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1592~1598) 상급 수군 흑단령 일습의 조형 특성과 일러스트 제안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 comprehensive illustration of Heuk-Danryeung worn by Joseon’s high naval officers serving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study reviewed ten portraits of meritorious vassals painted in the early 17th century and three Heuk-Danryeung artifacts in an attempt to identify the stylistic features of Heuk-Danryeung, Hyungbae, Pumdae, Samo, and Heukwha worn by naval officers. Heuk-Danryeung typically featured front and rear hems of similar length, bean pod-shaped sleeves, and swept-back Mu. Heuk-Danryeung was often made using Unmundan and Unbomundan fabrics that were lapis lazuli and dark green in color. These features are well represented in the Danryeung of Shin Gyeong-yu, which this research suggests is the best formal example of Heuk-Danryeung. Regarding Hyungbae, this research adopts the image of Ho Hyungbae that is illustrated in the vassal portrait of Park Yu-myeong. Regarding Pumdae, this research uses the Sapgeumdae and Sapeundae reflected in the portrait of Jeong Chung-shin. Lastly, the image of Samo that was adopted is illustrated in the portrait of Yi Woon-ryong. When illustrating Heuk-Danryeung, the study applied Woonbomun onto Yangkak of Samo. This study utilized the expression of Heukwha shown by <Pungkong Yubo Doryak> and Jangtonghwa of the Chinese Ming Dynasty. The illustration of Heuk-Danryeung presented by this study can provide a foundation for future research whose ultimate goal is to illustrate a standardized portrait and vassal image of Admiral Yi-Sun-shin wearing Heuk-Danryeung.
Keywords:
Heuk-Danryeung, naval officers costume, portraits of meritorious vassals, standard portraits,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키워드:
흑단령, 수군복식, 공신도상, 표준영정, 임진왜란기Ⅰ. 서론
임진왜란기에 상급 수군은 전장이나 군사 훈련 상황에서는 갑주(甲冑) 또는 융복 차림을 하였고, 조회에 참석하거나 평상시 집무시에는 단령 차림을 하였다.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갑주(甲冑)에 대해서는 임진왜란기(1592~1598) 상급 수군이 착용한 투구(Lee, 2011)와 갑옷(Lee, 2013)에 관한 선행 연구가 있으나, 단령 차림에 관해서는 뚜렷한 연구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선조대 공신초상을 중심으로 문무관의 흑단령 제도를 고찰한 연구(Lee & Kim, 2019)에서 무관의 흑단령 제도가 고찰된 바 있으므로 이를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단령은 조선시대 관리들의 대표적인 관복으로서 의례용과 집무용으로 구분된다. 단령을 지칭하는 명칭은 16세기에는 ‘시복 흑단령’, ‘상복 홍단령’이었고 17세기에는 ‘상복 흑단령’, ‘시복 홍단령’으로 변화되었으나, 명칭의 반전에도 불구하고 ‘의례용 흑단령, 집무용 홍단령’이라는 개념은 관복제도가 간소화되는 19세기말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Lee, Jo, & Ha, 2005).
임진왜란과 관련된 공로를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록된 인물들의 공신도상을 보면 모두 흑단령을 입고 있다. ‘의례용 흑단령’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공신도상은 화사가 공신을 직접 보고 그려야하는데, 임진왜란과 관련한 최고 공로자인 이순신 장군의 공신도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전쟁 중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을 보면 단령의 색상이 홍색이다. ‘의례용 흑단령’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순신 장군의 단령 색상은 홍색이 아니라 흑색이어야 한다. 따라서 임진왜란기 흑단령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의 단령차림 표준영정에 묘사된 복식에 관하여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 봉안되어 있는데, 장우성이 1953년에 그린 것으로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Jeong, 2012).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 순직하기는 했지만 다른 임진왜란 공신들처럼 흑색계열의 단령을 입은 공신도 형태로 표준영정을 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Standardized Portait’, 2010).
본 연구는 임진왜란기를 포함하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의 무관 공신도상과 흑단령으로 추정되는 단령 유물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무관 공신도상 10점과 조경ㆍ신경유ㆍ김여온의 묘에서 출토된 단령유물 3점을 참고하여 흑단령의 조형 특성을 고찰한 다음 흑단령의 대표 유물을 제시하고자 한다. 둘째, 흑단령의 부속품인 흉배ㆍ품대ㆍ사모ㆍ흑화 등의 조형 특성을 고찰한 다음 각각의 대표 유물을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을 제시하고, 그 착장모습을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한 일러스트로 제안함으로써 시각자료를 마련하고자 한다.
