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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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 No. 1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1, pp. 80-103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9 Feb 2020
Received 01 Jan 2020 Revised 07 Jan 2020 Accepted 14 Jan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1.080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와 노라노 비교 고찰 :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디자인 특성 및 행보를 중심으로
박신미
국립안동대학교 의류학과 부교수

A Comparative Analysis of First-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Ms. Kyung-ja Choi and Ms. Nora Noh : Focusing on Design Characteristics and Activities from the 1950s to 1960s
Shinmi Park
Associate Professor, Dept. of Clothing & Textiles, Andong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Shinmi Park, e-mail: fashion@a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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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analyze historic points in modern Korean fashion history objectively by conducting comparative analysis between the works of Kyung-ja Choi and Nora Noh. The research questions that lead to this study are first, what were the differences in the developments of the two brands Kook-je Yangjangsa and House of Nora Noh, and what events in Korean fashion history were involved in their development? Secondly, what were the significant works of the two designers during the 1950s to 1960s, and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shown in these designs? Thirdly, what was taken from Choi and Noh’s legacies that formed the standards for 20th century Korean modern fashion? To answer these questions, an analysis of previous studies on Choi and Noh, 72 media articles about Choi, and 92 media articles about Noh are used. Furthermore, this study will attempt to determine the philosophies behind the designers’ main works to learn about Korean high fashion trends during the 1950s to 1960s. The methodology employed in this study is content analysis. Choi and Noh were active as competitors during the post-traditional period of Korean fashion; they were trendsetters and leaders of Korean fashion from the 1950s to 1960s. There is a clear difference in the paths the two designers took. Choi brought the dressmaking system to Korea from Japan, lead designer group activities to help colleagues succeed, and worked on making an education platform. Noh, on the other hand was inspired by American and French fashion systems, causing her to eventually enter the American market as an individual. Regarding the design ideas, the commonalities between Choi and Noh found through research would be that both designers were inspired by French designers: Christian Dior, Cristobal Balenciaga, etc. The designers focused on spreading Korean cotton and silk to the world.


Keywords: first-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history of Korean modern fashion, Kyung-ja Choi, Nora Noh
키워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한국 근현대패션사, 최경자, 노라노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근간이 되는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에 관한 연구는 자료 수합의 어려움과 장시간 자료 분석이 필요한 연구의 특성상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2년 이후 20세기 중반 한국 근현대패션을 이끈 선구자인 최경자와 노라노의 기초 연구가 발표되어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발자취가 드러나고 있다(Arko Arts Archive [AAA], 2013; Hahn, 2012; Lee & Soh, 2016; Park, 2014b; Park, 2019). 하지만 최경자와 노라노의 한국 패션사적 기여점을 검증하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자료화하기 위해서는 교차 검증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두 디자이너의 관련 자료들에는 한국 최초라는 주장이 배치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패션쇼의 경우만 보더라도 최초의 기준이 디자이너들의 연합 패션쇼, 단독 디자이너 패션쇼 등 각 행사의 속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한국적 모티브의 디자인 적용 역시 관점의 차이를 보이므로 두 디자이너의 비교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2. 연구목적 및 방법

본 연구의 목적은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와 노라노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작품의 디자인 특성과 패션사적 행보를 비교 분석하는데 있다. 연구목적 달성을 위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최경자(국제양장사)와 노라노(노라노의 집)의 시기별 활동 고찰을 통해 나타난 브랜드 발전과정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엇이며, 이 과정에서 추출된 한국 패션사적 사건은 무엇인가이다. 둘째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최경자와 노라노의 대표 작품과 매체분석을 통해 새롭게 추출된 디자인은 어떤 것이 있으며, 디자이너들의 작품 특성은 무엇인가이다. 셋째는 최경자와 노라노의 행보에서 추출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과 이들이 20세기 한국 근현대패션사에 기여한 점은 무엇인가이다.

본 연구의 연구방법은 문헌연구와 내용분석이다. 본 연구는 앞서 언급된 연구문제 해결을 위해 최경자 관련 인쇄매체자료 72점과 노라노 관련 인쇄매체자료 92점, 선행연구 그리고 디자이너 소장 관련 자료들을 비교 고찰할 것이다. 또한 연구는 디자이너들의 각 시대별 대표 디자인분석을 통해 디자인 관점을 추출하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하이패션 트렌드를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에서 이미 분석된 내용들을 검증 자료로 활용하며, 선행연구에 제시되었으나 분석이 누락된 자료와 본고에서 새롭게 추출된 자료들을 심층 분석한다. 최경자와 노라노가 20세기 중ㆍ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활동하였으나, 본고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시기별 활동을 고찰한 II장의 2절과 3절을 제외하고는 디자이너들이 한국 패션의 트렌드를 주도한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로 연구범위를 한정하여 디자인 특성과 행보를 분석한다. 또한 최경자의 자서전적 패션서 인 崔磬子自傳年傅패션五○年(1981) 의 경우는 연대별로 사진자료들이 수합되어 있으나 다수의 자료들이 연도 표기 없이 수록되어 있거나 정확한 작품 제작연도 없이 연대로 표시되어 있으며, 제작연도가 표기되어 있는 작품의 경우도 최경자와 함께한 패션 70년(1999) 과 2008년 최경자 사후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서 출간한 삶과 패션 1세기ㆍ패션의 선구자: 故최경자 패션 회고집(2011) 에 동일 작품이 다른 연도와 제목으로 표기된 것이 확인되어 인쇄매체 자료를 통해 연도와 내용이 검증된 것을 그림으로 정리하고 이와 함께 인쇄매체에서 새롭게 추출한 디자인들을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노라노의 경우는 미공개 디자이너 소장 자료와 2013년 신문박물관에서 공개된 노라노 기성복 관련 전시 자료 그리고 인쇄매체 추출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 디자인을 선정한다(Nora Noh: the invitational exhibition, 2013). 더불어 디자이너 소장 자료에서 매체명은 노라노의 스크랩 과정에서 잘려나갔으나 원본이 보존되어 있고 연도가 명확히 기재된 신문자료에서 추출한 작품 3점은 분석대상에 포함시킨다(『House of Nora Noh』 moves to Hawaii, 1964; The beauty of simplicity, 1969; The new mode trend 『Courreges』 style, 1966). 본 연구는 디자이너들이 자서전 혹은 구술채록집에서 최초로 주장하고 있는 사건들을 1차적으로 추출하고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검증한다(AAA, 2013; Choi, 1981; Choi, 1996; Noh, 2007). 본고에서는 최소 50년 이상 된 수합 연구 자료의 특성상 자료의 원전 제시가 필요하므로 인쇄매체자료의 직접 인용 시 원전 표기법에 따라 기술하며, 참고 문헌 작성 시에도 영문 번역과 원문 표기를 병기한다. 또한 작품의 원제목은 『』로 표시하고 연구자가 분석한 제목에는 기호를 넣지 않는다.


Ⅱ. 20세기 중반 한국 패션과 최경자와 노라노의 활동 비교 고찰
1.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한국 패션 동향과 디자이너 최경자와 노라노

일제강점기를 지난 1950년대와 1960년대는 한국 근현대문화사의 실체적 격동기이다. Yoo(1989)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를 한국복식의 수난기, 다시 1953년부터 1960년까지를 한국복식의 다양화기로 분류하고, 1960년대부터 한국복식의 양장화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고 설명한다(Yoo, 1990). 반면, 100 Years of Modern Fashion Compilation Committee(2002)는 1950년대를 한국 패션 도약분위기 조성기로, 1960년대를 패션 산업 비약적 발전기로 규정한다. 또한 Lee & Park(2011)은 1950년대를 한국 패션의 혼동기로, 1960년대를 현대화를 위한 과도기로 정리한다. 더불어 Park (2016)은 한국 패션의 탈전통화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주변 환경에 의해 강압적으로 진행된 간접적 탈전통화기와 1950년대 6.25전쟁 이후 명동양장점거리가 생성되어 한국 패션디자이너의 손에서 디자인된 의상이 거리의 트렌드를 주도한 직접적 탈전통화기로 구분하고, 1950년대를 서구문화 확산기로, 1960년대를 복식현대화성취기로 분석한다. 한국 패션디자이너 주도의 한국 근현대패션사 연구를 위해서는 선행연구들에서 제시한 직접적 탈전통화기인 1950년대 이후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 시기 한동식의 ‘한양장점’, 오송죽, 심명언의 ‘송옥양장점’, 서수연의 ‘아리사양장점’ 등 명동에서 한국의 트렌드를 주도한 양장점 중 단연 두각을 드러낸 곳이 최경자의 ‘국제양장사’와 노라노의 ‘노라노의 집’이다(Choi, 1999; Park, 2019). 일본에서 양재교육을 받은 최경자와 미국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은 노라노는 패션계 입문과정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 성장한 행보에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또한 1950년대 이후 두 디자이너는 30년 동안 세기의 경쟁자이자 동료로 한국 패션의 트렌드를 주도하며 기여 점을 남겼다. 더불어 이들은 한국 패션 현대화의 격동기인 1940년대와 전환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여성 패션의 틀을 구축한 제1세대 디자이너로 한국 근현대패션사 연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2. 최경자와 노라노의 시기별 활동 고찰
1) 최경자의 시기별 활동

선행연구에서 Lee & Soh(2016)는 최경자의 활동을 디자이너 최경자와 패션경영인 최경자, 패션전문인 최경자로 인물 중심으로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최경자의 활동을 연대별로 고찰하여 패션입문기(1937~1953), 패션디자이너 연합체 활동기(1954~1965), 디자이너 패션브랜드의 산업화 구축기(1966~1979), 교육산업 집중기(1980~2008)로 구분한다.

