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Current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4 , No. 1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2, pp. 73-97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20
Received 22 Feb 2020 Revised 06 Mar 2020 Accepted 06 Mar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2.073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고찰 : 1950년대에 활동한 명동양장점 디자이너들의 행보와 작품 특성을 중심으로
박신미
국립안동대학교 의류학과 부교수

An Observation on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 Focusing on design characteristics and activities of Myeongdong Yang-jang-jeom(boutique) designers in the 1950S
Shinmi Park
Associate Professor, Dept. of Clothing & Textiles, Andong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Shinmi Park, e-mail: fashion@a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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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discuss the impact and influence of certain first-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who were active in the Myeongdong districts during the 1950s. In order to reach a conclusion, various questions must first be answered. To begin,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that set foot in the Myeongdong district in the 1950s are discussed as well as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work. Secondly, the influence these designers have had on the Korean fashion trends of the mid-20th century and their status in the Myeongdong fashion community are explored. Thirdly, an analysis of Kyung-ja Choi and Nora Noh’s contrast to other designers from the time period and the historical impact their activities had on Korean modern fashion is conducted. Finally, the research deliberates on the ability of these designers, who were active during the beginning of the post-traditional era, to contribute to the modernization of Korean fashion. Dong-sik Han, Song-juk Oh, and Myeing-eon Shim were the first to enter the Myeongdong district, which eventually made it the center of modern Korean fashion alongside Kyung-ja Choi. Su-yeon Seo’s Arisa Yangjangjeom presented designs featuring simple cuts, and Dong-sik Han’s Han Yangjangjeom put an emphasis on high quality, classic styles. Song-juk Oh and Myeing-eon Shim’s Song-ok Yangjangjeom provided their employees with outstanding benefits. While Kyung-hee Kim’s Mademoiselle focused on designs which accentuated women’s beauty trends, Jong-cheon Lee’s Salon de Mode focused on making durable, personalized clothing. After a thorough discussion of research, the researcher concludes that the fashion designers that settled in the Myeongdong district transitioned Korean fashion, which was limited to copying western styles prior to the Korean war, into the designer fashion era. Referred to as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fashion designers, they revolutionized Korean women’s fashion from the 1950s through the mid-1960s.


Keywords: first-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history of Korean modern fashion, the 1950s Korean fashion, the 1950s Myeongdong fashion boutique and designer
키워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한국 근현대패션사, 1950년대 한국 패션, 1950년대 명동양장점과 디자이너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원류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한국 패션의 직접적 탈전통화기인 1950년대 명동양장점 디자이너들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선행연구가 있는 최경자와 노라노의 연구만으로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주요사건들이 모두 추출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선행연구 자료들 역시 당대에 함께 활동한 디자이너들의 고찰을 통해 재검증되어야만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Arko Arts Archive [AAA], 2013; Lee & Soh, 2016; Park, 2014a; Park, 2014b; Park, 2017; Park, 2019). 예를 들어 한국 최초의 패션쇼는 1956년 10월 개최된 노라노의 패션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디자이너가 기획한 개인 패션쇼이며, 그 이전인 1934년에는 ‘조선직업부인회’ 주최의 『여의 감상회』가, 1956년 5월에는 ‘서라벌양장학원’이 주최한 코스튬 쇼가 동화백화점에서 열렸다(Lee & Park, 2011; Yoo, 2010; 100 years of Modern Fashion Compilation Committee, 2002). 노라노 역시 1956년 첫 컬렉션 이전 이미 미국 NBC TV의 요청으로 『전쟁에도 문화가 있다』라는 주제로 1953년에 미니 패션쇼를 개최하였다(Park, 2014a). 기성복 디자이너 패션쇼의 경우는 1963년 11월 1일 노라노의 단독 컬렉션이, 11월 2일에는 최경자가 이끄는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의 연합 패션쇼가 유사한 시기에 열린다(Park, 2019). 그러므로 디자이너의 단독 컬렉션, 디자이너들의 그룹 연합 쇼, 기관 주관 초청 쇼, 정부 지원 행사 쇼 등 패션쇼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최초의 기준은 재규정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브랜드를 영속시키며 한국 근현대패션사에 족적을 남긴 최경자와 노라노의 행보가 20세기 중반 한국 패션사에서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추가 연구 없이 이들이 20세기 중반의 한국 패션트렌드를 정립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최경자, 노라노와 함께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는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정확한 사적 고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구과제이다.

2. 연구 목적 및 방법

본 연구의 목적은 1950년대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와 작품 특성을고찰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을 추출하는 데 있다. 연구 목적 달성을 위한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50년대 명동 패션계의 동향은 어떠하였으며, 이 시기 활동한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은 누구인가이다. 둘째는 195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와 디자이너들의 작품 특성은 어떻게 분석되는가이다. 셋째는 제1세대 한국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1950년대 패션스타일은 무엇인가이다. 넷째는 195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에서 나타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은 무엇인가이다.

본고의 연구 방법은 문헌연구와 내용분석이다. 본 연구는 앞서 제시한 연구 문제 해결을 위해 1955년 11월호부터 1959년 12월호까지의 『여원(女苑)』 잡지에 수록된 패션화보와 패션칼럼 총 134점을 추출하여 이를 디자이너별, 카테고리별로 1차 분류하고, 이 자료들을 근거로 추가로 수집한 신문매체자료 147점을 『여원』 자료와 함께 분석하여 1950년대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행보와 디자인 특성들을 밝혀내려 한다. 본 연구에서는 명동양장점 디자이너 중 이미 선행연구가 진행된 최경자와 노라노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나, 본고에서 새롭게 추출된 제1세대 디자이너들의 행보가 최경자, 노라노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선행연구에서 분석되지 않은 미공개 자료에 국한하여 이를 내용분석 대상에 포함한다. 본고는 최고 66년 이상 된 자료를 분석함에 있어 원전 내용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하므로 직접인용 시는 띄어쓰기와 국문법 전체를 원전 표기법에 근거하여 기술하며, 간접 인용 시에도 주요 단어는 원전에 근거하여 표기한다. 또한 참고문헌 작성 시에도 영문 번역과 원전을 병기하며, 그림 제목의 경우는 원전에 제시된 제목이 있는 경우는 ‘『』’ 기호 안에 제목을 삽입하고 연구자가 분석을 통해 추출한 제목의 경우에는 ‘『』’ 기호를 넣지 않는다. 더불어 원전에서 누락된 문장 부호나 오타는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 기호 안에 누락 및 수정된 내용을 삽입한다.


Ⅱ. 1950년대 명동 거리의 동향과 명동양장점 고찰

6.25 전쟁 이후 명동은 전쟁 이전 충무로와 종로의 명성을 이어받은 최신 트렌드의 생산지이자 문화거점이 되었다. 1954년 문을 연 미도파백화점(현. 명동 롯데백화점 영프라자) 앞 전차가 다니던 길을 건너 명동 초입부터 (구)수도극장에 이르는 길 그리고 충무로 태극당까지의 거리는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의 유일한 산책로였고, 이곳은 다른 골목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타일의 거리였다(Lim, 1985). 전쟁 이전 종로와 광교 등지에서 영업하던 양장점들은 이 시기 명동으로 그 거점을 옮기며 양장점 전성시대의 문을 연다(Heo, 1995g). 한두해씩 지난 일본 양재지 『드레스메이킹(Dreesmaking)』과 『소잉(Sewing)』, 더불어 해외 시찰을 다녀온 극소수의 디자이너들 혹은 미군과 외교관 부인들이 국외에서 들여온 미국 『보그(Vogue)』와 프랑스 『엘르(Elle)』 같은 패션잡지가 정보의 전부였던 1950년대에 디자이너들은 양단, 뉴똥 등의 한복감과 밀수된 고급 수입 소재, 개발이 막 시작된 한국 섬유회사들의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다(Heo, 1995c; Heo, 1995e; Heo, 1995f). 당시 명동의 양장점은 디자인의 본질적 개념을 인식하고 해외의 트렌드가 반영된 한국적 양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디자이너 양장점과 함께 이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혹은 미군 부인들이 『보그』지를 오려와 슈트나 드레스의 제작을 요청하면 이를 그대로 카피해주는 서로 다른 속성의 양장점들이 혼재해 있었다(La Mode designer, 1966).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5년 11월 이후 『여원』지가 정기적으로 명동 트렌드를 주도한 양장점들의 작품을 패션화보로 소개하면서 대중들은 해외 트렌드가 반영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경험 할 수 있게 된다.

명동이 패션의 거리가 된 것은 1950년대부터 정착한 양장점과 미용실을 필두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용 및 양재 관련 학원들이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명한 미용실은 신신백화점 내의 ‘신신미용실’, ‘스완’, ‘포라미용실’이며 임형선 원장이 운영하는 미용학원이 유명했다(Heo, 1995d). 또한 1961년 2월 개원한 최경자의 ‘国際服裝学院’은 스타일화 과정을 개설하고 프랑스 유학파 김종화 화백을 강사로 초빙하여 차별화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내디자이너 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Choi, 1981; Heo, 1995e). 6.25 전쟁 이후 미망인이 된 부인들은 직업이 필요하였고, 9개월 과정의 학원 수료 후 바로 취직이 가능한 양재사는 이들에게 적합한 직업군이었다(100 story travel of Jung-gu, 2016). 대부분 양장점 디자이너들에 의해 운영된 양재학원의 과정은 아동복, 부인복, 하복의 기본 재단과 재봉을 배우는 ‘본과’, 동복과 외투를 학습하는 ‘연구과’ 그리고 재단사를 양성하는 심화과정인 ‘재단과’로 세분되어 있었으며, 각 단계의 수료 여부에 따라 변두리에 매장을 개업하거나 기존 양장점에 적당한 직급으로 취직이 가능하였다(100 story travel of Jung-gu, 2016). ‘○○양장점’이라는 상호를 내걸던 1950년대 양장점의 풍경은 변두리 한복점과 다르지 않았으며, 매장 안은 재봉틀과 재단대가 놓여있었고 옷감은 벽에 걸려 있었다(Heo, 1995g). 가장 큰 규모의 ‘송옥洋裝店’을 필두로 명동 거리 큰길 양쪽으로 ‘엘레제양장점’, ‘키티양장점’, ‘루크양장점’, ‘파리양장점’, ‘노블양장점’ 등 외래어 이름의 양장점들이 자리 잡았고 명동은 곧 양장점의 거리로 명명되었다(Lim, 1985). 외래어의 상호는 이 시기 해외 스타일을 수용한 양장점들의 방향성이었고, 양장점의 수는 1960년대까지 급격히 늘어난다.

