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 No. 1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No. 1, pp. 35-53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Jan 2019
Received 06 Jun 2018 Revised 14 Oct 2018 Accepted 15 Jan 2019
DOI: https://doi.org/10.7233/jksc.2019.69.1.035

근대 한국 여성 운동복에 관한 연구
송수진 ; 김정민 ; 홍나영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박사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박사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교수

Study on Women’s Sportswear in Modern Korea
Song, Su-Jin ; Kim, Jeong-Min ; Hong, Na-Young
Ph.D Candidate,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Ph.D Candidate,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Hong Na-Young, e-mail: nyhong@ewha.ac.kr

Funding Information ▼

Abstract

Women’s sports in Korea started with the introduction of gymnastics classes at Ewha School. Teachers from the West altered the students’ skirts and jeogori to make suitable clothes for physical education, while introducing western-style sportswear. After the introduction of gymnastics, women wore diverse sportswear until the Korean liberation; however, detailed studies regarding female sportswear in Korea have been lacking.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of the sportswear in the West, the way sportswear spread in Japan, and the origin of the western-style sportswear that was introduced in Korea. Investigations of literature and photographs from the era of sportswear’s introduction have shown that female students, as their participation became more active, chose diverse sportswear according to their school affiliations or the sports. The most popular form of sportswear was the combination of bloomers and diverse blouse styles. The jumper skirt, called tunic, and blouse combination originated in England, and was then worn in Japan before being introduced in Korea. The jumper skirts were first introduced as gym suit, then were chosen as school uniforms for the summers of the 1930s. Some schools chose to have their students wear rompers, a one-piece combination of bloomers and a blouse, instead of two separate clothing pieces. Though students wore school-assigned sportswear or school uniforms for in-school exercises, they sometimes wore separate uniforms for public competitions. Students who participated in tennis tournaments wore uniforms based on their schools, and many of these school uniforms had white tops and bottoms. These white uniforms can be seen as a reflection of Western fashion. The widespread use of diverse sportswear allowed women to break free from the traditional views of gender, move more freely, and in turn, promote the participation of female students in sports.


Keywords: bloomers, gym suit, modern girl, rompers, tennis wear
키워드: 블루머, 운동복, 근대 여성, 롬퍼스, 테니스 웨어

Ⅰ. 서론

근대 우리나라의 여성 스포츠는 여성 교육기관을 통해 보급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 활동에 보수적이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도입 초기에 많은 사회적 반발이 있었다. 여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고 가랑이를 벌리며 체조를 하는 모습에 놀란 학부모들은 딸들을 데려오기 바빴고, 한성부(漢城府)에서는 정식으로 이화학당에 공문을 보내 체조를 중단할 것을 통고했다(Kim, 2007).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정식 교과 과정으로 채택하면서 여성 스포츠가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이후 정구, 탁구, 배구, 농구, 야구 등 다양한 종목이 소개되었고, 여성들이 운동할 때 착용하기에 적합한 복장이 요구되었다.

우리의 여성 스포츠 도입과 보급 과정은 서양에서 거쳐 온 과정과 닮았다. 초기 여성 체육은 건강한 신체 발달을 목적으로 학교 교육을 통해 체조가 보급되면서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종목에 여성이 참여하면서 보다 적합한 운동복을 찾기 위한 개선 작업이 계속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운동복이 생겨났다. 한편, 이러한 교육을 받고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체조를 보급하기 위해 운동에 적합한 복식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처음에는 치마ㆍ저고리를 운동에 적합하게 개량하는 한편, 자신들이 착용하던 서양식 운동복도 소개하였다.

이 서양식 여성 운동복의 대표적인 예로 블루머를 떠올릴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선행 연구에 의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여성 스포츠가 도입된 이후부터 해방 이전까지 반세기 동안 학교별로, 혹은 종목에 따라 다양한 운동복이 착용 되었는데, 여성 스포츠에 대해 체육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어 온 것과는 달리 운동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여성 운동복에 관해 체육사 분야에서는 Lee(2011)Choi(2014)가 스포츠 도입의 부분으로 언급하였으며, 복식사 분야에서는 You(1989)가 근대 여성복의 일부로 다루었고, Moon(1981), Lee & Kang(1999)은 서양 운동복에 대해서만 연구하였을 뿐, 근대기 우리나라 여성 운동복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대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여성 교육기관은 조선 시대까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삶을 규방에서 보내야 했던 여성의 삶을 해방시킨 계기가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양에서 온 교사들은 여성의 체육활동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이를 위해 전통복식을 개량하는 한편, 자국에서 착용하던 운동복을 소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여학교는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였으며, 당시 서양에서 새롭게 유행하던 운동복이 국내에 바로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 중 일부는 여학교 운동복으로 정착되었으나, 얼마간 착용되다 사라진 것들도 있어 우리나라 여학교의 실정 및 호불호에 따라 서양의 운동복이 선택적으로 도입된 것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근대기 우리나라 여성 운동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며, 여성 운동복이 도입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서양의 패션문화를 우리 식으로 적용해가는 과정을 확인하고 여기에 나타난 한국적 특성을 살펴보는 데에 의의를 두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근대기 여성 운동복을 종류에 따라 나누어 도입 과정과 전개 양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역사가 깊은 여학교의 편년사 및 근대 신문, 잡지 등의 문헌 자료와 사진 자료를 확인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양식 운동복의 도입 과정과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서양 여성 스포츠웨어에 대해 함께 조사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운동복에 관해서도 확인하였다.


