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Current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4 , No. 1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2, No. 6, pp. 1-19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22
Received 11 Jul 2022 Revised 03 Sep 2022 Accepted 08 Sep 2022
DOI: https://doi.org/10.7233/jksc.2022.72.6.001

현대패션에 표현된 익명성
고현진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The Anonymity Expressed in Contemporary Fashion
Hyunzin Ko
Professor, Dept. of Apparel Design, Konkuk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Hyunzin Ko, e-mail: ziniko@konkuk.ac.kr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anonymity, one of the important social characteristics since the advent of the digital age, is expressed in contemporary fashion and what its implications are. For this, a literature study on anonymity and a case study on the expression of anonymity in contemporary fashion collections were conducted. The result is as follows. In the contemporary fashion collections, anonymity was expressed in creating the anonymous persona of designers who emphasized design collective, casting of amateur models, and the anonymous personas of models by wearing face covering items and daily uniforms. By these means, contemporary fashion designers seek the essence and authenticity of fashion design, dream of escaping into a fantasy world, highlight social problems, and reflect the thinking about the fluid identity of modern society, which defines their own identity. Through this study, it is meaningful to think about the meaning of clothing as a tool for projection of identity in modern society and to prepare basic data on anonymity from the point of view of contemporary fashion.


Keywords: anonymity, anonymous personas of designers and models, contemporary fashion, daily uniforms, face covering items, identity
키워드: 익명성, 디자이너와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 현대패션, 일상의 유니폼, 얼굴을 가리는 의복 품목, 정체성

Ⅰ. 서론

디지털 시대 도래 이후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anonymity)은 주요 화제 중 하나다. 비대면 가상공간이라는 특성상 실명이 아닌 여러 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새로운 소통방식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직장 내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 앱이나 익명으로 접속자들이 소통하는 소셜 다이어리 앱인 ‘어라운드’ 앱, ‘모씨(MOCI)’ 앱 등을 통해 익명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또, 익명 컨셉의 TV 예능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이 인기 속에 방영 중이며, 민감한 시사 이슈를 다루는 ‘가면 토론회’와 같은 프로그램도 제작되었고 뱅크시(Banksy)나 게릴라 걸즈(Guerrilla Girls)와 같은 아티스트의 익명성이 관심을 끌고 있다. 코비드 19(Covid 19) 이후 이러한 익명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경향이다. 지난 2년여간 우리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타인과 구별되는 신체 부위인 얼굴을 은폐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

복식은 착용자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도구이다. 복식은 착용자의 신분, 역할 등 정체성을 반영, 투사할 뿐만 아니라 감추고 위장할 수 있게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스크, 베일, 발라클라바(balaclava) 등과 같이 착용자의 얼굴을 가리고 정체성을 숨김으로써 익명성을 갖게 하는 복식 아이템이 존재해왔다. 정체성의 표현 도구로서 복식의 관점에서 이러한 익명성은 어떻게 적용되어왔는지 특히 현대패션에서 익명성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본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까지 익명성 관련 연구들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익명성 논의라든가, 익명성에 관한 사회학적, 철학적 분석 등이 진행되어왔다. 복식 분야에서는 익명성을 갖는 개별 복식 아이템에 관한 연구, 특히 가면, 베일 등에 집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왔지만, 그러한 아이템의 여러 특성 중 하나로서 익명성을 간단히 언급한 정도이고, 다만 McDowell(2013)의 연구에서 간단히 다루어진 정도라 복식의 익명성에 관한 논의는 거의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디지털 시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주요 화두가 되고 있으며, 특히 코비드 19 이후 그 미학이 강조되고 있는(Rabimov, 2020) 익명성이 복식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고 현대 패션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복식의 익명성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그 함의를 사고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익명성 관련 선행연구, 인터넷 기사 등의 문헌을 통해 익명성의 개념과 특성을 고찰한 후 그러한 익명성이 복식에 있어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패션 컬렉션에서 어떤 방식으로 익명성이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현대패션 관련 자료는 1차적으로 ‘익명’, ‘익명성’, ‘anonymity’, ‘anonymous’를 주요 키워드로 하고 주요 포털 사이트인 구글과 네이버, 저명 패션 사이트인 보그 검색을 통해 수집하였다. 이후 수집된 자료에서 익명성 주제를 다룬 디자이너로 언급된 현대 4대 컬렉션 디자이너의 보그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디자인 및 컬렉션 리뷰, 해당 컬렉션에 대한 디자이너 인터뷰, 컬렉션 분석 기사 등을 참조하여 현대패션에 나타난 익명성 표현과 함의에 대해 분석하였다.


Ⅱ. 이론적 고찰
1. 익명성의 개념과 특성
1) 익명성의 개념

익명성은 ‘없이(=without)’를 뜻하는 ‘an-’와 ‘이름(=name)’을 뜻하는 ‘onym’의 어원을 갖는(Anonymous’, n.d.-a) 문자 그대로 이름이 없는 특성을 뜻한다. 익명은 ‘숨을 익(匿)’, ‘이름 명(名)’으로 구성된 한자어로서 숨기거나 그 대신 쓰는 이름을 뜻한다(Anonymity’, n.d.-a). 또, Merriam Webster dictionary의 정의에 따르면 1) 알 수 없는 제작자나 출처의 대상 2) 이름이 지정되지 않거나 식별되지 않음 3) 개성, 구별, 인식 가능성이 부족함을 뜻한다(Anonymous’, n.d.-b). 이는 구별되고 눈에 띄는 명성이 있음을 뜻하는 ‘celebrity’, ‘fame’과는 반대 특성이다(Anonymity’, n.d.-b). 즉 익명성은 알 수 없는 정체성 및 그에 따른 작업물과 관련된 용어이며 추가적으로 평범하고 특색이 없어 눈에 띄지 않는 특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익명성은 정체성이 감추어지면서 발생하는 특성이다. 먼저 익명이 형성, 표현되는 방식에는 익명성의 정의, 즉 문자 그대로 무명(namelessness)인 경우가 있다. 무명에는 비의도적 무명과 의도적 무명이 있다. 비의도적 무명의 경우 너무 오래되었거나, 혹은 파괴적인 사건으로 인해 이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을 때 발생한다(Anonymity’, n.d.-c).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 대중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승되거나 작가에 대한 기록이 없는 작자 미상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의도적 무명은 일부러 저자명을 ‘무명’, ‘무명씨’라고 하거나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는 경우 즉 전략적으로 ‘무명’과 ‘익명’ 자체를 이름으로 만들어 명명을 무화시키는 경우다. 예를 들어 ‘어나니머스(Anonymous)’는 2008년에 종교단체 웹 사이트를 해킹한 행동주의자(activist) 단체로서, 고정된 조직과 리더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이라는 집단명 하에 일시적으로 조직되는 단체인데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조차 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면을 쓴 채로 모이고 거리 시위를 벌인다(Lee, 2018). 어나니머스 단체의 경우는 ‘익명’이라는 단체명은 밝혔으나 집단과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이름은 감춘다. 이들은 이름을 숨기는 것과 더불어 가면을 통해 얼굴을 감춰 정체를 은닉함으로써 이중적으로 익명을 구현한다.

