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관점에서 바라본 패션산업 내 DE&I : The New York Times 기사 분석을 중심으로

1. 연구 배경 및 목적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은 국가 정책에서부터 기업의 경영에까지 필수적 요소로 여겨지고 있으며, 윤리나 도덕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맥킨지 앤 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내 인력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증가할수록 수익성과 가치 창출이 향상되었으며,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경영진 내에서의 성별이나 민족 및 문화적 다양성은 재무 성과와 상관관계를 가진다(Hunt et al., 2018). 이에 많은 기업은 기업의 성과 및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나 조직의 통합 등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써 DE&I를 관리하고 있다.

변화에 민감하고 시대를 앞서나가는 것에 가치를 두는 패션산업 또한 DE&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DE&I에 관한 문제를 관리하는 부서를 설립하거나 담당자를 고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과 그에 따른 불평등이나 차별 및 배제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에 패션산업이 새로운 조직 관리 방식으로 DE&I를 채택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평가하는 긍정적 담론과 함께 DE&I를 트렌드로 활용한다는 비판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패션은 여성 소비자 기반으로 산업이 지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이나 고용 불평등과 같은 젠더에 관한 형평성 문제가 발견되고 있다(Brown et al., 2018). 또한 패션은 이국주의와 미학이라는 개념을 거래하는 산업으로, 역사적으로 억압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이용해 왔다. 젠더 다양성의 장려라는 목적으로 트렌스젠더 모델이 런웨이나 패션 잡지에 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을 위해 미학적으로 표현된 성소수자는 주류 소비자와 명확하게 구분되며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종종 무시되고 있다(Rizzo, 2016).

이처럼 패션산업은 젠더에 관한 DE&I를 혁신과 변화의 상징으로 내세워 패션시스템 내에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 담론은 말과 글이라는 언어적 형태로 사회와 문화에 의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에 젠더 관점에서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담론에 담긴 동기와 의도를 파악하고 관행과 권력이 어떻게 산업 구성원 및 소비자에게 작동하여 사회적 행동으로 실천되는지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패션산업 내 젠더 DE&I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포괄적 디자인이 생물학적인 신체 다양성뿐만 아니라 젠더에 대한 문화적 이해의 영향을 받음을 밝힌 Hokka(2024)의 연구, 남성의 새로운 이미지 표현과 형성에 패션 광고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다양성과 포용성을 고찰한 Carrasco-Santos et al.(2024)의 연구, 다양성의 관점에서 소외된 여성의 패션 소비 경험과 특정 소비자 집단의 배제를 지적하는 Cavusoglu and Atik(2023)의 연구, 게이와 레즈비언을 주제로 한 패션 광고에 대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반응을 조사한 Dotson et al.(2009)의 연구 등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가 다양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DE&I라는 총체적 관점에서 패션산업 내 젠더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고찰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패션산업 내 젠더 DE&I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담론의 형성 및 실천을 비판적 담론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을 활용하여 체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 패션산업 내 DE&I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패션 업계가 직면한 관련 문제를 파악하고, 담론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인 언론이 바라보는 패션산업 내 DE&I를 젠더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이에 본 연구가 설정한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뉴욕타임즈 기사가 형성하는 패션산업 내 DE&I와 관련된 젠더 담론의 추세는 어떠한가? 둘째,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젠더 담론 생성에 있어 뉴욕타임즈는 어떠한 담론적 특성을 보이며 담론의 형성 의도와 의미는 무엇인가? 셋째,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젠더 담론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구성되고 실천되고 있는가? 이상의 연구 문제 해결을 통하여 패션산업의 DE&I 관리에 비판적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관련된 담론을 텍스트에서 사회적 실천까지 확장하여 분석한다는 데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2. 연구 방법 및 대상