패션입문기는 은좌옥 활동 시기부터 대구 ‘국제양장사’ 활동기인 1937년부터 1953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최경자가 1936년 일본 동경 ‘오차노미즈양장전문학교’ 유학 후 1937년 함흥에 3남매의 멀티숍 ‘은좌옥’에서 활동한 시기와 1948년 아현동 ‘국제양재학원’,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 중 대구에서 활동하며 ‘국제양장사’와 ‘최경자복식연구소’를 설립한 시기이다(Choi, 1981; Choi, 1999). 패션입문기에 최경자는 양장점 오너에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패션디자이너 연합체 활동기는 최경자가 명동 ‘국제양장사’에서 활약한 1954년부터 1965년까지의 시기이다. 패션디자이너 연합체 활동기에는 1954년 12월 대구에서 명동으로 ‘국제양장사’를 이전한 이후 10년 동안의 시기로, 최경자는 패션디자이너 연합체인 ‘복식연우회’를 이끌며 명동 디자이너들의 리더가 된다(Choi, 1981; Choi, 1999; Yoo, 1990). 또한 최경자는 1961년 ‘국제복장학원’, 1963년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1964년 전문패션모델 양성학원 ‘차밍스쿨’을 설립하며 패션산업과 교육 전반의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였다(Choi, 1981; Choi, 1999; Park, 2019). 이 시기최경자는 1957년 첫 번째 디자이너 단독 패션쇼를 열고 이후 그룹 바자회를 기획하여 명동 디자이너들의 리더로 디자이너들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썼으며 한국 패션시스템과 후학 양성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Choi, 1981; Park, 2019).

디자이너 패션브랜드의 산업화 구축기는 최경자가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상업 패션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1966년부터 1979년까지의 시기이다. 디자이너 패션브랜드의 산업화 구축기에 최경자는 우리 섬유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패션산업계 그리고 KOTRA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1960년대 미도파백화점 기성복 매장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 신현장을 필두로 1975년 우리나라 최초의 진 전문 패션기업인 ㈜와라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캐주얼 진 제품을 생산한다(Choi, 1981; Choi, 1999; Lee & Park, 2011). 이 시기 최경자는 단독 패션쇼보다 그룹 패션쇼와 정부 기획 패션쇼에 집중하고, 2세 신혜순과 신현장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육사업 집중기는 후학 양성과 20세기 한국패션관련 자료를 정리한 1980년부터 고인이 타개한 2008년까지의 시기이다. 교육사업 집중기에 최경자는 1980년 설립된 ‘(재단법인)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을 시작으로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자료를 취합하여 정리한다. 또한 1981년에는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패션사를 자서전적으로 정리한 崔磬子自傳年傅패션五○年(1981) , 1990년에는 국제복장학원 출신의 디자이너들을 소개한 패션과 함께한 나의 사람 , 1996년에는 자서 전적 수필 날개를 만드는 사람의 어머니 그리고 1999년에는 1981년 저서에 20년의 자료를 추가하고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최경자와 함께 한 한국 패션 70년 등이 출판되었다(Choi, 1981; Choi, 1990; Choi, 1996; Choi, 1999). 이시기 최경자는 패션계의 원로로써 자신의 발자취를 정리한다.

2) 노라노의 시기별 활동

노라노의 시기별 활동 고찰은 선행연구(Park, 2014a)에서 분석되었으므로 본 절에서는 선행연구의 분석 내용을 정리하고 추가적으로 밝혀진사항들을 추가한다. Park(2014a)은 노라노의 시기별 활동을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한 패션입문기(1949~1953), 파리의 트렌드를 한국에 소개한 문화전도 시기인 오트 쿠튀르(양장점)기(1954~1962),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을 탐색한 기성복시기인 산업화기(1963~1979),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글로벌 패션 시기인 해외시장장악기(1980~1989) 그리고 아시아 시장 진출 및 국내 시장 복귀의 시기인 사업축소기(1990~1999)로 구분한다. 또한 후속연구를 통해 노라노의 부티크 오픈시기를 1949년 말 디자인 작업 시작기, 1950년 신당동 양장점기, 전쟁 중인 1951년부터 1952년까지의 부산 광복동 양장점기, 1952년 퇴계로 충무로 양장점기, 1955년 이후 명동 양장점기로 다시 분류하며 ‘노라노의 집’의 정식 오픈 시기가 1950년 신당동 양장점기라고 설명한다(Park, 2017).

3. 최경자와 노라노의 시기별 브랜드 발전과정 비교

최경자와 노라노의 브랜드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유사성과 차이점이 보인다<Table 1>. 최경자(국제양장사)와 노라노(노라노의 집) 중 패션계에는 1937년 함흥에서 최경자가 먼저 멀티숍 ‘은 좌옥’ 내에 양장점을 열었고, 노라노는 1949년 말부터 신당동 자택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다(Choi, 1981; Park, 2017; Park, 2019). 두 디자이너의 패션입문기는 첫 활동 시기부터 6.25 종전 이후의 시기인 1953년까지이다. 전쟁 중 최경자는 대구에서, 노라노는 부산에서 활동하였고 종전 직후 서울로 올라와 명동 부티크 오픈을 준비한다(AAA, 2013; Choi, 1981). 최경자와 노라노의 국내 패션시장에서의 전성기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이며, 최경자는 명동입성기인 1954년부터 1965년까지 패션디자이너들의 리더로서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였다(Park, 2019). 반면, 노라노는 이시기 배우들의 영화의상을 제작하고 프랑스 트렌드를 대중에게 전파시키며 맞춤복의 전성기를 맞는다(Park, 2016; Park, 2017). 최경자와 노라노 모두 1960년대 초ㆍ중반 이후 기성복 시장에 진출하는데, 최경자는 신혜순의 ‘신스부틱’, 신현장의 ‘와라실업’을 론칭시키며 2세들을 통해 1970년대까지 국내 시장에서 기성복 사업을 확장해나간다(Choi, 1999; Park, 2019). 이와는 다르게 노라노는 1964년 하와이를 시작으로 1973년에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박람회에 참가하며 수출용 고급기성복 제작을 위해 노력한다. 1980년 이후 두 디자이너의 행보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최경자는 브랜드 론칭 초기부터 발전시켜온 교육 사업을 작고하기 전인 2008년까지 이어가며 후학을 양성한다. 반면, 노라노는 이후에도 현역디자이너로 활동하여 1980년대에는 미국 패션시장을 장악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1990년대에 노라노는 다시 국내 시장으로 복귀하여 라이프스타일의 개념을 도입하며 디자이너 브랜드 플래그쉽 스토어를 청담동에 오픈하였으나 이후 사업을 축소한다(Park, 2016; Park, 2017).

<Table 1>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Activities between Kyung-ja Choi and Nora Noh
Kyung-ja Choi: ‘Kook-je Yangjangsa’ Nora Noh: ‘House of Nora Noh’
Period Activities Period Activities
1937~1953 Entered the fashion field 1949~1953 Entered the fashion field
1954~1965 Worked as a part of the association of fashion designers 1954~1962 Haute-couture era
1966~1979 Industrialization construction era 1963~1979 Industrialization era
1980~2008 Focused on educational industry 1980~1989 Oversea market domination era
1990~1999 Business downsizing era
(Adopted form Park, 2014a, pp. 64-65)


Ⅲ. 1950년대와 1960년대 디자이너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 특성 분석 및 비교

본 장에서는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비교하여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나타난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출한다<Table 2>.