익명의 또 다른 방식에는 실명과 불 일치하는 가명(pseudonym)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정체성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보통 필명(pen name)이나 별명(nick name)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그러한 가명을 지속 사용하여 그 자체로 정체성이 인식되거나 대면 접촉을 통해 얼굴을 노출한 경우는 엄밀히 말해 익명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대면하더라도 실제 정체성을 노출하지 않고 얼굴을 감춘 경우나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가명은 익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대면의 가상공간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가진 경우도 많으며, 이러한 여러 아이디를 통한 다중정체성과 그에 따른 페르소나 연출을 통해 자신의 실제 정체성을 은닉하고 활동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최근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 단순히 취미생활과 관심사를 대화하고 교제하는 익명적 관계도 나타나고 있다(Baek, Jung, & Chae, 2020). 이처럼 비대면을 통해 익명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통해 볼 때 결국 실명의 비공개도 중요하지만, 무명이든 가명이든 간에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익명성을 갖기 위한 주요 조건이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은둔하거나, 대면하더라도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사용하는 것은 익명성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 된다. 가면은 가면 속 인물의 실제 정체성을 숨길 뿐만 아니라 가면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Ryu, 2016).

한편 역사적으로 볼 때 신분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전 근대사회에서 소수의 상류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없었던 불특정 다수의 중ㆍ하류 계층의 개별 이름, 정체성은 익명적이었다. 현대의 불특정 다수 대중 역시 행동에 참여하고 있으나 행위 주체의 특정 개인 이름은 대중이라는 집단 속에 은닉되어 있다(Choi, 2000). 때로 익명의 불특정 다수의 이름은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서양식으로는 존 도우(John Doe), 제인 도우(Jane Doe) 등과 같이 불확실한 견본용 호칭으로 불린다(Anonymity’, n.d.-c). 이러한 대중에 대한 불확실한 통칭은 개별적 존재를 구별할 수 없기에 몰개성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익명의 또 다른 방식이다.

요컨대 익명성은 감추어진 정체성을 뜻하며 1) 무명, 가명 등을 통한 실제 이름의 비공개 2) 은둔, 가면을 통한 얼굴의 감춤 3) 집단 속 은닉과 불확실한 견본용 대중 호칭을 통해 표현된다.

2) 익명성의 특성

전술한 바와 같이 익명성은 기록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기부터, 그리고 유명 상류계층에 비해 기록으로 이름이 남겨지기에는 개별 존재감이 약했던 집단 속 불특정 다수 민중을 통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익명성은 현대 들어 좀 더 빈번하게 언급되는 사회적 특성이다. 이는 근대화 과정의 부산물로서 비인격적이고 객관화된 인간관계를 갖게 된 현대 사회의 특징을 기술하는 용어이다(K. Kim, 2003). 전 근대사회의 혈연, 지연에 근거한 대면 공동체에서는 비록 개별 존재감이 낮은 익명의 민중들이 존재했으나 소 커뮤니티 내구성원들 간에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는 사회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도시화가 가속화되어 다수가 모이고 사회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현대인들은 서로 신분이나 이름을 알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낯선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모여 구성된 사회이자 이동이 빈번한 사회이므로 서로의 관계는 전인적 관계이기보다는 부분적 자아 간의 관계로 바뀌었다(Hwang, 2003). 이러한 현대 사회의 불특정 다수로서 사회학상 무조직 집단이자 동질화, 평준화된 집합체를 대중이라고 하는데(Mass’, n.d.) 익명성은 바로 이러한 도시화, 대중화에 따라 근대 이전의 지역, 혈연 등을 통한 고정된 정체성이 사라지고 절대적인 사회적 통제가 힘들어진 현대 도시사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Kim, 2020). 현대 도시사회의 대중 속에서 개성을 지닌 개인은 사라지고 ‘특질 없는 비인간’으로서 현대인들은 기계속 톱니바퀴처럼 익명화되었다(K. Kim, 2003). 다시 말해 현대 사회의 개인은 부분적 정체성으로 파악되거나 대도시의 대중 속에 묻어 들어가 몰개성한 구성원으로서 대중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익명성은 탈육체화된 사이버 공간의 디지털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더욱 철저히 보장되었다. 현실의 공간에서 우리는 표정, 말투, 옷차림 등을 통해 상대방의 정체성과 페르소나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비 대면적 특질로 인해 언제든지 현실의 자아와 다른 정체성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어 다원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과 페르소나 만들기가 가능해졌다(Park & Shin, 2008).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볼 때 익명성은 소규모의 커뮤니티 구성원 간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잘 인지하던 전근대의 대면 사회로부터 근대화 이후 대규모 도시의 대중사회가 되면서 형성된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 강조된 사회적 특성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 사이버 공간 속 비대면 사회가 형성되면서 단순히 정체성을 숨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필요에 따른 유동적 정체성이 가능해진 결과 강화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익명으로 인한 불확실한 정체성은 대인관계에 따른 행위자와 수용자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쳤다. 익명성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행위자의 사생활 보호, 비밀 유지를 가능하게 하여 안전성을 확보해주므로 행위자는 언행의 자유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범죄를 목격한 증인은 익명이라는 보호 장치 하에 자유롭게 증언하며, 선의의 자선활동 역시 신분 노출 없이 익명으로 가능하다. 또, 익명의 상황은 사회의 평가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적 페르소나에서는 할 수 없었던 과감한 행동을 하게 한다(Suh, 2011). 예로 카니발이나 가면무도회는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통해 신분의 구속 없이 자유로이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장이다.

