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사전적 정의 검토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definitions of hanbok from the following dictionaries: Standard Korean Language Dictionary;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Encyclopedia of Korean Folk Culture; A Dictionary of Korean Traditional Apparel; Oxford English Dictionary; The Collins Dictionary; Urban Dictionary, and one from a webpage on Korean culture promotion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f the Republic of Korea (ROK). The examination brings to light the problematic wordings and further discusses why they are problematic. Describing the attributes of hanbok as timeless and static, the definitions do not reflect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hanbok in dynamism. The discussion contends the following. First, hanbok is a collective noun that refers to the category of traditional clothing of Korea, not only a costume for men and women. Second, given that the term hanbok was coined at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its concept and historical timeline are part of Korea’s modern fashion history, not that of pre-modern, from the ancient to Joseon (1392-1910). Third, the trajectory of hanbok shows its evolution in the contexts of being modernized, hybridized, and culturally authenticated, rather than remaining “traditional” and “authentic.” Fourth, hanbok has served as ethnic dress for ethnic Koreans across the globe and national dress of the ROK. Fifth, as the ROK increasingly becomes a multi-ethnic country in the 21st century, the word “uri (lit. our/we),” which is commonly used to describe the ethnic Korean community as a single entity, should be changed to a third-person perspective. Sixth, the elements of clothing that are subject to change, such as stylistic characteristics, occasions for wearing, and construction methods, must be inclusively described. The arguments presented here are anticipated to contribute to revision of the definitions of hanbok in dictionaries and conceptualization of hanbok as an academic keyword in dress/fashion studies.
Keywords:
cultural authentication, dictionary definition, ethnic dress, hanbok, invented tradition, national dress키워드:
문화 고유화, 사전적 정의, 민족복, 한복, 전통의 발명, 국복Ⅰ. 서론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복식사 연구는 이여성(李如星, 1901–?)의 조선복식고가 출간된 1947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75년의 역사를 축적해 왔다. 그동안 남한 사회가 이룬 고도의 경제성장과 사회 문화적 발전은 복식과 패션의 변천에 여실히 반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한복에도 그러한 변화와 발전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해방이후 민족국가를 건설하면서 한복은 한국인과 한국을 대표하는 복식으로 자리매김되었고, 한복의 스타일, 생산 구조와 유통 시스템, 착용 상황 등이 변모하였다. 대학의 의류학 관련 학과에서는 한복 구성과 한국복식사를 반세기 이상 가르치며 이 분야의 학문 영역이 형성되어 연구 성과의 교류를 위한 학회가 설립되었고,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개설서와 참고서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학문 분야의 중심에 있는 핵심 용어인 ‘한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학계에서 시도하지 않았음은 안타까운 일로서 이에 대한 기초작업이 지금이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학문 분야의 핵심 용어로서 한복의 정의는 그 학문 분야를 둘러싼모든 관련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치므로 학자적 여론에 기초한 깊은 학술적 고민을 요구한다.
학문 영역의 키워드로서 ‘한복’을 정의한 시도가 없었던 가운데 국어사전이나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가 여과없이 복식사의 개념적 기초로 활용되었다 (Kim, Yum, & Lee, 2022; Kim, 2010). 본 연구자는 기존의 사전에 서술된 한복의 정의가 복식사적 견지에서 고찰되는 한복의 실체와 부합하지 않는 문제적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한 사전의 정의가 학계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학문 연구의 개념적 기초로 이용되는 것은 그 분야의 연구자에게도 심각한 일이지만,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 인식으로 이어져서 최근 년간 집단적 오해를 초래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사전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를 분석하여 그 문제적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논지는 아래 항목들의 검토로 전개하였다. 첫째, 한국복식사 연구의 개념적 기초로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 서술된 한복의 정의가 그대로 쓰인 예를 소개한다. 두 번째 연구 문제로는 한국어 사전, 복식사전, 한국 정부의 홍보물, 영어 사전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에 재고가 필요한 표현을 검토한다. 검토한 자료는 국립국어원 편찬 표준국어대사전 (이하 ‘국어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복식사전, 한국복식문화사전, Oxford English Dictionary (이하 ‘OED’), The Collins English Dictionary, Urban Dictionary, Merriam-Webster Dictionary, The Chambers Dictionary, Macmillan Dictionary, Longman Dictionary 등이다. 셋째, 검토를 통해 도출된 일곱 가지의 논점을 언어학적, 사회학적, 문화인류학적, 복식사적으로 접근하여 논의한다. 이 검토와 논의는 복식과 패션을 둘러싼학문 영역의 핵심 키워드로서의 ‘한복’의 개념과 고찰 범주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한국에서 발전한 복식과 패션의 양상을 탐구하는 시각의 전환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국내 및 세계의 사전에 서술될 ‘한복’의 정의 및 정의 개정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지금은 지식의 세계화로 한복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과 교육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Ⅱ. 한복의 정의에 관한 기존의 논의
1. 『한국복식문화사』
2022년에 출간된 『한국복식문화사』는 2018년에 제작된 K-MOOC의 온라인 강의 ‘한국복식문화사’를 기초로 보강한 저술이다. 이 책의 1장은 ‘한국복식이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저서에서 펼칠 ‘한국복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을 하면서 ‘한복’과 ‘한국복식’이 약간의 상이한 개념임을 명시하였다(Kim et al., 2022). 비록 두 페이지에 걸친 짧은 서술이지만 이는 한국복식 학문 영역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내용을 언급한 선구적 시도이다. 그러나 결코 짧고 단순하게 언급할 수 없는 복잡성과 복합성을 가진 깊은 주제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 주제들은 한국복식의 정의와 한국인의 개념, 연구 대상으로서 ‘복식’의 범주, ‘한복’의 정의, ‘한국복식’과 ‘한복’의 개념 구분, 그리고 전통한복, 생활한복, 개량한복, 신한복의 개념 정의 등이다. 이 글의 논지인 ‘한복의 사전적 정의’에 관련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면, 저자들은 ‘한복’과 ‘한국복식’의 개념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다고 하면서 둘을 구분하였다. ‘한국복식’을 ‘한국인이 착용한 옷과 장신구’로 정의하고 구석기시대부터 21세기까지의 시간적 범주로 한국복식문화사 책의 체계를 구성하였다. ‘한복’은 국어사전에 기술된 한복 정의 그대로 한복은 ‘조선시대의 옷’을 칭하며 ‘현대 한국인의 의생활에 남아 있는 전통 옷’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전통한복’, ‘생활한복’, ‘개량한복’, ‘신한복’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2. 김여경의 박사논문
김여경은 박사논문 ‘2000년 이후 인쇄매체에 나타난 한복의 조형미 연구’에서 2000년 이후 다양하게 변화하는 한복의 현상에 주목하여 이 시기 한복 조형적 특성과 미적 가치를 고찰하였다. II장의 첫 절 ‘한복 개념의 형성과 전개’에서 “한복의 개념이 근대 시기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형태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하였을 뿐 아니라 개념이 세분화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용어가 등장하였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전래의 한복과 상당히 다른 조형적인 특징이 나타나고 있어 한복에 대한 재정의가 요구되고 있다”라고 논지를 열었다(Kim, 2010, p. 6). 한복 개념이 근대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는 점, 한복이 변화하니 한복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한 주장은 학계의 주목과 수용으로 이어져야 할 탁월한 견해이다. 2000년 이후 한복의 변화에 대해 한복을 재정의해야한다는 견해는 『한국복식문화사』에서 다룬 다양한 한복 명칭과도 연관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용어 정의’ 항목에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를 그대로 개념적 기초로 활용하였다. 즉, 한복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치마, 저고리,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에 조끼, 마고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한복의 개념을 정의하였다(Kim, 2010, p. 6).