Ⅱ. 한국 근대 여성 스포츠와 운동복의 시초
1. 한국 체육 교육의 시작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스포츠가 들어온 것은 개항 이후로 서양 문물이 전래하면서부터이다. 스포츠를 소개한 것은 서양에서 온 외교관과 선교사, 그리고 이들과 접촉하여 외국 문물을 접할 수 있었던 개화파 관료들이었으며, 운동과 노동을 구분하지 않았던 조선인들에게 스포츠 경기를 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낯선 광경이었다. 그러나 고종이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를 공포하여 도외시되던 체육을 강조하였고(You & Lee, 1997), 신체 단련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외세 침략을 막고자 체육이 장려되었으며, 서양식 교육기관의 설립과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점차 스포츠가 보급되어 갔다.

1883년 설립된 원산학사를 시작으로 관립ㆍ사립학교들이 차례로 문을 열었고, 1886년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배화, 정신, 개성 호수돈, 동래 일신 등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여성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여성 스포츠는 교육 기관에서부터 도입되었으며, 1892년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정식 교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교적 사회질서 속에서 집 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학교에서 체조를 한다는 것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한성부가 정식으로 이화학당에 공문을 보내 체조를 중단할 것을 통보하였으나, 이화학당에서는 체조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했고 이것이 근대 여성 체육의 모태가 되었다(Kim, 2007). 체조를 시작으로 정구, 탁구, 배구, 농구, 야구 등 구기 종목과 수영, 스케이트 같은 계절에 따른 다양한 스포츠가 순차적으로 보급되었다. 이와 더불어 여자선수들을 위한 각종 경기대회가 열려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 한국 여성 운동복의 시초

1892년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정식 교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운동에 적합한 차림새가 요구되었다. 개교 초기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한 붉은색 치마저고리를 교복으로 착용하였고, 학생 수가 증가하자 1902년부터는 각자 집에서 원하는 색깔로 지은 한복을 입고 등교하였다(Kim, 2015). 당시 여성들은 19세기 말경부터 유행한 매우 짧은 저고리를 입었는데, 가슴이 드러나지 않도록 허리띠를 가슴에 감았을 뿐 아니라, 둘러 입은 여러 겹의 속옷이 가슴과 허리를 압박하였다. <Fig. 1>은 초기 이화학당의 체조 시간 사진으로 학생들의 치마를 자세히 살펴보면 고름 옆으로 길게 늘인 치마 허리끈이 있어 허리치마를 입고 체조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림으로는 손을 들거나 하는 간단한 체조 동작에도 치마가 흘러내릴 수 있어 본격적인 체육 수업을 위해서는 의복 개선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강한 흉부 압박은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쳐 여성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복식 개량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Fig. 1> 
Gymnastic Class at Ewha Haktang (Lee & Lee, 2006, p. 27)

1911년부터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담당했던 월터(A. Jeannette Walter) 선생과 파이(O. Fawcett Pye) 선생은 학생들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가슴을 조이는 허리치마를 개량하여 조끼허리치마를 만들고 이를 권장하였다(Min & Park, 1981). 처음에는 어머니가 지어주신 옷을 고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교복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일상복에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이를 주위에 전파하여 일반 여성들도 조끼허리치마를 입게 되었다(Ewha 100 Years' Compilation Committee, 1994).

한편, 경술국치 이후 서양식 교복을 착용하던 여학교도 일본에 대한 반발로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교복을 한복으로 바꾸었다(Kim, 2015). 그래서 1910년대가 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검은색이나 남색 빛이 도는 진한 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교복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당시 조끼허리가 달린 통치마가 보급되면서 교복으로도 착용하였으며 저고리 길이도 점차 길어져 1910년대에는 배꼽을 덮을 만큼 긴 저고리가 유행하였고, 반대로 치마는 짧아졌다(Kim, 2015).

이렇게 길어진 저고리와 짧아진 치마는 초기 여학교에서 별도의 운동복을 제정하기 전까지 <Fig. 2>와 같이 자연스럽게 운동복을 겸하게 되었으며, 댕기 머리를 하고 체육 수업을 받았다(You, 2002). 체조를 시작으로 1912년에 농구가, 1913년에 정구가 처음 소개된 이후 배구, 야구 등 구기 종목과 육상 경기 등이 보급되었다. 이화에서는 체육 수업에서 정구를 정식으로 가르쳤고 교내 반 대항 정구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Fig. 2> 
Gymnastic Class at Kyunggi Girls’ High School(1920) (Kyunggi Alumnae Association [KAA], 1998, p. 40)

1920년대에 들어 다양한 스포츠 종목이 보급되었고, 학교 교육의 하나로 편입된 스포츠는 단순히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닌, 즐거운 놀이이자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스포츠는 학교 담장 안에서만 이루어졌고, 대외적 경기 대회는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동아일보는 여성 스포츠를 장려하기 위해 관·사립 여학교들과 협의하여 가장 적당한 종목으로 정구를 선택하였고, 1923년 제1회 전조선여자정구대회를 개최하였다(Korean Women's Tennis Tournament, 1923).

