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TV 사극에 나타난 여자 가례복식에 관한 연구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features of queen's Garye costume depicted in 14 historical dramas since 2000 by analyzing 83 images of this ceremonial costume. First, scenes related to Chaekbieui and Chinyoungeui, in which queens wore Jeokui, formed the largest group of images. It is more colorful than costumes worn in other scenes and usually signifies a key moment in the plot when the queen’s status changes dramatically. Second, some of the costumes were not based on historical records.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reddish Daesam and Joochwi-chiljeokkwan were borrowed from the Ming Dynasty in China. However, in historical dramas, a deep blue or red Jeokui was featured instead of Daesam. Additionally, embellishments, assumed to be Bongkwan , were mostly worn; in some dramas, a Daesu was worn instead. To depict queens' costumes in Garye scenes accurately, we suggest the following. It is difficult to visualize the Daesa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ccurately. The Daesam was in the form of a sheer robe with large sleeves, a collar, and symmetrical lapels, worn with a Jeondanhoojang. In the middle of Garye scenes, the queens wore red Jeokui and a Daesu. In that era, there was no Jeokui, but red Daesam and dark blue Baeja were wor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queens wore Daesu and deep red Jeokui. Since historical dramas play a role in the accurate depiction of cultures, they should avoid confusing viewers by misrepresenting of period costumes.
Keywords:
court costume, Garye costume, historical drama costume, Jeokui, women's ceremonial costume키워드:
궁중복식, 가례복식, 사극 드라마 의상, 적의, 여자 의례용 복식Ⅰ. 서론
20세기 후반, TV가 보편화되면서 조선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는 끊임없이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다양한 내용의 드라마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퓨전사극과 같은 여러 가지 성격의 사극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이와같이 다양한 사극이 제작되면서, 내용, 인물과 의상 등의 고증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최근에는 역사적 사실을 크게 왜곡한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 폐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근에 제작되는 사극들은 제작사들 자체로 고증에 왜곡은 없는지를 살피는 작업이 진행되었다(Ryu, 2021). 또한, 철저한 고증을 통해 구현된 세트, 의상, 소품 그리고 색 재현 작업까지 정통 사극의 매력적 미장센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여, 그 결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거둔 드라마도 있었다(Jeon, 2021). 이처럼 사극은 국ㆍ내외에서 오락적, 교육적, 계도적 기능이 있으며 문화를 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에서의 의상은 매체 특성에 따른 제작환경 사이에서 절충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고증을 위한 탄탄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사극 의상과 고증에 관련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대표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명성황후가 등장하는 TV 사극에 나타난 의상을 고찰하고 그에 따른 변화양상과 고증의 정도를 분석한 Han(2004)의 연구와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영화, 뮤지컬에 등장한 명성황후의 복식을 무대의상으로서의 측면에서 고찰한 Cho(2010)의 연구가 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사극영화에 나타난 왕실 여성의상을 분석한 Kim(2016)의 연구가 있다. 이들은 다소 넓은 범위에서의 인물의 복식고증과 영화의 상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더욱이 사극 드라마 콘텐츠 대부분의 배경은 조선시대와 궁중이며 그 때문에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줄 수 있는 소재가 ‘가례(嘉禮)’일 것이다. 이처럼 사극 콘텐츠에서 가례와 같은 특정 의례 복식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가례복식에 대한 이해와 대중매체 콘텐츠에 연출된 의상을 조선시대의 사료 및 기록과 비교 분석하는데 의의를 두고, 복식고증의 의미를 재인식하여 사극 의상 연출에 도움이 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자 한다. 연구 자료와 방법으로는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궁중발기(宮中發記)』, 『한중록(恨中錄)』, 『상방정례(尙方定例)』,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書例)』, 『뎡미가례시일긔(丁未嘉禮時日記)』, 『대명회전(大明會典)』 등의 사료를 살펴보았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TV사극 54편 중, 왕비의 가례가 등장한 14편을 선별하였으며, 극 중 가례와 관련된 장면 이미지를 수집하여 사료와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본 연구의 대상이 된 자료들은 전통사극 57%, 퓨전사극 43%로 나눠진다. 이와 같은 사극의 성격은 극의 전체적인 서사에 영향을 주지만, ‘가례’라는 특정한 장면의 복식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구분하지 않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였다.
