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복식 조형성의 변화 과정과 특징 :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매방류 중심으로
Abstract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 which was caused by advanced science and technology causes the development and change of culture along the current trends. Korean traditional culture, which can be regarded as rational basis, should be maintained and succeeded. However, traditional culture inevitably keeps changing causing a dispute over its “legitimacy” that it should be unchanging and “modernity” that it should go along the trends. Looking at how Lee Mae-Bang’s Seung-mu costume changed and developed over time, theatrization can be applied as an exemplary case showing the mutual, eclectic answer to this issue. Lee Mae-Bang’s Seung-mu costumes have some characteristics; its change of form became simplified and refined as time passes. Moreover, Lee Mae-Bang’s Jang-sam has several stages of formational changes: the first stage is the Duru-magi way cutting; the second stage is extended diagonal-line cutting; and the third stage is the addition of width extension, which makes the costume wide enough to cover up the body during the Yum-bul-gwa-jang dance. Furthermore, the black-colored Jang-sam became impressive from gold-embroidered decoration and has three color arrangements which are relevant to Korean’s favorable number “3”. The color composition varied depending on the color of Jang-sam, which is based on the three color arrangement, The white Jang-sam went along with jade green jeo-gori (jacket) and ba-ji (pants) with white go-kkal (cone-hat) and hong-dde (red-colored band), whereas the black Jang-sam went along with white or dark jade green jeo-gori and ba-ji, hong-dde. This color arrangement created an image to show aesthetic philosophy, combining the chum (Korean dance) and costume into one.
Dance is an expression of human emotion through movement and facial expression. it is typically visualized ass an image, and effectively designing an image that depicts human emotion would create a stage costume. Thus, dance and costume should be coincided as an art. Stage costume should be created with design, material, and color that match the content and form. At the same time, it should be expressed and created along with modern trends, encompassing one’s thought and aesthetic philosophy.
Keywords:
formativeness, Lee Mae-Bang, modernity, stage costume, Seung-mu costume, traditional culture키워드:
조형성, 이매방, 현대성, 무대 의상, 승무 복식, 전통 문화Ⅰ. 서론
춤이란 기쁨이나, 슬픔, 분노와 같이 인간의 감정을 동작이나 표정으로서 음률에 따라 표현하며, 이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것이 이미지이다. 이미지란 사물의 감각적 심상을 형태나 색채와 연관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영상으로서, 다양한 예술의 시각적 이미지는 선, 형태, 색, 재질의 느낌으로 디자인 하는 것이 무대의상이다. 그러므로 춤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의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서 일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승무복식과 관련된 선행 연구들은(Cha, 1984; Choi, 2003; Back, 2011), 민속춤을 주제로 무용 분야 연구에서 무복의 구성요소만 제한적으로 다루어졌다. 우리나라 민속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승무는 현재 한영숙류 승무와 이매방류 승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으며, 한영숙류 승무복식의 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반면에, 이매방의 승무복식은 시대가 지나면서 극대화된 무대에 따라 구성의 변화와 조형의 발전도 함께 이루어졌다. 현재 대다수의 무용 전공자나 무용가들이 의상을 전문 의상실에서 의존하여 맞춰 입고 있는 실정이라서 전통복식이나 무대의상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전통성과 현대성의 두 가지 관점에서 이매방류 승무복식의 조형성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매방(1927.5.5.~2015.8.7)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1987년 제 27호 승무와, 1990년 제 97호 살풀이춤 2종목의 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전통춤의 일인자이다. 그뿐 아니라 전통복식과 관련하여서도 그의 무대의상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어서 복식사적인 연구 주제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춤을 직접 연행하는 무용인으로서 자신의 춤사위에 맞는 무용의상을 전통복식을 참고로 하여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였다. 전통복식을 기본으로 했지만, 춤의 미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움직임에 방해되는 부분들을 끊임없이 개선시킴으로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대의상의 영역을 이루어낸 것이다.
