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하(李端夏) 부인 원삼(圓衫)의 직물 문양에 관한 연구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wonsam textile patterns worn by the wife of Yi Danha (pen name: Oeje), a civil official in the 17th century. The researcher inspected the actual relic in person and confirmed that the base pattern of the textile used on the wonsam and the jig-geum(silk with supplementary gold) tongsu-sueran pattern were arranged in a grid comprising four rows and eight columns. It consisted of 19 types of patterns, including subok characters, peaches, pomegranates, flowers, and treasure. In addition, detailed inspection showed that six kinds of treasure emblems were used on the jig-geum textile displayed on the multicolored stripes. The most important feature of this wonsam is the placement of the patterns, which shows the immense amount of effort of the maker, as the full pattern layout can be seen completely from the front, back, and the sides despite such detailed and complex imagery. However, faults can also be observed in the form of unclear designs, unevenly sized patterns depending on the part, and the use of unusual cutting methods. Such limitations indicate that the weaving technique of the time was not advanced enough to be able to fully realize the painstakingly detailed construction and arrangement of patterns when Yi Danha’s wonsam was being made.
Keywords:
court dress, gold ornament pattern, silk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Tongsu-Seuran, Wonsam키워드:
궁중 예복, 금장식 문양, 직금, 통수스란, 원삼Ⅰ. 서론
이단하 부인 원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1625∼1689)의 부인이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신분으로 입었다고 알려진 유물이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2006). 이 원삼은 1965년에 지정된 중요민속자료 제 4호 ‘이단하 내외분 옷(李端夏內外分옷)’에 포함되어 있다. 17세기 유물로는 흔치 않은 전세품이며 색상과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이 원삼은 직금(織金) 통수스란(通袖膝欄) 형식의 녹원삼(綠圓衫)이며 옷의 앞뒤로 봉황문양의 흉배(胸背)가 부착되어 있어, 왕실에서 내린 하사품으로 추측된다(Bai, 1996). 이단하가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던 1686~1689년(숙종 12~15) 경에 그의 부인도 외명부(外命婦) 1품(品) 정경부인이 되어 착용했던 것 같다.
이 유물은 조선 후기 명부(命婦) 예복 가운데 직금으로 통수스란 문양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통수스란은 옷의 무릎 부분과 화장의 상단 부분에 하는 긴 띠 모양의 장식 문양을 말한다(Kim, 2004). 통수스란은 중국에서 유래한 문양으로서, 요(遼)·금(金)·원(元)·명(明代)의 남녀복식에 두루 사용되었다(Kang, 2019).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통수스란은 명나라에서 조선 왕비에게 하사한 단삼(團衫)의 문양이자(Yejongsilok, 1469; Seonjongsilok, 1477), 명의 사신이 예물로 가져온 옷감의 문양으로서 기록되었다(Danjongsilok, 1452).
그런데 주로 용(龍)이나 기린(麒麟), 봉황(鳳凰) 등을 문양의 주제로 하던 명나라 식의 통수스란과는 달리(Xie, 2012), 이단하 부인 원삼의 통수스란 문양은 주제나 표현 면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조형되었다. 