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1, No. 1, pp.65-85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8 Feb 2021
Received 25 Jan 2021 Revised 14 Feb 2021 Accepted 17 Feb 2021
DOI: https://doi.org/10.7233/jksc.2021.71.1.065

고려 충선왕 재위기 숙비(淑妃)와 순비(順妃)의 고고(Boghtaq) 및 연회복식 특성 연구

최정
원광대학교 패션디자인산업학과 교수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Gugu(Boghtaq) and Banquet Costumes of Sukbi(淑妃) and Sunbi(順妃) in King Chungseon Period of Goryeo
Jeong Choi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 Apparel Industry, Wonkwang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Jeong Choi, e-mail: jeongch@wku.ac.kr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and shapes of Gugu(Boghtaq) and banquet costumes, which were used as a politically competitive tool by the Sukbi(淑妃) and Sunbi(順妃). It is estimated that Gugu, which was introduced to Goryeo, had a capital shape with a back flap and were made with simple material due to Emperor Injong’s trend against luxury. Two queens competed with five costumes during a banquet of 1311 to commemorate the introduction of the Gugu, and those costumes can be divided into the following categories. The first takes the shape of Echner Deel from the 13th-14th century, and is made with Goryeo fabrics. The second takes the shape of Noeui for high-ranking women, and was designed using a modified layout of the original pattern. The third is the formal wear form of Goryeo. It was reconstructed with reference to Po for women from portrait and Buddhist painting. Goryeo fabrics, which may have been produced as a result of the textile policy of King Chungseon, can be used as the main material. Since the banquet took place in winter, there is also a need for thick lining and fur clothes. Through this study, we want to supplement the costume contents of Goryeo.

Keywords:

banquet costumes, characteristics, Gugu, king Chungseon period

키워드:

연회복, 특성, 고고, 충선왕 재위기

Ⅰ. 서론

충선왕 재위기에 고려로 도입된 고고(姑姑)는 몽골 부인의 예모(禮帽)이며, 복탁(boghtaq:bogtag:boghtag:Bokhta)의 한어(漢語) 명칭이다. 원(元) 황실의 외손자였던 충선왕의 후비인 숙비(淑妃)와 순비(順妃)는 1311년에 원에서 고고를 받고 연회를 열었는데, 순비의 연회에서 두 비가 여러 벌의 복식으로 경쟁을 벌였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NIKH], 2009-2015d). 원의 예모인 고고 및 연회복식을 후비들이 경쟁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복식문화사적 의의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고 및 연회복식과 관련된 연구는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충선왕 후비들의 고고와 연회복식의 의미를 고찰하고, 형태와 재료를 중심으로 추정에 도움이 될 특성을 추출하여 고려복식 관련 콘텐츠를 보강하는 것이다. 고고와 관련된 선행연구로 Choi(2008), Kim & Erdenebat(2011) 외에 비교적 최근의 Rakhimova(2015)Mönkhtsetseg, Angaragsüren, & Lee(2019)의 연구가 있고, 고려 여성복식의 형태 관련 선행연구로 반야(般若) 복식 고증 연구(Choi, 2015), 고려부터 존재한 노의(露衣)의 가례도감의궤 중심 고증 연구(Kim & Choi, 2018)가 있다. 선행연구와의 차별화를 위해본 연구의 시대범위를 가능한한 고고 도입기 전후로 한정하고, 숙비와 순비의 고고 및 연회복식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특성을 분석하는 한편 가능성과 주의점을 제시하려 한다.

연구방법 및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에서 고고를 보내온 시기인 원 무종과 원 인종 재위기의 복식문화와 고고의 특성을 문헌과 현존유물을 통해 고찰한다. 둘째, 충렬왕 재위기 말기부터 충선왕 재위기의 고려복식문화의 특성을 분석한다. 세째, 후비들의 연회복식에 적용 가능한 특성을 추정하고, 가능한 형태 및 주의점을 제시한다.


Ⅱ. 이론적 배경

고고(Gogo) 또는 구구(Gugu)는 오리와 닮은 형태로 인해 생긴 명칭이며, 동음이의의 다양한 한자로 병기되었다(Choi, 2008).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표기인 ‘姑姑’를 따라 본문 서술 시에는 ‘고고’로 표기하고, 원본자료에 몽골어 및 외국어 발음으로 기록된 경우 그발음대로 표기한다.

고고는 결혼한 부인이 쓰는 유목형 내외용 관모였는데, 원에서 고려에 고고를 보낸 것은 의례적 행위였고 이를 착용하라는 강제력은 없었다. 또한 원 세조는 충렬왕의 부친인 고려 원종과 계약을 맺고 복식을 비롯한 고려의 풍습을 몽골식으로 바꾸지 않고 유지하도록 했다(Lee, 2015). 고고의 형태도 이색적이어서 다른 민족에게 시각적 위화감을 주었고 마차로 이동할 때도 불편했다(Choi, 2008). 이상을 보면, 고려로 도입된 고고는 원의 요구로 착용해야 했던 것도 아니고 후비들의 일상 유행복식으로서 도입된 것도 아닌, 다른 목적으로 도입된 관모라고 볼 수 있다.

숙창원비(淑昌院妃) 김씨(金氏), 즉 숙비(淑妃)는 위위윤(尉衛尹) 김양감(金良鑑)의 딸이며 충렬왕의 비였으나 그의 사망 후 충선왕의 비가 되었다(NIKH, 2009-2015c). 충선왕에게는 1비 계국대장공주 외에도 여러 비가 있었으나, 뛰어난 외모의 숙비는 충선왕의 총애 하에 사치와 절도없는 행동을 보였다(Lee, 1995). 순비(順妃) 허씨(許氏)는 중찬(中贊) 허공(許珙)의 딸로 1308년에 충선왕에게 재가하여 그의 복위 후 책봉되었다(NIKH, 2009-2015d). 순비는 충선왕의 총애를 받는 숙비와 불화를 겪었고, 이 갈등은 먼저 ‘고고’라는 품목으로 표출되었다. 『고려사절요』 권 23을 참조하면 두 비가 고고를 받은 것은 원 무종과 원 인종이 교체되던 1311년이었다. 숙비가 먼저 2월에 원 황태후로부터 받은 고고를 쓰고 원의 사신과 관리들을 위해 연회를 개최하였다(NIKH, 2009-2015c). 순비도 12월에 고고를 받았고, 두 비가 복식경쟁을 벌인 것은 이 연회에서였다.

