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출토복식 중 포류(袍類)의 바대 연구
Abstract
Ba-dae is a patch sewn on areas of clothing worn out from friction or force. Excavated clothing exhibits several types of Ba-dae, but few studies focus on Ba-dae. Therefore, this study analyzes the shapes of Ba-dae from excavated clothing, specifically traditional robes(袍類) from the Joseon Dynasty. It considers 1,062 items categorized as robes from 79 graves (56 men and 23 women) from the 1400s to the 1800s. Among the items were 101 Dan-ryeong (an official’s robe and women’s robe), 117 Jik-lyeong (men’s robes), 73 Dap-ho (men’s robes), 236 Cheol-lik (men’s robes), 60 Do-po (men’s robes), 44 Aek-jureum (men’s half-robes), 124 Jang-ot (men's and women’s robes), and 307 Chang-ui-type clothes (Dae-changui, Jung-chi-mak, and So-changui). Ba-dae is visible on 378 of these items. The analysis categorizes the Ba-dae according to its sewn location, the type of Ba-dae, and the details of its shape. Next, the study investigates the type of clothing to see the differences in the Ba-dae type, shape, and changes to the Ba-dae shape over time. The Ba-dae's types and changes are as follows: The 15th century used the So-yo type Ba-dae and square Ba-dae. The 16th and 17th centuries featured various types of Ba-dae: Hook type, star type, trapezoid type, So-yo type, and ellipse type.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Ba-dae become a simplified square. The trapezoid variant appears on items from the 16th century, and the star type on items from the 17th century.
Keywords:
Ba-dae, excavated clothing, Joseon dynasty, shape, traditional robe키워드:
바대, 출토복식, 조선시대, 형태, 포류; 袍類Ⅰ. 서론
조선시대의 옷에 천을 덧댄 것은 서양 의복의 패치(patch)와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나 서양 의복에서 마모되거나 구멍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천을 덧대어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비하는 것에 비해, 한국 전통복식에서는 장식성이 일부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옷을 보호하여 파손을 줄이고 해어지기 쉬운 부분의 무게를 견디는 실용적 기능이 더 강하다. 선행연구에서는 이를 흔히 ‘바대’라 하고 있다. 출토복식에서 확인되는 바대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종류의 옷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행연구에서 조선시대 출토복식 중의 바대를 중점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바대를 주 고찰 대상으로 삼은 것은 2007년까지 보고된 유물을 형태와 특징에 따라 분류하여 기능과 바느질법을 고찰한 연구가 유일하다(Ku, 2008). 이외, 단령, 직령, 도포, 철릭 등 특정 복식에 관한 연구(Choi, 2004; Keum, 2011; Lee, 2001)나 포(袍)의 형태 변화와 구성, 바느질 연구(Jin, 2006; Kim, 2018) 등에서 간단히 설명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2007년 이후 공개된 출토복식까지 포함하여 바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바대’ 용어에 대한 기존의 이해나 설명은 출토복식에 나타난 바대 분석을 통해 바로잡을 부분이 확인된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시대 출토복식 중포류(袍類)에 나타난 바대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및 분석 범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전(辭典)과 선행연구에 언급된 바대 명칭 및 정의(定義) 등을 정리하여 이론적 배경으로 삼는다. 이어, 출토복식에 나타난 바대 분석을 위해 복식이 출토된 묘주 생몰년의 오류를 정정한 선행연구(Choi, 2009)를 참조해 정리하였으며, 일차보고서와 도록, 연구자료 등에 언급된 내용 및 사진과 도식을 종합하여 참조하고, 일부 유물은 소장처의 협조를 얻어 실견하였다. 바대는 크기가 작기도 하고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조사보고서나 도록 등에 언급이 없거나 소략하게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연구대상은 출토유물 수량이 많고 바대 관련 내용이나 사진 및 도식화가 있는 묘주와 복식 위주로 선정하였으며, 바대에 관한 언급이 없거나 내용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는 제외하였다. 시기는 묘주의 몰년(歿年)을 기준으로 14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이다. 분묘는 총 79기(基)로, 남자묘주 56명, 여자묘주 23명이다. 옷의 종류는 유물의 수량과 바대의 부착 수량이 많은 단령, 직령, 철릭, 답호, 액주름, 도포, 장옷, 창의류(대창의, 중치막, 소창의)를 대상으로 하였다. 출토복식 중 여자의 포는 단령, 장삼, 노의, 원삼 등이 있으나, 장삼, 노의, 원삼은 바대가 없거나 일차보고서의 바대 관련 내용이 소략하여 연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따라서 분석 수량은 단령 101점(남자 83점, 여자 18점), 직령 117점, 답호 73점, 철릭 236점, 액주름 44점, 도포 60점, 장옷 124점, 창의류 307점 등 총 1,062점이다.
연구내용은 첫째, ‘바대’ 용어에 대한 고문헌, 사전, 선행연구에 나타난 명칭 및 개념정의를 정리한다. 둘째, 선행연구의 분류 및 연구자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바대를 대는 부위에 따라 종류를 구분하고 세부 형태를 도식화하였다. 셋째, 포의 종류별로 바대 현황을 고찰하고, 특징과 형태를 분류하여 시기별 변화를 분석하였다.
Ⅱ. 바대의 정의 및 종류에 따른 형태 분류
1. ‘바대’의 명칭과 정의
‘바대’ 용어는 『악학궤범(樂學軌範)』 권8 「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에 수록된 ‘오색단갑(五色段甲)’ 도설(圖說)에서 나타난다. <Fig. 1>의 도식을 보면, 깃 형태는 방령(方領)이고, 그 아래 중심에 직사각형의 부착물이 세로로 길게 대어져 있다. 부착물 옆에는 “바대[八的]는 길이가 4촌 2분이고, 너비는 1촌이다(八的, 長四寸二分, 廣一寸)”, “한 변의 너비는 바대[八的]를 합하여 6촌 7분이다(一邊廣, 八的幷六寸七分)”라고 하였다(Akhak-gwebeom, 1493). 바대를 ‘八的’이라 표기한 것이다. 『악학궤범』에 표기된 ‘八的’의 ‘的’은 중국어 발음으로 ‘더/de/’ 혹은 ‘디/dì;dí;dī/’’ 이므로, ‘八的’은 ‘bāde/빠더/’, ‘bādi/빠디/’로 읽는다. 따라서 ‘바대’라는 한국어 발음을 문자로 표기할 때 중국어 음을 차용해 ‘八的’이라고 쓴 것으로 보인다.