한편 드라마의 시기별, 절차별 이미지 개수는 다음 <Table 1>과 같다. 비교 분석을 위한 이미지는 각각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 방송 동영상 캡쳐 등의 방법으로 총 83장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Ⅱ. 가례절차 및 복식의 종류
조선의 국혼(國婚)은 가례와 길례(吉禮)로 구분되는데, 가례는 대를 이을 수 있는 세자와 세손과 같은 왕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혼례를 말하며, 길례는 공주, 옹주, 군주 등과 같은 일반왕의 자손들의 결혼을 의미한다. 본 장에서는 왕비를 맞이하는 가례의 절차와 절차별 해당 복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정된 가례의식 절차는 ‘육례(六禮)’로 진행된다. 육례는 납채의(納采儀), 납징의(納徵儀), 고기의(告期儀), 책비의(冊妃儀), 친영의(親迎儀), 동뢰의(同牢儀)로 구성된다. 그러나 국혼의 시작은 민간의 혼사부터 금한 후에 전국에서 처자 단자를 걷어 들이기 위한 전제절차인 금혼령으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치러지는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과 삼간택을 치른 후에 최종적으로 선발된 자가 별궁으로 가는 별궁행차까지의 과정을 ‘예비의례’로 보고, 납채의에서 동뢰의까지 여섯가지 의례 즉, 육례를 ‘본의례’라 하며, 대왕대비와 왕대비에게 인사를 드리는 조현례 및 묘현례까지를 ‘후속의례’로 본다(Lee, 2017).
1. 예비의례
본의례를 살펴보기 앞서 예비의례인 삼간택 절차와 복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간택시 20명에서 30명 미만으로 보통 초간에서 5명에서 7명을 뽑으며, 삼간택까지는 3명이 남는 것이 보통이었다(Kim, 2004). 사대부가의 딸들은 연령과 단자를 그리고 부(父)의 이름을 써서 궁중에 들어가서 시험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초간택이다. 간택처자는 대궐문 앞에 다다르면 궁 문턱을 넘을 때 미리 놓여진 솥뚜껑의 꼭지를 밟고 넘어가야 했다(Kim, 1989). 간택시의 복식은 시기에 따라 색채의 차이가 확인되지만, 일반적으로 초간택에 임하는 처녀는 견마기나 당의 중에서 준비된 것을 입으며 홍색치마를 입고 당혜를 신었다. 조선왕실 최후의 간택 당사자였던 순종의 계비 윤황후는 간택날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다고 했던 것(Kim, 1977)으로 보아 대한제국 이후에는 차림새가 보다 간편해져서 반가 처녀의 평상복으로 임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새앙머리에 다홍색이나 검정색 사나 단으로 만들어진 도투락댕기를 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귀한 신분의 처녀는 머리를 땋고 그 끝에 금화를 그린 두 갈래 댕기를 다는데, 이를 도투락댕기라고 기록하고 있다(Yee, 1959). 도투락댕기는 보통 댕기보다 넓고 길며 다홍색이나 검정색 사나 단으로 만들었으며 금박을 찍고 윗부분에는 석웅황, 옥판을 달고, 아랫부분에는 석웅황, 밀화, 칠보 등을 장식했다. 이때 족두리를 써서 머리모양을 완성하였다(Kim, 2017). 또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에 따르면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금했다. 때문에 고종의 가례시에는 대왕대비가 더욱 구체적으로 명령을 내려서 의복에 명주나 모시 이상을 사용치 말고 화장은 분만 바르며 신부화장과 같은 성적(成赤)은 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Kim, 2017).
재간택은 초간택을 한지 2주 정도 후에 치러졌고, 합격자들에겐 특정 후보자를 제외하고는 일률적으로 하사된 물목이 있었다. 웃옷 1벌, 저고리 7벌, 치마 1벌, 안감 용도인 굵은 명주 1필, 고운모시 1필이 하사되었다(Kim, 2004). 재간택에서는 초간택에 임할 때와 동일한 차림을 했다. 머리 모양은 초간택에서와 동일하게 처녀의 예장인 생머리에 도투락댕기를 늘였다(Kim, 2017).
삼간택은 재간택 후 15~20일 만에 치러지는데, 재간택에서 내정된 처자에 대하여 확인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삼간택에 임하는 처자는 보랏빛 속저고리, 연노랑색 저고리, 초록빛당의, 진홍치마를 입었다(Kim, 2017). 삼간택에서 최종적으로 간택이 되면 별궁으로 향하는데 이때 복식은 완전한 대례복 차림이라 할 수 있다. 최종 낙점된 처자는 칠보족두리, 가체, 초록직금원삼, 자적스란웃치마, 남스란웃치마를 입고 진주낭자를 하고, 가래머리를 했다(Kim, 2017).
2. 본의례
본의례의 시작으로 왕실에서 혼인의 뜻을 전하는 의식인 납채의는 간택된 왕비 집에서 청혼하러 사자(使者)를 보내는 의식인 납채의와 왕비 집에서 청혼을 받아들이는 수납채의(受納采儀)로 진행된다. 사실상 장차 국모가 될 가문의 왕비로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절차였으며, 왕은 대궐 정전에 나가 정사와 부사에게 교명문과 이 가례가 평생 변치 않는다는 의미의 기러기를 주어 왕비가 될 국구(國舅)의 가문에 전하였다(Yoo, 1992).
