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6, No. 4, pp.130-143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26
Received 13 Jul 2026 Revised 28 Jul 2026 Accepted 03 Aug 2026
DOI: https://doi.org/10.7233/jksc.2026.76.4.130

한국 전통 복식 담론 국제화의 구조적 과제 : 인식론적 기반, 영문 번역 오류, 로마자 표기 문제를 중심으로

이보영⁺ ; 채정민
⁺고려대학교 가정교육학과(패션융합전공) 겸임교수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학예사
Structural Challenges in Internationalizing Korean Dress Discourse : Epistemological Foundations, Mistranslation, and Romanization Standardization
Boyoung Lee⁺ ; Jeongmin Chae
⁺Adjunct Professor, Dept. of Home Economics Education (FADM), Korea University
Curator, Seok Juseon Memorial Museum, Dankook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Boyoung Lee, e-mail: bo0lee@outlook.com

Abstract

This study identifies three structural challenges embedded in the scholarly infrastructure underlying the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dress research and education and proposes researcher-level measures for each. The inquiry originates from the authors' experience in museum translation and teaching an English-medium course on Korean dress, and extends into a broader critique of Korean dress framed within international academic contexts. Drawing on theories of linguistic coloniality and the methodological shift toward material culture in dress history, the study highlights three interrelated layers of structural issues. Layer 1 involves an epistemological bias, whereby English-language educational and exhibition materials remain confined to a paradigm grounded in textual and iconographic sources, resulting in the underrepresentation of material culture findings. Layer 2 is mistranslation, substantiated by a systematic review of the Korea Heritage Service's English-name database. Out of 65 dress-related entries, 38 contain errors, which are classified into five types: category error, simple error, loss of distinctiveness, loss of material properties, and omission of the native term. Layer 3 is the absence of standardized romanization, illustrated by the hwarot/hwal-ot example, which fragments database indexing and undermines accurate back-transliteration to Hangeul. These three problems share a common root: the lack of institutional channels through which Korean dress researchers can shape international standards. In response, this study proposes three strands of practice that individual researchers can implement. First, it advocates an integrated open archive linking textual, visual, archaeological, and scientific data as a shared foundation for English-language teaching resources on Korean dress. Second, it recommends native-first translation guidelines that preserve Korean terms and add concise structural explanations to support accurate retrieval and citation. Third, it argues that back-transliterability to Hangeul should be the primary criterion for romanization and promotes consistent use of dual forms to support reliable search and cross-referencing.

Keywords: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dress study, epistemological bias, material culture, terminological translation, category error, romanization

키워드:

한국복식담론국제화, 인식론편향, 물질문화, 용어번역, 범주오류, 로마자 표기

Ⅰ. 서론

근래 한국 전통 복식은 국제 문화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주요 국제 박물관들의 한국 복식 전시와 소장품 공개,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한 한국 미디어의 국제 유통, 대중음악 아티스트를 통한 한복의 국제 무대 노출은 한복의 가시성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한국 복식 담론의 학문적 국제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담론의 국제화는 단순 노출의 증가가 아니라 한국 복식의 물질 문화적 속성, 사회적 위계, 제작 원리가 비한국어 학술 맥락에서도 정확하게 표현 · 검색 · 인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적절한 번역과 용어 표기 체계, 교육 · 전시 자료의 인식론적 기반으로 구성되는 학문적 인프라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복식의 국제화 담론을 지탱하는 이 기반은 충분히 구축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 결과 한국 복식에 관한 지식은 국제 학술 공동체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변형되거나 빠진된다. 이 문제는 개별적 실수나 자원의 부족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 바탕에는 무엇을 한국 복식의 유효한 지식으로 간주할 것인지, 그리고 그 지식을 어떤 언어와 분류 체계로 표현할 것인지에 관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의식은 두 가지 실천적 경험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었다. 첫째, 국가유산 포털 영문 서비스를 비롯한 국내 문화재 기관의 공식 영문 기술에서 복식 전문가의 검수를 거치지 않은 번역 오류가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오류가 제도적 용례집에 근거한다는 이유로 수정되지 않고 표준으로 유지되는 구조를 직접 경험하였다. 이는 개별 번역자의 실수가 아니라, 전문 지식이 제도적 절차 바깥에 놓이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러한 관찰은 저자들이 10년 이상 국내외 문화유산 기관의 한국 복식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경험에 근거한다. 둘째, 고려대학교 영어 교양 강좌 HEED 131(Understanding Traditional Korean Dress & Its Application) 운영 과정에서 국제 학습자가 접근할 수 있는 영문 자료의 질적 한계가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수강생의 한국어 능력은 0에서 고급까지 편차가 크며, 복식사 용어에 포함된 다수의 한자어는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한국어 구사자에게는 생소하여 추가 설명을 요구한다. 아울러 서구권 학습자의 경우 동아시아와는 다른 물질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하며 내면화한 서구 중심의 복식 분류와 미적 기준이 수업에서 제시되는 한국 복식사 서술과 충돌하거나, 이를 부분적으로 왜곡하여 수용하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다.

