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남장사 복장낭의 제작 과정과 제직 특성 고찰
Abstract
In the late Joseon period, a typical style of Buddhist painting was established. These Buddhist paintings were given eternal vitality by hanging a Bokjangnang(ensouling pouch) filled with a spirit container on top of the painting. Many of the relics of Bokjangnang are concentrated in the 18th century. Among them, Namjangsa Temple's Bokjangnang, which is known to have been made in 1783, is an artifact of a noteworthy for its size, conservation condition, composition and decorating. This study investigates the process of the 18th century Bokjangnang production and the meaning of each composition while conducting a survey of the unsealing Bokjangnang of Namjangsa Temple in Sangju. The Bokjangnang, which consists of a red string, a pouch cover, a pouch, and a Goebul, is organically connected to eventually complete the Jeoman ritual. The manufacture process consists of the following steps: production of Bokjangnang`s pouch and its cover → connection of a string → decoration of a triangle ornament called Goebul → recording of Sanskrit scripts and mantras → filling with the spirit container and votive offerings. There are Sanskrit scripts and mantras in the center of Bokjangnang, which symbolizes the Buddhist painting, and the use of pure gold in the records of its commemoration for the ritual. In addition, the textile for Bokjangnang is a contrast between red and blue, and silk satin damask with cloud and treasure pattern were used for Uigwe or royal investiture books cover fabrics of Joseon dynasty. This type of Bokjangnang is disappeared in the 19th century, and although the pouch cover is changed like a lotus flower and long bands hung under the pouch, the basic composition and symbolism of the Bokjangnang are maintained.
Keywords:
Bulbokjang, Dharani pouch, ensouling pouch hung on Buddhist painting, Sanskrit scripts, silk satin damask designed cloud and treasure pattern, triangle ornament키워드:
불복장, 다라니 주머니, 복장낭, 범자 진언, 운보문단, 괴불Ⅰ. 서론
금속이나 목재로 된 후령통을 납입하는 불상 복장(腹藏)과는 달리 불화는 복장낭(腹藏囊)에 후령통과 복장물을 담아 그림 위에 걸어둠으로써 그 자체의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현전하는 불화의 복장낭은 20여건이 전하며 대체로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집중되어 있다.
본 연구의 대상인 상주 남장사 복장낭은 영산회 괘불도에 부속된 것으로,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을 통해 영산회 괘불의 제작연대와 조성의 전말을 알 수 있다. 또한 불화에 거는 복장낭도 보관상자 내부의 묵서 기록을 근거로 하여 ‘건륭 48년(1783)’이라는 정확한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불화는 인조, 숙종대부터 대대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Kim, 2007; Kim, 2008), 상주 남장사를 비롯한 18세기의 불화 복장낭은 이미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 중에서도 남장사 복장낭은 보관상자 및 동경 등 일체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현전하는 유물 중 가장 크다는 점도 주목해볼만 하다.
이에 본고는 제작연대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불화 복장낭으로서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남장사 복장낭(보물 제2116호)의 해포 과정과 유물 조사를 통해 18세기 불화 복장낭의 상징성과 제작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복장낭 직물의 제직 특성을 정리하고, 연대가 명확한 의궤나 어책, 출토 복식의 직물 문양과 비교해봄으로써 남장사 복장낭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본고의 연구 결과를 통해 조선후기 복장낭의 구성 및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후대에 출현하는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연화자수가 있는 복장낭의 조형성과 상징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의미를 두고자 한다.
Ⅱ. 복장낭의 구성과 제작방법
1. 구성
상주 남장사 영산회산도의 복장낭<Fig. 1>은 ‘건륭48년(1783)’의 묵서<Fig. 2>가 있는 나무상자에 보관되어 명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이다. 또한 복장낭과 함께 불화에 매달았던 동경도 전한다. 이처럼 동경이 함께 보관된 사례는 1730년경에 봉안된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불도의 복장낭<Fig. 3>과 상주 남장사 복장낭, 1803년 직지사 복장낭에서만 확인된다.