Ⅱ.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단령 자료
1.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
공신도상(功臣圖像)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들에게 공신호(功臣號)를 사여함과 동시에 입각도형(立閣圖形)함으로써 당해 공신 및 그 자손들에게는 치하와 보상을 하고 여타 신민(臣民)들에게는 귀감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려졌다(Jo, 1983). 공신도상의 봉안방식을 보면, 조선초기에는 공신도상을 2본 그려서 1본은 충훈부(忠勳府) 내 기공각(紀功閣)에, 나머지 1본은 종손가에 봉안하는 방식이었으나(Jo, 1983), 선조 23년 이후에는 당시 살아있는 공신들에게만 공신도상 1본을 제작하여 공신가에 직접 내려주었다(Kwon, 2008). 공신 책록이 이루어지고 나면 공신도상이 그려지는데, 공신도상은 공신 책록 당해 연도이거나 조금 지나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7세기 전반 무관에게 책록된 공신 호칭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호성공신(扈聖功臣), 정사공신(靖社功臣), 진무공신(振武功臣) 등이 있다. <Table 1>은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 중 임진왜란 또는 수군과 관련 있는 공신도상 10점을 정리한 것이다. 10명의 공신 중 조경ㆍ권응수ㆍ이운룡ㆍ고희ㆍ이수일ㆍ정충신 등 6명은 임진왜란에 참전하였고, 6명 중 수군과 관련 있는 공신은 권응수ㆍ이운룡ㆍ이수일ㆍ정충신 등 4명이며, 4명 중 임진왜란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록된 인물은 권응수와 이운룡 2명이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1592~1598)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에 책록되었다. 선무공신도상 3점 중 권응수(선무공신 2등)의 선무공신도상은 1604년에 그려졌고, 조경(선무공신 3등)의 선무공신도상은 후대에 이모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이모 시기가 17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National Museum of korea, 2008). 이운룡(선무공신 3등)의 선무공신도상 역시 후대의 이모본이지만, 단령에 바지 표현이 전혀 없이 단령의 옷자락만 표현되어 있어 전형적인 공신도상과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사모의 묘사, 단령의 구조와 운문의 평면적인 처리, 그리고 뒤로 접혀 올라간 단령 뒷자락을 삼각형처럼 도식적으로 묘사한 것은 17세기 초 전형적인 공신도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Lee Un-ryong portraits’, n.d.).
호성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에 책록되었는데, 고희(호성공신 3등)의 호성공신도상은 17세기 전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나 당시의 원본이라기보다는 좀 더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2007).
정사공신은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623년에 책록되었다. 정사공신도상 3점 중 박유명(정사공신 3등)과 이중로(정사공신 2등)의 정사공신도상은 1623년에 그려졌다. 신경유(정사공신 2등)의 정사공신도상은 162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고 숙종 13년(1687)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로 추증되었을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흉배와 학정금대가 정사공신 책록 때의 품계와 부합하고(Jo, 1983), 신경유의 출토 흑단령의 흉배 문양과 공신도상의 흉배 문양이 사자로 일치하므로 1629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무공신은 1624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1624년에 책록되었는데, 이수일(진무공신 2등)ㆍ남이흥(진무공신 1등)ㆍ정충신(진무공신 1등)의 진무공신도상 3점 모두 1624년에 그려졌다.
이상으로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 10점 중 조경ㆍ이운룡ㆍ고희ㆍ신경유의 공신도상 4점은 공신책록 연도보다 조금 뒤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나머지 6점은 공신 책록 연도와 실제 공신도상이 그려진 시기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17세기 전반 흑단령 출토 유물
단령이 의례용으로 착용되기 위해서는 ‘흑색, 흉배, 품대’라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현존하는 17세기 전반 단령 유물 중 의례용 흑단령으로 추정되는 단령은 조경ㆍ신경유ㆍ김여온의 단령 3점인데, 이를 <Table 2>에 정리하였다.
조경의 단령은 흑색으로 추정되고 해치 흉배가 부착된 상태는 아니지만 단령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뒷길에 대고리가 달려 있고 대는 출토되지 않았다(Seoul Museum of History, 2003). 신경유의 단령은 사자 흉배가 부착된 상태로 출토되었고 뒷길에 대고리가 달려 있고 너비 5~7㎝, 길이 216㎝의 문단으로 된 대도 출토되었다(Seok Juseon Memorial Museum, 2008). 김여온의 단령은 아청색으로 추정되고, 해치 또는 사자로 추정되는 흉배가 부착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뒷길에 대고리가 달려 있고 너비 7㎝, 길이 153㎝의 수의용 가품대도 출토되었다(Lee et al., 2005).