<Table 2> 
Concomitant Features and Different Properties of Design Characteristics and Activities of Kyung-ja Choi and Nora Noh

(Table by researcher, 2020)

1. 선행연구에서 분석된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 특성
1) 최경자 디자인의 특성

Lee & Soh(2016)는 최경자의 일곱 번의 개인패션쇼와 일곱 번의 그룹 패션쇼에 출품된 작품분석을 통해 최경자의 디자인 특성을 패션도약기(1953~1959), 패션절충기(1960~1967), 패션정립기(1970~1978)로 분석하였다. 또한 이들 중 한국적 패션디자인 11점을 심층 분석하여 그 특성을 추출하였다. Lee & Soh(2016)에 따르면, 서양복의 영향을 받은 패션도약기의 디자인은 X라인, S라인, Y라인, H라인의 다양한 실루엣에 베럴라인이 나타나고 물자부족으로 양단, 개버딘, 벨벳 등의 한정적 소재가 사용되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최경자가 한국적인 라인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패션절충기에는 전통의 미와 서양의 미를 절충하기 위한 작품들이 특징이라고 분석하고, 최경자가 한국적 소재, 문양과 자수 그리고 색채를 이 시기에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냈다고 기술한다(Lee & Soh, 2016). 또한 연구는 최경자 패션디자인에 나타난 한국적 패션디자인의 요소를 한국적 선인 곡선, 전통색채 색동, 길상한자문, 조각보의 패치워크와 꽃문양, 동물문양의 수를 활용한 전통문양, 면, 마, 실크와 같은 전통소재로 추출하였다(Lee & Soh, 2016). 반면, Park(2019)은 『여원(女苑)』에 수록된 『제1회 최경자복식연구발표회』 작품을 분석하여 최경자가 제1회 패션쇼의 모티브로 벌룬 슬리브의 이브닝드레스 『넝 쿨』, 케이프가 특징인 『세파레-트』, 사틴 소재를 사용한 『솔방울』과 한복치마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레스 『동 경』, 신부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한 웨딩드레스 『청실ㆍ홍실』을 사례로 제시하며 최경자가 각각의 디자인 별로 주제를 설정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정부 기획 국제행사의 참여로 1962년부터는 한국적 콘텐츠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아랑』라인을 개발하고 이를 자신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국제복장학원의 학생들의 작품에도적용시켰다고 밝힌다(Park, 2019).

2) 노라노 디자인의 특성

Hahn(2012)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 패션에 나타난 미국화현상의 미적 특성을 노라노 패션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노라노가 물세탁이 가능한 홈웨어 개발, 면직물, 모직물, 장식이 절제된 저가의 실크제품 활용을 통한 기능성을, 기성복의 도입과 서구 트렌드인 미니스커트와 판탄롱 팬츠의 아이템을 받아들이고 유명 인사들을 활용하여 대중성을, 한국 전통소재를 사용하고 대미수출을 위해 전통적 모티브의 디테일과 프린트를 활용하여 융합성을 미적 특성으로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Park(2014b)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노라노 디자인의 시대별유형 분석을 통해 스타일 혼재기인 1950년대는 역할복 시대로 규정적, 영속적, 보수적 특징이, 스타일 정립기인 1960년대는 프레타 쿠튀르 시대이자 기성복 진입 시대로 개방적, 동시대적, 상업적 속성이, 디자인 차별화기인 1970년대는 기성복 시대이며, 소재와 프린트 패턴 특성화기인 1980년대는 산업화 시대로 모두 영속적이면서 동시대적이고 상업적인 특징이, 클래식 라인 회기기인 1990년대는 절충의 시대로 영속적, 상업적속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또한 1950년부터 1960년대까지 노라노 영화의상의 모티브와 스타일을 분석한 선행연구에서는 ‘전통 복식과 중국복식의 융합 그리고 서양 패션의 차용’, ‘팜므파탈 스타일의 구축’, ‘오드리 헵번 이미지의 재현과 역할의 대비’, ‘프랑스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의 스타일과 미국 칼리지 룩’의 영향이 분석되었다(Park, 2016).

2. 1950년대 최경자와 노라노 작품의 디자인 특성 분석
1) 최경자: 변형이 가능한 디자인 제안과 한국적 콘텐츠의 간접적 차용

1950년대 최경자의 디자인은 개별 작품별로 주제가 제시되었으며 변형이 가능한 다기능성 디자인이 보인다. 또한 이브닝드레스 라인을 중심으로 한국적 콘텐츠의 간접적 차용이 나타난다.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40년대 <Fig. 1> 밀리터리 슈트처럼 실용적 양장 중심의 디자인을 선보인 최경자는 1957년 첫 컬렉션을 계기로 이브닝드레스 라인을 강화한다. 총 3회의 디자이너 단독 컬렉션이 진행된 1950년대에는 슈트라인과 이브닝드레스 라인이 그리고 <Fig. 2>와 같이 스케이트를 즐기기에 적합한 스포츠 캐주얼착장도 제안된다(Choi, 1981). 6.25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의 복구가 이루어진 1950년대 초의 작품은 객관적 자료로 확인되지 않았고, 전쟁 후 명동양장점 입성 이듬해인 1955년 『여원』 11월호에 수록된 <Fig. 3> “유행색을 무시하고 언제나 새로워 보이는 블랙ㆍ투-피-스 ”와 같이 『Mode of Autumn』 칼럼에 개재된 화보시리즈가 보인다(Mode of autumn, 1955, p. 9). 이외에는 1957년, 1958년, 1959년에 연 1회씩 개최된 디자이너 단독 패션쇼의 작품 사진이 남아있다. 1957년 첫 컬렉션에서 최경자는 미8군 무대의상을 연상시키는 글리터 소재의 보디 콘셔스 이브닝드레스를 선보인다<Fig. 4>. 또한 신부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한 웨딩드레스 『청실ㆍ홍실』, 고급 한복 소재양단을 사용하여 서양 의복구성에 충실히 적용한 리버서블 코트와 칵테일드레스 앙상블을 디자인한다<Fig. 5, 6>. 1958년 두 번째 컬렉션의 작품은 첫 컬렉션보다 실루엣이 부드럽고 간결해지는 데, <Fig. 7>은 앞 요크를 연장하여 스톨을 만든 이브닝드레스이다(Choi, 1999). 『에멜랄드』를 주제로 디자인한 <Fig. 8>을 최경자는 “검푸른 청룡을 연상시켜 고기비늘 모양으로 디자인한 에메랄드 빛깔의 드레스”라고 설명한다(Practical fashion, 1958). 반면, 1959년 제3회 컬렉션에서는 직선적인 실루엣이 나타나는데 <Fig. 9> 로우 웨이스트 코트는 단추를 풀면 하프 코트로 길이가 변형되는 것이 특징이다(Choi, 1999). 또한 <Fig. 10>의 이브닝드레스는 구축적 소재가 만들어낸 절제된 실루엣이 돋보이며 한복과 이브닝드레스의 구성을 융합하여 변형시킨 작품이다. <Fig. 11>은 한복의 저고리와 치마를 서양식 칵테일드레스의 형식으로 연결한 것으로 1957년 혹은 1959년에 제작된 것이다.


<Fig. 1> 
Military Suit, Kyung-ja Choi, 1949 (Shin, 2008, p. 37)


<Fig. 2> 
Sports casual, Kyung-ja Choi, 1957 (Choi, 1981, p. 88)


<Fig. 3> 
『Black two-piece』, Kyung-ja Choi, 1955 (Mode of autumn, 1955, p. 9)


<Fig. 4> 
Bodyconscious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57 (Choi, 1999, p. 20)


<Fig. 5> 
『Blue thread & red Thread』 1957, Kyung-ja Choi (Kyung-ja Choi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1957, p. 19)


<Fig. 6> 
Cocktail dress & revisable coat, Kyung-ja Choi, 1957 (Choi, 1981, p. 89)


<Fig. 7>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58 (Choi, 1999, p. 25)


<Fig. 8> 
『Emeralds』, Kyung-ja Choi, 1958 (Practical fashion, 1958, p. not founded)


<Fig. 9> 
Transformed low waisted coat, Kyung-ja Choi, 1959 (Choi, 1981, p. 89)


<Fig. 10>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59 (Choi, 1981, p. 89)


<Fig. 11> 
Cocktail dress, Kyung-ja Choi, the late 1950s (Choi, 1981, p. 90)

2) 노라노: 프랑스 디자이너 스타일의 전파와 한국적 콘텐츠의 직접적 차용

외교관 부인들의 이브닝드레스와 미8군 가수들의 무대의상 제작을 시작으로 디자인에 입문한 노라노는 195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전파하였고, 1950년 대중ㆍ후반부터는 서양복의 콘텐츠와 더불어 한국적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적용하여 이브닝드레스 라인을 개발한다. 노라노의 자료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디자인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영향을 받은 1952년 제작된 미8군 가수 유정희를 위한 <Fig. 12> 『Kiss of Fire』 드레스로, 사진 속 모델은 영화배우 문혜란이다(AAA, 2013). 1953년 작품은 6.25전쟁 직후 미국 NBC 방송국의 전쟁 속문화 탐구의 일환으로 기획된 특집 패션쇼 사진에서 보이는데 <Fig. 13>의 맨 오른쪽 박단마는 플라워 패턴의 칼리지 룩을, 바로 옆 박혜옥은 홀터넥 드레스인 『Sun dress』를 착용하고 있으며 사진 속 디자인들 역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라인 실루엣에서 영향을 받았다(Park, 2014b). 1956년 프랑스의 아카테미아 줄리아 아트(Academia Julian Art) 연수를 계기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니나 리치의 바잉쇼를 관람하고 귀국한 노라노는 1956년 가을 자신의 첫 컬렉션을 연다(AAA, 2013; Park, 2014b). <Fig. 14> 는 1956년 제1회 패션쇼에서 소개된 타이트 미디드레스와 코트 착장의 앙상블 슈트이다.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2회 1957년 S/S 컬렉션에서는 Y라인과 X라인 실루엣이 보인다<Fig. 15, 16>. 제3회 컬렉션인 같은 해 F/W 컬렉션에서는 피에르 발맹의 구축적 슈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벨 코트 스타일을 받아들인다<Fig. 17, 18>. 반면, <Fig. 19>는 노라노의 작품 중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1958년 작품으로 가슴 부분이 접힌 엠파이어 이브닝드레스이며, <Fig. 20>은 미디 길이의 엠파이어 라인의 칵테일드레스와 코트이다. 1959년에 미스유니버스 오현주의 스타일을 담당하면서 노라노는 서양복 형식으로 구성된 컬렉션의 슈트와 이브닝드레스 라인과는 별개로 한복의 구성과 형식을 직접적으로 차용하여 『아리랑드레스』 라인을 개발한다<Fig. 21>. 더불어, 이를 계기로 1959년 『US Wives’ Club』 패션쇼에서는 양단을 사용하여 여자 한복의 치마, 저고리의 구성과 금박문, 용자수 등 디테일과 트리밍 방식을 직접 차용한 『아리랑드레스』 라인을 발표하며 한국의 미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Fig. 22>.


