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1901년 군악대 복식 재현을 위한 고증과 디자인 연구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provide historical reference for the Daehan Empire military band’s uniform for a reenactment performance. The goal of this study was to create the design for the military band uniform that was used during the Daehan Empire. The style from 1901 was selected, which was the year the military band was first featured for the Emperor’s birthday [만수성절 萬壽聖節] on September 7 and also when the empire was relatively secured. In this study, the regulations regarding the army uniforms [육군장졸복장제식] from July 2, 1900, were analyzed as a baseline, and then the 1901 regulations were added. Photos of military bands of the period and images of the military band in the 1906 royal wedding ceremony scroll were also examined. Both officers and enlisted men were part of the military band; as uniforms of the two ranks were different, they were examined separately. Based on the above research results, line drawings of the cap, jacket, pants, and accessories and full-color illustrations of the figures in the 1901 military band uniform were produced. The results of this study not only provide source material but also synthesize and visualize data about historical military band uniforms pieced together by costume historians. The 1901 design of the Daehan Empire military band uniform, of which visual references did not exist, was restored. Military band uniforms from this period produced based on this study will contribute to more realistic historical reenactment events and cultural content such as films set in that period.
Keywords:
costume design, Daehan Empire, historical research, military band, uniform키워드:
도안, 대한제국, 고증, 군악대, 제복Ⅰ. 서론
본 연구에서 대한제국기 군악대는 서양악기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황실 군악대를 의미한다. 1900년 12월에 설치령이 내려진 후 1907년 군대 해산과 함께 폐지될 때까지 원수부 산하의 시위연대에 편성되어 있었고 이후 일부 군악대원이 장례원 장악과로 흡수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군악대는 고종의 만수성절, 계천기원절, 황태자의 천추성절, 국가 간의 조약 체결, 각국 공사와 영사를 비롯한 외국인 영접, 러일전쟁 전승 기념식, 장충단 제향 등 황실의 여러 행사에 동원되었다. 그 소속 편대와 동원된 행사의 성격으로 판단할 때 군악대의 주된 연주활동은 황실 관련 행사에 국한되었다가 이후 일제가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군악대의 위상을 떨어뜨렸다(Lee, 2008).
지금까지 대한제국기 군악대에 대한 연구는 근대 국악 이론 분야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지만 군악대의 복식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문화재재단에서 기획한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의 재현행사에서 군악대 복식을 일부 재현하여 2012년부터 2018년 행사까지 활용해 오고 있다. 문화재재단의 행사에서는 5명의 연주 대원만으로 구성하여 악대장 없이 간소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에 활동하였던 군악대는 악대장을 포함하여 1소대의 인원으로 구성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사진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어 이들의 복식에 대한 고증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대한제국기의 신식 군악대를 재현하는데 필요한 기초 연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대한제국기의 군악대 복식은 시기에 따라 군복이 달라지는 것과 함께 변화하였기 때문에 어느 시기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본 연구에서는 군악대 복식 연구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군악대가 구성된 후 최초로 초연을 하였던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 만수성절(萬壽聖節)을 분석 대상 시기로 선정하였다.
대한제국기 군악대 복식이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본 연구를 위해 당시의 법령, 사진, 회화, 유물 자료를 비교 검토하였다. 이들 자료 중 기본적인 원칙으로는 군복을 규정한 법령을 1차 기준으로 삼았으나 법령이 애매할 경우 사진, 그림, 참고 유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시 기준을 선정하였다.
기준이 된 법령은 1901년 9월 2일에 개정된 제도(‘육군장졸복장제식개정’, Official Gazette [官報] 제1981호, 광무 5년 9월 2일)이다. 여기에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 만수성절에서 초연을 한 후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진, 1906년 12월 순종의 가례 행렬을 칼라로 그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가례도감반차도권(嘉禮都監班次圖卷)의 시각자료를 참고로 활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고증의 결과를 컬러 일러스트와 복식 아이템별 도식으로 제시하였다. 아이템별 도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시기 도량형 변환의 선행연구를 참고하여 법령에서 제시한 치수들에 대해 1분(分)을 0.468cm로 환산하여 cm로 표시하였고 그 뒤의 괄호 안에 법령에서 규정된 수치를 넣어 표현하였다(Lee, 2008).
