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패션 고찰 :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디자이너들의 국내외 활동과 연대별 디자인 특성을 중심으로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Korean fashion designers' domestic and international activities in the 1970s, as well as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work based on media materials. It also extracts the objective facts about contemporary Korean fashion history and establishes them as historical records. The research questions are as follows. First, who were the designers who continued to work until the 1970s among the first-generation and second-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and who were the third-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s emerging in the 1970s? Second, which domestic and international exhibitions and fashion shows reflected the social environments of the 1970s, and what were the activities of the participating designers? Third, what were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s of these designers’ works, and what were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s of fashion in the 1970s displayed in major fashion shows? Fourth, what facts about the history of contemporary Korean fashion are revealed through this study, particularly by comparing different media sources? The research methods used in the study included a literature review and content analysis. As a result, the third-generation designers who dominated the Korean fashion industry in the latter half of the 20th century emerged during this period. This was when their earlier movements and the exchange between the first- and second-generation designers established the basis for the Korean fashion industry at the end of the 20th century.
Keywords:
first-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Korean modern fashion history, second-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the 1970s Korean fashion, third-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키워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한국 근현대패션사, 제2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1970년대 한국패션, 제3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한국 근현대패션의 발전과정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 1960년대와 더불어 1970년대에 활동한 제1세대, 제2세대, 제3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1970년대는 서로 다른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활동한 시기로 패션사적 의미가 있으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이 시기에 활동한 제2세대와 제3세대 디자이너들의 행보는 뉴욕과 파리 진출 혹은 일본과의 교류 등의 단편적인 정보만이 알려져 있으며 이마저도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박윤정, 진태옥, 이신우, 오은환 등의 디자이너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주류로 활동한 디자이너들 자체가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다. 더불어, 노라노(노명자)와 앙드레김(김봉남) 이외에는 최경자를 주축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석한 국제복장학원 출신 디자이너들의 이름만이 최경자의 저서(Choi, 1999)에 나열되어 있고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은 고찰되지 않아 한국 근현대패션사에서 소외된 이 시기 디자이너들의 행보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매체 자료를 분석하여 한국 근현대패션 산업의 혁신기이자 시스템 구축기인 1970년대 활동한 제3세대 디자이너를 추출하고 이들과 함께 활동한 제1세대와 제2세대 디자이너의 행보를 고찰하여 1970년대 한국패션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혀내고자 한다.
2. 연구목적 및 방법
본 연구의 목적은 매체 자료를 근거로 1970년대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한국 디자이너들의 국내외 행보와 작품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객관적 사실을 추출하여 사료화하는 데 있다.
본고의 연구목적 달성을 위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1세대와 제2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중 1970년대까지 지속해서 활동한 디자이너는 누구이며, 1970년대에 새롭게 출현한 제3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는 누구인가이다. 둘째, 1970년대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국내외 박람회와 패션쇼는 무엇이 있으며 행사에 참여한 패션디자이너들의 행보는 어떠했는가이다. 셋째, 제2세대와 제3세대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1970년대 패션디자인의 특성은 무엇인가이다. 넷째, 매체 자료 비교검증을 통해 본 연구에서 새롭게 추출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은 무엇인가이다.
본고의 연구방법은 문헌연구와 내용분석이다. 또한, 연구문제 해결을 위해 본고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패션전문잡지 『여원』 등의 매체 자료 344점을 1차 추출하고, 이를 디자이너별, 연대별,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사건별로 2차 분류한 후 이를 심층 분석하여 연구 결과를 도출한다.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에서 심층 분석 연구가 진행된 노라노, 최경자와 1970년대 활동은 보이나 패션계의 주류에서 멀어진 제1세대 디자이너들은 연구대상에서 제외하며 이들의 경우는 제2세대와 제3세대와의 관계가 드러나거나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행보가 새롭게 추출된 경우에만 연구대상에 포함한다(Park, 2014a; Park, 2014b; Park, 2017; Park, 2019; Park, 2020; Park, 2022). 또한, 1970년대 디자이너들의 작품 분석 역시 제2세대, 제3세대 디자이너의 작품을 분석대상으로 한다.
디자이너들의 세대 분류는 데뷔 연도를 기준으로 1960년대 이전 양장점을 개점하거나 패션쇼 혹은 전시회를 개최한 경우는 제1세대 디자이너로,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패션컬렉션을 통해 한국패션계에 입문한 디자이너를 제2세대 디자이너로,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브랜드를 론칭한 디자이너들을 제3세대 디자이너로 분류한다.
3. 인용 및 표기법
본고는 최고 55년 이상 된 자료를 분석하므로 직접 인용의 경우 원전 표기법대로 기술하며, 간접 인용의 표기는 현재 국문법을 기준으로 하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주요 단어와 디자이너가 직접 선택한 패션 관련 용어의 경우는 원전 표기법에 따른다. 또한, 그림 제목은 본 연구에서 분석을 통해 추출된 것은 기호 삽입 없이 기술하며, 원전에서 직접 제시된 경우는 ‘『』’ 기호 내에 삽입한다. 참고문헌은 영문 번역과 원전 제목을 병기한다. 추가적으로, 디자이너 성명과 양장점 혹은 브랜드명 중에는 디자이너 성명을 우선 명기하며 양장점 명은 디자이너 성명 기술 후 ‘()’에 삽입한다. 다만, 최초 브랜드로 론칭되어 양장점명 혹은 브랜드명으로만 활동하여 디자이너의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와 원전자료에 디자이너 성명이 제시되지 않은 경우는 양장점 명 혹은 브랜드명만을 기술한다. 디자이너의 나열 순서는 연구자가 분석한 경우는 자음 순으로 정리하고, 매체 자료에서 언급된 부분은 원전 나열 순서를 유지한다.
Ⅱ. 1970년대 한국패션과 디자이너들의 동향
한국패션산업의 혁신기인 1970년대는 제1세대, 제2세대, 제3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이 함께 활동한 시기로 제1세대 디자이너 김경애(경기양재학원, 김경애옷본연구소), 김순희(제일편물), 노라노(노라노의 집), 명석축자(오리엔탈양재학원), 서수연(한국의 패션단체), 최경자(국제양장사)와 제2세대 디자이너 강귀희, 권갑순, 김비함(비함살롱), 김복환(세실양장점), 김봉남(앙드레김 의상실, 남성모드뷰틱), 박윤정(미스박테일러), 손경자, 양금철(엘리제양장점), 오은환, 윤정옥(윤스 모드 살롱), 제씨, 진태옥(프랑소와즈), 조영자(트로아조), 한계석 그리고 강숙희(강숙희살롱), 김매자, 김승자(석란의상실), 김영희(미세스高 의상실), 이신우(오리지날 李 살롱), 추혜정(드레스 살롱 B) 등과 같은 제3세대 디자이너들이 동시에 활동하며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김연주, 신연규, 카렌 H. 임(카렌즈 크리에이션) 등 해외 활동 디자이너들이 한국패션 시장에 입성한다. 더불어, 이 시기는 1972년 화신 레나운을 시작으로 1974년 LG 반도패션, 1977년 코오롱 벨라, 제일모직 라보떼, 삼성물산 등의 대기업이 고급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디자이너들이 1960년대부터 시작한 소규모 부티크 형태의 기성복 생산과 맞춤복 양장점을 병행하던 시기로 사회적 환경 변화에 맞추어 디자이너 패션 시장의 혁신이 요구된 시기이다. 또한, 1970년대 후반에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제일모직과 같은 기성복 브랜드들 역시 파리 프레타 포르테 전시회를 비롯한 유럽 6개국에 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한국 패션디자이너 마켓과 상업기성복 시장의 관계가 밀접해진 한국패션의 산업화 시기이다(Cheil Industries, 1978). 더불어, 1970년대는 제3세대 디자이너들의 출현기로 이들과 제1세대와 제2세대 디자이너들이 교류하며 20세기 중후반 한국패션의 발전을 이끈 시기이다.
