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Current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7 , No. 6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7, No. 5, pp.61-74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18
Received 16 May 2017 Revised 28 Jul 2017 Accepted 16 Aug 2017
DOI: https://doi.org/10.7233/jksc.2017.67.5.061

토환(吐環)에 대한 연구
안지원 ; 홍나영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박사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교수

A Study on Tohwan
Ahn, Jee-Won ; Hong, Na-Young
Ph.D Candidate,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Hong Na-Young, e-mail: nyhong@ewha.ac.kr


Abstract

Tohwan was the name of a buckle on braided belts that wrapped around men’s waists in informal dresses, Pyeonbok. Though no excavated evidence exist, various literary works and portrait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reveal that Tohwan was used. This research intends to identify and establish the notion of Tohwan, and to classify its categories. Literature review include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raditional arts from China and Korea, and artifacts from China. Tohwan was commonly used in the Chinese Yuan dynasty, and it also was worn on men’s informal dresses and military uniforms, such as Cheolik, during Goryeo and Joseon dynasty. Various materials were used for Tohwan, such as jade, aloeswood, tridacnidae spp., gold and silver plating, brass, agate, Hyang-gwan, and Bi-gyeonseok. Tohwan was categorized by its buckles’ lock types, Tohwan-guja and Samtae. Furthermore, Tohwan-guja can be classified specifically into Ring, Hook and the combination of Ring and Hook types. Those consistent variations of shape in Tohwan reveal that there have been no changes throughout time. This research in Tohwan will be significant and lay a foundation for further studies in Tohwan relics and men’s ornaments in Korea.


Keywords: Braided belts, Men’s ornaments, Samtae, Tohwan, Tohwan-guja
키워드: 사대, 남자장신구, 삼태, 토환, 토환구자

Ⅰ. 서론

전통남자 복식에 있어 허리띠[帶]는 예를 갖추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허리띠는 착용자의 신분과 상황에 따라 재질과 색상에 차등을 두어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관복뿐만 아니라 편복을 입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의(周衣), 창의(氅衣), 도포(道袍), 철릭[帖裏]과 같은 일상복용 포를 입은 후에 의관정제의 예를 갖추는 의미로 실끈으로 만든 사대(絲帶)1)를 몸에 둘러 묶어 착용하였다.

토환[吐環, 絛環]2)은 편복에 착용하는 사대를 고정시키는 장치의 일종으로 사대 끝에 달아 사용하였다. 사대는 광다회(廣多繪), 세조대(細絛帶) 등이 전해져오고 있으나 토환의 이름으로 전해져 오는 유물은 전무하여 지금까지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허리띠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대(帶)의 역사,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연구, 각 시대별 연구가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An, 1976; Kim, 1980; Ko, 1978). 이후에 품대(品帶), 광다회(廣多繪), 세조대(細絛帶)와 같은 허리띠의 하위항목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Do, 2006; Im, 2008; Kim, 2008), 최근 내시, 왕자군, 부마, 무인의 복식이나 복식용어에 대한 연구에서 토환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였다(Cho, 2008; Kim, 2016; Lee&Song, 2012; Suh, 2003).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소현세자부터 순종까지의 20건의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10건의 『가례등록(嘉禮謄錄)3)』, 7가지 수정본의 『노걸대(老乞大)』와 그 외의 한국 및 중국 문헌을 통해 토환의 개념을 정립하고 역사적 특징 및 신분과 재질에 따른 토환의 종류를 정리하였다. 일찍이 중국 및 한국에서는 청동기 이전부터 갈고리 형태의 띠고리처럼 다양한 허리띠 장식이 전해져 오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편복에 착용하던 사대용 허리띠 장식을 토환으로 구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토환에 대한 유물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최덕지(1384∼1455) 초상화와 한언(1448-1492)묘 석인상을 통해 실제적으로 사용된 것은 알 수 있다. 따라서 토환의 유형을 분류함에 있어 문헌을 바탕으로 조선전기에 중국과 토환이 교류되었음을 전제하여 중국 회화자료와 출토 유물의 사진자료를 참고하였다. 토환은 남자장신구류이자 상징성과 장식성이 담겨있는 공예품으로 볼 수도 있어, 이를 통해 조선시대 남자장신구에 대한 의미와 심미적인 이해를 높이는 데에 의의가 있다. 토환은 선행연구가 거의 없고 전해져 오는 유물이 전무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각종 문헌과 중국 유물 및 회화자료를 통해 단편적인 정보의 수집하였으며 이를 통해 종합적으로 토환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을 본 논문의 목적으로 한다.