NIKH(2009-2015d)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후에 원에서 사신을 보내 비(순비)에게 고고(姑姑)를 전하자 백료(百僚)가 연회에서 폐백하여 하례하였다. 비는 숙비와 사이가 좋지 않아, 왕이 숙비에게 축하하라 명했으나 연회가 끝날 때까지 두비가 5회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복식으로 서로 경쟁하였다(後元遣使, 賜妃姑姑. 百僚宴妃第, 用幣以賀. 妃與淑妃不平, 至是, 王令淑妃往賀, 終宴之閒, 二妃五出更衣, 以服飾相高). (NIKH, 2009-2015d, para. 1)

『고려사』 권 89에 “...(순비가) 숙비를 욕보이려고 태자에게 숙비를 대도(大都)로 보내도록 청했다(謀辱淑妃, 白太子, 令淑妃赴都).”는 기록도 있다(NIKH, 2009-2015d, para. 1). 이처럼 치열한 갈등 속에 입지를 굳혀야 하는 두 비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복식을 이용한 각인효과, 즉 원 황실여성의 위세를 상징하는 고고를 공식적으로 받고 그 기념연회에서 여러 벌의 복식으로 참가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원 황실의 여성복식 중 탑자포, 진주의, 금포는 주로 충렬왕 재위기에 몽골 출신 왕비를 위한 선물로 도입되었다(Goryeosa [高麗史], 2015). 반면 고고는 충선왕 재위기에 한해 고려인인 숙비와 순비에게 전해져, 원 황실의 여성복식이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로 도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몽골 부인의 예모인 고고의 복식사적 비중에 비해 온전한 현존유물은 많지 않고, 고려의 실물복식 현존유물의 수도 매우 적다. 『고려사』 권 72 여복(輿服) 1에도 위와 연결지을 만한 구체적 복식품목은 발견되지 않아, 위의 사건이 정사(正史)로 확실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비의 고고 및 연회복식의 특성과 관련된 세세한 연도구분과 세부추정은 어렵다. 그러나 고고가 몽골계 원 귀부인의 필수 예모였던 점, 충선왕이 당시 국가적 전성기를 맞은 원 황실의 외손자였고 그의 퇴위와 복위에 원의 영향력이 컸던 점, 불화 관계인 충선왕의 두 비가 모두 고고를 전달받은 점, 이를 기념하는 연회에서 두 비가 왕명을 거스르고 복식으로 겨룬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의 복식문화사적 의의가 적지 않고 당시 고려의 외교상황 및 왕실 사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고고와 연회복식을 역사 미디어 및 복식 콘텐츠와 연결할 수 있는 특성 추정 및 가능성 제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고가 이처럼 정치와 관련되어 도입된 관모라면, 연회복식도 그 보조장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두 비의 고고 및 연회복식 추정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신중히 선별하여 분석하고, 여기에서 추출된 특성을 토대로 최대한 그들의 고고와 연회복식의 가능한 형태를 추정하는 동시에 주의점과 한계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두 비의 고고와 연회복식 형태를 추정하려면 고고가 고려로 도입된 원 무종(元仁宗) 카이산칸(Qaishan Kulug Khan) 재위기(A.D. 1307〜1311)와 원 인종(元仁宗) 아유르바르와다 칸(Ayurbarvada Buyantu Khan) 재위기(A.D. 1311〜1320) 및 전후 시기의 고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충선왕 재위기의 복식관련 기록이 매우 적으므로, 충렬왕 재위 말기의 고려복식 경향도 일부 참조하도록 한다.


Ⅲ. 후비 고고의 특성 분석

1. 원 황후 초상화 분석

원 황제의 재위기에 따른 고고의 특징이 드러나는 현존자료는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원 황후 초상화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실물과 유사하게 고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보편적인 표기를 따라 황후의 이름을 언급할 경우에 ‘카툰(Khatun)’, 그 외에는 ‘황후’라 칭한다. <Fig. 1>은 Frings(2005)에 수록된원 황후 초상화를 선별하여 정리한 것이다. 고고의 세부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먼저 원 세조(元世祖) 쿠빌라이 칸(Qubilai Khan)의 황후인 차브이(察必:Chabi) 카툰, 남부이(南必:Nambui) 카툰의 초상화를 분석하고, 고려에 고고가 도입된 1311년까지 재위한 원 무종의 첸게(珍格:Zhenge) 카툰, 당올 비자(唐兀妃子: Tangwupeizi) 카툰, 1311년에 즉위한 원 인종의 라드나시리(纳失失里: Radnashiri) 카툰의 초상화의 고고 형식을 비교하였다.

<Fig. 1>

The Portrait of Yuan Empress: Chabi, Nambui, Zhenge, Tangwupeizi, Radnashiri Khatun (from left)(Frings, 2005, pp. 308-310)

Rakhimova(2015)는 13-14세기의 고고를 “깔대기(funnel) 형 복탁은 톰스크 알타이(Tomsk-Altai) 종, 기둥머리(capital) 형 복탁은 몽골 천산(Mongol Tien-Shan) 종”으로 구분하였다(para. 9). <Fig. 1>의 고고는 모두 원통형 세움장식과 말굽형 장식의 기둥머리형 고고이며, 숙비와 순비의 고고도 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Fig. 1>을 보면 차브이 카툰의 고고 장식은 작은 화문(花紋) 진주장식이 세로로 배치된 드문 형식이지만, 남부이 카툰의 고고 장식은 화염형 장식과 짧은 가로 장식이다. 당올 비자 카툰, 첸게카툰, 라드나시리 카툰도 남부이 카툰과 같은 조합의 장식을 사용했다<Fig. 1>. 공식기록이 없어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이 시기를 거쳐 고고 장식이 일정한 규칙으로 정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Fig. 1>의 고고는 모두 짙은 홍색이다. Rakhimova(2015)에 의하면 고고에 홍색이 선호된 이유는 행운과 가정의 안전 외에도 고위층과 왕족여성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고고의 색상은 나이와 계급의 지표였으며 일반여성은 고고에 갈색, 황색, 녹색 계열의 실크를 사용하고 황후와 귀족여성은 홍색 금직을 사용해 구분을 두었다(Suvd & Saruul, 2011).

2. 고고 유물 분석

<Fig 2>는 대량의 금실로 짠 나시치(nasji)를 씌운 고고 유물이다. 고위층의 것으로 보이는 기둥머리형 고고이지만 세부는 <Fig. 1>과 다르다. 탈색된 바탕직은 홍색으로 추정되며 받침용 안감이 있고 수정, 터키석, 매듭, 꽃 모양 벨벳으로 장식되었다(Zhao & Jin, 2005). 고고의 겉감은 본래 소박했으나 원 건국 이후 금직(金織) 류로 변화했는데(Choi, 2008), 이러한 변화가 잘 나타난 유물이다.

<Fig. 2>

Nasji Lampas, Gugu, privite collection(Zhao & Jin, 2005, p. 66)

Suvd & Saruul(2011)는 Nyambuu의 1968년 조사를 참조하여, 고고 끈의 진주장식인 하탄 수이흐(ХАТАН СУҊХ: Khatan suikh)는 기혼부인의 상징이며 수이흐(suikh)는 중세 동몽골 기혼부인의 연회용 장식 및 황후의 의식용 장식이었고 이후 하탄 수이흐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서술했다. 찬드라 하르 홀 69호 무덤에서 고고의 일부로 보이는 능직물과 마름모 나무장식이 발견되었는데, 둥근 홈들이 패였고 진주를 꿰었던 듯한 실의 흔적이 남았다(Mönkhtsetseg et al., 2019). 이슬람 미술관(Museum of Islamic Art)에 소장된 고고 부속품인 <Fig. 3>에도 하탄 수이흐 장식이 부착되었다. 모든 원 황후들의 초상화와 여러 고고 유물에서 확실하게 하탄 수이흐의 흔적이 보이므로, 이는 숙비와 순비의 고고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높다.

