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과 기념장으로 보는 대한제국의 황실 사진 연구
Abstract
In this study, I used medals or commemorative medals appearing in imperial photos as historical material to determine when the photos were taken and subsequently used them as basic data for research on the Korean Empire. Since we can ascertain the photos era through the medals and commemorative medals appearing in them, we can examine the history of changes in clothing reflected in the photos. The photos had been printed and made into commemorative postcards or photo albums, and since the printing and awarding times did not match, careful examination was needed. Medals were reviewed, noting when each individual was awarded, and as such commemorative medals represented the most useful data in confirming the periods of the photos. Imperial Family members were awarded the Korean Empire’s the 1st order of Geumcheok Medal, 2nd order of Seoseong Medal, and 3rd order of Ewha Medal, while Imperial women were awarded the Seobong Medal, the women’s highest order. After ascending the throne, Emperor Sunjong received the Japanese Highest Necklace Medal, and the Japanese Daehunwi Medal of Chrysanthemum. Later, members of the Imperial Family were awarded Japanese medals such as the Chrysanthemum Medal or the Dongwha Medal. When a medal was awarded, a differentiated pension was paid according to the type of medal, so in addition to the honor, practical compensation was also made.
Keywords:
commemorative medals, Imperial Family, Korean Empire, medals키워드:
기념장, 황실가족, 대한제국, 훈장Ⅰ. 서론
대한제국의 훈장 제도는 칙령 제13호 훈장 조례(1900년 4월 17일)로 공표되었다. 내외명부에게 내리는 서봉장을 1905년에 제정하고, 칙령 제20호(1907년 3월 30일)로 훈장 조례를 개정했다. 한편 기념할 만한 의례가 있을 때는 황실에서 기념장[기장(記章)]을 만들어서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패용하도록 했다.
황실 사진 중에는 훈장이나 기념장을 패용한 사진들이 있어서 촬영 시점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문헌 자료와 같이 신빙성 있는 복식 사료로 삼을수 있다. 대한제국의 훈장 유물과 기념장 유물,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구한국훈장도(舊韓國勳章圖)』를 통하여 대한제국의 훈장과 기념장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 자료의 기록으로 훈장의 하사 시기와 기념장의 제작 시기를 알 수 있으므로 대한제국 황실 사진의 시기를 밝히는 단서로 삼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훈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 Lee(1999)의 『대한제국시대 훈장제도』가 있다. 『구한국훈장도』를 참고하여 대한제국의 훈장과 기념장을 정리하였다. Kwon(2005)은 「高宗皇帝의 肖像-近代시각매체의 流入과 御眞의 변용 과정」을 연구하였다. 그 후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에서 <2018년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특별전>을 진행하면서 일부 사진 자료를 재현하고, 그 성과를 『대한제국 황제복식』으로 펴낸 바 있는데 Kim & Cho(2018)의 「고종황제 사진에 나타난 훈장과 기념장 연구」에 의지한 바가 크다. Kang(2021)은 정치사적 관점에서 「대한제국기 훈장제도」를 연구하였다. 이들 연구에서는 여성의 훈장을 다루지 않았으며, 복식과의 관계 연구가 미진하여 사진자료의 촬영 시기에 대한 오류를 밝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이에 본 연구를 통하여 훈장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 훈장이나 기념장을 달고 있는 사진을 사료로 삼아 훈장이나 기념장의 종류를 확인하고, 촬영 시기를 밝혀서 대한제국의 복식을 연구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사진을 인쇄하여 엽서나 사진첩으로 만든 경우에 사진의 촬영시기와 인쇄물의 출판 시기에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였다.