익명을 통한 과감한 표현의 자유는 저항 행동주의로까지 이어진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변신할 수 있는 가면을 착용하면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Ryu, 2016). 그런 의미에서 많은 시위 현장에서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나 마스크 등이 착용되곤 한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게릴라 걸즈는 고무 고릴라 가면을 쓰고 예술계에 있어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비참한 위상을 유머러스하게 항의한다(Felsenthal, 2016). 또, 견고한 신분 구조 내에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던 대중은 현대 사회에 와서 집단 정체성을 갖고 그 역할과 힘이 재인식되었는데 대중 속에 익명화된 세계에서 각 개인은 사회 내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전형화된 존재로 사회 속에 숨어 보호받을 수 있어(K. Kim, 2003)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내부고발이나 폭로에 참여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은 이전보다 철저히 익명적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자신의 실체에 대해 전혀 노출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여러 개의 아이디, 닉네임, 아바타, 이모티콘 등을 통해 현실 세계와 다른 유동적 정체성을 갖고 방문하는 곳마다 새로운 인상을 주며 활동할 수 있다(Hwang, 2003; Kim, 2012). 그러다 보니 사이버 공간에서 완벽한 익명의 자유는 책임을 약화시켜 악성 댓글, 음란물 유포 등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 범죄 행위도 초래했다. 특히 온라인의 익명 상황 속에서 참여자가 탈 개인화되고 집단 정체감이 뚜렷해지면서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보다 집단 극화된 여론몰이나 집단 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행위자의 익명성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안전을 지켜주어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과 표현의 자유를 주었으나 그와 동시에 저항과 공격, 더 나아가 범죄라는 불법적 행위까지 연결되는 일탈의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 행위자의 익명성은 수용자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가? 익명의 상황은 정체성을 인지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기에 행위 주체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신비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영국의 뱅크시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불법적 그래피티 작업을 행하고 있는데 뱅크시는 1974년생이고 14세부터 그래피티를 그렸고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는 것 이외에는 잘 알려 있지 못하다(Hong, 2018). 따라서 작가의 정체성의 미스테리에 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정도로 세인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또,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영화 속 영웅들은 가면을 쓰고 익명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영웅들의 정체성의 모호함을 통해 보는 이의 흥미를 끄는 신비주의 전략으로서 익명을 활용한 것이다(‘Anonymity’, n.d.-c).

또 익명은 카리스마, 좋은 외모나 부 등 개인에 대한 숭배(cult of personality)를 배제하고 공평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한다(‘Anonymity’, n.d.-c). 예를 들어 TV 쇼 ’싱어게인‘에서는 이름 대신 번호표를 부착한 익명의 참여 가수들이 경연을 벌이며 ’복면가왕‘은 노래 경연을 할 때 참가 가수들에게 다양한 복면을 씌워 얼굴을 가림으로써 보는 이들이 오롯이 노래 실력에 집중하게 만들어 공평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익명성은 정체성을 알 때 갖게 되는 선입견과 편견을 제거하고 본질과 진정성에 충실하게 한다. 이러한 익명이 주는 신비주의, 공평성과 같은 순기능적 측면 외에 수용자에게 있어 익명은 정체 파악이 어려움에서 오는 불안과 혹 있을 공격, 범죄에 대한 위협, 공포를 초래하는 역기능적 측면도 있다. 익명의 행위자와 수용자의 사회적 상호작용 결과 익명의 불확실한 정체성은 행위자와 수용자에게 있어 긍정과 부정적 측면 즉 양면적 특성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해보면 익명성은 1) 근대 이후 도시화, 대중화에 따라 사회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적 인식, 몰개성을 초래한 사회적 특성 2) 특히 비대면의 사이버 공간 속 다원화된 유동적 정체성을 유발한 디지털 시대의 사회적 특성 즉 근대 이후 사회 구조, 기술의 변화가 초래한 정체성의 불확실성이라는 현대의 사회적 특성이며 3) 이러한 불확실한 정체성으로 인해 대인 관계에 있어 행위자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 결과 행위자에게는 안전, 자유와 동시에 일탈을, 수용자에게는 신비감, 공평한 판단과 동시에 불안, 위협이라는 양면적 특성을 초래한 사회적 특성이다.

2. 복식의 익명성

복식은 착용자의 나이, 지위, 직업 등 정체성의 표현이다. 익명성은 전술한 바 감추어진 정체성을 뜻하며 이름과 얼굴의 감춤을 통해 나타난다. 이름의 감춤은 무명, 가명, 불확실한 견본용 대중 호칭 등을 통해, 얼굴의 감춤은 정체를 은닉하거나 가면, 복면 착용 등의 표현 방식을 통해 얻어진다. 복식의 익명성에 있어 이름의 감춤은 작자 미상 즉 복식의 창조자인 디자이너의 이름의 부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얼굴의 감춤은 대외활동의 부재로 인해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 그리고 얼굴을 숨기는 복식 아이템 등을 통한 착용자의 익명 페르소나로 나타난다. 본 절에서는 1절에서 고찰한 익명의 표현방식에 따라 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이름의 은닉: 이름이 비공개된 디자이너의 익명성

현대패션에 있어 디자이너는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고 선도하는 패션 리더로서 명망이 높고 이들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명이 되어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복식사를 통해 볼 때 찰스 프레데릭 워스 이전에는 복식을 창조한 디자이너는 무명적 존재로서 그들의 이름과 정체성은 거의 알려 있지 않다. 물론 당대인들에게 있어 이들의 존재는 알려졌으나 역사적 기록에 남지는 못한 도구적 존재, 기술 장인이었기에 익명으로 존재했다.

최근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는 창조적 천재로서 특정 디자이너 1인을 강조하는 셀럽 디자이너 브랜드와 달리, 베트멍(Vetements), 아더 에러(Ader Error), 69 등과 같은 브랜드들에서의 집단지성의 공동 디자인을 강조하는 컬트도 존재한다(Hahn, 2018; M. Kim, 2016). 이런 브랜드에서는 하나의 디자인은 한 개인의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여러 동료 디자이너들의 협업을 통해 창조된다.

