주문으로 인도에서 7세기 중엽에 성립되어 관세음 신앙이 티베트에 널리 전파된 11세기 초에 융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Kim, 1999). Kim(1999)에 의하면 불교는 진언이라는 상징 방법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하려 하였고, 진언은 청각을 통해 심리적 진동을 일으키며, 이 심리적 진동이 깨달음의 경지를 체험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진언 수행의 발전적 전개는 대승불교를 거쳐 밀교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었다. 옴마니반메훔은 대표적으로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Om), 지혜(Mani)와 자비(Padme)의 덕성이 지상의 모든 존재에 그대로 실현될지라(Hum)는 문자적 의미가 있으며, 호격의 형태를 가짐으로서 문자 하나하나에 본존의 의미를 함께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옴’자를 관하면 지혜 바라밀을 성취하고, ‘마’자는 선정 바라밀을, ‘니’ 자는 지계 바라밀을, ‘반’자는 정진 바라밀을, ‘메’자는 보시 바라밀을, ‘훔’자는 인욕 바라밀을 각각 성취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각 문자에 비로나자불, 아축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 금강보살을 대입시키거나, 제천,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을 의미한다고 하여 이 여섯 문을 닫는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주문을 반복염지하면 연화보살에게 귀의하여 극락왕생하고 만선 만행의 승행이 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옴마니반메훔은 대표적인 불교 주문이지만, 중국에 들어와 도교에 흡수되어 10세기 말 이후 하나의 도교적 수행법으로 성립된다(Jackowicz, 2013). 중국의 도교는 자연, 사회, 인간을 동일한 근원에 동일한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본 상호교감의 거대한 이론체계이다(Ge, 1988/1993). 도교에서는 인간을 도(道), 기(氣), 음양, 오행이 존재하는 작은 우주로 인식하며, 인간의 삶은 기(氣), 정(精), 신(神)이 화생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기, 정, 신을 지키고 토납(吐納: 입으로 묵은 기운을 내뿜고, 코로 새로운 기운을 들이마심), 호흡, 정좌, 연양 등의 수련을 하여 생면의 본원을 인간의 단전에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Ge, 1988/1993).

도교적 수련법을 담은 책인 『성명규지(性命圭旨)』에는 「관음밀주도(觀音密呪圖)」<Fig. 6>라 하여 ‘옴마니반메훔’ 주문을 외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 도교의 발상지 사천성 청두시에 위치한 도교 사원 천룡사(天龍寺)에서는 옴마니반메훔 주문을 외우는 도교적 수련이 행해지고 있다. 2012년 도교 사원을 다녀온 Jackowicz가 수련을 받고 이를 정리하여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Fig. 5> 
Om Mani Padme Hum (29×21.5cm) (Kim, 1987)


<Fig. 6> 
(Left) Graphic representation of the Avalokitesvara Bodhisattva incantation in accord with the body [觀音密呪圖] (Right) Sequence of the incantation in detail (Seongmyunggyuji [性命圭旨], n.d.)

첫 번째 음인 ‘옴’은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이는 관음을 시각화합니다. 관음은 눈과 귀를 뜨게 합니다. 마음은 의식이 놓여져 있는 단전의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수련자는 이제 울림을 왼쪽으로 확장시켜 두 번째 음인 ‘마’를 읊조립니다. 몸의 왼쪽은 양(陽)과 과거와 관련 있습니다. 수련자는 과거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그에 반응하고 편견 없이 또렷하게 바라봅니다. 수련자는 세 번째 울림인 ‘니’를 단전의 위쪽 중심으로 옮겨옵니다. 여기에서 수련자들은 기(氣), 정(精), 신(神)의 성공과 실패를 편견없이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네 번째 울림인 ‘반’은 오른쪽으로 옮겨옵니다. 몸의 오른쪽은 음(陰)과 미래와 관련 있습니다. 이 때 수련자들은 감응의 명확성을 그의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옳은 행동이나 잘못된 선택을 살펴보기 위해 확장합니다. 단전의 아래쪽 중심으로 이동하여 다섯 번째 울림인 ‘메’를 읊조립니다 여기에서 감응은 몸과 기저의 욕구를 바라봅니다. 수련자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신체적 자아로서의 본능을 보고 듣습니다. 그리고 편견을 갖지 않습니다. 마지막 음절인 ‘훔’을 신체의 모든 구멍으로 발산하면서 에너지를 모든 방향으로 확산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련자는 마음, 과거, 정신, 미래, 그리고 몸을 하나로 만드는 공식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내부의 변화를 외부의 현상학적 세상으로 연결하려는 발산으로서 무한대로 확장시킵니다(Jackowicz, 2013).

면제갑주에 찍힌 옴마니반메훔 문양<Fig. 4>을 살펴보면, 옴마니반메훔 문양이 단순히 원형이나 일자로 시문된 것이 아니라 도교적 수행 방법의 순서대로 가운데 중앙에서 시작되어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고난 후 위에 이르러 끝나도록 배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절이 이동하는 방향은 초기 태극도의 모습과 유사성을 보인다(Jackowicz, 2013). <Fig. 7>은 송대(宋代) 주희(朱熹, 1130~1200)의 어록을 모은 『주자어류(朱子語類)』(Li, 1270)에서 설명하고 있는 태극도로 선천도, 음양어태극도라고도 한다. 물고기 모양의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는 상생 순원의 원리를 담고 있다.


