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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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3 , No. 3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3, No. 3, pp. 17-27
Abbreviation: JKSC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23
Received 31 Mar 2023 Revised 21 May 2023 Accepted 22 May 2023
DOI: https://doi.org/10.7233/jksc.2023.73.3.017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에 나타난 군복 연구
김정민
인하대학교 의류디자인학과 초빙교수

A Study on Military Uniform in Historical Photos of Korean Volunteer Corps Launching Ceremony
Jeong Min Kim
Visiting Professor, Dept. of Clothing & Textiles, Inha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Jeong Min Kim, e-mail: 0119640@hanmail.net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military uniform shown in a historical photo of the launching ceremony of the Korean Volunteer Corps (KVC). It explores the shape, material, color, and insignia of the KVC’s military uniform based on the photo and historical documents. It is expected to uncover part of the history of Korean military uniforms as well as help reproduce the KVC uniform and verify the authenticity of relevant artifacts. The KVC members are wearing a field cap, a Mao suit-styled jacket, and straight pants in the photo. They also a straight belt or a Sam Browne belt and leather shoes, which complies with the Uniforms Act of the Army of the Chinese Nationalist government. The fabric of their military uniform is cotton or wool, and the color is likely bluish gray, although it may be greenish yellow. Various types of insignia are attached to their military uniform. The badge on their cap is a circle, possibly including the blue sky with a white sun symbol used by the Chinese Nationalist Government Army or the corps’ own design. The members of the KVC, as illustrated in the photo, appear to be wearing a name tag that contains the member’s name and assigned job along with the corps’ symbol and name written in English, Korean, and Chinese, also functioning as a distinctive insignia. They also wear an insignia indicating the member’s affiliation with the corps on the chest, which, together with the cap badge and name tag, must have reinforced their identity as members and commitment to national independence.


Keywords: Chinese nationalist army, insignia, Korean independence army, Korean volunteer corps, military uniform
키워드: 국민정부군, 표지장, 한국광복군, 조선의용대, 군복

Ⅰ. 서론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는 중국 관내에서 조직된 한인 무장 독립부대 중 하나로 일본에 대항하여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1938년 10월 10일 조선민족전선연맹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조선의용대 중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이하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된 대원들은 광복군 전력을 크게 향상시켰고, 화북지대(華北支隊)를 결성하여 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함께 활동한 대원들도 해방이 될 때까지 항일전쟁에 투신하였다.

조선의용대의 이런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조선의용대의 군복에 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함께 활동한 대원들이 국ㆍ공 내전에 참전했고, 이후 후신 부대원 약 4만 명이 한국전쟁 직전에 북한으로 이동, 한국전쟁에 참여(Yeum, 2009)했기 때문에 조선의용대와 그들의 군복에 대한 연구의 활성도가 낮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의용대의 일부가 1942년에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어 조선의용대의 군복 등 그들의 의생활이 광복군에도 일부 영향을 주었으리라 예상된다. 또한, 조선의용대의 군복은 비록 중국 국민정부가 제정한 <육군복제조례(陸軍服制條例)>에 바탕을 두었지만, 표지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군대임을 표명하였기에 우리 군복사(軍服史)의 일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조선의용대 군복을 고찰함으로써 우리나라 군복 역사의 한 부분을 명확히 할 수 있다는 데에 이 연구의 의의를 둔다.

