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 고찰 : 매체분석을 통해 밝혀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활동을 중심으로
Abstract
The research aims to classify the historical features of the mid-twentieth century in Korean fashion, focusing on ‘Kyung-Ja Choi’ who is first generation of Korean fashion designer. The research explores how the brand of Kyung-Ja Choi and Korean fashion was developed, and rectifies inaccurate information from other researches previously available on Kyung-Ja Choi while adding newly available resources to the field. Furthermore, this paper examines Kyung-Ja Choi’s career from the 1950s to the 1970s and her influence on modern Korean fashion. Lastly, the paper covers what impact the designer had on the historical features of the mid-twentieth century Korean fashion. The methodologies of this research are literature review of previous studies, and content analysis of the media. To sum up this study, Kyung-Ja Choi worked hard to develop Korean style woman’s suits in the 1950s and focused on increasing opportunities and educational systems for future generations in the 1960s. In the 1970s, Kyung-Ja Choi released the Wara Sil-eob and Shin’s boutique which fit into the trend of ready to wear at the time. Furthermore, with the release Choi handed over the fashion design business to her son Hyeon-Jang Shin and daughter Hye-Sun Shin while moving onto international exchange fashion shows and local group fashion shows. Kyung-Ja Choi’s most famous piece is the Golyeojagi[Goryeo porcelain] which was made in 1962 at the same time when Korea’s first ever international fashion show Exlan was hosted. Kyung-Ja Choi, leader of modern Korean fashion, played a large role in connecting education, industrialization, and fashion designers. As a result, more than 50% of second generation fashion designers were formed under Kyung-Ja Choi.
Keywords:
first generation Korean fashion designer, Kyung-Ja Choi, history of Korean modern fashion, the mid-twentieth century Korean fashion키워드:
제1세대 한국패션디자이너, 최경자, 한국근현대패션사, 20세기 중반 한국패션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뉴밀레니엄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20세기 서양패션사 고찰과 함께 20세기 한국패션사가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 연구 분야에 포함되었다. 이는 1988년 20세기 초ㆍ중반의 한국여성양장사를 고찰한 Yoo(1989; 1990)의 ‘韓國女性洋裝의 變遷에 관한 硏究’ 이후 진전이 없었던 한국근현대패션사 연구의 희소식으로 Park & Kim(1998)은 일본의 영향을, Ko(2000)는 20세기 초 서양 문물의 수용을, Choi(2009; 2011)는 미국적 관점에서 내용을 분석하였고, Ko(2001)는 전통복식연구자의 관점에서, Shin(2008)은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의 소장 작품을 도판서로, 100 years of Modern Fashion Compilation Committee(2002)와 Lee & Park(2011)은 20세기 서양패션사를 정리하면서 20세기 한국근현대패션사를 고찰하였다. 해당 연구들은 한국근현대패션사를 조명한 의미 있는 연구들이다. 하지만 한국근현대패션사의 근간이 되는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패션부문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부문 전반에서 한국근현대사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발굴하여 한국근현대사회문화사의 중요성을 재평가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한 구술채록연구는 기초 연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뉴밀레니엄 이후 국가 연구 사업으로 기획되어 「국립예술자료원」,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가운데 제1세대 한국패션디자이너 부문에는 2012년 「국립예술자료원」 구술채록사업에서 한국근현대패션사에서 최초로 양장점을 오픈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최경자가 연구대상 1순위에 올랐으나, 연구대상자가 2008년 이미 작고하여 연구가 착수되지 못하였고,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 중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한 노라노(노명자)가 한국근현대사 패션부문 구술채록 대상자로 선정되어 노라노의 연구가 진행되었다(Arko Arts Archive, 2012; Park, 2014a). 이를 계기로 제1세대 디자이너의 연구는 노라노만이 생애사 구술 채록(Arko Arts Archive, 2012), 작품전⟪라비 앙 로즈(La vien Rose)⟫(2012), 미국의 영향(Hahn, 2012a), 전시회 분석(Hahn, 2012b), 한국근현대패션사적 사건(Park, 2014a; Park, 2017), 브랜드의 성장과정과 디자인 특징(Park 2014b; Park, 2016)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심층연구가 진행된 상태이다. 반면, 1937년 <은좌옥>을 열어 한국여성양장사의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최경자는 디자이너의 저서(Choi, 1981; Choi, 1990; Choi, 1996; Choi, 1999)를 제외하고는 Bang(1962)과 Lee(2002)의 잡지 인터뷰 기사가 남아 있고, 2016년에 이르러 Lee & Soh(2016)가 한국 전통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최경자의 작품을 분석하여 최경자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최경자의 연구는 구술채록연구, 기획 전시, 학술연구 등이 심도 있게 진행되어 작품의 특성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한국패션사적 기여도와 한국패션사적 사건이 객관적 관점에서 고찰되어 자료의 사료화가 진행된 노라노에 비해 연구가 부족하여 여전히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매체자료들을 분석하여 최경자의 활동과 이와 관련된 한국근현대패션사의 주요 사건들을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추출하려한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Lee & Soh, 2016)에서 최경자의 저서를 분석하여 한국 전통을 모티브로 한 최경자 작품의 특성이 고찰되었으므로 이는 연구 범위에서 제외하며, 매체분석을 통해 새롭게 추출된 작품의 분석과 패션사적 사건 확인에 집중한다.
2. 연구목적 및 방법
본 연구의 목적은 매체자료를 근거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활동을 고찰하여 최경자 관련 한국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을 밝혀내는데 있다.