본 연구는 1970년대 활동한 디자이너들의 행보를 밝혀내기 위해 1970년부터 1979년까지의 『여원』,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연구자료를 추출하였다. 잡지자료는 『여원』 1970년 1월호 11건, 2월호 8건, 3월호 10건, 4월호 7건 중 관련 자료 총 23건을 수합하였다. 또한, 신문 매체자료는 1970년 20편, 1971년 19편, 1972년 32편, 1973년 27편, 1974년 43편, 1975년 38편, 1976년 49편, 1977년 39편, 1978년 20편, 1979년 34편이, 매체별로는 『조선일보』 57편, 『동아일보』 64편, 『경향신문』 85편, 『매일경제』 115편으로 총 321편이 본 연구를 위한 기반 자료로 추출되었다. <Table 1>은 『여원』 자료의 디자이너별 분류로,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 그룹에서는 김경애, 김순희, 명석축자, 서수연이, 제2세대 패션디자이너 그룹에서는 권갑순, 김복환, 윤정옥, 한계석이, 제3세대 패션디자이너 그룹에서는 이신우, 이영우, 이방자, 김희자, 문경희, 김미사, 정훈, 최정자의 활동이 확인되었다. 또한, <Table 2>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자료를 제1세대와 제2세대 패션디자이너별로, <Table 3>은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자료를 제3세대 패션디자이너별로 분류한 것이다.
Ⅲ. 1970년대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국내외 박람회 및 패션쇼
1. 「Porte de Versailles Exposition, Paris」 기성복 박람회 출품: 대한무역진흥공사
1972년 10월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주관으로 디자이너들의 파리 진출이 시작되고 노라노를 비롯한 강귀희, 강숙희, 김매자, 김미사, 김승자, 김희, 이신우, 조영자, 진태옥, 추정혜 등의 디자이너들이 해외 진출의 기회를 얻는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이 박람회에는 1972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바이어 1만 5천여 명이 참가했다(French designer, 1972).
1972년 10월 11일 「빠리」 「뽀르뜨 베이사유」에서 열린 「빠리」 「여자용기성복전시회」의 첫 참가준비를 위해 무역공사는 한국의 실크 제품을 활용한 디자인 제작지도를 위해 「프랑스」의 젊은 모델리스트 「로베르 네리센」씨를 9월 10일 초청하여 디자이너 노라노와의 공조를 지원한다(French designer, 1972). 출품할 의상 30종과 스카프 10여종은 빛깔, 무늬, 모양을 모두 네리센씨가 디자인 한 것이고, 의상 제작은 노라노, 그밖에 동아염직, 홍일나염공업이 염색을 맡았다(French designer, 1972).
1973년 10월 20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26회 파리 여자기성복전시회」에는 3회째 박람회에 참가하는 노라노가 40여벌의 실크 제품을, 처음 참가하는 강귀희, 김미사, 김희 세 디자이너가 공동제작한 옷 20여점, 고급쉐터류제조 수출업체인 범일물산이 고급쉐터 40여점을 전시한다(Korean women’s, 1973; Luxury ready-to-wear, 1973). 세계 각국의 800메이커가 참가한 전시회에서 노라노는 실크로 만든 여자기성복 350벌 2만 1천달러 상당의 수출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Korean women’s, 1973; Park, 2014b; Popular at, 1973).
1977년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77 추계 여자 기성복 박람회」에는 신성무역ㆍ코 오롱ㆍ삼성물산ㆍ대우실업ㆍ조광피혁ㆍ국제피혁등 6개 업체와 디자이너 이신우의 의상 50여 벌 그리고 그동안 외국 바이어들에게 반응 좋았던 디자이너들의 의상 샘플 150여 점이 출품되어 한국관에 전시되고, 이 박람회에서 한국은 1백26만4천달러의 거래실적을 올린다(Mrs. Shin-woo, 1977; $1.26 milion, 1977). 전시의 메인 디자이너로 발탁된 이신우는 파리 가을, 겨울 박람회 참가에 앞서 같은해 2월 28일 조선호텔에서 여자기성복박람회 한국관의 출품작으로 구성된 실크패션쇼 품평회를 개최한다(Mrs. Shin-woo, 1977). 이신우는 “국내 9개 실크생산회사의 제품을 소재로 50점의의상이 선보였는데 내용은한복을 위시해 블라우스,드레스 등 실크의 부드러운질감과 화려한 색상을 살린것들”이라고 밝힌다(Mrs. Shin-woo, 1977, p. 4).
1979년 4월 7일부터 11일까지 프랑스에서 열린 「79년 파리여자기성복박람회」에서는 김승자, 트로아조, 강숙희, 김매자, 진태옥, 추정혜가 출품디자이너로 선정되며 주류 디자이너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파리박람회에 앞서 3월 14일 하오 2시 반 무역회관 7층 회의실에서는 출품작 발표회가 기획되어 디자이너 김승자(석란의상실), 트로아조, 강숙희(강숙희여자의류株), 김매자(편물패션코너), 진태옥(살롱 프랑소라스), 추정혜(드레스 살롱 B)씨 등 6명의 작품 30점이 소개된다(“The quality, 1979; 30 garments, 1979). 출품 대표작으로는 세계패션에 발맞추어 전체적으로 우아함과 실용성을 겸비한 앙상블 드레스, 목련을 그려 넣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살린 이브닝드레스, 대량생산이 용이한 고급 니트 등이며, 소재는 실크가 주류를 이룬다(30 garments, 1979).
2. 천연 실크 패션쇼 및 전시; 대한무역진흥공사, 대한잠사회, 한국생사수출조합, ㈜선경
1970년대는 한국 천연 견직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섬유업계의 생사 수출 증진과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대한무역진흥공사, 대한잠사협회, 한국생사수출조합의 주관 및 후원으로 패션쇼가 개최된다.
1970년대 공사지원의 첫 천연 실크 패션쇼는 1970년 5월 19일부터 6월 11일까지 일본에서 개최된 「실크ㆍ패션ㆍ쇼」이다(「Silk fashion, 1970). 행사는 대한무역진흥공사와 일본 미스꼬시백화점과의 계약을 통해 성사되었고 발표된 60착 중 35착이 천연 실크 제품이다(「Silk fashion, 1970). 패션쇼는 5월 19일~24일 미스꼬시니혼바시 백화점 매일 2회, 5월 26일~31일 미스꼬시신주꾸 백화점 매일 2회, 6월 6일 미스꼬시오사까 백화점 1회, 6월 7일~11일 미스꼬시오사까 백화점 매일 2회로 일본 전역의 미스꼬시백화점에서 개최되고 최경자의 인솔로 13명의 한국모델이 패션쇼에 직접 참가한다(「Silk fashion, 1970). 일본 행사에 앞서 5월 8일 하오 2시 조선호텔에서는 일본 행사를 위한 예행 쇼가 개최된다(「Silk fashion, 1970).
1974년 10월 30일 하오 5시 15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는 대미 수출목표 14억 달러를 달성하기위한 수출 증진 책의 일환으로 뉴욕 한국무역진흥공사 지점의 후원으로 노라노의 실크패숀쇼가 열린다(Korean quality, 1974). 패션쇼에는 한국산 실크 숙녀 의상 50여 점이 소개되고 10월 31일부터 이틀간 플라자호텔에서 실크전시회도 개최된다(Korean quality, 1974).