2) 얼굴의 은닉: 은둔 디자이너의 익명성과 얼굴을 가린 복식 착용자의 익명성

워스가 패션 디자이너에게 예술가와 같이 창조자로서의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이름을 갖게 한 이래 현대 디자이너 브랜드에 있어 디자이너의 이름은 일종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 중 은둔하여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익명 페르소나를 보이는 디자이너들도 존재한다. 익명 페르소나를 보이는 디자이너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거의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고차원적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Ye & Yim, 2015).

인간의 얼굴은 한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타인과 구별 짓기의 기준이 되는 신체 부위이다. 따라서 얼굴을 감추는 것은 착용자의 익명성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되므로 이를 위한 다양한 복식 아이템이 제작되었다. 얼굴을 감추는 대표적 복식 아이템에 가면이 있다. 가면(假面)은 말 그대로 가짜 얼굴을 뜻하며 여기서 얼굴이 인물의 정체성을 뜻하므로 가면은 가짜 정체성 즉 다른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Chang, 2016). 가면은 표정, 감정을 감추어 주고 일시적으로 익명의 다른 존재가 되게 하는 변신의 도구이다. 공연 중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면을 제외하고 일상의 가면은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일탈과 해방의 축제 정신을 갖고 있어 가장무도회와 카니발 등에서 착용되어왔고, 신분을 숨기는 익명성의 보호 속에 억눌렸던 본성을 발산하는데 애용되어왔다(Kim, 2008).

얼굴 전체를 거의 완전히 덮는 복식 아이템에 발라클라바, 헬멧 등이 있다. 발라클라바는 원래 크림 전쟁기에 군인을 위해 개발된 기능적 복식이었지만, 거의 완전히 얼굴을 가려 시각적 개성을 감추어 모호하게 만들고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게하는 복식 아이템이어서 사형집행인, 범죄자, 불법 무장단체 등이 사용했고 두려움을 주는 익명적인 복식의 아이콘이 되었다(McDowell, 2013). 발라클라바의 강력한 익명성을 활용한 뮤지션에는 푸시 라이엇(Pussy Riot)이 있다. 푸시 라이엇은 러시아의 무명의 페미니스트 펑크 록 밴드로 러시아 정권에 대한 도발적 시위, 언론의 자유와 미디어 독립을 주장하는 대담한 정치적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선명한 색상의 발라클라바를 착용했고 이는 이들의 시그니처 룩이자 반 기성주의 미학의 일부가 되었다(Rabimov, 2020). 한국 래퍼 마미손은 고무장갑이 연상되는 발라클라바를 쓰고 ‘쇼 미더 머니’에 참가해 솔직하고 자유로워야 할 래퍼들이 레이블의 인맥이나 상업성에 좌우되는 모습을 ‘디스’하는데, 사실 그의 래핑을 통해 기성 래퍼 매드 클라운임을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능청스럽게 이른바 ‘부캐’ 페르소나를 연기한다(Kang & Lee, 2020). 마미손은 발라클라바가 가진 익명의 자유와 저항의 상징을 빌어 당당하게 한국 랩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처럼 발라클라바는 착용자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는 익명 페르소나 아이템이자, 투쟁자의 심볼이 되었다(Bobb, 2018). 헬멧 역시 발라클라바와 같이 보호용 장구이자 얼굴 전체를 덮어 신분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아이템이다. DJ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는 사생활 보호와 그들의 로봇 캐릭터(robot egos)를 창조하기 위해 로봇 헬멧을 착용하고 활동한다(Barker, 2021).

기타 부분적으로 얼굴을 감추는 아이템들에는 마스크, 복면 스카프, 아이웨어 등이 있다. 마스크와 복면 스카프는 얼굴의 아랫부분을 넓게 가림으로써 신분을 숨기는 데 종종 활용되어왔다. 특히 마스크는 최근 코비드 19 이후 보건용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이전에는 주로 연예인의 공항 패션에서부터 경찰이나 검찰 소환시 신분 가리개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아이웨어는 가장 쉽게 외모의 변화를 주고 착용자의 감정을 가장하는 수단으로 현대인의 익명적 가장성의 표현이다(Kim, 2014). 이들은 얼굴 전체를 덮지는 않으나 특징적 신체 부위를 부분적으로 감춤으로써 얼굴을 모호하게 만들어 착용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을 방해한다.

얼굴을 포함한 머리 부위를 덮는 다양한 머리장식들(headdress), 더 나아가 몸까지 연장해 가리는 다양한 복식 중에도 익명성을 갖는 아이템들이 있다. 그중 눈 주위를 제외한 얼굴 전반과 머리를 가리는 베일인 이슬람의 니캅, 더 나아가 몸 전체까지 가리는 부르카 등이 있다. 이는 종교 문화의 정숙성에 기인한 것으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존재감과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Lee, 2015; McDowell, 2013). 한편, 머리 장식 중 후드는 기후나 외부 위험으로부터 머리 부위를 보호하는 기능적 복식 아이템이고 얼굴을 전부 가리지는 않지만 깊이 눌러 써서 얼굴을 감춘 후드는 타인의 시선이나 공공장소의 CCTV로부터 착용자의 정체성을 감출 수 있는 즉각적 익명성을 제공해주는 아이템이 되었다(Choi & Kim, 2012).

3) 집단 속 은닉: 몰개성적 유니폼을 통한 착용자의 익명성

착용자의 집단 속 은닉은 유니폼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유니폼은 착용자가 집단 속에 섞이도록 돕는 사회적 위장의 형태가 될 수 있으므로 착용자는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개성을 포기한다(McDowell, 2013). 유니폼은 많은 계층의 상징물들이 사라짐과 함께 대량 생산복의 첫 번째 형태로서 탄생했는데, 19세기 유니폼은 업종 증가와 대도시에서의 생활의 규격화를 의미했으며,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감추려고 의도된 것이었다(Wilson, 1985). 유니폼은 착용자의 현재 역할에 대해서만 전달하고 다른 역할에 대한 정보를 감추며 집단의 일부임을 강조한다(Y. Kim, 2003). 유니폼은 집단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의복을 착용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을 감춘다는 점에서 익명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니폼에 의한 개인 정체성에 대한 익명성은 아이러니하게 착용자의 집단 정체성은 오히려 강조한다.

