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기 동아시아 직물에 표현된 함조문(銜鳥紋) 연구
Abstract
This study is concerned with Hamjomun(銜鳥紋) textiles that were in vogue in international trade in the 7th-9th centuries. At that time, East-West trade was actively carried out through land and sea routes, with textiles at the center of these exchanges. One of the most popular textile patterns of the time was Hamjomun. On a Hamjomun textile pattern, a bird is holding something in its beak, and it is assumed that it was in vogue in Sassanian Persia before being handed down to East Asia. Thus, this study investigates and reveals the historicity of Hamjomun as a textile pattern. This study has significance in that it analyzes the Hamjomun textiles in terms of their expression. This study investigates Chinese and Japanese ancient literature and relics, focusing on Korea. Since it would be difficult to find relics of textiles from the 7th-9th centuries in Korea, this study examines East Asian Hamjomun based on the relics of textiles now held in China and Japan, which is a limitation. This study also examines the Hamjomun aspects expressed with the techniques, such as weaving(織 造), embroidery(刺繡), dyeing(染色), and felting and organizes its types and characteristics. This study focuses on the materials used and pattern compositions to analyze the species of the birds represented, Hamjo objects, edge patterns, and the posture and composition of Hamjo. The influence of the Sassanian Persian style changed the standard design composition of the East Asian style pictorially or lively. On the West textile, birds were mostly displayed holding pearl beads(連珠) in their beaks, while on East Asian textiles, they were displayed characteristically as holding floral twigs(草花) or transformed ribbons(綬帶) in their beaks.
Keywords:
Hamjomun, Hamsujomun, Hwasikjomun, textile pattern키워드:
함조문, 함수조문, 화식조문, 직물 문양Ⅰ. 서론
고대부터 새는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맺어주는 신성한 생물로 여겨져 각종 유물에 주요 문양으로 표현되었다. 다양한 새 문양 중에서도 무엇인가를 물고 있는 모습의 새가 자주 나타나는데, 이를 함조문(銜鳥紋)이라고 한다. 함조문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7~9세기를 전후하여 직물 문양으로 활발히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도 발견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동서 문화 교류의 산물(産物) 중 하나로 여겨진다. 직물뿐만 아니라 동 시대의 벽화 및 회화ㆍ조각⋅도자 등 각종 미술품에서도 함조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함조문에 대해서는 연주문(連珠紋)에 관한 연구(Park & Lee, 2002; Ahn, 2007; Jang, 2016)와 직물의 동서 교류에 관한 연구(Kim, 1987; Kim, 2001; Kim, 2007; Jang, 2020)에서 일부 언급되었을 뿐, 함조문을 주제로 한 연구(Lim, 1986; Sim, 2005; Shin, 2010)는 드물게 확인되며 직물 주 문양으로 함조문을 조망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동아시아 전반(全般)에 걸친 함조문의 유행과 구성 특징에 관해 살펴본 연구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본 연구에서는 7~9세기에 해당하는 동아시아 직물에 표현된 함조문에 주목하여 함조문의 유형과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연구 범위에 포함하는 국가 및 시대는 통일신라(統一新羅, 676~935년)와 당(唐, 618~907년),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년] 및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을 위주로 중국과 일본고문헌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며 중국실크박물관[中國絲綢博物館],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新疆維吾爾自治區博物館], 청해성문물고고연구소(青海省文物考古研究所), 일본의 정창원(正倉院), 나라국립박물관[奈良国立博物館] 소장의 직물 유물을 중심으로 함조문을 분석하고자 한다. 동서 교류가 활발하였던 7~9세기 직물 교역에 대해 살펴보고 직물 문양으로 함조문이 갖는 역사성을 규명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함조문에 대한 이론적 고찰 및 실증적 분석 자료를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함조문 직물의 표현 양상을 분석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고대 동아시아 함조문 직물에서 확인되는 서아시아 양식의 특징과 상징성 및 조형성 고찰을 통해 후대 직물과의 상호 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함조문의 표기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본 연구에서는 중국의 『예문유취』1), 『구당서』2), 『당회요』3), 『신당서』4), 『태평광기』5) 등 고문헌에 표기된 ‘함(銜)’자의 용례를 근거로 하여(Yiwen-Leiju [藝文類聚], 624; Jiu-Tangshu [舊唐書], 945; Tang-Huiyao [唐會要], 961; Xin-Tangshu [新唐書], 1060; Taiping-Guangji [太平廣記], 981), ‘함조문(銜鳥紋)’으로 서술함을 밝힌다.
