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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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 No. 6

[ These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0, No. 6, pp. 1-20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20
Received 07 Aug 2020 Revised 02 Sep 2020 Accepted 28 Oct 2020
DOI: https://doi.org/10.7233/jksc.2020.70.6.001

조선 후기 당의(唐衣)의 금장식 문양에 관한 연구
강서영 ; 홍나영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박사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산업학과 교수

A Study on the Gold Ornament Pattern of Late-Joseon Dynasty Dang-ui[唐衣]
Seo-Young Kang ; Na Young Hong
Ph.D. Candidate,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Na Young Hong, e-mail: nyhong@ewha.ac.kr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24 pieces of gold ornament patterns on dang-ui(唐衣) relics worn by the royal women of the Joseon period in ceremonies from the late 18th to early 20th centuries. Observation of the relics shows that most of the gold ornaments on the dang-ui were based on the ‘subokhwamun(壽福花紋)’, which has ‘subok(壽福)’ characters with treasure patterns and flower patterns placed in a check pattern. Four types of subokhwamun were produced based on form and method. First, the ‘geumsubokja jig-geumdang-ui, which added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only on the subok characters while weaving the base fabric used for dang-ui into the subokhwamun. There is also a ‘jig-geumdang-ui that renders the tongsu-seuran pattern by imprinting the pattern used on the subokhwamun base fabric to the shoulders and arms as well as the end of the front and rear hem. Even though the clothes can be in the same form, gold imprints can be used to express different patterns. The dang-ui recorded as ‘geumsubokja’ refers to the dang-ui with gold-imprinted subok characters, and ‘bu-geumdang-ui refers to dang-ui with gold-imprinted tongsu-seuran pattern. Another dang-ui, distinguished by the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works in tandem with the base weave to depict a pattern, the composition or shape of the pattern was made to follow the trends of the time while the arrangement method remained relatively conservative. On the other hand, the gold-imprinted dang-ui has seen more diverse and free changes to its patterns due to its technical trait of completing the pattern after the completion of the clothes.


Keywords: Daung-ui, gold ornament pattern, gold imprint,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키워드: 당의, 금장식 문양, 부금, 직금

Ⅰ. 서론

당의(唐衣)는 조선 전기부터 의례용으로 입던 옆이 트인 저고리[唐赤古里]에서 변화해온 옷이다(Kang et al., 2015). 조선 후기에 이르면 당의는 저고리보다 길이가 길고 겨드랑이 아래로 깊은 트임이 있으며, 도련은 둥근 곡선을 그리는 형태가 된다(Kang et al., 2015).

당의는 조선 후기에 계층을 아우르는 예복으로 통용되었다. 조선 후기 학자들의 문집에는 사가(私家)의 부녀자들이 당의를 계례(笄禮)와 혼례(婚禮), 제례(祭禮) 및 염습(殮襲) 등에 두루 착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Chang, 2011). 왕실기록인 『朝鮮王朝實錄』과 의궤(儀軌)의 반차도(班次圖), 「궁중긔」, 『順和宮帖草』 등의 문헌을 통해서는 궁중에서도 일상적으로나 크고 작은 의례에 당의를 착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Kwon, 2001).

그러나 민간에서 주로 당의라는 명칭을 사용해 온 반면, 왕실의 지체 높은 여성들이 착용하는 당의는 ‘당고의(唐古衣)’, ‘당의복(唐衣服)’ 등으로 지칭하여 신분에 따라 명칭에 차별을 두었다(Kwon, 2001; Kim, 2007). 또한 민간에서는 예복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장식이 없는 초록색의 민당의를 착용했으나, 비(妃)ㆍ빈(嬪), 공주(公主)ㆍ옹주(翁主)와 같은 왕족들은 삼명일(三名日)의 문안이나 가례(嘉禮), 봉비(封妃) 등의 큰 예식 때 직금(織金) 혹은 부금(附金)으로 문양을 장식한 당의를 착용할 수 있었다(Kang et al., 2015).

특히 조선 후기 왕족들의 당의에 직금 혹은 부금으로 표현한 문양은 왕실의 위엄을 보다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의장(儀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 광무 2년, 이왕직예식과(李王職禮式課)에서 조선 후기 예복제도를 정리하여 편찬한 『禮服』(1898)에 그려진 도설에 의하면, <Fig. 1>과 같이 공비(公妃)까지의 당의에는 화장 상단과 길 하단에 스란(膝欄)과 같은 띠 장식이 있으며 흉배가 부착된 반면, 관직자[官位者] 처(妻)의 경우 거들지 외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 이러한 장식에 매우 중요한 신분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당의에 직금 혹은 부금으로 표현되는 문양을 통칭하는 마땅한 명칭이 없기에 본고에서는 우선 금을 소재로 표현한 장식 문양이라는 뜻에서 ‘금장식 문양’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Fig. 1> 
Illustration of Dang-ui (Yebok, 1898)