민속춤에 대한 기존 선행 연구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꿔보기 위해, 이매방 살풀이춤 복식 연구(Jeong, 2013)를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간과 되어온 이매방 살풀이춤 복식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매방류 살풀이춤 복식의 특징과 조형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의 이매방류만이 갖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무대의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 발표되었던 논문은 이매방 춤과 무대의상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승무의상을 함께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이매방 춤의 미의식과 특성을 알려면 그의 살풀이춤과 함께 승무를 살펴야 하듯이, 그의 무대의상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살풀이춤 의상과 승무의상을 함께 다루어야 적합한 것이었다.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먼저 살풀이춤 의상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복식을 비롯한 민속 춤 복식들이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보존되지 못했다. 현재 승무와 살풀이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기록물로 보관되어 있고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이에 승무복식에 대한 부분도 연구되어 자료로 남겨짐으로서 전통춤과 의상의 총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종합 예술로서 우리나라 전통춤의 미를 한층 더 빛나게 할 것이다. 또한 민속 문화 자료로서 민속 춤 복식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민속무인 승무복식의 연구에 있어서 연구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승무복식의 구성의 변화와 조형성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연구방법은 승무와 승무복식의 이론적 고찰과 더불어 이매방의 화보집을(U-bong Lee, Mae-bang’s Dance Preservation Society, [ULDPS], 2011) 중심으로 연도 별 구성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고, 이매방의 제자 김정기와 저자가 보관하고 있는 유물 자료를 밑바탕으로 이매방이 착장하였던 승무복식을 실측하여 조형의 변화를 비디오 자료[중요무형문화재 우봉 이매방 고희기념 무용대공연, 96년 12월], [외길인생 이매방 춤 대공연, 2001년 12월] 와 대조하여 확인하는 방법으로 비교 분석하였다. 또 기존의 대담집을 이용하거나 저자가 이매방의 공연의상을 제작하였던 기간(2003년 3월부터 2013년 9월)까지의 이매방의 양재동 자택에서의 직접적인 면담을 활용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는 시대가 달라지고 무대가 확장되는 변화에 의해 요구되는 승무복식만이 가지는 조형성의 변화와 특징, 색의 사용에 따른 미적 특성을 규명하였다.
Ⅱ. 승무의 기원과 승무복식 자료의 유형
승무의 기원에 대하여는 명기 황진이가 수도승 지족선사를 파계시킬 목적으로 세모시 장삼(長衫)에 한 모시 고깔을 쓰고 다홍 장삼의 승복 차림으로 교태로운 춤을 춰 끝내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다는 황진이설, 동자무설, 김만중 소설의 구운몽설, 파계승의 번뇌설, 탈놀음의 노장춤설 등이 있으며(Kim & Hong, 1968) 승무의 구성 요소인 음악, 법고, 복식 등을 볼 때 불교의 형식적인 면과 비슷함으로서 ‘불교 의식무 기원설’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매방류 승무의 시조는 전남 옥과 출신의 신방초로 전승 계보자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인 권번(券番)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호남의 승무 음악은 ‘세면 염불’로 경기류 삼현육각의 승무 음악과는 달랐는데 악사들이 모두 죽어서 보존되지 못했고 현재는 주로 경기류 음악을 쓰고 있다(Kim, M. B. & Kim, M. S, 2004).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에는 <Fig. 1>‘무동(舞童)’이 있다. 두 개의 피리와 대금, 해금, 장구, 북으로 이루어진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맞추어 춤추는 소년의 모습이다. 또 조선시대 19세기 화가인 김준근의 ‘기산풍속화첩’ 중에서 ‘수륙재(水陸齋)’ 그림이 있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의 고혼(孤魂)이나 아귀에게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법회인데 자바라를 높이 치켜들고 춤추는 승려, 큰북을 두드리는 승려, 그리고 그 뒤에서 고깔을 쓴 여승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있어서 불교 의식무와의 관련성을 알 수 있다(Dictionary of Korean myths and symbols, 1992). 승무복식 자료의 유형은 태고종 계통의 승려들에 의해 행해지는 불교 의식무인 영산재의 작법무로 바라춤, 법고춤, 나비춤, 타계춤과 19세기 중엽에 편찬된 무당내력고(巫党}來歷攷)에 보이는 제석거리의(Han, 2010) 굿거리에서도 볼 수 있으며, 회화로는 조선후기의 풍속화와 산수. 인물. 화조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그렸던 김은호(1892-1979)의 승무도와 그의 제자 장우성(1912-2005)의 승무도가 있다. 이는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했던 조선 시대 후기에 불교문화에서 확산되어 승무와 같이 다양한 기층문화로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무복의 조형성도 다르게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00년대에 승무를 추었던 기생의 <Fig. 2>을 보면 남색의 장삼임이 확인된다.
Ⅲ. 승무복식의 구성과 조형성의 변화 과정
1. 승무복식의 구성
승무복식의 구성은 장삼, 바지저고리/치마저고리, 고깔, 홍띠와 북장단에 쓰는 북 채 그리고 춤사위 중에 장삼을 날릴 때에 사용하는 장삼 채가 있다.
맞깃의 두루마기 형태의 포제로 소매가 길다하여 장삼이라 한다. 승무에서 주로 긴 장삼으로 뿌리고 채고 하는 등의 동작으로 춤사위를 표현하므로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하다. 착용방법은 좌우 고름을 등 뒤쪽으로 쌍 고름을 내어 입는다.
장삼 안에 입는 내의로 남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입는데 치마 겉자락을 오른쪽 방향으로 돌려 치마끈(주릿대)을 매는 것이 이매방류의 특징이다.