전쟁 이후 황폐해진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1950년대 명동의 스타일에는 세계의 트렌드가 담겨있었고, 명동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스타일 가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재건되지 않은 건물과 고급 세단 승용차 사이에 서 있는 한복을 입은 여인과 플라워패턴의 칼리지 룩 드레스를 착용한 여성이 보이는 <Fig. 1>, 한복 혹은 양장 착장에 양산을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의 모습인 <Fig. 2> 그리고 아카데미 극장의 광고판과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반된 취향을 담아낸 <Fig. 3>은 과거의 스타일과 다가올 미래의 스타일이 공존된 1950년대 명동과 그 주변 거리의 모습이다. 마산에서 ‘구렛빠’ 혹은 ‘사지’로 불리는 국산품 모직 양복지가 생산되자 「구렛빠 코트」을 입은 『목마와 숙녀(1955)』의 시인 박인환의 스타일을 추종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예술인들의 모습은 명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Heo, 1995a). 이 시기 명동은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로 멋을 낸 남성과 모피코트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이 활보한 스타일 리더들의 집합소였다<Fig. 4, 5>. 작고한 제1세대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의 사진 <Fig. 5> 속 여인의 모습은 그 뒤편에 위치한 반도호텔 쇼윈도에 보이는 DC-7C 여객기 포스터와 일체화된다. 평론가 이영준은 사진 속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을 볼 때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도 이 여인이 밍크코트를 착용한 것은 DC-7C에 비견될 속도라는 차원의 밍크가 상징하는 기호를 알고 있었거나 낭비를 할 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Lee, 2014). 제트여객기가 상용화되기 전 프로펠러 여객기를 내세운 해외여행 광고와 멋진 여인의 스타일은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초현실적으로 인식되나, 이는 1950년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실례로 디자이너 노라노 역시 1956년 사발 비행기를 타고 파리 연수에 올라 프랑스의 트렌드를 습득하였고 1957년 귀국 후 자신의 첫 패션쇼를 개최한다(AAA, 2013). 1950년대 명동의 스타일은 경제적인 잣대로 계산된 사회적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 명동에는 세계의 트렌드가 반영된 스타일이 있었고 이곳에는 문인, 예술가 등의 문화계 선구자들과 함께 양장점 오너로 활동하며 해외의 스타일을 확산시키고 디자이너로 발돋움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양장점 전성시대를 시작으로 명동은 20세기 한국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Fig. 1> 
Meongdong, Seoul, 1958, Young-soo Han (Han Youngsoo Foundation [HYF], 2014, p. 27)


<Fig. 2> 
Meongdong, Seoul, 1958, Young-soo Han (HYF, 2014, p. 25)


<Fig. 3> 
Academy Theatre, Taepyeong-ro, Seoul, 1959, Young-soo Han (HYF, 2014, p. 67)


<Fig. 4> 
Meongdong, Seoul, 1956-63, Young-soo Han (HYF, 2014, p. 37)


<Fig. 5> 
Bando hotel, Euljiro 1-ga, Seoul, 1956-63, Young-soo Han (HYF, 2014, p. 29)


Ⅲ. 195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 및 디자인 특성 분석
1. 1950년대에 활동한 명동양장점 디자이너 분석
1) 한동식의 ‘한양장점’; 탁월한 재단과 바느질로 완성된 클래식 스타일과 TPO의 제안

6.25 전쟁 이후 명동에 가장 먼저 ‘한양장점’을 오픈한 한동식은 탁월한 재단 능력과 바느질 솜씨로 완성도 높은 클래식 스타일을 구현해낸 디자이너이다. 꼼꼼한 바느질과 재단으로 유명한 ‘한양장점’은 『장원』, 『드레스메이킹』과 같은 일본 잡지를 복제하던 명동의 거리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옷을 만들며 고객들에게 인정받는다(Heo, 1995c; Heo, 1995g). 당시 명동의 고급 맞춤복 시세는 소재와 공임을 포함하여 1만2천 환~1만5천 환 정도였으나 최고급 영국산 오버코트 한 벌 값보다 더 비싼 공임에도 ‘한양장점’을 찾는 고객들은 끊이지 않았다(Heo, 1995c). ‘한양장점’에서 견습생시절부터 40년 동안 근무한 김약수 재단사가 1980년 초 기성복체계 구축을 위한 연령별·체형별 우리나라 표준체형치수 정립을 주도한 것도 이러한 완벽함을 추구하는 ‘한양장점’의 철학을 습득한 결과이다(Textile as a food, 1999).

‘옷을 잘 만드는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실용적이고 젊은 스타일을 제안하며 명동 거리에서 입지를 다진 ‘한양장점’의 주요 고객층은 직장여성과 학생이다. 한동식은 고객의 TPO(time, place, occasion)를 고려하여 외출복, 홈드레스, 방문복으로 스타일을 세분화하여 디자인을 제시한다(Beautiful scene, 1956). 몸에 잘 맞는 실루엣을 중시한 한동식은 디테일과 트리밍을 활용하여 단조로운 디자인에 고급스러움을 담아낸다. 1956년 작품인 <Fig. 6, 7, 8>이 대표적인 사례로 <Fig. 6> 홈드레스는 연한 핑크 블라우스에 광택이 있는 골덴 원단으로 제작된 브라운 컬러 스커트 착장으로 가정에서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한동식은 허리 부분에는 두 개의 버튼으로 여밈을 만들고 솔리드 원단과 텍스츄어가 있는 원단을 매치하여 상의와 하의를 구분하였고 입고 벗기 편하게 스커트 옆면에 슬릿을 넣어 디자인의 기능성을 살렸다. <Fig. 7> 외출복은 블라우스와 옐로우 컬러 스커트 착장의 투피스로 오버 코트를 벗고도 간단히 외출이 가능한 디자인이며 보우 스카프와 컬러 버튼으로 포인트를 준 것이다. 또한 방문복인 <Fig. 8>은 채도가 낮은 펄시먼 브라운(persimmon brown) 컬러의 얇은 모직으로 제작된 방문용 플레어드 드레스로 밝은 컬러의 버튼을 소매, 앞여밈, 주머니에 달아 디자인의 견고성을 강조하고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한동식은 한국의 좌식 생활 문화를 고려하여 초대를 받았을 때 방석에 앉는 상황에 불편함이 없도록 스커트의 폭을 넓게 하여 디자인에 기능성을 담아낸다. 또한 연한 청색의 모던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Fig. 9>와 카멜 컬러의 빅 오버 롤 슬리브 오버 코트인 <Fig. 10>은 모두 래글런 소매로 디자인된 것이고 여유로운 뒤품에 밴드를 넣어 실용성을 살린 작품들이다. 개별 고객의 스타일과 TPO를 고려한 디자인을 제안한 한동식은 해외 스타일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며 간결함이 만들어낸 고급스러운 클래식 스타일로 패션계에서 인정받았다.


<Fig. 6> 
『Home dress』, 1956, Dong-sik Han (Beautiful scene, 1956, p. 20)


<Fig. 7> 
『Town wear』, 1956, Dong-sik Han (Beautiful scene, 1956, p. 20)


<Fig. 8> 
『Visiting wear』, 1956, Dong-sik Han (Beautiful scene, 1956, p. 20)


<Fig. 9> 
Light blue over coat, 1956, Dong-sik Han (Beautiful scene, 1956, p. 21)


<Fig. 10> 
Camel over coat, 1956, Dong-sik Han (Beautiful scene, 1956, p. 21)

2) 오송죽과 심명언의 ‘송옥양장점’; 폭 넓은 디자인 제안과 직원들의 복지시스템 구축

1940년 오송죽과 심명언 부부가 종로에 개점한 ‘송옥양장점’은 6.25 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영업하였고 전쟁 이후 명동2가 51의 2번지에 자리 잡아 8억 원의 부도를 내고 파산한 1979년까지 명동을 지킨 명동양장점 거리의 상징이다(Heo, 1995b; Myeongdong ‘Song-ok Yangjangjeom’ bankruptcy, 1979; Pilgrimage of 「new face」, 1968). ‘송옥의 신용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오송죽과 심명언은 직원교육을 정례화하고 경쟁이 치열한 명동 양장계에서 최고의 재단사를 확보하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의 식비와 교통비를 매일 지급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직원복지시스템을 구축하였다(Pilgrimage of the 「new face」, 1968). 명동양장점 거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사업을 펼친 ‘송옥양장점’의 강점은 일류기술진, 풍부한 원단, 친절한 서비스, 신용 있는 제품 서비스이다(Pilgrimage of 「the new face」, 1968). <Fig. 11>은 명동 중심부에 자리 잡은 ‘송옥양장점’의 전경으로 마네킹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1953년 S/S 컬렉션에서 영향을 받은 튤립라인 슈트, 드레스 그리고 여아용 로브가 진열되어 있고 마네킹 뒤에는 원단들이 걸려있다. <Fig. 12>의 양장점 앞에 서있는 여성은 무늬가 도드라지지 않은 칼리지 룩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으며, 쇼윈도의 옆면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꽃무늬 원단과 도트 무늬 원단이 진열되어 있다. <Fig. 13>은 ‘송옥양장점’의 전면부 사진으로 양옆의 쇼윈도우에는 칼리지 룩 드레스가, 중앙의 메인 윈도우에는 튤립라인 투피스와 드레스가 진열되어 있다. 쇼윈도에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원단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이 큰 매장 운영으로 고객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송옥양장점’의 경쟁력이다.


<Fig. 11> 
‘Song-ok Yangjangjeom’, Meongdong, Seoul, 1956-63, Young-soo Han (HYF, 2014, p. 160)


<Fig. 12> 
‘Song-ok Yangjangjeom’, Meongdong, Seoul, 1956-63, Young-soo Han (HYF, 2014, p. 56)


<Fig. 13> 
‘Song-ok Yangjangjeom’, Meongdong, Seoul, 1956-63, Young-soo Han (HYF, 2014, p. 151)

원단에 무늬가 있어도 ‘송옥양장점’의 디자인은 간결한 세련미로 난잡한 패턴에 정리되지 않은 시장의 옷들과는 차이가 있었다(Lee, 2014). 오송죽은 1958년 5월 『여름철 원피-스』 칼럼을 통해 소재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1958년 칼리지 룩 드레스와 타이트 드레스 스타일을 설명한다(Summer one-piece, 1958). 오송죽이 체형과 연령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고 칼라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제시한 <Fig. 14> 플레어드 드레스는 1950년대 미국 여대생들에게 유행한 칼리지 룩 드레스이다. 이 디자인은 국산 포럴(poral)이나 모직으로 제작을 원하면 1만 8천 환이고 무명 포프린을 선택하면 7천 환에서 1만 환 정도이다(Summer one-piece, 1958). <Fig. 15>는 외출용으로 디자인된 간결함이 돋보이는 드레스이며, 국산 포럴이나 모직으로 제작한 것이 1만 4천 환에서 1만 7천 환이며 타이트 스타일이므로 무명으로는 제작할 수 없다고 오송죽은 설명한다(Summer one-piece, 1958). 고객의 취향에 맞는 폭넓은 디자인을 제안한 오송죽과 심명언은 동네 의상실 수준의 양장점에서 탈피하여 체계적인 시스템 정립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명동양장점의 디자이너 부티크 전환에 기여한다.