<Fig. 3>

Khatan suikh, 13th-14th century(Bari & Lam, 2009, p. 180)

내몽골 자치구 박물관(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Museum [IMARM]) 소장품인 <Fig. 4>와 몽골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Mongolia) 소장품인 <Fig. 5>는 고고 장식이다. <Fig. 1>의 장식과 세부는 다르지만 고고의 기둥 또는 모자의 연결부분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Suvd & Saruul(2011)는 원 황후 초상화의 고고 장식을 루비와 진주로 만든 화염 초화형 장식으로 규정했다<Fig. 1>. <Fig. 4>도 끝단이 화염 초화형인 7cm의 금제 장식이며 커넬리언(carnelian)이 부착되었다(Truong, 2010). <Fig. 5>도 진주패를 부착한 화염 초화형 장식으로(Virtual Collection of Asian Materpieces [VCAM], 2016), 고고에 화염 초화형 장식이 선호되었던 흔적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현존 고고 장식의 세부형태가 각각 다르므로, 화염 형태가 확실하게 관찰되는 개체를 중점적으로 참고하려고 한다.

<Fig. 4>

Ornament of Gugu, Yuan(Truong, 2010)

<Fig. 5>

Ornament of Bogtag, 13th-14th century(VCAM, 2016)

<Fig. 6>은 13-14세기 황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몽골 국립역사박물관(Mongolian Statehood History Museum)의 고고이며 길이 32.8cm, 너비 23.5cm의 자작나무 껍질 골격이 들어 있다(VCAM, 2013). 수복(壽福) 문양이 탑자 형식으로 배열된 직물을 씌운 드문 고고 유물이다. 1311년에 즉위한 원 인종 아유르바르와다 칸은 선대황제인 카이샨 칸과 반대로 중국문화를 매우 신봉했다고 한다(Song, 1370/2015). 따라서 이처럼 한자(漢字) 또는 한족(漢族)의 문양을 넣은 직물을 씌운 고고가 원 인종 재위기에 선호되었을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Fig. 6>

Bogtag Hat of a Mongolian Queen, 13th-14th century(VCAM, 2013)

『원사본기(元史本紀)』 권 24에 의하면 원 인종은 황태자였던 1308년 무렵부터 희귀한 보물인 슬슬(瑟瑟)보다 인재를 중시하고 “의복에 진주와 보석을 장식하는 것은 백성의 살과 피를 소모하는 행위”로 여겼다(Song, 1370/2015, p. 8). 또한 그는 즉위년인 1311년에 “민간에서 황금을 이용한 금박, 쇄금(鎖金), 직금(織金)을 만들지 말라.”고명령해 사치를 방지하였다(Song, 1370/2015, p. 12). 원 인종이 사치성 의료(衣料)를 경계했음을 고려하면, 대량의 금실로 짠 나시치로 제작된 <Fig. 2>에 비해 원 인종 즉위년에 고려로 도입된 고고의 재료는 더 소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1311년의 금박, 쇄금, 직금 금지대상은 민간이었으므로, 고위층 여성의 고고에는 금실을 적게 쓰는 장화 기법의 금직, 또는 약간의 금박을 올린 직물이 사용되었을 수 있다. 또한 <Fig. 1>의 원 황후 초상화가 실물을 잘 반영했다고 가정하면, 붉은 보석이 2개 사용된 원 인종 황후의 고고 장식이 비교적 단순하다. 한족 스타일의 문양, 금실이 적게 사용된 직물, 비교적 단순한 장식은 충선왕 후비들의 고고 추정에도 고려되어야 할 주요 특성이다.

고고는 세움장식 아래에 <Fig. 7>과 같은 남바위형 모자 및 부속을 조합해 제작되었고, 부속은 <Fig. 8>에 보이듯 둥근 모체에 뒷드림이 연결된 형식이 많다. 찬드라 하르 홀 69호 무덤에서도 고고 뒷드림으로 추정되는 <Fig. 9>의 능직물이 발견되었는데, 크기는 약 180×140cm고 얇은 마포(麻布) 안감을 대었다(Mönkhtsetseg et al., 2019). 직물의 윗부분은 고고의 모체에 맞춘 듯이 둥글게 파였다.

<Fig. 7>

Silk Cap(Bokhta), 13th century(Sotherby’s, 2011)

<Fig. 8>

Bogtag Element 13th-14th century(Bari & Lam. 2009, p. 180)

<Fig. 9>

Back Flap of Bogtag(Courtesy of Mönkhtsetseg et al.)

숙비와 순비의 고고는 기둥머리형 골격에 모자와 부속을 조합해 하탄 수이흐 끈으로 착용하는 형식이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Fig. 7>의 모자 앞 이마의 일렬 화문 진주장식은 원 세조 황후의 고고 장식과 유사하다. Rakhimova(2015)는 고고의 깃털장식이 하늘과 상층세계를 상징한다는 설을 제시했고, 깃털장식의 고고를 쓴 여성들을 묘사한회화자료도 다수 남아 있다. 그러나 손상 위험이 있으므로 깃털은 따로 동봉되었거나, 고려에서 깃털을 구해 부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Ⅳ. 후비 연회복식의 특성 분석

순비가 고고를 받고 주최한 1311년 12월의 연회에서 두 비의 복식경쟁 사건이 발생했으므로, 이 연회의 복식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한다. 경쟁 수단으로 쓰인 이 복식들은 당시 후비들의 가장 격식있는 겨울용 왕실여성예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복식들이 고려 궁중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와 품목에 대한 기록이 현존하지 않으므로, 추정 가능한 형태와 종류를 분석하여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지면에 한계가 있어 본 연구의 중점 분석대상을 표의(表衣), 밑받침용 포, 저고리와 치마로 제한하였다. 계절과 시대범위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나, 이 시기의 것이 확실한 고려의 복식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충선왕의 복위 후 재위기인 1308-1313년의 복식관련 기록도 적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충렬왕 재위 말기인 1281년부터 복식품목이 확실히 나타나는 기록을 함께 고찰하였다. <Table 1>은 『고려사』(http://db.history.go.kr/)에서 연회복식 추정에 참고할 수 있는 복식특성을 선별해 정리한 것이다(Goryeosa [高麗史], 2015).

The Characteristic of Costume of Goryeosa from 1281 to 1313

<Table 1>을 보면, 1288년경에 고려여성들이 귀천없이 외출복으로 노의(露衣)를 선호하자 조정에서 착용대상을 고위층 여성으로 한정하였다. 또한 충렬왕 재위기에 뇌물로 쓰일 정도로 능라(綾羅)가 고급직물로 인식되었던 점, 충선왕이 원 사신에게 저포와 능을 사여한 점, 원에 전달되던 고려 모피가 각각 오소리, 삵, 큰사슴의 모피인 환피(獾皮), 야묘피(野猫皮)와 황묘피(黃猫皮), 포피(麅皮)였던 점이 보이며, 이는 겨울에 개최된 숙비와 순비의 연회 연회복식의 의료(衣料)로 참고할 수 있다.