Ⅱ. 대한제국기 훈장과 기념장의 종류 및 착용법
1899년 6월17일에 훈장 규정을 제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후(Gojongsillok[고종실록], 1899a), 훈장에 관한 사무를 담당할 표훈원 관제가 마련되었고(Gojongsillok, 1899b), 표훈원에서는 일본의 자료를 참고하여 훈장제도를 만들었으며(Dongnipsinmun[독립신문], 1899a), 훈장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일본에서 수입하고(Hwangseongsinmun[皇城新聞], 1899), 1900년 4월17일, 칙령 제13호 훈장 조례로 공표하였다(Gojongsillok, 1900). 훈장 제도가 공표되기 전인 1900년 3월 19일에 이미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미국, 일본, 청나라 8개국에 훈장을 보내기 위하여 민영환을 파견하였고(Hwangseongsinmun, 1900a), 훈장 조례가 공표된 지 나흘만에 황제의 행렬에 수행한 군인들 중에 새로 제정한 훈장을 단 자가 많았다(Hwangseongsinmun, 1900b).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훈장조례가 공표됨과 동시에 수많은 훈장의 사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훈장 사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훈장을 받을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는 기사(Dongnipsinmun, 1899b)를 보면 사람들이 훈장 사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1. 훈장의 종류와 착용법
대한제국의 훈장 조례에 의하면 훈장을 대훈위, 훈, 공의 세 종류로 구분하고, 금척대훈장, 서성대훈장, 이화대훈장, 태극장, 팔괘장, 자응장의 순으로 위계를 정하고, 각 훈장의 종류별로 등급을 정했다. 1905년에는 여인들을 위한 훈장 제도로 서봉대수장(瑞鳳大綬章)을 6등급으로 나누어 작위를 가진 부인 중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표창하도록 했으며(Gojongsillok, 1905a), 칙령 제20호로 훈장조례를 개정하여 1907년에 추가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대한제국 훈장 유물과 『구한국훈장도』의 도식을 <Table 1>로 정리했다.
훈장을 패용할 때는 대수를 오른쪽 어깨에서 허리 왼쪽으로 사선 형태로 걸치고, 정장은 대수의 왼쪽 아래에 달고, 부장은 상의 왼쪽 위에 달았다. 기념장은 훈장 중 부장을 다는 방식으로 가슴 왼편에 발행 순서대로 달았다. 훈장을 패용하는 방식을 <Fig. 1>과 <Fig. 2>로 제시하였다. 일찍이 조선사람으로서 처음 훈장을 받은 사람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민영환과 윤치호로(Dongnipsinmun, 1896) 민영환이 훈장을 착용한 모습을 <Fig. 3>에서 볼 수 있다.
2. 기념장의 종류와 착용법
기념할 만한 의례가 있을 때는 황실에서 기념장을 제작하여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부장을 다는 방식으로 패용하도록 했다. 1901(광무5년 9월 7일) (고종)황제성수50주년 기념장, 1902(광무 6년 3월 18일)(고종)황제망육순등극40주년 기념장, 1907(광무11년 1월 24일)(순종)황태자가례 기념장, 1907(순종 즉위년 8월 27일)(순종)황제즉위기념장[1908년 4월 발행](Sunjongsillok [순종실록], 1908a), 1909(융희3년 1월)(순종)황제남서순행 기념장[1909년 6월 1일 발행](Sunjongsillok, 1909) 등을 제작했다. 기념장에는 의례 시기를 기록했으므로 발행 시기가 의례 시기보다 늦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황실에서 금, 은, 동 등으로 제작한 기념장의 종류를 <Table 2>로 정리했다.
