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조형성과 발원 기록을 통한 시기감정
Abstract
The pouch for the Sutra embroidered with a sun and moon design in the Seoul Museum of Craft Art was designated as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42 in 1979 because of its delicate embroidery and prayer words. This study focused on the fact that the Sutra pouch is a Bokjangnang(ensouling pouch hung on Buddhist paintings), and examine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symbolism of each constituent element of the pouch. Close examination revealed that the embroidery of the sun and moon, expressed by the three-legged crow and the jade rabbit, replaced the Sanskrit script found on the 18th century Bokjangnang. The lotus embroidery uses the sacred lotus flower motif. Specifically, blue and purple lotus flowers, symbols of wisdom and enlightenment, are embroidered in addition to the red lotus flower. Unprecedented long decorative strings and triangle ornaments appear on the Sutra pouch, and textile patterns and weaving features of the 19th century are evident in the fabrics used for its decorative strings. The most essential basis for identifying the era of the Sutra pouch is the records on the front and back of the pouch. Through comparison with records from Bokjangnang hung on Buddhist paintings and embroidery from similar periods, and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prayer was by a Sanggung(senior court lady) born in 1789, the year of Kiyu, the pouch is estimated to have been made in the mid-19th century.
Keywords:
ensouling pouch hung on Buddhist painting, jade rabbit, praying by court lady, sacred lotus flower, three-legged crow, Upasika키워드:
복장낭, 옥토끼, 상궁발원, 연화화생, 삼족오, 청신녀Ⅰ. 서론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된 국가민속문화재 제42호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원래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許東華, 1926~2018), 박영숙(朴永淑, 1932~) 선생의 수집품으로, 섬세한 자수의 표현과 발원기록이 있어 일찍이 1979년, 당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글자 자수(刺繡)와 묵서를 통해 왕실 상궁의 발원품임을 알 수 있으며 일수(日繡)와 월수(月繡)로 구성된 두개의 주머니의 구성과 섬세한 자수 표현이 조형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물에 대한 이해는 1978년의 지정조사 보고서와 1986년, 2005년에 발간한 『문화재대관』의 내용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며, 유물에 대한 상세 정보나 새로운 견해 등을 담은 심층 연구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는 자수품에 대한 기법적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상 복장물에 비해 불화 복장낭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낮았던 까닭이다.
본고에서는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가 복장낭이라는 점을 전제로 주머니의 각 구성 요소가 갖추고 있는 조형성과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삼족오와 옥토끼로 표현되는 일월과 연화 자수 표현, 직물의 제직 특성과 문양, 발원 기록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19세기의 왕실 궁녀 발원 복장낭을 포함하여 자수방석과 불번의 발원 기록을 비교해 봄으로써 지정문화재인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제작 시기를 확인하고, 시기 감정에 대한 새로운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의 결과는 복장낭이나 자수품의 시기 감정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조선 후기와 말기에 집중되어 현전하는 자수 유물의 이해와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Ⅱ. 조선후기 불화와 불번의 복장낭
1. 불화 복장낭의 구성과 변천
불화는 최종적으로 복장물을 납입한 복장낭을 매다는 불화 점안을 거쳐 완성된다. 경우에 따라 1774년 문수사 지장보살도<Fig. 1>와 같이 그림에 직접 그려 넣기도 하지만 대체로 복장낭을 별도로 제작하여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주 남장사 복장낭<Fig. 2>과 같은 조선 후기의 복장낭은 「끈목, 주머니 덮개(囊蓋), 주머니(囊身), 괴불」로 구성된다(An, 2021). 특히 복장낭의 끈목은 불화와 주머니를 관통하여 불화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후령통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주머니 덮개와 주머니는 홍색과 청색으로 배치하고 모든 번뇌를 태워 청정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om’과 같은 범자 진언을 순금의 금니로 표현하였다. 복장낭 중앙 하단에는 벽사를 의미하는 삼각형의 괴불을 달았다. 참고로 상주 남장사 복장낭은 현전하는 유물 중 가장 대형이며 완성도가 높은 유물로 끈목은 40~40.5㎝, 주머니 크기는 가로 66㎝, 너비 67.5㎝이며 하단의 괴불은 18㎝이다.