본 연구는 이 구조적 문제를 세 가지 층위에서 진단한다. 첫째(Layer 1), 기존의 한국 복식 교육 · 전시 자료가 문헌 · 도상학 중심 패러다임에 편중되어 있으며 물질 문화를 다루는 타 학제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인식론적 기반의 문제; 둘째(Layer 2), 서구 복식 분류 체계의 강제 적용으로 발생하는 용어 번역의 범주 오류 문제; 셋째(Layer 3), 복수의 로마자 표기 체계 혼용으로 인한 학술 접근성 저해 문제이다. 세 층위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인 양상을 보이나, 공통된 구조적 원인을 공유한다. 한국 복식을 국제 공용어인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구 복식 분류 체계와 그것이 전제하는 인식론적 권위가 한국 복식의 내적 논리를 일부 대체해 온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분석은 먼저 언어적 식민성 논의와 복식사 방법론의 전환에 관한 이론적 검토에서 출발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언어적 식민성과 지식 분류의 권력

Quijano(2000)는 식민성이 정치 · 경제 구조의 해체 이후에도 지식, 언어, 분류 체계 속에 지속된다는 'coloniality of power(권력의 식민성)' 개념을 제시하며, 유럽 중심적 지식 생산 방식이 여타의 지식 형태를 주변화하는 구조를 분석한다. Mignolo(2012)는 Foucault의 'subjugated knowledge(종속된 지식)’개념―지배적 담론 체계 안에서 매몰되거나 위계적으로 열등하게 분류된 지식―;을 식민성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이때 colonial difference(식민적 차이)의 경계는 비서구 지역의 지식을 ‘subaltern knowledge(종속적 지식)'로 규정하고, 서구적 분류 체계의 언어로 번역될 때만 유통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 복식 연구가 비한국어 독자, 학술지, 박물관과 접속하기 위해 서구 복식 분류 체계의 어휘를 수용해야 하는 현실은 이 논의의 직접적 적용 사례이다.

Said(1979)의 오리엔탈리즘 논의는 비 서구 문화의 표현이 서구 중심적 언어와 분류 체계를 통해 구조화되며, 이 과정이 개별적 편견이 아닌 제도화된 표현 양식임을 지적한다. 복식 연구의 맥락에서 이 구조는 비서구권 복식의 국제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Milhaupt(2014)는 기모노가 서구 박물관과 패션 담론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일본 복식의 내적 분류 논리가 서구적 패션 개념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분석하며, Finnane(2007)은 중국 복식의 국제 담론화 과정에서 서구 패션 역사 서술 체계가 강제 적용됨으로써 중국 복식의 고유한 시간성과 물질성이 소거되는 문제를 보여준다. 한국 복식은 이 동아시아적 맥락 안에 위치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영문 표기 표준화 체계와 국제 박물관 번역 관행이라는 이중의 제도적 압력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분석을 요구한다. 본 연구는 이 이론적 틀을 한국 복식 지식의 인식론적 기반(Layer 1) 및 용어 번역의 오류(Layer 2), 그리고 로마자 표기 표준의 부재(Layer 3) 분석에 적용한다. 특히 로마자 표기는 비한국어 화자의 발음 편의를 표기 표준의 우선 기준으로 삼아온 관행이 권력의 식민성 개념(Quijano, 2000)을 로마자 표기 체계에서 재현하며, 한국어 화자의 표기 논리가 종속적 지식(Mignolo, 2012) 의 위치에 놓이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1. 복식사의 방법론적 전환과 물질 문화 연구

언어적 식민성 논의가 지식의 위계 구조를 이론화한다면, 복식사 방법론의 전환은 그 위계가 실제로 어떤 지식을 주변화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이 문제는 분류 체계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복식사 연구가 무엇을 유효한 지식으로 간주해 왔는가, 즉 방법론적 패러다임의 문제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복식은 물질 문화의 핵심 대상 중 하나로서 본질적으로 의류학의 한 갈래이지만, 고고학 · 인류학 · 사회학 등 복수의 학제가 교차하는 영역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복식사 연구는 전통적으로 문헌 기록과 도상학 중심으로 협소하게 전개되었으며, 물질 문화 연구 전반에서 이루어진 방법론적 전환 ―물질의 물리적 속성과 사회적 의미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접근―이 복식사 연구에 온전히 결합하지 못하였다.

Barnes and Eicher(1997)는 복식을 젠더 · 계급 · 의례 참여를 가시화하는 물질적 기호 체계로 논증함으로써 복식 연구가 물질 문화 연구의 이론적 틀 안에서 다루어져야 할 근거를 제시하고, Taylor(2002)는 이러한 맥락에서 복식사 연구가 제작 기술과 물질적 실천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이 전환은 단순한 방법론의 확장이 아니라, 무엇을 복식의 유효한 지식으로 간주할 것인가라는 인식론적 질문과 직결된다. 한국 복식 연구에서 이 방법론적 전환은 출토 복식이나 전세 유물의 섬유 조성 및 염료 분석 등으로 구체화 되어 왔다. 자연과학에 기반한 물질 문화 연구는 문헌 기록이 포착하지 못하는 물질 문화의 층위를 드러내며 한국 복식 지식의 인식론적 기반을 실질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동일한 회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연구 성과의 축적이 교육 · 전시 자료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며, 이 단절은 한쪽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예는 다음 장에서 다룬다.