<Fig. 14> 
Flared college dress, 1958, Song-juk Oh (Summer one-piece, 1958, p. 4)


<Fig. 15> 
Modified college dress, 1958, Song-juk Oh (Summer one-piece, 1958, p. 4)

3) 서수연의 ‘아리사양장점’; 간결한 재단이 돋보이는 실용적 스타일 제안과 대비의 활용

결혼 직후 아들을 낳고 홀로된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은 1940년 23세의 나이에 ‘일본문화복식학원’에서 유학한 후 여학교에서 6년간 교사로 교편을 잡았고 1955년 명동에 진출한다(Heo, 1995c; Su-yeon Seo, elder fashion designer, 1983). 명동입성 이후 서수연은 최경자와 함께 명동양장점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1958년 9월에는 개인자격으로 水災義捐金品에 의상 30점을 기탁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Donation of flood emergency relief goods, 1958). 서수연의 ‘아리사양장점’은 1964년 양장점 폐업을 결정하기 전 10여 년 동안 명동 5대 양장점의 하나로 평가된다(Heo, 1995c; Su-yeon Seo, elder fashion designer, 1983). 사업종료 후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1965년 다시 귀국한 서수연은 유네스코 빌딩에 ‘「아리사」복식연구소’를 개설하고 이후 4년 동안 후학을 양성한다(Heo, 1995f; Western dressmaking seminar, 1966). 또한 복식연구소 활동기인 1968년에는 6개월 동안 유럽을 시찰하고 파리에 있는 양재학교 ‘시디컬파리잰느’와 제휴하여 연구생들의 프랑스 유학을 위한 초석을 다지며 교육 사업에 집중한다(Post, 1968). 이후 1970년 아들이 거주하는 독일로 건너가 13년 동안 머물며 패션계와 거리를 두는 듯 보였으나 서수연은 60세가 넘은 나이에 아우크스부르크대학에서 직물공부를 하고 원단을 봉제하여 화폭에 담아 헝겊그림 영역을 개척하며 텍스타일 아티스트로서도 감각을 인정받는다(Heo, 1995f; Su-yeon Seo, elder fashion designer, 1983). 1983년 귀국한 서수연은 76세의 나이로 20세 초반을 타깃으로 론칭한 여성브랜드 ‘꼼뻬당’의 고문을 맡으며 활동을 재개한다(Heo, 1995f).

간결한 재단이 돋보이는 서수연의 디자인은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Fig. 16>은 1958년 명동 ‘아리사양장점’ 매장의 쇼윈도 사진으로 솔리드 원단으로 만들어진 칼리지 룩 드레스가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쇼윈도에는 간결한 서수연의 성격이 반영되어 원단과 작품을 함께 진열한 다른 양장점들과 달리 디자인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다. 서수연은 『여원』 1957년 10월호 패션쇼 소식을 전하며 간결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제안한다. <Fig. 17>은 『새로운 실용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서수연의 웨딩드레스로 디테일과 트리밍을 최소화하고 드레스의 실루엣에 집중하여 간결함이 주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한 것이다(New practical garment, 1957). 또한 서수연은 1958년 6월에는 젊은이들의 하이킹을 위한 스포츠웨어를 제안하는데, <Fig. 18> 블라우스와 슬랙스를 서수연은 “주니어들에게 어울리는·흑색 스랙스에 부라우스도 대담하게 컷트한 데자인인데 체격이 큰 사람에게도 어울린다”다고 구체적으로 스타일을 분석한다(Early summer hiking wear, 1958. p. 32). 블라우스와 슬랙스로 구성된 디자인의 옷감은 黑-포리 一·五마 가격은 9천환, 白-포리 七分으로 7천 환으로 디자인의 총 가격은 1만 6천 환이다(Early summer hiking wear, 1958). 또한 1959년 10월 최경자와 함께 진행한 『여원』 패션화보 『뉴-모오드』에서도 서수연의 디자인을 볼 수 있다(The new mode, 1959). 서수연의 작품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라인 시리즈 디자인이 함축되어 있는데, <Fig. 19>는 디오르 사후 이브 생 로랑이 1958년 S/S 컬렉션에서 디자인한 ‘트레페즈라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짧은 케이프에 검정 포럴원단으로 제작된 드레스 착장이다. 또한 <Fig. 20>과 <Fig. 21>은 디오르가 1956년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마그넷라인’을 변형시킨 디자인이다. <Fig. 20>은 블루 칼라의 짧은 볼레로와 점퍼스커트 드레스 앙상블로 블루가 연출하는 가을의 멋을 표현한 디자인이다. 반면, <Fig. 21>은 프릴을 중첩한 소매가 특징인 디자인으로 빅 스퀘어 네크라인의 단순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목걸이로 코디네이션 한 스타일이다. 서수연은 간결한 재단과 실루엣을 보완하기 위해 컬러의 대비와 원 포인트 디테일의 강조를 통해 자신만의 디자인 특성을 구축한다.


<Fig. 16> 
‘Arisa Yangjangjeom’, Meongdong, Seoul, 1958, Young-soo Han (HYF, 2014, p. 55)


<Fig. 17> 
Wedding dress, 1957, Su-yeon Seo (New practical garment, 1957, p. not mentioned)


<Fig. 18> 
Blouse & slacks, 1958, Su-yeon Seo (Early summer hiking wear, 1958, p. 32)


<Fig. 19> 
Tropez dress ensemble, 1959, Su-yeon Seo (The new mode, 1959, p. 14)


<Fig. 20> 
Magnet line dress ensemble, 1959, Su-yeon Seo (The new mode, 1959, p. 15)


<Fig. 21> 
Magnet line dress, 1959, Su-yeon Seo (The new mode, 1959, p. 15)

4) 김경희의 ‘마드모아젤’; 선이 아름다운 디자인 개발과 라이프스타일의 개념 전파

명동 입구 미도파 앞 대로변에 위치한 김경희의 ‘마드모아젤’은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이름을 알린 곳으로 1954년 이미 명동에 입성해 있었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Heo, 1995g; Kim, 1957a; Made-Moi-selle, 1954). 김경희는 옷이 라이프스타일의 연장선에 있음을 인식하고 1960년대에는 양장점 이외에 ‘「마드모아젤」 실내 장식연구소’를 운영하여 전문가와 일반인을 위한 강습회와 바자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다(「Bazaar」for baby, 1965; News, 1964). 강좌에서는 장식용 마네킹, 벽장식, 세계 각국의 인형, 액세서리, 자수, 화단손질, 벽걸이 장식, 어린이들을 위한 소품들 등의 제작 방법과 트렌드가 소개되었다(「Bazaar」 for baby, 1965; News, 1964; Notice, 1966).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알파벳라인에 심취한 김경희는 디테일이 아닌 ‘옷의 선이 품격을 만든다’는 철학을 가지고 우리 체형에 맞는 라인과 선의 미를 찾기 위해 연구한다. 김경희는 1957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디올」이 「알파벳트」를 象徵시켜 선을創造하는 壓倒的이며 그의 魔術師와 같은 獨創적인 線의 흐름에는 머리가 수그려집니다”라고 설명한다(Kim, 1957a, p. 4). 하지만 의복은 생활과 직결된 것으로 프랑스와 미국의 실정이 우리와 다르므로 한국인을 위한 한국화된 스타일 개발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해외 스타일의 수용과 한국적 콘텐츠의 융화를 강조한다(Kim, 1957a). <Fig. 22>는 김경희의 이러한 철학이 반영된 디자인으로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1957년 F/W 컬렉션에서 제안한 H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에 한국적 콘텐츠인 색동을 적용한 것이다. 간결한 드레스의 실루엣은 색동 컬러 배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카프와 매치되어 실루엣의 지루함을 선의 배열로 극복한 사례이다. <Fig. 22>와 같이 해외의 트렌드를 적용한 한국적 디자인 탐구에 김경희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살펴보면 실제로 김경희가 디자인의 감각을 인정받은 것은 1958년 F/W 컬렉션 이후로 나타난다(Lee, 1958e)


<Fig. 22> 
H-line dress & Saek-dong color scarf, 1957 S/S, Kyung-hee Kim (Kim, 1957a, p. 4)

김경희는 양장점의 브랜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광고를 게재하는데, <Fig. 23>은 1954년 경향신문에 실린 광고로 서울 소공동 삼화빌딩에 위치한 고급 양장점 「마더모와젤」을 소개하고 있으며 광고에는 김경희가 책임 디자이너로 기재되어 있다(Made-Moi-selle, 1954). 김경희는 1958년에 제일모직과 경향신문의 후원으로 패션쇼를 개최한다. 1958년 11월 25일 오후 1시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김경희 데자인·쇼』에는 여성용 <쓰우 ㅌ(슈트)>, <코오트>, <이브닝·드레쓰>, <웨딩드레쓰>, <하우스·까운>과 남성용 <쓰우 ㅌ>와 <코오트> 등 총 45점의 작품이 발표되었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인 <Fig. 24>의 여성복과 남성복은 모두 가정에서 착용하기 적합한 홈웨어 디자인을 제안한 것이다. 이 중 넓은 타이가 특징인 여성복 블라우스는 공단으로 만들어졌으며, 주름이 많은 맥시스커트는 한복치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반면, <Fig. 24> 오른쪽 뒤편에 보이는 남성복의 경우는 가벼운 밤색 체크 원단에 벨벳으로 칼라를 매치한 로브로 제일모직 원단으로 제작된 것이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클래식 보-이 코오트』인 <Fig. 25>는 클래식한 기본 코트 스타일에 스포티함을 더해 기능성을 살린 것으로 직장여성들을 위한 것이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초창기 창조력의 부재로 혹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디자인 전체 실루엣이 주는 고급스러움을 지속해서 탐구한 김경희는 양장에 한국적 선의 미를 담아내며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한다(Lee, 1958e).


<Fig. 23> 
Advertisement of 『Made-Moi-selle』, 1954 (Made-Moi-selle, 1954, p. 2)


<Fig. 24> 
『Kim, Kyung-hee design show』, 1958 F/W, Kyung-hee Kim (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p. 4)


<Fig. 25> 
『Kim, Kyung-hee design show』, 1958 F/W, Kyung-hee Kim (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p. 4)

5) 이외의 명동양장점 디자이너들: 윤현경의 ‘붜그양장점’, 홍명애의 ‘우리양장점’, 명동 ‘청실양장점’, 최금린의 ‘라·모오드양장점’

1955년 11월 이후 패션화보를 개재한 『여원』잡지의 1955년부터 1959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여원』 이외의 매체자료에서 양장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명동양장점들의 화보가 디자이너들의 설명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들 중 ‘우리양장점’의 홍명애와 디자이너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명동 ‘청실양장점’은 당시 활동하였으나 1960년 이후 브랜드가 영속되지 못한 것으로 사료되며, ‘라·모오드양장점’의 최금린은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작품 이외의 양장점 현황 관련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붜그(Vogue)양장점’의 경우는 1960년대 활발히 활동한 한희도의 ‘보구(Vogue)양장점’과 동일 양장점인지 확인되지는 않으나 1950년대 디자이너는 윤현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Vogue’의 외래어표기법이 ‘붜그’임이 경향신문 『外來語敎室』 기사에서 확인된다(Foreign language class, 1961). 본 절에서는 『여원』 패션화보에 수록된 명동 디자이너들의 작품 특성을 분석한다.

