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복식의 스키타이 복식 유래설에 대한 실증적 검토 : 유물에 나타난 두 복식유형간의 공통점 및 차이점 분석
Abstract
This study re-examines the theory - accepted as common knowledge in Korean academia - that the Scythian costume is the archetype for the ancient Korean costume. In order to verify this belief, the study (which is limited to men’s clothing) analyzes the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in the details of the two types of costume. The research method entailed literature research and artifact analysis.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the basic structure of Scythian and ancient Korean costumes is the same, consisting of a jacket, trousers and a waistband; further commonalities are 1) the open form of the jacket, 2) closure of the jacket on the left, and 3) the hem of the jacket. The differences are 1) in the jacket: the form of the bottom hem (Doryun), the location of the hem (Seon), and the attached cap in the back; and 2) in the trousers: the width of the trousers, the ending form of the trousers, the presence of a hem on the end of the trousers, and the presence of a Dang (added piece of fabric on the hip). The many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stumes suggest that previous claims that the Scythian costume is the archetype of the ancient Korean costume should be revised.
Keywords:
ancient Korean costume, costume archetype, costume detail, costume type, Scythian costume키워드:
한국 고대복식, 복식의 원형, 복식디테일, 복식유형, 스키타이 복식Ⅰ. 서론
고대 한국복식의 기본구조는 상의인 저고리(襦)와 하의인 바지(袴)에 두루마기를 덧입는 형태였다. 여자는 바지 위에 상(裳)을 착용하기도 했다. 이런 유고제의 기본 형식은 북방 기마민족 복식의 기본유형이기도하다. 한국 복식학계에서는 이런 유고제의 복식유형을 북방 유목종족인 스키타이계 복식유형이라고 설명하며 한국 고대복식의 유형은 스키타이 복식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여성의 ‘고대 한국의 북방민족 계열설’과 김동욱의 ‘우리나라 민족의 기마민족 유래설’이 그 기반을 이루고, ‘스키타이계 복식이 우리나라 복식의 원형’이라는 김문자 등의 견해가 후속연구에서 자주 재인용되는 것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확실한 고증과 분석이 미비한 상태이므로, 실증적, 문헌적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지금 한국의 고고학계와 사학계에서는 ‘기마민족 이론’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되어 고고발굴과 연구에 의한 성과로 ‘기마민족 이론’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고 있고(Kang, 2004; Kang 2010; Lee 1990a; Lee 1990b) 신라의 적석목곽분의 무덤의 형태가 스키타이 인들의 적석목곽분과 같은 유형이라는 공통성에 주목하거나(Choi, 1992), 신라 미술에 나타나는 스키타이적 요소를 분석하는 연구(Min, 2008) 등 스키타이인과 고대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며 이와 관련된 논쟁이 활발하다. 복식학계에서도 ‘기마민족 이론’이나 ‘한국 고대복식의 스키타이 복식 유래설’에 대해 재검토하여 한국 고대 복식의 연원을 올바로 세워야할 필요가 절실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스키타이 복식과 우리나라 고대복식의 유형에 관한 실증자료의 비교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고대복식의 원형에 대한 스키타이 복식 유래설의 진위를 검증해 나가는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방법으로는 문헌연구와 유물분석을 병행하였다. 한국의 고대복식 분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들을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스키타이 복식 분야에 대해서는 스키타이 연구에서 오랜 연구의 토대와 발굴을 기반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유럽학계의 발굴 보고서와 선행연구들을 독일 고고학연구소에서 수집하였다. 유물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자료인 실증적 자료에 대한 분석이다. 본 연구를 위한 1차 자료는 이란의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와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에레미타쥬(Eremitage)박물관을 답사하여 수집하였다.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는 스키타이 연구에서 중요한 실증적 자료인 기원전 6-4세기 스키타이인들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고대 페르시아(Persia)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의 조공도가 남아있는 곳이다. 또한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레미타쥬 박물관은 세계에서 스키타이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다양한 면모의 스키타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이다. 현지의 실제 촬영조건 상의 한계로 직접 촬영한 유물사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엔 관계 박물관에서 출판한 유물 사진을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한국 고대복식의 원류가 스키타이 복식이라는 종래의 견해를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식유형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려한다. 그중에서도 남자 복식의 바지 저고리 유형 분석으로 연구의 범위를 한정하였다. 종래 한국복식의 원류를 스키타이 복식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바지 저고리를 착용한 북방 기마민족이 북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기마민족 한반도 유래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남자 복식 중에서도 바지 저고리의 유형 분석에 집중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도출하여 스키타이 복식이 한국 고대복식의 원류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한다.
스키타이 복식의 선행연구는 Chang(2019), Kim(1994), Kim(1999), Kim(2007), Kim & Chae(2018), Yi-Chang(2015), Yi-Chang(2016a), Yi-Chang(2016b) 등이 있다. 한국 고대복식에 관하여는 꾸준히 연구되어 왔기 때문에 주제별로 많은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이 중에서 본 연구와 관계되는 테마의 선행연구로는 한국 고대복식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Chae(2017), Park(2002), Park(2004), 고구려 복식의 유형과 양식에 대한 연구 Hong & Lee(2005), Kim & Lee(2005), Soh(2005), 고대 백제 및 신라 복식에 대한 연구 Chae(2014), Choi & Kim(2001), Kweon(2001a), Kweon(2001b), 그 외 Jung(2003), Lee(2014), Ra(2016a), Ra(2016b), Shin (2009) 등이 있다.
연구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1. 스키타이 복식을 살펴보기 위하여 복식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문화적 요인을 포함하여 스키타이인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스키타이인의 바지 저고리 유형을 권역별로 분석한 후 스키타이 복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정리한다. 2. 고대 한국의 북방민족 유래설의 이론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시각적 자료인 고대 유물과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자료를 분석하여 한국 고대복식의 유형을 정리한다. 3. 앞에서 정리한 두 복식의 전형적인 형태와 특성을 비교분석하여 지금까지 받아들여진 스키타이 복식이 한국 고대복식의 원류로 주장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지 검토한다.