사회적으로 큰 이목을 끌었던 제1회 대회는 주최사인 동아일보에서 경기 내용뿐 아니라 선수들의 운동복, 응원석 분위기 등 대회 이모저모를 자세히 묘사하였다. 대회에 참가한 조선인 학교는 총 여덟 개로 동아일보는 7월 5일 자 신문 마지막 면 전체를 할애하여 학교별 단체 사진과 대회 성적을 실었다. 사진을 살펴보면, 여덟 개 학교 중 세 학교에서 한복을 입고 경기에 참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지역의 여학교들이 대체로 서양식 운동복을 착용한 것과 달리 정신여학교와 <Fig. 3>의 개성 호수돈여학교는 흰색 저고리에 짙은 색상의 치마를 입고 있다. 이는 이화학당에서 조끼허리치마를 고안한 것처럼 운동 경기에 맞게 형태를 일부 수정하였거나, 색상을 맞추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교복이었을 가능성도 높다. 한편, 공주의 영명여학교는 <Fig. 4>처럼 치마저고리를 모두 흰색으로 맞춰 입고 출전하였다. 신문 기사에서 이들을 묘사한 바에 따르면, 영명은 배꽃 같은 소복을 입고(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남방의 부드러움을 보이며, 호스돈은 검은 치마와 건장한 기품을 지녔으며, “두 편이 다 간단한 보통 의복으로 질소하게1)(Jilsohada, n.d.) 차린 모양이 임의순후한2)(Sunhuhada, n.d.) 지방적(地方的) 색채를 띠어 장내에 이채를 끼치었는데”(Numerous Spectator, 1923, 3)라고 하여 한복 치마저고리를 착용한 모습이 소박하며 지방색을 띤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렇듯 한복을 경기복으로 착용하던 학교들도 대회가 거듭될수록 다음 장에서 살펴볼 서양식 원피스 또는 투피스 형태의 정구 유니폼을 사용하였음을 당시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Fig. 3> 
Tennis Players of Hosudon Girls’ School(1923) (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Fig. 4> 
Tennis Players of Youngmyeong Girls’ School(1923) (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Ⅲ. 근대 우리나라에 도입된 해외 여성 운동복

근대 여학교에 서양 스포츠의 도입이 확대되고, 학생들이 활발히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에서 유래된 운동복이 학생들에게 착용되기 시작하였다. 학교 수업 시간에 운동복으로 제일 널리 착용된 것은 반바지인 블루머였으며, 교외에서 열린 정구 대회에서는 위아래 흰색의 유니폼 또는 미디블라우스에 검은 치마가 주로 착용되었다. 이 외에 블라우스와 점퍼스커트의 조합은 교복으로도 채택되었지만, 이를 운동복으로 착용하기도 하였다. 또 블라우스에 허리 아래로 반바지가 붙은 형태의 롬퍼스를 운동복으로 채택한 여학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장에서는 서양에서 유래한 위와 같은 운동복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정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서양 여성 운동복의 발달 양상을 살펴보았고, 동시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교육,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에 일본의 근대 여성 운동복에 대해서도 함께 확인하였다. 이렇게 우리나라 근대 여성 운동복을 서양, 일본의 것과 함께 고찰함으로써 한국적인 특성도 도출해보고자 하였다.

1. 블루머

서양에서 여성 스포츠는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운동복은 학교 체육을 통해 발달하였다. 이 시기 많은 여자대학(college)이 설립되었고, 넉넉한 통을 가진 바지인 블루머(bloomers)를 운동복으로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도입 초기에는 발목까지 오는 블루머 위에 치마를 덧입었으나 이후 농구 경기를 계기로 <Fig. 5>와 같이 치마는 사라지고, 짧은 치마처럼 보이도록 바지 길이가 짧아지고 통은 넓어졌다(Cunningham & Lab, 1993). 블루머와 함께 착용한 울 서지(serge)로 만든 검은색 상의는 흰색 면으로 된 <Fig. 6>의 미디블라우스로 1907년 즈음 바뀌었으며, 이 착장이 여자대학생의 상징이 되어 1930년대까지 유지되었다(Warner, 2013).


