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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 |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3, No. 5, pp. 52-67 | |
Abbreviation: JKSC | |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 |
Print publication date 31 Oct 2023 | |
Received 21 Aug 2023 Revised 07 Sep 2023 Accepted 11 Oct 2023 | |
DOI: https://doi.org/10.7233/jksc.2023.73.5.052 | |
19세기 무역 발기[件記]를 통해 본 왕실용 문직물 수입과 문양 선호 경향 | |
이다란 ; 김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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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 |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과 초빙교수 | |
Royal Textile Imports and Pattern Preferences as Seen through 19th Century Trade Item Lists (Muyeok Bal'gi) | |
Daran Lee ; Yeoky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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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al Course, Dept. of Art History, Ewha Womans University | |
⁺Visiting Professor, Dept. of Fashion Industry, Ewha Womans University | |
Correspondence to : Yeokyung Kim, e-mail: yeokyungkim@ewha.ac.kr | |
This study undertakes a examination of royal textile imports and pattern preferences within the late Chosŏn Dynasty by leveraging 19th-century trade Item Lists (Muyeok Bal'gi) as primary source material. It categorizes the patterns of imported fabrics used for royal purposes and calculates the quantity of imports for each pattern in order to identify which patterns the late Chosŏn Dynasty royal court favored. An official interpreter engaged in interregional com merce managed the importation of fabrics for the Chosŏn royal court and it was well known to Qing Dynasty merchants and textile artisans that Chosŏn had different fabric preferences compared to Qing. Additionally, since customized production was prevalent within Qing's textile industry at the time, the Chosŏn royal court’s requested fabrics could be produced and imported from foreign markets. According to the trade records compiled by officials and palace women, the patterns of the imported fabrics totaled 27 types. Among them, fabrics with Byeolmun[別紋], Jeopmun[楪紋], and Unmun[雲紋] were imported the most frequently; these were chosen either to fulfill official purposes within the royal court or due to the diversity of pattern compositions. This demonstrates that fabrics imported from Qing during the 19th century represent the needs and tastes of the Chosŏn royal court. Notably, the practice of ordering fabrics for the Chosŏn royal court from foreign markets underscores the intricat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ducer, intermediaries, official interpreter, and the royal court as consumers, highlighting the complex nature of the imported fabrics as a reflection of various intentions.
Keywords: bespoke, imports, interpreter, item list, textile 키워드: 주문제작, 수입, 역관, 발기, 직물 |
전통 직물은 섬유의 조직이나 재료적인 부분뿐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문화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대상이다. 전통적으로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토착 재료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무역이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직물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무역 발기[件記]에 나타난 왕실용 수입 직물 문양의 종류를 정리하고, 문양별 수입 수량을 근거로 조선 후기 왕실 직물 소비의 경향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조선 후기 왕실의 복식 문화를 고찰하는데 현존하는 유물을 비롯하여 의궤나 발기에 기록된 내용은 주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궁녀와 같은 실무자에 의해 작성된 발기는 왕실 내 복식 제작, 관리, 사용의 측면을 더욱 면밀히 고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역 발기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왕실에 바치는[御供] 물건의 목록으로, 왕실용 물품 매매와 관리를 담당한 역관(譯官)과 상의원 궁녀에 의해 작성되었다(Kim, 2019). 물품을 요청하고 수효를 파악해야 하는 실무자에 의해 기록된 만큼 물품의 종류, 특징, 수량과 같은 정보가 오롯이 남겨진 점은 무역 발기의 핵심적인 가치이다. 특히 청에서 수입되어 온 각종 고급 물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직물에 대해서도 색, 문양은 물론 수입된 수량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가 남아 있다. 왕실용 수입 직물에 관한 무역 발기는 현재 16건가량 전하며 시기적으로는 19세기에 집중된다.
직물의 문양은 사용자의 취향이나 시대의 미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복식 연구 주제로 주목받아 왔으며, 각종 문헌 기록을 종합하여 문양의 명칭을 밝히고 유물을 통해 조형적 특징을 규명하는 다양한 관점의 연구가 있었다. 국내 제작뿐 아니라 조선시대 복식 재료로 주요하게 사용된 수입 문직물에 대해서는 출토유물과 명ㆍ청대 직물 문양을 비교하거나, 18세기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사치 담론과 결합해 수입 직물의 사회경제적 함의를 다루는 연구가 이뤄졌다(Kim, 2002; S. H. Lee, 2016; Lee & Hong, 2016). 그러나 문양 종류별 수입 규모나 조선에서 특별히 선호되었던 수입 직물 소재와 문양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무역 발기에 기록된 수입 직물에 주목하여 문양별 수입 규모를 검토하고 조선 왕실에서 선호했던 문직물 문양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19세기 상의원 물품의 수입을 담당한 역관의 역할과 그들이 청대 북경 시장에서 활동한 직물 주문의 모습을 추정해 보았다. 그리고 19세기에 기록된 무역 발기의 내용에 기반하여 왕실 수입 문직물 현황과 문양의 종류를 파악하고, 그중 가장 많은 양이 수입되었던 온 별문, 접문, 운문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왕실에서 사용되는 문직물은 관례적으로 중국에서 수입되어 온 경우가 많았다. 왕실의 복식을 관리하는 관사인 상의원(尙衣院)은 어공(御供) 무역을 전담한 역관에게 요청하여 필요한 직물을 충당했는데, 직물 수입에 관한 요청은 역관 중에서 언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상통사(上通事)에 의해 수행되었다(Mangiyoram, 1759~1818). 외국에서의 여러 상황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량이 뛰어난 역관에게 직물 수입이 맡겨졌다는 점은, 그만큼 왕실용 직물 수급이 상당히 중요한 일로 간주 되었음을 보여준다(Park, 2008).