남장사 복장낭의 구성은 불화를 걸 수 있도록 복장낭 상부 중앙에 나와 있는 40~40.5㎝길이의 홍색 끈목(結纓子)과 홍색과 청색으로 된 낭개(囊蓋)와 낭신(囊身), 복장낭 하단에 달린 18㎝ 길이의 괴불로 구분할 수 있다. 주머니 부분만 가로 66㎝, 세로 67.4㎝로 현전하는 복장낭 중에서 가장 대형이다. 낭개와 낭신 각각의 크기는 홍색 덮개가 가로 64㎝, 세로 35㎝, 청색 주머니는 66㎝, 세로 44,5㎝이다. 홍색 주머니 덮개는 양쪽의 귀가 솟아 세 갈래로 뾰족한 형태로, 1722년에 봉안된 지장사 괘불 복장낭의 덮개<Fig. 4>에는 중앙에 보신(報身) 좌우로 법신(法身)과 화신(化神)의 여래 삼신의 명문이 새겨져, 이를 삼산형(三山形)으로 보았다(Lee, 2003; Oh, 2017). 괴불은 복장낭과 같은 홍색과 청색으로 앞뒤를 하고, 운보문단으로 삼각형을 만들어 솜을 채운 것으로 보이며 아래에는 색실로 술을 달았다. 괴불은 오래된 연뿌리에 서식하는 열매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갖고 있다.
2. 제작과정
복장낭은 내부에 5~6겹 정도를 배접한 두께의 한지를 심지로 넣은 홍색 덮개 및 청색 직물 주머니 두 개를 맞붙여 양쪽 끝과 중앙을 바느질하여 연결하고, 홍색 주머니 상부 중심에 적갈색 끈을 달아 주머니 내부를 관통시킨 형태이다. 복장낭은 홍색과 청색을 기본으로 운보문단을 사용했다.
홍색과 청색 운보문단의 두께는 각각 약 0.156㎜, 0.196㎜이며 한지는 0.24~0.27㎜의 두께로, 5~6겹 배접한 한지를 포함한 전체 두께는 약 2.46㎜정도가 된다. 홍색 주머니 덮개는 양쪽에 귀가 솟은 형태이며, 청색 주머니는 타원형이다. 복장낭의 테두리 안쪽에서 살펴보면 배접한지로 인해 시접이 너무 두꺼워지므로, 배접한지를 봉제선 안쪽까지만 재단하여 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장낭의 둘레에는 지름 약 6~7㎜로 둥글게 말아 감은 한지심을 두르고 색실로 사뜨기 하여 복장낭이 터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바느질하였다. 특히 테두리의 사뜨기에 사용된 색실은 연황색, 녹색, 백색, 홍색이며 구획별로 색실을 교체해가며 사용했다<Fig. 5>.
불화에 복장낭을 매다는 끈목은 원래는 홍색인데 현재는 주황빛으로 퇴색한 상태이며, 홍색 덮개 정중앙의 끈목은 40㎝ 가량의 고리모양이다. 끈목의 한 쪽은 주머니의 앞면에, 다른 한 쪽은 뒷면으로 관통하여 각각 청색 주머니의 앞면과 뒷면의 상부에서 바느질되어 있다. 홍색 주머니 덮개 내부를 관통하여 청색 주머니까지 내려온 끈목의 총 길이는 76㎝ 정도 된다. 청색 주머니 안쪽에는 끈목이 풀리지 않도록 한번 묶여 있다<Fig. 6>.
