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 저서에 기록된 조선의 백의(白衣)문화
Abstract
Records show that white clothes have been admired in our country since ancient times; this was mentioned in every book written by foreigners who visited our country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In some of these books, Korea was called "the land of white clothes." The records about white clothes in books by foreigners are material that shed new light from objective and analytic perspectives on our country's white costume culture that had been passed down from ancient times to the early 20th century, and they are invaluable materials by which the way of looking at Korean white costume culture that was distorted by Japan can be correcte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eight white clothes-related records extracted from books by foreigners visiting Korea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records of books by foreigners who looked at white clothing from slightly different standpoints depending on the writers' purpose for visiting Korea, their occupation and values, and the records are of great significance in that they looked from objective and diverse viewpoints into even parts of the white costume culture that were taken for granted by the Korean people without being noticed, regarding the culture as the symbolic ethnic culture of the Korean race, the essence of women's hard work and laundry culture, the display of national temperament, the symbol of tradition and conservatism, a sort of etiquette, and reminiscences about spiritual things such as phantoms.
Keywords:
books by foreigners visiting Korea, Joseon, the symbol of the Korean race, white costume culture키워드:
내한 외국인 저서, 조선, 한민족의 상징, 백의문화Ⅰ. 서론
각 나라의 문화는 오랜 기간 역사적 과정 속에서 기후, 풍토 등 자연적 환경과 종교, 사회, 경제, 정치 등의 사회적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되는데, 그 중 복색문화는 국가나 사회제도적 기준이자 민족적 표상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들이 조선을 방문하며 남긴 저서에는 조선의 복색문화와 관련된 기록이 많은데, 공통적으로 백의(白衣)를 빠지지 않고 언급하며, 심지어는 ‘백의의 땅(the land of white clothes)’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우리나라 복색에 관한 기록은 중국문헌 『삼국지(三國志)』, 『북사(北史)』, 『수서(隋書)』, 『송사(宋史)』1)에도 백의를 숭상한다고 기록하고 있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NIKH], 1987; NIKH, 1988; NIKH, 1989).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등 건국시조의 탄생설화에 햇빛(백색 빛), 백마2) 등이 등장하고, 백색의 새, 여우, 말, 사슴, 돼지 등을 특별히 여겨서 왕에게 진상3)하기도 하였으니, 이는 백색(白色)을 기이하고 신성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B. Kim, 1983; G. Kim, 1983).
고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백의선호는 그간 복식사학 분야에서 관심이 많았으므로 선행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는데, 고대사회부터 조선시대까지 복색으로 사용된 백색(e.g., Jeon, 1972), 백의풍습(白衣風習)(e.g., Choi, 2017; Jeon, 1983), 조선시대 백의금제(e.g., Hong, 2003; Paik, 1979), 백의와 한국인의 미의식(e.g., Kim & Kim, 2006), 일제강점시기 백의 탄압(e.g., Kim, 2007; Park, 2014), 외국인 시각에서 본 조선의 백의풍습(e.g., Han, 2005; Jung, 2013; Lee, 2000; Lee, 2005) 등 고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백의 관련 연구가 선행되었다.
기존의 백의 관련 연구에서 외국인의 기록으로는 주로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고, 일제강점시기 대중매체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내한 서양인 기록을 다룬 연구의 경우 저자의 방문목적, 직업 등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문화권의 내한 외국인 백색 관련 기록을 보면, 저자의 방문목적과 직업, 가치관에 따라 약간씩 다른 시각을 가지고 보았으니, 조선은 백색 옷의 땅, 백색은 조선의 국색, 백의를 입은 모습은 유령, 환영 등 영적 인식, 온순함, 쾌활함, 무사태평한 민족적 기질의 표현, 전통과 보수의 상징, 여성들의 노고와 세탁 문화의 결정체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백의(白衣)문화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같이 당시 내한 외국인 저서의 백의 관련 기록은 다른 문화권에 있는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을 가진 외국인의 관점에서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백의문화를 객관적, 분석적 시각에서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한국의 백색문화와 관련하여 일본의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백의를 상복으로 인식하며 거론하였던 비애미론(Yanagi, 1994), 경성제국대학 민속연구반이 염색기술 낙후를 강조하며 거론하였던 염색기술 결핍설 등과(Han, 2005) 같이 그간 일본에 의해 왜곡되어 온 한국의 백색 문화 인식을 수정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므로 이를 집중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세기 말~20세기 초 백의 기록을 남긴 내한 외국인들의 직업과 방문목적, 기록의 특징을 알아본다.
둘째, 저서에 기록된 백의 관련 내용을 분류, 분석하여 당시 조선의 백의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을 알아본다.
연구 범위는 19세기 말~20세기 초 기록된 내한 외국인의 저서 중 선교사, 외교관, 화가, 사진가, 학자, 시인 등의 직업과 가치관을 따라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백의문화를 인식하고 기록을 남긴 서양인 저서 8편을 분석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 저서 8편인 H. N. Allen의 『조선견문기(Things Korean)』, A. H. Savage-Landor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orea or Cho-sen)』, I. B. Bishop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 Constance J. D. Tayler의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Koreans at Home)』, J. R. Moose의 『1900, 조선에 살다(Village Life in Korea)』, E. B. Holmes의 『1901년 서울을 걷다(Seoul, The Capital of Korea)』, Georges Ducrocq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ée)』, Jean De Pange의 『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EN Corée)』의 백의 기록을 발췌 분석하여 고찰 규명하고자 한다.
Ⅱ. 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 저자와 기록의 특징
1.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1932년)
H. N. Allen은 본래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중국 상해에 파송(1883년)되었으나,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체결로 인해 미국공사관(1883년)이 설치되면서 1884년 부터 미국공사관 부속 의사로서 조선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가 조선에 부임하던 해 일어난 갑신정변(1884년)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 민영익(閔泳翊, 1860~1914년)의 치료를 계기로 고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시의(侍醫)로 임명되면서 1885년 조선 최초의 서구식 왕립병원 제중원(濟衆院, 광혜원이라고도 함)을 설립하게 되었다(Baek, 1973).
이후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으로 워싱턴에 주재(1887~1889년)하다가 사퇴한 이후 다시 내한하여 조선 주재 미국의 서기관, 총영사, 전권 공사(1890년-1905년)를 역임하였으나, 1905년 조선과 일본의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조선정부를 두둔하는 발언과 미국 외교 정책에 반대함으로서 외교관직이 박탈되었다(Kim & Park, 1996).
그는 조선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풍속, 언어 등을 알리기 위해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잡지 『코리언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1892~1899년)를 발간하기도 하였으며(Lee, Park, & Lee, 2005), 주조선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영국의 왕립아시아학회에 조선 지부를 결성(1900년)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 그는 자신의 고향에 정착한 후 조선과 관련된 21년(조선거주 의료선교사 3년, 주미 조선정부 외교관 고문 3년, 주조선 미국 정부 외교관 15년) 기간을 저서 『Things Korean: A Collection of Sketches and Anecdotes Missionary and Diplomatic(조선견문기)』(1908년)에 담아냈다.
그의 저서 서두에는 “나의 기록이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가득 찬 체험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가급적 사사로운 이야기는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했으며, 직접 겪은 경험 중 가장 흥미 있고 예증적인 단편들을 모아 기록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Allen, 1999, pp. 15-16).
저서의 내용은 조선의 정치 상황은 물론 각 지방과 도시의 풍물,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문화, 풍습 등과 함께 조선 사람들의 복식 및 복색인 백의를 조선의 국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2. 아놀드 헨리 새비지-랜더(Arnold Henry Savage-Landor, 1865~1924년)
A. H. Savage-Landor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여행가, 탐험가이자 화가였으며,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성장기에 영국의 저명한 시인이자 작가였던 조부 월터 새비지 랜더(Walter Savage Landor, 1775~1864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Savage-Landor, 1999).
그가 학업을 마친 후 처음 여행계획은 극동 지역인 일본, 중국, 조선이었는데, 조선에는 1887년, 1890년 두 차례 방문하였다(Kim, 2014).