당의의 금장식 문양은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1758) 유물에서 처음 보인 이후 20세기 초기까지의 왕족의 유물에 나타난다. 그 문양은 <Fig. 1>과 같이 화장의 상단과 길 하단에 스란과 같은 긴 띠를 늘어뜨리는 통수스란(通袖膝欄)과, 수(壽)자와 복(福)자의 글자로 당의의 표면을 매우는 수복문(壽福紋)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이전시기까지의 당저고리 유물 중에도 은진송씨(1509-1980)나 청주한씨(16세기 후반 추정)의 예와 같이 직금 직물이 사용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선 전기의 직금 당저고리 유물의 착용계층은 사대부가의 여성들이며, 문양의 표현도 길 전체나 하단의 일부에만 직금직물을 사용하는 방식으로(Chang, 2011), 조선 후기 왕족들의 당의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렇듯 조선 후기 당의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은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조형을 보이며, 또 특별한 신분 상징성을 지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연구 대상으로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당의에 관한 Kwon(2001)의 연구에서 금장식 문양이 표면에 보이는 형식대로 구별된 바 있지만, 각 형식의 특징이나 시대별 변천에 관한 내용까지는 상세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또한 『順和宮帖草』에 명절과 절기에 따라 왕실에서 당의를 갈아입는 복식 풍속에 금장식 문양이 있는 당의가 포함된 사실은 학계에 익히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금장식 문양이 어떠한 유형의 유물과 일치하는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선행 연구(Kwon, 2001; Kim, 2007; Chang, 2011)를 통해서 당의의 유래와 기능, 형태의 변천 등이 밝혀져 왔으며, 당의의 색상과 소재, 흉배 등과 같은 당의의 의장에도 많은 부분이 규명되었는데, 유독 금장식 문양에 관한 분석은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간의 선행연구에서 미진한 부분이었던 당의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의 명칭과 종류를 규명하고, 각 종류에 따른 양식적인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금장식 문양의 명칭과 종류 정리 및 형식과 기법에 따른 양식의 시대적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조선 후기 왕족들이 금장식 당의를 착용했던 상황과, 당의의 시대적 특징을 보다 명확히 고증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원삼(圓衫)이나 스란(膝欄)ㆍ대란(大欄)치마와 같은 당의 외 조선 후기 왕실 여성 예복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의 연구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

주된 연구방법은 문헌 고찰과 유물 분석이다. 당의의 금장식 문양에 관한 명칭은 『順和宮帖草』와 「궁중긔」 등 19-20세기의 문헌에 비교적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토대로 금장식 문양의 종류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분류한 금장식 문양의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 조선 후기 왕족들의 당의에 금장식 문양이 나타나는 18-20세기까지의 당의 유물 24점을 종합해 살펴본다.


Ⅱ. 금장식 당의의 종류

지금까지 금장식 문양이 있는 당의는 직금 당의, 금박(金箔) 당의 등의 기법으로만 통칭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통수스란 당의나 수복문 당의와 같이 문양의 형식에 따라 지칭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문헌에 기록된 명칭과 유물을 비교하여 당의의 종류를 명확히 구분해 보고자 한다.

1. 문헌에 기록된 금장식 당의의 명칭

금장식 당의의 명칭은 헌종(憲宗)의 후궁 경빈 김씨(慶嬪金氏, 1832-1907)의 궁중복식 지침서인 『順和宮帖草』의 「四節服色自藏要覽」이나,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조선 후기 궁중 생활 기록 「궁중긔」 등 19-20세기의 문헌에서 확인된다(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 1994a; AKS, 1994b).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금장식 당의가 기록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금수복자’ 당의와 ‘직금’ 당의가 가장 많이 언급되어 있다. ‘금수복자’ 당의란 수복문을 부금 한 당의를 말하며, ‘직금’ 당의는 수복화문을 통수스란에 직금 한 당의를 지칭한다.

이 두 종류의 당의는 명절 문안부터 가례, 관례(冠禮) 등 비빈이 참여하는 중요한 예식의 기록에 특히 많이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직금’ 당의보다 ‘금수복자’ 당의가 조금 더 가벼운 차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어, 『순화궁접초』 「사절복색자장요람」에 의하면, 궁중에서도 평상시에는 민간과 같이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당의를 입지만, 새해첫날[正朝]과 생신날[誕日]에는 ‘초록직금당고의’를, 동짓날[冬至]에는 ‘초록금수복자당고의’를 입는다 하였다. 경빈 김씨의 『뎡미가례시일긔』(1847)와 순명효황후의 임오년(1882) 가례 때 작성된 「임오쳔만세동궁마마가례시(삼간시) 빈궁마누라의긔」, 「삼간긔」, 「임오천만세동궁마마가례시빈궁마누라의발긔」의 기록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삼간택(三揀擇) 관련 긔에는 ‘금수복자’ 당의만 기록된 반면, 가례 본식에 관련한 긔에는 ‘금수복자’와 ‘직금’ 당의를 포함하여 여러 종류의 당의가 한꺼번에 많이 마련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상황의 경중에 따라 금장식 문양의 양식과 기법을 각기 달리 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금수복자’와 ‘직금’ 당의 외로도 세 가지 양식의 금장식 문양을 더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비빈의 가례와 봉비처럼 가장 중요한 예식에 사용되는 ‘봉직금’ 당의이다. 일반적으로 통수스란에 사용되는 수복화문이 아닌, 상징성이 강한 봉황문양을 통수스란에 직금하여 ‘직금’ 당의 이상의 품격을 나타낸 것이다. 『뎡미가례시일긔』 중 ‘가례의식에 필요한 의례복과 평상복(Lee, 2003)’에 대한 부분인 「가례시의복기소」에 ‘초록봉직금당의복’이 있고, 순명효황후의 「壬午嘉禮時織組件記」에도 ‘草綠九鳳織金唐古衣’의 명칭이 보인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嚴氏, 1854-1911)의 봉비(封妃) 때 작성된 「계묘십일월초칠일귀비가봉비시의복긔」에도 ‘초록직금구봉당의복’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형식이라도 기법을 달리해 격을 높인 금장식 문양도 있다. ‘금수복자’ 당의는 그 명칭에 특별히 기법을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부금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때로는 직금 직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순명효황후의 관례 기록인 「嬪宮媽媽冠禮時衣襨件記」(1886)와 「정해정월대전의대단자」(1887)를 보면 관례복식으로 ‘초록금수복자당고의’와 함께 ‘자적금수복자직금당고의’도 마련되었는데, 이를 보면 보통의 ‘금수복자’ 당의와는 달리 직금이라는 기법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방법상 ‘금수복자’ 당의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만든 당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반면에 부금을 사용해 격을 좀 더 낮출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마마의복긔」의 ‘초록도유단보금당고의, 초록도유사보금당고의’, 내동궁의 「의복긔」에 ‘초록부금당져고리’처럼 ‘부금’ 당의로 기록된 당의들이 있다. 대부분 착용자가 불분명하거나, 긔의 성격도 특별한 대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상예복 수준에 그친다. 아마도 통수스란의 수복화문을 직금하지 않고 보다 간편한 방식인 부금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직금’ 당의와 대비해 ‘부금’ 당의로 약칭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문헌에 의하면, 당의의 종류는 ‘봉직금(구봉직금, 직금구봉)’, ‘직금’, ‘부금’, ‘금수복자’, ‘금수복자직금’의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금장식 당의의 위계를 일렬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문양의 위계는 봉황문 통수스란, 수복화문통수스란, 수복문의 차례로,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직금, 부금의 순이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기록에는 특별히 금장식에 관한 엄격한 규제는 보이지 않으므로, 관습에 따라 적절히 문양과 기법을 조합해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유물 유형