<Fig. 12> 
『Kiss of fire』 dress, Nora Noh, 1952 (Park, 2014b, p. 100)


<Fig. 13> 
Mini fashion show for NBC TV, Nora Noh, 1953 (AAA, 2013, p. 109;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4> 
Ensemble suit, Nora Noh, 1956 F/W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5> 
Y-line dress, Nora Noh, 1957 S/S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6> 
X-line dress, Nora Noh, 1957 S/S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7> 
Construction suit, Nora Noh, 1957 F/W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8> 
High waist bell coat, Nora Noh, 1957 F/W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19> 
Empire-line dress, Nora Noh, 1958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20> 
Empire line cocktail dress & coat, Nora Noh, 1958 S/S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21> 
『Arirang dress』, Nora Noh, 1959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Fig. 22> 
Blue 『Arirang dress』, Nora Noh, 1959 (AAA, 2013, p. 240)

3. 1960년대 최경자와 노라노 작품의 디자인 특성 분석
1) 최경자: 해외 트렌드가 반영된 기성복 디자인 개발과 한국적 콘텐츠의 직접적 차용

1960년대 최경자는 국산 원단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한국적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적용시킨다. 1964년 6월 ‘한국가정학회’ 회원으로 미국 패션산업계를 시찰하고, 이후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여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피에 르 가르뎅의 패션쇼를 관람한 후 최경자는 국제경향을 분석하고 1964년부터 기성복으로 사업 패턴의 변화를 시도한다(Choi, 1981; Park, 2019; To see the world of clothing life, 1964). 또한 이로 인해 맞춤복 중심으로 1950년대 슈트 라인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복지를 활용하였던 소재선택의 패턴은 자연스럽게 가격경쟁력이 있는 국산 원단 수용으로 전환되었다(Choi, 1981). 1960년대 제4회 컬렉션에서 최경자는 1950년대에 이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코트 라인을 주력 상품으로 선보인다(Choi, 1960a; Choi, 1960b). 1961년 제5회 컬렉션에서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영향을 받은 박스 실루엣의 오버 코트를 발표한다<Fig. 23>. 또한 1967년에는 피에르 가르뎅의 영향을 받아 우주시대 패션의 무드를 디자인에 반영하는데, <Fig. 24>는 이러한 사례로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디자인한 메탈릭 드레스이다(The Korean Museum of Modern Costume [KMMC], 2011).


<Fig. 23> 
Over coat, Kyung-ja Choi, 1961 (Choi, 1999, p. 18)


<Fig. 24> 
『Present & future』, Kyungja Choi, 1967 (KMMC, 2011, p. 20)

이브닝드레스 라인에는 1950년대보다 한국적 콘텐츠가 직접적으로 활용된다. 1961년 작품인 <Fig. 25> 하이웨이스트 이브닝드레스는 한복 치마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오드리 햅번의 이미지를 재해석한 것이다. 또한 최경자의 대표 작품인 <Fig. 26> 『고려자기(1962)』드레스는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것으로 삼베와 모시에 풀을 먹여 무지개 속치마로 실루엣의 구축성을 표현하였고, 이세득 화백이 학과 소나무를 원단에 직접 그려 작품의 디테일을 살렸다(Choi, 1981; Choi, 1999; Lee & Soh, 2016; Park, 2019). 1963년 컬렉션에서는 직접적으로 한국적 콘텐츠를 차용한 작품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한복 치마 실루엣의 밑단을 변형하여 팔괘를 표현한 드레스에 매치되는 상의는 한복 저고리의 구성 형식을 직접적으로 수용한다<Fig. 27, 28>. 최경자는 이 작품을 한복의 개량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작품의 제목을 『아랑』으로 명명한다(Choi, 1962; KMMC, 2011). 컬렉션에서는 공작새의 깃털을 직접 뒤 허리에 장식한 이브닝드레스 『공작』을 비롯한 양단, 갑사 등 전통 한복소재를 활용하여 문자 자수를 드레스 전면에 장식한 이브닝드레스들이 발표된다<Fig. 29>. 또한 실버 칵테일드레스에 남자 한복 두루마기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라운지 코트도 보이는데, 코트에는 꽃, 바위, 나비 등의 자연문양을 자수한 장식이 있다<Fig. 30>. 반면, 1964년 한일 친선 패션쇼에서 발표한 미니 랩 드레스 『달님의 시녀』는 한복의 깃과 고름에 노리개로 장식하여 여밈을 완성한 디자인으로 태극과 꽃 자수가 놓여있다 <Fig. 31>. 1966년 방콕 박람회에서 개최된 한국의상 쇼에서 최경자는 한복의 구성, 색동 등의 한국 전통 콘텐츠를 차용하여 디자인한다. 특히 이 시기 과감하게 디자인에 적용된 색동 컬러는 1967년 작품에도 나타난다<Fig. 32, 33>. 남자 한복 아이템인 전복을 변형시킨 작품도 보이는데 양단 점프 슈트에 롱 베스트 착장의 1965년 작품인 <Fig. 34>와 1967년 작품인 갑사로 만든 타이트 롱 드레스 <Fig. 35>가 대표적 사례이다. 최경자는 1967년 한복의 여밈에서도 디자인 아이디어를 추출하는데 <Fig. 36>은 여밈 선의 중첩을 확장시킨 것이고, <Fig. 37>은 여밈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다. 또한 교육 사업에 집중한 1968년부터는 이벤트 쇼를 통해 디자인을 선보이는데, <Fig. 38>은 태양을 형상화한 자수 디테일이 특징인 돌먼 슬리브의 카프탄드레스이다.


<Fig. 25>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61 (Choi, 1981, p. 111)


<Fig. 26> 
『Koryo ceramic』, Kyung-ja Choi, 1962 (The international fashion, 1962, p. 5)


<Fig. 27> 
『A-rang』. Brocade high waist long dress, Kyungja Choi, 1963 (KMMC, 2011, p. 12)


<Fig. 28> 
『A-rang』, Kyung-ja Choi, 1963, (Choi, 1981, p. 112)


<Fig. 29> 
『Peacock』, Kyung-ja Choi, 1963 (KMMC, 2011, p. 15)


<Fig. 30> 
Embroidered long coat & mini dress, 1963 (KMMC, 2011, p. 22)


<Fig. 31> 
『Maid of moon』, Kyung-ja Choi, 1964 (KMMC, 2011, p. 20)


<Fig. 32>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66, (Choi, 1981, p. 115)


<Fig. 33> 
Saegdong mini dress, Kyung-ja Choi, 1967, (Choi, 1999, p. 115)


<Fig. 34> 
Jump–suit & long vest, Kyung-ja Choi, 1965 (KMMC, 2011, p. 25)


<Fig. 35> 
Red kapsa tight long dress, Kyung-ja Choi, 1967 (KMMC, 2011, p. 28)


<Fig. 36>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67 (Choi, 1981, p. 117)


<Fig. 37> 
Evening dress, Kyung-ja Choi, 1967 (Choi, 1981, p. 117)


<Fig. 38> 
Dolmun sleeve caftan dress, Kyung-ja Choi, 1968, (KMMC, 2011, p. 32)

2) 노라노: 미래 고객 선점을 위한 젊은 디자인 개발과 한국적 콘텐츠의 간접적 차용

1964년 미국에 진출한 노라노는 기성복 시장의 시장성을 확신하고 직장여성과 젊은 대학생들을 위한 유스 슈트(youth suit) 라인의 개발에 집중한다. 또한 미국 시장을 위한 파티 라인에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국내산 실크를 사용하고 한국적콘텐츠를 간접적으로 디자인에 차용하여 미국 시장을 위한 노라노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정립한다. 1950년대 말 최지희, 엄앵란의 영화의상을 디자인하면서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에 관심을 가졌던 노라노는 1960년대 유스 패션 스타일의 확장을 위해 햅번 스타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컬렉션에 적용하는데 <Fig. 39>의 실용복 슬랙스 스타일, <Fig. 40>의 컬러 대비가 특징인 슬리브리스 플레어드레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이 시기 노라노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1950년대 라인들을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반영시킨다<Fig. 41, 42>.