‘바대’의 명칭에 관한 사전에서의 정의는 주로 “홑옷의 안쪽에 대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복식대사전(服飾大事典)』은 홑적삼이나 고의의 해어지는 부분에 안으로 덧대는 헝겊 조각이라 하였고(Rasara Educational Development Institute, 1995), 『우리말 큰사전』은 홑적삼이나 고의 따위의 쉽게 해질 곳에 안으로 덧대는 헝겊 조각이라 하였으며(The Korean Language Society, 1992), 『우리말풀이사전』에서는 홑적삼이나 고의의 해어지기 쉬운 부분 안에 덧대는 헝겊 조각이라 하였다(Park, 2004). 그러나 실제 유물을 보면, 홑옷뿐만 아니라 겹옷과 누비에서도 확인되고, 안에 덧대기도 하지만 겉에 덧댄 경우도 확인된다. 따라서 사전적 정의는 보완되거나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는 바이다.
한편, 복식 관련 선행연구에서는 바대를 ‘힘받이’, 덧대는 헝겊 조각으로 정의한 ‘덧대기’, ‘보강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힘이 집중되거나 닳아서 해어지기 쉬운 부분에 옷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는 천’으로 정의한다.
2. 부착 위치에 따른 바대의 종류와 형태 분류
연구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79기의 묘 출토 1,062점의 포류 중 바대가 부착된 유물은 378점으로 확인되었다. 선행연구의 명칭과 분석 내용, 여기에 더해 연구자가 378점에서 확인한 것을 기초로 하면 바대를 덧대는 부위, 즉 위치는 어깨와 등, 깃, 겨드랑이와 무, 기타로 구분된다. 이를 기준으로 어깨바대, 깃바대(고대바대, 깃머리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 고름바대, 고리바대, 단추바대, 주름바대, 띠[帶]고름바대, 띠[帶]고리바대 등 총 13종류로 대별(大別) 가능하다. 아래에서는 이를 기준으로 종류와 세부 형태를 분류하고, 세부 형태별로 도식을 그려서 포류에 나타난 바대 형태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다.
어깨바대는 어깨에 하중이 실리므로 어깨와 등부분이 해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힘을 보강하기 위해 덧대는 천을 말한다. 본 연구에서 어깨바대는 깃고대 앞뒤로 어깨부터 등까지 부착된 것을 말하고, 안쪽에서 앞길과 뒷길을 펼쳐 놓고 본 형태를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세부 형태는 4가지로 분류하였고,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 이다.
‘一자형’ 어깨바대는 깃고대를 중심으로 어깨선의 앞뒤 양쪽으로 좁게 등까지 연장되지 않도록 덧댄 천이다. 뒷길에서 보았을 때 ‘一자’ 형태임이 보인다. ‘凹자형’은 一자형과 비슷하지만, 등쪽으로 좀 더 길게 연장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앞길과 뒷길을 펼쳐 놓고 보면 ‘凹자’와 비슷하다. ‘U자형’은 凹자형과 유사하지만, 등쪽의 양 모서리의 각(角)을 약간 둥글게 하였다. 등쪽에서 완만한 ‘U자형’의 곡선을 그리는 형태이다. ‘H자형’은 뒷길의 겉에서 보았을 때, 뒷고대 아랫부분이 ‘V자’에 가깝고, 그 양옆으로 곡이진 삼각형의 바대가 연결된 모양이지만, 옷의 안쪽에서 앞길과 뒷길을 펼쳐놓고 보면 ‘H자’ 형태이다. 선행연구에서는 ‘ 형’, ‘연화형등바대’, ‘H자형’, ‘M자형’, ‘산(山)자형’ 혹은 ‘산(山)자형’과 ‘H자형’의 혼합으로도 분류하였으나(Ku, 2008; Lee, 1999; Park, 1992) 본 연구에서는 ‘H자형’으로 분류하였다. 다른 어깨바대에 비하여 조형미가 돋보인다<Fig. 2>.
깃바대는 깃을 달 때 힘받이로 덧대는 천을 말한다. ‘고대바대’와 ‘깃머리바대’가 있다.
(1) 고대바대
고대바대는 깃 양쪽 고대의 잘 해어지는 부분에 덧대는 천이다. 홑옷 안쪽에 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겹옷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끼운 경우도 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끼운 경우에는 고대점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작은 천을 넣고 깃을 올려 함께 바느질하므로 겉에서 바대의 바느질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음선이 없는 어깨솔기에 깃을 올려 처리할 경우 안감과 겉감 사이의 고대바대가 지지대의 역할을 하며, 고대점이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바대형태는 사각형과 삼각형이 있다<Fig. 3>.
(2) 깃머리바대
깃머리바대는 깃머리 아랫부분에 덧대는 천이다. 사각형과 삼각형이 있다. 포류에서는 장옷에서 많이 확인되며, 사각형 중에는 윗섶의 시접을 접어서 활용한 경우도 있다. 깃의 종류에 따라 바대가 달리 대어졌는데, 장옷과 같이 들여달린 목판 깃의 경우 깃머리 바로 아래에 장식선을 댄 것처럼 덧대었고, 내어달린 목판깃인 경우 길과 섶이 만나는 경계면에 삼각형으로 덧대었다<Fig. 4>.