Ⅱ. 스키타이, 스키타이계(系) 및 북방민족의 개념 정리
한국 복식관련 논고에서 스키타이 문화 및 북방문화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경계가 모호하거나 혼용되어 내용상의 혼란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본 논고에서는 일차적으로 스키타이, 스키타이계(系) 및 북방민족의 개념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Lee(1998)은 우리 민족 자체가 북방민족의 계열에 속한다는 관점이고, Kim(1979)은 우리 민족이 북방에서 이주하였다는 관점에서 ‘기마민족유래설’을 주장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흉노(匈奴), 동호(東胡), 선비(鮮卑) 등 북방민족과의 연계를 논하고 있되, 스키타이와의 연계를 직접적으로 논하고 있지는 않다. Kim (1994)은 우리 고대문화가 스키타이계 문화와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 영향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B.C. 7C~B.C. 3C에 걸쳐 흑해를 중심으로 거주하던 유목 기마민족을 협의의 스키타이로 보고 ‘스키타이‘라 지칭하고, 주로 내륙 유라시아 일대에서 활약하던 고대 북방 기마민족 전체를 광의의 스키타이로 보고 ’스키타이계(系)‘라 지칭하였다. 이중 우리나라 서북 방면에 이웃하고 있던 ’스키타이계(系)‘의 민족으로 흉노, 동호, 선비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일본학계의 문헌 (江上皮夫,1967, 岡崎敬,1973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p. 15). 반면 유럽 학계에서 스키타이족 및 스키타이 문화의 구분은 이와는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Parzinger(2007)는, 스키타이의 존재에 대하여는 헤로도트(Herodot)의 역사기술 및 후대 로마의 몇몇 역사기술 외에는 전적으로 발굴 유적을 통해서만 추적이 가능하며, 발굴 유적은 서쪽으로 도나우(Donau)강 중류에서부터 동쪽으로 예니세이(Jenissei) 강에 이르는 지역에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p. 6, p. 129). Haeusler(1981)는 스키타이의 유적에 대하여, 러시아의 고고학자 Talbot-Rice와 Potratz는 확장된 의미의 스키타이의 유적으로 우크라이나(Ukraine)에서 알타이(Altai)에 이르는 지역이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으며(p. 50) 역시 러시아의 고고학자인 Smirnow와 Terenožkin은 유라시아 스텝지역 외에 북부의 산림 스텝지역까지 스키타이 지역에 포함시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p. 51). 이상을 종합하면 알타이 동부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의 대표적 발굴지인 투바(Tuva)지역이 예니세이 강의 남서쪽에 있는 것과 유라시아 스텝지역 북부의 산림 스텝지역이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지역 북부에 위치함을 감안할 때에 현재까지 유럽 학계에서 광의의 스키타이 지역으로 인정하는 영역은 서쪽으로 도나우 강 중류에서부터 동쪽으로 예니세이 강에 이르는 지역이다. 여기에는 고대 북방 기마민족으로 분류되는 흉노, 동호, 선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유럽학계의 관점은 앞에서 일본 학자들이 주장한 흉노, 동호, 선비 등을 포함하는 고대 북방 기마민족 전체를 광의의 스키타이로 보고 ’스키타이계(系)‘라 지칭하는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흉노, 동호, 선비 등을 포함하는 고대 북방 기마민족들과의 문화적 연계나 영향 관계를 바탕으로 ’스키타이계(系)‘ 문화를 우리문화의 원류로 주장하는 학설은 더 많은 연구를 토대로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유럽학계에서 통용되는 스키타이의 개념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며 연구를 전개하였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중요한 쟁점은 ‘원류’라는 개념 사용에의 적합성 여부이다. 유럽의 학계에서는 흑해 북부지역의 스키타이 문화보다 더 이른 시기로 편년되는 알타이 동부지역 고(古) 스키타이유적의 대표적 발굴지인 투바(Tuva)와 북방민족과 중국민족의 접경지인 난샹엔(Nanshangen)의 발굴유물과의 관련 등에 주목하며, 고 스키타이 문화가 동아시아 문화로부터 영향 받았을 가능성에 대한 연구(Parzinger, 2007; Simpson & Pankova, 2017)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바와 난샹엔의 발굴유물은 고고학적으로 BC 8-9세기로 편년되고 있어(Parzinger, 2007), 청나라 학자 왕국유(王國維)가 호복고(胡服考)에서 조(趙)에서 호복을 받아들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조 무령왕(趙武靈王, BC 340-295) 시기에 비하여 약 5세기 이전의 유물자료이다. 동북아시아 고대복식이 흉노, 선비 등 북방민족의 영향을 받았고, 스키타이계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존의 일반적 시각 외에, 그보다 이른 시기에 고대 스키타이 문화가 역으로 동아시아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유럽학계의 연구를 함께 고려해 볼 때 ‘원류’나 ‘유래’ 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향후 유물의 세부분석과 편년 등 상호 영향 관계에 관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여러 분야의 종합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Ⅲ. 스키타이인의 복식 분석
1. 스키타이인의 지역별 분류와 역사적 배경
스키타이인은 기원전 7-8세기 그리스의 역사책에 그리스 시인인 헤시오드(Hesiod)가 ‘말 젖을 짜는 사람들(mare milker, Stutenmelker)’로 언급하면서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그 후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 484-425)가 역사서 IV에서 스키타이인들의 영토와 그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Parzinger, 2007).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역사서 4권 11-13절에서 ‘기원전 14세기경 아시아의 키르기쯔(Kirgiz) 초원에 살던 유목종족인 스키타이인이 마사게인(Masagetai)의 위협으로 우랄(Ural)강을 건너 흑해 북쪽 우크라이나(Ukraine)로 이주했다’고 전한다(Herodot, 2004, pp. 325-326; Nagel, 1982). 흑해 북쪽지역으로 이동한 스키타이인들의 대부분은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이동하여 카스피해 남서쪽 지금의 아제르바이잔(Aserbeidschan) 지역으로 들어갔다. 소아시아에 정착한 스키타이인들은 그 당시 소아시아의 지배세력이었던 아시리아와 메디아 등과 치열한 전투와 결혼 정책 등으로 소아시아의 패권 싸움에 끼어들며 북 메소포타미아의 신흥세력으로 떠오르기도 하였으나 기원전 600년경 28년간 소아시아의 생활을 뒤로하고 자기들의 고향인 흑해지역으로 되돌아갔다(Schmoeckel, 1982; Vjaceslav, 1991). 흑해지역으로 돌아간 스키타이인들은 그 당시 흑해 북, 서쪽에 생겨난 그리스 식민도시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무역을 통하여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때마침 찾아온 기후 변화로 스키타이인들의 생활방식이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되면서 농경과 유목생활을 병행하며 살았다(Chang, 2015). 그리스 인들과의 무역에서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농작물 특히 곡식들을 전달했고 또한 스키타이인들을 노예로 팔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사치품을 전달했다. 이 당시 이 지역 유물들에는 스키타이인들의 유목생활의 전통이 녹아져있는 유물들과 아울러 그리스 문화의 여러 요소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이를 그레코-스키타이 문화로 명명하였다(Haeusler, 1975; Boardman, 1993; Chang, 2019). 기원전 200년경 동쪽에서 공격해오는 사르마티아인(sarmatian)들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스키타이인들은 위기를 맞다가 기원전 100년경 멸망하였다(Schmoeckel, 1982; Parzinger, 2007; Chang, 2015).