이상으로 조경과 김여온의 단령이 각각 흑색과 아청색으로 추정되는 점, 3점 모두 단령ㆍ흉배 일습으로 출토된 점, 3점 모두 뒷길에 대고리가 달려 있어 품대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조경ㆍ신경유ㆍ김여온의 단령 3점은 ‘흑색, 흉배, 품대’라는 의례용 흑단령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단령 일습 조형 특성
1. 흑단령
<Table 3, 4>는 <Table 1, 2>를 참고하여 흑단령의 조형 특성을 정리한 것이다. <Table 3, 4>를 토대로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 흑단령의 조형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Table 3, 4>를 보면, 17세기 전반 단령의 옷길이 양식은 앞길이와 뒷길이가 동일한 ‘전후동장형(前後同長形)’이고 총길이가 131~134㎝ 정도로 긴 편이다. 깃 모양은 둥글고 깃이 목둘레선을 따라 목을 바싹 감싸고 있어 안에 받침옷으로 입은 포의 곧은 깃이 교차되는 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겉섶은 한 조각으로 된 ‘단섶’이다. 소매 모양은 소매배래선이 진동점 아래로 약간 내려오는 ‘콩각지형’이 일반적이고, 무 양식은 양 옆선에 달린 무가 뒷길 쪽으로 넘어간 ‘뒤젖힘형’이 일반적이다(Lee, 2001). <Table 3>에 제시한 공신도상 10점에서 보듯이 무 상부의 뾰족한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무를 뒷길 쪽으로 그냥 넘겼을 뿐 무 상부를 뒷길에 고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밈은 겉섶 선단에서 끈고름으로도 여미고 어깨에서 매듭단추로도 여몄는데, 고름은 옷에 직접 꿰매어 다는 직접부착형 끈고름 1쌍이, 매듭단추는 쌍밀이 매듭단추가 주로 사용되었다. 고름의 너비는 3㎝ 정도, 길이는 33~64㎝ 범위이다.
한편, 단령 유물 3점을 보면, 겉감은 단령이고 안감은 직령인데 단령과 직령을 각각 홑옷으로 만들어 중요한 부위만 징궈서 연결하였다. 단령의 가슴과 등에 해치 또는 사자 문양의 흉배를 달았는데, 35×35㎝ 또는 40×40㎝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이다.
<Table 4>에 제시한 단령 3점은 흑색, 아청색 등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갈변된 상태이므로 원래의 색상을 단정하기 어렵다. <Table 3>에 제시한 공신도상 10점에 보이는 단령의 색상은 도록이나 영상 제공 기관의 설명을 참조하였다. 10점 중 8점에 단령의 색상이 언급되어 있는데, 현록색이 4점ㆍ아청색이 2점ㆍ청색이 2점이다. 단령 색상에 대한 언급이 없는 2점은 흑색 또는 현록색으로 보여 진다. 한편, 단령 안에 입은 답호의 색상은 녹색이 8점, 홍색이 1점, 청색이 1점이다.
그런데 <Table 3>에 제시한 공신도상의 흑단령 색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 전기 흑단령의 색상 변천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종 16년(1485) 성종은 세종조에 조사(朝士)가 입은 원령(圓領)을 압두록(鴨頭綠)ㆍ감다갈(酣茶褐)ㆍ아청(鴉靑)등으로 염색하였다는데 입지 않은 이유를 물었고, 영돈녕(領敦寧) 이상이 입어도 무방하다고 하자 감다갈ㆍ압두록ㆍ초록을 길복(吉服)으로 통용하도록 하였다.1) 성종 19년(1448)에는 ‘조참시에 대정(大庭)에 반열(班列)하는 백관의 복색이 다갈과 아청을 섞어 입어 그 색이 불순(不純)한 것 같으니 아울러 흑단령을 입도록 함이 좋겠다고 하자 임금이 좋다[可]’2)고 하였다.
중종대에는 짙게 염색한 초록색이 유행하였다. 중종 9년(1514)에 ‘옛날에 초록색을 물들여 옷을 만드는 사람은 그 빛깔이 다만 풀빛처럼 만드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그 빛깔이 압두(鴨頭)보다도 더 진하고, 압두색(鴨頭色)으로 물들인 것을 다시 아청색(鴉靑色)으로 만들어 새로운 모양을 다투어 본받으므로 공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 오히려 스스로 그치지 않으니 어찌 숭상하는 바가 없이 그렇게 되었겠습니까’3)라는 대사간(大司諫)의 상소가 있었고, 중종 11년(1516)에 짙은 초록색[深染草綠]으로 물들이는 것을 금지하도록 명하였다.4) 그러나 금령에도 불구하고 짙게 염색한 초록색을 선호하는 풍속은 달라지지 않았고 조사(朝士)들도 짙게 염색한 초록색을 입었다. 중종 28년(1533)에는 ‘복색에 쪽을 물들이는 것을 초록(草綠)이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짙게 물들이는 것을 숭상하여 법사(法司)가 금해도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지금 항간에서는 다투어 짙게 물들이는 것을 서로 숭상하여 부인이 짙게 물들인 초록이 없으면 부끄럽게 여겨서 모임에 참여하지도 않고 조사들도 모두 그런 옷을 즐겨 입습니다’5)라고 하였고, 중종 31년(1536)에는 ‘짙은 초록색을 엄금하므로 당하관은 입지 않는데 당상관이 오히려 입는가 하면 혹 경연(經筵)에서까지 입는 상황’6)에 이르렀다. 