본 연구의 결과물은 도식이 전해지지 않은 대한제국기 군악대 자료를 시각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대한제국 군악대의 컬러 일러스트는 대한제국기 군악대 복식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군악대 양악연주에 활용된다면 재현행사 및 영상물 제작 등의 문화컨텐츠 작업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Ⅱ. 이론적 배경
1. 1901년 군악대의 편제
대한제국기 육군의 관등은 <Table 1>과 같았다. 크게 장교와 하사이하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장교에 해당되는 계급은 장관급, 영관급, 위관급이 있었고 하사이하에는 하사와 병졸이 있었다. 장관급에는 대장, 부장, 참장이 있었고, 영관에는 정령, 부령, 참령이 있었으며, 위관에는 정위, 부위, 참위가 있었다. 하사에는 정교, 부교, 참교가 있었고, 병졸에는 상등병, 1등병, 2등병이 있었다.
군악대의 편제는 1900년 12월에 규정되었다. 법령에 제시된 표를 정리하면 <Table 2>1)와 같다. 법령에는 군악대를 2개 대를 만들어서 1개 대를 시위연대에 부속시키고 또 1개 대를 시위기병대에 부속시킨다는 내용이 있지만 처음에는 51인 1소대로 출발했다가 1902년에 군악 제2대가 증설되었다(Lee. J. H., 2008). 이번 군악대 복식 재현 시기가 1901년 9월이기 때문에 1소대 51명이 총 인원이었다. 51명의 대원들은 1등 군악장인 대장 1명, 2등 군악장인 부장 1명, 부참교인 1등 군악수 3명, 상등병인 2등 군악수 6명, 병졸인 악수와 악공 39명, 참교인 서기 1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Table 2>의 군악대 편제 규정 중 <Table 1>의 어느 관등에 해당되는지 알 수 없는 직함이 몇 개가 있다. 먼저 군악대 대장(隊長)인 1등 군악장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1900년 군악대 편제 규정이 다음해에 개정된 내용2)에 의하면 1등 군악장에는 정위 내지 부위가 임하도록 되어있다. 1902년 3월에 초대 군악대장이 된 김학수가 정위였으므로(Lee. J. H., 2008) 본 연구에서도 1등 군악장을 <Table 1>의 장교 중 위관인 정위로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1등 군악수인 부참교의 경우 <Table 1>의 하사 중 부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악수와 악공은 ‘병졸’로만 규정되었는데 <Table 1>을 보면 병졸에도 상등병, 1등병, 2등병의 세 종류가 있다. 이들 중 상등병은 2등 군악수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나머지 1등병과 2등병이 악수와 악공에 해당된다. 이상의 고찰을 정리하여 복식 재현에 필요한 군악대 구성 인원과 관등을 다시 제시하면 <Table 3>과 같다.
2. 1901년 군악대의 복식 관련 자료
군악대 복식은 군악대가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내에 편성되어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볼 때 대한제국기 군복의 제정, 개정과 함께 변화했다.
1901년 고종황제 만수성절에서 초연할 때 군악대가 착용한 군복은 1901년 9월 2일의 육군장졸복장제식 개정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즉 군악대 복식을 제정하는 법령이 별도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1901년 9월 2일 관보의 정오(正誤)에 발표된 육군 장졸복장제식의 개정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개정은 같은 해 9월 7일 고종황제 만수성절에서 군악대가 초연한 날의 불과 5일전의 개정이므로, 초연에 맞추어 그동안 하사 이하의 예복이 없었던 부분을 보완 수정할 목적으로 개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기사에는 이미 7월말에 군악대 복장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으므로3) 예복은 이미 준비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01년 9월 2일에 발표된 군악대 복식은 모자 상반부와 바지가 붉은색이며 바지 측면에 들어가는 봉장의 색이 흑색으로 규정되었고 의령장으로 금사로 자수한 악기형을 좌우에 1개씩 달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다만 몇 가지의 규정만 추가되어 있기 때문에 군복 전체 형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복장 규정인 1900년 7월에 개정된 ‘육군장졸복장제식’을 참고하여야 한다. 이 법령에서는 장교의 예복 상의가 이전 시기의 매듭단추로 여미는 늑골복(肋骨服) 형태에서 앞길에 단추가 두 줄 있는 더블 브레스티드(Double-breasted) 형태로 바뀌었다. 이를 선행연구에서는 교임식이라고 표현하였다.(Agency for Defence History [국방역사연구소] (Ed.), 1997) 또한 의령장에 계급을 표시하는 금사 자수의 별 문양이 추가되었다.