순종이 황제위에 오른 1907년 이후로 일본에서 대한제국과의 관계를 기념하여 제작한 기념장을 <Table 3>으로 정리했다. 황태자도한기념장(皇太子渡韓記念章)은 1909년(메이지[明治]42년) 3월 27일에 칙령 제42호 <황태자 도한 기념장 제정의 건>으로 제정되었으며, 수여 대상은 제2조에 규정된 바와같이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의 대한제국 방문에 관련된 한일 양국의 황족 및 주임관 이상이다(National archives of Japan, n.d.). 황태자도한 기념장 후면에는 황태자 도한 시기인 메이지 40년(1907) 10월 19일로 명기하였으나 기념장이 제정된 시기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메이지 42년(1909) 3월 27일이며 금과 은의 두종류로 제작되었다. 한국병합기념장은 메이지 43년(1910) 8월29일의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기념하기 위하여 1912년에 수여한 기념장으로 한일병합에 관계한 관리나 옛 대한제국의 왕족을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수여되었다. 메이지 45년(1912) 3월28일에 칙령을 발표하고 주조에 들어갔으니 수령 시점은 그 이후가 된다(Maeilsinbo [每日申報], 1912).
Ⅲ. 황실 사진 검토
1. 고궁박물관 소장 “한국폐하병황태자전하사진”
한국 폐하와 황태자 전하라고 명기된 사진 <Fig 4>에는 황제와 황태자가 계단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황제와 황태자는 각각 1899년 원수부 창설과 함께 제정된 11줄 인자형 소매장식이 있는 대원수복과, 10줄 인자형 소매장식이 있는 원수복을 입었으며 황제는 대한제국의 훈장과 다른 훈장을 달았다. 따라서 이 사진은 대한제국의 훈장제도가 마련된 1900년 4월 이전의 사진으로 판단한다. 상한은 원수부가 창설된 1899년이다.
외국에서 고종황제에게 보내온 훈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 1897년에 증정한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勳位菊花大綬章)(Gojongsillok, 1897), 영국에서 1901년에 증정한 영국훈장(Gojongsillok, 1901b), 1902년에 이탈리아 황제가 보내온 훈장(Gojongsillok, 1902), 1903년 프랑스에서도 보내온 훈장(Gojongsillok, 1903) 등이 있다. 벨기에에서는 황태자에게 레오폴드 훈장을 보내왔다(Gojongsillok, 1904). <Fig. 4>의 고종이 달고 있는 훈장은 이들 각 국의 훈장과 형태가 달라서 훈장의 종류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긴밀한 외교관계를 가졌던 러시아를 비롯하여 중국, 독일, 스페인 등의 훈장 형태와도 달라서 대한제국에서 훈장제도를 만들면서 시험적으로 제작한 훈장을 달았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 고궁박물관 소장 “대원수 상복을 입은 고종”
<Fig. 5>는 대원수 상복을 입은 고종의 사진으로 캐나다인 모리스가 촬영한 것이다. 모리스는 1899년 조선에 들어와 수도, 난방, 수력발전의 기술자로 일하다가 1939년에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Fig. 5>는 1901년에 조선을 여행한 버턴 홈스의 저서 『버턴 홈스 강연(Burton Holmes Lectures)』에 실렸다(Korea Heritage Administration & DPMS, 2018, p. 90). 금척대훈장을 달고 있는 황제의 모습으로 볼 때 대한제국의 훈장제도가 마련된 1900년 4월부터 인쇄물이 간행된 1901년 사이에 촬영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금척대훈장은 대한제국의 최고 훈장이다. 금척은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잠저에 있을 때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가지고 내려와 이성계에게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덕망과 지식이 있어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면서 금척(金尺)을 주고 삼한(三韓)의 강토를 바로잡을 것이라던 꿈의 내용을 담아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을 취하여 ‘금척’을 최고의 대훈장 명칭으로 삼았다. 금척대훈장은 황실 인물만 패용하고, 황실 친척 및 문무관 중에서 서성대훈장을 패용한 자가 특별한 공훈이 있을 때 특지(特旨)로 받기도 하였다(Gojongsillok, 1900). <Fig. 5>와 동일한 배경에서 촬영한 또 하나의 사진인 <Fig. 6>에는 황제와 황태자, 어린 영친왕이 함께 있는데 황제와 황태자는 각각 대원수 상복을 입고 금척대훈장을 달았다. 서너살 된 영친왕(1897~1970년) 모습에서 내밀한 사적 영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 大韓皇帝㷗眞(대한황제 희진)과 大韓皇太子坧眞(대한황태자 척진)
<Fig. 7>과 <Fig. 8>의 종이 사진틀 하단에 각각 “대한황제희진 광무9년(1905), 재경운궁(在慶運宮)”, “대한황태자척진, 광무9년(1905), 재경운궁”이라고 씌어 있다. 황제의 이름 “희”, 황태자의 이름 “척”을 사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을 보면 서구 모델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자료로 추정된다.