18세기 영ㆍ정조 재위 동안 문직물 제작과 사용에 관한 금제(禁制)로 인하여 문직물의 국내 생산과 소비가 여의찮았고 중국산 수입품의 소비 또한 위축되었다(Kim, 2002). 그러나 문직물은 왕실의 의복 및 의물 제작과 신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사용되며 여전히 중요한 쓰임과 위상을 지녔고,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청과의 무역을 통한 문직물 수입이 19세기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고종 2년(1865) 간행된 법전 『육전조례(六典條例)』는 상통사를 통한 왕실용 직물 수입이 관례로 되었음을 알려주는 사례로, 내용 중 운문이 짜인 견직물을 비롯하여 모단, 수사, 삼승(三升) 등 품질이 뛰어난[上品] 직물의 명칭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어 있다(Yukjeonjorye, 1865). 직물 수입의 피상적인 언급을 넘어서 무역 대상품의 명칭까지 구체적으로 법전에 명시되었다는 점은 각종 직물이 왕실 내 사용을 위해 안정적으로 수입되어야 하는 품목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상의원의 주문을 받은 역관은 어디에서, 어떻게 청의 직물을 조선으로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역관은 조선에서 청의 수도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에 크고 작은 무역을 진행했지만, 왕실에서 사용될 최고급 물품의 구매는 대개 북경의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청의 수도 북경은 외성(外城)에 상당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 곳이었다<Fig. 1>. 수도의 거대한 시장은 유통되는 물산이 풍부하고 가격대도 다양했으므로 상의원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역관의 입장에서 여러 물품을 비교하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어 효율적인 무역이 가능한 지대였다.
1777년 동지부사로 연경에 다녀온 이갑(李岬, r.1737-1795)은 그의 연행록에서 “능라(綾羅)는 모두 남경(南京)에서 직조하며, 남경의 상인이 북경 상인들에게 판매한 것을 조선 사람들에게 전매(轉賣)한다”고 하며 당시 청의 최대 직물 생산지인 남경 일대에서 수도 북경으로 직물이 공급되었고, 북경의 상인들이 그것을 조선에 판매하는 직물 거래의 흐름을 언급하였다(Lee, 1778). 이와 비슷하게 영조실록에도 ‘무늬 있는 비단은 연경(燕京)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소주(蘇州)ㆍ항주(杭州)에서 짜다가 우리에게 파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 청에서 수입된 직물이 강남에서 생산되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유입된 흐름이 당시 조정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Yeongjosillok, Year 22(1746), December 15).
연행 기록에 따르면 역관은 일찍부터 대(對)조선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에게 의탁하여 상의원으로부터 요구받은 소임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상인 정세태(鄭世泰)가 있다. 이의현(李宜顯, r.1669-1745)의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나 황재(黃梓, r.1689-?)의 『갑인연행별록(甲寅燕行別錄)』등 다수의 연행록에 기록된 것처럼 정세태는 북경 시장[燕市]에서 활동하며 조선에서 수입하는 직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개상이었다(Hwang, 1734; Lee, 1720). 홍대용(洪大容, r.1731-1783) 역시 “대개 비단 같은 화물은 남쪽 지방에서 생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수요되는 것은 모두가 값싼 것들이었으며, 그 기호가 중국과 달랐다. 정씨들은 이를 익히 알고 미리 남방 시장에서 7~8만 냥의 은을 들여 구입해 놓는 것이 해마다 상례(常例)로 되었으며, 비단을 짜는 기술자[織匠]도 우리나라의 기호를 알기 때문에 자연 비단의 품질이 점차 변하여서, 중국의 기호와 같지 않게 되었다”고 하여 정세태와 그 일가의 직물 무역을 기록한 바 있었다(Hong, 1766). 정세태의 사례처럼 청의 상인 중 일부는 매년 일정한 수요가 있는 대조선 무역의 이익을 얻기 위해 중국과는 다른 조선만의 취향과 수요를 충분히 반영한 직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했고, 역관들은 중개인과 관계를 통해 왕실로부터 요구받은 직물의 무역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이 요구한 직물 디자인은 청의 기호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럼에도 청의 직물 시장에서 조선 스타일의 직물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청대 직물 산업계에 ‘주문생산’ 시스템이 운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청대 직물 생산이 고도화된 강남 지역으로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찾아와 필요한 직물을 주문하였고, 완성품은 북경과 강남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대운하(大運河)를 통해 빠르게 운송될 수 있었다(Silberstein, 2020). 청대 강남에서 생산된 직물의 끝부분에는 제작 공방의 이름과 직물의 종류, 색, 문양 소재 등을 알려주는 명문이 짜여 있는데<Fig. 2>, 이는 주문처별 발주한 직물의 색, 문양 등의 내용을 표기한 것으로 직물 주문생산의 증거이다(Silberstein, 2020). 물론 명대에도 식서나 필단의 끝부분에 직물 관련 정보를 직조했지만, 이는 황실 전용 직조국(織造局)에서 생산된 것에 한정되며 민간 생산품은 직물의 품질을 증명하는 관의 도장이 주로 보여(Cho, 2000; Lee & Hong, 2016) 상업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 이어서 살펴보겠지만, 조선 후ㆍ말기의 유물 가운데서도 직물의 끝에 제작처, 종류, 색, 문양명이 조합된 명문이 확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청에서 수입된 직물을 사용한 예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19세기 왕실용 직물 수입은 상의원의 요청, 어공 무역을 담당한 역관, 강남과 북경을 연결하는 중개상인 등 여러 인물이 관여한 일이었다. 상의원의 요청을 받은 역관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청의 상인과 교류하며 필요한 물품을 얻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강남의 직물 생산지와 북경의 역관 사이를 잇는 중개상인은 수매자인 역관이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직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이 같은 흐름 아래 조선의 취향과 수요를 반영한 디자인의 직물이 왕실로 수입될 수 있었고 그 양상은 장신구 등의 수요ㆍ공급과 역시 유사하였다(Lee, 2022).
