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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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 No. 2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2, pp. 168-187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20
Received 23 Mar 2020 Revised 10 Apr 2020 Accepted 13 Apr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2.168

한국 대학 교복 변천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민정 ; 이경미 ; 이민선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경대학교 부교수
명지대학교 부교수⁺

A Study on the Historical Transition in the School Uniform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Minjung Lee ; Kyungmee Lee ; MinSun Lee
Researcher,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Associate Professor, Dept. of Clothing Industry, National Hankyong University
Associate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Myongji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MinSun Lee, e-mail: theminsun@gmail.com

Funding Information ▼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historical transition of the school uniform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 with regard to who created the uniform, why they created it, why it changed, and how it was abolished. It also aimed to reveal the connection between the academic uniform and the uniforms of the military training organizations established at the university. To recreate the history of the school uniform of SNU, we used archival and autobiographical sources as a primary source. In doing so, it become apparent that the history of the SNU uniform is connected with Korean modern history. After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 and during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Seoul National University was established as the most prestigious national university. With a polarizing of public opinion around the extreme Left and Right, SNU enacted a school uniform system to cultivate effective leaders of the anti-communist solidarity. As South Korea shifted to a wartime posture, the uniforms at the University became an identical style to a middle school uniform. In the post-war period, SNU created a new school uniform for males in 1955 and for female in 1957. As a result of a military coup in the early 1960s, regulations on school uniforms became stricter. By the mid-1960s, the uniform was redesigned into a blazer style reflecting the uplifting atmosphere in the university due to the economic development. However, by the end of 1960s, the state power tried to transform the university into a military camp. School uniforms were mandated for male students, and a School Drill Uniform appeared too. When Park Chung-Hee’s regime ended, the school uniform of SNU, the symbol of the militaristic control and the source of pride, was abolished.


Keywords: anti-communist ideology, school autonomy, school uniform, Seoul National University, totalitarianism, university
키워드: 반공 이데올로기, 학원 자율화, 교복, 서울대학교, 전체주의, 대학

Ⅰ. 서론

해방 후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었다는 사실은 민주화로 학원의 자유가 당연시 된 199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세대들에게는 생소하다. 대학 박물관이나 역사관에 전시된 교복과 교모 유물, 교복을 착용한 대학생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대학 교복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학 교복이 다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00년대 후반 학교 영문 초성이 달린 학과 점퍼를 마치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대학생들이 대학가에 등장하면서부터였다(Kim, 2010). 2015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는 당시 캠퍼스에서 유행하던 학과 점퍼와 과거 서울대학교 교복이 함께 전시되기도 하였다(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SNUM], 2015).

해방 후부터 1980년대 초까지 한국은 건국, 전쟁으로부터의 재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며 국제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 시기 한국의 대학에는 진리탐구를 위해 항상 창조적이고 역동적으로 진보해 나가는 특수사회의 기능 뿐 아니라 국가사회의 기간(基幹)이자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가 부과되었다(Kim, 2018). 이는 광복 이후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으로 “민족여망(民族輿望)의 최고학부”였던 서울대학교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Seoul National University [SNU], 1976). 이는 국립대학이라는 구조로 인해 국고 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총장의 최종 임명권이 정부에 있었으며, 국가와 국공립학교 재학생 사이에 ‘특별권력관계’ 이론이 관습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Pyo, 2000). 따라서 한국의 대학 교복 중 국립 서울대학교 교복은 해방 후 국가 권력의 대학 개입, 학교 당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 강조, 국가적 사명을 띤 엘리트의 제복이라는 긍지, 창조적 지성을 지닌 주체로서 교복에 대한 반발 현상이 뚜렷이 목격되는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교복과 교모과 함께 학내에서 이루어진 군사 훈련에 착용한 제복까지 연구 대상으로 포함하였다. 그 이유는 대학 내에 군사 훈련이 강화되면서 학도호국단 단복, ROTC 단복 등 군사 훈련용 제복과 교복 간에 구분이 모호한 사례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교복 변천사는 「복장변천」(“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에 처음으로 서술되었다. 『서울대학교 이십년사: 1946~1966』(SNU, 1966)에는 「복장변천」의 내용에 1965년의 교복 개정 내용이 추가되어 서술되었다. 2000년 이후 An(2004)은 서울대 캠퍼스 복장의 변화를 10년 단위로 구분하여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Lee & Lee(2013)는 1952년부터 발간된 서울대학교 학보인 『대학신문』기사를 분석하여 서울대학교 교복을 도입기, 강화기, 쇠퇴기로 나누어 고찰하였고, Han(2016)은 한국에서 대학 교복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당국의 교복 착용 지시에 맞선 대학생들의 꾸준한 저항”을 꼽았다.

선행연구 분석 결과, 서울대학교 교복의 제정부터 소멸까지 통시적으로 설명한 연구는 부재하였으며, 2000년 이후에 작성된 기사 또는 연구는 교복 착용 기간 동안 한국의 현실이나 교복을 통한 국가 권력 개입 의도를 설명하기 보다는 교복 수용자의 측면에서 대학생의 자유, 저항 의지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서울대학교 교복 변천사를 객관적이고 통시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파편화되어있던 서울대학교 교복 관련 자료를 면밀히 수집하고, 서울대학교 교복의 변천에 영향을 준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 양상을 조사하였다. 연구 대상 시기를 대학 교복의 상징성이 뚜렷이 구분되는 해방 후~이승만정권기(1945~1960.4.), 4.19혁명 후~박정희정권기(1960.4~1979), 교복자율화기(1980~1983)로 나누어 교복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연구 방법으로 문헌을 통한 사적 조사와 아카이브 조사가 진행되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대학신문 디지털 아카이브, 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겨레신문 제공), 중앙일보 아카이브, 조선일보 아카이브, 한국일보 사진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화 자료 신문 아카이브에서 서울대학교 교복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였다. ‘교복’, ‘교모’, ‘뺏지 혹은 배지’, ‘제복’, ‘학생복’, ‘입학식’ 등의 키워드를 사용하여 1946년에서 1983년 사이 기사들을 검색한 결과, 『대학신문』에서 24건, 일간지 기사에서 총 63건이 수집되었다. 서울대학교 교복에 관련된 사진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컬렉션(SNU Digital Collection [SNUDC]) 중 디지털사진자료관/대학신문 사진/대학사료, 서울대학교 기록관 아카이브(Seoul National University Archives [SNUA]),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 of Korea [NAK])에서 수집되었다. 주로 졸업 앨범, 입학식 사진, 졸업식 사진, 운동회, 학도호국단 검열식, 학군단 사진 등을 살펴보고 총 99건을 수집하였다. 194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사이에 서울대학교에 재학했던 졸업생 3명에게서 당시 사진 10장 기증받았으며, 그밖에 개인 블로그에 게시된 교복 및 교련복 착용사진 5점도 수집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NFMK]) 소장 1950년대 교모 2점, 70년대 교모 1점, 70년대 서울대학교 교복 상의 1점과 서울대병원의학박물관(The Museum of Medicine of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MMSNUH]) 소장 교복 상의 1점에 대해 사진을 분석하였고, 서울대학교 간호학박물관(Museum of Nursing Science [MNS])에 전시된 1950년대 교모 유물 1점을 관람하였다. 실제 유물 분석은 개인 소장 중인 1970년대 서울대학교 교복과 교모 한 세트에 대해 그 형태와 세부를 조사하였다.