이상의 두 연구는 한복의 개념을 설명함에 있어서 각각 국어사전과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인용하여 개념적 기초로 삼았다. 본 연구는 사전에 서술된 한복의 정의가 복식학 연구에 비판 없이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복식학적 관점에서 고찰된 한복의 실제 모습이 사전적 정의에 반영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Ⅲ. 한복의 사전적 정의 검토
사전적 정의를 위해 선택되는 명사와 형용사, 주요 개념을 드러내는 구절 등은 한복의 물질적 실체와 상징적 개념, 한복을 둘러싼 사회 문화 현상에 위배되지 않는 학문적 여론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III장에서는 사전 및 정부 자료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를 검토하여 재고가 필요한 표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제기된 문제는 IV장에서 모아서 논의한다.
1. 한국어 사전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 특히 조선 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 현재는 평상복보다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명절, 경사, 상례, 제례 따위에서 주로 입는다. 남자는 통이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넓은 바지를 입고 아래쪽을 대님으로 묶으며, 여자는 짧은 저고리에 여러 가지 치마를 입는다. 발에는 남녀 모두 버선을 신는다. 출입을 할 때나 예복으로 두루마기를 덧입는다(“Hanbok”, n.d.-a).
집약해서 정의한 구절인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에는 한복에 담긴 집단 공통성의 기준을 ‘나라’에 두고 있어서 ‘국복(國服national dress)’의 개념에 기초하여 정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뒤에서 살필 한국복식문화사전에는 “우리민족 고유 의복의 총칭”이라고 서술하여 ‘민족’에 기초한 ‘민족복(民族服 ethnic dress)’의 개념으로 서술하였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비롯하여 ‘우리’, ‘고유한’, ‘옷’의 단어 선택, 한복의 형태를 ‘조선시대’에 입던 것으로 규정한 점, 가변적인 한복의 스타일과 착용 상황에 관한 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점 등에 대해 IV장에서 논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한복’ 항목은 2000년에 김미자가 기고한 것으로 정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은 총 531단어로 서술되어 있으나 여기서 각 복식 품목의 시대별 변천에 대한 내용은 제외하고 개설에 대한 내용만 분석하고자 한다. 편의를 위해 문단에 a–f의 순서를 표시하였다.
- (a)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위ㆍ형태ㆍ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으로, 우리 고유 의복인 치마ㆍ저고리ㆍ바지ㆍ두루마기에 조끼ㆍ마고자가 포함된다.
- (b) 1600여년간 이어진 고유 한복의 전통성은 세계에서 제일 길며, 그것은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와 신라ㆍ백제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 (c) 전통의 선을 현대부터 그어보면, 영ㆍ정조시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ㆍ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 나타난 한복까지 그을 수 있으며, 다시 조선초기ㆍ고려ㆍ통일신라를 거쳐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본복(유ㆍ고ㆍ상ㆍ포)까지 이어진다. 더 나아가 가시적인 자료는 없으나 고조선까지도 이을 수 있다고 본다.
- (d) 기본복(基本服)의 원류는 스키타이계이며 북방민족의 복식이다.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는 주변국가보다 매우 발달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우리의 유(襦)와 고(袴)를 서기전 4세기경에 중국의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융복(戎服)으로 채용하였다.
- (e) 후한대(後漢代)에 고습(袴褶)이라고 불렸으며, 위진(魏晉) 이후 천자(天子), 백관의 융복과 사인(士人)ㆍ서민복으로, 당대(唐代)에는 삭망(朔望) 때 조회복(朝會服)으로도 입혀졌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집단으로 이주할 때 입고 간 우리 옷(유ㆍ고ㆍ상ㆍ포)을 계속 입었으며 원주민에게도 전했음을 하니와(稙輪)로 알 수 있다⋯.
- (f) ⋯ 조끼와 마고자는 개화기 때 생긴 옷으로 현재 우리 전통 한복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끼는 1880년대 이후 남자 양복이 들어오면서 한복에 도입되었다.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가 달린 조끼는 매우 급속히 보급되었다. 마고자는 저고리 위에 덧 입는 옷으로, 1887년(고종 24)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만주에서 귀국할 때 청나라 옷이었던 마괘(馬褂)를 입고 온 것에서 유래되었다. 모습은 저고리와 비슷하나 깃과 동정이 없다 (Kim, 2000).
(a) 첫 문장의 주어가 ‘한복’이 아닌 ‘전통한복’으로 시작하며 전통한복이 어떠한 한복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하 정의의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가 ‘한복’인지 ‘전통한복’인지 알 수 없다. 또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복”이라고 정의를 하면서 여기에 고유의 품목이 있고, [고유하지 않은 품목인] 조끼, 마고자가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어서 논리적 모순이 있다.
(b) “1600여년간 이어진 고유 한복의 전통성”이 “세계에서 제일 길”다고 한 부분은 국내외 복식학자들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c) “전통을⋯ 고조선까지 연결지을 수 있다”고 본 것은 한복의 시기적 범주를 고조선까지 올려 접근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IV장에서 논의한다.