19세기 왕실용 무역 발기는 왕실 내 어공품의 관리와 수매를 담당한 실무자인 궁녀와 역관이 작성한 기록물로, 원하는 물품을 주문하기 위해서 또는 수입해 온 물품을 점고(點考)하거나 주문처에 보고하려는 목적하에 쓰여졌다(Kim, 2019). 왕실 사무에서 파생된 기록물인 만큼, 직물 수량은 물론 색과 재질 그리고 문양 명칭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직물명의 경우 보통 색+문양+직물종류+수량+단위명사(匹ㆍ桶ㆍ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작성자에 따라서 혹은 물품의 특성에 따라서 직물명의 구성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 직물이 지니는 소재적, 형태적 특징들은 명칭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다<Fig. 3><Fig. 4>.
무역 발기는 1819년부터 1907년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이 알려져 있으며(Kim, 2019), 본 연구에서는 문직물의 수입 내역이 기록된 총 16건의 자료를 활용했다. 연구 대상의 작성 시기는 고종 즉위 초반인 1865년(고종2)부터 1893년(고종30)에 걸쳐 있고 시기를 확인할 수 없는 자료 2건이 포함된다<Table 1>. 16건의 무역 발기에 기록된 수입 직물의 전체 수량은 40,397필로, 한 건의 무역 발기당 적게는 100필 미만부터 많게는 9,000필에 이르는 직물 수량이 파악되었다.
No. | Name of the resource (collection number in Jangseogak) |
Date | Author | Imported Textiles | |
---|---|---|---|---|---|
Type of textile | Quantity (疋) | ||||
① | Item List of Special royal tribute by Choi hak-yeong in 1865 (RD01432) | 1865 (Gojong2) |
[譯] Choi hak-yeong | 甲紗, 庫緞, 熟庫紗, 英綃, 八吉紗, 銀造紗, 加只紬, 秋羅, 三足細苧亢羅, 三八紬, 壯元紬, 輕光紬 | 567 |
② | Textile List of Special royal tribute in 1880 (RD01795) | 1880 (Gojong17) |
[宮人] Unknown | 輕光紬, 貢紗, 宮綃, 金線緞, 旣生白, 大貢緞, 毛綃, 三升, 西洋紗, 十兩紬, 六兩紬, 粧緞, 苧藕紗, 氈, 川紗, 八兩紬, 漢緞, 亢羅, 紅門布, 花羽緞 | 6,915 |
③ | Item List requested Choi hak-yeong to import textile in 1881's envoy (RD01175) | 1881 (Gojong18) |
[譯] Choi hak-yeong | 輕光紬, 貢大綾, 唐苧, 門紬, 門布, 邊布, 生白, 蘇州布, 壯元紬, 苧藕紗, 氈, 川紗, 秋羅, 春紬, 八吉紗, 八兩紬, 亢羅 | 9,070 |
④ | Item List written by Yi ik-soon in 1881 (RD01802) | 1881 (Gojong18) |
[譯] Yi Ek-soon | 門紗, 象眼紗, 甲紗, 貢紗 | 135 |
⑤ | Item List of Special royal tribute written by Byeon won kyu in 1881 (RD01890) | 1881 (Gojong18) |
[譯] Byeon won-kyu | 甲紗, 庫緞, 貢緞, 貢紗, 吉祥紗, 羅緞, 門紗, 芙蓉紗, 銀羅, 壯元紬, 蜀緞, 秋羅, 八吉紗, 漢緞, 亢羅 | 1,943 |
⑥ | Item List written around Im-o Hwangnyeok (RD01260) | 1882 (Gojong19) |
[宮人] Unknown | 漢緞, 甲紗, 五絲緞, 金線緞, 芙蓉紗 | 68 |
⑦ | Item List sent from Oh Kyeongyeon in 1882 (RD01264) | 1882a (Gojong19) |
[譯] Oh Kyeong yeon | 加只紬, 甲紗, 輕光紬, 庫吉祥紗, 庫緞, 庫英綃, 貢紗, 貢洋木, 宮綃, 金緞, 金線緞, 大貢緞, 大金線緞, 大走紗, 亮花緞, 毛綃, 三升, 生庫紗, 生素甲紗, 生亢羅, 細苧亢羅, 蘇州緞, 熟素甲紗, 熟庫紗, 熟素甲紗, 十兩三八紬, 八兩紬, 洋亢羅, 五彩緞, 羽緞, 六兩紬, 銀條紗, 壯元紬, 朝開緞, 綵緞, 通海緞, 八兩三八紬, 漢緞 | 3,836 |