본 연구는 젠더 관점에서 패션산업 내 DE&I를 고찰하기 위해 비판적 담론분석을 통한 질적연구와 코퍼스(corpus) 언어학을 활용한 양적연구를 병행하였다. 비판적 담론분석은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텍스트적 실천(textual practice), 담론적 실천(discourse practice), 사회문화적 실천(socio-cultural practice)의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 Fairclough(2001)의 비판적 담론분석틀<Fig. 1>을 활용하였다. Fairclough의 비판적 담론분석은 언어 또는 언어의 사용을 사회적 실천의 형태 중 하나로 간주하며, 이러한 언어의 작동으로 구성된 담론은 사회영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적 과정이자 사회적 실재를 구성한다는 전제를 토대로 한다(Fairclough, 2001). 또한 언어적 형식을 가진 담론을 생성하는 주체, 담론을 구성하는 권력 기제와 이데올로기, 그 구조와 형태 등을 살펴 규명하는 것으로 담론의 사회적·정치적 의미와 사회적 맥락을 고찰한다(Shin, 2011). 따라서 비판적 담론분석은 사회의 주도적 담론과 사회적 실천의 영향력과 함께 담론의 생성에 숨은 의도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Fig. 1>

Fairclough's 3D Model of Critical Discourse AnalysisAdapted from Fairclough (2001)

본 연구의 대상으로는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기사를 선정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미국의 대표적 레거시 미디어로서 2024년 4분기 기준 1,080만명의 온라인 유료 구독자를 보유하며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뤄낸 매체로 평가받으며 세계 여론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으로 손꼽힌다(Zacks Equity Research, 2024). 비록 뉴욕타임즈는 전문적 패션 매체는 아니지만 자체 페이지에 패션 사진과 패션 디자인을 실은 최초의 미국 매체이다. 최근까지도 고정적으로 스타일면의 패션란에 글로벌 패션 이벤트 및 해외 디자이너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여 패션에 특화된 기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An et al., 2015). 기사 수집 기간은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기사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8년간으로 한정하였다. 웹 데이터베이스 프로퀘스트(ProQuest)에서 ‘fashion’, ‘diversity’, ‘equity’, ‘inclusion’을 검색한 결과 뉴욕타임즈에서 발행한 974건의 기사가 수집되었다. 이후 머리기사와 전문을 살펴 패션산업에 관한 내용이 아닌 기사와 중복된 기사를 제외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젠더에 관련된 내용의 기사만 추린 결과 72건의 기사가 선정되었다.

다음으로 양적연구를 위해 선정된 기사를 텍스트 분석 프로그램 안트콘크(AntConc)로 코퍼스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특정 코퍼스 내 단어 빈도를 참조 코퍼스의 빈도와 비교하여 통계적 유의성으로 중요도를 식별하는 키니스(keyness) 측정을 통해 추출한 키워드와 그와 긴밀한 결합 관계를 맺는 단어인 연어(連語)를 살펴 텍스트적 실천을 분석하였다. 이후 질적연구로 기사에 나타난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젠더 담론의 텍스트, 생성 주체, 수용자의 반응 등을 분석하여 상호작용적 본질을 파악하는 담론적 실천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실천 과정과 사회 구조와의 관계를 분석 대상으로 젠더 담론이 어떻게 사회 내에서 사회문화적 실천으로 재구성되고 재구조화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분석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상학 전공의 박사 수료 및 학위 소지자 5인에게 연구 자료를 검증받았다. 수집된 자료의 분석 및 해석, 그 결과에 대해 교차 검증하였으며, 이를 통해 연구자의 이데올로기나 이론적 편향이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연구의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1. 젠더 범주의 DE&I 개념

DE&I는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의 약자로 종종 DEI로 표기되기도 하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대우를 받고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적 틀이다(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n.d.).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은 서로 다르지만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상호보완적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이점을 얻기 위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구현해야 한다(UN Global Compact, n.d.). 즉, DE&I는 다양한 인종, 젠더, 종교,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개념을 포괄한다.