중종대에 유행한 짙게 염색한 초록, 즉 심염초록은 현록색으로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중종대 이후에는 성종대부터 흑단령 색상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던 아청색 외에 현록색도 흑단령의 색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1711년 통신사행에 관한 일본 문헌인 『조선신사내빙기록(朝鮮信使來聘記錄)』에 통신사 일행이 에도[江戶]에 도착할 때 유록운문대단 단령, 아청무문사 단령, 흑통견 단령, 유록통견 단령, 초록항라 단령, 유록저포 단령 등 다양한 색상과 소재의 단령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Lee, 2014), 이 역시 동일한 시기에 흑단령에 사용되는 색상이 다양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이전인 중종대에 심염초록이 유행하면서 아청색과 현록색이 모두 흑단령 색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Table 3>에 제시한 17세기 전반 공신도상에 보이는 아청색과 현록색 단령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령의 소재와 문양은 공신도상 10점과 출토단령 2점으로 추정할 수 있다. <Table 3>를 보면, 남이흥과 박유명의 단령에는 문양이 없고, 나머지 8점의 단령에는 운문(雲紋)이 표현되어 있다. <Table 4>를 보면, 조경의 단령은 무늬가 없는 명주로 만들었고, 신경유의 단령은 구름문양과 함께 산호ㆍ전보ㆍ서각ㆍ화염보주ㆍ여의ㆍ금정ㆍ은정ㆍ방승 등의 팔보문이 시문된 운보문단(雲寶紋緞)으로 만들었으며, 김여온의 단령은 운문만 시문된 운문단(雲紋緞)으로 만들었다. 단령의 받침옷으로 착용된 직령은 신경유의 경우 새ㆍ국화ㆍ모란ㆍ월계ㆍ연꽃 등이 시문된 화문단(花紋緞)이고, 김여온의 경우 구름문양과 함께 여의ㆍ서책ㆍ방승ㆍ보주ㆍ단서각ㆍ산호ㆍ금정ㆍ전보 등의 팔보문이 시문된 운보문단(雲寶紋緞)이다. 따라서 공신도상과 출토 단령을 통해 볼 때, 17세기 전반 무관 흑단령의 소재는 명주ㆍ운문단ㆍ운보문단 등이 사용되었으나 주로 운문단ㆍ운보문단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17세기 전반 무관이 입은 흑단령의 조형 특성을 살펴본 결과, 흑단령의 형태는 전후 동장형 옷길이, 콩각지형 소매, 뒤젖힘형 무가 일반적이고, 색상은 아청색과 현록색이, 소재와 문양은 운문단과 운보문단이 모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흉배
조선시대 흉배제도는 단종 2년(1454)에 명의 흉배제도에 따라 문ㆍ무당상관의 흉배제도가 제정되었고7), 그 내용이 성종 16년(1485) 『경국대전』에 법전화 되었다. 『경국대전』의 흉배제도는 단종 2년(1454)의 규정과 거의 동일한데, 무관 3품의 흉배가 웅표에서 웅비로 변경된 점, 도통사의 사자흉배에 대한 규정이 없는 점이 다를 뿐이다.
<Table 5>는 우리나라의 『경국대전(1485)』, 명나라의 『대명회전 만력본(1587)』과 『삼재도회(1607)』에 기록되어 있는 무관의 흉배제도를 정리한 것이다.
<Table 5>를 보면 우리나라 무관 1ㆍ2ㆍ3품의 흉배는 명나라 무관 3ㆍ4ㆍ5품의 흉배와 동일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무관 당상관만이 흉배를 사용할 수 있고 흉배 문양으로 무관 1ㆍ2품은 호표(虎豹), 무관 3품은 웅비(熊羆)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경국대전』에는 명칭만 있고 그림이 없어 ‘호표’와 ‘웅비’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대명회전』과 『삼재도회』에 무관 1품에서 9품까지 품계별 흉배의 명칭과 문양이 그려져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여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호표’와 ‘웅비’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다만, 『대명회전』에는 ‘호표(虎豹)’라고 기록하고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그려진 흉배가 그려져 있고, 『삼재도회』에는 ‘호(虎)’에는 호랑이가, ‘표(豹)’에는 표범이 그려져 있다. 이는 ‘호흉배’에는 줄무늬가 있는 호랑이, ‘표흉배’에는 점무늬가 있는 표범이 그려져야 하고, ‘호표흉배’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그려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따라서 『경국대전』의 ‘호표흉배’ 는 『대명회전』에서 보듯이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그려진 흉배일 것으로 생각된다.
<Table 6>은 <Table 1>의 공신도상 10점을 참고하여 흉배의 문양을 정리한 것이다.
