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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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 No. 1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1, pp. 46-58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9 Feb 2020
Received 21 Oct 2019 Revised 13 Jan 2020 Accepted 17 Jan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1.046

조선시대 출토 적삼의 특징에 관한 연구
박선영 ; 이경미
한경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박사과정
한경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부교수⁺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Excavated Jeoksam during the Joseon Dynasty
Sunyoung Park ; Kyungmee Lee
Doctoral Course, Dept. of Clothing Industry, Hankyong National University
Associate Professor, Dept. of Clothing Industry, Hankyong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Kyungmee Lee, e-mail: evangelline@hanmail.net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Jeoksam’s characteristics of form and underclothing during the Joseon Dynasty. Since the 17th century, Jeoksam has alternately been called Hansam, Sama, and Dansam, and can be defined as underwear worn under a Jeogori or as a summer single Jeogori. By examining the relic data in an excavated costume report, I identified its formative characteristics such as Git, Moo, sleeve, Badae, Dongjeong, and textile. Mokpangit was most frequently identified in the 16th_17th centuries. Among the Moo types, Big-triangle-Moo was most in the 16th century, and the no-Moo type has been most common since the 17th century. In terms of the sleeve type comparing the with of armholes and cuffs, narrower and straighter forms coexisted without age distinction. To cover the hand, either Hansam was added to the end of the cuffs or the sleeve was lengthened. In order of frequency of use, textiles used ramie, silk tabby(Ju, 紬), cotton, hemp, gauze, satin and thin silk tabby(Cho, 綃), and the use of cotton increased in 16th_17th centuries. In the single_layer Jeoksam, the position of the Badae was typically at the shoulder(back), and was located at the Git, and armhole. In addition, there was no Dongjeong and no closure. The distinguishable 16th century types are the narrow Git, Mokpangit+Big-triangle- Moo type, and those in the 17th century are the Mokpangit+no-Moo type and the Kalgit+no-Moo type. Jeoksam worn as underwear has no sympathy with decorations, and Goreum or Seop are sometimes omitted. The wide Git, at almost 20centimeters, is also only visible in Jeoksam. Based on this, the lined Jeoksam can be reclassified.


Keywords: excavated clothing, Git, Jeoksam, Joseon Dynasty, Moo
키워드: 출토복식, , 적삼, 조선시대,

Ⅰ. 서론

적삼은 상반신에 착용하는 저고리형의 의복으로 몸에 직접 닿게 착용함으로서 겉옷의 받침옷으로 입는 옷과, 여름용의 홑저고리로 분류 할 수 있다. 전자는 내의(內衣, 속옷), 후자는 외의(外衣)인 것이다. 적삼에 관한 선행연구는 적삼의 개념과 시대별 양식의 차이를 고찰한 연구(Park, 2009), 송효상, 송희종 묘 출토복식의 남성 적삼에 관한 연구(Kweon & Kweon, 2009), 비대칭 접은 사각무의 등장원인과 형태, 재단법 등에 관한 연구(Jin, Kim, & Song, 2013), 조선시대의 좁은깃 적삼과 고려시대, 원나라 복식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Shin, Heo, & Song, 2013) 등이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적삼의 구성요소를 깃, 무, 옆트임, 섶, 뒷길이, 소매, 바대 등으로 분류 하였으며 무와 깃, 섶의 특정 형태를 시대를 대표하는 조형적 특징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선행연구와 조선시대 출토 보고서에 기록된 적삼은 일반적으로 홑저고리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겹적삼도 있으며 저고리로 분류된 유물 중에도 적삼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출토적삼을 모아 시대 순으로 조형적 특징을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내의와 외의의 적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양자를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본 연구는 적삼의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조형적 특징과 내의로서의 특징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적삼’과 내의의 명칭을 고찰하였다. 또한 출토보고서, 연구자료, 유물도록, 사진자료, 도식자료 및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을 종합하여 출토적삼 153점의 시대, 형태, 소재, 각 부분의 치수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또한 내의가 지닌 특징에 대해 논하고, 저고리 중 내의의 특징을 보이는 것을 살펴 적삼으로 재분류해 보았다. 논고 중 동일 보고서에 나타나는 여러 점의 적삼을 구분하기 위해 유물번호(없는 것은 보고서 도록의 번호)를 표기하였다.