1970년대에는 실크 제품 수출을 위한 기업과 디자이너 공조가 나타나는데 1977년 2월 4일 주식회사 선경(대표 최무현)은 노라노양장점과 제휴를 통한 실크 제품 수출 추진을 알린다(Sunkyung Co., 1977). ㈜선경은 노라노양장점과 공동으로 여자 블라우스, 스커트 등 150만 달러 상당 실크 제품의 대미 수출 상담을 벌이고 있으며 실크 제품 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가공기술자를 초빙한다는 계획을 발표한다(Sunkyung Co., 1977). 또한, 선경은 100% 실크일 경우 염색이 잘 안되고 기계세탁이 곤란하기 때문에 실크와 면, 실크와 화섬을 혼방한 새로운 소재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힌다(Sunkyung Co., 1977). 정부지원 패션쇼와 기업과의 공조를 계기로 노라노는 1978년 미국 뉴요크에 「노라노의 집」을 열어 한국인이 디자인하고 국내산 실크로 제작한 옷을 세계에 주문판매 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뉴욕시장 공략을 위해 뉴욕 유학파인 후계자 웬디노를 영입한다(Ji, 1979b).
가볍고 촉감이 뛰어난 실크사 개발에 착안하여 편물디자이너 김매자는 1978년 4월 실크사로 제작한 「뉴우요오크」 니트웨어쇼우를 개최한다(Silk knit, 1978). 김매자는 “가는 실을 사용해서 부드럽고 유연한 질감을 내는 니트가 세계적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설명하며, 일정한 굵기의 실을 소재로 만들어지던 편물이 실의 꼬임새를 변화시킴으로써얻는 작은 재미를 거쳐 이제는 짜임새의 개발로 전혀 새로운 느낌을 부여하는 소재로 개발되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Silk knit, 1978, p. 5). 또한, 김매자는 “어깨에서 발끝까지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선의드레스를 만드는데는 실크니트를 따를 소재가 없을 것같다”는 평에 힘입어 “금속사를 섞은 실크니트드레스제작에 열중하고있으며 기능적이면서도 유연한 양면성을지닌 니트의 장점이 얇고 가벼워진 편물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임을 강조한다(Silk knit, 1978, p. 5).
1979년 3월 28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리는 「한국의 날」 행사에는 박윤정의 실크 쇼 개최된다. 제다여성복지회 총재인 파우지아 공주의 기획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장신구 공예가 이선호의 전시회가 초청 목적이고, 박윤정의 실크 쇼, 김문숙의 고전무용이 함께 소개된다(“Show the, 1979).
3. 면직물 패션쇼 및 바자회; 대한방직협회, YWCA, 미국 목화사절단
1970년대는 면제품의 수요개발과 소비의 저변 확대를 위한 대한방직협회, YWCA, 미국목화사절단 주관 및 후원의 면직물 패션쇼가 기획된다.
1970년 7월 9일 시민회관대강당에서 개최된 면직물 패션쇼에는 김양미, 윤정옥, 최영아, 한용욱 등이 참가한다. 대한방직협회 주최, 오리엔탈 양재학원 주관의 이 패션쇼는 면직물의 시원하고 깨끗한 멋을 살리고 퍼머넌트 프레스(구겨지지 않게하는 가공)와 소일릴리즈(때를 덜타게 하는가공)로 실용면을 살린 면직물을 소재로 하고 여름과 바다를 염두에 둔 비치웨어, 리조트 드레스, 레인코트 등이 주로 선보인 대규모 쇼이다(The cool, 1970). 특히, 의상에 맞추어 의상과 같은 천으로 만든 각종 모자(차양이 넓고 물결치는듯한 해트, 오똑하고 귀여운 토크, 점잖은 터빈)가 시선을 끈다(The cool, 1970).
1971년 5월 31일 조선호텔 볼룸 그리고 6월 1일 시민회관에서는 제3회코톤패션쇼가 YWCA의 주최와 방직협회의 지원으로 개최된다(The 3rd cotton, 1971). 저소득 직업여성 기숙사 설립모금을 위한 YWCA의 두 번째 행사로 美목화아가씨 패숀쇼이기도 한 이 행사에는 미국의 목화사절단인 「패트르시아 페리」양이 내한하여 대한방직협회의 세일즈프로모션 계획과 함께 면의 실용성과 우수성 그리고 소비증대를 위한 캠페인에 참가하고 노라노가 디자인한 100여 점과 미국 디자이너 의상 7점이 발표된다(American cotton, 1971; The 3rd cotton, 1971). 또한, 방직업계는 이번 쇼를 위해 새로운 짜임새와 색깔을 가진 신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여 노라노는 50점의 실물 디자인으로 발표한다(American cotton, 1971).
1972년 4월 11일 서울 YWCA 강당과 12일 시민회관에서 각각 오후 7시에 서울 YWCA와 대한방직협회가 주최한 제3회 목화아가씨 패션쇼에는 국내 9개 소모방직회사제품의 면직물을 소재로 디자이너 김비함씨와 20여 명의 국내 디자이너들의 작품 1백50여 점이 출품된 매머드 「패션ㆍ쇼」가 개최된다. 천연 코튼 만으로 만든 각종 의상 94점이 72년도 미국의 목화아가씨 「데이비 화이트」양을 비롯하여 국내 패션모델에 의해 선보여진 이 패션쇼에 발표된 의상은 14일부터 16일까지 신세계백화점 2층 코튼 코너에서 일반인을 위한 바자회를 통해 판매된다(Cotton lady, 1972). 또한, 14일에는 부산 극동호텔에서도 패션쇼가 개최되고 행사의 수익금은 서울 YWCA의 수영장건립기금에 사용된다(Applause for, 1972; Cotton lady, 1972).
1973년 4월 17일 하오 3시 국립극장에서는 「73년 코튼패션쇼」가 개최되는데 라니권, 김용환, 김희자, 문경희, 배천범, 신혜순, 심세웅, 이신우, 이영우, 최경자, 한계석, 한혜수, 허준 등의 디자이너들이 90여점의 면직물 의상을 발표한다(Cotton fabric, 1973; Cotton fashion, 1973). 대한방직협회와 국제복장학원 공동 주최로 개최된 이 행사에는 12명의 국내 디자이너와 더불어 피에르 가르뎅, 도날드 부룩, 틸 트레이너, 엘부존의 작품이 함께 발표된다(「Costume」, 1972; Cotton fabric, 1973; Cotton fashion, 1973). 미국의 35번째 목화아가씨 「데부라ㆍ푸러쯔」가 친선방문하여 모델로 참여하고 간편한 원피스로부터 정장의 드레스, 들놀이차림, 레인코트, 바지 등이 패션쇼에서 소개된다(Cotton fabric, 1973; Cotton fashion, 1973).
1979년 4월 26일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개최된 「79년 목화아가씨 코튼의상발표회」에는 배천범, 신혜순, 이신우, 진태옥, 트로아조가 참가하여 140여벌의 작품을 선보인다(79 「cotton」, 1979). 또한, 미시시피대학특수교육과 재학생으로 미국의 79년 목화아가씨로 선발된 「스잔ㆍ스나입스」양이 이 행사를 위해 23일 내한하여 방직협회가 마련한 패션쇼에 참가하고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ㆍ투피스ㆍ스포츠웨어 등 10점을 발표한다(79 「cotton」, 1979).
4. 해외 문화 교류 패션쇼 및 전시
1970년 5월 8일 하오 3시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는 일본에서 개최될 「엑스포 70」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최경자, 손경자, 이영우, 오은환, 이신우, 조용수, 정경자가 만든 한국 고유의 의상에서 현대 의상까지를 총망라한 의상들이 발표된다(Fashion information, 1970). 이 패션쇼의 작품 중 35점은 일본 미스꼬시백화점 실크 패션쇼에 출품된다. 다만, 매체 자료에서 일본 미스꼬시백화점 출품 예행 쇼는 오후 2시로 「엑스포 70」쇼는 오후 2시 반과 3시로 각각 다르게 기술되어 있어 해당 패션쇼들이 분리 진행이 되었는지는 병합 진행되었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엑스포 70」에 발표된 작품의 수 역시, 60여 벌, 53벌, 45점 등 매체별로 차이를 보인다(Fashion information, 1970; 「Silk fashion, 1970; Women’s event, 1970). 더불어, 작품들이 15일 일본으로 보내져 5월 19일부터 「도꾜」와 「오사까」에서 발표될 예정이라고 매체 자료에 기술되어있는데 이 행사는 「엑스포 70」 참가 후 대한무역공사가 추가로 기획한 미스꼬시백화점 협약 바잉쇼이다(Fashion information, 1970; 「Silk fashion, 1970).