<Fig. 5> 
Basketball Players of Smith College dressed in Bloomers(1903) (Melnick, 2007, p. 152)


<Fig. 6> 
American High School Girls dressed in Middies and Bloomers(1915) (Warner, 2013, p. 49)

서양의 블루머는 1900년 전후로 일본에 소개되었다. 블루머 운동복은 미국에서 유학한 이노쿠치 아쿠리(井口あくり, 1871-1931)가 제안한 것으로 블루머인 코시타[袴下] 위에 스커트 모양의 하카마[袴]를 입으면 평상복으로도 착용할 수 있도록 <Fig. 7>과 같이 고안되었다(Tomoko, 2012). 이 차림은 보수적인 여성관에 의해 저항을 받다가 1920년대 이후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검은색 소창(小倉) 또는 세루(セル, serge)로 만들던 상의는 흰색 면으로 만든 블라우스로 바뀌었다(Ichiro, 2005; Association for Women's Physical Education, 1981).


<Fig. 7> 
Gym Suit Proposed by Inokuchi(1906) (Tomoko, 2016, p. 117)

우리나라에서도 블루머는 가장 널리 착용된 여학교 운동복이었다. 블루머는 바지의 길이가 짧기도 했지만, 바지통도 넓어 운동하기에 적합했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루었고, <Fig. 8>처럼 상의로는 세일러 칼라가 달린 흰색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스카프를 매기도 했으며, 이 외에 다양한 모양의 칼라(collar)와 패턴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블루머의 구성, 소재 및 색상과 착장3)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블루머에 대한 논문(Kim, Song & Hong, 2018)에 기술하였다.


<Fig. 8> 
Students of Ewha College dressed in Bloomers(1923-28) (Ewha Archives)

우리나라에는 블루머가 서양에서 여학생의 운동복으로 대중화된 이후에 수용되었다. 그 결과 서양이나 일본과는 달리 블루머 위에 치마를 착용하던 과도기적 단계를 거치치 않고 바로 블루머를 운동복으로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2. 흰색 유니폼

여성의 체육 활동이 시작된 서양에서조차 대부분의 운동 경기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남성 스포츠웨어가 경기별로 세분화된 것과는 달리 여성 스포츠웨어는 학교 체육에서 착용하는 운동복 위주로 발달하였다. 하지만 여성 스포츠 중 테니스는 예외적으로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경기 대회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별도의 경기용 운동복이 마련되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상류층은 사교모임에서 론 테니스(lawn tennis)를 즐겼는데 처음에는 가든파티용 드레스를 그대로 입었다. 그러다 여성의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자 최신 유행 실루엣을 움직임에 적합하도록 조금 개선한 테니스 드레스가 등장했다. 이후 땀을 흘려도 깔끔해 보이도록 전신 화이트 드레스가 널리 착용되었는데, 1884년 윔블던 대회 최초의 우승자인 머드 와트슨(Maud Watson)이 흰색 투피스 드레스를 입고 승리한 것도 유행에 영향을 주었다(Lee, 2006).

이후 스커트 길이는 점차 짧아졌고, 1920년대 초 프랑스의 수잔 렝글렌(Suzanne Lenglen)은 장 파투(Jean Patou)가 디자인한 <Fig. 9>의 테니스웨어를 입고 윔블던 대회에 참가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가 입었던 짧은 플리츠 스커트와 헤어밴드는 이후 테니스웨어로 크게 유행하였다(Lee, 2006). 당시 여성 테니스계를 석권하고, 윔블던 대회에서 6번이나 우승한 수잔 렝글렌은 근대 한국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어, 1920년대 우리나라 신문에도 <Fig. 10>과 같이 그녀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Suzanne Lenglen, Queen of Tennis, 1926).


<Fig. 9> 
Suzanne Lenglen's tennis wear(1920) (Lee, 2006, p. 349)


<Fig. 10> 
Suzanne Lenglen in the Dong-A Ilbo(1926) (Suzanne Lenglen, Queen of Tennis, 1926)

서양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정구대회에서는 특별한 운동복이 착용되었다. 1923년부터 39년까지 개최된 전조선여자정구대회의 경기 내용과 참가 선수들의 사진이 매해 동아일보에 실렸는데, 첫해부터 모든 학교의 선수들이 학교별로 통일된 분위기의 복장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자대회보다 2년 먼저 시작된 남학생의 전조선정구대회의 참가 모집 기사에서 출전 선수들이 ‘유니폼’을 착용해야함을 명시하고 있는데(Apply for participation until today, 1921), 이것으로 미루어 여자부 대회에서도 유니폼 개념의 통일된 운동복을 맞춰 입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복을 입고 참여한 학교도 몇몇 있었지만, 첫 해부터 흰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학교들도 있었다. 여성 스포츠 경기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대에 여성 정구 대회는 큰 관심거리였으며, 이색적인 새하얀 유니폼 역시 주목을 받았다. 신문과 잡지 기사에서는 이 새로운 운동복의 색상에 대해 두드러지게 묘사하였다. <Fig. 11>과 같이 ‘눈 가튼 유이폼’이라고 표현하거나(Impending Women's Tennis Competition, 1923), ‘백설 같은 운동복’이라 기록하기도 하였다(Cheerful and beautiful, 1923).