하얀 얇은 사로 만들어 얼굴 낯이 약간 비치도록 하여 머리에 쓰고 벗겨지지 않게 얇은 끈을 목에 매어 고정시킨다.
2. 시대별 사진을 통해 본 승무복식의 구성과 형태 변화
이매방의 승무는 장삼, 저고리와 바지, 고깔, 홍색 띠, 버선을 입고 북채를 들고 몸은 북쪽을 바라보고 엎드려서 춤사위가 시작되는데, 공간 구도에 있어 중고도와 저가 많이 나타나며 무대의 상수나 하수 영역보다는 좌, 우측 무대를 중심으로 공간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고, 무대의 전, 후, 좌, 우의 구성이 뚜렷하지 않으며 원형으로서의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무대 안쪽에서의 동작이 복잡하나 산발적으로 퍼져있고 대체로 공간 영역을 좁게 사용하면서 객석 한쪽을 의식한 구성이라기보다는 원형 무대 즉, 마당이나 좁은 마루 공간에서 추어지는 무대 구성상의 특징이 더욱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도 그 자태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는 사방 춤에 가까운 춤으로 볼 수 있다(Choi, 2003).
이와 같이 이매방 승무는 권번으로 전승되어져 마당과 같은 작은 공간에서 춤을 추게 되어있기 때문에 관람객은 사방에 둘러앉아서 구경하도록 되어있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서 원형 지향적인 사방 춤이 이매방 춤의 특징이다. 이는 작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행위자는 춤사위를 풀 수 있으며, 관람객은 사방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그 춤을 감상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이매방류 승무의 원형지향적인 사방 춤의 특징은 의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이매방류 승무의상의 특징은 앞뒤 좌우에 균등한 비율의 너비를 폭간에 일정하게 더해줌으로서 A 라인을 이룬 형태의 넓은 실루엣을 이루고 있다. 이는 무대화되면서 관객과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큰 무대에 맞게 장삼의 길의 폭은 넓어졌으며 장삼 소매 자락 길이 또한 길어졌다. 예를 들어 처음 염불장단에서 엎드려 장삼을 펼쳤을 때 장삼의 폭이 몸을 덮고도 남는 웅장함이 지배적이며, 뒤로 묶는 좌우 고름 또한 약간의 사선을 넣은 10cm~11cm 가량의 넓고 155cm의 긴 확장형 고름이다. 또 검정 장삼의 경우에는 선단에 화려한 금수를 일정한 비율의 너비로 전체를 장식함으로서 앞뒤 좌우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춤이나 의상의 미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한영숙류나 다른류에 비해 넓고 화려하며 대체로 색채도 다양하게 쓰이는 편이다. 이러한 이매방 승무의 의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의상으로 정형화 하였는지를 살펴보면, 먼저 16세의 이매방이 1940년대에 공연했던 사진이 참고가 된다.
<Fig. 5>의 승무의상의 구성을 보면, 흑백 사진임에도 흰색 고깔에 흰색 바지저고리와 검정 장삼과 홍색 띠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장삼의 진동 옆 소매의 트임이 현재와 같이 소매 밑이 아니었고 <Fig. 5-1>의 이당 김은호의 승무도와 같이 세로로 트여 있음이 확인된다. 이에 대해 이매방은 처음에는 북채를 꺼내는 창을 앞으로 내어서 착용하였으나 시각적으로 보기 싫고 또 자신만의 춤사위를 적용했을 때 굳이 앞에 내지 않아도 되므로 보이지 않는 소매 자락 밑으로 창을 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장삼 깃에 동정이 달려있으며, 장삼의 길이가 현재보다 많이 짧았고, 소매넓이가 넓은 반면 소매길이는 짧았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 <Table 1>은 승무 복식의 구성과 형태 변화 발전 과정의 분석을 위해 특색이 있는 사진 자료를 시대별로 정리하였다.
승무의상에 자신의 춤사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창작성을 가미하기 시작하는 1977년 의상인 <Fig. 6>를 보면 흰색 고깔, 자색 바지저고리, 검정 장삼, 홍띠, 그리고 행전의 구성으로 초창기에는 행전을 착용하고 있고, 자색의 저고리와 바지도 이색적이다. 1940년대에 보이던 동정이 1977년의 검정 장삼에도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년 뒤의 1978년 <Fig. 7>는 흰색 고깔, 흰색 바지저고리, 흰색 장삼, 홍띠, 행전의 구성으로 염주를 착용하여 종교적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고, 장삼이 짧았으며 흰색 장삼으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이때 바뀐 흰색 장삼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1984년 <Fig. 8>은 흰색 고깔, 푸른색 계열의 비취색 바지저고리, 흰색 장삼, 홍띠와 행전으로 구성되었는데 행전과 바지저고리의 색이 같은 색임을 알 수 있다. 1998년 <Fig. 9>은 흰색 고깔, 옥색 바지저고리, 흰색 장삼, 홍띠의 구성으로 행전이 없어지고 장삼 길이가 길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Fig. 10>은 도식의 구성 형태로 보았을 때 1990년 후기의 것으로 보이며,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책 표지에 실려 있다.
