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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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 No. 4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4, pp. 41-53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20
Received 10 May 2020 Revised 27 May 2020 Accepted 08 Jun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4.041

살롱(Salon)의 사회문화적 역할이 메르베이외즈(Merveilleuses) 복식에 미친 영향
신파람 ; 이효진
전북대학교 생활과학과 박사과정
전북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The Social and Cultural Influence of the Salon on Merveilleuses’ Style
Param Shin ; Hyojin Lee
Doctoral Course, Dept. of Human Ecology, Jeonbuk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Jeonbuk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Hyojin Lee, e-mail: curiously@naver.com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social and cultural roles of the Salon and its effects on the Merveilleuses in the late seventeenth and early eighteenth centuries.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literature and photographs collected from books and museum sites indicated that the Salon was a unique space where women exercised social and cultural influence while enjoying equal status with men as significant participants in society. Certain characteristics of the Salon enabled the Merveilleuses, a progressive female entity, to emerge as an equal counterpart to the Incroyables, a male entity, who significantly contributed to social change in that era. The research discovered that the Merveilleuses’ style strongly emphasized the natural beauty of the female body, especially regarding its maternal characteristics. This stylistic change can be viewed as the outcome of an unlikely combination of two ideologies: social demands for a more modern conception of maternity and an individual psychology of liberation. In addition, the study asserts that the significance of the Merveilleuses derives from their hybridization of antiquity and luxury, which led to the rise of women as modern consumers who derived fundamental pleasure from actively engaging in the performance of consumption.


Keywords: directoire, Incroyables, Merveilleuses, salon
키워드: 총재정부, 앵크루아야블, 메르베이외즈, 살롱

Ⅰ. 서론

근세 시대 살롱(Salon)은 문화와 지성의 산실로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고 계몽사상의 창출과 전파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프랑스 살롱 문화는 앙리 4세(Henri Ⅳ) 이후의 궁정문화에 반대하여 교양(honnêteté)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형성되었고(Lee, 2005) 그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살롱이 개장된 초기에 드나들던 정치가, 귀족, 성직자, 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관리, 법률가들과 함께 상인, 학생, 군인, 건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화 공간 역할을 하였다(Suh, 2003a). 즉, 살롱은 남녀가 궁정 문화와 다르게 사회적ㆍ신분적 제한을 받지 않고 모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는 새로운 사회였다(Suh, 2003b).

이 시기에 여성들은 살롱을 개장하고 운영한 주체가 되었으며 이는 기존 남성 중심 체제의 사회적 활동과는 상반되는 사회적 쟁점이었다. 살롱에서는 여성들이 사회적 위치를 인정받으면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는데 살롱의 주재자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살롱이 동시대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 영역의 장소로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살롱은 남성 중심의 상류층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 하였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상과는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여성들이 살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이들은 기득권을 가졌던 남성들에 의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Lee, 2007). 메르베이외즈(Merveilleuses)는 살롱 활동에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여성 그룹이었다. 메르베이외즈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총재정부(Directoire)시기에 특색 있는 스타일을 표방했던 여성들이었다. 문헌들에 의하면 메르베이외즈는 총재정부 시기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주목 받은 남성 그룹인 앵크루아야블(Incroyables)의 대등형(counter partner)으로써 언급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메르베이외즈에 대해 역사적 가치가 규명된 복식 연구가 충분하지 않으며, 복식 연구에서 메르베이외즈에 대한 선행연구는 프랑스 혁명 시기 기존 복식과의 차별성 있는 외양을 추구한 색다른 혁명기의 여성그룹 및 패션리더(Lee, 2004; Cho, 1984)에 대한 연구가 있다. 그리고 살롱 복식에 대한 연구로는 Kim, Chung, & Kim(2002)의 연구가 있으며 살롱 문화에 영향을 받은 상류층 여성 복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문사회학 연구의 경우 Lee(2005; 2007), Song(2011)의 연구에서 살롱 문화와 여성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춰 살롱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행연구들에 근거하여 여성의 인식변화에 영향을 미친 살롱을 토대로 특정 패션 그룹군으로 여겨지는 메르베이 외즈 복식의 의미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조명된다.