황제의 상복을 입은 고종은 금척대수정장을 하고, 오조룡보 왼편에 대한제국의 각종 훈장과 외국 훈장을 달았다. 금척대수부장, 서성대수부장, 이화대수부장, 외국 훈장을 가득 달고, 자리가 모자라서인지 태극장은 오른편에 달았다. 황태자 상복을 입은 순종은 금척대수부장, 서성대훈장 등을 달았다. 사진틀에 적힌 시기에 따르면 1905년의 사진이다. 고종은 황제로서 황룡포, 순종은 황태자로서 홍룡포를 입었음을 사진의 색조로 추정할 수 있다. 바닥에는 용문을 짜넣은 화문석을 깔았으며, 고종은 일본식 병풍을 배경으로 삼고, 순종은 한국식 병풍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촬영했다.
4. “일한병합기념” 엽서 사진
고종황제가 퇴위하고 순종이 황제위에 오른 후 일본 황태자 일행이 1907년 10월에 조선을 방문했다. 이때 순종이 일본 황태자 일행, 종친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Fig 9>의 “일한병합기념(1910년)” 엽서로 발행되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시기는 1907년 10월이다. 일본 황태자가 천황을 대신하여 대훈위국화장(大勳位菊花章) 경식(頸飾)을 대리수여(Sunjongsillok, 1907f)한 이후로 순종은 늘 목걸이형 훈장을 패용했다. 순종은 9줄 인자형 소매장식이 있는 육군대장의 군복을 입었는데 1905년 통감부 시기에 조선의 원수부가 폐지됨으로써 대원수의 직급이 없어졌고 황제의 군사적 지위는 육군대장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과 더불어 황제의 위상이 왕으로 격하된 후 서구식 근대국가의 표상인 서구식 관복은 위계를 낮추어 착용했다. 다만 전통 의례를 행할 때면 황실의 위계고종황제가 퇴위하고 순종이 황제위에 오른 후 일본 황태자 일행이 1907년 10월에 조선을 방문했다. 이때 순종이 일본 황태자 일행, 종친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Fig 9>의 “일한병합기념(1910년)” 엽서로 발행되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시기는 1907년 10월이다. 일본 황태자가 천황을 대신하여 대훈위국화장(大勳位菊花章) 경식(頸飾)을 대리수여(Sunjongsillok, 1907f)한 이후로 순종은 늘 목걸이형 훈장을 패용했다. 순종은 9줄 인자형 소매장식이 있는 육군대장의 군복을 입었는데 1905년 통감부 시기에 조선의 원수부가 폐지됨으로써 대원수의 직급이 없어졌고 황제의 군사적 지위는 육군대장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과 더불어 황제의 위상이 왕으로 격하된 후 서구식 근대국가의 표상인 서구식 관복은 위계를 낮추어 착용했다. 다만 전통 의례를 행할 때면 황실의 위계
순종은 1907년 7월 19일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았고(Sunjongsillok, 1907a), 즉위식은 8월 27일 돈덕전에서 치렀다(Sunjongsillok, 1907c). 순종이 즉위식에 머리를 깎고 군복을 입겠다고 하여(Sunjongsillok, 1907b), 즉위 후 백관의 진하와 입참에 관복을 일체 폐지하고 단발 복장으로 참여토록 함으로써(Daehanmaeilsinbo [대한매일신보], 1907) 관리들이 착용하던 전통적인 관복은 사라지게 되었다. <Fig. 9>는 단발하고 군복을 입은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5. 고궁박물관 소장 “순종황제 사진 엽서”