<Fig. 11> 
Tennis Players of Kyunggi Girls’ High School(1923) (Impending women's tennis competition, 1923)

원피스 혹은 투피스로 구성된 순백의 운동복은 위는 플랫칼라 또는 세일러칼라가 달린 블라우스였고, 아래는 플리츠 등의 주름을 잡은 스커트였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배화여학교에서는 <Fig. 12>와 같이 세일러칼라를 짙은 색으로 하고 흰색 선을 둘렀다. <Fig. 13>과 같이 소매 끝에는 선을 둘렀는데, 붉은 선을 둘러 장식하였다고 기사에서 언급한 것으로(Aura of championship, 1924) 미루어 세일러칼라 역시 붉은색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Fig. 12> 
Tennis Player of Baewha Girls’ High School(1924) (Players of Baewha School at 1st Tennis Tournament, 1924)


<Fig. 13> 
Tennis Players of Baewha Girls’ High School(1923) (Impending women's tennis competition, 1923)

학교나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흰색 정구 유니폼에는 머리띠 또는 모자, 스카프 또는 허리띠를 하기도 하였으며, 스타킹과 신발을 착용하였다. ‘머리동이’4)라고도(Meolidong-i, n.d.) 불린 머리띠를 <Fig. 14>와 같이 이마에 두르고 뒤에서 묶어 늘어뜨렸다. 학교마다 색상 차이가 있었으며, 1923-4년 신문기사에서 배화 선수는 ‘붉은 머리동이’를(Cheerful and beautiful, 1923), 이화 선수는 ‘연두색띄’를(Aura of championship, 1924) 머리에 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교색(校色) 또는 학교 상징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Fig. 14> 
Tennis Players of Ewha College (Ewha Archives)

목에는 색이 있는 스카프를 매기도 했는데, <Fig. 14>의 이화여자전문학교 학생들은 스카프를 매고 그 끝이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게 하였다. 또 <Fig. 15>와 같이 스카프를 짧게 매기도 했으며, 색상 역시 머리띠와 같이 다양했다.


<Fig. 15> 
Tennis Players of Jinmyeong Girls’ High School(1927) (Consecutive victories of Ewha, 1927)

허리에는 허리띠를 했는데 버클을 달아 허리에 꼭 맞게 하거나, 끈으로 느슨하게 묶기도 하였다. 허리띠는 허리 여유분을 고정시켜 경기 때 선수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었을 것이며, <Fig. 11>과 같이 수건을 거는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아래가 흰색일 때, 색상 있는 허리띠는 장식의 역할도 하였다.

흰색 정구복은 서양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당시 사진에서는 허리띠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허리띠를 했다 하더라도 대부분 흰색을 사용했고, 유색은 드물다. 그러나 전조선여자정구대회 사진 속 선수들은 대부분 짙은 색의 허리띠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당시 일본에서는 허리띠[band] 버클에 학교 상징 문양을 넣은 밴드형 휘장[バンド型徽章]을 고안하여 여학생들에게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하카마를 교복으로 입던 시절부터 서양식 교복이 제정된 뒤에도 계속해서 애용되었다(Tomoko, 2012). 제이고등여학교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던 일본인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로, <Fig. 16> 사진 속 허리띠는 당시 일본에서 여학생들이 사용했던 휘장이 달린 허리띠와 유사하다. <Fig. 17>은 진명여고 선수들로, 허리띠에 스트라이프 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스트라이프 허리띠 역시 일본 여학생들의 밴드형 휘장에 많이 사용되었다.


<Fig. 16> 
Tennis Players of Second Girls’ High School(1923) (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Fig. 17> 
Tennis Players of Jinmyeong Girls’ High School(1930) (Photos of Women's Tennis Tournament, 1930)

전조선여자정구대회와 같이 여러 학교가 출전하는 경기 대회에서는 운동복에 교표(校標)를 부착하기도 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미국 학교의 운동선수는 학교 마크를 운동복에 붙이는 것을 큰 명예로 삼는다.’고 하여 서양에서 스포츠가 도입되면서 교표를 붙이는 문화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Countries around the world, 1935). 1923년 7월 5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영명여학교의 운동복을 ‘배꽃 같은 소복에 영(永)자를 쓴 초록빛 리본을 가슴에 단 영명군의 새훗한 차림’이라고 묘사하고 있어 학교 이름을 쓴 리본을 단 것을 알 수 있는데(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이것을 운동복에 단 교표의 초기 형태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도안화된 교표를 운동복 가슴에 부착하여 소속을 나타내었다. 디자인은 다양하여 학교 이름을 직접 쓰거나, 한글 자음만 차용하기도 하고, 학교를 상징하는 마크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Fig. 18>은 숙명여고 사진으로 학교 이름을 직접 썼으며, <Fig. 19>는 정신여학교 사진으로 정신의 ‘ㅈ’과 ‘ㅅ’을 이용하여 도안을 만들어 교표로 사용하였다. 스커트 아래로는 흰색 또는 검은색의 스타킹에 신발을 신었다. 신발은 당시 신문에서 정구화 광고를 찾아볼 수 있어 정구용 운동화가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Tennis Shoes, 1928).


