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옷과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문자무늬 연구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character patterns of Hwarot and Iro-uchikake[色打掛]. Hwarot is a bridal wedding robe that originated from the ceremonial attire worn by upper-class women during the Joseon period. Hwarot is full of various embroidered patterns, among which character patterns are composed of letters signifying long life, wealth, and marital happiness. Iro-uchikake is a women's ceremonial robe, worn by the military[武家] and city merchant[町人] classes during the Edo period, and is also used in wedding ceremonies. The theme and design of character patterns in this type of clothing have been strongly influenced by literary tastes since the Heian period, in which there has been a custom of adding a melody to Chinese poetry, or Waka[和歌], and reciting it aloud. The character patterns on Iro-uchikake express the joy of marriage, wish for a long life, or, sometimes depict seasonal sceneries, which are not directly related to the wedding ceremony. The characters on Hwarot are easy to understand, while the character patterns of Iro-uchikake are more implicit, and therefore require literary knowledge to interpret. Thus, in addition to the pattern's auspicious message, it also flaunted the wearer's family's power and literacy. The compositional differences in the character patterns between Hwarot and Iro-uchikake are as follows: The character pattern of Hwarot has a left-to-right symmetrical structure and is mainly expressed through embroidery. However, the character pattern of Iro-uchikake connects a sentence through the front and back of the clothing, and uses a combination of various techniques such as dyeing and embroidery.
Keywords:
character pattern, Edo period, Hwarot, Joseon period, Uchikake, wedding costume키워드:
문자무늬, 에도시대, 활옷, 조선시대, 우치카케, 혼례복Ⅰ. 서론
길상무늬는 단순히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심미적 기능을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를 함유하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른 특유의 문화와 그것이 형성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나타낸다. 특히 혼인 의례에서 사용된 무늬는 새로 가정을 이루는 남녀가 부부로서 오랫동안 해로(偕老)하며 자식을 많이 낳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의 소망을 가득 담고 있으므로, 그 어떤 무늬보다도 기복적 상징성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활옷’과 일본의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1)는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안에서 발전한, 혼인의 의미와 염원을 담은 길상무늬가 가득 표현된 신부의 혼례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간 선행연구에서는 활옷의 역사와 함께 조형성을 고찰하거나(Kwon, 2009; Kwon, 2023), 활옷의 무늬를 집중적으로 살핀 것(Choi, 2023; Kwon & Hong, 2008; Kwon & Hong, 2009, Kwon & Kim, 2013; Lee, Seo, & Son, 2021)이 대부분이었으며, 일본복식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의 전통복식과 무늬를 비교하거나(Kim, 2016; Park, Cho, & Kim, 2015; Ryu, 2010), 일본의 혼례복과 무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있었으나(Shin, 2012), 두 나라의 혼례복에 나타난 무늬를 본격적으로 비교한 연구는 별로 없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의 활옷과 일본에도[江戶] 시대의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를 대상으로 하며, 특히 문자 무늬에 집중하여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혼례복에 사용된 문자무늬는 흔히 꽃무늬나 새무늬와 같이 주요하게 사용된 무늬는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무늬들이 길상적 의미를 은유적으로 상징한 것과 다르게 문자무늬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정서나 문화적 차이가 더 선명하게 파악될 수 있다. 또한 공통의 한자(漢字) 문화권 안에서 두 나라가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문자를 도안화, 장식화하였는가는 구성적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조선과 일본 에도[江戶] 시대 혼례복에 나타난 유사성과 독자성을 밝히는 것이 연구 목적이다.
연구 방법은 국내외 문헌 및 유물 고찰을 통한 비교 연구이다. 고문헌과 선행연구를 조사하여 활옷과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문자무늬의 사용 배경을 이해하고, 국내외 박물관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 도록과 선행연구 등에 나타난 사진을 통하여 간접 유물조사를 행한다. 이후 문자무늬의 종류와 의미, 표현양식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비교하여 종합적 결론을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연구 대상이 혼례복에 한정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를 본 연구에서는 편의상 ‘이로우치카케[色打掛]’로 명명하기로 한다.
Ⅱ. 문자무늬의 유래와 전개
1. 우리나라의 문자무늬
문자무늬는 장수와 부귀, 건강과 평안, 자손번창 등 세속적인 염원을 담은 문구(文句)를 장식화한 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문자무늬를 사용하여 생활 속 다양한 물품의 표면을 꾸몄을 뿐만 아니라, 마치 부적처럼 문구의 내용대로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
우리나라 직물에 나타난 문자무늬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Samguk-sagi, 三國史記)』(Kim, 1145) 5권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진덕여왕(眞德女王) 4년(650) 6월에 왕이오언태평송(五言太平頌)을 무늬로 넣어 제직한 금(錦)을 당(唐)의 황제에게 보냈다고 한 기록은 신라에서 일찍이 문자금(文子錦)을 생산하였음을 시사한다. 평안북도 보현사(普賢寺)에 시기가 고려시대로 알려진 문자무늬 직물 조각 1점이 전해지고있다고 하나(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6), 문자무늬가 들어간 복식 유물은 조선 17세기 이후 유물에서 현저하게 발견된다.