Ⅱ. 문헌에 나타나는 적삼용어 분석

조선왕조실록에 적삼(赤衫)은 모두 7건 확인된다. 다섯 건은 왕의 하사품으로, 성종15년 충의위(忠義衛)의 3등에게(Sungjongsillok[成宗實錄], Sungjong 15 Year, Oct. 4), 성종18년(1487) 도화서의 화원들에게(Sungjongsillok[成宗實錄], Sungjong 18 Year, Jul. 4), 중종4년 자궁(資窮)인 자에게(Jungjongsillok[中宗實錄], Jungjong 4 Year, Sep. 11), 중종5년 도원수(都元帥) 종사관에게(Jungjongsillok[中宗實錄], Jungjong 5 Year, May 30), 중종5년지사(知事)와 동지사(同知事)에게 적삼녹피(赤衫鹿皮)를 지급(Jungjongsillok[中宗實錄], Jungjong 5 Year, Nov. 16)한 기록이다. 전후 문맥으로 보았을 때, 계급별로 호피ㆍ녹피ㆍ활을 지급한 점, 적삼녹피를 세는 단위가 가죽을 세는 단위인 점으로 적삼녹피는 복식의 명칭이라기보다 가죽의 명칭이라고 판단된다. Park(2003)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적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쇄자갑(鎖子甲)의 피삼(皮衫)은 사슴가죽[鹿皮] (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인데, 충청도에는 사슴가 죽이 귀하여 장만하기 어려우니 피삼(皮衫)대신 노루가죽[獐皮]으로 속옷(裏)을 만들도록 하였다(세종실록 권29 7년 9월/ …鏁子甲皮衫, 例以鹿皮造作, 道內鹿皮稀貴, 備辦爲難。 請除皮衫, 以獐皮爲裏…). 피삼이란 가죽으로 만든 홑옷으로, 『세종실록(世宗實錄)』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도식을 보면 쇄자갑에는 안감이 없으므로 여기서의 ‘리(裏)’는 안감의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갑옷의 속에 입었던 리의(裏衣) 였다. 즉 쇄자갑(鎖子甲)은 피삼(皮衫)을 속옷으로 갖춰 입었다(p. 102)

이에 근거하여 볼 때, 녹피로 제작되는 적삼은 땀받이 속옷(이후 속옷)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갑옷의 받침옷인 피삼으로 보인다. 나머지 두 건의 기사는 중종29년 중국에서 사온 관복이 적삼의 형태와 같다는 내용이며(Jungjongsillok[中宗實錄], Jungjong 29 Year, Nov. 25), 순조32년 영국의 배에 탑승한 사람들의 복식 중 적삼 같은 옷이 묘사된 내용이다(Sunjosillok[純祖實錄], Sunjo 32Year, Jul. 21). 이 두 건의 적삼도 외의로 보인다. 이상으로 보아 실록에서 나타나는 적삼은 속옷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속옷으로 판단되는 복식은 단삼(單衫: Youngjosillok[英祖實錄] Youngjo 1 Year, Apr. 27), 이삼(裏衫:Jungjosillok[正祖實錄], Jungjo 24 Year, Jun. 25), 소삼(小衫:Jungjosillok[正祖實錄], Jungjo 24 Year, Jun. 26), 한삼(汗衫)이라 생각된다. 옷이 벗겨져 단삼조차 걸치지 못하는 내용으로 볼 때 가장 안에 입는 옷이며, 정조의 병으로 고름이 나와 이삼과 소삼을 적셨다는 내용에 의해 가장 안에 입는 옷으로 판단된다. 한삼이 <Fig. 1>과 같이 소매가 긴 저고리의 형태라는 것은 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이외의 복식이 어떤 형태를 가졌는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Fig. 1> 
Hansam[汗衫] (Achakguebum, 1610)