수복문(壽福紋)·도류문(桃榴紋)·화문(花紋)·보문(寶紋)이 격자형(格子形)으로 배열된 도안으로 바탕직을 직조하면서, 통수스란 문양도 이 도안의 행을 순서만 바꿔 직금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근 Lee(2019)의 연구에 의하면, 이단하 부인 원삼의 길에 사용된 금사(金絲)의 배지(褙紙)는 ‘국내에서 생산된 닥섬유를 원료로 초지된 한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 이 원삼의 직금직물이 국내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단하 부인 원삼의 직물 문양은 중국으로부터 통수스란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빌려오되, 조선 후기에 우리 나름의 기호와 원삼의 특징에 맞게 조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단하 부인 원삼에 사용된 문양의 종류가 워낙 많은데다가 문양이 선명치 않아서인지, 이 원삼에 관한 기존의 연구(Bai, 1996; CHA, 2006;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NRICH], 2006)에서 직물의 문양이 모두 규명되지 않았다. 바탕직에 격자형 도안을 사용하고, 바탕직과 같은 도안을 통수스란에 직금하는 방식은 이단하 부인 원삼 이후 왕족들의 원삼과 당의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단하 부인 원삼은 조선 후기 직금 원삼과 당의에 표현된 문양이 기초하는 바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직물에 표현된 문양의 종류와 구성이 기존의 연구보다 보다 명확히 파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자는 2019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Science Center, [CHCSC])의 협조를 받아 이단하 부인 원삼의 직물 문양을 자세히 실견하였다. 이에 연구자가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단하 부인 원삼에 사용된 직물 문양의 종류를 규명하고, 문양의 배치 방식을 밝혀 보고자 한다. 각 문양과 비슷한 시기의 국내외 직물에 보이는 유사한 문양을 제시하고, 문양의 형태와 배치 방식을 도식화 하여 이단하 부인 원삼에 사용된 직물의 문양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이 연구의 목적을 둔다. 이단하 부인 원삼의 직물 문양 고찰은 조선 후기 직금 예복의 직조 수준을 가늠하고, 문양의 조형원리를 연구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Ⅱ. 원삼에 사용된 직물의 문양의 종류
이단하 부인 원삼은 <Fig. 1>, <Fig. 2>와 같이 통수스란에 직금의 장식이 있는 녹원삼이다. 안감으로는 홍색 공단(貢緞)이 사용되었고, 선단으로는 청색 선이 둘러져 있다(CHA, 2006). 겉감으로는 길과 소매에 초록색의 직금단(織金緞) 직물을, 색동으로는 홍색과 황색의 직금직물을 사용했다(Bai, 1996). 한삼은 초기에는 흰색의 운문단(雲紋緞)이었으나 현재는 명주로 대체되어 있는데, 원삼이 전세되어 오면서 보수된 흔적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CHA, 2006). 이 연구에서는 그간 잘 파악되지 않았던 원삼의 길과 소매의 초록 직금단과, 색동의 직금직물에 표현된 문양의 종류를 규명해 본다.
1. 길과 소매에 사용된 문양
이단하 부인 원삼의 길과 소매의 옷감으로는 초록색의 단직물(緞織物)이 사용되었다. 옷감의 바탕문양은 수복문과 7종류의 화문, 도류문, 8종류의 보문이 <Fig. 3>과 같이 4행 8열의 격자형으로 구성되어 반복된다. 통수스란에도 바탕문양과 동일한 종류의 문양이 직금되어 있다.
수복문은 <Fig. 4>, <Fig. 5>와 같이 반듯한 전서체(篆書體) 도안이며, 1행과 3행에 화문(花紋)과 반복되어 있다. 壽자는 밭에서 풍년을 비는 허리 굽은 노인의 자세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福자는 술통의 호(壺) 하부의 둥근 기형(器形)으로부터 만들어진 글자로 충족한다는 뜻을 지닌다(Kim, 1988). 때문에 수복문에는 만복(萬福)을 얻어 귀하게 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인간의 본능적 염원이 담겨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좋은 의미가 있는 문자를 각종 공예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해 왔다. 특히 명나라 때에는 문자문양 중에서도 장수(長壽)를 의미하는 壽자를 가장 중요한 문양으로 여겼다. 그래서 명나라에서는 17세기 전후로 壽자만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壽자의 의미를 보조하는 길상 문양이나 문자를 결합한 문양 직물을 많이 생산했다(Kang, 2019).
장수라는 것은 인류 보편의 과제로, 예부터 장수를 위해 수련(修鍊)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실패를 경험한 뒤부터는 시대적 관념이 수련에서 축복(祝福)으로 옮겨가서(Li & Li, 2013), 福자도 壽자만큼이나 중요한 길상의 제재가 되었다. 때문에 청대에 들어서부터 여러 형태로 도안화된 수복문양이 직물, 복식, 장식품 등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단하 부인 원삼의 수복문도 이와 같은 중국의 장식 경향을 따라 조형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단하 부인 원삼에 사용된 화문은 총 7종류로, 壽福자와 함께 1행과 3행에 반복되어 있다. 본래는 화문을 줄기부터 가지, 잎사귀, 꽃잎, 꽃봉오리를 포함한 절지형(折枝形)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직조 기술이 정교하지 않아 서인지 대부분의 반복구간에 줄기 끝이나 꽃잎 상단의 묘사가 생략되어 있고, 잎사귀의 묘사도 섬세하지 않다.
