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大袖長裙) 제작 연구
Abstract
In Confucian rituals, three days after a person’s passing, they are placed in a coffin, and the deceased's family wears special attire called Seongbok(成服) for the ceremony. Men wear Hyogeon(孝巾), Choigwan(衰冠), Choiui(衰衣), and Choisang(衰裳), while women wear Daesu(大袖) and Janggun(長裙). Both men and women wear Sujil(首絰), Gyodae(絞帶), Yojil(腰紩), carry a cane, and wear shoes. The formal mourning dress for men is called Gulgunjebok(屈巾祭服), and for women it is Daesujangun(大袖長裙). Choe Onsun(崔溫順, 1937-2023) dedicated herself to restoring and reproducing Gulgunjebok and Daesujangun, which had been neglected for a considerable period. In recognition of her contributions, she was designated as a functional holder of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in Jeollabuk-do on November 27, 1998.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study the Daesujangun of Choe Onsun. There search was conducted inseveral stages. First, a theoretical examination of the Daesujangun during the Joseon Dynasty was conducted, utilizing historical texts such as Saryepyeonram and its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Jeungbosaryepyeonram. Second, an analysis of the dimensions and schematization of the Daesujangun and the production process of cutting and sewing materials was carried out, followed by the production of the actual Daesujangun under the guidance of Choe Onsun. Third, a comparative study was conducted to identify differences between the traditional Daesujangun and the Choe Onsun’s version. Further academic research is required to explore the various features of Choe Onsun's Daesujangun in comparison to the traditional ones. This study is significant because it combines a theoretical examination of Daesujangun with practical reproduction under the guidance of Choe Onsun. The results regarding the actual construction method of Daesujangun are expected to serve as a valuable basis for advancing research on traditional clothing and promoting cultural heritage preservation, honoring Choe Onsun’s lifelong dedication to making Korean clothes.
Keywords:
Chimsonjang, Choe Onsun, Daesujangun, Gulgeonjebok, mourning, mourning dress키워드:
침선장 최온순, 대수장군, 굴건제복, 상례, 상복Ⅰ. 서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침선장 최온순(崔溫順, 1937∼2023년)은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의 복식을 비롯하여 어린이 옷, 전통 수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전통 복식의 계승 발전에 이바지하여 왔다. 특히 생활 기반이었던 전북 지방의 향토적인 의례 복식 연구에 집중하여 군산에서 오랫동안 상복(喪服)을 제작했던 노웅렬 옹(翁)에게 제작 방법을 배우고 성신여대 박경자 교수의 고증을 거쳐 굴건제복(屈巾祭服)과 대수장군(大袖長裙)을 복원 재현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8년 11월 27일에 침선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Jeonbuk National University Museum, 2016).
유교식 상례에서는 임종 후 3일이 지나서 입관(入棺)하고 상주(喪主)는 사자(死者)를 위한 특별한 옷인 상복으로 갈아입는데 이러한 절차를 ‘성복(成服)’이라고 한다.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격식에 맞추어 다 갖춘 남자의 상복 일습을 상관(喪冠), 효건(孝巾), 최의(衰衣), 최상(衰裳), 중의(中衣), 행전(行纏), 수질(首絰), 요질(腰絰), 효대(絞帶), 장(杖), 구(屨)로 기록하고 있으며 여자의 상복 일습은 의상(衣裳), 개두(蓋頭), 관(冠), 잠(簪)이며 수질, 요질, 효대, 장, 구는 남자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Lee, 1844).