복장낭의 하단에 달린 삼각형 장식의 괴불<Fig. 7>은 전체 18㎝ 길이이며, 벽사(辟邪)를 의미한다. 재질은 복장낭에 사용된 홍색과 청색의 운보문단을 앞뒤로 배치하여 안에 솜을 넣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지심을 말아 감아 홍색실로 사뜨기한 복장낭의 테두리 위로 달았다<Fig. 7, 8>. 괴불의 아래에는 황색을 중앙으로 하여 주황색, 갈색, 녹색, 홍색의 색실로 좌우로 배치한 술 장식을 하였다. 괴불의 좌우 변은 홍색 실로 사뜨기하여 마감하였다<Fig. 8>. 현전하는 조선후기의 복장낭 중에서 남장사 복장낭의 괴불은 온전한 형태와 색상이 잘 남아있는 편이다. 또한 1713년의 안동 봉정사 아미타회상도의 복장낭부터 1803년의 직지사 복장낭의 괴불까지(Oh, 2017), 복장낭의 괴불은 복장낭의 하단 중앙에 작게 달리다가 19세기를 전후로 하여 낙영(落纓)이 길게 달리면서 색술 장식이 달린 삼각형 모양에서 부채꼴 모양의 분합(分合)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장사 복장낭에는 금박이나 니금으로 쓴 범자와 한자, 묵서 등 3종류의 명문이 있다<Fig. 1>. 이는 범자 진언과 발원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복장낭 제작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상주 남장사 복장낭의 중앙에는 실담체(悉曇体, Siddam)의 범자 ‘om[옴]’(크기(㎝):5.3×6.3), ‘a[아]’(5.5×6.3), ‘hum[훔]’(8.2×5.2), ‘ram[람]’(6.3×4.3)의 네 글자가 금박(金箔) 되어 있다<Fig. 9>. 일부는 니금층 표면이 박락되어 접착제의 검은 색이 드러나지만 모두 순금으로 표현하였다<Fig. 9-11>. 복장낭 제작에 있어 범자 진언의 기록은 복장낭을 마련하여 복장물 납입 준비가 완료되어 본격적인 점안(點眼) 의식 절차로 볼 수 있다. 이외 명문 기록으로 복장낭 뒷면에 니금으로 쓴 ‘願針功德元察’과 주머니 덮개 안쪽의 ‘作針元察’의 묵서가 있다<Fig. 1>. 청색 운보문단 바탕 위에 ‘願針功德元察’의 글자는 범자와 마찬가지로 순금 성분의 금니(金泥)로 적었다<Fig. 11>. 또한 묵서 기록은 덮개 안쪽의 배접한지에 쓴 것이며, 복장낭을 완성한 후에 글씨를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복장낭의 제작에서 중요 구성 중 하나인 범자 ‘om’, ‘a’, ‘hum’, ‘ram’<Fig. 9>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먼저 금강역사가 내는 'a'와 'hum'소리는 범자의 첫 번째 글자와 끝 글자이고 첫소리 'a'와 끝소리 'hum'을 동시에 발음하면 'om'이 된다(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n.d.; Oh, 2017). ‘om’은 범자 중에서 가장 상징성이 높은 글자로(Eom, 2017), ‘om’을 단독으로 하거나<Fig. 4> ‘om, ram’과 같이 두 글자만을 사용하기도 한다. ‘om, ram’은 ≪천수경(千手經)≫의 정법계 진언이다. 이때의 ‘ram’은 ‘정지(正智), 안락(安樂), 적정(寂靜)의 상태로 만든다’라는 동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주의 구성요소 중 불(火大)을 뜻하는 종자(種子)이기도 하다(Ven. Wolho, 2017). ‘hum’ 역시 단독으로 이구청정(離垢淸靜) 또는 원인이 되는 업을 없앤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Lim, 2003), 남장사 복장낭의 ‘om’, ‘a’, ‘hum’, ‘ram’의 네 글자 조합은 모든 번뇌를 태워 청정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진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803년에 제작된 김천 직지사 복장낭의 범자<Fig. 12>는 앞면의 ‘om’자와 뒷면에 ‘ha’자를 주사로 적었는데, ‘om’과 ‘ha’는 부처의 정상과 발을 의미하며 점안과 관련된 준제구성범자(準提九聖梵字)의 시작과 끝 글자로(Lee, 2013) 복장낭에 범자를 기록함으로써 점안의식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남장사 복장낭과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근접한 <Fig. 13>의 영천 축서사의 복장낭에는 붉은 글씨로 한자 ‘北’이 쓰여 있으며, 이것은 ≪조상경(造像經)≫에 나타난 후령통 진심종자의 방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홍색 덮개의 하부와 청색 주머니의 연결되는 입구부분은 약 37㎝ 정도이다. 덮개와 주머니가 맞닿는 부분은 <Fig. 14>과 같이 먹으로 표시를 하였으며, 이 부분을 실제 봉합하였던 바느질 구멍까지 확인된다. 청색 주머니뿐만 아니라 덮개 부분에서도 복장물을 채웠다. 주머니의 덮개 안쪽에는 분책한 상태의 묘법연화경 등 8건을, 청색 주머니 안에는 후령통을 비롯하여 전적과 유리 등을 총 31건에 달하는 복장물을 봉안하였다<Fig. 15>. 이처럼 복장물로 복장낭의 내부를 꽉 채운 다음, 먹으로 미리 표시한 복장낭 중앙에서 덮개와 주머니를 초록색 실로 바느질하여 연결한다. 그리고 나서 복장낭의 좌우 양끝도 초록색 실로 바느질하여 봉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Fig. 16>.