그래도 3행의 화문은 <Table 1>에 정리한 것처럼 도화(桃花), 연화(蓮花), 국화(菊花), 난초(蘭草) 각각의 특징이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국내외 직물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형의 문양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연화는 특유의 파상형 꽃잎과 연밥의 묘사가 잘 보인다. 유사한 직물 문양으로 사천목씨(泗川睦氏, 1657~1699)묘 출토 천금(天衾)의 연화문을 들 수 있다. 국화의 경우 여러 장의 꽃잎이 중첩되는 모습과 잎사귀의 형태가 명대 직물에 보이는 국화문과 매우 흡사하다. 난초는 사선형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줄기와 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줄기가 다소 굵게 표현되어 문양 식별에 혼선을 준다. 그렇지만 18세기 심익창(沈益昌, 1652~1725) 묘에서 출토된 소창의의 겉감에 있는 문양에 보이는 것처럼 중앙의 꽃잎이 U자로 표현된 난초문 특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도화의 경우에는 문양의 테두리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연구자가 모사하는 과정 중에 다섯 장의 꽃잎과 꽃잎 사이의 꽃받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꽃잎이 다섯 장인 꽃무늬는 조선시대 직물 문양으로 매우 흔하게 보이며, 특히 매화나 행화(杏花)등과 잘 구별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Namkoong, 2017). 그런데 18세기 안동 권씨(安東權氏, 1664~1772) 묘에서 출토된 저고리의 문양에 복숭아 가지가 표현된 사례를 보니, 꽃잎 아래 꽃받침이 있어 이단하 부인 원삼의 도화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근거로 이 꽃을 도화로 가정할 때, 3행의 꽃은 봄-도화, 여름-연화, 가을-국화, 겨울-난초의 사계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사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도안한 문양을 사양화문(四樣花紋) 혹은 사계화문(四季花紋)이라 하는데, 특히 17세기 직물에 많이 나타났다(NRICH, 2006). 이단하 부인 원삼에 표현된 화문이 사계절을 상징하도록 의도 되었다면, 1행의 화문도 각 계절을 의미할 것이다. 예외적으로 국화를 1행과 3행에 두 번 반복한 이유도 계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1행의 국화와 매화(梅花)는 비교적 구별이 쉽다. 국화는 가을을 상징하며 그 모습은 3행과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매화는 겨울을 상징하는데, 다섯 장의 꽃잎과 꽃잎 중앙의 꽃술, 가지가 꺾인 듯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육안으로도 판별이 가능하다. 비슷한 직물 문양으로는 <Table 2>에 비교한 것처럼 동래정씨(東萊鄭氏, 1567~1631)묘 출토 저고리의 매화문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1행에는 두 가지 꽃이 남는데, 특징이 잘 나타나 있지가 않다. Cho(2008)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 직물에 사계화 문양으로는 일반적으로 봄꽃은 모란(牡丹), 작약(芍藥), 도화를, 여름꽃은 연화, 월계(月季)를 사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3행의 꽃과 중복되는 종류를 제외하면 1행의 남은 두 꽃은 모란 혹은 작약, 월계의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
이중에서 월계는 주로 줄기에 가시가 달려있고, 항상 꽃봉오리와 함께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Song, 2011). <Table 2>에 붉은색 원으로 표시한 것처럼 여흥민씨(驪興閔氏, 1567~1631)의 묘에서 출토된 이불깃에 이와 같은 특징의 월계가 표현되어 있다. 1행의 2번째 꽃은 줄기에 가시는 보이지 않지만 꽃 우측에 끝이 뾰족한 봉오리를 표현함으로써 월계를 암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때문에 1행의 4번째 꽃은 작약이나 모란으로 짐작되는데, 보통 홑꽃잎에 갈라진 잎사귀로 표현(NRICH, 2006)되는 작약과는 큰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이 꽃은 꽃잎이 파상형의 곡선을 그리는 모란의 특징과도 많이 비슷하지는 않지만, 모란처럼 꽃잎이 중첩되는 겹꽃을 표현한 것 같기는 하다. 화문 중에서도 연화에 버금갈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모란이 원삼의 문양에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된다. <Table 2>에 비교한 것처럼,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1758)의 직금 통수스란 원삼의 바탕직도 이단하 부인 원삼과 비슷한 수복글자 중심의 격자형 도안인데 여기에 모란이 표현되었다. 이단하 부인 원삼의 화문이 화순옹주 원삼의 모란만큼 섬세하지는 않지만, 꽃 아래쪽 줄기가 Y자로 벌어진 부분은 화순옹주 원삼의 문양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그러므로 여러 정황상 4번째 화문은 모란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사료된다. 이를 바탕으로 1행의 꽃을 봄-모란, 여름-월계, 가을-국화, 겨울-매화로 추정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추정을 바탕으로 <Fig. 3>의 도안을 다시 보면, <Fig. 6>에 표시한 것처럼 도안의 좌우로도 화문의 구성이 사계절을 나타내고 있음이 확인된다. 즉, 좌측에는 봄-도화, 여름-월계, 가을-국화, 겨울-매화, 우측에는 봄-모란, 여름-연화, 가을-국화, 겨울-난초의 사계절 구성이 된다.
