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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ses ] |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69, No. 6, pp. 136-158 | |
Abbreviation: JKSC | |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 |
Print publication date 30 Sep 2019 | |
Received 28 Jul 2019 Revised 08 Aug 2019 Accepted 12 Aug 2019 | |
DOI: https://doi.org/10.7233/jksc.2019.69.6.136 | |
조선후기 피갑(皮甲)의 구조와 특징 |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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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과 조교수 | |
A Study on the Structure and Characteristics of Leather Armo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
Ga You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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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tant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SoongEui Women's College | |
Correspondence to : Ga Young Park, e-mail: gayoung21@sewc.ac.kr | |
The study of armor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s been focused on high-ranking generals’ armor, with a lack of attention paid to the leather armor worn by foot soldiers. To address this, documents and artifacts relating to this armor are compared and analyzed in this study. According to 19th century records, “Pigap(皮甲: leather armor)” was made by sewing a coat from a fabric and then attaching many leather scales inside. The coat has a round neckline, short sleeves, and linear metal epaulets on both shoulders. It features rectangular black lacquered scales that are exposed by being attached to the lining. By comparing sizes, fabrics, and patterns, 18 kinds of leather armor artifacts are classified into seven types: four made of cotton coats with leather scales and three made of silk satin coats with leather scales. There were four characteristics of leather armor. First, an illustration of Pigap, the armor in military book "Yungwonpilbi" aligns almost perfectly with the artifacts. From this, it can be seen that the armor had a specific system and was inherited. Second, the armor is so thick that it is completely opened without sewing sleeve seams and side lines. This was for the convenience of making and wearing. The shape of the armor scales, the direction of overlapping, and the position of the round-headed nail were thoroughly planned. Third, the leather armor was different from the armor worn by high-ranking commanders. The latter was made with luxury materials and decorated with delicate ornaments, while the infantry’s armor was made to be simple and practical. Fourth, there were many variations of the leather armor. It was made from various fabrics, or only the armor scale material was changed to iron. Later, newly developed vest-type cotton armors used materials and patterns of leather armor.
Keywords: infantry, Korean armor, late Joseon dynasty, leather armor, military costume, Pigap 키워드: 보군, 한국 갑주, 조선후기, 피갑, 군사복식, 피갑 |
2018년 1월, 조선후기 갑옷 한 점이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서 무명으로 만든 포(袍)의 안쪽에 가죽미늘이 달린 갑옷을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이 박물관은 1909년부터 1930년 사이에 4명의 신부들이 수집한 한국문화재 약 1,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OKCHF], 2015), 소장품 중에는 갑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2017년 선교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전수조사를 하면서 손상이 심한 갑옷의 보존처리에 대해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도원 관계자들로부터 갑옷 1점을 기증받게 되었고, 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영구 소장하기로 하는 동시에 갑옷 분석을 바탕으로 복원품을 제작하여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보내기로 하였다(‘Press Releases’, OKCHF, 2018; ‘Joseon infrantry’, The Dong-A Ilbo, 2018). 이 갑옷은 19세기 병서(兵書)인 『융원필비(戎垣必備)』(1813)에 기록된 전형적인 조선후기 보군(步軍)의 피갑(皮甲) 유물로서, 기증받은 유물을 이해하고 복원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국내와 해외에 산재한 피갑유물에 대한 전격적인 조사와 비교 분석이 시급한 상황이다.