이상을 협의의 스키타이인으로 분류하고,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과 남 시베리아에 살던 유목종족을 광의의 스키타이로 분류할 수 있다. 광의의 스키타이인들이 흑해지역에 살았던 협의의 스키타이인과 민족적으로 같은 종족인지는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이 흑해 북쪽지방에서 발굴된 유물과 상당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는 고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종족이 흑해지역과 소아시아로 이동했던 스키타이인들과 유사한 물질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Parzinger, 2007). 이 초원지대에 살았던 유목종족들을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이라 했고 페르시아인들은 ‘사카(Saka)’족으로 불렀는데 사카족은 페르시아의 고서적에서 아시아에 나타나는 이란계 유목종족을 말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며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 문화를 대변했던 스키타이계 종족들이다(Jettmar, 1972; Schmoeckel, 1982)
지금의 노보시비리스크(Novosibirisk) 지역인 파지리크 지역은 기원전 3-5세기 철기시대 문화권이었다. 지형상으로 이 지역은 중국, 카작스탄, 몽골지역과 접해있어 남북으로는 남 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를 연결하고 동서로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와 연결되어 실크로드 서방문화를 전파하는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축을 이루었던 문화권이었다(Yi-Chang, 2016b). 일찌기 헤로도트(Herodot)는 흑해연안에서 동쪽의 스텝지역에 이르는 종족들이 민족적으로는 모두 같지 않아도 입는 복장들이 유사하다며 이를 ‘스키티아식’이라 명한 바 있으며, Pazinger(2007)는 이렇게 유사한 복식은 남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파지리크 쿠르간에서 발굴된 부장품들이 흑해 지역에 살았던 스키타이인들의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하며(Yi-Chang, 2016), 파지리크 지역 스키타이인들과 흑해 지역 스키타이인들과의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흑해 북쪽 지역과 크림(Crimm)반도에 살았던 좁은 의미의 스키타이인뿐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살았던 광의의 스키타이인들을 무역에 있어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잇는 조직으로 보고 있다(Smirnow, 1979; Chang, 2019). <Fig. 1>
2. 스키타이인의 복식유형과 그 특징 분석
스키타이인들이 그들의 언어로 발자취를 남겨놓지 않아 스키타이인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유물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복식연구에 있어서도 스키타이인의 무덤인 쿠르간(Kurgan)에서 발굴된 유물은 스키타이 복식연구에 중요한 실증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스키타이인들이 묘사된 유물을 지역별로 분석하여 바지 저고리의 유형과 디테일을 정리하며 각 지역별로 그 특징과 유사성을 도출하여 스키타이 인들의 바지 저고리의 유형을 정리한다.
흑해 북쪽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관찰되는 스키타이인의 복식 유형은 상의인 저고리와 하의인 바지가 허리띠로 고정되고 장화를 착용하는 유형이다. 저고리는 앞이 트인 전개형이고 앞 중앙에서 왼쪽으로 여며지는 좌임이다. 저고리의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소매는 착수이다. 저고리 도련은 앞 중앙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게 재단되어 내려오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도련의 형태는 드네프르(Dnepr) 강 유역 기원전 4세기로 편년되는 솔로차(Solocha) 쿠르간 금 빗에 묘사된 서 있는 군인(Alexeyev, 2012)<Fig. 2>, 제기에 묘사된 전사<Fig. 3>, 체르톰릭(Chertomlyk) 쿠르간의 생업에 종사하는 스키타이 인<Fig. 4>, 크림 반도 쿨오바(Kul Oba)지역의 제기에 묘사된 활을 당기는 왕의 아들<Fig. 5> 그리고 옷 장식품에 묘사된 전사<Fig. 6>에서도 관찰되어 이 도련의 형태는 흑해 북쪽 지역에서 지역에 관계없이 또 신분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이 도련의 형태는 유물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모양으로 저고리의 착장방식이나 표현양식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저고리 자체의 재단된 형태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흑해 북쪽지역 스키타이인의 복식을 연구한 Klocko(1991)의 저고리 구성도에서도 삼각형의 도련의 형태가 확인된다<Fig. 7>.
저고리의 선 장식은 어깨, 윗 팔, 도련, 앞 여밈 끝단, 소매 끝동과 등 뒤 중앙에서 관찰되는데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복식요소이나 선의 폭이 넓고 화려한 장식은 왕<Fig. 8>과 귀족<Fig. 9>의 저고리에서 확인되고 있어 선이 사회적 신분과 서열을 구분했던 복식요소로 사용되었다고 추측된다.