연구목적 달성을 위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최경자 관련 매체자료 분석을 통해 나타난 최경자의 활동은 어떠했으며, 이 시기 최경자의 「국제양장사」와 「국제복장학원」의 행보는 어떠했는가이다. 둘째는 최경자의 저서들 그리고 선행연구와 다르게 본고에서 추출된 한국패션사적 사실은 무엇이며 새롭게 밝혀진 최경자의 작품, 패션쇼와 최경자 관련 한국패션사적 사건은 무엇인가이다. 셋째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최경자의 패션계에서 입지와 활동은 어떠했으며, 디자이너의 행보가 한국근현대패션사에 기여한 점은 무엇인가이다. 본고의 연구방법은 문헌 연구와 내용 분석이다. 본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2017년 4월 17일 최경자의 장녀인 신혜순이 관장으로 있는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의 박현숙 학예사와의 면담을 통해 최경자의 저서 및 관련 자료를 1차 수합하였고, 이 자료와 더불어 연구자가 추가 수합한 매체 자료들을 비교 분석하여 추출된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국근현대패션사에서 최경자의 족적을 밝혀내려고 한다. 본고에서는 연구 자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수합된 매체자료의 제목 및 인용 내용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원문에 근거하여 직접 기술하며, 간접 인용 시에도 주요 단어의 표기는 원문 표기법에 따른다. 더불어 수합된 자료들이 최소 40년 이상되어 대부분 영문제목이 병기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해당 자료 필요시 연구자 번역과 원문을 함께 병기하며, 번역이 어려운 단어는 독음을 원문과 함께 기재한다. 표와 참고문헌 역시 원문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Ⅱ.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 관련 매체자료 분석 현황
본고에서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신문박물관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최경자 관련 인쇄매체자료 151편을,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서 최경자의 저서 4권(Choi, 1981; Choi, 1990; Choi, 1994; Choi, 1999), 최경자 관련 회고집 1권(Shin, 2011), 패션쇼 및 전시 관련 도록 2부(The Presentation of Fashion Show to Choi Kyung Ja, 2008; The Korean Museum of Modern Costume, 2016)를 수합하였다.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 자료 중 패션쇼와 전시 도록을 제외한 한국근현대패션사적 사실과 디자이너 최경자의 행보를 고찰할 수 있는 자료 4권은 모두 최경자가 1981년 출간한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를 바탕으로 주제에 맞게 내용이 재정리된 것이다.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 은 19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서양패션사와 유행스타일, 디자이너 자신의 연대별 행보, 「국제복장학원」 출신 제자들의 활동 상황, 양장계 정보 및 연락처, 세계 민속의상을 비롯한 시대별 파리패션계의 현황이 정리되어 있는 총서로 한국근현대패션사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자전적 방식으로 정리하여 일부 자료들의 연대가 명확하지 않아 중요한 사건들과 자료들은 객관적 근거 제시와 검증이 필요하다.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에서 최경자는 1957년 개최된 ⟪제1회 최경자 복장작품전⟫의 내용만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후는 개인 쇼와 그룹 쇼를 혼용하여 연대와 사진 혹은 사진으로만 간단히 제시하거나 자전 내용 기술시 언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복장발표회의 장소와 시간 등 세부 사항이 내용에 누락되어 있거나 연대와 내용의 착오가 발생하는 등 자료의 신뢰도에 문제가 발생되었고, 또한 이 자료들이 후속 저서에 그대로 차용되어 있어 자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사실 확인과 내용의 교차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1996년 저서인 『날개를 만드는 사람들의 어머니』는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에 기재된 개인적 내용을 간단한 주제별로 다시 편집한 자서전으로 디자이너의 행보 파악에는 도움이 되나 사건의 연도들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에세이의 특성상 주관적 관점을 기본으로 작성되어 패션사적 사건 추출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1999년 저서 『최경자와 함께한 패션 70년』은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과 1990년 저서인 『패션과 함께한 나의 사랑』에 기술된 주요사건과 행사 그리고 「국제복장학원」 출신 디자이너들의 시대별 활동을 재정리한 단행본으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중ㆍ후반 패션을 개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다만 행사의 내용을 기술한 서술문과 근거로 제시된 포스터의 내용이 불일치하는 것이 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국제패션디자인학원」 원장이자 최경자의 장녀 신혜순이 최경자 사후 2011년 발간한 『삶과 패션1세기ㆍ패션의 선구자: 故 최경자 패션회고집』은 「한국현대패션박물관」 소장 최경자 작품들을 사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어 디자이너의 연대별 대표 작품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수합 자료를 제외한 본 고에서 추출된 2차 분석 대상 자료 중 최경자가 직접 기고하거나 최경자의 작품을 평론한 매체자료는 1950년대 19개, 1960년대 37개, 1970년대 16개이며, 1960년대 자료가 다수였다. 1950년대 자료는 최경자의 패션 트렌드 제안 칼럼 및 강연 기사 그리고 최경자 작품발표회가 많았다. 반면, 1960년대에는 최경자의 트렌드 제안 기사와 더불어 국제 및 복지업체와의 협업 패션쇼와 기성복 관련 기사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발표회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자료에는 기성복 시스템의 정착으로 변화한 패션마켓의 환경과 패션쇼의 형식에 대한 내용이 다수였다. 본고는 앞서 언급된 자료들 중 출처가 명확하고 자료의 훼손이 없으며, 패션사적 내용이 기록된 신문자료 51편과 『女苑』(이하 여원) 및 『女像』(이하 여상) 잡지 자료 19편, 총 72편을 2차 추출하여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현대의상박물관」소장 자료들은 자전적 성향이 강한 내용들을 제외하고 시기가 명확하고 객관성이 확보된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자가 수합한 인쇄매체추출 자료와 비교 및 교차 검증된 것만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킨다.
Ⅲ. 매체자료 분석을 통해 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의 활동 고찰
1. 1950년대: 실용적인 한국적 양장의 개발과 올바른 의생활 전파를 위한 노력
최경자는 명동에 정착한 1954년 직후부터 한국의 실정에 맞는 실용적인 양장 착용 방식과 스타일 전파를 위해 노력한다. 1956년 2월 ⟪경향신문⟫(이하 경향신문) 칼럼 <洋裝과 美容>기고를 통해 최경자는 양장은 겉옷뿐만 아니라 양장의 형태에 맞는 슬립과 같은 속옷을 잘 차려입어야만 스타일을 살릴 수 있으며, 화장 역시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化粧의 基本을 알고 싱싱한 皮膚를 살리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멋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Choi, 1956, p. 4) 더불어, 졸업한 학생의 경우는 “校服을 再生하는 것도 멋”이라고 제안하며 멋진 스타일은 화려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깔끔함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하고, 간단한 아이템부터라도 의복을 리폼하거나 만들어 의생활의 자급자족을 시도해볼 것을 권유한다(Choi, 1956, p. 4).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대중의 의생활에 적용시키기 위해 최경자는 여원 잡지에 다양한 스타일의 옷본을 공개한다. <Fig. 1>은 1957년 2월 여원에 소개된 3-4세용 남자아이를 위한 점퍼 패턴이다. <새로운 洋裝 몇가지>라는 이 칼럼에서 최경자는 「三四歲투ㆍ피스」, 「五六歲用女兒服」, 「五ㆍ六歲 쎄일라ㆍ원피스」, 「멋진 포켙의 七ㆍ八歲 오바ㆍ코트」로 구성된 아동복 4착장의 마르는 法과 바느질 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957년 1월 여원(January, 1957)지에서 최경자는 환경에 맞는 양장의 멋을 논한다. Choi(1957a)는 “아무리 그 사람에게 잘 맞는 「데자인」을 한 의상(衣裳)이라 할지라도 입는 장소(場所)와 그 환경(環境)에 조화(調和)되지 않는 것이라면 결코 완전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설사 「데자인」은 이상(異常)이 없어도 입는 사람에게 탓할 수도 있게 된다 ”고 주장하며, 장소와 환경과 같은 상황에 맞는 의생활을 해야 멋진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p. 296). 또한, Chio(1957a)는 세계적으로 양장을 입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양장 역시 동일한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프랑스에서 인기가 있는 의상이 한국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음을 설명하며 한국의 실정에 맞는 양장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937년 함안, 1947년 서울, 1952년 대구 그리고 6. 25 종전 이후 1954년 명동에 다시 입성하기까지 여러 차례 매장의 오픈과 이전을 거듭해 양장점을 운영 해온 최경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양장점을 개업하고자 하는 후배들이 매장 오픈 시 주의할 점을 기고문을 통해 알린다. 1957년 9월 여원 칼럼에서 Choi(1957c)는 여성의 직업 활동이 늘어나는 현재의 추세에서 집에서도 작업이 가능하고 점포를 가지지 않고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양장은 여성에게 제일 적합한 직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디자이너는 양장점 개업 시 주의할 점을 아래와 같이 상세히 기술한다:
“二, 三년이라는동안 다른 양장점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즉 조그마한 상점으로부터 좀 크고 그리고 일류 양장점으로 이렇게 거쳐서 일을 배운다면 이상적인 수업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수업하는 기간이니 급료라든가 근무시간에는 딴 요구를 마시고 기술습득 손님다루는법 상점경영법등을 배우기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Choi, 1957c, pp. 347-348).”