Ⅲ. 연구 방법

1. Layer 1: 교육 내용의 인식론적 편향과 그 함의

복식사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에서 물질 분석이 갖는 핵심적 위상(Taylor, 2002)에도 불구하고 이 전환이 언제나 국제 교육 · 전시 자료에 충분히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에서 접근할 수 있는 한국 복식 관련 교육 · 전시 자료를 검토하면, 다수의 자료가 복식사 패러다임 안에 머물고 있다. 국가유산 포털(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CHA], 2025)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목록(National Museum of Korea, 2026)을 비롯하여, V&A, MET 등 영미권 주요 박물관의 한국 복식 안내는 (1) 명칭 · 시대 · 착용자, (2) 색상 · 문양의 상징적 의미, (3) 사회적 위계와 의례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유물에만 묘주, 출토 경위와 현재 상태 이미지 등이 제공되고 있으나 보존 상태, 섬유나 염색 소재의 물리 · 화학적 특성 등 물질 문화의 지표 정보가 복식사 서술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제공되는 경우는 아직 제한적이다. 따라서 본고의 문제 제기는 관련 정보가 부재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보가 국제적 설명 체계 속에서 일관되게 통합 ·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현재 유통되는 한국 복식사 영문 자료의 현황을 보면, 자료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서술 범위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Lee et al.(2022)의 Traditional Korean Costume은 현재까지 가장 널리 유통된 영문 개론서이나, 한국어 원본의 도록 성격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물질 문화 분석 성과를 폭넓게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Yang(1997)의 Hanbok: The Art of Korean Clothing은 교양서 수준으로 학술 교재로 활용하기 어렵고, 국제 학습자를 위한 한국 복식사 영문 학술 단행본으로는 Pyun and Kim(2023)의 Dress History of Korea가 사실상 유일하지만, 이 역시 기존 연구와 문헌을 종합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현재의 영문 자료관은 각각의 출판 목적과 형식상의 제약으로 인해 한국 복식의 물질 문화 분석 성과를 국제 학습자에게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아직 제한적이다.

이러한 편향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편향’은 특정 기관이나 연구의 성과를 부정하는 규정적 표현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널리 접근되는 자료에서 문헌 · 도상 정보가 물질 분석 정보보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가시화되고 반복 유통되는 경향을 가리키는 작업 개념임을 밝혀둔다. 우선 과학적 분석 성과가 복식사 패러다임과 다른 학술 회로(보존과학, 분석화학 전문지)를 통해 유통된다는 구조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고고과학 기반의 복식 연구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발전한 분야라는 점에서, 국제 교육 · 전시 자료가 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시간적 지체(time lag)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일부 복식사 서술에서는 물질 정보가 중심 논의에 통합되지 않고 '기술적 부록'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드러나며, 이러한 인식론적 관성이 학제 간 연구 성과의 연결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축적된 연구 성과들이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복식 서사 안에 충분히 결합하여 전달되기 위해서는, 이 연결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문헌 기록은 중요한 자료지만, 기록자의 시대적 · 문화적 조건과 인식 범위를 반영하므로, 과학적 근거로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다른 문화 간 소통에서 오역으로 인한 혼선이 발생하기 쉽다. 마(麻)섬유를 리넨(linen)으로 일괄 대치하는 번역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리넨(Linen)은 인피섬유로 제작된 직물을 가리키는 일반적 통칭으로 통상 아마(flax, Linum usitatissimum)를 지칭하지만,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핵심 인피섬유 자원은 저마(ramie, Boehmeria nivea)와 대마(hemp, Cannabis sativa)이다. 따라서 동양 복식사 맥락에서는 오역이지만, 아마(flax)가 주요 자원인 서구 문화권 학습자에게는 이 번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유전체 분석을 통한 생물 자원 연구 결과 서아시아 기원인 아마의 동아시아 유입은 중세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근현대 도입 이전에 섬유 자원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사실이 확인된다(Fu, 2025; Kuang et al., 2025). 문헌에만 근거한 서술과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된 서술은 학술적 신뢰도의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물질 정보가 부차적 요소로 취급될 때 이러한 차이는 교육 자료에서 소실되고, 학습자는 검증되지 않은 문헌 서술만을 유효한 지식으로 전달받게 된다.

이 단절은 한 방향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타 분야에서 복식을 다룰 때 의류학의 기술적 용어와 분류 체계가 반영되지 않아 혼선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고고학 저술에서 한자어 견(絹), 또는 우리말 “깁”이라는 표현 대신 "사(絲)직물"이라는 표현을 독자적 직물 범주로 제시한 사례이다(Park, 2004). 복식 연구에서 사직물은 통상 사(紗)직물, 즉 특정 조직을 지칭하고, 사(絲)는 역사서에서 견섬유 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음으로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한국 홍화 염색의 최초 사례로 언급된 낙랑 출토 염색포(Lee, 1995)는 정확한 발굴 자료가 확인되지 않음에도 후속 자료에 반복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교차 검토 체계가 충분하지 않을 때 정보가 학제 간 이동 과정에서 고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는 국내 담론에 국한되지 않으며, 한국 문헌에 대한 국제 연구자의 접근이 제한되면 유사한 해석상의 한계가 국제 담론 안에서 검증 없이 반복될 수 있다. Tamburini et al. (2022)은 해외 소장 조선시대 회화 장정 직물의 염료 분석에서 검출된 베르베린(berberine) 성분을 두고 한국 문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산 Phellodendron chinense를 수입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이후 자문 과정에서 한국 자생종 Phellodendron amurense의 존재와 국내 선행 연구 자료(Ahn et al., 2012)를 검토하면서 해석을 수정하였다. 학제 간 정보가 원활하게 서로 연결될 때 해석의 정밀도가 높아지고 물질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편향이 갖는 인식론적 함의는 세 가지다. 첫째, 국제 학습자에게 제공되는 한국 복식 지식이 물질적 증거에서 분리된 텍스트 · 이미지 중심의 지식으로 좁아진다. 둘째, 한국 연구자들이 고고학 · 섬유 과학 분야에서 축적한 전문 지식이 복식사 · 물질 문화사의 서사와 결합하지 못한 채 국제 학술 공동체에 전달되지 않는다. 셋째, 한국 복식의 물질적 특성이 국제 담론에서 드러나지 않아 한국 복식에 대한 인식이 표면적 시각 문화의 차원에 묶인다. 국제 동아시아 복식 연구의 틀은 방대한 중국 · 일본 영문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한국 복식은 그 틀 안에서 "영향받은 주변부"로 위치 지어지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동북공정의 공식 종료(2007) 이후에도 그 역사 서술의 영향이 학술지 · 박물관 기술 · 데이터베이스에 잔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물질 정보로 뒷받침되지 않은 한국 복식 서술은 이러한 서사에 대항할 근거를 갖추지 못한 채 국제 담론에 노출된다. 따라서 물질 정보를 인식론적 핵심으로 통합하는 전환은 방법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복식 지식의 국제 담론 내 자기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구조적 요건이다.