Ⅱ. 문헌에 나타난 토환의 개념 및 형태적 특징

토환은 “끈목으로 된 사대의 띠고리[帶鉤]”(Park, 2009, p. 1429)로 한자어는 絛環이다. 그러나 絛環을 한국어 발음인 ‘조환’이 아닌 중국어 발음 tāohuán에서 유래된 이두(吏讀)식 표현인 吐環(土環)으로 표기하였다. 문헌에 따라서 吐環, 土環, 絛環, 條環이나 토환 툐환과 같이 다양하게 쓰여있으나 발음은 ‘토환’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토환의 형태에 대해 『노박집람(老朴集覽)』에는 “거북ㆍ용ㆍ사자ㆍ범의 머리를 조각하여 끈[絛]의 한쪽에 메어두고 그 끈의 한쪽 끝을 짐승머리모양갈고리[鉤獸頭]의 구멍에 넣어서 풀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으니 토환의 모양도 그러하다4)”고 하였다. Xu(2008)는 “토환은 옥환(玉環), 사대(絲帶), 동구(銅鉤) 세 부분으로 실로 짠 끈 양쪽이 옥으로 된 대구와 옥환을 꿰매어 고정한 형태”라 하였다(p. 147). 이는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의 사대의 양 끝부분에 둥근모양의 서로 여닫는 장치가 달려 있는 <Fig. 1>의 형태에 부합한다. 중종 35년 “동궁전에서 백옥토환을 갖춘 다회[白玉吐環多繪俱]를 잃어버린 후 백옥토환은 찾지 못하고 대홍광다회만 찾았다”는 기사5)를 통해 토환과 사대는 분리가 되는 구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원(元)대 시인 우집(虞集)의 초상화인<Fig. 2>를 보면 둥근 환에 고리를 걸어 잠근 허리띠에서 토환이 나타난다.


<Fig. 1> 
Braided belt

(Park, 2008, p. 216)




<Fig. 2> 
Portrait of Yuji[虞集]

(Ben&Yi, 2002, p. 1407)



고려~조선시대 언해서인 『노걸대』에서 토환, 구자의 용어가 나타나는데, ‘토환’을 고리[골희]6)라 하였으며 ‘구자(鉤子)’는 허리띠 끝에 있는 갈고리7) 라 하였다. 이는 <Fig. 3>과 같이 환(環)과 걸고리 역할의 구자가 토환의 기본 구조라 볼 수 있다. 구조적 형태로는 ‘토환구자’라 부르는 것이 정확한 명칭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문헌에서 ‘토환’만 나타나고 있어 토환은 구자를 포함한 사대의 고정 장치의 통칭으로 보거나 토환이 달린 허리띠 자체를 표현하는 광의의 의미로 쓰였다고 본다.


<Fig. 3> 
Tohwan of Wuxi Museum

(Xu, 2008, p. 145)



중국에서 토환은 원대에 즐겨 착용하였고 이는 유목민족의 복식특성이 잘 나타난 몽골석인상 <Fig. 4>에서 토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 명의 하급관리인 각기(刻期)의 관복8)으로 방령건(方領巾), 요선오자(腰線襖子), 상아토환(象牙絛環), 화(靴)를 갖추었다. 상아토환의 도판은 <Fig. 5>로 <Fig. 4>의 몽골석인상의 토환의 형태와 가장 흡사하여 명나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모자에 대금형 철릭과 토환을 착용하고 있는 <Fig. 6>의 한언(1448-1492)묘의 무인석상의 모습에서 조선전기에는 융복(戎服)인 철릭을 입을 때에는 토환사대를 착용하였을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Fig. 4> 
Stone Statue, Suhbatar

(Bayar, 1994, p. 214)




<Fig. 5> 
Ivory Tohwan of Samjaedohoe

(Wang, n.d., p. 1533)




<Fig. 6> 
Stone Statue, Tombs of Han-un

(Lee&Song, 2012, p. 66)



조선왕조실록에서 토환은 조선전기 태종부터 중종에 이르는 시기 중 45건의 기사에 등장하고 있다. 이 중 33건이 왕이 신하, 야인, 명의 사신에게 내리는 하사품이거나 반대로 진상품에 대한 기사다. 세조 5년에 “야인(野人) 중추(中樞) 김권로(金權老)가 하직하니, 채단의(彩段衣) 1령(領), 말 1필과 홍사대토환채낭도자(紅絲帶絛環彩囊刀子)를 내려 주었다9)” 는 기사를 통해 주머니[綵囊], 장도(刀子)가 있는 토환홍사대는 말과 같이 사여하는 중요한 품목으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산군 11년 대방부인(帶方夫人) 및 구수영(具壽永)이 바친 물건 중 백옥룡목단기화토환(白玉龍牧丹起花吐環)의 값을 쳐주는 기사에서 당시 면포 1백 20필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0). 토환에 대한 기록 중 특이한 것은 주로 야인(野人)의 하사품으로 세조~성종대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으로 내조(來朝)하는 올적합(兀狄哈)에게 공과 죄를 참작하여 상사물(賞賜物)과 관직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Kim, 2009, p. 56).” 이 때 상사물에 토환사대가 나타나는데 채낭도자토환세조(彩囊刀子絛環細絛), 도자토환도아채낭(刀子絛環條兒綵囊), 홍사대토환도자채낭(紅絲帶絛環刀子綵囊), 비견석토환구수랑(飛堅石吐環具繡囊), 다회토환채낭구(多繪絛環綵囊具)11)라 한다. 이를 미루어 토환이 달린 사대에 주머니와 장도를 갖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성종 12년 중국 명에 보내는 물목에서는 토환제휴(絛環提携)라는 것에 주목할 수 있는데, 제휴(提携)는 사대 중간 중간에 주머니, 장도를 매달아 사대에 걸어주는 장치이다. “허리띠를 사용할 때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중국 당(唐)대의 유물에 처음 나타났다(baidu.com, ‘Jehyu’, 2016).” 『헌종조금도(宪宗调禽图)』<Fig. 7>의 명 내시의 사대에 다른 물건을 걸어주는 고리가 있는 것으로 사대에 끼워지는 형태를 보아 이를 제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물 중 <Fig. 8>이 중국 제휴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제휴’라는 명칭은 성종대 실록 기록에만 있어 우리나라에서 즐겨 사용하던 명칭은 아니었던 것 같다.