적삼이 단삼, 한삼, 중국계 차용어인 삼아(衫兒)1)와 혼용되면서 속옷의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서는 삼아를 젹삼으로 언해하였고 속옷이라 하고 있다(vol.1 55/142p). 『17세기국어사전』에도 ‘젹삼: 적삼[衫], 衫兒, 밧기젹삼(汗衫)’으로 설명되어 있다(Hong, Song, Jeong, & Song, 1995, p. 2339). 『사례편람(四禮便覽)』에 ‘汗衫俗稱的衫’으로 기록되어있어 적삼의 한자어도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J. Lee, n.d.).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적삼, 한삼, 단삼의 기록으로는 이들이각기 다른 복식으로 생각되는데, 19세기 전후에 기록된 원고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복식의 명칭이 혼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옷 중 적삼, 한삼이 있고 여자는 단삼이 있으나 옷감의 소요량이 남자저고리 겉감 13척, 적삼 11척, 한삼 3척3촌, 단삼 4척이라 하였다. 여자 겹버선[襪表裏]이 3척인데 한삼과 단삼의 소요량 이와 비슷한 점에서 한삼과 단삼이 저고리형태의 속옷인지, 소매 끝에만 대는 한건(汗巾)만을 지칭한 것인지, 다른 형태의 의복인지는 확실치 않다. 단, 적삼은 남자저고리보다 작은 홑겹의 형태임을 유추할 수 있다(Retrieved from http://db.itkc.or.kr, pp. 412-413). 20세기 이후에는 속옷 상의가 적삼(赤衫), 속적삼(內赤衫)이라는 명칭으로 일관되어지는데, Murayama(2017)의 『조선의 복장(朝鮮の服裝)』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남자의 복장 / 속적삼(內赤衫) : 상의에 입는 속옷, 삼베ㆍ모시ㆍ항라ㆍ캘리코ㆍ옥당목ㆍ서양목 등으로 지으며, 길이는 襦(저고리)와 거의 같다.…여자의 복장 / 상의는 속적삼(內赤衫)이라 불리는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으면 여자 차림새는 완성된다. 적삼 : 저고리 아래에 입는 속옷. 홑옷으로, 만드는 방법이나 치수 등은 저고리와 거의 다르지 않으며 직물이나 색상은 남자 차림새와 거의 동일하다(pp. 18-29).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의 사전작업이며 20세기 초기의 어휘를 가장 잘 수록한2) [조선사서 원고(朝鮮辭書原稿, 1917추정)]의 적삼은 유번(襦袢)이라는 설명이 있고, Joseon Government General(1920, pp. 724-728)에서 발간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는 적삼을 홑옷의 속옷저고리(單衫)으로 설명하여 적삼(赤衫)과 단삼을 같은 복식이라 하고 있다. Kim(1925, p. 31, p. 204)의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에는 젹삼이라 하여 홑겹의 저고리를 지칭하며 수의의 소매 끝에 대어진 부분을 한삼이라 칭하고 있다. Son(1948, p. 1)의 『조선재봉(朝鮮裁縫)』에는 여자의복 중 적삼(赤衫)은 웃옷 夏衣(여름옷), 속적삼[內赤衫]은 저고리 밑에 입는 것, 남자의복중 속적삼[內赤衫]을 윗 속옷이라 하고 있다. Seok(1998, pp. 80-81)의 『우리옷나라』에는 남녀의 복식 중 속적삼을 속옷으로 착용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적삼이 한삼, 단삼 등과 혼용되며 속옷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17세기 이후이며, 이전의 속옷상의는 단삼(單衫)이나 이삼(裏衫), 소삼(小衫) 등의 명칭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출토보고서의 일반적인 표기에 따라 적삼이라 칭한다.


Ⅲ. 구성요소별 적삼의 조형적 특성

본 장에서는 출토적삼의 구성요소를 깃, 무, 소매, 동정, 바대, 소재 등으로 분류하여 시기별 분포를 살펴보았다. 깃은 좁은깃(내어달린목판깃, 들여달린목판깃) 넓은깃(내어달린목판깃, 반내어달린목판깃, 들여달린목판깃, 칼깃, 목판당코깃, 동그레깃)으로 분류하였다. 무는 큰삼각무, 삼각무[襠], 사다리꼴무, 두쪽무, 곡선형무, 무없음으로 분류하였다. 소매는 진동에서 수구까지의 폭이 좁아지는형, 일자형, 넓어지는형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동정의 유무, 바대의 위치, 소재를 파악하였다. 연구 대상은 총 153점이나, 보고서에 형태가 확인되는 것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구성요소마다 총량이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연구대상이 출토복식이므로 근대의 전세유물은 제외하였지만 불복장유물은 조선전기의 것으로 특별히 포함하였다. 저고리로 분류된 것 중 한삼의 형태이거나 속적삼으로 재분류한 15점을 포함하였다. 이는 4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Table 1> 
Holding Situation of Excavated Jeoksam
Century 15 16 17 18 19 Total
Honding Institution
Seok Juseon Memorial Museum [SJMM] 1 19 21 3 1 45
The National Fork Museum of Korea [TNFMK] 3 11 1 3 18
Gyonggi Provincial Museum [GPM] 16 3 2 1 22
Museum of Andong University [MAU] 7 9 16
Prehistoric Museum of Daejeon 3 6 1 10
Museum of Chungbuk University [MCU] 3 5 8
Yetgil Museum [YM] 6 1 7
Suwon Museum [SM] 5 1 6
Museum of Daejeon Metropolitan City [MDMC] 4 4
Sosu Museum 4 4
Woljeongsa Museum 2 2
Museum of Konkuk University [MKU] 2 2
Etc. 7 locations 7 2 9
Total 9 90 44 8 2 153

