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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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6 , No. 1

[ RESEARCH PAPERS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6, No. 1, pp. 1-12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Jan 2016
Received 08 Dec 2015 Revised 29 Dec 2015 Accepted 06 Jan 2016
DOI: https://doi.org/10.7233/jksc.2016.66.1.001

조선 말기 나장복에 관한 연구 :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박윤미 ; 임소연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연구교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학예사

A Study on the Official Uniform of Najang from the Late : Joseon Dynasty, with Focus on the Relic Collections in Leipzig Grassi Museum, Germany
Yoon-Mee Park ; So-Yeon Lim
Research Professor, Dept. Clothes, Dankook University
Exhibition & Publicity Dept. Curator,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Correspondence to : Yoon-Mee Park e-mail: yoonmpk@hanmail.net

Funding Information ▼

Abstract

Najang was the central Seori, affiliated to the Ministry of War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existing authentic Najang costumes from the late-Joseon dynasty by examining factors, such as the composition of the costume, size, and method of creation, and attempt to replicate it. The Leipzig Grassi Museum in Germany possesses an official uniform of Najang from the late-Joseon dynasty, and we visited the museum in May of 2013 to examine it for the study.

Written records, or Uigwe, and other pictorial data from the Joseon Dynastry describe the Najang wearing black or navy clothing with white decoration and pointy hats. The most notable characteristic of the Najang uniform is that it has the cotton cords pattern. The hat has a brass ball attached, which was worn with the ball facing the fron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was worn facing the back in the later years. They usually wore black head cloths (Heuk-geon), but would attach feathers on the black hats (Heuk-rip) for special occasions.

The Najang uniform preserved in the Leipsiz Grassi Muesim does not exist in Korea. It is made of cotton. The cotton cord pattern of the uniform of Najang was made using single-ply cords and double-ply cords. The hat worn by Najang is in a form of a cone that becomes narrower towards the top or is in a form with wide and open end. It was made of oiled paper covered with hemp, and two circular metal disks were attatched at the rear.


Keywords: cotton cord, genre painting, hat, Leipzig Grassi Museum, Najang, Uigwe
키워드: 무명끈, 풍속화, 관모,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나장, 의궤

Ⅰ. 머리말

나장(羅將, 螺匠)은 조선시대 병조 소속의 중앙서리였다. 의금부ㆍ형조ㆍ사헌부ㆍ사간원ㆍ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ㆍ전옥서(典獄署)ㆍ평시서(平市署) 등 중앙의 사정(司正)ㆍ형사업무를 맡는 관서에 배속되어 고급관원의 시종과 죄인을 문초할 때 매질ㆍ압송하는 일 등을 맡았다. 나장은 나졸(羅卒)이라고 하는데 소유(所由), 사령(使令), 창도(唱導) 등으로도 불렸다. 나장은 의금부에 배속된 인원이 240인이나 될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까지 나장의 복식은 깔때기를 쓰고 까치등거리를 입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왔으며 구체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국내에 현전하는 나장복은 드문 실정이다. 그런데 현재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말기의 나장복이 한 점 소장되어 있다. 이 나장복은 1902년 상인인 Saenger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조선말기의 나장복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문헌과 회화 등의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나장복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고 둘째,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나장복의 시대를 구분하고 재현해 봄으로 제작법과 특징 등을 정확하게 파악해 보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문헌과 실물 조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문헌조사는 『경국대전』, 『조선왕조실록』, 문집 등의 문헌기록과 각종 의궤와 풍속화에 표현된 나장복을 조사하여 나장복의 특징과 변화 형태를 살펴보았다. 실물조사는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을 직접 방문하여 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나장복을 실물 조사하는 방법으로 수행되었다. 실물조사를 위해 2013년 5월 21~29일까지 동 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물을 열람하여 실측하고 복식의 구성, 크기, 제작 방법 등 특성에 대해 세부적인 조사를 하였다.


Ⅱ. 조선시대 나장복

조선시대 나장복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문헌과 회화자료가 있다. 본 연구에서 조사한 문헌자료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그리고 문집 등에서 나장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 정리하였다. 회화 자료는 각종 의궤(儀軌)의 반차도(班次圖), 그리고 풍속도에 표현되어 있는 나장의 모습을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나장복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문헌과 회화자료에서 확인된 나장복의 형태적인 특성을 복식의 종류별로 분석하였다.