Ⅲ. 직물 제직 특성
1. 복장낭의 운보문단
남장사 복장낭의 홍색 덮개와 청색 주머니는 서로 다른 종류의 운보문단(雲寶紋緞)<Fig. 17>로, 홍색 운보문단은 구름의 꼬리가 오른쪽 위로 상승하는 우향으로, 청색 운보문단은 좌향의 구름무늬이다. 홍색 운보문단은 가로 4㎝, 세로 4.2㎝의 운두(雲頭)를 중심으로 구름 꼬리의 사이마다 쌍으로 된 방승, 서각, 전보, 서보 등 네 종류의 보문을 두었으며, 청색 운보문단은 가로 4㎝, 세로 3㎝의 운두와 함께 마찬가지로 쌍으로 표현된 서보, 옥환, 서각 등 세 가지 보문을 배치하였다. 홍색 운보문단의 문양은 가로 14㎝, 세로 8㎝ 간격을 기준으로 반복되며, 청색 운보문단의 일완전 크기는 가로 13.5㎝, 세로 8.5㎝ 정도이다.
홍색과 청색의 운보문단은 <Fig. 18>와 같이 5매 2뜀 경수자직 바탕에 5매 2뜀 위수자직으로 문양을 직조하였으며 직물의 두께는 각각 약 0.156㎜, 0.196㎜이다. 직물 직조에 사용된 경사와 위사 표면에 광택이 있으며, 매끄럽고 꼬임 거의 없는 견섬유로 보인다. 홍색 운보문단의 밀도는 경사 88올/㎝, 위사 28올/㎝이며, 청색 운보문단의 밀도는 80올/㎝, 위사 28올/㎝이다.
운보문단<Fig. 19-22>은 조선의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하게 발견되는 견직물로, 복식뿐만 아니라 의궤나 어책, 어보 보자기와 같이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특히 시기별로 운보문단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로는 외규장각 의궤 책의, 어책 표장직물 및 조선시대 출토복식유물이 있다. 의궤의 운문단은 팔보문이 시문된 것이 대부분이며 남장사 불복장 주머니 덮개의 홍색 운보문단과 같이 ‘방승, 서각, 전보, 서보’ 등 네 개의 보문만 사용한 의궤는 1702년부터 1739년의 책의에서만 확인된다(Lee, 2019). 영조 23년(1747)부터 의궤 책의(冊衣)조차 운보문단을 사용하지 않았던 반면 1747년 「숙종계비 인원왕후 가상존호 옥책」의 표장으로 운보문단이 확인된다(Park, 2016). 옥책의 표장에는 운보문단을 여전히 사용하였으나 의궤 표지로 운보문단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영조 22년(1746)의 문직물 금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의궤보다 옥책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Lee, 2019). 불복장에 운보문단을 사용한 것도 복장의례를 옥책만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토복식의 경우에도 ‘방승, 서각, 전보, 서보’을 쌍으로 시문하는 운보문은 의원군 이혁(李爀. 1661~1722)의 천금과 지요, 탐릉군 이변(李㝸, 1636~1731)의 창의, 이진숭(李鎭崇, 1702~1756)의 단령과 철릭<Fig. 20>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의원군 이혁의 운보문단은 5매 2뜀의 경수자직 바탕에 5매 위수자직으로 문양을 제직한 것이다. 한편 이진숭의 운보문단 직령은 5매 2뜀의 경수자직 바탕에 5매 3뜀의 위수자직이며, 단령의 운보문단은 8매 3뜀의 경수자 조직 바탕에 8매 3뜀의 위수자 조직으로 제직한 것이다(Gyeonggi Province Museum, 2001; National Folklore Museum, 2010). 