석류와 복숭아는 도안의 2행과 4행에 보문과 함께 반복되었다. 복숭아는 천도(天桃)라 하여 장수를 상징했으며, 석류는 열매 속 종자로 하여금 다자(多子)를 의미했다(Jeon, 2015). 문양의 종류는 다르지만, 壽福자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직물에는 다양한 과일문양이 표현되었으나, 도류만을 선택한 것은 1행과 3행의 수복화문의 조합처럼 도류보문의 운율을 맞추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석류와 복숭아는 각각 <Fig. 7>과 <Fig. 8>에서 확인되듯이 한 가지에 두 개의 열매가 맺힌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석류는 세 갈래로 갈라진 꼭지와 과실 안의 씨앗이 비교적 섬세히 묘사되어있다. 복숭아는 점박이 문양이 있는데, Namkoong(2017)에 의하면 이는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1200그루의 복숭아는 포도 색깔의 반점이 있다’라는 설화와 관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문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물 가운데에서도 복되고 길한 기운을 주는 것으로 여긴 것들을 도안화 하여 상징적인 문양으로 활용한 것이다(Cho & Lee, 2015). 직물에 쓰이는 보문으로는 일상의 기물에 길상 의미를 담은 잡보문(雜寶紋)과, 불교 교리를 담은 팔길상문(八吉祥紋), 여덟신선의 물건을 도안한 암팔선문(暗八仙紋)이 있으며, 이중에서 2~10개 정도를 골라 배열되었다(GPM, 2016).
이단하 부인 원삼의 보문은 여러 유형의 보문을 포함하고 있다. 보문은 총 8가지로 2행과 4행에 도류문과 함께 반복되었다. 보문은 화문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문양일수록 표현력이 많이 떨어진다. 때문에 국내외 직물과 수본(繡本) 등에 표현된 보문을 비교함으로써 각 보문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도안의 2행에는 <Table 3>과 같이 방승(方勝)-잡보문, 호로(葫蘆)-암팔선문, 보산(寶傘)-팔길상문, 서보(書寶)-잡보문이 사용되었다. 방승은 금전지 모서리에 구름을 동반한 형태로 오른쪽 끝에는 여의형의 운두가 연결되어 있다. 방승의 조형은 안동권씨(安東權氏, 1664~1722) 묘에서 출토된 원삼의 선단에 표현된 것과 매우 비슷하지만, 이단하 부인 원삼과 같이 여의형의 운두가 연결된 조형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호로는 병 상단에 卍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주위에 구름이 펼쳐지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유사한 문양으로 청대 마갑(馬甲)에 표현된 호로문양을 들 수 있다. 보산은 재단하며 잘려나간 경우가 많아서, 온전히 표현된 구간을 찾기가 특히나 어려웠다. 전체적인 형태는 산(傘) 주위로 구름이 둘러싼 모습이며, 그 외곽선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유물로는 권우(1610~1675)묘 출토 폐슬(蔽膝)의 자수문양이 있다. 2행의 마지막 보문은 서보로서 책의 주변을 구름이 감싸는 모습이며,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 홍장삼(紅長衫) 수본에 그려진 문양을 유사한 문양으로 제시한다.