다음의 <Table 1>은 현전하는 18~20세기의 불화 복장낭을 정리한 표이다. 1735년 불영사 복장낭(전체 길이 44㎝, 너비 28㎝)부터 긴 낙영(落纓)이 추가되면서, 18세기 중후반의 복장낭은 남장사와 불영사 복장낭과 같은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한다<Fig. 2>. 대체로 낙영이 길게 달릴 때는 한개의 낙영 끝에 세 개의 괴불을 달게 되는데, 이러한 형식은 18세기 중후반부터 19세기말까지 지속된다(Oh, 2017; An, 2021). 또한 19세기에 들어서 보신(報身), 법신(法身), 화신(化神)을 상징하는(Lee, 2003) 세 개의 뿔이 달린 주머니의 덮개는 연화 모양으로 변화하고, 동시에 복장낭 하단의 괴불은 긴 낙영 끝에 세 개씩 달리게 되며 모양도 삼각형의 술장식에서 부채꼴 모양의 분합(分合)으로 대체된다. 남장사의 복장낭과 같이 솜을 채우고 술을 다는 괴불 보다는 직물 배접한 것이 대부분이며, 조선 말기로 갈수록 괴불보다는 분합에 가까워지고, 단색보다는 다양한 색상을 혼합하여 화려하게 장식한다. 또한 복장낭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자연히 복장품의 규모가 줄어들게 되면서 <Fig. 3, 4>와 같이 별도의 낙영을 더해 매듭끈으로 연결하여 불화 상단을 장식하기도 했다.
2. 불번의 복장낭
복장낭은 불화 외에 불번의 번수(幡首) 장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불번은 사찰의 행사에 반드시 사용되는 불구(佛具)이기 때문에 현전하는 불번은 대략 400여점에 달하며(Park, 2020), 퇴색한 상태의 복장낭도 함께 전해진다. 복장낭은 경우에 따라 번수의 중앙에 한 개 또는 두 개 두는 것이 보통이며, 많게는 6개까지 달려있는 경우도 있다.
현전하는 불번 중 가장 이른 것은 1857년 왕실에서 하사품으로 전하는 표충사의 인로왕번이 있으며(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 Research Institute of Buddhist Cultural Heritage [RIBCH], 2010), 비슷한 시기의 유물로 서산대사 인로왕번과 동국대에 소장된 인로왕번 등도 있다<Fig. 5>. 불번의 뒷면에는 발원의 대상과 발원자, 제작의 연도를 알 수 있는 한자 또는 한글의 묵서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현전하는 대부분의 불번은 1900년부터 1930년까지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고종의 후궁인 보현당 귀인 정씨(寶賢堂 貴人 鄭氏, 1882~1943)가 발원한 불번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기년명(記年銘) 불번은 왕실 궁녀 출신의 청신녀(淸信女)가 발원한 것이다(Park, 2020).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집중되어 있는 불번의 복장낭은 1735년 불영사 불화 복장낭의 형태와 같이 주머니의 크기가 작아지고 낙영이 긴 형태이지만, 불화 복장낭에서 유지하고 있었던 삼산형(三山形)의 덮개나 청색과 홍색의 배색, 범자진언과 같은 정형성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복장낭에서 가장 많은 상징성을 담아 금니로 표현했던 범자 진언의 위치에는 <Fig. 6>와 같이 ‘壽’, ‘福’, ‘喜’의 글자와 박쥐, 꽃과 새 문양을 시문하였다. 이는 규방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양이며, 수를 놓거나 다양한 색상의 배접지를 연결하여 표현 기법도 과감하게 변화하였다. 이를 통해 복장낭의 제작이 여성 불자, 즉 청신녀(淸信女)를 통해 이뤄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 말기 불번의 복장낭은 불화 복장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범자 진언이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장낭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다라니 주머니’라고도 불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Ⅲ.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조형성
1. 구성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Fig. 7>는 주머니 부분만 길이 20㎝, 너비 약 13㎝의 크기이며, 매달 수 있도록 달린 끈목은 매듭부분을 포함하여 16㎝로 전체 길이가 약 57㎝ 정도 된다. 이 주머니가 어느 불화의 복장으로 사용되었는지 전해진 것은 없다. 수집 과정에서 고미술상의 정보를 통해 ‘다라니 주머니’로 명명된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에는 불화나 불번의 복장낭을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주머니에 수놓은 발원문을 통해 왕실 상궁 김씨와 류씨가 불사에 참여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주머니의 앞면에는 발원자인 기유생(己酉生) 동갑내기 상궁 김씨와 상궁 류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원문을 한문 자수를 놓고, 뒷면에는 발원자의 부모 및 형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궁서체의 한글 묵서가 남아있다.