이에 연구 목적은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살롱의 사회 문화적 역할이 메르베이외즈 복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함에 두었다. 연구방법은 문헌연구로 국내외 서적 및 연구논문과 같은 2차 자료를 토대로 하였으며 실증적 자료로써 문헌 및 박물관 사이트에서 수집한 사진을 활용하였다. 연구의 시대적 범위는 살롱 문화가 발달하였던 17세기 후부터 살롱 문화가 융성했던 18세기를 중심으로 하였다.

메르베이외즈 복식 시각 자료 선정의 타당성을 위해 문헌적으로 인증된 내용에 의거하고, 공식 웹사이트의 주석 등을 참고하여 시각 자료를 수집하였다. 18세기의 프랑스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초상화 한 점 정도는 소유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18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사회에서는 사적 초상화가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 또한 계몽주의의 도덕적 관점의 영향으로 인물의 개성과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분위기였다(Song, 2002). 이에 초상화에 나타난 복식의 경우 그 당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이고 사실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선정하였다. 당시 상류층 복식이 표현된 판화는 대중에게 있어 메르베이외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의 매체였다는 점에 중요한 단서가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 근거로 사용하였다.

본 연구는 메르베이외즈를 통해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로운 의상 스타일을 채택한 여성의 능동적 행위 의지와 그 확산에 있어 토대가 된 사회적 배경을 살롱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혁명 이후 여성 내면의 가치 표현 결과물인 복식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즉, 메르베이외즈의 복식이 시대상황에 따른 여성의 주체적 사고 표현으로서 복식사적 가치가 있음을 조명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Ⅱ. 이론적 배경
1. 살롱의 개념

살롱은 이탈리아어 살로네(Salone)에서 유래된 응접실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Suh, 2003a), 보통 근세에서 근대에 걸친 서양 상류 계급의 응접실을 뜻한다(Monthly art, 1999). 살롱에 대한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Rynsch(1999)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 여성 주도의 사교 모임이 있었다.

여성주도 사교모임의 형태인 살롱 문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였다.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한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학술원과 학술 집회가 생겼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함께 읽고 음악을 연주하고 지식을 논하며 철학에 대한 토론을 했다. 이와 같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가 프랑스에 확산되면서부터 살롱 문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Song, 2011).

프랑스의 살롱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물이 프랑스에 유입됨에 따라 새로운 문화의식이 일어나면서부터 발전했다(Duby & Perrot, 1998). 프랑스에서 살롱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했다. 특히 18세기 전반까지도 통일된 언어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으며, 살롱이라는 표현은 1783년에 이르러서 쓰이기 시작했다(Lee, 2015). 하지만, 살롱이 개인 주택에서 개장되었음으로 방이나 응접실을 의미하는 ‘살(salle)’과 어원적으로 일치하게 표시되었으며 이에 방(salle), 집(chez), 저택(maison),살롱(salon)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Suh, 2003b). 이에 관해 Suh(2003b)는 명칭은 다르나 이들은 모두 문학작품을 매체로 한 대화ㆍ사교ㆍ토론의 장이었다고 언급한다. 즉, 살롱은 공통의 관심사를 매개로 하는 담론의 장이라고 개념정의 할 수 있다.

2. 살롱의 사회ㆍ문화적 역할

특정 사회의 구조를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계급ㆍ연령ㆍ젠더ㆍ민족성을 추적하며 시작된다. 문화는 사회 구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예술적 또는 지적 활동, 생활 방식, 문화 발전으로 구분된다(Baldwin, Longhurst, McCracken, & Ogborn, 2009). 이를 토대로 메르베이외즈 복식에 영향을 미친 살롱의 이론적 배경을 연구하기 위해 먼저 사회의 구조를 묘사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역할을 고찰하고 그에 따른 유의미한 행동인 문화적 역할로 나누어 정리 하였다.

1) 사회적 역할

사회학자들은 사회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회적 구성 요소 간의 지속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유형화된 관계를 묘사한다(Abercrombie & Longhurst, 1998). Elias(2003)는 사회학적인 시각으로 궁정을 통해 특정인의 사회적인 지위가 어떻게 발전 되었는가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개인의 행적과 특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공간을 매개로 사회 구조 즉, 사회적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사회는 인간이 모여 사는 집단이며 언어ㆍ가치관ㆍ종교ㆍ규범 등을 상호 공유한다(Kang, 2006). 살롱은 각 집단을 아우르는 사회적 역할이 행해진 공간이었으며 살롱의 사회적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살롱은 여성이 개인적 주체가 되어 다양한 개인과 함께 활동한 공간이었다. 살롱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친우로서 교제하며 서로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Davis(2006)는 살롱의 가장 큰 특징이자 존재 이유를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울릴 수 있음에 두었다. 살롱은 성별에 차이를 두지 않는 상호 교제의 장이었으며 이곳에서 여성들은 스스로를 교육함과 동시에 남성들을 교육했다. 이는 살롱을 통해 고등교육의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들도 문화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Duby & Perrot, 1998). 살롱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등한 품격의 지성을 요구한 공론장이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다.