납징의는 혼인이 이루어진 징표로 사자를 통하여 왕비의 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징의와 왕비의 집에서 이 예물을 받는 수납징의(受納徵儀)로 진행된다. 교명문과 함께 비단 예물을 보내는 의식으로 전체적인 절차는 납채와 같다. 대궐에서 길일을 택해 가례일로 정하여, 이것을 왕비 집에 일러주는 고기의와 왕비 집에서 이를 받는 수고기의(受告期儀)가 있다(Yoo, 1992). 왕실에서는 길일을 택하여 가례일을 정한 후 왕비 집에 알렸다. 육례 중 납채의, 납징의, 고기의까지의 절차에서는 왕비의 복식 기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절차로는 왕비로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의와 왕비가 책봉받는 비수책의(妃受冊儀)가 진행되는데, 책비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교명(敎命), 옥책(玉冊), 명복(命服), 금보(金寶)를 전달하는 것이었다(Lee, 2017). 왕비가 왕의 책봉문을 받을 때 왕비는 적의를 갖추고 수식을 얹었다(Yoo, 1992).
친영의는 왕이 왕비의 집에 가서 비를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록 되어있는 명사봉영(命使奉迎)은 왕의 가례시에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국조오례의』에는 친영으로 되어 있지 않고 명사봉영으로 되어있으나, 『가례도감의궤』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도 친영으로 되어있으므로 이를 친영의라 한다. 『국조오례의』가 제정된 이후 20건의 가례도감의궤에 명사봉영은 1건도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20여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 것으로 추측된다(Yoo, 1992). 친영의에서도 왕비는 적의를 갖추고 수식을 얹었다(Kim, 2017).
왕과 왕비가 서로 절한 뒤에 술과 찬을 나누는 의식인 동뢰의에서 왕비는 적의를 입고 수식을 얹으며 의례를 마친 후 왕비는 적의를 벗는다.1) 이후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예로써 대왕대비와 대비께 조현례를 행하였다. 왕비는 적의에 수식을 갖추고 인사를 올렸다.
왕실에서 최고의 여성만 입을 수 있는 적의는 예복과 법복으로 구별되었고, 가례 등 대례에서 착용하는 적의를 법복이라 하였다. 적의를 착용하는 사례는 왕이 법복을 착용하는 사례에 준하며 예복용 적의는 왕의 상복 착용사례와 동일하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지만, 적의는 구체적인 용례 규정이 존재했다. 조선왕실의 적의의 제도에는 두 차례의 변화가 있었으며 대한제국에 이르러 또 한번의 변화가 나타났다.
『조선왕조실록』의 왕비물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선전기 왕비의 관복은 대삼의 형태를 띄었는데, 대삼의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된 유물이 없어 2002년 중국 상서성에서 발굴된 대삼에서 미루어 그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Fig 3>. 이 대삼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깃 부분이 마주보는 대금으로 소매가 넓은 전단후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고대와 깃 부분에 동정이 달려있다. 진동까지 옆선이 터져 있으며 홑옷이고, 심청색으로 추정되는 하피와 함께 발굴되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대명회전』의 왕비관복제에 기초하여 적의제를 갖추었다. 조선 후기 이후에 큰 변화가 보이는 때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위에 오르면서 황제체제로 개편된 시점이다. 이 시기의 적의는 순종의 황후인 순종효황후의 12등 심청적의를 통해 그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Lee, 2004).
또한 수식의 경우, 홍무3년 적의에는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착용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7마리 꿩과 2마리 봉이 있고 대소주화가 각각 9수이며 좌우에 장식한 칠휘이봉관(七絮二鳳冠)이 사여되었다(Park, 2011). 적관은 1394년 태조 3년 선덕왕후에게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이 최초로 사여되었다. <Fig. 1>은 중국에 유물로 남아있는 명대의 금봉관이며, <Fig. 2>는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촬영을 위해 재현한 칠적관인데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수식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는 고려 말의 적관보다 이봉이 탈락하여 친왕비제에서 한 단계 하락하였다. 이는 인조 17년인 1639년까지 사여되었는데 17세기 전반에 이르러 왕실에서 주취칠적관의 사용은 실질적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으며 이후 대수로 이어지는 것을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까지의 적의와 대한제국의 적의를 비교해보면, 조선 후기까지의 적의는 대홍색으로 제작된 적의였다. 대한제국의 순종효황후의 적의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로는 각각 대홍(大紅)과 심청(深靑)이라는 다른 색상이라는 점이었으며, 적문(翟紋)의 개수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폐슬의 문양에서도 대한제국 이전 적의제에서는 적문2개, 소륜화문(小輪花紋) 3개가 있었지만 대한제국 황후의 유물에서 적문 3개, 소륜화문 4개인 것으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한 제국 이전에는 적말ㆍ적석을 착용한데에 반해 대한제국의 유물로 확인한 황후의 적의 차림에서는 청말ㆍ청석을 착용하고 있다.