<Fig. 1>은 이단하(李端夏, 1625-1689) 배위(配位) 청주한씨(1627-1696) 원삼(圓衫)의 스란무늬로 ‘수복(壽福)’자가 포함되어 있다. <Fig. 2>는 의원군(義原君, 1661-1722) 배위 안동권씨(1664-1722) 원삼의 직물무늬로, 커다란 운두(雲頭) 안에 용무늬와 함께 ‘수(壽)’자가 시문되었다. <Fig. 3>은 김원택(金元澤, 1683-1766) 배위 청송심씨(1683-1718) 원삼에 부착된 ‘수(壽)’자 흉배이며, <Fig. 4>는 심익창(沈益昌, 1652-1725) 후배위(後配位) 사천목씨(1657-1699) 원삼에 부착된 모란 흉배인데, 꽃 중심부에 ‘수(壽)’자가 작은 원형으로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17세기 이후 복식에서 문자무늬가 눈에 띄게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전후 중국 문직물(紋織物)의 수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명대 복식에서 문자무늬의 유행 현상은 중국 정릉(定陵) 출토품에서 절기(節氣)를 축하하는 ‘수(壽)ㆍ만(萬; 卍)ㆍ희(喜; 囍)ㆍ복(福)’ 등 문자무늬가 시문된 다량의 유물들에도 근거한다. 특히 ‘수(壽)’자를 애용하였는데, 이는 장수를 오복(五福) 중에 가장 큰 복으로 삼는 도가(道家) 사상의 영향으로 해석된다(Kang, 2022).
우리나라에서는 ‘수(壽)ㆍ복(福)’자를 함께 쓰는 문자무늬가 유행하였고, 이것은 원삼ㆍ당의ㆍ스란치마 등과 같은 상류층 여성 예복에 사용되어 국말까지 직조 또는 금박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여성 예복에서 문자무늬 애용은 왕실 혼례복인 활옷의 의장(意匠)에도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활옷에 문자무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여성 예복에서 두루 사용되던 문자무늬가 활옷에서는 세속적 염원과 혼인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자수로 변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일본의 문자무늬
일본의 가타카나는 한자를 간략화하여 만들어졌고, 히라가나는 한자의 초서체(草書体)가 변형되어 완성된 것이다. 히라가나를 처음 사용하였던 헤이안[平安] 시대 귀족들은 간시[漢詩]나 와카[和歌]를 읊고 주고받는 낭영(朗詠)을 즐겼는데, 와카[和歌]를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도 낭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예를 들면, 와카[和歌]를 몇 개의 어구로 구분하거나 지면(紙面)의 곳곳에 흩뿌려 배치하거나, 또는 몇 개의 히라가나를 계속 이어서 쓰는 연면체(連綿体) 등 특유의 표현 기법이 등장하였다(Reed-hand script[葦手絵], n.d.).
<Fig. 5>는 에이랴쿠[永暦, 1160-1161] 시대의 능서가(能書家)인 후지와라노 코레유키[藤原伊行, 1139?-1175?]의 작품이다. 힘 조절에 변화를 주어서 글씨 선의 강약장단(强弱長短)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법은 갈대[葦]ㆍ버드나무[柳]ㆍ류수(流水)ㆍ물새[水鳥] 등과 같은 주변 그림들과 잘 어우러지도록 의도된 것이다.
이처럼 문자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을 아시데에[葦手絵]라고 하며, 문자무늬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Baba, 2012). 장식성이 강한 문자였기 때문에 이를 해독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와카[和歌] 등에 대한 높은 교양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아시데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곧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었다(Reed-hand script[葦手絵], n.d.).
아시데에[葦手絵]는 서화(書畫)뿐만 아니라 의복이나 가구 등 생활용품을 장식하는 문자무늬로 발전되었다. 특히 고소데[小袖]의 문자무늬는 간분[寛文, 1661-1673] 시대 무렵에 빈번하게 나타났으며, 겐로쿠[元禄, 1688-1704] 시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간시[漢詩]나 와카[和歌]를 산발적으로 배치한 의장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고소데의 축소된 도안이 실린 견본집인 고소데 히나가타본[小袖雛形本]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Kobayashi & Okubo, 1994).
고소데 히나가타본[小袖雛形本]은 원래 고후쿠야[呉服屋; 포목전]에서 고소데를 주문할 때 도안을 베껴서 한 장 보관해 두는 용도로 사용되던 것이 에도[江戶] 시대에 목판 인쇄 책자로 출판된 것이다(Kosode Pattern Book, 2022). 고소데 히나가타본[小袖雛形本]에서 확인되는 문자 무늬는 대부분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행서체나 초서체와 같은 서체가 사용되었고, <Fig. 6>과 같이 약동감 넘치는 대담한 필치를 보여준다(Baba, 2012).