(1) 윤현경의 ‘붜그양장점’: 중년 여성들을 위한 편안한 스타일 개발

『여원』잡지가 패션화보를 시작한지 3개월이 되는 1956년 1월호 『겨울의 모오드』 칼럼에는 ‘붜그양장점’의 윤현경의 작품이 4페이지에 걸쳐 코트 4착장과 슈트 4착장, 총 8착장이 단독으로 소개되어 있다. 윤현경은 화보에 소개된 자신의 디자인을 아래와 같이 상세하게 설명한다<Fig. 26, 27>.


<Fig. 26> 
(left) Paris’s style, (right) No-collar flared coa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18)


<Fig. 27> 
(left) Glen check flared coat, (right) Standing collar flared coa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19)

① 「마지막 본 파리-」에서 얻은 「스타일」그 언니와 같이 청아하고 고상한 분을 위하여 만들어 본 「데자인」. ② 이 「데자인」은 「칼라」가 없는 것으로 점잖고 후대한 부인에게 어울리며 특히 목이 짧으신 분을 위한 「데자인」. ③ 어딘지 여학생 같은 풍을 보이면서도 중년부인까지 입을실 수 있고 입으면 특히 편안한 감을 주는 「데자인」. ④ 높고, 선 「칼라」.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입고 보면 보기 좋고 실증나지 않는 「스타일」(Mode of winter, 1956, pp. 18-19)

<Fig. 26>의 왼쪽 디자인은 윤현경이 파리의 거리에서 본 여인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박스 실루엣 코트이며, 오른쪽 작품은 바이어스 커팅으로 품의 여유를 살린 노칼라 코트이다. <Fig. 27>의 왼쪽 디자인은 젊은 이미지를 연출 할 수 있는 글렌타탄 플레어 코트이며, 오른쪽 작품은 채도가 낮은 스탠딩 칼라 클래식 코트이다. ‘붜그양장점’은 슈트라인에서 클래식 스타일과 이지 클래식 스타일을 모두 선보이고 있는데, <Fig. 28>은 얼룩말 무늬 원단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디자인한 튤립라인 투피스로 블랙 스커트를 방수 소재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Fig. 29>는 Y라인 네이비 클래식 슈트로 다이야地원단으로 만들어진 박스 핏 겨울철 투피스이다. 또한 <Fig. 30>은 칠부 소매가 특징인 블랙 튤립라인 슈트로 3개의 단추로 재킷을 간결하게 마무리하였다. 반면, <Fig. 31>은 활동성을 고려하여 뒤밴드를 만들어 넣은 밝은 옐로우 칼라의 재킷과 채도가 낮은 그린 슬랙스를 매치한 작업복 착장이다. 윤현경은 젊은 계층이 아닌 중년 부인들의 체형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스타일을 제안한다.


<Fig. 28> 
Zebra pattern blouse & black skir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20)


<Fig. 29> 
Winter sui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20)


<Fig. 30> 
Balck sui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21)


<Fig. 31> 
Casual suit, 1956, Hyun-kyung Yoon (Mode of winter, 1956, p. 21)

(2) 홍명애의 ‘우리양장점’: 허리선을 강조한 젊은 여학생들을 위한 디자인 탐구

1957년 4월호 『여원』의 패션화보 『봄철의 홧숀·스타일』 칼럼에는 ‘우리양장점’ 홍명애의 디자인 5착장이 소개되어 있다. <Fig. 32, 33, 35>는 모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튤립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홍명애는 <Fig. 32>를 간결하고 아름다운 외출복, <Fig. 33>을 “교문을 나선 학생의 상큼한 외출복의 「투·피-스」。 별다른 기교가 없으면서 대담한 「칼라」가 생기발랄한 젊은이의 기상을 나타냄。” 그리고 <Fig. 35> 튤립라인 드레스는 “곤색의 「오리온·우리-스」의 감촉이 좋은 「원피-스」....학생복으로 야외복으로 알맞는 의복。”이라고 제안한다(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반면, <Fig. 34> A라인 플레어 드레스는 “ 「다크풍」복지의 「원피-스」。가슴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한 선무늬가 옷 전체를 통한 「포인트」。”인 디자인이라고 설명한다(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또한 ‘우리양장점’은 활동적인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타탄 셔츠와 슬랙스 착장의 활동복도 함께 선보인다<Fig. 36>. 화보에 수록된 홍명애의 작품들은 몸매에 자신이 있는 여대생들을 위한 보디 콘셔스 스타일을 기반으로 디자인에 활동성을 담아낸 것이다.


<Fig. 32> 
Town wear suit, 1957 Myung-ae Hong (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Fig. 33> 
Tulip line suit, 1957 Myung-ae Hong (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Fig. 34> 
Flared dress, 1957, Myung-ae Hong (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Fig. 35> 
Navy dress, 1957, Myung-ae Hong (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Fig. 36> 
Tartan shirt & slacks, 1957, Myung-ae Hong (Spring fashion style, 1957, p. not mentioned)

(3) 명동 ‘청실양장점’: 연령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는 칼리지 룩 드레스 제안

명동 ‘청실양장점’의 화보는 1957년 『여원』 패션화보 6월호 『원피스』 칼럼에 소개되어 있다. 다른 화보들이 양장점명과 디자이너명이 병기된 것과는 달리 ‘청실양장점’의 화보에는 디자이너 이름 병기없이 ‘청실양장점’이 명동에 위치한다는 것이 표기되어 있다. 이 시기의 유행을 반영하듯 ‘청실양장점’에서 선보인 스타일은 미국 여대생들에게 유행한 칼리지 룩 드레스이다. <Fig. 37>은 검정 칼리지 룩 드레스의 기본형이며, <Fig. 38>은 이를 변형한 슬리브리스 플레어드 스타일로 앞은 하이 보트 네크라인, 뒤는 V네크라인으로 디자인의 다변화를 시도한 작품으로 젊은 계층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중년부인까지도 소화 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One-piece, 1957).


<Fig. 37> 
Flared dress, 1957, Cheong-sil Yangjangjeom (One-piece, 1957, p. not mentioned)


<Fig. 38> 
Sleeveless A-line dress, 1957, Cheong-sil Yangjangjeom (One-piece, 1957, p. not mentioned)

(4) 최금린의 ‘라·모오드양장점’: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디자인이 만들어낸 우아미 완성

‘라·모오드양장점’는 해방된 해에 몇몇 부유층들이 입은 날씬한 양장의 모습에 반해 패션계에 입문한 최금린이 서울 명동 2가 25의 27번지에 오픈한 양장점으로, 매체자료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활동이 보이나 1960년대 초 패션계에서 주목 받는다(La Mode Designer, 1966). 최금린의 1950년대 작품은 1959년 12월 최경자와 공동으로 진행한 『윈터·해즈·컴』 ‘올겨울의 오버 코오트’ 화보에 2착장의 코트가 디자인 설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Winter has come, 1959). 양장과 한복 모두에 착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Fig. 39>는 새끼 양털 아스트라칸(astrakhan)의 풍성함을 살려내고 빅 칼라를 활용하여 목선의 뒤와 옆을 드러나게 한 팔부 소매의 박스코트이다. 또한 <Fig. 40>은 당시 남성용 코트로 인식되었던 트렌치코트를 여성용으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심라인의 스티치와 넓게 접힌 소매 부분이 특징이다. 최금린은 부분적으로 과감한 변형을 시도하면서도 섬세한 실루엣의 선을 살려내어 우아한 디자인을 완성한다.


<Fig. 39> 
Over collar coat, 1959, Keum-rin Choi (Winter has come, 1959, p. 19)


<Fig. 40> 
Trench coat, 1959, Keum-rin Choi (Winter has come, 1959, p. 21)

2.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패션스타일을 제안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본 절에서는 1절에서 이미 분석된 디자이너들과 더불어 작품 화보와 브랜드 성장과정이 매체자료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신문매체와 『여원』잡지에 기고문을 개진한 명동양장점 디자이너들을 추출하고 이들이 제안하는 1950년대 중·후반의 한국 패션트렌드와 스타일을 고찰한다.

1) 1955년: 크로오버양장점 문신덕, ‘칼리지 스타일’

‘크로오버양장점’의 문신덕은 1955년 10월호 『여원』지에 『스마-트한 가을외출복』 5착장을 컬렉션 드로잉, 제작용 패턴과 함께 소개하며 유행 스타일을 제안한다(Moon, 1955). 문신덕이 추천한 스타일을 분석해보면, <Fig. 41>은 블라우스형 재킷과 플레어드 스커트 착장의 기본 외출복 스타일로 취향에 따라 타이트 스커트와 매치 할 수 있고 그레이 바닥지에 레드 도트 무늬가 프린트된 원단으로 만들면 명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Fig. 42>는 소매 폭에 여유가 있는 재킷과 플레어드 스커트 착장으로 간단한 외출이나 여행을 위해 적합한 디자인으로 핑크 혹은 하늘색 원단으로 만들면 좋은 스타일이다. 또한 <Fig. 43>은 오렌지 컬러 점퍼블라우스에 코오드로이(corduroy) 소재로 만든 플레어드 스커트의 매치를 제안한 것으로 꾸미지 않고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 할 수 있는 20대 젊은이들을 위한 디자인이다.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을 재현한 플레어드 드레스인 <Fig. 44>는 둥근 칼라와 쁘띠 타이로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한 디자인으로, 문신덕은 간단한 방문복 혹은 피크닉 정도의 자유로운 분위기의 외출복으로 적합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한다(Moon, 1955). 반면, <Fig. 45>는 직장에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과 학교에 등교하는 여학생들을 위한 스타일로 플레드(plaid) 무늬 원단이나 방수 소재 혹은 구김이 가지 않은 모직으로 만들면 좋은 디자인이다.