각 개념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양성은 특정한 사회적 또는 문화적 속성과 관련하여 상호의존적인 조직 구성원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집단 수준의 특성이다(Joshi & Neely, 2018). 이러한 차이에는 피부색이나 신체장애 등과 같이 가시적인 범주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이나 계층 등과 같이 편견이나 소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비가시적 범주도 포함된다(Bopaiah, 2021). 한편, 다양성은 개인과 집단 간의 수많은 차이점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용어이지만 실제적 추론을 위해서는 특정한 범주로 실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젠더 범주에서는 다양성을 이분법적 성별 이해를 벗어난 다양한 유형의 성 정체성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British Columbia, 2025). 그러나 젠더를 인구 통계적 측면에서 주제화하면 인종, 민족, 국적, 계급 등의 타 범주 간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Duarte et al., 2023). 즉, 젠더 다양성은 성별 이분법이라는 고정된 틀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성별을 수용하는 개념으로 교차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형평성은 기회와 결과의 측면에서 조직 구성원을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Arsel et al., 2022). DE&I 담론에서 형평성과 평등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평등은 일반적으로 공평성과 맹목적 정의라는 최종 목표에 초점을 맞추지만, 형평성은 필요와 공정에 따른 맞춤형 조치에 집중한 절차적 수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Duarte et al., 2023). 그러므로 평등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직 구성원의 필요에 따른 지원과 대우가 차등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젠더 형평성 또한 젠더 평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며, 젠더 형평성이 기회와 자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젠더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한편, UNESCO 통계연구소는 젠더 형평성(Gender equity, 2003)을 남성과 여성을 공평하게 대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와 유사하게 고용의 젠더 형평성에 관한 연구들 또한 남성과 여성의 구별에 초점을 맞추어 이분법적 성별 개념을 강화하고 있다(Davidson, 2016). 따라서 젠더 형평성의 실천에 대한 논의마저도 그 대상에서 소외와 배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용성은 다양한 집단 간에 소속감을 부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Arsel et al., 2022). 즉, 포용성은 배제 혹은 소외에 반하고 통합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포용성은 다양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and inclusion; D&I)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논의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성은 포용성의 핵심적 특성으로 조직 내 다양성을 유지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포용성을 육성해야 한다(Russen & Dawson, 2023). 젠더 범주에서 포용성은 모든 성 정체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정책, 언어 및 기타 사회적 틀을 의미한다(Pytlik, 2023). 즉, 젠더 정체성과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젠더를 포용하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젠더 형평성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소외와 배제를 방지하기 위해 젠더 포용성의 실천에서 누가 누구를 어디에 포함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며, 사회구조적 차별에서 발생하는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환경 조성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젠더 범주의 DE&I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교차적이고 포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으로 특정 젠더를 배제 또는 차별하거나 젠더 고정관념을 지속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맹목적 공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경계하는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젠더 담론과 상호교차성

사회분석의 범주로서 젠더(gender)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부터 양성 간의 차이 또는 남녀에게 달리 부과되는 사회질서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Scott, 2018).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젠더는 복잡한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구도 속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거쳐 다양한 담론의 형태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주류와 비주류 또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절대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젠더와 성 역할 또한 권력관계의 영향 아래서 구성되거나 전복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젠더는 하나의 담론적 구성체라는 의미의 산물이며 지속적으로 담론적 투쟁의 대상이 된다(Van Zoonen, 1992).

최근 남성 또는 성소수자들에 의해 젠더 담론이 제기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젠더 담론은 상대적으로 차별받거나 불이익이나 불평등을 경험하는 여성에 의해 제기된다(Baek, 2015). 여성주의 담론들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의 모순과 함께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젠더, 인종, 계급 등의 불평등 체제 속에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 각각의 차이 요소들은 ‘평등하되 다르다’는 정치적인 주장을 펼쳐왔다(Weedon, 1996). 이러한 여성주의적 시각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고 가부장적인 담론 및 공론장을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젠더 담론에 대한 비판적 담론 연구에서도 여성주의 비판적 담론분석(feminist critical discourse analysis)이 대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주의 비판적 담론분석의 목적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젠더적 가정들과 패권적 권력관계가 다양한 맥락과 집단에서 담론적으로 생산 및 유지되는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Lazar, 2007). 이를 통해 젠더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서 사용되는 담론 전략의 상호 연결성과 특성을 분석하여 사회 변화를 위한 정치적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젠더 담론 연구마저도 주류인 비성소수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여성에 대한 젠더 차별이나 폭력의 문제에 대한 담론이 주로 연구되는 반면, 성소수자에 관한 담론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에 관한 비판적 담론분석 또한 관심이 적은 실정이다(Motschenbacher, 2017).