고소데 문자무늬의 발달은 혼례복의 도안으로도 이어져 이로우치카케의 의장을 더욱 다채롭게 하였을 것이다. 또한 경사의 기쁨을 표현하면서 가문의 소양 및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시각적인 장치로도 유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Ⅲ. 활옷에 나타난 문자무늬
활옷의 무늬는 기본적으로 옷의 좌우 대칭구도로 격식화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회화풍의 구도를 가지고 다양한 양식으로 부분 변주되었다(Kwon, 2012). <Table 1>은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2023)에서 정리된 활옷 유물정보를 토대로하되 박물관 홈페이지, 도록 및 선행연구의 내용을 보완하여 국내외 활옷 유물에 나타난 문자무늬의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유물에 나타난 활옷의 문자무늬는 오랜 보관 및 보수 과정에서 일부 소실된 경우가 있으나, 무늬의 종류는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ㆍ‘백년동락 오복구전(百年同樂 五福具全)’ㆍ‘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 등 크게 3가지 정도로 파악되며, 시문된 위치는 대부분 앞길과 뒷길 상부에 집중되었다. 문자무늬는 활옷 앞뒤에 모두 나타나거나, 앞뒤 중 한쪽 면에만 나타난 경우도 있으며, 문자무늬 중에서는 ‘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본 장에서는 문헌과 활옷 유물 사진에 나타난 문자무늬의 종류와 의미를 살피고, 구성 방식을 자세히 고찰하여 문자무늬의 조형적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1. 문자무늬의 종류와 의미
장수와 부귀는 『서경(Seogyeong, 書經)』(n.d.) 홍범(弘範)에 기록된 오복(五福) 중 두 가지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이다. 활옷에는 흔히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또는 ‘수여하해 부여하해(壽如河海 富如河海)’ 라는 어구를 사용하여 기복적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다. <Fig. 7>의 창덕궁 활옷(복제본)처럼 ‘부(富)’ 대신에 ‘복(福)’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Dongguksesigi, 東國歲時記)』(Hong, 1849/2016) 입춘(立春)에 따르면,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는 24절기의 하나인 입춘일(立春日)에 민가의 기둥과 문미 등에 붙이는 춘련(春聯)의 글귀 중 하나였다. 입춘에 집에 좋은 글을 붙여서 복을 기원하는 일은 한 해의 액운을 막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를 보면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는 혼례에만 사용된 구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봄의 시작과 같이 새로 출발하는 부부를 축원하는 마음을 담아 세시풍속에서 사용하던 길상어구를 활옷에 적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이하게도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문자무늬는 주로 창덕궁 활옷과 해외박물관 소장 활옷에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근대 민간 활옷 유물에서는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문자무늬 대신에 연화동자(蓮花童子) 무늬가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시기적인 차이거나 민간에서 장수와 부를 축원하는 마음보다 혼인을 통해 대를 잇고자 하는 기원이 더 큰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Kwon, 2012).
한편 국말의 민간 혼례사진을 통해 조금 더 다양한 문자무늬를 찾아볼 수 있다. <Fig. 8>에서는 오른쪽 앞길에 ‘수(壽)ㆍ부(富)’자가 발견되며, <Fig. 9>에서도 ‘천(千)ㆍ자(子)’ 등이 앞길에 보이는데 장수와 다남 등을 의미하는 구절의 일부로 추정된다. <Fig. 10>은 김숙당(金淑堂)이 1925년에 쓴 『조선재봉전서(Joseon-jaebong-jeonseo, 朝鮮裁縫全書)』(Kim, 1925/2007)에 실린 활옷의 도안이다. 앞길에 ‘백대천손 오복구전(百代千孫五福俱全)’, 소매에는 ‘백년동락 만수무강(百年同樂 萬壽無疆)’이 표현되어 있다. 이를 보면 20세기 전반의 민간 활옷에서는 왕실보다 자유로운 양식의 문자무늬가 실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Fig. 11>과 같이 각기 다른 두 성씨의 남녀가 결합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모든 복의 근원이라는 ‘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의 구절은 혼인의 의미와 축원을 나타낸다. 세상의 모든 복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여, ‘백복’ 대신에 ‘만복(萬福)’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성지합 만복지원’은 『동몽선습(Dongmong-seonseup, 童蒙先習)』(Park, 1543)의 ‘부부유별’이나 『학어집(Hak-eojip, 學語集)』(Park, 1868)의 ‘부부’에서와 같이 유교(儒敎)의 남녀유별(男女有別)에 입각한 부부 윤리를 서술한 대목에도 나타나는 구절이다. 특히 이덕무(李德懋)가 쓴 『청장관전서(Cheongjang-gwan-jeonseo, 靑莊館全書)』(Lee, n.d.)의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을 보면, 혼서(婚書)와 답혼서(答婚書)의 내용을 통해 혼인의 의미를 두 성씨의 결합[二姓之合]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 20권, 아정유고(雅亭遺稿) 12,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그 혼서에 이르기를, “... 기쁘게 이날을 만났으니 나라는 만년의 아름다움에 응하고 밝은 때를 만나 사녀(士女)는 이성(二姓)이 합하였습니다...” ... 답혼서에 이르기를, “한 지아비, 한 지어미가 제 처소를 얻었으니 만물이 뜻을 이루고 비파를 타고 거문고를 쳐서 즐기고 또 화합하니 이성(二姓)이 좋게 합합니다...”