또한 살롱은 귀족적 취미와 개인적 능력의 중재가 이루어져 개인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살롱 문화를 기점으로 시대를 특징짓는 성격이 변하였는데 17세기는 혈통을 중시하는 궁정 문화 즉, 귀족적인 취미의 시대였고 계몽주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8세기는 재능을 중시하는 시민계급 중심의 담론하는 지적시대였다(Lee, 2015). 살롱은 귀족 가문 출신의 오네톰(honnête homme)이나 젠틀맨(gentleman) 계층이 시민 계층과 만나는 자리였다. 살롱은 계급에 차별을 두지 않는 담론의 사교장이 되었으며 신분적 출신과 상관없이 사회적 비전을 공유하는 공공성으로 공론(public)을 형성하게 되었다(Habermas, 2001). 살롱에서의 교양은 실용적인 가치였으며 이는 절대주의 지배체제의 규율을 준수하면서도 사회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귀족 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은 그들을 구분하는 사회적이고 법적인 간격에도 불구하고 살롱에서 확립된 교양의 토대 위에서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었으며 사회 엘리트층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군주의 막강한 권위 아래에서 엄격하게 서열화 되고 통제되었던 궁정과 달리 살롱에서는 이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상한 대화, 정중한 태도, 즐거운 오락을 즐기고 교제할 수 있었다(Lee, 2005). 이처럼 살롱은 성별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선 사회 통합 공간이었다.

둘째, 살롱은 여성이 만들어가고 여성이 이끌어가는 여성 활동의 공간이었다. 살롱의 사회적 역할 중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살롱 활동에서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살롱은 여성의 사회 후원공간이었는데, 살롱에서 여성들은 교양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양인을 양성해내는 역할을 하였다. 살롱에서의 여성은 타인의 개인적 능력에 초점을 두고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주도적으로 후원했다(Duby & Perrot, 1998).

또한 살롱에서는 여성들이 주도권을 쥐고 지적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Geczy, 2013). 대부분 귀부인이 살롱 운영의 중심에 있던 17세기와 달리 18세기 살롱에는 총명하고 활동적이며 개방적인 여장부들이 등장해 자신의 방식대로 살롱을 꾸몄다. 살롱에서 논의된 미적ㆍ예술적 취향은 문화 전반으로 퍼져나갔으며, 바로크ㆍ로코코 양식 시대의 17ㆍ18세기부터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살롱에서 구가된 감수성과 취향이 문화 전반에 반영되었다(Yoo, 2012).

살롱에서는 여성이 그 운영의 주체에 있었기에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주체적 입장을 가지고 서로간의 대화가 가능했다. 살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친절과 예의를 갖추고 자신들을 존중 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Duby & Perrot, 1998). 여성들은 궁정과 살롱을 통해 공적인 생활에 참여하고 그 역할을 증대시켜 나아갔다. 그녀들은 상류사회의 신참자들을 위한 문화의 전달자이자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의 후원자 혹은 결혼, 교제, 부정한 사랑을 통해서 군주나 그의 권력 대리인들과 친밀함을 갖고 야심 있는 남성들의 권력 중개인이 되기도 했다(Landes, 1988). 이처럼 살롱을 통해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지정된 유일한 영역이었던 가사의 영역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Lee & Lee, 2012; Lee, 2005).

이론적인 문헌의 내용을 종합하면 살롱에서는 계층과 성별의 차이를 극복하고 개인이 중심이 되어 상호간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여성의 공적 무대로서 살롱은 사회 후원 공간이자 여성 주체의 활동 공간이었다.

2) 문화적 역할

문화란 사회적 구조에서 파생된 유의미한 행동이며, 살롱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역할의 토대였다.