Ⅱ. 함조문의 기원
한대(漢代, B.C.202~A.D.220년)에 장건(張騫, ?~B.C.114년)이 서역(西域)을 개척함으로써 동아시아와 서역의 직물 교역이 활발해졌다(Sim, 2006). 특히 중국과 로마의 거점으로 사산조 페르시아(Sassanian Persia, 224~651년)의 중계 교역이 활성화되었으며(Jeong, 2013), 육로 및 해로를 통해 활발한 동서 문명 교류가 이루어졌다. 중국과 한국,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Hong, Shin, & Lee, 2011). 함조문 역시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하여 국제 무역을 통해 동아시아에 전해져 직물 문양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함조문은 한(漢)과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치며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함조문이 표현된 각종 유물로 보아,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7~9세기였을 것으로 가늠된다(Shin, 2010).
7~9세기 직물은 주로 경금(經錦) 혹은 위금(緯錦)으로 나타난다. 금(錦)직물은 선염(先染)한 색사를 사용하여 중조직(重組織)으로 제직한 문직물을 말하며, 동아시아에서 경사(經絲)로 직문(織文)하는 경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 경금 제직 기술은 서역으로 전파되었으며 페르시아에서 위사(緯絲)로 직문하는 위금으로 발전되어, 위금이 다시 동아시아로 전해져 경금이 위금으로 대체되었다(Sim, 2002). 위금제직법과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 양식이 도입되면서 7~9세기 동아시아 문직물(紋織物)에는 서역적인 장식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며(Sim, 2006), 일완전 도안의 크기가 커져 더욱 다양한 문양 표현이 가능해졌다(Ahn, 2007). 더불어 834년 흥덕왕(興德王) 복식령을 통해(Samguk-Sagi [三國史記], King Heungdeok of Silla 9 Year)6), 화려한 문양과 다양한 기법의 직물들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에서 직관(職官)에 염색을 관장하던 부서로 염궁(染宮), 찬염전(攢染典), 홍전(紅典), 소방전(蘇芳典),채전(彩典) 등의 기록과 모직물 관계의 일을 맡은 모전(毛典)의 기록이 전한다(Samguk-Sagi [三國史記], 1145)7). 이를 통해 직조 외에도 자수ㆍ염색ㆍ펠트 등을 활용하여 뛰어난 기술로 직물에 문양을 시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테두리 문양으로는 연주문(連珠紋)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주제 문양 소재로 코끼리ㆍ사자ㆍ낙타ㆍ멧돼지ㆍ사슴ㆍ양ㆍ새ㆍ포도ㆍ보화 등 다양한 동ㆍ식물이 사용되었다(Sim, 2006). 당(唐)에서는 771년에 능(綾)이나 금(錦)직물 문양으로 봉황ㆍ사자ㆍ천마(天馬)ㆍ공작 등을 금단(禁斷)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Jiu-Tangshu [舊唐書], 945)8). 화려한 동물 문양을 선호하였으며 그중 날개 달린 동물의 비중이 컸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오가는 자유로운 새를 상서롭게 여겼던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당대 직물에 표현된 새가 어떠한 물체를 부리에 물고 있는 함조의 모습, 즉함조문으로 도안된 것이 다수 발견되어 주목된다. 함조문은 한 마리 혹은 대칭된 한 쌍의 새로 묘사되었으며, 한 쌍으로 나타나는 함조문은 성수(聖樹)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사산조풍의 문양 배치법에서 기원된 것으로 생각된다(Sim, 2006). 이러한 유형은 새 외에 각종 동물을 소재로 한 경우에도 적용되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욱 다양한 조형성을 가지며 변화, 발전되었다.