이 구절은 활옷 뿐만 아니라 혼례용 교배석(交拜席)에도 발견된다. Kim(2015)에 따르면, 영조(英祖) 8년(1732) 화순옹주(和順翁主) 가례 때는 가례청(嘉禮廳) 서사관(書寫官)이 쓴 ‘이성지합만복지원(二姓之合 萬福之源)’을 임금이 어람한 후에 강화[喬桐]에서 온 장인이 교배석에 무늬를 넣었다고 한다. <Fig. 12>는 헌종(憲宗) 13년(1847) 『경빈가례시가례청등록(Kyeongbin-garyecheongdeungrok, 慶嬪嘉禮時嘉禮廳謄錄)』(1847)에 실린 동뢰연배설도(同牢宴排設圖)이다. 도면 가운데 교배석에 ‘이성지합 백록지원(二姓之合 百祿之源)’이 확인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유물인 <Fig. 13>에서도 유사한 문구가 발견되는데, 교배석의 상하단이 모두 훼손되었으나 글씨 부분은 ‘이성지합 만록지원(二姓之合 萬祿之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성지합(二姓之合)이 두 집안의 결합과 새로운 가정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혼례풍습에서 이성혼(二姓婚)을 강조하는 어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귀족 사회에서도 동성혼(同姓婚)이 성행하였으나, 조선 건국 이후로 유교 성리학의 영향으로 동성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고, 왕실에서부터 이를 금기시하였다. 세종(世宗) 24년(1442) 6월 24일(癸丑) “지금부터 대소 종친들은 비록 족속(族屬)이 아니더라도 무릇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이 서로 혼인하지 않게 하는 것을 항식(恒式)으로 삼게 하라.”라고 하여 종실(宗室)의 동성혼을 금지하였으며, 이후 『경국대전(Kyeong-guk-daejeon, 經國大典)』(1485), 예전(禮典), 혼인에 대한 규례에서 “정혼(定婚)한 집의 성씨가 이씨(李氏)라면 종부시(宗簿寺)에 보고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를 법으로 명문화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조정에서 민간의 동성혼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현종실록(顯宗實錄)』 10년(1669) 1월 4일(戊戌) “송시열(宋時烈)이 아뢰기를...‘혼인할 때 동성(同姓)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국가에서는 이미 예법(禮法)을 준행하고 있으나 민간의 풍습은 구습(舊習)을 따르고 있습니다. 비록 본관(本貫)이 같지 않더라도 성의 글자가 같으면 혼인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라고 한다. 이는 17세기 후반까지도 민간에서는 동성혼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송시열의 건의가 왕에게 수락되고 이후 법제화되면서 『수교집록(Sugyo-jiprok, 受敎輯錄)』(1698)과 『속대전(Sok-daejeon, 續大典)』(1746), 『대전통편(Daejeon-tongpyeon, 大全通編)』(1784)을 거쳐 『대전회통(Daejeon-hoetong, 大典會通)』(1865)에 이르기까지 ‘예전(禮典)’에서 동성혼의 금제가 계속 나타난다.
그러나 동성혼에 대한 강화된 법적 규제와 당대 지식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조선 후기까지 동성이본혼(同姓異本婚)뿐만 아니라, 동성동본혼(同姓同本婚)도 존속하였다고 한다(Kim, 2017; Kim, 2022). 이러한 맥락에서 활옷 및 교배석에 나타나는 ‘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 어구는 부부결합을 상징하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부계(父系) 중심의 이성혼(異姓婚)을 장려하고 이를 실제에 정착시키려는 강력한 교화의 목적도 포함되었다고 본다.
2. 문자무늬의 구도와 표현
활옷에서 문자무늬는 주로 앞길과 뒷길 상부에 배치되어 있고, 일부의 경우 소매에도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일단 무늬의 위치에 따라 분류한 후, 그 안에서 무늬의 전개 구도와 표현 방식을 고찰한다.
활옷 앞길에서 나타난 문자무늬는 양쪽 앞어깨 주변에서 발견된다. <Fig. 14>와 같이 문자무늬만 단독으로 사용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꽃무늬나 동자무늬 등과 함께 복합양식으로 표현된다. 이 때 문자무늬는 보통 진동선 안쪽에 배치되는데, 주변 무늬의 크기나 구성에 따라 약간 하향하여 겨드랑이 주변에 놓인 것도 있다. <Fig. 15-17>은 부귀와 부부화합을 상징하는 모란무늬와 함께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가 사용된 유형으로, No. 2의 창덕궁 활옷과 유사한 도안이다. <Fig. 18-19>는 문자무늬 주변에 모란 이외에도 새무늬나 책보ㆍ서각과 같은 보배무늬가 추가되어 전체적인 구성이 더 다채롭다.
<Fig. 20-23>은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동자무늬와 함께 문자무늬가 구성된 유형이다. 이 중에<Fig. 20-21>은 거의 동일한 수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라지꽃과 절지형 모란, 동자와 함께 ‘이성지합 만복지원(二姓之合 萬福之源)’ 문자무늬가 어우러져 있다. 특히 <Fig. 21>은 보수 과정에서 좌우 자수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에, 문자무늬가 다른 활옷들과 다르게 깃 주변에 배치된 특이한 사례로 생각된다.
<Fig. 22-23>은 연꽃을 들고 있는 동자와 함께 문자무늬가 표현된 유형이다. <Fig. 22>는 No. 14, No. 24 활옷 무늬와 도안이 매우 유사하다. 다른 유형에 비해 무늬의 크기가 작고 구성이 간단하지만, 문자를 각기 다른 색으로 수놓아서 문자 자체의 장식성을 강조한 부분이 주목된다.