<Table 6>을 보면, 무관 공신 10명 중 9명은 정2품 또는 종2품이고, 박유명은 종3품인데, 이들은 흉배 문양으로 호랑이ㆍ해치ㆍ사자를 사용하고 있다. 『경국대전』의 규정대로라면 무관 1ㆍ2품은 ‘호표흉배’, 3품은 ‘웅비흉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5명은 호흉배, 3명은 해치흉배, 2명은 사자흉배를 하고 있고, 더욱이 박유명은 무관 종3품으로서 웅비흉배를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관 2품의 호흉배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경국대전』의 규정이 지켜지지 않고 무관 2품으로서 해치흉배와 사자흉배를 사용하거나 무관 3품으로서 2품의 호흉배를 사용하는 등 자신의 품계보다 한 등급 정도 높은 흉배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다소 문란해진 흉배제도의 반증으로 이해된다. 조선시대 흉배제도는 법전에 꾸준히 기록되었지만 관행 또는 유행 등으로 법전과 실제 제도 간에 상당히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선행연구에서도 지적되어 왔다(Lee, 2008; Kwon, 2012). 또한 문(文)보다 무(武)를 경시하던 신분의식의 표출로 인하여 무관의 경우 품계별로 세분된 흉배를 사용했던 문관과 달리 관품별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지적되어 왔는데(Lee, 2008), <Table 6>은 이러한 흉배제도의 실정을 잘 보여준다.
<Table 6>에서 보듯이 공신도상에는 호표흉배 대신 호흉배가 그려져 있다. 이은주는 『삼재도회』에 호흉배와 표흉배가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조선에서 명나라의 호흉배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보았고(Lee, 2008), 그 변화의 시기는 16세기 후기로 보았다(Lee & Kim, 2019). 해치흉배는 전술한 단종 2년(1454)의 기록과 『경국대전』의 기록에 문관 대사헌의 흉배로 제정되어 있으므로 무관이 사용할 수 없다. 이은주는 명나라 말년에 무관들이 해치흉배를 착용하였는데 임진왜란기에 지원군으로 조선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무관들의 흉배를 모방하여 조선의 무관들도 해치흉배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Lee, 2008). 사자 흉배는 중국의 무관 1ㆍ2품의 흉배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단종 2년(1454)에 도통사의 흉배로 제정되었으나 이후 『경국대전』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전기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경국대전』의 규정과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의 흉배를 살펴본 결과,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 2ㆍ3품은 호흉배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랑이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갈색 몸통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고 머리가 입어서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Table 6>에 제시한 조경ㆍ이운룡ㆍ고희ㆍ박유명의 호흉배가 이에 해당되는데, 이들 중 이운룡이 수군과 관련된 인물이므로 이운룡의 호흉배가 대표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명회전』의 호표흉배<Fig. 1>와 16세기 의인박씨 묘에서 출토된 호표흉배<Fig. 2>에 묘사된 호랑이의 모습을 보면 박유명의 호흉배<Fig. 3>에 묘사된 호랑이의 모습과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즉 박유명 호흉배의 호랑이는 흉배 제정 당시의 호표흉배에서 표범은 없어지고 호랑이만 남은 모습과 동일한데, 이러한 변화는 임진왜란기에 정착된 호흉배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호랑이의 모습과 전체적인 선명도를 고려하여 박유명의 호흉배를 임진왜란기 수군 2ㆍ3품의 호흉배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한편, <Table 6>에는 해치흉배와 사자흉배도 보이지만, 조선시대 무관이 해치흉배나 사자흉배를 사용한 시기나 경위 등이 명확히 규명되어 있지않은 점, 해치와 사자의 문양이 서로 혼용되기도 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흉배로서의 대표성을 갖추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흉배로 해치흉배와 사자흉배는 제안하지 않고자 한다.
3. 품대
품대 제도는 흉배 제도와 함께 『경국대전』에 법전화되어 있는데, 흉배와 달리 정ㆍ종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Table 7>은 『경국대전』과 『대명회전(만력본)』에 홍무3년정(1381)으로 기록되어 있는 상복의 대를 정리한 것이다.
<Table 7>을 보면, 우리나라 무관 1품은 정ㆍ종 모두 서대, 2품의 경우 정ㆍ종 각각 삽급대ㆍ소금대, 3품의 경우 정ㆍ종 각각 삽은대ㆍ소은대, 4품은 정ㆍ종 모두 소은대, 5~9품은 정ㆍ종 모두 흑각대를 사용하였고, 우리나라 무관 1품의 품대는 명나라 무관 2품, 2품은 3ㆍ4품, 3품은 5~7품의 품대에 해당되었음을 알 수 있다.
<Table 8>은 <Table 1>의 공신도상 10점을 참고하여 품대의 종류를 정리한 것이다.