충렬왕 재위기에 백색의복 금지령이 내려졌고, 충선왕은 1308년에 잡직서(雜織署)와 도염서(都染署)를 병합해 직염국(織染局)을 설립했다가 1309년에 분리하여 도염서(都染署)를 마련하여 직물생산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성공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국책으로 실험생산된 염직 결과물이 있었을 것이므로, 왕실의 일원인 후비의 1311년 연회복식 특성을 추정하려면 이러한 직물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려에서 원의 복색과 닮지 않도록 적색, 지황색, 황색을 구분하여 조심성을 보였으므로, 연회복색으로 짙은 적색을 피하고 더 밝은 홍색을 사용할 수 있다. 원에서 고려왕족에게 사여한 금기(錦綺)는 고려왕실로 도입된 원 직물의 예를 보여준다.

현존유물들과 위의 사항을 고려하면, 두 비의 연회복식일 가능성이 있는 의복 형태는 약 3종으로 나뉜다. 13-14세기에 고고와 함께 착용되던 몽골식 예복, 해당시기에 고려 고위층 여성에게만 법령으로 허가된 의복, 후비들의 위세를 경쟁하기에 적합한 고려식 성장(聖裝)이다. 그러나 후비들의 연회복식 품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과 유물이 없어 어떠한 형태의 연회복식이 사용되었는지 확실하게 한정짓기 어려우므로,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추정 가능한 형태를 모두 분석하도록 한다. 또한 12월의 연회복식이므로 방한을 위한 재료와 부속복식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1. 에흐네르 델(Ehner Deel) 형

13-14세기에 고고와 함께 착용되던 의복은 품이 넓지만 대를 묶지 않으며 교차여밈 직령깃이 달린 두리소매의 에흐네르 델이었다. 베를린주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에 소장된 <Fig. 10>을 보면 연회에서 이 델을 입은 귀부인을 시녀들이 부축해야 할 정도로 길고 넓어서, 착용자의 권위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몽골식 예복이라 할 수 있다.

<Fig. 10>

Party Preparation, Iran(Frings, 2005, p. 264)

원에서 고고와 함께 델을 보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고려복식에 형태가 독특한 고고를 쓰면 위화감이 크므로, 따로 델을 준비해 착용했을 가능성도 고려하려 한다. Korea Creative Contents Agency [KOCCA](n.d.)에서 고고와 델을 공민왕 비의 고증복식으로 제시했으나, 이는 반원(反元) 정책을 중시한 공민왕의 비보다 친원(親元) 정책이 우세했던 시기의 충선왕의 비에게 더 적합한 복식으로 여겨진다. 앞서의 <Fig. 1>의 원 황후 초상화에 묘사된 델은 대부분 진홍색이되 남부이 카툰의 델은 황색, 첸게 카툰의 델은 연홍색이어서, 델의 색상에 엄격한 제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에흐네르 델의 실루엣은 모두 유사하며, 운견(雲肩)이 있는 델, 내부를 사각형으로 나눈 분할구성 델, 화장과 슬란에 금직장식이 있는 델, 길과 다른 재료로 깃과 끝동을 댄 델로 나뉜다. 황후 5인의 초상화 델의 깃이 모두 삼중깃으로 묘사된 앞서의 <Fig. 1>과 달리 현존유물의 깃은 대부분 이중깃인데, 황후보다 아래 급의 지위를 가진 상류층 여성이 착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Fig. 11>은 운견과 분할구성이 동시에 적용된 유물 예이다. 황색 화조문(花鳥紋) 바탕직과 홍색견 안감으로 만든 13〜14C의 의식용 여성예복으로 운견, 끝동, 단에 삼합사 파이핑을 넣었고 안감 쪽에 면을 넣고 누빈 흔적이 보인다(Ulambayar et al., 2018). 이는 고위층 여성의 추동(秋冬) 복식으로 추정되므로 두 후비의 에흐네르 델 형 연회복식 특성으로 참고할 수 있다. 길이 152cm, 화장 105cm, 끝동 너비 11cm, 품 50cm, 도련너비 162cm로 길고 넓으며 엉덩이 부분 왼쪽에 소품을 지니는 홍색 견 띠고리가 부착되었다(Ulambayar et al., 2018). KOCCA(n.d.)에서 고증한 공민왕비의 델의 도련너비는 약 100cm이지만, 실물 에흐네르 델은 폭이 더 넓으므로 <Fig. 11>의 사이즈를 참조하려고 한다.

<Fig. 11>

Ehner Deel, No. NR-T.96.142, 13th-14th century(Ulambayar, Sukhee, & Ganbat, 2018, pp. 130-131)

『고려사』 권 89를 보면 “(숙비의) 거복과 의장이 공주와 같았다(車服衣仗與公主無異).”고 한다(NIKH, 2009-2015c, para. 1). 다만 『원사(元史)』 지(志) 89 여복(輿服)의 명부복식(命婦服飾) 재료는 “1-3품은 혼금, 4-5품은 금탑자, 6품 이하는 초금과 금사탑자(一品至三品服渾金,四品,五品服金褡子,六品以下惟服銷金,并金紗褡子)”로 모두 금직이되 품질에 차등이 있고(Song, 1370, para. 79), 『신원사(新元史)』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따라서 숙비가 공주, 즉 몽골 출신 왕비와 유사한 옷차림을 했더라도 원의 최고위 명부복식 재료를 원 사신이 참석한 연회에서 사용하면 외교적 하극상에 해당된다. 이를 고려하면, 에흐네르 델 형 연회복식에 적합한 재료는 원의 4품 이하 명부복식 재료인 금탑자 또는 고려의 직물이었을 것이다.

2. 노의(露衣) 형

『고려사』 권 85를 보면 1288년에 감찰사(監察司)에서 “또한 노의와 첨립은 양반부인의 외출복이니(且露衣簷笠, 兩班妻郊外之服)....”라는 이유로 농부와 노예의 처는 착용을 금단하도록 제안하였다(NIKH, 2009-2015a, para. 1). 이 법령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면 충선왕 재위기인 1311년의 노의는 고위층 부인의 상징복식이었을 것이며,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궁중 연회복으로도 응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유물은 원령(圓領)인 <Fig. 12>의 기성군부인(箕成郡夫人:1502-1579)의 봉황원문 홑겹 단삼(團衫)이다(Gyeonggi Provincial Museum [GPM], 2014). Song(2016)은 대와 흉배가 없으며 앞무가옆트임 안에서 뒤중심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들어 이를 조선 초기형 노의로 추정했다. 현재 고려 노의의 현존유물이 없으므로, 새로 관련유물이 발견되면 추정형태가 변형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장 고려 말기와 시기가 가까운 이 단삼의 형태를 참고하기로 한다. 『세조실록』 20권에 기록된 1460년의 납징용 대홍단자노의(大紅段子露衣)도 “남자의 원령처럼 만들지만 넓고 크며 대를 묶지 않는(制如男子圓領而寬大無束帶)” 옷이었다(NIKH, 2006-2015, para. 1). 기성군부인 단삼과 대홍단자 노의는 고위층 부인복식이며 홍색의 넓은 옷이고 대가 없다는 점에서 13〜14세기 몽골 고위층의 에흐네르 델과도 공통점이 있어, 큰 형태적 위화감 없이 고고와 착용할 수 있는 복식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를 추정 가능한 두 번째 연회복식의 형태로 선별하였다.