1. 문헌자료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권3 예전(禮典) 의장(儀章)에는 나장은 조건(皂巾)을 쓰고 청반비의(靑半臂衣)를 착용하며 형조(刑曹)ㆍ사헌부(司憲府)ㆍ전옥서(典獄署)에 소속된 나장은 조단령(皂團領), 사간원(司諫院)의 나장은 토황단령(土黃團領)에 조아(絛兒)를 띠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소속 기관에 따라 복색(服色)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65년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동일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권62 연산 12년(1506) 4월 13일에 “나장의 옷 색깔은 반팔[半臂]에 검은색 철릭[帖裏]을 붙여 입히고 ‘뇌리(雷吏)’라고 부르라.(羅將服色, 着半臂黑帖裏, 以雷吏稱號)”라는 전교를 하고 있어 나장복 제도가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장이 흉례(凶禮)에 착용하는 복식에 대해서는『국조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조오례의』흉례의 복제에서 나장은 “백의ㆍ백두건ㆍ백대로 하되, 졸곡 뒤로는 백의ㆍ흑두건ㆍ흑대를 착용하여 3년을 마친다(抄皂隷羅將白衣白頭巾白帶卒哭後白衣黑頭巾黑帶終三年).”로 규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예종 즉위년(1474) 9월 9일, 성종 14년(1474) 4월 1일, 선조 33년(1600)까지는 오례의의 내용을 따르고 있으나 숙종 46년(1720) 6월 8일에는 “조례(皁隷)와 나장(羅將)은 백의ㆍ백두건ㆍ백대로 3년을 마친다(皀隷羅將白衣白頭巾白帶終三年)”으로 규정하여 졸곡 후에 건(巾)과 대(帶)의 색상이 흑색에서 백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해 7월 18일 경종이 즉위하고 졸곡후의 시사복에 대해 논의하면서 “액속(掖屬) 이하 조례(皁隷)ㆍ나장(羅將)에 이르기까지 졸곡 후에 흑건(黑巾)ㆍ흑대(黑帶)와 오모(烏帽)ㆍ오대(烏帶)와 흑평정 두건(黑平頂頭巾)은 『오례의(五禮儀)』의 제도를 준행함이 마땅하나, 선조조(宣祖朝)의 백의(白衣)ㆍ백관(白冠)ㆍ백대(白帶)로 개제(改制)한 뜻에는 어긋나니, 이 예절을 크게 바로 잡는 날을 맞아 그대로 인순(因循)할 수 없으므로 모두 백색으로 개정하였습니다(掖屬以下至皀隷, 羅將, 卒哭後黑巾, 黑帶, 烏帽, 烏帶, 黑平頂頭巾, 當遵五禮儀之制, 有乖於宣廟朝白衣ㆍ冠ㆍ帶改制之意. 當此禮節大正之日, 不可因循, 故皆改以白色)”라고 하여 숙종대에 제도가 개정되었던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상의 문헌기록을 정리하면 나장은 조선 초기에는 소속기관에 따라 청색 반비, 흑색 단령, 토황색 단령을 착용하다 1506년에 반비와 흑색 철릭으로 바뀌었다. 흉례 시에는 백의ㆍ백건ㆍ백대를 착용하다 졸곡 후에는 백의ㆍ흑두건ㆍ흑대로 입었으나 1720년부터 졸곡 후에도 백의ㆍ백건ㆍ백대를 착용했다.

2. 회화자료
1) 의궤(儀軌)

조선시대 의궤(儀軌)는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의 전말, 경과, 의식절차, 행사 후의 논상 등을 기록해 놓은 책으로 조선시대의 왕실행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반차도는 의식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어 회화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의 복식을 복원하는데 있어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조사한 의궤 중 반차도에 ‘羅將’이라고 직분명과 함께 나장이 묘사되어 있는 책은 모두 16책으로 1645~1790년도에 기록된 책이다. 반차도의 내용을 복식의 종류별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포(袍)

나장은 철릭이나 단령과 같은 포를 안에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반차도의 그림으로는 어떤 종류의 포를 착용했는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포의 색상은 『신덕왕후부묘도감의궤』1), 『효장세자가례도감의궤』2), 『인원왕후부묘도감의궤』3), 그리고 『문희묘영건청등록』4)에는 청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다른 반차도에는 백색으로 그려져 있다. 1645년에 간행된 『소현세자예장도감의궤』는 백의(白衣)ㆍ백포두건(白布頭巾)ㆍ백대(白帶)를 착용(着用)하고 있는데5),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는 흉례(凶禮) 복식 제도와 같은데 포(袍)위에 다른 것을 착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Gookjo-oryeui, 1474). 포의 길이는 발 등을 덮을 정도로 긴 것부터 무릎과 발목 중간정도의 길이까지 다양하나 1700년대의 반차도에는 종아리 중간 정도의 길이를 보여주고 있다.