<Table 8>에 의하면 무관 공신 10명 중 9명은 정2품 또는 종2품이고, 박유명은 종3품이다. 『경국대전』의 규정대로라면 무관 1품은 정ㆍ종 모두 서대, 2품은 정ㆍ종 각각 삽금대ㆍ소금대, 3품은 정ㆍ종 각각 삽은대ㆍ소은대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정ㆍ종 구분 없이 2품의 경우 2명은 서대, 4명은 삽금대, 3명은 학정대를 하고 있고, 3품 1명은 삽은대를 하고 있다. 이처럼 무관 종2품으로서 소금대를 사용하지 않고 1품의 서대 또는 정2품의 삽금대를 사용하거나, 무관 종3품으로서 소은대를 사용하지 않고 정3품의 삽은대를 사용하는 등 자신의 품계보다 한 등급 정도 높은 품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임진왜란 이후 다소 문란해진 품대제도의 실정으로 이해된다.
한편, 학정대, 소금대, 소은대를 통해 임진왜란기 품대 제도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학정대(鶴頂帶)는 『경국대전』 기록에는 없으나 <Table 8>을 보면 임진왜란기에 출현하고 있고 이후 무관2품이 삽금대 대신 학정대를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금대와 소은대는 『경국대전』 규정에 각각 종2품과 종3품의 품대로 규정되어 있으나 공신도상에서 확인되지 않고 현전하는 유물도 없으므로 『경국대전』 제정 당시에는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임진왜란기에는 이미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에서 『경국대전』의 규정과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의 품대를 살펴본 결과,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품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수군 2품은 삽금대와 학정대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Table 8>에는 이수일과 남이흥이 서대를 착용한 것으로 그려져 있고 서대유물로는 이경석(1595-1671) 집안의 서대<Fig. 4> 가 있다. 그런데 초상화의 경우 본인의 품계보다 높은 품계의 품대가 그려질 가능성이 있고 2품이 1품의 서대를 착용하는 것도 이례적이므로 수군 2품이 서대를 사용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삽금대의 경우 조경ㆍ권응수ㆍ고희ㆍ정충신의 삽금대가 모두 가능하지만 권응수가 수군과 관련된 인물이고 권응수의 삽금대<Fig. 5>유물도 남아있으므로 권응수의 삽금대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학정대의 경우 이운룡ㆍ신경유ㆍ이중로의 학정대가 가능하지만 이운룡이 임란 당시 수군과 관련된 인물이므로 이운룡의 학정대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현전유물로는 정원용(1783~1873)의 학정대 <Fig. 6>가 있다.
둘째, 수군 3품은 삽은대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삽은대는 박유명의 것이 유일하므로 이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현전유물로는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삽은대<Fig. 7>가 있다.
한편, 품대의 바탕색은 농담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청색계열이다. 이는 이수일, 남이흥, 권응수, 정충신, 이운룡, 이중로 등의 품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사모
<Table 9>는 <Table 1>의 공신도상 10점을 참고하여 사모의 형태와 사모 양각의 문양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사모의 형태를 추정하기 위하여 <Table 1>의 공신도상 10점에 있는 사모를 대상으로 전체 높이에 대한 앞높이의 비율, 전체 높이에 대한 양각 너비의 비율을 구한 다음 최소치와 최대치를 제외한 평균을 구하였다. 10점 중 고희와 신경유의 사모를 제외한 8점을 대상으로 ‘전체높이에 대한 앞높이 비율’의 평균을 구하면 1:0.64이고, 조경과 남이흥의 사모를 제외한 8점을 대상으로 ‘전체높이에 대한 양각너비 비율’의 평균을 구하면 1:2.47이다. 두 평균에 가장 근사한 사모는 이운룡의 사모이므로 이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운룡의 사모는 모정이 낮으면서 위가 평평하고 양각이 넓고 짧아서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 <Table 9>를 보면 양각에 문양이 없는 경우가 2건, 운문 또는 운문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4건, 운보문 또는 운보문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4건으로 양각에 운문 또는 운보문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정충신의 사모<Fig. 8> 에서 운문이, 조경의 사모<Fig. 9>에서 운보문이 확인되므로 이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동시대 무관인 傳구인후(1578~1658)의 사모<Fig. 10>과 문관인 황정욱(1532~1607)의 사모<Fig. 11>에 표현된 운문과 운보문이 선명하므로 이를 참고하고자 한다.
5. 흑화
<Table 10>은 <Table 1>의 공신도상 10점 중 임진왜란 당시 수군과 관련 있는 권응수ㆍ이운룡ㆍ이수일ㆍ정충신의 공신도상에 묘사된 흑화를 정리한 것이다. 모두 몸체는 흑색이고 바닥은 흰색이며 바닥에는 미늘처럼 생긴 무늬가 선명하다.
임진왜란기의 흑화는 <풍공유보도략>에 묘사된 화<Fig. 12>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Fig. 12>와 유사한 형태의 흑화가 중국 명대의 유물에서 확인된다<Fig. 13, 14>.