<Fig. 12>

Dansam(GPM, 2014, p. 10)

이 단삼은 화장이 짧아서 긴 소매의 밑받침옷이 필요하다. 시대범위는 다르나 Kim & Choi(2018)은 인조장렬왕후 가례도감의궤의 노의 연구에서 노의보다 작은 직령(直領) 중삼(中衫)을 밑받침옷으로 제시했다. Kim(2000)에 의하면 온양민속박물관의 고려 자의(紫衣)는 단일깃이 온전하게 남았고 직물 폭은 약 52cm이며 뒷길이는 133cm인 긴 상의로 기성군부인 단삼보다 다소 짧은데, 이를 참조하여 앞뒷길이 차이를 없애고 세부를 변형한 단일깃의 중삼을 밑받침옷으로 설정할 수 있다.

기성군부인 단삼의 재료처럼 금실이 적게 소요되는 장화단은 고려 후비의 연회복에도 적합한 재료이다. 그러나 이 단삼의 문양은 연구자가 다시 정리한 <Fig. 13>에 보이듯 상승형과 톱니꼬리형인 봉황원문 2종을 일렬 배열한 7.5×8cm의 단위 문으로(Jeong, 2014), 현존하는 고려 금직의 문양보다 크고 배열도 다르다. 대부분의 고려불화에서 홍색 계열 여성복식의 원문은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인 <Fig. 14>의 『원각경변상도(圓覺經變相圖)』처럼 더 작으며 탑자 배열이다(Asia Research Center of Zhejiang University [ARCZU], 2018). 고려불화의 문양이 실제로 의료(衣料)에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불복장 문직물의 형식도 대부분 탑자 배열이다. Sim(2015)는 원의 탑자문을 15cm 가량의 큰 복합 단위문으로, 고려의 탑자문을 약 2cm 전후의 작은 단일문으로 구분했으며, 이를 고려하면 연회복 재료의 문양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Fig. 13>

Organized Phoenix Patterns(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14>

Round Pattern of Buddhist Painting(ARCZU, 2018, p. 32)

또한 외출복인 노의를 그대로 연회복으로 착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아, 기성군부인 단삼의 형태를 참조해 2가지의 노의형 연회복을 가정하였다. 첫번째는 기성군부인 단삼처럼 7.5×8cm의 봉황원문을 1단씩 일렬 배열한 형태이다. 두번째는 원의 탑자문 크기와 구별되는 더 작은 원문을 탑자 배열한 형태이다. 첫번째는 Kim, Jeong, & Hong(2014)에서 복원되었으므로, 두번째를 본 연구에서 제시하려 한다.

3. 고려 성장(盛裝) 형

1311년 12월의 후비 연회복식은 각 5벌이므로, 에흐네르 델 형과 노의 형이 아닌 입수하기 쉬운 추동(秋冬) 고려 성장 형을 착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고려의 여성용 표의(表衣)는 의식용 예복인 대수포와 간편예복인 반비로 나눌 수 있다. 1311년의 연회가 후비들의 세력을 겨루는 연회였다면, 규모가 큰 대수포 차림이 고려 성장 형 표의로 적합할 것이다. 1350년에 제작된 친왕원 소장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에 직령 교임형금직 대수포 차림의 여성 공양인 2인이 묘사되었다<Fig. 15>. Lee(2019)에 의하면 경기도박물관의 경신공주(미상~1426) 초상화인 <Fig. 16>과 전주국립박물관의 하연(1376~1453)의 부인 초상화인 <Fig. 17>은 번령의 장삼(長衫)으로 보이는 차림인데, <Fig. 17>을 보면 가운데에서 치마가 보이므로 조선 초기 장삼보다 섶이 작으며 앞을 여미지 않고 입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밈의 대수포를 연회복식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포에 가려져 저고리와 치마의 세부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다.

<Fig. 15>

Female prayer(Kikutake & Chung, 1996, p. 138)

<Fig. 16>

Princess Gyeongsin(I. Y. Lee, 2013)

<Fig. 17>

Hayeon-buin(Portrait of Hayeon-buin, n.d.)

겉저고리의 형태는 비교적 상태가 좋은 고려 유물을 통해 추정하였다. 1302년의 아미타상 복장 저고리는 길이가 110cm로 포(袍)에 가깝고(National Museum of Korea [NMK], 2018), 보광사 관음보살좌상 복장인 라(羅) 저고리는 오른쪽 어깨의 봉제선과 짧은 길이로 인해 적삼으로 추정되었다(Park, 2009). 반면 <Fig. 18>의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복장 고려 장수의는 홑옷이지만 뒷길이 83.5cm, 뒤품 70cm로 비교적 길고 넓어서 앞서 제시된 표의의 규모에 어울리며, 다소 두터운 명주로 제작되었다(Haeinsa Museum [HM], 2008). 여기에 두터운 안감을 대어 겹옷으로 수정한다면 겨울 연회복 겉저고리로도 적합할 것으로 여겨진다.

<Fig. 18>

Jangsueui(HM, 2008, pp. 78-79)

『지봉유설』 권 20은 “패사(稗史)에 이르길 마미군(马尾裙)은 조선에서 수도로 들어와 귀천없이 유행했고 성화년간에 조관도 모두 입었는데 이 옷이 요사하니(稗史曰, 馬尾裙, 始於朝鮮, 流入京師, 無貴賤服者日盛, 成化年間, 朝官皆服之, 此服妖也)....”라고 전한다(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n.d., para. 5).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n.d.)는 마미군을 말총을 엮어 짠 여성용 바지라고 정의했으나 이는 조관도 입은 옷이고, 치마 형태에 말총처럼 강직한 안감을 대면 <Fig. 19>의 『명헌종원소행락도(明宪宗元宵行乐图)』처럼 넓은 A라인이 형성된다. 『명헌종원소행락도』의 모든 궁중여성들이 이런 치마를 입은 점과 원말의 고려양 유행현상을 고려하면, 이는 고려양(高麗樣)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고려사』 권 132를 보면 신돈(辛旽)을 찾아온 여성들이 좁은 별실 때문에 넓은 겉옷을 벗었고(NIKH, 2009-2015b), 이때의 치마도 겉옷처럼 넓되 잘 접혀지는 형식이었을 것이다. 이 형태는 풍성한 고려 스타일을 나타내는 품목이라 판단되지만, <Fig. 19>는 명의 자료이므로 고려양의 영향이 남았더라도 세부가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 성장 형의 저고리와 치마는 앞서 제시된 2종의 표의에도 조합할 수 있다.

<Fig. 19>

Skirt of Ming(Rare Books, 2019)

연구대상이 겨울 연회복식이므로 방한복과 방한모도 필요하다. 연회복식 3종의 소매가 비교적 넓은 편이어서, 방한복은 갖옷 형태가 아닌 긴 배자 형태로 설정하여 착용 시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 원 세조 황후인 차브이 카툰이 유행시켰던 비갑(比甲)도 긴 배자 형태였으므로(Choi, 2008), 시대적, 형태적으로 큰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Fig. 16>의 경신공주의 관모는 목덜미가 노출되어 보여 방한용으로 여겨지지 않고 고려 방한모 유물은 현존하지 않으나, 고고에 조합되던 남바위형 모자를 연회의 방한모로 응용하면 고고와의 시각적 위화감이 줄고 보온성도 갖출 수 있다.