<Fig. 7> 
Jehyu[提携] of Heonjongjogeumdo

(National Museum of China[NMC], 2003, p. 89)



성종 35년 “동궁전에서 도난당한 백옥토환다회는 이후 대홍색 사대(大紅廣多繪)는 찾아들여 왔으나 백옥토환(白玉吐環)은 최필신 집에 방매되었고 옥대전(玉帶錢)은 은이, 박천석, 양억만 집에 나누어 보관되어있다” 라는 기사가 있다12). 즉, 하나의 토환사대에 3개 이상의 옥대전이 포함된 것이다. 즉, 제휴와 대전은 용도와 형태가 동일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전은 조선 말기에는 <Fig. 9>와 같이 구군복의 전대에 병부주머니를 달아주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임오관례시ㆍ가례시 패물발기』 목록에 각종 대전이 나타나는데, 밀화, 산호, 금패, 비취옥, 옥, 자마노, 니사, 공작석, 보석, 금강석 등 다양한 재료의 대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 1994, pp. 207~209). 즉, 대전은 주머니와 장도를 달아주기 위한 토환사대의 일부분이었지만 토환의 사용이 드물어진 조선 말기까지 단독으로 남아 구군복에 병부 주머니를 달아주는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사대의 고정 장치로 사용된 토환은 유목민족의 문화적 특성과 원대의 선호도에 따라 중국에 정착되었다. 토환이 나타나는 원대의 복식은 마치 고려시대 요선철릭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고려시대의 남자복식문화에서도 토환이 사용되었음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토환은 광의로 허리에 주머니와 장도를 달아주는 대전이 포함된 것 일컫기도 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토환에 대한 기록은 태종 이후 성종 대까지 조선전기 실록에 편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조선후기 찾아보기 힘든 토환과 달리 대전은 초상화와 유물, 문헌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어 그 형태와 착용방법을 알 수 있다.


Ⅲ. 토환의 종류
1. 신분에 따른 토환의 종류
1) 왕의 보장토환(寶裝絛環)

세종 12년 중국 명(明) 선종(宣宗)이 차고 있던 토환을 세종대왕에게 하사한 사건이 있는데,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금바탕에 각색 보석과 진주를 박은 토환사대 1벌[金廂嵌各樣寶石珍珠絛環一副], 현도옥토환대[懸刀玉絛環帶], 토환보대[絛環寶帶], 보장토환[寶裝絛環]13)과 같이 보석으로 장식한 토환을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Fig. 10>의 보석과 진주로 장식한 중국 명대의 토환의 형태와 유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명의 사신인 창성과 세종대왕의 대화에서 “하사한 토환은 속띠를 겉에 착용할 수 없기 때문에 속에 차고 있다” 14)라 하여 토환은 예복 속에 입는 편복 위에 착용하는 용도로 일상복에 착용하거나 예복 속에 입는 옷의 띠[束帶]로 착용하는 용도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국역)증보문헌비고』에는 “명나라 선종이 조선 세종대왕에게 전신망룡의(纏身莽龍衣)와 보장토환대[寶裝絛環帶]를 보내어 왔다” 라 하였다(‘Tohwan’, krpia.co.kr). 선종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선종마상상(宣宗马上像)』과 <Fig. 11>의 『주첨기행락도(朱瞻基行乐图)』에서 선종이 편복인 예살(曳撒)을 입고 입모[奓檐帽]를 쓰고 허리에 보장토환대를 착용한 장면이 있어 세종대왕에게 보내온 전신망룡의와 보장토환대가 이와 유사한 형태일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Fig. 11> 
Sunjong of Jucheomgighaengrakdo

(Clunas & Harrison-Hall, 2014, pp. 146-147)



