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禮』에 기록된 古玉‘圭ᆞ璧ᆞ璜’에 관한 연구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role and function of costume in the ancient society by analyzing the jade decorations, 'Gui’, ‘Bi’, and ‘Hwang,' recorded in 『Zhouli』. The method of study consisted of researching the record book 『Zhouli』 and comparing the antiquities with the images of the jades. Firstly, the jade decorations were different depending on class. The class system in Zhou dynasty was made up of 6 grades - emperor, duke, marquis, count, viscount, and baron. The jade decorations used by people in these grades were called 'Gui’, ‘Bi’, and ‘Hwang’ . Secondly, this study grasped the system of 'Gui’, ‘Bi’, and ‘Hwang.’ It identified 7 types of duties by matching the decorations on the jade to specific institutions. 'Gui’, ‘Bi’, and ‘Hwang’ played a huge role in forming and maintaining to order and system during the chaotic Zhou dynasty. In addition, it became an essential part of understanding status, society, and political structure within a family power structure.
Keywords:
ancient, bi, class system, gui, hwang, jade, means of rules, Zhouli키워드:
고대, 벽, 신분체계, 규, 황, 옥, 통치수단, 주례Ⅰ. 서론
중국에서 옥기(玉器)는 기원전 50만년전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고 도끼, 칼, 고리[環], 원반[璧] 등 옥(玉)으로 제작된 유물이 발견되었다(Michael, 1991). 중국인들은 옥을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 정교한 옥장신구와 옥예기(玉禮器)를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설문해자(設文解字)』에서 옥이란 “오덕을 갖춘 아름다운 돌1)”이라고 정의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가치를 담아 이를 중요시 여겼다. 금루옥의(金缕玉衣), 은루옥의(銀縷玉衣)는 한대(漢代)에 작은 옥조각을 금사나 은사로 이어 만들어 시신전체에 입힌 수의인데 사후세계에도 이러한 옥의의 착용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다.
옥의 사용은 주대의 『주례(周禮)』에 다양한 기록을 위시하여 이후 『삼례도(三禮圖)』, 『삼재도회(三才圖會)』 등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주대(周代)의 옥제 전세유물은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어 문헌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접근이용이하다.
관련한 선행연구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주례에 관한 연구, 옥기에 관한 연구 그리고 복식관련 옥장식에 관한 연구이다. 주례에 관한 선행 연구는 Jeon(2010)의 예 사상, Kim(2013)과 Jung(2013)의 예학, Choi(2007)와 Po & Choi(2008)의 면복에 대한 연구, Lee(2010)의 주대(周代) 복식 전반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그 외는 Kang(2011)의 의례(儀禮)로 살펴본 고대 중국복식, Huo(2015)의 한ㆍ중ㆍ일 복식 등의 연구에 의복에 관한 내용이 일부 언급되었다.
옥기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Kim(1995), Shin(2002), Lim(2003)이 옥기의 기원과 형성배경, 제작기술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복식 관련 옥장식에 관한 연구로는 Hong(1990)의 한ㆍ중 패옥 제도, Im(2001)의 한ㆍ중ㆍ일 규(圭)ㆍ홀(笏)의 특징, 국립고궁박물관(2012)의 圭ㆍ方心曲領의 복원ㆍ복제 제작기술 등과 같이 대부분 패옥(佩玉) 과규(圭) 중심으로 살필 수 있었다. 이에 규, 패옥 외에 주례에 기록된 다른 고옥 벽(璧), 황(璜) 등을 함께 살피어 옥장식의 중요성과 특징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주대(周代) 최초의 법제서인 『周禮』에 기록된 고옥(古玉)을 규(圭), 벽(璧), 장(璋), 종(琮), 호(琥), 황(璜)등 6서(六瑞)를 중심으로 복제에 있어 옥장식의 중요성과 특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에 활용된 연구 자료는 크게 문헌자료와 시각자료이다.
문헌자료는 『周禮』와 선행연구를 고찰하였다. 『周禮』의 문헌기록을 원문 중심으로 선행연구들과 번역서를 참고하여 정리하였고 그 내용은 대부분 Zhou(2014)의 해설서를 바탕으로 하였다.
시각자료는 섭숭의(聶崇義, 962년)의 『삼례도(三禮圖)』, 여대림(呂大臨: 1092년)의 『삼고도(三古圖)』 중 「고옥도(古玉圖)」, 납란성덕(納蘭成德, 1676년)의 『신정삼례도(新定三禮圖)』 등과 유물 및 도해서(圖解書)에 묘사된 삽화를 활용하여 살펴보았다.