이 연구는 1938년 조선의용대 성립을 기념하기 위해 촬영된 사진 속 군복을 고찰한 것이며, 이로써 조선의용대 성립기의 군복을 미루어 살펴보고자 하였다. 사학계의 선행연구는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대본부(隊本部)의 소재지에 따라 무한(武漢)시기(1938.10), 계림(桂林)시기(1938.11~1940.3), 중경(重慶)시기(1940.3~1942.5)로 나누었다(Yeum, 2009). 하지만, 대본부가 계림으로 이동하자마자 무한에서 착용하던 군복에 즉각적인 변화가 생겼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복을 포함한 모든 물자가 상당히 귀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계림으로 이동한 후에도 어느 기간 동안은 무한시기의 군복이 그대로 착용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학계의 시기 구분을 따르기보다는,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 속 군복을 ‘성립기의 군복’, 창립 1주년 기념사진 속 군복을 ‘활동기의 군복’으로 구분하였다. 이 두 시기가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창립 1주년을 맞이하기 직전에 중국 군정부 제2포로수용소에 있던 한인(韓人) 병사들이 조선의용대에 가입하는데, 이들이 인계될 때 착용한 군복이 창립 1주년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남성 대원뿐 아니라 여성 대원의 군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활동기의 군복은 추후 별도의 연구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의용대 성립기 군복의 근간이 되는 성립 기념사진에 나타난 군복의 종류 및 형태, 소재와 색상, 그리고 표지장(標識章)을 고찰하였으며, <국제의용군 제1지대 조직 계획 방안>과 조선의용대원 회고록의 군복 관련 부분, 그리고 유물 사진을 더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국제의용군 제1지대 조직 계획 방안>을 통해 조선의용대가 사용한 군복 및 군용장구의 종류를 알 수 있었고, 유물 사진과 회고록 등의 문헌과 국민정부의 <육군복제조례>를 토대로 성립 기념사진 속 군복의 형태와 소재, 표지장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조선의용대의 군복을 정리하고, 추후 조선의용대 군복의 재현과 유물의 진위감정에 더욱 정확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며, 지대별 광복군 군복에 대한 연구의 기초가 되길 바란다.


Ⅱ. 조선의용대 성립과 군복 관련 계획
1. 조선의용대 성립과 활동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10일 중국 무한(武漢)에서 창설되어 중국군사위원회의 지원 하에 여러 항일운동을 펼친 군사단체이다. 조선민족혁명당의 항일운동 참가 호소에 호응하여 강서성 성자현(聖子縣)에 위치한 중국중앙군관학교(中國中央軍官學校) 특별훈련반(特別訓練班)에 입교, 졸업한 80여 명의 청년들이 조선의용대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Yeum, 2009).

이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항일 전쟁에서 일본군과 중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치선전공작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를 통해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한중연대를 공고히 하였다. 또 중국 국민정부군(國民政府軍)의 각 전구에 파견되어 협동 작전으로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정보 수집과 분석, 포로 심문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포로가 된 한적사병(韓籍士兵)을 조선의용대원으로 편입시켜 대오(隊伍)를 확대하고, 기관지를 발행해 대외 선전활동에도 힘썼다(Han, 1997).

그러나 조선의용대 내에서 동북 노선을 지지하던 많은 수의 대원들이 화북(華北)으로 이동해 1941년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자, 대장 김원봉(金元鳳, 1898~1958)이 이끄는 대원들은 중경(重慶)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합류하였고, 1942년 7월 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되며 광복군이 되었다(Yeum, 2009).

2. 조선의용대 성립 전 군복 관련 계획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 운동 단체들이 우리 군대의 창설을 염원했으나, 중일전쟁발발 이전에는 일제와의 마찰에 대한 중국의 우려로,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여러 장애물 때문에 우리 군을 수립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오야마 카즈오[靑山和夫]가 ‘조선인 군대 창설에 대한 건의’를 제안했고, 이를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장제스[蔣介石, 1887~1975]가 승인함으로써 조선의용대가 결성되기에 이른다(Yeum, 2009).