2. Layer 2: 용어 번역의 오류

1) 이론적 틀: 분류 행위로서의 번역

복식 명칭의 번역은 언어 간 단순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 문화의 형태 · 기능 · 사회적 맥락 · 물질 속성을 수용 언어 안에서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불가피하게 분류(classification)를 수반하며, 그 분류 기준이 서구 복식 체계일 때 한국 복식의 내적 논리는 소멸한다. Barnes and Eicher(1997)는 복식이 착용자의 젠더, 계급, 의례 참여를 가시화하는 기호 체계임을 논증하며, 이 기호적 정보가 번역에서 소멸할 때 문화 정보의 구조적 손실이 발생한다.

2) 오류 유형 분류: 국가유산청 영문 명칭 목록 실증

이 구조적 손실이 한국 복식 용어 번역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실증하기 위해, 국가유산청 영문 명칭 목록의 복식 항목(CHA, 2024)을 전수 검토하여 총 65항목 중 38개의 번역 오류 사례를 확인하고 다섯 유형으로 분류하였다(Table 1). 이 목록은 국가유산 명칭 영문 표기 기준 규칙(국가유산청 예규 제30호)에 근거한 문화재 명칭 영문 표기 용례집(CHA, 2026)을 기준으로 하며, 국내 박물관 · 관광 안내문의 사실상 표준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DB에서 확인되는 오류는 개별 번역자의 실수가 아니라 제도적 표준으로 유통 · 고착되는 구조적 오류이다.

Error Types Identified Among "Dress" Entries Specified in the Regulations on English Romanization Standards for Korean Heritage Names (38 of 65 Total Entries)

(1) 범주 오류(category error)

한국 고유 명칭이 담지하는 신분 · 용도 · 형태 정보가 서구 의복의 범주(hat, jacket, coat, bag, crown 등)로 능동적으로 대체되는 문제로, 15건(복합 사례 포함)으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다. 저고리를 Jacket으로, 주머니를 Bag로 번역한 것이 전형적 사례이며, 도포를 Full Dress로, 당의를 Semi-formal Jacket으로 표기한 것 역시 원어 없이 서구 의복 범주어로 대체한 사례이다. 이 정보의 소거는 기존의 한국 복식사 서술에서 축적된 지식이 서구 분류 체계 대응어에 밀려나는 문제라는 점에서 물질 속성 소멸과 구별된다. 금관조복은 변별력 소멸과 중첩되는 복합 사례이다.

(2) 단순 오류(simple error)

원어의 실제 의미와 무관하거나 상반된 대응어가 채택되어 정보가 왜곡되거나, 상징체계 · 논리적 일관성 및 원어 병기가 동시에 없는 경우가 총 10건으로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토황색을 단순히 Brown으로 오역한 것, 복식 · 의복 · 의대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Clothes로 처리한 것, 그리고 적의본 · 폐슬본과 같이 대상 설명이 왜곡된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3) 변별력 소멸(loss of distinctiveness)

구조 · 기능 · 착용자가 다른 복수의 유물이 같은 영문 표기로 수렴되어 구분할 수 없어지는 경우로, 9건이 확인되었다. 단령 · 원삼 · 적의 · 녹원삼 · 황원삼이 모두 ceremonial robe로 번역되어 있고, 패옥은 jade pendant만으로는 액세서리 용의 일반 옥 장식과 구분할 수 없다. 한국어 또는 한자어 지식이 없는 독자는 이들 유물을 구분할 수 없다.

(4) 물질 속성 소멸(loss of material properties)

직물 구조 속성이 번역에서 능동적으로 생략된 유형으로, 5건이 확인되었다. 명주 · 숙고사 · 적초의 · 청초중단이 실과 직조법의 차이를 소거한 silk 계열로 처리되며, 저항라 적삼은 범주 오류와 중첩되는 복합 사례이다. 용례집 수립 시에 이 유형이 오역으로 인지되지 않은 현상은 Layer 1의 인식론적 편향이 번역 판단의 층위로 전이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범주 오류나 변별력 소멸은 비전문가도 직관적으로 문제를 포착할 수 있지만, 직조법을 모두 silk로 처리한 것은 오역이 아니라 축소 번역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는 직물 구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 온 기술적 산물이며 특정 구조의 선택이 그 시대 · 지역의 직조 기술 수준과 사회적 선호를 반영한다는 인식이 판단 주체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 인식 기반 자체가 문헌 · 도상학 중심 패러다임에서는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오류 유형이 전문 지식이 반영되지 못한 것이라면 이 유형은 지식의 대상 자체가 유효한 지식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며, 이는 Layer 1과 Layer 2 사이의 접점을 이루어 제도적 폐쇄 회로가 강하게 작동하게 한다.