이외에도 최경자는 칼럼에서 매장은 반드시 경험을 쌓은 후 25세 이후 오픈 할 것,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위치는 옷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쇼윈도의 채광을 확인할 것, 손님에게는 언제나 상냥하고 예의 있게 대할 것, 납기일은 반드시 지킬 것, 양장점이 몰려있는 곳에 매장을 오픈할 것, 매장 입구는 될 수 있는 대로 들어가기 쉽게 만들 것 등을 경험적 사례를 들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1958년 6월 여원에는 최경자가 자신의 양장업계 입문 기를 기술하고 있다. 특히 최경자는 14여명의 직원 규모로 자리를 잡은 대구 사업을 접고, 1954년 명동에 양재학원과 양장점을 오픈 할 생각으로 비교적 규모 큰 매장을 얻어 1년 만에 정착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위기에 대처하는 현명한 사업가의 자세를 제시한다(Choi, 1958a). Choi(1958a)는 명동에서 자리를 잡아 1년 후 매장의 2층까지 얻어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대로 에누리를 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세워 어수룩한 손님에게는 많이 받고 인색한 손님에게는 적게 받는다는 오해를 받지 않은 것, 옷의 납품기일을 반드시 지켜 신용을 얻은 것, 옷을 만들 때는 내 옷을 만든다는 기분을 가지고 전 직원이 작업에 임하도록 원칙을 세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경자는 신문, 잡지의 기사 기고와 대중 강연을 통해 올바른 양장 트렌드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1958년 9월 여원에서 Choi(1958b)는 여름의상을 위한 포켓이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포켓의 기능성과 실용성 그리고 역사와 더불어 13가지 형태의 여름용 의복의 주머니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Fig. 2>는 최경자가 제시한 포켓 중 13번째 사례로 디자이너는 “... ⑬도 전체적 「데자인」을 씸플하게하고 포켙에 악센트를 둘려고 만든짜켙에 적당하며 좀 너무 대담한 포켙디자인이다 ”라고 설명한다(p. 267). 또한 1959년 9월 ⟪동아일보⟫(이하 동아일보)의 <洋裝> 칼럼에서 디자이너는 <季節의 모오드>를 분석한다. Choi(1959)는 “하이웨이스트, 로우웨이스와 같이 허리의 위치가 유동적이었던 지난 시즌과 달이 올해에는 허리선이 제자리를 찾고 그 위에 컬러배색의 벨트를 착용하는 것이 유행이고 이것이 원피스뿐만아니라 투피스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한다(p. 4). 또한 최경자는 소재와 컬러의 트렌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평범한메리아스직물뿐만아니라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서 다채롭고여행복으로나 일상복으로 퍽실용성을 띄고 있다 모헤아ㆍ뽀오라ㆍ구레파 등 순모외에도 많은 화학직물이 나오고 있다 나이론ㆍ데그론은 찬바람이부는 늦가을에는 탄력성을상실한다 색채로는 다아크ㆍ그레이ㆍ부라운의 다색이 가을색으로 어울리고 검정 회색도 자연스럽게 카아부라인을 내어서 세련미를살리게한다(Choi, 1959, p. 4).”
더불어 최경자는 1958년 12월 7일 제1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전 9시 15분에는 <겨울철의 데자인>을 주제로 강연을, 1959년 9월 16일 목요일에는 <식생활과 의복장식>이라는 주제로 보건사회부 부녀국에서 실시하는 주간생활강좌에서 강연하는 등 지속적으로 올바른 의생활의 방식을 전파한다(Radio and television, 1958; Weekly community class, 1959).
1950년대 작품발표회의 경우는 제1회와 제2회 발표회 소식이 기사에 남아 있다. 최경자의 첫 번째 복장작품전 기사는 경향신문(October 11, 1957)과 동아일보(October 12, 1957)에 1957년 10월 12일 오후 3시 반도호텔에서 개최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Kyung-Ja Choi clothing exhibition, 1957). 경향신문은 기존의 최경자의 첫 패션쇼로 알려져 있는 이 행사를 ⟪제一회 연구발표회⟫로, 동아일보는 ⟪第一回 服藏作品展⟫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특히 동아일보의 인터뷰에서 최경자는 “이번 發表會에는 從來의 「팻숀ㆍ쇼오」와 내용을 달리하여 衣服을 通하여 새로운감각을살리는동시에 어디까지나 우리의 體格과 現實에맞도록 努力해본것”이라고 밝히고 있다(p. 4). 또한 1957년 12월 여원(December, 1957)에서는 「국제양장사」 주최의 ⟪최경자복식연구發表會⟫ 소식과 함께 작품 5점이 수록되어 있다. 1958년 10월 4일 오후 3시 반도호텔에서 개최된 최경자의 두 번째 복장작품전 소식 역시 경향신문(October 1, 1958)과 동아일보(October 3, 1958)에 보인다(Kyung-Ja Choi fashion show, 1958; Kyung-Ja Choi clothing exhibition, 1958). 이 중 경향신문은 “취미환경에 맞으면서 보기좋고 경제적인 옷 그리고.. 꿈을 그린 옷등 五十餘點”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p. 4), 당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던 이종천은 최경자의 의상발표회는 “모오드의 創作또는 세계적인 遊行의소개를 目的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고 유행의 潮流에 뒤지어있기는 하였으나 지난날의유행을 바탕으로하면서 實際로 우리의 生活環境에 적합할 수 있는 실용적인 衣裳을 발표하는데 目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Lee, 1958, p. 4). 또한 작품에는 실용성과 컬러의 조화가 돋보여 최경자의 다년간의 경험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Lee, 1958).
2. 1960년대: 교육 사업 확장을 통한 후학 양성과 국제패션계 및 복지업체와의 협업 패션쇼
1950년대에 이어 1960년대에도 최경자는 트렌드 전파를 위한 신문 및 잡지 기고와 강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합리적 스타일을 제안함과 동시의 한복의 우수성을 대중에게 알린다. 1960년 9월 경향신문에서 최경자는 <가을의 모드: BㆍG 위한 「원피스」> 칼럼을 통해 이십대의 젊은 오피스 걸을 위한 실용적인 원 포켓 언밸런스 타이 칼라 원피스를 소개한다(Choi, 1960a). 또한, 같은 신문 10월에는 <가을의 모드, 가을<코-트>두가지>라는 주제로 국산원단으로 제작된 브라운 컬러의 리버서블 코트와 아웃 포켓과 언밸런스 칼라가 특징인 쑥색 봄 코트를 제안하며, 실용적이면서도 멋진 옷이 좋은 옷이라고 기술한다(Choi 1960b). 반면 1962년 8월 경향신문 <韓風洋風>칼럼에서 Choi(1962)는 한국의 의상과 서양 양장의 차이를 설명하고, 한국에 양장이 66년 전 상륙하였으며 초창기에는 일본식에서 이후 영국식을 거쳐 현재는 미국식 양장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한복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자신의 이브닝드레스 라인인 「아랑」을 제시하며 이 스타일의 이브닝드레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한국 스타일의 우수성을 역설한다. 1961년 11월 여원 잡지에서 기획한 한복의 역사 칼럼 인터뷰에서도 최경자는 한복의 V네크라인은 한국인의 얼굴형에 잘 맞으며 길이가 다른 고름의 형태는 서구패션의 언밸런스 미를 이미 담고 있는 것으로 한복은 정숙한 한국의 부인들에게 잘 맞는 의복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우수하고 아름다운 맵시를 가진 옷이라고 극찬한다(The way of the new style: the history of Hanbook, 1961). 최경자는 1961년 6월 28일 시립부녀사업관에서 서울특별시 주최의 생활수요강좌에서는 <여름복장과 의복재생>을 주제로 올바른 의생활법을 강연한다(Culture classes for women at the Seoul city council, 1961). 같은 해 8월 동아일보의 기고문에서는 옷차림은 시대성에 따라 달라져야하는데 이것이 유행의 속성이며, 새로 옷을 구입하지 않아도 간편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색깔의 조화와 액세서리의 적절한 활용으로 현 시대에 맞는 멋진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Choi, 1961). 실제로 최경자는 195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여원과 여상 잡지를 통해 자신의 옷본을 대중에게 공개하였는데, 1966년 9월 여상에도 유행이 지난 외출복을 간단한 디자인으로 재생하여 여름철 홈드레스를 만들자고 제안하며, 원피스 2점과 투피스 1점의 재생 디자인의 리폼 재단법과 바느질법을 상세히 기술한다(Choi, 1966). 