자수주머니를 중심으로 위로는 석씨매듭으로 장식하고, 아래로는 각기 세 개의 낙영과 분합이 달려있다. 연두색 무문단 바탕에 연꽃과 연잎을 상하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 피어나는 연꽃에 서 있는 청신녀(淸信女) 상궁 김씨와 상궁 류씨가 해와 달로 연결되는 활짝 핀 연꽃으로 이어진 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상궁 김씨의 다라니주머니에는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있으며, 상궁 류씨의 다라니주머니에는 달을 상징하는 옥토끼를 수놓았다. 자수 기법을 살펴보면, 해와 달은 자릿수, 연꽃잎은 자련수로 표현하였고, 연잎의 중앙과 보살들의 얼굴은 평수로 수를 놓았다. 그밖에 연잎의 테두리, 잎맥이나 줄기는 이음수 기법을 썼으며, 보살의 머리나 도상의 외곽선 부분에는 올수가 사용되었다(CHA, 2005). 현전하는 복장낭 중에서도 다채로운 색상으로 자수 문양이 정교하게 표현되고 불화나 불번에 걸었을 때 두 주머니가 서로 마주보는 좌우 대칭의 유기적 구성을 갖추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수 도안의 구성과 표현뿐만 아니라 18세기의 복장낭에 비해 끈목에도 석씨매듭을 추가하거나 주머니 둘레를 은분(銀粉), 탄소, 아교 등으로 구성된 먹색 장식선과 홍색 견사로 된 끈 등 이중으로 꾸며 조형적으로도 정교하게 만들었다. 다만 현재는 먹색 장식선의 금속 성분이 박락되거나 끊어져 내부 심지로 사용한 흰색 실이 노출된 상태이다. 하나의 낙영에 세 개씩 다는 분합도 여러 색을 조합하여 배접한 것으로, 분합을 달 때에도 작은 원형의 배접지를 추가하고 십자형으로 바느질하여 연결하였다.
2. 자수 세부 문양
화엄사에 소장된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 19조 가사의 중앙에는 <Fig. 8>의 (A)와 같이 방형으로 된 이족오(二足烏)의 일광첩과 옥토끼가 있는 월광첩이 부착되어 있다. 까마귀나 토끼를 해와 달 안에 삽입하지 않고 이단구조를 통해 완전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Kang, 2011). 한편 선암사에 소장된 18세기의 삼보명 자수가사와 쌍용문 직은가사의 일월광첩<Fig. 8>에도 연화자수와 함께 원형의 삼족오와 옥토끼를 수놓았다. 연화가 피어오르는 아래 부분은 관복의 흉배(胸背)에 나타나는 파도문과 유사하게 표현되고 있는 데, 이것을 연꽃이 피어오르는 수미산(須彌山) 주변의 향수해(香水海)로 보기도 한다(Youm, 2011). 특히 9조 가사인 쌍용문 직은 가사의 5조 중앙에 있는 삼족오의 일광첩과 월광첩에는 실담체(悉曇体, Siddam)로 ‘om’과 ‘ram’의 두 글자가 각각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삼족오와 옥토끼가 표현된 일월광첩에 ‘om, ram’의 범자가 더해진 것은 통도사 소장의 연대 미상 4점의 가사에서도 확인되지만 ‘om’자가 해를 상징하거나 ‘ram’자가 달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월광의 표현이 완성이 된 후에 ‘om, ram’의 표현이 추가된 것으로 본다(Youm, 2011). 참고로 ‘om, ram’은 ≪천수경(千手經)≫의 정법계 진언으로, 모든 번뇌를 태워 청정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진언이다(An, 2021).