(2) 반비(半臂)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연산군 12년(1506)에 “나장의 복색은 반비에 흑철릭을 착용한다.”고 기록6)되어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겉에 착용하는 옷을 ‘반비’로 분류하고자 한다. 반차도에는 뒤와 옆모습만 표현되어 있어 앞모습을 알 수는 없으나 겨드랑이 아래부터 트여있어 세자락으로 구성된 옷으로 여겨진다. 반비의 길이는 포의 길이에 맞춰 1700년대에는 길이가 짧아졌다. 색상은 『경종단의왕후부묘도감의궤』에만 청색이며7) 나머지는 모두 흑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장복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흰색 장식선은 『명성왕후부묘도감의궤』8)와 『효장세자가례도감의궤』9), 『문희묘영건청등록』10)에는 표현되어있는데 반해 다른 반차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명성왕후부묘도감의궤』의 나장은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뒷길의 중심에 길게 선이 있고 양 어깨에 2줄이 있다11). 『효장세자가례도감의궤』12)에도 뒷길의 중심에 세로로 선이 있고 소매를 비롯하여 반비의 가장자리에 흰색 선을 둘렀다. 『문희묘영건청등록』의 반비는 뒷길의 중심에 세로선이 있고 허리에 3개의 선을 표시했으며 가장자리에 선을 둘렀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이 옷을 ‘작의(鵲衣)’라고 불렀는데, 1844년 한양의 풍속과 제도 등을 노래한 『한양가』에서는 “팔십 명 나장(羅將)이는 알도[喝道]에 눈을 박아 상투 끝에 젖혀 쓰고 철릭 위에 아청 작의(鵲衣) 흰 실로 줄을 놓아 임금 ‘王’자 써서 입고”(Gang, 2008)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Lee(1992)는 “더그레ㆍ호의(號衣)는 의금부의 나장차림으로 흑의에다가 손가락 굵기 만한 흰 끈으로 바둑판무늬를 놓아서 입은 것으로 ‘까치등거리’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장의 반비는 ‘작의’, ‘더그레’, ‘호의’, ‘까치등거리’ 등으로 불렸으며 굵은 흰색실로 무늬를 장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비의 허리에는 대대(大帶)나 포대(布帶)를 두르기도 하였으나 『현종명성왕후가례도감의궤』13)를 비롯하여 몇 책에는 대(帶)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3) 관모(冠帽)

머리에는 위가 뾰족한 원추형의 검은색 건(巾)을 쓰고 있다. 그런데 『단종정순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14), 『경종단의왕후부묘도감의궤』15), 『효장세자가례도감의궤』16), 『인원왕후부묘도감의궤』17)에는 건의 뒤에 두개의 원형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이 원형 장식은 ‘알도’ 또는 ‘갈도(喝道, 喝導)’라고도 하는데 사간원이나 홍문관의 벼슬아치가 출근할 때 앞에서 소리를 질러 비키게 하던 일 또는 그 일을 맡은 나장을 일컫기도 하였다. 『한양가』에서도 이 장식을 ‘알도’로 표현하고 있다. Lee(1992)는 나장의 모자를 ‘깔때기’와 ‘전건(戰巾)’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가 삐죽하게 만든 건이다. 풀을 먹여 빳빳하게 하고 양 옆으로 알도라고 하얗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군병과 금부의 나장, 그 밖의 아랫도리사람들이 휘뚜루 썼다. 또 하나 깔때기로는 유지(油紙)로 갈모처럼 접고 실끈을 달아 군사들이 웃옷 안쪽에 차고 다니다 물을 떠서 먹는 소용으로 쓰던 것이 있다.(Lee, 1992, p. 82.)