1970년 10월에 오픈한 홍콩 한국무역관에서는 김순희의 편물 전시회가 개최되고, 출품작 중 소매도 없이 네모모양의 뜨개질에 목을 내밀 공간만내어 머리로 뒤집어써 있게한 판초가 인기로 사방에 흔들거리는 술이 히피들의 차림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The fluffy, 1970).
1970년 11월 2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볼티모어시 스튜어트 백화점에서 개최된 한국, 일본, 홍콩, 대만, 태국, 인도의 상품과 문화관광을 소개하는 페스티벌인 「극동 페스티벌」 행사에서 한국은 대한무역진흥공사 뉴욕무역관의 협조로 백화점 1층 쇼 윈도우 4개소를 차지하여 한국의 자수, 병풍, 자게장롱, 인형, 돗자리, 고려 및 이조 자기, 목기제품, 견직물, 경회루와 광화문 모형, 한복 입은 마네킹 등을 전시한다(「Far East festival」. 1970). 또한, 행사의 일환으로 11월 5일 시내 볼루 크레스트 노스에서는 앙드레김의 의상패션쇼가 열리는데, 현지 일간지인 『볼티모어선(The Baltimore Sun)』은 앙드레김의 의상이 “조용한아침의 나라의 아름다움을보여주었다”고 설명한다(「Far East festival」, 1970, p. 5). 당시 40점의 의류 가운데 일곱 벌이 패션쇼 직후 판매되었고, 전시관의 한국 상품 중 인기품목은 쉐터, 어린이용 편물, 여행가방, 작은 구슬백 등이었다(「Far East festival」, 1970).
1970년 11월 6일에는 재미한인디자이너협회(KAFDA)가 주최한 「코리어 패션쇼」가 뉴욕 시내 콤보도어 호텔에서 개최된다(「Korea fashion show」, 1970). 패션쇼에는 김명숙 KAFDA 회장 이하 신혜순, 유민자, 강학자, 차준아, 이정선, 유승희, 김옥자, 방금옥, 이은숙, 신현장, 제씨가 50여 점을 게스트 디자이너로 일본 대판(오사카)의 사끼다 기미씨(우에다디자인스쿨교수)가 다섯 점의 작품을 찬조 출품한다(「Korea fashion show」, 1970). 이날의 모든 수익금은 뉴욕시 퀸즈 소재 한인교회당 건축기금헌금으로 기부된다(「Korea fashion show」, 1970).
1972년 11월 19일 하와이 세라톤 와이키키호텔에서는 하와이 주지사부인과 하와이 법률가부인회 주최의 앙드레김 패션쇼가 개최된다(Andre Kim, 1972). 「하와이의 아름다운」, 「75년도의 세계」, 「코리아 환상곡」등 3부로 나뉘어 85점의 작품이 선보인 이 패션쇼에는 하와이 주지사 부인, 부주지사 내외가 참석하여 환영사를 맡고 하와이 법률가부인회 회원 450명, 한국총영사관, KAL지사, 허버트 최대 법관 부부 등 1200명이 초청되어 동양인이 많은 하와이에서 코리아의 이미지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Andre Kim, 1972).
1975년 9월 2일 미주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서 트로아 조씨는 대통령부인이 베푼 패션쇼에 작품 25점을 발표한다(Troa Joe talks, 1975).
편물디자이너 김매자는 1977년 4월 7일 뉴욕에서 각 신문 의상 담당기자에게 의상을 선보이는 프레스쇼를 개최한다(Knitwear designer, 1977). 1월 초 미국 무역상 더글러스 마일즈씨의 초청으로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리스 등에서 편물 의상 80점을 선보인 김매자는 미국의 세계적인 상품 시장 자문위원이자 2천여 회의 의상 쇼를 주최해서 수많은 의상디자이너를 발탁, 키워낸 의상비평전문가 마저리 리치 여사로부터 프레스 쇼를 주최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는다(Knitwear designer, 1977). 1978년 두 번째 진출한 뉴욕 패션쇼에서 김매자의 디자인은 단일 품목 가격 최고인 350달러를 낙찰받아 Neiman Marcus, Bergdorf Goodman 등 22개의 미국 백화점에 입점되고, 『Womans Daily』, 『Life Style』 등 패션 일간지들은 김매자의 디자인을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이라고 극찬한다(Mrs. Mae-ja, 1978). 김매자는 편물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독창성과 실용성으로 주목받는다.
서독 뒤셀도르프 뮐러예술대학에서 패턴 과정을 수료하고 프랑스 파리의 프라티크와모데른 의상디자인학원에서 디자인 과정을 수료한 후 76년 귀국한 김승자는 뒤셀도르프 뮐러예술대학교와 홀스트 젠거 기성복회사의 초청으로 1978년 8월 1일부터 9월 5일까지 독일 4개 도시에서 초청 의상발표회를 개최한다(Designer Mrs. Seung-ja, 1978). 패션쇼는 한국 민속 의상과 궁중의상에 바탕을 두어 구라파 인들의 체형에 맞게 변형한 작품 60점이 발표되는데, 김승자 디자이너 작품의 소재는 국산 실크와 순모, 주단, 쉬폰 등으로 색상은 흰색, 검정색, 코피색, 낙타갈색, 이끼녹색, 포도주색, 회색 등이 주로 사용된다(Designer Mrs. Seung-ja, 1978). 본, 뮌헨, 뒤셀도르프, 쾰른의 투어 발표회에는 한국모델로 루비나, 유기복, 재독한국인인 김기옥, 김일정이 출연한다(Designer Mrs. Seung-ja, 1978). 또한, 패션쇼의 찬조로 성악가 남덕순씨(쾰른음대 유학생), 서수연씨(재독 한국원로디자이너) 등도 행사에 참가한다(Designer Mrs. Seung-ja, 1978). 김승자는 독일 출국에 앞서 1978년 7월 13일 서울 유네스코 회관에서 쇼를 열어 발표작품을 공개한다(Designer Mrs. Seung-ja, 1978).
Ⅳ. 1970년대 연대별 디자인 특성 분석
본 장에서 분석한 1970년대 제2세대와 제3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이 제안한 연대별 디자인 특성은 <Table 4>와 같다.
1970년에는 1960년대의 영향으로 미니와 맥시스타일이 공존하고 채도가 낮은 칼라가 주류를 이룬다. Fig. 1은 「미셀양장점」 이방자의 1970년 흑장미 색감의 원피스로 테일러드 칼라와 흑장미의 색감이 성숙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주름 스커트, 흰 버클과 흰 네크 레이스로 포인트를 주어 젊음을 돋보이게 한 디자인이다(Mode, clothing, 1970). 반면, 윤복희의 1970년 테일러 칼라의 국방색 모직 코트인 Fig. 2는 하이 웨이스트 선에 같은 천으로 만든 벨트로 포인트를 주고 뒤편은 벨트 선에서 양옆으로 주름을 잡아 전체적인 실루엣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Winter mode, 1970).
1971년에는 새틴, 프린트 패턴 등 소재 자체의 화려한 속성과 컬러의 매치를 부각한 디자인이 보인다. Fig. 3은 박윤정의 1971년 3월 24일 세종호텔 패션쇼 작품으로 왼쪽은 진초록의 화려한 칵테일用불라우스에 진초록 트리밍을 준 코트를 매치한 것이며, 오른쪽은 고엽색의 롱자켓과 세계적으로 주니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핫팬츠를 중년용으로 소화 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Two designs, 1971). 이와는 다르게, Fig. 4는 강숙희의 1971년 11월 18일 하오 6시 조선호텔 볼룸에서 개최된 자선 패션쇼에서 발표된 불규칙적 두께의 가로 스트라이프 패턴 실크 원피스로 샤넬라인의 스커트에 가죽 벨트를 조화시켜 벨트를 멋있게 매는 방법을 지도해주는 효과까지 곁들인 작품이다(Fur and, 1971; Short information, 1971).