Ⅲ. TV 사극 드라마에 나타난 가례 복식의 특징
가례는 왕실에서 가례도감을 따로 설치할 정도의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사극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채롭고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의상을 통해서 가례의 무게감을 엿볼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왕비라는 등장인물에게 기중(綦重)한 가례 장면에 나타난 의상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특징 및 현황을 살펴보고 어떠한 요인으로 인하여 비중에 차이가 있었는지 고찰해보았다. 또한 사극에서 중점적으로 연출된 절차들의 복식을 바탕으로 사료에 기록된 복식과 비교하며 착용상을 분석해보았다.
1. 가례 절차별 빈도 분석
수집 분석한 83점의 이미지를 통해 2000년대 이후 TV 사극에서의 가례 절차별 비중을 살펴보았다. 친영의(71), 간택(6), 별궁행(2), 책비의(2), 동뢰의(2)로 나타났으며, 왕비가 법복을 착용하고 등장하는 친영의 장면이 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것은 다른 장면에 비해 복식 자체가 화려하고, 왕비의 신분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등의 플롯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또한 친영은 육례 중 왕과 왕비가 대면하는 첫 절차로, 극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왕과 왕비의 감정의 흐름을 동시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Table 2>와 같이 왕비별 가례 장면이 총 20회 등장하는데 시기별로 살펴보면 조선 전기(6), 중기(4), 후기(10)로,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큰 비중(50%)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국내외의 격변이 심하게 일어났던 조선 후기에는 정치적인 사건이 많았는데, 그 이야기의 중심에 왕비가 있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특히 숙종대와 고종대에 왕비와 계비를 중심으로 많은 정치적인 사건들이 일어나, 이를 사극의 극적인 요소로서 활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차례 무게감 있게 실린 대표적인 인물로 장희빈과 명성황후가 있다. 이들을 사극 콘텐츠로 올릴 수 있던 배경을 살펴보면, 장희빈을 중심으로 큰 전개 요소로 작용하는 인물들은 숙종, 인현왕후 민씨, 장현, 장희재, 명성왕후 김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인물들과 함께 인현왕후 민씨와 대왕대비 장렬왕후 조씨의 입김으로 입궁하게 된 장희빈의 이야기가 정치적으로나 극적으로 소재가 풍부하여 지금까지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있다(Kim, Jeon, & Ha, 2015). 또한 지난 100여 년간 명성황후는 관용적으로 옛 노인들이 며느리를 흉볼 때 비유할 정도로 악한 존재라 여겨져 왔고, ‘외세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국모’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그러한 명성황후가 다양한 콘텐츠에서 ‘당대 최고의 정치가’, ‘애국혼의 화신’으로 그려지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2001~2002년에 방영한 <명성황후(Queen Myungsung)> 드라마 이전에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 뮤지컬 <명성황후> 등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 이후로 명성황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재시도 되어 왔으며 그러한 움직임 안에서 ‘명성황후 신드롬’을 일으키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Han, Han, & Yoo, 2005). 이처럼 조선 후기의 비교적 극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TV 사극의 빈도 높은 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왕비의 가례장면 비중 역시 정비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2. 가례 절차에 따른 의상 표현
다음으로 본의례에 앞서 예비의례인 별궁행차를 포함한 간택복식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드라마 <인수대비(Queen Insu)>와 <비밀의 문(Secret Door)>에서 삼간택 장면과 별궁행차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인수대비>에서는 단종 정순왕후의 삼간택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처자들이 흰색 거들지를 단 연두색 당의에 홍색 치마를 착용하였으며, <비밀의 문>에서는 처자들이 초록빛 당의와 홍치마를 입었다.
『한중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삼간택에 임한 처자는 보랏빛 속저고리, 연노랑색 저고리, 초록빛 당의, 진홍치마를 차려입었다(Kim, 2017). 『뎡미가례시일긔』에도 초록당의, 송화색저고리, 분홍저고리를 일작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Jungmi-garyesi-ilgi, 1847)을 보아 극 중 삼간택 장면에서의 의상이 고증을 기반으로 연출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Fig. 4>.
또한 <비밀의 문>에서는 <Fig. 5>의 삼간택 장면 이후 <Fig. 6-7>과 같이 영조정순왕후의 별궁행차 장면이 등장하는데, 극중 영조정순왕후는 송화색 저고리와 다홍 겉치마, 초록색 원삼을 착용하였다. 이는 『수식패물의대긔(首飾佩物衣襨件記)』에서 송화색 저고리와 남색 속치마에 다홍 겉치마를 입고 초록원삼을 입었으며 수식으로는 칠보족두리를 착용하고 자주능금댕기를 늘였다는 기록을 보아 사료를 기반으로 고증된 것을 알 수 있다(The Academy of Korean Studies[AKS], 1994). 그러나 사료에 따라 대부분의 복식이 초록 당의나 홍치마로 구성되었지만 수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경빈가례등록(慶嬪嘉禮謄錄)』에 기록되어 있듯이 간택에 참여하는 처자들은 새앙머리에 도투락댕기를 늘여 족두리를 써서 머리모양을 완성2)했는데 각 삼간택장면에서 처자들은 홍색 제비부리댕기에 배씨댕기를 써서 머리모양을 완성시킨 것을 보아 상이한 점이 확인되었다(Kyungbin-garye-deungrok, 1847).