2) 왕자군의 향삽토환과 부마의 차거토환

왕자군과 공주의 가례 및 관례를 기록한 등록(謄錄)15)의 물목에 토환의 기록이 있는데, 숭선군, 낙선군, 연잉군, 연령군16)의 경우 향삽토환 홍색사대[紅絲廣多繪一香鈒吐環具]가 있으며 숙안공주와 화평옹주 가례등록의 물목에서 부마의 사대로 차거토환 홍색사대[紅絲廣多會一硨磲吐環具]가 나타난다. 이 후 숙명공주, 숙경공주, 명안공주, 화순옹주, 화완옹주의 가례등록에서 토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차거토환을 갖춘 홍색사대에서 차거토환을 감하라[紅絲廣多會一硨磲吐環具減硨磲吐環]”17)라 하여 토환은 언급되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토환이 없이 사대만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중반 영조가 『국혼정례(國婚定例)』와 『상방정례(尙方定例)』를 간행하여 복식을 정비하여 간소화시켰으며 그 영향으로 『가례등록』 물목에서 사대조차 제외되었다고 본다. 오늘날, 토환 명칭의 유물이 전무하고 유물이나 풍속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복식의 간소화 영향 외에도 조선후기 남성복식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포(袍)는 옷의 상하의 비례에 따라 허리선은 높아졌고 포의 비율에 맞춰 옷고름과 사대는 길이를 길게 늘여주었으며, 사대를 옷고름 위로 걸쳐서 가슴높이에 묶어주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였다.

3) 환시(宦侍)의 도은, 두석, 도금토환

환시는 내시 및 낮은 직급의 관리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직급인 내시의 경우, 『가례도감의궤』 및 『세종실록 오례의』를 통해 토환을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과 중국 명은 모두 환관제도가 있었으며 조선의 내시는 명나라와는 다르게 일반 문무관과 같은 제도를 따랐다”18)고 하지만 조선 초기 제정된 의례서의 영향으로 명의 환관 복식과 유사한 형태가 의례적 형식으로 남아 지속적으로 전해져왔다고 본다. 이에 중국 명대의 『주첨기행락도』에서 보이는 내시의 모습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세종실록 오례의』의 흉례시의 의장 중 흉례의식과 가례시 중궁의 노부의 의장제도의 내시의 복장을 보면 자의(紫衣) 혹은 홍의(紅衣)를 입고 모두 청감두(靑甘頭), 도은환사대[鍍銀環多繪], 청행등(靑行縢), 운혜(雲鞋)를 착용19)하고 있어 은도금을 한 토환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소현세자부터 순종까지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귀유치내관[歸遊赤內官]20)의 물목에서 홍의 혹은 자의를 입고 흑단운혜를 신고 두석토환, 청행전, 감투를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물품은 모두 “상의원 제용감에서 만들었다(NRICH, 1999, p. 323).” 『순조순원왕후(純祖純元后)가례도감의궤』반차도에 그려진 <Fig. 12>의 귀유치 내시의 모습은 간략한 묘사로 비록 토환의 착용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자의를 입고 감투, 행등을 갖추고 있어 물목의 내용과 근접한 것을 알 수 있다.


<Fig. 12> 
Gwiyuchi[귀유치]

(Sunjosunwonwanghuga-ryedogam-uigwe, 1802)



내시 외에도 낮은 직급의 관리인 중금(中禁)도 토환을 사용하였는데, 중금은 나이가 15세 이하인 액정서의 별감 밑에 두었던 심부름꾼으로21) 자적단령에 자적관을 쓰고 허리에 도금토환의 오색사로 짠 대를 두르고 귀에는 은귀걸이를 하였다.22) 중금이 내시의 토환보다 귀한 도금토환을 착용하게 한 것이 주의할 만하다. <Fig. 13>은 중국 명헌종(宪宗)의 왕을 시위하는 어린 시종의 모습으로 예살을 입고 허리에 토환을 착용하고 있으며 귀에는 빨간색 보석의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이 모습은 『중종실록』에서 묘사한 중금을 연상하게 한다.


<Fig. 13> 
Tohwan of Heonjong–jogeumdo

(NMC, 2003, p. 89)



2. 재질에 따른 토환의 종류

문헌을 통해 토환의 다양한 재질을 <Table 1>에 정리하여 그 특성을 알아보았다. 『노걸대』에는 금토환, 옥구자, 감금구자(減金鉤子), 감철토환[減鐵絛環]이 나오고 있다. 감금구자는 『노걸대언해본』에 금으로 입사해 놓은 구자띠(금으로 입 욘구 ), 감철토환은 쇠에 입사한 토환(쇠예입 툐환)23)이라 해석하고 있어 이것은 철에 입사기법을 더하여 만들어진 토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기법은 <Fig. 14>의 토환24)에서 나타나는데 형태와 장식기법으로 보았을 때 유사하다.

