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세기 사치성 남성 철릭의 계절별 특징과 문화적 의미 및 변화 양상 연구 : 『원본노걸대(原本老乞大)』91을 중심으로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seasonal cheolliks of wealthy men in 1350 focusing on the 『Original Nogeoldae』 91 and to present new information for reproduction. The names for these cheolliks were yoseon-oja (腰線襖子), yesal (曳撒), seseub-a (細褶兒), sejeob-a(細褶兒), and panseub-ua (板褶兒), depending on the form. The materials of the spring cheolliks were indigo ra [鴉靑羅], white ra [白羅], willow-green ra [柳綠羅], and red plain silk [綿紬], while the materials of the winter cheolliks were silver-brown jeosa [紵紗] and cotton, with the white ra and red yoseon being the Mongolian style 'vogue' elements of men’s cheolliks of the time. . Information on the summer and winter cheolliks of the time does not exist, but they were most likely made of fine ramie and ra. The forms of the waist pleats varied as side pleats, fine pleats, and thick pleats. The names and materials of these luxurious cheolliks vary in the 『Nogeoldae』 of the 14th–16th centuries, and information on similar clothes was also be found in the 『Middle Nogeoldae』 of the 18th century. However, cheolliks either disappeared or were replaced by utilitarian clothing in the Mongolian and Qing's 『Nogeoldae』 of the 18th century.
Keywords:
cheollik, cultural meaning, luxurious, Original Nogeoldae, seasonal키워드:
철릭, 문화적 의미, 사치성, 원본노걸대, 계절별I. 서론
몽골 복식은 본래 활동적인 유목 복식이었으나, 쿠빌라이 칸 재위기를 전후로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 화려한 재료가 가미된 원 제국 복식으로 변화하였다(Choi, 2001). 이로 인해 원의 대표적 유목 복식인 철릭은 활동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갖춘 의복이 되었고, 몽골의 세력 확장과 함께 몽골풍(蒙骨風)으로서 고려와 인근 국가의 복식에 융합된 후에 조선과 명의 복식으로도 흡수되었다.
『노걸대(老乞大)』는 현 베이징(Beijing:北京), 14세기의 중국 대도(大都)에서 만난 고려 상인과 중국 상인이 나눈 대화를 다룬 회화서이며, 몽골복식의 영향이 아직 강했던 1350년경이 배경이다(Chung, 2010). 국내에서 수정을 거쳐 여러 『노걸대』판본들이 계속 편찬되었고 몽어와 청어로 된 외국 판본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편찬지역과 시대의 특성에 따라 내용과 용어가 다소 달라져 신중한 분석이 필요한 문헌이다. 이 중에서 현재 최초의 노걸대 판본으로 알려진 『원본노걸대(原本老乞大)』는 “버린 자식(2)-사철의 사치한 옷(執迷着心(2)-按四時穿衣服)”(Chung, 2010, p. 312)이라는 제목의 91화(이하 화를 언급할 때는 번호만 표기)에서 한 방탕한 부유층 남성의 철릭과 기타 복식들을 계절별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위 대목은 14세기 원 말기와 고려 말기 부유층 남성의 정교한 복식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대도는 원의 겨울 수도였고, 여기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원본노걸대』91과 유사한 사치성 남성 복식을 실제로 접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 기록된 철릭 류를 중심으로 계절별 특성과 복식문화적 의미 및 시대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아직 찾기 어렵다. 관련 선행연구로 『노걸대』와 기타 문헌에 나타난 고려 복식의 명칭과 정의를 다룬 연구(Choi, 2023; Lee & Kwon, 2000; Suh, 2003), 몽골 철릭 류의 특징과 유물 연구(Cho et al., 2015; Choi, 2017), 13〜14세기 몽골 금직물과 복식 구조를 유럽문화와 연결한 연구(Lunde, 2018), 원과 고려의 직물 교역을 분석한 연구(Lee, 2021) 등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원본노걸대』91을 중심으로 철릭의 형식, 재료, 계절별 특성과 시대적 변화를 분석하여, 현존유물이 적은 14세기 사치성 남성 철릭에 필요한 고증 주안점을 제시하고 복식문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본노걸대』91 및 1517년경에 원본에 음을 달아 번역한 『번역노걸대』91에서 철릭 관련 용어를 선별하여 계절 별로 정리한다. 둘째, 정리된 품목과 재료의 특성을 선행연구와 관련 고문헌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셋째, 시대 변화에 따른 복식문화사적 흐름과 최종 형태를 살피기 위해, 18세기에 편찬된 『노걸대』본들을 선별해 해당 대목을 비교하여 각각의 철릭의 특성을 추가로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고찰 결과와 의의를 밝히고 고증에 필요한 요소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II. 이론적 배경
최초의 『원본노걸대』로 추정되는 본은 1998년에 남권희 교수가 발견하였다(Chung, 2010). Chung(2010)은 “원대의 한아언어(漢兒言語)를 익히기 위해 고려 말에 편찬되었고 당시 통문관에서 중국어 학습 교재로 사용되었음”을 근거로 이를 원본으로 추정하였다(p. 8). 여기에는 한국에 도입되어 복식문화의 일부가 된 철릭과 답호 류를 비롯해 1350년경의 복식 용어도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원본노걸대』72 “여러 가지 옷감”에서 중국 상인이 거래한 품목에 “재백요선(裁帛腰線)”과 “고고(罟罟)” 등의 몽골풍 복식 명칭이 보이는데(Chung, 2010, p. 247), 1370년에 명 홍무제는 “몽골 풍속을 제거하려고 관료 부인의 의복 규제와 관련된 복식 견본을 회람시켰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Brook, 1998/2006, p. 53). 이는 명 초기까지도 상류층의 복식에 원 몽골 복식의 영향이 강하게 남았었음을 의미한다.
『원본노걸대』91의 서술자는 ‘버린 자식’이라는 한 남성의 방탕함과 화려한 복식을 길게 비판하였다. 이 대목은 교훈 전달 외에도 주요 무역 품목이었을 고급 복식 관련 용어를 다양하게 교육하기 위해 삽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묘사된 철릭 류의 특징은, 본래 몽골 유목 복식인 철릭이 1350년경에 어떤 모습으로 고급 복식문화로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몽골의 테를릭(terlig)은 본래 ‘허리주름이 있는 의복’이 아닌 ‘땀 흡수용 안감을 댄 활동복’에 더 가까운 의미였다(Choi, 2001). Cho et al.(2015)도 ‘철릭’을 ‘tärlik’과 연결해 면 안감 및 땀과 관련된 용어로 해석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철릭은 허리주름이 있는 포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는데, 고려에 몽골 복식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용어의 뜻과 범위가 다소 변화한 예이다(Choi, 2017).