1. 깃

깃은 총 126점에서 확인된다. <Table 2>은 크게 깃의 너비에 의해 2가지 Type으로 나누었다. 깃 너비 7.5 기준으로 나뉘었다. 왜냐하면, 깃너비 7.5의 선성군 이흠의 대금형상의(no.11013: GPM)는 섶에 주름이 있는 형태로 좁은깃적삼에 유사한 형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가 23㎝으로 착용 시 깃이 목을 감싸지 못하므로 속옷으로 판단하여 적삼으로 포함하였다. Type1은 좁은 깃 20점, Type2(이하 “Type” 생략)는 넓은깃 106점이다. 1-1.내어달린목판깃은 총 17점 중 16세기 15점으로 가장 많이 보인다. 1-2.들여달린목판깃은 16세기에 2점, 17세기에 1점으로 특징적인 것은 섶에 주름이 있다. 넓은깃 중 2-1.내어달린목판깃은 총 56점 중 16세기 36점으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2-2.반내어달린목판깃은 총 10점 중 16세기 6점으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2-3.들여달린목판깃은 총 8점 중 16세기 5점, 17세기 2점, 15세기 1점 있다. 2-4.칼깃은 총 28점 중 17세기에 가장 많은 17점이 분포한다. 2-5.목판당코깃은 18세기에 2점 확인되고, 2-6.동그레깃은 18세기에 1점, 19세기에 1점 보인다.

<Table 2> 
Type of Git [collar]
Type Type 1. Narrow Git Type 2. Wide Git Total
1-1 1-2 2-1 2-2 2-3 2-4 2-5 2-6
Neudalinm okpangit Deulyo dalin mokpangit Neudalinm okpangit Ban neudalinm okpangit Deulyo dalin mokpangit Kalgit Mokpandangko git Donguregit
Century
15 2 5 1 1 9
16 15 2 36 6 5 7 71
17 1 15 3 2 17 38
18 3 2 1 6
19 1 1 2
Total 17 3 56 10 8 28 2 2 126

15세기에는 좁은목판깃과 넓은목판깃이 함께 보이며, 16세기는 가장 다양한 유형의 깃이 공존한다. 17세기는 총 38점 중 넓은목판깃과 칼깃이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 18세기는 목판당코깃과 동그레깃이 처음 보이고 18세기 이후에는 목판깃이 보이지 않는다. 19세기까지도 칼깃이 보인다.

Shin et al.(2013)은 좁은깃이 16세기의 대표유형이라 하였는데, <Fig. 3>와 같이 평창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의 생명주적삼(길이 63㎝)에서 좁은 깃을 볼 수 있다. 길의 길이, 소매의 폭을 제외하고는 <Fig. 2>의 해인사불복장의 고려시대 모시적삼(길이 66.6㎝)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강원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平昌上院寺木造文殊童子坐像腹藏遺物)에서 발견된 2개의 발원문은 세조 12년(1466), 1599년이므로 생명주적삼은 이시기 사이의 복식으로 볼 수 있다3). 첫 번째 발원문의 시기에 넣은 복장물이라면 좁은깃 적삼의 시기가 15세기까지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좁은깃 유형이 17세기 초(고여우 no.8358: SJMM, 1998)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사료된다. Kim(1981)에 의하면 목판당코깃은 저고리에서는 16세기말부터 나타나는데, 적삼에서는 18세기부터 보인다.