한편 <Fig. 10>의 『조선재봉전서』의 도안에서는 앞길 뿐만 아니라 소매에도 문자무늬가 나타나는데, 실제 유물에서도 소매에 문자무늬를 넣은 것이 있다. <Fig. 24>는 좌우 소매에 걸쳐 ‘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이 크게 펼쳐지는 구도로 나타나며, 드물지만 <Fig. 25>와 같이 한삼 바깥 쪽에 문자무늬가 시문된 사례도 있다. 신부가 서서 두 손을 모았을 때 한삼의 문자무늬가 정면에서 매우 잘 보였을 것이다.
<Fig. 26-33>은 활옷의 뒷길 상부에 공백을 두고 문자무늬를 배치한 유형이다. 이러한 구성은 뒷고대 주변에 댄 한지에 의해 자수 무늬가 가려지지 않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며, 왕실보다는 민간에서 여러 사람에게 대여되는 활옷에서 유용한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유형의 문자무늬는 활옷 뒷길에서 좌우대칭적 조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Fig. 34-39>는 문자무늬가 다른 무늬들 사이에 섞여 있는 유형이다. 뒷길 상부와 중심에는 모란이나 화분과 같은 주요 무늬들이 배치되고, 양 옆남은 공간에 문자무늬를 끼워 넣는 방식이다. 무늬의 크기나 종류, 구성에 따라 남은 공간의 면적이나 위치가 다소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따라 문자무늬의 크기나 위치도 다소 유동적인 양상을 보인다. <Fig. 34-35>는 뒷길 상단 좌우에 나타나지만, <Fig. 36-39>는 문자무늬 위치가 하향하여 겨드랑이 주변에 배치되었는데, 특히 <Fig. 38-39>의 경우는 문자무늬의 크기도 작아서 다른 무늬들에 비해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한편 Kwon & Kim(2013)에서 <Fig. 39>와 동일한 수본으로 해석된 <Fig. 40>의 국립민속박물관 활옷(민속 29150)에는 뒷길 겨드랑이 부근에 붉은 천을 덧대어 보수된 부분이 있는데, <Fig. 39>와 비교해 보면 문자무늬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문자무늬의 색채와 기법
활옷의 문자무늬는 대체로 해서체를 기본으로하고 평수로 표현되어 있다. 자수의 색은 <Fig. 41>과 같이 황색을 사용한 것이 주종을 이루는데, Kwon(2023)이 밝힌 <Fig. 42>와 같은 왕실의 부금홍장삼(付金紅長衫) 양식에서 문자무늬가 금장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 황색의 수실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한다.
황색 이외에도 <Fig. 43>과 같이 짙은 남색을 사용하여 대홍색의 바탕과의 대비가 더욱 눈에 띄게 한 것도 있으며,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하여 문자무늬의 장식성을 강조한 유형도 있다. <Fig. 44-46>과 같이 황색과 남색을 교차 사용한 것, <Fig. 47-48>과 같이 각 글자의 색을 다르게하여 알록달록 표현한 것이 포함된다. 이러한 유형들은 주로 ‘이성지합 백복지원(二姓之合 百福之源)’, ‘백년동락 오복구전(百年同樂 五福具全)’ ‘수여하해 복여하해(壽如河海 富如河海)’ 와 같이 네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자무늬에서 나타난다. 드물지만 <Fig. 25>처럼 홍색으로 표현한 것도 있는데, 이는 남색 한삼과의 색 조화를 고려하여 사용된 예외적인 사례로 이해된다.
Ⅵ.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문자무늬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는 아시데에[葦手絵]의 영향 아래에서 시가(詩歌)나 모노가타리[物語] 등과 같은 문학적 소재에 기반을 두고있다. <Table 2>는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유물에 나타난 문자무늬를 정리한 것으로, 다양한 종류와 함축적인 표현이 주목된다. 시문된 위치는 길ㆍ소매의 상부에 집중되었다.
우치카케[打掛]는 혼례 때만 사용된 옷이 아니기 때문에, 박물관 유물 정보를 확인하여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를 선별하거나, 공통의 혼례복의 기준에 부합되는 유물을 연구대상에 포함하였다. 혼례 때 사용된 이로우치카케[色打掛]는 일반적인 예장용 우치카케[打掛]보다 옷길이가 길고, 혼례 때 백색ㆍ홍색ㆍ흑색의 세 벌을 겹쳐 입었던 풍속에서 특유의 색채를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또 소매 배래가 길거나, 혹은 예식이 끝난 후 기혼(旣婚)의 상징으로 긴 소매 배래를 자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밑단 끝에 솜을 둔 후키[ふき]가 더 두껍고 색상이 붉은색으로 정해져 있다.
본 장에서는 혼례복으로 사용된 이로우치카케[色打掛] 유물 사진에 나타난 문자무늬의 종류와 의미를 살피고, 우리나라의 활옷과 차별되는 구성방식을 고찰하여 이로우치카케[色打掛] 특유의 조형성과 상징성을 살피고자 한다.