Ⅲ. 기법별 함조문의 특징
직물에 표현된 함조문은 직조(織造), 자수(刺繡), 염색(染色), 펠트 등의 기법을 통해 시문되었다. 기법별로 나타나는 함조문의 양상에 관하여 살펴보고 그 특징을 파악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1. 직조로 표현된 함조문
국내에서는 7~9세기 직물 유물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에 대한 고문헌 기록을 통해 당시 직물교역을 유추할 수 있다. 463년에 백제 금부직인 정안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전하며(Nihon-Shoki [日本書紀], 720)9), 한(韓)양식의 한금(韓錦)을 제직하여 일본 금부(錦部)의 시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Sim, 2002).
650년에 오언금(五言錦)을 짜서 당에 보냈다는 기록이 전하며(Samguk-Sagi [三國史記], Queen Jindeok of Silla 4 Year)10), 686년에는 하금(霞錦)ㆍ능(綾)ㆍ라(羅)를 짜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Nihon-Shoki [日本書紀], 720)11). 733년에는 당으로부터 서문금(瑞紋錦)을 받고(Samguk-Sagi [三國史記], King Seondeok of Silla 32 Year)12), 869년에는 조하금(朝霞錦)ㆍ대화어아금(大花魚牙錦)ㆍ소화어아금(小花魚牙錦) 등을 당에 보낸 기록이 있어(Samguk-Sagi [三國史記], King Gyeongmun of Silla 9 Year)13), 당과 신라의 직물 교류가 확인된다. 이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의 직물 교역이 활발하였으며 신라의 직조 수준이 당에 견줄 만큼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9세기에 직조로 표현된 함조문은 경금(經錦), 위금(緯錦), 능(綾)직물에 나타난다. 경금으로 제직된 <Fig. 1>은 대조대양문금(對鳥對羊紋錦)으로 투루판[吐鲁番] 아스타나[阿斯塔那] 151호분에서 발견되었으며, 고창국(高昌國) 중광(重光) 원년(620), 당 정관(貞觀) 18년(644) 문서가 발견되어 7세기 직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Zhou, Zhao, & Bao, 2018). 거대한 성수를 중심으로 나무 위에 새 두 쌍, 아래에 양 한 쌍이 배치되었다. 새 한 쌍이 함조문으로 표현되었으며 두 마리가 함께 팔메트(Palmette)로 보이는 초화(草花) 줄기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이러한 일완전 문양을 상하좌우로 대칭하여 문양을 제직하였던 것으로 유추된다. 위금이 크게 유행하였던 당대에도 여전히 경금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일본 정창원(正倉院)에는 나라시대부터 소장되기 시작한 약 9,000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미술품과 문서가 전해지며, 정창원의 유래는 쇼무천황[聖武天皇, 701~756년]이 죽고 명복을 빌기 위해 고묘황후[光明皇后, 701~760년]의 애장품을 동대사(東大寺)에 헌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NRICH], 2018). 『동대사헌물장(東大寺獻物帳)』에는 백제의자왕(義慈王, 599~660년)이 일본 내태신(内太臣)에게 선물한 주자(厨子)와 납물(納物)이 열거되어 있다. 내태신은 후지와라 가마타리(藤原鎌足, 614~669년)로, 쇼무천황의 증조부(曾祖父)이면서 부인 고묘왕후(光明皇后)의 조부(祖父)이기 때문에 의자왕에게 받은 선물이 황실 소장품으로 계승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NRICH, 2018).