1890년 방문 시에는 일본(나가사키 항구)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경상도 일대를 여행하고, 제물포항을 통해 서울과 인근을 여행하면서 겪은 내용을 『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1895년)에 담아냈다.
그는 여행할 때 반드시 화구(畵具)를 가지고 다녔다고 하며, 저서에 수록된 삽화는 모두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Savage-Landor, 1999), 건축물이나 다양한 계층의 인물묘사를 보면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고도 사실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의 저서 내용에는 당시 서울과 지방의 각종 풍물, 결혼, 경기, 군제, 형제, 종교 등 조선의 각종 체제, 문화적 특징과 함께 조선 사람들의 성품, 내한 당시 일어난 조선의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차림새라 하여 각 신분, 연령, 성별에 따른 머리모양, 모자, 신발, 의복 등을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기록하면서 자세히 삽화도 남겼고, 조선의 주요 직물 산업인 목화, 비단 관련 산업의 현황과 정책 결과도 언급하고 있으며, 백의를 보는 자신의 시각도 기록하고 있다.
3.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
I. B. Bishop은 영국출신으로 영국왕립지리학회(Royal Geographical Society) 최초의 여성회원이었으며, 23세에 캐나다와 미국으로 7개월간 첫 해외여행(1854년)한 뒤 『The Englishwoman in America』(1856년)을 집필하였다(Lee, 1991).
그녀는 ‘몽골 인종의 중요한 특성 연구’를 위해(Bishop, 2000), 1894년 부산에 도착하여 제물포, 서울, 금강산, 원산, 개성, 평양, 순천, 만주 등을 여행한 체험을 『Korea and Her Neighbors(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8년)에 담아냈다.
그 책의 서두에 1894~1897년, 네 차례 총 11개월 동안 조선을 답사하며 느낀 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히고 있으며(Bishop, 2000), 각지를 여행하면서 본 유적, 풍물과 왕족을 비롯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직접 만났던 경험을 자세히 실증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다.
또한, 당시 주조선 영국 총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 재정고문 브라운(J. McLeavy Brown) 등의 친분과 함께 조선 관련 전문자료를 참고하며 기록으로 남겼다(Bishop, 1994).
저서 내용에는 당시 조선이 처해있던 정치적 상황과 사건, 결혼, 상례, 종교, 교육 등 문화적 내용과 조선에서 활동하는 선교단 현황, 조선의 수출ㆍ입 현황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직물 관련 내용을 보면 조선의 중요상품에 백색 면직물을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고, 수출ㆍ입 무역 현황, 면직물을 주제로 영국과 일본의 입장을 언급하기도 하였으며, 면직물 관련 부록을 싣기도 하였다.
4. 콘스탄스 제인 도로시 테일러(Constance Jane Dorothy Tayler, 1868~1948년)
Constance J. D. Tayler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화가로 1894~1901년 조선을 여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과 송도, 진남포, 평양을 두루 다니며 『Koreans at Home(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1904년)을 저술하였는데, 그 책에는 채색 도판 다섯 개와 삽화 스물 다섯 개, 사진이 수록되어있다.
저서의 내용은 잘 못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조선의 역사를 고대부터 조선말까지 간단하게 언급하였고, 조선의 기독교 역사, 황제와의 만남, 사회계층과 제도, 종교 등도 언급하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의 복식에 관심이 많아 한복의 형태적 특징, 모자, 장신구, 복식의 소재, 복색 등 세심하게 관찰하여 삽화와 함께 사실적으로 기록하였고, 백의와 관련하여서도 조선 사람들의 외모, 성품의 특성 등을 언급하며 여성들의 노고를 거론하는 과정과 복장의 백의 세탁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
5. 제이콥 로버트 무스(Jacob Robert Moose, 1864~1928년)
J. R. Moose는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1893년 부인인 메리 매그놀리아 더함 무스(1867~1952년)와 결혼한 이후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1899~1924년)되어 머물던 25년간의 기록을 『Village Life in Korea(1900, 조선에 살다)』(1909년)에 담아냈고, 원주제일교회, 춘천중앙감리교회 등을 설립하였다(Kim & Park, 1996).
그의 저서의 서두에는 “⋯ 조선에 대해 세상에 잘 못 알려진 부분이 많기에 내가 무척 사랑하게 된 조선 사람들에 대해 독자들이 보다 정확한 지식과 더 깊은 애정을 갖는데 이 책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라 하고 있다(Moose, 2008, p. 15).
저서의 내용에는 당시 외국인들이 조선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오류에 대한 지적과 함께 조선의 기후적 특성, 각 지역의 특징과 생산물, 간략하게 서술한 고대부터 내려오는 조선의 역사, 서울의 의미와 풍물, 각 신분별 특징, 언어의 특징, 혼례, 장례, 풍속, 종교 등도 언급하며 기독교 전파 관련 조선에서의 개신교 선교의 시작과 성장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조선을 ‘백의의 땅’이라 칭하면서, 각 계층별 복식문화를 언급하고 있으며, 조선의 상업구조와 직물 생산 체제나 수입 물품을 거론하면서 소개하기도 하였고, 백색 면직물이 주요 상품임을 기록하고 있다.
6. 엘리어스 버튼 홈스(Elias Burton Holmes, 1870~1958년)
E. B. Holmes는 미국 출신의 유명한 사진가, 영화감독이자 여행가로 그가 9살 때, 그의 조모가 당시 유명한 여행가이자 강연가인 존 로슨 스토다드(John Lawson Stoddard, 1850~1931년)의 강좌에 데려간 것이 계기가 되어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조모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한 뒤, 자신의 여행 슬라이드를 발표하였다.
그의 조선 방문 시기는 1899년 또는 1901년 두 가지 설이 있으며(Baek, 2012), 베이징을 지나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에 들어와(Holmes, 2012), 서울지역을 위주로 여행하면서 여행자의 시각으로 조선을 세밀하게 관찰하였고, 『Seoul, The Capital of Korea(1901년 서울을 걷다)』(1901년)를 저술하였다.
그 책에는 여행기록 외에도 사진이 많이 첨부되어있는데, 사진 중 일부는 활동사진을 캡처한 사진도 많이 수록하였다.
그는 활동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하였으며, 저서 내용에는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과 건축물, 도시풍경, 황제, 왕족, 일반백성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사진을 기록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복식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칭하며, 신분별 착용하는 모자의 종류, 모자 착용 방법, 순서 등도 사진과 함께 기록하였고,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백의를 입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7.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 1874~1927년)
Georges Ducrocq는 프랑스 출신의 외교관, 여행가, 시인으로 프랑스의 정치가, 교육자, 탐험가이자 민속학 분야의 인사였던 루이 마랭(Louis Marin, 1871~1960년)과 함께 탐험길(1901년 7월~1902년 2월)에 올랐다(Ducrocq, 2001).
이 두 사람은 파리에서부터 유럽을 횡단하여 시베리아, 만주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 1901년 12월에 약 2주간 여행하면서 조르주 뒤크로는 『Pauvre et Douce Corée(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1904년)을 저술하였고, 루이 마랭이 촬영한 사진을 함께 수록하였다.
저서의 내용에는 당시 조선의 풍경, 가옥, 결혼, 장례, 조선 사람들의 기질, 외모, 머리모양 등에 대해 분석적이고 전문적으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의 상업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조선산 직물을 일본, 중국산 직물과 비교하여 높이 평가하기도 하고, 조선의 백의를 독자적인 복색문화라 여기며 순한 한민족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 기록하고 있다.
8. 장 드 팡주(Jean De Pange, 1881~1957년)
Jean De Pange는 프랑스 출신의 역사학자, 저술가로 20여 권에 달하는 저서와 세 권의 일기를 남겼는데, 20대 초반(1902~1903년 사이로 추정)에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조선의 역사, 문화, 종교 등을 연구하여 자국의 대중들에게 소개하고자 조선 여행을 계획하였고 제물포, 서울, 금강산, 원산 등을 여행하며 『EN Corée(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1904년)를 저술하였다.