⑧ | Item List sent from Oh Kyeongyeon in 1882 (RD01265) | 1882b (Gojong19) |
[譯] Oh Kyeong yeon | 甲紗, 庫緞, 庫紗, 庫英綃, 貢緞, 貢紗, 宮綃, 金緞, 金線緞, 吉祥紗, 亮花緞, 毛綃, 蘇州緞, 羽緞, 朝開緞, 彩緞, 通海緞, 漢緞 | 1,444 |
⑨ | Item List of Royal tribute sent from Yi Eungjun in 1885 (RD01433) | 1885 (Gojong22) |
[譯] Yi Eungjun | 庫緞, 羅紗, 甲紗, 庫紗, 英綃, 加只紬, 八兩三八紬 | 124 |
⑩ | Item List of Royal tribute sent from Yoon Gyuseop in 1887 (RD01417) | 1887 (Gojong24) |
[譯] Yoon Gyuseop | 甲紗, 如意紗, 銀條紗, 銀羅, 秋羅, 八兩紬, 三八紬 | 90 |
⑪ | Item List of Royal tribute written by Yi Yongjun in 1887 (RD01431) | 1887 (Gojong24) |
[譯] Yi Yongjun | 漢緞, 甲紗, 庫紗, 八兩紬 | 70 |
⑫ | Item List of Royal tribute sent from Yi Yongjun in 1887 (RD01458) | 1887 (Gojong24) |
[譯] Yi Yongjun | 漢緞, 貢緞, 模本緞 | 113 |
⑬ | Item List of Royal tribute written by Choi Seok-yeong in 1889 (RD01888) | 1889 (Gojong26) |
[譯] Choi Seok yeong | 甲紗, 輕光紬, 庫緞, 庫英綃, 貢緞, 貢紗, 宮綃, 吉祥紗, 羅紗, 模本緞, 毛綃, 門紗, 三八紬, 蘇州布, 八兩紬, 如意紗, 羽緞, 六兩紬, 銀羅, 銀條紗, 銀紬, 壯元紬, 苧藕紗, 氈, 秋羅, 八兩紬, 漢緞, 亢羅 | 10,809 |
⑭ | Item List of Royal tribute written by Yi Yongjun in 1893 (RD01437) | 1893 (Gojong30) |
[譯] Yi Yongjun | 庫緞, 甲紗, 庫紗, 如意紗, 銀條紗, 十兩三八紬 | 50 |
⑮ | Item List of Royal tribute written by Yoon Gyu-seop (RD01416) | - | [譯] Yoon Gyuseop | 加只紬, 輕光紬, 庫緞, 唐苧, 毛綃, 門紗, 三八紬, 生紗, 生亢羅, 八兩紬, 六兩紬, 銀條紗, 壯元紬, 縐紗, 八兩紬 | 1,184 |
⑯ | Item List for importing textile by Hong Chunghyun (RD01893) | - | [譯] Hong Chung hyun | 甲三八紬, 庫緞, 貢緞, 貢紗, 老紡紬, 累緞, 唐苧, 唐布, 生輕光紬, 生水甲紗, 生亢羅, 熟甲紗, 熟亢羅, 縕紬, 銀羅, 壯元紬, 苧藕紗, 秋羅, 亢羅, 紅邊布, 花紡紬, 花紗紬 | 3,979 |
40,397 |
무역 발기에 기록된 문직물 문양 소재는 도류문(桃榴紋)ㆍ두문(斗紋)ㆍ매란문(梅蘭紋)ㆍ모란문(牧丹紋)ㆍ백복문(百蝠紋)ㆍ백접문(百蝶紋)ㆍ백조봉문(百鳥鳳紋)ㆍ별문(別紋)ㆍ복수문(蝠壽紋혹은 畐壽紋)ㆍ사합여의문(四合如意紋)ㆍ수복문(壽福紋)ㆍ오호로문(五葫蘆紋혹은 五葫紋)ㆍ운문(雲紋)ㆍ운복문(雲蝠紋혹은 雲畐紋)ㆍ운학문(雲鶴紋)ㆍ운학용봉문(雲鶴龍鳳紋)ㆍ장춘문(長春紋)ㆍ접문(楪紋혹은 蹀紋)ㆍ주련문(珠聯紋)ㆍ칠보문(七寶紋)ㆍ칠보소룡문(七寶小龍紋)ㆍ팔길상(八吉祥)ㆍ호접문(胡蝶紋)ㆍ화문(花紋)ㆍ화접문(花蝶紋)ㆍ화학문(花鶴紋)ㆍ희자문(囍字紋)이 있으며 총 27가지에 이른다. 확인된 문양 소재는 문자, 식물, 동물, 물건 등을 망라하여 당시 왕실이 소비한 직물 디자인이 상당히 풍성했음을 보여준다.1)
한편 문양 명칭과 함께 기록된 수량은 19세기 왕실로 수입된 문직물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하는 중요한 정보이다. 아래의 표는 16건의 무역 발기 기록에 근거하여 문직물 문양 소재별 수입량을 정리한 것이다. 각 발기에 대한 정보는 편의상 <Table 1>을 참고하고자 한다<Table 2>. 이에 따르면 40,397필의 직물류 가운데 문직물은 7,319필, 즉 전체 직물 가운데 약 18.12%의 비중을 차지하며 수입되었다.