피갑에 대한 선행연구는 1970년대 말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간간이 이어져오고 있다. Lee(1979)는 국내 소장품 3점, 해외 소장품 2점의 피갑 유물 전존실태와 제작방법을 고찰하고 『융원필비』의 피갑 기록과 도식을 소개하였다. 이후 이 내용은 문화재관리국(현재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갑주』에 컬러 및 흑백사진과 함께 유물별로 실렸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1987). Kim(1998)은 갑주의 분류와 이해를 위해 새로운 명칭을 제안하였다. 겉에서는 두정만 보이고 갑옷속에 가죽 3겹을 겹쳐 붙인 사각형의 갑옷미늘을 두정으로 시정한 갑옷을 두정피갑(頭釘皮甲)이라 명명하고 국내 유물 6점, 해외 유물 2점을 분석하였다. Park(2003)은 조선 초기의 피갑 제도가 중후기에 변화했음에 주목하였다. 초기에는 찰갑(札甲) 형식이었다가 17세기 이후로 직물로 만든 옷에 두정으로 가죽갑찰을 고정시켜 만드는 갑옷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Kim(2009)은 조선시대 두정갑의 새로운 분류안을 제시하였고 상ㆍ하의 일체형과 분리형 두정갑을 구분하여 분석하였으며 국내외 17점의 두정피갑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무게와 활동성, 옷과 미늘의 방호력등을 바탕으로 두정갑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였으며 두정갑의 확산과 운용을 고찰하면서 가죽미늘을 사용한 갑옷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Cho, Yum & Beckers-Kim(2015)은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갑옷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조선후기 양식 갑옷 2점에 대해서 형태, 재료, 색상, 문양, 묵서 등 실측조사한 기초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한 갑옷 2점 중 1점이 2018년 한국에 기증된 피갑 유물이다. 이처럼 피갑을 포함하여 진행된 연구는 지속적으로 있었으나 피갑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심화 연구는 40년 전 Lee(1979)의 연구로 머물러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피갑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 문헌, 실물, 사진자료를 수집 조사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조선후기 고서, 군영 관련 고문서 등의 문헌사료에서 피갑 관련 기록을 찾아서 명칭과 수량, 형태와 구조를 정리한다. 다음으로 국내와 해외에 소장된 피갑 유물현황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분류 기준을 찾아낸 후 유형을 나눈다. 마지막으로는 조선후기 피갑의 특징을 추출한다. 문헌과 유물의 상호 부합정도로부터 당시 피갑 형식과 제도의 유무를 확인하고, 구조와 제작방식을 분석하며, 다른 종류의 갑옷과 비교를 통해서 피갑의 특징을 정리한다.
1808년(순조 8) 국왕의 정사에 참고하기 위해 조선왕조의 재정(財政)과 군정(軍政)을 정리해놓은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군영별로 지급한 갑주의 종류와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Park, 2003; Yum, 2014). 그중 피갑만을 추려보면 아래 <Table 1>과 같다. 훈련도감에서는 피갑 2,892벌, 금위영에서는 여러 가지 색의 운문단(雲紋緞)으로 포(袍)를 만들고 안에 가죽미늘을 댄 갑주[各色雲紋緞皮甲冑]가 13벌을 지급하였다. 어영청에서는 보다 다양한 피갑을 지급하였으니, 모단(冒緞), 화단(禾緞), 여러 가지 색상의 장단(漳緞) 또는 비단[緞], 흰색 비단[白緞] 등 비단으로 포를 만든후 안쪽에 가죽미늘을 댄 갑주를 66벌, 피갑주(皮甲冑) 55벌, 여러 색상의 무명 포 안에 가죽미늘을 댄 갑주[各色木綿皮甲冑] 150벌을 포함하여 총 271벌의 피갑을 군사에게 지급하였다.