본의례 중 가례장면에 나타난 책비의, 친영의, 동뢰의 절차에 따른 복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친영의 위주로 연출하여, 친영의는 조선 전기, 중기, 후기에 따라 해당 시기에 맞는 적의제도를 구현해냈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책비의는 <Fig. 8-9>에서 볼 수 있듯이 KBS2에서 방영된 <명성황후>에서만 나타났다. 이는 주인공인 명성황후 일생에서 가례가 큰 전환점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비중을 두었고, 이에 따라 가례 절차를 단계적으로 여러 장면에 걸쳐서 연출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책비의의 복식을 살펴보면 『고종명성황후가례도감의궤(高宗明成皇后嘉禮都監儀軌)』에 대홍적의와 대홍치마, 아청색 하피를 착용하고 대수를 얹었다고 기록3)되어있고(Gojong-myeongseong, 1866) 극 중에서는 대체적으로 이와 들어맞게 의상을 연출했다.
다음은 장면수가 가장 많았던 친영의에 등장한 적의를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에는 대홍색 대삼, 청색적계문 하피, 금추자, 청색 적계문 배자, 색 있는 원령(圓領), 오, 군, 상아홀, 칠적관을 사여 받은 왕비물목의 기록이 있다(Kim, 2022). 이와 같이 명 홍무 4년(1371)에 복식개정을 통해 외명부의 적의제도를 없앴기 때문에 명에서 사여한 왕비관복은 ‘적의’가 아닌 대삼이었다. 조선에서는 명으로부터 받은 왕비관복을 왕의 면복에 대응하는 옷으로 여겨서 적의로 인식하고 친왕비례에 준하는 옷으로 여겼다. 『대명회전』에 규정된 대삼은 2002년 상서성에서 발굴된 오씨묘 출토 대삼과 같은 형태로,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왕비 관복을 만들 때에 기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Kim, 2017). 조선전기 왕비의 가례 장면이 포함되어있는 <Fig. 13>의 <간택(The Selection)>에서는 조선 후기의 적의 형태를 띠고 있는 대홍적의를 착용하였다. <정도전(Jung Dojeon)>, <왕과 비(King and Queen)>, <왕과 나(King and I)>에서는 대삼 형태가 아닌 심청적의를 착용하였다<Fig. 10-12>. 또한 수식으로는 <왕과 비>, <정도전>, <인수대비>에서는 봉관을 착용하고 있어 고증을 따랐지만 <간택>에서는 중ㆍ후기에부터 등장한 대수를 착용하고 있어 사료와는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중국 출토 대삼 유물 이외에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물이 없기 때문에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조선 중기와 후기를 기준으로 가례장면을 연출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중기로 들어오면서 양란 이후에도 조선내의 숭명사상(崇明思想)과 연호(年號)사용이 지속되면서, 인조계비는 청의 예제를 따르지 않고 『대명회전』에 의거하여 새로운 적의제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대홍적의를 입었으며 17C 전반에 이르러 수식으로는 주취칠적관의 사용이 실제적으로 끝났다(Kim, 2011)<Fig. 14>. 17C 이전 배경의 드라마인 <여인천하(Yeoin chunha)>에서 중종장경왕후와 중종문정왕후가 대홍적의에 아청하피를 두르고 청색스란치마를 입고 수식으로 대수를 착용하였다<Fig. 15-16>.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중종 13년의 왕비물목에서 대홍대삼, 청선라채수권금적계하피(靑線羅綵繡圈金翟鷄霞帔), 청암화저사치마[靑暗花紵絲夾裙], 수식으로는 주관(珠冠)이 기록되어있는 것(Joongjong silok, 1518)으로 보아 의상의 색상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수식에 있어서는 사료와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17C 극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왕의 여자(King’s women)>의 선조인목왕후는 <여인천하>와 마찬가지로 대홍적의에 아청색하피를 두르고 청색스란치마와 대수를 착용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6년 왕비물목에는 대홍대삼과 청선라금적계하피(靑線羅金翟鷄霞帔), 청암화겹군(靑暗花裌裙)을 입고 수식으로는 주취칠적관을 사여 받은 기록(Sunjo silok, 1603)으로 보아 마찬가지로 수식에서 사료와의 상이한 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17C 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Blood Palace)>의 인조장렬왕후의 가례 장면에서는 대홍적의에 청색치마, 아청 하피를 두르고 수식으로는 대수를 얹고 백옥규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Fig. 17>.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에서 대홍대삼에 청색치마를 입고 아청 하피를 두르고 청옥규를 들었다(Yoo, 1992). 해당 의궤에 나타난 대삼 도식에는 광수와 전단후장형으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대삼의 깃 모양과 길의 여밈이 직령, 대금의 형태로 판단된다. 이러한 17세기 초의 대삼 형태는 18세기까지 유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Kim, 2022). 이와 같이 대부분의 의상이 사료와 유사하게 연출되었지만 옥규의 색에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영조대에 『국조속오례의보서례』가 편찬되어 왕비의 관복을 정비하였다<Fig. 18>. 