<Table 1>은 의궤 반차도에 등장하는 나장의 모습을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Table 1> 
The Pictures of Najangs in Uigwe
No. Uigwe Published Year Najang No. Uigwe Published Year Najang
1 Sohyunseja-yejangdogam-uigwe 1645 9 Gyeongjong-danuiwanghoo-garyedogam-uigwe 1696
2 Hyeonjong-myeongseong-wanghoo-garyedogam-uigwe 1652 10 Danjong-jeongsoon wanghoo-bokweboomyodogam-uigwe 1699
3 Hyojong-boomyodogam-uigwe 1661 11 Gyeongjong-danuiwanghoo-boomyodogam-uigwe 1726
4 Shindeokwanghoo-boomyodogam-uigwe 1670 12 Hyojangseja-garyedogam-uigwe 1727
5 Sookjong-inkyoungwanghoo-garyedogam-uigwe 1671 13 Dankyungwanghoo-boomyodogam-uigwe 1739
6 Inseonwanghoo-boomyodogam-uigwe 1676 14 Sadoseja-garyedogam-uigwe 1744
7 Sookjong-Inhyunwanghoo-garyedogam-uigwe 1681 15 Inwon-wanghoo boomyodogam-uigwe 1752
8 Myeongseong-Wanghoo Boomyodogam-Uigwe 1686 16 Moonhuimyo-younggeoncheung-deungrok 1790

2) 풍속도

조선시대의 복식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의궤의 반차도 이외에도 풍습과 행사, 행렬 등을 그린 회화자료가 있다.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모당 홍이상의 평생도<Fig. 1>에는 두 명의 나장이 등장한다(National Museum of Korea[NMK], 2002). 두 사람 모두 발목까지 내려오는 푸르스름한 포(袍)를 입고 있는데 소매길이도 길고 통도 넓어 보인다. 이 위에 왼쪽 인물은 흑색, 그리고 오른쪽 인물은 홍색 겉옷을 착용하고 있다. 이 겉옷의 앞이 나타나있지 않아 정확한 종류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앞뒤길이 분리되어 있는 3자락의 옷으로 보여 반비로 추정된다. 『경국대전』의 기록에 나장은 청색 반비에 소속에 따라 단령의 색상이 다르다고 하였으나18) 이 그림에서는 반비의 색상이 다른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인물은 머리에는 동일한 흑색의 원추형 관(冠)을 쓰고 있는데 관모 꼭대기 부분은 벌어져 분리되어 있으며 알도가 앞으로 오도록 쓰고 있다.


<Fig. 1> 
Highlights of an Illustrious Life

(NMK, 2002, p. 90)



신윤복(1758~?)의 대표적 화첩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중 주막 안의 광경을 그린 ‘주사거배(酒肆擧盃)’에 나장이 등장한다(NMK, 2002). 나장은 청색 철릭 위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흑색 반비를 입고 있다.<Fig. 2> 그런데 앞의 양옆 자락이 보이지 않고 겨드랑이 뒤로 넘어간 것으로 보아 앞자락을 뒤로 넘겨 묶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머리에는 끝부분이이 일직선이고 납작한 형태의 흑건을 쓰고 있으며, 흑건의 뒤로 알도로 추정되는 노란색의 원형장식이 약간 보이고 있다. 발에는 백색의 혜(鞋)를 신고 있다.


<Fig. 2> 
Painting of Hyewon

(NMK, 2002, p. 163)



김홍도가 그린 ‘풍속도8곡병풍’ 가운데 ‘가두매점(街頭買占)’은 길거리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NMK, 2002). 남사당(男寺黨)들 사이에서 소고를 치며 함께 흥겹게 놀고 있는 여사당(女寺黨)은 왼손에는 부채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나장의 소매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여사당을 돌아보고 있는 나장은 안에 푸른색의 넓은 소매가 달린 포를 입고 있으며 포의 길이는 무릎정도이다. 겉에는 흰색 줄무늬가 있는 흑색 반비를 착용하고 있는데 앞자락을 뒤로 돌려 한번 묶은 상태이다. 머리에는 위가 뾰족한 흑건을 쓰고 있으며 흑건의 뒤쪽에 알도가 부착되어 있다. 신은 짚신이나 미투리와 같은 초혜(草鞋)로 보인다<Fig. 3>.