사회과학계에서도 전반적으로 젠더라는 용어는 ‘여성의 입장’과 그 의미가 혼용되어 사회분석의 범주로 활용되는 젠더의 의미 규명과 방법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제한적이다(Kim, 2011). 따라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 대 저항의 이분법적 도식에 집중된 젠더 담론으로 분석 범주를 좁히면 성이나 여성의 관점에서 젠더 담론을 제한적으로 이해하거나 사회적 관계로서 작동하는 젠더 위계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속성을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에 기존의 젠더 분석을 확장하는 대안적 관점인 상호교차적 논의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1989년 Crenshaw(1989)에 의해 제안된 개념으로 젠더 외 인종, 계급, 연령, 장애, 소득 등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른 범주들과 상호교차하면서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와 관련해 나타나는 억압, 차별, 지배 등의 다양한 불평등을 분석하는 패러다임이다. 사람들은 동시에 하나 이상의 사회적 범주에 속하기에 하나의 범주로만 경험과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과 집단의 인간적 고통에는 여러 사회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범주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루어져야 정치적·경제적 억압과 불평등을 인식할 수 있다(Farmer, 1998).

상호교차성은 기회의 균등한 분배가 지속가능한 사회정의를 지향하며, 개인과 집단이 각각 가진 사회적 정체성과 범주에 따라 다르게 사회적 위치에 놓인다고 전제하므로 형평성을 지향한다(Kim, 2015). 백인, 중산계급, 이성애자의 경험에 기반한 정체성의 본질화는 비백인, 무산계급, 비이성애자를 주변화된 위치로 밀어낸다. 그러므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경험하는 복합적 불평등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상호교차적인 정체성을 고려하여 어떤 주체가 지닌 차이가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Crenshaw, 1989). 나아가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개인과 집단이 차별받지 않도록 형평성을 저해하는 법과 제도, 사회의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이 요구된다.

1. 텍스트적 실천

본 연구는 텍스트적 실천의 분석을 위해 패션 산업 내 DE&I와 관련된 뉴욕타임즈 기사 중 젠더 중심으로 작성된 72건의 기사/11,722개 단어로 코퍼스 데이터를 구축하였다. 다음으로 젠더에 관한 주된 주제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키니스를 기준으로 404개의 키워드를 추출하였다. 그중 상위 100개의 키워드<Table 1>를 주목하여 살펴본 결과, 여성 호칭인 ‘ms’가 2위, 남성 호칭인 ‘mr’가 3위로 이분법적 성별 구분(gender binary)에 관한 호칭이 최상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외 여성과 관련된 명사 및 대명사는 19위 ‘women’, 27위 ‘she’, 73위 ‘female’, 남성과 관련된 명사는 68위 ‘men’으로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 관한 키워드가 더 많았고 상위에 위치하였다. 반면 트랜스젠더 및 젠더 논바이너리(Transgender and Gender Non-Binary; TGNB)에 관한 키워드로는 30위 ‘transgender’, 51위 ‘nonbinary’, 69위 ‘trans’가 있었으며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관련된 키워드보다 비중이 작았다. 따라서 뉴욕타임즈의 패션산업 내 DE&I에 관한 젠더 기사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바탕으로 한 여성에 관한 기사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다.

<Table 1>

Keywords Extracted from The New York Times Articles on Gender

상위 10위권의 키워드는 대체로 산업 종사 직업군이나 상표였다. 그중 10위 ‘victoria’는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에 관한 키워드로, 5건의 기사가 빅토리아 시크릿의 남성적 시각에 입각한 디자인, 성차별 및 성적 비행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세부적으로는 모회사인 엘 브랜드(L Brands)의 창립자 레슬리 허버트 웩스너(Leslie Herbert Wexner)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의 모종의 관계로 인해 조사받았던 내용을 언급하고 있었다(Maheshwari, 2019).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여성 임원이었던 모니카 미트로(Monica Mitro)가 남성 상사에게 수년간 폭언에 시달렸다는 내용도 전했다(Stewart, 2020). 이와 관련 키워드는 20위 ‘lingerie’, 31위 ‘secret’, 47위 ‘wexner’, 71위 ‘mitro’, 75위 ‘bras’, 91위 ‘epstein’로 약 10%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하였다.