삼족오와 옥토끼로 표현되는 일월과 범자의 관계는 조선 후기 불화 복장낭에 새긴 범자진언에서 찾을 수 있다. 복장낭의 점안의식과 관련하여 가장 상징성이 높은 글자인 ‘om’자를 복장낭에 적게 된다. 이미 조선 후기에 이르러 범자 진언에 대한 인식도 높았기 때문에, ‘om’자에서 가장 중요한 공점(空點)과 앙월점(仰月點)을 해와 달을 상징하는 삼족오와 옥토끼의 도안으로 표현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An, 2021). 한편 18~19세기로 알려진 가사의 일월광첩에도 범자가 생략되기도 하는데, ‘om’자의 공점과 앙월점을 상징하는 삼족오와 옥토끼의 일월자수는 재치 넘치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복장낭으로서의 형식을 완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에서 범자가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라니 주머니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불화 복장낭에서 반드시 들어 가야할 범자를 해와 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복장낭의 기본 구성과 상징성은 유지하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현전하는 다른 복장낭에 비해 주머니가 길쭉한 형태이며, 유일하게 삼족오와 옥토끼를 수놓은 복장낭이다. 가사의 일월광첩에서 보이는 「수미산-연화-일월」이 상승하는 구도와 비교하여, 수미산을 파격적으로 생략하고 발원자인 청신녀(淸信女)가 연화화생(蓮花化生)의 모티브로 등장한다. 연화화생은 극락정토에서의 화생이 오로지 연화를 통해서만 만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Lee, 2001), 모든 식물 중에 연꽃만이 꽃과 함께 열매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머니에는 연화화생을 중심으로 상-하, 좌-우에 연꽃의 각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 연꽃은 각 부분마다 상징성을 갖추고 있어 연꽃의 강한 생명력은 연밥을 통해, 우주의 삼라만상의 상징은 연잎으로 표현될 수 있다. 연꽃의 줄기는 우주의 축을, 3개의 연뿌리는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상징하는 것으로(Hong, 1993), 구체적인 표현은 생략되었으나 연화화생의 모티브를 통해연꽃의 상징성은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발원자인 본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신녀와 발원기록을 과감하게 주머니 앞면에 표현하고 있으며, ‘尙宮’의 글자를 강조하여 중앙에 배치하는 등 발원자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연화화생이라는 모티브를 사용한 자수품은 일찍이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염원하여 만든 일본의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Fig. 9>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땀 한 땀 연화화생도를 수놓으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유습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자수 유물 중에 연화가 표현된 것은 많지만, 연화화생을 수놓은 유물은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가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다<Fig. 10>.
현전하는 복장낭 중에 연화자수가 확인된 유물은 18세기로 추정되는 화엄사 소장의 복장낭과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된 용도 미상의 ‘아미타불’명 자수품, 인로왕 보살번에 부속된 복장낭과 수덕사 소장의 ‘대정 8년’명의 연화 자수 복장낭이 있다. <Fig. 11>의 (A)는 청색 덮개와 홍색 주머니가 분리된 상태의 화엄사 소장의 복장낭으로, 종이를 배접한 화문단으로 제작한 것이다. 덮개는 가로 33.7㎝, 세로 24㎝이며, 주머니는 가로 34.6㎝, 세로 24.6㎝ 크기의 비교적 큰 편으로 18세기 복장낭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복장낭은 덮개와 주머니를 구분하지 않고 연꽃과 연잎을 수놓았으며, 복장낭 중앙에는 정법계 진언인 란차체(Lantsha)의 ‘om’과 ‘ram’ 두 글자가 있다. 특히 연화 자수 부분은 후대에 안료로 덧칠한 것이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녹색 덮개는 붉은 연꽃과 연잎을 덧칠하고 홍색 주머니는 녹색 연잎만을 강조하여 녹색과 홍색의 대비를 이룬다.