본 논문은 1980년 초 교복의 자율화 이후 잊혔던 서울대학교 교복 자료를 발굴하고, 그 끊겼던 흐름을 연결하여 우리가 걸어온 길을 스스로 정리하고 미래를 이야기해 볼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서울대학교 교복의 변천사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본 연구의 또 다른 의의라 할 수 있다.


Ⅱ. 해방 후부터 이승만 정권기까지의 서울대학교 교복
1. 국립서울대학교의 창설과 교복 제정 (1945~1948)

해방 공간에서 한국인 교육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설치되었던 기존 관립 고등교육기관들을 통폐합하고, 새로운 국가에 적합한 고등교육기관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는 1894년 갑오개혁에서 표면화된 ‘국립최고교육기관으로서의 근대적 대학의 설립 운영권’의 실현이라는 한국사의 오래 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기도 했다(SNU, 2017).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을 구축”(Kim, 1996)하기 위해 해방 공간의 남쪽에 들어선 미군정은 식민지 조선에서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교명을 ‘京城大學’(한문), ‘서울대학’(국문), ‘Seoul University’(영문)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총장: 해군 대위 크로프트(Lieutenant Alfred Crofts))을 중심으로 서울과 서울 인근의 관립전문학교 9개를 통폐합시킨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법령 제102호)을 공표하였다.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과 관련하여 학생과 교수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극심하게 갈등하게 되면서 미군정은 국립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당시 군종목사였던 앤스테드 대위(Captain Harry Bidwell Ansted)를 임명했다. 앤스테드 총장 재임 시기(1946년 8월 22일~1947년 10월 25일)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는 창학 이념과 휘장(Paek, 2001), 그리고 교복 제도가 만들어졌다(SNU, 1976). 초대 문교부장관이자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교수였던 안호상의 회고록에 당시 교복 제정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마침 미군정청에서 장군 한 사람이 대학장으로 왔다. 그는 소장으로 이름은 앤슈테트(Anstadt)였는데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중략) 일제 시대의 교복을 그대로 입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그 때 모두 아무렇게나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단정한 교복을 입혀 동질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교수회의에서 말했다. 의복에서 빈부귀천이 두드러지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이유였다. 그럴듯하다고 하면서도 교수들은 그것이 나의 의견이었으므로 반대를 했다. 나는 학장실로 찾아가 독일에서는 교복이란 것이 없지만, 영국에선 교복의 덕을 상당히 보고 있더라고 말하며 그를 설득했다. 최초의 서울대학 교복은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초라했던 의복이 그나마 교복으로 대체되었다. 교복을 입음으로해서 학생들의 과격성도 좀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교복은 46년 겨울부터 착용했다. (중략) 그렇다고 내가 교복착용을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교복이 없었고, 나도 그런 자유스러움을 사랑한다. 그러나 해방정국의 서울대학에서 좌익발호를 막는데는 교복이 필요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왔다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어떤 일이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그 시대의 정의가 되는 법이다.” (An, 1996, p. 214)

국립서울대학교가 교모·교복 제도를 제정한 표면적인 이유는 빈부격차가 심했던 당시 학생들에게 단정한 교복을 입혀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해방정국의 서울대학교에서 좌익발호를 막고, 학생들의 과격성을 수그러들게 하는” 것이었다(An, 1996).

국립서울대학교는 일제강점기 대학 교모였던 사각모[角帽]를 버리고, 감색 베레모(beret)를 교모로 지정했다(“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 베레모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학생들은 이를 이국적 전통 모자 또는 ‘화가’의 모자로 인식하였다(“Emergence of the beret”, 1955; “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 그러나 베레모 교모는 전후 승전국의 최신 유행을 따르던 밀리터리풍 모자의 수용이었다. 베레모는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 시기부터 남성적인 모자로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시 영국 특수부대 엘리트 특전사가 착용해 선망의 대상이 된 군용 모자였다(Wilcox, 2008; Song, 2011). 제작 단가가 낮아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다양한 색깔로 만들 수 있었던 베레모는 전후 세계적으로 특정 병과를 상징하거나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데 활용되었다(Jeong, 2019).

모표에는 “국립서울대학교의 기역 시옷 디귿을 따” 만든 한글 문장이 사용되었다(An, 1996).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안호상은 경성제국대학 시절 대학 교모에 부착된 세로로 ‘大學’이라 쓰인 모표(帽標)<Fig. 1> 대신 한글을 써야 한다는 신념으로 모표 디자인을 새로 하였다. 모표는 골드워크(goldwork embroidery)로 제작되었다. <Fig. 2>는 한글 문장에 금도금 코일, 월계수 문장에 구리 코일이 사용된 모표로, 구리 부분이 산화되어 검게 변하였다. <Fig. 3>에는 한글 문장과 월계수 문장 모두 금도금 코일이 사용되어 모표 전체가 노란색으로 보인다.


<Fig. 1> 
A school cap with a cap badge of the Tokyo Imperial University (c. 1887) ('Student cap of Masaoka Siki', 2018)


<Fig. 2> 
A school cap(beret) with a cap badg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the 1950’s (‘Student cap’, n.d-a.)


<Fig. 3> 
A school cap(beret) with a cap badg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the 1970’s (‘Student cap’, n.d-b.)