『원본노걸대』91은 현존하는 『노걸대』본 중 가장 오래된 본으로 추정되는 기록의 일부이며 해당시기 사치성 철릭 류의 명칭과 직물, 부속, 색상, 계절감이 잘 드러나,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복식 자료로서 분석할 가치가 있다. 이와 시대가 가까운 현존자료로 1517년 경에 최세진이 원본의 한자에 한글로 음을 달아 번역한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가 있다(“Translated Nogeoldae [번역노걸대]“, n.d.). 세종 재위기에 창제된 한글로 된 해석이 추가되어 복식용어에 대한 이해가 더욱 쉬워졌으나, 시대가 지난 만큼 원본과 달라진 복식용어가 일부 존재하므로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문헌은 최초의 본 및 처음으로 한글 해석이 달린 본이므로, 여기에 묘사된 철릭의 형태도 비교적 원형에 가까웠을 것이다. 반면, 시대 변화가 사치성 철릭 류에 미친 영향의 최종적인 모습을 원형과 비교해 관찰하려면 18세기에 편찬된 가장 후대의 본들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존하는 국내 판본 중 가장 후대인 1795년 본으로 추정되며 이전에 편찬된 『노걸대신석』의 거친 어휘를 다듬어 정리한 『중간노걸대언해』(“Annotated middle Nogeoldae-eonhae [重刊老乞大諺解]“, n.d.), 외국 『노걸대』본 중 철릭의 원류인 몽골의 언어로 구성되었고 『중간노걸대언해』와 비교적 유사한 시대인 1741년에 간행된 『몽어노걸대』, 몽골과 생활터전과 철릭 형태의 복식을 공유했었던 청(淸)의 언어로 구성되었고 1765년에 간행된 『청어노걸대』를 『원본노걸대』91과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실물자료가 부족한 여말 선초 사치성 남성 철릭의 고증 자료를 추출하고, 시대적 변화와 복식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하도록 한다.
III. 계절별 사치성 철릭의 특성과 변화 분석
1. 『원본노걸대』91의 철릭 특성과 변화
『원본노걸대』91인의 “버린 자식(2)-사철의 사치한 옷”(Chung, 2010, p. 312)(이하 ‘사철의 사치한 옷’)에 묘사된 의복들은 맥락으로 보아 1350년경에 대도의 부유층 남성이 착용한 사치품이며, 이 중에 허리주름이 있는 철릭 류의 명칭은 요선오자(腰線襖子)와 판습아(板褶兒)였다. 그러나 16세기 『번역노걸대』의 같은 대목에 요선오자는 없고 예살(曳撒), 세습아(細褶兒), 판접아(板摺兒) 등의 명칭이 나타나 시대 변화가 관찰된다. 허리주름이 있는 철릭의 기원은 몽골이지만, 그들과 생활 터전을 공유했던 청(淸)에서도 허리주름이 있는 텔레리(tereli)가 착용되었다(Choi, 2001).
18세기 말에 편찬된 『중간노걸대언해』하를 보면 시대가 많이 지났음에도 ‘사철의 사치한 옷’의 품목은 『원본노걸대』91과 유사하다. 반면 몇 번의 수정을 거쳐 18세기에 완성된 『몽어노걸대』의 해당 대목은 매우 간략하다(Hasibagen, 2018). 1765년에 재편집된 『청어노걸대』도 원본의 몇 부분이 합쳐지거나 생략되었으며(Choi et al., 2012), 해당 대목의 의복 묘사도 매우 단순하게 변했다.
본 연구는 이 사치성 남성 철릭의 시대적 변화를 비교하기 위해 먼저 국내문헌인 『원본노걸대』, 『번역노걸대』, 『중간노걸대언해』를 시대 순으로 인용하고, 철릭이 몽골풍 복식임을 중시하여 먼저 『몽어노걸대』를, 다음으로 『청어노걸대』순으로 같은 대목을 인용하였다. 『번역노걸대』는 Chung(2010)에 수록된 『번노(飜老)』를 참조했으며, 전문 복식용어가 아닌 표현이 Chung(2010)의 현대 번역에 일부 포함된 경우에 한해 연구자가 다시 번역하였다. 원문에 구어체와 문어체가 섞여있는 『몽어노걸대』는 Lee et al.(2018)을 참조하여 복원된 문어체를 인용하였다.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에서 ‘버린 자식’이 입은 봄 철릭은 모두 라(羅)로 제작되었다. 봄 철릭 및 이와 조합되는 복식의 묘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Chung(2010)의 원본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春間 好紫羅繡搭胡 白羅紅腰線襖子 梅花羅搭搭五兒 白羅衫兒(봄에는 좋은 자색 라에 수를 놓은 답호, 백라로 만들고 홍요선을 붙인 오자, 매화라로 만든 탑탑오아, 백라 삼을 입는다)(p. 314).
Chung(2010)의 번역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春間 好靑羅曳撒 白羅大搭胡 柳綠羅細摺兒(보ᄆᆞㅣᄂᆞᆫ 됴ᄒᆞᆫ 야쳥 로 이삭딕녕에 ᄒᆞᅟᅵᆫ 로 큰 더그레예 ᄑᆞᆫ류쳥 로 ᄀᆞᄂᆞᆫ 주룸 텬릭이오)(p. 315).
Kim(2018)의 중간노걸대언해 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春間穿的 好青羅白羅綠羅細褶單袍子(봄에 닙ᄂᆞᆫ 거슨 죠흔 프른깁 흰깁 초록깁 ᄀᆞᄂᆞᆫ 주름 홋두루막이오)(pp. 227-228).
Lee et al.(2018)의 몽어노걸대 1106(蒙老 7:19a)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qabur-tu sayin baraɣan degel-dü čaɣan lo-yin dotoɣadu degel(봄에ᄂᆞᆫ 됴흔 鴉靑 웃오ᄉᆞㅣ 흰 깁 속 오시오)(p. 234).
Choi et al.(2012)의 청어노걸대 권 7(7:19b)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niyengniyeri yachin sijigiyan šanyan ceri dorgi etuku(봄에 鴉靑 긴옷 흰 羅 속옷시오)(p. 438).
(1) 홍요선오자(紅腰線襖子)
백라홍요선오자(白羅紅腰線襖子)는 『원본노걸대』91에만 기록된 철릭이다. 1237년 경에 저술된 『흑달사략(黑韃事略)』은 “또, 홍색과 자색의 깁으로 만든 선을 허리에 가로로 두르고 요선이라 한다(又用紅紫帛捻成線 橫在腰 謂之腰線)”라 하여(Chinese Text Project, n.d.-a, chapter 25), 홍자색 계열의 요선이 요선오자(요선철릭)에 자주 사용되었음이 드러난다. 요선은 달리는 말에 탄 기수의 동체를 고정시켜 보호하던 부속이 장식으로 변화한 것으로 수십 줄로 구성되는데(Choi, 2001), 색이 옅은 라 철릭에 부착된 홍요선은 강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장식이다.