아오야마 카즈오는 조선의용대 창설을 계획하면서 <국제의용군 제1지대 조직 계획 방안>을 작성하였다. 이 방안에서 조직을 어느 규모로 만들고, 무엇을 지원할지에 대해 정리했는데, 의용군 대원의 숫자를 100명으로 상정하고, 전원 무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또 군사 행동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대원들로 하여금 일정한 복장을 갖추게 하였다. 이를 위해 군인들이 전투에 참여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제복[军軍], 군모(軍帽), 각반[绑腿], 가죽 허리띠[腰皮帶], 군화[軍用皮鞋], 식량주머니[干粮袋]와 물병[小壶], 모포[軍毯]의 지급을 계획하여(Yang, 1987; Yeum, 2009), 조선의용대 성립기의 군복과 군용장구를 밝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의용대 성립 이후에 촬영된 성립 기념사진에서는 제복, 군모, 허리띠, 군화는 확인되지만, 각반, 식량 주머니와 물병, 모포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조선의용대에 대한 군복 및 군용장구의 지급이 <국제의용군 제1지대 조직 계획 방안>에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아오야마 카즈오 안의 골격이 대체로 조선의용대 창설로 이어졌기 때문에(Yeum, 2009) 각반, 식량주머니, 물병, 모포도 지급되었을 것이다. 단, 이 물품들은 야전(野戰)이나 훈련에 사용하는 것이므로 성립 기념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Ⅲ장에서는 성립 기념사진을 통해 그 착용을 명백히 알 수 있는 제복, 군모, 허리띠, 군화를 중심으로 그 형태와 소재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Ⅲ. 군복의 형태, 소재와 색상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10일에 성립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Fig. 1>과 같이 성립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이 사진에는 군복을 맞춰 입은 대원 약 80여 명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착용한 군복을 토대로 조선의용대 군복의 형태, 소재, 색상을 살펴보았다.


<Fig. 1> 
Historical Photo of Korean Volunteer Corps Launching Ceremony, 1938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TIHK], 2011, p. 16)



1. 군복의 형태

조선의용대는 중국 국민정부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조선의용대의 성립과 운영에 장제스와 군사위원회, 그리고 장제스의 직계 세력이 깊이 관여했고, 조선의용대는 창설 이후 국민정부군에 배속되어 2년 반 이상을 그들과 함께 활동하였다(Yeum, 2009). 이러한 이유로 조선의용대 군복의 형태는 중국 국민정부가 1935년에 입법(立法), 1936년에 공포(公布)한 <육군복제조례(陸軍服制條例, Uniforms Act of the Army)>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의용대 대원이었던 최동광(崔東光, 1913~미상)은 중국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을 때 그가 만난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국민당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기록하여(The Korean Volunteer Army Footprints Writing Team, 1995),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국민정부군의 군복을 착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정부군 군복을 착용한 대원들의 모습을 <Fig. 1>의 성립 기념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군복은 <육군복제조례> 중 상복(常服) 규정에 따른 것이다(Uniforms Act of the Army [UAA], 1936). 이 상복 규정에 대해서는 광복군 관련 선행연구(Kim, 2019)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 군모

<Fig. 1>의 성립 기념사진에서는 거의 모든 대원이 제복을 입었으며, 간혹 군모를 착용하지 않은 인물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군모를 쓰고 있다. 이들이 착용한 군모는 <Fig. 2>에서 보듯이 야전모(野戰帽)로 그 형태를 살펴보면, 원통형(圓筒形)에 짧은 차양이 달렸다. 이 모자는 독일의 산악부대가 착용하던 베르크미츠(bergmütze)를 본떠 만든 것으로 귀를 덮을 수 있는 보호대가 달렸고, 이 보호대는 사용하지 않을 때 위로 걷어 올린 뒤 모자의 정면에서 단추 2개로 여며 고정할 수 있었다(Kim & Hong, 2019). 국민정부군이 이 모자를 도입한 초기에는 실제로 보호대가 달린 형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호대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장식으로 남게 된다.


<Fig. 2> 
Cylindrical Military Cap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2) 제복

대원들이 착용한 제복 상ㆍ하의는 <Fig. 3>에서 보는 것과 같다. 군모와 허리띠의 착용 여부를 제외하면, <Fig. 3>의 인물들이 착용한 제복 상ㆍ하의의 형태는 서로 거의 동일하다. 제복 상의에는 목을 높이 감싸는 칼라가 달렸고, 앞 중심에 단추 다섯 개를 달아 여며 입었다. 상의의 양쪽 가슴과 허리 선 아래로 커다란 주머니가 각각 한 쌍씩 달렸는데, 주머니를 겉에서 눌러 박고 덮개를 단 겉붙임뚜껑주머니이다. <육군복제조례>에 따른 이상의는 쑨원[孫文, 1866~1925]이 즐겨 착용하던 중산복(中山服)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산(中山)’이라는 그의 호(號)를 따서 이름 지은 것이다. 중산복의 앞섶 단추 다섯 개는 오권분립(五權分立)을, 주머니 네 개는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소매 단추 세 개는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상징하는 등 정치적 이념을 담은 실용적인 옷이다(Yuan & Hu, 2017). 한편 제복 하의로는 일자(一字)형의 긴 바지를 입고 군화를 착용했는데, <Fig. 1>에서 맨 앞줄에 자리한 인물들이 착용한 군화로 미루어 볼 때, 대체로 <육군복제조례>에 규정된 <Fig. 4>의 피혜(皮鞋), 즉 신목이 높지 않은 가죽 군화를 신은 것으로 추정된다.