<Fig. 1>은 이 시기 법령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 자료로 민영환이 부장(副將) 예복을 착용한 모습이다(Courant, Maurice, Hong, S. M. & Park, P. J. (2010)). 상의 앞여밈에 두 줄 단추가 보이며 왼쪽 탁자 위에 모자가 놓여있는데 모자에는 정장 차림에 갖추게 되는 깃털로 만든 입전모(立前毛)가 꽂혀 있다. 모자 하반부에 가로로 놓인 선과 소매의 인(人)자형 줄 수가 여덟 줄로 부장의 계급을 나타내고 있다. 의령장 부분에 별 자수가 세 개 들어간 것이 장관을 표시한다. 어깨부분에는 술이 달린 대례견장이 보이고 오른쪽 어깨 아래에는 장관이 착용하는 식서(飾緖)를 패용하였다. 허리에는 식대(飾帶)를 맸고 흰 장갑을 낀 왼손으로 오른쪽 장갑과 함께 칼을 잡고 있다. 가슴에 달려 있는 메달과 어깨에서 허리로 걸친 것은 훈장으로 군복 복제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군악대 복식을 고증하는 데에도 일부 필요하다. <Fig. 2>는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시기 부장의 예복으로,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의 형태와 소재, 계급장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대한제국 군악대 복식을 고증하기 위한 관련 시각 자료로는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 만수성절(萬壽聖節)에서 초연을 한 후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단체사진(<Fig. 3>, 이하 사진이라고 부름)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가례도감반차도권(嘉禮都監班次圖卷)의 칼라 그림(<Fig. 4>, 이하 도권이라고 부름)이 남아있다. <Fig. 3>은 악기를 든 군악대 대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전체 인원이 51명이 되지 않고 군악장으로 보이는 가장 앞의 가운데 인물이 장교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내용은 실재 연주를 할 때 법령과 다르게 착용하고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 행사를 재현할 때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던져준다. <Fig. 4>는 군악대 복식을 칼라로 채색하여 표현한 반차도의 일부로, 이 그림을 통해 모자와 바지의 붉은색 색감과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군악대 유물 자료가 현재까지 보고된 바가 없지만 남아있는 일반적인 군복 유물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군악대는 대한제국 군사제도에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식의 형태와 소재, 치수 등은 공유하였다. 본 연구에서 활용한 유물 자료들은 고증 과정에서 사진을 제시하면서 서술하는 것으로 하겠다.
Ⅲ. 1901년 군악대 복식 고증
군악대 복식 고증은 법령의 규정을 기준으로 하지만, 1902년 9월 7일 고종황제 만수성절에서 군악대가 초연한 날에 촬영되었다는 <Fig. 3>의 사진에서 보이는 복식과 법령이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또한 <Fig 4>의 도권에는 군악대가 컬러로 그려져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지만 이 복식 또한 법령 규정과 다른 부분이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검토하여 선택한 고증 방향은 다음과 같다.
모자는 법령과 도권에는 입전모를 꽂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위의와 화려함을 더할 입전모에 관해서는 법령에 따라 착용하기로 한다. 상의 형태의 경우 법령에서는 군악대 대장은 앞여밈이 더블브레스티드의 예복이고 그 이하 사람들은 싱글브레스티드의 예복을 착용한다. 도권의 경우 군악대의 모든 인물이 측면으로 그려져 있어서 앞여밈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데, 사진에는 대장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싱글 재킷을 착용했다. 본 연구에서는 법령을 기준으로 하여 대장의 상의를 더블브레스티드로 고증하였다.
상의의 깃과 수구는 규정상 붉은색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붉은색은 보병을 나타내는 색상이다. 모자 정상부의 오얏꽃과 하반부, 상의의 깃과 수구부분 그리고 바지 봉장은 각 병과(兵科)에 따라 색상이 달라진다. 군악대의 경우 바지 봉장색이 흑색이므로 규정대로라면 상의의 깃과 수구도 검은색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의의 바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깃과 수구를 흑색으로 하면 장식효과가 없어진다. 또한 도권을 보면 깃은 붉은색으로 확실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수구도 붉은색이어야 하지만, 붉은색이 아니고 수장도 인(人)자형으로 금선이 들어가지 않고 하사졸과 동일한 일자형 붉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여 본 연구의 고증에서는 장교의 경우 깃과 수구를 붉은색으로 하고 인(人)자형 금선 수장을 달며 하사졸의 경우 붉은 깃과 붉은색 일자형 수장을 달도록 하였다.