첫째, 살롱은 교양 있는 사회를 확립하는 중추 역할을 하였다. 근세 살롱은 출생, 신분, 종파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지성의 공간이자 세련된 취미 및 예절이 있는 교양의 공간이었다. 17세기의 살롱은 귀족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귀족적인 가치, 귀족적인 생활방식, 여가의 이상을 제공해 줌으로서 그들이 귀족사회에 편입 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Lee, 2005). 프랑스 최초의 살롱을 개장한 랑부이예 후작 부인(La marquise de Rambouillet)은 앙리 4세 이래로 군사적인 난폭함과 오만함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으로 비난 받던 궁정 문화에 반대하고(Suh, 1999) 교양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끌어들여 살롱을 열었다. 이시기는 40년 동안 지속된 프랑스 내란에 의한 피폐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인의 격렬한 기질이 좀처럼 순화 되지 않던 시기로, 그들의 언어는 진정되지 않았고 과격하며 과장된 표현이었으며 행동거지는 지나치게 격식에 얽매여 있었다. 이때 랑부이예 후작부인을 비롯한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부드럽고 섬세한 언어 사용과 더불어 자연스럽고 격조 있는 예절과 문화를 갈망했으며(Duby & Perrot, 1998) 살롱을 통해 이와 같은 교양 문화를 다듬어 나갔다.

이후 계몽주의 시대의 살롱은 문필공화국(La République des letters)의 시민들이었던 철학자들과 문인들에게 비판적인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Lee, 2005). 살롱에서 사람들은 지식 교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철학적인 담론 공동체를 이루었다(Goodman, 1989). 계몽주의 살롱은 문필공화국의 시민들에게 비판적인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둘째, 살롱은 매체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Stephens(2010)는 살롱이 뉴스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였다. 살롱을 주재하는 여성들은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새로운 지식의 전달자가 되었고, 이로써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살롱은 여성 독자층을 발굴하고, 출판시장을 개척하는 등 여성들을 바깥세상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했다(Yoo, 2012).

또한 살롱을 통해 인쇄매체의 영향력은 폭넓게 활성화되었다. 18세기에는 서적 출판량이 프랑스에서 1731년경 연간 400~500종이던 것이 1789년경에는 연간 1,000~1,200종으로 늘었으며, 신문과 잡지도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말기에 증가했다. 인쇄물의 내용은 살롱을 통해 전파되면서 대중 사회에 영향력을 더 많이 행사했다(Jou, 2015). 또한 인쇄매체를 통해 새로운 사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Chartier, 2015), 지식인들은 새로운 인간 삶의 존재양식을 규정하고자 했으며,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을 제기했다. Chartier(2015)는 프랑스인들이 책으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에 18세기 말 프랑스인이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분석 했는데, 이는 계몽철학서들이 일상생활과 격리된 추상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었고, 전통을 파괴함으로써 기존 세력의 권위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한편 18세기 후반의 소설은 낭만적 사랑이라는 주제가 압도적이었다. 우리가 낭만적 사랑을 특징짓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든 특징들이 이 시기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특히 살롱에서 낭만적 사랑에 관련된 소설 읽기가 증가하며 사람들의 신념, 가치,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했다(Campbell, 2010). 이처럼 정치적 영역에서부터 개인의 일상에 가까운 문학 영역까지 다양한 인쇄매체는 살롱을 통해 그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이론적 배경에서 고찰한 메르베이외즈 복식에 영향을 미친 살롱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따른 유의미한 행동인 문화적 역할을 <Table 1>로 정리하였다.

<Table 1> 
The Social and Cultural Role of Salon
Classification Characteristic Contents
Social role Communication and Education space - arbitration of aristocratic tastes and personal abilities
- gender communication and education
Women's activity space - patronage of artists and philosophers
- securing women's social status through social activities
Cultural role Establishment of a cultured society - focusing on the natural talent of an individual
- respect and highlight the culture of individual ability
Media activation - dissemination of print influence