저서 내용으로는 당시 서울, 금강산, 원산 등 모습을 비롯해 조선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나라와의 이해관계, 종교, 결혼, 장례, 건축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등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세밀하게 기록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직물 관련 산업에 관해서도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두고 맺은 로젠-니시 협정 등 당시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연관하여 전문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백의에 대해 가장 인상적이라 하며 보수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복색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들은 직업과 방문목적이 다양했지만 당시 조선이 처해있는 상황을 각자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조선의 독특한 문화에 대해 기록을 남겼는데, 조선의 백의문화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다양한 기록을 남겼으므로, 다음 장에서 이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Ⅲ. 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 저서의 조선 백의(白衣)문화 기록의 특징
1. H. N. Allen의 『조선견문기(Things Korean)』
미국 출신의 미국공사관 부속의사, 의료선교사이자 외교관으로 조선에서 18년(1884~1886년, 1890~1905년) 동안 활동하였던 Allen(1999)의 『조선견문기(Things Korean)』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부산에서는 ⋯여기저기 언덕 위에 백의를 입고(white clad) 앉아 있는 주민들의 모습⋯(p. 50).
그날 밤은 ⋯분주하게 두들기는 다듬이 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 들의 대부분은 여인들이었다. 이 여인들은 백의를 입고 장옷을 깊이 쓰고 있었으며(white clad and closely veiled)⋯(pp. 67-68).
조선은 자신을 백의민족(A white man's land)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pp. 71-72).
⋯거리와 골목은 회색 바탕에 드리운 백색 리본처럼 한계가 분명하다. 왜냐 하면 백색은 조선의 국색(國色)(for white being the national colour)인 동시에 조선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주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기 때문에 이들 상주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리의 색깔은 온통 백색 빛을 띠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백의를 입는다(The use of white by a peaple)는 것 ⋯그러나 그들이 다른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백의를 입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백색은 상복(喪服)의 색깔(White being the mourning colour)이며 상복을 입는 기간은 3년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통 수명으로 어느 일정한 기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상주가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또한 왕실의 누가 사망하면 전 국민이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빈번히 닥쳐오는 이런 날에 대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아예 백색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pp. 75-76).
⋯가난한 사람들로 ⋯도시에서의 이와 같은 계층의 여자들의 주된 직업은 빨래이다. 시냇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빨래를 하는데 ⋯매끈한 돌 위에서 여인들이 짝을 지어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춥고 싫증나는 일을 해야 하지만 누구나 백의를 입기(for with white clothes worn by all) 때문에 세탁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옷을 다리미로 다리는 대신에 다듬질을 하여 명주 빛깔을 낸다(p. 92).
차창에서 바라보면 ⋯그 사람은 백의(white garments)를 허리춤까지 치켜 올리고 앉은 채⋯(p. 100).
예로부터 이 나라에서는 복상(mourning)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상주가 부득이 외출해야할 때는 화사하지 않은 백의를 입고(clad in unbleached white raiment) 우산만큼 크고 친밀하게 짠 갓(hat)을 쓰고 나가야 하며, 자신의 얼굴을 지극히 숨기기 위해서 삼베(sack cloth)로 만든 포선(布扇: 상제 외출 시 얼굴가리개)으로 얼굴을 가린다. ⋯왕족이 서거했을 경우에는 ⋯ 이 기간에는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백의만 입어야 한다(only white garments may be worn, since that is the colour of mourning). 또 그때에는 신발도 백색 것을 신어야 하며 심지어는 담뱃대도 백색으로 싸든가 백색의 대꼬빠리를 끼워야 한다. 특히 반짝이는 검은 갓(black gauze hats) 대신에 표백하지 않은 대나무로 만든 갓으로 바꾸어 써야 하며, 너무 가난해 새 갓을 살 수 없으면 검은 갓 위에 백색 종이를 발라야 한다(pp. 142-145).
Allen(1999)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조선의 국색(國色)이며, 둘째 백의는 상복제도에서 비롯된 복색이라 생각된다 하였고, 셋째 백의는 조선 여성들의 수고로운 세탁문화의 결정체로 보았다.
Allen이 조선의 백의가 조선의 국색이라고 단정지었던 부분은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지만, 그의 상복제도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국가와 다르게 조선은 3년간 국민 모두가 상복을 입으며, 왕, 또는 왕비의 국상 시에도 온 국민이 상복을 입는 상복제도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조상숭배를 으뜸으로 여기는 유교적 가치관을 500년간 이어 온 조선사회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파송된 Allen 선교사의 경우 그의 직업상 조선에 파송되기 전 이미 조선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물론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또한 18년간 조선에 머물면서 『코리언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1892~1899년) 발간, 영국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부 결성 등을 통해 선교지 조선을 알리고자 하였던 그의 활동을 미루어 볼 때 그가 조선사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는 내한시기로 볼 때 조선에 거주하는 동안 두 차례 국상(1890년 신정왕후(神貞王后) 서거, 1895년 명성황후(明成皇后) 서거)을 경험하였다고 보며, 이로 인해 백의를 상복의 색, 국색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
백의와 상복 색상 인식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말 제정러시아가 조선을 장악할 목적으로 본국 내 조선학 관련 학자들을 두어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지리 등 각 분야에 대해 면밀히 조사, 연구하도록 한 후 이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 결과를 기록한 조선 연구서 『KOPEN(한국지, 韓國誌)』에서도 볼 수 있다.
『KOPEN』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옷은 대부분 백색, ⋯상인, 평민들은 주로 면으로 된 백색 옷을 입는다. 이 백색은 약간 푸른색을 띠는 것이 상복과 다르다. 상복은 하얗게 만들지 않은 거친 삼베로 되어 있다.”라 하여 평상복의 백의를 상복의 색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 1984, p. 330).
그러나 Allen이 조선사회의 백의를 국색으로 보는 시각과 국색이 된 모든 요인을 상복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시각은 일부 상복을 입은 기간이 길기는 하지만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백의 선호, 백의 숭상으로 인한 백의의 일상화를 간과하였다고 본다.
또한 Allen은 직업부분에서 세탁, 다듬이질, 여성의 무기에 조선의 세탁문화와 옷감을 어떻게 다루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조선의 백의는 오염이 잘되므로 세탁을 자주 해야 하고, 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세탁을 하였다.
『KOPEN』에도 “조선 사람들의 의상은 주로 백색이기 때문에 세탁을 무척 자주 해야 한다. 세탁은 여자들이 한다.”라 하고 있어(AKS, 1984, p. 331),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여성들의 세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세탁한 옷감 정리를 위한 다듬이질 풍경도 기록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전 국민이 즐겨 입는 백의문화는 세탁문화의 결과이며, 이는 당시 조선 여성들이 처해있던 억압과 불평등, 희생적인 노고의 결정체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
2. A. H. Savage-Landor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orea or Cho-sen)』
영국 출신의 여행가, 탐험가, 화가로 조선에 1890년 두 번째 방문하여 기록을 남긴 Savage-Landor(1999)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orea or Cho-sen)』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조선의 부산항에 도착했다. ⋯해안가를 따라 언덕 위로 꼬불꼬불 올라가는 길 위에 천천히 움직이는 수많은 백색 점(white spots)을 보고 내가 얼마나 넋을 잃고 있었는지 지금도 잘 회상이 된다. 우리가 점점 다가가자 그 백색 점들은 점점 더 커지고 더욱더 사람의 형태를 드러냈다. 그 광경이 어찌나 유령 같은 형상(something ghostly)을 띠었는지 그것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새겨 있을 정도이다(p. 16).
이제 부산과 경상도로 다시 돌아가자. 경작된 주요 산품은 목화(the chief product cultivated is cotton)라고 말할 수 있다. ⋯상당량의 목화는 의복을 만들기 위한 천으로, 그리고 조선 고유의 겨울옷에 채워 넣는데 쓰인다(p. 18).