금장식 당의 유물은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1758)부터 청연군주(淸衍郡主, 1754-1821),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 의친왕비(義親王妃, 1881-1964), 영친왕비(英親王妃, 1901-1989),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 대원군(大院君)의 큰 자부(子婦) 노공비(老公妃)와 그 외에도 왕실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박물관 소장품까지 총 24점이 전해진다. 이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의 금장식 당의 유물은 먼저 문양의 형식상 통수스란(通袖膝欄)과 수복문(壽福紋)으로 나눌 수 있다.

통수스란이란 <Fig. 2>처럼 화장의 상단과 도련에 치마의 스란과 같은 긴 란(欄)을 늘어뜨리는 문양이다. 란의 문양으로는 봉황문(鳳凰紋)이나 수복 글자와 꽃, 보문으로 구성된 수복화문(壽福花紋)이 표현되었다. 통수스란이라는 표현은 금장식 당의의 명칭으로 직접 사용되지는 않지만, 우리 역사에 이미 오래 전부터 기록된 문양이다. 통수스란은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문양으로서 원ㆍ명대의 남녀 복식에 두루 애용되었으며(Kim, 2004), 조선 전기에 왕비에게 사여된 단삼(團衫)의 문양으로도 기록되어 있다(Yejongsilok [睿宗實錄], Yejong 1Year, February 4; Seongjongsilok [成宗實錄], Seongjong 8Year, April 4). 이미 Kim(2004)의 스란에 관한 연구에서 중국과 한국의 전통복식에 사용된 통수스란 문양이 서로 같은 형식의 문양임이 밝혀졌다.


<Fig. 2> 
Tongsu-seuran Dang-ui (Illustrated by Researcher)

수복문(壽福紋)은 <Fig. 3>과 같이 한자 목숨 수(壽)자와 복 복(福)자를 당의의 앞뒤에 적절히 나누어 배치한 형식의 문양이다. 명나라 만력제(萬曆帝, 재위 1572-1620년) 연간 이후 크게 유행하였던 문자문양의 한 종류이며, 특히 직물의 문양으로 인기가 있었다(Kang, 2019). 최근 Kang(2019)의 연구에서 이 두 형식의 문양은 17세기까지 중국으로부터 유입되기는 했으나 조선 전기 복식에는 잘 사용되지 않다가, 17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원삼과 당의에 표현되기 시작했다고 추측되었다.


<Fig. 3> 
Subonkmun Dang-ui (Illustrated by Researcher)

이 두 형식의 문양은 직금 혹은 부금의 기법을 통해 표현되었다. 직금이란 옷감을 직조 할 때 금은사(金銀絲)를 삽입해 문양을 나타내는 방식이다(Kang et al, 2015). 부금은 ‘금을 얇게 편 조각 또는 금가루나 금종이를 사용하여 의복이나 장식품에 문양을 찍은 것’으로, 금박이라고도 한다(Kim, 2001).

따라서 금장식 당의 유물은 문양의 종류와 장식기법에 따라 봉황문 통수스란 직금, 봉황문 통수스란 부금, 수복화문 통수스란 직금, 수복화문통수스란 부금, 수복문 직금, 수복문 부금의 총 6가지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봉황문 통수스란 부금 당의가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Table 1>에 정리한 것처럼 유물의 특징과 기록의 명칭이 대체로 일치한다. 때문에 이후로는 되도록 문헌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Table 1> 
Relic Types and Names of the Dang-ui Recorded in the Royal Court Literature
Dang-ui Types Name of Dang-ui Recorded in Literature
Pattern Types Expression Techniques
Tongsu-seuran
[통수스란,
通袖膝欄]
Phoenix
[봉황, 鳳凰]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직금, 織金]
‘Bong Jig-geum’
[봉직금]
‘Gubong Jig-geum’
[구봉직금]
‘Jig-geum Gubong’
[직금구봉]
Gold Imprint [부금, 附金] -
Subokhwamun
[수복화문,
壽福花紋]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Jig-geum’
[직금]
Gold Imprint ‘Bu-geum’
[부금]
Pattern of Character
Su[수, 壽] and Bok[복, 福]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Geumsubokja Jig-geum’
[금수복자직금]
Gold Imprint ‘Geumsubokja’
[금수복자]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24점의 유물을 여섯 가지 유형에 따라 <Table 2>와 같이 정리한다. 이 자료를 토대로 Ⅲ장에서는 통수스란 형식의 당의를, Ⅳ장에서는 수복문 형식의 당의를 각각 직금과 부금의 기법으로 나누어 양식적 특징을 고찰한다.