<Fig. 41> 
Blouse & skirt, 1955, Shin-duck Moon (Moon, 1955, p. 96)


<Fig. 42> 
Dolman Jacket & Skirt, 1955, Shin-duck Moon (Moon, 1955, p. 96)


<Fig. 43> 
College style, 1955, Shin-duck Moon (Moon, 1955, p. 96)


<Fig. 44> 
Round collar dress, 1955, Shin-duck Moon (Moon, 1955, p. 97)


<Fig. 45> 
Sailor collar blouse & tight skirts, 1955, Shin-duck Moon (Moon, 1955, p. 97)

2) 1956년: 춘추양재전문학원 최만실, ‘체형에 적합한 스타일’

1956년 2월호 『여원』 칼럼에서 춘추양재전문학 원장인 최만실은 유행 스타일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체형을 파악하여 올바른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체형별로 적합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최만실은 체형을 네가지로 분류하여 스타일을 소개하는데 ① ‘가늘고 키가 작은 사람’은 핑크, 연한 물색 황색과 같은 옅은 색의 플레어드 원피스가, ② ‘가늘고 키가 큰 사람’은 사선 무늬에 「후랄드·카라」, 「로웨스트」, 큰 포켓의 전체적으로 여유가 있는 스타일이, ③ ‘뚱뚱하고 키 작은 사람’은 「투피쓰」보다 「원피-쓰」가 좋고 세로 줄 무늬가 잘 어울리며 색은 짙은 침착한 색깔이, ④ ‘뚱뚱하고 키 큰 사람’은 감색, 검정, 짙은 자색, 「그린」이 좋으며 과감한 스타일을 세로 줄 무늬가 시원하게 보이도록 하고 타이트 스커트의 스케일이 있는 강한 「데자인」이 적합하다고 설명한다(Choi, 1956). <Fig. 46>의 첫 번째 착장인 가늘고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한 스타일은 오드리 햅번에게 영감을 받은 미디길이의 플레어드 드레스이며, 두 번째 착장인 가늘고 키가 큰 사람을 위한 스타일은 사선 패턴의 원단으로 제작된 튤립라인 슈트이다. <Fig. 46>의 세 번째 착장인 뚱뚱하고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한 스타일은 셔츠웨이스트 드레스, 네 번째 착장인 뚱뚱하고 키가 큰 사람을 위한 스타일은 코트 드레스가 제안된다. 최만실은 칼럼에서 각각의 사례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체형에 적합한 소재와 컬러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Fig. 46> 
『What style are you?』, 1956, Man-sil Choi (Choi, 1956, pp. 260-261)

3) 1957년: 마드모아젤 김경희,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스타일’_노라노의 집 노라노와 살롱 드 모드 이종천, ‘해외 트렌드와 한국 스타일의 조화’

1957년에 접어들면서 디자이너들이 제안하는 트렌드 기사들이 늘어난다. 1957년 3월과 6월 경향신문에는 ‘마드모아젤’ 김경희가 <Fig. 47, 48>과 같이 드로잉을 제시하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알파벳라인이 전 세계적인 유행이라고 설명하는 기고문이 실려 있다. 김경희는 1957년 S/S 트렌드를 네 가지 스타일로 구분 해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① ‘이브닝 드레스’에서는 도트 무늬 원단의 플레어드 스커트에 검정 벨트를 「맨 빠넬 스타일」과 강한 색 원단으로 앞가슴이 전면적으로 돌출되는 곳을 강조한 탑 포인트 「롱 후레아드레스」를, ② ‘주니어스타일’은 꽃무늬 칼리지 룩에 귀여운 느낌을 주는 짧은 재킷을, ③ 「아푸타눈·드레쓰」는 가슴이 없는 분들을 위해 어깨선부터 주름을 주어 강조한 「푸린세스스타일」 ④ ‘직장 여성들을 위한 스타일’은 뒤 오픈형 슬리브리스 박스 상의와 스트레이트 스커트 착장의 튜닉 드레스를 제안 한 것이다(Kim, 1957b).


<Fig. 47> 
Christian Dior’s ‘alphabet line’, 1957 S/S, Kyung-hee Kim (Kim, 1957a, p. 4)


<Fig. 48> 
『Several summer western clothes』, 1957 S/S, Kyung-hee Kim (Kim, 1957b, p. 4)

‘노라노의 집’ 노라노는 유행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서구 스타일을 추종하여 복제하는 것이 한국양장계의 문제임을 지적하며 1957년 F/W에는 ‘하이웨이스트 노 벨트 드레스’와 여유가 있는 ‘플레어드 코트’가 유행할 것이라고 아래와 같이 전망한다.

「금년」도 「유행」의 특징은 「하이웨스트」 「벨트」가 없는 「원피-쓰」가는 「벨트」에 상의(上衣)가 짧은 「스-쓰」 「스프링코-트」대신에 「타이트 스카-트」에 복수형의 팔부(八分) 「코-트」이러한 것이 가을까지 「유행」된중 가장 눈에 띄우는 변화라고 하겠읍니다。 앞으로 닥칠 「오바 코-트」계절에는 작년도의 복스형에 비하여 금년도에는 약간 풍신한 감을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행」이라고 봅니다。 이번 가을에 「파리」에서 최고힛트를 본 「오바코-트」는 뒷판 전체에 물결같이 「두레이푸」(주름)된 것이었읍니다。 제일텔라선에서 벗어나기 어렵던 「오바코-트」에까지도 부드럽고 「에레간트」한 선이 가미된 것은 앞으로 입었다는 것보다는 걸쳤다는 감으로 「유행」이 흐르고 있는 상징이라 하겠읍니다。 (Noh, 1957, p. 189).

뛰어난 컬렉션드로잉과 글 솜씨로 유명한 ‘살롱드 모드’의 이종천은 작품 보다 스타일화와 기고문이 더 많이 남아있는 디자이너이다. 1957년 12월 기고한 『韓国流行全史』에서 이종천은 한국 디자인의 문제점이 해외의 스타일을 올바르게 분석하지 않은 채 겉모습만을 카피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노라노와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세계의 유행은 물론 「파리코렉숀」에서 흐르고 있으며 최근에는 「크리스챤디올」의 「싯틀라인」이나 「가루당」의 「가께나와(かけなわ)라인」등 여러가지 경향으로 개성적인 흐름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유행들을 재빨리 사용하기는어려운일이나 「아울라인」만은 알고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같이 특성적인것이 세계 「모-드」를 「리-드」하고 있음은 말할것도 없으나 그 작품들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유행 「모-드」를 창작할 수도 있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모-드」를 가장 적당한 「데자인」으로 고안하여 작성해야 할것은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서양의 「드레스」를 흉내내는 것이나 서양인의 풍습대로 따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며 일상생활의 상태를 고려하여서 한국인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양재의 「데자인」을 영(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Lee, 1957, p. 194).

이종천은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1957년 F/W 마지막 컬렉션에서 발표한 방추형 코트의 실루엣인 ‘스핀들라인(spindle line)’과 피에르 가르뎅의 ‘루프라인(rope line)’이 국내외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디자이너들이 해당 라인을 명확히 분석하지 못하고 외형만을 복제한 결과 착용과 디자인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종천은 해외의 트렌드는 본질적으로 정확한 스타일 분석 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재해석 되는 것이 의상계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4) 1958년: 살롱 드 모드 이종천,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피에르 가르뎅 스타일’, ‘인상에 맞는 스타일’, ‘여학생들을 위한 스타일’_아리사양장점 서수연, ‘올바른 스타일과 아이템 구입 방법’

‘살롱 드 모드’ 이종천은 1958년 2월, 4월, 6월, 10월 4차례에 걸쳐 『여원』에 스타일 기고문을 개재한다. 2월에는 ‘長方형스타일’, ‘에러간트한 투·피-스 드레스’, ‘드레스한 울-타이트 드레스’, ‘중년부인의 안바란스 드레스’, ‘드레스한 쥬니아 스타일(루프 드레스)’, ‘카레지 스타일’, ‘스포티-하고 드렛시한 스타일’, ‘스포-티한 원피-스 드레스(코트 드레스)’, ‘드렛시한 원피스 드레스(랩어라운드 드레스)’, ‘드렛시한 (?)-스렛트 스타일(백 드레이프 드레스)’을 제안하며 장방형 실루엣이 대세임을 주장한다(Lee, 1958a). 또한 이종천은 피에르 가르뎅 ‘루프라인’과 크리스티앙 디오르 ‘스핀들라인’의 유행을 1957년 12월 기고문에 이어 1958년 2월 추가적으로 분석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Fig. 49>.


<Fig. 49> 
Classic style, junior & sporty style & evening style, 1958, Jong-cheon Lee (Lee, 1958a, pp. 226-228)

...... 특히 새로운 라인으로서 「삐에루가루당」등의 투승(投繩)모양의 깃(목이나 어께에 밧줄을 던진듯한 데자인)과 「디올」씨가 발표한 「스핀도루라인」등이 세계적인 시루엣트가 될것이고 또한 드레시한 감으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등줄기가 둥근 시루엣트가 성행하지않을가 예상되는바이며 색은 비교적 단순하고 짙은 아름다운 색이 눈에 많이 띄우게 될 것입니다。 ....... 작년도 「디올」씨가 발표한 방종(紡鐘)라인도 이 장방형을 변형한것이며 「란방 가스테이요」점(店)도 이런 장방형라인을 발표하고 있는 점은 주의를 요하고 있읍니다。(Lee, 1958a, pp. 227-228).

4월호에서 이종천은 해외 트렌드의 분석이 아닌 개인의 이미지에 적합한 스타일 선택과 방법을 제시하는데, 디자이너는 현대인의 개성미를 네 가지 인상으로 구분하여 ① ‘情熱的인 印象을 주는 사람’은 「다아낭첵크」, ② ‘理性的인 印象을 주는 사람’은 「데라도스으쓰」회색의 「가아디강」에 오오바의 셋트, ③ ‘예쁘장한 印象을 주는 사람’은 프린세스 스타일에 장신구 역시 그에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하며, ④ ‘明朗하고 스포-티한 感을 주는 사람’은 닷폴코오트 혹은 푸랑켙부리이드 (毛市같고 큼직한 格子縞가 있는 것)나 홀쭉한 七부 스락쓰 가 적합한 스타일이라고 제안한다(Lee, 1958b). <Fig. 50>은 이종천이 직접 스케치한 컬렉션드로잉으로 첫 번째 디자인은 빨강과 검정이 교차된 플래드 체크(plaid check) 원단이 특징인 하이 밴드 칼라 슈트이며, 두 번째 디자인은 회색 카디건 재킷에 스커트 착장의 슈트로 스웨이드 소재의 신발과 매치하면 좋은 스타일이다. <Fig. 50>의 세번째 디자인은 핑크나 파스텔의 밝은 컬러의 프린세스라인 펜슬 슈트로 단추 구멍의 스티치가 디자인 포인트이고 방울이 달린 니트로 만든 키파(Kippah)로 코디네이션 한 착장이며, 네 번째는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인 스타일로 점퍼 재킷에 스리쿼터 팬츠(three-quarter pants)를 매치한 디자인이다. 이종천은 본인이 제안한 네 가지 스타일에 따라 여성들의 인상이 나누어진다고 주장하며 각각의 인상에 맞는 컬러와 스타일을 추가적으로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6월호에서는 여름철 여성은 「부라우스」, 남성은 「노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제철에 맞는 스타일을 연출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여성복 6착장과 남성복 4착장 그리고 아동복 6착장을 컬렉션드로잉과 함께 소개한다(Lee, 1958d). 또한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위해 기고한 10월호 칼럼에서 이종천은 아홉가지 스타일을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이종천은 기본 「원피-스」에 「붸스트」, 「숕·쟈켙」에 「프리-쓰·스카-트」, 빅 칼라와 포켓 재킷과 프레어드 스커트 착장의 투피스, 「리봉」 「원피-스」, 바둑판 무늬 원단의 날씬한 「원피-스」, 「스트라이프 원피-스」, 「챠글·그레이」배색의 「스트라이프 투피-스」, 큼직한 호주머니가 달려있는 명랑한 느낌을 주는 원피-스, 「세일러」복 「원피-스」를 어울리는 옷감과 컬러를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Lee, 1958f). 이종천이 제안한 플레어드 스커트를 기본으로 한 칼리지 룩 스타일은 모두 일곱 착장으로 드레스 혹은 투피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튜닉 드레스와 세일러 코트 드레스가 함께 소개되어 있다. 더불어 이종천은 학생들의 낮은 연령대를 고려하여 투피스는 드레스에 숏 재킷 혹은 베스트를 매치하고 3착장에 걸쳐 리본 디테일을 활용하여 귀엽고 명랑한 이미지를 디자인에 담아낸다.