또한 최경자는 1963년 8월 동아일보에 <돌이켜본옷의流行>이라는 칼럼을 기고하며, 1946년까지는 모드의 공백기이며, 1953년부터 스타일이 해외로부터 제대로 받아들여졌는데 해방 직후는 후레아ㆍ스카트, 1953년대에는 프린세스ㆍ라인, 1957년대에는 H라인, 1958년 이후는 타이트ㆍ스카트, 1961년대부터 최근까지는 트라피스ㆍ라인이 유행이며, 이는 프랑스디자이너 크리스찬ㆍ다올의 영향이라고 제2차 세계대전이후 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는 패션의 역사와 유행 스타일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한다(Choi 1963b). 더불어, 같은 해 9월 동아일보에서 7월 20일 파리 컬렉션에 이후 전 세계 패션의 유행이 변화하여, 이전 시즌의 높은 깃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부드러운 선과 몸에 너무 꼭 끼지 않는 스타일과 톤다운 된 컬러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분석하며, 평범한 옷을 데코레이션을 활용해 얼마나 멋지게 입을 수 있어 종합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 중요하다고 설명한다(Choi, 1963c). 1963년 1월 여원에는 라이프 스타일의 측면에서 실용적인 주택에 대한 견해도 밝히데, 디자이너는 기존의 우리 옷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한 것과 달리 우리의 재래 주택은 불편하여 넓은 방과 꽃을 가꿀 수 있는 구조의 서양식 주택이 보편화될 것을 전망한다(Choi, 1963a). <Fig. 3>은 1963년 당시 최경자의 자택 거실의 전경으로 디자이너는 반려견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으며 그 뒷면 벽에는 Paris를 상징하는 포스터 액자가 걸려있다. 최경자는 자투리 원단으로 커튼을, 사과상자와 맥주상자로 만든 의자 틀에 딸 신혜순이 소파의 커버를 씌워 지금의 거실을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나의 주생활이 웃음이 날 지경으로 엉터리다 ”라고 소회를 밝힌다(p. 43).
최경자는 1960년대 이후 기성복시대가 도래할 것을 미국과 일본의 산업시찰을 통해 인식하고 이를 국내에 알리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다. 1963년 12월 여원 기고문에서 최경자는 앞으로의 시대는 기성복을 요구하며 이것이 잘 정착되었을 때 복장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함과 동시에 맞춤복과 기성복의 차이와 고객과 디자이너의 올바른 자세를 상세히 기술한다(Choi, 1963d). 또한 1963년 10월 이미 미도파백화점 3층 상설센터에 실내장식품, 부인복, 아동복, 편물, 수공예품, 인형, 조화, 생화 등 복식전반에 걸친 새로운 디자인과 기성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The spacial event of the Midopa Department store:fashion designer pop-up stores, 1963). 더불어 3개월간의 미국과 일본 시찰을 보고하는 1964년 10월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최경자는 미국의 기성복 기술이 이미 표준화되어 고위층도 맞춤이 아닌 기성복을 착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한국 역시 실용성을 생활에 결부해 기성복으로 의류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값싼 한국의 노동환경과 우리 민족의 손재주가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일본의 경우는 그동안 발전해왔던 양재 산업이 다른 산업의 발전으로 위축기에 들어갔음을 자세히 설명한다(The report of the international fashion style, 1964).
최경자가 양장점 오픈 시점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교육 사업이며 1960년대에는 미국의 「FIT」와 일본 「문화복장학원」과 교류를 통해 선진교육시스템을 도입에 힘쓴다. 최경자가 원장으로 있는 「국제복장학원」이 뉴욕주립대학교의 패션디자인학교 「FIT」와 자매결연 한다는 기사가 1963년 2월 경향신문에 소개되어 있다(MOU with FIT, fashion design school in New York, 1963). 신문은 교류를 주선한 「FIT」 최초의 한국인 학생은 신혜순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신혜순은 최경자의 장녀이다. 당시 「FIT」에는 15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었으며, 본관의 건물은 1958년 1천 2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건축되었다는 정보도 기사에 함께 실려 있다. 또한, 같은 해 4월 경향신문 보도에서는 최경자의 의상발표회 이후 최경자가 원장으로 있는 「국제복장학원」이 「뉴욕 시립복장학원(FIT)」과 자매결연 맺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학원의 홍보영상을 상영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Plaudits of Modernized Hanbok in Kyung-Ja Choi’s fashion show, 1963). 1966년 10월 여상에 수록된 「국제복장학원」의 광고 포스터에는 당시 학원의 커리큘럼이 상세히 실려 있는데, 학원은 연구과, 촤밍과, 본과, 속성과, 스타일화과로 세분화되어 있다(Kook-Je Institute of Fashion Design, 1966). 또한 <Fig 4>의 광고 포스터에는 「국제복장학원」이 미국 뉴욕의 「FIT」와 일본의 「동경문화복장학원」과 교류하고 있음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최경자는 교육 자료 정리와 올바른 트렌드전파를 위해 우리말 복장전문지인 「의상계(衣裳界)」 를 1968년 8월 창간하는데, 이 잡지는 계간으로 발간되며 1백60페이지에 정가는 1백80원이었다(First issue of 『Uisang-gye』published, 1968).
1960년대는 최경자가 가장 활발히 작품발표회를 개최한 시기이다. 발표회는 개인발표회, 국제패션계와의 교류발표회, 국제복장학원 연구생의 발표회, 국내 복지회사들과의 협업발표회가 있다. 1960년 2월 동아일보에는 2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반도호텔에서 개최되는 최경자의 <봄철복장발표회>소식이 기술되어있다(Spring fashion show:designer, Mrs. Kyung-Ja Choi, 1960). 기사에서는 이번 최경자의 쇼가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그리고 경제적이면서 입기 편한 옷을 五十여벌”을 소개한다고 설명한다(p. 4). 이 발표회가 최경자의 제4회 개인 작품발표회이며, 포스터 역시 최경자의 저서인 『崔磬子 自傳年傅 패션五○年(1981)』에 남아있다. 1963년 3월 동아일보 기사에는 30일 오후 1시 30분에 개최되는 최경자의 복장발표회 소식이 실려 있다(Recital, 1963). 「옷을 멋지게 입는 비결」과 「긴 한복 치마의 개량」이라는 두 주제로 진행된 발표회에는 40여벌의 간편한 옷들이 소개되었다. 같은 발표회의 소식은 경향신문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발표회가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에서 개최되었으며 36점이 미스코리아와 배우로 구성된 8명의 모델에게 입혀졌다고 적고 있다(Plaudits of Modernized Hanbok in Kyung-Ja Choi’s fashion show, 1963). 신문은 또한 최경자의 발표회에서 주목을 받은 모드는 개량한복 부문이었다는 현장의 분위기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韓服의 우아한 선의흐름을강조한 이들 「이브닝ㆍ드레스」 외에 「수츠」「원ㆍ피스」「투ㆍ피스」등의 각종 모드 가 發表됐다”고 설명한다(p. 5). 또한 1964년 11월 경향신문은 반도호텔에서 15일 오후 두 차례 최경자가 「레디메이드ㆍ패션ㆍ쇼」를 개최하여 「홈드레스」, 작업복 「오버ㆍ코트」등 80여점을 발표했다고 소식을 전한다(Ready to wear fashion show, 1964). 1966년 3월 경향신문에는 24일 목요일 오후 3시 워커힐 호텔에서 디자이너 최경자가 제11회 복장발표회를 개최한다는 소식과 미국 디자이너의 초청으로 가을 워싱턴에서 개최할 작품 일부를 미리 공개한다고 적고 있다(Kyung-Ja Choi clothing presentation, 1966). 반면, 같은 신문 28일 기사에서는 동일한 발표회가 최경자의 13회 발표회이며, 이전과 다르게 뉴욕에서 초청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기술하고 있어 자료의 내용에 차이를 보인다(Two fashion shows: Kyung-Ja Choi & Sunhui Kim, 1966). 발표된 작품들은 “옷모양과 옷감이 모두화려하고사치한것이어서 도미작품다왔고 원로디자이너다운 관목을 보여주었다”고 기사는 기술하고 있다(p. 7). 또한 최경자는 1962년 11월 17일 오후 7시 코리아하우스에서 주한 미군 부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드레스 26점을 발표한다(Recital, 1962).