① | ② | ③ | ④ | ⑤ | ⑥ | ⑦ | ⑧ | ⑨ | ⑩ | ⑪ | ⑫ | ⑬ | ⑭ | ⑮ | ⑯ | N | % | |
---|---|---|---|---|---|---|---|---|---|---|---|---|---|---|---|---|---|---|
Byeolmun [別紋] |
100 | 134 | 900 | - | 710 | - | 319 | 179 | 6 | - | 5 | 20 | 843 | 11 | 215 | 78 | 3,520 | 48.09 |
Jeopmun [楪紋ㆍ蹀紋] |
- | 25 | - | 65 | 20 | - | 174 | 146 | 14 | - | - | 15 | 334 | - | 112 | 114 | 1,019 | 13.92 |
Unmun [雲紋] |
- | 23 | - | 20 | 39 | 10 | 78 | 78 | - | - | 6 | - | 667 | - | - | - | 921 | 12.58 |
Unbongmun [雲蝠紋] |
- | 90 | 260 | - | - | - | 3 | 18 | - | - | - | - | - | - | - | - | 371 | 5.07 |
Toryumun [桃榴紋] |
- | - | - | - | 56 | 1 | 21 | 40 | - | - | 3 | - | - | - | - | 102 | 223 | 3.05 |
Hwamun [花紋] |
- | - | - | - | 25 | - | 66 | 22 | - | - | - | - | 90 | - | - | - | 203 | 2.77 |
Unhakyongbongmun [雲鶴龍鳳紋] |
- | - | - | - | 25 | - | 53 | 53 | - | - | - | - | - | - | - | - | 131 | 1.79 |
Hwahangmun [花鶴紋] |
- | - | - | - | 20 | - | 53 | 50 | - | - | - | - | - | - | - | - | 123 | 1.68 |
Baekbongmun [百蝠紋] |
- | - | - | - | 15 | - | 47 | 42 | - | - | - | - | - | - | - | - | 104 | 1.42 |
Chilbomun [七寶紋] |
- | - | - | - | - | - | 49 | 46 | - | - | - | - | - | - | - | - | 95 | 1.30 |
Juryeonmun [珠聯紋] |
- | - | - | 20 | - | - | - | - | - | - | - | - | 67 | - | - | - | 87 | 1.19 |
Hwajeommun [花蝶紋] |
- | - | - | - | - | - | 39 | 39 | - | - | - | - | - | - | - | - | 78 | 1.07 |
Maeranmun [梅蘭紋] |
- | - | - | - | 40 | 3 | 3 | 25 | - | - | - | - | - | - | - | - | 71 | 0.97 |
Unhangmun [雲鶴紋] |
- | - | - | - | - | - | 26 | 31 | - | - | - | - | - | - | - | - | 57 | 0.78 |
Boksumun [福壽紋ㆍ畐壽紋] |
- | - | - | - | - | - | 28 | 27 | - | - | - | - | - | - | - | - | 55 | 0.75 |
Chilbosoryongmun [七寶小龍紋] |
- | - | - | - | 25 | - | 15 | 15 | - | - | - | - | - | - | - | - | 55 | 0.75 |
Ohoromun [五葫蘆紋ㆍ五葫紋] |
- | - | - | - | 10 | - | 9 | 9 | - | - | - | - | - | - | - | 12 | 40 | 0.55 |
(Mansu) Jangchunmun [(萬壽)長春紋] |
- | - | - | - | 15 | - | 9 | 9 | - | - | - | - | - | - | - | - | 33 | 0.45 |
Subongmun [壽福紋] |
- | - | - | - | 30 | - | - | - | - | - | - | - | - | - | - | - | 30 | 0.41 |
Baekjeommun [百蝶紋] |
- | - | - | - | - | - | 14 | 14 | - | - | - | - | - | - | - | - | 28 | 0.38 |
Baekjobongmun [百鳥鳳紋] |
- | - | - | - | - | - | 24 | - | - | - | - | - | - | - | - | - | 24 | 0.33 |
Moranmun [牧丹紋] |
- | - | - | - | - | 20 | - | - | - | - | - | - | - | - | - | - | 20 | 0.27 |
Hojeommun [胡蝶紋] |
- | - | - | - | 20 | - | - | - | - | - | - | - | - | - | - | - | 20 | 0.27 |
Huijamun [喜字紋] |
- | - | - | - | - | - | 4 | 4 | - | - | - | - | - | - | - | - | 8 | 0.11 |
Sahabyeouimun [四合如意紋]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 - | 1 | 0.01 |
Palgilsang [八吉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 - | 1 | 0.01 |
Dumun [斗紋]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 - | 1 | 0.01 |
7,319 | 100 |
문양 소재별로 수입 비중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 흥미로운데, 27가지 문양 가운데 수입량이 가장 많은 것은 별문(別紋)으로 수입 문직물 가운데 약 48%를 차지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압도적인 비중을 점한다. 그 뒤를 이어서 접문(楪紋ㆍ蹀紋)과 운문(雲紋)이 이름을 올렸는데, 각각 13%와 12% 정도의 비중으로 수입되었다. 별문, 접문, 운문의 세 가지 문양이 무역 발기에 기록된 전체 문직물 문양 중 73%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 24가지 문양은 전체의 27%만 점유할 뿐이며 두문, 팔길상문, 사합여의문은 특정 시기에 한 필씩만 수입되어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문양의 종류에 따라 수입 비중에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는 점은 19세기 왕실 직물 소비의 경향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다. 