한편, 인종과 젠더의 상호교차성에 관한 키워드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중 피부색에 관련된 37위 ‘color’를 제외한 14위 ‘enninful’, 24위 ‘rihanna’, 40위 ‘wagner’, 51위 ‘valdes’, 61위 ‘black’, 65위 ‘peoples’는 흑인 디자이너 또는 편집장의 인종이나 인명 관련 키워드였다. 먼저 영국판 보그의 편집장 에드워드 에닌풀(Edward Enninful)이 영국판 보그 최초의 남성 편집장이자 전 세계 보그 최초의 첫 흑인 편집장으로 임명된 것을 보도하였다. 에닌풀이 여성 편집장이 주류인 여성 패션 잡지사에 이례적으로 고용된 남성 편집장인 것에 주목하는 기사는 그의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으로 인한 유리천장도 깨트렸다고 평가했다(Friedman, 2017). 이와 유사하게 틴 보그(Teen Vogue)의 최연소 흑인 편집장인 린제이 피플스 와그너(Lindsay Peoples Wagner) 또한 유색인종인 젊은 여성으로서 이룬 성취와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는 그녀의 활동이 소개되었다(Stevenson, 2019). 그리고 흑인 여성 패션 디자이너로서 리한나(Rihanna)와 젤다 윈 발데스(Zelda Wynn Valdes)의 다양성과 성차별 극복의 사례로 언급되었다(Ford, 2019; Friedman, 2019). 이는 뉴욕타임즈가 유색인종 중 주로 흑인을 담론의 대상으로 삼아 패션산업 내 성별에 따른 고용 불평등을 극복한 그들의 성과에 주목하여 상호교차적으로 접근한 젠더 담론을 생성함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추출된 키워드에서 젠더와 관련된 10개의 키워드 ‘gender’, ‘women’, ‘transgender’, ‘nonbinary’, ‘men’, ‘female’, ‘male’, ‘drag’, ‘feminine’, ‘unisex’를 선정하여 연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키워드의 연어에도 상호교차성과 관련된 단어가 다수 발견되었다. 먼저 ‘gender’의 연어 리스트에는 인종을 뜻하는 ‘race’와 연령을 뜻하는 단어 ‘age’가 포함되어 다양성의 유형 중 하나로 주로 언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women’ 또한 피부색에 관한 단어 ‘color’가 추출되었다. 한편 ‘nonbinary’는 특정 연령대를 칭하는 ‘teenagers’가 함께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는 비이분법적 성별 정체성이 특히 십대와 청년층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men’과 ‘male’은 둘 다 ‘white’가 연어로 추출되었는데 백인 남성에게 집중된 권한과 권력을 지적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로써 남성 지배적 환경에서도 인종에 따른 차등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추출된 연어를 살펴본 결과 이분법적 젠더 격차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women’과 ‘men’ 모두 각각의 연어로 빈번하게 사용되어 남녀 간 성별 격차를 지적하고 있었으며, ‘men’의 연어로 전치사 ‘than’이 추출되었는데 이는 여성과 비교할 때 사용되었다. 그리고 ‘female’은 권한을 의미하는 단어 ‘empowerment’가 패션산업 내 여성의 권한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함께 사용되었다. 반면 ‘male’의 경우 ‘dominated’가 추출되었는데 맥락을 살펴본 결과 패션 브랜드 디렉터의 성비에서 남성이 지배적임을 비판하고 있었다.

TGNB에 관한 키워드 ‘transgender’와 ‘nonbinary’는 여성과 관련된 연어들이 추출되었다. 우선 ‘transgender’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셀러브리티 아만다 레포어(Amanda Lepore)를 칭하는 단어 ‘lepore’, ‘diva’와 ‘feminists’가 추출되었다. 그리고 ‘nonbinary’ 또한 성전환한 여성을 뜻하는 ‘transfeminine’이 함께 어울려 사용되고 있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뉴욕타임즈는 TGNB에 관한 젠더 담론의 생성에서도 여성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drag’, ‘unisex’의 연어는 낮은 빈도수로 유의미한 분석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패션산업의 DE&I에 관한 뉴욕타임즈의 젠더 담론은 상호교차적 접근과 함께 여성 중심으로 생성되고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발견되는 성별 격차와 성폭력과 함께 흑인 여성의 직업적 성취와 성과에 주목하여 백인 남성 중심적 산업 관행을 비판하고, TGNB를 다룬 기사 또한 여성으로 성전환한 인물을 조명하여 산업 내 DE&I에 관한 젠더 담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2. 담론적 실천