이론적 고찰 결과 살롱은 여성이 중심이 되어 사회ㆍ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살롱을 중심으로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제국을 만들었으며, 남성을 대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성들의 능력은 살롱을 통해 당시 호전적인 성향이 강했던 남성들을 대상으로 여성의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상황을 중재하며 남성들의 교양을 교육하는 역할로서 조명 되었다. 또한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교류가 가능한 살롱은 여성에게 있어 성별 간 동등한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취적 열망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토대가 되었다. 살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신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 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남성과 카운터 파트너로 교제하며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여성들은 살롱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서 공적인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역할을 증대 시킬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살롱은 여성이 안정적으로 사회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살롱을 통해 공적인 생활에 나아간 여성들은 새로운 여성 독자층을 발굴하고, 출판시장을 개척하는 등 인쇄 매체를 통해 다른 여성들을 바깥세상과 연결해주며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의지를 고무시켰다. 이처럼 살롱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공적인 여권 신장에 힘쓸 수 있는 진보적인 공간이었다. 살롱은 남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사회적 체제를 균열 시키고 여성이 남성과 함께 사회적 주체로서 주목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메르베이외즈는 남성인 앵크루아야블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이와 같은 살롱 문화의 성숙한 배경 하에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며 활동했던 진취적 상류층 여성 그룹으로 등장 할 수 있었다.

3. 메르베이외즈의 정의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Académie française, 1932)에서는 메르베이외즈를 총재정부 시기 의상과 언어, 행동 등에서 도발적인 기이한 행동을 보인 특정 젊은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 패션전문자료사전(Fashion Expertise Compilation Committee[FECC], 1997)에 의하면 메르베이외즈는 혁명 후의 반동에서 고대 그리스를 모방한 슈미즈 드레스(chemis dress)를 걸친 젊은 여성이다. 문헌에서는 메르베이외즈를 살롱에서 그 역할이 두드러진 상류사회의 여성 중 급진적인 그리스 의복을 이끄는 당시의 패션리더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 하고 있다(Price, 1913).

Sennett(2017)은 메르베이외즈를 테르미도르(Thermidor)의 첫해에 등장했던 노출이 심한 머슬린(muslin) 슈미즈를 착용한 여성 패션 그룹으로 정의하였다. Davis(2006)은 메르베이외즈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로브(robes)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를 착용한 여성 그룹으로 지칭하며, Waquet(2015)은 메르베이외즈를 의상으로 정치적 또는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고자 한 총재정부 시기의 프랑스인이라 언급하고 있다. 메르베이외즈가 착용한 장신구, 진주, 금박 그리고 레이스가 장식된 복장은 실제로 비용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따를 수 없었다. 이것들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기에 메르베이외즈로 지칭되는 여성들은 혁명 이후 이를 소비할 수 있던 부유한 여성들이었다(Waquet, 2015).

본 연구에서는 이를 종합하여 메르베이외즈를 총재정부 시기 상류 사회의 여성 중 급진적이고 럭셔리(luxury)한 그리스ㆍ로마형 복식 및 장신구를 착용했던 패셔너블한(fashionable) 여성 집단으로 정의하였다.


Ⅲ. 살롱 문화에 영향을 받은 메르베이외즈 복식의 의미
1. 모성의 특징을 가진 여성 인체의 자연미에 대한 찬미

1789년에서 1804년 사이에 제작된 무수한 초상화에는 만들어진 정체성이 나타난다(Freund, 2014). 혁명 이전 여성들은 궁정과 살롱을 통해 공적인 생활에 참여하고 그 역할을 증대시켜 나아갔다. 특히 가부장적인 원칙이 지배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롱을 주재하던 여성들은 의상이나 응접실의 분위기에서 전반적으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전시하며 모권적인 공간을 창조했다(Na, 2017). 혁명 직전의 로코코 시대에는 작은 유방과 유리 인형과 같은 모습의 여성의 우아함을 찬미했다. 이와 같은 이상향으로서 가녀린 여성의 이미지는 혁명과 동시에 변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영웅적 곡선으로 묘사되었다(Fuchs, 2001)<Fig. 1>.


<Fig. 1> 
Les Sabines, c. 1799
(RMN-Grand Palais, n.d.-a)