<Fig. 3> 
Painting of Danwon

(NMK, 2002, p. 165)



프랑스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풍속도 중에는 A. Salavelle이 그린 나장의 그림이 있다. 그림<Fig. 4>의 오른쪽 하단에 그린이의 서명과 Seoul 1891 이라는 장소와 제작년도가 표기되어 있다. 주장을 들고 있는 나장의 옆모습을 그렸는데 초록색 포(袍) 위에 흑색 반비를 걸쳤으며 뒤에 알도가 달린 원추형의 흑색모자를 쓰고 있다. 반비의 앞ㆍ뒷길의 둘레에 흰 선을 둘렀으며 뒷길에는 가로방향으로 흰색 무늬를 표현한 것이 뚜렷이 보인다.(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Properties [NRICP], 1999)


<Fig. 4> 
Painting of A.Salavelle (NRICP, 1999, p. 146)

다음은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나장의 차림새이다. 단원 김홍도가 1786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는 요산헌의 부친이 황해도 안릉의 신임 현감으로 부임하는 광경을 담은 행렬도이다(NMK, 2002). 행렬에 ‘指路羅將’이라는 직분이 적힌 인물이 있다. 안에는 청색포를 입고 있는데 옆선이 분리되어 있고 소매는 좁다. 조선시대에 옆선이 분리되어 있는 포는 중치막과 소창의가 있는데 중치막은 소매가 넓으므로 지로나장이 착용한 포는 소창의로 보인다. 겉에는 남색 혹은 아청색의 반비를 입고 있다. 반비는 대금형이며 어깨를 비롯하여 옷 전체에 흰색 줄무늬가 있고 아청색 포대(布帶)로 허리에서 여며 머리에는 흑립위에 3개의 호수(虎鬚)가 장식된 관모를 쓰고 있으며 초혜를 신고 있다<Fig. 5>. 그런데 그 뒤쪽으로 행렬의 중간쯤에 ‘羅將’ 2명이 배치되어 있는데 지로나장과는 차림새가 조금 다르다. 소창의와 반비는 동일하나 앞자락을 뒤로 돌려서 묶는 방식으로 착용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선추가 달린 부채를 들고 있다. 관모는 커다란 공작 깃털로 장식하였으며 큼지막한 황색과 홍색 구슬로 엮은 갓끈을 달았다<Fig. 6>.


<Fig. 5> 
‘Jiro-najang’(NMK, 2002, p. 42)


<Fig. 6> 
‘Najang’ (NMK, 2002, p. 43)

‘안릉신영도’와 같이 직분이 다른 나장이 함께 그려져 있는 또 다른 행렬도가 있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화성원행반차도(華城園幸班次圖)’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행렬도로 추정하고 있다(NMK, 2002). 행렬도에서 정조의 어좌마(御座馬)의 좌우 가장자리에 위치한 ‘고훤나장(考喧羅將)’<Fig. 7>과 뒤쪽에 정조의 누이인 군주의 쌍교(雙轎) 앞에 있는 4명의 ‘지로나장(指路羅將)’<Fig. 8>은 복식이 동일하나 다만 손에 들고 있는 주장의 색상만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두 직분 모두 옆트임이 있는 청색 포위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흑색 반비를 착용하고 있는데 반비의 앞자락을 뒤로 돌려 묶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새깃털 장식이 달린 흑립을 쓰고 있다.


<Fig. 7> 
‘Gowhan-najang’, (NMK, 2009, p. 69)


<Fig. 8> 
‘Jiro-najang’, (NMK, 2009, p. 72)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부사왜접사도’<Fig. 9>는 일본사진을 맞이하는 행사를 그린 그림이다(NMK, 2002). 동래부(東萊府)에 도착한 일본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초량왜관으로 향하는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림의 중간에 동래부사가 탄 가마가 있으며 그 앞쪽에 새의 깃(鳥羽) 2개를 꽂아 장식한 관모를 쓴 인물들이 있다. 그림에는 직분명이 적혀있지 않으나 소매에 흰색 한삼이 달린 청철릭 위에 아청색 혹은 흑색의 반비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장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착용한 반비에는 바둑무늬와 같은 흰색선이 있으며 앞은 여미지 않아 철릭의 앞길이 보이고 있다.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고 신은 초혜(草鞋)를 신고 있다.


<Fig. 9> 
Commander of Dongraeboosa Greeting Japanese Ambassadors (Photographed by researcher, 2015)

20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평생도’ 관찰사부임 장면에서도 2명의 나장<Fig. 10>이 등장한다(NMK, 2002). 청철릭에 반비를 입고 있는데 마치 바둑판과 같이 여러 개의 흰 선으로 무늬가 표시되어 있다. 반비의 길이는 허리 아래로 짧은 편이며 허리에는 끈으로 묶은 흔적이 나타나있지 않다. 커다란 홍색과 황색의 영주가 달린 흑립에는 화려한 깃털 3개가 꽂혀있는데 공작 깃털로 보인다.