(d)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채용한 융복(戎服)이 고대 한국의 복식을 채용한 것이라는 견해는 역사적 근거가 없으므로 주장될 수 없다.
(e) 중국의 역대 왕조가 교류하였던 호(胡)는 수많은 다양한 집단이었고 역사적 시점에 따라 지칭하는 호복의 내용도 달랐다. 복잡하게 교류했던 중국의 역대 호복 착용에 대해 구체적 근거 없이 한국의 고대 의복이 미친 영향이라고 할 수 없다. 일본으로의 집단 이주와 원주민에의 전파 사실도 한복의 정의에서 논할 만큼 명확하게 수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f) 조끼, 마고자가 개화기 때 한복에 편입된 품목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a)에서 주장한 ‘전통한복의 전통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의 우를 범하였다. 또, 조끼, 마고자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한복의 정의에 대한 서술을 마무리함으로써 20세기 이후 한복에 대한 기술이 결여되어 있다.
결국 한복이 고조선부터 개화기까지 전통으로 전승되어온 의복이라고 보았을 뿐, 한복이라는 용어가 실제 사용된 시기인 현대에 존재한 한복의 실체와 의미는 고찰의 사각지대가 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는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고 하겠으며, 여기에서도 쓰인 ‘우리’, ‘나라’, ‘의복’, ‘고유’ 등의 표현과 한복의 시기적 범주에 대해서는 IV장에서 이어 논의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민속박물관에서 진행한 사업으로 펴낸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가운데 『한국의식주생활 사전 의생활편』이 있다. 여기에 실린 한복 항목은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 등의 소제목 하에 서술되어 있다. 기고자는 윤양노로 되어 있으나 언제 집필한 것인지는 정보가 없다. 한복의 ‘정의’는 “전통과 문화가 담긴 우리 옷의 총칭”로 되어 있고, ‘개관’에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 많은 인물이 입은 옷은 신체 보호 기능 목적을 넘어 사회와 문화, 주변 국가와의 관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 기능과 미의식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옷의 형태와 착장 방식을 기본으로 한 우리 옷은 역사와 함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변화ㆍ발전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통복식으로 입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은 한복의 역사적 흐름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항기, 한복디자인시대로 시대 구분하여 구성하였다. ‘특징 및 의의’에는 한복의 제작 방법적 특성과 미학적 특성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 두 부분의 서술은 도합 1,450단어가 넘는다(Yoon, n.d.).
이 정의는 한복을 남녀별로 입는 한 벌의 옷으로 보지 않고, 우리 옷의 “총칭”이라 한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우리’의 개념, 한복을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 옷의 개념으로 본 시각, ‘특징 및 의의’에서 한복의 제작 기법적 특성과 미학적 특성을 서술한 내용 가운데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IV장에서 함께 논의한다.
Kang et al.(2015)이 편찬한 한국복식사전은 가장 최신의 한국복식 용어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한복’ 항목이 없다. 김영숙 편저 한국복식문화사전(1998)에 기술된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복 (韓服): 우리 민족 고유 의복의 총칭.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의복은 삼국시대부터 근대 이전에는 상하, 존비, 귀천 등 신분의 차이에 따라 옷 모양이나 무늬 빛깔 등이 크게 달랐으나 갑오경장 이후 의복 제도 개혁 및 근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점차 간소화되었다.
한복의 특징은 먼저 저고리, 바지 형태의 의고(衣袴) 분리 의복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3세기의 중국 문헌에서부터 백의를 숭상한다고 했듯이 서민의 복식은 백색이 주가 되어 백의민족이란 말도 생겼다. 의복 전체의 구성이 평면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저고리나 바지 두루마기 마고자까지 치수나 모양새는 같고 각 사람에 따라 비율이 달라질 뿐이다. 한복의 미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에 있으며 옷 전체에 흐르는 너그럽고 유연한 곡선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여성의 한복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선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적 미감을 보여준다 (“Hanbok”, 1998).
“우리 민족 고유 의복의 총칭”으로 첫 머리에 집약한 정의는 한복에 담긴 집단 정체성을 ‘민족’ 중심으로 본 ‘민족복’ 개념에 기초한다. 한복을 남녀의 특정 일습 옷으로 보지 않고 고유 의복의 “총칭”이라고 한 부분이 주목된다. 아울러 ‘우리’와 ‘고유’의 단어 사용, 한복의 시기적 범주, 가변적인 한복의 스타일과 구성법에 대한 서술 등에 대해서는 IV 장에서 논의한다.
한복을 홍보하고 교육하기 위한 특별 국가 기관으로 2014년에 문화 체육 관광부 산하 공예 디자인 진흥원 내에 한복진흥센터가 설립되었다. 한복진흥센터에서 2021년 8월 13일에 내보낸 뉴스레터 “한복한 이야기”에 “벽화로 보는 고구려시대의 한복”이라는 기사가 있다 (Hanbok Advancement Center [HAC], 2021). 벽화로 보는 고구려시대의 ‘복식’이 아니라 ‘한복’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함으로써 한복의 개념을 고구려 시기 복식에까지 적용하였다. 한국의 문화 정책 기관에서 홍보하는 한복의 개념에는 한복의 역사를 고대까지 영속적인 것으로 보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IV장에서 심화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2. 영어 사전
많은 영어 사전에 hanbok의 정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장 권위가 있는 영어 사전인 Oxford English Dictionary(이하 OED)는 2021년 9월에 hanbok을 포함한 한국어 기원의 단어 26개를 업데이트하였다(Lau, 2021; Lee, 2021; Salazar, 2021). ‘kimono’, ‘qipao’, ‘cheongsam’, ‘ao dai’ 등의 아시아 민족복이 오래 전부터 OED에 등재되어 있었음에 비해 한복의 등재는 많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아직 Merriam-Webster, The Chambers, Macmillan, Longman과 같은 영어 사전에는 hanbok에 대한 정의가 없다. 여기서는 2021년에 등재된 OED의 정의와 온라인 사전으로서 한복의 정의를 제공하고 있는 The Collins English Dictionary, Urban Dictionary의 예를 분석한다.
A traditional Korean costume consisting of a long-sleeved jacket or blouse and a long, high-waisted skirt for women or loose-fitting trousers for men, typically worn on formal or ceremonial occasions (“Hanbok”, 2021).