메르베이외즈가 등장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모성(maternity)과 가정성은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던 시기이다. 혁명 동안 모성은 시민의 덕목에 맞춰져 공화주의적 모성(Republican motherhood)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Lynn, 1992). 혁명 기간 동안 국가가 후원하는 축제들은 수유하는(nursing) 엄마들을 눈에 띄게 전시했다. 1793년 8월 10일 “Festival of the Regeneration of Nature”를 주제로한 축제 기간 동안 여신상의 가슴에서는 하얀색의 물이 흘렀고, 관중 속의 여성들은 축제의 장에서 그들의 유아에게 공개적으로 수유하도록 촉구되었다(Ivinski, Payne, & Galitz, 1998)<Fig. 2>. 수유하는 어머니는 루소(Rousseauian)의 천부적인 자녀 양육(natural child rearing)에 대한 숭배에 의해 앙시앵레짐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미 문화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던 형상이었는데, 혁명 후 국가는 이를 다시 되살리고자 하였다. 혁명 기간 동안 모유로 부어오른 가슴(milk-swollen breasts)을 가진 여성은 1794-95년에 제작된 장식용 작은 조각상(figurinetestifies)<Fig. 3>처럼 공화주의 가치 중 특히 동포애(fraternité)를 뜻하는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Freund, 2014). 이는 남성과 다른 여성의 몸을 부각시킴으로써 여성을 성스러운 존재로 이상화 시키는 정치적 행위였다.


<Fig. 2> 
Festival of the Regeneration of Nature, Paris, 10 August 1793
(Héricault, 1883, p. 167)



<Fig. 3> 
Manufacture de Niederviller, Fraternity, ca.1794-95
(Freund, 2014, p. 215)


특히 공포정치 이후 약 10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근대(modern) 어머니의 외양을 패션 유행을 따르면서 사회적이고 도시적인 모습으로 정립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다(Balducci, 2017). 이를 위해 1800년 전후에 모성의 외양과 행동을 가정하는 패션 플레이트(fashion plate)와 풍속화(scènede moeurs)에 이르기까지 인쇄 매체를 통한 의도된 이미지의 확산이 있었다(Carol, 1973). 여성들이 모성이라는 사회문화적 지위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출산하는 여성을 주제로 하는 많은 출판물들이 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모성을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 근대 사회 모성의 개념화가 점점 더 확대되었고, 근대 사회에서 모성의 외양은 멋지고 사회적이고 도시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Balducci, 2017).

메르베이외즈의 복식은 이러한 근대 모성을 지향했던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해방감의 심리가 결합된 결과이다. 혁명이 발발하고 공포정치 기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공포심 속에서 앙시앵 레짐 시기의 여성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사회에 노출 시켜야 했다. 하지만 공포정치가 끝난 후 사치 표현을 억압하던 분위기가 완화됨으로써 여성은 이제 다시 자신을 매력적인 대상으로 연출하고 싶어했다(Uzanne, 1887). 게다가 국가가 주도적으로 모성의 신체를 강조하며 여성성을 신성시함에 따라 여성은 당당하게 몸의 윤곽이 드러나도록 옷을 착장 할 수 있었다<Fig. 4>. 이러한 옷의 착장은 혁명으로 인해 억눌려 있던 앙시앵 레짐 시기의 여성적 힘 즉, 모체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Fig. 4> 
Portrait of a Young Woman in White
(National Gallery of Art [NGA], n.d.)


특히 아믈랭 부인(Madames Hamelin)<Fig. 5>과 탈리앵(Tallien)<Fig. 6> 같은 메르베이외즈는 파리의 새로운 패션리더라는 평을 받으며 극단적 패션으로 여성의 신체를 노출하며 찬양하는데 탁월했다. 메르베이외즈는 모성적 특징을 지닌 신체를 드러냄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줄 아는 여자들이었으며 이 대담한 여자들은 가느다란 숄로 완전히 벌거벗은 몸을 가린 채 공중정원의 산책로를 나섰다<Fig. 7>. 이들은 젖가슴의 모양이 완전히 드러나는 가벼운 모슬린 드레스를 입고, 팔과 다리 그리고 무릎 아래도 가리지 않았다(Sennett, 2017). 메르베이외즈는 이처럼 모성의 특징을 가진 여성 신체를 찬미하였는데, 이전 시대와 같이 여성 신체를 의상으로 감추고 보호해야하는 소극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여성을 구속하던 인공물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직물만으로 자연적이고 긍정적이며 존엄한 여성의 신체를 당당하게 노출하였다.