<Fig. 7> 
pre-Heaven Taiji Zhu Xi, (Li, 1270)

2. 오악진형도(五嶽眞形圖) 문양

투구 뒷드림과 양쪽 옆드림, 그리고 갑의에 찍힌 다섯 종류의 원형 문양은 모두 오악진형도(五嶽眞形圖) 문양이다<Table 1>. La Rocca(1996)는 이 문양이 도교의 오악(五嶽)문양임을 밝히면서 동악(東嶽)은 장수(長壽)를, 남악(南嶽)은 적이나 불로 인한 피해로부터의 보호를, 중악(中嶽)은 피로로부터의 회복을, 서악(西嶽)은 칼로 인한 자상으로부터의 보호를, 북악(北嶽)은 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영국 핏 리버스 박물관 군사유물 전문연구원이었던 Mills는 오악문양을 감싸는 테두리 장식 문양을 이집트 피라미드 속에서 발견되는 왕의 이름을 감싸고 있는 신성한 문양에 나타나는 ‘카르투슈(cartouches)’와 비교하기도 하였다(Chung, 2011).

오악이란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에 나오는 개념으로 중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명산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Lee, c. 1800) 경사편(經史編) 2 도장총설(道藏總說)에는 『오악진형도(五岳眞形圖)』가 황제(黃帝)가 산에 가서 몸소 오악 지형의 형상을 그린 것이라 쓰여 있다. 도교 서적[道書]에는 천지개벽 시에 도교의 교주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동방에서 발하는 기의 형상이나 뱀처럼 구불구불한 문자 닮은 형상이 된 지상의 산악, 강물의 모양 등을 공중에서 본 모습을 영사(靈寫)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Patrick, 2014). 오악은 3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 중국 진(晉) 대에 도교가 흥성하면서, 신선이 사는 곳으로 간주되며 도교의 신화전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도교 이론가 갈홍(葛洪, 283~343?)은 태산, 항산, 숭산, 형산, 화산을 그리고, 그 산에 살고 있는 귀신들을 소개한 무서(巫書)였던 『오악진형도』를 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비적(祕籍)이라 칭했다(Ge, 1988/1993). 그 그림을 차고 다니면 사악한 요귀와 역귀를 막을 수 있고, 정신이 안정되고 오래 살 수 있으며, 온갖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고, 오악 명산을 주유할 수 있었다(Ge, 1988/1993, p. 452). 갈홍은 『침중서(枕中書)』를 통해 오행설의 바탕 위에 오악을 기존의 오제와 결합하여 다음과 같은 신화 전설 계통을 만들어냈다(Jeon, 2008).

목(木) 동방(東方) 청(靑) 태호(太昊) 동악(東嶽) 태산(泰山)
화(火) 남방(南方) 적(赤) 축융(祝融) 남악(南岳) 형산(衡山)
금(金) 서방(西方) 백(白) 금천(金天) 서악(西嶽) 화산(華山)
수(水) 북방(北坊) 흑(黑) 전욱(顓頊) 북악(北嶽) 항산(恒山)
토(土) 중앙(中央) 황(黃) 헌원(軒轅) 중악(中嶽) 숭산(崇山)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송나라 사신들이 바다를 건너 고려에 오기 위해서 오악진형(五嶽眞形)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卷第三十四海道一] 二十八日庚辰, 天日淸晏. 卯刻, 八舟同發, 使副具朝服, 與二道官, 望闕再拜, 投御前所降神霄玉淸九陽總眞符籙, 幷風師龍王牒, 天曹直符引五嶽眞形, 與止風雨等十三符, 訖, 張篷而行, 出赤門. (28일 경진일 하늘이 맑았다. 오전 6시쯤[卯刻] 8척의 배가 동시에 출발하였는데, 정사와 부사는 조복(朝服)을 갖춰 입고 두 명의 도관(道官)과 함께 궁궐을 향하여[望闕] 두 번 절하고[再拜]하고, 어전(御前)에서 내린 신소옥청구양총진부록(神霄玉淸九陽總眞符籙)과 풍사용왕첩(風師龍王牒), 천조직부인오옥진형(天曹直符引五獄眞形)1), 그리고 지풍우(止風雨) 등 13부적[符]를 던졌다. 이일을 마친 후 뜸범[篷] 을 펼치고 나아가 적문(赤門)을 지났다.) (Xu, 1124)

<Fig. 8>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方輿彙編ㆍ山川典ㆍ第八卷에 수록된 오악진형도(五嶽眞形圖)이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은 1700년에서 1725년 사이 청 4대 황제인 강희제의 칙령으로 완성된 10,000권 규모의 백과사전이다. <Fig. 8>를 통해 18세기 초반 중국에 존재하였던 오악진형도 문양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일본에서도 오악진형도가 발견된다. 에도 시대의 서민 사회에서는 계 조직인 ‘고’(こう, 講)가 발달하여 ‘고’가 통행증 발급 요령,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절차, 여행에 필요한 물품, 숙박시설의 예약 등 모든 편의를 봐주었고, 서민들은 여행 안내서를 보면서 참배나 등산에 필요한 물품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때 만들어진 여행안내서의 하나가 야스미 로안(八隅蘆菴)이 1810년에 만든 『여행용심집(旅行用心集)』이다(Shim, 2010). 이 책자에 오악진형도가 수록되어 있다<Fig. 9>.


<Fig. 9> 
Guidebook for travelers (Early 19th century, Japan) by Yasumi, Loan[八隅蘆菴], 1810. © Aiko Uno (https://komonjyo.net/ryokouyoujinsyu04.html)

오악진형도 문양은 현대 한국인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에서도 오악도 두루마리를 등에 매고 있는 도사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었다.