선(襈)은 원래 옷의 끝부분, 즉 깃, 소매 끝, 도련, 앞여밈 끝단 등에 천을 덧댄 것으로 이는 옷의 끝 부분에서 올이 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복식요소이었다(Chang, 2017). 그러나 흑해 북쪽지역 저고리에는 옷의 끝 부분 이외에 윗 팔과 등 뒤에도 선이 관찰된다. Klocko(1991)는 이 두 선은 옷의 편리함과 재료의 경제성 등을 고려하여 옷을 만들 때 생기는 솔기를 꿰매고 장식한 것으로 이 두 선은 복식의 구성도에 의해 생겨나는 복식요소 임을 설명하고 있다(p. 105)<Fig. 7>. 아울러 고대에서는 착용자를 악령이나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이 선에 현란한 무늬를 넣어 장식하곤 했다고 부연하고 있는데(p. 105) 이 등 뒤의 장식선은 체르톰릭의 암포라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타이 인<Fig. 10>과 솔로차 금 빗 군인<Fig. 11> 그리고 페레데리제바(Perederijewa) 금 헬멧 젊은 전사<Fig. 12>의 저고리 등 뒤에서 뚜렷하게 관찰된다. 젊은 전사의 등 뒤 장식선은 일반 스키타이인보다 훨씬 화려하여 그의 사회적 신분이 높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외에 윗 팔의 장식선은 앞의 거의 모든 그림에서 확인되고 있어 윗 팔의 장식선이 생겨나는 저고리의 구성 즉, 팔 부분을 몸판에 붙이는 저고리가 보편적인 형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지는 통이 좁은 형과 약간 넓은 형이 관찰된다. 통이 좁은 형은 레깅스처럼 다리에 꽉 끼는 타이트한 스타일과 폭이 좁은 일자형으로 구분되고 통이 약간 넓은 형은 볼륨이 있어 주름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레깅스처럼 다리에 꽉 끼는 타이트한 스타일은 페레데리제바 금 헬멧에서 왕과 젊은 전사들이 착용하였는데 이 바지는 신발이 바지에 붙은 아낙시리데스(Anaxyrides)<Fig. 13>이다. 폭이 좁은 일자형 바지는 카스테(Chastye) 제기에 묘사된 왕과 왕의 아들<Fig. 8>, 크림 반도 쿨오바의 왕의 아들<Fig. 5> 그리고 쿨오바의 전사<Fig. 6>들에서 관찰된다. 통이 약간 넓어 주름이 나타나는 형은 솔로차 금빗의 서 있는 군인<Fig. 2>과 체르톰릭 암포라에 묘사된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타이인들<Fig. 4, 10>에서 나타나고 있어 이 바지 유형은 활동성을 요구하는 계층에서 착용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흑해 북쪽지역의 바지는 신분에 따라 크게 구별되지는 않았고 용도별로 착용되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흑해 북쪽 지역의 바지 저고리 형태를 Klocko(1991)는 <Fig. 14>에서 재현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계 종족들의 기본 복식유형은 ①소매가 좁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②소매가 좁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바지 등 두 유형이 있다. ①의 유형은 주로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부조에서 관찰되며 ②의 유형은 이식쿨(Issyk Kul) 쿠르간에서 관찰되었다. ①의 유형은 다시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라피스(Sarapis)’(Widengren, 1956; Hinz, 1969; Bittner, 1985; Calmeyer 1982; Chang, 2016a) 혹은 ‘카삭(Kasak)’(Schmidt, 1970; Nagel, 1982; Chang, 2016a)으로 명명되는 앞트임이 없는 전폐형의 튜닉형 저고리이고<Fig. 15> 다른 하나는 ‘Cut-away’ 저고리라고 명명되는(Schmidt, 1970; Calmeyer, 1982; Truempelmann, 1988; Chang, 2016a) 전개형으로 앞 중앙에서 여며지는 형태이다<Fig. 16>. 이 저고리의 도련은 허리 앞 중앙에서 무릎 뒤까지 사선으로 재단되어 오늘날의 연미복과 같은 스타일이다. 이 두 스타일은 앞에서 살펴본 흑해 북쪽 지역 스키타이인들의 저고리 유형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사라피스인 튜닉형 전폐형 저고리는 비수툰(Bisotun) 부조의 스키타이 왕 스쿤카(Skunka)<Fig. 17>, 페르세폴리스 궁전 아파다나(Apadana) 궁 조공도 스키타이인 사절단<Fig. 18> 등 뾰족한 모자를 착용한 스키타이인에서 관찰된다. 이들은 아랄해 근처에 살았던 사카-티그락사우다 (Saka-tigraxauda) 종족이다(Yi-Chang, 2016a). 이 저고리의 소매는 착수이며 흑해 북쪽 지역 저고리의 특징적인 요소인 선(襈)은 없다. 전개형인 Cut-away 저고리는 기원전 5세기 초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1세 궁전 문설주 부조<Fig. 19>, 페르세폴리스 다리우스(Darius) 궁전 조공도 부조<Fig. 20>에서 관찰된다. 소매는 착수이고 여밈은 우임이다.
중앙아시아의 바지는 바지에 신발이 붙은 아낙시리데스와 폭이 좁은 바지, 그리고 일자형 바지<Fig. 21>로 구분된다. 중앙아시아의 또 다른 바지 저고리 유형은 기원전 5-3세기로 편년되는 이식쿨(Issyk-kul) 쿠르간에서 발굴된 황금인간의 전개형 저고리와 통이 좁은 바지이다<Fig. 22>. 저고리는 엉덩이 까지 내려오고 좌임이며 소매는 좁고 허리에서 허리띠로 묶여진 형태이다. 깃, 도련, 앞 끝단, 소매 끝에 장식선이 있다<Fig. 23>. 저고리의 기본 유형과 선의 장식 등은 흑해 북쪽지역 스키타이인들의 저고리와 유사하나 도련의 앞부분이 일자형으로 앞 중앙부분에서 삼각형으로 길게 재단되어 있는 흑해 스키타이인 저고리의 도련과는 차이가 있다.
남 시베리아 파지리크 지역에 나타나는 바지 저고리 형태는 전개형 저고리에 레깅스 같은 폭이 좁은 바지와 폭이 넓은 바지이다. 전개형 저고리는 파지리크 쿠르간 5의 벽걸이 양탄자에 묘사된 기사<Fig. 24, 25>에서 관찰되는데 그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소매는 착수이며 도련은 일직선이다. 여밈은 확실하지 않다. 저고리 유형으로는 흑해 북쪽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이식쿨의 복식형태와 같으나 일직선의 도련의 형태는 이식쿨의 저고리 형태와 유사하다. 그러나 우콕(Ukok) 고원 쿠르간 3에서 발굴된 저고리에는 도련의 형태가 엉덩이에서 U자형 형태로 길게 늘어진 스타일도 나타난다<Fig. 26>. 이 형태는 흑해 북쪽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저고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형태로 이는 말을 탈 때의 기능성을 감안하여 나온 스타일로 생각된다. 이식쿨 쿠르간은 기원전 5-6세기 사카족의 무덤으로 이 지역의 사카족들은 아랄해의 사카족과 파지리크 지역의 스키타이인들과 교류하며 이 두 지역의 문화를 연결시켰던 종족들이다(Parzinger, 2006). 이 두 종족이 착용했던 비슷한 저고리의 형태는 지역적 인접성이 두 지역의 문화적 요소에 미친 영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Schmidt, 1970; Shabazi, 1982; Chang, 2016a).