<Table 2> 
List of Dang-ui Relics with Gold Ornaments
No. Type Period Wearer Photo of
Remains
Holding Institution Source
1 ‘Jig-geum’
Dang-ui
[‘직금’ 당의]
18C Princess
Cheongyeon
[청연군주]
Sejong University
Museum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2006, p. 271
2 ‘Gubong
Jig-geum’ Dang-ui
[‘구봉직금’ 당의]
or ‘Jig-geum
Gubong’ Dang-ui
[‘직금구봉’ 당의]
20C Empress
Yun
[순정효황후]
Sejong University
Museum
CHA, 2006, p. 77
3 Imperial
Princess
Yeong
[영친왕비]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NPMK], 2010, p. 64
4 ‘Bu-geum’
Dang-ui
[‘부금’ 당의]
18C Princess
Hwasun
[화순옹주]
Korea University
Museum
Korea University Museum [KUM], 1990, p. 75
5 Princess
Cheongyeon
[청연군주]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eoul Museum of History &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MH & SJMMDU], 2006, p. 128
6 ‘Bu-geum’
Dang-ui
[‘부금’ 당의]
20C Imperial
Princess
Yeong
[영친왕비]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NPMK, 2010, p. 64
7 Unknown
[미상]
Seoul Museum of
History
SMH, 2006, p. 36
8 Unknown
[미상]
Seoul Museum of
History
SMH, 2006, p. 40
9 Princess
Duk-hye
[덕혜옹주]
Bunka Gakuen
Costume Museum
Kim & Park, 2011, p. 89
10 Princess
Duk-hye
[덕혜옹주]
Bunka Gakuen
Costume Museum
Kim & Park, 2011, p. 110
11 Duchess
No
[노공비]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EWUM], 1995, p. 66
12 Bonghwangmun
Bugeum Dang-ui
[봉황문 부금
당의]
20C Imperial
Princess
Ui
[의친왕비]
Kyungwoon Museum NPMK, 2014, p. 124
13 ‘GeumSubokJa
Jig-geum’ Dang-ui
[‘금수복자직금’
당의]
18C Princess
Cheongyeon
[청연군주]
Sejong
University Museum
CHA, 2006, p. 269
14 19C Princess
Deok-on
[덕온공주]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JMMDU, 2005, p. 131
15 ‘Geumsubokja’
Dang-ui
[‘금수복자’ 당의]
18C Princess
Hwasun
[화순옹주]
Korea
University Museum
KUM, 1990, p. 73
16 Princess
Cheongyeon
[청연군주]
Korea
University Museum
KUM, 1990, p. 72
17 19C Princess
Deok-on
[덕온공주]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JMMDU, 2012, p. 26
18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JMMDU, 2005, p. 132
19 ‘Geumsubokja’
Dang-ui
[‘금수복자’ 당의]
20C Imperial
Princess
Yeong
[영친왕비]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NPMK, 2010, p. 62
20 Princess
Deok-hye
[덕혜옹주]
Bunka Gakuen
Costume Museum
Kim & Park, 2011, p. 76
21 Imperial
Princess
Ui
[의친왕비]
Oryundae Korea
Martyrs Museum
National Museum of Korea [NMK], 1988, p. 29
22 unknown
[미상]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The Chang Pudeok
Memorial Gallery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 The Chang Pudeok Memorial Gallery [EWUM & CPMG], 1999, p. 166
23 unknown
[미상]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SJMMDU, 2005, p. 134
24 unknown
[미상]
Seoul Museum of
History
SMH, 2006, p. 37


Ⅲ. 통수스란 당의의 금장식 문양

통수스란 형식의 문양으로는 수복화문과 봉황 문양이 사용되었으며, 이 두 가지 양식의 문양은 각각 직금 혹은 부금의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봉황문양의 당의는 표현 기법에 따라 ‘직금’ 당의나 ‘부금’ 당의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1. ‘직금’ 당의와 ‘구봉직금’ 당의

‘직금’ 당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조선 후기 비빈을 포함한 명부의 예복용 직금 직물에 쓰이는 수복화문의 독특한 조형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수복화문이란 한자 壽자와 福자 및 다양한 종류의 식물문과 보문(寶紋), 과일문양이 함께 구성된 도안이다. 수복화문은 원삼과 스란ㆍ대란치마의 바탕문양이나 금장식 문양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문헌에서 이 문양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때문에 스란치마에 관한 Heo(2013)의 연구에서 제안한 수복화문이라는 명칭을 이 글에서도 사용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 명부 예복에 수복화문은 17세기 중후반의 문신(文臣), 외재 이단하(畏齋李端夏, 1625-1689)의 부인이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녹원삼 <Fig. 4>에 처음 보인다. 이 원삼의 바탕문양 <Fig. 5>와 직금 통수스란 문양 <Fig. 6>을 살펴보면, 전서체(篆書體)의 수복자와 도류문 외, 다양한 종류의 화문과 보문이 격자형(格子形)으로 구성된 점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 4> 
Wonsam of Yi Danha’s Wife(Backside), 17C (Park, Cho, & Lee, 2005, p. 82)