<Fig. 50> 
『Modern people and unique beauty』, 1958, Jong-cheon Lee (Lee, 1958b, pp. 215-218)

이와는 다르게, ‘아리사양장점’ 서수연은 12월 『服藏』 칼럼을 통해 ‘필요한 스-카트’, ‘선택할 스웨터와 블라우스’, ‘데자인이나 색깔’, ‘악세사리를 고를 때’와 같은 아이템의 구입 방법과 유의점, 또한 ‘몸이 적고 뚱뚱한 타입’과 ‘키가 크고 여원 타입’ 이 각각의 체격에 맞게 제품을 구입하는 방법 그리고 분위기에 맞는 옷차림의 중요성을 상세히 기고문에 설명하고 있다(Seo, 1958).

5) 1959년; 이성우양장점 이성우, ‘남성복 스타일’_국제양장사 최경자, ‘여성복스타일’_아리사양장점 서수연, ‘다양한 코디네이션 방법’

1959년 4월 ‘이성우양장점’의 이성우는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의 스타일을 제안하는데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양복스타일로 어깨의 자연스러움이 특징인 ‘아메리칸 내추럴’, 허리가 약간 들어간 미국 동부 대학의 유니폼 스타일 ‘아이부이리-그(the Ivy league)’, 허리가 들어가 전체적으로 V라인이 특징인 불란서식 스타일 ‘콘티넨탈(continental), 정통 신사복 ‘런던 스타일’ 그리고 ‘엠버써더 스타일(ambassador style)’을 설명하고 아메리칸 내추럴 스타일이 한국인의 체형에 가장 적합하다고 추천한다(Lee, 1959). 반면, 같은 월의 연결 칼럼에서 ‘國除洋裝会(국제양장사)’의 최경자는 처음 양장을 착용하는 여성들을 위해 스프링코트와 오바코트의 차이점, 한복과 양장 착용 시 코트 활용법, 봄철 가장 중요한 스타일인 스-쓰(슈트)와 세파레트, 큰 칼라의 유행 등을 설명하고 유행에 맞는 클래식 스타일을 적절히 착용하거나, 젊은이들의 경우는 단순하고 스포티한 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조언한다(Choi, 1959). <Fig. 51>은 최경자가 드로잉으로 제안한 스타일로 부드러운 곡선 실루엣에 활동성이 고려된 것이며, 세번째 착장은 샤넬의 카디건 앙상블 스타일이다.


<Fig. 51> 
『Introduction of women’s suit』, 1959, Kyung-ja Choi (Choi, 1959, pp. 270-271)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은 『젊은 女性을 위한 초가을의 외출복』을 제안하는데, 1959년 F/W 시즌 스타일에서는 ‘잠바 스카아트’와 상의의 앙상블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서수연은 하나의 점퍼스커트 위에 다양한 상의를 코디네이션하면 열 가지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A) 짧은 리본 디테일 재킷과 원피-스의 앙상블, (B) 블루 컬러의 대담한 스퀘어 네크라인 슬리브니스 상의와 매치된 원피-스, (C) 짙은 브라운 칼라 벨벳으로 만든 볼레로와 원피-스, (D) 고급스러운 레이스와 마를 중첩시켜 버클로 마무리한 드레시한 숄 가운과 원피-스, (E) 주니어를 위한 초콜릿 컬러 케이프와 원피-스, (F) 검정과 흰색의 대비가 포인트인 슬리브니스 상의와 원피-스, (G) 지성미가 돋보이는 달걀빛의 높은 스탠딩칼라 칠 부 소매의 셔츠와 원피-스, (H) 짧은 볼레로가 싫증날 때 착용하면 좋은 롱 재킷과 원피-스, (I) 저녁 초대에 적합한 호사스럽고 아름다운 짧은 케이프와 원피-스 그리고 (J) 코디네이션의 기본 아이템인 점퍼스커트 원피-스 하나만을 착용할 경우의 사례들을 자신이 그린 컬렉션드로잉과 함께 소개한다(Seo, 1959). <Fig. 52>는 (B)부터 (F)까지의 스타일을 그린 서수연의 드로잉으로 모두 점퍼스커트 드레스 위에 숏 재킷 혹은 숏 셔츠, 케이프, 볼레로, 베스트 등으로 코디네이션 하여 스타일의 변화를 제안한 것이다.


<Fig. 52> 
『Autumn Townwear for young woman』, 1959, Su-yeon Seo (Seo, 1959, pp. 294-295)


Ⅳ. 195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에서 나타난 한국 패션사적 사실 추출
1. 새롭게 추출된 패션쇼와 전시회 그리고 패션쇼 관련 비평

최경자, 노라노 이외의 195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 역시 패션쇼와 전시회를 개최한다<Table 1>. 『여원』지 1957년 10월호에는 ‘대한가정학회’ 회장인 서수연이 『새로운 실용복』이라는 주제로 패션쇼를 개최한 것이 소개되어 있다(New practical garment, 1957). 패션쇼에서 서수연은 드레스 라인,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위한 학생복, 여대생을 위한 스타일, 직장 여성을 위한 스타일 등 연령대와 직업을 세분화하여 컬렉션을 전개하고 한국 전통 소재인 모시와 무명으로 만든 ‘모시드레스’와 ‘무명드레스’를 출품하여 호평을 받는다(New practical garment, 1957). 또한 동아일보에는 1958년 6월 ‘마드모아젤’ 김경희가 60여 벌의 작품을 패션쇼에서 발표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Lee, 1958e). 더불어 같은 해 11월 25일 오후 1시 조선호텔에서는 경향신문과 제일모직의 후원으로 『김경희 데자인·쇼』가 열려 김경희가 45점의 여성복과 남성복을 발표한 것이 기술되어 있다(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반면, 이종천은 동화백화점 서관에서 1958년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第一回衣裳데자인 畵展』을 개최하여 컬렉션드로잉을 전시한다(Jong-cheon Lee fashion drawing exhibition, 1958). 또한 같은 해 동아일보에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살롱·드·모드」 ‘이종천의상디자인연구소’가 명동 ‘송옥양장점’ 2층 동 연구소에서 디자인화 소품 전시를 연다는 소식이 기록되어 있다(Women’s event, 1958). 더불어 이종천은 오추영 외에 4인으로 구성된 ‘自線디자이너클럽’의 그룹 패션쇼인 『第一回服裝硏究發表會』를 1958년 10월 15일 오후 1시부터 KY음악실에서 개최한다(Presentation of free line designer club, 1958).

<Table 1> 
Newly Extracted Fashion Show and Exhibition of the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by Reference
Designer or Group Fashion Show or Exhibition Contents Reference
Su-yeon Seo 『New practical garment』, October 1957, supported by the Korean Home Economics Association - Individual fashion show
- Design with Wide-range age target
- Wedding dress, ramie dress, cotton dress
New practical garment, 1957
Kyung-hee Kim ‘Kim, Kyung-hee Fashion Show’, June 1958 - Individual fashion show
- Presented 60th garments
Lee, 1958e
Kyung-hee Kim 『Kyung-hee Kim design show』, Chosun hotel, November 25 1958, 1 pm, supported by Kyungyang Shinmun & Cheil Industries Inc. - Individual fashion show
- Presented 45 garments with women’s and men’s wear
Attention to charming line, 1958
Jong-cheon Lee 『The first clothes design drawing exhibition』, west building of Dong-a department store, from July 23 to 27 1958 - The first solo exhibition
- Collection drawing exhibition
Jong-cheon Lee fashion drawing exhibition, 1958
Jong-cheon Lee ‘Fashion goods drawing exhibition’, Lee, Jong-cheon clothes design research center, from July 27 to 31 1958 - Solo exhibition
- Fashion goods collection drawing exhibition
Women’s event, 1958
‘Free line design club’ 『The first dress research presentation』, KY music hall, 1 pm October 15 1958 - Group fashion show
- Member: Jong-cheon Lee, Chu-young Oh and four member
Presentation of free line designer club, 1958
(Table by the Researcher, 2020)