(5) 원어 누락(omission of the native term)

영문 뜻풀이는 있으나 외국어 원어가 병기되지 않은 경우로, 가사(袈裟)의 Monk's Outer Vestment 번역이 이에 해당한다. 해외 학술 문헌은 산스크리트어 Kāṣāya의 로마자 표기인 Kasaya에 Buddhist Monk’s Robe 등의 영문 설명을 병기하는 원어 우선 방식을 사용한다(Chen et al., 2025; Yamakawa, 2022). 반면 다라니주머니의 경우 원어 '다라니(陀羅尼, dharani)'를 보존하고 있어, 외국어 원어 보존 기준이 목록 내부에서 일관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어-설명 병기 방식은 국제 학술 공동체에서 통용되고 있는 표기 관행이며, Layer 2에서 다룬 원어 우선 표기 원칙에도 부합한다. 국가유산 포털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개별 표기 오류를 넘어 한국 불교 문화재가 국제 학술 데이터베이스 및 박물관 소장품 기술에서 원어를 매개로 검색 · 인용되는 경로에서 배제하며, 동시에 한국 복식 유물의 국제 통용성과 학술적 가시성을 약화한다.

3) 제도적 폐쇄 회로

앞서 분석한 번역 오류들이 단순한 전문성 부재의 문제라면, 전문가의 지적을 통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경험은 이 가정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연구자가 가사(袈裟)의 오역을 해당 기관에 제보하자 “용례집에 근거하여 오류가 없다”라는 답신을 받았다. 이 응답은 다음의 제도적 폐쇄 회로를 드러낸다.

용례집 규정 오류 → 실무 표기 → 전문가 제보 → '용례집 기준 오류 없음' → 오류 고착화

이 구조에서 용례집은 오류를 정당화하는 제도적 권위로 기능하며, 외부 전문가 지식이 개입하는 경로가 차단된다. 이 폐쇄 회로는 Layer 2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III. 3에서 분석하는 활옷 표기 사례에서도 유사한 기제가 작동한다. 두 사례 모두에서 오류를 고착하는 것은 개별 담당자의 무지가 아니라, 전문 지식이 제도적 절차 바깥에 놓이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 문제의 구조적 성격은 국제 주요 박물관의 표기 현황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Table 2).

Notation Practices for Korean Dress Terms Among Major International Museum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2006)는 Jeogori(Top)처럼 한국어 로마자 표기를 앞에 두고 영어 설명을 괄호 보조로 처리하는 원어 우선(native-first)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The British Museum(2026)은 jeogori(저고리 襦)와 같이 로마자 표기 · 한글 ·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유물의 언어적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보존한다. Victoria and Albert Museum(2024)는 hanbok 관련 온라인 콘텐츠에서 jeogori, chima, po 등의 로마자 표기를 본문에 직접 사용하며 설명에 직물 정보를 통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Asian Art Museum (2026)은 “Couture Korea:우리의 옷, 한복” 전시에서 주요 복식 용어를 로마자 표기로 사용하였다. 이들 박물관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원어 우선 방식은 복식 전문가 자문이 표기 체계에 실질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반면 국가유산청(2026)은 원어 또는 로마자 표기 없이 영어 서술어만 사용하거나, 용례집이라는 제도적 권위를 통해 오류를 표준으로 고착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비는 전문가 참여 구조의 유무가 표기 품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침을 보여주며, 앞서 분석한 오류들이 개별적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재확인한다.

3. Layer 3: 로마자 표기 표준화의 부재

1) 표기 체계의 혼용과 학술 접근성

현재 한국 복식 관련 영문 자료에서는 국립국어원 로마자 표기법(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NIKL], 2000), McCune-Reischauer 표기법, 직관적 발음 친화적 표기의 세 가지 체계가 혼용된다. 국립국어원 표기법은 표준 발음법에 따른 표음주의를 원칙으로 하며, 연음 · 구개음화 등 음운 변화를 표기에 그대로 반영한다. McCune-Reischauer(이하 MR) 표기법은 1939년 미국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고안한 전자법으로 국제 학술 문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고 현재 북미지역 도서관 카탈로그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으나(University of Chicago Library, 2026), 그 설계 기준 자체가 한국어 음운이 아닌 영어 화자의 발음 직관에 근거한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직관적 발음 친화적 표기는 어떤 공식 규범에도 근거하지 않고 매체나 기관이 임의로 채택하는 방식으로, 표기의 통일성보다 비한국어 화자의 발음 접근성을 우선한다. Kim(2006)는 이러한 표기 혼용이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동일 용어의 검색 결과를 분리하고, 문헌 목록의 일관성을 저해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적의(翟衣)의 경우, jeogui, chŏgŭi, juh-gui라는 세 가지 표기가 각각 독립된 검색 결과를 생성하며, 동일한 주제를 다룬 선행 연구들이 하나의 검색으로 통합 조회되지 않고 분산된다. 국제 연구자가 특정 표기 하나에 의존하여 검색할 경우 관련 문헌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되고, 결국 한국 복식 학술 정보가 국제 연구자 공동체 내에서 하나의 통합적 지식 기반으로 축적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로마자 표기의 문제는 발음 정확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욱 근본적인 기준은 역 환원 가능성(back-transliterability), 즉 로마자 표기를 접한 외국인 학습자가 원어 한글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이다. 표기가 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학습자는 사전 검색, 추가 학습, 한국어 맥락으로의 진입 시 전혀 다른 단어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발음의 근사치 문제가 아니라, 로마자 표기가 한국어 학습의 진입로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Table 3의 다양한 표기 방식에 따라 로마자 표기한 단어를 국제 학습자가 접하고, 한글 원문을 추정하고자 할 때, 국립국어원 방식은 단령을 “달령”으로, 직령을 “징녕”으로, 그리고 MR 방식은 배자를 “패자”로, 적의를 “처우귀”로 역 환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Comparison of Romanization Systems Applied to Major Korean Dress Terms