4. 후비 연회복식의 재료 특성

K. H. Lee(2013)는 충선왕이 1308년에 새로 직염국을 만들고 종사자에게 높은 품급을 부여한 것을 수출용 직물 생산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하였다. 기상이변으로 중국의 견직물 생산이 타격을 받은 시기에, 충선왕이 서역상인을 겨냥해 중국의 색사문직과 금직(金織)에 견줄 고려 특산인 고급 염색저포 및 금은사 직문저포를 생산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시되었다(Lee, 2018). 또한 <Table 1>을 참고하면 1281년경에 승려들이 정부 관리에게 뇌물로 바친 능라도 당시의 고급직물에 속한다. 따라서 가공한 세모시와 능라는 1311년 12월의 연회 연회복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능은 현재 잘 생산되지 않고 라와 세모시는 재질이 얇으므로, 필요한 경우 겨울 의료인 단(緞)과 함께 두터운 안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에흐네르 델 형 연회복식의 주재료는 능, 라, 단 바탕에 문양을 직조하거나 자수를 놓은 것으로 설정했으며, <Fig. 11>의 누비기법도 참고하였다. 이 연회복이 에흐네르 델의 ‘형태’만 중시하여 국내생산된 의복이었다면, 충선왕의 직물생산정책의 결과물 또는 원의 1품 명부복식 재료보다 등급이 낮으며 무늬가 작고 장화기법을 쓴 고려 금탑자(金褡子)를 적용할 수 있다. 노의형 연회복식의 직물은 기성군부인 단삼을 참조하면 홍색 봉황문금직 장화단이 적합하다. 그러나 이는 현재 생산되지 않으므로, 금박으로 대체하거나 유사한 문양의 금직을 사용할 수 있다. 문양은 기성군부인 단삼의 문양보다 축소하여 탑자 형식으로 배치한다 고려 성장 형 연회복식의 재료로 충선왕 재위기에 실험생산되었을 고려 직물을 적용한다. 금은사가 혼방되거나 무문인 능, 라, 모시, 단 외에 불복장답호와 저고리의 재료로 쓰인 사저교직포와 초(綃)도 사용할 수 있다.

순비의 연회는 12월에 열렸으므로 방한이 되는 두터운 안감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Table 1>를 참조하여 고려에서 원에 보낸 환피(獾皮), 야묘피(野猫皮), 황묘피(黃猫皮), 포피(麅皮)를 방한복과 방한모에 사용한다.

시대가 앞서지만 『고려사절요』 권 4에 “상의국의 어의를 물들이는 홍지초는 1년 분량 외에 거두지 말고, 양반이 근무 시 상복으로 자의를 입는 것은 일에 무익하니(尙衣局御衣所染葒芝草, 計一年支用外, 毋得多取. 兩班衙仕常服紫衣, 無益於事)....”라는 1034년의 기록이 있다(NIKH, 2014-2015, para. 1). 붉은 자색의 개여뀌를 뜻하는 ‘葒’으로 추측하면 홍지초는 보랏빛을 내는 일반 지초보다 붉은 염료로 여겨지며, 자색도 고려 상류층의 상징복색이 될 수 있다. <Fig. 20>은 붉은 톤을 더하기 위해 지초액과 소목액을 2:1로 섞고 미량의 연지가루와 명반을 투입한 염액의 온도를 약 60도로 유지하며, 25×15cm의 항라, 생초, 사저교직포(춘포), 모시를 함께 25분 염색한 결과물이다. 같은 염액 속에서도 톤이 다르며 가장 붉게 염색된 것은 생초이므로, 충선왕이 다양한 톤의 염직을 원했다면 세모시 외의 국산 직물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품인 <Fig. 21> 의 고려 보배모란문 직금견도 다소 변색되었으나자색 금직이므로 연회복식 재료로 참조할 수 있다(NMK, 2018).

<Fig. 20>

Mixed Dyeing of Redroot gromwell & Sappan wood: Sheer Silk, Silk Gossamer, Tabby with Silk and Ramie, Ramie (from left)(Worked by Researcher)

<Fig. 21>

Silk of Gold Thread(NMK, 2018, p. 152)

연회복 직물의 기조색상은 몽골 고위층 여성의 고고와 델 색상, 고려의 어의용 홍지초 염료, 고려상류층이 자의를 선호했던 점을 참조해 홍색과 자색 계열로 설정하였다. 고려복식 복원에 자주 응용되는 <Fig. 22>의 문경 봉생리탑 화문 위금(NMK, 2018), 해인사성보박물관 소장품인 <Fig. 23, 24> 의 청색원앙직금능과 홍색소화직은능도 문양과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참조할 만 하다(Sim, 2004). 다만 고려 불복장 문직물은 대부분 의복이 아닌 직물 또는 소품 재료이며, 단위문의 크기가 작고 간격이 조밀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보인다. 따라서 의복에 적용할 때 필요에 따라 문양의 크기와 간격을 재배치하도록 한다.

<Fig. 22>

Colored Silk(NMK, 2018, p. 165)

<Fig. 23>

Twill Damask of Golden Thread(Sim, 2004, p. 19)

<Fig. 24>

Twill Damask of Silver Thread(Sim, 2004, p. 38)


Ⅴ. 연구결과와 주의점

1. 고고와 연회복식의 특성 정리 및 주의점

앞서의 결과로 분석된 후비들의 고고와 부속의 특성 및 추정 가능 형태는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고고의 기본형태는 기둥머리형이며, 뒤트임이 있는 남바위형 모자 및 뒷드림과 하탄 수이흐 끈이 연결된 부속을 조합한다. 고고 색상은 고위층 여성의 상징색인 홍색이었을 것이나, 원 인종이 사치성 의복재료를 경계했으므로 후비들의 고고에 고가의 재료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고고의 화염형 장식은 비교적 재현하기 쉬운 <Fig. 1>의 장식 중 홍색 보석 2개가 부착된 단순한 형태를 참조하고 현존유물의 크기와 형식을 고려해, 길이 약 6.5cm의 화염형 장식과 4.5cm의 가로형 장식으로 설정하였다. 글래스 진주와 홍색 캘세더니 2개를 사용해 제작한 장식 예를 제시한다. 하탄수이흐의 형태는 <Fig. 3>과 Mönkhtsetseg et al.(2019)의 연구를 참조하였다. 고고의 겉감으로 금실이 적은 금직, 금박 직물, 또는 한족 스타일의 문양으로 제직된 직물이 필요하다. 고고의 뒷드림으로 추정되는 <Fig. 9>에 대어진 얇은 마포 안감은 고려 특산인 모시 안감으로 대체할 수 있다. <Table 2>는 후비들의 고고 특성과 관련된 추정 형태를 정리한 것이다.