겨드랑이와 무에는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가 있다. 길에서 보이는 형태를 기준으로 겨드랑이 아래 옆선에 대는 ‘옆선바대’, 무까지 연결되지 않은 겨드랑이 부위의 ‘겨드랑이바대’, 무 부위에만 있는 ‘무바대’, 소매 배래 일부를 지나 옆선과 무가 만나는 부위의 ‘곁바대’로 분류가능하다. 이 세부 형태는 조선전기의 옆선이 길어 소매배래와 무가 떨어져 있는 형태에서 후기의 옆선이 짧아지면서 배래와 무가 바로 이어지는 형태 변화와 상호 연계된다. 전기에는 옆선, 겨드랑이, 무바대가 각각 대어지고, 후기에는 세가지가 합해져서 곁바대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1) 옆선바대
옆선바대는 겨드랑이 아래의 옆선 즉 진동 아래에서 무 바로 위까지의 세로 방향에 덧대는 천이다. 형태는 직사각형이다. 후술하는 고름바대와 위치가 비슷할 수 있으나, 고름바대는 옷의 안쪽보다 겉쪽에 부착되고, 옆선바대는 안쪽에 보강의 용도로 부착된다<Fig. 5>.
(2) 겨드랑이바대
겨드랑이바대는 겨드랑에 덧대는 천이다. 무가 있는 단령, 직령, 답호 등의 옷에서 무 위에 덧대지는 않고, 무바대 위에 덧대는 경우는 있다. 겹옷에서도 보이지만 홑옷에서 더 많이 확인되고, 주로 옷의 겉쪽보다 안쪽에 보강의 용도로 부착된다. 세부 형태는 ‘갈고리형’, ‘ㄱ자형’, ‘타원형’으로 분류하였다<Fig. 6>. 갈고리형은 다시 <Fig. 7>처럼 끝이 뾰족한 형태와 <Fig. 8>처럼 끝이 잘린 형태로 구분된다. 본 연구에서는 전자를 ‘갈고리형’, 후자를 ‘끝잘린 갈고리형’으로 명명하였다. 끝 잘린 갈고리형은 옷의 안쪽에서 앞뒷길에 절반씩 고정하는데, 양쪽을 펼쳐 놓으면 양쪽 변은 곡이진 사다리꼴이고 윗변과 아랫변은 직선에 가깝다.
(3) 무바대
무바대는 무를 고정하거나 연결할 때 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힘받이로 덧대는 천을 말한다. 단령, 직령, 답호, 도포 등의 무가 있는 옷에 부착된다. 겨드랑이 옆선 끝점과 무 상부가 연결된 부위에 덧대고, 진동선 위로는 덧대지 않는 형태이다. 바대는 대부분 옷 안쪽에 대지만, 무바대는 겉쪽에 부착되는 경우도 있다. 또 형태도 다양하고, 바느질도 정교하여 실용적 기능과 함께 장식성도 겸하고 있다. 도포의 경우, 앞길의 무를 뒷길 안쪽으로 넣어 고정할 때 덧대어진다. 무바대는 길에만 덧대기도 하고, 길과 연결된 무까지 덧대기도 한다. 선행연구에서는 도끼날꼴, 소요형(小腰形), 사다리꼴, 사각형, ㄴ자형, □자형, Σ형, L자형 등으로 표현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길과 연결된 무까지 덧댄 경우, 무를 접어 길의 안쪽으로 넣거나 뒷길 쪽으로 넘기고 난 후 길에서 보이는 형태만을 기준으로 <Fig. 9>와 같이 ‘소요형’, ‘사각형’, ‘사다리꼴’로 분류하였다. <Fig. 10>은 심수륜(1534-1589) 묘 출토 홑단령과 윤선언(1580-1628) 묘 출토 겹도포에서 확인되는 소요형 무바대이다.
조선시대의 무가 달린 포는 초기에 옆선이 길어 무바대와 겨드랑이바대가 구분되지만, 점차 옆선의 길이가 짧아져 겨드랑이 바로 아래에 무가 달리고,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가 곁바대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따라서 무바대는 대부분 조선전기 유물에서 확인된다.
(4) 곁바대
곁바대는 겨드랑이 부분에 위치하여 옆선, 소매배래, 무가 만나는 부위에 덧대는 천이다. 길의 옆선 길이가 짧아 소매배래와 무가 가깝게 위치하는 옷에서 나타나며, <Fig. 11>처럼 세 부분을 하나의 바대로 보강해주었다. 이 부분은 활동성이 많고 옷의 무게가 집중되므로 보강이 필요한 부분이다. 형태는 <Fig. 12>와 같이 ‘갈고리형’, ‘사각형’, ‘변형 사다리꼴’, ‘별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고름바대
고름바대는 고름이 부착되는 위치에 힘받이로 덧대는 천이다. 옷의 겉이나 안에 부착한다. 위치는 깃 아래 겉섶이나 안섶의 길 중앙, 그리고 옆선의 앞길쪽이나 뒷길쪽 고름이 달릴 위치에 부착된다. 본 연구에서는 ‘사각형’, ‘반원형’, ‘철릭형’으로 분류하고, ‘철릭형’은 다시 끝을 처리한 모양에 따라 ‘철릭형직사각’, ‘철릭형사선’, ‘철릭형삼각’으로 분류하였다<Fig. 13>.
(2) 고리바대
고리바대는 트임의 찢김을 방지하기 위한 고리를 부착할 때 덧대는 천을 말한다. 형태는 사각형이다. 포에서 확인되는 고리는 겨드랑이 아래 트임이나 뒷트임, 옆트임의 찢김 방지를 위한 용도로 쓰인다. 바대 위에 고리가 있는 경우 대부분 무바대나 곁바대 위에 덧대어지므로, <Fig. 14>의 배천조(1532년- ?) 묘 출토 겹도포 사각형 바대처럼 무바대와 고리바대의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3) 단추바대
단추바대는 단추를 달기 위해 힘받이용으로 덧댄 천이다. 단추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옷감의 손상을 덜어주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곱게 바느질해서 장식성을 겸하기도 한다. 단추바대에 단추를 고정하는 방법은 <Fig. 15>의 세 유형이 있다. ‘①형’은 옷감의 겉쪽에 단추를 올려 단추 밑동 부분을 바대로 덮어 고정하고, ‘②형’은 겉쪽에 바대를 대고 그 위에 단추를 올려 고정하며, ‘③형’은 안쪽에 바대를 댄 후 겉쪽에서 단추를 부착한다.