국내 유물로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변수(邊脩: 1447-1524)의 요선철릭[腰線帖裡] 중에 만초문단 철릭인 <Fig. 1>에 자색 계열의 22줄 요선이 있다(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NFMK], n.d.). <Fig. 1>의 바탕직은 백라가 아닌 단이지만 색이 옅으며 <Fig. 2>에 보이듯 짙은 자색 계열 요선이 부착되어, 백라홍요선오자와 유사한 조합을 보여준다. <Fig. 3>의 내몽골(內蒙古) 적봉원보산원묘(赤峰元寶山元墓) 벽화와 <Fig. 4>의 산시(陕西) 포성동이촌원묘(蒲城洞耳村元墓) 벽화에 묘사된 남성들도 홍요선이 부착된 비교적 옅은 색의 포를 예복과 연회복으로 착용하였다. 몽골 복식은 본래 기본적으로 우임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원 복식에서 좌, 우임이 혼용된 예가 <Fig. 4>에 나타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MA])의 작자 미상의 13〜14세기 회화인 <Fig. 5>를 보면 매를 다루고 말을 끄는 남성들의 녹색 포와 청색 포에도 홍요선 장식이 있는데(MMA, n.d.), 홍요선이 당시 예복, 연회복, 융복 류에 모두 선호되던 남성복식 부속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본노걸대』72를 보면 중국 상인이 구입한 물건 중에 마름질해 놓은 요선 재료인 재백요선(裁帛腰線)과 홍요선오자(紅腰線襖子)가 있다(Chung, 2010). 요선 제작용 반제품 및 당시 유행하던 홍요선을 부착한 철릭 완제품이 동시에 판매되었던 것이다.
Choi(2003)는 요선의 유형을 “몸판에 턱(tuck)을 잡은 것, 끈을 짜서 만든 것, 명주를 쌍밀이처럼 양쪽에서 말아 만든 것”으로 나누었다(p. 167). 『원본노걸대』의 배경인 1350년과 시기가 유사한 국내 해인사 출토 유물인 <Fig. 6>의 송부개(宋夫介) 요선철릭의 요선은 턱을 잡은 것이고(Haeinsa Museum [HM], 2008), <Fig. 3>의 변수 요선철릭의 요선은 끈을 짜서 붙인 것인데(Choi, 2003), 위의 ‘재백요선’은 턱 또는 쌍밀이 기법에 적합한 재료라고 볼 수 있다.
<Fig. 7>은 소더비(Sotheby)에서 경매된 13〜14세기 일카니드(Ilkhanid)의 변선오(辮線襖)이고(”An Ilkhanid silk robe”, n.d.), <Fig. 8>은 유사한 시기의 유물인 원 제국의 직금금(nasji) 변선오이다(Zhao & Jin, 2005). 이 변선들은 땋아 만들었는데 퇴색되어 정확한 색을 확인하기 어렵고, 앞서의 유물들과 달리 변선오 바탕직의 문양이 매우 화려하다.
‘사철의 사치한 옷’ 의 홍요선은 위에 서술된 기법 중 한 가지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지역과 시대에 따라 요선철릭의 바탕직과 요선 제작 기법에 대한 선호도는 다소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선은 몽골풍 철릭의 주요 부속이었고, 특히 홍자색 요선은 13세기에 형성된 후 대도에 정착된 유행이었다. 따라서 ‘사철의 사치한 옷’의 백라홍요선오자는 해당시기 몽골풍 남성 복식의 유행 성향을 강하게 반영한 철릭이다.
조선에서 변수의 유물 이후 요선오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14세기 이후에 요선이 쇠퇴하였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요선은 본래 기마 유목 생활에 맞는 동체 보호용 부속이므로(Choi, 2001), 14세기 이후 명과 조선의 사대부의 일상생활에서 실용성이 낮아진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Cho et al.(2015)는 요선오자처럼 촘촘한 허리주름을 잡은 의복은 앉아있을 때 모양이 망가지기 쉬우므로 예살(曳撒)처럼 양 옆에만 주름을 잡는 변형이 생겼을 것이라는 설을 제시하였다.
(2) 예살(曳撒)
청라예살(靑羅曳撒)은 『번역노걸대』91에만 존재한다. ‘사철의 사치한 옷’의 청라예살은 국어로 ‘됴ᄒᆞᆫ 야청 로 이삭딕녕’, 즉 고급 아청라로 만든 이삭직령이다(Chung, 2010). Lee and Kwon(2000)은 1751년의 『선조수정실록』에 기록된 중국 환관의 관복인 의살직령(衣撒直領)을 이삭딕녕과 유사한 의복으로 추정했다. 이 의살은 “뒷길은 이어지고 앞길은 상하가 분리되어 연결되었으며 앞길 치마 양옆에만 굵고 긴 주름을 넣은 의복”이다(Lee & Kwon, 2000, p. 129). Suh(2003)는 의살과 예살을 같은 옷으로 정의하였다. 한편 “왕세정(王世貞:1526~1590)의 『고불고록(觚不觚錄)』에 기록된 예살은 옷 중간이 나뉘었고 상부에 횡절(橫折), 하부에 수절(竪折)이 있으며 소매가 긴 옷”이어서, 특징이 요선철릭과도 비슷하다(Lee & Kwon, 2000, p. 129-130). 이를 종합해 허리주름을 중시한다면, 국내 기준으로 예살을 철릭 류로 분류할 수 있다.
예살은 질손복(質孫服)과 유사한 용어로 분류되기도 하는데(”Zhisunfu [质孙服]”, n.d.). 질손은 대칸이 주최하는 질손연(質孫宴)의 참가자들이 결속을 다지기 위해 정해진 형태 없이 색을 통일해서 입던 연회복이었다(Choi, 2013). 따라서 예살도 질손연의 성격에 맞게 색을 맞추면 질손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예살 착용자가 묘사된 대표적 현존자료는 고궁박물원(The Palace Museum [TPM])의 『명인화명선종행락도권(明人画明宣宗行乐图卷)』이다<Fig. 9>.
선종(宣宗: 1399-1435), 시동, 관리의 복색은 선종의 것을 제외하면 짙은 청색과 녹색이고 의복 형태는 흉배 유무 외에는 모두 같은데, 하나로 이어진 뒷길, 앞길 옆허리의 주름, 긴 소매가 특징이다. 그러나 ‘버린 자식’이 관리였다는 근거는 없으므로, ‘됴ᄒᆞᆫ 야청 로’로 만든 그의 예살의 용도는 관복이 아닌 고급 남성예복으로 추정된다. 원의 백관(百官) 질손복 중 하나인 고려아청운수라질손(高麗鴉雲袖羅質孫)의 재료도 아청라였고(Choi, 2013). 질 좋은 아청라는 이 시기 부유층 남성의 예복에 적합한 격식있는 재료였다.