<Fig. 2>의 녹지화조문금(緑地花鳥紋錦)은 757년 일본 쇼무천황 일주기 제회 때 번(幡)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Matsumoto, 1984). 주제문으로 연주(連珠)가 장식된 육엽화(六葉花)가 도안되었고 그 사이 배치에 환간(環間) 문양으로 함조문이 사용되었다. 새는 리본 형태로 매듭이 지어져 있는 끈, 수대(綬帶)를 물고 날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문양은 당시 유행을 따르면서 조직은 구식(舊式)인 경금으로 짜여진 것이 특징이다(Matsumoto, 1984). 당시 일본은 조선(造船) 및 항해기술에 한계가 있어 대부분 신라를 통해 당과 서역 물품들을 구입하였으며(Lee, 1995), 동서 문물 교역으로 이와 같이 동서 양식이 공존하는 화려한 직물이 제직되어 널리 유통되어 현재 일본 정창원에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위중조직으로 짜여진 함조문 직물은 7~9세기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위금은 경금보다 문양을 크게 도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널리 애용되었다. 함조문은 대체로 연주나 꽃의 테두리 문양 안에 주제문으로써 배치되었으며, 한 마리 혹은 한 쌍을 이루어 입상(立像)의 자세로 도안되었다. <Fig. 3>의 홍지함수조문금(紅地銜綬鳥紋錦)은 당 시기 것으로 추측되며 직물 잔편으로 전한다. 주제문으로 팔엽화(八葉花) 안에 함조가 구성되었다. 새는 화대(花臺) 위에 서서 우측을 바라보고 있으며 연주 장식의 끈을 문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새 목 뒤에는 두 갈래의 끈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목에 둘러져있던 띠가 일부 생략되면서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문양이 더욱 장식화 되면서 빼곡하게 배치되어 수대의 위치가 새의 발목으로도 이동한다. 직조로 표현된 문양은 일완전 단위의 크기에 따라 도안 표현의 한계가 있으며 문양 세부 묘사에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영향으로 함조문의 조형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경금보다 <Fig. 3>의 일완전 단위 크기가 크며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여 문양 표현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Fig. 4>는 당대 입조문금(立鳥紋錦)으로 보고된 것이며 문양의 일완전을 알 수 없을 만큼 잔편만이 전해진다. 함조문은 한 쌍의 새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서 하나의 함조 대상을 문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함조 대상은 목걸이 형상의 수대로 판단되며, 새 몸에 연주문이 장식되었다. 직물 뒷면에 아랍어 묵서가 전해지는데 현재 이에 대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동서 문화 교섭의 증거임은 분명하다.
능은 능조직으로 짜여진 견직물로, 주자직(繻子織)으로 단(緞)이 일반화되어 사용되기 전에 사용된 직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천마총, 경주불국사 석가탑,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 등에서 발견되었다(Sim, 2002). <Fig. 5>는 백지화조문능(白地花鳥紋綾)으로, <Fig. 2> 녹지화조문금과 같이 쇼무천황 일주기 때 번으로 사용된 것이다. 주제문으로 당풍의 보화문이 도안되었고 그 사이 환간문양으로 함조문이 나타난다. 새가 긴 리본의 끈을 물고 날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부직(浮織)으로 시문되었다. 제작지에 관하여 단언할 수는 없으나 『동대사헌물장』, 『매신라물해』 등의 기록을 통해 한국 혹은 중국에서 직조되어 일본에 수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2. 자수로 표현된 함조문
7~9세기의 자수에 관한 기록은 흥덕왕 복식령을 통해 당시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진골(眞骨)부터 6두품ㆍ5두품ㆍ4두품ㆍ평민까지 남녀 성별에 따라 복식과 옷감의 종류, 사용량, 색상 등을 자세하게 규제하였다(Hong et al., 2011). 진골 여자를 한 예로, 표의(表衣)에 계수금라(罽繡錦羅)를, 내의(内衣)ㆍ반비(半臂)ㆍ고(袴)ㆍ말(襪)ㆍ리(履)에 계수라(罽繡羅)를 금하여(Samguk-Sagi [三國史記], King Heungdeok of Silla 9 Year)14), 직접적으로 수(繡)에 대해 언급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복식 외에 마구 및 가옥 규정에서도 수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Sim & Keum, 2020). 또한 733년 당에게 자라수포(紫羅繡袍)를 받았다는 기록과(Samguk-Sagi [三國史記], King Seongdeok of Silla 32 Year)15), 786년에 당의 사례품 중 압금선수라군의(押金線繡羅裙衣)에 관한 기록이 있어(Samguk-Sagi [三國史記], King Wonseong of Silla 2 Year)16), 당 복식에도 수를 놓았으며 이러한 수제(繡製) 복식의 유입 및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Sim & Keum, 2020).