이 정의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세 가지이다. 첫 구절 “A traditional Korean costume”은 한복을 한 벌의 costume으로 정의한 것인데,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한복이 남녀 한복 일습만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전통’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한국의 복식을 집합적으로 칭하는 개념인가? 둘째, costume이라는 단어의 선택에 관한 검토이다. 또한 마지막 구절 “typically worn on formal or ceremonial occasions(형식을 갖추거나 의례적 용도로 주로 입는다)”고 한 점은 착용 상황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다. 한복은 예복인가?, 일상복인가?, 둘 다 인가? 착용 상황의 복잡성과 역사적으로 변화한 측면을 고려하여 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A traditional style of clothing, characterized by a long high-waisted skirt, worn in Korea for formal occasions (“Hanbok”, n.d.-b).
이 정의에 남자 한복 일습은 언급하지 않았고, 여자 한복 중에서도 치마만 언급하고 저고리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한국에서 공적 상황에서 입는다”고 한 부분 역시 한복의 착용 상황을 포괄적으로 서술하지 못했다. 다만 traditional clothing이라고 하지 않고 “traditional style of clothing”이라고 한 표현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IV장에서 논의한다.
A traditional type of Korean dress. Often characterized by vibrant colors and simple lines without pockets. Hanbok is worn as semi-formal or formal wear during traditional festivals and celebrations. Hanbok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traditional dresses in the world (“Hanbok”, 2011).
여기서도 traditional Korean dress라 하지 않고 “traditional type of Korean dress”라고 한 데 주목한다. 색상, 선의 스타일적 특성과 두 번째 문장이 서술한 착용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정의들과 함께 다음 장에서 논의한다. 마지막 문장 “Hanbok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traditional dresses in the world”은 주관적인 미적 가치 평가일 수 있으므로 사전 정의에는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
Ⅳ. 논의
III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종합하여 다음의 일곱 가지 논점에서 살펴보겠다.
1. ‘한복’이 담고 있는 집단 정체성: 나라와 민족
한복은 한민족의 민족복이면서 한국을 상징하는 국복이다. 민족과 국가의 개념과 범주는 같지 않고, 민족 정체성은 국가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 영토 내의 한국인에게는 한복은 민족복이자 국복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한복은 그들의 국적과 상관없이 민족 정체성(ethnicity)을 나타내는 민족복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추이는 2006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국 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규정했고(Shin, 2016), 2010년 이후 귀화하는 외국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점이다(Jang, 2019). 한국 내 인종 다양성이 현저히 증가할 경우, 한복이 한민족의 민족복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국복으로서의 역할과 개념은 약화될 것이다(Kim, in press). 지금부터 한복의 사전적 정의에 “우리 민족”, “우리 나라” 등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이 적절한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대체안으로 일인칭이 아닌 ‘한민족’, ‘한국’ 등 객관화하여 지칭할 것을 제안한다.
2. 가변적 요소: 스타일적 특징과 착용 상황, 구성법에 관한 서술
한복이 어떠한 스타일적 특징을 지닌 옷이고 어떤 상황에서 입는 옷인지에 관한 내용은 사전적 정의에 명시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가변적일 수 있음에 유의가 필요하다. 국어사전에 “바지 아래쪽을 대님으로 묶으며”라는 구절의 대님은 21세기 남자 한복 바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퇴화되어 버린 디자인 요소이다. 여러 사전에서 한복을 공적 자리나 예복으로 입는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21세기 오늘날,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경우도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Anonymous informant, personal communication, February 18, 2015), 젊은 세대가 패션성이 있는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고 <Fig. 1>, 인증샷을 위한 착용도 하나의 상황을 규정한다(Jeong, Park, & Shin, 2016).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생활한복은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한 스타일의 장르다. 21세기의 소위 패션한복, 퓨젼한복이라는 장르는 한복과 양장의 구성법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디자인이 지배적이다. 한국복식문화사전에 한복구성이 평면구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정의하였으나 21세기 한복은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Fig. 2>에 보이는 매장에 전시된 맨 앞 저고리는 어깨선이 경사지고 서양 자켓에 달리는 입체화된 소매를 달고 있다. 우임만이 원칙이었던 한복의 상의는 여성의 경우 양장처럼 좌임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처럼 스타일, 착용 상황, 구성법 등 시대가 지나면서 가변적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스타일이나 구성법, 착용 상황을 사전에 기술하기 위해서는 한복의 핵심 요소를 편협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개정 시기마다 해당 내용의 포괄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연구자는 한복을 정의함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복을 늘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정의하려는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3. ‘한복’의 개념이 지칭하는 물질적 대상
한복이 칭하는 물질적 대상을 규정하는 한국어로는 옷, 의복, 의상, 복식 등의 용어가 있고, 영어로는 clothing, dress, costume 등이 있다. 어떠한 용어가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 용어는 국어사전의 정의를 검토하고, 영어 용어는 학문 분야의 정의를 참고한다.
국어사전에 ‘옷’과 ‘의복’은 같은 의미로 “몸을 싸서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만들어 입는 물건”이라고 되어있다(“Ot”, n.d.; “Uibok”, n.d.). ‘의상’은 세 가지로 정의되어 있다: “1) 겉에 입는 옷, 2) 배우나 무용하는 사람들이 연기할 때 입는 옷, 3) 여자들이 입는 겉옷. 저고리와 치마를 이른다”(“Uisang”, n.d.). ‘복식’은 “1) 옷의 꾸밈새, 2) 옷과 장신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 두 가지로 정의되어 있다(“Boksik”, n.d.).
영미권의 복식학계에서는 학문의 핵심 용어로 dress, clothing, costume, fashion과 같은 용어의 정의를 두고 열띤 논의가 있어왔다. 특히 사회적, 문화적 연구를 위한 dress의 정의 및 다른 용어와의 구분은 죠앤 아이커(Joanne B. Eicher)와 그의 동료의 연구 업적이 복식 연구 분야의 전반적 지침이 되고 있다(Ross, 2008; Skov & Melchior, 2008; Welters & Lillethun, 2018). 아이커는 복식 연구의 핵심 용어로 포괄적이고, 가치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서 ‘dress’를 제안하였다. 그가 정의한 dress는 인체를 덮고, 두르고, 싸고, 가리는 ‘인체 보충물(body supplements)’과 문신, 상흔, 성형 수술 등을 포함한 ‘인체 변형(body modifications)’의 개념을 포괄하며 타인과의 소통의 수단이 되는 기능을 수행한다(Eicher, 2010; Eicher & Roach-Higgins, 1992; Roach-Higgins & Eicher, 1992). 다만 부정관사 ‘a’와 함께 쓰이거나 복수형으로 쓰일 경우 흔히 지칭하는 여성의 드레스를 의미한다(Eicher & Roach, 1992). 여기에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인간이 느끼는 오감에 총체적으로 연결되는 인체 보충과 인체 장식의 행위와 인체의 위생 청결을 위해 씻고 피부를 정돈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Eicher, 2021).