<Fig. 5> 
Textile Pattern of Wonsam Worn by Yi Danha’s Wife (Park, Cho, & Lee, 2005, p. 84)


<Fig. 6> 
Gold Ornament Pattern of Wonsam Worn by Yi Danha’s Wife (Park, Cho, & Lee, 2005, p. 84)

‘직금’ 당의의 금장식 문양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오래된 ‘직금’ 당의는 청연군주 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CHA, 2006) 세종대학교 박물관 소장 당의 <Fig. 7>이다. 이 당의의 바탕 문양 <Fig. 8> 역시 수복자ㆍ연화ㆍ매화ㆍ복숭아ㆍ석류ㆍ호리병ㆍ반장의 8가지 문양을 동등한 비율로 배치한 격자형 구성으로서 이단하 부인 원삼의 바탕 문양과 매우 비슷하다. 당의의 통수스란 문양 역시 이단하 부인 원삼처럼 바탕 문양의 구성과 비슷하게 직금 했다. 통수와 스란 문양은 도식화 <Fig. 9>와 <Fig. 10>에 보이는 것처럼 수자와 복자가 포함된 행만을 편집한 두 줄 구성이다. 수복문 당의와 마찬가지로 통수스란 당의에서도 수복자가 명부 예복에 표현하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Fig. 7> 
Dang-ui of Princess Cheongyeon, 18C (CHA, 2006, p. 271)


<Fig. 8> 
Textile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Cheongyeon (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9> 
Tongsu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Cheongyeon (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10> 
Seuran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Cheongyeon (Illustrated by Researcher)

두 예복 간에 큰 차이가 있다면, 이단하 부인 원삼은 전서체의 수복자를, 청연군주 당의는 해서체(楷書體)의 수복자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아마도 수복화문의 조형 초기부터, 각 예복의 크기나 형태, 중요도 등에 따라 그에 알맞은 서체가 쓰인 것 같다. 이 이후의 명부 예복에 나타난 대부분의 금장식 문양이 이 두 도안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통수스란 직금 당의에는 수복화문 외에도 봉황문양을 쓸 수 있었다. 현전하는 봉황문 직금당의 2점은 모두 20세기의 유물인데, 이 두 유물에 보이는 바가 사뭇 다르다. 먼저, 20세기의 직금 봉황문 당의인 <Fig. 11>의 순정효황후의 당의는 「궁중긔」에도 확인되는 ‘구봉직금’ 당의이다. 구봉(九鳳)의 도안은 <Fig. 12>와 같이 여의주를 중심으로 암수가 마주보며, 그 주위를 7마리의 새끼가 함께 나는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봉황문양을 직금 할 때에도 수복화문 직금 당의처럼 바탕직과 통수스란의 문양을 통일했다.


<Fig. 11> 
Dang-ui of Empress Yun, 20C (CHA, 2006, p. 77)


<Fig. 12> 
Sleeve Pattern of Daung-ui Worn by Empress Yun (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Science Center [CHCSC], 2019, p. 33)

반면에, 영친왕왕비 당의 <Fig. 13>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설명했던 ‘직금’ 예복의 특성과는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우선, 통수스란이 구봉문이므로 ‘구봉직금’ 당의를 의도한 바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바탕직은 수복화문을 사용하여 바탕과 통수스란의 문양을 통일하는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났다. <Fig. 14>에 보이는 것처럼, 통수스란의 봉황문양은 여의주를 중심으로 마주보는 형상이 아니라, 봉황 각각의 시선이 좌우 수구(袖口) 쪽을 향하고 있다. 바탕직에 표현된 수복화문의 양식도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수복자와 보문, 화문으로 구성 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복자는 전서체로 표현되었고, 각종 화문 역시 길이가 세로방향으로 길어지고 꽃과 과실, 잎사귀, 뿌리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이와 비슷한 수복화문이 사용된 예로 순정효황후의 황원삼을 들 수 있다. 따라서 20세기에 들어서, 이전까지의 전통이 일면 이어져 오면서도 문양의 표현과 구성방식에는 변화도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직금’ 당의나, ‘봉직금’ 당의 유물의 수가 많지 않아 이를 연속적으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신 다른 양식의 금장식 문양을 통해 그 변화상을 더 추정해보고자 한다.


<Fig. 13> 
Dang-ui of Imperial Princess Yeong, 20C (NPMK, 2010, p. 64)


<Fig. 14> 
Sleeve Detail of Dang-ui Worn by Imperial Princess Yeong (NPMK, 2010 p. 64)

2. ‘부금’ 당의와 봉황문 부금 당의

‘부금’ 당의는 통수스란을 부금한 당의다. 「궁중긔」에는 ‘직금’ 당의가 ‘부금’ 당의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유물은 ‘부금’ 당의가 총 9점으로 수량이 더 많다. 「궁중긔」의 기록이 비빈의 대례에 집중되어 ‘직금’ 당의의 기록이 많은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비빈 및 그 이하로 ‘부금’ 당의를 많이 착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금 예복은 직조 단계에서부터 치밀하게 계획되므로 제작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재단 할 때에도 문양을 잘 맞추기 위해 공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의가 소례복이라 하더라도 흔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존하는 ‘부금’ 당의 유물은 ‘직금’ 당의 유물보다 시대가 앞선다. 화순옹주의 당의 <Fig. 15>가 가장 오래된 금장식 당의이자 ‘부금’ 당의인데, 초록색의 도류사(桃榴紗) 바탕에 통수스란 문양은 수복화문으로 부금 되어 있다. 통수스란 문양은 도식화 <Fig. 16>에 보이듯이 완벽한 격자형의 구조는 아니지만, 수복자의 서체나 문양의 특징이 청연군주 ‘직금’ 당의의 문양 <Fig. 8>과 매우 비슷하다. 때문에 청연군주 이전, 적어도 18세기 말에 이미 격자형의 수복화문 ‘직금’ 당의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초기 ‘부금’ 당의 도안이 직금에 바탕하고 있기는 하지만, 꼭 직금 도안 그대로를 따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Fig. 15> 
Dang-ui of Princess Hwasun, 18C (KUM, 1990, p. 75)