<Fig. 10>은 순종의 흑백사진을 인쇄한 우편엽서이다. “한국황제폐하행행기념 신의주(韓國皇帝陛下行幸紀念新義州) 42.1.29.”라는 붉은색 원형소인이 찍혀 있다. 메이지 42년(1909)이라는 소인이 있으나 1909년에 촬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진 속 순종의 기념장을 살펴보면 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황태자가례기념장 등 3개의 기념장을 달았고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이 없으므로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이 발행된 1908년 4월 이전의 사진으로 판단한다. 대부분의 기념장은 의례의 시기와 발행 시기가 동일하지만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을 발행한 시기는 의례의 시기와 시차가 있다. 순종은 일본의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勳位菊花章經飾)을 걸었으며, 9줄 인자형 소매장식이 있는 육군대장의 군복을 입었다. 그 밖에 금척대수장 정장과 부장, 서성대훈장, 일본 국화대수장, 벨기에 레오폴드훈장을 패용한 것으로 보인다(Korea Heritage Administration & DPMS, 2018, p. 133). 이 사진은 순종이 일본의 대훈위국화장경식을 받은 1907년 10월에서 1908년 4월 이전의 것으로 볼 수 있다.
1907년에 순종의 계비가 되어 가례를 올린 순정효황후는 <Fig. 11>에서 1907년 1월에 발행한 황태자 가례 기념장, 1907년 1월 24일에 받은 서봉대수장(瑞鳳大綬章)(Gojongsillok, 1907a)을 패용했으나 1908년 4월에 발행한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은 달지 않았다.
부인이 훈장을 패용하는 것은 대, 중, 소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이다. 1등 훈장이 있는 자가 대례복에는 대수장(大綬章)과 부장을 패용하고 중, 소 예복과 통상예복에는 때에 따라서 부장만 패용할 수도 있고 2등 이하의 훈장이 있는 자는 통상예복을 입을 때에도 달 수 있다(Gojongsillok, 1900). 따라서 대례복을 입으면 대수를 드리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장만 달았다. 순정효황후는 대수를 드리운 훈장을 달았으며 황실의 적통을 잇는 인물이 착용하는 전행웃치마에 수복화문 홍원삼을 입고 홀을 들어서 대례복 차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순정효황후는 1907년 1월 24일에 황태자비로 책봉되고, 조현례를 올렸으며(Gojongsillok, 1907a), 1907년 2월 1일에 관례를 올린 바 있다(Gojongsillok, 1907b). 1907년 8월 27일, 순종의 황제즉위식과 더불어 황후 책봉을 받았다(Sunjongsillok, 1907c). 황후는 대례복으로 용봉문이 있는 원삼을 착용하는 것이 신분과 의례에 걸맞는데 <Fig. 11>은 수복화문이 있는 홍원삼을 입은 모습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볼 때 서봉대수장을 받은 1907년 1월 24일에서 황후로 책봉된 1907년 8월 27일 이전 황태자비일 때에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하며 순정효황후의 여러 사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한다.
<Fig. 12>의 고종도 순종처럼 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황태자가례기념장 등 3개의 기념장을 달았다. 또한 금척대수장의 정장과 부장, 서성대훈장, 일본 국화대수장, 프랑스 레지옹도뇌르훈장, 이탈리아 성모리스앤라자르그랜드크로스훈장, 벨기에 레오폴드훈장 등을 달았다(Korea Heritage Administration & DPMS, 2018, p. 132). 대원수 계급을 나타내는 인자형 소매장식 대신 꽃무늬를 가득히 장식한 문관의 상의를 입고 있는 것을 볼 때 황제 위에서 퇴위하여 태황제의 신분으로 촬영한 사진임이 분명하다. 고종은 순종에게 황제위를 양위하는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권정례로 퇴위한 바 있다(Gojongsillok, 1907c).