<Fig. 2> 
Jeoksam from Buddha’s belly in Haeinsa (Sudeoksa Museum, 2004, p. 90)


<Fig. 3> 
Jeoksam from Buddha’s belly in Sangwonsa (Woljeongsa Museum, 2019, p. 36)

2. 무(袤)와 당(檔)4)

연결형큰삼각무는 겨드랑이 부위에 달리는 삼각형 모양의 무를 소매 재단시 사각형으로 내려달려 재단하여 바느질한 형태이다. 연구자마다 상이하게 지칭하는데 대각선으로 접힌 사각무(Lee, 1998), 사각접음무(Lee, 2000), 비대칭접음삼각무(Jin et al., 2013), 삼각소매무(Kweon & Kweon, 2009)라 칭하였는데, 본 연구에서는 소매에 연결된 형과 따로 재단된 유형으로 연결형, 분리형큰삼각무로 칭한다. 왜냐하면 작은삼각무(당)와는 다른 유형으로 구분하여야 하며, 이응태(1556~1586)묘, 신창맹씨(16세기)묘, 연안김씨(16세기)묘 등 같은 기에서 출토된 적삼에 분리형과 연결형큰삼각무가 함께 보이기 때문에 유사한 유형으로 분류하기 위함이다. 무의 유형은 총 127점에서 확인된다. <Table 3>에서 Type1.큰삼각무는 소매에서 연결되어 재단된 연결형(1-1)과 분리형(1-2)으로 구분된다. 연결형은 재봉선이 앞에 있는 형, 뒤에 있는 형, 좌ㆍ우가 비대칭 인형이 있다. 1.큰삼각무는 총 42점 중 16세기에 1-1.연결형 38점, 1-2.분리형 8점으로 가장 많이 보인다. 2.사다리꼴무는 총 5점으로 15세기 1점, 16세기 2점, 17세기 2점 보인다. 3.두쪽무는 사다리꼴무와 작은삼각무가 연결된 형태인데 9점 중 16세기에 5점, 17세기 3점, 15세기 1점 보인다. 4. 곡선형무는 15점 중 16세기에 10점으로 가장 많이 보인다. 5. 작은삼각무는 15세기 1점, 17세기 1점 보인다. 6.무없음은 총 45점 중 17세기에 26점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며 18세기 이후부터는 이 유형만 보인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무가 보이는데, 16세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큰삼각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에 무의 유형이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시대적 특징이라기보다 16세기의 출토복식이 가장 많이 확인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무가 없는 형태는 1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17세기부터는 그 수가 급증하여 18세기부터는 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근현대 적삼은 무가 없는 형태이므로 전세유물을 전수조사하면 19~20세기에 무 없는 적삼이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낼 것이라 생각된다.

3. 소매

소매유형은 진동에서 수구까지의 폭의 변화로 분류하였다. 이를 위해 진동점을 재설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진동이란 길의 옆선에 팔을 넣기 위한 트임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소매 폭의 변화를 보기 위해 진동점을 재단된 소매가 시작되는 점으로 재설정하였다. 또한 적삼의 소매에 별도의 한삼을 부착한 것은 한삼이 부착된 부분을 수구로 하였다. 수치가 없는 것은 사진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것을 좁아지는 형과 일자형으로 분류하였다. 소매의 유형은 총 110점에서 확인된다. <Table 4> 와 같이 Type1. 좁아지는형 67점, Type2. 일자형 42점, Type3. 넓어지는형 1점이다. 좁아지는형이 더 많은 분포를 보였지만 시대의 차이 없이 일자형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넓어지는형은 한 점(윤선언 no.9460: SJMM, 2009) 확인되었는데 1㎝ 차이이며 솔기가 다 뜯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보고서 자료만으로 유형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Table 4> 
Type of Moo(袤) & Dang(檔)
Type type 1. big triangle type 2.

ladder shaped
type 3.

two pieces
type 4.

curved
type 5.

small triangle
type 6.

none
total
1-1 connected 1-2 separated
Century
15 1 1 1 1 2 1 2 9
16 38 8 2 5 10 9 72
17 3 2 3 3 1 26 38
18 6 6
19 2 2
total 42 9 5 9 15 2 45 127

4. 소재

소재는 총 140점에서 확인된다. <Table 5>와 같이 모시, 주, 무명, 삼베, 사, 단, 초의 순서로 많이 사용되었다. 16세기는 모시-주-무명-삼베의 순서로 나타나는 반면, 17세기는 무명–주-삼베ㆍ모시의 순서로 나타나 17세기 들어 무명의 사용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내 생산이 가능해진 면포가 16세기 후반 활발해진 시장경제에서 주된 화폐역할을 하게 되어 면포 생산량이늘어 면의 사용빈도 또한 함께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 된다(Nation Institute of Korean History [NIKH], 2002, pp. 520-539).