조선시대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복을 입고 삼년상을 치렀기 때문에 상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빈소를 설치한 후에 남자는 바로 검은색 양복을, 여자는 검은색 양장이나 흰색 혹은 검은색의 한복을 상복으로 착용한다. 또한 오늘날은 대부분 삼일장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2일째에 입관을 하고, 남자는 왼쪽 팔에 완장을 착용하고 여자는 왼쪽 머리에 흰 핀을 꼽거나 가슴에 상장(喪章)을 다는 것으로 성복례를 대신한다(Lee, 2024). 상례의 과정과 절차가 모두 간소화되고 상복 제도 역시 단순화된 것은 까다롭고 번잡함을 용인하지 않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상장례 기간에 상복을 완벽하게 갖추어 입고 탈상(脫喪) 이후에도 돌아가신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하고자 했던 삼년상의 본질은 오늘날에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수장군에 관한 연구는 전통 상복에 관한 선행 연구에서 이루어졌다. Cho(1989)는 문헌과 실물을 통해 조선시대 상복의 원리와 구조, 기능 등을 고찰하였고, Moon(1999)은 『사례편람』을 통해 상복의 구성과 형태를 연구하였다. Yoon(2004)은 고문헌 중심으로 전통 상복을 고찰하고, 설문 조사와 현장 조사를 병행하여 현행 상례 의식과 상복 착용에 관한 현대인의 의식을 조사하였다. Soh & Jeong(2004)은 오늘날의 상복이 어떻게 변화되어 착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통 상복의 구성을 고찰하였다. Kim & Eun(2006)은 전통 상복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내포하면서도 현대에 적합한 상복 디자인을 정립하기 위해 고문헌을 통해 상복의 제도와 구조를 연구하였다. Han(2011)은 고문헌을 통해 전통 상복의 구성과 상기(喪期)에 대해 살펴보고 상복의 상징적 의미와 변화 양상을 고찰하였다. Cha(2020)는 『상례사전』 「상복상」을 중심으로 다산 정약용이 재해석한 상복의 형태와 관점을 파악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남자의 상복인 굴건제복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여자의 상복인 대수장군에 관한 이론적 고찰과 실물 제작에 관한 실질적 연구는 미흡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에 관한 분석과 제작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자는 상복뿐 아니라 다른 전통 복식의 전수 과정에도 참여하면서 침선장 최온순의 무형의 침선 기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함을 절감하였다. 또한 현재 점차 사라져가는 대수장군에 관한 연구가 절실한 시점임을 인지하여 본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1884년에 이재(李縡, 1680∼1746년)가 편찬한 『사례편람(四礼便览)』과 1900년에 황필수(黃泌秀, 1842∼1914년)가 이재의 『사례편람』을 교정하고 증보한 예서인 『증보사례편람(增補四禮便覽)』과 관련 논문을 중심으로 대수장군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실시하였다. 또한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 실물을 제작하기 위해 실제 전수 교육을 통해 전승되어 온 대수장군의 치수, 도식화, 마름질 방법, 마름질 치수, 바느질 과정 등을 상세히 고찰하는 연구를 병행하였다. 그리고 전통 대수장군과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을 비교 고찰하였다.
Ⅱ. 조선시대 여자 상복에 관한 이론적 고찰
상례(喪禮)는 인간이 거치는 마지막 통과의례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유교적 상례는 초종(初終)을 시작으로 담제(禫祭) 거행 후 완전히 탈상하기까지 19절목 60여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례 복식은 고인을 위한 수의(壽衣)와 산 자의 복식인 상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상복은 유일하게 신분이 아닌 친소(親疏)에 따라 입는 옷으로 신분의 귀천이나 경제력 등에 상관없이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삼년복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다.1)
상복은 오복제도(五服制度)라 하여 사자와의 친소원근(親疏遠近)에 따라 상복의 제작 방법 및 소재, 착용 기간 등에 차등을 두어 제작한다. 상복을 입는 제도는 상기에 맞추어 첫째, 참최(斬衰)는 3년이다. 둘째, 자최(齊衰)는 3년인데 지팡이를 짚는 일년상인 장기(杖期)와 지팡이를 짚지 않는 일년상인 부장기(不杖期), 지팡이를 짚지 않는 5개월 복과 3개월 복이 포함된다. 셋째, 대공(大功)은 9개월이며, 넷째, 소공(小功)은 5개월이고, 다섯째, 시마(緦麻)는 3개월이다.