6. 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 사진
<Fig. 13>은 영친왕이 중명전에서 대한제국 내각과 함께 촬영한 것인데, 무관 대예장을 갖추고 대한제국 금척대수장을 달았다. <Fig. 14>의 영친왕은 무관 상복(常服)을 입고 일본의 동화장(桐花章), 대한제국의 금척대수장을 달았다. 대예장을 갖춘 <Fig. 15>의 영친왕은 1901년 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황태자가례기념장 등 3개의 기념장을 달았다. 기념장 아래에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본의 동화장(桐花章), 대한제국의 금척대수장, 서성대수장, 이화대수장(李花大綬章)을 달았다. <Table 4>에 영친왕이 달고 있는 각 훈장을 제시했다. 동화장은 국화장 다음가는 일본의 훈장이다. <Fig. 9>의 사진 속 영친왕이 패용하고 있는 기념장과 훈장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1907년 10월경의 사진이라고 판단하며 모두 1907년에 촬영한 만 10세의 영친왕 모습으로 추정한다.
7. 고궁박물관 소장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부부 사진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부부 사진인 <Fig. 16>은 부부가 나란히 서서 촬영한 점에서 주목 받을만하다. 순종의 가슴에 달린 기념장은 왼쪽부터 (고종)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고종)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순종)황태자가례기념장, (순종)황제즉위 기념장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순종)황제즉위 기념장이 발행된 1908년 4월 이후로부터 1909년 6월 (순종)황제남서순행기념장이 나오기이전의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순종은 육군대장의 군복을 입고 일본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勳位菊花章經飾)을 걸었고(Sunjongsillok, 1907f), 금척대수장을 비롯한 서성대훈장, 일본 국화대수장(Gojongsillok, 1901a), 벨기에[須比國] 레오폴드 훈장을 패용했다(Korea Heritage Administration & DPMS, 2018, p. 133). 순정효황후는 서봉장을 달고, 몇몇 기념장을 달았으며 어여머리에 용봉문이 있는 홍원삼을 입었다. 홍원삼에는 용흉배견화를 달았고, 전행웃치마를 갖추었다. <Fig. 16>과 동일한 배경에서 황제와 황후가 각각 촬영한 모습이 <Fig. 17>과 <Fig. 18>이다.
<Fig. 19>는 의친왕비 김씨가 앞서 살핀 사진들과 동일한 배경에서 촬영한 것이다. 의친왕비 김씨는 어여머리를 하고, 수복화문이 있는 홍원삼을 입었으며, 사각의 봉황 흉배를 달고 홀을 들었다. 대수를 하고 훈장을 단 모습으로 보아 대례복을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의친왕비는 1905년 서봉대수훈장을 받았고(Gojongsillok, 1905b), 1907년 10월 2일에 친왕비로 책봉을 받은 바 있다(Sunjongsillok, 1907e). (고종)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고종)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순종)황태자가례기념장을 달았으나 (순종)황제즉위 기념장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1907년 1월 이후 (순종)황제즉위 기념장이 발행된 1908년 4월 이전의 사진으로 추정한다. 의친왕비에게 기념할 만한 친왕비책봉 후 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8. 고궁박물관소장 “순헌황귀비 외 10인의 사진”