⋯서울에 얼마간 머물게 되었기에 ⋯사실 내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 대비(趙大妃, 神貞王后, 1808-1890)의 국상을 당해 모든 사람이 백의를 입어야(wear white) 했는데⋯(p. 56).
조선 사람들은 ⋯입는 옷에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는 허리띠나 고름에 달고 다니는데 ⋯보통 오렌지, 파란색인데 ⋯이 때문에 언제나 백색인 그들의 의상(everlasting white dresses)의 단조로움이 약간은 살아나게 된다(pp. 61-62).
여성이 ⋯가장 추운 날 겨울밤에 강과 도랑의 두꺼운 얼음장을 깨 그 찬물에 자신의 손을 담그어 아마도 집에서 한가롭게 잠에 취해 있을 자신의 남편과 주인의 옷을 빨며 시간을 보내는 불쌍한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 ⋯면 옷(cotton garments)의 때를 벗기려고 곤봉과 같은 짧은 나무로 만든 방망이를 두들기고 있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때가 깨끗하게 빠질 때까지 옷을 두르려야 하는 ⋯부유층의 여성들은 집에서 빨래를 한다. 만약 당신이 밤에 서울 거리를 걷노라면 ⋯규칙적으로 빠르게 울리는 똑딱똑딱하는 소리에 곧 익숙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소리는 모든 사람이 나들이옷을 입고 외출하고 싶어 할 때인 어떤 잔치나 공공 행렬 전날 밤에 더욱 부산하다. 만약 우리나라 여성들이 옷 한 벌을 적당히 빠는 데에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몹시 힘든 이와 비슷한 상황과 정신 상태에서 빨래터로 내몰린다면, 잔혹하고 그를 냉대하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 생각에 조선 여성은 아마도 아시아에 있는 어느 다른 여성보다 생활에서 즐거움을 덜 누린다(pp. 76-77).
국상이 났을 때 왕은 다른 고관들과 똑같은 옷을 입는다. ⋯불룩한 소매가 달린 긴 백색 예복(a long white garment with baggy sleeve)에 보석이 박힌 대(jewelled projecting belt)를 착용하고 날개 달린 모자(winged skull cap)를 쓰고 있다(p. 175).
⋯왕이 행차하는 길을 따라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어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남자들은 새로 세탁한 옷(newly-washes clothes)을 입었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가장 좋은 옷(smartest garments)으로 성장(盛裝)하였다(p. 228).
Savage-Landor(1999)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하얀 점, 유령 같은 형상이라 하여 영적인 인식을 하였고, 둘째 백의는 세탁이라는 여성들의 잔혹한 노동으로 가능한 복색, 셋째 국상 시 입는 예복으로 보았으며, 넷째 백의의 소재로 면직물이 사용된다 하였다.
Savage-Landor의 경우 극동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본, 중국을 여행하며 그곳에 대한 문화를 먼저 경험한 뒤 조선에 방문하였는데, 그로 인해 일본, 중국과 다른 조선의 독특한 문화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본다.
그가 처음 조선에 도착하여 마주했던 풍경은 멀리서 보이는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넋을 잃고 보았을 정도로 조선의 백의문화를 인상 깊게 받아들이며,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수많은 백색 점’, ‘유령 같은 형상’이라 하여 화가다운 시각적인 묘사와 함께 영적인 시각에서 백의를 보았다고 본다.
그는 여성 부분의 여성의 의무에서 당시 조선의 여성이 처한 환경과 세탁문화를 설명하며 언제나 백의를 입는 조선에서 세탁은 여성의 의무라 이해하였고, 여성의 고된 노동으로 새하얗게 세탁된 백의는 예를 갖추어 입는 가장 좋은 옷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세탁은 잔혹한 노동이며, 조선의 여성은 불쌍한 존재”라 하며 조선의 여성관에 대하여 언급하기도 하였는데(Savage-Landor, 1999, pp. 76-77), 자신의 나라 여성들이 이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반발하였을 것이라 하여, 당시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였던 조선의 그릇된 유교문화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도 볼 수 있다.
그가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 신정왕후(神貞王后)의 국상 시였다고 언급하며, 국상 시 상복제도로 왕과 관리를 비롯해 조선의 모든 사람들이 예복으로서 백의를 입어야 한다고 하여, Allen과 같은 시각으로 백의를 인식하였던 부분도 있다.
Savage-Landor는 백의와 관련하여 소재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부산 등 경상도 지역의 목화 산업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조선에서 경작되는 목화의 상당량은 의복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라 하였고(Savage-Landor, 1999, p. 18), 추운 겨울날에도 얼음을 깨고 세탁하는 여성들을 언급하며 “면 옷의 때를 벗기려고 빨래하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라 하였다(Savage-Landor, 1999, p. 76).
여성의 복식 부분에서도 입는 사람의 신분, 지위 등에 따라 다르지만 명주나 면을 의복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기록(Savage-Landor, 1999)과 앞서 언급한 바 “⋯상인, 평민들은 주로 면으로 된 백색 옷을 입는다.”는 기록으로 보아(AKS, 1984, p. 330),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백색의 면을 백의의 주 소재로 사용하였다고 본다.
3. I. B. Bishop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으로 1894~1897년 4차례 걸쳐 11개월 동안 조선을 여행한 Bishop(2000)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조선 사람들 사이에는 ⋯그들의 복장이 같기 때문에⋯(p. 24).
조선 사람은 색다른 인상을 보여 주고 있다. ⋯백의(white dress)는 몸을 풍성하게 보이게 하고, 언제나 쓰고 있는 높은 왕관 장식의 모자(high-crowned hats)는 키를 더 커 보이게 만든다. ⋯ 소매가 있는 백색 면의 길고 품이 큰 겉옷(white cotton sleeved robes), 거대한 바지(huge trousers), 그리고 버선(socks)은 모두 솜으로 채워졌다. ⋯영국인 우나(Una)가 구(舊)부산으로 나를 안내했다. ⋯좁고 먼지투성이 이고 굽은 길의 모든 거리를 따라 상품들은 마당의 멍석 위에 널려져 있었고, 더러운 백색 면 옷(white cotton)을 입은 남자나 늙은 여자가 그것을 지키고 있다(pp. 36-37).
마포 근처에 이르자 ⋯갓(dress hats)을 쓰고 솜을 넣은 백의(wadded white garments)를 착용한 통행인이 꽤 많았다(p. 46).
서울에는 대로가 세 곳이 있는데 그 중의 어느 거리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중요한 상품으로서는 백색 면직물(white cottons)⋯(p. 51).
⋯주인이 희게 옷을 입는 한 세탁하는 것은 여인의 숙명이다. 여인들은 불결한 강이나 뽕나무 왕국의 연못이나 얕은 개천이나 성 밖에 있는 시냇물에서 세탁한다. 어떤 옷은 부분적으로 뜯어서 빨며 세 차례 풀잎과 함께 삶아 단단한 꾸러미로 말아 돌 위에 올려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두들겼다. 옷이 마르면 그들은 두꺼운 공단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원통으로 된 나무 방망이로 두들긴다. 여성은 세탁의 노예(slaves to the laundry)이며 서울의 밤의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리는 규칙적인 다듬이 소리이다. ⋯남산의 ⋯이른 3월에 내가 처음으로 서울을 내려다보았을 때, 한 거리는 지난해 내린 눈으로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그리고 눈처럼 하얗게 떠다니는 것은 다듬이질로 하얘진 포의 행렬이었다. 이 셋의 넓은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백색 포(white robes)를 입고 검은 갓(black dress hats)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양반인데 ⋯나는 하루 종일 옷을 세탁하고 물을 긷는 하층 계급의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조선 여인들은 매우 엄격하게 격리되어 있으며 다른 어느 나라의 여인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pp. 55-56).
서울의 단조로움은 ⋯사람들은 검은 옷이나 백의를 입었다(p. 60).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조선이다. ⋯백의(white clothing)와 말총 갓(crinoline dress hat)을 착용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서울과 마찬가지이다(p. 68).
⋯북한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깨끗한, 혹은 지저분한 백의(white clothes)를 입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pp. 122-124).