한편 뒷면의 묵서를 통해 대정 8년(1919)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수덕사 연화 자수 복장낭은 <Fig. 11>의 (B)와 같이 세 개의 뿔이 연화로 표현되었고, 조선 후기 불화 복장낭의 덮개와 주머니를 청색과 홍색으로 하는 배색도 따르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도 동일하다. 주머니의 크기는 낙영을 포함한 전체 길이가 48㎝, 너비 22㎝이이다. 화엄사 복장낭에는 연화를 단독으로 하여 수놓았다면, 수덕사 자수 복장낭은 ‘수미산 주변의 향수해에 피어오르는 연화’를 세련되게 표현하였다. 특히 중앙에는 커다란 연꽃과 연잎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커다란 연밥의 좌우에는 연금사로 실담체의 ‘om’과 ‘ram’을 수놓았으나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하였다. 또한 복장낭의 좌우 여백에도 청색과 홍색의 연꽃과 연밥이 한 줄기로 이어져 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제작된 복장낭 중에서 유일하게 범자 진언인 ‘om’과 ‘ram’을 표현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복장낭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연화 자수 표현에 집중하여 다채롭고 섬세하게 연꽃을 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길이 9.5㎝, 폭 5㎝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명의 자수품<Fig. 12>에서도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매우 유사한 구성이 나타난다. 연꽃과 연잎을 상하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각각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과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의 글자를 수놓았다. 위쪽의 연꽃 사이에는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 대신 이족오를 수놓았으며, 옥토끼 대신 하늘과 땅을 향해 있는 이족오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는 구성이다. 참고로 조선 말기에 제작된 수점의 가사에 부착된 일광첩에는 삼족오 대신 이족오를 수놓기도 한다(Youm, 2011).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비교했을 때, 주머니 하단에 달리는 낙영이 없고 매듭끈 장식으로만 되어 있다. 도록에는 가마장식(輦垂飾)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이는 앞서 살펴본 <Fig. 4>와 같이 복장낭이나 낙영을 매듭끈으로 연결하여 불화 상단을 장식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수덕사 연화 복장낭의 좌우 여백에는 각각 자색과 청색 또는 청색과 홍색으로 구성된 연꽃 구성이 있다. 8세기 초반 경 일본 교토 가쥬지[勸修寺]에 전래된 자수석가여래설법도(刺繡釋迦如來說法圖)<Fig. 13>에서는 청색 연화 대좌에 앉아 있는 부처를 비롯하여 좌우의 십대제자(十大弟子)가 들고 있는 정병(淨甁)에 꽂힌 청색이나 백색, 홍색의 연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불교경전인 ≪대일경소(大日經疏)≫의 다섯 색상 연꽃 중 특히 청색의 연꽃을 니로발라화(泥盧鉢羅花, nilotpala)라고 하며(Hong, 1993), 이는 지식, 지혜, 지성을 상징한다(Blavatsky, 2014). 국내 유물 중에서도 시기 차이는 있으나 리움미술관 소장의 14세기 후반 고려시대 자수 아미타여래도<Fig. 14>에서는 부처의 발 아래 청색과 백색의 연꽃이 표현된 것을 찾을 수 있다. 또한 1857년 왕실 하사품으로 알려진 표충사 소장 길이 186㎝, 너비 34.5㎝의 인로왕번<Fig. 15>에도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부문(副紋)으로 사용된 청색과 자색 연꽃이 있다. 표충사 인로왕번의 연화 자수는 중앙에 2단으로 된 홍색 연꽃을 두고 좌우로 자색과 청색의 연꽃을 수놓았으며, 자색 연꽃은 청색 자수실로 테두리를 두르고, 청색 연꽃은 홍색 자수실로 테두리를 두른 것으로 보인다. 청색이나 자색을 띤 연꽃은 그 자체가 희귀하며, 완전히 피지 않은 모습으로 출현하거나 때로는 연밥과 함께 표현된다. 이는 깨달음의 여정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직물 문양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녹색 단직물로 제작되었으며, 주머니 하단의 낙영은 자색 실구름무늬(絲雲紋)와 길상문(吉祥紋)이 있는 단직물로 만들어졌다. 직물 조직 관찰 결과 주머니의 앞·뒷면<Fig. 16-17>은 모두 8매 3뜀의 경수자직이며 앞면의 경위사 밀도는 1㎝당 105올, 45올이며 뒷면은 120올, 45올 정도 된다. 특히 복장낭 앞면은 무문단으로 보이지만, 직물의 문양이 자수에 가려져 세부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무늬가 있는 단직물로 생각된다.