그 이후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고 난 후의 시기에는 명황후의 적의 제도를 그대로 실시하여, 명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등(等)수에 차이가 있으며 황후의 적의 바탕색은 심청색이었고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두르고 운용문을 직금하였다. 또한 하피가 더해진 것이 뚜렷한 차이점으로 보인다(Kim, 2011).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중 <Fig. 21>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Jang Ok-jeong, Living in Love)>에 등장하는 인경왕후,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 <Fig. 19>의 <장희빈(Jangheebin)>에 등장하는 인현왕후와 장희빈과 <Fig. 20>의 <동이(Dongyi)>에 등장하는 장희빈의 가례장면에서는 대홍적의와 청색치마를 착용하고 대수를 얹었다. 이는 『숙종인 현왕후가례도감의궤(肅宗仁顯王后嘉禮都監儀軌)』 의 다홍적의, 남색치마를 입고 대수를 얹은 기록4)과 같은 의상 연출을 보이기에 고증에 입각한 연출이었다고 판단된다(Sukjong-inhyeon, 1681).
<명성황후>에서 대홍적의에 대홍치마를 착용했으며, <바람과 구름과 비(Wind, Clouds, and Rain)>에서는 대홍적의에 청색치마를 착용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의 사극 사이에서도 차이점도 보이기도 하였다. 『고종명성황후가례도감의궤』에서 대홍적의와 대홍겹치마의 기록을 보아 <명성황후>가 비교적 사료의 의차에 더욱 부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Gojong-myeongseong, 1866).
마지막으로 동뢰의는 <명성황후>와 <왕의 여자>에 등장한다. 동뢰의에서 왕과 왕비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의식을 치르고 나면 각각 면복과 적의를 벗는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동뢰의 장면 <Fig. 22>는 명성황후가 고종을 기다리는 장면이기 때문에 적의를 착용해야한다. 그러나 드라마상에서는 홍원삼을 입고 어여머리에 떠구지를 하고 있어 가례 절차의 복식 예법과는 부합되지 않는 장면이다. 또한 적의를 벗은 장면을 연출했다고 가정해보아도, 원삼은 조선 후기까지 왕세빈, 세손빈 의대에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노의, 장삼, 원삼들이 원삼 한가지로 집약되었다(Han, 2004). 또한 『고종명성황후가례도감의궤』의 의대로 원삼, 노의, 장삼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여러 상황으로 가정했을 때 고증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명성왕후의 일생에 중점을 맞춘 극이었기 때문에 가례 절차들을 다른 사극보다 면밀하게 다뤘는데, 이러한 절차들에 다양한 화려한 의상을 활용함으로써 명성왕후의 캐릭터에 더 힘을 싣기 위함으로 보인다. <Fig. 23>의 <왕의 여자>에서는 인목왕후의 가례장면이 연출되었다. 왕이 면복을 벗고 상복으로 환복을 했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는 왕비역시 적의를 벗는 것이 기록과 상응하는 연출이다. 대수는 벗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왕의 환복 후에도 왕비는 적의를 탈의하지 않고 계속 착용하고 있어 고증에 입각하여 본다면 적절한 연출이라 할 수 없다. 극중 친영의 연장선으로 인물간의 감정을 더 자세하게 그리기 위해 동뢰가 등장한다. 인목왕후는 19세에 51세의 선조와 가례를 올렸는데, 이 당시까지는 왕과 가장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계비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정확히 동뢰에서 어떤 복식을 갖췄는지에 대한 고증보다는 인목왕후가 왕에게 의식이 모두 거행 될 때까지 예를 갖춘 것에 초점을 두고 적의를 환복하지 않은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사료된다.
Ⅳ. 가례복식에 관한 양상 및 제언
본 장에서는 사극에 등장하는 적의를 비교 고찰하여 시대적 배경과 고증의 정도를 밝히고 앞으로 사극의상의 방향과 복식 발전을 위한 제언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매번 인물들에 따라 새로운 가례 복식을 제작할 수 없는 방송 제작환경으로 인해 방송사마다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해당 시기에 고정된 복식을 착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전기의 가례 장면들에서 KBS는 심청 적의에 봉관으로 추정되는 수식을 얹고 있었고, SBS에서는 심청 적의에 대수를, JTBC에서는 대홍적의에 봉관을 착용하고 있었다. 당시 대홍대삼과 주취칠적관을 사여받았던 사료와는 다소 상이한 부분들이 보였으나 대삼에 대한 정확한 사료가 부족했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의 경우 명나라 영정왕 부인 오씨의 대삼이 발굴되긴 하였으나 직접적으로 사여된 형태가 분명한 대삼은 발견 된 바가 없어,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왕비사여물목의 복식명만으로 정확히 시각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증을 하는 과정에서 사료를 통해 복식 디테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상상력을 보태어 의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료에 기록된 바와 같이 가례도감의궤에 대수가 등장하기 이전, 최초 사여가 이뤄진 1394~1639년까지의 왕비의 가례에는 적관을 착용해야 올바른 고증에 더욱 부합할 것이다.