그 길은 반평(Pan-pyong) 마을과도 맞닿아 있는데, ⋯기묘한(queer) 백의(white clothes)에 갓(dress hats)을 쓰고 확고한 발걸음(firm tread)을 옮기는 남자의 모습⋯(pp. 129-130).
1895년 1월 8일, 나는 하나의 의식을 목격했는데, ⋯일본은 ⋯국왕이 종묘에 나아가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선조들의 영령 앞에 개혁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갓(black-hatted)을 쓰고 백의(white-robed)를 입은 군중들은 궁전 마당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광경을 언덕에서 내려다보면서 어떠한 웃음이나 이야기 소리도 내지 않았다(pp. 238-240).
⋯우리는 송도(開城)에 도착했다. ⋯여자들은 백색 천(white sheets)을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거의 발까지 닿았다. 매우 백색인 옷을 입고 큰 모자를 쓴 남자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친 삼베 옷을 입은 ⋯상주들로 거리는 북적거렸다(pp. 287-288).
조선의 해외 무역은 ⋯면직물 옷을 입은(cotton-clad) 1,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국가의 잠재적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의 시장에서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일본이다. ⋯면직물에서의 무역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 부분에서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 ⋯일본 면직물은 대량 생산이 계속되어 조선의 시장에서 영국과 인도의 면직물을 점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pp. 373-375).
Bishop(2000)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녀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조선 전 지역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착용하는 복식이며, 둘째 백의는 세탁문화를 통한 여성들의 고된 노동의 결과라 하였고, 셋째 백의는 조선 남성들이 예를 갖춰 정갈하게 입는 복식, 넷째 백의와 면직물 무역을 연관하여 보았다.
Bishop의 경우 부산을 비롯해 한강 줄기를 따라 서울, 단양, 원산과 송도(개성) 등을 직접 답사하며 어느 지역을 가든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조선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백의를 착용한다고 보았다.
그녀는 송도(개성) 시내의 풍경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복식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Allen과 달리 평상복으로 입는 백의와 삼베로 만든 상복을 명확히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는 Bishop이 조선 각 지역을 다니며 조사, 연구한 지식을 토대로 평상복 백의와 상복의 차이를 구별하고 서로 다른 복식임을 간파하였다고 보며, 당시 조선의 백의문화를 특징적인 민족문화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Bishop은 서울의 첫인상 부분에서 “옷을 희게 입는 한 세탁하는 것은 여성의 숙명”이라 하며(Bishop, 2000, p. 55), 세탁 방법, 순서 등과 여성들이 강, 연못, 개천, 시냇물 등 물이 있는 곳 어디서든 옷을 세탁하는 모습을 언급하였다.
또한, 남산에서 서울 거리를 보았을 때 백의를 눈으로 착각하였다고도 언급하며 백의는 ‘여성들의 고된 노동으로 가능한 복색’, ‘여성들은 하루종일 옷을 세탁하는 세탁의 노예’라 표현하였다(Bishop, 2000, pp. 55-56).
이는 앞서 살펴 본 Allen, Savage-Landor와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백의문화는 세탁문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며, 당시 조선 여성들의 예속적 삶과 고된 노동의 결과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그녀는 조선의 조랑말 : 도로와 여관 부분에서 여행길에 본 조선 남성의 모습을 묘사하였는데, “갓과 백의를 갖추고 확고한 걸음걸이로 걷는다.”라 하였고(Bishop, 2000, p. 130), 당시 고종이 왕세자, 대원군, 종친, 백관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아가 청으로부터 독립을 고하는 『독립서고문(獨立誓告文)』과 국가 개혁의 내용을 담은 『홍범14조(洪範十四條)』를 선포하는 엄숙한 예식에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백의와 검은 갓을 정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Bishop, 2000), 백의는 조선 남성들이 예를 갖추어 정갈하게 입는 복식으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또한, Bishop은 당시 조선 내 거래되는 중요한 상품으로 백색 면직물을 첫 번째로 언급하기도 하고, 주요 수입품인 영국, 일본산 면직물 무역 현황에 대해서도 대외 무역 부분에서 전문적인 자료를 토대로 상세히 설명하였다(Bishop, 2000).
기록을 보면 1,200만 명의 사람들 모두가 면직물 옷을 입은 조선의 잠재적인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조선과의 면직물 무역을 일본이 장악한다면 영국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 하여(Bishop, 2000), 당시 조선의 면직물 무역과 백의문화를 연관 지어 인식하였다고 본다.
이는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면직물 산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면직물 과잉생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로 인해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나라는 원료공급지와 판매시장을 개척해야했는데(Institute of Historical Studies[IHS], 1995), 이 같은 국가들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동북아시아 국가에도 진출하게 되면서 영국 국적을 가진 Bishop 또한 조선의 백의문화를 면직물 무역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였다고 본다.
4. Constance J. D. Tayler의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Koreans at Home)』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화가로 1894~1901년 동안 조선을 여러 차례 여행한 Tayler(2013)의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Koreans at Home)』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는 ⋯서울 도성 곳곳을 산책했다. ⋯사람들은 ⋯눈처럼 백색인 긴 옷을 나부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long floating robes of⋯snowy white)(p. 111).
한국의 남성이 게으르다면 그들의 아내는 근면의 진정한 본보기이다. ⋯그녀들은 ⋯밤늦도록 앉아 백색의 긴 포(long white coat)를 빨거나 손질한다. 점잖은 가장이라면 포 없이 외출할 수 없을 것이다(p. 157).
⋯양반, 즉 한국 신사의 의상에는 돋보이는 매력이 있다. 여름에는 백색 면(white cotton) 소재의 평범한 윗도리(jaket)와 바지(trousers)에 속이 비치는 얇은 실크 소재(transparent silk gauze)의 덧옷(robes) 몇 가지를 입는다. ⋯양반이나 관리보다 낮은 계층에 속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백의를 입는다(dress as a rule in white). 하인들은 짧은 저고리(short jaket)와 바지(trousers)만으로 족하며, 농부와 상인들은 육체노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백색의 긴 포를 갖추어 입는 것이 예의다(the long white coat is absolutely de rigueur). 포(coats)는 조각 조각 뜯어서 세탁해야 하며, 나중에 솔기를 꿰매는 것이 아니라 풀로 이어 붙인다. 자세히 보면 포에서 은은한 광택이 나는데, 그것은 옷을 펴서 나무토막을 굴리고 방망이로 두들겨 생긴 것이다. 고요한 저녁이면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서울 도성 곳곳에서 뚜렷이 들린다.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옷은 ⋯윗옷으로 면이나 마소재의 짧은 윗도리 한두 겹을 입고(the upper part consists of one or two short cotton or linen jakets), ⋯솜을 댄 백색 면 버선(padded socks of white cotton)은 남녀 모두가 착용한다(pp. 166-169).
Tayler(2013)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녀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조선 남성의 예(禮)로서의 복식이며, 둘째 백의는 조선 여성들의 희생적인 손질의 결과물로 보았다.
Tayler는 조선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조선 사람들의 복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는데, 특히 양반, 농부, 상인, 여성, 남성 등의 신분, 지위, 성별과 관계없이 조선 사람들 모두가 백의를 착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백의문화를 조선의 특별한 복식문화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그녀는 한국인과 복장 부분에서 남성이라면 외출 시 백색의 포를 착용하는 것은 예의라 하여(Tayler, 2013), 당시 조선 남성들이 복식의 예(禮)로 포를 착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같은 의복의 색은 백색이라 하여 예와 관련하여 백의문화를 보았다고 본다.
또한, 여성화가인 저자는 백의를 눈처럼 나부낀다하며 그림과 같은 묘사를 하기도 하지만, “눈처럼 백색인 긴 포를 아내들은 밤새 손질한다.”라 하고(Tayler, 2013, p. 157), “포의 은은한 광택은 방망이질로 생긴 것”이라 하였다(Tayler, 2013, p. 167).