교복의 형태는 1940년대 영미권 해군 장교 정복과 유사했다<Fig. 4><Fig. 5>. 교복 원단으로 사용된 감색 서지(serge) 원단이 소위 '海軍사-지地'로 불렸던 사실에서도 해군 장교 정복과 교복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서지는 표면의 보풀을 없애는 클리어 가공을 한 촘촘하게 짠 능직 원단으로 주로 군복 제작에 사용되었다(“serge”, 2006). 해군 장교 정복의 더블 재킷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영국에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말까지 신사복으로 크게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남학생 교복은 감색 사-지 원단을 사용한 4-버튼 더블 수트(재킷과 바지), 셔츠와 타이로 구성되었다 <Fig. 6><Fig. 7>. 여학생 교복은 이순원(사범대 54학번)의 소장사진<Fig. 8>에서 볼 수 있듯이 힙선까지 오는 길이의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에 앞중심 단추가 4개 이상 달리고, 첫 단추의 위치가 가슴 위로 오도록 한 디자인이었다.


<Fig. 4> 
Lieutenant Alfred Crofts, President of Seoul University (SNU, 2019)


<Fig. 5> 
a uniformed U.S Naval officer in 1947 (Warner, 2007, book cover)


<Fig. 6> 
A male college uniform of Seoul University (‘Hakdohogukdan’, n.d.)


<Fig. 7> 
A college uniform and pricing (‘Strait is the gate’, Kyunghyang Shinmun, 1950)


<Fig. 8> 
Emeritus Professor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55 wearing a college uniform and a school cap (Courtesy of Soon-won Lee, 1955)

교복용 원단인 감색 ‘사-지’는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1947년 3월, 교복 제정 초기에는 교복 원단을 “1착 분씩 7,000환”에 판매하였다. 이때 “조제는 자유로 하고, 모양만 더블로 정하고, 타이를 매도록” 하였다(SNU, 1966). 1947년 9월 신학기부터 남자 대학 교복 “16,746착”이 배급되었다(“Rationing school uniforms”, 1947). 여자 대학 교복은 배급 대상이 아니었다. 1948년 5월 서울대학교 재적생 수(7,098명 중 남자 6,758명, 여자 340명)를 살펴보았을 때(SNU, 1966), 서울대학교 남자 교복이 남자 대학 교복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ig. 7>은 1950년 3월에 실린 대학 교복 도식이다(“Strait is the gate”, 1950). 특정 대학의 교복이라 지칭되어 있지 않고 배급품이라고 쓰여 있어 당시 대학 교복은 국립서울대학교 교복의 형태를 따랐던 것을 알 수 있다. 교복의 가격은 “28,000원”으로 당시 공무원 각부장관급 한 달 월급이 삼 만원(“Civil servants’ salary announcement”, 1949)이었던 것을 고려할 때 배급품임에도 불구하고 값이 비쌌다. 당시, 대학생이 제복 제모를 갖추려면 1950년 기준 입학금의 78% 이상 되는 비용을 지출해야만 했다.

해방 후 밀양에는 일제가 1941년에 지은 남북한 통틀어 최대 규모의 모직 공장이 가동이 중단된 채 있었다. 정부는 이 공장을 다시 가동시켜 국산 교복 원단의 제조 및 유통을 통해 국내 모직 공업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Wool fabric is currently in production”, 1946). 치수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대·중·소 체계가 적용되었다(“Standardizing the school uniform size”, 1949). 정부는 또한 모직물이나 면직물 제품 일체를 수입 금지시키는 조치를 시행했다(“Woolen industry will boom”, 1948; “Ban imported wool”, 1948). 해방 후 대학 교복을 비롯한 중등 이상 교복에 국산 복지(服地)만을 사용하게 한 시책은 비록 국산 복지가 “값이 월등히 비싸고 천의 질이 좋지 못하였지만”(“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 국내 모직 공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산 모직물의 판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교복 제도를 이용하여 자국 섬유 산업의 재건과 발전을 모색한 시책은 전후 일본에도 존재하였다(Bamba, 2009).

학교 당국과 정부의 대학 교복 제도의 시행에 대해서 주요섭은 “자유를 획득한 상황에서 다시 학생[生徒]들에게 교복을 강요”하는 상황이 불쾌하다고 하며, “피복의 자유까지 금지 당한다는 것은 봉건 잔재에도 정도가 심하다”고 언급하였다(Ju, 1947). 한편, 김영랑은 “大學이 眞理를 探求하는 學問의 집이로 國家의 棟량이 길너지는 곳이라면 形式이 內容을 規定할 수 있다는 것은 여기서도 適用되는 말”이라 하며 대학생들의 제복 착용을 촉구하였다(Kim, 1948). 이와 같이 지식인들 사이에도 교복에 대한 찬반이 엇갈렸다.

2. 비상전시체제와 교복 (1949~1954)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전 세계에 공포되었다. 이와 함께 미군정이 폐지되면서 주한 미군은 500여명의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Kim, 1977). 1949년 10월 1일,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상황에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Acheson)은 미 방위선 밖에 한국과 대만을 배치하였다. 미국의 경제 원조도 불투명해졌다. 이 시기 대한민국 정부는 자주국방을 위한 예비전력 확보가 절실하였다.

1949년 4월 22일, 대통령령 186호(1949년 9월 28일 선포)로 전국 중등학교 이상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학도호국단이 창설되었다(Choi, 2018). 학도호국단 총재는 대통령, 단장은 문교부장관이 맡았다. 초대 단장은 초대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였다(재임기간: 1948년 8월 3일~1950년 5월 3일). 결성 당시 42개 대학교의 28,000명이 학도호국 단원으로 등록되었다. 서울대학교는 모범적인 선도 모델로서 처음으로 결성되었다(Joongang Hakdohokukdan, 1959).

학도호국단 단복으로 교복을 착용했기 때문에 학도호국단 창설 이후 중등 이상 학생들에게 교복은 필수품이 되었다(“Student cap and uniform”, 1949). 1949년 4월 22일 학도호국단 창설식<Fig. 9>과 1949년 10월 학도호국단 주최 서울대학교 총 체육대회<Fig. 10>에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있다. 당시 교모는 필수품으로서 “군사훈련 때” 쓰는 것이었으며, “운동회 때 교모를 방석으로 사용”하였다는 일화도 있다(“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 한국전쟁 시기 부산에 설립된 전시연합대학에서 교모는 서울대학교 학생임을 드러낼 수 있었던 필수품이기도 하였다. <Fig. 11>은 박병래(사범대 49학번)가 소장한 1952년 경 부산 전시연합대학 시절 사진으로 자유복에 모두 교모를 착용하고 있다.


<Fig. 9> 
The inauguration ceremony of the Student National Defense Corps in April 1949 (‘Hakdohogukdan’, n.d.)