또한 ‘방승, 서각, 전보, 서보’로 구성된 운보문은 청연군주(淸衍郡主, 1754~1821)의 속당의<Fig. 21>에서도 나타나므로 18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남장사 복장낭의 청색 운보문단과 유사한 직물로, 1772년의 「영조 가상존호 옥책」의 표장직물과 영조대 어보 보자기에도 ‘방승, 서각, 서보, 옥환’으로 구성된 운보문단<Fig. 19>이 있다. 보문의 구성에 ‘옥환’이 시문된 것은 후대에 제작하여 교체한 것으로 짐작되는 운보문단을 제외하면 인조대부터 영조대까지 집중되어 있다. 또한 장조의 어보 보자기와 19세기 초중반의 홍희준(洪羲俊, 1761~1841) 단령의 운보문단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홍희준의 철릭의 운보문사는 상주 남장사 청색 운보문단의 ‘서각, 옥환, 서보’의 보문의 구성과 형태가 완벽히 일치한다<Fig. 22>.
복장낭은 홍색 주머니 덮개 위로 지름 37.7㎝의 동경을 뒤집어 보관하였으나 청동녹이 이염되지 않았으며, 동경으로 가려진 부분은 비교적 퇴색되지 않아 선명한 색상이 남아 있다. 또한 <Fig. 23>와 같이 홍색의 덮개 안쪽에서도 홍색과 청색의 원래 색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전하는 유물은 대부분 퇴색하여 황색으로 보이지만(Oh, 2017), 복장낭의 기본 배색으로는 홍색과 청색을 사용하였다고 여겨진다. 남장사와 반대로 주머니 덮개를 청색으로 하고 주머니가 홍색으로 된 경우도 있다. 청색의 경우에는 남색(藍色)이거나 녹색(綠色)을 두고 있어, 쪽 염색을 한 것이다. 홍색은 옥책 표장의 운보문단과 퇴색상태가 비슷하여 홍화(紅花)로 염색한 진홍 또는 대홍색(大紅色)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꺼운 단직물을 쪽과 홍화로 물들인 다는 것은 염료만 해도 상당한 양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가장 숙련도가 높은 염색 작업이기도 하다. 분광측색계로 측정한 현재 색도 및 퇴색된 부분의 색도 측정값은 <Table 1>, <Fig. 24>과 같다. 선명한 부분과 퇴색한 부분의 색차이(ΔE)는 홍색과 청색이 각각 17.94, 10.82로, 두 색상 모두 눈에 띄게 퇴색하였으나 청색보다 홍색의 퇴색 정도가 더 심한 편임을 알 수 있으며, 현전하는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끈목 및 매듭술
<Fig. 25-A>, <Table 2>와 같이 복장낭의 퇴색한 홍색 끈목에는 길이 68㎝ 정도의 색실 장식 <Fig. 26>과 오색딸기술이 달린 85㎝ 정도의 홍색 매듭술 4개<Fig. 25-B, 27>가 달려있다. 홍색 끈목과 오색딸기술의 실장식에 사용된 실의 섬유는 표면에 광택이 있고 매끄럽고 꼬임이 거의 없어 견섬유나 인조섬유의 특징이 있어 근대에 추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복장낭의 중앙을 관통하는 홍색 끈목은 단섬유의 특징인 섬유 표면의 잔털과 불균일한 실 굵기가 관찰되는 등 일정하지 않아 면섬유의 특징을 띠고 있다<Fig. 25-A>. 실 굵기는 0.2~0.6㎜ 정도의 S연사(우연사)의 실의 실을 Z꼬임(좌연사)으로 합사하였다. 또한 끈목에 달려 있는 색실 장식은 백색, 갈색, 녹색, 홍색, 황색, 청색을 모아서 땋아 내리다가 각각 늘어뜨린 형태로 특히 백색 실의 2/3 이상이 소실되었으며 다른 색실의 일부도 결실된 상태이다<Fig. 26><Table 2>. 실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한지 띠가 있다. 색실은 S꼬임(우연사)의 실을 다시 Z꼬임(좌연사)로 합사하였으며, 합사된 실의 굵기는 약 0.2~0.4㎜ 정도이다. 이것은 괴불의 술에 사용된 것과 주머니 둘레에 사뜨기용 실과 동일한 실로 판단된다.