낙영은 경사 4올 단위로 경사 간격을 띄운 변화 평직 바탕에 수자조직으로 문양을 시문한<Fig. 18> 영초단 또는 능라단이다(Sim, 2002). 문양은 <Fig. 19>와 같이 실구름무늬 사이로 피리(玉笛)와 같은 길상문의 부분이 확인된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김해허씨(金海許氏, 1835~1878)의 박쥐가 있는 실구름무늬의 출토 옷감<Fig. 20>과 마고자 겉감으로 사용한 팔길상문이 시문된 실구름무늬의 단직물<Fig. 21>, 그리고 1863년의 「철종상존호옥책(哲宗上尊號玉冊)」의 표장직물<Fig. 22>과 유사하다. 김해허씨의 박쥐운문단의 바닥은 평직이며 무늬는 8매 5뜀의 경수자직이고(Sim, 2002), 팔길상문 운문단도 8매 수자직단이다(NRICH, 2006). 참고로 김해허씨는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金炳國, 1825~1904)의 부실(副室)로, 김해허씨 출토 복식 중에는 특이하게 마고자가 4벌이나 된다(Onyang Folk Museum, 1989). 마고자는 가장 사치스러운 직물로 만들며(Hong, 2003), 철종의 상존호옥책의 표장직물로도 사용될 만큼 8매 수자직으로 된 실구름무늬의 단직물(絲雲紋緞)은 19세기 대 중후반의 고급 옷감일 가능성이 높다.
Ⅳ. 발원 기록
1. 왕실 궁녀 발원 복장낭의 한글 묵서
상궁 발원 불화는 현재 총 136점 정도가 전하며, 18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제작되기 시작하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수량이 급증하였다(Lee, 2009). 19세기 후반은 대내적으로는 세도정치의 부패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세력이 조선에 노골적으로 위협하던 시기이다. 불안한 심리를 의탁하고자 불교를 신앙하기도 하였지만, 이 무렵 왕실과 궁녀의 후원이 늘어난 배경은 흥선대원군(1820~1898)의 사상적 관심과 정치적 행보와도 관련이 있다(J. Lee, 2015). 조선시대를 통 털어 사찰의 주요한 후원자였던 대비와 왕비, 상궁과 같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왕실 여성들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위해 흥선대원군은 불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불교 후원을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여러 사찰의 중창과 사액(賜額), 60여점의 불화가 조성되었다(J. Lee, 2015; Yoo, 2015).
상궁 발원의 기록이 있는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역시 조선 말기 왕실의 불교 후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렇게 상궁이나 궁녀의 발원 기록이 있는 불화 복장낭은 <Fig. 23-24> 및 <Table 2>와 같이 8건 정도가 남아 있다. 상궁은 영의정이라 하더라도 눈치를 볼 정도로(Kim, 1964), 왕실 내 영향력이 있는 직급이었다. 또한 지밀상궁을 제외하고 정5품의 상궁이 되기까지 최소 35년 정도가 걸린다(Kim, 2011). 그렇기 때문에 복장낭 뒷면의 한글 묵서로 적은 발원 기록을 살펴보면, 청신녀라 하더라도 상궁인 경우에는 첫머리에 ‘상궁’을 강조하여 적음으로써 상궁과 일반궁녀를 구분하고 있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이외에 불화 화기(畫記)를 통해 제작 연대를 명확하게 해주는 발원기록이 남아있는 복장낭은 1867년의 봉인사 복장낭, 1868년 보덕사 사성전 후불탱화의 복장낭, 1868년 청룡사 신중도의 복장낭, 수덕사 연화자수 복장낭이 있다. 다음의 <Table 2>는 복장낭의 발원기록을 바탕으로 발원자인 상궁 또는 궁녀와 발원대상인부모, 형제의 생년을 기준으로 하여 복장낭의 제작시기를 정리한 것이다.