예살은 몽골풍 철릭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의복이다. 그러나 몽골어 문헌인 18세기의 『몽어노걸대』에는 예살 또는 철릭 류의 명칭은 없고, 아청 웃옷(baraɣan degel)과 속옷인 흰 깁 옷만 기록되었다(Lee et al., 2018). Hasibagen(2018)는 『원본노걸대』의 의복과 재료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18세기 몽골 일상생활에서 이 비단들의 사용 범위가 좁았기 때문에 『몽어노걸대』에서 생략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청어노걸대』에도 아청 긴옷(yachin sijigiyan)과 흰 라 속옷 외에 다른 의복은 없으며(Choi et al., 2012), 역시 『원본노걸대』91의 의복들이 18세기 청의 일상생활에서는 낯선 것이어서 묘사가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비단을 거래하는 장면인 『몽어노걸대』881~924에는 金으로 짠 비단(altan-iyer nekegsen torɣ), 金으로 짠 흉배(alta-ber nekegsen püse), 사(紗: ša), 능(綾: lingse), 융사(絨絲: yongqur) 등의 고급 직물 용어가 남아 있고, 『원본노걸대』에 없는 거래 내용도 일부 추가되었다(Lee at al., 2018). 『청어노걸대』의 같은 대목에도 금선(金縇)이 들어간 흉배(sajirtu), 금으로 짠 비단(aisin i jodoho suje), 사라(紗羅: cece ceri), 능(綾: suberi), 사(絲: sirge) 등의 용어가 존재한다(Choi et al., 2012). 18세기 몽골과 청의 『노걸대』본에서 고급 직물 용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섬세한 철릭을 포함한 실생활 속의 사치성 복식 용어가 대량으로 생략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3) 세습아(細褶兒), 세접아(細摺兒), 세습단포자(細褶單袍子)
『원본노걸대』91에 없고 『번역노걸대』91에 있는 유록라세접아(柳綠羅細摺兒)는 국어로 ᄑᆞᆫ류쳥 로 ᄀᆞᄂᆞᆫ 주룸 텬릭, 즉 가는 주름을 잡은 연녹색 라 철릭이다. 참고로 『원본노걸대』74는 가는 주름의 옷을 세습아(細褶兒), 『번역노걸대』91은 세접아(細摺兒)로 표기했으며, 『중간노걸대언해』하는 습(褶)으로 표기하고 ‘져’로 발음하였다. 『노박집람(老朴輯覽)』은 “세습(細褶)은 가는 옆주름이며 생각컨데 습(褶)은 접(摺)으로 쓰는 것이 옳다.” 라 하므로(Chung & Yang, 2011, p. 143), 이 장에서는 각각 원본의 한자를 인용하되 대표명사로 ‘세접아’를 사용하였다. Suh(2003)은 세습아(세접아)를 가는 주름의 철릭 또는 가는 주름 자체로 분류하였다.
『원본노걸대』74에서 상인이 자저사(紫紵絲)를 거래하며 “넉넉히 7발이니....손님 정도의 키라면 세습아는 충분히 만들며 직신오자(直身襖子)는 만들고도 남는다”라고 하는데(Chung, 2010, pp. 253-255), 성인 남성의 세습아(세접아)에 현재 기준으로 12.6m(14마) 가량의 저사가 필요했고 주름 없는 직신오자보다 옷감이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저사(紵絲)는 날실이 명주실이고 씨실이 모시풀 껍질 실인 겸직포이며(Yoon, 2017), 얇지만 강직한 태와 은은한 광택을 지닌 의복 재료이다. 이에 비해 더 부드러운 얇은 라를 사용하면 유동적인 태의 의복을 만들 수 있다.
만약 14세기 중반의 송부개 요선철릭(Fig. 6)의 형태가 16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면, 『번역노걸대』91의 유록라세접아는 “허리에 1.5〜2cm 너비로 맞주름을 잡고 왼쪽에 트임을 넣은” 철릭이었을 수 있다(HM, 2008, p, 72). <Fig. 10>의 명대 암화사 홑철릭도 주름의 너비가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16세기 초 변수 요선철릭의 허리주름은 겉주름너비 0.2cm, 안주름너비 0.5cm로 더 세밀하며(Choi, 2003), 요선이 없는 변수 철릭들의 주름은 0.1〜0.2cm이고(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NFMK], 2000), 고운(高雲:1479∼1530)의 철릭 중 <Fig. 11>의 홑철릭은 가장 가느다란 0.1cm의 주름으로 제작되었다(An, 2010). ‘세습아’, ‘세접아’라는 표현은 이에 더 적합하며, 요선에 대한 묘사가 없는 유록라세접아는 변수와 고운의 유물처럼 가는 허리주름만 있는 철릭일 것이다.
1745년의 평안감영중간본 『노걸대언해』와 『번역노걸대』의 해당 대목의 봄 철릭 명칭은 큰 차이가 없다(Kim, 2018). 그러나 1795년의 『중간노걸대언해』하에 묘사된 ‘사철의 사치한 옷’의 봄 철릭은 호청라백라녹라세습단포자(好青羅白羅綠羅細褶單袍子), 국어로 ‘죠흔 프른깁 흰깁 초록깁 ᄀᆞᄂᆞᆫ 주름 홋두루막이’이며(Kim, 2018), 청색, 백색, 녹색의 고급 라로 만든 3벌의 가는 주름 홑두루마기로 변화하였다. ‘세습단포자’의 재료인 청라와 백라는 아청라예살과 백라홍요선오자를 대신하기 위한 재료로 보이며, 『중간노걸대언해』의 편찬 시기에 예살과 요선오자가 조선에 존재하지 않아 모두 세습단포자 한 가지로 대체된 듯 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존재했을 답호도 『중간노걸대언해』하에 보이지 않고, 봄 의복의 명칭 자체가 다소 단순화되었다. Suh(2003)도 『중간노걸대언해』와 유사한 1765년에 편찬된 『박통사신석언해』에 예살(曳撒)과 답호(搭胡)란 명칭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4) 관련 복식
일반적으로 철릭과 답호가 한 조인 점을 고려하면, 『원본노걸대』91의 남성은 봄에 백라홍요선오자와 함께 자색 라에 수를 놓은 답호 또는 매화라로 만든 탑탑오아(搭搭五兒)를 입었을 것이다. 탑탑오아는 항상 답호와 함께 언급되어서 한자로 음역된 답호 류로 보이지만 정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단지 이것이 매화 문양의 라로 제작된 장식적인 의복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철릭 위에 입는 덧옷인 답호 류의 색상과 문양이 더 화려하고 장식적인 예이다. 반면 『번역노걸대』91에서는 백라대답호(白羅大搭胡) 아래에 선명한 색상의 예살 또는 세접아가 착용되었고, 옅고 투명한 답호를 통해 장식적인 철릭 류가 비쳐 보이는 예이다. 두 경우 모두 철릭과 답호의 명도와 색상에서 대조미가 나타나며, 봄 답호도 봄 철릭처럼 라가 주재료이다.