4행에는 <Table 4>처럼 폭보(輻寶)-잡보문, 서각(犀角)-잡보문, 호로-암팔선문 및 산(山)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쓰였다. 폭보는 두루마리 형태의 책과 그 옆에 卍자가 조화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는 안동권씨 묘에서 출토된 저고리의 문양처럼 글자 없이 책의 형태로만 표현된다. 서각은 두 개의 뿔이 교차한 형태로 사천목씨의 치마감에 표현된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이단하 부인 원삼에도 표현되었다. 4행의 호로는 2행과는 다른 모습으로 청대 직물 문양 중 도교의 보문으로 표현된 호로문과 비슷한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4행의 마지막 보문은 그 종류가 무엇인지 형태만으로는 잘 식별되지 않지만, 세밀히 관찰한 결과 산과 파도, 서각, 구름이 합쳐진 모습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이러한 문양의 조합은 보통 흉배의 하단에 위치하는 삼산(三山)에 자주 등장한다. 가장 오래된 흉배 관련 유물인 경술년(1790) 당의 흉배 본 하단에 그려진 삼산과 비교해보면, 문양의 표현이나 위치가 정확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문양의 조합이 상당히 비슷함을 확인할 수 있다. 산을 직물 문양으로 표현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흔한 예는 아니지만, <Fig. 9>에 예로든 것처럼 명만력제(萬曆帝, 재위 1572년~1620)의 정릉(定陵)에서 출토된 직물 중에는 삼산이 문양으로 쓰인 사례가 있고, 청대 직물 중에도 <Fig. 10>처럼 산의 문양을 표현한 예가 있어 이단하 부인 원삼의 문양도 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2. 색동에 사용된 직물의 문양
이단하 부인 원삼의 좌우 소매 끝에는 홍색과 황색의 색동이 달려있다. 두 색동은 색상만 다를뿐 <Fig. 11>, <Fig. 12>와 같이 여섯 가지 보문이 격자형으로 구성된 동일한 문양의 직물로부터 한줄씩 재단된 것이다.
문양의 종류는 <Table 5>와 같이 왼쪽부터 보병(寶甁), 법륜(法輪), 연화·반장, 금강저(金剛杵), 여의(如意), 방승으로 추측되는데 확실치는 않다. 이러한 조형은 조선시대 직물에 사용된 일반적인 보문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의 보문이 표현된 유물로 대흥사에 소장된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의 금선단(金線緞) 가사(袈裟)인 <Fig. 13>이 있기는 하나, 이 원삼의 색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문양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또한 색동의 직금 문양은 통수스란 문양보다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길과 소매의 초록 직금단에서 보이는 문양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필자는 이전의 연구(Kang, 2019)에서 수입된 원단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소매와 길에 사용된 보문에도 일반적이지 않은 문양의 조합이나 표현이 보이고 있으므로, 소맷감의 출처가 규명되기 위해서는 향후 보다 과학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Ⅲ. 원삼에 사용된 직물 문양의 배치
앞서 살펴본 기본 도안 <Fig. 3>이 소매와 길에 배치되어 예복 전체의 조형을 완성하는 방식과 색동의 직금 문양이 배치된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길과 소매의 문양 배치
이 원삼의 전체적인 치수는 앞길 117cm, 뒷길 127cm, 화장 105cm, 품 48cm 이다. 이단하 부인 원삼의 길과 소매에 사용된 초록색 바탕직 문양은 격자형의 도안이기는 하지만, 문양의 크기는 균일하지 않다. 바탕직물의 문양은 <Fig. 3>의 도안을 기본으로 하는데, 문양이 8열이나 되는 광폭의 직물을 직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도안이 <Fig. 14>, <Fig. 15>처럼 두 폭으로 나뉘었다. 이를 각각 A, B패턴으로 부르고자 한다.