<Table 5> 
Type of Sleeve
Type Type 1 Type 2 Type 3 total
Century
15 3 3 6
16 35 30 65
17 24 9 1 34
18 4 4
19 1 1
total 67 42 1 110

5. 기타구성요소

기타 구성요소는 바대, 동정, 고름이다. 홑옷으로 만들어진 적삼은 바대를 덧대어 헤짐을 방지하였는데, 확인이 가능한 89점 중 바대의 위치가 어깨 56점, 어깨와 고름 28점, 어깨와 진동 1점, 어깨와 깃 1점이며 고름에만 있거나 진동에만 있는 것이 각 1점 확인되었다. 동정은 모두 없으며 고름이나 단추 등의 여밈 장치가 없는 적삼도 31점 확인되었다. 그러나 보고서 자료만으로 바대, 고름의 유무를 판단하고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겹으로 제작된 적삼인데 출토유물 중에는 성주이씨의 겹한삼(no.34: MAU, 2013), 진양정씨의 겹적삼(HD 11, 57: MAU, 2013), 청주양씨의 겹한삼(no.11497: GPM, 2015), 안동김씨의 명주겹적삼(no.11493: SJMM, 2019)이 있다. 그러나 보고서 자료만으로 속옷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6. 소결

이상 조선시대 출토 적삼의 구성요소별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시대별 특징이 나타나는 요소는 깃과 무 그리고 소재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적삼의 시대적 특징은 <Table 6>로서 정리될 수 있다. 깃과 무의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한 99점의 적삼 중 좁은깃은 16세기에 가장많이 분포하지만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도 보인다. 16세기에는 가장 다양한 유형의 적삼이 분포한다. 목판깃이 주도적이며 큰삼각무, 곡선형무등 다양한 형태의 무와 조합된 형태이다. 특히 넓은목판깃+큰삼각무 형태의 모시소재가 가장 많이 보인다. 17세기는 칼깃이거나 무가 없는 유형에 무명소재가 가장 많이 분포한다. 목판깃+무 없음, 칼깃+무없음, 칼깃+다양한 무를 대표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목판당코깃+무없음이 나타나며 이시기 이후부터 목판깃, 무가 확인되지 않는다. 19세기는 동그레깃+무없음이 대표적 유형이다.

<Table 6> 
Type of Textile
Textile hemp rami silk tabby gauze cotton thin silk tabby satin total
Century
15 1 5 2 1 9
16 8 34 22 2 19 85
17 5 5 9 19 38
18 5 1 6
19 1 1 2
total 14 44 39 2 39 1 1 140

<Table 7> 
Type and Textile of Jeoksam by Century
Century 15 16 17 18 19 total
Type
Type of Git Type of Moo & Dang
Narrow Git Big Triangle, None 2 13 1 0 0 16
2 3 2 5 1
Wide Mokpangit Big Triangle 2 29 2 0 0 33
0 13 6 2 8
Ladder Shaped, Two Pieces, Small Triangle 2 1 1 0 0 4
None 0 4 12 0 0 16
2 2 5 1 4
Kalgit Big Triangle 0 2 0 0 0 2
Ladder Shaped, Two Pieces, Small Triangle 0 1 2 0 0 3
None 0 3 14 3 1 21
1 1 6 3 3
Mokpan dancogit None 0 0 0 2 0 2
Dongregit None 0 0 0 1 1 2
Total 6 53 32 6 2 99
Unknowable 3 37 12 2 0 54
Total 9 90 44 8 2 153
※ Textiles : Gause         Rami         Cotton         Hemp         Silk Tabby        