<Fig. 10> 
Highlights of an Illustrious Life (NMK, 2002, p. 109)

대한제국 시대 고종(1852~1919)의 동가행렬을 그린 ‘대한제국 동가도’<Fig. 8>는 1897~1930년대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Ewha Womans University Museum[EWUM], 2014). 그림 중에 흑마를 탄 한성판윤의 옆과 뒤에 나장 7인이 따르고 있다. 나장은 ‘拿將’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이것은 ‘羅將’의 오기(誤記)로 보고 있다(EWUM, 2014). 7명의 나장은 모두 주장을 들고 있는데 청색 철릭 위에 아청색 반비를 입고 있다. 반비의 앞뒤에는 흰색 선이 장식되어 있으며 등에 ‘王’자가 새겨져있어서 한양가에서 묘사한 내용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비는 둔부를 가릴 정도의 길이이며 양옆은 트여있다. 허리에는 가는 흰색의 것으로 묶었는데 끈목인지 옷감으로 만든 포대(布帶)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머리에는 삼각형 형태의 흑건을 쓰고 있는데 옆모습은 위가 뾰족해 보이나 뒤를 보면 모자 끝이 약간 수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윗부분이 뒤로 젖혀있으며 알도는 뒤에 부착되어 있는데 이것은 신윤복의 주사거배의 나장 모자와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흑건의 형태로 보아 부드러운 옷감으로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신발은 초혜로 보인다.


<Fig. 11> 
The King’s Excursion on a Royal Carriage (EWUM, 2014, p. 22)

이상의 ‘안릉신영도’, ‘동래부사왜접사도’, ‘평생도’의 관찰사부임 장면, 그리고 ‘대한제국 동가도’는 모두 큰 행사에서의 행렬 광경을 묘사한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을 통해서 동일한 행사에 참여한 나장이라도 직분에 따라 옷의 착용방식과 관모장식이 다른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큰 규모의 행사에서는 흑건 대신 커다란 깃털이 달린 관모로 대신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3. 조선시대 나장복의 형태적 특징

앞에서 살펴본 조선시대 의궤, 문집 등의 문헌과 풍속도의 회화자료를 종합해보면 조선시대 나장복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나장이 안에 입는 옷은 주로 청색의 단령이나 철릭과 같은 포(袍)이다. 포의 길이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짧아졌다.

둘째, 겉에 입는 반비는 옆이 트여있는 세자락의 옷으로 길이가 허리 아래부터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것도 있으나 안에 입는 포가 짧아짐에 따라 반비 역시 짧아졌다. 조대(縧帶)나 포대(布帶)로 두르기도 하고, 반비의 앞자락을 뒤로 돌려 묶기도 했다. 또한 허리띠를 두르지 않기도 했다.

셋째, 반비의 흰색 무늬는 실을 굵게 꼬아서 장식을 하였으며 조선후기로 갈수록 점차 선이 늘어났다.

넷째, 동일한 행사에 참여한 나장이라도 직분이나 소속에 따라 옷의 착용방식과 관모장식이 다른 경우도 있다.

다섯째, 나장은 평소에 주로 흑건을 쓰나 행사에 참여할 때에는 흑립에 깃털을 달아 화려한 차림새로 치장하기도 했다. 흑건의 경우에는 조선 초기에는 알도가 앞에 달려있는 경우도 있으나 후기가 될수록 뒤에 장식하였다.

여섯째, 대체로 신은 짚신이나 미투리와 같은 초혜(草鞋)를 착용하였다.