<Fig. 16> 
Tongsu and Seuran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Hwasun (Illustrated by Researcher)

다음 세대의 ‘부금’ 당의는 청연군주 유물 <Fig. 17>이다. 이 당의는 아쉽게도 통수스란의 금장식이 이미 소실되어 그 문양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당의는 금장식 문양의 표현 방법 자체가 주목된다. 이 당의는 바탕 문양을 <Fig. 18>과 같은 수복화문으로 짜놓고, 통수스란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다가 옷이 완성된 후에 부금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확실히 금장식 당의의 문양이 ‘직금’ 당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과, 초기에는 ‘부금’ 당의도 최대한 ‘직금’ 당의에 가깝게 제작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Fig. 17> 
Dang-ui of Princess Cheongyeon, 18C (SMH & SMMDU, 2006, p. 128)


<Fig. 18> 
Textile Detail of Dang-ui Worn by Princess Cheongyeon (SMH & SMMDU, 2006, p. 129)

이 당의의 바탕문양 <Fig. 18>은 앞에서 살펴본 수복화문 도안 <Fig. 8>과 비교해보면, 격자형의 구성인 점은 같지만 문양의 종류와 표현 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따라서 동시기 금장식 당의의 수복화문도 문양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양식이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직금’ 당의의 금장식 구성 원칙에 따르면, 아마 이 당의에 부금 되었던 통수스란 문양도 바탕직의 문양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부금’ 당의는 19세기 유물 없이 20세기로 넘어가는데, 19세기에는 ‘부금’ 당의를 입지 않아서라기보다, 이 시기의 유물만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20세기 ‘부금’ 당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양한 수복화문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영친왕비 당의 <Fig. 19>의 통수스란 문양의 경우 도식화 <Fig. 20>처럼 수복자가 아닌 ‘백복다남’의 어구가 쓰였다. 운현궁에서 나온 두 점의 당의에 표현된 통수스란 문양은 <Fig. 21-24>에서 확인되듯이 다양한 전서체의 수복자가 표현되었고, 화문은 더욱 섬세하게 표현되거나, 그 특징만 간략히 도안화 한 두 가지 양식으로 나타났다. 기존 수복화문에 사용되던 해서체의 수복자가 아닌 전서체의 수복자, 길상어구가 사용된 것을 보면, 20세기 무렵에는 원삼에 사용되던 수복화문과 교차사용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영친왕비 봉직금 당의의 바탕문양 <Fig. 14>와 비슷한 맥락의 변화이다.


<Fig. 19> 
Dang-ui of Imperial Princess Yeong, 20C (NPMK, 2010, p. 64)


<Fig. 20> 
Tongsu pattern of Dang-ui Worn by Imperial Princess Yeong (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21> 
Unhyunkoong Dang-ui (Un 459), 20C (SMH, 2006, p. 36)


<Fig. 22> 
Seuran Pattern of Unhyunkoong Dang-ui (Un 459) (SMH, 2006, p. 36)


<Fig. 23> 
Unhyunkoong Dang-ui (Un 458), 20C (SMH, 2006, p. 40)


<Fig. 24> 
Tongsu pattern of Unhyunkoong Dang-ui (Un 458) (SMH, 2006, p. 41)

20세기 ‘부금’ 당의의 또 다른 특징으로 형식의 통합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덕혜옹주 당의 <Fig. 25>의 통수스란 문양은 <Fig. 26>과 같이 기존의 해서체 수복화문 도안이다. 그렇지만 길과 소매 하단에는 수복문도 함께 부금하여 통수스란과 수복문 간의 틀을 합쳤다.


<Fig. 25> 
Dang-ui of Princess Deok-hye, 20C (Kim & Park, 2011, p. 89)


<Fig. 26> 
Tongsu-Seuran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Deok-hye (Kim & Park, 2011, p. 92)

노공비 당의 <Fig. 27>의 경우에 통수는 <Fig. 26>과 비슷한 해서체의 수복화문 양식이, 도련에는 운현궁 당의(Un 459)의 스란 <Fig. 22>와 같은 양식이, 길과 소매 하단에는 喜자와 박쥐문양이, 도련 부분에는 용 문양까지 부금 되어 있다. 동시기 금장식 문양의 형식과 양식이 모두 혼합되어 나타난 매우 독특한 사례이다.


<Fig. 27> 
Dang-ui of Duchess No, 20C (EWUM, 1995, p. 66)

이같이 20세기 당의에 보이는 급격한 변화는 조선말부터 금에 관한 제약과 전통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한제국 시기부터 국격이 상승되면서 금장식 당의의 착용 대상이 넓어진데 반해, 문안예복이나 대례복의 받침옷 같은 전통적인 착용 목적은 점차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의의 금장식 문양이 지니는 의미도 왕족이었음을 상징하는 차원에 머물게 되었으리라 본다.