매체자료 분석결과 서수연의 패션쇼 1회와 김경희의 패션쇼 2회 그리고 이종천의 개인 전시회 2회와 그룹 패션쇼 1회가 밝혀졌다. 또한 이종천의 경우는 1950년대 개인 패션쇼 관련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종천의 실력과 패션계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던 것으로 매체자료에서 확인된다. 이종천은 『여원』과 동아일보에 스타일화가 포함된 패션칼럼과 패션컬렉션 비평을 지속적으로 연재한다. 자료를 살펴보면, 1958년 최경자, 노라노, 김경희 패션쇼의 신문 비평문 모두를 이종천이 쓰고 있다. 평론에서 개별 디자이너 패션쇼에 대한 이종천의 평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1958년 S/S ‘『노-라·노』 횃숀·쇼 評’에서 이종천은 대중적이지 못한 스타일이 많은 것은 다소 아쉽지만 노라노가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 전개로 군더더기 없는 패션쇼를 진행하였고, 지난 시즌 佛蘭西디자이너들의 신작을 완벽하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여 앞으로 한국의상문화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호평한다(Lee, 1958c). 반면, 같은 시즌의 『創作力의 不足, ⋯金庚姬發表會評⋯』에서는 김경희가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카피하여 ‘創作力의 不足’을 보여주었고 22번과 60번을 제외한 모든 디자인에 문제가 있음을 각각의 디자인 번호를 사례로 제시하며 지적하고, 실패한 이 컬렉션을 거울삼아 이후에는 의상문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혹평한다(Lee, 1958e). 또한 1958년 『崔敬子衣裳發表會後感』에서 이종천은 눈에 띄는 새로운 작품이 없고 유행에 뒤처지나 최경자가 양장의 한국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작품에 보였고 아직까지 전문 모델이 없이 패션쇼가 진행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평론한다(Lee, 1958g). 이종천이 비평한 최경자의 1958년 제2회 패션쇼는 선행연구에서 1958년 10월 27일 열린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본고에서 근거자료 확인결과 10월 3일 개최된 것으로 나타났다(Lee, 1958g; Park, 2019). 또한 김경희는 이종천의 비평을 받아들여 1958년 S/S 컬렉션에서 60점을 선보인 작품의 수를 F/W에서는 45점으로 축소하고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2. 명동양장점 디자이너들 관련 매체 자료 분석
1) 명동양장점 디자이너 추출 근거 자료 및 작품 특성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여원』잡지의 패션화보와 신문자료를 분석해보면, 한동식의 ‘한양장점’, 오송죽과 심명언의 ‘송옥양장점’, 최경자의 ‘국제양장사’, 서수연의 ‘아리사양장점’, 노라노의 ‘노라노의 집’, 이종천의 ‘살롱 드 모드’, 김경희의 ‘마드모아젤’, 최금린의 ‘라·모오드양장점’, 문신덕의 ‘크로오버양장점’, 이성우의 ‘이성우양장점’ 이외에 윤현경의 ‘붜그양장점’, 홍명애의 ‘우리양장점’, 명동 ‘청실양장점’ 등이 명동의 트렌드를 주도하며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Table 2, 3>. 특히 당시 명동양장점의 위상을 읽을 수 있는 『여원』 단독 화보의 경우는 노라노가 6회, 최경자가 5회, 서수연이 2회 그리고 윤현경, 한동식, 홍명애, ‘청실양장점’이 각각 1회씩 개재되었다. 또한 1958년 1월호 화보는 양장점명과 디자이너명이 기재되지 않았고, 이외에도 1959년 6월에는 양장점 디자이너들의 화보가 아닌 ‘중앙디자인연구소’의 연구작품발표회에 출품된 드레스 1점과 앙상블 1점이 소개되었다. 더불어 최경자가 서수연, 최금린과 함께 1959년 진행한 공동 화보가 각각 실려 있다. 이 시기 신문 기사에는 김경애의 기사가 보이나 『여원』 화보에는 작품이 실리지 않았으며, 김경희의 작품은 1960년 이후 화보에서 보인다. 본고에서 새롭게 추출된 디자이너들의 작품 특성 분석결과는 <Table 3>과 같다.

<Table 2> 
Editorial Fashion Photography of the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Works from 1955 to 1959 in the 『Yeowon』 Magazine
Month & Year Title of the contents Boutique & Designer Page
Nov. 1955 Mode of autumn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pp. 8-12
Jan. 1956 Mode of winter ‘Vogue Yangjangjeom’, Hyun-kyung Yoon pp. 18-21
Feb. 1956 Beautiful scene ‘Han Yangjangjeom’, Dong-sik Han pp. 20-21
Nov. 1956 Mode of autumn ‘House of Nora Noh’, Nora Noh pp. 23-25
Dec. 1956 Winter mode Kyung-ja Choi, President of Kyung-ja Choi fashion research center pp. 23-25
Apr. 1957 Spring fashion style ‘U-li Yangjangjeom’, Mung-ae Hong not mentioned
Jun 1957 One-piece ‘Cheong-sil Yangjangjeom’, Myeongdong not mentioned
Jul. 1957 Non-title editorial fashion photography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not mentioned
Aug. 1957 Nora Noh fashion show ‘House of Nora Noh’, Nora Noh pp. 25-30
Oct. 1957 New practical garment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not mentioned
Dec. 1957 Kyung-Ja Choi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pp. 23-26
Jan. 1958 Overcoat for this winter Boutique & designer; not mentioned, photo by Nak-seon Lee pp. 9-11
Jun. 1958 Early summer hiking wear and lunch box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pp. 31-33
Aug. 1958 Blouse for home ‘House of Nora Noh’, Nora Noh p. 31
Oct. 1958 Invitation of Miss universe contest ‘House of Nora Noh’, Nora Noh pp. 31-35
Nov. 1958 Mode of autumn ‘House of Nora Noh’, Nora Noh pp. 13-17
Dec. 1958 Practical fashion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not mentioned
Jun. 1959 Dress style ‘House of Nora Noh’, Nora Noh pp. 43-44
Jun. 1959 Two types of the new style Fashion show works by Jung-ang design research center p. 45
Oct. 1959 The new mode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pp. 13-15
Dec. 1959 Winter has come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La Mode Yangjangsa’, Keum-rin Choi pp. 18-21
(Table by the Researcher, 2020)

<Table 3> 
Characteristics of the First Generation Fashion Designer’s Works and Activities in the 1950s
Boutique & Designer Characteristics
‘Han Yangjangjeom’, Dong-sik Han - Classic style with well-made pattern and sewing
- Proposal of TPO style
‘Song-ok Yangjangjeom’, Song-juk Oh and Myeing-eon Shim - Proposal of wide range of design
- Build employee welfare system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 Proposal of practical style with simple pattern
- Design with contrast
‘Madamoiselle Yangjangjeom’, Kyung-hee Kim - Design development with silhouette
- Disseminate of lifestyle concept
‘Vogue Yangjangjeom’, Hyun-kyung Yoon - Development of comfortable style for middle-aged woman
‘U-li Yangjangjeom’, Mung-ae Hong - Design emphasized waistline
- Design development for young woman
‘Cheong-sil Yangjangjeom’, Myeongdong - Proposal of college look dress that can be worn regardless of age
‘La Mode Yangjangsa’, Keum-rin Choi - Elegant design created with boldness and detail
(Table by the Researcher, 2020)

2) 기고문을 통한 디자이너 추출 근거 자료 및 제안 트렌드와 스타일 분석

선행연구에서 분석된 최경자와 노라노의 칼럼을 제외하고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가장 많은 칼럼을 기고한 디자이너는 이종천이다. 특히 이종천은 1957년과 1958년 『여원』지에 개재된 8개의 칼럼 중 5개의 칼럼을 담당하였다. 또한 서수연은 3편의 기고문이 추출되었다. 반면, 『여원』 패션화보나 신문사 기고문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명동디자이너들이 칼럼 분석을 통해 밝혀졌는데 ‘크로오버양장점’의 문신덕과, ‘이성우양장점’의 이성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Table 4>. 패션화보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 『여원』 지 칼럼에는 김경희의 글은 보이지 않았으며 경향신문에 기고문이 남아있다.

<Table 4> 
Articles for Fashion Trend by the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in the Media from the 1955 to 1959
Month & Year Title of the contents Boutique & Designer Page
Oct. 1955 Smart autumn town wear ‘Clover Yangjangjeom’, Shin-duck Moon pp. 96-97
Feb. 1956 Which style are you? ‘Chun-chi Yangjae academy’, Man-sil Choi pp. 260-261
Mar. 1957 Finding charm of western clothes in the new line ‘Madamoiselle Yangjangjeom’, Kyung-hee Kim p. 4
Jun. 1957 Several summer western clothes ‘Madamoiselle Yangjangjeom’, Kyung-hee Kim p. 4
Dec. 1957 Trend summary of the 1957 and forecast of the 1958’s trend ‘House of Nora’, Nora Noh pp. 188-190
Dec. 1957 History of Korean trend ‘Salon de Mode’, Jong-cheon Lee pp. 191-194
Jan. 1958 Style of the 1958 ‘Salon de Mode’, Jong-cheon Lee pp. 226-228
Apr. 1958 Modern people and unique beauty ‘Salon de Mode’, Jong-cheon Lee pp. 215-218
Jun. 1958 Summer blouse & no-tie ‘Salon de Mode’, Jong-cheon Lee pp. 251-259
Oct. 1958 Town wear for woman’s student ‘Salon de Mode’, Jong-cheon Lee pp. 241-244
Nov. 1958 Criticism, of the road fashion style ‘Arisa Yangjangsa’, Su-yeon Seo pp. 29-31
Dec. 1958 Clothes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pp. 251-253
Apr. 1959 Introduction of men’s suit ‘Lee, Sung-woo Yangjangjeom’, Sung-woo Lee pp. 266-269
Apr. 1959 Introduction of women’s suit ‘Kook-je Yangjangsa’, Kyung-ja Choi pp. 270-271
Oct. 1959 Autumn townwear for young woman ‘Arisa Yangjangjeom’, Su-yeon Seo pp. 293-295
(Table by the Researcher, 2020)

명동디자이너들이 제안한 트렌드와 스타일 분석결과는 <Table 5>와 같다. 1955년 문신덕은 5가지 스타일의 칼리지 룩을, 1956년 최만실은 4가지의 체형별 올바른 스타일 법을, 1957년 김경희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알파벳라인을, 같은 해 노라노와 이종천은 해외 스타일과 한국 스타일 조화의 중요성을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 또한 1958년 칼럼에서 이종천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피에르 가르뎅의 스타일을 비롯한 해외의 트렌드를 제시하였고 체형과 계절 그리고 연령에 적합한 스타일을 자신이 직접 그린 스타일화와 함께 제안한다. 1959년에는 이성우와 최경자가 연결 칼럼을 통해 남성복과 여성복의 기본 스타일을 설명하고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스타일을 제시하였고, 서수연은 하나의 아이템 코디네이션을 통해 10가지 스타일로 연출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Table 5> 
Fashion Trend and Style Proposed by the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during the 1955 to 1959
Year Designer Proposed Trend and Style
1955 Shin-duck Moon Five types of college look; (1, 2) two classic college dress, (3) dolman sleeve jacket with flared skirt for ‘travel’ (4) sailor collar jacket with flared skirt for ’sports activities’, (5) cheerful feeling blouse and skirts for ‘town wear’
1956 Man-sil Choi Proposal of four types of woman’s body and suitable style; (1) flared dress, (2) low-waisted style, (3) striped pattern dark dress (4) low chroma color with tight skirt
1957 Kyung-hee Kim Christian Dior’s alphabetic line; (1) top point long flared dress for ‘evening dress’, (2) flower pattern collage dress for ‘junior style’, (3) draped shoulder detail princess dress for ‘afternoon dress’, (4) tunic dress for ‘working woman’
Nora Noh Harmony of French style and Korean style; (1) high-waisted no-belted dress, (2) flared coat, (3) draped style, (4) French elegant
Jong-cheon Lee Harmony of French style and Korean style; Christian Dior’s spindle line, Pierre Cardin’s rope line, and focused on Korean body form and life style
1958 Jong-cheon Lee January: (1) elegant two pieces, wool tight dress for ‘rectangle body shape’, (2) unbalance dress for ‘middle-aged women’, (3) rope dress for ‘junior’, (4) college style, (5) sporty & elegant dress, (6) coat dress, (7) wraparound dress, (8) back draped dress, (9) Christian Dior’s spindle line, (10) Pierre Cardin’s rope line
April: suitable style for individual; (1) plaid check pattern suit for ‘passionate impression’, (2) gray cardigan suit for ‘rational impression’, (3) princess line pencil suit for ‘beautiful woman style’, (4) jumper jacket & three-quarter paints for ‘sporty style’
June: summer style, (1) six blouse for woman, (2) four no-tie shirt for men, (3) six simple children’s wear
October: nine styles for middle & high school student; (1) vest with dress, (2) shorts jacket with flared skirt, (3) big collar and pocket jacket with flared skirt, (4) ribbon detail dress, (5) go board check pattern slim dress, (6) striped pattern dress, (7) charcoal and gray color scheme striped pattern dress, (8) big pocket dress, (9) sailor collar dress
Su-yeon Seo - Buying suitable fashion items; (1) sweater & blouse, (2) design & color, (3) fashion accessory
- Suitable style for body form: (1) simple style for ‘shot hight & overweight body woman’, (2) bold style for ‘long hight & underweight body woman’
1959 Sung-woo Lee - Introduction of men’s suit: (1) American natural style, (2) the Ivy league style, (3) French continental style, (4) London style, (5) ambassador style
- Men’s suit for Korean; American natural style
Kyung-ja Choi Introduction of woman’s suit; (1) coat, (2) cardigan ensemble, (3) basic suit, (4) two-piece
Su-yeon Seo Proposal of ten styles of coordination using the same jumper skirt dress: the dress coordination with (1) ribbon detail shorts jacket, (2) squared neckline top, (3) velvet bolero, (4) lace & hemp fabric buckled shawl gown, (5) chocolate color cape, (6) black & white contrast sleeveless top, (7) standing collar short shirt, (8) long jacket, (9) short cape (10) main item jumper skirt dress itself
(Table by the Researcher, 2020)