1) 활옷 사례 - 표기 원칙과 형태소 가시성의 충돌

활옷의 로마자 표기 논쟁은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활옷은 活(hwal)과 옷(ot)이라는 두 형태소로 구성된다. 국립국어원 연음 표기 원칙에 따르면 ‘hwarot'이 되고, 형태소 경계를 반영하면 ‘Hwal-ot'이 된다. 두 표기 모두 실제 발음에 근접하게 재현할 수 있으나, 역 환원 가능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Hwal-ot'을 접한 외국인 학습자는 형태소 경계를 인식하고 한글 “활-옷”으로 재구성할 수 있지만, ‘hwarot'은 ‘hwa-rot'으로 분절되어 “화롯”으로 인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학습자가 추가 학습이나 한국어 맥락으로의 진입을 시도할 때 전혀 다른 단어에 도달하게 되는 실질적 오류이다.

2022년 10월 New York Times의 LACMA 소장 활옷 복원 보도 과정에서, 영어 원어민인 담당 기자가 활옷의 발음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제공한 인터뷰 사전 자료에는 국립국어원 로마자 표기에 따라 활옷이 hwarot으로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 표기는 발음상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형태소 경계를 드러내지 못해 “화롯”으로 오인되기 쉽다. 두 저자가 형태소 기반의 'Hwal-ot' 표기와 분리 발음을 제안하였으나, 기자는 이를 거절하고 사전 자료에 사용된 hwarot을 고집하였으며, 기사에는 최종적으로 ‘hwarot(pronounced HUA-ot)'으로 게재하였다(Abrams, 2022). 이 사례는 실제 발음 안내가 괄호 삽입으로 보완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hwarot 표기가 비한국어 화자에게 독립적 발음 안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을 드러내며, “화옷”이라는 부정확한 발음 표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 문제는 단순한 미디어 관행으로 일반화하기보다 1) 기자 개인이 외국어 발음에 대한 자신의 감각적 판단을 전문가 지식보다 우선시한 개별적 판단의 문제, 그리고 2) 이러한 개별 판단이 별도의 검증 없이 국제 주요 매체의 지면에 그대로 실릴 수 있는 제도적 검증 부재의 문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한국 복식 전문가의 검증된 지식이 해외 매체의 편집 권력보다 하위에 배치되는 현상은, 앞서 분석한 제도적 폐쇄 회로와 동일한 구조가 다른 층위에서 반복됨을 보여준다.


Ⅵ. 결론 및 개선 방안

세 층위의 문제는 표면적으로 독립적인 양상을 보이지만, 모두 한국 복식 연구자 공동체의 전문 지식이 국제적 번역 · 표기 · 교육 체계에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Layer 1(인식론적 기반)의 문제는 복식사와 물질 문화 연구의 접속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온 데에서, Layer 2(용어 번역)의 문제는 전문성을 갖춘 번역 인력의 부재와 검토 체계의 부재에서, Layer 3(로마자 표기)의 문제는 국제 학술 공동체 차원의 표기 원칙이 안정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세 문제의 공통분모는 한국 복식 연구자가 국제 표준 형성과 유통 구조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경로가 아직 충분하게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다만, Layer 2의 다섯 가지 오류 유형은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범주 오류 · 단순 오류 · 변별력 소멸 · 원어 누락은 서구 복식 분류 체계가 이미 존재하는 신분 · 형태 · 기능 정보를 대체하거나 소거하는 문제로 언어적 식민성(Quijano, 2000; Mignolo, 2012)의 논리에 더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물질 속성 소멸은 그 정보 자체가 유효한 지식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문제로 Layer 1에서 진단한 인식론적 편향에 더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다. 이 구분은 각 오류 유형에 대한 개선 전략이 같을 수 없음을 시사하며, 전자는 번역의 원어 우선 원칙으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지만 후자는 물질 문화 연구 성과의 교육 · 전시 통합이 선행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Layer 2에 국한되지 않고, 세 층위 전반의 후속 지식 재생산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축을 이룬다.

본 연구가 Layer 1에서 '편향(bias)'이라는 다소 강한 표현을 사용한 이유도 이러한 연쇄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특정한 인식 틀에 기초해 생산된 학술 지식은 박물관 데이터베이스, 전시 해설, 교육 콘텐츠로 반복 인용되며, 다시 학습자와 일반 대중의 이해를 형성하는 기초 자료로 기능한다. 따라서 초기의 개념 설정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단순한 서술상의 미비가 아니라, 후속 지식 유통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편향으로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궁극적으로 한국 복식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서 누가 개념 틀을 제안하고, 누가 그 표준을 조정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국 학술계가 서구에서 형성된 복식 분류 체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머무를 경우, 앞서 지적한 세 층위의 문제는 개별 사례의 수정만으로는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 복식 연구는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적 전개와 물질 문화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설명의 틀을 더욱 주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궁극적 해법―물질 문화 통합적 시각의 영문 교재 개발, 국가 차원의 번역 지침 수립, 국제 학술 공동체와의 표기 표준 합의―은 상당한 제도적 지원과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므로, 본고에서는 연구자 개인이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수준의 대응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단계: 통합적 시각의 한국 복식 연구 기반 마련