Presumable Shape of Gugu for Sookbi & Soonbi(Shown in: cm)

앞서 분석된 특성에 의해 추정 가능한 후비들의 연회복식 설정은 다음처럼 정리된다. 표의는 모두 추동용 겹옷으로 에흐네르 델 형(A), 노의형(B), 고려 성장 형(C)의 3종을 생각할 수 있고, 치마와 저고리 및 방한 의류가 필요하다. 에흐네르 델 형의 안감에 누비기법을 사용하되 고름 너비를 줄여 부피감을 덜고. 노의 형은 Kim et al.(2014)의 연구에서 치수를 참조하고 문양의 크기와 배열을 변형할 수 있으며,소매가 긴 단일깃의 중삼을 밑받침옷으로 조합한다. 고려 성장 형은 직령 교임 및 번령 장삼 형태의 대수포로 설정하였다. 직령 교임 형태에는 몽골풍 복식 도입 이후 자주 보이는 이중깃, 도련이 넓은 불복장 유물에 나타나는 이중섶을 적용한다. 번령 장삼 형태는 <Fig. 17>처럼 소매를 걷으면 저고리의 끝동이나올 정도의 화장에 섶 규모를 줄여 치마가 보이도록 하고, 대를 맬 때 부딪히지 않게 불복장 유물에도 보이는 들여달린 안깃을 적용하였다. 또한 표(裱)와 대가 추가로 필요하다.

충선왕의 도염서에서 생산되었을 가공 세모시 및 능, 라, 단, 사저교직포, 초 등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자수, 금직, 금박으로 시각효과를 높일 수 있다. 고려의 현존 상의 유물의 직물 폭이 대부분 시접을 제외하고 30~52cm인 점도 감안해야 하며(Kim, 2000), 누비기법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두터운 방한용 안감이 필요하다.

겹 겉저고리와 넓은 겹치마, 고려 모피로 제작된 방한구를 부속복식으로 설정하였다. 치마의 안감으로 넓은 폭을 지탱하고 보온이 되는 강직한 재료가 필요할 것이다. 시대에 따라 세부가 변화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가운데에 주름이 없는 치마와 고르게 굵은 주름을 잡은 치마를 모두 생각할 수 있고, 가운데에 주름이 없는 경우 양쪽으로 좌우대칭이 필요하므로 폭을 홀수로 설정할 수 있다. 방한구는 배자 형 의복 및 <Fig. 7>의 고고 모자를 참조한 남바위형 모자로 설정하고, 방한을 위해 고고 모자에 있었던 뒤트임을 생략하였다. 이상을 근거로 한 추정 가능 형태는 <Table 3>과 같으나, 이는 현존 관련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선별된 특성을 통해 추정된 것이므로 이후의 발굴연구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어 참고자료의 의미로 제시하였다.

Presumable Shapes of Banquet Costumes for Sookbi & Soonbi(Shown in: cm)

시대가 유사한 현존유물이 남아있는 고고와 달리, 연회복식의 경우 구체적인 품목명 및 연대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현존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아 추후 관련유물의 발견여부에 따라 추정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부족한 고려복식 콘텐츠 보완을 위해 되도록 다양한 가능성과 방향성을 지닌 연회복식의 특성을 추정하여 제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신중한 접근을 위해 이를 다시 한 번 밝힌다.

2. 시판직물의 한계 및 보완 필요성

위에서 분석된 내용과 연계되며 시대특성을 잘 반영하는 직물도 필요하다. 그러나 직물을 모두 복원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연구가 따로 필요하며, 시판직물을 적용하면 부분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후비들의 고고에 필요한 재료는 해당시기의 문양을 금실이 없거나 적게 사용해 직조한 중국 직물이지만, 정확하게 복원된 직물을 구하기 어려워 주요특징을 중시해 예시를 선별하였다. <Fig. 25>는 중국의 홍색 단(이하 RB) 중에 해당시기 전후로 유행하던 형식과 유사한 연주문(連珠紋)을 황색 실로 직조한 직물(RB1)(YQX Store 상품), 한자문과 금실 탑자 배열 단위문을 조합해 직조한 직물(RB2)(Furniture freeshop 상품), 금실 없이 송원(宋元) 시기의 직물 문양을 응용해 직조한 직물(RB3)(AliExpress 상품)이다.

<Fig. 25>

RB1, RB2, RB3 (from left)(Photographed by Researcher)

연회복식에 적합한 고려 스타일의 시판 전통직물(이하 GF)도 드물다. 시판 문양직 중에 고려 문양이 제직된 고려 운문사 및 금은직 모시와 비슷한 태의 원문 금직견은 얇아서 겨울 연회복의 주재료로 적합하지 않으며, 연구의 일환으로 소량 복원된 예를 제외하면 시판되는 두터운 고려 문양직은 없었다. <Fig. 26>은 국내에서 시판되는 고려 운문사(GF1)(할머니갑사 상품), 원문 금직견(GF2)(나래솔 상품), 지름 약 4.5cm의 원문 금박을 탑자 배열로 외주하여 제작한 단(GF3)(고려금박 상품)의 예시이다. 부분적으로 <Fig. 18>의 염색직물에 자수와 금박을 넣어 사용할 수 있다. 연구자가 정리한 <Fig. 13>의 봉황원문을 응용하는 경우, 본래 단삼의 봉황원문 직물은 선행연구에서 1벌 분량이 복원되었으나 시대가 다른 현대직기의 조건 때문에 금실 없이 제직되었다(Kim et al., 2014). 본 연구의 제안처럼 문양 크기를 줄여 금박으로 응용하려면 세부가 잘 보이지 않아, 문양 일부를 생략하거나 변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직물재현과 관련된 후속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Fig. 26>

GF1, GF2, GF3 (from left)(Photographed by Researcher)


Ⅵ.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충선왕의 후비인 숙비와 순비의 고고와 연회복식의 의미와 특성을 선별하여 분석하고, 현존유물이 부족한 충선왕 재위기 고려복식 관련 콘텐츠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진행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1311년에 두 비에게 전달된 고고 및 이때 개최된 연회의 복식은 정치적 경쟁수단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두 비가 복식을 5회 교체하며 경쟁했던 1311년 12월의 연회를 주축으로 하여, 고고와 연회복식 특성을 분석하고 추정 형태를 추출하였다. 이와 시대가 유사한 자료가 존재하는 고고는 문헌과 현존유물을 근거로 분석했으며, 구체적인 기록과 품목이 없는 연회복식은 시대가 비교적 가깝고 가능성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자료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두 비의 고고 형태는 세움장식, 모자, 뒷드림 부속을 조합한 기둥머리형으로 추정된다. 1311년 즉위한 원 인종의 복식사치 경계 및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려해, 금실과 금박이 적게 소요되는 직물과 한자 문양 직물을 주재료로 설정하였다. 현재까지의 자료로 추정 가능한 연회복식의 형식은 약 3종으로,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모두 제시하였다. 고고와 함께 착용되던 에흐네르델 형, 충렬왕 재위기에 고위층 여성복식으로 한정된 노의 형, 그 외의 고려 성장 형이다. 에흐네르 델 형은 누비흔적이 있는 실물유물을 참고하며, 노의 형은 가장 오래된 노의 관련유물로 추정되는 기성군부인 단삼의 형태에서 문양 배열을 변경하고 밑받침으로 단삼을 추가할 수 있다. 고려성장 형은 직령교임과 장삼 여밈의 대수포 표의이며 고려 말 자료와 명의 자료에서 특성을 추출하였다. 치마와 저고리 및 넓은 소매에 걸리지 않는 방한용 배자 및 고고의 모자부분과 유사한 남바위형 방한모도 함께 고려되었다. 고고의 재료는 해당시기의 원의 색사 문직물과 금직물로 설정하고, 연회복식의 재료는 충선왕이 직염국을 개혁하며 실험생산했을 고려 직물 및 고려 모피에 중점을 둔다. 연회복식의 품목명 및 관련 현존자료가 고르게 남아있지 않은 것이 분석 시의 한계점이며, 시판직물 중에서 시대특성이 확실히 나타나는 직물을 찾기 어려워 직물 개발을 후속연구의 주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 1311년의 연회가 두 비의 권세를 겨루는 무대임과 동시에 원 황실여성의 고고와 충선왕의 직물생산정책의 결과물이 합쳐진 복합적 복식문화의 장이었을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본 연구는 주요대상을 고고, 표의, 저고리와 치마로 한정하여 시대와 상황을 반영한 특성 분석 작업과 가능성 제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된 실질적인 직물 개발 연구 및 장신구 연구는 후속연구에서 진행하도록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학년도 원광대학교의 교비연구비 지원에 의해 수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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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g. 1>
The Portrait of Yuan Empress: Chabi, Nambui, Zhenge, Tangwupeizi, Radnashiri Khatun (from left)(Frings, 2005, pp. 308-310)