<Fig. 28> 
Detail of Dang-ui Worn by Duchess No (EWUM, 1995, p. 67)

의친왕비 당의 <Fig. 29>처럼 상징성이 강한 봉황문양이 부금 된 사례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 당의는 온전한 구봉문양의 도안 <Fig. 30> 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궁중긔」에 봉황문양이 대부분 직금 당의로 반드시 명시된 것과는 달리 부금되어 있다. 이 역시 국말로 갈수록 당의의 금장식 문양이 전통적인 기법이나 의미가 약화된 채, 왕족임을 상징하는 기호로 변화되어 가는 상황이 반영된 일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Fig. 29> 
Dang-ui of Imperial Princess Ui, 20C (NPMK, 2014, p. 124)


<Fig. 30> 
Sleeve Detail Dang-ui Worn by Imperial Princess Ui (NPMK, 2014, p. 124)


Ⅳ. 수복문 당의의 금장식 문양

수복문양을 나타낸 당의를 수복문 형식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표현 기법에 따라 직금하는 ‘금수복자직금’ 당의와 부금하는 ‘금수복자’ 당의로 나누어 살펴본다.

1. ‘금수복자직금’ 당의

「궁중긔」에 ‘금수복자직금’ 당의의 기록은 순명효황후의 가례기록인 「壬午嘉禮時織造件記」에 ‘紫的壽福字織金唐古衣’, 「嬪宮媽媽冠禮時衣襨件記」(1886)에 ‘紫的金壽福字織金唐古衣’ 두 건에 지나지 않는다. 유물도 청연군주와 덕온공주 유물 두 점만 전한다. 그러나 부금 문양은 직금의 조형 원칙을 모방해 조형되므로, ‘금수복자직금’ 당의가 ‘금수복자’ 당의보다 먼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오래된 ‘금수복자직금’ 당의는 청연군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당의 <Fig. 31>이다. 이 당의는 뒷길이 41cm, 화장 36cm에 불과한 어린아이의 치수이며,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고 불필요한 이음선이 많아서, 보공용(補空用)으로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CHA, 2006). 때문에 수복문의 온전한 형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직물의 문양을 <Fig. 32>와 같이 그려본 결과, 앞서 살펴본 청연군주 추정 ‘직금’ 당의 <Fig. 7>의 바탕직 패턴 <Fig. 8>과 동일한 도안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당의에 사용된 직물은 본래 당의나 저고리를 위해 직조된 직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금수복자직금’ 도안이 수복화문 도안에 기초하며 자연히 통수스란 문양과도 연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ig. 31> 
Dang-ui of Princess Cheongyeon, 18C (CHA, 2006, p. 269)


<Fig. 32> 
Textile pattern of Dang-ui Worn by Princess Cheongyeon (Illustrated by Researcher)

이 같은 원리로 제작된 당의 중에 형태가 가장 온전한 것이 덕온공주의 자적색 당의 <Fig. 33>이다. 덕온공주 당의 도안 <Fig. 34>는 청연군주 당의에 사용된 수복화문 도안과 비슷하지만, 반장과 연꽃이 빠지고 박쥐가 추가되며 이전 시기의 수복화문에 변화를 주었다. 특히 조선 후기 편복(蝙蝠)의 관념과 함께 유행한 박쥐문양이 들어갔다는 점은 앞서 추측한대로 예복의 도안이 전통적인 틀안에서도 시류에 따라 변화해오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Fig. 33> 
Dang-ui of Princess Deok-on, 19C (SMMDU, 2005, p. 131)


<Fig. 34> 
Detail of Dang-ui Worn by Princess Deok-on (SMMDU, n.d.)

격자 비율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덕온공주 당의는 공들여 만든 당의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Fig. 34>에 확인 되듯이 뒷길 중심에 오는 수자는 재단 때 거의 오차 없이 문양의 좌우를 맞췄고, 옆선에 재단 상 글자가 잘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나 좌우 어깨에 보를 달 부분에는 불필요하게 직금하지 않았다. 이처럼 치밀한 계획으로 직금한 수복문의 배열도 정확한 단차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금원단은 재단상 문양이 손실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긴다는 큰 단점이 있다. 덕온공주의 당의도 배래와 옆선, 도련에 문양의 끊김이 보인다. 이처럼 ‘직금’ 당의보다 문양이 옷의 전면에 표현되는 ‘금수복자직금’ 당의의 경우, 문양의 손실이 더 크다. 이러한 큰 단점 때문에 ‘금수복자직금’ 당의보다 ‘금수복자’ 당의가 더 보편적으로 착용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2. ‘금수복자’ 당의

‘금수복자’ 당의 유물은 <Table 2>에 정리한 바와 같이, 18세기 말 화순옹주 1점, 청연군주 추정 당의가 1점, 19세기 덕온공주 2점 외, 20세기 영친왕비, 덕혜옹주 외에도 착용자가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모두 합해 10점으로 가장 수량이 많은 유형이다.

부금당의는 표면상으로는 직금당의와 큰 차이를 느낄 수가 없지만, 자세히 보면 직금과는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금수복자직금’ 당의는 <Fig. 35>처럼 격자형의 수복화문 도안대로 수자와 복자가 각각 1자 1행의 규칙대로 반복된다. 반면 ‘금수복자’ 당의의 경우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Fig. 36>과 같이 한 행에 수복자를 번갈아 가며 배치하는 2자 1행의 경우도 있다.