학문 영역의 핵심 키워드로서 dress의 개념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복식’이 가장 그에 가까운 용어일 것이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되어 온 ‘복식 服飾’의 정의는 옷과 장신구에 한정되어 있어서 인체 보충물(body supplement)에만 해당할뿐, 인체 장식과 변형에 대한 개념(body modification)이 빠져 있다. 헤어스타일, 화장, 문신, 손 발톱 장식 등 ‘인체 장식’ 및 상흔, 쌍꺼풀 수술 등 ‘인체 변형’ 관습은 ‘복식’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복식은 dress에 비해 덜 포괄적이다.
다음으로 clothing에 대해 알아본다. 명사로서의 ‘clothing’은 몸을 가리는 물건으로 한 벌(일습)의 개념보다는 단품의 옷을 총칭하는 집합명사이다. 동사로서는 착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clothing’에 속하는 단품으로는 블라우스, 치마, 바지, 코트 등 의복 외에 각종 관모, 벨트, 신발, 백 등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몸에 걸치거나 입을 수 있는 모든 인체보충물이 포함된다 (Eicher, 2010). 그러나 헤어스타일을 포함한 인체 장식과 변형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Costume은 1) 단품보다는 일습의 의미를 가지며, 2) 유행에 좌우되지 않는 복식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반패션(anti-fashion)의 특성이 있다. 민속복, 농민복, 농악복 등이 그 예다. 3) 일상복식이 지닌 일상성과는 거리가 먼 복식 4) 민속의상, 의례용, 공연용, 축제용 분장 의상, 할로윈의상 등 착용자의 정체성과 상관이 없는 의상을 칭한다(Eicher, 2010; Roach-Higgins & Eicher, 1992; Skov & Melchior, 2008; Welters & Lillethun, 2018). 또한 민족의 문화에 바탕을 둔 전통 의복을 화석화된 옷의 인상을 주는 costume이라는 용어로 칭하는 데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있다. 학계에서는 민족복을 costume 대신 dress로 칭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Eicher, 2001; Niessen, 2003; Ohio University, 2013).
이상의 검토는 사전에 정의할 한복을 설명할 용어를 찾고, 학문 분야에서 한복 연구의 범주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제공한다. 사전적 정의에 쓸 한국어 용어로는 옷, 의복이 적절하다. 한복이 한국에서 사용된 의미는 장신구와 관모, 신발을 포함한 토탈 룩으로서 복식이라기 보다는 옷과 의복의 의미에 한정된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사료된다. 전통의상이라고 할 때의 ‘의상’은 costume과 같이 정체된 뉘앙스가 느껴지고 남자 한복을 ‘의상’으로 칭하기에 어색한 면이 있다. 영문 용어로는 clothing, dress가 적절하다. Costume의 문제성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 특별한 의식에 사용되었던 일습 옷으로 면복, 금관조복, 적의, 처용무복, 농악복 등은 costume으로 지칭될 수 있으며, 사극 속의 의상과 예술 공연 의상으로서의 한복은 모두 costume으로 칭해야 한다. 김영숙 편저 한국 복식문화사전의 영문명은 A Dictionary of Korean Traditional Apparel로 되어 있는데, apparel은 주로 의류 제조 산업이라는 맥락으로 미국에서 쓰는 용어이므로 적절하지 않다. 다음으로 학문연구의 주제로서 한복의 범주는 아이커가 정의한 dress의 범주, 인체를 감싸고 덮고 보호하는 보충물과 인체 장식, 변형을 포괄한 개념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 아이커는 민족복(ethnic dress)의 개념 역시 dress 용어를 사용하여 “인체 변형과 보충물을 포괄하여 개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복식”이라고 정의하였다(Eicher, 1995).
4. ‘한복’의 발전 과정: ‘고유한’, ‘traditional’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국어사전),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처럼 한국어 사전에는 ‘고유한’이라는 형용사가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영어사전에는 이에 해당하는 ‘authentic’이라는 표현을 쓴 곳이 없다. ‘고유하다’라는 형용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본래부터 가지고 있어 특유하다”라고 정의되어 있다(“Goyuhada”, n.d.). 영어의 ‘authentic’의 정의도 “오리지널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made or done the same way as an original), 기원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진정한(of undisputed origin, genuine)”으로 되어있다(“Authentic”, n.d.). 그런데 한복이 가진 특성이 과연 고유한가 회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한복을 구성하는 마고자와 조끼는 분명 조선 말에 외래로부터 수입된 것이며, 현재 여자 치마에 부착된 조끼허리는 이화학당에서 근무한 서양 선교사 지넷 월터(Jeannette Walter)가 달도록 가르친 이후 전국적 모방이 일어나서 현대 한복의 치마에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한복을 한국에서 기원한 고유한 물질문화로 개념화하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옷은 인간 진화의 역사에 걸쳐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수입하고, 패션 현상으로 퍼지고 또 사라지는 현상을 반복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김민지는 한복이라는 용어가 생겨나던 시점에 마고자, 조끼, 조끼허리와 같은 외래 요소가 한복 내로 통합되어 잡종화(hybridize)하는 현상을 ‘문화 고유화(cultural authentication)’ 이론으로 설명하였다(Kim, in press; Korean Cultural Society of Boston [KCSB], 2021; The Korea Society [TKS], 2022a). 문화 고유화 이론은 그 기원이 외부에 있는 의복 품목이라 하더라도 한 사회로 유입되어 ‘선택(selection)’, ‘의미부여(characterization)’, ‘통합(incorporation)’, ‘변형(transformation)’ 등 네 단계의 문화 고유화 과정을 거쳐서 그 사회 구성원에게 상징적 의미를 갖는 민족복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죠앤 아이커와 토녜에레코시마가 개념화, 이론화하였다(Baizerman, Eicher, & Cerny, 1993; Eicher, 2022; Eicher & Erekosima, 1995; Erekosima & Eicher, 1981). 미나 로체스와 루이스 에드워즈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국복(national dress)의 형성 과정은 실로 여러 국가가 연루되며 만들어진 과제들이라고 밝혔다. 