Ⅲ.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의 나장복
1. 나장복의 특징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은 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 시내에 위치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는 천년의 전통을 지닌 동부 독일의 대도시이며, 교육ㆍ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은 경제적으로 윤택했던 19세기 후반 라이프치히의 자본가들이 세계의 민속 문화를 수집하기 위해 1869년에 만든 박물관이며, 현재 독일 내에서 세계 각지의 민속유물을 대규모로 소장ㆍ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NRICH], 2013). 박물관의 소장품 중에는 회화, 공예, 복식류 등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상당량 소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나장복과 모자가 일습으로 남아있다. 이 유물은 1902년 상인인 Saenger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박물관의 유물카드에는 옷에 대해서는 “Coat for a servant made of dark blue calico.”라고 기록되어 있고, 모자에 대해서는 “Hat for a servant, made of oiled paper covered with calico, at the rear two circular plates of brass.”로 적혀있다. 정확한 직분명은 확인할 수 없으나 ‘servant’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하층계급의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장복(유물번호 OAS 7768)은 9~10새 정도의 아청색 무명으로 지었다. 나장복의 뒷길이는 101.8㎝, 화장 36.2㎝, 품 44.3㎝, 수구 30.8㎝, 고대 19.2㎝로 그다지 크지 않아 작은 체구의 남성이 착용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장복의 형태는 현전하는 전통복식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형태이다. 반소매이며 앞길은 진동과 양쪽 길의 길이가 같아서 마치 조끼와 같이 앞자락이 없는 형태이다. 뒷길은 한자락으로 길게 내려와 있다. <Fig. 12>는 나장복의 앞인데 깃 아래에는 뒷길의 안쪽이 보이는 상태이며 <Fig. 13>은 뒷모양으로 허리부근에 해진 곳을 꿰맨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상당 기간 동안 착용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장복의 소매는 통수로 진동과 수구의 길이가 같으며, 소매와 앞길은 2겹으로 하고 뒷길 하단은 홑으로 되어 있다. 옆선은 시접을 접어서 풀칠하고 그 위에 굵은 무명실로 듬성듬성 홈질하였다. 오른쪽 깃의 모퉁이에 한지를 꼬아서 만든 길이 19.5㎝의 끈이 달려있다. 한지 2가닥을 왼쪽방향으로 꼬아서 만들었는데 직경은 0.2~0.3㎝ 정도이며 앞을 여미는데 사용된 것으로 본다. 왼쪽의 끈은 손실된 상태이다. 앞길 아래에 너비 7.8㎝의 끈을 달았는데 유물 조사 당시 끈이 묶여있어 정확한 길이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대략 63㎝로 측정되었다. 끈은 한쪽 가장자리는 식서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다른 한쪽은 풀로 시접을 붙이고 그 위에 굵은 무명실로 6㎝ 길이로 길게 홈질하여 마무리하였다.


<Fig. 12> 
Front of Najang’g Uniform (NRICH, 2013, p. 188)


<Fig. 13> 
Rear side of Najang’g Uniform (NRICH, 2013, p. 188)

나장복의 무늬는 2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었다. 본 연구에서는 무명실 여러 올을 합쳐 직경이 약 0.4㎝ 정도 되도록 굵게 한 가닥으로 만든 것을 ‘끈a’로, ‘끈a’ 2가닥으로 합사한 것을 ‘끈b’으로 구분하여 명시하고자 한다. 무늬표현 방법은 첫째, 굵은 끈a로 홈질하듯이 바느질하는 방법이며, 소매와 길의 연결부위, 깃과 길의 연결 부위 등 주로 옷감이 겹쳐져서 두꺼운 부분에 이 방법으로 무늬를 나타내었다<Fig. 14, 23>. 둘째, 끈a를 옷의 안에 마치 심(芯)처럼 댄다. 그리고 옷의 겉에서는 심을 댄 부분 위에 끈b를 대고 감침질하여 고정하는 방법이다. 소매와 깃에 이 방법이 사용되었다<Fig. 15, 24>. <Fig. 16>은 나장복의 앞과 뒤를 도식화한 것으로 붉은색 부분이 첫 번째 방법이며 초록색부분이 두 번째 방법으로 무늬를 나타낸 부분이다.


<Fig. 14> 
Single-ply Cord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15> 
Double-ply Cord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16> 
Illustration of Najang’g Uniform (Illustrated by author, 2015)

나장 모자<Fig. 17-18>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추형이나 끝부분은 넓적하고 뚫려있는 형태이다. 두꺼운 유지(油紙) 위에 흑색 삼베로 배접을 하였으며, 모자의 한쪽에는 얇은 금속으로 만든 둥근 원판이 2개 달려있다. 양옆에는 자주색 견사로 꼬아 만든 실끈이 달려있다.


<Fig. 17> 
Front of the Hat (NRICH, 2013, p. 189)


<Fig. 18> 
Rear side of the Hat (NRICH, 2013, p. 189)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나장복은 현재 국내에는 전하여지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옷이다. 그런데 김홍도의 ‘가두매점’<Fig. 3>에 등장하는 나장의 뒷모습과 비교해보면 옷길이와 형태가 비슷하며 무늬의 배치도 유사해 보인다. 앞모습은 표현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나장복의 무늬가 많아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의 나장복은 1800년대 중순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2. 나장복 제작

나장복을 재현하는데 있어 되도록 유물과 비슷한 소재를 선택하고 동일한 방법으로 제작하도록 하였다. 제작 순서는 다음과 같다.