이는 조선의 백의가 여성들의 희생적인 손질을 통해서만 입을 수 있는 복식으로 여성들의 수고가 없다면 복식을 통해 표현되는 남성들의 예는 지켜질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당시 백의문화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성들의 희생적인 노동으로 지켜지는 조선의 독특한 복색문화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5. J. R. Moose의 『1900, 조선에 살다(Village Life in Korea)』
미국인 선교사로 25년간(1899~1924년) 조선에 거주한 Moose(2008)의 『1900, 조선에 살다(Village Life in Korea)』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남산의 기슭을 걸어 올라가보자. ⋯마주치는 남자마다 모두 백의를 입고(dressed in white)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조선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백의를 입는다. 인부가 자신의 백의(white suit)를 석달 동안이나 갈아입지 않아 그 색이 변했다고 말하는 것도 참말이다. 무슨 상관 인가, 그래도 그 옷은 본래 백색이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p. 74).
⋯포(long dress coat)는 백색 면(white cotton cloth)으로 만드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을 수 있도록 안을 솜으로 대었다(pp. 130-131).
⋯선비는 외관에 매우 신경을 쓴다. 될 수 있는 한, 항상 잘 차려 입고 대체로 깨끗하다. 얼룩이 없는 백색 예복(spotless robes of white)을 입거나 거미집 무늬 같은 것이 비치는 하늘색 비단(sky-blue silk of a texture much like that of a spider's web)을 입는데,⋯(p. 142).
⋯세탁은 이 백의의 땅(land of white clothes)에서 여인들에게 아주 수고스러운 일이다. ⋯깨끗해질 때까지 방망이로 두들긴다. ⋯그런 후 다림질을 하는데, ⋯방망이로 두들기면 옷은 부드러워질 뿐 아니라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광택을 갖게 된다. 다듬이질이 끝나면, 보통의 면(common cotton)들은 고운 아마포(fine linen)의 모습이 된다. 조선에서 많은 밤을 보내본 사람이면 밤새도록 들려오던 다듬이 방망이의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하는 소리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음은 어느 가련한 여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자신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려고 부지런히 팔을 놀리고 있음을 말한다(p. 163).
옷감장수는 외제 물품을 많이 파는데, 그에 대한 수요는 아주 많다. 전에는 이 나라에서 사용된 모든 베가 집 안에서 만들어졌다. 아직도 많은 옷감은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지만, 지금은 훨씬 많은 옷감들이 영국,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으로부터까지 수입된다. 주로 여러 등급의 백색 면직류들(white cotton sheeting)이다(p. 200).
Moose(2008)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조선은 백의의 땅(land of white clothes)이며, 둘째 백의는 여성들의 노고로 가능한 복색으로 보았고, 셋째 백색 포의 소재는 면직물이라 하였다.
Moose는 선교사인 그의 직업상 선교지인 조선으로 파송되기 전 조선에 대한 연구를 선행했을 것으로 보여지며, 파송된 이후에는 조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세상에 전달하고자 조선 사람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생활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직접 보고 겪으며 습득, 축적한 지식을 토대로 조선의 백의문화를 이해하였고 조선 사람들의 백의 선호로 지켜온 고유한 문화임을 간파하였으며, 조선을 가리켜 ‘백의의 땅’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는 미국공사관 부속 의사이자 의료선교사로 선교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내한하였지만, 이후 외교관으로 지내며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깊이 경험하지 못한 채, 이론적 지식에 국한되어 백의문화를 상복제도와 관련하여 본 Allen과 달리 조선의 백의문화를 바르게 이해하였다고 본다.
또한, Moose는 여성 부분에서 당시 조선 여성들의 일상생활의 일부분이었던 세탁문화에 대해 언급하며 세탁과정과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백의의 땅에서 여성들에게 세탁은 아주 수고스러운 일"이라 하였다(Moose, 2008, p. 163).
이는 Allen, Savage-Landor, Bishop, Tayler와 같이 고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백의문화를 이어온 우리나라 사람들과 주변의 동양국가에서는 당연시 되어져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수고로 가능한 백의'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백의문화를 보았다.
그는 백의의 소재와 관련하여서도 기록하였는데, 포의 소재로 백색 면직물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기도 하였고, 상인 부분에서는 “아직도 많은 옷감은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지만, 옷감장수는 영국, 미국, 일본,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직물을 팔며, 주요 판매상품은 백색 면직류들이다.”라 하여(Moose, 2008, p. 200), 백색 면직물이 주요 수입 직물임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Savage-Landor, Bishop과 같이 조선 사람들의 백의 선호를 인식하고, 백의문화를 면직물 산업, 무역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였다고 본다.
6. E. B. Holmes의 『1901년 서울을 걷다(Seoul, The Capital of Korea)』
미국출신의 여행가이자 사진가, 영화감독으로 1901년 조선을 여행한 Holmes(2012)의 『1901년 서울을 걷다(Seoul, The Capital of Korea)』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제물포 항구로부터 수도인 서울까지는 기차로 갔다. ⋯승객은 의심할 바 없이 코리안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백색 포(long white coats)와 버선(spotless wadded socks)을 신고, 갓(tall black hats)을 쓴 양반(gentlman)이었다. ⋯이 승객들은 기차가 출발할 때의 혼잡 속에서도 깨끗한 길고 넓은 옷을 입고 신사답게 행동해서 우리의 감탄과 흥미를 샀다(pp. 28-31).
⋯서울과 서울 근교의 인구 조사에서 총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나타난다. 300만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낯선 옷을 입고(strangely dressed)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생각과 관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유일한 도시 서울의 기차역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리자, 헐렁한 백색 옷(white-robed)을 입은 젊은이가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p. 38).
⋯시내의 전차 궤도는 그들이 좋아하는 잠자리이다. 왜냐하면 레일이 코리안들이 잘 때 목을 쉬게 하는 딱딱한 베개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기진맥진한 유령처럼(white-clad citizens, like prostrate ghosts) 돗자리에 줄지어 누워 있는 것을 본다(p. 118).
우리의 활동사진은 ⋯서울의 주도로를 똑바로 스쳐 지나가자, 코리아 수도의 백의를 입은 주민들(white-robed denizens) 사이로 퍼져 가는 당황과⋯(p. 123).
우리는 시골에서도 백의(immaculate white clothes)를 입은 코리아의 양반을 만났다. ⋯풍채 좋은 이 왕자는 낯선 옷(strange dress)과 환상적인 모자(fantastic gauze-hat)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사교가와 같은 매너를 갖고서⋯(p. 161).
Holmes(2012)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신분, 계층과 관계없이 조선 사람들 모두가 착용하는 낯선 복식이며, 둘째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유령 같은 형상으로 보았다.
그는 양반, 평민 등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이 백의를 입는다고 하였고, “조선 사람들은 낯선 옷을 입고 우리와는 판이한 사고와 관습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였으니(Holmes, 2012, p. 38), 조선의 백의문화는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문화이자 독특한 문화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전차 부분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사용하는 딱딱한 베개와 유사한 전차 레일을 베개 삼아 백의를 입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기진맥진한 유령처럼”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묘사한 것으로 볼 때(Holmes, 2012, p. 118), 온 나라 백성이 입고 있는 백의에 대해 영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또한, Holmes는 조선 사람들의 복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갓, 포, 버선 등으로 구성된 양반의 복식에 대해 설명하며, 착용자의 몸가짐과도 연관하여 시각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특히 백의에 대해서는 제물포와 서울 도착 부분에서 기차를 탄 조선 사람들은 대부분 백의를 입었고, 그중 의관을 갖추어 착용한 양반의 신사다운 몸가짐을 백의와 연관하여 묘사하였다.