Ⅱ. 『周禮』에 기록된 옥장식의 종류
1. 『周禮』의 배경
『周禮』는 현대의 국가에서도 이처럼 자세히 하기는 어렵다고 할 정도로 모든 관직의 명칭과 그 직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Zhou, 2014).
그 기록은 6관(官)인 「천관총재(天官冢宰)」, 「지관사도(地官司徒)」, 「춘관종백(春官宗伯)」, 「하관사마(夏官司馬)」, 「추관사구(秋官司寇)」,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6관 이하 360개의 산하 관청으로 구성되었고 관직별로 서술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의복(衣服), 관모(冠帽), 신발[屨], 의료(衣料) 등 복식관련 제도도 포함하여 당대(當代)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다. 복식에 관한 내용은 구(裘), 면복(冕服), 변복(弁服), 상복(喪服), 수복(首服), 구(屨), 패옥(佩玉), 규(圭), 의료(衣料) 등 세부적으로 나뉘어졌고 제도화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周禮』의 복식제도는 후대(後代) 중국 관복에 영향을 주어 후한(後漢) 영평 2년(59)에 최초의 면복(冕服), 패(佩), 수(綏) 및 조복(朝服)에 관한 복식제도의 정비에 이르게 된다. 주례를 기초로 한 후한의 복식제도는 이후 후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및 동아시아 전반의 복식제도에 영향을 미쳤다(Sam, 1995). 따라서 『周禮』에 기록된 주대(周代)의 복식제도는 최초의 기록으로 복식사 연구에 있어 시작점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2. 유물로 살펴본 옥장식의 종류
옥은 천지지정(天地之精)으로 상징되며 옥으로 만들어진 조형은 여러 가지 전세유물로 그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周禮』에 기록된 옥서(玉瑞) 종류는 ‘규(圭)ㆍ벽(璧)ㆍ장(璋)ㆍ종(琮)ㆍ호(琥)ㆍ황(璜)’ 등의 용어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복식과 관련된 ‘圭ㆍ璧ㆍ璜’ 3가지에 관하여 그 형태를 고찰하고자 한다.
중국은 선사시대를 홍산(紅山)문화, 용산(龍山)문화, 석가하(石家河)문화, 제가(齊家)문화, 숭택(崧澤)문화, 양저(良渚)문화 등으로 분류하였다(Busan museum, 2007, p.12). 우선 유물을 중심으로 신석기초기부터 청동기 시대 초기인 제가문화시대의 형태부터 종류별로 파악하면 다음과 같다.
옥장식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규는 고대부터 조복(朝服)ㆍ제복(祭服)ㆍ공복(公服) 등에 갖추어 교명(敎命)이나 아뢸 것이 있으면 잊지 않도록 백필(白筆)로 적어 두는 좌우 대칭형의 수판(手板)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기록을 위한 기능적인 요소보다 의례용(儀禮用)으로 되어 복식일습으로 갖추어 그 품계를 나타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Doopedia, n.d.).
Kim(2004)은 규를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지게 만든 길쭉한 판이다.”라고 하였다(p.82). Im(2001)은 “천자는 옥(玉), 제후는 상아(象牙)를 사용하여 만들어 재질은 다르나 천자와 제후가 사용하는 것은 ‘규(圭)’이며, 대부(大夫)이하는 문죽(文竹)을 사용하여 만들고 크기나 모양에 차이가 있으나 용도는 같되 명칭을 ‘홀(笏)’이다.”라고 하였다(p.7).
유물로 살펴보면 <Table 1>은 황하 상류에서 출토된 제가 문화(齐家文化: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청동기 시대 초기) 시대의 규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규이다. <Fig. 1>은 길이 25.8㎝, 너비 9.2㎝의 백옥규(白玉圭), <Fig. 2>는 길이 36㎝, 너비 9.0㎝인 청녹옥규(靑綠玉圭)이다. <Fig. 3>은 길이 22.5㎝, 너비 9.2㎝의 청옥규(靑玉圭)로 인면문(人面紋)이 장식되어 있다. <Fig. 4>는 길이 17.3㎝, 너비 4.2㎝인 우리나라 조선시대 영친왕의 옥규이다.