1960년대에는 정부와 민간 주도의 국제교류패션쇼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1962년 5월 경향신문 기사에는 디자이너 이종천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 엑스란회 주최의 제1회 패션쇼 소식이 기술되어있다(The international fashion, 1962). 패션쇼에서는 한국의 최경자, 서수연, 김순희, 이종천이, 프랑스의 「피에르ㆍ카르뎅」, 「마기루후」, 일본의 原노부꼬, 松本후사꼬, 大野요시에 등의 작품이 포함된 50여점의 작품이 발표되었고,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더불어 버마, 스위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민속의상이 소개되었다. 출품된 작품의 컬러는 노랑이나 붉은 계통이 많았고 디자인은 세미 타이트나 플리츠 라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기사는 행사에서 디자인과 모델의 이름이 바뀌는 등 진행 미숙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966년 6월 ⟪매일경제신문⟫(이하 매일경제신문)에서는 단옷날인 23일 오전 10시, 오후 2시와 7시의 세 차례에 걸쳐 시민회관에서 한일친선패션쇼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Korea and Japan rapprochement fashion show, pre-summer fashion event, 1966). 금성, 삼호, 일산방직을 비롯한 11개의 한국직물회사와 9개읠 일본직물회사, 한국직물현동조합공업회, 일본회학섬유협회가 디자이너 최경자와 일본디자이너 原信子가 작품을 발표했다. 쇼는 세 개의 스테이지 나누어 발표되었는데, 첫 번째는 가정복, 작업복, 놀이복 18점이, 두 번째는 경쾌하고 유행에 민감한 외출복 50점 그리고 50여년 전 외출용예복인 「아얌」등 이체로운 의상 35점, 마지막 스테이지에는 명사들의 화려한 무대복과 흰색가운의 한복, 웨딩드레스 등이 소개되었다. 이패션쇼에는 아나운서 임택근, 강영숙을 비롯하여 배우 고은아, 최지희, 전제현과 패션모델 송영심, 조혜란 등도 총 65점의 의상을 발표하였다. 또한 같은 해 12월 동아일보는 제5회 아시안게임과⟪제1회 아시안박람회⟫가 열리는 방콕에서 프레지던트 호텔 개관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최경자의 「한국의상ㆍ패션쇼」소식을 전하고 있다(Hongsakula desires to visit Korea, Thailand royal family interested in Hanbok, 1966). 패션쇼에는 태국 국왕 및 귀족들이 참석하여 한국 의상에 관심을 보였다. 1967년 6월 경향신문에는 지난해에 이어 개최된 한일친선패션쇼를 위해 10일 최경자가 조세핀조, 박문자, 한계석, 하영애, 안성공, 최기자의 작품을 가지고 일본순회패션쇼를 위해 출국한다는 소식과 출국이전 7일 오후 3시 세종호텔 낭낭홀에서 일부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기술되어있다(Korea and Japan rapprochement fashion show, 1967).
1960년대 최경자 관련 발표회에서 두드러진 것은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연구발표회이다. 1962년 2월 17일 오후 2시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에 개최된 「국제복장학원」의 연구발표회 소식이 동아일보에 기재되었는데, 기사는 학생들은 국산 소재를 사용하여 실용적인 오십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패션쇼에는 4명의 외국인 모델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고 적고 있다(Student fashion show on 17th of Feb., 1962). 동아일보는 17일 패션쇼의 전경을 다시 기사로 다루었는데, 38명의 학생들은 700명의 관람객이 모인 가운데 연구발표회라는 진지한 의도 아래 50여점의 작품을 발표하였다고 설명한다(Trend from the daily life, students fashion show of the Kook-Ja fashion design school, 1962). 또한 기사는 “스프링코트 스쯔ㆍ세파레이쯔 등 봄옷을 비롯하여아동통학복 임복등 일상복이 있고, 드레쓰ㆍ아랑이란 이름의 우리 복장이 이채로왔다”고 분석한다(p. 4). 인터뷰에서 최경자는 우리 복식의 바탕을 무시한 들뜬 양장에서 벗어나 잘못된 부분을 고쳐보고자 「아랑」라인을 진행한 것이라고 한국적 양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발표회에서는 모델교육을 받은 4명의 외국인 모델과 한국모델의 워킹의 차이가 두드러졌고, 미스코리아 출신의 강귀희가 최경자의 연구생으로 디자인 작품을 출품하고 모델로도 출연하였다. 1963년 7월 동아일보에는 주한미군팔군 영내에서 6월 30일 개최된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시원한 『비취ㆍ웨어ㆍ쇼』’를 주제로 「비취ㆍ웨어」와 「리조트ㆍ웨어」가 혼용된 36점의 작품을 발표한 「국제복장학원」의 또 다른 연구발표회 소식이 <Fig. 5, 6>의 사례와 함께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있다:
“모두 능숙한 솜씨로바닷가의분위기를 살려었다 사진①은 천의 꽃무늬를 살려만든 「리조트ㆍ웨어」、「스카트」와 「블라우스」로 나누어져있고 「스카트」를 벗으면 「숏ㆍ팬쓰」가된다。 ②는 「후드」가달린 멋진 「코트」와 「비취ㆍ까운」하얀 「타올」지의 후드와 「앙상블」의 수영복은 고운노랑 「골덴」으로 「프린세스ㆍ라인」을넣고까만 「다이야」모양을 「아프리케」하였다 (Cool beachwear fashion show, 1963, p. 7)”
또한 1968년 9월 경향신문에는 11일 오전 11시 (시)민회관대강당에서 열린 복지협회와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협업패션쇼 소식을 담고 있다(Fashion show hosted by the textile association-43 styles of interesting autumn and winter fashion goods, 1968). 패션쇼는 Kㆍ앙고라 텍스트만을 가지고 추동 컬렉션 43점을 선보이고 있다. <Fig 7>은 흑백 조화를 시도한 원피스와 가을 코트 앙상블 디자인으로 「국제복장학원」 과 복지협회의 산학협력 모델을 보여 준 작품이다.