<Fig. 6> 화식조문자수(花喰鳥紋刺繡)는 라(羅)직물 위에 함조문을 수놓은 것으로서 높이 80㎝, 폭 63㎝로, 새 크기만 40㎝라고 하여 당시 매우 거대한 작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뒷면에 752년 동대사 대불개안식(大仏開眼式)에 사용되었던 것과 동일한 백능(白綾)직물이 부착되어 있어 연대 추정의 단서가 되고 있다. 주제문으로 함조문이 사용되었으며 새는 봉황을 묘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새는 부리에 풍성한 조형된 초화를 물고 서 있으며 새가 밟고 있는 화대와 꼬리에도 빼곡하게 꽃 장식을 하였다. 당시 자수품의 화려함의 정도를 예상해볼 수 있다. 직조로 시문하였을 때보다 자수로 문양을 표현할 때에 더 풍부한 색감과 함께 문양 도안이 가능하며, 함조문 또한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806년에 당시 사찰 창건과 불사(佛事)의 목적인 금(錦), 수(繡)를 금하였다는 기록이 전하여(Samguk-Sagi [三國史記], King Aejang of Silla 7 Year)17), 불교문화와 더불어 수불이 융성하였을 것으로 유추된다(Sim & Keum, 2020). 수불에도 함조문이 나타나며 이는 <Fig. 7> 석가설법도자수(釈迦説法図刺繡)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수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고려불화와 매우 유사하다(Lee, 1995). 여래상 등받이 좌우측에 화대를 밟고 있는 함조문 한 쌍이 시문되었다. 새 두 마리 모두 팔메트 혹은 영기(靈氣)로 판단되는 초화 형상을 각각 물고 있다. Matsumoto(1984)는 이 유물의 기법 및 조형적인 이유로 일본제가 아닌 수입산(당제)으로 판단하였다. 함조문을 비롯한 각종 문양 표현에서 사산조 양식이 다수 발견되어 수불에도 동서 직물 교역이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3. 염색으로 표현된 함조문
동아시아에서 염색을 활용하여 문양을 시문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부터 회염(繪染), 인염(引染), 힐염(纈染) 등의 문양 염색 기법이 사용되었다(Sim, 2002). 7~9세기에는 힐염이 발달하여 교힐(絞纈), 갈힐[臈纈, 납힐], 협힐(夾纈)등이 나타난다.
<Fig. 8>은 개포병풍대(揩布屏風袋)이며 겉에 묵서가 있어 인왕경(仁王経)을 위한 인왕회(仁王会)가 열린 753년 3월 29일에 사용된 병풍을 보관하던 주머니로 알려져 있다(Matsumoto, 1984). 모시 위에 날염(捺染)하는 인염 기법으로 함조문이 시문되었다. 인염은 목판을 조각한 후 염료를 발라 직물에 찍어 바로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문양 구조가 좌우 대칭을 이루어 마치 두개의 판 사이에 염료를 주입하여 염색하는 협힐과 같이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함조문 또한 주제문으로 각각의 초화를 문 함조 한 쌍이 대칭을 이루어 위ㆍ아래에 시문되었다. 그 사이 중앙부에는 새 두 쌍이 상하좌우 대칭을 이루어 하나의 초화를 함께 물고 있는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염색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경우, 보다 회화적인 문양 표현이 가능했으며 함조문 또한 사생적으로 나타난다.
이 밖에 정창원에는 새ㆍ사슴ㆍ양ㆍ코끼리 등이 주제문으로 사용되어 교힐, 납힐, 협힐과 같은 다양한 염색 기법으로 제작된 직물이 전해진다. 이들은 대체로 가운데 성수를 기준으로 대칭으로 표현되었으며 배경에 작은 초화가 어우러지는 구도를 취한다. 사산조 양식의 동물이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회화적인 당풍으로 묘사되어 동서 양식이 융합된 결과물로 판단된다.