군악대장의 식대는 법령에는 붉은색인데 도권에는 검은색으로 표현되었다. 식대는 법령 규정대로 붉은색으로 하도록 하였다. 하사졸의 경우 검은색 혁대이다. 의령장은 법령에는 금사로 자수한 ‘악기형’이라고만 규정되어 있어서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다. 사진과 도권에서도 알아볼 수 없으므로 1908년에 새로 규정된 군악대 복식4) 법령에 도식으로 제시된 ‘악기형장(樂器形章)’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군악대 연주 인원이 법령에는 51명인데 실재로는 3악대장 1명을 포함하여 33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현 인원은 상황에 맞게 정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정리하면 <Table 4>와 같다.
Ⅳ. 1901년 군악대 복식의 디자인
1. 군악대 장교의 예복 디자인
지금까지 살펴본 고증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901년 군악대 복식의 디자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군악대 장교 예복을 구성하는 복식은 모자와 상의, 바지가 있으며 부속품으로 식대와 도대, 칼, 도대, 구두, 장갑이 있다.5) 복식에 들어갈 계급장은 군악대 대장 정위 관등에 맞게 서술하고자 한다. 또한 군복의 구성품은 아니지만 <Fig. 3>에서 모든 대원들은 기념장을 패용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기념장의 도안도 함께 제시하였다. 각 복식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교 위관 정위에 해당되는 군악대 대장의 예복 모자는 1897년 5월의 정모(正帽) 규정과 1901년 군악대 복식 규정에 따르면 상반부가 붉은색이고 하반부가 흑색의 융(絨)으로 되어 있다.6) 모자에는 흑색 가죽으로 만든 작은 차양과 턱끈이 달려 있다. 정상부에는 흑색 융으로 만든 오얏꽃 문양을 붙이고 꽃의 주변을 금색으로 장식한다. 모자 주위에 두르는 금선은 양고직(兩股織)으로 달았다. 상반부의 전후와 좌우에는 금선 1줄이 수직으로 들어가며 하반부에는 수평으로 금선 3줄이 부착되었다.
모자의 하반부 앞 중앙에 들어가는 모표는 검은색 천으로 타원형으로 만든 것의 중심에 은색 실과 금색 꽃술로 자수한 오얏꽃을 두고 그 좌우에 금색 잎과 은색 꽃의 무궁화 가지가 교차하도록 수놓는다. 턱끈은 금사로 만든 둥근 끈이며 끈을 고정하기 위한 단추를 모자 하반부 좌우에 다는데 단추는 금색이고 중앙에 무궁화 모양이 있다. 모표 윗부분에 깃털로 장식한 입전모(立前毛)를 꽂는다. <Fig. 5>는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육군 부장 이도재의 모자 유물 사진이다. 상반부의 색이 흑색인 것은 보병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악대의 모자는 색을 다르게 표현하고 형태를 참고하여 <Fig. 6>과 같이 도식화를 그렸다.
1900년 7월과 1900년 2월에 개정된 육군장졸복장제식 규정과 1901년 7월의 군악대 상의 규정을 참고하여 상의의 형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7) 상의의 소재는 흑색 융이고 옷의 길이는 엉덩이를 가릴 정도이며 옷 뒷자락에는 23.4cm(5촌)의 트임이 있다. 트임 양쪽에 길이 23.4cm(5촌), 너비 4.7cm(1촌)의 붉은색 융을 대고 무궁화문양이 들어간 금단추를 3개 단다. 앞여밈은 더블브레스티드형으로 무궁화문양이 들어간 금단추를 좌우에 각 7개 단다. 깃과 수구에는 붉은색 융을 사용한다. 옷의 가장자리는 붉은색으로 파이핑을 한다<Fig. 7>.
상의에 들어가는 계급장으로는 깃 부분의 의령장과 소매 부분의 수장, 그리고 어깨부분에 다는 견장이 있다. 정위의 계급장은 다음과 같다.
의령장의 경우 깃 위아래에 한 줄씩 금사 자수선이 들어가며 좌우에 금사로 자수한 별문양이 하나씩 들어가는데, 군악대의 경우는 금사로 직조한 악기형이 하나씩 들어간다.