고대 중국의 제가문화 시대 규는 현재 우리나라 유물처럼 위가 뾰족한 형태가 아닌 완만하며 크기가 크고 아랫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Fig. 1, 2, 3>은 『周禮』의 관직 중 옥인(玉人) 직무에서 살필 수 있는 ‘천자의 규는 중앙에 끈을 달 수 있도록 한다.2)’라는 기록에 따라 구멍에 인끈을 장식하여 천자가 사용한 유물로 볼 수 있겠다.
벽은 중앙에 작은 원형이 나 있는 원반형의 옥으로 선사시대의 환상석부(環狀石斧)에서 기원한 것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존재하며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되는 서옥(瑞玉)이자 제옥(祭玉)이다(Korea Dictionary Research Publishing[KDR], 1998). 그리고 고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 관념에 기인하여 태양과 천하를 상징하여 제사용 의기(儀器)나 사자(死者)와 함께 매장하는 장옥(葬王)으로도 사용되었다. <Fig. 5>는 지름 22.4㎝, 내경 6.8㎝에 청옥(靑玉)으로 만들어진 제가시대에 사용된 기본형태의 둥근 벽이다. <Fig. 6>은 우리나라 낙랑문화(樂浪文化, BC:108~AD 313)의 벽이다. 평양 석암리 9호분 나무널(木棺)내 피장자의 가슴 위치에서 출토된 것이다. <Fig. 7>은 지름 11.4㎝인 춘추전국시대의 벽이고 <Fig. 8>은 지름 25.5㎝의 동한(東漢)시기 유물로 하북성(河北省, Hebei) 정주 중산간왕 유언묘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유물들을 정리하면 <Table 2>와 같고 벽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화려해지고 있으며 점차 공예기술이 발달되고, 외적으로 보이는 장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벽(璧)은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에서 사용되었고 출토 위치를 통하여 수의(壽衣)의 가슴에 올려 예를 갖추어 사용한 옥장식으로 볼 수 있겠다.
황(璜)은 반벽(半璧)이라 하여 그 형태를 살펴보면 반원형의 옥이다(Jeon, 1996). 폭이 있는 U자형 판 모양 옥으로 다른 옥장식에 비해 화려하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어 패옥(佩玉)을 구성할 때 형(珩)과 아(牙)의 중간에 위치하며 장식적인 역할을 한다(Hong, 1990). <Fig. 9, 10>은 고옥도(古玉圖)에 기록된 황으로 각각 옥색과 백색의 황으로 무늬가 없는 형태를 띤다. <Fig. 11>은 1975년 하북성(河北省, Hebei Province) 평산현 중산국 왕족묘에서 출토된 춘추전국시대의 너비 5.4㎝, 높이 2.2㎝인 옥황이고, <Fig. 12>는 서산태원 조경묘에서 출토된 춘추전국시대의 너비 10.0㎝, 높이 3.1㎝인 옥황이다.
이 유물들을 정리하면 <Table 3, 4>로 황은 무늬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있으며 양 끝에 있는 최소 1개씩의 구멍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구멍은 앞서 밝혔듯이 황(璜)이 패옥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형(珩)과 아(牙)의 중간에 위치하여 서로 연결될 때 사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남성(河南省, Hénán Province) 삼문협 곽국귀족묘에서 출토된 주대(周代) 패황(佩璜)인 <Fig. 13>의 유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패옥(佩玉)과 비슷하고 패황이 패옥의 초기 형태였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본 장에서는 주례에 기록된 옥장식의 이해를 돕고자 유물로 형태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 중규(圭), 벽(璧), 황(璜)은 주대 예의식에 사용된 6종류의 옥장식 중 의복과 함께 사용되는 장신구로 살펴볼 수 있었다.
Ⅲ. 『周禮』에 기록된 ‘圭ㆍ璧ㆍ璜’ 관련 관직
옥과 관련된 신분의 관직명으로 옥부(玉府), 대종백(大宗伯), 전서(典瑞), 대행인(大行人), 소행인(小行人), 옥인(玉人) 등이 있다. 옥장식 재료인 옥을 관리 감독하는 광인(卝人)을 포함하면 7종류의 관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그 중 ‘圭ㆍ璧ㆍ璜’ 명칭이 나타나는 6관직의 직무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종백(大宗伯)
대종백은 국가의 모든 예를 관장하고 왕을 보좌하는 최고 책임자로 옥장식 관련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으로 육서(六瑞)를 만들어 대국과 소국에 균등하도록 신분에 따라 규벽(圭璧)을 들도록 한다. 신분별로 보면 왕(王)은 진규(鎭圭), 공(公)은 환규(桓圭), 후(侯)는 신규(信圭), 백(伯)은 궁규(躬圭), 자(子)는 곡벽(穀璧), 남(男)은 포벽(蒲璧)을 잡는다.