3. 명동 양장점계의 동향 분석

1950년대 명동의 5대 양장점은 한동식의 ‘한양장점’, 오송죽과 심명언의 ‘송옥양장점’, 최경자의 ‘국제양장사’, 서수연의 ‘아리사양장점’ 그리고 노라노의 ‘노라노의 집’이었다. 디자이너들은 개별 고객을 위해 특별 맞춤을 하거나 샘플 디자인을 만들어 놓고 고객이 선택한 원단으로 제품을 제작하였고, 디자인의 가격은 원단 가격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었다. 디자인은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여 성질이 다른 다양한 원단으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였으나 스타일의 변형이 용이하지 않은 타이트 스타일의 경우는 소재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었다. 지명도가 있는 명동의 양장점은 양장점 주인인 디자이너를 주축으로 재단사, 재봉사, 종업원 그리고 심부름을 하며 기술을 배우는 견습생 시다를 포함하여 10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고 이들은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근무하였다(100 story travel of Jung-gu, 2016). 디자이너들은 단골 고객을 제외하고는 직접 고객을 맞지 않았으며 대학을 졸업한 스타일이 좋은 여성 매니저가 고객을 관리하였다. 매니저는 기본 급여에 수주 능력에 따라 수당을 받았으며 실력 있는 매니저는 재단사와 같이 경쟁 양장점의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또한 양장점 매출은 디자이너의 명성과 더불어 매니저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었다. 명동양장점의 고객은 미8군의 가수, 배우, 외교관부인, 군인장교부인과 같은 부유한 집안의 부인들과 그 자녀들이었다. 특히 고정 고객 이외의 고객들의 수요가 집중되는 입학식과 졸업식은 양장점이 가장 바쁜 시기로 명동 거리의 양장점은 통금직전까지 혹은 밤을 새워 작업하였고, 여름은 상대적으로 비수기였다(Lim, 1985). 유복한 집안의 여고생들 역시 명동의 양장점에서 교복을 맞추어 입는 것이 보편적이었다(Alumnus of girl’s high school, 1991). 또한 양장점들은 여성복뿐만 아니라 아동복 맞춤도 함께 진행하였으며 양장점 간의 치열한 경쟁과 다양한 고객층 수용으로 인해 ‘예쁘다 양장점’처럼 성인의 옷을 디자인하였으나 이후 아동복으로 유명해진 양장점도 나타났다(Yoo, 2010).

1950년대 명동 디자이너들의 리더는 1955년 6월 ‘大韓服飾硏友会’를 설립한 최경자로 알려져 있으나 같은 시기 서수연은 ‘대한가정학회’, 이종천은 ‘自線디자이너클럽’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디자이너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또한 한국 패션디자인 교육의 시스템 역시 1954년 1월 개소한 ‘최경자양장연구소’와 1961년 2월 문을 연 ‘국제복장학원’을 운영한 최경자와 더불어 1950년대에는 ‘새마을복장학원’ 오정희, ‘서라벌양장학원’ 박순기, ‘춘추양재전문학원’ 최만실, ‘미원직물고등기술학원’ 박종숙이 함께 기틀을 정립하였고,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1950년대 ‘이종천의상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한 이종천이 ‘서울복식디자인학원’을, 서수연이 1965년 ‘서수연복식연구소’를 열어 한국 패션 교육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중 박순기가 이끄는 ‘서라벌양장학원’은 노라노의 패션쇼보다 5개월 전인 1956년 5월 동화백화점에서 연구생의 졸업 쇼를 개최하였고, 양장학원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코스튬발표회 혹은 연구발표회라는 명칭으로 연구과 과정 이상을 수료한 연구생들을 위하여 패션쇼를 지속적으로 기획하였다.


Ⅴ.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1950년대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와 작품 특성을 고찰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을 추출하는데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 1950년대 명동에는 ‘한양장점’ 한동식, ‘송옥양장점’ 오송죽과 심명언, ‘국제양장사’ 최경자, ‘아리사양장점’ 서수연, ‘노라노의 집’ 노라노, ‘살롱 드 모드’ 이종천, ‘마드모아젤’ 김경희, ‘라·모오드양장점’ 최금린, ‘크로오버양장점’ 문신덕, ‘이성우양장점’ 이성우, ‘붜그양장점’ 윤현경, ‘우리양장점’ 홍명애 등이 활동하였고 디자이너를 내세우지 않은 ‘청실양장점’이 있었다. 6.25 전쟁 이후 가장 먼저 명동에 자리 잡은 한동식은 완성도 높은 클래식한 스타일과 더불어 TPO를 고려한 디자인을 제안하였고, 규모가 가장 큰 매장을 운영한 오송죽과 심명언은 직원들의 유급휴가, 교통비 및 식대 지급 등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직원복지시스템을 제공하였다. 서수연은 간결한 재단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최경자, 노라노와 함께 1950년대 중·후반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다. 또한 디자이너들의 멘토로 평가받는 이종천은 탁월한 컬렉션드로잉과 스타일 분석으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반면, 김경희는 1958년 S/S 시즌까지 프랑스 디자이너의 카피로 혹평을 받았으나 라이프스타일의 개념을 확산하고 선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1960년대에 두각을 드러낸 최금린은 1959년 12월 최경자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원』 화보에서 이름을 알렸으며 과감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디자인에 담아내었다. 이외에 윤현경은 중년부인을 위한 스타일을, 이와 다르게 홍명애는 허리선이 강조된 여대생을 위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문신덕, 이성우, 명동 ‘청실양장점’은 보편적 스타일의 외출복, 남성복, 칼리지 룩 스타일을 제안하였다.

1950년대 신문 매체와 『여원』 잡지에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수록된 화보와 칼럼이 제시되어 있는데 『여원』지 화보에 작품을 수록한 디자이너는 최경자, 노라노, 윤현경, 홍명애, 서수연, 최금린 그리고 디자이너 명이 기재되지 않은 ‘청실양장점’이었고, 이종천은 컬렉션드로잉과 패션칼럼을, 문신덕은 스타일화와 제작방법을 제시하였다. 최경자의 경우는 패션화보, 패션칼럼, 기본디자인의 작품 제작방법을 모두 기고하였고, 노라노와 서수연은 패션화보와 패션칼럼을 수록하였다. 반면, 김경희의 자료는 『여원』잡지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으며 신문자료가 남아있었다. 더불어 최경자, 노라노, 이종천, 서수연은 이 시기 신문 매체에 패션 연재칼럼을 기고하였다. 디자이너들이 분석한 1955년부터 1959년까지의 유행스타일은 미국 여대생들의 ‘칼리지 룩 스타일’과 오드리 햅번의 영향을 받은 ‘플레어드라인’을 기반으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알파벳라인’, ‘튤립라인’, ‘스핀들라인’, 1959년 디오르사후 이브 생 로랑이 제안한 ‘트라페즈라인’ 그리고 피에르 가르뎅의 ‘루프라인’이었다. 또한 최만실과 이종천은 개인의 체형에 맞는 스타일 법을, 서수연은 하나의 아이템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코디네이션 사례를 제시하였고, 이성우는 아메리칸 내추럴 스타일이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남성복 스타일이라고 제안하였다. 특히 이들 중 최경자, 노라노, 이종천은 해외의 트렌드를 완벽히 이해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스타일 창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적 양장디자인 개발을 위해 노력하였다.

매체 자료 분석결과 1950년대 활동한 제1세대 한국 디자이너들이 한국 패션의 트렌드를 주도한 시기는 1954년부터 1964년까지였으며, 이 시기 이후 패션 산업시스템의 기성복 전환과 제2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도약으로 노라노, 김경희, 최금린, 이종천을 제외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사업을 축소하고 학원사업에 진출하며 후학양성에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 최경자 역시 1961년 ‘국제복장학원’ 설립을 기점으로 사업의 패턴을 디자인에서 교육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대한복식연우회’ 회장 최경자는 부회장 서수연, 총무 한희도와 함께 1950년대 명동 디자이너들의 권익과 사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반면, 개인적인 행보가 두드러진 노라노는 프랑스 패션스타일을 전파하며 명동의 트렌드를 주도하였다. 노라노와 마찬가지로 1956년 ‘붜그양장점’의 윤현경 역시 파리에 직접 시장조사를 다녀와 프랑스 오트 쿠튀르들의 스타일을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대의 실물 작품 화보가 남아있지는 않으나 이종천은 디자이너들의 작품 비평과 트렌드 분석을 통해 패션계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본고에서는 1957년 서수연 패션쇼 1건, 1958년 S/S와 1958년 F/W 김경희 패션쇼 2건 그리고 1958년 이종천의 개인 전시회 2건과 그룹 패션쇼 1건이 추출되었다. 이로써 최경자와 노라노뿐만 아니라 1950년대 활동한 제1세대 디자이너들도 패션쇼와 전시회를 개최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 연구의 결과 6.25 전쟁 이후 명동에 자리 잡은 한동식, 오송죽과 심명언, 서수연, 이종천은 최경자, 노라노와 함께 전쟁 이전 서구 양장 스타일을 단순히 제작하는 양장점 형태에 머물러 있던 한국 패션을 ‘디자이너 패션의 시대’로 전환시켰으며, 이들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여성 패션 스타일과 문화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1950년대 이후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이 활동한 명동거리는 20세기 한국 패션스타일의 거점이 되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7S1A5A802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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