복식사와 물질 문화 연구를 별도의 영역으로 보는 기존 시각을 넘어, 두 분야에 걸친 학술 성과를 체계적으로 목록화하고 교차 검증할 수 있는 공개 아카이브와 연구자 포럼의 형성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문헌 · 도상학 중심의 서술을 넘어 포괄적 연구 성과를 아우르는 한국 복식사 영문 교재 개발이 실천적 목표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복식 연구자들이 국제 학술지 심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방법론적 기준 설정에 개입하고, 연구 성과를 국제 학술지에 영문으로 발표하는 흐름을 확산시킬 때, 한국 복식 지식이 물질 분석 성과와 복식사 서사가 상호 참조되는 통합적 학술 장(field) 안에서 축적될 수 있으며, 이후 제도적 번역 · 표기 지침 마련의 실질적 근거로도 기능하게 된다.

2단계: 복식 용어 영문 번역 지침 수립

번역 지침의 목적은 특정 기관의 관행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으며, 한국어 및 국제 학습자 모두가 동일한 용어를 통해 정확하게 검색하고 상호 참조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원어와 구조 설명을 결합하는 원어 우선(native-first) 방식은 이 목적에 부합하는 실천적 대안으로, 복식의 구조 · 기능 · 신분 정보를 번역안에서 보존하는 동시에 로마자 표기를 매개로 한글 원어로의 역환원과 검색을 가능하게 한다. 해외 주요 박물관(BM, V&A, MET, AAM)이 채택한 원어 우선 표기는 복식 전문가 자문이 표기 체계에 실질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이나, 이 방식의 정당성은 해외 기관의 선례 자체가 아니라 검색 · 인용 가능성이라는 기능적 기준에서 도출된다. 이 원칙은 용례집이라는 제도적 권위를 통해 오류가 고착되는 현재의 구조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특히 사(紗) · 라(羅) · 기(綺) · 금(錦)과 같은 직물조직 명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동아시아 직물 문화권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서양에 전래한 제직 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를 무리하게 영문 대응어로 환원하면 조직 구조의 차이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의미, 그리고 검색 가능성이 동시에 소실된다. 대응어가 부재하거나 대응 관계가 불완전한 경우, 무리한 시도보다는 원어 로마자 표기를 우선하고 구조적 설명을 병기하는 방식이 오역의 고착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한국어 및 국제 학습자 모두에게 동일한 진입점을 제공한다. 이는 서구 복식 체계에 대한 대응어 탐색이라는 기존의 번역 관행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며, 동아시아에서 자생한 지식 범주는 그 원어 표기를 통해 국제 학술 담론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실천적 적용이다. 자문 위원회 설치와 같은 제도적 해법은 단기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더라도, 개별 연구자들이 논문 · 전시 해설 · 교육 자료에서 이 원어 우선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국제 학술 공동체 안에서 공유해 나갈 때, 이러한 실천의 축적이 향후 제도적 표준 마련의 실질적 근거가 될 수 있다.

3단계: 로마자 표기 단일화 원칙 수립

로마자 표기의 핵심 기준은 발음 근사치가 아니라 역 환원 가능성(back-transliterability) ― 표기를 접한 외국인 학습자가 원어 한글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 ―에 있으며, 이는 로마자 표기가 한국어 학습의 진입로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할 수 있다는 구조적 장점이 있지만, 이 장점은 형태소 경계가 표기에 반영될 때만 로마자 체계로 온전히 이전된다. 발음의 자연스러움을 우선하는 표기는 오히려 이 장점을 상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기관 간 공식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개별 연구자가 논문 · 교재 · 전시 해설에서 역 환원 가능성을 기준으로 표기를 선택하고 “활옷(hwarot/hwal-ot)”과 같이 원어와 현행 로마자 표기, 형태소 경계를 반영한 표기를 병기하는 실천을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Table 3). 나아가 이를 학술 논문 작성의 공통 지침으로 발전시킨다면, 개별 논문 단위의 실천이 누적되어 표기 일관성을 형성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im(1999)이 강조한 바와 같이, 표기 표준화는 단순한 규범 결정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 공동체의 합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 복식 사전(한국 복식학회, 2012)은 형태소 경계를 도입한 로마자 표기와 영문 정의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 DB의 표기 체계를 수정 · 보완하여 활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경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의 축적은 향후 복식 용어 로마자 표기 권고안 마련의 실증적 토대가 될 수 있다.

세 단계의 개선 방안은 각각 독립적인 과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방향을 지향한다. 한국 복식의 물질적 속성과 사회적 맥락이 번역 · 표기 · 교육의 모든 층위에서 왜곡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개별 연구자의 실천이 공유되고 축적되어 국제 표준 형성의 실증적 근거로 전환되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세 층위의 구조적 결함은 이 참여 구조가 부재할 때 지식이 어떻게 변형되고 고착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구조를 바꾸는 출발점은 제도적 합의를 기다리기보다, 연구자 공동체가 원어 우선 표기와 역 환원 가능성이라는 원칙을 공유하고 이를 자신의 연구 · 교육 실천 안에서 일관되게 적용하는 데 있다. 그 실천의 축적은 결국 한국 복식 지식이 국제 학술 공동체에서 어떻게 생산 · 유통 · 인용되는가를 결정하는 인프라 전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수렴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학술계가 한국 복식 지식의 국제적 생산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실증적 초석이 된다. 본 연구가 제시한 개인 연구자 차원의 실천 방안이 향후 연구자 집단 차원에서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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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Error Types Identified Among "Dress" Entries Specified in the Regulations on English Romanization Standards for Korean Heritage Names (38 of 65 Total Entries)