Military Camp | Armor Type | Count | Explanatory Note |
---|---|---|---|
Hullyeondogam [訓鍊都監] | leather armor [皮甲] | 2,892 | Number of infantry armor of all 3,830 |
Geumwiyeong [禁衛營] | cloud pattern silk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各色雲紋緞皮甲冑] | 13 | A total of 200 / 105 distributed to cavalry[騎士] |
Eoyeongcheong [御營廳] | modan silk and leather armor [冒緞皮甲冑] | 1 | 376 armor and helmet set / 212 for byeolcho[別抄] and cavalry[騎士] |
hwadan silk and leather armor [禾緞皮甲冑] | 1 | ||
leather armor and helmet [皮甲冑] | 55 | ||
jangdan silk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各色漳緞皮甲冑] | 50 | ||
cotton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各色木綿皮甲冑] | 150 | ||
silk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各色緞皮甲冑] | 12 | ||
white silk and leather armor [白緞皮甲冑] | 2 |
특히 피갑의 수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훈련도감의 갑주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갑주 3,830벌. 철갑(鐵甲)이 839벌인데 그중 744벌은 별무사(別武士)와 마병(馬兵)에게 나누어 주고, 피갑(皮甲)이 2,892벌인데 보군(步軍)에게 나누어 준다. 각색 비단갑주[緞甲冑]는 99벌이다. (Mangiyoram[萬機要覽], 1808)
훈련도감 군사들이 착용한 갑주는 3종류였고<Table 2>에서 보듯이 피갑이 75.5%로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 다음은 철갑, 단갑주 순이었다. 이는 피갑은 보군용 갑옷이었기 때문으로, 훈련도감 병력 구성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Type | Count | Percentage |
---|---|---|
Iron armor | 839 | 21.9% |
Leather armor | 2,892 | 75.5% |
Silk armor and helmet | 99 | 2.6% |
Total | 3,830 | 100.0% |
다른 문헌에서도 피갑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882년(고종 19) 무위영(武衛營)에 보관된 무기들의 파손 여부와 수량을 정리한 『무위영각색군기완파구별성책(武衛營各色軍器完破區別成冊)』에서도 가죽을 재료로 만든 갑주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Table 3>을 보면 총위영(總衛營, 총융청), 관마소(官馬所), 전훈국(前訓局)과 관련된 갑주가 있다. 먼저 총위영에서 이관되어 온 갑주 중에서 삼승피갑 57벌[領], 삼승피주 52건(件), 삼승피갑주의 부속품인 견철(肩鐵)과 흉철(胸鐵)이 각각 54건, 50건이 있었고 모두 파손 없이 온전한 상태였다. 투구의 경우 삼지창과 감투까지 모두 온전한 상태로 재고가 파악되었다. 다음으로 관마소의 피갑으로는 여러 가지 색의 비단과 가죽으로 만든 갑주[各色緞皮甲冑], 흰색 장단과 가죽으로 만든 갑주[白壯緞皮甲冑], 다섯 방위색으로 소속 부대를 표시한 방색 보군용 가죽갑옷[方色步軍皮甲衣]과 투구[冑]의 3종류가 있었다. 단피갑주(緞皮甲冑)는 25벌 중에서 15벌만 흉철, 삼지창, 감투가 온전하였고 나머지는 파손된 상태였다. 백장단피갑주(白壯緞皮甲冑) 1벌과 방색보군피갑의(方色步軍皮甲衣) 794건, 투구 792건은 삼지창과 감투까지 모두 온전한 상태였다. 이 기록에서도 보군용 피갑의 수량이 다른 종류의 갑옷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훈국의 조총색(鳥銃色) 무기 중 피주(皮冑) 1부(部)는 파손된 상태라고 쓰여 있다.
Military Camp | Armor Type | Count | Intact or Damaged |
---|---|---|---|
Item Moved from Chongwiyeong[總衛營] | samseung leather armor [三升皮甲] | 57 | Everything is intact. |
samseung leather helmet [(三升皮)冑] | 52 | samjichang[三枝槍], gamtu[甘吐] are complete, everything is intact. | |
iron strap of samseung leather armor [(三升皮甲冑)肩鐵] | 54 | Everything is intact. | |
iron plate for chest of samseung leather armor [(三升皮甲冑)胸鐵] | 50 | Everything is intact. | |
Armor and Helmet of Gwanmaso [官馬所] | silk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各色緞皮甲冑] | 25 | 15 iron plates for chest[胸鐵], samjichang[三枝槍], gamtu[甘吐] are complete, everything is intact. |