『의례(儀禮)』 「상복(喪服)」에서 상복의 재료에 대해 참최는 3승(升)을, 자최는 4ㆍ5ㆍ6승을, 대공은 7ㆍ8ㆍ9승을, 소공은 10ㆍ11ㆍ12승을, 시마는 15승의 삼베를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2) 관혼상제의 사례(四禮)를 일상에서 적용하는데 편의를 주기 위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수정 보완한 『사례편람』에서는 참최는 정련하지 않은 가장 거친 생베[極麤生布], 자최 3년은 다음으로 거친 생베[次麤生布], 자최기년은 다음 등급의 거친생베[次等生布], 대공은 조금 거친 정련한 베[稍麤熟布], 소공은 조금 고운 정련한 베[稍細熟布], 시마는 정련한 매우 고운 베[極細熟布]를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3)
본 절에서는 『사례편람』과 『증보사례편람』을 통해 조선시대 여자의 상복을 살펴보았다.
1. 개두(蓋頭)
몸을 가리는 데 쓰는 개두는 당시의 너울(羅兀)에 해당하는 것으로 머리에 덮어써서 얼굴을 가린다. 약간 고운 베로 3폭을 써서 만드는데 길이는 키와 같게 하거나 포백척(布帛尺)으로 5척 길이로 한다. 참최는 가장자리를 꿰매지 않고, 자최는 가장자리를 꿰맨다. 개두 이외에도 머릿수건 같이 머리에 덮어쓰는 포총(布總)이 있었는데 17세기에는 백포(白布)를 두상에 덮어써서 효권(孝卷)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부인의 상중 머리 모양은 좌(髽)라고 하는 쪽머리 혹은 북상투머리를 하였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개두는 <Fig. 1>과 같다.
2. 관(冠, 족두리)
여자 상복의 관은 족두리로 자최 이상은 흰색의 족두리를 쓰며 머리에는 백당기를 드리운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관은 <Fig. 2>와 같다.
3. 잠(簪, 비녀)
머리를 묶을 때 쓰는 비녀로 참최에는 대나무로 만든 비녀를 쓰고, 자최에는 개암나무로 만든 비녀를 쓴다(Hwang, 1900).
4. 의상(衣裳)
베의 승수와 만드는 법은 남자의 상복과 같은데 대하척(帶下尺)과 임(袵)이 없고, 하상은 베 여섯 폭을 어긋 매겨 잘라 열두 폭을 만들고 심의의 치마와 같이 상의에 꿰매 붙인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의상도는 <Fig. 3>, <Fig. 4>와 같다.
5. 수질(首絰)
수질은 머리띠와 같은 것으로 아래 단계로 가면서 굵기가 5분의 1씩 줄어든다. 참최는 굵기 9촌, 자최는 굵기 7촌 2분, 대공은 굵기 5촌 9분, 소공은 굵기 4촌 6분, 시마는 굵기 3촌 5분이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수질도는 <Fig. 5>, <Fig. 6>과 같다.
6. 요질(腰絰)
대대(大帶) 역할을 하는 요질은 효대 위에 묶어준다. 삼끈 두 가닥을 꼬아서 만드는데 굵기는 수질보다 5분의 1씩 가늘게 만든다. 참최의 굵기는 7촌 2분, 자최의 굵기는 5촌 9분, 대공의 굵기는 4촌 6분, 소공의 굵기는 3촌 5분, 시마의 굵기는 2촌 8분이다. 길이는 허리를 두를 수 있을 정도로 하고 묶는 곳의 좌우에 작을 띠를 붙여서 단단히 묶어준다. 참최는 삼끈을, 자최 이하는 베를 쓰는데 허리에 묶고 3척을 풀어 늘어뜨린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요질도는 <Fig. 7>, <Fig. 8>과 같다.
7. 효대(絞帶)
혁대(革帶) 역할을 하는 효대는 교대라고도 하는데 요질 아래에 묶어준다. 참최는 삼끈으로 효대를 만드는데 9척 길이가 되게 한다. 자최 이하는 4촌 너비의 삼베를 반으로 접어 너비 2촌으로 겹이 되게 꿰맨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효대도는 <Fig. 9>, <Fig. 10>과 같다.