바지의 형태는 통이 좁은 스타일로 몸에 꽉 끼며 신발이 붙어있는 아낙시리데스 형태로 보인다. 이외에 오론 쿠린 골(Olon-Kurin-Gol)지역에서는 폭이 아주 넓은 바지가 출토되었는데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온다<Fig. 27>. 이 밑에는 부츠를 착용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DAI, 2007). 이는 흑해 북쪽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인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형태로 다른 지역과의 교류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파지리크 예술품에는 파지리크 남쪽 즉 지금의 중국의 북 신강과 교류가 많았음을 말해주는 예술품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동물양식과 파지리크 텍스타일 제품에 나타나는 중국적인 모티브 등이다(Rudenko, 1970; DAI, 2007; Parzinger 2007; Simpson & Pankova, 2017). 이 맥락에서 파지리크 남쪽 지역 바지의 형태가 파지리크 지역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통이 넓은 형태의 바지는 기원전 1세기 전후로 편년되는 흉노의 무덤인 노인울라(Noin-Ula)에서 발굴된 바지<Fig. 28, 29>가 있다. 두 바지의 구체적인 형태는 확실하게 비교가 되지 않지만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 바지통이 넓은 바지는 노인 울라의 출토품이 유일하다. 파지리크 문화의 형성기인 기원전 5-3세기는 흉노족의 활동시기와 겹치므로 이 두 지역의 교류는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노인울라의 무덤에서 발굴된 바지는 기원전 1세기로 편년되어 두 지역의 출토품에는 시간적으로 300~400년의 차이가 있지만 기원전 1세기 이전에도 흉노족들이 통이 넓은 바지를 착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두 지역 간 접촉 혹은 교류에 의한 복식의 영향도 추측 가능하다.
3. 스키타이인 복식 유형의 종합적인 정리
이 장에서는 스키타이인의 바지 저고리 유형 및 바지와 저고리의 각각의 형태적 특성을 세 지역에 따라 비교하고<Table 1> 스키타이 의복의 복식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성을 정리한다 <Table 2>.
1) 세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는 ① 전개형 착수의와 바지의 유형이었으며 디테일에서는 ② 좁은 소매 ③ 좌임 등이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또한 저고리에 나타나는 ④ 저고리의 장식선은 소매 끝, 윗 팔, 도련, 앞 여밈 끝단 등에서 세 지역 모두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있었다. 2) 세 지역의 저고리의 유형과 디테일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① 저고리 유형에서의 차이점은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인들에서 나타나는 여밈이 없는 전폐형 저고리이다. 이는 전개형 착수의와는 다르게 아랄해 근처의 스키타이 종족들에서 관찰되어 스키타이 저고리는 종족과 지역에 따라 그 유형이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② 저고리의 디테일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앞에서 살펴본 저고리의 길이와 여밈 외에, 도련의 형태, 어깨 장식선 등에서 나타났다. 첫째, 도련의 형태는 삼각형 모양과 연미복에서 나타나는 사선의 도련이 관찰되고 있었다. 둘째, 장식선의 위치가 소매 끝, 윗 팔, 도련, 앞 여밈 끝단 이외에 흑해와 파지리크 지역에서는 어깨에서도 관찰되었다. 어깨 장식선은 앞에서 Klocko(1991)가 제시한 <Fig. 7>의 저고리 구성도에 의하면 저고리의 뒷부분과 앞부분이 어깨에서 재단되어 붙여질 때 생기는 장식선으로 흑해와 파지리크 지역에서는 저고리의 구성이 다른 형이 공존했다고 볼 수 있는 요소이다. 3) 바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① 바지 유형은 세 지역에서 모두 신발 달린 아낙시리데스와 일자형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② 바지의 차이점은 바지통이었다. 아낙시리데스는 흑해 북쪽지역과 파지리크 지역에서는 바지 부분이 다리에 꽉 붙는 타이트한 레깅스형이었고 중앙아시아에서는 두 지역 보다는 약간 헐렁한 형태였다. 일자형 바지도 지역에 따라 그 폭에서 차이점이 나타났다. 흑해 북쪽 지역에서는 통이 약간 넓은 일자형으로 주름이 만들어진 형태였는데 이 바지는 신분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형태였다.
Ⅳ. 고대 유물에 나타나는 한국 고대복식 분석
1.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복식 유형
이 장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바지 저고리의 유형을 시기별로 분석하여 고구려시대 고대 한국복식의 유형을 정리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나타나는데 조성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된다.