<Fig. 35> 
Example of Subokja Layout 1 (SMMDU, 2005, p. 131)


<Fig. 36> 
Example of Subokja Layout 2 (NPMK, 2011, p. 138)

이러한 차이는 초기 유물부터 보인다. 화순옹주의 ‘금수복자’ 당의 <Fig. 37>의 경우 1자 1행의 규칙으로, 청연군주 당의 <Fig. 38>의 경우는 2자 1행의 규칙으로 금장식 문양이 조형되었다. 이 두 당의는 문양의 표현에 있어서도 ‘금수복자직금’ 당의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완고한 규칙을 따르기 보다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서체로 수복자를 표현하였고, 더 많은 면적을 문양으로 채웠다. 부금기법 나름의 장점을 활용해 직금 못지않게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Fig. 37> 
Illustration of Princess Hwasun’s Dang-ui Pattern, 18C (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38> 
Illustration of Princess Cheongyeon’s Dang-ui Pattern, 18C (Illustrated by Researcher)

19세기 덕온공주 유물 <Fig. 39> 부터는 수복글자의 서체와 배열이 보다 정돈되었다. 기본적으로는 1자 1행 규칙을 잘 지키면서, 이전시기보다는 문양의 숫자를 줄이고, 길의 옆선과 도련의 곡선을 따라 문양을 배치했다. 화순옹주나 청연군주 당의가 주는 화려함은 아니지만, 보다 안정된 느낌을 준다.


<Fig. 39> 
Princess Deok-on’s Dang-ui, 19C (SMMDU, 2005, p. 131)

20세기에 들어서는 수복자 배치에 1자 1행과 2자 1행의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되, 길의 중심선과 좌우 옆선을 따라 글자를 배치하는 덕온공주 당의의 방식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또한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소장된 착용자 미상의 당의 <Fig. 40>과 같이 도련 하단에는 문자를 한 두 쌍 추가하거나, 깃에 박쥐문양을 추가하는 등의 소소한 변화를 각 당의마다 다르게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금수복자’ 당의도 다른 유형의 당의와 같이 수복화문에 조형적 기초를 두고 있으나, 부금이라는 기법적 특징을 최대한 살려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Fig. 40> 
‘Geumsubokja’ Dang-ui, 20C (SMMDU, 2005, p. 134)


Ⅴ. 결 론

이 연구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기까지의 조선 후기 왕족들이 대소의례에 착용했던 당의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의 명칭과 종류를 정리하고, 각 종류의 양식적인 특징을 규명한 것이다. 금장식 문양이 있는 조선 후기 당의 유물 24점을 분석하여 통수스란과 수복문 형식의 문양이 각각 직금과 부금으로 표현되었음을 확인하였으며, 각 양식이 조선 후기 문헌에 기록된 ‘직금’, ‘부금’, ‘금수복자직금’, ‘금수복자’, ‘봉직금’, ‘구봉직금’ 등의 명칭과 그 특징이 일치함을 규명하였다.

18-20세기까지의 24점의 유물을 문헌의 기록과 유물의 특징을 토대로 분류하여 고찰한 결과 당의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은 수복화문이라는 기초 도안에 의해 파생되었으며 서로 연결고리를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수복화문이란 수복자와 보문, 화문이 격자형으로 구성된 도안으로서, 금장식 문양 초기에는 이 도안으로 바탕직을 짜면서 바탕직과 같은 문양을 통수스란에 직금하여 ‘직금’ 문양을 표현하고, 또 같은 수복화문 도안이라도 수복 글자에만 직금하여 ‘금수복자직금’ 문양을 표현할 수 있었다. ‘구봉직금’ 문양은 봉황문양을 통수스란에 직금한 문양이지만, 수복화문을 직금하는 당의와 마찬가지로 바탕직 문양과 통수스란 문양이 통일되었다.

수복화문 도안에도 여러 양식이 있었으리라 추측되는데, 그중에서도 청연군주의 ‘직금’ 당의와 ‘금수복자직금’ 당의에 사용된 문양이 가장 기본적인 도안으로 후대 금장식 당의의 조형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사료된다. 당의용 직물을 직조하면서 바탕직과 직금 문양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방식은 20세기 초기까지 매우 보수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수복화문을 구성하는 문양의 종류는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거나, 보다 섬세한 조형을 추구하는 등 변화하기도 하여 이러한 변화가 직금되는 통수스란과 수복문양에도 자연히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금기법으로 표현된 ‘부금’ 당의나 ‘금수복자당의’ 및 봉황문양을 부금 한 당의는 직금으로 문양을 내는 당의와 같은 조형을 보다 쉽게 모방하려는 대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러나 부금으로 금장식 문양을 표현하는 당의는 옷이 완성된 후에 문양을 나타내기 때문에 문양의 조형이 직금 당의에 기초하면서도 보다 다양하고 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었다. ‘금수복자’ 당의는 초기에는 수복 글자의 수가 많고, 크기도 커서 화려함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나, 후기로 갈수록 당의의 선을 따라 문양을 배치하면서 단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쫓는 방식으로 변화해 왔다. ‘부금’ 당의의 통수스란문 역시 ‘직금’ 당의의 문양을 모방하며 시작되었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종류 예복에 사용되던 문양과 교차 사용되거나 통수스란과 수복문 형식이 혼합되는 등의 가장 급격하고도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조선 말기부터 왕실을 비롯한 명부 체제의 급격한 변화와 그들의 역할 상실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그간 모호했던 금장식 문양의 명칭을 정리하고, 문양의 양식을 고찰함에 있어서 형식과 기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 당의의 금장식 문양은 조형 원리와 기법에 따라 각각의 양식이 형성되고, 또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는 점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보며, 이와 같은 결과를 토대로 당의의 시대 고증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의 유물을 최대한 종합하여 고찰하였으나, 현전하는 유물이 20세기에 편중되어 있어 문양의 시대적인 변천에 관한 해석이 충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다양한 관련 자료가 발굴되어, 유물의 시대적 공백을 매울 수 있는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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