1972년에는 1971년 이브 생로랑 컬렉션에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보인다. Fig. 5는 카렌 H. 임의 폴리에스텔저지 슈트로, 카렌은 밝은 봄기운을 나타내기 위해 화려한 블라우스를 받쳐입으면 직장여성, 대학생들에게 부담 없는 정장이 된다고 설명한다(Take off, 1972). 반면, Fig. 6은 1972년 10월 31일 하오 3시 신세계백화점 5층 카사빠보에서 윤영섭의 새로운 기성복점 「윤스ㆍ패션ㆍ부틱」 개설 기념 「오프닝ㆍ쇼」 전경으로 “간단한 초대에 입을 수 있는 빨간색의 롱스커트와 샤쓰 위에 희고 부드러운 털반 코트를 곁들여 한층 우아한 멋을 풍긴” 디자인이다(Harmony of, 1972, p. 6).
1973년에는 1960년대의 주류 트렌드였던 히피, 록, 우주시대의 콘셉트가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재해석된다. Fig. 7은 양금철의 1973년 1월 13일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도불기념 패션쇼의 원피스와 팬츠 수츠로 작품은 “금년세계적인유행의추세를 따랐다”고 평가된다(Showcasing over, 1973, p. 5). 또한, Fig. 8은 1967년에 도미 후 남녀의상과 모자 등을 연구하고 돌아온 김연주의 1973년 12월 12일 하오 3시 YWCA 중흥당에서 개최된 귀국발표회 작품으로 케이프형의 풍신한 실루엣 코트이다(About 40, 1973).
1974년에는 프린팅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하학, 꽃 등 다양한 패턴 원단의 활용이 확대된다. Fig. 9는 1974년 김영희(미세스高)가 발표한 오피스 레이디용 복장으로 삼각형이 반복된 기하학 패턴 셔츠에 솔리드 와이드 팬츠를 매치한 것으로 디자이너는 작품이 신입사원들의 복장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신선한 품위를 풍기는 옷이라고 설명한다(Designer 「Mrs. Goh」, 1974). 반면, Fig. 10은 하영애의 1974년 피서지에서의 비치 드레스나 홈웨어 등 多目的用코튼 소재 드레스로 볼드한 꽃무늬 패턴이 돋보인다(Young-ae Ha’s, 1974). 디자인은 “엾고진한 하늘색,흰색꼴무늬가 어울어진 이드레스는 우선 끈을 사용, 목뒤로 십자모양으로 묶었고 가슴밑 부분을 절제해서(엠파이어라인)잔주름을 촘촘히” 잡은 것이 특징이다(Young-ae Ha’s, 1974, p. 6).
1975년에는 1930년대의 페미닌ㆍ엘레강스 스타일이 주목받는다. Fig. 11은 이신우의 1975년 흑색원피스로 흰벨트에 검은색 모자를 받혀 옷매무새를 노ㆍ슬리브의 복고풍으로 디자인한 것이다(New work, 1975). 또한, Fig. 12는 앙드레김의 1975년 8월 19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순방 패션쇼우 작품 중 하나로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드레스에 난초꽃수와 쇼올로 우아함을 강조한 작품이다(Traditional beauty, 1975).
1976년은 니트 등 소재의 본질적 속성이 부각되는 디자인과 더불어 개인의 개성이 강조된 스타일이 제안된다. Fig. 13은 편물디자이너 김매자의 1976년 수영복 작품으로 “세퍼레이트 스타일에 가운을 매치하고 아직까지는 니트 수영복을 거의 입지않지만 신축성이 뛰어나 뚱뚱하거나 마른체형에 구애받지않고 누구나 무난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고 디자이너는 설명한다(Swimsuit for, 1976, p. 5). 이와는 다르게, Fig. 14는 트로아조의 1976년 기능적인 자켓과 통이 좁은 바지로 올겨울 유행 평상복으로 제안한 것이다(Ready to wear, 1976). 트로아조는 기능적이고 풍성한 빅 자키트에 「프랑스」에서 시가렛 판탈롱, 에뚜아 판탈롱이라 불리는 바지를 매치하고 바지 위에다 넓고 긴 부츠를 매치시켜 텍사스웨스턴웨어의 경쾌한 스타일을 제안한다(Ready to wear, 1976).
1977년에는 미디 스타일과 자연스러운 드레이핑 볼륨이 특징이다. Fig. 15는 진태옥의 1977년 3월 14일 하오 2시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77년도 봄ㆍ여름을 위한 「프랑솨즈 패션쇼」의 진한 갈색의 실크 투피스로 바이어스로 드레이프를 만든 벌룬 슬리브가 특징이다(Comfortable S/S, 1977). 진태옥은 흰색ㆍ베이지ㆍ브라운이 어울린 삼각의 스카프와 상의의 벨트, 스커트의 단을 통일하여 산뜻한 멋을 담아낸다(Comfortable S/S, 1977). 더불어, Fig. 16은 김청의 박스형 짧은 자켓과 프리츠 스커트 수트로 커다란 칼러가 짧은 길이에 안정감을 주며 소재는 울 크레이프를 사용한 작품이다(Kim, 1977).
1978년에는 클래식 스타일과 캐주얼 스타일이 공존한다. Fig. 17은 주식회사 크레송 대표 노숙희 디자이너의 1978년 3월 4일 하오 5시와 7시 두 차례에 걸쳐 조선호텔 볼룸에서 개최된 봄 여름을 위한 국제패션쇼 전경으로, 작품은 코튼을 소재로 한 빅 스타일의 흰색블라우스와 가우초 스타일의 검은 바지를 매치하여 활동적이고 멋을 겸한 평상복 캐주얼을 제안한다(Light middle, 1978). 반면, Fig. 18은 김매자가 개발한 실크絲로 제작한 플리츠 니트 드레스로, 플리츠의 느낌이 나도록 만든 의상은 체형의 결점을 커버하고 금속絲를 섞은 실크 니트를 사용하여 드레시한 멋을 살린 디자인이다(New wave, 1978).
1979년은 볼륨감 있는 스타일의 앙상블이 보인다. Fig. 19는 김승자가 1979년 4월 7일부터 11일까지 프랑스에서 열리는 79년 파리여자기성복박람회에 출품한 작품 중 하나로 잔잔한 무늬의 베이지색 실크를 소재로 한 앙상블 드레스와 재키트이다(Presentation of, 1979). 또한, Fig. 20은 1979년 10월 12일 레스토랑 「자당」에서 개최된 클라라 윤의 수재민을 위한 자선패션쇼 전경으로 수트와 코트 착장의 앙상블은 슬림한 어깨와 상반되게 스커트에는 볼륨을 주고 부드럽고 넓은 벨트로 허리선을 강조한 스타일이다(Clara Yoon’s, 1979).