옥색 장삼을 입고 있고 장삼소매 자락에 장식되어 있는 옥색 노리개가 특징이다. 2004년경을 전후하여서는 이매방의 승무는 주로 검정 장삼을 착용하고 있음이 <Fig. 11>에서 확인된다. 이매방 춤 인생 70년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흰색 고깔, 흰색 바지저고리, 검정 장삼에 홍띠를 두르고 홍색 주머니를 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길이가 현저히 길어지고 폭이 넓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이 주목된다. 6년 뒤의 사진 <Fig. 12>에서는 구성은 <Fig. 11>와 비슷하고 장삼도 검정색으로 동일하지만, 검정 장삼에 금수를 선단과 고름에 장식함으로써 더욱 화려해졌으며 고깔에는 나비모양을 그려 넣고 부귀다남(富貴多男)을 써 넣었다.
이처럼 검정 장삼의 깃에 동정이 달려있던 초기와 행전을 착용하거나 목에 염주를 걸고 있던 1980년대까지는 살풀이와 같이 직선재단이었다. 간략하게 정돈 된 오늘날의 장삼은 1990년대 이후 동정과 행전의 착용이 없어지고 주로 흰색 장삼을 착용하였다. 장삼의 폭은 넓어지고 길어졌으며 소매길이 또한 매우 길어졌다. 2004년대 전후로 속이 비쳐 보이는 검정 장삼을 주로 착용하면서 장삼의 섶단이나 밑단에 금수 장식을 하였고 살풀이 의상과 같이 화려해졌으며 폭의 넓이는 1990년대보다 더욱더 넓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넓어진 장삼은 받쳐 입은 내의(저고리와 바지), 홍띠와 함께 춤사위의 움직임에 따라 중첩된 실루엣을 보인다.
그리고 장삼의 소재로 주로 숙고사나 갑사를 사용하는데 실의 가닥수에 따라 2합사 또는 4합사로 구분하며 가닥수가 많을수록 두꺼워진다. 이매방의 장삼은 초기에는 숙고사와 같은 4합사의 소재로 겉이 잘 비치지 않는 소재였으며, 얇은 생초와 같은 견을 두 겹으로 바느질 한 것도 있었다. 이후 점차 얇아져서 안의 저고리와 바지색이 비춰 보이는 얇은 2합사의 국사를 사용하였다. 이에 대해 이매방은 장삼이 비춰야 그것이 한국의 미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ACK, 2006). 심지어 비치지 않는 장삼을 어두운 밤 꿈에 나타나는 귀신에 빗대기까지 하면서, 장삼은 모름지기 안에 있는 무늬까지도 훤히 비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는 무대가 야외이거나 조명이 부족한 실내에서 숙고사와 같은 4합사의 속이 비치지 않는 검정 장삼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보다 흰색 장삼의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가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또 <Fig. 5>과 <Fig. 12>을 비교해 보면 장삼소매 길이가 현저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는데 43cm가 넘는 넓이와 2m 35cm가 넘는 길이의 장삼 소매를 멀리 흩뿌리거나 원하는 춤사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원단의 무게를 줄여야 하였으므로 2합사의 국사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 2000년대를 전후한 검정색의 얇은 2합사의 국사는 속이 비쳐 보이는 소재의 특성으로 흰색 장삼보다 신비스런 효과를 연출 할 수 있었고, 섶단이나 고름에 입체감을 줄 수 있는 징금수의 금수 장식을 함으로서 장중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었다.
3. 승무장삼의 실측도와 도식의 조형성 변화
장삼은 소매가 긴 옷을 뜻 하는데, 조선 전기 노의(露衣)와 같이 대수(大袖)의 포제로 품계에 따른 반가 부인의 예복으로 사례편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스님이 가사와 함께 착용하는 옷이기도 하다. 기녀가 장삼을 착용했던 것은 고려 시대부터로 황제의 평상복으로 사용되는 황색을 기생의 옷에 사용하는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사신의 지적으로 검정 장삼으로 바뀌게 되었다(Annals of the Joseon Dynasty 109, Sejong 27 year). 또 이규경은 화한삼재도회에 나타난 도복 제도에 대해서 “이것은 직철(直裰)과 동일하고 직철은 곧 승의(僧衣)에서 된 것이며, 직철은 편삼(編衫)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즉 승려의 단의(短衣)이다. 상(裳)을 군자(羣子)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서로 연결시키면 그것이 직철이다. 직철은 중국에서 승도들이 착용하는 표의로 우리나라의 도포와 같다. 우리나라에서 승이 상시 입는 옷을 장삼(長衫)이라고 불렀는데 그 모양은 도포와 비슷하다.” 라고 하였다(Lee, Gyu-Koung, Ou Ju-Yeon, Mun-Jang Jeon San Go). 이상과 같이 장삼이라는 명칭은 같으나 착용 사례에 따라 조형의 양식은 다르다.