4. 펠트로 표현된 함조문
펠트(felt)는 모(毛)섬유를 선염하여 문양에 따라 축융(縮絨)하여 만든 것으로 직조에 의한 직물은 아니나 모직물(毛織物)로서 복식 및 생활용품으로 사용되어 왔다. 펠트가 최초로 출토된 지역은 알타이 산맥 부근 북몽고 지역 등 북방 유목민족이 활동하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Min & Hong, 2008). 우리나라에서는 전(氈)이라고 불리었으며 단색으로 만드는 것은 색전(色氈), 문양을 넣은 것은 채전(彩氈) 혹은 화전(花氈)이라고 하였다(Sim, 2002). 『삼국사기』에는 5두품 수레에 관한 규정으로 전(氈)이 언급되어(Samguk-Sagi [三國史記], King Heungdeok of Silla 9 Year)18), 당시 활발히 사용된 직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사서(日本史書)』에 668년부터 803년 사이에 파견된 45회의 신라 사절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Lee, 1995),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 등의 기록을 통해 당시 일본과 신라의 교역을 엿볼 수 있다. 『매신라물해』는 752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신라 왕자 김태렴(金泰廉)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물품신청서이며(NRICH, 2018), 당시 김태렴 일행 700여 명이 7척의 배를 타고 일본에 왔다는 기록이 전한다(Zoku-Nihon-ki [續日本紀], 797)19). 이때 일본 관료들이 사절단을 통하여 매입한 물품은 모두 122종에 이른다고 하여(NRICH, 2018), 당시 신라 물품이 일본에서 매우 인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신라물해』의 물목 중 비전(緋氈), 화전이 나타나며 이들은 귀족들의 수요에 따른 것이었다(NRICH, 2018). 정창원에 소장된 다수의 색전과 화전 유물 중 일부에 신라산 첩포기(貼布記, 꼬리표)가 부착된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수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유물을 신라에서 수출하였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에 관한 확실성은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Fig. 9> 조문화전(鳥紋花氈)의 중심부에서 함조문이 발견된다. 새는 긴 잎줄기의 초화를 물고 원형을 그리며 날고 있는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새 주변으로 위ㆍ아래에 구름ㆍ산ㆍ초화ㆍ물결 등의 풍경이 묘사되었다. 펠트로 표현된 문양은 자수나 염색과 마찬가지로 직조로 표현하였을 때보다 도안 구상의 제약이 적고 색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문양이 고안되었을 것이다. 잔잔한 자연물 문양 표현과 입상이 아닌 비상(飛翔)의 자세를 취한 함조문의 회화적인 문양 구성법은 사산조 양식과 대비되는 형식으로, 동아시아의 독자적 양식이라 판단된다.
Ⅳ. 함조문의 유형과 특징
어떠한 물체를 물고 있는 새, 즉 ‘함조(銜鳥)’는 각종 문헌에서 함수조(銜綬鳥ㆍ含綬鳥), 수대조(綬帶鳥), 화식조(花喰鳥ㆍ花食鳥), 색조(咋鳥) 라고도 표기되었다. 이들 문양은 넓게 함조문으로 통칭될 수 있으며 함조의 대상에 따라 리본 형태나 연주장식과 같은 긴 끈 형상을 문 것은 ‘함수조문(銜綬鳥紋)’으로, 꽃이나 나뭇가지를 문 것은 ‘화식조문(花喰鳥紋)’으로 구분된다. 앞서 살펴보았던 직물들을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소장된 유물에 표현된 함조문의 유형을 분류하여 나타나는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Table 1>은 문양을 표현하기 위해 직물에 사용된 기법, 소재로 사용된 새 종류와 함조 대상, 문양 구성 등을 정리한 것이다.
1. 함조문의 소재
함조문에서 소재로 사용된 새 종류는 <Table 1>과 같이 수조(水鳥)ㆍ공작(孔雀)ㆍ수리[鷲]ㆍ봉황(鳳凰)ㆍ앵무(鸚鵡), 종류를 단언하기 어려운 작은 새[小禽] 등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직물에서 새가 수조로 표현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였고 경전인 『아베스타(Avesta)』에 카르십타(Karshipta)라고 불리는 새가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법을 지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Darmesteter, 1880). 이어지는 주(注)에서 카르십타는 새들의 왕이라 하였고, 빛의 화신이며 신의 목소리라고 설명하였으며(Darmesteter, 1880), 이는 거위나 오리와 같은 수조로 해석된다(Shin, 2010).
공작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꼬리가 특징이며 다양한 방면에서 문양의 모티브로 선호되었다. 인도 신화에서 공작은 중요한 상징물로 여겨져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지식의 여신인 사라스바티(Saraswati)는 승물(乘物) 바하나(Vahana)로서 나타난다(Monthly Art [MA], 1999). 수리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와 인도 신화에서는 태양과 연관된 성스러운 새로 등장하며, 그리스 신화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천둥과 번개, 폭풍과 관련된 것을 상징하였다(Kim, 2012). 이러한 상징성을 까닭으로 사산조 문양에 수조ㆍ공작ㆍ수리 등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동아시아에서는 점차 다른 새 종류로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8세기 무렵부터 봉황, 앵무와 함께 작은 새 종류가 함조문 소재로 사용되어 직물에 시문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은 일찍이 고대부터 동아시아에서 신조(神鳥)로 여겨져 삼국시대 유물에서부터 문양 소재로 사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함조문의 구조적인 양식은 취하되 핵심 소재는 달리 사용하였던 것이다.