white jangdan silk and leather armor of many colors [白壯緞皮甲冑] | 1 | samjichang[三枝槍], gamtu[甘吐] are complete, everything is intact. | |
infantry leather armor made of five colors [方色步軍皮甲衣] | 794 | Everything is intact. | |
infantry leather helmet made of five colors [(方色步軍皮)冑] | 792 | samjichang[三枝槍], gamtu[甘吐] are complete, everything is intact. | |
Arms of Jeonhunguk[前訓局] Jochongsaek[鳥銃色] | leather helmet [皮冑] | 1 | damaged |
이상의 『융원필비』와 『무위영각색군기완파구별성책』의 19세기 문헌기록을 종합해보았을 때, 피갑주(皮甲冑)는 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ㆍ총융청 등의 여러 군영에서 운문단ㆍ모단ㆍ화단ㆍ장단(漳緞)ㆍ장단(壯緞) 등 비단이나 무명[木綿], 삼승(三升)으로 만든 포에 가죽 갑옷미늘을 대어 만든 갑주라 여겨지며, 병력이 많은 보군(步軍)의 갑주로 다량으로 제작, 보관되었고 소속을 표시하기 위해 방색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융원필비(戎垣必備)』는 1813년(순조 13) 훈련대장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이 편찬하고 훈련도감에서 발행한 병서(兵書)이다. 1811년 말 일어난 홍경래 난 당시 조선의 병기가 낡고 허술하여 홍경래 난을 진압한 이후 곧바로 호조의 재정지원으로 무기 제조를 위한 임시관청인 감조도감(監造都監)을 두어 무기 개발 및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옛 제도에 따라 새로이 병기를 만들고수리하게 되었다. 박종경은 새로 개발하거나 수리한 무기를 후대에서도 참고할 수 있도록 무기의 재료, 규격, 중량, 사용법 등을 정리하였다(‘Yungwonpilbi’, 2019).
가죽갑옷인 피갑(皮甲)과 가죽투구인 피주(皮冑)가 <Fig. 1>의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먼저<Fig. 2>의 투구를 살펴보면 머리가 들어가는 투구감투, 위쪽의 정수리 장식, 아래쪽의 드림으로 이루어져 조선후기 투구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투구감투는 4조각의 부채꼴 모양 가죽을 전ㆍ후ㆍ좌ㆍ우에서 세로로 긴 4개의 금속 근철(筋鐵)로 고정하였고 벌어지지 않도록 위는 반구형(半球形) 뚜껑인 개철(蓋鐵)을 덮고, 아래는 가로로 긴 금속띠를 한 바퀴 둘렀다. 앞쪽에 차양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나 정면 그림이라서 보이지는 않는다. 투구감투 아래쪽의 이마가리개는 안와(眼窩) 모양을 따라 둥글게 파인 형태이다. 위쪽의 정수리 장식은 삼지창, 원판과 상모(象毛), 세로로 긴 원통형의 간주(幹柱)로 구성되었다. 삼지창과 원판 사이에 작은 구슬모양의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쪽의 드림은 뒷드림 1장과 옆드림 2장이며, 겉감쪽으로 두정(頭釘)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고 양쪽 옆드림의 가운데에는 지름이 큰 광두정(廣頭釘) 하나씩 그려져 있다. 드림은 둥근 곡선 형태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따라 선이 둘러져 있다. 선의 너비와 모양을 보면 모피를 두르지는 않았다. 투구에는 두 쌍의 끈이 보인다. 한 쌍은 투구감투의 양옆 하단에서 내려와 턱 아래에서 묶기 위한 끈이고, 다른 한 쌍은 옆드림의 아래쪽에 달려있어 옆드림을 앞쪽으로 묶거나 반대로 바깥으로 젖혀서 뒤쪽에서 묶기 위한 끈이다.
다음으로 <Fig. 3>의 갑옷을 보면 둥근 목둘레선에 짧은 소매가 달리고 배래와 옆선이 트여 있으며, 앞중심 위쪽에 2쌍, 좌우 소매 배래에 각각 2쌍씩의 단추와 고리로 여며서 착용하였다. 목둘레선, 앞중심, 도련, 옆선, 소매부리[袖口] 등 가장자리를 따라서 선이 둘러져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갑옷미늘이 노출되어 있는 점이다. 조선후기 장관급 갑주는 갑옷미늘이 겉감과 안감 사이에 있어서 겉감의 두정만 보일 뿐 갑옷미늘이 겉에서 보이지 않는데 비해, <Fig. 3>의 피갑 도식을 보면 안감 위로 직사각형의 갑옷미늘들이 가로 세로로 배열되어 있다. <Fig. 1>에 “皮甲”이라고 쓰여진 것으로 보아 갑옷미늘의 재료는 가죽이었고, 그림에서 검정색으로 칠해진 것으로 보아 검정색 옻칠[黑漆]을 하여 강도를 높이고 부식을 방지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러한 갑옷미늘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무명 여러 겹을 겹친 심감을 대야 하므로 겉감과 안감 사이에 심감을 넣어 반소매 포를 만들고, 안감 위에 가죽미늘을 배열하고 겉감 쪽에서 두정을 박아 고정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양쪽 어깨에는 옷의 중심을 잡고 어깨를 보호하는 견철(肩鐵)이 달려있으며, 그 형태는 용(龍)이 아니라 단순한 직선 형태이고, 경첩으로 분절되어 어깨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였다.