[燕巖集卷之十二○別集潘南朴趾源美齋著/熱河日記/馹汛隨筆] 起辛卯。至己亥。凡九日。自新廣至山海關內。共五百六十二里。“路中有道士三人。結伴行丐。周歷市廛。一人頭戴烏紗畵雲方冠。身被一領玉色縐紗濶袖長袍。下繫綠杭羅裳。腰束紅錦飄帶。足穿赤色飛雲方履。背負一口斬魔古釖。手持竹簡子。皮白淨三角。鬚踈眉目。一人頭上雙角結子紅繪總角。身穿窄袖綠緞襖子。肩披薜荔。兩腿上繫虎皮。腰束紅緞廣帶。足穿靑鞋。背負錦軸五嶽圖。腰佩金胡盧。手捧道書一匣。顔色白晢媚嫵。一人卷髮披肩。以金環箍頭。身披黑貢緞濶袖長衫。跣足而行。手持紅胡盧。赤面環眼。口中念呪。觀市人氣色。皆帶厭苦之意。(길에서 도사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짝을 지어 시장 골목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그 중 하나는 머리에 구름 무늬를 놓은 검은 사로 만든 모난 갓을 쓰고, 몸에는 옥색 추사로 지은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도포와 푸른 항라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붉은 비단 띠를 띠고 발에는 붉고 모난 비운리를 신고, 등에는 옛 참마검(마귀를 베는 칼)을 지고 손에는 죽간을 들었는데, 흰 얼굴과 삼각 수염에 미목이 헌칠하다. 또 하나는 머리에 두 갈래 뿔상투를 짜고 붉은 비단을 감았으며, 몸에는 소매가 좁은 푸른 비단 저고리를 입고, 어깨에는 벽려를 걸치고, 두 무릎 위에는 호피를 대었으며, 허리에는 홍단 넓은 띠를 띠고 발에는 청혜를 신고, 등에는 비단으로 꾸민 오악도의 족자를 지고 또 허리엔 금호로병을 찼으며, 손에는 도서 한 갑을 들었는데 얼굴은 희고 가냘프다. 또 하나는 머리를 말아서 어깨에 척 걸치고 금테를 둘렀으며, 몸은 검은 공단으로 지은 소매 넓은 장삼을 입고, 맨발인 채 손엔 붉은 호로병을 들었다. 붉은 얼굴에 고리눈이요, 입 속으로 주문을 외면서 간다. 저자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건대 모두 그들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Park, 1780/1968)

박지원은 정조 4년(1780)에 청 황제의 진하사절단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성경(盛京)(현재 심양), 연경(현재 북경), 열하(현재 하북성(河北省)) 등지를 여행하면서 기행문을 작성하였다. 심양을 떠나 북진(北鎭)에서 출발하여 만리장성의 동쪽 끝 관문인 산해관(山海關)에 이르기까지 7월 15일 시작하여 23일 사이의 9일 동안의 여행 기록이 담긴 「일신수필(馹汛 隨筆)」 편에 위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박지원 일행은 1780년 7월 22일에 관제묘(關帝廟, Guandi Temple, 관우의 영(靈)을 모시는 사당)(랴오닝 성 후루다오 시 쑤이중 현에 위치) 예폐(禮幣)를 바치고 머리를 조아리며 제비를 뽑아 길흉을 점쳐보기도 하였다. 박지원은 요령 관제묘의 장려함이 요동보다 낫고 매우 영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기록하였다. 박지원이 도사들을 본 것도 이 부근이었다.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조선후기 대표적 화가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 1811~1890)는 숙종 때 소론의 거두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의 5대손으로, 집안에서 내려오는 광해군, 인조, 현종 대의 서간문(書簡文)을 모아 책을 만들 때 표지 안쪽에 오악진형도를 모사해 그려 넣었다<Fig. 10>. 그림 왼편에 쓰인 글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오악진형(五嶽眞形)에 대해 그 비밀스러움을 밝히지는 못하였으나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모양을 다르게 그린 것은 반드시 뜻이 있을 것이다. 오행(五行)에 의거하여 그림을 표현하였고, 각각의 그림은 하나의 방향을 나타내고 성스러운 명산의 형상[관악진(冠嶽鎭)]을 간단하게 그렸다. (Nam, c. 19th century)

20세기 한국 것으로 추정되는 『도장경오악진형도(道藏經五岳眞形圖)·경배오악형도(鏡背五岳形圖)』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글 지문이 있고, 각 문양 옆에 산의 이름이 병기되어있어 문양별로 상징하는 산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Fig. 11>. 『도장경오악진형도(道藏經五岳眞形圖)와 경배오악형도(鏡背五岳形圖)』에 그려진 오악의 배치는 다르지만, 동일한 문양이 상징하는 산은 일치한다.


<Fig. 11> 
Dojangkyung Oakjinhyungdo (道藏經五岳眞形圖) Jyungbae Oakhyungdo (鏡背五岳形圖) in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 collection, c. 20th century (https://www.nl.go.kr/korcis/)