지금까지 살펴본바 결국 복식의 익명성은 익명성의 정의에 포함된 정체성 감춤을 위한 세 가지 표현방식 즉 이름의 은닉, 얼굴의 은닉, 집단 속은닉에 준거하여 볼 때 1) 창조한 디자이너의 이름의 비공개, 공동 팀 디자인 창작 2)디자이너의 은둔을 통한 얼굴 비공개, 얼굴을 가리는 복식 아이템 연출을 통한 착용자의 얼굴 비공개 3)집단 유니폼 착용을 통한 착용자의 개성 없애기를 통해 적용되고 있었다. 이를 정체성이 감추어진 주체에 따라 정리하면 디자이너와 착용자 두 차원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복식의 익명성의 개념, 표현방식을 정리하면 다음의 <Fig. 1>과 같다.


<Fig. 1> 
The Anonymity of Dress


Ⅲ. 현대패션의 익명성 표현 분석

본 장에서는 II장의 익명성의 개념과 그 표현방식을 통해 도출한 <Fig. 1>의 디자이너, 착용자의 익명성의 표현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패션 컬렉션에 나타난 디자이너의 익명성의 구체적 표현에 대해 분석하였다. 패션 컬렉션에서의 익명성은 창작자의 의도적인 익명 페르소나 연출로써 표현되므로 창작자인 디자이너 자신과 창작자의 디자인을 착용하는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고찰한 후 이러한 컬렉션에서의 익명성의 구체적 표현을 통해 앞장에서 고찰한 익명성의 특성 중 어떠한 부분에 집중하여 디자이너가 의미를 담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1. 현대 컬렉션에서의 익명성
1)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

현대패션 컬렉션에 있어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 마케팅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있다. 마르지엘라는 메일, 팩스로 비대면 인터뷰를 한다거나, 쇼 피날레에 등장하지 않고 무명의 빈 라벨 혹은 숫자로만 브랜드 내 컬렉션을 구별하는 라벨 등을 통해 얼굴의 은닉, 디자이너 이름의 은닉 등 익명의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공동 작업을 통해 디자인하며 모든 디자인 스태프들이 흰색 실험복 가운을 착용함으로써 디자이너 개인 작업으로서의 흔적을 없애고 익명성을 강조한다. 신비주의는 마르지엘라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며, 그는 익명성이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설명한다(Zacharek, 2020).

이러한 마르지엘라의 익명 페르소나는 이후 여러 브랜드에 영향을 미쳤고 그중 익명의 디자인 집단(design collective)의 브랜드 베트멍이 있다. 베트멍이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후 베트멍의 공동설립자 중 하나인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가 유명해졌기는 했으나, 베트멍의 디자인 방식은 한 명의 대표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분업하거나 보조하는 기존 브랜드 방식과는 달리, 위계질서를 허물고 디자인 집단이 함께 민주적으로 의논하면서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협업 방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르지엘라와 마찬가지로 익명적이다. 베트멍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프랑스어로 옷을 뜻하는데 그 자체가 동시대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명을 정하고 라벨을 통해 가치를 부여한 것과는 상반된 행위였다. 디자이너를 익명화하고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명에 ‘옷’이라는 포괄적인(generic) 통칭을 부여한 것은 디자이너 이름만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혐오감과 옷에 본질적으로 집중하고자 한 것이다(Fury, 2015). 이러한 대면 인터뷰, 피날레 등장을 기피하고, 디자인 집단을 강조하는 마르지엘라, 베트멍의 익명 페르소나 접근은 이후 여러 컨템퍼러리 디자이너들에 의해 추종되었다.

2)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

익명 페르소나를 활용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패션 프레젠테이션의 착용자인 모델에게 역시 익명 페르소나를 적용한다. 대표적으로 익명 페르소나를 활용하고 있는 마르지엘라나 베트멍의 패션 프레젠테이션의 경우 종종 패션계의 유명 전문 모델이 아닌 익명의 일반인들이 캣워크 모델로 캐스팅되었다<Fig. 2>. 이는 모델의 외모나 인지도보다는 관객들이 옷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Borrelli-Persson, 2016; Lee, 2020).


<Fig. 2> 
Vetements 2018 Spring RTW (Vogue US, n.d.-a)

또 일반인 모델인지 유명 모델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도록 패션쇼나 프레젠테이션에서 모델의 얼굴을 가리는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마르지엘라는 2000년 FW, 2009년 SS 컬렉션에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어버리거나, 2001년 SS 컬렉션, 2008년 SS 컬렉션에서 모델의 눈 부위를 블랙 띠 원단으로 가렸고<Fig. 3>, 1995년 FW, 1996년 SS, 1999년 SS, 2009년 SS 컬렉션 등 다수의 컬렉션에서 얼굴을 완전히 감싸는 복면, 가면, 베일 등을 활용했다. 이러한 얼굴을 가리는 익명 페르소나를 위한 복식 아이템<Fig. 4>은 마르지엘라의 신비로운 정체성 구성요소 중 하나며, 이는 의복만큼 중요한 도구다(Shin, 2013).


<Fig. 3> 
Maison Margiela 2001 Spring RTW (Vogue US, n.d.-b)


<Fig. 4> 
Maison Margiela 1996 Spring RTW (Vogue US, n.d.-c)