무역 발기 자료에 기반해 산출된 정보는 왕실의 직물 유통ㆍ소비ㆍ취향의 문제와도 직결되므로 다음 절에서 가장 많은 양이 수입된 별문, 접문, 운문에 주목하여 19세기 왕실의 직물 소비와 선호, 필요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별문은 조선 전기 기록에서부터 별문석(別紋席)과 같은 물품명에서 그 이름이 확인되며(Sejongsillok, Year 21(1439), June 17 etc), 왕실과의 관련성이 깊고 조선 후기 의복 제작에 가장 널리 사용된 문양으로 파악된 바 있다(Lee, 2004). 19세기 수입 문직물에서 확인되는 27가지 문양 소재 가운데 수입 규모가 가장 큰 문양으로써 총 3,520필이 수입되었으며, 이는 전체 문직물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8.09%를 차지한다. 왕실로 수입된 문직물 가운데 별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결과는 선행연구에서 검토된 경향성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18세기 후반 기록에서 궁궐 밖의 사람들에게도 별문(別紋) 직물은 마치 상용물(常用物)처럼 사용되었고(Bibyeonsadeungnok, 1787, October 5), 19세기에도 민간으로 직물 수입이 금지되는 상황에도 별문단품(別紋緞品)의 수입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이 있어(Seungjeongwonilgi, 1808, October 21), 별문이 왕실은 물론 민간에서도 애호되었던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별문이 짜인 직물의 소재로 갑사(甲紗)로 대표되는 사(紗) 종류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무역발기의 내용에 따르면 별문은 주(紬), 라(羅), 초(綃), 능(綾), 단(緞), 능(綾), 모(毛) 계통의 직물에서도 확인된다<Table 3>. 별문 수입 경향에서 주(紬), 라(羅), 초(綃)의 춘추용 직물이 단(緞), 능(綾)에 비하여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아울러 색의 범주 또한 상당히 넓어 다홍, 도화, 보라, 설백, 천청, 양옥색, 양초록양색 등을 비롯한 총 72가지의 색명이 파악되었다. 이처럼 별문이 짜여진 직물의 색과 소재가 다양하다는 점은 왕실에서 주요하게 소비되는 별문 직물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물의 속성을 세분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별문은 다른 문양 소재를 압도할 정도로 많은 양이 수입될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서는 별문의 구성이 단일하지 않고 복합적이었던 점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Fabric Material | Quantity (匹) | Percentage |
---|---|---|
Sa(紗) | 1,213 | 34.5 |
Ju(紬) | 1,070 | 30.4 |
Ra(羅) | 510 | 14.5 |
Cho(綃) | 279 | 7.9 |
Dan(緞) | 232 | 6.6 |
Neung(綾) | 120 | 3.4 |
Mo(毛) | 96 | 2.7 |
3,520 | 100.0% |
한자의 ‘별(別)’은 ‘각각 다르게’, ‘예사의 것과 다르게’, ‘각별히’라는 뜻을 지닌다(Lee, 2020). 따라서 별문 또한 이름에 근거하여 그 구성이 여타 문양과는 다른 특별한 무늬로 이해할 수 있다. 선행연구(Lee, 2004; Jin, 2012; M. J. Lee, 2016)에 따르면 별문은 용, 학, 수복(壽福) 등의 다양한 주제 문양을 커다란 원형으로 짜임새 있게 배치한 형태로 추정된다. 별문을 구성하는 소재가 풍성하다는 점은 문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흥미롭게도 18세기에도 별문이 다른 문양보다 더욱 다채로운 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내용은 정조실록 11년(1787) 9월 30일 조정에서 금지할 문직물 종류를 논의한 것에 자세히 전한다. 이때 서유린(徐有隣, r. 1738-1802)은 “별문은 그 이름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곧 마땅히 금지해야 할 이름을 조목조목 나열하지 않을 수 없다(…而外此別紋, 不一其名, 此則不可不條列當禁之名色矣。)”는 말을 남겼다(Seungjeongwonilgi, 1787b, September 30). 그의 말은 별문을 구성하는 문양의 소재가 하나가 아니므로, 별문을 금지할 것이라면 그 범주 안에 속하는 문양의 이름을 모두 거론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별문은 그 이름이 하나가 아니다’라는 서유린의 평가는 별문의 복합성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별문이 단일한 소재로 구성된 문양이 아니라는 오늘날의 추정과도 부합한다.
이처럼 별문은 기존의 추정처럼 용, 봉황, 수복자문 등의 문양 소재들이 커다란 원형의 패턴을 이루며 구조적으로 배치된 문양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비교적 작은 원형의 문양을 중심에 두고 배경에 각종 문양을 채워 넣은 것 또한 별문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옷감>은 원형의 문자문과 그 주위로 호로(胡蘆), 박쥐 등의 문양이 짜인 직물을 촬영한 것이다<Fig. 5>. 직물 끝단에 짜인 ‘永昌戱別紋庫緞’이라는 문구는 청에서 생산된 직물에서 보이는 형식이며 제작처와 문양 그리고 재질을 뜻한다. 따라서 원형의 문자문과 호로문, 박쥐문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구성의 패턴도 ‘별문’의 범주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1932년 왕손 이구(李玖)의 첫 돌 복식 목록인 『의대기 』 의 기록과 관련 유물을 대조한 연구에서도 직경 4㎝ 이내의 소형 원수문에 호로문이 추가된 구성을 19세기 말~20세기 초 별문의 한 종류로 추정한 바 있다(Jin & Lee, 2016).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원형의 문자문과 각종 길상 문양이 어우러진 복합 패턴 또한 조선 후기에 별문이라 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과 기록을 통해 추정한 것처럼 별문은 풍부한 문양 소재를 활용한 패턴으로 크게 커다란 원형 패턴을 직물 전체에 과감히 배치한 것과 비교적 작은 원형의 문양을 중심에 두고 배경에 각종 문양을 채워 넣은 유형으로 정리된다<Table 4>.