<Fig. 13>의 전화(氈靴)는 명대(明代) 만력(萬曆) 황제의 것으로 북경(北京) 정릉지하궁전(定陵地下宮殿)에서 출토되었는데, 전화 안에 전화보다 긴 무릎까지 닿는 정이 들어 있고 겉은 전(氈)으로 되어 있다. 신발 바닥은 두 겹인데 안은 얇은 우피(牛皮)로 되어 있고 겉은 조밀한 백포(白布)로 되어 있다(Liu, 2004). <Fig. 14>의 장통화(長筒靴)는 귀주(貴州) 해수(惠水) 명대 묘에서 출토되었는데, 겉감은 주(綢), 안감은 포(布), 신발 바닥은 백면포(白綿布)로 만들었고, 신목 부분을 대각선 방향으로 누벼 마름모꼴 모양으로 격자무늬가 표현되어 있다(Liu, 2004).
장통화<Fig. 14>는 몸체의 색상이 흑색이고 신발 바닥이 흰색이며 신코 부분이 들려 있는 모양으로서 공신도상에 보이는 흑화의 모습과 유사하다. 또한 장통화의 신목 부분에 덧단처리가 되어 있고 신목의 위 가장자리 라인이 사선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형태가 <풍공유보도략>에 묘사된 흑화의 형태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화는 <풍공유보도략>의 흑화와 중국 명대의 장통화와 유사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 일러스트 제안
1. 일러스트 제안을 위한 대표 유물 제시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을 일러스트로 제안하기 위하여 ⅡㆍⅢ장에서 고찰한 내용을 토대로 흑단령, 흉배, 품대, 사모, 흑화의 대표 유물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17세기 전반 공신도상 10점과 ‘흑색, 흉배, 품대’라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출토 단령 3점을 중심으로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단령에 나타난 조형 특성을 보면, 형태는 전후동장형 옷길이, 콩각지형 소매, 뒤젖힘형 무가 일반적이며, 색상은 아청색과 현록색이, 소재와 문양은 운문단(雲紋緞)과 운보문단(雲寶紋緞)이 모두 사용되었다.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유물은 조경과 신경유의 단령인데, 조경의 단령은 명주이고 신경유의 단령은 운보문단이므로 신경유의 단령<Table 2-2> 을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대표 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둘째, 17세기 전반 무관 공신도상 10점에 나타난 흉배를 보면, 2품 공신도상 9점 중 5점은 호흉배, 3점은 해치흉배, 2점은 사자흉배이고, 3품 공신도상 1점은 호흉배이다. 이에 공신도상에 가장 많이 나타나고 법전의 내용과도 부합하도록 임진왜란기 수군 2ㆍ3품의 흉배를 호흉배로 제시하고자 한다. 임진왜란기 호흉배에 묘사된 호랑이는 갈색 몸통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고 머리가 입어서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자료는 조경ㆍ이운룡ㆍ고희ㆍ박유명의 호흉배인데 박유명의 호흉배<Fig. 3>에 묘사된 호랑이가 흉배 제정 당시의 호표흉배에서 표범은 없어지고 호랑이만 남은 모습과 동일하므로 박유명 공신도상의 호흉배를 대표 유물로 제시하고 일러스트에 적용하고자 한다.
셋째, 17세기 전반 공신도상 10점에 나타난 품대를 보면, 2품 공신도상 9점 중 2점은 서대, 4점은 삽금대, 3점은 학정대이고, 3품 공신도상 1점은 삽은대이다. 이에 공신도상에 가장 많이 나타나고 법전의 내용과도 부합하도록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 흑단령의 품대로 2품은 삽금대, 3품은 삽은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공신도상 중에는 정충신의 삽금대<Table 1-10>와 박유명의 삽은대<Table 1-6>를, 유물 중에는 권응수의 삽금대<Fig. 5>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삽은대<Fig. 7>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일러스트에는 형태와 색상이 선명한 정충신 공신도상의 삽금대를 적용하고자 한다.
넷째, 17세기 전반 공신도상 10점에 나타난 사모를 보면, 최대치와 최소치를 제외한 8점의 ‘사모 전체높이에 대한 앞높이 비율’의 평균은 1:0.64이고, ‘전체높이에 대한 양각너비 비율’의 평균은 1:2.47로 나타났다. 두 평균값에 가장 근사한 사모는 각각 1:0.65, 1:2.12인 이운룡의 사모<Table 1-3>라고 생각되므로 이운룡 공신도상의 사모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 일러스트에 적용하고자 한다. 사모 양각의 문양은 운문과 운보문이 모두 가능한데, 운문은 정충신의 사모<Fig. 8>, 운보문은 황정욱의 사모<Fig. 11>를 대표유물로 제시하고, 일러스트에는 문양이 선명한 황정욱의 운보문을 적용하고자 한다.
다섯째, 17세기 전반 공신도상 10점에 나타난 흑화를 보면, 몸체는 흑색이고 흰색 바닥에는 미늘처럼 생긴 무늬가 있으며 신코 부분이 위로 들려있다.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자료는 <풍공유보도략>에 묘사된 흑화<Fig. 12>와 명대의 장통화<Fig. 14> 유물이므로 이를 흑화의 대표 유물로 제시하고, 일러스트에는 형태가 선명한 이수일 공신도상의 흑화<Table 1-8>를 적용하고자 한다.