‘사철의 사치한 옷’의 여름 재료는 얇고 섬세한 극세모시, 수를 놓은 사, 짙게 물들인 사이며, 의복은 적삼, 답호, 직신(直身)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해당 대목에 철릭 류로 판단되는 여름 의복의 명칭은 없으므로, 다른 관련 복식들을 분석해 착용 가능성을 파악하려 한다. 봄 의복의 주재료였던 라 대신에 사가 답호와 직신에 쓰였고 모시는 적삼에 쓰였으며, 이 의복들은 각 문헌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되었다.
Chung(2010)의 원본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夏間好 極細毛施布布衫 上頭繡荊褐紗搭胡 白紗搭搭五兒(여름이 되면 극세모시포로 만든 삼, 형갈색 사 위에 수를 놓아 만든 답호, 흰 사로 만든 탑탑호아를 입는다)(p. 314).
Chung(2010)의 번역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夏間好 極細的毛施布布衫 上頭繡銀條紗搭胡 鴨綠紗直身(녀름 다ᄃᆞᆮ거든 ᄀᆞ장 ᄀᆞᄂᆞᆫ 모시뵈 젹삼애 우희ᄂᆞᆫ 제 실로 슈질 노ᄒᆞᆫ ᄒᆞᅟᅵᆫ 믠 더그레 야투로 사 딕령이오)(p. 314).
Kim(2018)의 중간노걸대언해 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夏天 好極細的毛藍布衫 上頭穿銀條紗袍子 鴨綠紗直身(녀름에 다ᄃᆞᄅᆞ면 ᄀᆞ장 ᄀᆞᄂᆞᆫ 모시뵈 젹삼에 우희 닙은 거슨 성긔고 센 紗 두루막이와 압두록 紗 직녕이오)(p. 228).
Lee et al.(2018)의 몽어노걸대 1107((蒙老 7:19a-b)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ǰun-du adabasi narin yoroɣ ǰodong-un čamča (녀ᄅᆞᆷ에ᄂᆞᆫ ᄀᆞ장 ᄀᆞᄂᆞᆫ 모시뵈 赤衫이오)(p. 234).
Choi et al.(2012)의 청어노걸대 권 7(7:20a)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juwari narhūn mušuri jodon gahari(녀름에 ᄀᆞᄂᆞᆫ 모시 뵈 젹삼이오)(p. 439).
『원본노걸대』91의 ‘사철의 사치한 옷’에 여름 답호는 있지만 함께 착용했을 철릭 류는 없으며, 『번역노걸대』91과 『중간노걸대언해』하에 긴 소매의 포 류로 유일하게 압록사직신(鴨綠紗直身), 즉 ‘야투로 사 딕령’ 이 있지만 이것이 철릭의 대체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간노걸대언해』하에 천은조사포자(穿銀條紗袍子)란 의복도 있으나 『번역노걸대』91과 비교하면 이는 재료가 같은 답호의 대체품으로 보인다.
『작중지(酌中志)』권 19는 “직신은 도포와 같지만 무(摆)는 밖으로 보낸다(直身 制与道袍相同 惟有摆在外)”라 하여 옆무의 위치로 두 의복을 구분하였다(Chinese Text Project, n.d.-b). 만약 ‘사철의 사치한 옷’으로 철릭 대신 도포형 직신이 반소매 답호와 조합된 것이라면 직신의 진동둘레가 반소매에 맞게 비교적 좁아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직신과 답호가 함께 착용되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원본노걸대』91의 여름 답호는 형갈색 사에 수를 놓은 답호이며, 답호의 일종으로 보이는 흰 사로 만든 탑탑오아도 있다. 『번역노걸대』91의 답호는 수를 놓은 은조사(銀條紗) 답호이다. 이 두 문헌에서 ‘버린 자식’은 모두 사 답호를 입었고, 극세모시포포(極細的毛施布布)로 만든 삼(衫)를 받쳐 입었다. 『원본노걸대』98에서 고려 상인이 판매한 상등품 모시가 11새였고(Chung, 2010), Lee(2021)은 고려에서 원에 모시를 보낸 시기가 주로 기후가 온화한 계절임을 밝혔다. 따라서 11새 이상의 모시를 14세기의 부유층 남성이 여름 옷 재료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원본노걸대』91에는 세모시로 속옷인 삼을 만든 예가 나타나지만 고려 송부개 철릭인 <Fig. 7>은 세모시로 겉옷인 철릭을 만든 예이므로, 국가와 지역에 따라 모시를 속옷 또는 겉옷 재료로 구분해 선호했을 수 있다.
고려 송부개 철릭의 재료가 얇은 세모시이며 압록사직신의 재료도 얇은 사(紗)이므로, 14세기의 부유층 남성이 얇은 재료로 만든 철릭을 일부러 여름에 피했을 이유는 없다. 『원본노걸대』74에도 얇은 재료인 자저사(紫紵紗)로 세습아와 직신오자를 모두 만들 수 있다고 기록되었다(Chung, 2010). 『원본노걸대』91에 여름 철릭이 없는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다양한 복식 명칭을 기록하기 위해 앞 내용과 중복되는 명칭은 가급적 제외했을 가능성을 신중하게 제시한다.
묘사가 매우 간단해진 『몽어노걸대』와 『청어노걸대』의 ‘사철의 사치한 옷’ 중에서 여름 의복은 ‘ᄀᆞᄂᆞᆫ 모시 뵈 젹삼(赤衫)’ 뿐이다. ‘적삼’을 표현한 몽어 čamča와 청어 gahari는 포 아래에 입는 속옷 류이므로, 해당시기의 몽골과 청의 거주민들은 여름 속옷 재료로서의 모시의 특징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철의 사치한 옷’의 가을 복식 묘사는 매우 단순하다.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가을 복식에는 구체적인 명칭이 없고, 모두 “到秋間是羅衣裳(ᄀᆞᅀᆞᆯ히 다ᄃᆞᆮ거든 로 오시오)....”라고 짧게 기록되었다(Chung, 2010, p. 314). 『중간노걸대언해』하에도 “到秋間是羅衣裳(ᄀᆞᅌᆞᆯ에 다ᄃᆞᄅᆞ면 이 깁옷시오)”라고 기록되어(Kim, 2018, p. 228), 라(로)를 깁이라고 표현한 것 외에는 이전의 본과 차이가 없다. 『몽어노걸대』1108(蒙老 7:19b)에도 “namur-tu lo-yin degel(ᄀᆞᄋᆞᆯ에ᄂᆞᆫ 깁 오시오)”(Lee et al., 2018, p. 234), 『청어노걸대』권 7(7:20a)에도 “bolori ceri etuku(ᄀᆞ을에 羅 옷이오)”(Choi et al., 2012, p. 439)로 짧게 묘사되었고, 18세기의 몽골과 청에서도 모두 라 직물을 가을 의복 재료로 이해하고 있다.