8. 장(杖)
상장(喪杖), 효장(孝杖)이라고도 하는 지팡이로 상복을 착용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에 짚는다(Hwang, 1900). 아버지 상에서는 대나무 지팡이를, 어머니 상에서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2005)의 연구에서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천지부모(天地父母)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상(父喪)에 대나무 지팡이를 쓰는 것은 둥근 대나무가 하늘을 상징하여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대나무 안팎의 마디는 아버지를 향한 슬픔이 안팎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대나무처럼 아버지를 향한 마음도 변함이 없음을 뜻한다. 모상(母喪)에 오동나무 지팡이를 쓰는 것은 모난 오동나무 지팡이가 땅을 상징하여 어머니를 의미하는 것이고, 같을 ‘동(同)’ 자와 오동나무 ‘동(桐)’ 자의 음이 같은 것을 빌어 슬퍼함이 아버지와 같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대나무와 달리 오동나무에는 밖에 마디가 없는데 이는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동일하게 높일 수 없고, 밖에서는 지아비에게 복종함을 상징한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05).
9. 구(屨)
구는 상복에 신는 신발로 참최에는 관구(菅屨)를 신고, 자최에는 소구(疏屨)를 신는다. 자최 3개월과 대공에는 승구(繩屨)를 신고, 소공 이하는 길복(吉服) 때의 신을 신는데 흰 베로 만들고 신코 장식은 없다(Hwang, 1900). 『사례편람』의 상장과 구는 <Fig. 11>, <Fig. 12>와 같다.
Ⅲ.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 제작
침선장 최온순은 항상 여자의 상복을 ‘대수장군’으로 명명하였는데 이는 의(衣)와 상(裳)을 붙여서 심의 모양인 의상연의(衣裳連衣)로 소매가 넓은 상의인 대수(大袖)와 긴 치마인 장군(長裙)을 꿰매어 붙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본 연구는 침선장 최온순의 여자 상복에 관한 분석과 제작을 목적으로 하므로 ‘침선장 최온순의 여자 상복’ 대신에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본 절에서는 침선장 최온순의 전수 교육을 통해 전승되어 온 대수장군의 치수와 도식화, 마름질 방법과 마름질 치수, 단계별 바느질 과정을 상세하게 고찰하고 대수장군 실물을 제작하였다.
1. 원단 준비하기
여자의 상복에 사용하는 옷감은 남자의 굴건제복에 준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고문헌에 제시된 다양한 승수의 삼베를 제직하고 있지 않으며 삼베의 폭 역시 주로 35cm 전후로 제직하고 있다. 그리고 상례용으로는 주로 4~5승, 침구류는 6~7승, 일상복은 7~8승 정도의 삼베를 사용하고 있다(Lee, 2024).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은 상기가 3년인 참최복이므로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삼베 중 가장 거친 4승의 삼베를 사용한다. 머리에 쓰는 머릿수건은 그보다 조금 고운 6승의 삼베를 사용한다. 실은 굵고 질긴 30수 3합의 흰색 100% 면사를 쓰고 바늘은 14호 바늘로 손바느질한다.
2. 제도하기
대수장군의 치수는 <Table 1>과 같고, 도식화는 <Fig. 13>, <Fig. 14>와 같다. 왼쪽 앞길에 부착한 첫 번째 치마폭을 상①로 하여 순서대로 상②, 상③ ⋯으로 오른쪽 앞길에 부착한 치마폭을 상⑫로 표기한 도식화는 <Fig. 15>와 같다. 치마 각 폭을 연결한 후 꺾어준 시접의 방향은 ⇒로 표시하였다.
3. 마름질하기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은 폭 35cm의 삼베로 만드는데 마름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치마한 폭의 완성 치수는 윗너비 8cm, 아래 너비 23cm, 길이 105cm로 6폭의 삼베를 12폭으로 재단하여 치마를 만든다. 따라서 몸판과 연결하는 허리 부위인 치마의 위쪽에 시접 1cm를 더한 106cm 길이에, 25cm 너비로 치마 12조각을 마름질한다. 심의는 치마 한 조각의 아래 너비가 윗너비의 2배인데 침선장 최온순은 35cm 한 폭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시접을 1cm로 주고 윗너비의 완성 치수는 8cm로, 아래 너비의 완성 치수는 23cm가 되게 한다.