7. Georges Ducrocq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ée)』
프랑스 출신의 외교관이자 여행가, 시인으로 약 2주간(1901년 12월) 조선을 여행한 Ducrocq(2001)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ée)』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한민족의 의복은 백색(blanc)이 으뜸을 차지한다. 백색이야말로 순한 한민족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다. 시골에서 보는 저고리(vestes), 바지(pantalons), 신(souliers), 갓(bonnets sont)은 눈부신 백색이며, 도시인들은 모두 펄럭이는 백색포(pardessus de toile flottant)를 입는데, 아내들의 수고로 포는 희고 풀이 빳빳하게 먹여져 윤이 난다. 한양의 거리는 밝은색의 의관 덕택에 매일 축제인 양하며, 조선 사람들도 그것을 잘 안다. 만약에 이들이 백의를 입지(s'habiller en blanc) 않게 된다면, 이들의 쾌활함은 절반으로 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의 겉옷인 하오리를 조선 사람들에게 자랑해도 소용이 없다. 한민족은 항상 눈을 맞은 듯한, 건조한 기후에 쉽게 때를 타는 그들의 아름다운 의관을 고수하고 있다. 고국을 떠나 아무리 먼 나라로 이주해도 한민족은 항상 백의 차림(costume blanc)을 하고 있다. 헤이룽 강가에 ⋯밀가루라도 뒤집어 쓴 듯이 백의를 입은 농부를 보게 되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조선 사람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중국 사람의 어두운 색 겉옷과 러시아 사람의 누빈 외투들 사이에 한민족의 경쾌한 백색 의복(habits blancs)은 눈에 띈다. ⋯이들이 더 이상 백의를 입지 않는 것은 유서 깊은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 백의 차림(livree blanche)을 고수한다. ⋯어린이들의 의상은 온통 희고 무사태평한(nonchalante)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 사람의 의복은 실용적이지 못하다. 겨울 추위가 매서운 나라에서 베(toile)옷을 입는가 하면, 사막도 없는데 아랍 사람들처럼 백의(habits blancs)를 입는다. ⋯겉옷은 거미줄만큼이나 연한 쐐기풀 섬유로 짠 포(redingotes)를 입는다. ⋯이런 복장 때문에 이들은 지체있고 부드럽게 걸을 수밖에 없으며, 서두르지 않는 생활방식이 어울린다. 이 의복은 나름대로의 특색과 독특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조선 사람들은 이 의복을 고수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 속에서도 이들은 백색을 좋아하며, 이 색이 시각에 미치는 즐거움을 아끼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여인에게 밤낮으로 의관을 손질하는 일이 없다면 소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한양은 아주 큰 세탁소와 같아서 다듬이 방망이질 소리가 멎는 일이 없다. 아낙네들은 가장이 훤히 빛나도록 의복을 손질하는 것이다 (pp. 77-79).
⋯한양의 ⋯이런 거리 풍경은 햇살을 받아 한층 더 활기차 보인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오가는 백의들은(habits blanes) 햇살을 받아 빛나며,⋯(p. 84).
⋯한양은 ⋯밤이 내리면 초롱이 켜지고,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환영(幻影, fantomes)처럼 보이는 놀라운 밤의 세계가 시작된다. 가물거리는 큰 초롱불빛을 받아 괴상해진 모자(chapeaux)와 백의(habits blancs)는 대단한 효과를 갖는다(p. 91).
⋯명동의 대성당(명동성당) ⋯백색 그림자들(ombres blaches), 색색깔의 치마들, 누구나 곱게 차려입고 성당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더 볼 만한 것은 성당 안의 정경이다. 백색 포(tuniques blanches)를 입은 남자들이 한쪽에, 또 다른 한쪽에는 구름같은 모슬린 미사보를 쓴 여신자들이 앉아 있다. ⋯이 백색 그림자 같은 사람들과 들을 때의 느낌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며,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pp. 126-127).
한양의 사대문 밖 들판은 아름답다. ⋯움직이는 백의(habits blancs)와 소를 끌고 가는 농부들, 그런데 아무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햇빛이 맑고 바람이 가볍게 이는 이렇게 평온한 나라에 사는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다(p. 130).
Ducrocq(2001)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한민족의 표상으로 온순한, 쾌활한, 무사태평한 민족적 기질의 표현이며, 둘째 백의는 여성의 수고로 가능한 복색이고, 셋째 백의를 착용한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환영(幻影)으로 보았다.
Ducrocq는 “조선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도 백색을 좋아하며, 아끼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백의를 입는다.”고 하며(Ducrocq, 2001, p. 79), 백의를 ‘눈부신’, ‘항상 눈을 맞은 듯한’, ‘훤히 빛나는’ 등 시인답게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한민족의 쾌활한 백의’, ‘희고 무사태평한 사람들’, ‘아랍인들 같은 백의’라 하여 백의문화를 조선 사람들의 기질과 연관하여 보았는데, 특색 있고 독특한 효과를 지니는 백의는 조선 사람들의 순한 기질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복색이라 기록하였다.
유럽을 횡단하여 시베리아, 만주를 거쳐 조선에 방문한 그는 조선 사람들의 복색과 러시아, 중국사람들의 복색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백의를 선호하여 러시아, 중국 사람들과 다르게 항상 백의를 입고, 백색은 으뜸 복색이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의 백의문화는 조선 사람들의 백의 선호로 형성된 조선만의 독자적인 문화인 것을 간파하였다고 본다.
또한, “백의를 고수하지 않는 것은 유서 깊은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라 여기는 듯하다.”라 하여(Ducrocq, 2001, p. 78), 조선의 백의가 민족성과도 연관한 것을 인식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백의의 민족적 상징은 이후 일제강점시기에도 이어진다(Kim, 2007).
그 역시도 “조선 여인들은 의복을 훤히 빛나도록 손질하며, 이들의 수고로 백색 포는 하얗고 윤이 난다.”라 하여(Ducrocq, 2001, pp. 77-79), 조선의 백의문화는 여성의 수고로 가능한 것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고대부터 우리나라 전 국민이 인식조차 하지 않고 즐겨 입었던 백의를 통해 여성적 입장을 생각하는 관점은 서양인의 합리적, 이성적, 분석적인 관찰과 사고로 백의를 보았다고 본다.
거리와 성당의 풍경 부분에서 백의를 입은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훤히 빛나며, 환영(幻影)과 백색 그림자, 움직이는 백의, 구름처럼 보인다.'라 하여 시인답게 표현하기도 하며 영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서양의 기독교적 관점에서 백색은 죄 사함을 받은 성결하고 순결한 영적 상징색으로(Bible house, 2009, The new testament Revelation 3:4-5, pp. 401-402) 헐렁하고, 넓은 백의 등도 영적 존재인 천사들이 입은 옷으로서(Bible house, 2009, The new testament John 20:12, p. 183), 조선의 백의를 환상적이고 신비롭게 인식하였다고 본다.
8. Jean De Pange의 『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EN Corée)』
프랑스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저술가로 1902~1903년 조선을 여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Pange(2013)의 『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EN Corée)』에 백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코리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어떤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헐렁한 백색 옷차림(vetus de blancs)의 무사태평한(nonchalants) 코리아 사람들을 보노라면 ⋯땅의 모습은 코리아와 일본이 많이 닮았지만 이상하게도 주민들의 모습은 서로 차이가 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리아 사람들이 1년 내내 입는, 헐렁한 소매가 달린 백색의 면 옷(vetement de cotonnade blanche)이다. 평민 여자들도 치마(jupe)와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아주 짧은 저고리(camisole)를 입는데, 대게는 온통 백색(blanche)이다(pp. 19-20).
⋯이용익은 ⋯전통 의상 차림이었는데, 겨드랑이 아래 부분을 검은색 끈으로 묶은 백색의 긴 포(longue soutane blanche)를 입고 작은 말총 모자(petit chapeau de crin)를 쓰고 있었다(p. 32).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리셉션에서 ⋯프랑스 공사관의 화려한 살롱에서 벌어진 그날 저녁 만찬 ⋯외교관들과 무용수 사이에서 푸른색과 백색의 정장을(costumes blues et blancs) 입은 이용익과 코리아 대신들의 엄숙하고 부자연스러운 태도는 낡은 아시아의 보수적인 정신(l'esprit misonéiste)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p. 89).