<Fig. 18> 
Tennis Players of Sookmyung Girls’ High School(1935) (The 13rd Korean Women's Tennis Tournament, 1935)


<Fig. 19> 
Tennis Players of Chungshin Girls’ High School(1925) (Observe the Tournament, 1925)

서양에서 비롯한 순백의 테니스웨어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20년대 소개되어 정구대회 유니폼으로 착용되었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원피스 혹은 투피스형이 모두 확인되며 스카프와 머리띠 역시 서양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학교를 상징하는 마크를 제작하여 가슴에 부착하는 것 역시 미국에서 들어온 문화로 보이나, 한글을 사용하여 교표를 제작하는 것은 우리식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서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유색 허리띠는 일본의 영향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미디블라우스와 검은 치마

블루머와 미디블라우스의 조합은 미국에서 여대생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1930년대까지 이어졌지만, 대중에게 공개된 경기에서는 블루머 대신 <Fig. 20>처럼 스커트를 착용해야 했다. 이는 당시 여성의 바지 차림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으로 인해 학교 밖에서는 다리를 드러내는 블루머 착용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Warner, 2006).


<Fig. 20> 
Tennis players of Women’s College of North Carolina(1911) (Warner, 2013, p. 219)

미국과 유사하게 우리나라에서도 흰색 블라우스에 짙은 색의 치마를 운동복으로 착용한 예가 1930년대 종종 보인다. 상의는 학교 운동복으로 착용되었던 미디블라우스에서부터 플랫칼라 블라우스까지 모양이 조금씩 달랐지만 흰색이었고, 목에는 스카프를 다양한 방식으로 둘렀다. 치마로는 <Fig. 21>과 같이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주름을 잡은 플리츠스커트를 착용하였다.


<Fig. 21> 
Tennis Players of Pyongyang Jeong-ui Girls’ High School(1933) (Opening the Women's Tennis Tournament, 1933)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학교별 단체 사진으로,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도 종종 보이기 때문에 사진 속 복장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Fig. 22>와 같이 대회에서 서브를 넣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있어 실제 경기에서도 착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 22> 
Tennis Players of Jinmyeong Girls’ High School(1931) (Photos of Korean Women's Tennis Tournament, 1931)

신문에 실린 정구대회 사진 중에는 블루머를 입은 것으로 보이는 선수는 없고, 모두 치마를 입고 있다. 그러나 <Fig. 23>처럼 이화여자전문학교 교내 대회 우승 기념사진 속 선수들은 학교 운동복이었던 미디블라우스와 블루머 차림을 하고 있다. 이는 외부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교내 대회에서는 바지를 입고 경기를 치른 반면, 대중에게 공개된 자리에서는 치마를 입은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서양에서 사회 통념상 여성의 바지 차림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교내에서는 블루머를 입고 외부에서 운동할 때 그 위에 치마를 덧입었는데, 이와 유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Fig. 23> 
Championship of Campus Tennis Competition at Ewha College(1925-35) (Ewha Archives)

1910년대 서양에서 블루머 대신 미디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착용했을 때에는 발목이 살짝 보이는 정도였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이 길이도 ‘short skirt’(Warner, 2006)라 표현할 만큼 짧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미디블라우스와 검은 치마가 도입된 1930년대에는 이미 무릎길이의 블루머나 테니스웨어가 보급된 시기로 정구대회에서 착용한 스커트 역시 무릎을 조금 넘는 길이였다.

4. 점퍼스커트

서양에서는 블루머 외에 블라우스와 튜닉(tunic)이라 불린 점퍼스커트 차림도 운동복으로 착용되었는데, 이는 운동복 겸 교복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착용되었다. 1892년 학생이 고안한 이 운동복은 니커보커즈(knickerbockers)5)(Fashion Specialist Editorial Committee, 1997) 위에 주름 잡힌 점퍼스커트를 입고, 허리에는 벨트를 두른 차림이었다. 밑단까지 굵은 주름이 잡힌 점퍼스커트는 <Fig. 24>와 같이 자유로운 신체 활동에 적합하여 필드하키 유니폼으로 널리 착용되었으며, 그 외에 농구와 크리켓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 유니폼으로 사용되었다(Lee, 2006).


<Fig. 24> 
Cricket Team at Royal Holloway College dressed in Jumper Skirt(1923) (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 n.d.)

한편, 1922년 동경에 설립된 니카이도 체조숙(二階堂体操塾, 현 일본여자체육대학)에서는 운동복 겸 교복으로 <Fig. 25>와 같은 복장을 착용하였다. 점퍼스커트와 블라우스로 구성된 이 운동복은 니카이도 토쿠요(二階堂トクヨ, 1880-1941)가 영국 체조전문학교 유학 시절 입었던 교복이자 운동복이었던 튜닉을 가져와 교복으로 지정한 것으로 이것은 학교의 상징이 되어, 이후 50년간 착용 되었다(Nikaido School 90th Anniversary Commemorative Journal Compilation Executive Committee, 2013).