몸판은 길이 102cm에 너비 26cm로 2장을 마름질한다. 소매는 2폭을 연결하는데 첫 번째 소매는 길이 102cm에 너비 35cm로 2장, 두 번째 소매는 길이 102cm에 첫 번째 소매와의 연결 부위 시접 1cm를 더한 너비 17cm로 2장을 마름질한다. 가령은 62cm 길이에 10cm 너비로 1장을 마름질하고, 고름은 41cm 길이에 너비 6cm로 4장 마름질한다. 대수장군의 마름질 치수를 정리하면 <Table 2>와 같다.
<Table 2>의 치수대로 폭 35cm의 삼베에 대수장군을 마름질하는 방법은 <Fig. 16>과 같다. 폭 35cm의 삼베로 대수장군을 마름질하는데 필요한 원단 소요량은 몸판 길이 204cm + 소매 길이 306cm + 치마 길이 636cm + 부판ㆍ깃ㆍ고름 길이 101cm = 총길이 1,247cm로 14마가 필요하다.
4. 바느질하기
상복은 바느질 방법에도 차이가 있어 참최는 칼로 베는 듯 아픔이 심함을 의미하여 밑단을 꿰매지 않고 자른 상태 그대로 만든다. 자최는 애통함이 칼로 깎는 듯하다는 의미로 밑단에 솔기를 두고 바느질하여 정리한다. 대공은 거칠게나마 사람의 공력을 들인다는 의미로 조악하고 듬성듬성하게 정련한다. 소공은 잿물로 세밀하고 정밀하게 베를 정련한다는 의미이다. 시마는 실을 15승인 1,200올에서 반인 600올을 제거해 정련하여 쓰고, 베는 정련하지 않는데 이는 슬픔이 밖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4)
상복의 시접 방향은 『의례』 「상복」에서 상의는 솔기가 바깥으로, 하상은 안으로 향하도록 규정하였는데5) 주자가 이를 바꾸어 모든 시접이 바깥으로 향하게 하였다.6)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은 가장자리와 밑단을 정리하지 않고 재단한 상태 그대로 바느질하는데 시접의 방향은 모두 안쪽으로 향하게 한다. 또한 부모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경황없이 지은옷임을 표현하기 위해 1cm 땀 크기의 드문 홈질로 매우 성글게 바느질한다(Chung, 2004).
침선장 최온순은 대수장군을 제작하는데 바느질할 부분의 길이를 미리 고려하여 실을 여유있게 잘라서 바늘에 꿰어 사용한다. 따라서 실을 매듭짓거나 끊어내지 않고 바느질의 시작과 끝부분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꿰매 주어 마무리한다.
길이 100cm에 너비 24cm인 몸판 2폭의 가운데를 접어서 앞뒤 4폭이 되게 한다. 등솔은 <Fig. 17>과 같이 식서 부위로 시접 1cm를 준다. 등솔의 시접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홈질한다. <Fig. 18>과 같이 등솔은 가름솔을 하고 앞 중심을 터준다.
33cm와 16cm 길이의 소매 2폭을 홈질로 연결하고 시접은 가름솔 한다. 이 소매를 몸판의 양쪽에 연결하는데 소매 중심선을 어깨선에 정확히 맞추고 앞뒤의 진동점까지 바느질한 후 <Fig. 19>와 같이 시접은 가름솔 한다.
<Fig. 19>의 몸판과 소매를 반으로 접어 앞뒤의 진동점을 맞춘다. 배래와 수구를 만들기 위해 <Fig. 20>과 같이 진동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맷부리까지 홈질한다. 다시 진동점부터 시작하여 도련의 시접 부위까지 홈질하여 옆선을 만들고 시접은 가름솔 한다.