조선 후기의 별전(別錢)<Fig. 12>에도 오악진형도 문양이 사용되었다. 앞면에 ‘五嶽眞形圖’ 한자가, 뒷면에 오악진형도 문양이 압인(壓印)되어 있다. 특히 앞면 글자부분은 칠보로 장식하기도 했다. 별전은 원래 주전(鑄錢署)에서 동(銅)의 순도 와 무게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만들었던 시주화였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자 왕실이나 사대부계급에서 청하여 여러 가지 문양을 넣어 주조하였다고 한다. Kim(2014)에 의하면 별전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장식품으로 일종의 애완을 위한 호부(護符)였다고 한다. 화폐수집가들의 경매 사이트인 화동옥션(http://www.hwadong.com/auction/)에서 조선 후기의 오악진형도 별전이 수차례 경매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궁중 베갯모 수본에도 오악진형도 문양이 남아있다(National Palace Museum. catalog No. Changdeok 18456-6, 18456-8)<Fig. 13>. 조선 후기에 오악진형도 문양이 별전 또는 베갯모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사대부가와 궁중에서 오악진형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신묘함을 지니고자 했기 때문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Fig. 12> 
Metal stamping of the ‘五嶽眞形圖’ and the icon of the Five Great Mountains Formation on the special coin of the late Joseon Dynasty (diameter)37.0× (thickness)2.4mm (http://www.hwadong.com)


<Fig. 13> 
Pillow embroidery design of the Great Five Mountains, Changdeok[창덕] 18456-6, ink on oilpaper, 12.5×12.6cm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2014, p. 228)

오악진형도 문양은 한국 민화에 면면히 살아남아 ‘오대 명산’ 문양으로 기록되었다(Yoon, 2000). 민화에서는 각 오악 문양들을 흑, 적, 황, 청, 백색의 색상으로 표현하였다. 20세기 초 중국에서 제작된 붓 주머니에서 색실로 자수된 오악진형도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National Museum of Korea, 2013, p. 227)<Fig. 14>. 태산(泰山) 문양이 청색이 아닌 흑색으로 자수되어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북쪽을 의미하는 항산(亢山) 문양이 흑색이 아닌 청색으로 자수되어 동쪽에 위치하도록 자수된 것으로 보아 근대화가 시작된 중국에서 오악진형도 문양이 그 의미가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Fig. 14> 
Embroidery with Taoist design, Silk, 30.8×18.5cm, Ehwa Womans University Museum Collection (National Museum of Korea, 2013)

1950년대 후반부터 부적 수집 및 연구에 앞장서 국내 최다 부적 소장자인 김민기는 1958년 전북 전주시 남고사에서 남악어부와 중악어부를 수집하였다(KOCCA, 2003). 그는 남악어부<Fig. 16>는 ‘免傷害火災’을 위한 것이며, 중악어부<Fig. 17>는 ‘巨萬財貨’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라 설명하고 있다. 테두리 안에 용궁처럼 보이는 모양이 들어있는 중악어부은 거만(巨萬)의 부(富)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지는 부적으로 현대 한국 무속인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dikol71, 2018). 김민기는 화산(華山)을 의미하는 서악어부도 수집하였으나 이를 ‘석류부’<Fig. 15>라 명명하고 아들을 순산하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Kim, 1987). 아마도 수집 당시에 그와 같은 이름과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Fig. 18>은 가회민화박물관이 수집한 부적으로 역시 석류부로 명명되었다(Gahoe Museum, 2016). 이를 통해 20세기라는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오악진형도는 도교적 신비스러운 의미를 잃고 민간 부적으로 사용되면서 기복(祈福), 건강, 득남을 염원하는 민간신앙적 의미만 지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Fig. 15> 
Pomegranate talisman [석류부] bringing the son and safe birth (安産求子), 23×21cm (Kim, 1987)


<Fig. 16> 
The Southern Mountain talisman [남악어부], 21.5×23.5cm (Kim, 1987)


<Fig. 17> 
Great Central Mountain talisman [중악어부], 22.5×24cm (Kim, 1987)


<Fig. 18> 
Pomegranate talisman [석류부] 41×41cm (Gahoe Museum, 2006)

위의 분석을 바탕으로 면제갑주에 찍힌 오악진형도 문양에 명칭을 붙이면 <Table 2>과 같다. 투구에는 북악어부와 서악어부가 투구 드림의 형태에 맞도록 화려한 테두리 안에 배치되어 찍혀 있고, 갑의 앞판 하단에는 중악어부와 남악어부가 찍혀있으며, 뒤판에는 양 어깨에 동악어부가 찍혀 있고 하단에 서악어부와 북악어부가 찍혀있다.

<Table 2> 
Icons of the Five Great Mountains on the Cotton Armor and Helmet
<Patterns on Helmet> Patterns on the Cotton Armor (vest)

Icon of the Northern Mountain (北嶽御符) on the nape defense (29×21.5cm)
(front) (back)


Icon of the Eastern Mountain(東嶽御符) (17×16.5cm)

Icons of the Western Mountain(西嶽御符) on the left and right cheek defense (19.55×12.87cm)

Icon of the
Central
Mountain (中嶽御符) (22×21.5cm)

Icon of the
Southern
Mountain (南嶽御符) (22×21cm)

Icon of the
Western
Mountain (西嶽御符) (21×21.5cm)

Icon of the
Northern
Mountain (北嶽御符) (22×21cm)

3. 구성팔문부(九星八門符) 문양

La Rocca(1996)는 앞서 광대의 등 쪽에 찍힌 문양 <Fig. 19>을 다섯 개의 기둥으로 인식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다양한 피해나 불운을 막아주는 의미를 지닌 부적[符箓, fu-lu]이라 하였다. 이 문양은 민간 부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만사대길소원성취부”로 사용되었다(Kim, 1987). 김민기에 의하면 이 부적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면 만사가 대길하고 집안이 평안하며 원하는 바가 소원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Kim, 1987; KOCCA, 2003).