수장은 기(己)자형이 위아래로 조합된 금사 자수선 위에 금선 양고직으로 인(人)자형 선이 3줄 들어간다. 인자형의 뾰족한 부분에 금사 자수로 된 무궁화 문양을 단다. 금사 자수선 아래에는 무궁화문양 도금단추를 3개 단다.
견장은 금색 직물로 되어 있으며 장방형과 타원형을 합친 형태이다. 장방형 부분 끝에는 오얏꽃 모양이 들어가는 금색 단추 하나를 단다. 타원형 가운데에 붉은색과 흑색으로 된 태극 모양을 두고 그 좌우에 은사로 자수한 별문양을 좌우 각 3개 둔다. 타원형 부분에 술은 없다<Fig. 8>.
바지는 1897년 5월의 육군장졸복장제식에 따라 제작하고 1901년 7월의 군악대 규정에 따라 바탕색과 봉장(縫章)의 색을 정할 수 있다.8) 바지의 소재는 붉은색 융이고 형태는 일자형 긴 바지이다. 바지 양쪽 봉장(縫章)은 검은색이고 너비 4.7cm(1촌)의 선을 1줄을 단다<Fig. 9>.
장교의 예복은 위의 모자와 상의, 바지 이외에도 식대, 칼, 도대, 장갑, 구두를 갖추어야 예복 차림이 완성된다<Table 5>.9) 이와 같은 부속품에 대한 규정은 1897년 5월에 규정된 육군장졸복장 제식을 따른다.
식대는 붉은 실로 만들며 양쪽 끝에 노란색의 술이 달려있다. 도대는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고 칼을 고정하는 고리가 달려 있다. 칼은 칼자루 부분 앞뒤에 태극을 두고 칼자루 전체의 3분의 1이 금색 무궁화 나뭇가지 장식으로 덮는다. 도대는 검은색 실로 만든 둥근 끈으로 만든다. 장갑은 흰색 가죽으로, 구두는 검은색 단화(短靴)로 한다.
대한제국에 기념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고종이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는 진연 때였다. 1901년 9월 8일의 고종의 만수성절 기념 진연을 기하여 칙주임관, 사관, 규장각, 홍문관, 시강원, 익위사의 관리 가운데 진참하반자(診參賀班者), 진연(進宴) 거행 인원, 외국 신사로서 당일 입궐하는 사람에게 모두 기념장을 주어 달도록 하였다(Lee, 2003; Lee, 2011).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한국훈장도(舊韓國勳章圖)’에 수록되어 있는 기념장 도안은 <Fig. 10>과 같다(Lee, 1999).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Fig. 11>의 유물정보에 의하면 메달의 지름은 3.4cm이고, 직물은 세로 3.6cm, 가로 3.8cm이다. 직물의 세로는 일부 접혀서 후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펼쳤을 때의 길이를 다른 유물을 통해 살펴보면 4.8cm 정도이다. 기념장을 걸 때 윗부분을 훈장 걸이에 걸어 고리와 후크를 끼우는 방식으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통천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대한제국 대황제폐하 성수오십년 칭경 기념은장 광무오년 구월 칠일’ 이라고 새겨져 있다. 본 연구에서 제작한 기념장의 도안은 <Fig. 12>이다. 이 기념장은 하사 이하의 군악대원들도 모두 패용하는 것이므로 하사 이하의 군악대원의 일러스트에도 반영할 수 있다.
2. 군악대 하사 이하의 예복 디자인
군악대 복식 중 하사 이하에 해당되는 직명은 군악대 부장(副長), 1등 군악수, 서기, 2등 군악수, 악수, 악공이다. 각각의 관등은 하사인 정교, 부교, 참교와 병졸인 상등병, 1등병, 2등병이다. 하사 이하 복식은 모자와 상의, 바지와 함께 부속품으로 혁대와 구두로 구성된다. 각 복식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하사 이하의 모자는 1897년 육군장졸복장제식과 1901년 군악대 규정에 따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10) 소재와 형태, 정상부의 오얏꽃 모양이 육군과 기병대와 동일하고 도식화에서 모자의 형태도 동일한데 다만 1901년 규정에 따라 군악대의 경우 상반부는 홍융이고 하반부는 흑융이다<Fig. 14>.