<Fig. 3> 
Military Uniforms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Fig. 4> 
Officer's Leather Shoes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1936-a)



대원들은 제복 상의 위로 허리띠를 착용했는데, <Fig. 5>에서 보듯이 두 가지 유형이 확인된다. 왼쪽에 자리한 대원은 버클이 달린 일자(一字)형의 허리띠를 한 반면, <Fig. 5>의 오른쪽에 위치한 대장 김원봉은 샘 브라운 벨트(Sam Browne Belt)로 알려진 무장대(武裝帶)를 착용하였다. <육군복제조례>의 규정에 따르면, <Fig. 6>에서 보듯이 이무장대는 허리띠, 상반신에 사선으로 착용하는 어깨띠, 칼이나 총을 걸 수 있는 괘도대(掛刀帶)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Fig. 5>에서 김원봉이 착용한 무장대는 어깨띠와 허리띠는 확인되나, 허리 아래로는 조선의용대 깃발에 가려져 괘도대 부착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중국 위수사령관 류즈[劉峙]가 괘도대를 달고 칼을 패용한 반면, 광복군 총사령 지청천(池靑天, 1888~1957)이 괘도대 없는 무장대를 착용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 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 광복군도 <육군복제조례>에 따른 군복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사령 지청천이 괘도대를 하지 않음은 총사령부 성립 초기 중국군사위원회가 광복군이 무장부대(武裝部隊)가 되는 것을 인준하지 않아(Han, 1997) 무기를 소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Kim, 2019). 이와 유사하게 조선의용대도 무장하고 전투에 참여하기보다는 대적 선전을 하는 것이 그들의 주 임무였기 때문에 대장 김원봉 역시 무장대에 괘도대를 부착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Fig. 5> 
Sam Browne belt and Leathery Belt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Fig. 6> 
Sam Browne Belt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1936-b)



<육군복제조례>는 일자형 허리띠를 소가죽으로 만든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사병(士兵)이 착용케하였다. 한편, 무장대는 장교가 착용하는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실제로도 국민정부군 장교의 상징으로 통용되었다(Kim, 2019). 그러나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에서는 김원봉만이 무장대를 착용했고, 황포군관학교 출신으로 장교였던 대본부 총무조장(總務組長) 이종희(李鍾熙, 1890~1946)는 일자형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어 무장대가 장교 전원에게 보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성립 기념사진에서 <Fig. 3>의 중앙에 자리한 인물처럼 허리띠를 착용하지 않은 대원들은 군모도 갖추지 않았다. 이런 차림을 한 인원들 중에서 신원이 명확히 밝혀진 사람은 한지성(韓志成, 1912~미상), 김성숙(金星淑, 1898~1969), 윤세주(尹世胄, 1901~1942)인데 이들은 모두 대본부(隊本部) 소속 부원(部員)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총무조장 이종희는 대본부 소속임에도 군모와 허리띠를 착용했다. 따라서 군모와 허리띠를 생략한 차림은 소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촬영 시점에 훈련에 일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 보직을 맡은 인물들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2. 군복의 소재와 색상
1) 소재

성립 기념사진 속 조선의용대의 제복 상ㆍ하의에는 면직물과 모직물이 모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육군복제조례>는 제복 상ㆍ하의의 소재로 장교와 사병(士兵) 모두 면직(綿織)인 포(布)와 모직(毛織)인 라사[呢]를 쓸 수 있게 하였다. 계절에 맞추어 포와 라사를 자유롭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단, 사정상 사병의 겨울 군복에 라사를 쓸 수 없을 때는 포에 솜[棉花]을 넣어 만들게 하였다(UAA, 1936).