Type Ⅰ | Type Ⅱ |
---|---|
Arrangement of large circular patterns in a regular manner across the entire fabric | Placing relatively small circular patterns and arranging different designs in the empty spaces |
Monk's Outer Vestment at Seonamsa Temple(presented from King Sunjo), 19th century, Seonamsa Templ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6, p.228.) |
Durumagi, 19th century, Seok Juseon Memorial Museum of Dankook University (Dankook University, n.d.) |
조선 후기 왕실용 직물의 주요 무늬로서 별문이 선택된 배경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의복 제작의 효용성과 관련이 깊은 패턴 디자인의 다양성에 주목할 수 있다. 큰 원형 패턴이 직물 전체에 규칙적으로 배치된 것은 의복의 대칭성과 균형감을 주기에 적합했을 것이며, 작은 원형의 길상문이 직물 전체를 가득히 충전한 것은 조선 후기 길상 유행을 반영하면서 풍성한 시각적 효과를 주었기 때문에 별문 선호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큰 원형의 별문의 경우 보(補)와 유사한 배치로 배자, 전복 등의 의복에서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신분 상징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나 이러한 원형무늬가 왕실에서 선호되었던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접문은 1,019필이 수입되어 수입 문직물 중 13.92%의 비중을 차지한 문양이다. 무역 발기에는 楪紋혹은 蹀紋으로 한자를 달리해 표기되었다. 수입된 접문은 사(紗), 단(緞) 재질이 주를 이루며, 색으로는 주황, 남색, 다홍, 보라, 설백, 초록, 회색, 양옥색, 양초록 등 총 42가지의 색명이 파악되었다<Table 5>.
Fabric Material | Quantity (匹) | Percentage |
---|---|---|
Sa(紗) | 665 | 65.3% |
Cho(綃) | 354 | 34.7% |
1,019 | 100.0% |
‘접(楪)’은 창살을 의미하는 한자로 접문은 곧 창살처럼 격자로 구획된 패턴을 이르며 오늘날 만자문(卍字紋) 혹은 장자문(障子紋) 등으로 불리는 문양이 접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본다(Lee, 2004). 조밀하게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이 특징인 접문은 직물의 바탕 문양으로 널리 쓰였으며 수자문(壽字紋), 화문(花紋) 등과 함께 짜여진 사례도 있다<Fig. 5>. 조선 후기 왕실의 남녀 의복 소재로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불이나 좌자 등의 침장류의 제작에도 접문 직물이 사용되었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6).
한편, 접문은 임금이 신하에게 상으로 하사하는 직물, 즉 상단(賞緞)을 상징하는 무늬로도 여겨져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별문에서 살펴보았듯, 1787년 정조와 조정의 신하들은 금지할 직물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었는데 이때 접문도 거론되었다. 당시 무늬 있는 직물이 금지되더라도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상단은 유지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상단의 무늬가 다른 것과 구별되는지 문제가 되었다. 이에 김치인(金致仁, r. 1716-1790)은 상단은 문품(紋品)이 다른 직물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였고, 정조는 상단은 곧 대접문(大楪紋)이니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하며 문제를 일소했다(Seungjeongwonilgi, 1787a, September 29). 18세기 후반 편찬된 법규 모음집인 『추관지(秋官志)』에도 ‘賞賜緞紗大楪紋’ 같은 명칭이 기록되어 ‘접문’이라는 문양 소재와 ‘상단’이라는 용도의 결합이 공고했음을 보여준다(Chugwanji, n.d.). 이렇게 접문은 왕이 신하에게 상으로 내리는 직물의 문양을 대표하는 소재였으며, 접문 직물은 조정 내에서 상격(賞格)을 논할 때 사용하는 공적 물품으로서 관습적으로 소비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접문은 왕실의 의복 제작은 물론 신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쓰였으므로 중요하게 관리되었다. 조선 조정은 문직물 수입을 엄금하는 와중에도 왕실 내에서 특정한 쓰임을 갖는 문양은 수입을 허용했는데, 접문은 그 문양을 그린 별도의 책자(冊子)를 제작해 사행에 참고하게 하였고, 짐바리 검사가 이뤄지는 의주(義州)에 견본(見本)을 보내어 무사히 세관을 지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리(Seungjeongwonilgi, 1787b, September 30)된 대상이었다.
기하학적 패턴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접문은 조선 후기 왕실의 의복 제작은 물론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상단의 문양으로 관리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19세기에도 접문은 왕실 내 직물 소비에서 여전히 주요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상당한 양이 연행을 통해 수입되었다.
운문은 구름을 모티프로 한 무늬로 무역 발기의 전체 수입 문직물 중 12.58%를 차지한다. 수입된 운문 직물의 재질은 사(紗), 단(緞)이 주를 이루며 운문사는 전체의 80%, 운문단은 20%로 나타났다<Table 6>. 색상으로는 다홍, 분홍, 아황, 유록, 품록 등을 비롯한 22가지 색명이 파악되었다.