<Fig. 19> 
“Five columns of fu-lu”” on the rear of the waistband of the Fabric Armor in the MMA collection (Photographed at MMA, Feb. 14, 2018)

그동안 해독되지 못했던 이 문양은 아홉 개의 부적 형상이 모여 다섯 개의 기둥을 만든 모습으로 ‘구성팔문부’이다. 부적 각각의 모습은 『무비지(武備志)』권 181, 점도재 편 34에 “九星八門符”라 하여 <Fig. 20>과 같이 실려 있다. 세 장에 걸쳐져 그려져 있는 9개의 부적 그림을 배치 그대로 하나로 모으면 광대에 찍혀있는 모습이 된다. <Fig. 19> 도판의 오른쪽 상단부터 봉휴갑수(蓬休甲水), 임생(任生艮乙), 충상진병목(衝傷震丙木), 조두목(輔杜木), 금사(禽死), 주경(柱驚), 심개(心開), 예사(芮死), 영경(英景) 부적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2개씩 하나의 기둥을 만들고 있고, 마지막 ‘영경(英景)’ 부적이 길게 하나의 기둥으로 표현되어 있다.


<Fig. 20> 
Talisman of the Nine Stars and Eight Doors (九星八門符) Mao, Yuanyi, Wubei Zhi, book 181, chapter 34 Jeondojae[占度載]. (Waseda University Library Collection,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ke05/ke05_00061/ke05_00061_0062/ke05_00061_0062.pdf)

『무비지』는 명나라 말기인 1621년(天啓元年) 병법가인 모원의(茅元儀)(1594-1640)가 찬술한 방대한 병법 백과사전[軍事類書]이다. 모원의는 청에 의해 쓰러져가는 명나라의 부활을 기도하며 2,000여부의 책에서 군기(軍器), 병선(兵船), 진형(陣形) 등의 자료를 뽑아 전 240권의 책으로 만들었다(Choi, 2018; Yang, n.d.; Kim, & Choi, 2004).

국내에 『무비지』가 들어오게 된 것은 1737년(영조 13, 청 건륭 2)에 이루어진 청나라 사행(使行)으로부터였다. 1738년(영조 14) 10월 20일 기해일에 작성된 『영조실록』 47권 2번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命刊『武備志』 五十卷于平安兵營, 往歲使行覓來者也。” 『무비지』 50권을 평안병영(平安兵營)에서 간행하도록 명하였는데, 지난해 사행(使行) 때 구득(求得)해 온 것이라는 기사이다. 영조 초기에는 정국이 불안했다. 1728년(영조 4) 음력 3월 15일, 소수당인 소론당 및 남인당의 강경파들이 영조를 몰아내고자 이인좌의 난이 벌어졌다. 비록 6일 천하로 끝났지만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지역 사회의 호응이 있었다. 난의 주요지역은 경상도(영남)이었다. 영조는 반란을 진압했고, 반대파의 상당 부분을 정계에서 숙청하고 국정 장악력을 키워 탕평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Kim, 2016). 『무비지』는 영조가 탕평책을 추진하며 왕권을 강화하던 시기, 군사를 재정비하여 국정 장악력을 키우려는 영조의 의도에 의해 국내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무비지』는 국립중앙도서관, 육군사관학교박물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무비지』본은 총 39책으로 묶여 남아있는데, 구성팔문부가 들어있는 권177-182가 낙실되어 있다. 국내에서 디지털 열람이 가능한 자료는 국립중앙도서 관 소장 『무비지』 본이다. 총 48책으로 묶여있고, 이 중 권177-183이 묶여있는 Vol. 36에서 구성팔문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구성팔문부가 찍혀있는 부분이 오염되어 있다. <Fig. 20>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도서관에서 디지털로 제공하는 『무비지』 본으로 비교적 형태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무비지』는 5부 240권으로 병결평(兵诀评) 권1-18(18권), 전략고(战略考) 권19-51(33권), 진연제(阵练制) 권52-92(41권), 군자승(军资乘) 권93-147(55권), 점도재(占度载) 권148-240(9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점도재는 점(店)편과 도(度)편으로 나뉘는데, 점편에는 해, 달, 별, 구름, 바람, 우뢰, 오행, 구름, 태을(太乙), 기문(奇門), 육임(六壬)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도편에는 방위와 지리의 형세에 따른 병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구성팔문부는 권181 점도재 34 점(占)편 둔갑경찬(遁甲經纂)에 실려있다. 둔갑경찬이란 기문둔갑(奇門遁甲)에 관련된 경전을 모아 발췌하여 편찬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구성팔문부는 기문둔갑에서 사용되는 부적이다. 기문둔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공간의 기운을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점술이다(Kim & Cho, 2016). 기문둔갑은 황제 헌원이 치우천왕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천신(天神)인 구천현녀에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술로 특히 병법에 많이 응용되어 국가에서 배우는 것을 금하는 시기도 있었다. 제갈공명, 강태공, 장량, 유백온 등의 군사(軍師)들이 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수광(1563-1628)이 펴낸 백과사전류의 책인 『지봉유설』(Lee, 1614/2016)에도 둔갑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부응경』의 둔갑법은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황제 때에 풍후(황제의 정승)가 지었다고 한다. 문을 나누고 국을 정하여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데로 나아가게 함이 가장 일용에 요긴하다. 그런 까닭에 옛 사람들이 이것으로써 임기응변하고 적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 법이 10간 가운데서 甲은 항상 숨어 감추기 때문에 둔갑이라고 한다. (Lee, 1614/2016, p. 98)