중기의 가례 장면은 SBS에서 <여인천하>와 <왕의 여자>에서 3회 거쳐 등장하는데, 모두 대홍 적의를 착용하고 대수를 얹었다. 각각 다른 왕비의 가례 장면에서 보의 문양이나 금박의 위치가 같은 것으로 보아 동일한 의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비슷한 시기 혹은 같은 작품 안에서 연출된 장면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의상을 다른 등장인물들이 입은 것으로 추측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기로 들어오면서 『대명회전』에 의거하여 새로운 적의제를 만들어 착용했는데, 1638년 인조장열후 가례에 마련한 적의에는 대홍색 대삼, 아청색 배자, 아청색 군, 아청색 하피, 옥대, 수, 패옥, 대대, 청옥규, 적석을 따른다. 이때는 적의가 없고 대홍색 대삼과 아청색 배자가 보이며 36편의 수원적 배치도에서 나타난 특징이 오씨묘 출토 대삼에 근거하고 있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Kim, 2017).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의 가례장면에서는 대부분 대수와 대홍적의를 착용했다. KBS <장희빈>의 극 중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가례장면에서 다른 의상은 모두 동일한 것을 착용했지만 하피 색에 차이를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등장인물간의 가례복식에서 신분의 차이를 두기 위해 상대적으로 쉽게 교체할 수 있는 하피의 색을 달리 한 것으로 추측된다. SBS에서의 조선 중기와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의 가례장면에서 동일한 의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극들이 연이어 방송되면서 앞서 제작한 사극 의상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실제 왕비법복에 붙이는 수 36편이 51편으로 변화하는 시기는 숙종인현후 가례로 파악된다(Kim, 2017). 수원적(繡圓翟)의 문양은 꿩무늬가 아닌 봉황무늬로 보인다. 법복과 일습을 이루는 전행웃치마를 마련한 시기는 숙종때이며, 남자의 전삼후사상(前三後四裳)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Kim, 2017).
또한 대한제국의 적의가 등장한 사극 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 시기의 적의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모든 의례의 틀을 새로 정했다. 이에 복식제도를 새로 마련했는데, 그 이전시기까지는 황후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대명회전』에 근거하여 적의제도를 마련했다. 황후 관복을 구룡사봉관과 12등 적문의 심청색 적의로 정했다. 또한 황태자비 관복은 구휘사봉관(九翬四鳳冠)과 9등 적문의 심청색 적의로 정했으며 황비관복은 구적관과 청색국의로 정하여 왕실의 적통을 잇는 여인만이 적의를 입는다는 조선왕실의 원칙을 대한제국에서도 고수했다(Kim, 2017). 이러한 제도에 근거하여 마련된 <Fig. 24>의 12등 황후 적의는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Fig. 25>의 9등 왕비 적의는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어 대한제국의 적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방송사마다 대부분의 사극에서 각 시기별로 정해진 의상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방송사 관계자에 따르면 사극 제작예산 관계로 의상의 소재선정, 자수문양의 표현, 제작 벌 수 등이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사극의 주된 역사적 배경은 상대적으로 고증 자료가 풍부해 제작이 쉬운 조선이 주를 이뤄왔었다. 그러나 고증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의상에 대해서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에 의존한 의상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Lee & Nam, 2008). 특히나 적의는 많은 부속품들과 화려한 장식이 있는 대례복이므로 디테일들을 사료와 똑같이 구현하기에 자본과 인력 등 다양한 제약이 있는 방송사 제작 환경에서 어려웠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나 사극은 문화콘텐츠로서 오락적, 교육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기록의 부재와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지나친 창작은 지양되어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시대의 전통적인 복식구조와 체계를 따르되, 영상미를 위해서 기본적 틀 안에서 부분적으로 디자인 요소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각 방송사들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방영하면서도 지나치게 상이한 의상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의 역사 인식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공영방송사인 KBS는 <태조 왕건>, <대조영>, <불멸의 이순신>, <대왕세종> 등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전통 사극을 선보였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당시 시대정신까지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KBS는 제작비 문제와 캐스팅등의 어려움을 이유로 지난 2016년 <장영실>을 끝으로 전통사극 제작을 멈췄다가 최근 KBS 대하드라마가 <태종 이방원>으로 전통사극의 포문을 다시 열었다(Jung, 2022). 그러나 여타 드라마에 비해 많은 제작비가 들고 간접 광고를 노출할 수 있는 장면에 제약이 있어 한계점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사극이 퓨전화를 넘어 판타지화의 단계에 들어가면서 역사적 사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유로 왜곡되어 연출된 부분들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청률을 기반으로 하는 사극을 포함한 TV 드라마는 대중성과 상업성이라는 명분을 완전히 탈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화공정이 일어나는 이 시점에서 사극의 가례장면의 복식 또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영화 <상의원>과 같은 복식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도 계속해서 양산되어야 한다. 즉, 상업성의 잣대에서 벗어난 문화 전파와 계도적 역할을 하는 공영성으로 추구되어야 할 복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도 존재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Ⅴ. 결론