<Table 1> 
Materials of Tohwan
Documents Materials of Tohwan
Nogeoldae editions
(老乞大刊本)
Nogeoldae (老乞大) Inlaid with iron(鍼鐵), Gold(金)
Buckle(鉤子): Jade(玉), Inlaid with gold(減金)
Nogeoldae-eonhae
(老乞大諺解)
Gold(金), Inlaid with iron(쇠예입 )
Buckle(鉤子):Jade(옥), Inlaid with gold(금으로입 )
Mong-eo Nogeoldae
(蒙語老乞大)
Gold(金), Inlaid with gold(금입사), Buckle(鉤子):Jade(玉)
Garyedogam-uigwe (嘉禮都監儀軌) Brass(豆錫)
Garyedeungrok (嘉禮謄錄) Hyangsap(香鈒), Seashell(硨磲)
Jeungbomunheonbigo (增補文獻備考) Bejeweled(寶裝)
Silrok
(實錄)
Sejongsilrok-oryeui
(世宗實錄五禮儀)
Silver-plated(鍍銀)
Taejong (太宗) Inlaid with iron(鉗鐵)
Sejong (世宗) Hyang-gwan(香串), Agate(瑪瑙)
Sejo (世祖) Carved white jade(白玉鈒), Jade(玉), Seashell(硨磲)
Seongjong (成宗) Bi-gyeonseok(飛堅石), Seashell(硨磲), Gold-plated(鍍金)
Yeonsangun (燕山君) White jade(白玉)
Jungjong (中宗) White jade(白玉), Ornament for belt(帶錢):White jade(白玉)


<Fig. 14> 
Hooks with an inlaid design

(The Chung young Yang Embroidery Museum, 2004, p. 42)



17~18세기의 『가례등록』의 왕자군과 부마의 물목 중 왕자군은 향삽(香鈒)토환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는데 Kim(2016)에 따르면 향삽토환은 향나무에 무늬를 새겨 만든 띠고리라 추측하고 있다(p. 173). 이것은 한편으로 침향(沈香)으로도 볼 수 있는데 “침향은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동양에서 향이나 약재로 사용되어 다른 향약으로 대체하기 매우 어려운 재료”(K. Lee, 2011, p. 97)라 하여 향삽은 침향을 조각한 것으로 왕자군의 신분에 걸맞은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부마는 차거(硨磲)토환을 사용하였는데, 차거는 <Fig. 15>의 대왕조개(Tridacnidae spp.)의 일종으로 “남해(南海)25)에서 나며, 큰 것은 키[箕]만하고, 등에는 바닷조개 껍질처럼 큰 것이 붙어있는데, 이를 갈면 백옥과 같이 된다(AKS, 2015, p.375).” “중국에서는 칠보(七寶)의 하나로 장식에 쓰이는데”, 조개껍질의 두꺼운 부분을 가공하며 대왕조개의 서식지 분포에 따라 중국 남부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재료이다(A Comprehensive Lexicon of Korean Classics[한국고전용어사전], ‘Chageo[차거]’, 2016). 왕자군과 부마의 가례물목을 비교하면 “복식과 패영, 대, 녹피화 등의 물품과 재료에서 차이를 보여준다”하여 이는 왕자군의 물목이 좀 더 귀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어 왕자군이 사용한 향삽이 부마의 차거보다 더 귀한 소재인 것을 유추할 수 있다.(Kim, 2016, p. 174)


<Fig. 15> 
Chageo[硨磲]: Tridacnidae

(baidu.com, ‘Chageo’, 2016)



『세종실록 오례의』와 『가례도감의궤』에서 의장 행사시의 내시의 복식 기록에 은으로 도금한 ‘도은토환’과 놋쇠로 만든 ‘두석토환’이 나타난다. 궁의 하급관리인 중금은 ‘도금토환’을 착용하였다.

이외에도 실록을 통해 향관, 마노, 백옥삽, 옥, 백옥, 비견석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든 토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비견석은 “단단한 규산염(硅酸鹽) 광석”의 일종으로 무게를 가볍게 하는 가공을 거친 옥석류로 추정된다(Korean Studies Promotion Service Project Result Portal, ‘bigeunseok[비견석]’, 2016).

중국에서는 “당, 송 이후 중국 문인 사대부가 연거시에 착용하는 편복에 옥으로 만든 토환사대를 많이 사용하였다.”(Xu, 2008, p. 149) 원의 문헌인 『續古今攷(속고금고)』에 따르면 “사대부, 서민이 옥으로 된 토환을 귀하게 여기며....칠보의 비도, 편대, 피혁의 주머니를 잡패하여 없는 것이 없지만 모두 고제(古制)는 아니다.”26)하여 고제를 바탕으로 원대부터 신분에 상관없이 옥으로 만든 토환을 널리 착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엄격한 금제를 실시하여 옥으로 만든 소재는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토환의 소재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토환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생각되며, 토환은 기능적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급 소재를 사용하여 공예품으로 만들어진 남자 장신구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 차거나 향삽과 같은 소재 명칭은 현재 전해져오는 전통장신구의 재료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토환에 사용된 재질을 통해 한국 전통 남자장신구의 소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Ⅳ. 토환의 유형

토환의 형태와 구조는 회화와 유물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토환’이란 명칭으로 전해져온 유물은 없지만 조선전기 문인이자 학자인 <Fig. 19>의 최덕지 초상화와 <Fig. 6>의 사대부 묘역 무인석인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중국과 유사성이 있는 남자장신구라는 특성과 조선전기에 중국과의 교역품, 하사품, 진헌품 등에서 토환이 종종 교류되었음을 전제로 토환의 형태 및 유형은 원~청대의 초상화와 유물 등의 중국자료를 참고하여 분류하였다.