(4) 주름바대
주름바대는 주로 철릭과 액주름에서 확인된다. 액주름의 겨드랑이 아래 작은 사다리꼴 무와 연결되는 주름 잡은 큰 무, 또는 철릭 하상(下裳)의 위쪽에 잡은 주름이 상의(上衣)의 아래 가장자리와 연결되는 부분에 덧댄다. 이런 주름바대는 시접 부분을 처리하기 위한 안단의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 주름잡은 천의 무게 때문에 생기는 찢어짐을 방지하는 바대로서의 기능도 있다. 이 때문에 철릭의 경우, 허리 전체에 바대를 대기도 하지만, <Fig. 16>의 성급(1553-1662년) 묘 출토 홑철릭처럼 주름을 잡은 부분에 대기도 한다.
(5) 띠[帶]고름바대
띠[帶]고름바대는 띠고름을 부착할 때 덧대는 천이다. 단령에는 혁대(革帶), 즉 띠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고름 형태의 끈이 있다. 고름처럼 끈의 위쪽은 옷에 부착되어 있고, 아래쪽은 꿰매지 않고 드리워진 형태이다. 띠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이 끈을 ‘띠[帶]고름’으로 명칭하고, 여기에 덧댄 바대를 ‘띠[帶]고름바대’로 분류하였다. 띠고름바대는 단령에서 확인되며, 겨드랑이 부위, 혹은 앞길이나 뒷길 쪽으로 혁대를 두르는 부위에 위치한다. 형태는 사각형, 반원형이 있다. 띠고름은 대부분 기다란 끈을 반으로 접어 옷에 부착하는데, 겨드랑이 앞뒤로 부착된다. <Fig. 17-a>의 김확(1572-1633년) 묘 출토 홑단령처럼 띠고름만 고정하기 위한 바대도 있고, <Fig. 17-b>의 김여온(1596-1665년) 묘 출토 홑단령과 같이 곁바대 위에 띠고름을 댄 경우도 있다.
(6) 띠[帶]고리바대
띠[帶]고리바대는 띠고리를 부착할 때 덧대는 천이다. 단령에는 혁대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띠고름 외에 고리 형태의 끈도 있다. 위와 아래가 모두 꿰매어져서 고리와 같은 모양을 한다. 띠[帶]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이 고리를 ‘띠[帶]고리’라 명칭하고, 띠고리에 덧대는 천을 ‘띠[帶]고리바대’로 분류하였다. 형태는 사각형이다. 겨드랑이 앞뒤로 부착되며, 띠고리는 띠고리바대보다 곁바대 위에 부착된 유물이 더 많다. 윤선언(1580-1628년) 묘 출토 홑단령의 뒷길에는 띠고리의 상부가 띠고리바대 위에 부착되고, 띠고리의 하부는 소요형 무바대 위에 부착된 것이 확인된다<Fig. 18>.
Ⅲ. 포의 종류별 바대 현황과 특징 및 변화 분석
총 79기의 묘에서 출토된 포 중 단령 101점, 직령 117점, 답호 73점, 철릭 236점, 도포 60점, 액주름 44점, 장옷 124점, 창의류 307점 등 총 1,062점을 분석한 결과, 그 중 총 378점에서 바대가 확인 되었다. 단령 남자 71점, 여자 9점, 직령 78점, 답호 35점, 철릭 119점, 도포 38점, 액주름 6점, 장옷 12점, 창의류 10점이다<Table 1>. 본 장에서는 포의 종류별 바대의 현황과 특징을 고찰하고, 포류의 시기별 바대 변화와 포에 부착된 바대의 형태 변화를 분석한다.
1. 포의 종류별 바대 현황과 특징
단령은 79기의 묘에서 총 101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남자가 묘주인 56기의 묘와 천안유량동 무연고 묘(16세기중반)의 남자 단령 1점을 포함해 총 83점의 유물 중 71점에 바대가 있다. 바대의 종류는 어깨바대, 겨드랑이바대, 옆선바대, 무바대, 곁바대, 띠고름바대, 띠고리바대가 있다. 세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며, 옆선바대는 직사각형이다.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과 타원형이고, 무바대는 사각형, 소요형, 사다리꼴이며, 곁바대는 사각형, 별형이다. 띠고름 바대는 반원형과 사각형이 있으며, 띠고리바대는 사각형이다<Table 2>. 남자 단령에서는 어깨바대가 가장 많이 확인되며 곁바대, 무바대 순서로 다른 바대들에 비해 더 많이 확인된다. 전기에는 홑단령과 홑직령을 독립된 포로 제작해 따로 입었으므로 바대도 각각 부착되는데, 17세기 이후 홑단령과 홑직령을 겹쳐서 징궈 고정해 한 점의 옷처럼 착장하는 시기에도 바대 부착은 변함이 없다. 또한, 겹단령이 홑단령 안에 홑직령이 징궈지면서 안감처럼 사용(Park, 2006)되어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점차 나타나지 않으며, 凹자형 어깨바대와 사각형 곁바대가 동시에 확인된다. 남자 단령에서는 바대의 세부 형태도 갈고리형, 소요형, 사각형, 사다리꼴, 별형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남양홍씨(1550년대추정) 묘 출토 홑단령에는 H자형 어깨바대와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 사각형 무바대가 확인된다. <Fig. 19>의 H자형 어깨바대는 어깨 중심을 기준으로 이음선 없이 너비 49cm, 길이 22.5cm이며, 앞쪽으로 7.5cm, 등 아래로 15cm이다. 어깨바대는 정교한 감침질로 바느질되어 있으나, 양끝의 식서 부분은 0.5cm 시접을 접어 넣어 겉옷감과 바느질되지 않아 양쪽 모두 트여있다. 이러한 어깨바대의 양옆 트임 바느질 유형은 凹자형과 H자형 어깨바대에서 주로 확인된다. <Fig. 20>은 겨드랑이 부위의 별형 곁바대로 이서용(1557-1619년) 묘 출토 홑단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자 단령은 16~17세기 전반기에 집중된다. 동시대의 남자 단령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한삼이 달려 있으며, 다른 하나는 무의 형태이고, 또다른 특징 하나는 단령의 구성이 남자 단령의 경우 홑옷과 겹옷이 있으나 여자 단령은 모두 홑옷이다(Yim, 2012). 남자 단령의 겹단령은 홑단령과 홑직령을 따로 제작하여 징궈지는 형식으로, 겹단령의 겉감은 홑단령, 안감은 홑직령으로 홑옷의 구성이 있지만, 여자 단령은 징궈지는 형식의 겹옷도 확인되지 않으며, 안감, 겉감의 겹옷이 아닌 홑옷만 확인된다. 단령은 총 101점이 출토되었는데, 여자 단령은 여자 묘주 17명에서 18점이 확인되며, 모두 홑옷이다. 그 중 9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으며, 바대 종류는 어깨바대, 고대바대, 곁바대, 무바대, 단추바대이다. 바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U자형이고 고대바대는 직사각형이며, 곁바대, 무바대, 단추바대는 사각형이다<Table 2>. 