한편 오색딸기술이 달린 홍색 매듭술의 끈목은 원래의 홍색 끈목에 고리 형태로 걸어 빠지지 않게 고를 내어 연결되어 있고 하단에는 오색딸기술이 달려있다<Fig. 27><Table 2>. 홍색 끈목은 매끄러운 표면과 광택이 특징이며, Z꼬임(좌연사)로 된 2~3실을 합사하여 굵기 약 1.8㎜의 단단하게 매듭끈으로 만들었다. 홍색 매듭술은 실의 표면이 매끄럽고 인조섬유의 광택이 있어 후대에 추가로 매단 것으로 생각된다. 홍색 매듭술의 끈목 부분에는 홍색 실 일부가 열화되어 내부 흰색 실 심지가 보이는 곳도 확인되며, 오색딸기술의 일부는 술이 엉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한지 띠로 말아 놓은 상태이다.
Ⅳ. 18세기 복장낭 비교 검토
현전하는 1713년 봉정사 아미타회상도 복장낭부터 1803년 김천 직지사 괘불 복장낭까지 연대가 확실한 복장낭<Table 3>은 모두 15건 정도이다(Oh, 2017). 그 중 동경이 포함된 것은 1730년으로 추정되는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보물 제1651호)<Fig. 3>의 복장낭 3점이 있다. 1점의 복장낭 크기는 덮개와 주머니가 각각 가로 30.7㎝, 세로 17.5㎝이며, 가로 27.5㎝, 세로 2l.0㎝이다. 비슷한 시기의 유물로 1725년에 납입된 송광사 오십삼불도의 복장낭<Fig. 29>이 전하며, 이것은 가로 26㎝, 세로 19㎝ 정도로 갑사 복장낭보다 작다. 주머니 덮개를 청색으로 하고 주머니를 홍색으로 한 점은 같다. 남장사 복장낭과 비교해보면, 크기 차이는 있지만 홍색의 끈목이 복장낭 내부까지 관통해 있으며, 주머니 하단에 괴불 한 개가 달려 있는 점이 동일하다.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화문단 뒷면에 한지를 배접한 것이 확인되며 덮개와 주머니를 봉합하는 부분에 별도의 표시를 했다<Fig. 31>.
주머니 덮개는 양 귀가 솟은 세 개의 뿔이 난 모양으로 1768년에 제작된 축서사의 복장낭<Fig. 30>이 전한다. 모두 3점의 복장낭인데 주머니 하단에 짧은 낙영(落纓)을 달고, 그 끝에 종이로 만든 괴불 세 개를 달았다. 나머지 한 점은 길고 짧은 낙영 두 개를 겹쳐 달았다. 복장낭의 덮개와 주머니를 청색과 홍색의 운보문단으로 배색하였으며, 운보 문양은 좌향의 구름 무늬와 함께 방승, 금정, 보주, 산호, 쌍전보, 서각, 서보, 전보의 여덟가지 보문을 두었다. 낙영이 짧은 한 점의 복장낭 중앙에는 범자 대신 붉은 색으로 ‘北’이라고 쓰여있다.
한편 시기를 알 수 없는 <Fig. 32>의 화엄사 소장의 복장낭은 청색 덮개와 홍색 주머니가 분리된 상태로, 배접한 화문단으로 제작한 것이다. 덮개는 가로 34.5㎝, 세로 24.6㎝이며, 주머니는 가로 33.7㎝, 세로 24㎝이다. 복장낭의 덮개와 주머니에는 연꽃과 연잎을 수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복장낭 중앙에는 란차체(Lantsha)로 쓴 ‘om, ram’의 정법계 진언 두 글자가 있다. 또한 연화자수 위에 금색의 범자 표면까지 채색층이 확인되는 것은 후대에 덧칠했기 때문이다. 원래의 연화자수는 덮개와 주머니의 구분 없이 양쪽에 모두 수놓았지만 채색은 덮개 부분은 청색 화문단과 대비되게 만개한 붉은 연꽃과 연잎을, 홍색 주머니는 연꽃을 제외한 녹색의 연잎만을 강조하였다.