이매방 승무의상의 독특성은 그의 장삼에서 나온다. 두루마기의 직선재단 형태이던 것을 밑단으로 갈수록 A 라인으로 폭을 넓게 확장한 것인데, 이러한 장삼이 한영숙류나 강선영류와 다른 이매방류 승무의상에 대하여 자신만의 특허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주장하였다(Arts Council Korea[ACK], 2006). 또한 “의상도 작품이므로 잘 만들어야 한다.” 면서 춤의 한 부분으로서 무대의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LeeMaeBang interview by the author, 2003. at one’s house in Yang-jae-dong). 호남 출신의 권번을 중심으로 전승 발전된 이매방류 승무는, 마당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원형적 사방 춤이었던 것이 시대가 달라지면서 무대화의 극대화에 따라 관람객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따라서 큰 무대에 맞게 승무복식이 변화되었는데, 장삼의 폭은 추가되면서 매우 넓어졌고 폭과 비례하여 장삼 소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2m 45cm에 이르는 조형성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긴 장삼소매는 뿌리고, 채고, 감고, 걸치고, 넘기는 형태 등의 춤사위에 따라 다양한 선의 미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매방이 직접 착용하였던 장삼을 실측하여 도식의 변화와 그 특징을 고찰하면 살풀이춤 복식인 무동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식의 변화 형태의 초창기 의상이 존재하지 않아서 확인되지는 않으나, 앞에서 언급했듯 <Fig 7, 8>를 보면, 행전을 착용하고 짧은 장삼에 직선재단이었던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당시의 장삼을 1단계로 가정하면 직선재단의 1단계와 <Fig 9, 10>의 폭이 추가되면서 사선재단으로 발전하는 2단계 그리고 2단계 형식의 장삼 어깨에 절개선을 넣어 한 폭씩 추가시킨 3단계 장삼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Table 2>는 승무 장삼의 폭이 넓어지는 조형성 변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이매방이 직접 착장하였던 2단계 장삼의 치수와 도식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Table 2>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어깻바대의 앞과 뒤가 10cm로 같았으며 등솔기를 중심으로 등품의 2배 이상 확장된 A라인의 넓은 장삼으로, 고름은 위가 5.5cm 밑이11.5cm의 사선 형태였으며, 가장자리를 얇게 접어 박은 홑의 긴 고름이다.
위 <Fig. 13>의 옥색 장삼은 이매방의 제자 김정기가 이매방에게 물려받아 보관 중에 있는 것이다. <Fig. 13-3>은 장삼의 긴 소매 자락의 겨드랑이 부위 양쪽에 장삼과 같은 색의 옥색 노리개를 달아 장식하였는데, 팔의 춤사위를 할 때 무게 중심을 밑으로 잡아줌으로서 소매 자락이 휘감기지 않고 펼쳐주는 기능을 하며, 춤사위를 할 때 마다 흔들리는 시각적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Fig. 13-4> 어깨와 진동아래 부위에 작은 고리를 만들어 붙여 놓았는데, 고리의 기능은 장삼 소매자락을 효율적으로 멀리 날리기 위해 이매방이 고안하였다. 눈에 잘 뛰지 않는 투명한 낚시 줄을 매달아서 나무로 된 긴 채(장삼 채)를 매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한다. 고리는 나중에 도식의 유형이 바뀌는 3단계의 검정 장삼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데, 검정 장삼에서는 고리의 유형이 약간 바뀌어서 어깨선과 화장의 80cm가량 되는 선단을 댄 곳에 고리를 하나 더 고정하여 두어서 옥색 장삼과 같이 낚시 줄을 이어 긴 장삼 채를 매어달았다.
<Table 3>은 이매방이 직접 착장하였던 3단계 검정색 장삼의 치수와 도식을 표로 나타낸 것으로 <Fig. 15-3>의 도식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처럼, 고대 중심에서 30cm 내려온 등솔 중심 아래부터 도련까지 사선으로 10cm에서 15cm까지 넓게 확장시켰으며, 무동복과 마찬가지로 어깨선에 절개선을 하나 더 넣어서 절개선의 양쪽에 같은 비율의 넓이를 더해줌으로서 밑 도련을 2단계 장삼보다 더 넓게 확장시킨 것을<Fig. 15-2>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춤사위 중에 40~45cm의 장삼 채를 뒤 장삼 자락 안에 살짝 모아 넣어서 두 팔을 벌릴 때 넓게 펼쳐진 장삼 자락이 춤과 조화를 이룬다. 장삼의 등의 총 길이는 착장하였을 때 바닥에서 10cm-13cm위의 길이이다. 이매방류 살풀이춤 의상의 3단계 도식 구도가 1999년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살풀이춤 복식 연구에서 규명하였다. 승무의상의 도식의 구성 방식이 살풀이춤 의상과 같은 것으로 볼 때, 승무의상의 도식의 조형성도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Ⅳ. 이매방 승무복식의 미적 특징
1. 장삼의 색
색은 다양한 보편적인 이미지 특성으로 언어보다 선행되어 빠른 의사소통의 의미를 가지며 다른 표현 수단보다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농축된 조형 언어이다(Kim, Moon, Lee, & Lee, 2003).