국내와 해외에 전해지는 피갑 유물은 <Table 4>와 같다. 국내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육군박물관, 대학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을 포함하여 8점 가량이 보고되었고, 해외에서는 독일, 미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6개 국가에서 10점의 조선 후기 피갑이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에도 피갑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 재료, 치수 등 유물에 대한 해설이 없어서 본 연구 대상에서는 제외시켰다.
No. | Country | Museum | Image | Length | Center to sleeve end | Scale Dimension | Outer Fabric | Stamp Pattern | Side Panel | Slit | Source | ||
---|---|---|---|---|---|---|---|---|---|---|---|---|---|
Sleeve Seam | Side Seam | Center Back | |||||||||||
1 | Korea | Yonsei University Museum | 104.0 | 52.0 | 6.5×9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CHA, 1987, p. 210 | |
2 | Korea | National Museum of Korea | 105.5 | 48.4 | -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Gabju’, n.d.-a | |
3 | the USA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107.0 | 45.5 | 6×9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photo by author, 2018 | |
4 | Japan | The Yushukan Museum at Yasukuni Jinja | 102.0 | 54.0 | -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CHA, 1987, p. 168 | |
5 | the United Kingdom | Private Collection (John L. Boots) | - | - | -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Boots, 1934, Plate 31 | |
6 | Korea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 101.0 | 49.5 | 6×9 | cotton | lotus vine | ○ | ○ | ○ | × | Cho et al., 2015, pp. 78~84; ‘Press Releases’, 2018 | |
7 | France |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 Guimet | 88.0 | 48.5 | 7×8 | cotton | 卍 and Bat | ○ | ○ | ○ | × |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NRICH], 1999, p. 63 | |
8 | Korea | National Museum of Korea | 106.0 | 60.0 | 7.2×10 | cotton | amulet | × | ○ | ○ | ○ | CHA, 1987, p. 212 | |
9 | Korea |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 98.0 | 59.0 | 5.5×10.2 | cotton | - | × | ○ | ○ | ○ | CHA, 1987, p. 215 | |
10 | Germany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 앞: 104.0 뒤: 87.0 | 47.0 | 4×5.8 ? |
cotton | - | ○ | ○ | ○ | × | NRICH, 2013, p. 603 | |
11 | Russia | Peter the Great Museum of Anthropology and Ethnography | - | - | - | satin (jangh wadan) | - | × | ○ | ○ | ○ | NRICH, 2004, p. 194 | |
12 | Germany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 98.0 | 54.0 | 6×9 | satin (jangh wadan) | - | × | ○ | ○ | × | NRICH, 2013, p. 595 | |
13 | Japan | The Yushukan Museum at Yasukuni Jinja | 69.0 ? |
60 | - | satin (jangh wadan) | - | ? | ○ | ○ | × | CHA, 1987, p. 167 | |
14 | Germany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 88.0 | 46.7 | 7×10 | satin | - | ○ | ○ | ○ | × | NRICH, 2013, p. 597 | |
15 | Korea | Korea University Museum | 93.0 | 49.0 | 7×10 | satin | - | × | ○ | ○ | × | CHA, 1987, p. 213 | |
16 | the USA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 93.2 | 44.7 | - | ? | - | ? | ○ | ○ | ? | ‘Armor’, n.d. Courtesy of AMNH | |
17 | Korea | Korea Army Museum | 106.0 | 55.0 | - | silk | - | × | ○ | ○ | × | CHA, 1987, p. 211 | |
18 | Korea | Private Collection | 65.0 (120) |
- | 7×7 | satin (unbodan) | - | - | - | - | - | CHA, 1987, p. 197 |
검정색 가죽 갑옷미늘이 달려있어서 가죽으로 만든 갑옷, 즉 피갑이라 부르지만 포(袍)를 구성하는 직물의 종류, 색상, 문양, 구조 등에 있어서는 다양한 형식이 공존한다.