18세기 후반 복장낭의 괴불은 남장사나 축서사 복장낭과 같은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한다. 대체로 낙영이 달릴 때는 그 끝에 세 개의 괴불을 장식한다. 이러한 형식은 <Fig. 33-A>과 같이 1735년 불영사 복장낭에서 이미 출현하였으며, 18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된다.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월수다라니 주머니<Fig. 33-B>에서도 연화화생과 더불어 청신녀(淸信女)가 등장하며, 주머니 덮개에 해당하는 연꽃 중앙의 삼족오와 옥토끼를 수놓았다. 이는 복장낭에 새긴 범자 ‘om’자에서 가장 중요한 공점(空點)과 앙월점(仰月點)이 상징하는 해와 달을 자수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상징성을 담고 있는 범자를 해와 달의 도안으로 표현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은 기발한 발상이며, 그만큼 범자 진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정(大正) 8년 음력 10월 15일’의 한글 묵서를 통해 1919년에 제작된 수덕사의 자수 복장낭<Fig. 33-C>에서도 연꽃 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주머니 덮개의 세 갈래로 된 뿔이 연꽃으로 표현되며, 복장낭 중앙에는 연밥 문양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om’, 왼편에 ‘ram’의 정법계 진언을 연금사로 수놓았다. 조선 후기의 다른 복장낭에서 발견되는 청색과 홍색의 배색을 따르지 않았으며, 낙영의 끝 부분에 달리는 부채꼴 모양의 괴불도 단색에서 벗어나 여러 색상을 혼합하여 표현하고 있다.
Ⅴ. 결론
「끈목, 주머니 덮개(囊蓋), 주머니(囊身), 괴불」로 구성되는 복장낭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제작되며, 불화에 복장낭을 매달아 최종적으로 불화 점안을 완성한다. 상주 남장사의 경우, 복장낭의 끈목은 주머니를 관통하여 불화에 생명력 불어 넣어줄 후령통까지 연결된다. 또한 여러 겹의 한지로 배접한 운보문단은 당시 의궤 및 어책의 표장 직물이나 관복 및 왕실 예복으로 사용될 만큼 최고급 직물로, 주머니 덮개와 주머니는 홍색과 청색으로 배치하여 순금의 금박으로 모든 번뇌를 태워 청정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범자 ‘om’, ‘a’, ‘hum’, ‘ram’를 표현하였다. 삼각형의 괴불은 복장낭 중앙 하단에 달리는 것으로, 자체가 벽사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유물의 해포 과정을 통해 살펴 본 복장낭 제작과정의 순서는 「복장낭의 제작→끈목 연결→괴불 장식→범자 진언의 기록→복장물 납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주머니 덮개와 주머니가 만나는 지점을 먹으로 표시하는 가하면 복장낭의 테두리의 색실을 번갈아가며 촘촘하게 마감한 사뜨기의 바느질을 통해 현전하는 복장낭 중에 가장 정교하고 튼튼하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남장사와 같은 18세기의 복장낭 형식은 대체로 1803년 직지사 복장낭까지만 출현하는데, 이미 같은 시기의 불영사 복장낭에서 일부 구성의 조형과 표현 방식의 변화가 간취되기도 하였다. 종전의 세 개의 뿔이 달린 주머니의 덮개가 연화와 같은 꽃모양으로 점차 변화하고, 복장낭 하단의 괴불은 긴 낙영이 추가되면서 낙영 끝에 세 개씩 달리게 되며 모양도 삼각형의 술장식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복장낭에 범자를 적거나 해와 달을 표현함으로써 복장낭의 기본 구성과 상징성은 유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Acknowledgments
이 연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유기질문화재 보존처리 및 조사」연구과제 성과의 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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