<Fig. 5> 
Citizen Tallien in a Cell in La Force Prison, c.1796
(Rauser, 2020. p. 164)



<Fig. 6> 
Madame Hamelin, c.1798
(RMN-Grand Palais, n.d.-b)



<Fig. 7> 
Parisian Ladies in their Full Winter Dress for 1800
(Library of congress, n.d)


2. 근대 소비문화로서 고전과 럭셔리(luxury)의 혼성물(hybrid)

혁명에 있어 복식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시각화하는 매체였으며 복식을 통해 사치를 과시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었다. 혁명 후 의상에서 추구된 단순함(simplicity)은 앙시앵 레짐 시대의 몸의 인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가치였다. 혁명 전 여성의 몸은 레이스(lace)와 자수(embroidery)가 가득한 브로케이드(brocade), 타프타(taffeta), 실크(silk), 다마스크(damask) 종류의 직물 그리고 장인의 손재주를 황홀하게 선보이는데 필요한 일종의 마네킹(mannequin) 역할이었다. 혁명은 이러한 몸의 마네킹 역할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냈다(Geczy, 2013). 혁명 이후 앙시앵레짐의 독특하고 풍부하며 화려했던 복식의 특성은 도덕적 파멸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새로운 시대에 맞춰 더욱 엄격하고 겸손한 복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McIlvanney, 2019). 당시 사람들은 계몽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복식의 과시 행위를 지양하고 단순함을 추구함으로써 몸을 인식하는 방법을 변화 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몸을 인식하는데 있어 변화가 수반됨으로써 구체제 시대와 같이 복식을 전시하기 위한 마네킹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복식을 착용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있는 인체 그 자체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단순함은 공포정치 기간 동안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에 의해 더욱 더 권장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육체를 성적 매력이 없거나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장식적 요소도 착용하지 않게 하여 육체를 중립화 하였으며, 이제 시민들은 중립화된 육체로 인해 외부의 이견 없이 서로 상대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다(Sennett, 2017).

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직후 총재정부에 들어서 혁명적인 복장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은 반작용으로 분출되었다. 사치 행위에 있어 국가의 제약이 없어진 사람들은 신체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옷이나 체형 조정물과 같은 물리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몸을 노출하고 자연스러움을 찬미하며 최소한의 의상만을 걸치고 자연스럽게 근대 사회의 산책로를 활보하였다. 공포정치기간 동안 억눌려 있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고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아이디어가 등장한 것이다(Uzanne, 1887). 사치스러운 복장에 대해 제약이 없던 총재정부 시기는 사람들 그 스스로 매우 방탕할 만큼 우아한 미의 고전적 양식을 모방하는 겉치레 문화를 발산 시켰다(Geczy, 2013).

이 시기 <Fig. 8>과 같은 메르베이외즈 복식의 형태는 당시의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r)과 폼페이(Pompeii) 유적의 고고학 발굴에서 밝혀진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혁명 이후 로마 공화국의 고결한(virtuous) 모든 것에 관계된 수사학이 박차를 가하면서 복식의 경우 앙시앵 레짐 시기 의복의 부피(volume)와 비대화(hypertrophy)를 벗어나 좀 더 유선형(streamlined)이 되었고 간결해졌다(Geczy, 2013). 하지만 혁명 직후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였던 사회분위기와는 다르게 총재정부의 경우 사치스러운 의복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앙시앵레짐 시대의 드레스와 같이 여성의 복식에 호화로운장식을 적용하였다(Clifford, 1999). 이때 대담할 정도로 노출이 심했던 메르베이외즈의 복식은 튤(tulle) 그리고 머슬린(muslin)과 같은 얇은 직물로 제작되었으며 이 직물은 몸의 곡선을 유려하게 흐르는 듯 했다<Fig. 9, 10>. 여성의 신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이러한 복장은 혁명 후 무겁던 분위기 속에 있던 대중에게는 기괴한 외모(outré appearance)이자 몹시 놀라운 형상이었다. 특히 동시대에 생긴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대중의 취향은 대담한 패션 리더들의 영향을 받아 확산되었다. 이들은 영국 직물(English cloth), 이집트식 숄(Egyptianshawls), 로마식 샌들(Roman sandals), 인도산 머슬린(Indian muslins)을 착용했다(Geczy, 2013).