기문둔갑의 기본 개념으로 구궁(九宮), 구성(九星), 팔문(八門)이 있다. 구궁은 3×3의 정사각형 9개로 등분된 도판을 말한다. 이곳에 팔괘의 방위와 그 중앙을 배치하거나, 숫자, 색, 방위, 십이지, 신체부위, 오행, 구성, 팔문 등을 배치한다. 구성은 하늘의 천봉성(天蓬星), 천임성(天任星), 천충성(天衝星), 천보성(天輔星), 천금성(天禽星), 천주성(天柱星),천심성(天心星), 천예성(天芮星), 천영성(天英星)의 아홉 개의 별모양을 의미한다. 구성은 북두칠성(탐랑ㆍ거문ㆍ녹존ㆍ문곡ㆍ염정ㆍ무곡ㆍ파군)과 좌보성, 우필성을 의미하는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10학파 중 하나인 음양가(陰陽家)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칠성에 보성과 필성을 더한 구성의 관념은 도교적 전통이다(Kim, 2007). 팔문은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驚門), 개문(開門), 사문(死門), 경문(景門)의 여덟 문으로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에서 사람의 상태를 설명한다.

『무비지』 구성팔문부 부적 <Fig. 20> 하단에 기록된의 명칭을 살펴보면, 봉휴(蓬休), 임생(任生), 충상(衝傷), 조두(輔杜), 금사(禽死), 주경(柱驚), 심개(心開), 예사(芮死), 영경(英景)이다. 이는 구성과 팔문이 모두 정위(定位)된 상태를 나타낸다<Fig. 21>. 별은 아홉 개, 문은 여덟 개 이므로, 구궁 중앙에 위치한 천금성은 사문(死門)을 취하여 ‘禽’과 ‘死’가 합쳐진 금사(禽死)가 되었다. 금사부는 <Fig. 19>의 글자부적 상에도 가장 중앙 상단에 배치되었다.


<Fig. 21> 
Normal position of the Nines Stars and Eight Doors (Kim & Cho, 2016, p. 30)


Ⅳ. 논의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

등록문화재 제459호로 지정된 ‘면제갑옷’은 영관(領官)급의 화려한 갑옷이 아닌 하급 군인의 실용적인 갑옷으로 그 소재가 면이고, 면포를 30겹 정도 겹친 후 검은 문양을 도장으로 찍어 장식한 단순한 갑옷이었기에 다른 두정갑이나 화려한 문양과 금속장식이 있는 성성전(猩猩氈)과 같은 갑옷에 비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국내에는 갑옷의 일부분인 갑의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일습으로서 존재해야 파악될 수 있는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는 연구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술적이고 신비한 매력을 뿜어내는 특별한 문양이 찍힌 면제갑옷은 전리품으로 또는 해외 무기 수집가의 눈에 들어 몇몇 해외 박물관에 일부 또는 일습으로 소장되어 있다. 2018년 2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진행되었던 유물 조사에서 갑의, 배띠, 투구 일습에 찍힌 면제갑주에 찍힌 다양한 문양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선행연구자들이 주목했던 갑의의 면포 겹 수를 넘어, 면제갑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면제갑주에서 해석이 가능했던 첫 문양은 ‘옴마니반메훔’ 문양이었다. 이 문양은 투구와 배띠 앞쪽에 시문되어 두려운 전쟁터를 향해 나아가는 군인들을 불교적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보호해주는 문양으로 보였다. 갑의에 찍힌 ‘오악진형도’라는 도교적 문양이 부적으로서 장수(長壽), 칼, 물, 불로부터의 보호와 큰 부(富)를 획득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면제갑주는 단순히 미신적, 주술적 염원이 담긴 문양이 찍힌 보호 장비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이와 같이 옷에 문양을 자수하거나 찍어 방탄을 위한 부적으로 사용한 가장 가까운 시일의 예를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의 천인침(千人針, せんにんばり) 또는 천인력(千人力, せんにんりき)에서 찾아볼 수 있다(Lee, 2018). 천인침은 천명의 여인들이 한 땀씩 수놓아서, 천인력은 천 명의 남성들로부터 ‘力’이라는 글자를 얻어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징용되는 청년들에게 위문품으로 전달되던 수건이나 머리띠로 이것을 이마나 허리에 두르고 있으면 총알이 비껴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일종의 부적같은 물건이었다고 한다(Incheon Girls High School Alumni Association, n.d.). Lee(2018)에 의하면 천인침과 천인력은 나중에 변질되어 ‘力’이라는 도장을 만들어 급조했다고도 한다. 천인침 또는 천인력에 사용되는 문양으로는 “武運長久”라는 글귀나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여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지켜 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어왔던 호랑이 문양이 사용되었다.

전 육군박물관 부관장이었던 김성혜에게 질문하였다. “조선시대는 도교적 재(齋)를 올리는 소격서도 철폐할 정도로 엄격한 성리학 사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조선 군인의 갑옷에 이와 같은 불교적, 도교적, 무속 신앙적인 부적이 찍혀있는 것일까요?” 김성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전쟁터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운명에 놓인 이들에게 민간에서 널리 알려진 주술적 부적을 시문하여 준 것은 초자연적 신의 힘을 부여하여 심신의 안정과 건승을 빌어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요. 갑옷에 이와 같은 문양이 찍혀있는 것은 사례가 별로 없지만, 사인검(四寅劍)이나 깃발에는 도교적, 주술적 별자리 문양들이 들어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Kim, personal communication, April 24, 2018). 오랜 기간 육군박물관에서 군사 유물을 연구한 김성혜의 이와 같은 답변은 조선 군대의 깃발을 연구한 김일권의 글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조선 후기에 사용된 군기에 송원대 도교 신화가 녹아있다는 것은 엄격한 성리학 사회에서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이들이 초자연적인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비극적 운명을 피하고 싶었던 간절함을 이해한다면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릴 것이다. (Kim, 2017)