Korean Hanja Current notation Issue Proposed
가사 袈裟 Monk's Outer Vestment Omission of the native term Kasaya (Buddhist monk's robe)
갓 Horsehair Hat Category error Gat/Heuk-lip (black horsehair hat)
곤룡포 袞龍袍 Roy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Dragon robe (royal attire)
군복 軍服 Uniform Loss of distinctiveness Military uniform
금관조복 金冠朝服 Official Attire Category error, Loss of distinctiveness Gilded gold crown and Jobok (ceremonial attire)
녹원삼 綠圓衫 Green Ceremoni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Green Wonsam (formal robe with circular collar)
누비저고리 縷緋저고리 Quilted Jacket Category error Quilted Jeogori (top)
다라니주머니 陀羅尼주머니 Dharani Bag Category error Dharani pouch
단령 團領 Ceremoni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Dan-ryeong (round-collared robe)
당의 堂衣 Semi-formal Jacket Category error Dang-eui (the simplest type of court formal top)
도포 道袍 Full Dress Category error Do-po (Men's formal robe with double back layer)
명주 明紬 Silk Loss of material properties Plain woven silk
복식 服飾 Clothes Simple error Dress
숙고사 熟庫紗 Boiled silk Loss of material properties Sug-go-sa (figured fabric woven with degummed silk weft, sa patterns on plain ground)
양단 洋緞 Satin Brocade Simple error Yang-dan (Western made figured satin)
운봉수 雲鳳繡 Embroidered Cloud and Phoenix Design Simple error Cloud and Phoenix embroidery
원삼 圓衫 Ceremoni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Won-sam (formal robe with circular collar)
원유관 遠遊冠 Crown Category error Won-yu-gwan (silk crown for Jo-bok attire)
의대 衣帶 Clothes and Belt Simple error Eui-dae (a set of clothes and belt)
의복 衣服 Clothes Simple error Clothing
익선관 翼善冠 Winged Cap Category error Ikseon-gwan (cicada crown)
일월수 日月繡 Embroidered Sun and Moon Design Simple error Sun and Moon embroidery
장삼 長衫 Monk's Robe Category error Jang-sam (long robe)
장옷 Overcoat Category error Jang-ot (outer robe)
저고리 Jacket Category error Jeogori (top)
저항라 적삼 紵亢羅 적삼 Loosely Woven Ramie Unlined Summer Jacket Category error, Loss of material properties Jeok-sam (unlined top), Ramie Hang-ra(open weave絽)
적의 翟衣 Ceremoni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Jeok-eui (Pheasant robe)
적의본 翟衣本 Patterns for the Queen Consort's Ceremonial Robe Simple error Patterns for Jeok-eui (Pheasant robe)
적초의 赤綃衣 Red Silk Robe Loss of material properties Jeok-cho-eui (robe made of red cho: a thin, plain woven raw-silk fabric)
청초중단 靑綃中單 Blue Silk Inner Robe Loss of material properties Cheong-cho jungdan (blue Cho robe worn as the middle layer of formal court attire)
탁의 卓衣 Monk's Mantle Category error Tak-eui (Buddhist Altar cloth)
토황색 土黃色 Brown Simple error Earth yellow
패옥 佩玉 Jade Pendant Loss of distinctiveness Pae-ok (a pair of decorative strands of jade pendants)
폐슬본 蔽膝本 Patterns for Front Cloth Panel Simple error Patterns for Pye-seul (knee-covering front panel)
향낭 香囊 Incense Bag Category error Hyang-nang (incense pouch)
혈의 血衣 Blooded Clothes Simple error Blood stained clothes
황원삼 黃圓衫 Yellow Ceremonial Robe Loss of distinctiveness Yellow Wonsam (formal robe with circular collar)
회장저고리 回裝저고리 Ornamented Jacket Category error Hoe-jang Jeogori (color-blocked top)

<Table 2>

Notation Practices for Korean Dress Terms Among Major International Museums

Institution Notation practice Case Native-first
BM (British Museum) Romanization+ Hangeul + Chinese jeogori (저고리 襦), jangot (장옷 長衣) O
V&A (Victoria & Albert Museum) Romanization jeogori, chima, po O
MET (Metropolitan Museum) Romanization + English description Jeogori (Top) O
AAM (San Francisco Asian Art Museum) Romanization jeogori, chima, baji, po O
국가유산청(Korea Heritage Service) Primarily English descriptive phrases; native term omitted or inconsistently applied semi-formal jacket, outer vestment X

<Table 3>

Comparison of Romanization Systems Applied to Major Korean Dress Terms

NIKR MR Pronunciation-friendly Proposed
배자(褙子) Baeja Paeja Baejah Bae-ja (배자褙子)
적의(翟衣) Jeogui Chŏgŭi Juh-gui Jeog-ui (적의翟衣)
당의(唐衣) Dangui Tangŭi Dang-ee Dang-ui (당의唐衣)
단령(團領) Dallyeong Tallyŏng Dal-ryeong Dan-ryeong (단령團領)
직령(直領) Jingnyeong Chingnyŏng Jing-nyeong Jig-ryeong (직령直領)
활옷 Hwarot Hwarot Hwarot Hwal-ot (활옷活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