그리고 육서(六瑞)와 함께 의식에 사용되는 육기(六器)를 만들어 하늘과 땅과 사방에 예(禮)를 고한다. 하늘은 창벽(蒼璧), 땅은 황종(黃琮), 동방(東方)은 청규(靑圭), 남방(南方)은 적장(赤璋), 서방(西方)은 백호(白琥)로, 북방(北方)은 현황(玄璜)으로 갖추어 예를 올린다.”3)고 하였다.
대종백은 국가에서 행하는 제례(祭禮)에서 신분별로 패용하는 옥장식 ‘육서(六瑞)’와 ‘육기(六器)’를 관리하여 올바른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2. 대행인(大行人)
대행인은 소행인이 준비해둔 서(瑞)를 제후들이 신분에 맞춰 들도록 하여 대빈(大賓)과 대객(大客)에게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신분별로 정해진 규정을 살펴보면 “상공(上公)의 예는 9치(寸)의 환규(桓圭)를 잡고 9치(寸)의 깔개를 가진다. 면류관과 면복은 9장(章)으로 하고 깃발은 9류(斿), 말 꾸미는 일은 9취(就), 뒤를 따르는 수레는 9승(乘)으로 하고 수행원은 9인(人)으로 하고, 9뢰(牢)로 예우를 하였다. 대문 밖에서 손님과 주인의 사이는 90보이고 인도하는 자가 5인이다.
제후(諸侯)들의 예는 7치(寸)의 신규(信圭)를 잡고 7치(寸)의 깔개를 가진다. 면류관과 면복은 7장(章)으로 하고 깃발은 7류(斿), 말 꾸미는 일은 7취(就), 뒤를 따르는 수레는 7승(乘)으로 하고 수행원은 7인(人)으로 하고, 7뢰(牢)로 예우를 하였다. 대문 밖에서 손님과 주인의 사이는 70보이고 인도하는 자가 4인이다.
백(伯)은 궁규(躬圭)를 잡고 예를 갖추고 그 밖의 예절은 제후와 같다.
자(子)는 5치(寸)의 곡벽(穀璧)을 잡고 5치(寸)의 깔개를 가진다. 면류관과 의복은 5장(章)으로 하고 깃발은 5류(斿), 말 꾸미는 일은 5취(就), 뒤를 따르는 수레는 5승(乘)으로 하고 수행원은 5인(人)으로 하고, 5뢰(牢)로 예우를 하였다. 대문 밖에서 손님과 주인의 사이는 50보이고 인도하는 자가 3인이다.
남(男)은 포벽(蒲璧)을 잡고 깔개를 받들며 그 밖의 예절은 자(子)와 같다(Zhou, 2014, p.456, 457).”4)로 나타난다.
기록과 같이 옥서(玉瑞)는 6신분에 따라 패용하는 종류와 크기를 달리하였고 이를 ‘육서(六瑞)’로 칭하여 관리하였다. 그리고 옥서가 사신을 관리하는 9가지 규정에 있어 첫 번째로 언급되는 중요한 옥장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소행인(小行人)
소행인은 방국(邦國)과 빈객(賓客)의 예적(禮籍)을 관장하여 사방 사신들에게 접견할 준비를 하며 천하를 6절(節), 6서(瑞), 6폐(幣)로 맞추어 균등하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기록을 살펴보면 “6서(瑞)로 왕은 진규(瑱圭)를 잡고 공은 환규(桓圭), 후는 신규(信圭), 백은 궁규(躬圭), 자는 곡벽(穀璧), 남은 포벽(蒲璧)을 잡고 사용한다.5)”로 전해진다.