먼저 피갑 유물은 둥근 목둘레에 앞중심선이 겹쳐지지 않고 맞닿게 내려오는 합임(合袵)이고 반소매가 달린 구조이다. 어깨선과 소매중심선은 골로 만들어지고 배래와 옆선이 모두 트여있어서 앞판과 뒷판을 펼쳤을 때 십자형으로 펼쳐진다. <Table 4>에서 갑옷의 길이는 대부분 90~100cm, 화장은 45~55cm로서 길이와 소매가 모두 짧은 편이다. 갑옷미늘의 크기는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중앙의 직사각형 미늘을 기준으로 보고서 치수의 평균값을 산출해보면 가로 6~7cm, 세로 9~10cm이다. 직물은 면직물이나 견직물로 만들었고 면직물의 경우 도장을 찍어서 여러 가지 문양을 표현한 경우도 많았다. 앉고 서는 자세, 걷고 달리는 동작 등 활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포(袍)에는 양 옆에 무를 달거나 트임을 준다. 대체적으로 무가 달린 유물은 뒤가 트여있지 않았고, 뒤가 트인 갑옷은 무가 달려져 있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Table 4>의 12번, 15번, 17번 갑옷처럼 무가 달려 있지 않으면서 뒤트임도 없는 피갑유물도 있었다. 18번의 여반 장군(呂攀, 1699~1773) 갑옷은 상하분리형으로 상의에 해당하는 갑(甲)과 하의에 해당하는 갑상(甲裳)으로 나뉘는 방식이어서 일반적인 조선후기 피갑의 구조나 특징에서 벗어난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갑 유물을 정리해 본 결과 피갑은 외형적으로 보았을 때 포(袍)를 만드는 직물의 종류, 즉 구성섬유와 문양에 따라 구분되었다. 우선 구성섬유에 따라 크게 면직물과 견직물로 나눌 수 있고, 면직물 피갑은 다시 목판에 각종 문양을 조각하여 먹[墨]이나 염료를 발라 직물에 인염(印染)한(Kim, 2004) 것과 문양이 없는 것으로, 견직물 피갑은 여러 색의 실로 문양을 화려하게 짠 장화단과 단색으로 문양을 직조한 문단으로 구분되었다.
(1) 목면피갑 유형Ⅰ : 연화만초문
목면피갑 유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양은 연꽃 주변을 넝쿨풀이 둥글게 감으면서 뻗어나가는 연화만초문(蓮花蔓草紋)으로, <Table 4>의 1번에서 6번까지 목면(木綿), 즉 무명 바탕에 연화만초문을 목판염으로 인문한 피갑이다. <Fig. 4>는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피갑이며 <Fig. 5>의 문양 확대사진을 보면 갑옷의 두정 사이로 먹으로 찍은 검정색 연화만초문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한편 동일한 문양이지만 붉은색으로 문양이 찍혀진 유물도 있다. <Fig. 6>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피갑 유물로서 동일한 문양목판에 먹 대신 인주(印朱)와 같은 염료를 묻혀 날인하여 문양이 연하고 붉은색을 보인다.
연화만초문은 일반적으로 견직물을 직조할 때 경사와 위사의 교차 순서를 조절하여 나타낸 문양으로 수자직인 단(緞)에 무늬를 넣어서 화문단(花紋緞)으로 제직한다. 무명은 면직물로서 질기고 튼튼하여 오래 입을 수 있지만 평직인데다가 광택이 적어서 문양을 넣지 않기 때문에 대신 같은 문양을 날인하였던 것이다. 직물 전체에 동일한 문양을 반복하여 찍기 위해서는 능화판(菱花板)처럼 조각한 목판을 사용했으리라 추정된다.