V. 매체 분석을 통해 추출된 한국 근현대패션사적 사실
1.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및 국외 활동 디자이너들의 국내 진출
1970년대는 1960년대 최경자, 노라노, 앙드레김 등 일부 디자이너에게 집중된 해외 진출의 기회가 대한상공회의소, 대한방직협회, 대한잠사협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다수의 디자이너에게 확대된 시기이다. 최경자, 손경자, 이영우, 오은환, 이신우, 조용수, 정경자 등은 정부의 지원으로 1970년 5월 일본에서 개최한 「엑스포 70」에 53점의 작품을 출품한다(Fashion information, 1970). 또한, 1973년 8월에는 런던에서 개최된 제15차 국제복장상공연합대회에 한국 대표 10명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 중 이순신(해창양복점)의 작품이 ‘후리스타일야회복부문’에서 입선을 수상하여 전체 우수작 10점에 선정되는 성과를 얻는다(10 industry, 1973). 더불어, 1973년 8월에는 뉴욕무역관의 지원으로 한국 디자이너의 제품이 「삭스」 5가 의류상점에 입점되어 현지 고객의 호평을 받는다(Korean clothing, 1973). 또한, 1973년 노라노, 강귀희를 필두로 6회에 걸쳐 정부가 지원한 「파리여성기성복박람회」는 1977년 이신우, 1979년 김승자, 진태옥, 김매자, 트로아조, 강숙희, 추정혜가 출품디자이너로 선정되어 주류 디자이너의 세대교체가 확인된다(Functionalism sweeping, 1973; Korean clothing, 1977; Park, 2017; Troa Joe, 1979; 150 pieces of, 1979).
1970년대에는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국이 확대되는 196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해외 활동을 시작한 앙드레김은 1972년 12월 하와이, 1973년 9월 이란 테헤란, 1975년 8월과 9월에 걸쳐서는 동남아시아 자카르타, 쿠알라룸프, 싱가폴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며, 기존의 뉴욕, 파리, 동경에 한정되었던 해외 시장의 범위를 확장한다(Andre Kim, 1972; Andre Kim(designer), 1973; Traditional beauty, 1975). 또한, 1973년 양금철이 파리에, 1974년 김영희(미세스高)가 뉴욕에 진출하고, 1975년 트로아조는 코스타리카에서 영부인 주최 패션쇼를 그리고 편물디자이너 김매자는 1977년 뉴욕을 비롯한 미주 주요 도시에서 투어 패션쇼를 개최하며 성과를 얻는다(Designer Mrs. Mae-ja, 1977; Geum-cheol Yang, 1973; Troa Joe talks, 1975). 더불어, 1977년에는 한복디자이너 김정현이 유럽 의류판매회사 몬디얼 사를 통해 벨기에 브뤼셀에 175점의 수출계약을 체결하며 행보를 넓힌다 (Korean clothing, 1977).
1970년에는 재미한인디자이너협회(KAFDA) 소속 디자이너 김명숙, 신혜순(KAFDA 회장), 유민자, 강학자, 차준하, 이정선, 유승희, 김옥자, 방금옥, 이은숙, 신현장, 제씨가 연합 컬렉션을 개최하며 국내 진입을 시도한다(「Korea fashion show」, 1970). 또한, 같은 해 미국에서 활동한 카렌 H. 임이 한국 대일산업과 3년 계약으로 10월 9일 서울세종호텔 해금강홀에서 첫 패션쇼를 개최하며 국내에 진출한다(Mrs. Karen Lim, 1970). 이후, 1973년에는 미국에서 김연주가, 1975년에는 에르메스 디자이너직을 고사하고 파리에서 신연규가, 그리고 같은 해 1961부터 오리엔탈양재학원을 운영하며 한국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명석축자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국내시장에 진입한다(Children clothing, 1975; Korea-Japan exchange, 1975; Mrs. Yeon-Ju Kim, 1973). 더불어, 1978년에는 파리와 서독에서 활동한 김승자(석란의상실)가 한국적 콘텐츠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을 시도한다(Introducing Korean, 1978).
2. 디자이너와 기업의 공조; 한국나일론, 콜롱상사, 제일모직, 대일산업,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1970년대는 기존 천연섬유의 개량과 새로운 합성섬유의 개발로 인해 디자이너와 섬유 기업의 협업이 확대된다. 또한, 고급 디자이너 기성복의 정착으로 백화점과 디자이너의 공조가 나타난다.
1971년 1월 20일 하오 6시 칼호텔 26층 「뱅퀴트ㆍ룸」에서는 실크를 모티브로 개발된 합성 직물인 코니실크 패션쇼가 개최되는데 이 행사에는 최경자, 한계석, 라니권, 문경희, 최정자, 이신우 등의 디자이너들이 참가한다(Kony silk, 1971; 「Easyㆍsilk」, 1971). 패션쇼를 기획한 한국나일론(대표이사 이동찬)은 「콜롱ㆍ스파클론」 (속칭 「빤짝이나일론」사)을 개발하고 이 제품의 시장화를 위해 판매회사인 콜롱상사가 제조한 새로운 합성 직물인 「코니ㆍ실크」를 소재로 한 「이지ㆍ실크 패션ㆍ쇼」의 개최를 알리며, 일종의 이형단면사의 「콜롱ㆍ스파클론」은 이미 미국의 듀퐁, 일본의 도레이, 데이진 등에 의해 만들어져 널리 판매되고 있는 나일론사라고 설명한다(「Easyㆍsilk」, 1971). 콜롱 스파클론은 순수 실크의 촉감과 윤택 멋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집에서 마구 빨아도 되고 구김살이 가지않는 실용성을 살린 것이 특징으로 협업 디자이너들은 미니, 미디, 맥시, 판탈롱 등 다양한 양장은 물론 한복까지 4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여 발표한다(Kony silk, 1971).
1975년 12월 3일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는 제일모직주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및 김경애옷 본사, 국제양모사무국한국지부후원으로 75년겨울, 76년봄모드를 위한 「로제트패션쇼」가 개최된다(Rosette fashion, 1975). 패션쇼에서는 이신우, 허준, 배천범씨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 51명이 소모 및 방모 숙녀복지를 소재로 원피스 7점, 슈트 9점, 앙상블 5점, 코트 14점, 팬티슈트 10점, 캐주얼웨어 6점을 루비나, 이희재, 변자영 등 8명의 모델이 착용하여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제일모직에서 개발한 골덴 니트로 제작한 8점도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Rosette fashion, 1975).
1978년 10월 9일 하오 2시ㆍ5시 하이야트 호텔에서는 국제여성디자이너협회 한국지부(회장 트로아 조) 창설 기념 추동모드 패션쇼가 대일산업의 지원으로 개최되어 김희, 오리지널 리, 트로아 조, 윤스 등 4인의 디자이너 작품 60여 점이 발표된다(Wide sleeves, 1978). 앙고라, 알타카, 캐시미어, 카멜등 순모를 주제로한 패션쇼에는 코트, 원피스, 드레스, 수츠, 투피스 등 평상복들이 순모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베이지, 상아색, 검정, 분홍 등 부드러운 자연색으로 디자인된다(Wide sleeves, 1978). 또한, 1년 후인 1979년 9월 26일 오후 2시, 5시 하이야트호텔 볼룸에서 국제여성디자이너협회 한국지부가 주관하고 대일산업이 주최한 여성디자이너 의상발표회에서는 트로아趙, 오리지널李, 클라라尹, 김희, 꺄르벤鄭씨가 각각 20여 점씩 가을 겨울 의상을 선보인다(Female designer, 1979).
직영체제로 유통업계를 주도하고 있던 신세계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은 1970년대 중반부터 의류중심으로 경영방식을 전환하고 1976년 후반부터는 유명 디자이너를 적극적으로 유치한다. 신세계백화점은 노명자의 「노라노」, 박윤정의 「미세스박」, 김매자의 「김매자」, 조경희의 「조세핀조」 이외에도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화지의 「이화지코너」를 4월 1일, 뉴욕파 신혜순의 「신스ㆍ부띡」을 5월 6일에 개장하고, 반면 미도파백화점은 김영희의 「미세스高」, 이신우의 「오리지날李」, 조영자의 「트로아조」, 김재권의 「바로크」, 진태옥의 「프랑소와」, 김매자의 「김매자코너」 등을 오픈한다(Popular designers, 1977). 더불어, 이 백화점들은 고급 기성복메이커인 논노, 반도, 모라도 등도 디자이너 기성복과 함께 입점시켜 상품 경쟁력을 높인다.