조선의용대 군복의 소재와 관련해 확인된 기록은 없지만, 국민정부의 규정을 참조하면 <Fig. 3>의 왼쪽 대원은 포 군복을, 오른쪽 대원은 라사군복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립 기념사진에서 극소수의 인원만이 라사 군복을 입었고, 거의 모든 대원이 포 군복을 착용했는데, 이 포 군복은 솜을 두지 않은 상태로 보여 촬영 당시 날씨가 그리 춥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색상

복식 유물자료를 연구하고 이를 재현, 활용하는데 있어 색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조선의용대 군복의 색상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나, 남아 있는 사진 자료가 흑백이기 때문에 국민정부군 자료에 기대어 추론해볼 수밖에 없다.

당시 광복군의 군복은 청색(靑色)이었다는 다수의 회고록 기록이 남아 있다. 반면, 조선의용대 군복의 색상에 대한 기록은 확인된 바 없어 <육군복제조례> 및 여러 자료에 근거해 그 색상을 추론해볼 수밖에 없으며, 본 연구에서는 가능성이 높은 두 가지 색상을 제시해보자 한다. 첫째, 군복색상이 초황색(草黃色)이었을 가능성이다. 독일 군사고문들의 영향으로 국민정부군은 독일군의 최신 군사 장비와 훈련을 도입했고(Xu, Nie, & Xu, 2005), 1936년에 공포된 <육군복제조례>에 독일군 군복 색상을 반영하여 초황색이 군복의 색으로 규정되었다. 이 색상의 군복은 중앙군 부대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조선의용대가 초창기에 국민정부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조선의용대의 운영에 장제스의 직계 세력이 깊이 관여했기에 조선 의용대도 초황색 군복을 착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볼 수 있다.

한편, 조선의용대의 군복 색상이 심회색(深灰色) 즉, 푸른빛이 도는 회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육군복제조례>에서 초황색 군복을 제정하기 전에는 국민정부군이 심회색 군복을 착용했고, 조례제정 이후에도 곧바로 모든 부대에 초황색 군복을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회색 군복이 지속적으로 착용된 것이다(Kim, 2019). 조선의용대 운영에 장제스의 직계세력이 관여했다 하더라도 중앙군 주력부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심회색 군복을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Ⅳ. 표지장의 종류와 형태

표지장(標識章)은 군복의 특정 부위에 부착하여 착용자의 소속 및 계급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착용 위치 및 기능에 따라 모표(帽標), 소속(부대) 표지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장에서는 성립기의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착용한 원형의 모표(帽標)와 명찰(名札), 소속(부대) 표지에 대해 살펴보는데, 조선의용대가 표지장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모표

모표는 군모에 다는 표지장으로 일반적으로 모자 정면 중앙에 부착한다. 조선의용대는 <Fig. 7>에서처럼 군모의 상단에 원형(圓形)의 모표를 부착하였다. 당시 <육군복제조례>는 원형 모표의 크기를 대략 지름 3㎝로 규정하고 있어(UAA, 1936), 조선의용대의 것도 비슷한 규격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Fig. 7> 
Badge on Cap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그러나 성립 기념사진을 통해 모표가 원형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사진이 흐릿한 관계로 그 안에 그려진 도안은 알 수 없다. 이에 도안을 두 가지로 추측해보면, 첫째, 국민정부군의 상징인 <Fig. 8>의 청천백일(靑天白日) 도안일 가능성이다. 청천백일은 푸른 하늘에 뜬 태양을 도안화한 것으로 태양에서 나오는 12개의 빛은 하루 24시간, 1년 12개월을 상징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할 것을 의미한다(Flag of Taiwan, n.d.). 앞서 살펴본 대로 성립기의 조선의용대는 국민정부군에 배속되어 활동했기 때문에 국민정부군처럼 청천백일 모표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Fig. 8> 
Badge on Cap of Chinese Nationalist Army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1936-c)