1. 문자무늬의 종류와 의미
혼례와 관련된 길상적인 의미의 문자무늬로서, 간시[漢詩]나 와카[和歌]와 같은 시가(詩歌)의 대표 구절에서 발췌되어 구성되었다.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을 담은 길상어구라도, 문자의 이면에 깔린 문학적 지식에 대한 소양이 있어야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당(唐)의 시인 사언(謝偃)의 『잡언시(雑言詩)』를 출전(出典)으로 하는 간시[漢詩]인 「가진[嘉辰]」에서 “嘉辰令月 歓無極 万歳千秋 楽未央” 구절은 『와칸로우에이슈[和漢朗詠集]』 하(下)권 「이와이[祝]」에 수록된 대표적 시구로 “이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여 기쁨이 끝이 없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며, 즐거움이 끝이 없다.” 라는 의미이다. 이 중에서 ‘萬歳千秋 楽未央’ 어구가 <Fig. 49>와 같이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로 사용되었다. 이 문자무늬는 시의 내용에서처럼 혼례의 경사를 맞이하여 한없이 기쁜 심정과 즐거움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며 혼례복의 길상무늬로 사용된 것이다.
<Fig. 50-51>은 와카[和歌]의 구절이 사용된 사례이다. “我が君は 千代に八千代に 細れ石の巌と なりて 苔のむすまで”는 10세기에 편찬된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7권 「가노우타[賀歌]」의 권두(巻頭)에 단가(短歌)로서 처음 나타나는 구절이다. “작은 돌이 자라서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영원히 오래 살아 주세요.”라는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Fig. 50>은 옷의 앞면에서 문장이 시작하고 뒷면에서 문장이 끝나는데, 네 구절로 구성된 문장의 첫 구절과 세 번째 구절은 앞면에, 두 번째 네 번째 구절은 뒷면에 배치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Fig. 51>은 문장이 옷의 뒷면에서 시작하여 앞면에서 끝난다. 또한 히라가나 발음을 다양한 자체(字體)로 표기하는 메이지[明治] 33년(1900) 이전의 헨타이가나[変体仮名]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옷의 앞뒤로 흐르듯이 어지럽게 배치된 문구에서 이로우치카케[色打掛]를 착용한 신부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길상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일정 수준의 문해력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사용된 문자무늬는 혼례의 경사를 축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적 소양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함께 계급의 차이, 그리고 가문의 취향이나 개성을 드러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자무늬에 안에 내재된 문학적 기호와 과시적 취향은 혼례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어구들까지도 혼례복 무늬로 발전시켰다. 계절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고전문학을 주제로 한 문자무늬들이 여기에 속한다. <Fig. 52>는 『와칸로에이슈[和漢朗詠集]』상(上)권의 「모미지[紅葉]」의 시구를 문자무늬로 사용한 것이다. 가을을 연상하는 “黄纐纈林寒有葉 碧瑠璃水淨無風” 중에 일부 구절인 ‘黄纐纈林寒有葉’ 를 단풍과 함께 조합하여 가을의 정서를 옷 전체에 담아내었다. 이 시구를 아는 사람들은 홍색 단풍[紅葉]과 황색[黄纐纈]으로 물든 숲 뿐만 아니라, 문자무늬로 표현되지 않은 뒷부분의 구절을 떠올리며 푸른 호수[碧瑠璃水]까지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혼례용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바탕색은 백색ㆍ홍색ㆍ흑색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같은 녹색은 드문 사례이다.
<Fig. 53>은 『와칸로에이슈[和漢朗詠集]』 상(上)권의 「하루[春]」의 「하나쯔케타리 라쯔쿠와[花付落花]」에 나오는 시구를 문자무늬로 사용한 것이다. 봄을 연상하는 “始識春風機上巧 非唯織色織芬芳” 중에 일부 구절인 ‘始識春風機ㆍ非’를 볼 수 있다. 시구의 일부 구절만 사용하여 “봄바람이 솜씨 좋게 색만 짜내는[織] 것이 아니라 꽃향기도 함께 자아낸다[織].” 라는 내용을 암시하였다. 만개한 벚꽃무늬와 문자무늬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봄바람에 실려 오는 벚꽃의 은은한 향기까지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Fig. 54>는 『와칸로에이슈[和漢朗詠集]』 상(上)권의 「하루[春]」, 「후지[藤]」에 나오는 시구를 문자무늬로 사용한 것이다. ‘悵 望慈恩三月盡 紫藤花落鳥關關’ 중에 ‘慈ㆍ三月ㆍ紫藤花ㆍ鳥’가 나타난다. 한가로운 새의 울음소리와 자색의 등나무 꽃이 지는 3월의 봄의 풍경을 노래하였다.
<Fig. 55>의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서는 꾀꼬리 무늬 대신에 ‘앵(鶯)’이라는 문자를 대나무와 매화 사이에 흩뿌리듯 배치하였다. ‘매화와 꾀꼬리’ 조합의 의장은 ‘화조풍월(花鳥風月)’의 전형으로 기모노[着物]의 문양 이외에도 <Fig. 56>의 회화나 <Fig. 57>과 같은 도자기의 도안 등으로도 애용되었다. 또한 현대 일본어에서도 계절의 풍경 속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두 가지를 비유하는 관용구로 정착되어 사용되고 있다. 꽃과 새의 조합은 간시[漢詩]에서 유래하였지만, ‘매화와 꾀꼬리’의 조합은 『만요슈[万葉集]』와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와 같은 와카에서 많이 등장한 이래로 계절의 풍경 조합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양의 소재가 되었다(Han, 2016).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는 시가(詩歌) 이외에 고전문학을 주제로 한 문자무늬가 시문되기도 하였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나오는 단풍나무[紅葉]ㆍ등나무[藤]ㆍ접시꽃[葵]은 문자무늬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단풍나무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제 1부, 7첩(帖) 「모미지노가[紅葉賀]」에 근거한 소재이다. 접시꽃은 겐지[源氏]의 정처(正妻)인 ‘아오이노우에[葵上]’를, 등나무는 키리쯔보테이[桐壺帝]의 중궁(中宮)이었던 ‘후지쯔보[藤壺]’를 빗댄 것이다(National Museum of Japanese History, 1999).