3. 이외의 패션사적 사실
1970년대 명동에는 150여 개의 양장점이 성업중이었으나 1960년대와 다른 점은 20%만이 주요거리 1층에 위치하고 나머지는 2층 혹은 3층에 매장을 열어 고정고객을 중심으로 운영한다(Seoul’s new, 1971). 또한, 1층에 자리 잡은 양장점들은 살롱 문화의 산실이 되어 낮에는 의상실로 밤에는 문화계 인사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된다(Seoul’s new, 1971).
1960년대 신생활복장운동에 참여하며 생활복개선에 힘쓴 제1세대 디자이너들은 1970년대에도 국민의 의생활 개선을 위한 발표회를 기획한다. 1970년 3월 3일 오후 3시 세종호텔 해금강홀에서 서수연이 대표로 있는 「한국의 패션단체」 주최, 문화공보부 후원으로 국민의생활 발표회가 개최된다(Clothing research, 1970; 「National life, 1970). 행사에서는 각 체형 및 성별에 맞는 옷차림을 기준으로 숙녀복은 서수연, 김복환, 김미사가, 신사복은 정훈, 편물은 권갑순, 김순희, 한복은 손경자가 120여 작품을 발표한다(Clothing research, 1970; National clothing, 1970). 10대부터 40대까지 세대별로 나누어 외출복, 학생복, 스포츠웨어, 홈웨어, 초대복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경우에 맞는 의상을 제안한 이 발표회에서 디자이너들은 세대와 목적에 맞는 실질적인 의상 개선 사례를 제시한다(National clothing, 1970).
1972년 10월에는 국제양모사무국(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 한국사무소의 첫 사업으로 『IWS뉴스』가 발간되어 패션계 및 학계에 양모 섬유에 대한 소식을 알리는데 이 잡지는 런던에서 발행되는 『울ㆍ뉴스』의 내용을 정리하여 울 섬유류의 유행을 제시한 것이다(Publishing 「IWS News」, 1972).
1970년대 삼성물산에서는 컴퓨터 시스템을 패션산업에 이미 적용하고 있었다. 삼성물산은 컴퓨터를 이용한 컬러 매칭(염료배합)이라는 기술을 통해 정확한 색을 값싼 가격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며 이 기술 덕분에 제일모직은 한해 염료비를 10~40%까지 줄여 연간 수억 원의 절감효과를, 제일합섬은 1973년 기술 도입 이후 인력, 제품제작 시간의 감소와 더불어 외국 바이어로부터의 품질 클레임이 줄었고, 이미 해외에서는 유행 트렌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하는 시스템이 정립되었다고 설명한다(Kang, 1978).
1960년대부터 활동한 제2세대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1974년 7월 20일 「남성모드뷰틱」 개점에 맞추어 조선호텔 그랜드홀에서 남성복 패션쇼를 개최하여 170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사업을 확장한다(Andre Kim men’s, 1974). 3부에 걸쳐 170점의 작품이 발표된 이 패션쇼의 1부는 여름 바캉스를 위한 경쾌한 스포츠쟈키트와 샤쓰팬츠, 2부는 타운 웨어와 진스 스타일, 3부는 실용적인 쟈키트와 수츠가 주류이다(Andre Kim men’s, 1974). 컬렉션은 검은 색조를 중심으로 그 밖의 악세사리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여성 패션과는 대조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남성 모드를 새 시대에 맞게 발돋움시키려는 노력이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Andre Kim men’s, 1974).
1961년 9월 1일 국산품의 질적 향상과 사치품근절을 위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제정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밀수 규모의 대형화가 나타나는데 부정외래품을 포함한 각종 밀수 적발 실적은 1970년 26억원, 1971년 38억원, 1972년 63억원, 1973년 38억원, 1974년 41억원, 1975년 5월 말까지 31억원으로 이중 직물류가 38%로 가장 많았다(Smuggling arrests, 1975). 이에 밀수 근절을 위해 정부는 1970년 4월 14일 관세청을 신설하고, 이를 계기로 영화배우, 가수, 특권부유층 부인들을 상대로 외국산 복지로 옷을 만들어 판 「미스박 테일러」의 박윤정, 「오리지날李」의 이창우(이신우), 「트로아조」의 조영자, 「반스타일」의 이상범의 양장점을 급습해 독일제 빌로오도 등 시가 1,088만 원 어치의 외국산 옷감을 압수하고 이들을 관세법 위반 혐의로 1976년 1월 31일 구속을 결정한다(Finance Minister, 1961; Four Yangjangjeom, 1976; Military Manpower, 1970). 조사에서 「미스박 테일러」는 독일제 빌로오도 등 110종 시가 650만 원 상당의 옷감을 숨기고 있었으며 「오리지날李」의 이창우는 일제 빌로오도 등 22점 20만 원, 「트로아조」의 조영자는 일제 저어지 등 14종 시가 18만 원, 「반스타일」의 이상범은 일제 털오우버지 등 30점 400만 원 상당의 제품이 적발된다(Four Yangjangjeom, 1976). 특히, 관세청은 미국으로 도피한 박윤정을 긴급수배하고 명동 시내일류 양장점에 외국산 복지가 다량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한다(Four Yangjangjeom, 1976).
1979년에는 「脫유행 모드」의 정착으로 디자이너의 패션쇼뿐만 아니라 매년 새로운 복지와 패션을 소개하던 제일모직 같은 섬유업체에서도 패션쇼의 기획을 취소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대중의 트렌드는 실용적 개성주의의 경향이 두드러진다(Ji, 1979a). 또한, 1979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된 파리기성복박람회를 참관한 디자이너 김경애는 한국관을 위치 좋은 곳에 보다 넓게 지어주고 모델도 일류로 쓰게해 주는 등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박람회 참가에 선정된 디자이너들과 업자들 대부분이 바이어들과 계약을 하고 오는데 그 가격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어서 귀국 후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다(Designer Mrs., 1979). 하지만, 한국인의 봉제 실력이 뛰어나 상품의 경쟁력이 있고 우리나라도 의류가 주요 수출품목인 만큼 미국의 칼마트처럼 상설의류전시관이 필요함으로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한다(Designer Mrs., 1979).