<Fig. 25> 
School Uniforms and Sportswear at Nikaido School (Japan Women’s College of Physical Education, n.d.)

우리나라에서는 블루머를 운동복으로 착용한 학교가 더 많았지만,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운동복으로 남색의 점퍼스커트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Aura of championship, 1924). 1923년과 1928년의 전조선여자정구대회에 치마저고리 또는 흰색 유니폼을 착용한 다른 학교 선수들과 달리 숙명의 정구 선수들은 <Fig. 26>의 점퍼스커트 차림으로 출전하였다. 이 점퍼스커트 운동복의 유래는 『신여성(新女性)』에 실린 「숙명여학교평판기(淑明女學校評判記)」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 있었다.


<Fig. 26> 
Tennis Players at Sookmyung Girls’ High School(1923) (A Score in the Tournament, 1923)

…운동장을 내여다브닛가…四十여명학생들이 보기에도 경쾌한 톄조복을 닙고 다가미선생의 지휘 하에 스켓 -경기를 하고 잇섯슴니다.…여긔서 이학생들의 입은 톄조복을 소개할 긔회를 일치 말어야겟슴니다. 뎡구대회에 나갈 마다 퍽 호평을 밧는 것인대 이것은 그 소녀가튼 젊은 다가미 선생이 일본 여자 톄육게의 대가(體育界大家) 이계당(二階堂) 선생의 톄조숙(體操塾)에서 전문연구를 맛치고 나온 이인대 그 이계당 선생이 가장 조흔톄조복으로 추장(推獎)한 것을 그대로 번내여 이 학교 톄조복으로 쓰게 된 것이라 함니다. 우리야 그런 방면에 아모 지식이 업슴니다만은 보기에 사지(四肢) 전신을 운동하는대 족음도 거릿 지안케 경쾌하고 간단한 조와보이는 복장이엿슴니다.… (SW, 1924 p. 62)

즉 숙명의 운동복은 일본 니카이도 체조숙의 점퍼스커트를 도입한 것으로, 그 학교 출신인 숙명의 체육교사가 니카이도 체조숙의 것을 본 따 만든 것이다. 1922년에 설립된 일본 학교의 운동복이 1923년에 국내에서 착용된 것으로 일본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점퍼스커트 운동복이 선보였던 것이다.

숙명에서 운동복으로 채택했던 점퍼스커트는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여학교 교복이 한복에서 서양복으로 바뀌면서 하복으로 채용되어 여러 학교에서 교복으로도 착용하였다. 경기여자고등학교는 1928년에서 1942년까지 감색 맞주름 점퍼스커트와 흰색 플랫칼라 블라우스를 하복(夏服)으로 사용하였는데, <Fig. 27>에서처럼 탁구 경기에 착용하는 등 운동복으로도 활용하였다.


<Fig. 27> 
Championship of Campus Table tennis Competition at Kyunggi Girls’ High School(1936) (KAA, 1998, p. 61)

블루머나 흰색 테니스 유니폼이 서양의 영향으로 도입된 것과 달리, 점퍼스커트 운동복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1930년대 교복으로 도입된 점퍼스커트 역시 일본에서 교복으로 착용하던 스타일로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5. 롬퍼스

서양에서는 1930년대에 여성 스포츠 종목이 다양해지고 움직임이 격렬해지면서, 활동이 자유로운 롬퍼스(rompers) 스타일의 운동복이 등장하였다. 이는 <Fig. 28>처럼 블라우스와 짧은 블루머가 허리에서 연결된 것으로 블루머는 짧은 치마처럼 보였다. 롬퍼스를 입으면 물구나무서기 같은 과격한 동작에도 상의가 들리거나 치마가 뒤집히는 등 신체 노출의 위험이 없어 여성들이 운동할 때 보다 다양한 동작을 가능하게 했다.


<Fig. 28> 
Rompers of University of North Carolina(1938) (Cunningham & Lab, 1993, p. 174)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블라우스와 블루머가 결합된 점프슈트(jump suit)형 운동복인 롬퍼스를 운동복으로 채택한 학교도 있었다. 본 연구의 대상이었던 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Fig. 29>, <Fig. 30>과 같이 롬퍼스를 착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운동복은 1935년에 새로운 교복과 함께 제정된 것으로 보이며, 상의 부분은 앞이 트여 있어 단추 3개로 잠글 수 있었다. 상의는 반소매, 하의는 무릎에서 조금 올라간 길이로 하복 운동복이었다. 허리에는 벨트를 착용했는데(Fifty Years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Ewha Department of Home Economics [FYHCCEDHE], 1979) 단추로 벨트의 길이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분홍, 하늘, 노랑, 연두의 네 가지 색 롬퍼스가 있었으며, 학년에 따라 색이 달라 색상만으로 학년을 구분할 수 있었다(FYHCCEDHE, 1979)고 한다.