본 연구는 최근 더욱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의 대중매체 콘텐츠 중 사극 드라마에서의 가례의상에 관한 것이다. 가례 장면이 등장한 2000년 이후 사극 드라마 14편에서 83장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왕비 가례 복식의 특징과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먼저 가례의 절차와 복식의 종류 및 특징을 사료와 기록 자료들을 통해 살펴보고 사극 드라마에서의 가례에 대한 양상을 고찰하였다. 절차별 빈도에서는 왕비와 왕의 혼례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친영의 장면이 빈도가 높았다. 가례의 절차 중 친영의의 빈도가 높았던 까닭은 다른 장면에 비해 복식 자체가 화려하고, 왕비의 신분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등의 플롯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시기별 빈도에서는 조선 후기 왕비의 가례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왕비별 가례 장면에서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국내외 격변이 심하게 이르던 조선 후기에 그 역사의 중심에 장희빈과 명성황후와 같은 왕비의 서사를 조명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실제 사극 드라마에 표현된 의상을 기록된 사료와 비교하여 절차별로 분석하였고, 예비의례와 본의례로 나누어 살펴본 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비의례인 간택 복식에서는 삼간택과 별궁행차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별궁행차 장면을 포함하여 사료에 따라 대부분 홍치마를 착용했지만 수식에 있어 상이한 점이 나타났다
둘째, 본의례인 친영의가 나타나는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해당 시기의 기록과 부합하지 않은 의상이 상당수 등장하였다. 수식은 사료에 따라 봉관을 착용한 사극 드라마도 있었다. 그러나 적의는 2002년 중국 상서성에서 발굴된 대삼 이외에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여 이후의 기록과 유물의 적의에 근거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동뢰의에서 적의를 착용해야 하지만 홍원삼에 어여머리를 얹었다. 이는 왕이 면복을 벗으면 적의를 탈의하는 복식 예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동뢰의를 드라마에 등장시킨 이유는 친영의 연장선에서 인물간의 감정선을 더 세밀하게 그리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는 기록을 토대로 한 고증보다는 의식이 모두 거행될 때까지 왕비가 왕에게 예를 갖추는 감정선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도출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시기순으로 가례 장면에서의 의상 양상과 가례 왕비 복식의 올바른 연출 방향을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의 가례장면에서는 대홍대삼과 주취칠적관을 사여받았던 사료와는 다소 상이한 의상을 착용했다. 이는 대삼에 대한 정확한 사료가 부족했던 결과인 것으로 사료된다. 대삼을 정확히 시각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상상력을 보태어 연출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가례 장면은 모두 대홍 적의를 착용하고 대수를 얹었다. 비슷한 시기 혹은 같은 작품 안에서 착용했기 때문에 의상의 여러 장식을 미루어보아 동일한 의상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대명회전』에 의거하여 새로운 적의제를 만들어 착용했는데, 1638년 인조장열후 가례에 마련한 적의에는 대홍색 대삼, 아청색 배자, 아청색 군, 아청색 하피, 옥대, 수, 패옥, 대대, 청옥규, 적석을 따른다. 이때는 적의가 없고 대홍색 대삼과 아청색 배자가 보이며 36편의 수원적 배치도에서 나타난 특징이 오씨묘 출토 대삼에 근거하고 있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가례 장면에서는 대부분 대수와 대홍색 적의를 착용했다. 한 방송사에서는 조선 중기와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가례 장면에 동일한 의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 사료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왕비 법복의 수(繡)가 36편에서 51편으로 변화하는 시기는 숙종인현후가례이며, 숙종대에 법복과 일습을 이루는 전행웃치마를 마련하였다.
방송사마다 조선 시기별로 의상을 분류하여 각 시기의 정해진 의상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방송사 관계자에 따르면 사극 제작 예산 관계로 의상의 소재 선정, 자수문양의 표현, 제작 벌 수 등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고증을 위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의상에 대해서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극은 문화 콘텐츠로서 계도적인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복식으로 하여금 역사인식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상에서 본 연구는 복식 고증의 의미를 재인식하여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한국의 사극 드라마 의상 제작시 올바른 고증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기초자료로 활용하여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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