A, B 두 패턴은 4행 5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A패턴의 끝 2열과 B패턴의 앞 2열의 문양이 중복되어 있다. 기본 도안은 8열인데, 4열씩 나누지 않은 이유는 길 바로 옆에 붙는 소매의 폭이 커서 5열의 문양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Fig. 16>에 나타낸 것처럼, 항상 도안 A는 1열부터 5열의 방향으로, B패턴은 5열부터 1열의 방향으로 정렬되는 방식으로 기본 도안 <Fig. 3>이 완성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각각 재단된 옷감은 전개도 <Fig. 17>에 표시한 것처럼 B-A-B-A-B-A 패턴의 순서로 놓이게 된다. 뒷길의 문양도 앞길의 문양과 동일한 순서로 배열된다. 이단하 부인 원삼을 펼쳐놓고 보면 길과 소매의 직물은 어깨선을 중심으로 AB 패턴이 앞뒤로 연결되어 있다.
이단하 부인 원삼은 앞면에는 통수 ①과 스란 ②가 직금 되어 있고, 뒷면에는 ①, ② 외에도 허리부분과 배래에 각각 ③, ④의 직금 문양이 있다. 편의상 이 문양을 란 ③, 란 ④로 지칭하고자 한다. 직금 된 문양도 기본 도안 <Fig. 3>의 문양들로 구성되었지만, 직금 한 위치에 따라 행의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 직금 문양은 예복의 전체적인 비율을 고려하여 스란 ②와 란 ③은 5행으로, 통수 ①과 란 ④는 그 절반 정도인 2~2.5행을 의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통수 ①도 본래 5행으로 직조되었으나, 어깨선에서 반으로 접혀 2.5행이 되었다. 전개도 <Fig. 17>에 표시한 직금 문양 ① ~ ④의 패턴을 <Table 6>으로 정리하였다.
①~③의 문양은 기본 도안 <Fig. 3>에 도류보 문행을 한 줄 더 추가한 5행 5열의 구성이다. 통수문양 ①은 골선에 도류보문행을 두고 앞뒤로 수복화문행을 두 줄을 배치하였다. 스란 ②는 <Fig. 3>의 기본 도안 중 두 번째 도류보문행을 가장 윗줄에서 반복했다. 란 ③의 경우, 중심선 우측에 사용된 A패턴에서는 마지막 줄의 도류보문행을 가장 윗줄에서 반복하고, 중심선 좌측에 사용된 B패턴에서는 <Fig. 3>의 도안 두 번째 도류보문행을 윗줄에서 반복했다.
란 ④는 도류보문 한 줄과 壽자와 화문이 반복되는 행이 두 줄로 배치되어 있다. 좌측 소매의 경우 <Fig. 18>에 표시한 것처럼 배래 부분에 약간의 직금 문양이 더 보이는데, 재단상 원단이 약간 말려 올라간 것으로 보이며 도류보문행인 것으로 추측된다. 때문에 이 직금 부분도 재단 전에 2행 이상으로 직조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②~④의 문양은 바탕직 문양이 반복되는 순서 그대로 직금 될 수 있다. 즉, 이 방식대로라면 <Table 6> 란 ③의 A 패턴처럼 도안의 마지막 도류보문행이 가장 윗줄에 한 번 더 반복된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 부분 외의 모든 직금문양이 기본 도안 <Fig. 3>의 두 번 째 행 도류보문을 가장 윗줄에 반복하며 문양 배치에 변화를 주었다.
한편, 이단하 부인 원삼의 깃도 통수 ①의 테두리인 두 줄의 선에 맞추어 직금 되어 있다. <Fig. 19>와 같이 깃의 접힌 선을 펼치면, 우측 깃의 문양으로는 A패턴의 1열이, 좌측 깃 문양으로는 B패턴의 5열이 보여, 깃 역시 <Fig. 16>의 그림으로 설명한 문양 배치의 원칙대로 재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원삼에 표현된 문양을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보면, <Fig. 20>에 나타낸 것처럼 통수 ① 부분을 제외한 앞길의 문양은 총 20행으로 기본 도안인 <Fig. 3>이 총 5번 반복되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앞길보다 10cm 정도 더 긴 뒷길 역시 앞길과 마찬가지로 기본 도안이 5번 반복되어, 앞길과 거의 같은 순서로 문양이 배치되었다. 소매의 경우 통수 ① 부분을 제외하면, 앞면은 기본 도안이 2번 반 반복되어 총 10행의 문양이 사용되었고, 뒷면은 총 9행하고도 배래 부분에 직금 문양이 약간 더 보인다. 소매 앞뒷면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앞뒷면의 문양이 비교적 비슷한 위치에 온다.