사실, 조선시대와 같이 엄격한 성리학 사회에 불교 또는 도교의 상징이 녹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의 성립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된다. 남송(南宋) 대 주희(朱熹)(1130~1200)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의 이론적 형태는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그리고 불가와 선가를 두루 포괄하는 것이었다. 주희를 비롯한 사대부들은 중국의 문화정신에 뼈대가 되는 다양한 문화이론을 자각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였다. 특히, 생존과 죽음과 관련하여서는 사대부 계층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하며,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워 일반 서민들의 심리에 부합하였던 도교를 성리학에 융합하였다(Ge, 1988/1993).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이 단순히 갑옷의 주술적 보호력만을 위한 것이었을까를 자문해 보았을 때, 옴마니반메훔 문양과 오악진형도 문양은 이 면제갑주가 언제 만들어지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왜 그 문양이 찍히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면제갑주에 대한 근본적 이해에 접근하게 만들어 준 문양은 글자 부적인 구성팔문부(九星八門符)이다. 구성팔문부는 기문둔갑술의 부적으로 명 말기의 병서인 『무비지』에 실려 있는 사실은 앞 장에서 밝힌 바 있다. 구성팔문부가 실린 『무비지』는 영조 13년(1737년)에 청나라 사행(使行)을 통해 조선 왕실에 들어오게 된다. 영조는 그 다음 해인 1738년에 평안도 병영에서 『무비지(武備志)』를 간행하도록 하였다. 영조는 집권 초반에 발생한 무신란(戊申亂)을 진압하면서, 강력한 군권 확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오군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조선 전기 왕 중심의 오위 체제로 돌아가고자 했다(Choi, 2018). 청나라 사행에서 영조가 입수한 『무비지』는 영조가 진행했던 군권 확립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조는 천지인 삼재와 음양오행론 등의 전통적 사유를 선호한 군주이다(Kim, 2017). Kim에 의하면 영조의 사유는 『문헌비고』의 편제 설정에서도 보이며, 『속병장도설』의 진법 설정에서도 동아시아 고대적 우주론인 오행론에 더욱 경도되는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영조 대의 이와 같은 군권을 확립시켜 왕권을 강화하는 분위기는 정조 대까지 이어졌다. 1778년(정조 2년) 정조는 규례를 재정비하면서 장수가 휘하 장수를 소집하는 강력한 명령 깃발인 각 방위의 색에 ‘북두칠성’이 그려진 초요기(招搖旗)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영ㆍ정조 대의 사회 분위기는 무풍(武風)이 짙었으며, 왕권 강화를 위해 군권을 확립하고자 고대의 우주론적인 오행론의 사유방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군사(軍事)에 고대로부터 이어진 도교적 점성술, 음양론을 사용하였고, 심신수련과 건강관리를 위한 도교적 수련법도 받아들였다. 이 때 우주의 철학으로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우주와 인간 정신의 윤리적 연관성을 강조하고, 인간과 땅, 그리고 우주를 하나로 만드는 도교적 문양이 개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구성팔문부가 찍힌 갑옷을 떠올려 보았을 때, 우주와 인간이 합체되어 아홉 개의 별과 (인간의 몸에 위치한) 여덟 개의 문이 정위에 놓여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구성팔문부와 같은 부적을 아무나 왕의 허락 없이 옷에 찍을 수 없으며 입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문양을 갖춘 갑옷은 조선 말 대원군 집권 시기 병인양요 이후 신미양요 사이에 서양 함선과 군대의 총포를 막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것으로는 추정되지 않는다.

구성팔문부가 국가적 병법을 담은 부적이라면, 단순히 갑옷을 입은 개인의 안위를 간절히 염원하는 문양일 것으로 추정되었던 오악진형도 문양과 옴마니반메훔 문양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갑의와 투구에 찍힌 오악진형도 문양은 신성함을 의미하는 장식 테두리에 둘러싸여 고안되었으며, 이는 다른 민화나 중국 자료에서는 발견된 바가 없다. 따라서 조선의 특유한 성스러운 문양이라 할 수 있다. 갑의와 투구에 찍힌 오악진형도 문양의 배치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나, 『서경』에 등장하는 중국 고대 황제 순(舜)이 태산(泰山)을 중심으로 오악을 순행하며 다스린다는 맥락이나, 조선시대 도성이었던 한양 동쪽 지역의 평평한 지형적 특색으로 인해 동쪽을 강화해야 한다는 풍수지리적 맥락에서 뒤쪽 견갑골 부분에 동악진형 문양 2개를 찍어서 면제갑주에 찍힌 오악진형도의 배치에 대해 해석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앞 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옴마니반메훔 문양은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보호해주는 불교적 의미를 넘어, 문양이 배치된 모습을 근거로 할 때 도교적 수행법이 담긴 문양임을 알 수 있었다. ‘옴’으로 시작되는 단전에서 시작된 기가 양기(陽氣)의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단전을 중심으로 몸의 네 곳을 진동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정수리에서 ‘훔’이라는 음을 통해 순환했던 기가 뿜어져 나오는 데 이와 같은 문양의 배치를 통해 기(氣)의 원만한 흐름과 통함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위해 상당 시간 면제갑주의 문양을 복원하면서 문양의 자세한 윤곽선, 배치 등을 염두할 수 있게 되었고, 정확한 복원과 의미 파악을 위해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결과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은 개인의 사사로운 염원이 담겨있기 보다는 국가적 상징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갑옷에 찍힌 국가적, 군사적, 우주적인 문양은 갑오경장 이후에 전통 군사체계가 무너지면서 의미가 사라졌고, 무속이나 민간 신앙적인 의미에서 면면히 사용되어 온 것으로 파악되었다.