여자 단령은 홑옷임에도 바대가 없는 유물이 많고, 남자 단령과 비교하면 ‘一자형’, ‘U자형’의 어깨바대를 제외한 세부 바대의 형태가 사각형으로 단순하게 나타난다. 여자 단령에는 단추바대가 뒷길에 있다. 뒷길 좌우에 각각 한 쌍의 단추가 있는데, 등쪽에 숫단추를 달고 옆선 쪽에는 암단추를 달았다. 단령 뒷길에 있는 단추의 암수를 끼우게 되면 단령의 품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단령 뒷길의 단추는 해주오씨(16세기전반) 묘 출토 무명 홑단령, 용인 영덕동 무연고(16세기중후반) 묘 출토 무문단 홑단령, 평산신씨(1562-1625년) 묘 출토 홑단령에 있다. 단추바대는 영덕동 무연고 묘 출토 홑단령에는 없고, 해주오씨 묘와 평산신씨 묘 출토 홑단령 각 1점으로 총 2점에서 확인된다. <Fig. 21>은 평산신씨 묘 출토 무문단 홑단령에서 단추바대가 확인되며, 단령의 뒷길 겉에서 박음질로 고정한 후 단추바대 위에 단추를 부착하였다.
직령은 총 117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78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고, 바대 종류는 어깨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 고름바대이다. 세부 형태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며, 옆선바대는 직사각형이다.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이고, 무바대는 사각형, 소요형, 사다리꼴이며, 곁바대는 사각형, 변형사다리꼴이다. 직령의 바대는 15~16세기에는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보이다가, 17세기부터 홑직령이 홑단령 안에 징궈지면서 겹단령의 안감처럼 사용되어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점차 나타나지 않으며, 凹자형 어깨바대와 사각형 곁바대가 동시에 확인된다<Table 3>. 이러한 현상은 앞서 서술한 단령에서도 확인된다. 직령의 어깨바대는 모두 홑옷에서 확인되었고, 무바대는 홑옷뿐만아니라 겹옷에서도 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힘받이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응태(1556-1586) 묘 출토 모시 홑직령에는 사각형 무바대와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가 있다. <Fig. 22>에서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는 홑직령의 겉에서 보면 갈고리 모양이고, 안쪽에서 펼쳐보면 화살촉 형태이다. 사각형 무바대는 홑직령의 겉에서 박음질로 고정하였고,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는 겨드랑이 안쪽에서 감침질로 고정하였다.
답호는 총 73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 35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다. 바대의 종류는 어깨바대, 고대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이며, 세부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 있고, 고대바대는 삼각형이며, 옆선바대는 직사각형이다.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이고, 무바대는 사각형과 사다리꼴이다<Table 3>. 17세기 중반 이후 바대가 확인되지 않는다. 특징적인 것은 어깨바대에서 확인되는데, 김흠조(1461-1528) 묘 출토 답호에서는 凹자형, U자형, H자형, 윤선언(1580-1628) 묘 출토 답호에서는 一자형, 凹자형, H자형으로, 한 사람의 묘주에서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Fig. 23>에서 정담(1476- ?) 묘 출토 명주 겹답호는 고대의 찢김을 방지하기 위한 삼각형 고대바대가 있으며, 어깨의 안감 위에 가늘고 긴 천을 덧댄 一자형 어깨바대가 확인된다. 또한, 짙은 갈색의 마포 홑답호에는 감침질로 바느질 된 H자형이 있으며, 명주 홑답호에는 U자형이 감침질로 바느질되어 다양한 형태의 어깨바대가 확인된다.
철릭은 총 236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119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다. 철릭의 바대는 어깨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곁바대, 고름바대, 주름바대, 단추바대가 확인된다. 세부 바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며, 옆선바대는 직사각형이다.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과 ㄱ자형이 있으며, 곁바대와 단추바대는 사각형이다. 고름바대의 형태 중 철릭형직사각은 겹옷과 홑옷에서 비슷하게 확인되지만, 철릭형사선은 겹옷에서 더 많이 확인되며, 철릭형삼각은 김흠조(1462-1528년) 묘 출토 홑철릭에서 확인된다(Yeongju-si, 1998). 철릭에서 나타나는 바대는 홑옷과 겹옷에서 모두 나타나다가 김확(1572-1633년) 묘 출토 이후부터 홑옷에서만 확인된다. 곁바대는 초기에는 확인되지 않고, 17~18세기에 사각형 곁바대가 확인된다<Table 4>. 철릭의 주름바대는 허리 전체에 바대를 대기도 하지만, 의(衣)와 상(裳)을 연결하는 부분 중 주름이 시작되는 곳에서 주름이 끝나는 부분까지 주름이 잡힌 곳에 대어진 것도 있다. <Fig. 24>와 같이 이응태(1556-1586년) 묘 출토 모시 홑철릭에는 주름바대가 확인되며, 겨드랑이 부분의 주름바대 위로 안고름이 달려있다. 상의와 하상을 연결하는 힘받이 용도의 주름바대와 함께 고름바대의 역할도 이중으로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홑철릭의 겨드랑이 안쪽에 끝잘린 갈고리 형태의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가 확인되며, 겨드랑이 안쪽에서 천을 바이어스로 덧대어 소매 배래선을 따라 함께 징군 후 겉에서 감침질로 고정한 것이 확인된다.