<Fig. 58>에서 단풍은 겐지[源氏]가 무라사키노우에[紫上]를 부인으로 맞이한 계절을 의미하며 사용되었다. 왼쪽 어깨 부분에 ‘와카[若]’를, 오른쪽 허리 부분에는 ‘무라사키[紫]’ 글자를 각각 검은색과 옅은 자색으로 대담하게 자수로 표현하였다. ‘와카무라사키[若紫]’는 연보랏빛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5첩(帖)의 첩명(帖名)이기도 하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주제로 한 문자무늬의 의장은 <Fig. 59>의 고소데 히나가타본[小袖雛形本]에서도 발견된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나타난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각 첩(帖)의 제목이 문자무늬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Fig. 58-59>는 공통적으로 왼쪽 아래에 여백을 두고 무늬를 배치하는 간분[寛文, 1661-1673]시기 특유의 고소데[小袖] 양식을 보여준다.
2. 문자무늬의 구도와 표현
활옷과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문자무늬는 내용뿐 아니라 구성 양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활옷의 문자무늬는 앞길, 뒷길 등에서 각각 개별적으로 시문되었으나, 이로우치카케[色打掛]는 앞길과 뒷길, 소매의 문자무늬 내용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로우치카케[色打掛]는 문자무늬의 위치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인 특징을 위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사용된 문자무늬는 대부분 길ㆍ소매의 상부에 나타나며, 문자의 시작순서는 앞뒤 무관하다. <Fig. 50-51>처럼 동일한 내용의 문자무늬이지만, 앞뒤가 반대로 시문된 경우도 있다.
문자무늬의 크기가 다양한데, <Fig. 60>처럼 문자무늬의 크기가 크고 문자의 색상이나 서체를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표현한 유형은 문자의 수를 6-8자 내외로 한정하여 3:3, 3:4, 4:4로 나누어 옷의 앞면과 뒷면에 가로 방향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한 글자씩 교대로 다른 색을 사용하여 문자무늬의 존재감을 강조하였다.
문자무늬를 작게 표현한 유형은 <Fig. 61>과 같으며, 문자의 크기를 잎이나 꽃과 비슷하게 하고 흩뿌리듯 배치하여 문자의 조형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옷을 정면에서 볼 때 2-4자 정도를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세로 사선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서체는 곡선을 과장되게 강조하거나 연면체를 사용하였으며, 주변의 다른 무늬들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풍경의 한 요소처럼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의 회화적 성격은 입목(立木)무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랫단에서 등으로 굽이쳐 솟아오르는 나무를 묘사한 의장을 입목무늬라고 한다. 특히 유젠조메[友禅染]를 중심으로 한 기법을 사용하여 문자와 입목을 조합한 고소데[小袖]는 에도[江戶] 시대 중기에 많이 등장하였으며 부케[武家] 여성들에게 선호되었다(Sakuma & Matsumoto, 2011). 유젠조메[友禅染]는 색의 혼합을 막기 위해 풀을 사용하는 방염(防染) 기법으로, 다채롭고 화려한 회화적 묘사가 가능하다. 무늬를 표현할 때 손으로 그리는 카키유젠[描友禅]과 형지를 이용하여 찍는 카타유젠[型友禅] 등이 있다.
입목무늬는 <Fig. 62>의 인도 사라사(saraça)에 표현된 생명수(生命樹) 무늬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라사는 일본에 무로마치[室町] 시대 이후 인도와 무역이 활발했던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무역선(貿易船)에 의해 들어왔기 때문에, 에도[江戶] 시대에 인도의 생명수 무늬는 이미 친숙한 무늬였다. 생명수는 행복의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ㆍ우주ㆍ생명ㆍ풍요의 상징으로서 제사도구나 의식용 옷감 등에 표현되어 왔다(Sakuma & Matsumoto, 2011).
<Fig. 63-64>를 보면 과실이나 꽃의 자리에 문자무늬를 배치시켜 그 나무에서 열린 열매 혹은 피어난 꽃처럼 묘사하였다.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져 문자무늬의 장식성과 회화성이 더욱 돋보이는 구성이다.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의 색채는 글자 수와는 무관하게 두 가지 색채로만 표현하였으며, 색을 한 글자씩 교차하여 사용하였다. 홍색과 금색만으로 표현하거나, 두 가지 색 중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홍색 또는 금색을 사용하고, 나머지 색은 나무나 꽃 등 문자무늬 주변에 있는 다른 무늬의 색채를 따랐다.