<Fig. 10> 
An intramural Athletic Mee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October 1949 (SNU, n.d.-a)


<Fig. 11> 
Seoul University students in Busan during wartime, 1952. (Courtesy of Byung-Rae Park, 1952)

1949년부터 문교부는 대학 교복을 “경제적 활동적으로 간소화”시키기 위해 중학생과 동일하게 만들도록 지시하였다(“Campaign for Improving people's clothing”, 1949). 당시 대학 교복이 배급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 의복 부문 실천 요항으로 남자 대학생 하복은 흰색 노-타이 셔츠에 흑색 긴 바지, 동복은 흑색 선깃 코트에 흑색 바지로 중학생과 동일하게 제정되었다. 여자 대학생 하복도 여름은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또는 유사색 치마, 동복은 검은색 코트에 검은색 바지로 역시 중학 교복과 동일하였다. 이와 같은 실천 요항은 “학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경감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였다(“Find away to reduce school expenses”, 1950). 교복은 1950년 6월 신학기부터 바뀌게 될 예정이었으나(“Clothing is simplified”, 1950), 6·25 전쟁의 발발로 인해 제도의 시행은 지연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학 교육은 중단되었지만, 전쟁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간 1951년 2월부터 임시 수도 부산에서 시작하여, 전주, 대구, 광주, 대전에서 전시연합대학의 형태로 수업이 재개되었다. 전쟁 중 남자 대학생은 대부분 군이나 경찰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군복이나 작업복을 착용하였으며, 여학생들의 옷차림은 사치스럽다는 지적이 일기도 하였다(“A history of campus dress”, 1961). 휴전 회담이 진행되던 1953년 3월 18일, 문교부에서는 문교부장관 훈령 제9호로 “학부형의 부담을 경감하고 질실강건(質實剛健)한 학생의 기풍을 양성키 위하여 오래전부터 현안 중이던” 대학생 제복 제모 착용을 실시하였다(“Forceful measure will”, 1953).

<Fig. 12>는 6·25전쟁 중이었던 1953년 3월 1일, 3·1절 기념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가두행진에서 찍은 사진으로, 당시 부산에 임시 설치된 전시연합대학 시절 학도호국단의 모습이다. 가운데 인물은 여학생으로 중학교 남자 교복 형태의 상의에 기수 반도를 착용하고, 교모를 쓰고 있다. 양쪽 두 남학생은 감색 더블 재킷과 와이셔츠, 타이, 서울대학교 모표가 부착된 베레모 일습을 착용하고 있어 시행령 이전의 서울대학교 교복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1956년 입학식에는 비상전시체제의 문교부 훈령에 따라 고등학교 교복과 서울대학교 교모를 입학식에 착용하도록 하였다(“Wear student cap and uniform”, 1956). 이 모습은 1957년 입학식에서도 발견된다<Fig. 13><Fig. 14>. 훈령을 따르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 교복을 대학교 때까지 입고 다니던 학생들도 많았다(NFMK, 2010).


<Fig. 12> 
A parade of the Student National Defense Corps on 1 March 1953 (‘Hakdohogukdan Parade’, n.d.)


<Fig. 13> 
The matriculation ceremon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n 1 April 1957 (NAK, 1957)


<Fig. 14> 
The matriculation ceremony on 1 April 1957 (NAK, 1957)

3. 전후(戰後) 서울대학교의 재건과 교복 (1955~1959)

한국전쟁 후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전시연합대학이 거점 국립대학으로 발전하면서 국립서울대학교는 서울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서울대학교는 1955년 4월 1일 신학기를 맞아 「문교부 고시 제47호」(55.1.24.), 「서울대학 제11호」(55.2.4)에 따라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있던 비상전시체제의 대학 교복 제도를 변경하였다(SNU, 1973). 이 때 중앙 학도호국단에서 결정된 사항을 따라야 했다. 권고 사항은 “흑색 또는 곤색”의 “쓰메에리(선깃)형”의 교복과 교모를 각 학교에서 임의로 제정하는 것”이었다.(“The Student National Defense Corps decided the college uniform”, 1954; SNU, 1973).

서울대학교에서 교복 개정이 이루어지던 1955년은 전쟁으로 인한 극도의 궁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해로 생활검소화운동이 시작되던 해이다. 1955년 1월에 공무원의 생활검소화운동 지침이 공문화 되었으며(“Civil servants’ frugal movement”, 1955), 7월에는 국회에서 「신생활복착용에 관한 결의안 및 건의안」이 통과되었다(Ministry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of Korea Dept. of Parliament, Division of Assembly, 1955). 전쟁 직후의 한국 사회는 반공태세를 위해 신생활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말 총동원운동을 겪은 세대들은 비상시국을 타계하기 위해서 국민복(國民服)을 떠올렸다.

서울대학교 교복<Fig. 16>은 스탠드칼라(선깃)에 와이셔츠처럼 또 하나의 칼라가 붙은 형태이다. 가슴 양쪽의 주머니는 일본 국민복 갑호(甲號)<Fig. 15>의 세로로 된 주머니에서 착안하여 입술주머니와 지퍼로 처리하였고, 지퍼 손잡이로 구리소재 둥근 고리를 달았다. 앞여밈에는 다섯 개의 단추를 달았고, 깔끔하게 보이도록 속단추 처리하였다. 하단 양쪽 주머니는 플랩 주머니(flap pocket)로 입술단 처리를 하였으며, 뒤트임은 없다. 색상은 감색이며, 왼쪽 소매 상단에 방패 형상 안에 국립서울대학교를 의미하는 한글 문양이 수놓인 소매장을 부착하였다. 왼쪽 가슴 세로 주머니 위에는 배지(badge)를 달았다. 배지에는 각 단과대학의 이름을 새겼다. 교모는 베레모에 모표를 붙여 사용하였고, 착용 시 모표를 왼쪽 눈 위로 오도록 돌려 착용하였다<Fig. 17>. 개정된 서울대학교 교복은 “선깃” 형태의 학생복과 국민복을 참조하고, 당시 유행했던 양복의 디테일을 접합시킨 독특한 양식이었다. <Fig. 18>은 1956년 입학식에서 학도호국단 기수들이 개정된 서울대학교 교복을 착용한 모습이다.


<Fig. 15> 
Kokumin-Fuku (National Uniform for Japanese male) (Sato, 1995)


<Fig. 16>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Uniform (MMSNUH, 2018, p.132)


<Fig. 17> 
A College of Education student wearing a college uniform of Seoul University in 1956 ('A college student at main gate of SNU', n.d.)