상의는 1897년 육군장졸복장제식과 1901년 군악대 복식 규정을 따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11) 또한 1899년 12월에 개정된 소례견장을 참고할 수 있다.
하사 이하 상의는 장교 상의와 제식이 동일한데 다만 앞여밈이 더블브레스티드가 아니라 한줄 단추의 싱글 재킷이다 <Fig. 15>.
소재는 흑색 융이고 옷의 길이는 엉덩이를 가릴 정도이다. 옷 뒷자락에는 23.4cm(5촌)의 트임을 주고 트임 양쪽에 길이 23.4cm(5촌), 너비 4.7cm(1촌)의 붉은색 융을 대고 무궁화문양이 들어간 금단추를 3개 단다. 앞여밈에는 무궁화문양이 들어간 금단추가 한줄로 7개 달린다. 세운 깃 부분에 금사로 직조한 악기형의 의령장이 죄우에 각 한 개씩 들어간다. 수장은 붉은색의 일자형 선을 수구와 평행으로 넣는데 계급마다 차이가 있다. 하사의 경우 아래쪽에 2.3cm(5분) 선을 한 줄 두르고 그 위에 0.9cm(2분) 선을 정교는 3줄, 부교는 2줄, 참교는 1줄 두른다. 병졸의 경우 0.9cm(2분) 선을 상등병은 3줄, 1등병은 2줄, 2등병은 1줄 두른다. 견장은 붉은 색 융으로 만들고 장방형의 한쪽 끝 부분이 팔각형을 반 자른 형태이며 금속으로 만든 도금의 무궁화 모양이 들어간 단추 하나를 단다. 그 옆에 노란색 융으로 만든 가로선을 넣는데 계급마다 차이가 있다. 정교는 3줄, 부교는 2줄, 참교는 1줄이 들어가고 병졸에는 가로선이 없다. 가로선 옆에는 같은 노란색 융으로 한글로 ‘시위연대’의 글자를 넣는다<Fig. 16>.
하사 이하 바지는 1897년 5월의 육군장졸복장제식의 형태를 따르고 1901년 7월에 발표된 군악대 바지 규정에 따라12) 붉은색 융으로 된 일자형 긴 바지이다. 도식화는 장교의 바지 도식화와 같다. 바지 봉장은 흑색 선이 한 줄 들어가는데 하사는 너비 2.8cm(6분), 병졸은 너비 1.4cm(3분)이다<Fig. 17>
하사 이하 복식에 들어가는 부속품은 1897년 육군복장 규칙에 따라 혁대와 장갑, 구두가 있다. 검은색 가죽에 버클이 달린 혁대, 흰색 혹은 갈색 가죽의 장갑, 검은색 단화이다.
장교의 기념장과 동일하다.
Ⅴ. 결론
대한제국의 서양식 군악대는 1900년 12월에 설치되어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의 만수성절에 성공적으로 초연하였다. 본 연구는 국내에 처음 도입된 대한제국기 군악대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의 법령을 분석하여 고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복식 디자인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고증 대상으로 삼은 시기는 군악대가 초연한 1901년으로 선정하였다. 군악대 복식은 9월 2일에 육군장졸복장제식의 개정을 통해 발표되었지만 초연에 착용하기 위해 실재로는 이미 그 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발표된 군악대 복식은 기존의 군복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군악대를 표시하는 색이나 표지가 반영된 모자, 견장, 바지 등을 규정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직전의 육군장졸복장제식인 1900년 7월 2일 규정을 기본적으로 분석하고 1901년 규정을 부가하는 형식으로 법령을 분석하였다. 또한 남아 있는 군악대 사진과 1906년에 그려진 가례도감반차도권의 칼라 그림을 분석 자료로 활용하였다. 법령, 사진, 도권은 필요한 내용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향으로 고증하였다. 군악대에는 장교와 하사 이하 군인이 함께 포함되었다. 두 계급의 복식은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장교의 복식과 하사 이하 군인의 복식을 따로 검토하였다.