고궁박물관 소장 순헌황귀비 외 10인의 사진인 <Fig. 20>은 이토히로부미의 부인 우메코(伊藤梅子)가 서봉장을 달고 있으므로 1908년 7월 이후의 것(Sunjongsillok, 1908b)이며 이토히로부미가 사망한 1909년 10월 26일 전까지의 것으로 판단한다. 황귀비 엄씨(皇貴妃嚴氏)와 연원군 부인 김씨(延原君夫人金氏)는 1905년에 서봉대수훈장을 받은 바 있다(Gojongsillok, 1905b). 우메코는 훈장을 다는 방식에 따라서 정장을 대수의 왼쪽 아래에 달고, 부장은 오른쪽 위에 달았다. 이토히로부미의 양아들 이토히로쿠니(伊藤博邦)의 삼남 이토히로츠(伊藤博通)로 추정되는 남아는 남바위와 두루마기를 입고 있어서 겨울철임을 시사한다. 순헌황귀비는 봉흉배견화를 단 직금 홍원삼을 입고 전행웃치마를 입었으며(HwangGwiBi ChaekBongSi Uibokbalgi[1903년 11월 황귀비책봉시의복발기], 1903), 의친왕비김씨는 수복화문을 부금한 홍원삼을 입고 사각형 봉흉배를 달았다. 전행웃치마는 왕실의 적통을 잇는 여인만이 입는 것이지만 순헌황귀비는 황후가 없는 황실에서 황태자의 어머니로서 황후로서의 역할을 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기에 순헌황귀비와 의친왕비김씨가 이미 서봉장을 받은 바 있으므로 패용하는 것이 옳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훈장을 달지 않았다. <Fig. 21-①>은 훈일등 서봉장, <Fig. 21-②>는 훈이등 서봉장이다.
9. 고궁박물관 소장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사진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사진 상단에는 각각 대한 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장이 있고, 하단에는 "京城岩田鼎謹寫"라는 금색 글씨가 있어서 이와타 카나에(岩田鼎, 1870~?)가 촬영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일제 통감부 시기 황실 어용 사진사였다(Iwata Kanae [이와타 카나에], 2024).
<Fig. 22>의 순종 사진을 확대하여 <Fig. 23>으로 제시하였는데 대한제국에서 제작한 기념장, 즉 (고종)황제성수50주년기념장, (고종)황제망육순등극40주년기념장, (순종)황태자가례 기념장, (순종)황제즉위 기념장, (순종)황제남서순행기념장을 모두 달았고, 일본 적십자사의 유공장(有功章)(The Japanese Red Cross Society, n.d.), 일본 황태자도 한기념장(皇太子渡韓記念章)도 달았다. 황제즉위기념장과 황제남서순행기념장 사이에 놓인 십자형기념장이 <Fig. 24>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일본적십자사 유공장(有功章)이다. 1905년 10월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되었으나 1909년 7월 23일 칙령 제67호에 의해 대한제국 적십자사는 폐사되고 일본적십자사 한국본부가 되었다가,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된 뒤에는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로 명칭을 바꾸었다(Red Cross Hospital, n.d.).
훈장으로 대훈위국화장경식을 걸었고, 금척대수장의 정장과 부장, 서성대훈장, 국화대수장, 레오폴드 훈장을 패용했으며, 기념장의 연도로 볼 때 일본 황태자도한기념장이 발행된 1909년 3월 29일 이후의 사진으로 추정한다.