그런데 <Fig. 20>에 표시한 것과 같이 이 원삼은 독특하게도 뒷면의 란 ③의 시작선에 재단선이 있다. 저고리나 포를 재단할 때는 일반적으로 앞뒷길을 어깨선을 중심으로 골로 재단하고, 앞길과 뒷길을 따로 재단해 붙이더라도 보통 어깨선에서 봉합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점이다. 특히나 직금 직물의 경우, 직금 문양이 제 위치에 가도록 직조 전부터 설계되므로 이러한 재단 방식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크게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단순히 뒷길 란 ③이하의 부분에 절단이나 오염 등의 손상이 생겼을 경우다. 이럴 경우에 재단선이 잘 감춰지도록 란③의 시작선과 같은 적절한 위치에 직물을 이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의 견해로는 이러한 독특한 재단 방식이 손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문양 배치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핸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처음에 이 원삼의 제작자는 원삼을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문양이 같은 순서로 배치되도록 의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원삼의 뒷면에 앞면과는 달리 란 ③과 란 ④가 추가되었으며, 직금 패턴이 4행 5열의 기본 도안에서 도류보문을 한 줄 더 추가한 5행 5열이라는 점에서 문양의 배치에 변수가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원삼이 전단후장(前短後長)의 형태인 만큼 뒷길이 앞길보다 10cm 긴 까닭에 앞과 뒤의 문양이 동일한 비율로 표현될 수가 없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란 ③이 끝나는 부분에서 란 ④가 시작되도록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 사료된다.
소매의 경우에는 <Fig. 20>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매 앞면보다 소매 뒷면의 문양이 조금 더 크게 직조되어 소매 앞면 10행의 위치에 뒷면 9행이 위치하게 된다. 아마도, 이는 스란 ②, 란 ③과 같이 란 ④의 문양도 도류보문행으로 시작되도록 하여 전체적인 직금 조형에 통일성을 주기 위함이라 추측된다.
길도 <Fig. 20>에 5행에서 20행까지 흰색의 기준선으로 표시한 것처럼, 앞길보다 뒷길의 문양을 더 크게 직조하였다. 이로써 앞뒷길의 문양이 거의 일치하게 되며, 앞길의 문양과 같은 비율로 뒷길을 직조했을 때 뒷길의 문양 패턴이 불완전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길의 경우에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매처럼 뒷면을 적절히 늘려 짜가면서 앞길과 문양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따로 제작한 직물을 이어붙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본 도안을 구성할 때 32개나 되는 많은 문양을 넣다보니, 도안이 반복되는 구간이 적어지면서 문양을 짜임새 있게 맞추기가 어려웠기에 비롯된 것이다. 원삼의 제작자는 문양의 크기와 비율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앞뒷면의 바탕직 문양과 직금 문양을 비교적 균형감 있게 조형하려고 많은 고심과 노력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본래 필요한 부분에만 금사를 넣어 문양을 표현하는 직성(織成)의 방식으로 예복의 문양을 조형하는 것은 직조 전부터 문양의 정밀한 설계가 요구되며 숙련된 기술을 갖춰야 하는 난이도 높은 작업이다. 게다가 이 원삼의 직물 문양의 반복 단위가 적은데다 전체적인 문양 배치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기 때문에, 문양이 잘 맞춰지지 않은 길에 이처럼 이례적인 재단 방법이 고려된 것일 아닐까 생각된다.
2. 색동 직금 문양의 배치
소매 좌우에 위치한 색동 직물의 골선은 <Fig. 21>처럼 어깨선이 아닌 앞 소매의 통수스란 옆에 위치한다. 직금 문양은 이 골선을 기준으로 각기 제 방향을 향해 반복된다. 골선이 어깨선이 아니므로 아마도 직성한 직물이 아닌 기존의 직물을 활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Fig. 22>에 그린 것처럼 원삼의 앞쪽 색동의 직금 문양은 좌우모두 관계없이, 홍색동에 법륜, 연화, 보병이 반복되고 황색동에 금강저, 여의, 반장이 반복된다. 반대로 원삼의 뒤쪽 색동의 직금 문양은 좌우 소매에 관계없이, <Fig. 23>처럼 황색동에 법륜, 연화, 보병이, 홍색동에 금강저, 여의, 반장이 반복되어 있다.