먼저, 군악대 장교는 모자(帽), 상의[大禮衣], 바지[袴], 대견장(大肩章), 식대(飾帯), 도서[刀具緒], 도대(刀帯), 흰색 가죽 장갑[白革手袋], 땀받이용 칼라[白布下襟], 구두[靴]를 착용하였다. 첫째, 모자는 상반부가 붉은색, 하반부가 흑색 융이었고 상반부에는 전후좌우에 금선 1줄을 수직으로 붙이고 하반부에는 가로로 금선 3줄이 들어갔다. 모표에는 오얏꽃을 중심으로 무궁화 가지를 교차하여 수놓았고 모표의 윗부분에 입전모(立前毛)를 꽂았다. 둘째, 상의는 흑융으로 만들었고 깃과 수구는 홍융을 사용하였다. 의령장(衣領章), 수장(袖章), 견장(肩章)에 계급별 차이를 두었다. 정위의 의령장에는 좌우에 금사로 직조한 악기형이 하나씩 들어갔고, 수장에는 금선 양고직으로 인(人)자형 선 3줄을 넣었으며, 견장은 장방형과 타원형을 합친 형태의 금색 직물로 술장식은 없었고 태극문양 좌우에 은사로 자수한 별문양을 각각 3개씩 두었다. 셋째, 바지는 붉은색 융으로 만들고 봉장(縫章)은 흑색 선 1줄인데 너비가 4.7cm였다. 넷째, 부속품으로 식대, 도대, 칼, 도대, 장갑, 구두를 갖추었고 대체로 계급의 차이가 있었다.
다음으로, 하사 이하 군인에는 하사인 정교, 부교, 참교와 병졸인 상등병, 1등병, 2등병이 해당된다. 이들은 모자, 상의, 바지와 함께 부속품으로 혁대, 구두를 착용하였다. 첫째, 모자는 소재, 형태, 정상부의 오얏꽃 모양이 장교와 같았고 모표, 턱끈, 계급장이 달랐다. 둘째, 상의 제식은 장교와 동일하지만 앞여밈이 한줄 단추인 싱글 재킷이었다. 의령장에는 악기형을 금사로 직조하여 달았고, 수장은 계급에 따라 일자형 선의 너비를 달리하여 넣었으며, 견장에는 한글로 ‘시위연대’라는 글자를 넣었다. 셋째, 바지는 홍융이고 봉장은 흑색 선 한 줄을 넣었는데 하사와 병졸의 너비가 달랐다. 넷째, 부속품으로 혁대, 장갑, 구두가 있었고 계급 간 차이는 없었다. 군악대 복식이 가진 가장 큰특징은 모자 색, 바지, 봉장의 색에 붉은색과 흑색이 일반 군인들과 반대로 하여 색의 차이로 부대의 특징을 구별하였다.
대원들은 왼쪽 가슴에 기념장을 패용하였다. 대한제국기 기념장은 1901년 고종이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는 진연에 맞추어 처음 제작되었는데 군악대도 이 기념장을 패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훈장 유물의 치수를 대입하여 기념장의 도식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는 과정에서 법령, 사진, 도권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먼저, 모자는 법령과 도권에는 입전모를 꽂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진에는 보이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위의와 화려함을 더할 입전모에 관해서는 법령에 따라 착용하기로 하였다. 상의는 법령에서는 대장이 더블브레스티드이고 그 이하 사람들은 싱글브레스티드의 예복이지만, 사진에서는 대장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싱글브레스티드를 착용했다. 본 연구에서는 법령에 따라 대장은 더블브레스티드의 상의를 그렸다. 장교의 경우 깃과 수구를 붉은색으로 하고 인(人)자형 금선 수장을 달며 하사졸의 경우 붉은 깃과 붉은색 일자형 수장을 달도록 하였다. 상의 의령장은 법령에는 금사로 자수한 ‘악기형’이라고만 규정된 것을 1908년의 법령에 도식으로 제시된 ‘악기형장(樂器形章)’의 형태로 표현하기로 했다. 군악대장의 식대는 법령 규정대로 붉은색으로 하도록 하였고 하사졸은 검은색의 혁대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군악대 연주 인원이 법령에는 51명인데 실재로는 3악대장 1명을 포함하여 33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현의 인원은 상황에 맞게 정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의 결과는 도식이 남아있지 않는 대한제국기 군복 법령을 분석하여 제복 도식을 도식화와 칼라 일러스트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대한제국기 군악대 복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근대 군복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바탕으로 군복을 재현하거나 영상물을 제작한다면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17년 서울특별시에서 지원한 ‘대한제국기 군악대 복식 도안 제작 연구’에 의해 수행된 연구임.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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