본 연구의 대상이 된 출토유물은 16~17세기에 밀집되어있다. 국토개발의 과정 중에 출토ㆍ수습된 결과이기에 아직 출토되지 않은 다른 시기의 유물에 대한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한편, 조선초기의 유물 수가 적은 까닭으로는 불교국가인고려가 멸망하고 유교 통치 국가가 되면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유교적 상장례 절차가 당시의 풍속과 실정에 맞게 보급되고 토착화되어 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Kim(2001, pp. 87-95)은 조선초기부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1474)』, 『사례훈몽(四禮訓蒙, 1622)』, 『상례비요(喪禮備要, 1648)』, 『사례문답(四禮問答, 1656)』 등의 저서를 발간하며 지속적인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실정에 맞는 관혼상제 규범을 정리한 『사례편람(四禮便覽, 19C)』의 편찬과 간행으로 유교적 상장례가 보편화 되었다고 보고 있다.


Ⅳ. 내의로서의 적삼의 특징

출토복식에 적삼으로 분류된 유물은 염의, 보공의 중 홑저고리와 습의의 가장 안쪽에 착용된 홑저고리를 지칭하고 있다. 내의로서의 적삼은 신체에 직접 닿는 의복으로서 심미적인 기능보다 실용적인 기능을 보다 많이 가지게 된다. 이번 장에서는 보고서상에 기술된 내용과 사진자료를 검토・종합하여 내의로 착용된 적삼, 즉 속적삼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첫 번째는 동정의 부재이다. 적삼으로 분류된 유물은 모두 동정이 확인되지 않았다. 선조들은 세탁이 용이하지 않았던 당시에도 깃에 동정을 달고 소매에는 거들지를 덧대어 일부만 교체함으로써 의복의 청결함을 유지해온 지혜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의는 의복 전체가 맨몸에 닿아 땀을 흡수하기에 전체를 세탁하여야 하였으므로 동정을 달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째는 장식성의 부재이다. 동시대의 저고리는 깃, 무, 끝동, 고름에 색이 다르거나 무늬가 있는 옷감 등으로 장식성을 부여하지만 적삼은 모두 같은 옷감으로 제작되었으며, Ⅲ-4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6세기에는 모시, 주, 무명이 17세기에는 무명, 주, 모시, 삼베의 순으로 모두 무늬 없는 평직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소매가 길어 겉으로 보이는 한삼 중에는 깃과 소매 끝부분에만 보다 좋은 옷감을 사용한 사례가 이응태(UT35, 41, 47, 59, 60, 61: MAU, 2000), 김흠조(YK43, 45: Yeongju-si, 1998), 안정나씨일가(한 삼 2-30: MDMC, 2016) 유물에서 확인된다.

세 번째는 고름이나 단추, 섶의 부재에서도 나타나는데 여러 겹의 의복을 겹쳐 입기 때문에 속옷의 고름을 생략하여 착용감을 좋게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후에 고름대신 단추가 사용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판단된다. 고름이 없는 예는 김흠조(저고리-4, Ibid.), 일선문씨(MN46, MN47, MN7, MN11, MN26, Ibid.), 이응태(UT35, UT41, UT47, UT59, Ibid.), 고여우(8349, Ibid.), 안정나씨일가(1-15, 16, Ibid.) 등의 출토적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선문씨, 이응태의 적삼은 섶이 없이 깃을 넓게 하여 여밈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네 번째는 적삼에만 보이는 특징으로 아주 넓은 깃이다. 변수(저고리-80: TNFMK, 2000), 이응태(UT35, 47, 59, 60, Ibid.), 김흠조(한삼 43, 45, 46: Ibid.), 용인이씨(no.5, 30: MDMC, 2016) 묘에서 출토되어 16세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깃 너비가 20㎝에 가까워 접어 입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의복에 별도의 명칭이 있었는지, 착용법은 어떠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저고리나 포류에서 나타나지 않는 내의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수의로 사용된 적삼의 특징으로, 다섯 번째는 솔기의 방향이다. 솔기가 겉으로 나온 적삼이 이연응(단삼-36: GPM, 2002)의 수의에서 확인된다. 여섯 번째는 수구 끝에 옷감이 성글게 덧대어진 한삼이다. 송효상(no.17: Korean Traditional Costume Research, 2007), 심수륜(no.9: GPM, 2004), 최진의 부인(no.1625: YM, 2010), 성주이씨(한삼-35, Ibid.), 행주기씨(no. 62780: TNFMK, 2012)의 묘에서 곱게 바느질된 적삼에 수구보다 넓은 천을 주름을 잡아 성근 바느질로 덧댄 적삼이 5건 출토되었다. 성글게 제작된 옷은 수의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는데 한삼이 달린 부분만 바느질이 성글다는 것은 생시에 착용하던 적삼의 수구에 한삼만 부착하여 수의로 사용하였다고 추측된다.