액주름은 총 44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6점의 유물에서 바대가 확인되며 액주름의 바대 종류는 어깨바대, 고대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주름바대가 확인된다. 세부 바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이고, 고대바대는 삼각형이며, 옆선바대는 직사각형,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이다. 액주름의 바대는 16세기에만 확인되며, 바대 수량이 적다<Table 4>. <Fig. 25-a>의 이언충(1524-1582년) 묘 출토 모시 홑액주름은 겨드랑이 밑에 사다리꼴 무만 달리는 형태로 주름위의 허리선을 따라 대는 주름바대가 박음질 되어있고, 갈고리형 겨드랑이바대가 확인된다. <Fig. 25-b>의 이언웅(16세기후반) 묘 출토 솜누비 액주름에서 사다리꼴 무와 네모난 당(襠)이 함께 달리는 형태로 겨드랑이 안쪽에 주름바대가 있다. 사다리꼴 형태의 무와 그 아래 주름 부분을 연결하는 무 위로 주름바대를 덧대어 함께 박음질한 후 위로 올려 감침질하였다.
도포는 총 60점이 출토되었고, 그 중 38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다. 바대의 종류는 어깨바대, 겨드랑이바대, 곁바대, 무바대가 확인되며, 세부 바대 형태는 어깨바대는 凹자형과 한판이 있고, 겨드랑이 바대는 타원형이며, 무바대는 소요형, 사다리꼴, 사각형이고, 곁바대는 갈고리형과 사각형이다<Table 5>. 한판이 없는 어깨바대가 먼저 나타나고, 신경유(1581-1633년) 묘 출토 이후부터 한판이 나타난다. 한판은 겹도포에서도 확인되지만, 무를 고정하기 어려운 홑도포에서 주로 나타난다. 무바대는 김확(1572-1633년) 묘 출토 도포까지 나타나며 신경유 묘 출토 이후부터 보이지 않는다. 한판이 무의 중량(重量)을 지탱하여 힘받이 역할을 하므로 점차 무바대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송희종(16세기후반) 묘 출토 도포는 2점이 있다. 어깨바대 없이 뒷길의 안쪽에 앞길의 옆무를 고정하면서 무바대를 덧대었는데, 2점의 방법이 다르다. <Fig. 26-a>의 경우 명주 겹도포의 뒷길 안쪽에 무를 고정하고, 그 위로 안감과 동일한 명주 27×3cm의 무바대를 덧대어 감침질로 달았다. <Fig. 26-b>의 경우 모시 홑도포로 10×2.5cm의 모시 한 겹으로 무바대를 놓은 후 그 위에 무를 놓고 4땀 상침 하였다(Korean Traditional Clothing Research Institute of Pusan National University, 2007).
장옷은 총 124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12점의 유물에 바대가 있고, 바대 종류는 어깨바대, 고대바대, 깃머리바대, 겨드랑이바대이다. 세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이고, 고대바대는 삼각형이며, 깃머리바대는 직사각형, 겨드랑이바대는 타원형, 고름바대는 사각형이다<Table 5>. <Fig. 27>은 이응태(1556-1586년) 묘 출토 모시 홑장옷으로 깃머리바대는 좌우 모두 섶선 안쪽으로 들여 달린 목판깃형이다. 들여달린 목판깃의 깃머리 부분에 길과 연결된 섶의 시접을 반으로 접어 깃머리바대를 덧대어 부착한 후 곱게 박음질하였다. 안으로 들어갈 시접을 접고 포개어 깃의 처짐을 방지하는 역할과 함께 별도의 천을 대지 않고 힘받이 용도로 쓰이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판단된다. 장옷의 바대는 모두 홑옷에서 확인되며, 16세기, 17세기에서만 확인되었고, 출토된 장옷의 수량에 비해 바대의 부착 수량이 많지 않다. 이는 소요되는 옷감의 중량이 이음선이 많은 장옷의 조형적 특징에 따라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바대 부착 비율이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창의류는 총 307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10점에 바대가 있다. 바대 종류는 어깨바대, 겨드랑이바대, 곁바대이다. 세부 바대 형태는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이고,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 ㄱ자형이며, 곁바대는 사각형이다<Table 5>. 신경유(1581-1633년) 묘 출토 무문능 겹누비중치막 1점과 정재후(1624-1695년) 묘 출토 명주 솜누비중치막 1점을 제외한 홑옷에서 바대가 확인된다. 창의류는 총 307점으로 출토된 창의류의 수량에 비해 바대 부착 수량은 10점으로 많지 않다. 이는 창의류의 조형적 특징 중 트임으로 인해 소요되는 옷감 중량의 힘이 분산되므로 바대 부착 비율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바대는 대부분 홑옷에 부착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출토유물에서는 홑옷뿐만 아니라, 겹옷과 솜옷, 누비옷에서도 확인된다. <Fig. 28>은 신경유 묘 출토 무문능 중치막으로 1~2cm 간격의 솜을 두지 않은 무문능 옷감을 곱게 누빈 겹누비이다. 겹누비중치막 안쪽의 겨드랑이 부분에 ㄱ자형 겨드랑이바대가 5cm 정도 크기로 덧대어 있다. 중치막의 안쪽에서 겨드랑이 부위에 ㄱ자형 바대를 대고 고운 감침질로 고정하였으며, 바대의 겉에서 약간 소매쪽으로 넘어간 소매 배래선 일부분과 겨드랑이 부분, 옆선부분을 따라 징궈 놓은 것이 확인된다.