Fabric Material | Quantity (匹) | Percentage |
---|---|---|
Dan(緞) | 184 | 20% |
Sa(紗) | 737 | 80% |
921 | 100.0% |
운문은 운두(雲頭)의 크기에 따라 명칭이 분화되어 삼운문(三雲紋)이나 사운문(四雲紋) 등으로도 불리는데, 운문의 앞을 수식하는 숫자가 커질수록 운두의 너비는 줄어든다(Lee, 2022). 무역 발기에는 팔운문(八雲紋)과 구운문(九雲紋)이 기록되어 있어 크기가 작은 운두가 조밀하게 반복된 패턴도 수입되었다고 짐작된다. 현존 유물을 살펴보면 구름 사이로 보문(寶紋)이 배치된 운보문(雲寶紋) 유형의 수량이 상당하므로 무역 발기에 기록된 운문의 범주에 운보문도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Fig. 7>.
구름을 모티프로 한 운문은 일찍이 조선 전기 실록을 비롯하여 후기 의궤 등 왕실 기록에 등장하여 왕실 내에서 줄곧 사용된 문양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운문은 국왕의 정복(正服)인 곤의(袞衣)와 신하의 장복(章服) 그리고 연여(輦輿)에 쓰이는 문양으로 정해져 있었고 이 외에도 왕실 의물(儀物)인 어보(御寶)의 보자기나 왕실 기록물의 책의(冊衣)로 쓰였다(Geummunsamok, n.d.). 이처럼 운문은 관복이나 의물처럼 왕실과 조정에서 쓰이는 공적인 물품의 제작에 꾸준히 사용되었지만, ‘누가 운단으로 옷을 만들 것이며, 천첩들도 운문은 반드시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이 있어 민간에서는 그리 선호되지 않았다고 보인다(Seungjeongwonilgi, 1787b, September 30).
운문 직물은 왕실에서 항시 사용되었으므로 일찍부터 수입과 유통에 특별한 관리가 이뤄졌다. 1750년 편찬된 『상방정례(尙方定例)』중 <연례연무품단자(年例燕貿稟單子)>의 내용에는 운문이 짜인 다양한 견직물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운문 직물이 청과의 사행에서 관례적으로 수입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Sangbangjeongnye, 1750). 이처럼 왕실 내 꾸준한 수요에 부응하여 항례(恒例)로 무역한 운문 직물은 19세기에도 여전히 수입되어 무역 발기에 기록된다.
이상으로 무역 발기의 문직물 문양 중 수입 비중이 가장 큰 별문, 접문, 운문의 세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수입 내용과 배경을 살펴보았다. 별문과 접문 그리고 운문은 왕실 내에 특수한 쓰임을 지닌 문양으로써 관복이나 하사품 등 공적 용도로 쓰이거나, 문양이 지닌 시각적 풍성함 등을 이유로 왕실 내에서 애용되며 상당량 수입되었다. 조선 후기 관찬 사료에서 파악된 것처럼 19세기 이전부터 왕실 내에서 별문, 접문, 운문을 원활히 수입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사실은 무역 발기에서 세 종류의 문양이 주요하게 수입된 내용과도 연결된다. 19세기 왕실의 직물 소비는 곧 선호와 필요에 따라 구성된 것이므로, 27가지 문양 소재 중 특별히 선택된 별문, 접문, 운문이라는 특정 직물 무늬에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무역발기 내용을 기반으로 19세기 왕실에 수입된 직물 문양의 종류별 비중을 검토하였다. 특히 많은 양이 수입되었던 별문ㆍ접문ㆍ운문에 대해 수입 배경을 집중적으로 고찰해 왕실 내 필요와 선호에 따라 결정된 직물 수입의 사례를 밝혔다.
조선 후기 왕실에서 필요로 했던 직물이 연행을 통해 수입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청대 북경의 시장에 주문생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행록의 내용과 유물이 보여주듯 청의 상인과 직물 장인들은 조선의 선호와 취향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왕실이 요구한 직물은 외국 시장에서 원활히 제작, 수입될 수 있었다.
19세기 무역 발기에 의하면 왕실로 수입된 직물의 문양 소재는 27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특히 별문, 접문, 운문 직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수입되었는데, 이는 왕실 내의 공식적인 목적을 충당하기 위해서 또는 패턴 구성의 다채로움 등을 이유로 특별히 선택된 것이었다.
조선 왕실의 필요에 따라 선별된 직물을 수입하기까지 외국의 시장에 주문하고 수매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은 19세기 무역 발기에 기록된 직물이 상당히 복합적인 의사소통 단계를 거친 산물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19세기 왕실로 수입된 직물은 청에서 조선이라는 일방적인 관계도를 벗어나 청의 직물 장인과 중개상인 그리고 조선의 역관과 궁녀 등 여러 인물의 상호 의사소통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연구는 19세기 조선 왕실 내 직물 소비 경향을 실증적으로 살펴본 것은 물론, 한중 복식 문화 교류의 일면으로서 시장을 통한 상호 교류와 왕실 취향의 반영을 논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향후 왕실 내에서 유통된 수입 직물에 대한 적극적 해석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스타일과는 다른, 조선의 기호가 반영된 직물이 청에서 주문제작되어 왔다는 내용으로 19세기 조선과 청의 복식 교류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는 토대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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