<Fig. 18> 
the Student National Defense Corps in 1956 matriculation ceremony (SNUDC, n.d.-a)

1957년에는 여학생 제복의 개정이 이루어졌다(“Uniforms for the female students”, 1957). 기사에는 여학생 제복제도가 “금년 처음 실시되는 것”이라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여학생 교복은 개교 시부터 존재했고, 이에 강제성이 부여된 것이 처음이었다. 여학생 교복 제도의 제정에 사범대 가정과가 디자인과 원단 선정을 담당하였다. 원단은 “곤색 순모 구레빠지로 선정”될 예정이라 하였다. “구레빠지”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우비(비옷)의 방수처리를 위해 발명된 크래버넷(Cravenette) 가공을 한 원단으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트렌치코트 등 군복의 가공에 널리 사용되었다(Go, 1962; Rainfair, 1942). 서울대학교 교복 지정처였던 신생제복(新生制服) 은 “영국산과 동일하게 특수가공을 한 순모 구레-바 地”로 만든 교복 광고를 신문에 싣기도 했다<Fig. 20>.


<Fig. 19> 
An advertisement of Shinsaeng Jebock Company ('Winter Present', The Dong-A Ilbo, 1955)


<Fig. 20> 
An advertisement of Shinsaeng Jebock Company ('Wool Cravenette fabric made in England'. The Dong-A Ilbo, 1957)

1957년에 제정된 여학생 교복의 형태는 성화경(사범대 59학번) 소장 사진<Fig. 21><Fig. 22>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교복 재킷은 예년과 같이 싱글 여밈이지만 길이가 짧아졌고, 앞 중심에 싸개단추가 허리 라인까지 4개 달려있고, 허리 아래부터 자연스럽게 벌어져서 뉴 룩(New Look)<Fig. 24>과 같은 ‘∧’자가 나오도록 디자인되었다. 첫 단추가 가슴 라인에서 시작하게 되어 재킷의 네크라인이 내려왔다. 재킷 주머니는 입술주머니 형태로, 허리 즈음에 달려있다. 치마는 플레어 치마이다. 배지는 재킷의 경우 왼쪽 밑 칼라에, 조끼만 착용했을 경우 왼쪽 가슴에 달았다. 당시 여학생 베레모 교모가 있었지만(NFMK, 2010), 사진 속에서 아무도 착용하지 않았다.


<Fig. 21> 
Female students wearing college uniforms in 1959 (Courtesy of Hwa-kyung Seong, 1959)


<Fig. 22> 
An uniform vest for female students in 1959 (Courtesy of Hwa-kyung Seong, Jing-ja Lee, 1959)

1957년 개정된 여학생 교복 제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조끼의 출현이었다<Fig. 22>. 1957년 등장한 교복 조끼는 더블 브레스티드로 6-버튼이었으며, V 네크라인은 가슴 밑까지 내려오고, 길이는 재킷보다 짧았다. 조끼가 출현한 이유에 대해서 1957년 학생풍기순화기간(1957년 4월 22일~5월 5일) 첫 날에 발간된 『대학신문』에서 살펴볼 수 있다(“Morality from the faculty’s”, 1957). 이 기사는 1957년 4월 8일 개최된 『대학신문』 주최 ‘교수가 본 대학생의 도의(道義)’ 좌담회 내용을 담은 것으로서 학생들의 제복제모 제도도 주요 안건 중 하나였다. 당시 여학생 교복 제도 개정에 참여한 심상황(당시 서울대 교학국 부국장, 의대교수)은 조끼를 교복에 추가한 이유에 대해 “색채와 스타일이 사계절에 알맞도록, 다시 말하면-옷을 하나 벗으면 벗은 대로 모양이 있는 것을 택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전후는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광범위한 서구 문화와 가치관이 유입되어 댄스, 양장, 퍼머와 같은 서구식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다.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를 우려하는 학교 당국에서는 학생들의 탈선행위를 막기 위해 강력한 풍기단속과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도의 교육’(Lee, 2008)의 일환으로 대학 여자 교복의 개정과 강제를 단행하였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가 지정한 업체에서 교복을 구매해야 했다. 종로 화신 백화점에 위치한 신생제복 직매장에서 기성복 교복과 교모를 구입했으며(Shinsaeng Co., Ltd., 1972)<Fig. 19>, 맞춤 교복의 경우 남학생은 종로에 위치한 양복점인 한성라사(漢城羅紗)와 명광라사(明光羅紗)가, 여학생 교복은 근화양장점(槿花洋裝店)이 지정처였다(“Order school uniform”, 1962). 기성품 교복 가격이 등록금의 40%에 달할 정도로 고가였다. 이로 인해 입학 등록금 납부 시 1만 5천환씩 징수하고, 잔액은 제복을 찾을 때에 완납하는 제도가 생겼다(“Partial prepayment for”, 1957). 신입생 등록 시 반드시 교복을 먼저 구입하도록 교복을 강제한 정책은 성공하여 1959년 단체 사진에서 다른 시기에 비해 교복을 착용한 여학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Fig. 23>.


<Fig. 23> 
Student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Nursing in 1959, MNS collection (Photo by Author, 2017)


Ⅲ. 4.19 혁명 후부터 박정희 정권기까지의 교복
1.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의 교복 (1960~1962)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15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단행하여 독재정권을 구축하려 하였다. 4월 19일에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에 맞서 항거하였고, 이때 순수한 정의감으로 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교복 물결은 기득권을 거부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살아있는 정신의 상징이었다. 4.19 혁명 이후 정부는 학원의 민주화를 위해 학도호국단의 정식 해체를 의결하였다. 학도호국단 해체로 인한 전력(戰力)의 보충을 위해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던 엘리트 장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인 ROTC(예비장교 군사훈련단) 제도를 받아들여 1961년 4월 전국의 16개 종합대학에 학도군사훈련단(‘학훈단’, 1972년에 ‘학군단’으로 명칭 변경)이 창설되었다. 학도군사훈련단 단복은 예산부족으로 자비로 부담해야 했는데, 각 대학의 교복에 후보생 휘장을 부착하여 사용하였다(ROTC, 2011).