이처럼 ‘서(瑞)’는 빈객에 예를 갖추기 위하여 신분별로 패용하였고, 이와 함께 자신을 나타내는 신표인 절(節)과 재물로 쓰이는 폐(幣)를 함께 준비하며 모두 ‘6(六)’으로 공무(公務) 체제도 맞추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전서(典瑞)
전서는 좋은 옥과 필요한 사항을 분별하고 옥받침과 같은 옥을 꾸미는 장식도 관리하며 옥서와 옥기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직무내용을 통하여 신분별로 패용하는 ‘육서’와 다른 옥서(玉瑞)의 종류 및 특징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육서’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으로 “왕(王)은 대규(大圭)를 꽂고 진규(鎭圭)를 잡는다. 진규는 5가지로 채색하여 5번을 두른 옥 받침을 장식하고 천자가 직접 가지고 조회에 나간다. 공(公)은 환규(桓圭), 제후(諸侯)는 신규(信圭), 백(伯)은 궁규(躬圭)를 잡으며 공, 제후, 백은 3가지로 채색하여 3번을 두룬 옥 받침 장식을 하였다. 자(子)는 곡벽(穀壁), 남(男)은 포벽(蒲壁)을 잡으며 자와 남은 2가지로 채색하여 2번 둘러 장식한 옥 받침을 가지고 4계절 마다 조회에 나가 왕과 회동할 때 사용한다(Zhou, 2014, p.246).”6)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신분에 따라 정해진 옥서를 들고 장식하며 외적으로 계급을 드러나도록 하여 주대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다른 종류의 옥장식으로는 사규(四圭), 양규(兩圭), 관규(祼圭), 규벽(圭壁), 장(璋), 토규(土圭), 진규(珍圭), 벽선(璧羨), 곡규(穀圭), 완규(琬圭), 염규(琰圭)등 육서 외에 12가지 옥서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옥기들은 복식이 아닌 예의식에 사용되는 옥으로 된 제기(祭器)들이지만 세분화된 종류를 통하여 주대(周代) 예의식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규(圭), 장(璋), 벽(璧), 종(琮), 호(琥), 황(璜) 등과 같은 옥장식은 위쪽에 구멍을 뚫어서 인끈으로 연결하였다. 벽과 종은 성기게 하여 대렴(大斂)에서 사용한다.”7)는 기록을 통하여 유물에서 살펴본 규, 벽, 황에 나타난 구멍의 용도를 확인 할 수 있다.
5. 옥인(玉人)
옥인은 예의식에 사용되는 옥기(玉器)를 만들고 다듬는 8/일을 관장하는 곳이다. 제작에 관련한 기록을 통하여 주대의 다양한 옥서(玉瑞) 종류와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 규정은 다음과 같다.
“천자는 진규(鎭圭)를 들고 1자 2치이다. 9치의 명규(命圭)는 환규(桓圭)이다. 제후가 드는 7치의 명규는 신규(信圭), 백(伯)이 드는 7치의 명규는 궁규(躬圭)이다. 천자는 4치의 모(冒)를 들고 제후의 조회를 받는다. 천자는 전색(全色), 공은 용색(龍色), 제후는 찬색(瓚色), 백은 장색(將色)을 사용하였다. 자(子)와 남(男)은 피백(皮帛)을 가진다. 천자의 규는 중앙에 끈(必)을 달 수 있도록 한다.”8)로 신분에 따라 용도, 크기, 색상 등을 달리하여 제작하였다.
이 중 모(冒)는 천자가 조회시 사용하는 것 중 하나로 후대(後代)의 도해서 『고옥도(古玉圖)』와『신정삼례도(新定三禮圖)』의 기록과 형태를 비교해 볼 수 있다.
<Fig. 14>는 『古玉圖』의 ‘모(瑁)’, <Fig. 15>는 『新定三禮圖』에서 고찰할 수 있는 ‘모규(冒圭)’로 각각 ‘순흑색의 옥이다.9)’라는 기록과 ‘천자가 조회 시 사용하는 4촌의 모규이다.10)’라는 기록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Table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Fig. 14, 15>는 ‘冒’가 아닌 ‘瑁’와 ‘冒圭’로 기록되어 있고 형태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冒’는 漢典의 기록에서 “古同“瑁”,玳瑁.(Mo, n.d.)”라 하였고, 漢韓대사전에서는 “천자가 지니는 옥으로 만든 예기(禮器). ‘瑁’와 같다. (Dankook University Oriental Studies[DUOS], p.288)”라는 기록을 살필 수 있었다. 그래서 ‘冒’는 ‘瑁’의 고어(古語)이고, 현재는 같은 글자로 정의하고 있어 주례에 기록된 치수와 색상의 내용에 근거하여 천자가 사용한 두 형태로 보았다.