<Fig. 25>의 순정효황후는 백옥떨잠이 장식된 어여머리에 원삼(圓衫)을 착용한 모습으로, 원삼위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 아래로 내려오는 대수(大綬)를 걸었다. 왼쪽 가슴에는 황태자가례기념장, 순종황제즉위기념장, 일본 황태자도한기념장, 일본적십자사 유공장 등의 기념장과 서봉장을 달았다. 기념장은 일반적으로 발행 순서대로 걸기 때문에 기념장에 근거해 보면 <Fig. 22>와 동일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일본적십자사 유공장을 패용한 순서에 차이가 있는 것은 유공의 시기를 달리하여 수령 시기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10. 고궁박물관 소장 고종과 순헌황귀비의 초상사진
<Fig. 27>의 고종은 태황제의 제복을 입고, 3개의 기념장을 달았으나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종황제즉위기념장이 발행된 1908년 4월 이전의 사진으로 판단한다. <Fig. 12>와 비교해볼 때 기념장의 수는 동일하나, 서성대수장과 벨기에 레오폴드훈장이 빠져 있다. <Fig. 28>은 <Fig. 27>의 훈장을 재현한 것이다(Korea Heritage Administration & DPMS, 2018, p. 141). <Fig. 27>과 <Fig. 28>의 사진 상단에는 “王家The Royal House of Chosen.", 하단에는 각가 “德壽宮李太王殿下Grand Prince Tokuju Ri Wo(formerly Retired Emperor of Korea)”, “德壽宮李太王妃嚴氏Princess Consort of Grand Prince Tokuju Ri Wo”라고 쓰여 있다. <Fig. 27>과 <Fig. 29>의 배경이 동일하지만 황실 사진첩에는 <Fig 27>과 <Fig 30>을 부부 사진으로 넣었다. <Fig. 30>은 <Fig. 20>의 배경과 동일하며 <Fig. 20>의 촬영시기로 판단할 때 <Fig. 27>과 크게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사진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1907년 9월 7일에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했고 (Sunjongsillok, 1907d), 그 후 영친왕은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1907년 12월에 타국으로 떠나보낸 아들에게 부모의 사진을 보내고자 촬영한 사진(Hwangseongsinmun, 1907)이 <Fig. 27>과 <Fig. 29>이다. 지극히 사적인 사진이므로 엄귀비가 자유롭게 전통예복이 아닌 양장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11. 의친왕 이강
대한제국 육군 부장복을 입은 <Fig. 31>의 의친왕은 3개의 기념장을 달고 일본 동화장과 대한제국 금척대수장을 달았다. 1900년 8월 17일에 이강과 이은, 두 황자(皇子)를 왕으로 책봉하는 의례를 거행했지만 이강은 미국에 체류 중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은을 책봉하는 의례였다. 이강의 책봉의례는 귀국한 1906년 음력 6월 4일에 거행되었다(Gojongsillok, 1906). 의친왕이 패용한 기념장으로 볼 때 황태자도한기념장이 발행된 1909년 3월 이후의 사진이며, 인자형 소매장식의 특징으로 볼 때 1910년 8월 일제 강점 이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Ⅳ. 결론
훈장과 기념장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하여 일본의 제도를 참작하고, 제작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은 사실이지만 훈장을 일본의 잔재 혹은 일제 강점의 여파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일본이 통감부 시기부터 많은 이들에게 훈장을 하사하면서 통치의 수단 또는 상징으로 삼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식 제도에 양복이 들어오고, 훈장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이전이므로 모든 훈장을 일제의 것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편견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 중심의 외교관계가 세계로 넓어지면서 서양 문물에 근간을 둔 훈장 제도를 도입하고 각국 국가 원수들과 최고의 훈장을 주고받으며 외교관계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황실 인물은 대한제국의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으로부터 서성대훈장, 이화대훈장 등을 패용했으며, 황실 여인은 서봉대수장을 패용했다. 황제나 황태자가 외국에서 받은 훈장을 반드시 패용하지는 않았으며 대한제국의 훈장을 달지 않은 채로 외국의 훈장만을 달지 못하도록 하였다. 순종황제는 즉위 이후 일본의 최고 훈장인 대훈위국화장경식을 받았고, 이후 황실 인물들이 국화장, 동화장 등의 일본 훈장을 패용하였다.
한편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스스로 단발하고 군복을 입었으며 백관의 진하와 입참에 관복을 일체 폐지하고 단발 복장으로 참여토록 했다. 따라서 1907년 순종의 황제 즉위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관복이 폐지되었고 관리의 양복 착용이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사진 자료로 확인할 수 있었다. 훈장과 기념장을 통하여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으니 사진이라는 신문물 속에 투영된 복식사적 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살피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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