4~5세기까지인 초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이다(Jeon, 2016). 그러므로 초기 벽화에는 다양한 계층의 고구려 복식이 관찰된다. 안악 3호분에 묘사된 장하독(주인 휘하의 무관)<Fig. 30>, 뿔피리 부는 악대원<Fig. 31> 그리고 의장기수<Fig. 32>들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전개형 저고리와 폭이 넓은 일자형 바지를 착용하고 있다. 저고리 여밈은 우임이다. 그림에서는 여밈이 확실하지 않으나 깃의 여밈선이 오른쪽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여밈선은 부월수(무기든 군인)<Fig 33>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이 우임의 저고리는 신분에 관계없이 착용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디테일의 공통점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의 길이와 직령인 깃의 모양, 우임인 여밈 방식, 깃, 앞 여밈 끝단, 소매 끝과 도련에 붙어있는 장식선이고 차이점은 소매 폭이다. 악대원과 의장기수의 소매는 장하독의 소매보다 약간 좁은 형이어서 저고리의 소매는 신분에 따라서 그 폭이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바지 폭에서도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장하독의 바지 폭은 악대원과 부월수 그리고 의장기수의 바지 폭 보다 넓은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바지 폭도 신분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지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다른 점은 바지 끝에 있는 장식선이다. 이 장식선은 장하독에서 관찰되고 악대원, 부월수, 의장대원의 바지에서는 관찰되지 않아 이 또한 신분에 따라 구별되는 복식요소임을 알 수 있다. 덕흥리 고분 벽화에서는 마사회를 구경하는 일반인(Jeon, 2016)이 전개형 저고리에 통이 좁은 바지를 착용하고 있는데 바지 끝은 오므라든 형태이고 바지 끝에 장식선은 없다<Fig. 34>. 그러므로 이 시기 바지 끝이 오므라든 형태는 대구고나 세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바지 통과 바지 끝의 장식선의 유무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에 조성된 중기 집안지역의 무용총, 삼실총 등에 묘사된 인물들 대다수는 좌임 직령의 전개형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고 있으나 우임도 관찰된다. 좌임은 무용총의 사냥꾼<Fig. 35>, 장천 1호의 문지기<Fig. 36> 등에서 확인되고 우임은 수산리 고분 벽화 하인의 저고리<Fig. 37>에서 관찰된다. 소매는 넓은 형과 좁은 형이 다 나타나는데 수산리 하인의 저고리 소매는 약간 넓은 형이고 위에서 살펴본 사냥꾼, 문지기 등 활동을 요하는 신분의 인물들에서는 좁은 소매가 관찰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고리에 나타나는 선이다. 선은 앞에서 설명한 모든 신분의 저고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며 그 위치는 옷의 끝 부분인 깃, 도련, 앞 여밈 끝단, 소매 끝 등이다. 선에는 무늬가 없으며 색은 단색이고 폭의 변화도 없다. 그러나 묘주 주인의 저고리<Fig. 38>에는 선이 이중으로 서로 다른 색으로 표현된 경우도 관찰되어 선이 신분을 표시하는 복식요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의 선은 앞에서 설명한 스키타이인의 장식선과는 표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선이라는 복식요소를 통해 두 사회가 모두 신분을 표시했던 것은 공통점이다.
무용총의 무덤 주인<Fig. 39>, 삼실총의 귀족 남자<Fig. 40> 등은 바지 통이 아주 넓은 대구고를 착용하고 있고 바지 부리는 오므라져 있다. 그러므로 대구고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바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통이 좁은 바지는 무용총의 무용수<Fig. 41>가 착용하고 있어서 신분에 따라 바지 통이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엉덩이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은 활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엉덩이 부분에 천을 덧댄 당(襠)으로, 스키타이 바지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던 요소이다. 당이 붙어있는 바지는 앞에서 서술한 기원전 1세기 흉노의 무덤에서 발굴된 바지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어<Fig. 28, 29> 이 시기 흉노와의 교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2. 백제와 신라 유물에 나타난 바지 저고리 분석
백제 복식과 신라 복식을 실증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유물자료는 많지 않다. 중국 문헌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복식이 같다’ (Chae, 2017)라는 기록을 토대로 백제, 신라의 복식연구는 고구려의 복식 연구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백제의 유물 중 복식 분석이 가능한 유물은 6세기로 편년된 무령왕릉 출토 동자상<Fig. 43>과 6 세기 양(梁)의 직공도(職貢圖)에 묘사된 백제 사신도<Fig. 44> 등이 있다. 동자상은 통이 넓은 대구고를 착용하고 있고 바지부리는 오므라져 있다. 바지부리가 오므라든 형태의 대구고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살펴본 대구고의 형태와 비슷하다. 허리에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허리띠가 관찰되어 저고리가 허리에서 띠로 묶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저고리와 바지 상하이부 구조임을 암시하는 요소로서, 고구려에서 살펴본 구조와 같다. 동자상이 착용한 대구고는 양의 직공도에 묘사된 백제 사신에서도 관찰된다. 백제 사신의 대구고는 폭이 아주 넓고 바지 부리가 트인 형태로 고구려에서 신분이 높은 계층이 착용한 바지부리가 오므라든 형태와는 차이가 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백제 사신도에서는 바지부리에 아주 넓은 장식선이 나타나는데 고구려의 대구고에는 장식선이 없었다. 백제 사신이 착용한 상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로 저고리가 아닌 포로 생각된다. 이상에서 백제의 복식유형은 고구려와 같은 저고리와 바지의 상하이부 구조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신분이 높은 계층은 대구고를 착용하였는데 디테일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일 이전의 신라의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은 신라의 토우<Fig. 45>와 천마총에서 발굴된 채화판에 묘사된 말을 탄 인물도<Fig. 46> 그리고 왕희도의 신라 사신도<Fig. 47>등이 있다. 토우는 허리에 허리띠가 강조되어 표현되어 백제의 동자상처럼 상하이부 구조의 옷이 허리에서 묶여진 형태임을 암시한다. 목 부분에 깃은 직령의 형태로 추측된다(Chae, 2017). 바지는 주름을 표현하는 세로줄이 있어 폭이 넓은 대구고 형태로 보이며 바지 끝은 오므라져 있는 형태이나 바지부리에 선장식의 유무는 관찰하기 힘들다. 이는 백제의 동자상의 바지 형태와 비슷하다. 천마총 채화판의 말을 탄 인물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폭이 넓은 바지를 착용하고 있다(Lee, 2014). 저고리가 전개형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채화판의 기사가 착용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 유형은 고구려의 가장 보편적인 저고리 유형이었음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백제 복식에도 이 유형이 나타나고 있음을 동자상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대구고의 유형은 삼국의 공통적인 바지 저고리 유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왕회도의 신라 사신이 착용한 대구고는 바지부리는 오므라들지 않고 트인 형이며 바지부리에는 선장식이 달려있어 백제 사신의 대구고와 비슷하다. 왕희도의 사신도에서는 고구려 사신의 대구고가 백제 신라의 사신도의 대구고와 비슷하게 묘사되어있는데 이는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살펴본 남자 귀족의 대구고인 바지부리가 오므라든 형태와는 다른 형태이다. 이상에서 유물을 통하여 백제 신라 의복의 보편성은 앞에서 언급한 중국 문헌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복식이 같다’라는 설명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고대복식의 기본적 형태 및 구성요소를 <Table 3>에서 정리하였다.