장면 내각을 중심으로 한 제2공화국에서 대학생들은 신생활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흰 셔츠에 감색 또는 검은색 바지의 하복 교복을 착용하였는데, 이와 같은 복장은 청신한 기풍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Lee, 2014). 1961년 2월 전국 대학생 자치회인 대한민국대학생총연합회에서는 교복을 ‘1만원 짜리 이하’의 것으로 통일할 것을 의결하기도 하였다(“College student will”, 1961).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교복 착용과는 달리, 정치계에서는 대학 교복 소재를 면 ‘골뎅’ 소재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는 등 사회를 선도할 잠재력을 갖춘 대학생들의 옷차림을 다시 규정하려고 하였다(“The will of the people”, 1961).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위시한 육사 8기들이 중심이 되어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대학에서 지지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두 집단은 당시 한국사회에서 근대적 합리성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었다(Lee, 2014). 그러나 군사 정부는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시도한 대학생들의 의지를 꺾고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국민재건운동본부가 본격적으로 국민의 옷 개조를 시도한 1961년 9월 이후부터 1962년 7월 사이에 대학생 교복, 교모의 착용을 강조하는 신문기사와 사진들이 집중적으로 실렸다. 이때 ‘재건복’을 캠퍼스에서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An, 2004). 문교부에서는 1961년 6월 1일 “혁명정부에 입각한 학원에 청신한 기풍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대학생의 제복제모 착용을 지시하였다(“Law bans students in the bars”, 1961).

1961년 10월, 동복(冬服) 착용이 시작되면서 문교부에서는 세부 지침을 내려 대학생 교복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시작하였다(“Encouraging school uniforms”, 1961). 모든 교복은 국산 원단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여학생 교복은 동복 조끼를 빼고, 플레어스커트를 타이트 “스카-트” 또는 “쓰봉”으로 바꾸도록 했다. 기존 플레어스커트의 타이트스커트 ‘개조 착용’은 괜찮다는 방침도 내려졌다. 이 기사가 나간 후 3일 만에 당국에서는 교복 착용완화 지침이 발표되었다(“Flair is OK”, 1961). 이는 여학생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으로 추정된다. 완화된 지침으로 여학생은 타이트스커트와 플레어스커트 모두 착용이 가능하며, 여학생 교모는 자유로 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철저한 이행을 위해 수시로 감독관을 파견하여 위반 시에 학교 책임자 및 관계 교원을 엄중히 문책한다는 방침을 밝히거나(“Law bans students”, 1961), 교모 쓰는 요령을 알려준다든가 <Fig. 24>(“Encouraging school uniforms”, 1961), 교복 미착용자는 등교 또는 강의를 제지하거나 교복 착용 강조 기간을 정하기도 하고(“Drastic measure will be taken”, 1961), 교복·교모 주문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신입생 등록이 불가하다든가(“Able to register after”, 1962), 학기말 시험시간 기간에 착용 이행을 지도(“University Authorities will count”, 1962)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단속하였다.


<Fig. 24> 
How to Wear a School cap ('Encouraging school uniforms', Daehaksinmun, 1961)

군사정변 직후 교복 착용이 강조되고, 다수의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게 되면서 서울대학교 교복이 서울대 특유의 복장이라는 인식도 강해졌다. 서울대 학생회에서는 서울대 남학생 교복과 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착용하는 외국어대학교에 항의하는 일도 생겼다(“Protesting at the University of Foreign”, 1961). 비록, 이 시기 교복 착용이 강제되기는 하였으나, 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의 표현, 실용적인 이유로 일부 학생들에게 실효를 거두어 “4년 동안 교복만 입다가 졸업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SNU, 1986, p. 318)<Fig. 25>. 관습적으로 당시 대학에서는 “대학 입학할 때는 거의 다 입는데, 이학년이 되면 약 반만 입고, 삼학년 때는 거의 안 입”(“Morality from the faculty’s”, 1957)거나 “1학년 때만 착용하는 듯”(SNU, 1966, p. 376)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분위기였기 때문에 4년 내내 교복을 입는 학생들의 등장은 이 시기의 특이한 모습이었다.


<Fig. 25> 
The 1964 matriculation ceremon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DC, n.d.-b)

2. 대외 개방 노선으로의 선회와 교복 (1963~1968)

군사정변 직후부터 1962년 7월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대학생 교복에 대한 단속 기사는 1962년 2학기부터 사라졌다. 이는 ‘재건복의 포기’(Lee, 2014)와 시기를 같이한다. 재건복은 1962년 6월 9일 밤 0시를 기해 단행된 통화 개혁의 실패로 정부가 대외 개방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베트남 전쟁 특수(特需)와 더불어 1960년대 중반에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되면서 다양한 가격대의 복식과 구미의 첨단 유행이 소개되었고, 자유로운 복장의 대학생들이 증가하였다. 대학 내에 교복, 교모 착용이 감소하고, 대학 내에 사치 풍조가 만연하자 서울대학교에서는 미대, 사대, 공대의 전문가로 구성된 교복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로 교복을 개정하였다(“The uniform will change”, 1965). 개정된 교복은 1965년 3월 신입생부터 착용시키도록 하였다. 개정된 교복 양식은 남학생 상의의 경우, 신사복 칼라에 쓰리버튼 싱글 여밈의 면 재킷으로 하였으며, 하의는 “흑곤색”이면 자유로 착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Fig. 26>. 왼쪽 소매에(관련 기사에는 ‘어깨’로 표현) 군부대 마크처럼 상징적으로 달리던 와펜은 둥글게 변하여 왼쪽 가슴에 오도록 하였다<Fig. 27>. 여학생 교복은 남학생 교복에서 여밈 방향만 반대로 하여 여성용 재킷으로 제작하였다<Fig. 28>. 새 교복 값은 1천 2백원으로, 모직 원단으로 만든 교복비가 2~3만환이었고 화폐개혁으로 만원이 천원으로 변했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거의 ‘반값’ 교복이었다.


<Fig. 26> 
New College Uniform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65 ('The uniform is changing', Daehaksinmun, 1965)


<Fig. 27> 
New emblem of SNU in 1965 (‘school emblem’, n.d.)


<Fig. 28> 
Freshmen of College of Fine Art, Dept. of Sculpture in 1965 (SNU, n.d.-b)

그러나 새로 개정된 교복 제도는 이듬해인 1966년 신입생에게도 입혀지지 않은 채 실패로 돌아갔다(“New uniform, new badge”, 1966). 1965년 개정된 교복은 신사복 스타일로 사복과 큰 차이가 없고, 왼쪽 소매 상단의 방패형의 ‘노란’ 마크도 하늘색 자수에 감색 바탕이라는 잘 구분되지 않는 둥근 마크로 변화되어 서울대 교복이라는 상징성이 적어졌다. 이미 자유복을 입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새로 개정된 교복이 관심을 끌지 못했고, 기존의 교복 양식을 선망하던 신입생들에게는 과거의 교복 스타일이 선호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1968년 입학식 사진<Fig. 29>에서도 1965년 개정 이전의 교복을 착용한 모습이 확인된다.