2. 포(袍)에 부착된 바대의 시기별 변화
분석대상 유물 총 1,062점 중 바대는 378점에서 확인되었다. 단령 101점 중 남자 단령 71점, 여자단령 9점 등 80점, 직령 117점 중 78점, 답호 78점 중 35점, 철릭 236점 중 119점, 액주름 44점 중 6점, 도포 60점 중 38점, 장옷 124점 중 12점, 창의류 307점 중 10점이다. 포류의 바대 보유율은 단령이 79%로 가장 높고, 직령 67%, 도포 63%, 철릭 50%, 답호 48%의 순서이다. 액주름 13%, 장옷 10%, 창의류 3%는 다른 포에 비해 부착 비율이 낮다<Fig. 29>. 이는 소요되는 옷감의 중량이 이음선이 많거나 트임이 많은 경우 등 각 포의 조형적 특징에 따라 힘이 분산되어 바대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깨바대는 주로 옷의 안쪽에 덧대어지며 분석대상 포류에서 모두 확인된다. 깃바대의 고대바대와 깃머리바대는 16~17세기에만 확인되는데, 단령, 답호, 액주름, 장옷에서 확인된다. 고대바대는 단령, 답호, 액주름에서 확인되며, 깃머리바대는 주로 장옷에서 확인된다. 겨드랑이와 무 부위의 바대는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이다. 옆선바대는 17세기 초까지 단령, 직령, 답호, 철릭에서 확인된다. 겨드랑이바대는 17세기 중반까지 모든 포류에서 보이며 철릭에서 더 많이 확인된다. 무바대는 17세기 중반까지 단령, 직령, 답호, 도포에서 보이며, 단령과 직령에서 바대 보유수량이 더 많다. 곁바대는 17세기 초부터 집중적으로 단령과 직령에서 확인되고, 철릭, 도포, 창의류에서도 확인된다.
16세기에는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많이 확인되고, 17세기에는 곁바대가 무바대보다 더 많이 확인된다.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많은 시기에는 곁바대가 적게 나타나고, 곁바대가 많은 시기에는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적게 나타난다. 16세기에는 포의 옆선이 길었기 때문에 무바대와 구별되는 옆선바대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무바대는 무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힘받이 용도로 덧대어졌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에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적게 나타나는 것은 전기에 비해 옆선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옆선, 진동 부분의 배래 시작점, 무가 서로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하단의 곁바대가 이 세부분을 한꺼번에 받쳐주기 때문이다. 무의 크기가 작아져 중량이 줄어들고 뒤로 젖혀져 고정되는 형태로 바뀌면서 무바대의 쓰임이 줄어든 것도 곁바대 하나로 합쳐진 배경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양한 바대들이 점차 사라지고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곁바대가 주를 이루는 단순화 현상은 옆선의 길이가 짧아지는 포의 조형적 변화로 인해 곁바대가 옆선바대, 무바대, 겨드랑이바대의 혼합형 바대 기능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고름바대, 단추바대는 16~17세기에만 확인되며, 주름바대는 16~18세기까지 확인된다. 띠고름바대, 띠고리바대는 17세기에서만 확인된다.
바대는 16~17세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에 바대가 많이 확인되는 것은 15세기의 출토복식 발굴 건수가 극히 적고, 16~17세기의 출토복식 발굴 건수가 많은 것과 비례한다. 때문에, 바대의 종류는 16~17세기에 어깨바대, 고대바대, 깃머리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 고름바대, 고리바대, 단추바대, 주름바대, 띠[帶]고름바대, 띠[帶]고리바대 등 13가지가 다양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어깨바대, 주름바대, 곁바대만 나타나고, 19세기에는 어깨바대와 곁바대만 확인된다. 이는 유물의 수습 건수가 줄어드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바대의 형태가 단순화되는 경향 때문으로 보인다.
어깨바대의 형태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으로 분류하였다. 一자형 어깨바대는 도포를 제외한 포류에서 확인되고, 凹자형은 모든 포류에서 확인되며, 단령, 직령, 철릭에서 더 많이 확인된다. U자형은 단령, 직령, 답호, 철릭에서 확인되며, H자형은 단령에서 많이 확인되고, 액주름, 장옷, 창의류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깨바대 형태의 시기별 변화는 16~17세기에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 확인되며, 18세기에는 一자형, 凹자형, 19세기에는 凹자형 어깨바대만 확인된다.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에서 확인되는 형태는 직사각형, 갈고리형, ㄱ자형, 별형, 사다리꼴, 소요형, 사각형, 타원형, 변형 사다리꼴로 분류된다. 바대 형태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16~17세기에는 갈고리형, ㄱ자형, 사다리꼴, 소요형, 사각형등 다양한 형태의 바대가 확인된다. 18세기에는 ㄱ자형과 사각형, 19세기에는 사각형만 확인된다. 변형 사다리꼴은 16세기에만 확인되며, 별형은 17세기에만 확인된다. 겨드랑이와 무 부위의 바대는 16~17세기에 바대의 형태도 다양하고 바대 수량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사각형은 모든 시기에 나타나며, 16~17세기에 많이 확인된다. 또한, 갈고리형, ㄱ자형, 사다리꼴, 소요형, 타원형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다가 18세기부터 점차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며, 18~19세기에는 바대 형태가 사각형만 나타나는 것이 확인된다. 16~17세기의 다양한 형태의 바대가 점차 단순화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Ⅵ. 결론
본 연구는 1400년대~1800년대(몰년 기준)의 출토복식 중 포류에 나타나는 바대에 관해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바대’는 기존에 사전이나 선행연구에서 주로 ‘홑옷’과 ‘안쪽’에 덧대는 것으로 정의되거나 설명 되었지만, 출토유물을 근거로 홑옷뿐만 아니라, 겹옷, 솜옷, 누비옷에 바대를 대었으며, 안쪽뿐만 아니라 겉에 대거나 안팎으로 이중부착된 것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 ‘바대’는 ‘힘이 집중되거나 닳아서 해어지기 쉬운 부분에 옷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는 천’으로 정의하여, 홑옷이나 안쪽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바대의 기능은 옷감의 손상을 방지하는 힘받이용이 기본이다. 또, 고운 바느질로 조형적 장식의 미를 더해 이중적 기능을 하는 것도 확인된다.