Pange(2013)의 기록에서 조선의 백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백의는 조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복식문화이며, 둘째 백의는 조선 사람들의 평온함과 무사태평한 기질의 표현, 셋째 백의를 보수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복식으로 보았다.
그는 조선에 대해 연구하며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일본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 분석하는 과정 중에 조선 사람들이 일 년 내도록 입는 백의를 가장 인상 깊게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기록을 보면 관리, 평민, 여자, 남자 등 신분, 계층, 성별과 관계없이 조선 사람들 모두가 백의를 입고 있으며, 이 같은 조선의 백의문화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눈에 띄는 인상적인 복식문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Pange는 헐렁한 형태의 조선의 백의가 “지중해 연안 사람들을 연상시킨다.”라 하며(Pange, 2013, p. 19), Ducrocq와 같이 조선 사람들의 평온함, 무사태평한 기질과 연관하여 인식하였다.
그는 코리아의 외국인들 부분에서 프랑스 공사관에서 열린 공식적인 행사자리에 전통복식 형태의 백의를 갖추어 입고 참석한 조선 관리들의 모습과 태도를 연관 지어 보수적인 정신을 보여 준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는 프랑스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본 결과로 17~18세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조선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루고, 복식의 형태도 합리적, 실용적으로 바뀐 서양과 달리(Jeong, 1997), 전통의 고수를 지향한 조선의 백의문화를 보수적인 정신으로 인식하였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내한 외국인들은 직업, 방문목적, 가치관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시각을 가지고 조선의 백의문화를 보았으니, 각 저자의 시각을 정리하면 <Table 1>과 같다.
Ⅳ. 결론
이상과 같이 19세기 말~20세기 초 내한 외국인 저서에 나타난 조선의 백의(白衣)문화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각 저자들의 시각을 살펴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의 백의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내한 외국인들은 H. N. Allen, A. H. Savage-Landor, I. B. Bishop, Constance J. D. Tayler, J. R. Moose, E. B. Holmes, Georges Ducrocq, Jean De Pange가 있으며, 이들은 직업과 방문목적, 가치관 등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른 기록의 특징을 보인다.
미국인 H. N. Allen의 경우 초기 방문목적은 미국공사관 부속 의사이자 의료선교사(3년)로서 내한하였고, 이후 외교관(15년)으로 조선에는 18년간 머물렀다.
그의 직업상 선교지 조선에 파송되기 전 조선에 대한 연구와 조선에 머물며 습득한 조선 사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저서 『Things Korean: A Collection of Sketches and Anecdotes Missionary and Diplomatic(조선견문기)』(1908)에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 풍물, 문화, 풍습 등과 백의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A. H. Savage-Landor는 영국인 여행가, 탐험가, 화가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본, 중국을 거쳐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일본,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독특한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1895년)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조선의 각종 체제, 문화적 특징, 복식, 직물 산업 현황 등과 백의를 보는 자신의 견해를 기록하였다.
영국인 I. B. Bishop은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으로 ‘몽골 인종의 중요한 특성 연구’를 위해 조선에 방문하였으며, 조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였고, 『Korea and Her Neighbors(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8년)에 당시 조선이 처해있던 정치적 상황, 문화적인 내용, 조선의 무역 현황, 백의와 관련하여 면직물에 대한 기록을 전문적인 자료와 함께 남겼다.
Constance J. D. Tayler의 경우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화가로 서울과 송도, 진남포, 평양을 두루 다니며 조선을 여행하였고, 『Koreans at Home(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1904년)을 저술하였는데, 특히 조선 사람들의 복식에 관심이 많아 세심하게 관찰하여 직접 그린 삽화, 사진과 함께 사실적인 기록을 남겼고, 그중 백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기록을 남겼다.
J. R. Moose는 미국인 선교사로 25년간 조선에 머물며 선교사역을 하였고, 조선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활동한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Village Life in Korea(1900, 조선에 살다)』(1909년)에 조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조선 내 선교 현황 등과 조선을 ‘백의의 땅’이라 칭하며 각 계층별 복식문화를 언급하기도 하였고, 직물 생산 체제, 수입물품 등과 백색 면직물이 주요 상품임을 기록하였다.
E. B. Holmes는 미국인 사진가, 영화감독, 여행가로 활동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조선에 방문하였으며, 『Seoul, The Capital of Korea(1901년 서울을 걷다)』(1901년)에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건축물, 다양한 계층의 인물사진을 기록과 함께 수록하였고, 복식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모자와 백의에 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Georges Ducrocq는 프랑스인 외교관, 여행가, 시인으로 시베리아, 만주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 탐험하였으며, 『Pauvre et Douce Corée(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1904년)에 조선의 풍경, 예식, 조선 사람들의 기질, 외모 등에 대한 기록과 조선의 복색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백의에 대해서도 시각적, 분석적인 기록을 남겼다.
Jean De Pange의 경우 프랑스인 역사학자, 저술가로 조선에 대해서 자국의 대중들에게 소개하고자 방문하였으며, 『EN Corée(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1904년)에 조선의 모습, 조선과 관련된 나라들과의 이해관계, 문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등에 관한 사진, 기록을 남겼고, 직물 산업에 관해 정치, 경제적 상황과 연관한 전문적인 견해와 백의를 가장 인상적이라 기록하였다.
둘째, 조선의 백의문화에 대한 내한 외국인들의 시각을 살펴보면 직업, 방문목적, 가치관 등에 따라 개인적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백의는 조선 사람들 모두가 착용하는 것이고, 백의문화는 조선과 인접한 다른 동양국가와는 차별된 조선만의 상징적인 문화라고 인식하는 공통적인 시각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저자들이 조선의 백의문화를 여성들의 수고를 통한 세탁문화와 연관지어 보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과 주변의 동양국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백의문화를 인식한 것을 볼 수 있다.
Allen과 Moose는 선교라는 내한 목적은 같았지만, Allen의 경우 조선의 백의문화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이론에 국한하여 상복제도와 관련하여 보았고, Moose는 조선 사람들의 백의 선호로 지켜온 조선의 고유한 복색문화임을 간파하였다.
Bishop 또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평상복으로 입는 백의와 삼베로 만든 상복을 명확히 구분하여 기록하였고, 여성화가인 Tayler와 같이 백의는 조선 남성들이 예(禮)를 갖춰 정갈하게 차려입는 복식으로 보기도 하였다.
Savage-Landor, Tayler, Holmes, Ducrocq는 화가, 사진가, 시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여 조선의 백의를 묘사하기도 하였고, 영적인 시각에서 백의를 보기도 하였는데, 특히 Ducrocq는 서양의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선의 백의를 환상적이고 신비롭게 인식하기도 하였다.
같은 국적을 가진 Ducrocq와 Pange는 백의를 조선 사람들의 민족적 기질과 연관하여 보기도 하였고, Pange의 경우 프랑스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전통적인 성격이 강했던 조선의 백의문화를 보수적인 정신과 연관하여 인식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Savage-Landor, Bishop, Moose 등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변하고 있던 당시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면직물 산업ㆍ무역과 관련하여 조선의 백의문화를 주목하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이 백의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은 공통적으로 ‘한민족(韓民族) 모두가 즐겨 입는 상징적인 민족문화, 여성들의 희생적인 노고와 세탁문화의 결정체’라 인식하고 있었으며, ‘민족적 기질의 표현, 예(禮)로서의 복식, 전통과 보수의 상징, 유령, 환영 등의 영적인 인식, 면직물 산업ㆍ무역과의 연관성’ 등 동양국가에서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서양문화권 저자들의 직업, 방문목적, 가치관 등에 따라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백의 상복설, 염색기술 결핍설 등과 같이 그간 일본에 의해 왜곡되어 온 한국의 백색문화에 대한 인식을 수정할 수 있으니 그 의미가 크다.
본 연구에서는 내한 외국인 저서 중 서양인 저서만을 제한적으로 다루었으며, 앞서 언급된 바, 백의와 관련된 면직물 산업에 대해서는 후속연구로 남기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년 동아대학교 학술연구비 후지원제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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