굴건제복의 최의는 적(適)을 만들기 위해 몸판의 앞길과 뒷길까지 활중(闊中)을 파주고 이를 막기 위해 깃에 해당하는 가령을 둘러준다. 최온순의 대수장군은 활중을 파지 않고 일반 저고리의 깃처럼 가령을 달아준다. <Fig. 21>과 같이 너비 8cm, 길이 60cm가 되게 가령을 겹으로 마름질하여 <Fig. 22>, <Fig. 23>과 같이 달아준다.
마름질한 상 12폭을 홈질로 연결한다. 뒤 중심선의 시접은 오른쪽으로 꺾고 엇선과 엇선이 만나는 옆선의 시접은 뒤 중심 쪽으로 꺾는다. 식서와 식서가 만나는 부분의 시접은 뒤 중심 쪽으로, 식서와 엇선이 만나는 부분의 시접은 식서 쪽으로 꺾어준다. 상 12폭을 모두 연결한 치마의 안쪽은 <Fig. 24>와 같고, 치마의 겉쪽은 <Fig. 25>와 같다.
치마와 몸판을 연결하기 위해 몸판과 치마의 윗너비를 맞추어 시침한다. <Fig. 26>과 같이 허리의 시접이 몸판 쪽으로 가도록 꺾어준 후 치마와 몸판을 홈질로 연결한다. 바느질이 모두 끝나면 시접을 다시 한번 몸판 쪽으로 꺾어 <Fig. 27>과 같이 정리한다.
고름은 길이 41cm에 너비 6cm로 4개를 재단하여 반으로 접어서 길이 40cm에 너비 2cm의 겹고름이 되도록 부착한다. <Fig. 28>과 같이 솔기가위로 가도록 하여 가령 아래와 허리선 위에 1쌍씩 부착한다.
부판은 부모를 여윈 극심한 비애를 등에 짊어짐을 상징하는 것으로 길이 41cm, 너비 35cm로 재단하여 등에 달아준다. 부착 위치는 가령에서 아래로 3cm 내려오고 뒷길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한다. <Fig. 29>와 같이 부판의 위쪽만 홈질하여 연결한다.
Ⅳ. 전통 대수장군과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 비교 고찰
본 절에서는 전통 대수장군과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의 차이점을 비교 고찰하였다. 『사례편람』에서는 상복을 제작하는 데 사용한 삼베의 폭을 2척 2촌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례편람』의 상복을 고증 및 제작한 Cho(1989)의 연구, Kim(2014)의 연구, 그리고 Cho, Kim, Dong, & Park(2016)의 연구를 근거로 1척을 23cm로 환산하면 『사례편람』에서 사용한 삼베의 폭은 50cm 전후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조선에서 50cm 광폭의 삼베를 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재도 이를 인지하여 옛날에는 폭 2척 2촌의 삼베가 생산되었으나 현재 조선에서 생산되는 베는 폭이 좁으므로 심의를 제작하는데 폭을 이어서 바느질해야 한다고 하였다.7) 그러나 『사례편람』에 제시된 여자 상복의 의상도인 <Fig. 3>, <Fig. 4>와 남자 상복의 최의도인 <Fig. 35>, <Fig. 36>에는 의신과 소매에 이음선이 없다. 따라서 『사례편람』에 제시된 치수대로 상복을 제작하면 『사례편람』의 도식화와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례편람』에서는 부판의 치수를 사방 1척 8촌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부판은 41.4cm의 정사각형이 되므로 부판 역시 폭을 이어서 제작해야 한다. 반면 침선장 최온순은 폭 35cm의 삼베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부판의 길이는 41cm, 너비는 35cm가 된다. 따라서 침선장 최온순의 부판의 길이는 『사례편람』과 비슷하나 너비가 35cm이므로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을 이룬다.