둘째, 조선의용대가 청천백일이 아닌 독자적인 도안을 모표에 사용했을 가능성이다. 광복군은 국민정부군과 같이 원형인 모표를 사용했는데,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을 모표의 도안으로 사용했다(Kim, 2019). 따라서 그 도안을 명확히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조선의용대도 스스로를 상징하는 특정 도안을 자체 제작하여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명찰

조선의용대 성립기의 군복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원들의 왼쪽 가슴주머니 위쪽으로 부착된 <Fig. 9>의 사각형 명찰이다. 그러나 사진이 흐릿한 관계로 안타깝게도 그 세부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Fig. 9> 
Name Tag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당시 국민정부군이 사용한 표지장 중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 함명부호(銜名符號)를 찾아볼 수 있다. 함명부호는 소속, 계급 등을 기재한 명찰이며, 착용자의 왼쪽 가슴에 패용한 것이다. 가로 9㎝, 세로 5㎝의 크기인데, 그 바탕을 장교의 것은 견직물로, 사병(士兵)의 것은 면직물로 하였다. 장교의 함명부호인 <Fig. 10>을 예로 살펴보면, 오른쪽에 착용자의 성명을 세로로 쓰고, 가운데에는 위에서 아래로 소속, 보직과 착용 연도를 기재했다. 그리고 왼쪽에는 병과(兵科) 상징 색을 적용한 세로선을 두고, 계급을 표시하는 삼각성(三角星)을 배치하였다. 함명부호의 테두리 역시 계급에 따라 색에 차별을 두었는데, 이 함명부호는 테두리에 남색을 사용해 위관(尉官)의 것인데, 삼각성이 3개로 상위(上尉)의 것이며, 병과 색이 홍색(紅色)이므로 보병(步兵)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병의 함명부호는 소속 표기법은 장교의 것과 같았으나, 병과 상징색을 표시하는 위치가 달랐고, 무엇보다 함명부호 테두리에 색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Fig. 10> 
Name Tag of Chinese Nationalist Army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1936-d)



국민정부군의 함명부호가 직사각형이고 왼쪽 가슴 위에 부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Fig. 9>의 조선의용대 표지가 국민정부군의 함명부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단, 사진의 화질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의용대 표지의 테두리에 명암의 차이가 확인되지 않아, 국민정부군의 함명부호를 사용했다 가정하더라도 장교의 것보다는 사병의 것과 유사한 형태였을 가능성을 제기해볼 수 있다.

한편, 국민정부군의 함명부호 외에 조선의용대의 독자적인 명찰을 패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Fig. 11>은 황민(黃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조선의용대 대원 김승곤(金勝坤, 1915~미상)의 것으로 이사진이 수록된 사진첩에서는 이를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을 때 패용하던 부호(符號)’라 기록하고 있다(The First Branch of the Korean Independence Army Photo Album Publishing Committee [FKAPP], 2000).


<Fig. 11> 
Hwang Min's Name Tag

(FKAPP, 2000, p. 67)



이 유물을 신분증이라고 기록한 자료(Shi, 1997)도 있으나, 조선의용대가 운영되던 시기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들이 발급한 신분증에는 사진을 부착해 소지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Fig. 11>은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분증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유물의 크기를 알 수 없어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으나, 착용자의 성명과 보직이 기재되어 명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진첩에 기록된 대로 <Fig. 11>의 패용 시기를 조선의용대 창설 당시로 본다면, <Fig. 9>의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에 보이는 가슴에 패용한 표지장이 <Fig. 11>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Fig. 11>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보면, 왼쪽에 착용자의 성명인 ‘黃民’이, 오른쪽에는 보직인 ‘隊員’이 쓰여 있으며, 가운데에는 원과 별을, 그리고 그 주위를 따라 조선의용대를 나타내는 영문 ‘KOREAN VOLUNTEERS’, 한글 ‘조선의용대’를 두고, 정중앙에 가로로 한자 ‘朝鮮義勇隊’를 배치하였다. 국민정부군의 명찰에 성명, 소속, 보직이 글자로 기재된 것과 달리, 조선의용대의 명찰에는 성명과 보직은 글자로, 소속은 도안으로 표현함으로써 명찰에 부대표지의 기능을 부여하였다. 이는 국민정부군과 함께 활동하던 조선의용대가 국민정부군과의 구분을 두고, 한글로 ‘조선의용대’를 표기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군사대오라는 정체성을 부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소속(부대) 표지