승무복식인 장삼의 색은 크게 흰색과 검정색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정갈한 백색의 장삼은 우리민족의 순결함과 소박함, 무저항성과 온화함을 나타내며 긴 장삼 소매로 인한 다양한 곡선은 비상하는 기개로서 자유의지를 승화시킨다(Jeong, 2010). <Fig. 17>을 보면 한영숙류에서는 흰색 장삼을 착용하였으며 이매방은 주로 검정색 장삼을 애호하였다. 한영숙류 승무복식인 흰색 장삼의 기원은 한성준이 승무를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무속인이 굿거리에 착용하던 무복을 응용하여 창작한데서 기인한다. 한성준의 손녀인 한영숙이 한성준의 춤을 이어받아 한영숙류로 정립시켰다.
유명한 ‘승무’ 시를 지은 조지훈(1920. 12. 3~1968. 5. 17)은, 나의 시 나의 시론에서 스무 살되던 해 첫 여름에 예술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의 승무도와 기녀의 승무를 보게 되었는데, 승무를 추는 무용가와 이당 김은호의 승무도 에서 영감을 받아 시 ‘승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Jo, 2007). 이를 미루어 볼 때 당시에도 검정 또는 짙은 남색 장삼과 흰색 장삼을 무용가들이 혼용하여 착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Fig. 16> 김은호의 쌍승무도에서도 검정 장삼과 흰색 장삼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삼색의 유형은 이매방의 구술에서도 확인되는데 첫 무대에서 누나들이 입은 남색 장삼과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고 쓰여 있는 고깔을 빌려 입고 무대에 올랐다 한다(ACK, 2006). 이매방이 어린 시절에 누나라고 부르던 권번의 기녀들도 당시 남색 장삼이나 검정 장삼을 입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승무의상의 삼색 배색
승무의상은 크게 장삼, 저고리와 바지(남), 저고리와 치마(여), 홍띠(가사), 고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흰색 또는 검정색, 빨간색 등의 2원색 또는 3원색을 갖추는데 이러한 의상의 색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즉, 흰색의 장삼과 고깔, 버선은 인간의 맑고 밝음, 순수함을 의미하며, 검정색의 장삼은 어둠과 힘을 나타내어, 어두움 속에서도 강한 인간의 의지를 표상한다. 또한 붉은색의 가사는 인간의 사랑과 정열을 의미하면서, 대체적으로 단조로운 승무의 의상에 강렬함을 더해준다(Yang, 2010).
조선시대 궁중 연회 때 연출 하는 춤을 정재무(呈才舞)라 하는데, 춤꾼인 여령(女伶)이 입는 옷은 오방색의 색동옷으로 되어있다. 오방색은 바로 생명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궁중무용의 하나인 처용무(處容舞)에는 다섯 사람의 춤꾼이 각기 다른 오방색의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춘다. 또 학의 가면을 쓰고 나와 추는 학무(鶴舞)는 암수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나와 춤을 추면서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의 비천상을 연상케 한다. 춤꾼이 입는 오방색 옷은 원래 무당이 굿할 때 입는 옷에서 기원하여 궁중 무용복으로 이어지고, 어린이들의 색동저고리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Han, 2010, p. 120).
이렇게 전통적으로 오방색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이매방류 민속춤 복식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주로 음양오행에 의한 오방색 사용으로 일률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승무의 복식에서는 세 가지 색을 사용하여 삼색 배색을 한다거나 장삼의 색은 흰색, 검정, 회색 등의 무채색과 옥색을 사용하였다. 또한 저고리와 바지에는 짙은 비취색, 옥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고, 여 제자들이 착용하는 이수복의 저고리와 치마에는 비취색, 옥색, 분홍색 등의 다양한 색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원래 숫자 3은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숫자이다. <단군신화>에 담긴 삼은 하늘, 땅, 인간 곧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키는데, 천지인은 바로 <우주>를 가리킨다. 그런데, 셋은 합치면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삼신을 일신(一神)으로 보고, <삼신할머니>로 부른다. 이는 <천지인=우주>가 하나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셋에 대한 사랑은 삼조선, 삼한, 삼국 등 역사 용어로도 나타나고, 삼천 궁녀, 황금 삼만근, 삼십만 대군 등의 표현으로도 나타난다. 씨름을 할 때 3판 2승제를 선호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고구려 무덤을 보면 세발 달린 까마귀가 둥근 태양 속에 있는 그림이 무수히 보인다. 이는 까마귀가 태양 속에도 살고, 지구상에도 사는 새로서 천지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영조(靈鳥)로 보기 때문이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하늘로 돌아가셨다고 믿는 풍습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3박자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고, 고대의 제사 그릇은 삼족기(三足器)를 많이 썼다. 제사는 하늘에 있는 조상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Han, 2010, p. 91).