<Fig. 39> 
Practical slacks, Nora Noh, 1960 (Western women’s wear: practical slacks, 1960, p. 4)


<Fig. 40> 
Sleeveless dress, Nora Noh, 1960 (Home: color, fabric, design, 1960, p. 4)


<Fig. 41> 
No-collar autumn dress, Nora Noh, 1960 (Western women’s wear: 『no-collar』 『dress』 for early autumn, 1960, p. 4)


<Fig. 42> 
Bow-tie belted simple dress, Nora Noh, 1962 (Simple and fashionable, 1962, p. 4)

<Fig. 43>은 1963년 일하는 여성과 주니어를 위한 기성복 라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선보인 디자인으로 소매통이 좁고 장식을 배재한 스트레이트 실루엣의 슈트이다. 이 디자인은 재킷 위에 깊게 U자로 앞이 파인 조끼를 착용시켜 착장의 활동성을 높인 것이다. 1964년 S/S 컬렉션의 노라노 대표작은 간편한 활동복인 쉬프트 스타일로, 노라노는 이 디자인을 “집안에서 입을수 있는 것들과 출퇴근시 나이와는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Fig. 44>(『Shift』 catching attention, 1964, p. 6). 1964년 F/W 컬렉션에서는 국내 기성복 라인과 수출용 라인을 함께 발표하였는데, <Fig. 45>는 샤넬의 카디건 앙상블에서 영향을 받은 겨울용 슈트로 국내용 디자인이다(Warm to see 『Jacketㆍsuit』, 1964). 반면, <Fig. 46>은 한복 구성 착장을 단순화시킨 공단으로 만든 블랙, 화이트 칵테일드레스로 수출용 디자인이다.


<Fig. 43> 
Ready to wear working wear, Nora Noh, 1963 (Fashion show for winter, 1963, p. 5)


<Fig. 44> 
Shift dress, Nora Noh, 1964 (『Shift』 catching attention, 1964. p. 6)


<Fig. 45> 
Chanel suit, Nora Noh, 1964 (Warm to see 『JacketㆍSuit』, 1964, p. 6)


<Fig. 46> 
Black & White cocktail dress, Nora Noh, 1964 (House of Nora Noh moves to Hawaii, 1964,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미국에서 활동한 1965년 컬렉션에서 노라노는 이브닝드레스 라인과 트레블 라인을 주력으로 선보인다. <Fig. 47>은 저고리의 소매 실루엣과 색동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실크 이브닝드레스로 늘어진 햄라인, 구축성 있는 견직물인 태피터(taffeta)가 만들어낸 깊은 핀턱이 특징으로 색동을 서양복의 디테일과 트리밍에 적용시킨 사례이다. 이브닝드레스 라인과 다르게 트레블 라인은 서양복의 형식에 집중하는데, <Fig. 48>은 한국산 모직을 사용하여 디자인한 튜닉 코트로 이중 러플 소매와 사선의 여밈이 특징이다. 또한 1966년 노라노는 앙드레 쿠레주의 영향을 받은 쿠레주 라인을 한국 시장의 주력상품으로 내어놓는데, <Fig. 49>는 여대생을 위한 콜라지 드레스이다. 1967년 미국 수출용 디자인인 <Fig. 50>은 다섯컬러의 양단을 활용한 롱 칵테일드레스이며, 내수용으로 디자인된 <Fig. 51>은 간결한 실크 기성복 드레스이다. <Fig. 52>는 1969년 6월 코튼-메이드 패션쇼에서 선보인 핑크 판탈롱 재킷 슈트로, 컬렉션의 주제는 『69년 여름을 젊고 밝게』이다(Fashion show at Jun. 3 & 4, 1969; Booming Ms. Nora Noh fashion show, 1969). 컬렉션에서는 대학생을 위한 데님 소재로 만들어진 쇼트와 드레스도 소개되었다<Fig. 53>.


<Fig. 47> 
Elegant breakfast coat Nora Noh, 1965 (Handle silks very gently, 1965, p. A-13)


<Fig. 48> 
Travel ensemble, Nora Noh, 1965 (Handle silks very gently, 1965, p. A-15)


<Fig. 49> 
Dress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 Nora Noh, 1966 (Ready to wear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 1966, p. 6)


<Fig. 50> 
Five colors silk coctail dress, Nora Noh, 1967 (Korean color put on US fashion, 1967, p. not founded)


<Fig. 52> 
Korean cotton ready to wear pants ensemble, Nora Noh, 1969 (Charity show for troupe, 1969, p. not founded)


<Fig. 53> 
Denim shorts & dress, Nora Noh, 1969 (Booming Ms. Nora Noh fashion show, 1969,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Ⅳ. 최경자와 노라노의 활동 행보에 나타난 패션사적 사실 비교 고찰
1. 패션쇼 관련 사실 및 추가 자료 추출

자료가 남아있는 최초의 한국 디자이너 패션쇼는 6.25 종전 이후 1953년 ‘전쟁 속에도 문화는 있다’라는 주제로 미국 NBC 방송국이 노라노에게 의뢰하여 개최한 미니 컬렉션으로, 패션쇼에는 미8군 가수들을 위한 무대의상이 소개되었다 <Fig. 13>. 반면, 디자이너에 의해 기획된 한국최초의 디자이너 패션쇼는 1956년 10월 노라노의 반도호텔 패션쇼이며, 최경자의 『제1회 崔敬子服藏作品展』은 노라노 패션쇼 1년 후인 1957년 10월에 개최되었다(Kyung-ja Choi clothing exhibition, 1957a; Kyung-ja Choi clothing exhibition, 1957b; The root of Korean modern culture, 1981). 한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국제 패션쇼는 1962년 열린 『엑쓰란 韓國史上初有国際 휏숀쇼』이며, 최경자를 필두로 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회원들이 행사를 주도하였다(The international fashion, 1962). 반면, 한국 디자이너최초의 해외 진출 단독 국외 패션쇼는 1965년 로열 하와이안 호텔 리젠시 룸에서 5월 22일 개최된 『노라노 한국ㆍ하와이 1965』 컬렉션으로 51점의 작품이 소개되었고 주미한국대사관의 지원을 받았다(Mrs. Nora Noh, the first fashion show, 1965). 패션디자이너들이 주도한 최초의 연합 판매 전시회는 1957년 최경자와 서수연을 주축으로 ‘대한복식연우회’가 주최한 바자회로 의류, 편물, 액세서리, 조화, 생화, 인형, 수예, 공예, 한복의 9개 분야에 작품이 출품되었고 신세계화랑과 신문회관에서 개최되었다(Choi, 1981).

1950년대 최경자와 노라노의 컬렉션은 각각의 디자인별로 작품의 콘셉트가 제시되어 있다. 1958년 『여원』 12월호에는 제2회 최경자 패션쇼의 현장 모습이 담겨있는데 『에메랄드』, 『원피이스』등작품 제목이 디자인 설명과 함께 개별 디자인으로 기술되어 있다(Practical fashion, 1958). 또한 노라노가 소장하고 있는 1959년 패션쇼 프로그램지인 <Fig. 54>에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구성된 패션쇼의 작품 제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부제가 없는 1부와 다르게 2부는 “칵텔드레쓰 « 이브닝드레쓰”로 명명되어 슈트 라인과 드레스 라인을 명확히 구분하여 컬렉션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Fig. 54>. 1부에 소개된 작품은 품목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조세핀』, 『사슴』, 『스렉스』, 『잠바스카-트』, 『잠바스카-트』, 코트인 『여행』, 『日曜日(일요일)』, 『여음』, 『明月(명월)』, 『1959年』, 『점설』, 『交叉點(교차점)』, 『散策(산책)』, 『구상』, 『異邦(이방)』, 『宇宙船(우주선)』, 투피스 『비둘기』, 슈트인 『作品(작품) A』, 『作品B』, 『作品C』, 투피스인 『씸볼』, 『상아탑』, 『地平線(지평선)』, 슈트 『오리브』, 원피스(드레스)인 『액센트』, 『平和(평화)』, 슈트인 『回想(회상)』, 『晩秋(만추)』, 원피스 『地中海(지중해)』, 롱 재킷 『루네싼스』의 총 30점이 순서대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제목 옆에 아이템과 착장이 기술된 1부와 다르게 모든 디자인이 드레스 아이템인 2부프로그램지에는 『그레스(Tigress)』, 『白夜(Palm Spring)』, 『올켙(Orchid)』, 『스모-크(Smoke)』, 『어떤미소(A Certain Smile)』, 『그림자(Shadow)』, 『속사김(Whisper)』, 『분꽃(Fire Crack)』, 『벽(Brocade)』, 『그리움(Forget me not)』, 『전설(Legend)』, 『비원(Sccret Garden)』의 12작품을 한국어 혹은 한자제목과 영문제목을 병기하여 소개하고 있다.