위의 모든 문헌들에서 가을 복식이 가장 짧게 서술되었으나, 사치가 심했던 ‘버린 자식’이 가을에만 옷의 가짓수를 줄여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가을 복식의 주재료인 라(羅)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버린 자식’의 봄 철릭과 답호의 주재료이다. 춘추복(春秋服)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면, 봄 의복과 비슷한 철릭과 답호 류를 또다른 라 직물로 만들어서 가을에 입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겨울 철릭 류는 은갈저사판접아단오자(銀褐紵絲板摺兒短襖子)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오자(襖子)이지만, 요선오자와 변선오의 주요 특징인 허리주름에 대한 묘사가 없어 철릭 이외의 방한용 핫옷으로 분류하였다. 다음은 각 문헌들의 같은 대목에 기록된 ‘버린 자식’의 겨울 겉옷 묘사이다. 다른 겨울 겉옷들의 다양한 재료를 철릭의 재료와 비교하기 위해, 오자와 답호에 대한 묘사도 함께 제시하였다.
Chung(2010)의 원본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冬間 斜紋紵絲襖子 斜紋絲紬襖子 纏身金龍襖子 茶褐水波紋地兒四花襖子 象眼地兒鴉靑六花襖子 雲肩搭胡....銀褐紵絲板褶兒短襖子 黑褐紵紗開襟襖子 渾金搭子搭搭五兒(겨울이 되면 사선문 저사 오자, 사선문 명주 오자, 휘감긴 금룡문의 오자, 차갈색 수파문 바탕직에 사화문을 넣은 오자, 상안 바탕직에 아청 육화문을 넣은 오자, 운견 답호....은갈색 저사로 지은 넓은 주름 철릭 단오자, 흑갈색 저사로 지은 개금오자, 혼금탑자로 지은 탑탑오아를 입는다)(pp. 312-314).
Chung(2010)의 번역노걸대 9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冬間 界地紵絲襖子 綠紬襖子 織金膝欄襖子 茶褐水波浪地兒四花襖子 靑六雲襖子....銀褐紵絲板摺兒短襖子 黑綠紵絲比甲(겨ᅀᅳ리 다ᄃᆞᆮ거든 벽드르문엣 비단 핟옷과 초록 면듀 핫옷과 금으로 ᄡᅡ 시란ᄒᆞᆫ 핟옷과 감차할 믈ᄭᅧᆯ 바탕에 ᄉᆞ화문ᄒᆞᆫ 비단 핟옷과 야청비체 구름 여슷곰문 둔 비단 핟옷과....부희여ᄒᆞᆫ 비쳇 비단 너븐 주룸 텬릭과 뎌른 핟져구리와 희무로 비단 비게와 ᄒᆞ야)(pp. 314-315).
Kim(2018)의 중간노걸대언해 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到冬間是 紵絲襖子 絲紬襖子 織金襖子 茶褐水波浪四花襖子 靑六雲襖子....銀色紵絲板摺兒短襖子 黑綠紵絲比甲(겨ᄋᆞᆯ에 다ᄃᆞᄅᆞ면 이 비단 핫옷과 면쥬핫옷과 직금믄ᄒᆞᆫ 핫옷과 감찰빗ᄎᆞㅣ 믈결바탕에 四花믄ᄒᆞᆫ 핫옷과....은빗ᄒᆞㅣ 비단 넙은주름져른 핫옷과 흑녹빗ᄒᆞㅣ 비단 비게니)(pp. 228-229).
Lee et al.(2018)의 몽어노걸대 1109(蒙老 7:19b)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bül-dü noɣoɣan mičeü köböng-ün degel-i emüsün-e(겨ᄋᆞᆯ에ᄂᆞᆫ 草綠 綿細핫 오슬 닙ᄂᆞ니)(p. 235).
Choi et al.(2012)의 청어노걸대 권 7(7:20a)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tuweri niowanggiyan miyanceo kubun i etuku be etumbi(겨ᄋᆞᆯ에 프른 면츄 핫 옷슬 닙ᄂᆞ니라)(p. 439).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에 나타난 겨울 겉옷의 재료는 직금슬란(織金膝欄), 혼금탑자(渾金搭子), 능자(綾子), 저사(紵絲), 주(紬), 운견(雲肩)이다. 철릭인 판접아와 소매없는 덧옷인 비갑에는 비교적 얇은 저사가, 반소매 덧옷인 답호류에는 운견과 혼금탑자가 사용되었다. 봄과 가을 복식의 주재료였던 라는 겨울 재료로 언급되지 않아, 겨울에는 선호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 판습아(板褶兒), 판접아(板摺兒)
『원본노걸대』91의 겨울 복식 중에 철릭의 특징인 주름이 묘사된 의복은 은갈저사판습아단오자(銀褐紵絲板褶兒短襖子)이다. 『번역노걸대』91은 이를 ‘부희여ᄒᆞᆫ 비쳇 비단 너븐 주룸 텬릭’이라 해석했고, 마지막의 ‘단오자’ 부분을 따로 ‘뎌른 핟져구리’로 해석했다(Chung, 2010). 그러나 이 ‘단오자’ 부분에 색상과 재료가 묘사되지 않아서 ‘판습아’와 연결된 단어로도 볼 수 있다. 『중간노걸대언해』하도 이 의복을 은색저사판접아단오자(銀色紵絲板摺兒短襖子)라 쓰고 ‘은빗ᄒᆡ 비단 넙은 주름 져른 핫옷’이라 설명하여(Kim, 2018), ‘판접아’와 ‘단오자’를 연결해 해석했다.
이 의복의 주름은 『번역노걸대』91과 『중간노걸대언해』하에에 접(摺), 『원본노걸대』91에 습(褶)으로 기록되어 혼용되었다. 앞서 인용한 『노박집람』에 접(摺)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기록이 있어(Chung & Yang, 2011, p. 143), 이하 판접아로 표기하였다.