2. 일러스트 제안
위에서 제시한 대표 유물을 적용하여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 착용 모습을 일러스트로 제작하고자 한다. 일러스트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Painter와 Photoshop을 사용하여 제작하였으며, 제작과정은 ① 문헌과 유물자료의 조형특성 분석→ ② 조형특성에 기초하여 밑그림 스케치→ ③ Painter와 Photoshop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밑그림 제작→ ④ 밑그림 채색→ ⑤ 수정 및 보완 순이다.
<Table 11>은 임진왜란기 수군 2품의 의례용 흑단령 일습 착용 모습을 일러스트로 제안한 것이다. 일러스트는 호흉배ㆍ삽금대ㆍ운보문 양각 사모ㆍ흑화의 조합으로서, 일러스트 1은 아청색 단령, 일러스트 2는 현록색 단령을 적용한 것이다. 한편, 호흉배는 수군 2ㆍ3품에 모두 적용할 수 있으므로 수군 3품의 의례용 흑단령 착용 모습 일러스트는 <Table 11>의 일러스트 1, 2에 삽금대 대신 삽은대를 적용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Ⅴ. 결론
본 연구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였거나 수군과 관련된 관직을 역임한 인물의 공신도상 10점과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단령으로 추정되는 유물 3점을 중심으로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의 흑단령, 흉배, 품대, 사모, 흑화의 조형 특성을 고찰하고 흑단령 일습 착용모습을 일러스트로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에 참전하였거나 수군과 관련된 관직을 역임한 인물의 공신도상은 조경ㆍ권응수ㆍ이운룡ㆍ고희ㆍ신경유ㆍ박유명ㆍ이중로ㆍ이수일ㆍ남이흥ㆍ정충신의 공신도상 10점이다. 조경ㆍ권응수ㆍ이운룡은 1604년에 선무공신, 고희는 1604년에 호성공신, 박유명ㆍ이중로ㆍ신경유는 1623년에 정사공신, 이수일ㆍ남이흥ㆍ정충신은 1624년에 진무공신으로 책록되었다. 10명의 공신 중 임진왜란기에 수군으로 활동한 인물은 권응수ㆍ이운룡ㆍ이수일ㆍ정충신이므로 이들의 공신도상은 임진왜란기 상급 수군 공신도상의 기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임진왜란기의 단령, 흉배, 품대, 사모, 흑화의 조형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일러스트에 적용하였다. 단령의 형태는 앞길이와 뒷길이가 동일한 전후동장형 옷길이ㆍ콩각지형 소매ㆍ뒤젖힘형 무가 일반적이고, 색상은 아청색과 현록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재질은 운문단과 운보문단이 사용되었으나 운문단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 신경유의 흑단령 유물을 일러스트에 적용하였다. 흉배는 호흉배ㆍ해치흉배ㆍ사자흉배가 사용되었는데, 호흉배를 수군 2ㆍ3품의 흉배로 제시하고 박유명 공신도상의 호흉배를 일러스트에 적용하였다. 품대는 서대ㆍ삽금대ㆍ학정대ㆍ삽은대가 사용되었는데, 삽금대를 수군 2품, 삽은대를 수군 3품의 품대로 제시하고 일러스트에는 정충신 공신도상의 삽금대를 적용하였다. 사모는 모정이 낮으면서 위가 평평하고 양각이 넓고 짧은 형태가 일반적이고 사모 양각의 문양은 운문과 운보문이 모두 사용되었는데, 일러스트에는 이운룡 공신도상의 사모와 황정욱 사모 양각의 운보문을 적용하였다. 흑화는 흰색 바닥에 미늘처럼 생긴 무늬가 있고 신코 부분이 위로 들려 있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일러스트에는 이수일 공신도상의 흑화를 적용하였다.
임진왜란기 수군 2품의 의례용 흑단령 착용 모습 일러스트를 흑단령 색상을 고려하여 일러스트 1, 2로 제안하였다. 일러스트 1은 아청색 단령에 호흉배ㆍ삽금대ㆍ운보문 양각 사모ㆍ흑화를 조합한 것이고, 일러스트 2는 현록색 단령에 호흉배ㆍ삽금대ㆍ운보문 양각 사모ㆍ흑화를 조합한 것이다. 수군 3품의 일러스트는 일러스트 1, 2에서 품대를 삽은대로 변경한 모습이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임진왜란기 의례용 흑단령 차림 일러스트는 향후 이순신 장군의 흑단령차림 표준영정 및 공신도상을 제작하는 연구에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는 상급 수군이라는 관점에서 대표 유물을 제시하고 일러스트를 제안한 연구로서 현전하는 연구 자료의 부족으로 당상관ㆍ당하관 또는 품계별로 상세하게 연구하지 못한 한계점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를 통하여 보완하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학년도 동명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2019A001)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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