<Fig. 8> 
Portrait of a Lady Marie-Guillemine Benoist, c.1799
(Lowery, 2019. p. 269)



<Fig. 9> 
Portrait of Madame Récamier, c.1800
(RMN-Grand Palais, n.d.-c)



<Fig. 10> 
Joséphine as Venus by Andrea Appiani, c.1796
(Bietoletti, 2009, p. 64)


이들은 또한 모피(furs)와 이국적인 숄(exotic shawls), 터번(turbans), 장식이 된 깃털 장신구(decorative feather ornaments)를 착용 했다(Davis, 2006). 그리스와 로마 복식의 형태를 띠는 여성들의 패션은 약간 부드러워지고 이국적인 차이의 여러 가지 징조를 띠게 되었는데, 특이한 보석과 호화로운 머리 스카프로 마무리 되었고 때로는 좀 더 과감한 터번 같은 것으로 변하기도 했으며<Fig. 11, 12>, 보다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공작 깃털로 마무리 되었다(Geczy, 2013). 이와 같은 터키와 중국 취향은 타락하고 낭비적인 앙시앵 레짐의 징후였음에도 총재정부 시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풍요의 징후와 함께 분출되었다.


<Fig. 11> 
Costume parisien, c.1797
(Paris musées, n.d.)



<Fig. 12> 
Costume Parisien, Fichu, c.1797
(Rauser, 2020, p. 179)


부와 계급의 과시적 표현이었던 메르베이외즈의 복식은 당시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유행하는 사회현상이 되었는데, 이는 근대 여성으로서의 소비를 촉구하던 인쇄 매체와도 연관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여성을 주제로 하는 혁명시기 언론의 내용은 여성에게 있어 소비(consumerism)와 여성 자신 스스로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근본적 즐거움 요소를 느껴야 함을 부각시켰다(McIlvanney, 2019). 혁명 이후 좋은 취향(good taste)은 이제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귀족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정 개인이 교육과 사회적 규범에 따라 습득할 수 있고 체화 하여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확산된 패션 플레이트를 통해 최신 유행 복장을 접했으며, 소비한 사치스러운 의상을 착장하고 극장, 산책로, 축제 등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노출 시킬 수 있는 공공장소를 거닐었다(Bartlett, Cole, & Rocamora, 2013).

패션은 학습된 좋은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매체였으며,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공공 영역에 접근 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였다(McIlvanney, 2019). 메르베이외즈와 같은 여성들은 이러한 근대 소비문화의 행위를 극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근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Ⅳ. 결론

메르베이외즈는 살롱의 영향을 받은 총재정부 시기 상류 사회의 여성 중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급진적이고 고급 취향을 추구하며 그리스ㆍ로마형 복식 및 장신구를 착용했던 패셔너블한 여성 집단이었으며, 이에 연구 목적은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살롱의 사회 문화적 역할이 메르베이외즈 복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근세 시대 살롱은 여성이 중심이 된 문화와 지성의 산실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고 계몽사상의 창출과 전파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살롱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제국을 만들었으며, 남성을 대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살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신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남녀간 파트너로 교제하며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였고, 살롱을 통해 공적인 생활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역할을 증대시켰다. 살롱은 남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사회적 체제를 균열 시키고 여성이 남성과 함께 사회적 주체로서 주목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며, 이와 같은 살롱 문화의 배경이 있었기에 남성인 앵크루아야블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활동했던 메르베이외즈와 같은 진취적 여성 그룹이 등장 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살롱 문화에 영향을 받은 메르베이외즈 복식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성의 특징을 가진 여성 인체의 자연미에 대한 찬미이다. 메르베이외즈의 복식은 근대 모성을 지향했던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해방감의 심리가 결합된 결과였다. 이들은 여성을 구속하던 억압물들을 다 벗어 던지고 최소한의 직물만으로 자연적이고 긍정적이며 존엄한 여성의 신체를 당당하게 노출하며, 모성의 특징을 지닌 우월한 존재로서 여성의 신체를 과시하였다.

둘째, 근대 소비문화로서 고전과 럭셔리의 혼성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메르베이외즈 복식은 여성이 근대 소비자로서 주체적으로 소비 행위를 통해 근본적 즐거움을 느낀 결과물이었다. 사치스러운 복장에 대해 제약이 없던 총재정부 시기는 사람들 그 스스로 매우 방탕할 만큼 우아한 고전을 모방하며 개인이 체화한 취향에 대해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는 혁명의 정신과는 모순적이게도 다시 앙시앵 레짐 시대의 복식과 같이 여성의 지위와 부를 명확하게 표시하는 의복의 과시적 성격을 함의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구의 분석 결과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살롱을 중심으로 메르베이외즈 복식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살펴봄으로써 기존 메르베이외즈 복식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단순히 앵크루아야블의 파트너로서 여성을 고찰하던 시각을 확장하여 주체적으로 여성 복식을 분석하며 복식사적 의미를 조명하는데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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