이매방은 삼색 배색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구술하고 있다.
“긍께 모든 것이 삼색, 배색이에야 되거든. 게 남자 옷도 세 가지가 틀려야 멋쟁이라 그러잖애. 흰 와샤쓰다가 검정 우아래. {양복,으음} 쓰봉, 우와기. 그럼 넥타이 빨간거, 삼색 아니야. {으음 } 그 이상 사색 되믄 지저분하고 세련이 안 되고 그런다고 그러지 않애 ”(ACK, 2006, p. 144)
승무는 춤의 제목이나 복식으로 보아도 불교적인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 종교적인 이미지로서 근엄성과 숭고함, 정제미가 의상으로서 상징적 언어가 표현되어야 한다. 장삼의 색을 무채색을 주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2색 배합은 단조로움을 주고 4색 배합 이상은 시각적으로 분산됨으로 포인트가 없어진다. 살풀이나 대감놀이 등 이매방류 춤의 의상은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고 밝게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승무의상은 완전한 삼색 배합으로 절제함으로서 홍띠의 밝고 붉은 색으로 정갈하면서도 생명력 있는 느낌을 불어 넣어준다.
이처럼 이매방의 승무의상은 삼색 배색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Table 4>과 같이 흰색 장삼 일 때는 옥색 저고리와 바지, 흰색 고깔, 홍띠였으며, 검정 장삼 일 때는 흰색 저고리와 바지, 비취색 바지저고리, 홍띠로 삼색 배합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것은 <Fig. 18, 19>을 통해서 잘 볼 수 있다.
승무복식은 불교복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승무복식의 장삼 색과 관련하여 불교복식인 한국의 법의를 참고 할 수 있는데 시대에 따라서 법의와 가사의 색과 조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불교복식인 한국의 법의의 시대적 변천 과정은 <Table 5>와 같다(Lim, 1990).
현대 조계종의 장삼은 회색의 상의하상식의 직철형이고 가사는 갈색으로 대가사와 목에 거는 오조가사로 나누며, 태고종의 장삼은 회색이나 백색의 두루마기식의 난삼형과 도포형이다. 가사는 홍색 유문견으로 일 월 과 천 왕 의 수(繡)가 있는 가사로서 서로 차이점이 있다.
3. 저고리와 바지의 구성적 특징
승무의 의상은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위에 장삼을 입고 그 위에 홍띠를 왼쪽 어깨에 걸쳐서 오른쪽 허리 아래쪽에 매고 흰색 고깔을 쓰며, 여자는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둘러서 주릿대(허리끈)를 매어 고정하며, 그 위에 장삼을 입고 홍띠를 걸친다. 이때 입는 남자 저고리의 특징은 <Fig. 20>에서 보듯이 진동을 작게 하며, 배례는 28~30cm 로 넓게 하여 팔사위의 동작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곡선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저고리의 등 길이는 평상복의 저고리보다 짧게 함으로서 하체가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바지는 <Fig. 21>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의 사폭 바지가 아닌 개량식 통 재단을 하여 편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였으며, 넓이와 길이는 전통 바지와 비슷하게 줌으로서 무대에서 볼 때 전통 바지와 같은 미적 효과를 그대로 나타낸다. 그러나 무대복의 특성상 다양한 춤사위에 의해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어깨에 끈을 달았으며 허리에도 여러 개의 끈을 달아 고정한다.
4. 고깔의 나비 모양과 상징
고깔은 가로 28.5cm 세로 30cm로 두상에 씌웠을 때 각이 뾰족하게 서는 고깔의 꼭지를 <Fig. 24-1> 와 같이 상, 하 1.5cm 들어간 약간의 마름모 형태로 만들며, 흰색 고깔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쓰기도 하지만 이매방은 나비 모양을 그려 넣고 부귀다남을 한자로 써 넣어서 쓰기도 하였다(ACK, 2006).