실물로 남아있는 최경자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57년 첫 번째 컬렉션에서 발표한 『솔방울』 칵테일드레스로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Fig. 55, 56>. 반면, 노라노의 경우는 1959년 S/S 컬렉션에서 발표한 <Fig. 57> 칼리지룩 드레스를 디자이너가 직접 보관하고 있으며, 같은 해 발표한 대표작 오현주를 위한 『아리랑드레스』는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Fig. 55> 
『Pine cone』, 1957, Kyung-ja Choi (Kyung-ja Choi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1957, p. 19)


<Fig. 56> 
『Pine cone』, 1957, Kyung-ja Choi, (KMMC, 2011, p. 8)


<Fig. 57> 
Flare college dress, 1959 S/S, Nora Noh (The 60th Nora Noh retrospective exhibition, 2012)

자료로 확인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최경자의 작품은 1955년 『여원』지 11월호 화보에 소개된 『블랙ㆍ투-피-스』를 비롯한 『도루만스라-부』 타이트드레스, 뒷깃을 세운 『H라인』, 『투-피-스』 그리고 『스림ㆍ드레스』이다(Mode of autumn, 1955). 반면, 노라노의 경우는 미8군 가수를 위한 무대의상인 『Kiss of fire』 드레스이다<Fig. 12>. 최경자의 작품 중 <Fig. 25> 하이웨이스트 이브닝드레스는 1963년이 아닌 1961년 작품으로 나타났다. 또한 <Fig. 29> 『공작』의 경우는 1963년 컬렉션과 1966년 컬렉션 모두에서 발표되었는데, 이는 1963년 작품을 1966년 특별 쇼에 다시 선보인것으로 작품의 제작연도는 1963년이다.

본고에서 추가적으로 추출된 1950년대와 1960년대 패션쇼는 최경자 2건, 노라노 4건이며, 최경자의 경우 1959년 제3회 패션쇼, 1961년 제5회 패션쇼 그리고 노라노의 경우는 1966년 10월 열린 여대생을 위한 기성복 쇼와 살롱쇼, 1967년 로스앤젤레스ㆍ하와이 바이어쇼 그리고 1969년 개최된 『코튼-메이드』 컬렉션이다<Table 3>. 1959년 반도호텔에서 개최된 최경자의 제3회 패션쇼와 1961년 제5회 패션쇼는 작품 사진이 디자이너 소장 자료에 남아있고 패션쇼의 일시는 확인되지 않는다<Fig. 9, 10>. 반면, 노라노의 경우는 1966년 10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기성복 패션쇼 그리고 28일과 29일 양일간 명동 ‘노라노의 집’에서 기성복 위주의 살롱쇼가 개최된 것으로 나타났다(Ready to wear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 1966; The world of new trend Courreges line , 1966). 또한 1967년 5월에는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에서 바이어쇼를 개최하여 실크ㆍ앙상블 등 40점의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밝혀졌다(Korean beauty plated in US, 1967). 1969년 6월 3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창경궁 내의 수경궁, 4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두 차례에 걸려 개최된 『코튼-메이드』쇼는 미국 목화협회의 요청으로 서울신문사와 서울 YMCA가 공동주최하고 대한방직협회의 후원으로 기획된 노라노의 단독 패션쇼로 밝혀졌다(Fashion show at Jun. 3 & 4, 1969).

<Table 3> 
Newly Extracted Kyung-ja Choi and Nora Noh Fashion Shows by Reference
Designer Fashion show Contents Reference
Kyung-ja Choi Kyung-ja Chio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1959, Bando hotel The 3rd individual fashion show Choi, 1981; Choi 1999; New mode, 1959
Kyung-ja Choi Kyung-ja Chio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1961 The 5th individual fashion show Choi, 1981; Choi 1999
Nora Noh Ready to wear fashion show, 26 Oct. 1966, Ewha womans university hall Ready to wear fashion show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s Ready to wear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 1966
Nora Noh Ready to wear Salon fashion show, 28 & 29 Oct. 1966, ‘House of Nora Noh’ Ready to wear house collection The world of new trend 『Courreges line』, 1966
Nora Noh Buyer fashion show, May 1967, Los Angeles and Hawaii Buyer fashion show, presented 40 design work Korean beauty plated in US, 1967
Nora Noh 『1969’s summer fashion trend as young and bright[69년 여름을 젊고 밝게]』, June 3 1969, from pm 3:00 to 5:00, the Crystal palace in Changgyeonggung Palace: June 4 1969, from 4:00 to 7:00 pm, YMCA auditorium 『Cotten made』 fashion show
- host: YMCA & Seoul newspaper
- sponsor: Spinners & Wewavers Association of Korea[대한방직협회]
Fashion show at Jun. 3 & 4, 1969
(Table by researcher, 2020)

2. 기성복 보급을 위한 행보

최초로 디자이너 패션쇼에 기성복이 출현한 것은 1963년 11월 1일 개최된 노라노의 제10회 패션쇼로 1부에서는 60벌의 기성복이, 2부에서는 30벌의 작품이 발표되었다(Fashion shows in two place, 1963). 반면, 하루 늦은 11월 2일에는 최경자를 주축으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회원들의 연합 패션쇼가 개최되는데, 컬렉션에서는 부인복, 여대생복, 편물 그리고 남성복을 포함한 70점의 작품이 기성복 중심으로 소개되었다(Fashion shows in two place, 1963). 또한 최경자는 1964년 11월 15일 디자이너 단독 기성복 패션쇼인 『레디메이드ㆍ패션ㆍ쇼』를 개최한다(Ready to wear fashion show, 1964). 더불어 노라노는 1965년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명동 ‘노라노의 집’에서 『직업여성을 위한 기성복 전시회』를 기획한다(Exhibition of the ready-to-wear clothes, 1965).

맞춤복 중심의 시장 상황 속에서 최경자는 1964년 미국과 유럽의 산업시찰을 계기로 그리고 노라노는 같은 해 미국 진출을 계기로 기성복의 필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사업패턴 전환을 시도한다. 또한 두 디자이너 모두 기존의 맞춤복 라인을 유지하면서 기성복 라인을 확장시킨다. 1963년 12월 최경자는 주문복 중심의 의복 시장에서 서울에 설치된 기성복 센터들이 판매의 부진에도 기성복 보급의 일반화를 위해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Choi, 1963c). 이후 1964년 10월 최경자는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회원들과 3개월간의 미국과 프랑스의 기성복 제조과정과 시설을 시찰한 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미국에서는 아주 특수층만이 맞춤옷을 입고 상당한 하이ㆍ레벨 까지도 모두 기성복을 입는다. 그것은 그만큼 기성복이 발전했음을 증명하여 준다. 미국인은 모든 면이 그러하지만 의생활에 있어서는 특별히 실질적이다. ......(중략)...... 이번여행에서 우리나라처럼 사람의 손 값이 싼곳이 없고 또 우리나라 여성처럼 손재주가 있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같은 두 가지 문제를 살리려면 한국여성들이 국내 기성복만이 아니라 국외까지 발전시켜서 외화획득의 길을 연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To see the world of clothing life, 1964, p. 5).

최경자는 기성복이 세계 패션계의 흐름이며 주문복에 비해 시간과 가격이 절약되므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Ready to wear fashion show, 1964; To see the world of clothing life, 1964). 또한 1968년 최경자는 복지협회와 국제복장학원의 협업을 이끌어내며 연구생들이 디자인한 Kㆍ앙고라만을 사용한 F/W 기성복 컬렉션 43점을 시민회관에서 선보이며 기성복 확산에 앞장선다(Fashion show for the Korean fabric association, 1968).

노라노의 경우는 고급 기성복과 보급형 기성복의 차이를 밝히고 기성복은 특성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연령과 스타일에 맞는 기성복의 보급을 체계화하기 위해 기존의 명동살롱과 더불어 이화여대 앞 브렌치 매장을 오픈하여 기성복 라인의 다각화를 실천한다. 노라노는 고급 기성복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견해를 밝힌다.