베트멍 역시 얼굴을 가림으로써 모델의 정체성을 감추는 익명 페르소나의 복식 아이템을 컬렉션에서 선보인다. 2019년 SS 컬렉션에서 베트멍 모델들은 깊숙하게 후드를 착용하여 얼굴을 가리거나 발라클라바, 지퍼 달린 복면 등을 착용하고 있는데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는 어린 시절 고국 조지아의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성장했고 그에게 있어 머리에 덮는 커버링은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안전을 향한 갈망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Nam & Yaeger, 2018). 또 베트멍은 시사 이슈에 대한 강한 패션 스테이트먼트를 해 온 브랜드인데, 2019년 FW 컬렉션에서 정체성 없이 위험한 거래가 오가는 다크넷과 프라이버시 없는 현대의 감시사회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무정부주의 상징, 가짜 인터폴 표지판 등의 그래픽 있는 후드 티 디자인과 함께 발라클라바<Fig. 5>, 상체를 덮는 긴 베일, 옷을 해체, 재구성해서 만든 머리 장식 등을 함께 스타일링했다. 2020 FW 컬렉션에서는 검은색 선글라스에 깊숙이 스냅백을 눌러써서 얼굴을 반쯤 가리고 ’No Social Media, Thank You’라는 슬로건 티로 최근 SNS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진술했고<Fig. 6> 2021 FW 컬렉션에서는 무정부주의 상징, 슬로건 등의 그래픽 티셔츠와 함께 블랙 발라클라바, 베일, 수갑을 착용한 모델들, 그리고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모델들이 등장해 강한 정치적 진술을 표현했으며 2022 FW 컬렉션에서는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현재의 세상에 대해 표현하기 위하여(Phelps, 2021), 72개 룩 중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모델들 이 머리 전체를 가리는 복면을 쓰고 있다<Fig. 7>.


<Fig. 5> 
Vetements 2019 Fall RTW (Vogue US, n.d.-d)


<Fig. 6> 
Vetements 2020 Fall RTW (Vogue US, n.d.-e)


<Fig. 7> 
Vetements 2022 Fall RTW (Vogue US, n.d.-f)

현대 남성복 컬렉션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일찍이 자신의 라벨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일반인을 모델로 선정하거나 체크무늬 후드, 복면을 뒤집어쓴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움으로써 모델의 익명성을 구현하곤 했다(Yim, 2015). 라프 시몬스는 마르지엘라의 또 다른 숭배자로서 가급적 자신의 라벨에서 익명적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Johnson, 2014). 2002년 SS 컬렉션에서는 후드 위에 복면 스카프를 한번 더 휘감아 모델의 얼굴을 가려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횃불을 들고 항쟁하는 모델 연출을 통해 이 시대의 테러, 공포에 관해 표현했다(Yotka, 2021)<Fig 8>. 2003 SS 컬렉션에서는 ‘당신이 소비하는 것처럼 당신도 소비될 위험이 있다’(Hapsical-Raf Simons’, 2016)고 하며 오늘날 소비주의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스냅백 위에 검은 베일을 늘어뜨려 모델의 얼굴을 익명적으로 가렸고, 2016년 SS 컬렉션에서 깊게 눌러쓴 후드와 체크 무늬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 중세시대 비밀 결사와 같이 21세기의 갱을 표현했다(Blanks, 2015).


<Fig. 8> 
Raf Simons 2002 Spring Menswear (Vogue US, n.d.-g)

한편,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언더커버(Undercover) 등과 같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익명적 표현이 나타났다. ‘media shy’라고 불릴 정도의 익명 페르소나를 보여주는(Ye & Yim, 2015) 꼼 데 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는 2006년 FW 컬렉션에서 ‘페르소나,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라는 주제 하에 베니스 카니발 마스크를 통해 모델의 얼굴을 가리고, 우리가 세상에 우리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구성하는 위장에 대해 시각적으로 표현했고(Mower, 2006) 2014년 Fall 컬렉션에서는 ‘괴물’이라는 주제 하에 부르카 변형의 니트 머리장식을 통해 얼굴을 가리고 인간이 아닌 거대한 생명체를 만들어 인간의 광기, 두려움, 상식을 초월한 느낌을 표현했다<Fig. 9>. 준야 와타나베 역시 런웨이 피날레에 등장하지 않거나 인터뷰하지 않고 사생활 보호에 집착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는데(Fury, 2016), 2006년 FW 컬렉션에서 전기 테이프, 뾰족한 실버 스터드로 만든 불길한 검정 가죽 가면을 모델에게 씌워 펑키한 무정부주의를 표현했다<Fig. 10>. 언더커버의 준 타카하시(Jun Takahashi)는 2019년 FW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폭력적 디스토피아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의 주인공 알렉스와 17세기 화가 카라바지오(Caravaggio)로부터 영감을 받아 알렉스의 죄수복에 얼굴을 가리는 반가면을 스타일링한 기사들의 컬트적 피날레를 연출하여 섬뜩하고 환상적인 쇼를 진행했고<Fig. 11> 2021년 FW 컬렉션에서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영감을 받아 종말 이후 익명의 로봇 휴머노이드를 표현했다<Fig. 12>.


<Fig. 9> 
Commes des Garcons 2014 Fall RTW (Vogue US, n.d.-h)


<Fig. 10> 
Junya Watanabe 2006 Fall RTW (Vogue US, n.d.-i)


<Fig. 11> 
Undercover 2019 Fall Menswear (Vogue US, n.d.-j; Vogue US, n.d.-k)


<Fig. 12> 
Undercover 2021 Fall RTW (Vogue US, n.d.-l)

언더커버 컬렉션과 같이 판타지 쇼를 연출하고 있는 구치 컬렉션에도 발라클라바와 가면 등을 통해 모델을 익명적으로 만든다. 2018년 FW 컬렉션에는 모델의 얼굴을 가리는 니트 발라클라바, 레이스 부르카, 후드 등의 익명 페르소나 아이템을 활용하며 미켈레는 우리는 우리 삶의 프랑켄슈타인 박사고 디자이너와 성형외과 의사 둘다 한 개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대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했다(Mower, 2018; Rabimov, 2020)<Fig. 13>. 2019 FW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가면들이 등장하는데, 알렉산드로 미켈레(Alexandro Michele)는 가면은 미묘하면서도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열린 가능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고 했다(Phelps, 2019)<Fig. 14>.


<Fig. 13> 
Gucci 2018 FALL RTW (Vogue US, n.d.-m)


<Fig. 14> 
Gucci 2019 FALL RTW (Vogue US, n.d.-n)

리처드 퀸(Richard Quinn)은 빈티지 꽃 프린트, 다양한 프린트로 잘 알려진 런던 디자이너인데, 그의 컬렉션에는 의복에 사용된 프린트로 얼굴을 가린 복면, 헬멧 그리고 가죽, 라텍스로 된 페티쉬한 복면이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인터뷰에서 퀸은 남성, 여성, 그리고 그 외의 정체성을 가진 드래그 아티스트까지 다른 헤어와 메이크업의 맥락을 포괄한 모든 사람을 위해 디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얘기한다(Shearsmith, 2021)<Fig. 15>. 또, 후세인 샬라얀은 1998 SS 컬렉션에서 부르카, 나무로 된 헤드드레스를 모델에게 착용함으로써 얼굴이 가려질 때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정체성 개념(Purcaru, 2011)을 표현하였고, 2018 SS 컬렉션에서는 디지털 세상에서의 사라진 개인의 존재라는 아이디어를 주제로 블랙 선글라스를 쓴 모델 위에 검은 베일을 이중으로 착용시킨다(Leitch, 2017)<Fig. 16>.