Ⅳ. 결론
이단하 부인 원삼은 17세기 유물로는 드물게 색상과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왔으나 직물의 문양은 외곽선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간 이 원삼에 쓰인 구체적인 문양의 종류와 구성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본 연구자는 유물을 실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단하 부인 원삼의 길과 소매, 색동에 사용된 문양의 종류와 배치 방식을 고찰하였다.
길과 소매의 바탕직에는 19가지 문양이 4행 8열로 구성된 격자형 도안이 반복되어 있다. 기본도안에 포함된 문양의 종류는 수복문, 매화·월계·국화·모란·도화·연화·난초의 화문, 도류문, 방승·호로·보산·서보·폭보·서각·호로·산의 보문이다. 길과 소매의 직금 통수스란 문양은 바탕직의 4열 8행의 격자형 도안에 기초하되, 예복 전체의 장식적인 균형에 따라 기본 도안에서 행을 빼거나 더하여 구성되었다.
예복에 직금으로 통수스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직조 이전부터 문양의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이 원삼은 기본적으로 보는 이의 위치에서 원삼의 앞뒷면 문양이 같도록 계획되었다. 4행 8열의 기본 도안은 문양의 크기와 직물의 폭을 고려하여 둘로 나뉘었다. 도안을 둘로 나눌 때는 재단 때 잘려나가는 부분 때문에 4행 4열씩으로 나누지 않고, 가운데 2열이 겹치도록 4행 5열로 하였다. 4행 5열의 도안은 어깨선을 중심으로 앞뒤에서 연결되며, 각기 제 방향으로 반복되었다. 원삼의 길이 방향으로는 앞뒷면 모두 직금 통수를 제외하고 기본 도안이 총 5번 반복되어 20행의 문양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뒷길이 앞길보다 10cm나 더 긴데도 원삼의 앞뒤 문양을 동일한 순서로 맞추려다 보니 뒷길의 등 부분에서 앞길의 문양과는 다른 비율로 직조된 직물을 이어붙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너무나 많은 문양으로 구성된 기본 도안이 반복되다보니, 반복구간이 적어짐에 따라 앞뒷면의 문양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기 어려워 이러한 독특한 재단방식이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색동에 사용된 홍색과 황색의 직금 직물은 색상만 다를 뿐 같은 문양의 직물이다. 그 문양의 종류는 보병, 법륜, 연화·반장, 금강저, 여의, 방승의 6가지 보문으로 추정된다. 색동에 사용된 보문은 국내외 직물 유물에서 비슷한 문양을 찾지 못했을 정도로 조형이 독특하다. 색동의 직금 문양 역시 격자형으로 도안으로 추정되며, 한 열씩 재단해 소매에 연결되었다.
壽福글자와 보문, 화문, 도류문 등을 조합하여 격자형으로 구성한 도안은 조선 후기 직금 예복에 많이 사용되었으나, 이처럼 많은 문양을 한꺼번에 구성된 사례는 이단하 부인 원삼이 유일하다. 아마도 명부 예복에 사용하는 직금 직물의 문양을 조형하던 초기에는 당시 통용되던 다양한 문양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 많은 길상의 의미를 함축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것을 격자형으로 나타냄으로써 문양간의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원삼의 길과 소매의 바탕문양은 앞뒤로 어느 쪽에서나 같은 도안을 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구성되어 많은 공을 들여 제작한 옷임을 알 수 있다. 본래 직성의 방식으로 예복의 특정한 위치에 문양을 표현하는 것은 일반 직금 직물의 직조보다 정밀한 설계와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 원삼의 뒷길 허리 부분의 재단선은 일반적이지 않은 재단법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로써 직성직물의 설계 오류를 감추고 전체적인 문양 배치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실견을 통해 이단하 부인 원삼의 문양의 배치 방식을 확인하고, 이를 도식화로 제시해서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간행된 유물사진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문양을 도식화로 제시하여 유물 고증과 재현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같은 직금 직물이라도 문양의 표현 면에서 길과 소매에 사용된 초록색의 단직물과 색동의 직물에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 부분에 따라 문양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점 등은 유물 실견만으로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한 사항들은 향후 보다 과학적인 조사로 더 자세히 밝혀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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