(2) 목면피갑 유형Ⅱ : 만자문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된 목면피갑<Table 4> 7번, <Fig. 7>은 앞에서 살펴본 유형Ⅰ과 유사한 구조와 동일한 재료로 만들었으나 연화만초문 대신 만자문(卍字紋)을 찍은 점이 다르다. <Fig. 8>을 보면 만자문과 회문(回紋)이 결합된, 즉 만(卍)이라는 글자의 끝부분을 길게 연장한 후서로 연결하여 일정한 모양이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인 바탕문양 위에 박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무늬를 찍어내기 위한 능화판에서 박쥐와 卍자 무늬가 같이 구성된 것은 복수만대(福壽萬代)를 뜻하며, 만자문과 회문이 혼합된 연속문양은 무시무종(無始無終), 즉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무한성을 의미한다(‘Meaning of pattern’, n.d.).
흥미로운 점은 6번 독일 상트 오텔리엔수도원 박물관에서 환수된 피갑의 보수 흔적에 만자문 직물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Fig. 9>를 보면 앞길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에 직물을 덧대어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이때 사용한 천의 문양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된 목면피갑 유물의 직물문양인 <Fig. 8>과 동일하다. 이로부터 당시 군영혹은 피갑을 제작하던 곳에서 유형Ⅰ의 연화만초문 무명과 유형Ⅱ의 만자문 무명을 함께 제작 혹은 보유하고 있었고, 두 가지 직물은 동시에 존재하였고 동급의 군사에게 착용되는 목면피갑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목면피갑 유형Ⅲ : 부적문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면피갑인 <Table 4> 8번, <Fig. 10>에는 갑옷의 부위별로 문양이 찍혀져 있다. 이 문양은 <Fig. 1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갑옷미늘 없이 무명만 30겹을 겹쳐서 만든, 깃도 소매도 없는 배자 형태의 면갑(綿甲)에서도 발견된다. 갑옷의 구조와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위치에 같은 문양이 날인되어 있는 것이다. “옴마니반메훔”의 육자대명왕진언, 석류, 복숭아, 문자 등 불교와 유교적 의미를 지닌 부적(符籍)을 흑색 먹으로 날인하였고, 위치별로 문양을 정리해보면<Table 5>와 같다.
Front side | Back side | Sleeve | ||
---|---|---|---|---|
Upper Left | Upper Right | Upper Left | Upper Right | Right |
Middle | Middle | |||
Left | ||||
Lower Left | Lower Right | Lower Left | Lower Right | |
1872년(고종 9)에 조선시대 군영의 하나인 무위소(武衛所)에서 새로 마련한 갑의문판(甲衣紋板) 4좌(坐)가 10년 후인 1882년에도 파손없이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Muwiyeong[武衛營], 1882). 이때 군영에 보관된 갑의문판은 갑옷용 문양을 나타내기 위한 목판으로 면갑(綿甲)과 목면피갑(木綿皮甲), 투구 등 목면으로 제작된 갑주유물에 보이는 문양들을 도장처럼 찍기 위한 도구였다. 직조로 문양을 표현하지 않았던 무명에는 대신 도장으로 문양을 찍어 갑옷을 제작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여겨진다(Park, 2003; Park & Song, 2013). <Fig. 12>는 캐나다 로얄온타리오박물관 소장 갑옷으로 직물의 재료, 색상, 인문 문양의 위치와 형태까지 모두 <Fig. 10>과 같아서 서로 동일한 제도의 갑옷으로 보인다. 그러나 갑옷미늘이 가죽이 아니라 철이다. 따라서 <Fig. 10>은 목면피갑, <Fig. 12>는 목면철갑으로 서로 구분할 수 있는 갑옷이다.