1. 토환구자(吐環鉤子)유형

토환의 구성은 환(環)과 구자(鉤子)로 되어있어 이를 바탕으로 유형을 살펴보면 환만 사용하는 ‘환형’, 구자만 사용하는 ‘구자형’, 토환과 구자를 세트처럼 사용하는 ‘토환구자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환형은 사대를 앞에서 끈을 묶어 고정하였으며 끈으로 묶이는 토환이 링(Ring)과 같은 형태인 것을 말한다. <Fig. 16> 좌측은 원대 도사(道士)로 알려진 오전절(吳全節, 1269~1346)의 초상화로 타원형의 두꺼운 환만을 사용하여 직접 사대를 묶어 연결하고 있다. <Fig. 16> 우측의 화려한 백옥토환을 착용한 진삭(鎮朔)장군의 초상화는 명대의 것으로 환형은 고대로부터 시대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유형다.


<Fig. 16> 
Ring type(환형)

(Wu, 1998, p. 233; Clunas & Harrison, 2014, p. 76)



두 번째, 구자형은 <Fig. 17>의 중국 명 무관(无款)부부 초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쪽 끝이 구부러져 띠를 걸어 묶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구자의 뒷면에 끈을 묶는 원형의 돌기가 있어 사대를 묶어주도록 되어있다. 현존하는 중국의 구자 유물은 주로 옥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용, 호랑이, 모란, 구름 등을 조각하거나 보석을 올려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원부터 청대까지 구자형 토환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Fig. 17> 
Hook Type(구자형)

(Shi, 2001, p. 25; B.S.O, 2006, p. 217; Liang, 2007, p. 47)



세 번째, 토환구자형은 둥근 고리 형태의 환과 걸어 잠글 수 있도록 하는 구자로 구성된 것이다. <Fig. 18>는 청나라 강희황제의 17번째 아들인 윤예(胤禮)의 초상화로 청대 일상복 포에 토환구자형의 토환을 착용하였다. 이 유형은 환과구자를 사대의 양 끝에 고정하여 사용하였으며 소재, 형태, 구조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조형성을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Fig. 18> 
Combination of Ring and Hook type

(Zhang & Cao, 2012, p. 237; Xu, 2008, p. 145, pp. 149-150)



이와 같이 환형, 구자형, 토환구자형은 모두 시대적으로 유의한 특징은 나타나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와 문양으로 원대부터 청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중국 내에 현존하는 유물로는 두 번째의 구자형과 세 번째 토환구자형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소재는 주로 옥을 사용하였다.

2. 삼태(三台)유형

토환의 앞면의 모양이 “품대(品帶)의 잠금장치인 삼태”(E. Lee, 2011, p. 141)와 동일한 형태로 이를 삼태형으로 분류하였다. 주로 명대의 유물에 많이 나타나며, 명 회화인 『선종마상상』, 『주첨기행락도』, 『헌종행락도(憲宗行樂圖)』, 『헌종조금도』 등에서 사합여의운두(四合如意雲頭)형, 사각형, 타원형 등의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초기 학자인 최덕지 초상화<Fig. 19>에서 주인공은 둥근모와 직령깃의 포를 입고 토환이 달린 붉은 사대를 착용하고 있다. 토환은 노란 테두리가 있는 검정색 운두형의 토환 형태로 소재는 흑각으로 유추된다. <Fig. 20>은 『헌종조금도』의 내시의 모습으로 가느다란 사대에 여러 가지 보석이 박혀있는 운두형의 토환을 차고 있다. 이 회화에서의 토환은 정릉(定陵) 출토의 <Fig. 21>의 토환과 유사하다. 사운문(絲雲紋)과 팔보문(八寶紋)이 섬세하게 새겨진 운두형의 금판 위에 백옥을 조각한 용들이 박혀있는데 장식 양쪽에는 각색의 보석과 진주가 달려 있다. 토환의 앞면에는 금판으로 만든 토환 위에 화려하게 보석이 박혀있거나 옥이나 상아에 용, 호랑이와 같은 문양을 세밀하게 조각하여 금판에 박아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Fig. 22>와 같이 토환 뒷면에 띠꽂이가 있어 잠글 수 있으며 토환의 사대와 연결하는 방법은 양끝의 고리에 사대를 꿰매거나 묶어서 연결하였는데, 이와 같은 대와 토환의 연결방법이 각대의 삼태와 차이점이라 본다. 명대 궁중생활을 그린 기록화와 십삼릉(十三陵)유물에서 삼태유형이 많이 나타나 명대 궁중에서 즐겨 사용하는 유형이 아닐까 유추된다.