발원의 주요 내용은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본인과 돌아가시거나 살아계신 부모, 경우에 따라 먼저 사망한 남자 형제의 안녕과 극락왕생을 바라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발원자는 대부분 동갑이거나 20세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다. 또한 2~3명이 발원한 경우가 많았는데 예외적으로 봉인사 복장낭<Fig. 23>만 갑자생 상궁 김씨가 단독으로 불사에 참여했다. 또한 특이하게도 보덕사 복장낭(1)<Fig. 24>은 신유생(1801) 상궁 추씨와 아직 상궁에 이르지 못한 29세 정자생(1840)의 궁녀 이씨가 함께 발원한 것이다. 68세의 상궁 추씨의 발원문 맨 뒤에는 ‘일체 동생동출 극락원’이라 하여, 상궁 추씨 본인과 먼저 죽은 남동생 추흥조, 그리고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경주이씨를 위해 발원한 것으로 추측되는 문구가 있다. 또한 보덕사 복장낭(2)는 정자생의 이씨가 40대 초반에 못 미쳐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발원한 것으로, 다른 복장낭의 발원 기록에 비해 구체적인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섬세하게 수놓은 수덕사의 연화자수 복장낭의 뒷면<Fig. 25>에는 ‘대정팔년음시월십오일’이라고 쓰여 있어 복장낭이 대정(大正) 8년인 1919년에 제작되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다만 묵서를 쓴 운보문단의 문양이 ‘쌍서각, 방승, 쌍전보, 쌍옥환, 금정, 여의두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쌍옥환이 시문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9세기대의 운보문단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시에 분합장식에는 색동단이 확인되기도 하여 이전 시기의 운보문단과 20세기 초의 직물을 혼용하여 복장낭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복장낭은 불번에도 매달기 때문에 불번의 발원 기록도 참고할 수 있다. 불화는 하단부의 화기에, 불화 복장낭은 복장낭의 뒷면이나 안쪽에 발원 기록이 있다. 그런데 불번의 경우 복장낭에는 기록을 생략하고 불번의 뒷면에 한자나 한글로 발원문을 적는다. 현전하는 불번의 발원내용을 살펴보면 유독 상궁 발원이 드물어, 불번은 상궁에 비해 지위가 낮았던 궁녀들이 선호하던 불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Fig. 26>의 서울공예박물관의 인로왕 보살번을 살펴보면,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연화자수를 수놓은 복장낭 한 쌍을 포함하여 복장낭이 무려 6개나 부착되어 있다. 뒷면에는 ‘망청신녀 무자생(1828) 여흥민씨 덕원행 왕생극락발원대지원’이라고 적혀있다. 발원의 대상인 청신녀 민씨는 무자생으로 상궁이 되기 전에 사망하여, 다른 청신녀 궁녀들이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는 경오년(1930)에 제작한 통도사의 불번에서도 확인된다. <Table 3>에서 알 수 있듯이, 복장낭의 발원자가 동갑이거나 20년의 나이 차가 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서울 청룡사의 신중도(神衆圖) 불사에도 무자생 궁녀가 참여하였는데(S. Lee, 2015), 신중도가 1868년에 완성되었다는 점을 참작하면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인로왕보살번의 연화자수 복장낭의 제작연도도 역시 대략 19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인로왕보살번의 연화자수 복장낭과 유사한 자수기법을 보이는 것으로 <Fig. 27>의 상궁명 연화봉황문방석이 있다. 방석의 중앙에는 ‘연잎-홍색과 청색 연꽃-연밥이 드러나는 만개한 연꽃’을 연결하고, 이를 중심으로 봉황을 수놓은 방석이다. 연꽃의 표현에 있어 백색과 홍색의 대비가 큰 것이 특징이다. 하단에는 임인생(1842) 상궁 이씨의 한글 발원문을 금실(金絲)로 수놓았다. 유독 ‘청신녀’라고만 기록되어 있는 불번의 발원 기록과 비교해 보면, 불화 복장낭을 제외하고 상궁발원품은 드문 편이다. 사실 지밀 다음으로 상대적으로 왕실 내 지위가 높았던(Kim, 2011) 수방(繡房)의 궁녀만 해도 1907년 상의사(尙衣司)가 폐지된 이후로 출가하거나 궐 밖으로 나와 어렵게 생활했기 때문에(Hwang, 2013),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인로왕번과 상궁명 자수방석은 이르면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의 유물로 생각된다<Table 3>.