3. 1970년대: 기성복 시스템 정착으로 변화한 패션마켓과 패션쇼 형식의 전환
최경자는 1970년대도 올바른 의생활 전파를 위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1971년 6월 매일경제신문에서 Choi(1971)는 의복은 여성의 센스와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비싼 옷을 입는 것이 센스있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옷이라도 액세서리 등을 활용하여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야 세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경자는 1975년 7월 15일에는 <해방30년 여성변천사: 유행은 어떻게 달라졌나>라는 주제로 YMCA 화요강좌에서 한국 패션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렸다(Kim, 1975). 강좌에서 최경자는 몸뻬ㆍ맘보 등 거쳐 맥시ㆍ미니 공존을 이루어낸 의상의 변천과 더불어 퍼머롱헤어-푸들랩번-튀스트-몽키컷-個性美를 찾은 헤어의 유행, 그리고 美軍政 새빨간 입술 뽀얀 분화장 등 1950년부터 1960년대의 트렌드를 설명한다. 또한 최경자는 1950년대는 후반에는 가는 허리에 폭넓은 플레어 스커트 혹은 어께에 심을 넣은 상의와 타이트 스커드, 1960년대 후반에는 화사한 빛깔의 미니스커트, 그리고 1970년대 초반에는 판탈롱 스타일과 미디가 유행이라고 분석한다(Kim, 1975). 1977년 3월 매일경제신문은 한국 기술자들의 봉제실력이 뛰어나 바이어들로 부터 생산이 늘고 있지만 정작 디자인까지 판매하지 못하고 있어 디자인교육이 재편되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기사는 당시 명동과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유명디자이너들이 대거 백화점으로 진출하여 앞으로 패션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도하는데, 직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신세계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은 2년~3년 전부터 의류제품을 경영에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유명디자이너를 유치시켜왔다고 설명한다(Spotlight designer, 1977). 당시 신세계백화점은 노라노, 미세스박, 논노, 金褼(襈)子, 조세핀趙 이외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李화지 코너가 4월 1일, 「국제복장학원」 부원장 신혜순의 「신스ㆍ부띡」이 5월 6일 개장 예정이며, 또한 미도파백화점은 미세스高, 오리지날李, 트로아趙, 바로크, 프랑소와, 김매자 코너와 고급기성복메이커인 반도, 모라도 등의 백화점 매장들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거나 오픈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사의 인터뷰에서 최경자는 “디자이너란 손끝에서 발끝까지 또 하나의 小字宙를 창조해내기위해 자기의 독특한 빛깔과 스타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예술”이며, “앞으로 센스있고 특이한 디자인의 옷을 적당한 가격으로 입을수있게 디자인개발이시급하다”고 역설한다(p. 7). 또한 최경자는 고객과 디자이너 의상 사이의 인식 차이가 아직도 크다며 이를 개선해기 위해 소비자와 디자이너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Spotlight designer, 1977). 1979년 12월 동아일보는 중고등학교의 교복 자율화에 대한 최경자의 견해가 실렸는데, 디자이너는 교복 자율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반세기동안 유지되어온 제복화를 준비 없이 바꾸면 혼란이 예상됨으로 전문가들 조언을 받아 몇 가지 옷 중 골라 입게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신중론을 제시한다(Great sign of liberalization of dress codes for mid and high school students; Suggesting gradual improvement, 1979).
1970년대 최경자 관련 패션쇼는 대부분이 수출증진을 위해 정부 그리고 기업이 디자이너들과 함께 기획한 디자이너 그룹 협업패션쇼와 산업 환경의 변화로 인해 디자이너들의 백화점 진출이 늘면서 기획된 백화점 패션쇼가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 4월 매일경제신문은 한국 실크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실크패션쇼가 대한잠사회와 한국생산수출조합의 주최로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에서 5월 26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다고 실려 있다(Silk fashion show will hold on the 19th of Mayin different regions of Japan, 1970). 패션쇼는 국제복장학원과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일본의 미스꼬시백화점과 계약을 주선하였고 60점 중 35점을 실크로 제작되었고, 본 행사에 앞서 5월 8일 오후 2시에는 조선호텔에서 예행 쇼를 미리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같은 해 5월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도 동일한 패션쇼의 기사가 실렸는데 15일 일본으로 보내져 19일부터 도쿄와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 페어 참가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사전 패션쇼가 8일 오후 2시 30분 조선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개최된다는 내용이며, 조선호텔 패션쇼에는 일본으로 보내질 53점 중 45점이 출품되었다고 기사는 적고 있다(The event of the woman’s society, 1970; Fashion information: Korean fashion show will present in Osaka Exop, 1970). 최경자, 손경자, 이영우, 오은환, 이신우, 조용수, 그리고 정경자의 7명의 여성 한국디자이너가 출품한 작품은 현대의상과 전통의상 스타일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조선호텔 패션쇼에서는 특히 당의, 삼회장, 활옷, 황제복, 황후복 등을 재현한 손경자의 작품이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The event of the woman’s society, 1970; Fashion information:Korean fashion show will present in Osaka Exop, 1970). 반면, 1971년 1월 매일경제신문은 한국나일론이 자체 개발한 합성섬유 「콜롱ㆍ스파클론」의 시장화를 위해 판매회사인 코오롱 상사가 새롭게 만든 「이지ㆍ실크」를 소재로 한 패션쇼를 20일 오후 6시 KAL 빌딩 26층 「뱅퀴트ㆍ룸」에서 개최한다고 기록한다(Easy silk fashion show: launching of the Kolon spa-clone, 1971; The new silk material, connie silk: easy silk fashion show at Han-kook nylon, 1971). 「이지ㆍ실크」라는 주제 아래 열린 이 패션쇼에는 「스카클ㆍ론」으로 재직한 새로운 합성섬유인 「코니ㆍ실크」와 「실ㆍ루크」로 제직한 「샤틴」소재의 실용복 디자인 40점을 최경자, 한제석, 라니권, 문경희, 이신우가 디자인해 발표하였다. 이와 달리 1973년 4월 경향신문에는 17일 국립극장에서 최경자 등 10명의 디자이너들이 9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 면직물 의상 패션쇼 소식이 실려 있다(Fashion show for cotton: 90style of the ready to wear garments, 1973). 면직물만을 사용한 이번 패션쇼에는 간편한 원피스부터 정장, 드레스, 물놀이차림, 레인코트 등 기성복 의상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Fig. 8>은 패션쇼에 출품된 디자이너 한혜수의 작품으로 “원형목둘레에 허리부분은 요크를 대고 치마부분은 잔주음을 촘촘히 잡은 샤링을 넣었고 레이스로 앞가슴과 소매 치맛단을 처리했다. 로맨틱한 의상으로 사무실이나 통근용보다는 간단한 야외 피크닉등에 어울린다”고 기사에 설명되어 있으며, 사진의 모델은 서민희이다(p. 5). 1973년 9월 동아일보에는 「로스앤절러스」, 「워싱톤」, 「뉴욕」의 미국 순회 패션쇼에 앞서 열리는 최경자의 패션쇼 소식을 전한다. 25일 오후 7시 영빈관에서 개최되는 이 패션쇼에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현대의상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양단, 쉬폰, 폴리에스테르, 저지 등으로 만든 45점이 출품되었다(Kyung-Ja Choi fashion show: before USA tour fashion show presented 45 styles, 1973).