<Fig. 2>

<Fig. 2>
Nasji Lampas, Gugu, privite collection(Zhao & Jin, 2005, p. 66)

<Fig. 3>

<Fig. 3>
Khatan suikh, 13th-14th century(Bari & Lam, 2009, p. 180)

<Fig. 4>

<Fig. 4>
Ornament of Gugu, Yuan(Truong, 2010)

<Fig. 5>

<Fig. 5>
Ornament of Bogtag, 13th-14th century(VCAM, 2016)

<Fig. 6>

<Fig. 6>
Bogtag Hat of a Mongolian Queen, 13th-14th century(VCAM, 2013)

<Fig. 7>

<Fig. 7>
Silk Cap(Bokhta), 13th century(Sotherby’s, 2011)

<Fig. 8>

<Fig. 8>
Bogtag Element 13th-14th century(Bari & Lam. 2009, p. 180)

<Fig. 9>

<Fig. 9>
Back Flap of Bogtag(Courtesy of Mönkhtsetseg et al.)

<Fig. 10>

<Fig. 10>
Party Preparation, Iran(Frings, 2005, p. 264)

<Fig. 11>

<Fig. 11>
Ehner Deel, No. NR-T.96.142, 13th-14th century(Ulambayar, Sukhee, & Ganbat, 2018, pp. 130-131)

<Fig. 12>

<Fig. 12>
Dansam(GPM, 2014, p. 10)

<Fig. 13>

<Fig. 13>
Organized Phoenix Patterns(Illustrated by Researcher)

<Fig. 14>

<Fig. 14>
Round Pattern of Buddhist Painting(ARCZU, 2018, p. 32)

<Fig. 15>

<Fig. 15>
Female prayer(Kikutake & Chung, 1996, p. 138)

<Fig. 16>

<Fig. 16>
Princess Gyeongsin(I. Y. Lee, 2013)

<Fig. 17>

<Fig. 17>
Hayeon-buin(Portrait of Hayeon-buin, n.d.)

<Fig. 18>

<Fig. 18>
Jangsueui(HM, 2008, pp. 78-79)

<Fig. 19>

<Fig. 19>
Skirt of Ming(Rare Books, 2019)

<Fig. 20>

<Fig. 20>
Mixed Dyeing of Redroot gromwell & Sappan wood: Sheer Silk, Silk Gossamer, Tabby with Silk and Ramie, Ramie (from left)(Worked by Researcher)

<Fig. 21>

<Fig. 21>
Silk of Gold Thread(NMK, 2018, p. 152)

<Fig. 22>

<Fig. 22>
Colored Silk(NMK, 2018, p. 165)

<Fig. 23>

<Fig. 23>
Twill Damask of Golden Thread(Sim, 2004, p. 19)

<Fig. 24>

<Fig. 24>
Twill Damask of Silver Thread(Sim, 2004, p. 38)

<Fig. 25>

<Fig. 25>
RB1, RB2, RB3 (from left)(Photographed by Researcher)

<Fig. 26>

<Fig. 26>
GF1, GF2, GF3 (from left)(Photographed by Researcher)

<Table 1>

The Characteristic of Costume of Goryeosa from 1281 to 1313

Source Year Items Note
Goryeosa Gwon 29 King Chungnyeol, 1281 Buddhist monks were called Raseonsa(羅禪師) and Neungsujwa(綾首座), because they offered twill damask[綾] and sheer fabric gauze[羅] as bribe to get position. Preference of twill damask and sheer fabric gauze.
Goryeosa Gwon 85 King Chungnyeol, 1288 Prohibit strictly that farmer[嗇夫]'s wife and slave[奴隷]'s wife wear Noeui(露衣) and Cheomlib(簷笠) which is the street wear[郊外之服] of noble ladies[兩班妻]. The classify of women’s social status using Noeui.
Goryeosa Gwon 31 King Chungnyeol, 1295 Offered up ramie[苧布] 100 roll, badger fur[獾皮] 76, wildcat fur[野猫皮] 83, yellow cat fur[黃猫皮] 200, moose leather[麅皮] 400 to Yuan. The kinds of fur in Goryeo.
Goryeosa Gwon 85 King Chungnyeol, 1299 Prohibit white clothing and white Rib[笠] again.
Goryeosa Gwon 31 King Chungnyeol, 1300 Emperor of Yuan granted King of Goryeo to follow old custom of every culture[風俗百事] of Goryeo.
Goryeosa Gwon 72 King Chungnyeol, 1301 The royal clothing color[服色] was similar to Yuan’s. Therefore orange color[芝黃] was used instead of red robe[赭袍], but yellow robe[黃袍] was used again soon. The order of rank using clothing color.
Goryeosa Gwon 33 King Chungseon, 1308 Emperor of Yuan granted silk brocade and fine thin silk[錦綺] to queen and crown prince of King Chungseon. The fabrics for royal gift of Yuan.
Goryeosa Gwon 33 King Chungseon, 1308 King granted ramie[苧布] 200 roll, twill damask[綾] about 100 roll to envoy of Yuan. Special fabrics of Goryeo.
Goryeosa Gwon 77 King Chungseon, 1308 King Chungseon consolidated the department of weaving[雜織署] and the department of dyeing[都染署] to making the bureau of weaving & dyeing[織染局].
Goryeosa Gwon 77 King Chungseon, 1309 King Chungseon separated the department of weaving[雜織署] and made the department of dyeing[都染署].

<Table 2>

Presumable Shape of Gugu for Sookbi & Soonbi(Shown in: cm)

Type Illustration & Sample
(Worked & Illustrated by Researcher)
Gugu & element
Gugu

Element of Gugu

Hat of Gugu
Patch
Remaked decoration sample

Diagram of Khatan suikh

<Table 3>

Presumable Shapes of Banquet Costumes for Sookbi & Soonbi(Shown in: cm)

Type Illustration
(llustrated by Researcher)
Ehner Deel (A) type
Noeui (B) type
Under gown of B
Formal gown of Goryeo (C) type
Jegori & Skirt
Winter clothes with f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