<Fig. 29> 
Gym Suit Flat Sketch of Ewha Womans University (FYHCCEDHE, 1979, p. 203)


<Fig. 30> 
Gym Suit of Ewha Womans University(1936) (Ewha Archives)

롬퍼스 운동복은 서양에서는 테니스 드레스 스타일과 결합된 형식도 나타났으며, 팔을 움직이기 쉽게 블루머에 붙은 상의를 민소매로 하고 속에 블라우스를 착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스타일로 개선을 거듭하며 오랜 시간 학교 운동복으로 착용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만 보일 뿐 다른 학교에서는 착용된 예를 아직까지 찾을 수 없었다. 급진적인 스타일이었던 롬퍼스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착용되긴 하였으나 널리 보급되진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Ⅳ. 결론

개항 이후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스포츠는 서양식 교육기관이 설립되면서 학교 교육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여성 스포츠는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사회적 반발이 심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체조를 정식 교과 과목으로 채택하면서 서서히 자리 잡아갔다. 체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입던 짧은 저고리에 허리치마를 그대로 입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꼭 맞는 저고리와 흘러내릴 염려가 있는 허리치마는 운동에 적합하지 않았고, 1911년부터 이화학당에서 체조를 담당했던 월터 선생과 파이 선생은 치마에 조끼허리를 달아 학생들에게 권장하였다. 이후 조끼허리가 달린 통치마는 별도의 운동복이 보급되기 전까지 교복 겸 운동복으로 착용되었다.

체조 말고도 정구, 배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 경기가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에서 유래한 여러 운동복이 소개되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운동복으로 제일 널리 착용된 것은 반바지인 블루머였다. 서양에서 온 교사들이 운동복으로 착용하였던 블루머는 이후 다양한 형태의 블라우스와 함께 여학생의 운동복으로 보급되었고, 특히 당시 미국 여학생들이 착용하던 스타일 그대로 미디블라우스와 함께 주로 착용되었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튜닉이라 불린 점퍼스커트와 블라우스 조합을 운동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이는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복으로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해진 케이스였다. 이후 1930년대가 되면 교복이 한복에서 서양복으로 바뀌면서 하복으로 점퍼스커트를 채용한 학교들이 생겨났고, 이것을 입고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블라우스와 블루머가 결합된 형태인 롬퍼스를 운동복으로 입었던 학교도 있다. 193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이 스타일은 물구나무서기와 같이 격렬한 움직임도 소화할 수 있게 고안된 것으로, 본 연구의 대상이었던 학교 중에서는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만 착용하였다.

교내 체육 활동에서는 학교에서 지정한 운동복이나 교복을 입었다면, 대외 경기에서는 별도의 유니폼을 입기도 하였다. 정구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학교별로 통일된 운동복을 입었는데, 그중 여러 학교에서 위아래를 모두 흰색으로 맞춘 유니폼을 입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양식 원피스 혹은 투피스로 구성된 유니폼뿐만 아니라, 흰색 치마ㆍ저고리를 입고 나온 학교도 있었다. 이러한 순백의 테니스웨어는 서양의 유행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허리에는 유색 허리띠를 둘렀는데, 이는 일본 여학교에서 통용되었던 밴드형 휘장의 영향으로 보인다.

근대기 여성 운동복은 전통 치마ㆍ저고리를 개량한 것에서 시작하여 블루머와 점퍼스커트, 룸퍼스까지 여러 종류가 전래되어 착용되었다. 이는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확대되고 다양한 종목이 보급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신체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운동복이 요구되었고, 서양에서 지속적으로 개선을 거듭한 운동복이 국내에 빠르게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서양식 운동복은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서양 선교사를 통해 직접 소개된 것이 대부분으로 연구 초기 서양식 운동복이 일본을 통해 도입되었을 것이라 가정을 빗나갔다. 연구 결과 여성 스포츠는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기 전에 이미 서양식 교육기관을 통해 보급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서양식 운동복을 받아들여 큰 변형 없이 그대로 착용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된 이후에도 운동복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Notes
1) ‘질소하다’는 ‘꾸밈이 없고 수수하다’는 의미이다.
2) ‘순후하다’는 ‘온순하고 인정이 두텁거나 날씨가 적당하게 따뜻하고 좋다’는 의미이다.
3) 블루머는 허리와 바짓부리에 주름이 있어 바지통이 풍성한 것이 특징으로 고무줄을 넣어 자연스러운 주름을 잡거나, 규칙적으로 주름을 잡은 후 밴드를 달기도 하였다. 소재로는 면이나 모직물이 사용되었고, 색상은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루었으며, 길이는 처음에는 무릎을 덮을 정도였으나 후대로 갈수록 점차 짧아져 역동적인 스포츠를 소화하도록 개선되었다. 블루머의 상의로는 미디블라우스 등 여러 가지 블라우스가 입혀졌다.
4) ‘머리동이’는 머리가 아플 때 머리를 둘러 동이는 물건을 말한다.
5) ‘니커보커즈’는 ‘무릎 근처에서 졸라매게 되어 있고 품이 넉넉한 활동적인 바지’를 말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A2A0101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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