<Fig. 29> 
Jiwon Kang wearing a college uniform at the 1968 matriculation ceremony (Kang, 2012)

한편, 1968년 서울대에서 여학생들의 교복 착용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1968년 3월, 입학식과 교양과정부 개학식에는 교복 입은 여자 신입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There are no girls”, 1968). <Fig. 30>은 연도 미상이나 이 사진이 『대학신문』 자료인 점, 196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부드러운 스카프를 목에 둘러 옷 속에 넣는’ 스타일을 연출한 점(“High-sense accessories”, 1968), 여학생의 책에서 ‘간호’라는 글자가 보이는 점을 통해 이 기사를 쓴 『대학신문』 기자가 의과대학 교정에서 간호학과 신입생을 찾아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좌측 어깨’에서 예전 교복에서 보이지 않았던 학교 마크가 확인된다.


<Fig. 30> 
A Female students in college uniform (SNUDC, n.d.-c)

3. 데탕트(Détente) 시대를 거스른 안보위기론과 교복(1969~1979)

1960년대 말 해외에서는 냉전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프랑스 한 대학에서 시작된 ‘68혁명’의 나비 효과로 인해 다원주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었다(Yang, 2017).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베트남 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 닉슨은 1969년 7월, 미국은 다른 나라의 운명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선언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으로 국내에서는 주한 미군의 철수로 인해 국내 안보가 다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형성되었다. 1968년 1월, 북한 특수 부대원의 청와대 습격 사건(1.21 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등 남북한 사이의 안보위기가 발생하고 있었으며, 1975년 4월에는 베트남이 공산화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와 같은 대외적 환경변화를 국내적 정치억압의 수준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활용했다(Choi, 2019). 박정희 정권은 “제2의 6.25가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유시를 남기며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였고(“President Park urges a mission”, 1970), 1969년 9월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삼선개헌을 통과시키고, 1972년 10월 유신 헌법을 발효시키며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終身)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영도적(절대적) 대통령제를 열었다.

이 시기 대학에서 군사교육인 ‘교련’ 수업이 실시되었다. 1~3학년 전체 남자 대학생을 대상자로 하고, 학점을 부여하고, 군복무기간 단축의 혜택을 부여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는 1969년 6월 20일 교련복장의 착용을 지시했다(SNU, 1973). 서울대학교가 선정한 3색 얼룩무늬 교련복지로 제작한 교련복은 화신백화점 1층의 신생제복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Shinsaeng Co., Ltd., 1972). 1970년 2월 24일에는 교련 복장 통일을 추가로 지시하며 교련 복장의 좌측 상단에 학교 마크를 부착하도록 하였다(SNU, 1973). <Fig. 31>는 1980년대 서울대학교 1학년 남학생들이 교련복을 입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입소해 1주일간 생활하는 ‘학생병영훈련소(문무대)’ 입소교육을 받으러 가는 모습이다.


<Fig. 31> 
University students wearing School Military Drill uniform (교련복) in 1980s (Tamjingang, 2009)

1971년 교련 반대운동이 확산되었다. 1971년 10월, 이를 진입하기 위해 무장군인이 학내에 주둔하도록 한 위수령이 발동되고, 휴강·휴교령이 내려졌다. 이듬해인 1972년은 새마을 운동이 전국에 일어나던 해였으며, 10월에는 유신체제가 선포되었다. 1972년 3월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에는 “교복, 교모를 필히 착용토록”하였고(“On March the 2nd”, 1972), 『대학신문』에는 ‘교복’에 대한 찬반을 논하는 기사가 실렸다(“School uniform debate”, 1972).

1975년 5월 20일 정부는 전국 98개 대학 총학장회의를 소집하고 모든 고등학교 및 대학에 학도호국단의 결성과 대학에서의 군사교육강화를 지시하였다. 서울대에서는 학도호국단의 조직을 완료하고, 1975년 6월 30일 발단식을 가졌다. <Fig. 32>은 1975년 학도호국단 발단식 사진으로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교복에 교모를 제대로 쓰고, 군화까지 신은 맨 첫줄의 기수와 각 단대와 학년을 대표하는 남학생들은 모두 학군단이다. 그 뒤의 남학생들은 교복·교모를 갖춘 학생이 드물고, 장발의 학생도 있다. 맨 앞 여학생 대표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발단식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기성 세대에 대항하는 상징이었다(Yoo, 2008).


<Fig. 32> 
The inauguration ceremony of S.N.U. Student National Defense Corps on 30 June 1975 ('Hakdohogukdan inauguration ceremony', n.d.)

1969년에 시작된 학교 교복 지정제 폐지로 자유경쟁이 허용되고, 값싼 합성섬유가 개발되어 교복 가격은 싸지고 있었지만 (“Competition becomes obvious”, 1971), 7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들의 기성복 산업 참여로 안정적인 의복들이 공급되고, 학생들의 여가시간 증가로 취미활동도 다양해지면서 대학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보다는 다양한 캐주얼 자유복장을 입은 학생들이 지배적이었다. 박낙규(미학과 73)는 “입학했을 때만 해도 교복의 어깨 부분에 서울대 교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입는 신입생들이 적지 않았으나 77년 졸업하는 당시에는 열 명 중 한 두 명이 입고 다녔다”라고 하였다(An, 2004). 그러나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의 교복 착용<Fig. 33>과 학군단의 교복 사용<Fig. 34>은 1979년 교복 자율화 방침이 발표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Fig. 33> 
The matriculation ceremony in 1977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DC, n.d.-d)


<Fig. 34> 
ROTC students in The 1975 matriculation ceremon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DC, n.d.-e)


Ⅳ. 교복 자율화 조치 이후의 대학 교복(1980~현재)

유신체제가 선포된 지 7년째 되던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피살되고, 12.12 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등장했다. 신군부는 신군부세력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홍보대책을 마련했다. 1979년 12월 14일, 이화여대 총장직을 역임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용기를 보여준 바 있는 김옥길 총장이 여성 최초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 ‘교육의 자율화’를 상징하는 교복자율화를 시행했다. 김 장관은 “교육 자율화 깃발을 어디에 꽂으면 교육자들이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교복이라는 언덕에 꽂은 것”이라고 설명했다(Kim, 2006).