Ⅴ. 스키타이 바지 저고리와 한국 고대 바지 저고리의 유형과 구성요소 비교
이 장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스키타이와 한국 고대 남자 바지 저고리의 유형을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여 두 유형의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특성을 찾아내며 한국 고대복식과 스키타이 복식 관계를 정리한다.
한국 고대복식 중 남자의 저고리는 직령의 전개형으로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며 도련이 직선으로 재단된 형태이었다. 여밈은 좌임과 우임이 관찰되고 있었다.
스키타이 저고리는 직령의 전개형과 곡령의 전폐형이 관찰되어 앞에서 살펴본 한국 고대 남자 저고리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던 전폐형 저고리가 관찰되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예(濊)의 복식을 언급하며 ‘곡령을 입었다’(Jinsu, 1995)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곡령의 저고리를 고구려의 복식에 포함시켜 다룰 수 있으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남자 저고리의 곡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무용총 여자 무용수의 두루마기 밑에 둥근 선이 표현되어 있어 속옷으로 곡령을 착용했다고 짐작해 볼 수는 있으나 이는 정확하지 않고 또 본고에서는 남자 저고리를 실증 분석한 것이므로 이 곡령에 대한 부분은 본고에서는 제외한다.
흑해 북쪽지역의 저고리, 중앙아시아 이식쿨의 황금인간 저고리, 파지리크 기사의 저고리는 전개형 저고리로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형태였으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저고리는 곡령의 전폐형도 있었다. 스키타이 전개형 저고리의 여밈은 좌임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합임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키타이 저고리들의 도련은 다양했다. 한국의 고대 저고리의 도련처럼 일직선으로 재단된 것 이외에도 여러 형태가 있었으며 그 형태는 지역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흑해 북쪽지역의 삼각형 도련과 파지리크 지역의 엉덩이 부분이 U자 모양을 이룬 도련 등은 말 탈 때의 기능성을 고려한 형태로 추정되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지역 스키타이인들의 도련은 앞 중앙에서 뒷 무릎까지 사선으로 재단되어 지금의 연미복을 연상케 하는 사선 도련의 형태도 있었다. 이런 요소는 스키타이 복식의 디테일이 지역 및 종족에 따라 편리성과 필요성에 의해 변화되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였다. 저고리 소매 형태에서도 차별성이 나타났는데 스키타이인 상의의 소매는 모두 착수인 반면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소매는 착수와 광수가 다 나타났고 착수도 스키타이인들의 소매보다는 넓은 스타일이었다. 두 복식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이 선(襈)이었다. 그러나 선의 위치에서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선이 도련, 섶, 소매 끝동 등 저고리의 끝 부분에 둘러져 있는 반면 스키타이 저고리에서는 옷의 끝부분 이외에도 윗 팔과 등 뒤 중앙에서도 선이 나타나고 있었다. 윗 팔의 선과 등 뒤의 중앙선은 저고리의 구성도에 따라 나타나는 선이어서 스키타이 저고리에는 여러 구성방식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남자 저고리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두 장식선 중 윗 팔의 장식선은 무용총 여자 무용수의 윗 팔에서는 관찰되는데 이는 손을 덮는 긴 소매를 붙인 후 솔기를 꿰맨 후 그 부위를 장식한 선으로 파악되었다. 이 선은 여자 저고리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복식요소가 아니고 특수한 계층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복식요소로 특수한 저고리를 제작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통해 남자 저고리에도 윗 팔의 장식선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는 있겠으나 이는 실증적 분석방법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사료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남자 저고리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등 뒤 장식선은 실제는 있어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등 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관찰되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실증적 분석방법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사료되어 본고에서는 제외하였다.
한국 고대복식에 나타나는 선의 색은 단색이고 무늬도 나타나지 않는 단순한 형태로 선의 폭에도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묘주 등에서는 단색의 이중선이 나타나고 있어 고구려 사회에서 선이 실용적인 목적이외에 신분 표시의 수단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었다. 스키타이 저고리에서 선은 단순한 고구려 저고리의 선보다는 그 넓이에서도 차별이 나타났고 화려한 무늬로도 장식되어 있어서 스키타이 사회에서도 선은 신분을 표시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졌던 복식요소였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는데 그 표현방식에서 두 복식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외에도 한국 고대복식의 저고리와 스키타이 복식의 저고리에서 전혀 다른 구성요소는 흑해 북쪽지역 저고리에 붙어있는 모자이다<Fig. 10, 11, 12>. 흑해 북쪽지역의 저고리에 달려있는 모자를 연구한 선행연구(Chang, 2019)에 따르면 흑해 북쪽 지역 스키타이인의 저고리에는 대부분의 저고리에서 등 뒤에 모자가 달려있는데 주로 생업에 종사하는 스키타이인들과 기사들에서 나타나고 있고 족장들에서는 관찰되지 않아 이 모자는 흑해지역에서 실용성을 강조해 나타난 복식요소이며 신분에 따라 유무가 결정되는 요소로 보았다(p. 129, p. 130). 이 상의에 붙어있는 모자는 중앙아시아와 파지리크 지역 저고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구성요소로 이는 스키타이인들의 지역적 복식요소로 간주된다. 이런 복식요소는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디테일이다.
바지도 구성요소의 형태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의 바지는 통이 넓은 형이 대부분인 반면 스키타이인들의 바지는 통이 좁은 형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만 파지리크 지역에서는 통이 넓은 바지가 출토되었다. 이는 스키타이의 전형적인 좁은 바지 형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형태로 파지리크의 주변 문화에서 유입된 바지로 추측되었다. 또 스키타이의 통이 좁은 바지 중에서 레깅스 같은 바지에 신발이 붙어있는 아낙시리데스의 형태는 한국의 고대복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형태였다. 바지 부리의 형태에서도 차이점이 관찰되었는데 한국 고대 바지는 바지부리가 거의 대부분이 오므라드는 스타일인 반면 스키타이의 바지 형태는 바지부리가 오므라들지 않고 트여있는 일자형이었다. 한국 고대 바지의 바지부리에는 선장식이 관찰되었으나 스키타이 바지의 바지부리에는 선장식이 관찰되지 않았다. 스키타이 바지 형태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고구려 바지에서만 관찰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지 엉덩이에 붙어있는 당(襠)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당이 붙어있는 바지와 당이 붙어있지 않는 바지의 형태를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당은 바지의 기본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한국 고대 바지에는 당이 붙어있는 또 다른 바지 유형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였다. 스키타이 복식과 한국 고대복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성요소별로 <Table 4>에서 정리하여 비교하였다.