<Fig. 19> 
Portrait of Choe Deokji

(Society of Asia culture, 2003, p. 83)




<Fig. 20> 
Part of Heonjongjogeumdo

(NMC, 2003, p. 89)




<Fig. 21> 
Samtae type

(B.S.O, 2006, p. 209)




<Fig. 22> 
Back side of samtea type tohwan

(Liang, 2007, p. 188)




Ⅴ. 결론

토환은 편복을 입고 허리에 둘러 묶어주는 사대의 띠고리로 사대의 양 끝에 서로 걸어 잠그는 장치를 달아주어 고정시키는 남자복식 소품이다. 토환의 착용에 대한 선행연구가 거의 없으며 토환이라 명명된 유물이 전무하나 문헌을 통해 토환의 착용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에 조선시대와 동시대 중국의 문헌, 회화자료, 유물을 통해 단편적일 정보들을 수집하여 토환의 명칭, 역사적 배경, 소재, 특성, 형태, 유형 등을 정리하였다. 토환의 역사적 사용례를 보면 유목민족의 복식특성이 나타난 몽골 석인상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중국 원대부터에 요선오자나 예살에 대중적으로 즐겨 착용하였고 이 영향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융복의 철릭이나 직령포와 같은 편복에 착용하였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하사품이나 진상품 품목으로 토환사대가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토환사대에는 주머니와 장도가 갖추어져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머니와 장도를 달아주기 위해서 대전이 사용되었을 것이며, 토환과 달리 대전은 조선 말기까지 남아 구군복에 착용하였다.

토환을 만드는 재질로는 옥, 향삽, 차거, 도금, 도은, 두석, 향관, 마노, 비견석 등의 기록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다른 재질의 토환을 사용하였다. 왕은 각종 보석과 진주로 장식한 보장토환을, 왕자군과 부마는 각각 향삽과 차거토환을 사용하였으며, 궁에서 일을 하는 환시의 경우에는 신분에 따라 도금ㆍ도은ㆍ두석으로 만든 토환을 착용하였다. 토환의 다양한 재질 중 차거, 향삽과 같은 소재는 현재 전해져오는 전통 장신구 유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이를 통해 한국 전통 남자장신구에 사용된 재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지기를 바란다.

토환의 형태에 대한 유물자료가 전무하나 초상화와 무인석상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중국의 회화와 유물자료를 참고하여 토환의 유형을 구분하였다. 첫 번째, 토환구자유형으로 이를 세분화하여 환형, 구자형, 토환구자형으로 구분하였다. 중국에서는 원대 이전부터 청대까지 시대적 영향 없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착용한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 삼태형은 각대의 잠금 장치인 삼태와 동일한 형태로 명대 궁중에서 즐겨 착용한 것으로 유추된다. 삼태형의 토환은 금으로 만든 판위에 여러 보석으로 장식하거나 조각한 상아나 백옥을 올려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이와 같이 토환은 단순한 사대를 허리에 고정시켜주는 걸고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재질을 이용하여 신분에 나타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예를 갖추기 위한 도구로써 복식문화의 한 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토환은 고려와 조선전기에 즐겨 사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18세기 이후 문헌기록에서도 찾기 힘들어지고 풍속화나 초상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토환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시대 후기 남자 포의 길이 비율의 변화와 더불어 옷고름과 사대를 길게 늘여주고 사대를 옷고름 위로 걸쳐서 가슴높이로 묶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박물관에도 토환으로 명명되지 않았으나 허리장식이나 걸고리 등의 유물이 현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이런 유물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 우리나라 토환유물에 대한 깊은 연구가 지속되고 이를 통해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높은 조선시대 남자 장신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길 바란다.


Notes
1) 실로 짜서 만든 허리띠는 띠를 만드는 방법과 형태에 따라 도아[條兒, 絛兒, 細絛兒, 廣絛兒], 조대(條帶, 絛帶, 細縧帶, 細絛, 細絛帶, 廣條帶, 扁絛, 扁絛帶), 사대(絲帶), 다회(多繪, 廣多繪)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실로 짜서 만든 대의 의미로 사대(絲帶)로 통일하여 지칭한다.
2) 『조선왕조실록』, 『가례도감의궤』, 『가례등록』, 『노걸대』 등의 문헌에서 吐環, 絛環, 토환으로 표기되고 있으며 이 중 吐環의 사용빈도수가 높아 본 논고에서는 ‘토환’이라 통일하여 지칭한다.
3) 왕의 자녀의 결혼을 기록한 자료로 토환자료가 나오는 17~18세기 『가례등록』에 한정한다.
4) 『老朴集覽』

鉤子[用金銀銅金失(鐵)玉角等物刻成龜龍獅虎之頭繫於絛之一端人若帶之則以其絛之一端屈曲爲環納於鉤獸頭之空以爲固使不解落如絛環之制然]

5) 중종 35년 11월 17일(甲辰)

東宮修理後, 世子白玉半束帶一部, 白玉吐環多繪俱一部, 閪失不得之際,...(중략)...玉帶及大紅廣多繪, 覓納矣

6) 『몽어노걸대』(1741) : 金골희
7) 『노걸대언해』(1670 추정) : 옥으로 긋톄갈구리
8) 王圻, 『三才圖會』, 衣服2

[輿服三] 文武官冠服命婦冠服內外官親屬冠服內使冠服侍儀以下冠服士庶冠服樂工冠服軍隸冠服外蕃冠服僧道服色 刻期冠服:宋置快行親從官,明初謂之刻期。冠方頂巾,衣胸背鷹鷂,花腰,線襖子,諸色闊匾絲絛,大象牙雕花環,行縢八帶鞋。洪武六年,惟用雕刻象牙絛環,餘同庶民。