문자무늬의 표현 기법은 매우 다양한데 <Fig. 65>의 자수 뿐만 아니라, 옷감에 직접 문양을 그리는 염색 기법인 가키에[書絵], 풀을 이용한 방염(防染) 기법인 노리보우센[糊防染], 교힐염(絞纈染)의 일종으로 작고 부정형의 흰 점을 표현하는 가노코시보리[鹿の子絞り] 등 여러 가지 염색 기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굵은 실로 문양의 윤곽을 따라 엮어가며 고정시키는 자수 기법인 고마누이[駒縫]나 가키에[書絵] 등을 사용하여 문자의 외곽선을 선명하게 하거나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Fig. 66>은 노리보우센[糊防染]과 고마누이[駒縫]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표현한 문자무늬이다. 이처럼 한 글자의 표현에서도 여러 기법을 혼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벌의 이로우치카케[色打掛] 안에서 여러 문자무늬를 서로 다른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Fig. 67>에서 ‘천(千)’자는 홍색의 자수로 표현하였고, ‘세(歲)’자는 가노코시보리[鹿の子絞り]로 문자의 면(面)을 채우고 금실의 고마누이[駒縫]로 문자의 테두리를 장식한 것이다. <Fig. 68>을 보면 ‘천(天)’자는 금실의 자수로 표현하였고, ‘해(海)’자는 가키에[書絵]와 카노코시보리[鹿の子絞り]의 기법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였다.
Ⅴ. 결론
조선과 일본의 여성 혼례복인 활옷과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길상무늬 중 문자무늬를 고찰,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혼인을 치르는 당사자를 축복하는 마음과 함께 염원을 글귀에 담아 신부의 예복에 표현한 문자무늬는 조선과 일본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사용한 문자의 종류와 의미에서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활옷의 문자무늬는 한자를 학습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길상어구를 사용하여, 부귀장수와 부부해로 등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는 문학작품에서 차용된 몇 가지의 대표 글자만으로 길상적인 분위기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이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문해력이 요구된다는 특징이 있다. 더 나아가 혼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계절의 풍경 묘사, 고전문학 등을 주제로 하는 문자무늬도 포착되었다. 이는 문자무늬를 통해 계급의 차이, 가문의 소양 및 취향을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자무늬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활옷과 이로우치카케[色打掛] 모두 문자무늬가 옷의 상부에 나타났다. 그러나 활옷은 앞길과 뒷길의 문구가 개별적으로 구성된 반면에, 이로우치카케[色打掛]는 앞ㆍ뒷길ㆍ소매의 문구가 서로 연결되며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활옷의 문자무늬는 단정한 격식미가 있는 해서체로 표현되었지만,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는 주로 초서체나 행서체로 표현되거나, 문자를 이어서 쓰는 연면체가 사용되었다. 큰 크기로 대담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무늬와 어우러져 마치 그림의 일부로 보여지도록 은은하게 표현되기도 하였다. 꾀꼬리 무늬 대신에 ‘앵(鶯)’자를 수놓는다든지, 입목무늬에서 과실이나 꽃의 자리에 문자를 배치한 모습은 문자무늬의 회화성을 보여준다.
활옷의 문자무늬는 대체로 좌우대칭의 구도를 가지고 황색 실의 자수로 작게 표현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문자마다 각기 색채를 다르게 사용하여 장식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이로우치카케[色打掛]의 문자무늬는 비대칭의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문자무늬의 크기에 따라 길과 소매에 걸쳐 가로 방향으로 정렬되거나, 사선 방향으로 흩뿌리듯이 배치되었다. 문자 색은 홍색과 금색만으로 표현하거나, 두 가지 색 중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홍색 또는 금색을 사용하고, 나머지 색은 나무나 꽃 등 문자무늬 주변에 있는 다른 무늬의 색채를 따랐다. 또한 자수 뿐만 아니라 가키에[書絵]ㆍ노리보우센[糊防染]ㆍ가노코시보리[鹿の子絞り] 등 여러 가지 염색을 사용하였고, 가키에[書絵]나 고마누이[駒縫] 기법으로 문자의 외곽선을 선명하게 하기도 하였다. 한 벌의 이로우치카케[色打掛] 안에서도 문자무늬가 서로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거나, 한 글자 안에서도 여러 기법이 혼용되기도 하였다.
왕실 복식에서 유래한 활옷은 섭성(攝盛)의 풍속으로 민간에 확산된 것이기 때문에, 비록 민간에서 제작된 활옷이더라도 왕실과 상류층 문화에 대한 동경과 모방적 심리, 의례가 가진 본래적인 보수성이 활옷의 격식미를 오래 유지시킨 요인이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 이로우치카케[色打掛]는 고소데[小袖]가 예장화되면서 발전한 부케[武家]와 조닌[町人] 계급의 혼례복이기 때문에, 각 계급 안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전개하여 발달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조나 자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염색 기법의 사용은 문자무늬의 구도나 표현 방식을 더욱 다채롭게 발달시킬 수 있었던 기술적 요인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활옷과 이로우치카케[色打掛]에 나타난 문자무늬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여성 혼례복 문화를 비교 분석하였다. 동일한 한자문화권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혼례복에 나타난 유사성과 특수성을 규명하였다는 의의가 있으며, 두 나라의 복식과 풍속에 대한 상호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석사학위 청구논문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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