2.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발원 기록 분석
<Fig. 28>와 같이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앞면에는 발원자인 상궁 본인의 생년과 성씨, 불명(佛名), 발원의 내용을 한자로 수놓아 발원 기록을 적었다. 상궁 김씨의 불명은 허공화(虛空華)이며, 상궁 류씨의 불명은 묘진화(妙眞華)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상궁 김씨가 발원한 일수 다라니 주머니의 뒷면<Fig. 29>에는 ‘망건명(돌아가신 아버지) 갑술생 경주김씨’ 옆에 ‘곤명(살아계신 어머니) 갑술생 곽씨’라고 적고, 선으로 묶어 표시를 하였다. 상궁 류씨의 월수 다라니 주머니 뒷면에는 ‘건명(살아계신 아버지) 병자생 류씨’, ‘망곤명(돌아가신 어머니) 을유생 제주고씨’, 그리고 ‘망건명 임자생 문화류씨’ 등 3명이 적혀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경우 선으로 묶어 표시함으로써 임자생 망건명이 먼저 죽은 남동생임을 알 수 있다. 발원의 기록은 「남녀의 구분-생년-본관 및 성(姓)」의 순서가 기본이지만 살아계신 부모님의 경우 본관을 생략하였으며, 생사와 상관없이 부-모-형제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Table 4>.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시기 감정에 대한 가장 핵심은 발원자인 상궁 김씨와 류씨가 기유생(己酉生)이라는 점이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와 같이 긴 낙영과 분합의 구성을 갖춘 복장낭이 대체로 19세기 이후에 등장하므로 기유년은 1729년, 1789년이거나 1849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연꽃 자수를 살펴보면, 홍색 연꽃을 기본으로 특이하게도 자색과 청색 연꽃을 부문(副紋)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1857년의 표충사 인로왕 보살번의 연꽃 자수와 유사하다. 또한 5매와 8매 무문단을 주머니의 앞면과 뒷면에 사용하였으며, 결정적으로 19세기 중후반에 유행했던 실구름 무늬의 단직물(絲雲紋緞)도 사용했다. 분합에서도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의 분합의 장식기법과 차이가 난다. 이와 함게 지밀상궁을 제외하고 정5품의 상궁이 되기까지 대략 35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을(Kim, 2011) 종합해 볼 때,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발원기록의 기유년은 1789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고 생각되며,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Table 5>.
Ⅴ. 결론
이상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가 왕실 상궁의 발원품이자, 복장낭으로서 용도와 자수품으로서 조형적 특징, 기록물로서 발원의 세부 내용을 살펴 보았다. 복장낭은 불사(佛事)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한 점안(點眼)의 목적이 있던 것으로,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역시 그 구성과 자수 문양에서 복장낭의 기능성과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본다.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가 좌우 대칭의 일수(日繡)와 월수(月繡) 주머니 두 개가 한 쌍으로 구성되고 18세기 복장낭에서 나타나는 범자 진언이 삼족오와 옥토끼로 대체된 점이 이러한 과정을 뒷받침한다. 삼족오와 옥토끼는 조선 후기 가사(袈裟)의 일월광첩에서도 보이는데, ‘om’자와 ‘ram'와 같은 범자도 동시에 표현된다. 그러나 일월수 다라니주머니의 삼족오와 옥토끼 도안은 정법계 진언인 ‘om’자와 ‘ram'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복장낭에서 가장 상징성이 높은 글자인 ’om'자의 공점과 앙월점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연화자수는 일찍이 천수국다라니수장과 같은 불교자수품에서도 발견되는 연화화생의 모티브를 적용하여, 발원자 상궁인 청신녀(淸信女)를 주머니의 중앙에 과감하게 수놓았다. 1857년 표충사 인로왕 불번의 자수에서도 발견되는 지혜와 깨달음의 상징인 청색이나 자색의 연꽃을 홍색 연꽃의 부문(副紋)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복장낭으로서 기능성과 상징성을 갖추면서도 기발한 자수 도안과 유기적 구성, 정교한 자수 표현을 갖추어 조형성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또한 19세기의 복장낭은 낙영(絡纓)이 길어지고 분합(分合)의 장식성이 강한 것도 특징인데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도 석씨매듭을 끈목으로 하고 낙영에는 실구름 무늬[絲雲紋]의 단직물을 사용하였다. 이와 유사한 문양은 1863년의 「철종상존호옥책」의 표장 직물이나 경기도 화성 출토의 김해허씨(1835~ 1878)의 직물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의 시기 감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발원자인 왕실 상궁과 가족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원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사회적 정세에도 불구하고 18세기 후반부터 왕실 상궁을 중심으로 한 불사가 활발해져, 발원 묵서가 있는 불화복장낭이나 방석과 같은 불교 자수품이 전해지고 있다. 자수품 뒷면의 발원 기록에 대한 비교 분석 및 제작 기법의 종합 고찰을 통해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는 1789년으로 편년되는 기유생 상궁이 발원한 것으로서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감정할 수 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유기질문화재 보존처리 및 조사」연구과제에 의해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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