지금까지 면제갑주의 문양을 통해 면제갑주가 처음 제작되었던 시기를 대원군 시기가 아닌 조선 후기로 앞당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박제형은 병인양요ㆍ신미양요 시기 평화기 동안 무기고(武器庫)에 길게 간직되어 왔던 불랑기 대포가 바닷가에 배치되었다고 기록하였다(Park, 1886/2016). 아마도 이 때 면제갑주도 불랑기 대포와 함께 무기고 밖으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추정이 사실이라면, 면제갑주가 병인양요 직후 대원군에 의해 개발된 총탄을 막는 방탄복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신미양요 때 전리품으로 미국 해군이 가져갔던 수자기가 영구 임대 형식으로 국내에 반환되던 2007년 경, 면갑에 관심이 쏠리면서 면갑이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라는 애국심 가득한 과학·군사 전문가, 일반인의 주장이 이어졌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를 강조하던 면갑 관련 기사와 글에서 일관되게 제기되었던 것은 “실제로 베트남전에서도 총탄을 막기 위한 방탄조끼는 병사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방탄조끼는 총탄이 아닌 포탄 파편을 막는 장비였을 뿐이다”(Lee, 2007; Lee, 2008b)라는 사실이었다.

면제갑주가 조총이나 소총의 탄환을 막아내는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상식 속의 “포탄 파편을 막는 장비”라면 면제갑주에 대한 설명은 이치에 맞게 된다. 면제갑주는 면포가 30겹 겹쳐진 갑의에 4~5cm정도로 두텁게 목화솜을 넣은 귀마개용 드림이 있는 투구로 구성된 갑옷으로, 뜨겁고,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자칫 폭발할 수도 있는 화기(火器)인 불랑기를 다루는 포병(砲兵) 갑옷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용도라면 왜 면제갑주가 『근세조선정감』에 기록된 것처럼 13겹이 아니라 30겹인지도 설명이 가능하다.

본 연구는 문양의 연구를 통해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이 주술적, 미신적 용도보다는 당시 조선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국가적, 군사적, 우주적 문양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통해 2007년 이후 언론 등에서 면갑을 “세계 최초의 방탄복”으로 만들기 위해 어울리지 않은 수식어와 특성 및 사료들을 견강부회(牽强附會)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면제갑주가 조선 후기 화기(火器) 운용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포병(砲兵)의 갑옷이었음을 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면제갑주의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Ⅴ.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조선후기 면제갑주(綿製甲冑) 문양에 대한 연구 I: 문양의 분석과 복원을 중심으로』(Lee, Park, & An, 2019)에 대한 후속 연구이다. I편에서 등록문화재 제459호로 지정된 ‘면제갑옷’과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면제갑주(면갑과 그 부속품, 투구 일습)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문양의 배치와 형태를 분석하고 문양을 복원하였다면, II편에서는 면제갑주 유물에 찍혀있는 문양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보고 그 문양이 시사(示唆)하는 바를 밝혔다.

2장에서는 국내 소장된 면갑을 바라보던 그동안의 일반적인 인식을 패배주의 또는 ‘세계 최초의 (과학적인) 방탄복’이라는 신화 만들기로 나누어 살펴보고, 면제갑주의 문양 연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3장에서는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을 옴마니반메훔 문양, 오악진형도 문양, 구성팔문부 문양으로 나누어 문양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의 의미를 종합하여 문양이 시사(示唆)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유해 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 면갑에 대한 국내 학설과 인식을 재고하고,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이 주술적, 미신적 용도보다는 당시 조선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국가적, 군사적, 우주적 문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면제갑주가 조선 후기 화기(火器) 운용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포병(砲兵)의 갑옷이었음을 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본 연구에서 면제갑주에 찍힌 문양에 대해 세부적이고 다각적인 고찰을 시도하였으나, 아직 군사학, 도교, 무속, 천문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구성팔문부의 정확한 의미, 오악문의 배치원리, 이집트의 카르투슈와 유사한 장식 테두리 문양의 의미와 조형성, 면제갑주의 색상 및 염료, 도장 문양을 찍은 재료 및 찍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못하였다. 또한, 면제갑주가 누가 어떤 용도로 착용한 갑옷인지, 포군(砲軍)의 갑옷이라면 어떤 군영에서 착용한 갑옷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후자의 연구문제에 대해서는 영조대의 훈련도감과 어영청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추후 연구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밝혀진다면 우리 시대에 잊혀진 조선후기 천문과 신화학적, 군사적 상징이 담긴 면제갑주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풍성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Note
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번역에 오류가 발견된다. 오악(五嶽)이 ‘오옥(五獄)’으로 잘못 표기되어있다.

Acknowledgments

We would like to thank Curator Donald J. LaRocca (Metropolitan Museum of Art, Department of Armor and Arms), Professor Kyunghee Pyun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Curator Soyoung Lee(Metropolitan Museum of Art, Department of Asian Art) for their extraordinary support for the study of the Fabric Armor and Helmet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llection. We also like to express sincere thanks to Seonghye Kim (Former Vice Director of the Korea Army Museum), Professor Thomas Duvernay (Youngnam University), Librarian Jeonghyo Lee (National Library of Korea, Department of Korean Old and Rare Collection), and Seonkyong Jang for their timely advice and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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