신문의 패션에 관한 섹션은 여성 독자층을 늘리고 관련된 광고 산업을 확장하기 위해 생겨났다(Harp, 2006). 가벼운 뉴스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글들이 실리던 이 섹션은 사회 내 성 역할의 변화에 따라 스타일 섹션으로 바뀌었다. 최초의 패션 저널리스트 에이미 스핀들러(Amy Spindler)는 젠더 규범을 정의하는 데 있어 패션의 역할을 다루었으며, 변화된 성 역할과 여성성을 재정의하는 젠더 담론과 관련된 패션 담론을 뉴욕타임즈를 통해 생성했다(Granata, 2019).

이와 같은 뉴욕타임즈의 여성주의적 담론 기조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젠더를 중심으로 작성된 72건의 뉴욕타임즈 기사를 하위 주제별로 분류한 뒤 중복된 주제를 포함하여 80건으로 정리한 그래프<Fig.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6건의 기사가 여성의 권한이나 권리에 초점을 맞춰 작성되었으며, 남녀 간의 젠더 격차에 관한 15건의 기사, 여성에 가해진 성폭력 피해에 관한 5건의 기사가 있었다. 즉,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가 하위 주제별 구분에서 약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주제의 성격에서 알 수 있듯이 성차별에 반하고 양성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장하는 형평성의 측면에서 비판적 논조로 작성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Fig. 2>

Subtopics of The New York Time's Gender Articles on DE&I in the Fashion Industry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뉴욕타임즈는 인터뷰를 통한 당사자 또는 전문가의 의견이나 보고서의 수치 등을 근거로 관련 문제에 대한 진단 및 평가하여 쟁점화하고 있었다. 그중 빅토리아 시크릿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 중 가장 자주 거론되는 브랜드로 기업 내 성추문과 성차별, 남성의 환상에 기반한 브랜드 정체성 등이 주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행동주의 투자 회사 배링턴 캐피탈 그룹(Barington Capital Group)이 빅토리아 시크릿에 대해 ‘시대와 함께 진화하지 못했다(failed to evolve with the times)’고 평가한 것을 인용하며 시대착오적 남성 중심 이사회 구성을 비판하였다 (Maheshwari, 2019). 그리고 전 직원 및 모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브랜드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섹시(much more blatantly sexy)’해지고 있고, ‘도달하지 못할 아름다움에 대한 투사는 시대에 뒤처지고 멋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쾌해졌다(unattainable projections of beauty became not just dated and uncool but offensive)’며 브랜드가 제시하는 남성을 위한 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뉴욕타임즈는 스타트업 운동복 브랜드인 아웃도어 보이스(Outdoor Voices)가 여성 창업자 타일러 헤이니(Tyler Haney)의 사임 이후 15명의 여성 직원을 해고하였다는 내용을 보도했다(Maheshwari & Griffith, 2020). 더불어 새로 구성된 이사회는 임시 최고 경영자와 헤이니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으로 개편된 것을 알렸다. 기사는 한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린 후 직업적 어려움을 겪었다(she suffered professionally after she told the company that she was pregnant)’는 것을 언급하며 헤이니의 사임 이후 대부분 남성에 의해 회사가 운영됨으로써 임신과 출산에 따른 휴가를 꺼리고 위축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류 브랜드 다이너스티(Dynasty)가 워싱턴 여성 행진(The Women’s March on Washington)에 참여하는 시위자들을 위해 옷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한 것을 기사로 전했다(Rogers, 2017). 기사는 ‘미국 여성에게 옷은 항상 시각적 저항 수단이었다(for American women, clothing has always provided a means of visual resistance)’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디올의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셔츠부터 엣시의 “못된 여자” 핀에 이르기까지 텍스트 기반 시위 의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text-based protest apparel, from Dior’s “We Should All Be Feminist” shirts to $2 “Nasty Woman” pins on Etsy, is on the rise)’는 델라웨어 대학교 교수 타니샤 포드(Tanisha Ford)의 말을 인용했다. 이에 나아가 기사는 여성 행진 계획이 ‘페미니즘 브랜드의 필요성(the need for a brand of feminism)’에 대한 논의로 가득했다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패션산업에 관심을 촉구하는 담론을 생성했다.