나비(蝴蝶)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자유연애와 미호(美好)의 상징으로 여겨온다. 동양에서는 장자(壯者)의 ‘호접몽(蝴蝶夢)’에서 연유하여 남녀 화합의 상징으로 여긴다(Lim, 2004). 이밖에도 장수, 자손의 창성과 익수(益壽), 연생 장생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쓰였으며, 서화나 자수에 매미와 같이 자주 그려진 초충중의 하나이다. 그밖에도 여성들의 장신구인 <Fig. 22>, <Fig. 23>의 떨잠이나 노리개 등에 많이 사용 되어진 전통 문양이다.
불교의 의식무인 나비춤은 나비와 물고기의 모습에서 법열을 깨닫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내용으로 나비 모양의 옷을 입는다. 이매방류 승무에서 <Fig. 24>처럼 흰색 고깔에 나비 그림을 넣고 부귀다남을 한자로 넣은 것은 아들 딸 많이 낳고 장수하여 잘 살라는 의미의 염원인 것이다. 나비 모양은 명월관 누상의 기생의 승무 <Fig. 25>의 고깔 끝에 달린 나비 장식에서도 볼 수 있는데 불교의 나비춤과 연관성이 있는 전통적인 문양임을 알 수 있다.
Ⅴ. 결론
이 연구는 현시대에 이매방류 승무만이 갖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무대의상이 어떠한 발전 과정을 통하여 춤과 조화를 이룬 오늘날 승무 의상으로 변화하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년도 별 사진자료를 통해서 시대에 따른 구성의 변화와 3단계 형식으로 달라지면서 폭이 확장되는 조형성의 변화를 도출해 보았다. 문화는 시대가 변함으로서 현대라는 시점에 따라 발전 변화한다. 전통문화 또한 시대에 의해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전승되게 마련이다. 무대의 극대화에 따른 이매방류 승무복식의 변화가 전통성에서 현대성이라고 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와 무대의 변화에 맞게 발전하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형성과 구성의 변화에 있어서는, 1984년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행전을 착용하였고 장삼에 동정이 달려있으며 재단의 형태도 살풀이와 같이 직선 재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동정이나 행전의 착용이 없어지면서 승무의 장삼은 넓어지고 길어졌으며 주로 흰색 장삼을 착용하였다. 또 2000년대 전후 검정 장삼을 착용하면서 장삼의 섶단이나 고름에 금수 장식을 하여 더욱 화려해진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장삼의 폭은 이전보다 점차 많이 넓어졌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매방 자신이 직접 착용하였던 장삼을 실측하여 도식의 변화와 그 특징을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직선재단의 1단계를 거쳐서 2단계의 장삼은 어깻바대의 앞과 뒤가 10cm로 같았으며 등솔기를 중심으로 등품의 2배 이상이 확장된 A라인의 넓은 장삼으로 고름은 위가 5.5cm 밑이 11.5cm의 사선형태였다. 또 3단계에서는 고대에서 30cm 내려온 등솔 중심부터 도련까지 사선으로 절개하여 10cm에서 15cm까지 넓게 확장시켰으며, 무동복과 마찬가지로 어깨선에 절개선을 하나 더 넣어서 절개선의 양쪽에 같은 비율의 넓이를 더하여 밑 도련을 더욱 더 넓게 확장시켰다. 이는 춤사위 중에 북채를 뒤 장삼 자락에 살짝 모아 넣어서 펼치는 춤사위에 적용시켜 장삼 자락의 넓은 폭과 선이 이루는 실루엣은 춤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비록 무대의상이지만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 미의식을 현대의 무대에 맞게 춤과 조화롭게 결합하여 감정을 표현하였고 또 독창적인 이매방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창작되어져 이미지화 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었다.
또한 이매방 승무복식의 특징 중의 하나는 색의 배합인데 그것은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3과 관련이 있다. 흰색 장삼에는 옥색 저고리와 바지, 흰색 고깔, 홍띠였으며 검정 장삼에는 흰색 저고리와 바지 또는 짙은 옥색 저고리와 바지, 흰색 고깔, 홍띠로 삼색 배합을 기본으로 하였다.
의상은 춤을 완성시키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의상이 춤을 추는 사람의 호흡이나 춤의 선을 가려서도 안 되고 동작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 또 춤의 내용과 형식에 맞는 디자인과 소재와 색이 적용되어야 하며, 착장자의 개성을 잘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매방은 춤에 있어서 의상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으며, 우리 전통춤을 예술로서 이해하고 춤의 복식 또한 예술로서 동기화하여 춤과 의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서 일치시켰다. 의상을 비롯해서 소품 등,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시켜가며 그것을 무대에서 직접 착장하여 시험하면서 자신의 미적 철학을 의상으로서 완성시켜 나아갔던 것이다.
전통문화는 우리민족의 근본으로서 위대한 문화유산이며, 변함없이 유지 계승 되어야한다. 그러나 첨단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전통문화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형성의 변화와 미적 철학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현대의 시대 변화에 따른 승무복식의 조형성 변화와 색의 사용에 따른 미적 특징에 대한 연구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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