기성복은 반드시 싼 옷이라는 관념은 이미 낡은 것이다 맞춤옷보다 훨씬 비싼 기성복도 많다 옷을 입는 클라스 에 따라 싼 것에서 부터 비싼 것까지가 진열되어 있고 옷감을 고르고 여기에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 을 골라야하고 가봉하는 여러가지가 압축을 해서 옷 그 자체를 고를 수 있는게 기성복의 특징이며 이로운 점이다 (Spring ready to wear for woman, 1965, p. not founded)

노라노는 기성복이 “활동하기 편하고 수수해야하나 개성적이고 멋이 풍겨야 하는 것”이고, 이는 직업여성들을 위해 적합한 의복이라고 설명한다(Exhibition of the ready-to-wear clothes, 1965). 또한 기성복의 보급을 위해 1966년 명동 ‘노라노의 집’ 본 살롱 이외에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브렌치ㆍ살롱 을 오픈하여 디자이너 기성복을 명동의 매장보다 30% 할인된 가격으로 대학생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한다(The new mode trend 『Courreges』 style, 1966; Ready to wear for woman’s university student, 1966). 노라노는 기성복이 싸고 손쉽고 좋은 옷을 보급할 수 있는 방법임을 설명하며, 기성복 성공의 열쇠는 정확한 사이즈 구축이라고 주장한다(Dissemination of ready to wear, 1966). 또한 20년 동안 맞춤복 디자인을 하면서 32, 34, 36, 38로 체계화한 본인만의 가슴 치수체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기성복 전파에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힌다(Dissemination of ready to wear, 1966). 더불어 하와 이에서 1년 7개월 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인 1967년에는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에서 수출용 기성복 바이어쇼를 개최하여 리버티ㆍ하우스 , AMC 바이어와 계약을 맺어 기성복 수출을 위해 노력한다(Korean beauty plated in US, 1967).

1960년대 디자이너 기성복의 가격이 인쇄매체자료에 남아있는데 1964년 노라노의 디자인은 골덴 소재 1천 7백원, 코트 3천 6백원, 자켓ㆍ수트 는 3천 7백원 정도 회색 후란낼 의 사넬ㆍ자켓 은 2천 3백원이며, 1965년 디자인은 원ㆍ피스 3천원부터 5천원, 잠바ㆍ스커트 는 1천 9백원부터 3천원, 스커트 는 1천원부터 2천 5백원, 바바리ㆍ코트 는 3천원부터 3천 5백원, 재킷 은 2천 5백원부터 4천원, 봄 코트 는 5천원부터 8천원이다(Spring ready to wear for woman, 1965; Warm to see 『JacketㆍSuit』, 1964).

3. 프랑스 디자이너의 스타일 차용과 트렌드 제안

최경자와 노라노는 1950년대와 1960년대 모두 프랑스 패션디자이너들의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았다. 최경자는 미국 『Vogue』지와 일본 잡지에 수록된 파리의 스타일을 1957년 첫 컬렉션부터 디자인에 적용시켰고, 1964년 3개월 동안 미국과 프랑스 시찰 이후 적극적으로 트렌드를 확산시킨다. 반면, 노라노는 1956년 프랑스 연수 이후 파리 컬렉션의 시스템을 자신의 패션쇼에 도입하고 이를 시작으로 사발비행기 시절에는 1년에 1번 이후에는 미국진출 전까지 1년에 2번 파리를 방문하여 트렌드를 습득한다(AAA, 2013). 더불어 『Vogue』와 『Elle』지를 구독하여 지속적으로 프랑스 디자이너의 트렌드를 받아들인다(AAA, 2013). 1950년대 최경자와 노라노는 모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피에르 발멩, 니나리치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60년대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니나 리치, 잔느 랑방, 이브 생 로랑, 피에르 가르뎅, 앙드레쿠레주가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 최경자는 1958년 1월 『여원』 칼럼을 통해 프랑스, 미국 그리고 한국의 양장 트렌드가 대동소이(大同小異) 하거나 인기 품목은 일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Choi, 1957). <Fig. 58>은 1950년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크리스티앙 디오르 그리고 디자이너를 알 수 없는 런던 컬렉션드레스 화보이며, <Fig. 59>는 1966년 피에르 가르뎅, 장 루에 쉐레르, 니나 리치의 작품으로 사진들은 최경자의 디자인에 영향을 준 작품들이다. 반면, <Fig. 60>은 노라노의 작품으로 샤넬의 카디건 앙상블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며 작품명은 『사넬ㆍ자켓』이다. 노라노는 실제로 “ 사넬과 바랑시아가 가 내마음의 선생님이에요. 오늘의 프랑스 패션가의 토대이기도하죠”라고 자신이 두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다(Mrs. Nora Noh focused on practicality and artistry, 1975). 특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의 코트 라인과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슈트와 이브닝드레스 라인이 최경자와 노라노 디자인에 모두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최경자는 잔느 랑방을, 노라노는 가브리엘 샤넬의 스타일을 받아들인다.


<Fig. 58> 
Inspiration of Kyung-ja Choi in 1950s French fashion designer’s style (Choi, 1981, p. 93)


<Fig. 59> 
Inspiration of Kyung-ja Choi in 1960s French fashion designer’s style (Choi, 1981, p. 124)


<Fig. 60> 
『Chanel Jacket』, 1964, Nora Noh (Exhibition of the ready-to-wear clothes, 1965, p. 6)

최경자와 노라노는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최신트렌드에 대한 소식을 신문과 잡지에 소개한다. 최경자는 1953년에는 프린세스ㆍ라인, 1957년에는 H라인, 1958년 이후는 타이트ㆍ스커트, 1961년 이후에는 소매가 넓은 것이 특징인 트라피스ㆍ라인, 1963년에는 트라피스ㆍ라인 앙상블이 한국 패션계에서도 유행했다고 설명한다(Choi, 1963a). 또한 최경자는 “7월 20일이지나자 빠리 에서 발표된ㆍ 코렉션 을 따라 전세계여성특히 베스트웨어 들의 눈은 바쁘게 움직인다.”고 소식을 전하며 1963년 F/W 트렌드는 높은 깃에 부드러운 선과 몸이 지나지게 끼지 않는 자유로운 라인의 스커트가 유행이라고 기술한다(Choi, 1963b, p. 7). 노라노 역시 1957년 『여원』지의 코너인 『Mode of Autumn』 화보에서 자신의 작품인 숕ㆍ자켙 이 “ 파리 의 유행에서 힌트를 얻은 작품으로 키가 적은 분을 스마-트하게 뵈게하는 것이 특색. 늦은 가을에서 겨울에 적합하다.”고 적고 있다(Mode of autumn, 1956, p. 24). 또한 1966년의 트렌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올겨울의 의상은 단연 코라지ㆍ라인 직각적인 깨끗한線과 대담한色의 콘트라스트 틀 주장한 파리 의 젊은 디자이너 코라지 는 歐美각지에서 선풍적인 기로 10년만에 새로운 유행풍조를 전파시키고 있다 (The world of new trend Courreges line , 1966, p. not founded).

노라노가 지칭하는 코라지ㆍ라인 은 앙드레쿠레주의 쿠레주 라인을 의미한다. 1960년대 중반 최경자와 노라노는 파리 패션의 트렌드인 우주시대 패션의 무드를 받아들이는데 최경자의 경우는 1962년 『엑쓰란 韓國史上初有国際휏숀쇼』에서 조우한 피에르 가르뎅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과감한 스타일을 제안하였고, 반면 노라노는 앙드레 쿠레주의 간결한 스타일을 받아들여 미니와 젊은 학생들을 위한 디자인과 더불어 나이에 상관없이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였다<Fig. 24, 49>.

4. 한국적 모티브 활용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견해

최경자와 노라노는 모두 한국적 콘텐츠를 디자인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경자는 한복의 우수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리 한복을 볼 때 우리조상의 미에 대한 너무도 탁월한 머리에 늘 나는 탄복합니다 예를 들어 넥홀은 V로 우리나라 여성의 얼굴형과 잘 맞는 점이라든가 근일에 많이 부르짓는 언바란스 디자인인 깃모양 씸플한 저고리에 달린 고름(근일에 많이 다는 리본) 끈으로 매어 마음대로 넓고 좁음을 이용할 수 있는 점 등등 얌전하고 정숙한 우리 한국부인에게 잘 맞는 한복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아름다운 옷 맵씨라고 하겠습니다 (The way of modernized Hanbok, 1961, p. 285).

최경자는 한복의 우수성이 적용된 양장디자인 개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트렌드만 쫓는 ‘들뜬 양장’에서 벗어난 한국적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Trendiness from the daily life, 1962). 이에 최경자는 한복의 구성과 장식기법을 이브닝드레스 컬렉션 라인에 적용하여 『아랑』 라인을 개발하고 ‘국제복장학원’ 학생들의 디자인 프로젝트에도 한국적 콘텐츠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을 포함시킨다(Park, 2019). 반면, 노라노의 소장 자료에는 1958년 11월 11일 오후 3시 30분에 개최된 동기(冬期)컬렉션의 리플렛과 1959년 컬렉션의 순서지에 노라노가 한국적 콘텐츠를 디자인 모티브로 활용한 근거가 남아있다. 1958년 노라노는 리플렛에 소개된 컬렉션 인사말씀에서 한복의 아이템과 구성형식을 컬렉션에 담기 위해 노력했음을 밝히며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항상 끊임 없는 편달과 애호를 보내주시는데 감사를 들이는 바입니다 이번 씨루엣트의 포인트는 금년도 유행라인인 “엠파이어ㆍ라인”이 “치마ㆍ저고리ㆍ라인”과 흡사한 것을 응용해서 세계적인 공감을 사게 할려고 한 것입니다 변변치 못한 작품을 여러분에게 또다시 보여드리게 됨을 대단히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끊임없는 가리킴과 사랑을 마지안습니다 (Nora Noh fashion show 1958 F/W, 1958).