바대의 종류는 덧대는 부위 즉, 위치를 기준으로 13가지로 대별(大別)할 수 있다. 어깨바대, 깃바대(고대바대, 깃머리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 고름바대, 고리바대, 단추바대, 주름바대, 띠[帶]고름바대, 띠[帶]고리바대이다. 종류별 세부 형태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어깨바대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이고, 깃바대는 사각형과 삼각형이다. 옆선바대는 직사각형이고, 겨드랑이바대는 갈고리형, ㄱ자형, 타원형이며, 무바대는 소요형(小腰形), 사다리꼴, 사각형이다. 곁바대는 갈고리형, 사각형, 별형, 변형 사다리꼴이다. 고름바대는 사각형과 반원형, 철릭형이 있으며, 철릭형은 철릭형직사각, 철릭형사선, 철릭형 삼각이다. 띠[帶]고름바대는 사각형, 반원형이며, 고리바대, 단추바대, 주름바대, 띠[帶]고리바대는 사각형이다.
각 포에 부착된 바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남자 단령에서는 어깨바대, 옆선바대, 겨드랑이 바대, 무바대, 곁바대, 띠[帶]고름바대, 띠[帶]고리바대 등이 다양하게 확인된다. 전기에는 홑단령과 홑직령을 독립된 포로 제작해 따로 입었으므로 바대도 각각 부착되고, 17세기 이후 홑단령과 홑직령을 겹쳐서 징궈 고정해 한 점의 옷처럼 착장하는 시기에도 변함이 없다. 남자 단령의 세부 바대형태는 갈고리형, 사다리꼴, 소요형, 사각형, 별형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이에 비해 16~17세기 전반기에 집중되는 여자 단령에서는 홑옷임에도 바대가 없는 유물이 많다. 여자 단령의 바대는 확인되는 수량도 적고, 세부 형태도 사각형만 확인된다. 직령은 15~16세기에는 옆선바대와 무바대가 보이다가, 홑단령에 홑직령이 징궈지면서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나타나지 않으며, 凹자형 어깨바대와 사각형 곁바대가 동시에 나타난다. 이는 단령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이다. 답호의 바대는 어깨바대에서 특징적인 점이 확인된다. 김흠조(1461-1528)묘 출토 유물에서는 凹자형, U자형, H자형, 정담(1476-?년)은 一자형, U자형, H자형, 윤선언(1580-1628)은 一자형, 凹자형, H자형으로, 한 사람의 묘주에서 단일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어깨바대가 사용된다. 철릭은 홑옷과 겹옷에서 모두 나타나다가 김확(1572-1633) 묘 출토 이후부터 홑옷에서만 확인되며, 곁바대는 초기에는 확인되지 않고, 17세기 후반 이후부터 사각형 곁바대만 확인된다. 액주름은 총 44점의 출토유물 중 6점에서만 바대가 확인되며, 겨드랑이 아래 사다리꼴 무와 연결된 아래 큰 무에 소요되는 옷감에 비하면 다른 포류에 비해 부착된 바대의 수량이 적다. 도포는 한판이 없는 어깨바대가 먼저 나타나고,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한판이 확인된다. 한판은 겹도포를 지탱하여 힘받이 역할을 하므로 점차 무바대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장옷은 모두 홑옷에서 바대가 확인되며, 어깨바대는 一자형 어깨바대가 많다. 창의류는 신경유(1581-1633) 묘 출토 겹누비 중치막과 정재후(1624-1695) 묘 출토 솜누비 중치막에서 ㄱ자형 겨드랑이바대가 확인되며, 누비옷과 솜옷에서도 바대가 부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총 307점의 출토유물 중 10점에서 바대가 확인되어, 다른 포류에 비해 바대 부착 비율이 낮다.
총 79기(基)의 묘에서 출토된 포는 단령 101점, 직령 117점, 답호 73점, 철릭 236점, 도포 60점, 액주름 44점, 장옷 124점, 창의류 307점 등 총 1,062점이다. 이중 바대가 확인되는 출토유물은 총 378점으로 남자 단령 71점, 여자 단령 9점, 직령 78점, 답호 35점, 철릭 119점, 액주름 6점, 도포 38점, 장옷 12점, 창의류 10점이다. 바대 보유율은 단령 79%로 가장 높고, 직령 67%, 도포 63%, 철릭 50%, 답호 48%의 순서이다. 액주름 14%, 장옷 10%, 창의류 3%는 전체 출토품 중 바대 부착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이음선이 많거나 트임이 많은 경우 등 각 포의 조형적 특징에 따라 소요되는 옷감의 중량이 분산되기 때문에 무가 달리는 포류 중 바대 부착 비율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바대 종류의 시기별 변화는 다음과 같다. 바대를 덧대는 부위를 기준으로 13가지로 대별된 바대는 16~17세기에 가장 많이 확인되며, 어깨바대와 주름바대는 전 시기에 확인되고, 15세기에는 무바대가 확인된다. 16세기에는 띠고리바대와 띠고름바대를 제외한 모든 바대가 확인되며, 17세기에는 12가지 바대가 모두 확인된다. 띠고리바대와 띠고름바대는 17세기에만 확인되고, 18세기에는 주름바대, 곁바대가 확인되며, 19세기에는 곁바대가 확인된다. 겨드랑이와 무 부위의 바대는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가 있고, 15세기에 무바대, 16~17세기에 옆선바대, 겨드랑이바대, 무바대, 곁바대, 18~19세기에는 곁바대가 있다.
바대의 세부 형태는 시기별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전 시기 모두 확인되는 어깨바대의 형태는 16~17세기는 一자형, 凹자형, U자형, H자형, 18세기에는 一자형, 凹자형, 19세기에는 凹자형이 있다. 옆선과 겨드랑이부위 그리고 무 부위의 바대 형태는 15세기에는 소요형이 확인되며, 16~17세기에 직사각형, 갈고리형, 사다리꼴, 소요형,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지만,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지면서 18~19세기에는 사각형으로 단순화된다. 변형 사다리꼴은 16세기에만 확인되고, 별형은 17세기에서만 확인된다.
일부 유물을 실견하고 도록, 단행본, 출토유물 조사보고서 등의 문헌을 통해 분석하였으나, 바대는 미세한 부분으로 참고 자료에서 상세히 다루지 않은 경우가 많은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하여 바대의 연구 주제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며, 포류가 아닌 다른 복식의 바대에 관한 분석 등은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석사학위 청구논문의 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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