관련된 나라의 다양한 문화 요소가 국가 간, 국가 내에서 교류하며 이루어진 잡종성을 설명하면서 “국복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잡종 복식이다”라고 규정하였다(Roces & Edwards, 2007). 문화인류학자 제인 슈나이더 역시 민족복의 “민족적 특성을 나타내는 아이콘적 요소는 서구적, 상업적 패션과 역사적,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산물로, 그것 자체로 고유한 문화 유산의 상징물이 아니다”라 하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통 복식의 상징적, 물질적 측면, 빌려 온 문화 요소 등을 지적하였다(Schneider, 2006). 이상의 기존 연구는 한복이 한국에서 자생하여 선형적인 진화를 해 온 고유한 문화유산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며, 한복의 사전적 정의로 ‘고유한’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한복의 속성을 한국의 ‘고유한’ 옷이라고 정의하기보다는(다소 전문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고유화 한’ 옷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한복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traditional’이라는 용어를 검토한다. OED에서는 한복을 “traditional Korean costume”, The Collins Dictionary는 “traditional style of clothing”, Urban Dictionary는 “traditional type of Korean dress”라 하였다. 명사로서 ‘전통(tradition)’의 의미는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관습이나 믿음, 행위, 방식, 가르침”이다(“Tradition”, n.d.). 한복의 속성이 과연 ‘전통’의 개념에 부합하는가?, 한복이 세대를 통해 전승되고 보존되어 온 문화적 산물인가? 에릭 홉스봄은 『전통의 발명』 서문에 “옛 것이라고 보이거나, 옛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전통’이라는 것은 종종 그 기원이 근자에 있으며, 때로는 새로 발명된 것도 있다. ⋯그것들이 현대의 대중 매체를 타면서 인식이 일반화된 것이다(Hobsbawm, 1983)”라고 서술하였다. 한국사에서 옷 문화는 지속적으로 변화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조선 옷’이라는 개념이 개항 이후 외래 세력과의 교섭 과정에서 부상되기 시작했고, 한복이라는 용어가 역사 기록과 매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이후의 일이다(Kim, 2010; Kim, 2022a; KCSB, 2021). 식민지와 해방 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일상복이 양복화하고 한복은 전통으로 규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홉스봄의 주장처럼 한복 역시 근대에 전통으로 규정되었고, 그 이후 전통이라는 관념 하에 만들어져 온 문화이지, 전통의 사전적 정의처럼 유구히 세대를 거치면서 전승된 유산은 아니다. 이 연구는 한복이 전통이라 규정된 카테고리의 옷이지, 옷의 속성이 전통적인 것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traditional에 반대되는 개념은 ‘modern’이다. Modern의 형용사적 정의에는 “최근의 기술, 방법, 아이디어에 연루된(involving recent techniques, methods, or ideas)”이라는 의미가 있다(“Modern”, n.d.). 한복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후 한복의 발전 과정은 대대로 보존되어 전승되어왔다고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소재, 색상, 디자인 등에 현대적 요소가 도입되면서 패션 잡지와 매체를 통해 패션의 순환을 경험해 온 한국 패션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해 온 것이다. 한복이라는 말이 사용되던 시점부터 한복은 “전통적인 가치로부터 떠나고” 있었다. 그것은 곧‘modern (현대의)’의 정의에 해당한다.
복식사학 연구 방법론을 집대성한 영국의 복식사학자 로우 테일러는 “의류 직물을 통한 전통의 연구에 있어서 ‘전해내려 온(inherited)’, ‘보존된(intact)’ 등 ‘전통’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전통복식의 실제 모습과는 거의 상관없다. 전통복식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Taylor, 2002). 복식 문화 인류학자 바바라 숨버그도 “오늘날 전통복식의 이미지는 이상화(idealized), 이국화 (exoticized) 된 과거에의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실체와는 거리가 있다. 전통복식이 변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는 일반적 개념은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부적절하다고 밝혀져 왔지만, 21세기에도 무비판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Sumberg, n.d.).
사전 정의에 쓰인 ‘고유한’과 ‘전통적’ 이 두 형용사는 한복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복의 잡종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이라고 정의하고, 한복에 내재한 변화의 속성을 무시한 채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것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한복의 실체와 변천 과정을 복잡하고 다이나믹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지 못하게 했다. 2020년 11월 샤이니 니키 사태 이후 한복의 유래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한복을 우리나라 고유의 옷이라고 우기는 비지성적 논쟁’에 온 국민이 동조하는 데 사전의 정의가 일조를 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Kim, 2022b).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내 학자도 없었다. 민족복에 관한 많은 영미권 연구에서 지적되었듯이 ‘고유’하고 ‘전통적’이라는 표현은 전통 복식의 실체와는 거의 무관하다.
5. ‘한복’은 집합 명사
OED의 정의 “A traditional Korean costume”은 한복을 남녀 한복 일습만으로 칭하였고, 국어사전 또한 남녀 한복의 일습으로 정의하였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는 “우리 옷의 총칭”이라고 하였다. 한복은 한 벌의 앙상블에 해당하는 개념인가, 아니면 ‘전통’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한국의 복식을 집합적으로 칭하는 개념인가? 대부분의 한국복식 사학자들은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연구자도 한복을 집합명사(collective noun)로 간주한다.