1980년 3월 한 대학 신입생 입학 안내장에는 입학식에 “가급적” 교복을 입고 나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The liberalization of the school uniform”, 1980). 신입생들은 그 가급적이라는 단서를 눈여겨보고는 대부분 형형색색의 자유복 차림으로 입학식에 참석하였다. <Fig. 35>은 1980년 서울대학교 입학식 사진으로 교복 차림보다 자유복이 더 많이 눈에 띄며 1977년 입학식 사진<Fig, 33>과 비교할 때 교모까지 착용한 학생은 단과대표지를 지키는 학군단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Fig. 35> 
The matriculation ceremony in 1980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DC, n.d.-f)

1955년에 개정되어 이후 서울대학교를 상징했던 교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1983년이었다. 교복자율화로 인해 ROTC 후보생들만 교복을 구입하는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고자 단복을 제정하여 1983년 입단자부터 지급하였다(ROTC, 2011). 동절기 단복은 더블형 감청색 슈트의 정장으로 정하였고, 하절기 단복은 하늘색 반소매 와이셔츠형 상의와 감청색 하의로 결정되었다. 이 시기 제정된 더블형 수트와 베레모 일습의 학군단 단복은 현재까지도 입혀지고 있다. 2011년에 첫 여성 학생군사교육단이 창설되면서 여자 단복이 추가로 제정되었다<Fig. 36>. 한편, 교련복은 대학에서 교련수업이 폐지된 1990년 3월까지 존재하였다(Oh, 1996).


<Fig. 36> 
ROTC students in uniforms in 2020 (Headquater of ROTC, 2020)

2010년을 전후하여 학과 점퍼<Fig. 37>가 신입생들에게 교복의 일종으로 등장했다(Im, 2012; Park, 2019). 학과 점퍼는 이전에는 체육교육과, 농촌 활동, MT(membership training), 축제시기에 단체 활동을 위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지만, 2010년 이후에는 학생회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 신입생 때부터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에는 학교 로고와 학과가 적힌 롱패딩 코트를 단체로 맞춰 입기도 하였다(Song, 2017)


<Fig. 37> 
A varsity jacke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Park, 2019)


Ⅴ. 결론 및 요약

본 연구에서는 해방 후부터 1980년 초 교복 자율화 조치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대학 교복 중 서울대학교 교복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해방 후부터 이승만정권기까지, 4.19 혁명 후부터 박정희 정권기까지, 교복자율화기 이후로 시기를 구분하여 교복의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자 하였으며, 교복 변천에 영향을 준 세계정세,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맥락을 살펴보고, 그 흐름을 서술하고자 하였다. 이 때, 학내에 국가 주도로 결성된 군사훈련 단체의 단복과 교복의 관계에도 주목하였다. 연구 방법으로 문헌자료와 아카이브를 통한 사적 조사가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 국립 최고교육기관으로 설립된 국립서울대학교에서는 좌우파의 대립 속에 반공 연대를 유지할 지배 엘리트 육성을 위해 교복 제도를 제정하였다. 그 형태는 영미권 해군 장교 정복을 변형한 형태이며, 소재는 국내 섬유산업 재건을 위한 국산 모직이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 교복은 자주국방의 전력으로 활용된 학도호국단의 단복의 역할을 하였고, 한국 전쟁 직후에는 중학생 교복과 동일한 스타일로 제정되기도 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는 국민복과 양복을 참조한 새로운 대학 교복을 제정하였다. 1957년에는 도의(道義) 교육의 일환으로 여학생 교복도 개정되어 여학생도 교복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학도호국단이 해체된 이후, 대체 전력 보충을 위해 ROTC 제도가 도입되었고, 학도군사훈련단에 자원한 학생들은 교복에 휘장을 부착하여 단복으로 사용했다. 1961년 군사혁명 이후 정부는 기풍과 질서 확립을 강조하며, 교복, 교모, 배지 착용을 강제하였다. 1960년대 경제 부흥과 함께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복장이 증가하면서 1965년 신사복 형태의 교복이 제안되기도 하였으나 학생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69년 이후 안보 위기 속에 교련이 실시되면서 교련복이 등장했고, 대학을 병영화하려는 교련 제도의 실시는 대학생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유신체제가 성립된 1972년부터 다시 교복이 강화되었고, 1975년 다시 결성된 학도호국단에 의해 남학생들에게 교복은 필수품이 되었다. 1979년 말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고 대학 교복이 사라졌다. 각 대학 교복을 사용하던 ROTC 단복도 자체 단복을 제정하게 되면서 서울대학교 교복은 자취를 감췄다.

서울대학교 교복이 해방 후 “한국 최초의 현대적 국립 종합대학교”의 교복이었기에 그 안에 담긴 특권의식, 긍지, 엘리트로서의 상징성이 클 것 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자료를 수집하면서 서울대학교 교복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 축약된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해방 공간의 극심했던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가 반영되어 학생들을 감시하기 위한 옷이었으며, 둘째, 국가 안보위기 상황에서 예비 병력으로 동원될 수 있도록 한 옷으로서 자주국방을 상징했으며, 셋째, 전쟁 극복을 위한 실용적, 경제적, 간소화 된 옷으로 중학교 교복 형태로 변하기도 하였고, 넷째, 교복 배급/지정업체 제도와 국산 복지, 신소재의 사용을 통해 국내 섬유산업을 발전시키는 기틀을 마련했으며, 다섯째, 전후에는 학교의 자부심과 긍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여학생들에게는 도의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여섯째, 박정희 정권기에는 국가 체제에 순응하는 엘리트를 만드는 기제로서 교복이 사용되었다. 서울대학교 교복에는 국가의 필요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군대 정신을 국민적 규모로 확대하려는 전체주의적 의도가 포함되었지만, 전쟁 후 국가의 섬유 산업 발전 기반을 닦고,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며, 학생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표현할 수 있게 하려는 순기능도 존재했다.

건국기, 비상전시체제기, 군부 독재기의 대내외적 불안과 국가의 통제 속에서 교복을 입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을 견인해나갔다. 한편, 교복을 입은 세대들의 “교복입지 않으려는 고집”(SNU, 1966)은 창조적이고 역동적으로 진보해 나가는 특수사회로서의 대학 정신을 살아있게 했다. 그들이 시대의 시련을 감당하고 저항하였기 때문에 지금 세대의 대학생은 자유로운 옷차림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교복의 일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배지의 변천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였다. 또한 지방 거점 국립대학들과 사립대학교의 교복 제도도 서울대학교 교복 제도와 비교 관찰해 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라 사료된다. 이는 후속 연구자들의 숙제로 남긴다.


Acknowledgments

We would like to express sincere thanks to Soon-won Lee(Emeritus Professor of SNU, College of Education 54), Hwa-kyung Seong(Emeritus Professor of Korea University, College of Education 57), Byung-rae Park(College of Education 49), Myung-ae Jeon(Emeritus Professor of SNU, College of Literature and Science 62), Heung-tae Kim(College of Law 59), Jong-hwan Ahn (College of Education 55), and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for their photos, timely advice and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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