저사는 은은한 광택이 있지만 얇아서 겨울 의료로는 적합하지 않은 직물이다. 그러나 태를 고려하면 강직한 모시 성분이 포함된 저사는 넓고 큰 주름이 있는 판접아를 만들기 쉽다. 이 판접아의 색상인 ‘은갈’은 광택이 있는 갈색, 은실이 섞인 갈색 등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중간노걸대언해』하에는 단순히 은색이라 기록되었으므로 반사광이 있는 옅은 색일 수도 있다.
‘사철의 사치한 옷’에서 판접아가 단오자(短襖子)라면 솜철릭이었을 것이며, 겉감인 저사의 두께는 얇지만 솜의 부피감 때문에 넓은 허리주름을 잡았을 수 있다. 그러나 판접아의 형태를 지닌 14세기의 온전한 솜철릭 유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아, 가능한 구성법을 추정하기 위해 부득이 14세기 이후의 현존 유물을 관찰하였다.
15~16세기 송효상(宋效商:1430-1490)의 솜철릭인 <Fig. 12>는 허리주름이 0.25cm로 가늘며(Daejeon Prehistoric Museum [DPM], 2009), 16세기 심수륜(沈秀崙: 1534~1589)의 솜철릭인 <Fig. 13>의 허리주름도 가늘다(Gyeonggi Province Museum [GPM], n.d.). 이에 비해 명의 홑철릭 형 갈포(葛袍)인 <Fig. 14>는 재료가 얇지만 허리주름은 넓다. 따라서 재료의 두께보다 유행 성향이 겨울 철릭의 주름 너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Fig. 15>의 심수륜 솜철릭의 앞섶 바대는 금실로 전체를 메운 연화문 금직인데, 다량의 금실로 제직한 몽골식 금직과 형식이 유사하다.
(2) 관련 복식
‘사철의 사치한 옷’의 겨울 복식 중 가장 많은 것은 핫옷인 오자(襖子)인데, 겉감이 주, 직금슬란, 융직 등이어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표면감을 지녔다. 이에 비해 겨울 철릭인 판접아는 섬세한 저사로 제작되었으나 장식적 요소가 적어, 오자보다 상대적으로 태와 문양이 간소하다.
이 판접아와 한 조로 착용될 수 있는 덧옷은 『원본노걸대』91의 운견답호(雲肩搭胡) 및 금직 답호의 일종인 듯한 혼금탑자탑탑오아(渾金搭子搭搭五兒), 『번역노걸대』91과 『중간노걸대언해』하의 흑록저사비갑(黑綠紵絲比甲)이다. 비갑은 원 세조의 황후인 챠브이가 유행시킨 것으로 뒷길이가 더 길고 소매가 없는 장배자(長褙子)이다(Choi, 2001). 용도와 재료의 통일감을 고려하면 흑록저사비갑이 위의 판접아와 한 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운견 직물 및 혼금으로 제작된 화려한 답호 류도 한 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몽어노걸대』의 ‘사철의 사치한 옷’ 중에서 겨울 의복은 『번역노걸대』91에도 있는 녹주오자(綠紬襖子), 즉 초록 명주 핫옷(noɣoɣan mičeü köböng-ün degel) 뿐이다(Lee et al., 2018). 여기에서는 다른 정교한 재료보다 방한용 솜인 쿠붕(köböng)과 명주가 중시된 것이다. 『청어노걸대』의 해당 대목에도 프른 면츄 핫옷(niowanggiyan miyanceo kubun i etuku)만 있으며(Choi et al., 2012), 이는 초록 명주 핫옷과 동일한 의복이다. 국내 『노걸대』본들에 묘사된 ‘사철의 사치한 옷’의 철릭을 비롯한 다양한 겨울 의복들은 이 두 문헌에 없고, 솜을 넣은 실용적인 방한복 1종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2. 사치성 남성 철릭의 특징과 변화 과정
『노걸대』는 중국 대도가 무대이지만 역관들을 위해 국내에서 편찬된 회화서이므로, 편찬 시기의 국내 역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용어들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같은 대목을 다룬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철릭 류에서도 미세한 용어와 재료 변화가 나타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원본노걸대』에는 1350년 전후에 대도 및 고려에서 즐겨 사용되던 복식 용어와 유행도 다수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의 변화는 각각의 『노걸대』본에 반영되었고, ‘사철의 사치한 옷’의 철릭 류 변화 양상 및 여말 선초의 부유한 남성을 위한 사치성 철릭 추정 형태와 고증 주안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Table 1>은 『원본노걸대』91을 중심으로 『번역노걸대』, 『중간노걸대언해』, 『몽어노걸대』, 『청어노걸대』의 해당 대목에 나타난 철릭 류의 명칭과 재료 변화를 비교 정리한 것이다. <Table 2>는 가장 다양한 철릭 류가 기록된 『원본노걸대』91 및 이와 시대가 가깝고 한글 번역이 있는 16세기 『번역노걸대』91를 중심으로 ‘사철의 사치한 옷’의 계절별 철릭의 특징을 추출한 후, 현존 유물과 조합하여 추정 가능한 형태의 예를 계절별로 제시한 것이다. <Table 2>에 표시된 ‘14C~16C’는 참고 유물의 연대이다. 이는 각각 명대 유물의 형태 및 『번역노걸대』91의 재료와 색상을 참조한 아청라 예살, 14세기 송부개 철릭과 16세기 초 변수 철릭의 형태 및 『원본노걸대』91의 재료와 색상을 참조한 백라홍요선오자, 『번역노걸대』91의 재료와 14세기 및 16세기 초 가는 주름의 실물유물 형태를 참조한 유록색 라 세접아, 『원본노걸대』74에 언급된 세습아(세접아) 재료를 14세기 유물 형태에 응용한 자색 저사 세접아,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과 『중간노걸대언해』하에 모두 기록된 은갈색 또는 은색 저사로 만든 겨울 판접아로 정리된다.
가능한한 형태 특징이 확실하고 14세기에 가까운 시대의 현존 철릭 유물 형태를 우선한 후 16세기의 유물 형태를 추가로 참고했으나, 솜이 포함된 겨울 판접아처럼 14세기의 온전한 관련 유물이 없는 경우에 부득이 세부 특징을 중시하여 이후의 관련 유물만을 부분적으로 참고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한계점으로 남는다. 이는 추후 해당시기의 유물이 발견되는 대로 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IV. 연구 결과
『원본노걸대』에서 파생된 『노걸대』본들에 기록된 ‘사철의 사치한 옷’ 중에서 봄 철릭의 주요 고증 요소는 라, 가는 주름, 홍요선이며, 겨울 철릭의 주요 고증 요소로는 저사, 굵은 주름, 방한용 솜을 들 수 있다. ‘사철의 사치한 옷‘에 묘사된 사치성 철릭 류의 바탕 색상은 백라홍요선오자의 백색, 청라예살의 아청색, 유록라세접아의 연녹색, 은갈저사판접아의 은갈색이다. 『원본노걸대』가 14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문헌임을 고려하여, <Table 2>의 홍요선의 형식은 고려 송부개 철릭의 턱 형식을 우선으로 선정하였다. 또한 16세기에 한글로 국내 복식 용어를 넣어 번역된 『번역노걸대』91의 의의를 고려해, 추가로 16세기 초 변수 철릭에 나타난 땋은 요선 형식도 ‘사철의 사치한 옷’의 철릭 고증 요소로 적용하였다. 참고 유물에서 고름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경우에는 도판에서 고름을 생략하였다. <Table 1>의 문헌들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부속 장식으로 16세기 후반 심수륜의 솜철릭 유물처럼 금사를 다량으로 사용한 금직 고름바대를 추가할 수 있다.