기록을 통하여 옥인에서는 육서(六瑞) 중 진규(鎮圭), 환규(桓圭), 신규(信圭), 궁규(躬圭)와 천자가 사용하는 모(冒)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옥서들의 크기 및 신분별로 사용된 옥의 색상을 달리하여 차이를 두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제례(祭禮)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조례(朝禮)에도 사용하는 천자의 명규(命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규(四圭), 대규(大圭), 토규(土圭), 관규(祼圭), 완규(琓圭), 염규(琰圭), 규벽(圭璧), 벽종(璧琮), 곡규(穀圭), 대장(大璋), 중장(中璋), 변장(邊璋), 전규장(瑑圭璋), 벽종(璧琮), 아장(牙璋), 중장(中璋), 조종(駔琮), 대종(大琮), 양규(兩圭), 전종(瑑琮), 장(璋) 등 제기(祭器)로 사용되는 다양한 옥기 종류도 살필 수 있었다.
이처럼 옥인은 육서(六瑞)과 그 외에 21 종류의 다양한 옥장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옥서의 용도를 통하여 주대(周代)의 예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관직이다.
6. 옥부(玉府)
옥부는 왕의 금, 옥, 병기(兵器), 재물, 재화, 예물 등을 관장하며 때에 맞춰 왕의 복옥(服玉), 패옥(佩玉), 주옥(珠玉), 식옥(食玉:먹는 옥)을 제공한다. 대상(大喪)시 함옥(含玉:死者의 입에 넣는 옥)과 복의상(復衣裳), 왕의 연의복을 관리한다11). 그리고 제작된 패옥(佩玉)을 보관하고 필요한 예의식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직이다.
옥부에서 관리하는 패옥(佩玉)은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을 입을 때 양옆에 늘어뜨려 하는 장신구이다. 대패(大佩) 혹은 잡패(雜佩)라고 불리운 패옥(佩玉)은 여러 가지 모양의 옥을 연결한 것을 뜻한다(Hong, 1990, p.5).
<Fig. 16>은 『신정삼례도(新定三禮圖)』에 표현된 주대(周代) 패옥으로 윗부분에 형(珩)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구슬과 환(環)을 연결하여 아랫부분 가장 자리에 황(璜)을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Fig. 17, 18>은 광동성(廣東省, Guǎngdōng Province) 광주시에서 출토된 패옥으로 환(環), 황(璜), 구슬로 구성된 서한(西漢)시대 유물이다. <Fig. 19>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영칭왕비가 사용했던 패옥으로 거(琚), 구슬, 황(璜)이 연결되어 장식된 유물이다. 이는 주대(周代)에 사용되었던 형태와 비슷하게 구성되어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유물들을 정리하면 <Table 6>과 같고 패옥을 구성하는 환(環)과 황(璜)이 점차 화려해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옥장식의 공예기술이 점차 발달되고 있으며 신분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현방법도 함께 확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Ⅳ. 『周禮』에 기록된 옥장식 ‘圭ㆍ璧ㆍ璜’의 특징
주례에 기록된 ‘圭ㆍ璧ㆍ璜’은 예의식에 패용되며 주대 귀족사회의 6신분인 천자(天子),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신분을 나타내는 외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 ‘圭ㆍ璧ㆍ璜’과 같은 옥장식들은 기록된 법제화를 통하여 체계를 이루며 관리되었고 신분질서도 갖출 수 있었다.
앞서 살펴본 6관직의 직무내용을 토대로 하여 옥장식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신분질서를 나타내는 옥장식
주례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본 결과 옥장식은 신분에 따라 크기, 색상, 용도, 장식 등을 각각 달리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천자(天子),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등 신분별로 예의식에 패용하는 옥서(玉瑞)를 정하여 패용한 것이다.
옥장식은 제례, 조례, 빈객 접대시 패용하여 각각 외적으로 신분이 표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신분별로 사용한 옥장식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천자는 대규(大圭)와 진규(鎭圭)<Fig. 20>를 든다. 대규는 3자(尺)로 상당히 길며 저상(杼上)에 몽치가 있으며 천자가 패용할 수 있는 옥기(玉器)이다(Zhou, 2014, p.512). 『예기(禮記)』의 기록을 살펴보면 대규는 천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국왕이 대(帶)에 검(劍)처럼 차는 옥이다.’라고 밝혀 허리에 꽂은 형태로 패용하는 것으로 보았다(Im, 2001).
이와 함께 천자가 1자 2치인 진규를 함께 직접 들고나가 조회를 하였고 손잡이 부분에는 5가지로 채색하여 5번을 둘러 옥 받침<Fig. 26>을 장식하여 사용하였다.