백화점 패션쇼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시작되었다. 매일경제신문은 신세계백화점에서 열리는 1971년 「크리스머스연말의상 패션쇼」소식을 기술하고 있다(The end of year fashion show at Shinsegae department store: practical goods drags attention, 1971). 15일부터 19일까지 오후 12시 30분에는 5층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오후 3시 30분에는 2층 양장코너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이번 패션쇼 중 레스토랑 패션쇼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것으로 「보는 패션쇼」에서 「입는 패션쇼」를 표방한 것이라고 신문은 설명한다. 디자이너 최경자의 홈웨어, 파티복, 그리고 코트 등이 기획된 이번 패션쇼에는 기성복 제품으로 구성되었으며 가격은 5천 원에서 1만 원 내외이다. 반면, 1975년 3월 경향신문에는 21일 오후 5시 미도파백화점 6층 대식당에서 열린 75년 봄을 위한 오리지널 패션쇼 소식이 실려 있다(Original fashion show, 1975). 실용성이 강조된 일상복 패션쇼인 이 행사는 최경자가 연출하였으며 변자영, 이계순, 이원목 등 17명의 모델이 함께하였다. 더불어 1977년 5월 매일경제신문에는 지난 1일 신세계백화점에 「부띡」매장을 오픈한 「신스부띡」 쇼가 6일 조선호텔에서 개최되며, 이것이 국내의 최초 「부띡」쇼라고 설명한다(Shin’s boutique ready to wear fashion show presented 80 style, 1977). 신스부틱은 최경자의 딸 신혜순이 실장을 맡은 기성복 브랜드이다. 당시 패션쇼에서는 실크와 면의 자연소재를 활용한 일상복 디자인 80여벌이 선보였으며, 루비나, 최효비, 유기복 등 16명의 모델이 출연하였다. <Fig. 9>는 패션쇼에서 소개된 블루종에 팬츠로 매치하고 긴 목걸이로 스타일을 완성한 착장이다.
Ⅳ. 매체자료 분석을 통해 추출된 최경자 작품 및 관련 패션쇼 사실분석
최경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청자(1959)』는 매체자료 분석 결과 1962년 발표된 『고려자기』이브닝 드레스로 밝혀졌다. 실제로 「한국현대의상박물관」 학예사는 면담 당시 해당 작품의 한국근현대문화재 등록을 시도하였으나 자료의 객관적 검증 불충분으로 거절되었으므로 그 근거를 찾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崔磬子 自傳年傅패션五○年(1981)』 을 비롯한 최경자의 모든 저서와 선행 연구(Bang, 1962; Choi, 1981; Choi, 1990; Choi, 1996; Choi, 1999; Lee, 2002; Lee & Soh, 2016)에서는 드레스 『청자』가 1959년대 작품으로 기재되어 있고, 이 작품이 1959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한국 최초의 국제 패션쇼인 17개국의 디자이너가 참가한 엑스란회 주최 패션쇼에서 발표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Choi, 1981; Choi, 1990; Choi, 1996; Choi, 1999; Lee & Soh, 2016). 하지만 한국 엑스란회 주최의 ⟪엑쓰란 韓國史上初有 国際휏숀쇼⟫는 1962년 개최된 것으로 1962년 5월 경향신문에 기재되어 있다(The international fashion, 1962). 또한 최경자의 저서에 나타난 1959년 엑스란회 주최국제패션쇼의 내용은 1962년 경향신문의 기사 내용과도 일치한다. 더불어 같은 해 8월 경향신문에 최경자가 기고한 <韓風洋風>칼럼에서 Choi(1962)는 한국의 의상과 서양 양장의 차이를 설명하고, 한국에 양장이 66년 전 상륙하였으며 초창기에는 일본식에서 이후 영국식을 거쳐 현재는 미국식 양장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기술하면서 「아랑」이라는 한국의 전통을 콘텐츠로 한 이브닝 드레스 라인이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선행자료들에서 『청자(1959)』로 명명된 <Fig. 17> 『고려자기(1962)』드레스를 대표 사례로 제시한다(Choi, 1962). 「아랑」 라인은 1962년 최경자의 작품뿐만 아니라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작품을 다룬 동아일보의 2월 기사에도 언급되는데, 최경자는 이 시기 한국적 콘텐츠를 활용한 디자인 연구를 자신의 작품과 더불어 학생들의 교육에도 적용시킨 것으로 확인된다(Trend from the daily life, students fashion show of the Kook-Ja fashion design school, 1962; Choi, 1962).
매체자료에서는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 자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최경자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1957년 12월 여원 화보에는 「국제양장사」 주최의 ⟪최경자복식연구발표회⟫ 소식과 함께 작품 5점의 발표 당시의 제목과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Kyung-Ja Choi clothing research presentation, 1957). <Fig. 10>은 한복치마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레스 「동 경」, <Fig. 11>은 노골적인 노출이 아닌 우아한 노출을 시도한 벌룬 슬리브의 이브닝드레스 「넝 쿨」, <Fig. 12>는 케이프가 특징인 「세파레-트」, <Fig. 13>은 신부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한 웨딩드레스 「청실ㆍ홍실」 이 최경자의 1회 연구발표회 작품들이다. 특히 이 자료에는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제1회 발표회 대표작으로 알려진 『메탈릭드레스 세트: 현재와 미래』가 ‘아래가 좁아지는 것이 특징인 이브닝드레스 『솔방울』’로 디자인 설명과 함께 명명되어 있다.
1960년 9월 경향신문에는 최경자가 자신의 신상품을 직접 설명한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이십대의 젊은 오피스 걸을 위한 <Fig. 14>의 원피스는 「타이ㆍ카라」로 상반신의 단조로움을 고려하고 타이의 길이를 다르게 하여 「부로치로」고정시켰다고 최경자는 설명한다(Choi, 1960a). 또한, 포켓 역시 한쪽만 달아 「언바란스」의 미를 살렸으며, 소매는 칠 부이나 활동 시 밀어 올릴 수 있도록 기능성을 살렸고, 컬러는 「부라운」임을 밝히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제품의 가격 역시 공개되어 있는데 “二十인지 다블, 폭이 六천五백환”으로 명시되어 있다(Choi, 1960a, p. 4). 또한, 같은 해 최경자는 모던한 코트 디자인 두 가지를 <Fig. 15><Fig. 16>과 같이 내어 놓으며 자세히 설명한다:
“①굴직한 부라운색 체크에 「덴카라」스프링ㆍ 색손」을 안감으로 넣어 아무쪽이라도 뒤집어 입을 수 있는 「뒤파시블 코오트」입니다 「스포-티」한옷차림도될수있어아주편리합니다 ②전체적으로 보륨을 가진 쑥색의 스프링ㆍ코오트 입니다아랫쪽으로 늦으막하게단 「아웃ㆍ 포켓」과 「언바란스」의 카라가 특징인이ㆍ 옷은 「엘레간트」란 멋을 풍겨줍니다. 천은 국산루이드...(Choi 1960b, p. 4)”.
1960년대 초반 최경자는 한국적 콘텐츠를 이브닝드레스 라인에 접목시킴과 동시에 기성복 시대의 도래를 인식하고 실용적인 여성 수트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매체를 통해 소개하여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최경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개인패션쇼와 그룹패션쇼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소개하고 있다. 또한 Lee & Soh(2016)는 최경자의 저서를 분석하여 최경자가 “7회의 개인 패션쇼를 개최하였으며, 7회의 단체패션쇼에 참가하여 디자인을 선보였다(p. 121)”고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1966년 3월 경향신문에는 24일 목요일 오후 3시 워커힐 호텔에서 디자이너 최경자가 제11회 복장발표회를 개최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같은 신문 28일 기사에서는 동일한 발표회가 최경자의 13회 개인발표회임이 기술되어 있어 최경자의 개인발표회는 1966년까지 최소 11회 이상 개최된 것으로 분석된다(Kyung-Ja Choi clothing presentation, 1966; Two fashion shows: Kyung-Ja Choi & Sunhui Kim, 1966). 다만, 해당 신문자료가 동일 발표회를 각기 다른 회 차로 기술하고 있어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최경자의 저서들에 제시되어 있는 패션쇼 관련 포스터들은 내용분석이 되지 않은 채 자전적 글 옆에 제시되어 있어 실제 내용과 디자이너가 기재해 놓은 사실들이 차이를 보이는 등, 구체적으로 분석 되지 않은 상태이다<Fig. 18>, <Fig. 19><Fig. 20><Fig. 21><Fig. 22><Fig. 23>. 매체분석 결과 본고에서 객관적 검증을 통해 확인된 최경자 관련 패션쇼는 1950년대 3회, 1960년대 20회, 1970년대 9회였으며, 이중 최경자 개인발표회는 13회, 디자이너 연합 및 단체 국제 및 국내 발표회가 13회, 「국제복장학원」 연구생들의 패션쇼는 4회 그리고 「국제복장학원」 졸업생들의 연합패션쇼인 KDC 패션쇼가 4회 확인되었다. 다만, 13회의 개인발표회 중 4회는 동일한 의상으로 진행된 한국과 미국의 투어 발표회이므로 새로운 컬렉션을 기준으로는 9회의 개인발표회가 추출되었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주요패션쇼의 세부 내용과 근거는 <Table 1><Table 2>와 같다.