‘사철의 사치한 옷’ 에 여름과 가을 철릭에 대한 기록은 없는데, 확신하기는 어려우나 여름에 철릭의 대체품으로 사 직신을 입었거나 가을에 봄처럼 라 철릭을 입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원본노걸대』74에서 세습아와 직신오자의 재료인 자저사를 거래하는 장면을 참고하여 자저사로 만든 홑 세습아(세접아)를 여름 철릭의 대안으로 <Table 2>에 제시했으며, 가을 철릭은 봄 철릭과 유사하다는 가정 하에 도판을 제외하였다. 직신은 ‘사철의 사치한 옷’에 기록된 여름 의복 중 유일한 긴 소매의 포 류이지만, 허리주름이 없는 의복이므로 철릭의 대체품으로 볼 수 없어 <Table 2>에서 제외하였다.
라 직물이 이 사치성 철릭들의 주요 재료였음에도 불구하고 항라를 제외하면 현재 시판되는 라 직물은 없고 (재)아름지기(arumjigi.org)에서 개발한 ‘라-라이크’ 직물은 아직 판매 전 단계이므로, 직물 생산과 관련된 보완 연구가 필요하다.
원본에 기록된 사치성 철릭 류는 18세기의 『몽어노걸대』, 『청어노걸대』의 해당 대목에서 사라져 복식문화적 의미를 상실했다. 그러나 18세기의 국내 문헌인 『중간노걸대언해』의 해당 대목을 보면 예살과 요선오자라는 명칭은 없어도 가는 주름의 라 철릭에 대한 묘사가 남아 있다. 이는 18세기의 몽골과 청에 비해 18세기의 조선에 14세기 사치성 철릭과 관련된 복식문화가 더 강하게 남아 있었음을 의미한다.
V. 결론
본 연구는 1350년경 대도의 부유층 남성의 사계절 복식이 묘사된 현존 최초의 본인 『원본노걸대』91 및 가장 후대에 편찬된 관련 문헌에서 철릭의 계절별 특성을 분석하여, 실물자료가 부족한 해당 시기의 사치성 남성 철릭의 고증 요소를 제시하고 시대 변화에 따른 최종적인 변화 및 복식문화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원본노걸대』91의 계절별 철릭의 색상과 재료는 14세기 무렵의 중국과 고려의 부유층 남성 철릭 고증에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국내로 몽골풍 복식이 도입되면서 ‘철릭(terlig)’의 정의가 변화했기 때문에, 국내 기준을 따라 허리주름이 있는 의복을 철릭 류로 분류하였다.
가장 최초의 형태와 시대 변화에 따른 최종 형태를 비교하고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본이며 14세기 중반이 배경인 『원본노걸대』91 및 새로 창제된 한글 번역이 포함된 16세기의 『번역노걸대』91, 그리고 가장 후대에 편찬된 18세기의 『중간노걸대언해』, 『몽어노걸대』, 『청어노걸대』의 같은 대목을 비교하였다. 미세한 차이는 있으나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사치성 남성 철릭 류의 명칭은 비교적 다양하고, 라 직물의 사용빈도가 높았다. 18세기의 『중간노걸대언해』하에도 묘사는 단순화되었으나 ‘세습단포자(細褶單袍子)’란 명칭이 남았고 재료도 라 직물이다. 그러나 18세기 『몽어노걸대』와 『청어노걸대』에는 이마저도 보이지 않아, 14세기의 사치성 철릭과 몽골풍 복식문화의 위상이 18세기보다 높았음이 드러난다. 18세기 몽골과 청의 『노걸대』본에도 비단 거래를 다룬 대목에 고급 직물 명칭은 남아 있으나, 계절별 철릭을 포함한 사치성 남성 복식 명칭은 대부분 사라지고 실용적인 의복으로 대체되었다.
본래 유목 복식인 철릭은 원 제국의 전성기에 고급 남성 일상예복으로 변화했으며, 『원본노걸대』91의 경우 14세기 전후의 유행을 반영한 ‘백라홍요선오자’가 나타나 복식문화적 신빙성이 더욱 높다. ‘사철의 사치한 옷’에 기록된 사치성 철릭의 특징은 아청색, 백색, 유록색, 은갈색이 선호된 점, 가는 주름의 세접아와 굵은 주름의 판접아를 각각 얇은 라와 얇은 저사로 제작해 봄과 겨울에 착용한 점, 답호와 철릭의 명도와 색상에 나타난 대비조합, 라 직물 선호, 옅은 색 요선오자와 조합된 홍요선의 유행 등으로 정리된다. 이 대목에 기록되지 않은 여름 철릭의 대안으로 『원본노걸대』74를 참고한 자저사 세습아(세접아)를 제시하였다.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한어(漢語) 부분에 철릭, 천익, 첩리 대신에 허리주름이 있는 의복 류를 일컫는 예살, 요선오자, 세습아, 세접아, 판접아란 명칭이 사용된 점도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원본노걸대』91과 『번역노걸대』91의 철릭의 주름은 가는 것과 굵은 것이 모두 존재하며, 주름의 구조 및 세부는 여말 선초, 원, 명의 현존유물을 참조할 수 있다. 또한 14세기 전후의 요선 제작법은 여러 가지이므로, 여말 선초의 국내 부유층의 요선오자를 고증하려면 국내 유물인 송부개 철릭과 변수 철릭의 요선 제작법이 참조되어야 한다.
여말 선초 사치성 철릭의 주요 재료는 라, 요선용 명주, 저사인데, 명주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고 저사도 성분이 유사한 춘포(春布)로 대신할 수 있다. 또한 철릭들과 한 조인 답호 류에 사용된 자수, 운견, 금직도 유사 직물과 기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라 직물은 현재 구하기 어려우므로, 추후에 실물 고증을 위한 직물 개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원본노걸대』91의 철릭과 한 조인 답호의 계절별 특징 분석 및 복식문화적 의의 규명은 지면의 한계 때문에 추후 연구에서 진행하도록 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25년도 원광대학교의 교비지원에 의해 수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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