그럼 왜 사전에는 남녀 한복의 일습(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으로 정의되었는가? 연구자는 이와 관련한 의식이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면서 변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근대화 과정 속에 일상복이 양복화 하면서 한복은 예복화 되어 기본 일습만 남기고 다른 품목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시기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가진 한복에 대한 개념은 남녀별로 구분되는 한 벌의 앙상블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전세복식과 출토복식의 발굴을 통해 역사 속에 존재한 복식 유물에 대한 정보가 확산되면서 한복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자양분이 되어 역사적 복식의 생산이 증폭했다.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의상 역시 다양한 한복의 스타일을 창조하는데 영감이 되었다. 한복을 한 벌의 옷으로 개념화하느냐, 집합적 개념으로 보느냐의 문제는 이러한 한복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6. ‘한복’의 시기적 범주
한복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한복이라는 용어가 언제 왜 생겨났으며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용례를 분석해야 마땅하다. 한복 용어는 근현대에 만들어지고 쓰였다. 한복이라는 용어가 역사 기록과 매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이후의 일이다(Kim, 2010; KCSB, 2021; Kim, 2022a). 한복이라는 용어가 조선시대에도 고대에도 쓰이지 않았으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복진흥센터 출간물에는 고구려시대의 복식도 한복이라 하였고 국어사전에는 “조선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라고 하였다.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는 한복의 역사가 고조선까지 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면서 조선 말 조끼 마고자가 한복에 편입된 것으로 설명을 끝맺었다. 실증적인 한복의 개념을 고찰할 수 있는 시점이 시작되기 전에 임의적이고 상상적인 시대 범주의 틀 속에서 논의를 마감했다.
국어사전에 한복의 형태를 “조선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으로 기술한 것에는 조선이 존속한 500년 동안의 복식 형태를 묶어 지칭함으로써 그 시기에 진행된 굵직한 스타일의 변화가 간과되어 있다. 20세기 이후에 한복이라는 용어가 생기면서 그 개념과 물질문화가 함께 했으니 조선의 멸망과 함께 한복의 역사적 좌표가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복은 조선 멸망기의 옷의 형태를 원형으로 20세기 21세기를 거치며 변천해왔다. 사전 정의에 기술될 한복의 형태는 한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기의 한복의 모습이 위주가 되어야 한다.
7. ‘한복’과 ‘한국복식’은 같은 개념인가 다른 개념인가?
한복(韓服)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한국 복식이다. 한복과 한국복식의 의미는 다른가? 같은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한국복식(Korean clothing)인가? 한복의 정의는 한복 역사의 시대적 범주를 어떻게 보는가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학계, 정부에서 인식한 ‘한복’의 역사는 전근대 시기와 근대 이후로 나누어서 1) 전근대 시기: 한국의 역사지리적 범주에 존재한 모든 옷의 역사 + 2) 근대 이후: 양복 도입 후의 한복의 역사였다. 이렇게 파악한 ‘한복’의 역사는 ‘한국 복식’의 역사와 차이가 없이 통용되었다.
한복과 한국복식을 구분하여 파악한 경우는 앞서 언급한 『한국복식문화사』 첫 장이 유일한 듯하다. 그 저서에서 한복의 정의는 국어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따랐고, 한국복식의 정의는 저자들이 “한국인의 복식”이라고 정하였다. “한국인은 ‘한국 국적을 가졌거나 한민족의 혈통과 정신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는 한국인을 국적(nationality)과 민족정체성(ethnicity) 두 측면의 합집합으로 본 개념이다. 복식은 “옷과 장신구”로 보았다. 그리하여 한국복식은 “한국인의 옷과 장신구”라고 규정하였다. 연구자는 한복과 한국복식의 개념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를 하지만 『한국복식문화사』 첫 장에서 제시한 ‘한국복식’의 개념과는 다른 ‘한복’, ‘한국복식’, ‘한국에서의 복식’ 이 셋의 구분되는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Kim, 2022a). 이들을 개념화하는 문제는 ‘복식’이라는 문화에 내재한 모호하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전통성 문제와 정체성 문제 등과 얽혀 있다. 지면 관계상 그 내용은 후속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또 한복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한복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어떠한 의미로 쓰였으며 시대에 따라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한복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초부터 출간된 일본 관제의 감시 하에 편찬된 역사서와 주한 일본 공사관 기록, 한국과 일본의 신문에 기록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기록들은 한복이 일본 옷(화복 和服), 서양 옷(양복 洋服)과 구별되는 ‘조선 말–대한제국의 옷’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였음을 시사한다. 내용적으로는 일본인이 한복을 착용한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당시 사회 문화적으로 특이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Kim, 2022a; Kim, in press).
이후 식민지 시기에는 많은 분야에서 산업화, 기계화, 서구화, 근대화를 경험하며 총체적 사회문화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일상복이 점차 양복으로 전환되며 각종 유행의 변화를 경험하였을뿐 아니라 한복 역시 끊임없이 디자인, 색상, 소재가 현대화하고, 다양해지고, 양복의 요소가 도입되고, 한복 디자인 내에서도 거듭되는 유행의 변화를 겪었다(Lee, 2017; TKS, 2022b). 한국 전쟁 이후 국가 재건이 본격화되면서 일상복은 완전히 서양복화하고 한복은 예복화 되면서 민족복, 국복으로 인식된다. 한복이 20세기에 민족복, 국복으로 탄생한 것은 홉스봄이 이야기한 ‘발명된 전통(invented tradition)’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한복이 예복의 영역에서 정체되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한복이 일상복에서 사라지고 예복으로 정착했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기에도 국내 유행의 전파를 선도한 패션 잡지들–여원, 주부생활, 여성동아, 여성중앙, 멋 등–에는 서양복 패션과 함께 한복 패션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어서 한복 디자이너들은 시즌별로 새로운 예복 한복 디자인을 소개했다. 20세기 한국인의 의생활에 유행의 변화는 양복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시기에 한복과 양복(양장)의 구분은 뚜렷했고, 활동했던 디자이너의 정체성도 한복 디자이너/양복(양장) 디자이너의 구분이 뚜렷했다.
1980년대 말부터는 한복의 일상복화를 타겟으로 하는 생활한복 기성복이 생겨났다. ‘질경이’, ‘돌실나이’ 등의 브랜드는 한복과 양복의 소재와 구성법을 묘하게 혼합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맞춤 한복과 구별되는 기성복 생산과 유통 시스템으로 국내의 패션 지형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성복 생활한복 브랜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차이 킴’, ‘천의무봉’, ‘리슬’ 등을 설립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세하며 신한복, 모던한복, 패션한복, 퓨젼한복 등으로 불리며 패션성을 추구한 일상복 한복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패션성이 추구된 한복들(이하 ‘패션한복’)을 과연 한복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전통성 시비는 끊이지 않았지만(Chae, 2010),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모두 ‘한복’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자 예복 한복에 종사하던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전통한복’이라고 재정의했다 <Fig. 3>.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한복은 그 자체로 ‘전통’으로 인식되었다. ‘한복’ 앞에 ‘전통’이라는 형용사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복의 다 방향 분기 현상으로 이제 한복에 전통적인 한복이 있고, 전통적이지 않은 한복이 있게 된 것이다(KCSB, 2021).