함조문 도상은 단순한 형태의 끈을 문 새에서 시작되어 점차 장식적인 대상을 문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7~9세기 함조문에서 함조의 대상은 <Table 2>와 같이 수대(綬帶), 연주(連珠), 초화(草花) 등으로 나타나며 기법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인다.
단순한 형태의 띠를 물고 있는 새 문양이 함조문의 시원로 생각되며, 이는 사산조 페르시아에 그 연원(淵源)이 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왕관 역할을 하는 머리에 매는 끈, 다이아뎀(Diadem)을 신성시 여겼다. 신이 왕에게 신권을 줄 때 그 상징이 끈이었으며 왕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Park & Lee, 2002). 또한 수(綬)는 목숨 수(壽)자와 동음이기 때문에 장수를 뜻하였다(Shin, 2010). 수대는 새가 물고 있는 대상뿐만 아니라, 새 목에 둘러진 장식으로도 나타난다. 수대를 물고 있는 함조문, 즉 함수조문은 높은 신분과 부귀, 장수 등을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순한 형태의 끈에 연주 장식이나 술 장식이 추가되었다. 아케메네스(Archaemenes)와 파르티아(Parthia) 왕조에서 진주는 금과 보석보다 더욱 귀하게 사용되었다(Jang, 2016). 연주는 불교와 관련하여 불주(佛珠)로 보기도 하며 생명력을 의미하는 태양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Ahn, 2007). 이러한 상징이 담긴 연주 장식은 진주가 줄줄이 꿰어진 모습이나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배치된 모습으로 도안되었다. 연주가 수대와 같은 끈 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수(綬)로 인지되며, 연주를 문 함조문 또한 함수조문으로 분류된다. 한편 수대는 점차 매듭과 술 장식으로 이루어진 유소의 모습으로 변화, 발전되었다. 정창원 소장 유물에서 결대(結帶)를 문 함조문이 다수 발견된다.
초화 문양 표현은 고대 팔메트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팔메트 문양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집트의 연꽃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과 서아시아의 대추야자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체로 후자 쪽의 견해가 통용되고 있다(Je, 2010).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삼엽(三葉)의 초화가 문양 소재로 사용되었으며 점점 현실적인 꽃과 풀, 나뭇가지와 같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초화를 문 함조문은 화식조문으로 분류되며 7~9세기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동양에서는 수대와 연주에 관련된 왕권과 부귀 등의 상징성이 주목되지 않았으며(Shin, 2010), 길상(吉祥)ㆍ생명ㆍ종교적 상징이 담긴 초화를 더 선호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초화는 무한히 다양한 조형이 가능하여 제작자들에게 보다 큰 영감(靈感)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2. 함조문의 구성
함조문은 테두리가 있는 경우, 테두리가 없는 경우, 환간 문양으로 사용된 경우 등 세 가지 유형으로 <Table 3>과 같이 확인된다.
다수의 함조문 직물편이 위금으로 나타나며 거대한 문양 도상이 확인되며 이때 테두리 안에 함조가 주제문으로 사용되었다. 테두리는 연주ㆍ화엽(花葉)ㆍ띠ㆍ만초(蔓草) 등으로 도안되었다. 연주의 골조(骨組)를 시작으로 각종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팔엽화 등의 꽃 문양으로 변화되었다. 만초문ㆍ회오리문 등의 이중 구성으로도 나타난다(Ahn, 2007). 사산조 양식이 당 양식의 영향을 받아 더욱 화려해지는 경향으로 판단된다.
테두리 문양을 도안하지 않은 경우도 확인된다. 직조에서는 환간 문양으로 사용되었을 때가 그러하며, 자수나 염색, 펠트의 경우 주제문으로 사용될 때에도 테두리가 확인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는 문양을 도안함에 있어 회화적⋅사생적 묘사를 더 선호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가늠된다.