<Fig. 15> 
Richard Quinn 2018 FALL RTW (Vogue US, n.d.-o)


<Fig. 16> 
Chalayan 2018 Spring RTW (Vogue US, n.d.-p)

한편 모델을 익명적으로 표현하는 다른 방식으로 집단 속 익명을 표현하는 유니폼적 접근이 있다. 다양한 새로운 룩을 통해 패션을 선도하는 현대 컬렉션에서 유니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으나 일부 디자이너들이 개성은 없애고 집단이 가진 정체성을 강조하는 유니폼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라프 시몬스의 1999 SS 남성복 컬렉션은 교복에서 영감받아 칼라에 꿰매어진 "R" 기호가 있는 흰색 터틀넥 셔츠를 똑같이 입은 젊은 모델들이 콘크리트 보도 런웨이를 줄지어 빠르게 걷는다<Fig. 17>. 그의 컬렉션은 확립된 스타일 규칙을 갖는 유니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현대 도시의 젊은이를 정확하게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았다(Deleon, 2017; Hapsical-Raf Simons’, 2016). 베트멍의 2020 SS 컬렉션에서는 경비원 유니폼과 맥도널드 브랜드 매니저의 유니폼 등이 등장한다<Fig. 18>.모델들은 앉아 있는 손님들 사이의 통로를 다니고 일부 모델은 프렌치프라이를 먹고 있는 등 일상의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모델과 일반인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컬렉션 룩 중 ‘NOBODY EVERYBODY ANYBODY SOMEBODY’라는 슬로건 후드는 베트멍이 항상 주장하는 일반인을 위한 포괄적 디자인 접근 방식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소비 사회에 대한 냉소적 관찰을 보인다(Foreman, 2019).


<Fig. 17> 
Raf Simons 1999 Spring Menswear (Vogue US, n.d.-q; Vogue US, n.d.-r)


<Fig. 18> 
Vetements 2020 Spring RTW (Vogue US, n.d.-s; Vogue US, n.d.-t)

요컨대 현대패션 컬렉션에서의 익명성은 디자이너와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 만들기에 의해 표현되고 있었다. 먼저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 이름 숭배에 대한 비평 의지로서, 대면 인터뷰, 피날레 등장을 기피하는 은둔의 모습과 디자인의 집단 창작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는 유명 셀럽 모델 대신 익명의 일반인 모델을 캐스팅하여 모델 대신 옷에 집중하게 하거나, 가면, 복면, 발라클라바, 베일, 후드, 헬멧 등을 통해 모델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모델 즉 착용자의 정체성을 익명화하거나, 유니폼을 통해 개인보다는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현대 패션 컬렉션에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래되거나 파괴적 사건을 통한 의도하지 않은 익명성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가리는 것,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의도적이고 의미가 있다. 특히 창작자로서 디자이너가 얼굴을 가리고 신분을 밝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디자인을 하는 것은 무언가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 즉 패션 스테이트먼트가 있다. 다음 절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을 통해 익명성을 표현하면서 관객, 소비자에게 소통하고자 하는 함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2. 함의
1) 상표 물신주의보다는 본질과 진정성의 추구

찰스 프레데릭 워스에 의해 디자이너는 이전의 익명의 장인으로부터 벗어나 독창적인 아티스트 페르소나의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고, 20세기에 와서 유행을 선도하는 셀럽이 되면서 이름과 상표에 대한 숭배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천재적인 창조자로서 디자이너와 그에 따른 상표 물신주의에 대해 저항하여, 은둔하고 디자인 집단의 작업을 강조하는 익명 페르소나 전략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이 현대 컬렉션에 등장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마치 복면가왕 프로그램의 가수들이 공연과 노래 실력만으로 공평하게 평가받고 싶은 것처럼 디자이너 이름이나 상표 대신 옷 자체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싶고 가치 평가해달라는 것, 즉 패션디자인의 진정성,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다. 익명 페르소나의 대표적 디자이너 마르지엘라는 디자인 작업이 한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콜라보레이션한 팀의 결과이며 디자인 그 자체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했다(Wilson, 2008). 베트멍 역시 브랜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옷에만 집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디자이너들은 스스로를 익명의 존재로 만들고 그 연장선상에서 패션 프레젠테이션에 있어 유명 모델의 후광 효과 또한 제거하고자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일반 대중을 모델로 삼거나, 모델의 정체성을 아예 인지할 수 없도록 눈에 안 띄게 얼굴을 가리는 아이템을 스타일링하는 방식이었다. 마르지엘라가 모델의 얼굴을 가린 것은 슈퍼모델, 그리고 동시대 셀러브리티들을 향해 반발하는 일종의 선언이었다(Shin, 2013).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 전략은 더 나아가 SNS에서도 활용 중인데, 그 예로 파리의 한 스타일리스트는 인스타그램에서 밈이나 셀피 대신 익명으로 자신의 스타일링을 소개한다(Satenstein, 2016). 이는 최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SNS를 통해 꾸민 페르소나 만들기와 과다노출증에 대한 반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마르지엘라, 베트멍 등과 같은 브랜드의 익명 페르소나는 이들에 대한 추종집단이 형성되면서 이조차 상업적 마케팅을 위한 의도적 페르소나 전략이 되었다.