공은 9치의 환규(桓圭)<Fig. 21>를 들고 직접 보관하고 있다가 사용한다. 손잡이 부분은 3가지로 채색하여 3번을 두른 옥 받침<Fig. 27>을 장식하여 사용한다.
후는 신규(信圭)<Fig. 22>, 백은 궁규(躬圭)<Fig. 23>를 든다. 후와 백 모두 7치의 서(瑞)를 가진다. 직접 보관하고 있다가 사용하고 손잡이부분은 3가지로 채색하여 3번을 두른 옥 받침 <Fig. 27>을 장식하여 사용한다.
자는 곡벽(穀璧)<Fig. 24>, 남은 포벽(蒲璧)<Fig. 25>을 든다. 두 신분 모두 손잡이 부분을 2가지로 채색하여 2번을 둘러 장식한 옥받침<Fig. 28>을 사용한다.
이렇게 정해진 옥서(玉瑞)와 함께 대빈과 대객에게 예를 갖출 때 기물(器物)에도 각각 기준을 두어 공은 ‘9’, 후ㆍ백은 ‘7’, 자ㆍ남은 ‘5’로 크기나 문양의 수, 인원 등 그 수를 맞추어 신분질서를 만들었다. 앞서 살펴 본 6서(瑞)의 크기와 손잡이 부분의 옥박침 장식 등을 신분별로 정리하여 『新定三禮圖』에 나타난 이미지와 함께 정리하였다<Table 7>.
그리고 사신을 접대할 때 신분별로 서(瑞)의 크기, 면복(冕服)의 문양, 깃발, 말 꾸미는 장식, 뒤를 따르는 수레, 수행원, 뢰(牢)의 수를 정하였다. 이러한 기준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부분이 ‘瑞’가 되어 주대 사회의 질서와 체제 형성에 있어 옥장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패용하는 옥장식을 구분하였고 그 종류에 따라 크기 및 옥받침 장식을 달리하여 차등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규(圭)와 벽(璧)으로 6신분에게 규정된 6가지 옥장식은 6가지 옥서(玉瑞)로써 종법 세습 제도를 채택한 주왕조의 봉건제도 아래 중요한 통치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2. 옥장식의 관리 체계
주례에 기록된 옥장식은 각 관직들의 규정된 직무에 따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하여 예의식에 사용되었다.
먼저 옥장식을 만들기 위한 원료(原料)를 관리하는 광인(卝人)이 있다. 금, 옥, 돌이 있는 땅을 관장하여 한계 지역 내의 금지사항을 감독하고 그곳을 지키는 것이다.12)
그리고 다음으로 옥기를 만드는 옥인(玉人)이 있다. 옥인은 진규(鎭圭), 환규(桓圭), 신규(信圭), 궁규(躬圭), 모(冒=瑁)의 특징과 함께 사규(四圭), 대규(大圭), 토규(土圭), 관규(祼圭), 완규(琬圭), 염규(琰圭), 벽(璧), 규벽(圭璧), 벽종(璧琮), 곡규(穀圭), 장(璋), 대장(大璋), 중장(中璋), 변장(邊璋), 전규장(瑑圭璋), 아장(牙璋), 조종(駔琮), 대종(大琮), 양규(兩圭), 전종(瑑琮) 등 25가지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옥서(玉瑞)들은 전서(典瑞)와 옥부(玉府)에서 각각 관리한다.
전서는 좋은 옥을 분별하고 꾸미는 일을 담당하여 신분에 따라 대규(大圭), 진규(鎭圭), 환규(桓圭), 신규(信圭), 궁규(躬圭), 곡벽(穀璧), 포벽(蒲璧)을 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옥부는 왕의 패옥(佩玉)을 따로 관리하였다.
이후 예의식이 있을 때 대종백(大宗伯), 대행인(大行人), 소행인(小行人)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대종백은 모든 예를 관장하는 곳이며 제례(祭禮)에 필요한 옥기(玉器)를 설명하고 있다. 그 기록에서 신분체계를 나타내는 옥장식들을 ‘육서(六瑞)’로 칭하여 관리 되었고 진규(鎭圭), 환규(桓圭), 신규(信圭), 궁규(躬圭), 곡벽(穀璧), 포벽(蒲璧)을 살펴볼 수 있다.
대행인은 대빈(大賓)과 대객(大客)의 예를 갖추기 위한 ‘六瑞’를 담당하였고 소행인은 방국과 빈객에게 예를 갖추고 사신에게 접견을 준비하며 ‘六瑞’를 관리하였다.