<Table 4>에서 보듯이 27항목 중 15항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량적인 차이를 떠나서 차이점의 내용을 살펴볼 때, 스키타이 복식에서는 한국고대복식과는 달리 전폐형의 상의가 나타나는 것이나 흑해 북부지역의 스키타이에서는 상의부착형 모자가 나타나는 점 등은 국부적인 지역적 현상으로 볼 수 있고,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일직선의 도련만이 관찰되는 반면 스키타이인의 상의에는 전면과 배면에 다양한 형태의 도련이 나타나는 것은 디테일 상의 차이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키타이의 바지는 주로 좁은 폭의 바지이고 바지 부리가 일자이며 둔부에 당이 없는 반면,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주로 넓은 폭의 풍성한 바지이고 바지부리가 오므라들며 묶이며, 둔부에 당이 나타난다는 점 등의 차이점은 작은 디테일의 차이라고 볼 수 없고, 형태적 특성상의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요소이다. 그리고 저고리의 구성에서 생겨나는 선의 위치가 흑해 북쪽지역 저고리와 한국 고대복식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은 두 지역의 저고리의 구성에서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는 복식요소로 간주되었다.
Ⅵ.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한국의 복식학계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스키타이 복식이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라는 견해를 유물 분석을 통하여 실증적으로 검토한 연구이다. 이를 위하여 스키타이 복식과 한국 고대복식의 기본형 및 그 구성요소를 비교분석하여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도출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스키타이인의 복식과 한국 고대복식을 비교해보면, 상의인 저고리와 하의인 바지를 착용하고 허리에 허리띠를 매는 복식의 기본구조는 같으나 그 구성요소의 형태와 특징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두 복식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저고리에서는 두 복식의 저고리 유형이 전개형이며 좌임이라는 점이다. 바지에서는 두 복식에서 모두 일자형 바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점은 저고리에서는 1) 스키타이 복식에는 전개형 저고리 이외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폐형 저고리가 나타난다는 점이었고 2) 저고리 도련의 형태가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일자형인 반면 스키타이 복식에서는 지역에 따라 앞 중앙에서 삼각형 모양을 이루거나 엉덩이 부분이 U자형을 만드는 형태도 나타난다. 또한 3) 선의 위치가 한국 고대복식에서는 깃, 섶, 도련, 소매 끝동에서 나타났으나 스키타이 복식에서는 이외에도 어깨, 윗 팔, 등 뒤 중앙선에서도 나타났고 신분에 따라 넓이와 화려함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반면 한국복식의 선은 단색에 무늬가 없고 폭의 차이도 거의 없었다. 또 하나의 다른 점은 4) 흑해 북쪽지역 스키타이인의 저고리에서는 등 뒤에 달린 모자가 보편적인 복식요소였지만 한국 고대 저고리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요소이었다. 저고리의 기본형을 좌우하는 이러한 요소의 유무는 두 저고리의 형태상의 특성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바지에서 나타나는 다른점은 1) 스키타이 바지에서는 양 문화권에 공히 나타나는 일자형 외에 몸에 꽉 끼는 레깅스형, 레깅스형에 신발이 붙어있는 아낙시리데스 등의 바지 유형이 나타나는 반면 한국 고대바지에서 나타나는 폭이 넓은 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2) 한국 고대복식의 바지부리 모양은 대부분 발목에서 오므라드는 형인 반면 스키타이인의 바지부리는 오므라들지 않고 트인 스타일이라는 점이고, 3) 한국 고대복식에서 나타나는 바지부리 선장식은 스키타이 복식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4) 바지 엉덩이에 붙어있는 당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엉덩이 뒤에 붙어있는 당의 모양이 관찰된 반면 스키타이 바지에서는 당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 복식학계에서는 북방 기마민족을 스키타이계(系) 민족 개념에 포함시켜 한국복식의 기본형이 북방 기마민족의 복식 유형과 같다는 사실을 한국고대복식 스키타이계 복식 유래설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는 북방 기마민족을 스키타이계 북방민족 개념에 포함시키는 그 당시 일본 학자들의 학설을 수용한 데서 기인하였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스키타이 개념과는 다른 유럽의 스키타이 개념의 영역을 설명하며 논고를 전개시켜 나갔는데 이는 이 연구가 갖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학계에서는 광의의 스키타이로 남 시베리아의 파지리크 지역까지로 보고 있으며, 선비, 흉노 등의 북방민족은 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국복식의 연원에 관한 질문은 고고학적, 문화인류학적, 역사학적 관점에서 각 분야별로 스키타이와 고대 북방 유목민족과의 관계 또 북방민족과 한국과의 관계, 스키타이계와 한국 고대민족과의 관계 등을 규명해야 되는 광범위한 테마이다. 본 연구는 그 광범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복식사적 입장에서 위의 과제에 접근한 것으로 발굴된 유물자료에서 읽혀지는 복식의 유형과 복식의 구성요소를 비교분석하는 데 집중하였다. 본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는 스키타이복식과 한국 고대복식은 그 기본구조는 같으나 그 구성요소의 형태와 특징에서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그 두 복식에 관한 실증자료의 발굴지역 주변에는 여러 민족들이 혼재해 있었고 편년 연대상 6-9세기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한국 및 동아시아학계와 유럽의 학계 사이의 학문적 시각에도 차이가 있는 관계로, 그 공간적 시간적 상호영향관계가 융합적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분석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한국 복식의 유래에 관한 해답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를 통하여 얻은 학문적 성과는 한국 고대복식의 스키타이복식 유래설은 실증적 재검토의 과정이 계속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본 연구는 그 첫 단계로서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사료된다. 향후 다방면에서 이에 관한 후속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7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5A802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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