함조로 표현된 새의 자세와 구도는 <Table 4>와 같이 나타난다. 함조문은 서 있는 모습의 입상(立像)으로, 날고 있는 모습의 비상(飛翔)으로 나타난다. 초기에는 정형화된 구성으로 나타나 당시 직물 유행을 대표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새는 단독으로 혹은 쌍을 이루어 구성되었다. 단조(單鳥)로 구성된 경우 대부분 우측을 바라본 채 입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연주ㆍ화엽ㆍ만초 테두리 안에 주제문으로 나타난다. 만초 테두리 안에 좌측을 바라보며 날고 있는 봉황 함조문은 당 양식으로 변화된 예로 보인다.
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본 모습의 쌍조(雙鳥) 또한 크게 유행하였던 문양으로, 두 마리가 하나의 함조 대상을 함께 문 채로 나타난다. 단조와 마찬가지로 주제문으로 사용되었으며 테두리 문양으로 연주ㆍ화엽ㆍ띠ㆍ만초 등이 사용되었다. 염색과 펠트에서도 쌍조의 함조문이 확인되며, 기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어 각종 공예품에서 이와 유사한 문양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 문화권 전반에서 쌍조의 함조문을 선호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정창원 소장 유물에서는 쌍조 및 비상의 함조문이 다수 나타난다. 동아시아에서는 사생적 표현을 선호하였으며 자유로운 새의 모습을 강조하여 함조를 비상의 자세로 묘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Ⅴ. 결론
7~9세기에는 육로 및 해로를 통해 활발한 동서 문명 교류가 이루어졌다. 직물이 그 중심에 있었으며 당시 유행하였던 문양 중 하나로 함조문이 전한다. 국내에서는 직물에 표현된 함조문을 조망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으로, 본 연구를 통해 함조문 직물이 갖는 조형성 및 역사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당시 직물 국제 교역과 함께 유행하였던 함조문에 관하여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고문헌과 유물을 고찰하였으며 함조문의 표현 양상을 분석하였다.
새가 무엇인가 물고 있는 문양인 함조문은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하여 동아시아에 전해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직물과 더불어 각종 미술품에 시문되어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7~9세기였을 것으로 가늠된다. 7~9세기에 금(錦)직물 제직이 발달하여 위금제직법의 도입과 함께 일완전 단위의 크기가 커지며 다양한 문양 표현이 가능해졌다. 사산조 페르시아 양식이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어 문직물에 서역적인 장식요소가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와 함께 함조문 직물이 활발히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조문은 직조ㆍ자수ㆍ염색ㆍ펠트 등의 기법을 통해 표현되었다. 직조로 표현된 함조문은 위금에 도안된 경우가 대다수이며 일부 경금ㆍ능직물에서도 나타난다. 이른 시기의 함조문은 정형화된 양식으로 테두리 문양 안에 입상의 자세를 취하며 한 마리 혹은 한 쌍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구도는 사산조 양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며, 동아시아에 전해져 다양한 유형의 테두리 문양과 비상의 자세로 변형되었다.
함조문의 소재로써 새 종류도 다양하게 나타나 봉황ㆍ앵무ㆍ작은 새로 대체되었고, 함조 대상은 서역에서 애용된 연주가 아닌, 초화 혹은 변형된 수대가 더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역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인식과 풍습 등의 차이로 인해 문양 선호도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또한 전체적인 문양의 조형에서 동아시아는 보다 회화적ㆍ사생적 표현을 선호하여 자유로운 새 모습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산조 양식을 일부 취하면서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양식을 수립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7~9세기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직물 교류에 주목하여, 한국이 동아시아 교역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현재 정창원에 소장된 다수의 유물 또한 우리나라를 통해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고 짐작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7~9세기 직물 유물을 찾아보기 어려워 중국과 일본에 소장된 유물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함조문을 살펴보는 데에 그쳤다는 한계점이 있다. 향후 동아시아 간의 유물 실견 및 연구 교류가 활발해져 과학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본 연구가 직물 문양의 해석 및 동서 문화 교류 및 유물 연대 감정 등의 연구에 기초 자료로써 도움이 되길 바란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석사학위 청구논문 중 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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