1964년 9월 인터뷰에서 노라노는 자신의 목표가 한국 오리지널의 미를 찾아 한국적 색채를 담은 양장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팔각정과 낙선재 뒷담의 벽돌들이 좋은 아이디어의 사례라고 밝힌다(Korean color put on US fashion, 1964). 더불어, 미국 수출 주력상품을 생산한 1966년에는 미국 시장에서는 미아리 실크, 제주도 수직, 양단의 원단과 한복 저고리의 부드러운선이 적용된 디자인이 인기이며, 국제 패션시장의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선(線)’이라는 콘텐츠와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한국의 천연 옷감이라고 강조한다(Popular Korean fabrics, 1966). 미국을 위한 디자인에 관한 견해로는 “미국인의 구미에맞는상품이란 무턱대고 한국적인것이아니다 한국고유의것과 현대적인 감각이잘결합돼서 이른바 디자인 의妙를 살린것이어야한다 ”고 설명한다(Dissemination of ready to wear, 1966, p. 5). 또한 노라노는 “저고리소매의 라인이라든지, 색동의색조(色調)라든지...우리나라는 디자인의 금광(金鑛)이나 다름이 없어요 ”라고 역설하며, <Fig. 61> A는 저고리 소매의 선(線)을 살린 라그랑ㆍ슬리브 에 곁들여진 색동무무 , B는 한복치마저고리의 매무시를살린 오버ㆍ코트 , C는 마고자의 디자인을 살린 두루마기 풍(風)의 이브닝ㆍ코트 이며 하와이의 유행 트렌드가 한국의 스타일로 물들었다고 평가한다(Planting the sensation of Arirang, 1966).


<Fig. 61> 
『Arirang』 line, 1966, Nora Noh (Planting the sensation of Arirang, 1966, from contributed by Nora Noh)


Ⅴ.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최경자와 노라노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작품의 디자인 특성과 패션사적 행보를 비교 분석하는데 있었다<Table 1, 2>.

본 연구의 결과,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 특성 분석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두 디자이너 모두 한국적 콘텐츠를 활용하였고 프랑스 패션디자이너의 스타일을 수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1950년대에 개최된 첫 컬렉션부터 최경자와 노라노는 슈트 라인과 이브닝드레스 라인을 구분하여 디자인을 전개하였고, 특히 두 디자이너 모두 이브닝드레스 라인에서 한국적 콘텐츠를 적용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구체적인 디자인 전개와 사업 확장 방식에서는 최경자와 노라노는 차이를 보였다.

1950년대 최경자는 한국적 콘텐츠를 간접적으로 차용하였으나, 이 시기 노라노는 한국적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받아들였다. 반면, 1960년대는 최경자가 한국적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디자인에 적용하였고, 노라노는 수출용 디자인에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투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경자와 노라노는 모두 1950년대부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피에르발멩, 니나 리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1950년대 영향을 받은 기존의 프랑스 디자이너들과 더불어 최경자는 잔느 랑방, 피에르가르뎅의 스타일을 수용한 반면, 노라노는 가브리엘 샤넬과 앙드레 쿠레주의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또한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은 두 디자이너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최경자의 주력상품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잔느 랑방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오버 코트로 밝혀졌고, 노라노의 주력상품은 샤넬의 카디건 앙상블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샤넬 슈트로 나타났다. 1960년대 우주시대 패션의 트렌드 역시 두 디자이너 모두가 수용하지만 최경자는 피에르 가르뎅의 영향을, 노라노는 앙드레 쿠레주의 영향을 받았다.

맞춤복 시기인 1950년대 디자이너들은 고객들이 가져온 낙타지와 영국산 모직 그리고 국산 복지와 한복 원단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1950년대 최경자는 다양한 스타일의 앙상블을 길이 조절이 가능한 코트와 리버서블 코트 착장으로 디자인하여 기능적이고 스타일 변형이 가능한 디자인 개발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이브닝드레스 라인에서는 서양식 드레스에 한국적 콘텐츠의 주제를 대입시켜 디자인을 전개하였다. 반면, 1950년대 노라노는 슈트 착장과 칼리지 룩 그리고 한복을 직접적으로 차용한 『아리랑드레스』를 디자인하였다. 노라노는 이 시기 엠파이어 라인과 한복 치마, 저고리 실루엣의 유사성을 직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리랑드레스』 라인을 적극적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맞춤복과 기성복을 모두 진행한 1960년대는 최경자와 노라노가 패션계의 리더로서 활동한 시기이다. 이 시기 최경자는 기존의 슈트 라인을 유지하며 여성한복과 남성한복의 구성, 자수, 문양, 색채를 비롯한 전통 자기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적용시키며 이브닝드레스 라인 『아랑』을 개발하여 한국적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디자인에 담아내었다. 반면, 노라노는 1964년을 기점으로 내수용 슈트 라인과 수출용 이브닝드레스라인의 콘셉트를 명확히 구분하고, 슈트 라인은 프랑스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미국의 기성복 시스템으로 생산하여 젊은 세대와 직장 여성들을 위한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였다. 반면, 수출용 이브닝드레스 라인은 『아리랑드레스』 라인으로 명명하고 디자인에 한국적 선(線)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경자와 노라노는 1963년 이후 기성복 사업에 진출하며 동일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최경자는 한국인의 스타일에 맞는 실용적인 보급형 기성복 확산에 집중하였고, 반면 노라노는 젊은 세대를 위한 보급형 기성복과 기성세대와 수출을 위한 고급형 기성복 생산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여 두 디자이너는 기성복 확산의 관점과 사업 확장의 방향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최경자와 노라노의 디자인 특성과 활동 행보비교 고찰을 통해 밝혀진 한국 패션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최경자와 노라노는 첫 컬렉션 이후 1964년까지 정기적으로 디자이너 단독 패션쇼를 개최하였는데 최경자는 1957년 10월 이후 1년에 1번씩, 노라노는 1956년 10월 이후 1년에 2번 시즌별로 컬렉션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최경자와 노라노 모두 컬렉션 전체의 콘셉트가 아닌 개별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전개하였다. 규칙적으로 개최되던 디자이너 단독 컬렉션이 1964년을 기점으로 불규칙하게 전환된 이유는 이 시기 이후 최경자는 디자이너 그룹 활동과 교육 사업에, 노라노는 해외시장 진출에 집중하였기 때문이었다. 국가기관사업인 섬유패션사업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1961년 사회부의 요청으로 ‘대한복식연우회’를 비롯한 유사협회들은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로 통합되었고, 이후 최경자는 명동 이외의 지역디자이너를 포괄하는 패션디자이너들의 리더가 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산 원단 활성화 사업과 디자이너 국외 진출 지원사업이 KOTRA의 주도로 진행되었는데, 최경자는 1960년대에 디자이너 연합 패션쇼를, 1970년대에는 면직물 패션쇼와 실크 패션쇼를 지원받았다. 반면, 노라노는 1960년대에는 면직물패션쇼와 실크 패션쇼,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수출 패션쇼의 지원을 받았으며, 1970년대에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박람회와 미국 시장 진출의 후원을 받았다. 특히 노라노는 1967년 미국에서 리버티ㆍ하우스 , AMC 에서 수주를 받으면서 디자인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노라노가 미국 시장에 독자적으로 진출한 1964년 노라노의 내수용 앙상블 디자인 가격은 1만원 정도였고, 하와이 시장을 위한 여행용 앙상블은 미화 115불로 당시 수출용 디자인의 가격이 내수용의 10배에 달했다. 또한 崔磬子自傳年傅패션五○年(1981) 에는 최경자가 1960년미주 및 유럽 시찰을 다녀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인쇄매체자료 분석결과 이 시기는 1964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본고에서 추가적으로 추출된 패션쇼는 최경자의 1959년 제3회 단독 패션쇼, 1961년 제5회 단독 패션쇼이며, 노라노의 1966년 10월 26일 열린 여대생을 위한 기성복 쇼와 같은 달 28일과 29일 개최된 기성복 살롱ㆍ쇼 , 1967년 로스앤젤레스ㆍ하와이 바이어쇼, 마지막으로 1969년 개최된 YMCA가 주최한 『코튼-메이드: 69년 여름을 젊고 밝게』 컬렉션이다 <Table 3>.

결론적으로, 한국 패션의 직접적 탈전통화기에 활동한 최경자와 노라노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동시대의 경쟁자이자 패션계의 리더로서 한국 패션계를 이끌어 나갔다. 최경자는 디자이너연합 활동과 교육시스템 구축을 통해 한국 패션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반면, 노라노는 최초의 디자이너 패션쇼를 개최하며 양장점을 디자이너 하우스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한국 패션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두 디자이너 모두 해외의 트렌드를 대중에게 전파하였고 국산 실크와 면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국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적용시키며 한국의 미를 탐구하였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17학년도 안동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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