2) 신비의 페르소나 만들기를 통한 환상의 세계로 일탈

정체성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던 전근대 사회에서 카니발이나 가면무도회는 가면을 통해 얼굴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 사회 규범이나 기대에서 일탈할 수 있는 장이었다. 카니발, 가면무도회 가면은 현실에서 도피한 환상의 상징물이 되어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언더 커버, 콤 데 가르송, 구치 등 환상적인 주제의 현대 컬렉션에도 종종 등장했다. 이러한 가면을 통한 익명의 표현은 현실의 존재보다는 이상, 꿈, 초현실에서의 신비한 페르소나와 정체성의 표현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보기 힘든 독창적인 가면이나 머리 장식 등의 아이템은 모델을 현실에서 일탈하여 때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기도 하고, 서사 속 등장인물을 만듦으로써 관람자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 디지털 시대 이래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는 현대인들에게 판타지는 현실로부터 탈출구인데, 신비한 익명 페르소나 만들기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는 현대인의 이러한 일탈의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3)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제시

익명성의 특성 중 하나는 정체성을 감춤으로써 안전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시위, 저항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다. 전술했듯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시각적 개성을 감춤으로써 인간을 덜 인간적으로 만들고 두려움을 줄 수 있다. 일부 현대 디자이너 컬렉션에서는 현대 사회의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표출하며, 환경, 테러 등 지구 종말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관람자를 각성시키며 저항의 행동주의를 표현하기 위해 익명성을 사용했다. 즉, 묵시론적 종말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의 안전에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근대 이후 도시화, 대중화에 따라 개인은 익명성, 획일성을 갖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자아 정체감의 위기와 소외,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K. Kim, 2003). 현대 도시의 생활 공간은 전통적인 공동체의 유기적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가는 공간이 되었고 그로 인해 일시적이고 표피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다. 현대인은 거대도시 환경 속에서 우연한 상해, 타인의 공격 등에 대한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또, 인터넷과 소형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 내장 휴대폰, CCTV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원치 않게 노출될 수 있다. 이에 이러한 신체적 위험, 타인의 응시, 공공기관의 감시 등 최근의 익명적 관계와 상황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코쿤(cocoon)적 특징을 지닌 패션을 착용하고 있다(Kim, 2007). 간단하게는 아이웨어, 깊게 눌러 쓴 후드나 모자부터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발라클라바, 복면 스카프, 얼굴과 머리 전체를 감싸는 라텍스 복면 등 익명 페르소나 복식 아이템을 통해 이러한 현대 도시사회의 위험에 대한 안전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디자이너가 읽고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4)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유동적 정체성 표현

최근 일부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는 현대 사회의 유동적 정체성에 대한 사고를 반영한다. 얼굴을 가림으로써, 모델의 정체성은 모호해지며 결정되어 있지 않고 열린 가능성을 가진다. 구치의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익명성 표현은 이러한 열린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의 열린 정체성은 우리의 선천적인 정체성 조건의 제한으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을 뜻하는데, 미켈레는 우리는 포스트 인간 시대(post-human era)에 살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패션 디자이너는 마치 성형 외과 의사처럼 이전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착용자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Mower, 2018). 미켈레의 쇼에서는 얼굴을 가림으로써 스스로 착용자가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동적 여지를 두었고 이는 리처드 퀸의 얼굴을 가리는 익명 표현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익명성은 불확실한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특성이다.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숙명적이고 위계적인 자아정체성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맥락에서 형성된 복수의 정체성과 페르소나를 통해 변화되었고 Giddens는 후기 현대의 다원적 삶에 있어 이러한 복수의 정체성이 핵심이 되었다고 보았다(J. Kim, 2016). 수많은 열린 선택이 있는 불확실성의 후기 현대의 삶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정체성 논의에 있어 주체란 변동 가능하며, 늘 새로운 정체성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Park, 2005). 이러한 포스트모던 자아정체성은 비대면의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에서 나이, 성별, 외모 등의 실체에 제한받지 않기에 보다 극대화되어 멀티 페르소나를 갖는 여러 정체성의 실험이 가능하게 했다(Park, 2005).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고 사이버 공간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현실과 가상의 삶이 병렬되어 오프라인의 실제 자아와 온라인의 대리 자아가 공존하고 지속적으로 재구성됨으로써 유동적 자아정체성의 개념이 형성되고 있다(Kim, 2008; Park & Shin, 2008). 현대패션 컬렉션에서 익명 페르소나 복식 아이템을 통해 착용자의 얼굴을 가리는 스타일링은 얼굴을 가려 정체불명의 백지와 같이 만들어 주고 그때그때 변동 가능한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정체성이라는 현대적 사고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찰한 현대 패션 컬렉션의 익명성 표현을 통해 익명성 표현의 행위자인 패션 디자이너는 수용자인 컬렉션의 관람자에게 의복의 본질에 집중한 평가, 정체를 알 수 없음에서 오는 신비감을 통한 환상적 체험, 불안과 위협을 통한 각성 의식을 유도하였다. 또, 이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는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저항적 행동주의와 근대 이후 사회 구조와 기술의 변화가 초래한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정체성 현상을 진술하고자 표현 의지를 표출하였다.


Ⅳ. 결론

본 연구는 현대의 도시화, 대중화, 비대면 디지털 사회 도래에 따른 현대 사회의 특성 중 하나인 익명성이 현대패션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그 함의는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 결과 현대패션 컬렉션에서 익명성은 창작자인 디자이너 자신과 디자인을 프레젠테이션하는 모델의 정체성을 감추는 익명 페르소나 연출을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디자이너의 익명 페르소나는 창조적 천재로서 1인 디자이너를 유명인으로 만드는 대신 공동 디자인 창작을 강조하거나 미디어에 정체를 노출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나타났고 모델의 익명 페르소나는 유명한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 모델 캐스팅, 얼굴을 가리는 익명 페르소나 아이템 스타일링과 일상의 유니폼 착용을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는 패션 컬렉션 관람자들에게 유명 디자이너, 모델의 후광 효과를 배제시켜 디자인에 집중하게 만들거나, 정체성을 감추는 익명성이 가진 표현의 자유로움을 통해 환상의 세계로 일탈을 꿈꾸게 하고, 현대 사회의 불안과 위기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현대사회의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정체성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스테이트먼트를 담고 있었다.

익명성은 현대 사회의 인간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본 연구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불확실한 정체성의 투영 도구로서 복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현대패션의 관점에서 익명성에 대한 기초자료를 마련한 것에 의의를 둔다. 현대 사회 복식의 정체성 관련 후속 연구로서 최근 유동적인 다양한 정체성과 페르소나 표현 도구로서 패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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