Ⅵ.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매체 자료를 근거로 1970년대 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한국 디자이너들의 국내외 행보와 작품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패션사의 객관적 사실을 추출하여 사료화하는 데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 1970년대 활동이 확인되는 제1세대 디자이너는 김경애(경기양재학원, 김경애옷본 연구소), 김순희(제일편물), 노라노(노라노의 집), 명석축자(오리엔탈 양재학원), 서수연(한국의 패션단체), 최경자(국제복장학원)이며, 제2세대 디자이너는 강귀희, 권갑순, 김비함(비함살롱), 김복환(세실양장점), 김봉남(앙드레김 의상실, 남성모드 뷰틱), 김청(김청의상실), 박윤정(미스박 테일러), 손경자, 양금철(엘리제양장점), 오은환, 윤정옥(윤스 모드 살롱), 제씨, 진태옥(프랑소와즈), 조영자(트로아조), 하영애(로뻬의상실), 한계석이다. 또한, 제3세대 디자이너는 강숙희(강숙희살롱), 강학자, 라니 권, 김매자, 김명숙, 김승자(석란의상실), 김미사, 김양미, 김옥자, 김용환(에로스양장점), 김연주, 김영희(미세스高 의상실), 김희, 김희자, 노숙희(크레송 대표), 문경희, 방금옥, 배천범(석경의상실), 신연규, 신현장, 신혜순, 심세웅, 이방자(미셀의상실), 이상범(반스타일), 이순신(해창양복점), 이신우(오리지날 李 살롱), 이영우(비쥬의상실), 이은숙, 이정선, 카렌 H. 임(카렌즈 크리에이션), 유민자, 유승희, 윤영섭(윤스 모드 살롱, 윤스패션 부틱, 클라라 윤), 정경자, 꺄르벤 정, 정훈, 조용수, 차준아, 최영아, 최정자, 추정혜(드레스 살롱 B), 한용욱, 한혜수, 허준(듀엣의상실)이었다.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는 디자이너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19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디자이너들 중에는 기존에 사용했던 양장점 명을 시대에 맞게 변경하거나 또 다른 브랜드를 론칭하는 사례가 있었다. 「윤스 모드 살롱」과 「윤스 패션 부틱」으로 활동한 윤영섭은 이 시기 「클라라 윤」을 론칭하였다. 또한, 「노라노의 집」의 노라노는 부틱 명을 변경하지는 않았으나 뉴욕 진출을 계기로 30세의 신예 디자이너 웬디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브랜드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였다. 더불어, 김봉남은 1974년 「남성모드뷰틱」을 론칭하며 사업을 확장하였다. 추가적으로, 제3세대 디자이너 중에서는 실크 니트로 뉴욕에 진출한 김매자가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기존의 파리와 뉴욕에 주로 진출한 디자이너들과는 다르게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김승자가 독일 시장에 진입하고 이후 김승자는 국내시장에서도 주류 디자이너로 급부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는 의류산업의 수출 증진을 위해 정부주도하에 디자이너들은 파리 기성복 박람회 진출 기회를 얻었다. 또한, 천연 실크 패션쇼와 면직물 패션쇼가 정부 및 관련 업체의 후원으로 개최되었으며 이 행사를 통해 디자이너들의 해외 시장 진입이 확대되었다. 우리 천연 실크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패션쇼는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대한잠사협회, 한국생사수출조합의 주관 및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반면, 실크류 인조섬유 홍보 패션쇼는 섬유 기업 혹은 협회가 기획하였다. 또한, 면제품의 수요개발과 소비의 저변확대를 위한 패션쇼는 대한방직협회, YWCA, 미국목화사절단 주관 및 후원으로 열렸다. 추가적으로, 1970년대에는 기관의 주도로 해외 패션쇼 진출 이전에 국내에서 예행패션쇼를 열어 품평회를 개최하였다.
대한무역공사의 지원으로 처음 진출한 1972년 10월 11일 「빠리」 「뽀르뜨 베이사유」의 박람회에서 발표된 한국 작품은 프랑스에서 초청된 모델리스트 로베르 네리센이 의상 30점과 스카프 10종을 디자인한 것으로, 이를 의상은 노라노가 제작하고 그 밖의 제품은 동아염직, 홍일나염공업이 염색을 맡아 공동협업으로 출품작을 완성한 것으로 확인되어 해당 박람회의 출품 디자인은 노라노의 단독작품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첫 박람회 이후에는 노라노는 직접 디자인한 작품을 출품하였다.
실크와 면제품 이외의 제품군인 모직과 합성섬유 부문에서도 디자이너와 기업의 공조가 활발히 이루어져 대일산업, 제일모직, 콜롱상사, 한국나일론 등이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였다. 또한, 백화점들의 사업 방향이 의류산업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신세계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은 해외 유학파 디자이너들을 전속디자이너로 초빙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 유명 디자이너의 기성복매장을 단독으로 유치하여 사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제1세대와 제2세대 디자이너들이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가브리엘 샤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과는 다르게 1970년대 제3세대 디자이너들은 이브 생로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1970년대는 미니와 맥시 스타일, 캐주얼과 클래식 등 복합적인 스타일이 공존하였으며 섬유 프린트 기술의 발달과 기성복의 확산으로 인해 패턴이 있는 원단이 유행하였고, 소재의 본질적 속성이 부각 된 디자인들이 주목받았다.
결론적으로, 한국 패션산업의 혁신기인 1970년대는 제2세대와 제3세대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디자이너 브랜드와 상업브랜드가 함께 고급기성복 시장을 이끌어 나갔다. 이 시기는 대기업이 고급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소규모 부띠크의 형태로 기성복을 생산하던 디자이너 패션계의 혁신이 필요했던 시기로 여성복 시장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남성복 시장은 상업브랜드가 트렌드를 주도하였다. 또한, 1970년대는 20세기 후반 한국패션을 이끌어 나간 제3세대 디자이너들의 출현기로 이들의 초창기 행보와 제1세대와 제2세대 디자이너들과의 교류는 20세기 후반 한국패션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2S1A5A2A0104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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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k fashion show」 held in Japan area on the 19th of next month [ 「실크패션쇼」 개최 來19일日本등지서]. (1970, April 27). Meail Business News, 4.
- Silk knit, a new wave in the fashion industry [패션가의 새물결 실크 니트]. (1978, July 7). Dong-A Ilbo, 5.
- Smuggling arrests increased significantly by 226% compared to last year [작년比2百26% 密輸檢擧크게늘어]. (1975, July 2). Dong-A Ilbo, 2.
- Sunkyung Co. Ltd. promotes export of silk products [鮮京,실크製品 輸出추진]. (1977, February 4). Meail Business News, 5.
- Swimsuit for this summer [올여름의 水泳服]. (1976, June 7). Dong-A Ilbo, 5.
- Take off your heavy coats … 「spring glad rags」 recommended by a ready-to-wear designer [무거운 겨울코트벗고… 既成服디자이너가 권하는 「봄철外出服」]. (1972, March 10). Dong-A Ilbo, 5.
- The cool taste of blooming on the beach [海辺에피는 시원한멋]. (1970, July 13). Kyunghyang Shinmun, 5.
- The fluffy type is popular, this winter’s knitwear [푹신한型이 人氣 올겨울 니트웨어]. (1970, November 24). Dong-A Ilbo, 6.
- “The quality of the fabric is poor” ["原緞의 色感이 뒤져요"]. (1979, April 22). Chosun Ilbo, 5.
- The 3rd cotton fashion show [제3회綿製品패션ㆍ쇼]. (1971, May 28). Meail Business News, 4.
- Traditional beauty attracting attention in Southeast Asia [東南亞서好評받은固有美]. (1975, September 16). Dong-A Ilbo, 5.
- Troa Joe Fashion show [트로아趙 패션쇼]. (1979, March 21). Dong-A Ilbo, 4.
- Troa Joe talks about American, Central South America, and Paris fashion [트로아趙씨가 말하는 美ㆍ中南美ㆍ파리 패션]. (1975, October 18). Maeil Business News, 6.
- Two designs, Yun-jeong Park [두個의作品 朴允貞]. (1971, March 25). Chosun Ilbo, 5.
- Wide sleevesㆍlength covering the knees, still classic [넓은소매ㆍ무릎을덮는 길이 古典風여전]. (1978, October 12). Kyunghyang Shinmun, 4.
- Winter mode, charming coat [겨울모드 코트의魅力]. (1970, November 19). Chosun Ilbo, 4.
- Women’s event [女性界行事]. (1970, May 8). Dong-A Ilbo, 6.
- Young-ae Ha’s new dress, volume in a mixture of flowing color… [河英愛 近作드레스 흐르는 色彩 交錯에 볼륨…]. (1974, July 13). Meail Business News, 6.
- $1.26 milion contract in Paris [파리 1백26만弗계약]. (1977, November 5). Meail Business News, 6.
- 10 industry representatives dispatched to the London international clothes competition [런던国際服裝大會 업계代表10名派遣]. (1973, August 3). Maeil Business News, 6.
- 150 pieces of silk clothes presented at Pars Expo [실크 옷 1百50점 파리박람회 출품]. (1979, March 21). Dong-A Ilbo, 4.
- 30 garments presented at pre-fashion show for the Paris women’s ready-to-wear Exop [파리 女子기성복 박람회 出品作 30점 발표회]. (1979, March 19). Kyunghyang Shinmun, 4.
- 79 「cotton」 costumes presentation [79년 「코튼」 의상 발표회]. (1979, April 28). Meail Business News,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