  • ① 소재는 아청색 무명으로 마련하였다. 옷은 매우 단순한 형태여서 뒷길, 뒷길용 안감, 소매, 그리고 끈을 각 2매씩 재단하였다. <Fig. 19>는 재단한 것을 옷의 형태에 맞춰 배치해 본 것이다.
  • ② 뒷길을 봉합하고 소매를 단다<Fig. 20>.
  • ③ 뒷길의 안감을 달고 뒤집어 둔다.
  • ④ 고대부분을 자르고 깃을 단다<Fig. 21>.
  • ⑤ 소매 가장자리, 뒷길 도련과 옆선은 상침을 해둔다.
  • ⑥ 전통방법으로 상사거리에서 무명실을 날고 합사를 한다<Fig. 22>.
  • ⑦ 끈a로 소매와 깃이 길에 달린 부분에 가로 방향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봉합부분을 가리도록 한다<Fig. 23>.
  • ⑧ 끈b가 장식되는 부분의 안쪽에 끈a를 대고 군데군데 감침질을 하는데 이 끈a는 심(芯)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위의 바깥쪽에 끈b를 대고 끈a과 함께 감침질을 하여 고정시킨다<Fig. 24>.
  • ⑨ 앞길 아래에 끈을 달고 가장자리에 끈a로 홈질을 한다. 바느질 간격은 6㎝ 정도 되도록 길게 한다.
  • ⑩ 깃의 모퉁이에 한지 끈을 단다.

<Fig. 25-26>은 복제한 나장복의 앞과 뒤의 상태이다.


<Fig. 19> 
Cutting and Arrange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0> 
Sewing Sleeves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1> 
Attaching Collar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2> 
Making Cord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3> 
Sewing with Cord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4> 
Sewing with Double-ply cord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5> 
Front of Replicated Uniform (Photographed by author, 2015)


<Fig. 26> 
Rear side of Replicated Uniform (Photographed by author, 2015)


Ⅳ. 맺음말

나장은 하급 관리였으나 매우 독특한 형식의 복식을 착용하였으며, 특히 옷의 무늬로 인해 작의(鵲衣) 또는 까치등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시대 각종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는 소속기관에 따라 청색 반비, 흑색 단령, 토황색 단령을 착용하다 1506년에 반비와 흑색 철릭으로 바뀌었다. 흉례 시에는 백의ㆍ백건ㆍ백대를 착용하다 졸곡 후에는 백의ㆍ흑두건ㆍ흑대로 입었으나 1720년부터 졸곡 후에도 백의ㆍ백건ㆍ백대를 착용했다.

의궤의 반차도와 풍속도 등에 나타난 회화자료를 보면 나장복은 안에 입는 받침옷과 겉옷, 그리고 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옷은 주로 청색의 단령이나 철릭과 같은 포(袍)이며 포의 길이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짧아졌다. 겉옷은 반비의 형태이며 옆이 트여있는 세자락의 옷으로 길이가 허리 아래부터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것도 있으나 안에 입는 포가 짧아짐에 따라 반비 역시 짧아졌다. 허리에는 조대(縧帶)나 포대(布帶)로 두르기도 하고, 반비의 앞자락을 뒤로 돌려 묶기도 했다. 또한 허리띠를 두르지 않기도 했다. 나장복의 가장 큰 특징인 흰색 무늬는 굵은 실로 장식을 하였으며 조선후기로 갈수록 점차 선이 늘어났다. 관모는 평소에는 흑건을 쓰는데 알도라고 부르는 둥근 장식이 뒤로 오도록 썼으나 간혹 앞에 부착된 경우도 있다. 큰 행사의 행렬에 동원된 나장은 직분에 따라 의복은 동일하나 관모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흑립에 깃털이나 호수를 달아 화려한 차림새를 하기도 했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나장복은 대한제국 동가도나 의궤에 표현되어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앞은 조끼형태이나 뒷길은 길게 내려와 있으며 굵은 무명실 가닥을 사용하여 2가지 방법으로 무늬를 장식하였다. 관모는 원통형으로 검은 삼베위에 금동으로 만든 알도가 부착되어 있다. 나장복의 도련, 끈 등 가장자리를 바느질하지 않아 재단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등 전반적으로 거친 느낌이 든다. 박물관에서 1902년에 구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유물의 형태적인 특성을 고려해보면 1800년 중순 이후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장은 비록 하층계급의 직분이었으나 그들의 복식은 무늬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구성에 있어 놀라울 정도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해 하층계급의 복식미를 재평가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5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 지원으로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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