V.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매체자료를 근거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활동을 고찰하여 최경자 관련 한국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을 밝혀내는데 있었다.
본고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연대별 최경자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950년대 최경자는 실용적인 한국적 양장의 개발과 올바른 의생활 전파를 위해 노력하였다. 최경자가 1955년 명동에 「국제양장사」를 오픈하기 이전에 이미 「송옥」과 「한」양장점이 명동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1955년 <복식연우회> 창설을 계기로 최경자는 디자이너 그룹의 리더가 되었고, 이후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상생을 위한 행보를 시작하였다. 최경자는 1957년 한국 최초로 패션 바자 전시회를 도입하여 공동 수익창출 시스템의 롤 모델을 구축하였고 이러한 행사 기획을 통해 디자이너 브랜드의 개념을 대중에게 전파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1958년 첫 작품발표회를 시작으로 이 시기 3번의 단독 패션쇼를 개최하였다. 1950년대 최경자 디자인의 주력상품은 맞춤복을 기본으로 한 이브닝드레스 라인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개별 디자인별로 주제를 정하여 컬렉션을 진행하였다.
1960년대 최경자는 교육사업 확장을 통한 후학 양성과 국제패션계 및 복지업체와의 협업 패션쇼를 개최해 산학협력의 롤 모델을 제시하였다. 맞춤복과 기성복이 혼용된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국적인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아랑」 이브닝드레스라인과 실용적인 슈트라인이 모두 주력상품이었고, 최경자는 이 시기 라인을 분리하여 작품발표회를 구성하였다. 주목할 것은 전성기인 1960년대에 최경자는 개인컬렉션보다 협업컬렉션 기획에 힘썼고, 작품 활동과 더불어 후학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 확장을 위해 일본의 「문화복장학원」 그리고 뉴욕의 「FIT」와 같은 국외 교육기관과의 협업에 지속하였다. 그 결과, 1960년대 활동한 디자이너 중 최경자의 딸 신혜순을 비롯한 박문자, 소영희, 앙드레싸롱 남성디자이너 앙드레ㆍ김, 조세핀싸롱 디자이너 조세핀ㆍ조, 원싸롱 디자이너 염지원, 샤뉴아루싸롱 디자이너 김연, 남성디자이너 안성공, 수지싸롱 디자이너이자 「중앙양재학원」 원장인 이수지, 에리제 양장점 디자이너 에리제ㆍ양, 이외에도 사넬싸롱, 뉴-스타일양장점, 룩크양장점, 키티양장점, 예쁘다양장점, 디올양장점 등 당시 서울지역의 과반수이상의 양장점 디자이너가 국제복장학원 출신이었다. 또한 이 시기 최경자와 함께 패션계의 리더로 디자이너 그룹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 대표 디자이너는 이종천, 서수연, 김순희가 있으며, 조세핀조, 박문자, 한계석, 안성공, 최기지도 최경자와 함께 일본과의 국제교류에 힘썼다. 또한, 1966년에는 섬유기업과 디자이너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금성, 삼호, 일산방직을 비롯한 11개의 한국 직물회사 그리고 9개의 일본 직물회사, 섬유협회와의 협업을 주도하였다. 1960년대 최경자는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한국적 모티브를 활용한 디자인 탐구에 힘썼고, 미국과 일본의 실용적인 제작시스템을 한국 패션계에 도입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970년대 최경자는 기성복 시스템 정착으로 변화한 패션마켓과 패션쇼 형식의 전환에 발맞추어 「와라실업」과 「신스부띡」을 론칭하여 아들 신현장과 딸 신혜순에게 디자인 사업의 권한을 넘기며 기성복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또한 패션디자인계의 원로서 교육 사업에 더욱 집중하였다. 더불어 1960년대에 이어 최경자는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제교류를 위한 산업계와의 협업을 확장하였다. 최경자는 디자이너 그룹의 리더로서 대한잠사협회, 한국나일론, 면직물협회와 그룹 협업패션쇼를 진행하였고, 한국의 현대패션과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한 문화패션쇼에도 지속적으로 참가하였다. 1970년대 최경자와 함께 활동한 디자이너는 전통복식연구가 손경자를 비롯한, 이영우, 오은환, 이신우, 정경자, 한재석, 라니권, 문경희 한혜수가 있었다.
최경자 관련 매체자료 분석을 통해 밝혀진 한국근현대패션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1950년대 최경자는 3회의 개인작품발표회를 기획하며 패션디자이너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기를 거쳤고, 196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근거가 명확한 패션쇼는 1950년대 3회, 1960년대 20회, 1970년대 9회가 추출되었고 이중 개인발표회는 9회로 나타났다. 선행 자료에서 1958년 제1회 작품발표회 대표작으로 알려진 『메탈릭드레스 세트: 현재와미래』의 제목은 『솔방울』으로 밝혀졌다. 또한, 최초의 한국국제패션쇼로 기록된 ⟪엑쓰란 韓國史上初有 国際휏숀쇼⟫는 1959년이 아닌 1962년에 개최된 것으로 본고의 분석 결과 검증되었으며, 최경자의 1959년 작품으로 알려진 『청자』드레스는 『 고려자기』가 올바른 제목이며, 1962년 발표작으로 밝혀졌다. 매체분석을 통해 새롭게 추출된 최경자의 1960년대 맞춤복들은 디자인이 아닌 원단의 사용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었다. 더불어 1960년대까지는 맞춤복과 기성복이 혼용된 가운데, 1970년대는 디자이너의 매장이 백화점에 오픈되면서 한국 패션디자인의 시스템은 맞춤복에서 기성복 체계로 전환되었다. 백화점들 역시 상업 브랜드 직영점들과 유명디자이너들의 경쟁구도를 만드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1977년 신세계백화점은 노라노, 미세스박, 논노, 金褼(襈)子, 조세핀趙, 李화지 코너, 신혜순의 「신스ㆍ부띡」을, 미도파백화점은 미세스高, 오리지날李, 트로아趙, 바로크, 프랑소와, 김매자코너를 경쟁적으로 영입하였다. 백화점 별 디자이너 브랜드의 중복 매장 오픈은 지양(止揚)된 가운데, 이 시기 기성복 시장의 트렌드는 신세계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이 주도하였다. 또한 1982년 공표되어 1983년 실시된 교복자율화의 논의는 1979년부터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패션 교육시스템, 미국의 기성복시스템 그리고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트렌드를 국내에 전파한 디자이너 최경자 관련 자료에는 패션계 공동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 내용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특히 최경자는 교육 사업을 통해 후학을 양성해 한국 패션 디자인계와 교육계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6S1A5A801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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