이상을 바탕으로 보고서상 명칭이 저고리 등으로 분류되었으나 적삼의 특징을 보이는 것을 재분류해보았다. 한삼형태는 김흠조(YK43~46: Ibid.) 4점, 파평윤씨(홑장저고리: MKU, 2003) 1점, 홍우협(홑저고리: Museum of Chungbuk University, 1993) 1점, 용인이씨 홑저고리(2-5,30, Ibid.) 2점, 동래정씨(no. 7056: SJMM, 1990) 1점과, 내의로 재분류된 유물은 선성군 이흠의 대금형상의 1점(11013: GPM, 2014), 여흥이씨 저고리 2점(no.23, 31: SM, 2015), 신창맹씨 홑저고리 2점(1-15, 1-16: MDMC, 2016), 변수 묘의 저고리 1점(no.80, Ibid.) 총 15점이다. 앞서 기술하였던 바와 같이 본고의 연구대상에 포함되었다.


Ⅴ. 결론

이상으로 조선시대 적삼의 특징을 조형적 요소와 내의의 요소를 통해 도출해 보았다. 문헌을 통해 본 적삼은 17세기 이후에 들어서 내의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으며 한삼, 삼아, 단삼과도 혼용되었다. 근대이후에 내의로 착용되었던 적삼은 속적삼으로 칭한다. 출토유물을 검토하여 깃, 무, 소매, 바대, 동정, 소재 등으로 조형적 특성을 파악하였다. 넓은 깃의 목판깃은 16세기, 칼깃은 17세기에 가장 많이 확인되었다. 무의 형태 중 큰삼각무는 16세기에, 그리고 무가 없는 형태는 17세기에 가장 많이 분포하여 18세기부터는 무가 나타나지 않는다. 진동과 수구의 폭 차이를 비교한 소매의 유형은 좁아지는 형과 일자형이 시대적 구분 없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한삼은 손을 가리기위해 수구 끝에 천이 덧대어지거나 소매가 길게 제작되기도 하였다. 소재는 모시, 주, 무명, 삼베, 사, 단, 초의 순서로 많이 사용되었고, 16세기는 모시가, 17세기는 무명의 사용이 많았다. 홑옷의 적삼에서 바대의 위치는 어깨(등)가 가장 많았으며, 고름, 깃, 섶, 진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동정이 없었으며 여밈이 없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깃과 무의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 16세기 대표적으로 구분지어질 수 있는 유형은 목판깃+큰삼각무 유형이고 17세기는 목판깃+무없음 유형과 칼깃+무없음 유형이다. 출토 복식의 수습과정상의 한계로 남녀의 복식의 구분이 어려웠는데, 성별구분이 확실히 되는 것이 여자 22점, 남자 11점 밖에 없어 대표성을 가지기에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몸에 직접 착용하는 내의로서의 특징은 도출할 수 있었는데, 동정이 없는 점, 바느질과 구성, 소재에서 저고리보다 단순하고 소박한 점 등이다. 이상의 결과로 동시대의 복식을 재현할 때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출토될 유물의 시대 추정과 명칭 선정의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에서 검토하지 못하거나 아직 출토되지 않은 유물의 한계로 본 연구의 수치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통계라 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발굴 및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17세기 이전에 출토되어 적삼으로 명명되어진 유물들의 명칭에 대해 단삼(單衫)이나 이삼(裏衫), 소삼(小衫) 등으로 칭해야 하는지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Notes
1) 단종실록에(단종3년(1455)) 처음으로 나타나며 가례도감의궤, 탁지정례, 국혼정례, 상방정례, 발기 등에 기록되어있는데 중국계 차용어이다. 차용어이다(Park, 2009, p. 4).
2) An, 2017, pp. 67-99.
4) Lee(2001)은 직령의 실증고찰 항목에 무와 당을 구분하여 분석하였고, 출토보고서는 무 항목 안에 무와 당으로 구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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