소속(부대) 표지는 대체로 ‘배지(badge)’라고 알려진 것으로 착용자의 소속을 나타내는 표지장이다. 성립 기념사진의 부분인 <Fig. 12>에서 대본부 소속 윤세주(尹世胄)가 왼쪽 가슴 위에 원형(圓形)의 표지장을 패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 12> 
Badge of Korean Volunteer Corps, 1938

(TIHK, 2011, p. 16)



이는 소속(부대) 표지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의용대 대원이었던 김학철(金學鐵, 1916~2001)의 회고에 따르면, 성립 기념식에 군복을 입고 참가한 사람이 150여 명이었으며, “식순의 하나로 전체 대원들의 가슴에 배지(휘장) 하나씩을 달아주는데, 거기에는 ‘조선의용대’라는 한문 글자 다섯 자와 'Korean Volunteer'라는 영문자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였다(Kim, 1995). 이 문자들의 배열, 즉 도안이 <Fig. 11>의 명찰과 유사할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회고록의 기록은 조선의용대가 국민정부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을지라도 성립 시기부터 조선의용대의 독자적인 소속(부대) 표지를 만들어 착용하였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Ⅴ. 결론

이 연구는 1938년 10월 10일에 촬영된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에 나타난 군복의 형태, 소재와 색상, 그리고 다양한 표지장의 종류와 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이 군복은 중국 국민정부가 1936년에 공포한 <육군복제조례>에 따른 것인데, 이는 조선의용대가 우리 민족의 염원으로 성립되었음에도 그 성립과 운영에 국민정부가 깊이 관여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립 기념사진 속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원통형에 짧은 차양이 달린 군모를 썼고, 중산복(中山服) 양식의 제복 상의에 무장대(武裝帶) 또는 일자형의 허리띠를 착용했다. 제복 하의로는 일자형의 긴 바지를 입고, 군화로 피혜(皮鞋)를 신었다. 또한, 아오야마 카즈오의 <국제의용군 제1지대 조직 계획 방안>이 조선의용대 창설의 골격을 이룬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방안에 따라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군모와 제복, 혁대와 군화 외에 각반, 식량주머니와 물병, 모포(毛布)도 사용하였을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한편, 성립 기념사진에는 군모와 허리띠를 착용하지 않은 인물들도 보이는데, 이들은 훈련에 일상으로 참여하지 않는 보직을 맡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군복은 면직(綿織)인 포(布) 또는 모직(毛織)인 라사[呢]로 제작되었으며, 그 색상은 명확히 밝히기 어렵지만, 국민정부군 중앙군 주력부대가 착용한 초황색(草黃色)일 가능성과 당시에 널리 착용된 심회색(深灰色)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처럼 국민정부군의 영향을 받은 군복을 착용했으나,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표지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군사대오임라는 정체성을 나타내었다. 조선의용대 성립기에 그들이 착용한 모표는 청천백일 도안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으나, 독자적인 도안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조선의용대는 명찰을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연구에서 성명, 소속, 보직을 넣은 대원 김승곤(金勝坤)의 유물이 그 명찰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외에 성립 기념사진에서 대원들이 왼쪽 가슴 위에 착용한 원형의 표지장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대원 김학철(金學鐵)의 회고에 등장하는, 조선의용대임을 나타내는 소속(부대) 표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의용대가 성립 초기에 착용했던 군복의 일면을 확인하였다.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육군복제조례> 외에 조선의용대 군복과 관련된 별도의 규정이 전해지는 것이 없고 기타 연구 자료가 충분치 않아, 불가피하게 가능성만 제기한 부분들이 있으나, 이 연구가 조선의용대의 군복 재현과 유물 감정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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