『사례편람』의 대수장군은 양쪽의 어깨 중심을 접은 자리에서 전후좌우로 잘라 들어가 생긴 활중과 자른 부분을 밖으로 접어서 양쪽 어깨 위에 더한 벽령(辟領) 곧,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활중에 두르는 가령은 『사례편람』의 굴건제복과 동일하게 T자형의 깃을 만들어 달아준다. 그러나 침선장 최온순은 적을 만들기 위해 활중을 파주지 않으며 가령 역시 일반 저고리의 깃처럼 一자형의 겹으로 만들어 단다. 『사례편람』에서는 굴건제복 최의의 가령을 겉깃이라 하고, 겁(袷)은 속깃이라 하는데 이는 T자형의 가령에 2겹으로 된 겁을 안깃으로 붙여주어 깃이 3겹이 된다. 그러나 침선장 최온순은 굴건제복의 가령을 <Fig. 37>과 같이 T자형으로 만들되 2겹으로 제작하고 겁은 따로 붙이지 않는다. 침선장 최온순은 이러한 가령 제작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대수장군의 가령 역시 2겹으로 하되 T자형이 아닌 一자형의 깃으로 만들어 달아준다.
눈물받이라고도 부르는 ‘최(衰)’는 ‘최의(衰衣)’, ‘최복(衰服)’이라는 명칭이 이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전통 상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구성품이다. 『사례편람』의 대수장군에는 최를 왼쪽 가슴에 부착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침선장 최온순은 대수장군에 최를 따로 부착하지 않는다.
『사례편람』에서는 개두, 족두리, 비녀를 여자 상복의 구성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쪽머리를 하는 여성이 거의 없고 온몸을 가릴 정도의 개두 역시 착용이 번거롭기 때문에 머릿수건을 덮어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삼베의 폭인 35cm를 너비와 길이로 하여 정사각형으로 재단하고 가장자리를 꿰매지 않은 상태 그대로 덮어쓴다. 『사례편람』에서는 시접의 분량이 1촌인 2.3cm이며, 침선장 최온순은 모든 부분의 시접을 1cm로 한다.
『사례편람』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통 대수장군과는 달리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특징은 대수장군을 제작하는 데 있어 원단 비용을 절감하고 바느질 방법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한 결과로 해석된다. 침선장 최온순은 대수장군 전수 과정뿐 아니라 다른 전통 복식을 짓는 모든 상황에서 낭비와 허비가 없는 완전한 마름질법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대수장군을 제작하는 폭 35cm의 삼베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용이한 바느질 법을 위해 대수장군의 구성과 형태에 변화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상복은 지역적 특성이 유독 강한 예복이므로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여러 특징이 전라도 상복의 특성인지, 침선장 최온순의 개인적인 공정 개선 결과인지 차후에 심화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Ⅴ. 결론
유교식 상장 의례에서는 숨을 거둔 후 3일 동안 입관하지 않고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는 습(襲), 입 안에 쌀을 넣는 반함(飯含) 등을 행하며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길 기다린다. 그러나 임종 후 3일이 지나도 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완전히 죽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상주는 애절한 마음을 외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복을 입고 장송의 예를 행한다. 상복을 온전히 갖추어 입는 것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장송의 예를 행하는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이기에 상장례 전체 과정에서 상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오늘날, 상장 의례의 절차뿐 아니라 상복 역시 전통과는 상당이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바람직한 상복 문화 정립을 위한 전통 상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전통 상복을 제작해온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에 관한 분석과 실물 제작을 목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첫째, 조선의 대표적 예서인 『사례편람』과 『증보사례편람』을 통해 조선시대 여자의 상복을 이론적으로 고찰하였다.
둘째, 침선장 최온순의 전수 교육을 통해 전승되어 온 대수장군의 치수와 도식화, 마름질 방법과 마름질 치수, 단계별 바느질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고 대수장군 실물을 제작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셋째, 전통 대수장군과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의 차이점을 비교 고찰하였다.
전통 대수장군과 달리 침선장 최온순의 대수장군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한 학술적연구가 미흡하다는 것이 본 연구의 한계이며 이러한 차이점의 발생 이유를 침선장 최온순 생존 시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 본 연구의 제한점이다.
대수장군의 제작에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본 연구의 결과가 전통 복식을 고증하고 복원 및 재현하는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오늘날의 바람직한 상복 문화 정립에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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