패션한복이 한복의 전통성을 해친다는 부정적 견해는 2010년대 후반 이후 K-pop 스타들의 공연 의상으로 입히면서 그 논란에 전환을 가져왔다(Hong, 2021). 글로벌 팬덤을 가진 K-pop 아이돌들의 패션에 국가 정체성을 얹은 가시적인 효과가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파급되면서 패션한복에의 관심이 급증했고,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고양하는 후광 효과가 발생했다. 패션한복의 전통성 비판은 급격히 수그러들고 오히려 한복의 요소를 활용한 패션의 창작은 장려의 여론 속에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가 사업이 되며 붐이 일고 있다. 또 소셜미디어 포스팅이 MZ 세대의 필수 디지털 사회활동이 되면서, 이들이 패션성의 표현으로서 한복을 착용하고 온라인 상에 공유하는 방식 또한 유행 전파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되며 한복의 가시성의 글로벌 영역으로 부상했다(Choi, Chen, & Lee, 2020; Jeong et al., 2016). 한복에 글로벌 패션 트렌드가 융합되는 현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동력으로 작용하며 한복을 변모시키고 있다.
패션한복의 정체성이 한복인가, 아닌가, 한복인가 양복(양장)인가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정의하라면 둘의 사이에(interstitial), 둘의 교차적(intersectional) 영역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패션한복은 한복도 아니고 양복도 아니다. 패션한복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들은 서양 의복 구성법과 한복 구성법을 넘나들며 디자인하면서 자신을 한복 혹은 양장, 하나의 영역의 디자이너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냥 이 시대의 패션디자이너로 간주한다(Kim, in-press).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구분은 더 모호해져 갈 것이다. 여기에 한복 정의의 모순이 있다. 한복은 양복(양장)과 구별되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신조어였는데 120년가량 지나면서 한복과 양복(양장)이 융합하여 구별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국에 존재한 약 이천 년 이상 되는 복식의 역사가 줄곧 이러하지 않았던가? 한국 역대 왕조 복식의 역사에서 당복(唐服), 몽고 복식, 명(明) 복식의 영향의 비중을 과소평가할 수 없으며, 그 이후에 영향을 미친 양복의 비중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만일 한복의 역사를 양복 도입 이전 시기에 존재한 모든 복식의 역사로 통틀어 간주한다면, 당복, 몽고복, 명복이 수용되고 한국화한 역사를 모두 한복의 역사로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근현대에 수용한 양복과 양복 채용 이후 한국화해 가는 패션의 역사도 한복의 역사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복의 역사를 한국의 지리적 범주에 속하는 모든 옷의 역사로 보는 시각은 한복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던 당시 상반되는 개념에 있던 양복의 역사까지 그 범주에 포함하게 하는 아이러니로 몰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한복의 역사를 태고부터 연결되는 ‘우리 복식’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접근 방식은 한복을 한국의 고유하고 전통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실제 복식의 역사에서 있었던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실들–때로는 단절도 있었고, 외부로부터의 이식도 있었다–을 단선적이고 영속적인 모습으로 파악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Ⅴ. 결론
사전류와 정부 홍보물에 한복을 정의하고 기술하는 기초는 결국 한국복식사학계의 학문적 성과에서 나오는 것이며, 정의로 기술한 내용은 학문적 시각과 성과의 정수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국어사전, 백과사전, 영어사전, 정부 홍보물에 기술된 한복의 정의를 언어학적, 사회문화적, 인류학적, 복식사적 견지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복을 둘러싼 현재의 학문적 시각과 성과에 방법론적 성찰을 제공하였다. 기존의 한복 정의를 서술한 문구에는 ‘고유한’, ‘전통적’ 등 한복의 역동성과 잡종성에 반대되는 형용사적 표현을 비롯하여 한복을 전통의 영역에 속하는 옷의 집합명사로 보지 않고 남녀 일습복으로 정형화하여 정의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가변적인 스타일적, 착용 상황적 특징을 서술하여 이미 현재에 유효하지 않는 내용이 발견되는 등, 사전적 정의로 보유하기에 문제가 있는 표현이 있었고, 한복의 시대적, 물질적 범주를 비포괄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었다. 이 글은 한복을 사전에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개념이 한복이 가진 물질적, 상징적 개념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한복을 정체된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인식 하에 한복의 정의를 서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기존의 사전적 정의에 보이는 문제점을 끌어내어 논의한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복은 한국의 남녀 한복의 일습만 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통’으로 규정된 영역에 속하는 옷을 총칭하는 집합명사이다. 한복이라는 용어는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처음으로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쓰이면서 그 물질적 존재와 상징적 의미가 함께 개념화되어 왔다. 한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기는 조선 말, 식민지 시기,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거치는 역동의 시기였고, 한복의 제작과 공급과 소비 역시 외래문화 요소와 새로운 기술, 시스템의 영향을 수용하며 발전했다. 한복은 물질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현대화하고, 외래 문화인 양복의 요소를 채택하여 혼용하고, 양복에서 일어나는 기술적 발전을 수용하고 문화적으로 고유화하는 과정을 거쳐왔을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도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그러므로 한복의 역사적 좌표는 근현대에 존재한다. 기존에 한복의 속성을 규정하는 두 개의 키워드 형용사는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의 ‘고유한’것, 세대를 거치면서 전승되어 오는 ‘전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한복을 ‘고유’하고 ‘전통적’인 것으로 정의하면 한복이라는 옷에 내재한 변화의 속성과 외적 변화에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수용하고, 적응해 가는 ‘실제’의 모습을 묻어둔 채 ‘고유하고 전통적인 것’이라는 ‘환상’으로 한복을 이해하게 된다. 또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우리’라는 1인칭적 표현은 3인칭으로 객관화하여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이 글에서 논의한 한복의 역사적 범주, 물질적 범주, 상징하는 집단정체성 개념(민족과 국가)과 한복의 발전 과정을 해석하는 시각이 사전 정의의 추후 수정은 물론 복식과 패션 분야의 연구 키워드로서 한복의 개념을 수립하는 데 기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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