더불어 뉴욕타임즈는 여성을 겨냥하고 여성의 돈으로 지탱되는 패션산업이 여전히 남성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지적하였다. 패션 전공 졸업생의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직책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남성의 비율이 증가한다고 하였다(Friedman, 2018). 기사는 맥킨지 앤 컴퍼니의 유리 런웨이(the glass runway)에 대한 보고서를 인용하여 설문 응답 여성의 100%가 패션산업에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하였지만, 남성은 절반 이하만 그렇다고 응답했다며 남녀 간 인식의 차이가 큼을 알렸다. 그리고 보고서를 읽고 피할 수 없는 결론은 ‘패션산업의 태도가 얼마나 구식인가(how old-fashioned the attitudes are in the fashion industry)’라며,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을 투자하는 소비가 필요하다는 미국패션협회 회장 다이앤 본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의 말을 전했다. 즉, 기사는 패션산업의 구시대적 관행을 비판하면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여성 기업을 지원하는 소비를 독려하기 보다는 인용으로써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한편 TGNB에 관한 기사로는 성소수자의 포용에 관한 21건의 기사와 성소수자의 젠더 표현에 관한 4건의 기사, 젠더 중립에 관한 10건의 기사가 있었으며, 하위 주제별 구분의 약 40%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와 거의 유사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담론 기조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비판적 기사와는 달리 트렌스젠더의 젠더 표현 억압을 비판하는 기사(Redburn, 2023), 다양성을 위해 트렌스젠더를 페티시화하는 패션산업을 지적하는 기사(La Ferla, 2019) 등 일부 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패션산업에 DE&I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변화된 모습과 노력을 전하는 긍정적 논조였다. 그리고 기사 전문을 살펴본 결과 대다수 기사가 주로 인물 소개, 패션쇼 리뷰, 모든 범주의 DE&I에 관한 내용 등의 전체 내용에서 부분적으로 TGNB에 관한 내용을 포함 또는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즉, 뉴욕타임즈의 패션산업 내 TGNB를 대상으로 한 DE&I 기사는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피상적 내용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사료된다.

이렇듯 뉴욕타임즈는 패션산업 내 DE&I에 대해 형평성을 중심으로 패션산업의 남성지배적 환경이나 성차별, 성희롱 등을 비판하는 여성주의적 젠더 담론을 생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분법적 성별 격차와 그에 따른 문제에 집중된 젠더 담론으로 비이분법적 젠더에 관한 논의는 관련 이슈가 발생하는 구조와 환경에까지 미치지 못하여 담론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비이분법적 젠더 정체성에 관한 패션산업 내 DE&I 논의는 발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3. 사회적 실천

사회적 실천의 분석은 상황, 광범위한 집단, 제도적이나 사회적 맥락, 권력 등에 관한 질문에 중점을 둔다(Titscher et al., 2000). 따라서 본 연구는 패션산업의 DE&I에 관한 사회적 요구가 발생하는 상황 및 사회적 맥락과 그에 따른 패션산업 내 정책이나 권력의 구조적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텍스트적 실천에서 상위 키워드로 추출된 브랜드이자 기사 건수에서도 가장 비중이 컸던 빅토리아 시크릿을 중심으로 사회적 실천을 분석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벌어진 엡스타인의 성폭행과 그것을 묵인한 웩스너와 다른 고위 간부들에 관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그리고 2020년에 본격적으로 빅토리아 시크릿의 사내 상황과 문화를 조사하였고, 독성적인 업무환경과 성희롱 문화를 폭로했다(Gosselin, 2024). 당시 사회에서는 #미투(MeToo) 운동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와 인사 불이익 등의 문제들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론화가 되고 있었다. 이에 뉴욕타임즈가 폭로한 빅토리아 시크릿 내부에 숨겨진 여성혐오 문화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비판적 담론이 형성되었고 대중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이후 웩스너는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그와 그의 아내는 회사 이사회 재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는 빅토리아 시크릿이 만들어낸 왜곡된 여성 이미지와 주 고객이 여성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위한 란제리를 생산하였다는 점을 들어 브랜드 자체에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였다(Mzezewa, 2018). 여성을 남성적 환상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화려한 날개를 단 비현실적 몸매를 가진 모델들이 등장했던 패션쇼는 시청률 감소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짐에 따라 2019년부터 중단되었다. 한편 엘 브랜드의 마케팅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라젝(Edward Razek)이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에 플러스 사이즈와 트렌스젠더 모델을 기용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발언을 한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분노와 비판이 쏟아졌다(Mzezewa, 2018). 그로 인해 라젝은 2019년 8월 사임했다.