9) 세조 5년 1월 26일(己酉)

野人中樞金權老辭, 賜彩段衣一領、馬一匹及紅絲帶、絛環、綵囊、刀子。

10) 연산군 11년 5월 10일 (甲午)

給帶方夫人及具壽永所進白玉菖蒲蓮鷺鷥交鈒頂子價, 緜布二百二十匹, 淡靑玉麒麟小印價, 緜布一百六十匹, 白玉龍牧丹起花吐環價緜布一百二十匹, 金龍雲頭起畫珊瑚樹價, 緜布二百四十匹, 金龍頭珊瑚樹價, 緜布三百匹。

11) 세조 4년 10월 10일(甲子); 세조 5년 1월 6일(己丑); 세조 5년 1월 26일(己酉); 성종 3년 7월 17일(壬子); 성종 16년 12월 28일(乙巳)
12) 성종 35년 11월 17일(甲辰)

東宮修理時, 以內贍寺膠末進排事入去, 令內贍寺書員玉同, 遮立東宮廂庫門而偸取云。玉帶及大紅廣多繪, 覓納矣, 白玉吐環, 則放賣於西小門外兼司僕崔弼臣家, 玉帶錢, 分在于其同壻司圃署奴銀伊、玉匠朴千石ㆍ梁億萬等家云

13) 세종 12년 7월 17일(乙卯); 세종 17년 4월 11일(壬子); 세종 23년 1월 8일(丙午); 세종 32년 2월 22일(丁酉)
14) 세종 12년 7월 28일(丙寅)

對使臣必以禮服, 不可着裏帶於上, 故佩之於裏。

15) 왕자군(王子君), 공주, 세손(世孫), 옹주, 군주(郡主), 현주(縣主) 등 국왕 직계 자손들의 가례(嘉禮)에 대한 전말을 작성하고 정리한 실무자료이다. 왕자의 경우 관례와 혼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 가례와 관례가 혼재되어 있다.
16) 숭선군가례등록(1648) ; 낙선군가례등록(1657) ; 연잉군관례등록(1703) ; 연령군가례등록(1706)
17) 숙안공주(1649): 紅絲廣多會一硨磲吐環具; 숙명공주(1652): 紅絲廣多會一硨磲吐環具減硨磲吐環; 숙경공주(1659): 紅絲廣多繪一硨磲吐環具硨磲吐環付標減; 명안공주(1680): 紅絲廣多繪一硨磲吐環具硨磲吐環自內付標減; 화순옹주(1732): 紅絲廣多繪一硨磲吐環具自內減硨磲吐環; 화평옹주(1738): 紅絲廣多會一硨磲吐環具; 화완옹주(1749): 紅絲廣多繪一硨渠吐環具自內減
18) 태종 1년6월 신유(辛酉)

獨宦官之服, 因循未革, 與士大夫無異。 若朝廷使臣見之, 肯爲我朝爲知禮乎願令除帽戴巾, 仰遵朝廷之制

19) 오례 흉례 의식 반우반차

內喪返虞班次同, 唯內侍十人着紅衣, 十人着紫衣, 皆靑㔶頭鍍銀環、多繪靑行縢、雲鞋, 分左右

오례 가례 서례 노부 중궁의 노부

十人著紫衣, 十人著紅衣, 皆靑頭鍍銀環多繪靑行縢雲鞋

20) 귀유치[歸遊赤]는 궁중에서 잔심부름하는 나이어린 내시이다.
21) 중금은 어전의 통갈(通喝)로 세조 대에 없어졌다가 성종 15년에 중금의 인원, 복식, 임무 등을 정하여 다시 정비하였다.
22) 성종 15년 11월 23일(丙午)

其服飾, 則紫的冠、鍍金吐環、五色絲文織帶、銀耳環。 表衣, 紫的團領; 裏衣, 夏則一偏草綠紗裌飛介, 冬則用匹段。

23) 지정직기(至正直記)권4, 감철위패(減鐵爲佩)감철(減鐵)은 가벼운 쇠란 의미로 철을 제련하는 방법으로 노걸대의 원문 침철(鍼鐵)의 鍼은 減의 오자로 보고 있다.
24)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도록인 『실의 비밀』에는 ‘허리띠 장식’으로 명명되어 있으나 형태상 토환으로 볼 수 있다.
25) 중국의 남부 근해. 남지나해(南支那海)를 일컫는다.
26) 원(元) 방회(方回) 『속고금고(續古今攷)』(권 25)새인조수(璽印組綬)

大夫民庻貴玉絛環以絲為絛多用道服腰之為美觀襍佩七寳箆刀便袋皮革之囊無所不有皆非古制而腰帶有玉有犀有金有魚袋有角以繫公服也寳玉犀象皮條皮飾亦無所不有世變無窮古學不講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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