이처럼 옥장식들은 관직별로 정해진 법제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Table 8>과 같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예의식에 사용되었다.
Ⅴ. 결론
‘옥(玉)’은 고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하늘이 하사한 영적인 보물이자, 오래전부터 제사를 지낼 때 하늘의 신령과 영혼을 통하게 하는 매체이며, 이후 국가적인 예식과 법제 안에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하였다.(Zhou, 2013)
옥은 지금까지도 중요시 여기는 장신구 중 하나로 본 연구는 『주례(周禮)』에 기록된 360개의 관직 중 옥장식 ‘圭ㆍ璧ㆍ璜’ 과 관련된 내용이 나타나는 6개 관직을 고찰한 것이다.
『周禮』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대(周代)에 사용된 옥장식 ‘圭ㆍ璧ㆍ璜’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옥장식 ‘圭ㆍ璧ㆍ璜’은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가 된다.
주 왕조의 6신분인 천자(天子),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이 예를 갖출 때 옥서(玉瑞)를 패용함으로써 신분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천자(天子)는 진규(鎭圭), 공(公)은 환규(桓圭), 후(侯)는 신규(信圭), 백(伯)은 궁규(躬圭), 자(子)는 곡벽(穀璧), 남(男)은 포벽(蒲璧)을 사용한다. 이렇게 6신분이 패용하는 귀중한 옥서(玉瑞) 6가지를 대종백(大宗伯), 소행인(小行人)에서 ‘육서(六瑞)’라 칭하여 관리하였다. 이는 옥장식 圭ㆍ璧이 제례(祭禮), 조례(朝禮) 등 예의식에서 신분별로 패용됨으로써 외적으로 들어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빈례(賓禮)에서 갖추는 9가지 규정에 있어 서(瑞), 면복 문장(紋章), 깃발, 말 장식, 수레, 수행원, 뢰(牢), 손님과 주인 사이의 거리, 인도하는 사람을 나타남에 있어 첫 번째로 명시되는 부분이 ‘서(瑞)’인 것을 통하여 옥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각종 예의식에서 사용되는 옥장식은 주왕조의 신분 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옥서(玉瑞)가 되며 장신구 외에 통치수단으로써의 역할도 하게 된다.
둘째, 옥장식 ‘圭ㆍ璧ㆍ璜’은 철저하게 관리되며 시스템을 갖춘다.
주왕조의 각종 예의식에서 옥장식 ‘圭ㆍ璧ㆍ璜’이 예를 갖출 수 있도록 잘 패용되는 것은 철저하게 세분화된 관리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옥장식 ‘圭ㆍ璧ㆍ璜’을 관리하고 담당하는 직무 체계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광인(卝人)이 원재료(原材料)인 옥을 잘 생산될 수 있도록 관리하면 옥인(玉人)에서 규(圭), 벽(璧), 황(璜) 등의 서옥(瑞玉)을 만들고 다듬게 된다. 이후 완성된 서옥(瑞玉)들이 전서(典瑞)로 넘어가 보관이 되어 옥부(玉府)에서는 패옥(佩玉)을 담당하고 대행인(大行人)과 소행인(小行人)에서는 ‘圭ㆍ璧’이 용도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된다. 이때 국가의 모든 예를 관장하는 대종백(大宗伯)에서 ‘육서(六瑞)’를 제도에 맞춰 준비하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여 국가가 편안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기록에 나타난 7개의 직무 내용을 통하여 ‘圭ㆍ璧ㆍ璜’이 관리되는 시스템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주대(周代)의 다양한 옥장식과 함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옥서(玉瑞) 중 ‘圭ㆍ璧ㆍ璜’는 하(夏)ㆍ은(殷) 왕조의 혼란했던 사회를 거쳐 봉건 질서를 통한 질서 체계가 형성됨에 있어 외적인 요소가 되는 큰 역할을 한 장신구가 되었다. 또한 ‘圭ㆍ璧ㆍ璜’은 주대(周代)의 『周禮』를 통한 철저한 법제도 속에서 관리되며 정치적 종법제도 아래 신분체계 및 사회ㆍ정치구조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치 수단이 되었다.
추후, 본 연구가 옥장식 ‘규(圭)ㆍ벽(璧)ㆍ황(璜)’에 관한 컨텐츠 자료와 기록에 나타나는 다른 옥장식 ‘장(璋)ㆍ종(琮)ㆍ호(琥)’들과 함께 조형성을 살피어 다양하게 논의 되고 연구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길 기대한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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