이후 대중의 엄청난 비판과 소비자의 외면에 빅토리아 시크릿은 2021년 8월 리브랜딩을 발표하며 이미지 개편을 다년간 시도하였다. 7명의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로 구성된 VS 콜렉티브(VS Collective) 정책과 함께 새로운 마케팅 책임자에 여성을 고용하였고,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슈퍼모델 엔젤(angels) 이미지는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Maheshwari & Friedman, 2021). 이와 더불어 2021년 직장 내 부정행위 소송에 대응하여 최소 5년 동안 DE&I 관련 정책에 4,5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Meier, 2025).

그러나 이러한 빅토리아 시크릿의 행보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지나치게 실용적인 디자인은 지루하고, 새로운 광고 캠페인은 포용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화려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며 날개를 다시 달아달라는 불평이 트위터에 올라왔다(Friedman, 2022). 이러한 대중의 반응은 수 세기 동안 견고하게 만들어진 ‘섹시함’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수십 년간 빅토리아 시크릿 또한 슈퍼모델 엔젤을 통해 그것에 일조했다. 따라서 빅토리아 시크릿의 변화는 너무나 극단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전환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중단되었던 패션쇼가 귀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24년 복귀한 패션쇼는 다양한 모델을 포용하는 캐스팅으로 플러스 사이즈와 트랜스젠더, 다양한 연령의 모델들이 등장하였지만 소수에 그쳤고, 대부분 이전 패션쇼에서 볼 수 있었던 슈퍼모델들이 대부분이었다. 뉴욕타임즈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가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안 된다(The Victoria’s Secret Fashion Show Returns. It Shouldn’t)‘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패션쇼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일부 포함하더라도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했다(Friedman, 2024).

빅토리아 시크릿은 패션쇼를 복귀시킨 것 외에도 기업의 DE&I 정책을 변경하였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제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인 2025년 1월에 연방 정부와 민간 기업의 DE&I 정책 종료를 목표로 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이에 수십 개의 대기업이 연방 정부의 소송을 피하고자 DE&I 정책을 철회하거나 변경하였고, 빅토리아 시크릿 또한 웹사이트의 ’다양성(diversity)‘이라는 단어를 ’포용과 소속감(inclusion and belonging)‘으로 대체하였고 특정 비율의 흑인 근로자를 승진시키는 목표를 중단하였다(Li, 2025).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생성된 빅토리아 시크릿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대중과 소비자의 외면이라는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는 당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민감했던 사회적 맥락에서 당연한 결과였으며, 빅토리아 시크릿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여성의 권한을 강화하는 메시지의 리브랜딩 전략과 DE&I 정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브랜드의 급진적인 변화는 대중과 소비자를 설득하지 못하였고, DE&I에 대한 정치적 지형이 급변하면서 리브랜딩 전략과 DE&I 정책은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빅토리아 시크릿에 대한 담론의 사회적 실천 과정은 패션산업의 DE&I 전략과 정책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리브랜딩 전략과 DE&I의 정책이 약화된 원인은 부정적인 담론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수용을 고려하지 못한 급진적 방향 설정에 있다고 사료된다. DE&I 정책은 상당한 조직적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다수 집단에 속하여 혜택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위협과 우려를 유발할 수 있다(Shuman et al., 2023). 따라서 다수의 집단 구성원들이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현 상태를 방어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DE&I 정책을 거부하려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DE&I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과 그에 따른 저항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패션산업 내 DE&I 전략과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요약한 표<Table 2>이다.

<Table 2>

The New York Times' Discourse Structure of Gender Discourse on DE&I in the Fashion Indu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