(4) 목면피갑 유형Ⅳ : 문양 없음
모든 목면피갑에 문양이 찍힌 것은 아니었다. <Table 4> 9번의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목면피갑은 무가 없고 배래, 옆선, 뒤가 모두 트여 있으며 색상도 유형Ⅲ의 목면피갑과 비슷하지만 아무 문양이 없다. 피갑은 대부분 둥근 목둘레선에 백피(白皮), 즉 염색하지 않은 가죽으로 얇게 선을 두른 반면 9번 피갑은 직물로 배자깃이 달려있고 두정의 배열이 다르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 소장된 10번 <Fig. 13>의 갑옷 역시 아무 문양이 없는데, 다른 피갑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밝은 남색 무명으로 포를 만들었고, 앞길이 104cm와 뒷길이 87cm로서 뒤가 앞보다 20cm 가까이 짧다. 같은 박물관에 색상과 전장후단(前長後短) 등 비슷한 특징을 지닌 갑옷이 2점 더 있는데 미늘을 철로 만든 점만 다르다.
무명이 아닌 비단으로 포를 만든 후 안감 위에 가죽 갑옷미늘을 대고 겉감에서 두정을 박아 고정시킨 갑옷이 단피갑이다. 단피갑 역시 직물의 종류에 따라 유형이 구분된다.
(1) 단피갑 유형Ⅰ : 직금장화단
견직물로 만든 피갑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형은 화려한 문양의 직물로 만든 단피갑이다. 러시아 표트르대제인류학민족학박물관 소장품 <Fig. 14>와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품<Fig. 15>는 각각 짙은 남색과 홍색의 단(緞)으로 비록 바탕색은 다르지만 동일한 문양의 직물로 만든 갑옷이다. 사용한 직물은 직금장화단(織金粧花緞)이며, 이는 수자직의 바닥에 금사와 다양한 색사로 무늬를 짜는데 색사는 봉취직으로 무늬 부분만 짜여지는 화려한 직물이다(NRICH, 2013). <Fig. 16>에서 문양을 보면 여의두(如意頭) 6개가 모여있는 문양과 오조룡이 여의주를 향해 측면을 바라보며 둥글게 배치되어 있는 문양이 직물 전체에 교대로 반복되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제직한 직물로 인해 <Fig. 14>는 소장된 해외박물관에서 일본 갑옷으로 잘못 해설한 바가 있으나(NRICH, 2004), 전형적인 조선후기 피갑이다. 일본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부설 군사박물관인 유슈칸[游就館]에도 똑같은 문양의 직물로 만든 피갑이 소장되어 있다(CHA, 1987).
앞서 <Table 3>에서 살펴보았던 1882년(고종19) 『무위영각색군기완파구별성책』에서 관마소(官馬所)의 갑주로 기록된 “백장단피갑주(白壯緞皮甲冑)”가 바로 이러한 직물로 만든 갑옷이었으리라추정된다. 유물은 백색이 아니라 남색, 홍색 장화단으로 만든 피갑이므로 문헌자료와 유물자료를 종합해볼 때 장단피갑주(壯緞皮甲冑)는 여러 색상으로 제작되었다.
(2) 단피갑 유형Ⅱ : 각색 단피갑
<Table 4>의 14번 피갑은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서 <Fig. 17> 겉감을 청색 직금단(織金緞)으로 만들었다. 직금단은 수자직인 단(緞)을 바탕으로 하고 금사(金絲)로 무늬를 짠 고급직물로 이 유물의 직금단은 만자문(卍字紋)에 작은 원형 꽃무늬를 배치하고 연금사(撚金絲)로 무늬를 나타내었다(NRICH, 2013). <Fig. 18>의 15번 피갑은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품으로 황색의 무늬가 있는 견직물을 겉감으로 하고 안감은 청색 무명, 겉감과 안감 사이의 심지로는 백색무명을 썼다(CHA, 1987). <Fig. 19>의 16번 피갑은 미국 자연사박물관 소장품으로 겉감은 붉은색, 가장자리는 청색 직금단, 안감은 청색 무명이며 안감에 흑칠한 가죽 갑옷미늘을 두정으로 고정한 피갑이다.
이상의 유물은 모두 가죽 갑옷미늘이 안감 위에 달려서 노출되고 배래와 옆선이 트여 있으며 어깨에는 단순한 일자형 견철이 달려있다. 또한 가장자리처리에 있어서 목둘레선만 가죽으로 감싸고 나머지 둘레는 모두 겉감과 다른 색 직물로 감싼 것이 공통점이다. 이는 당시 피갑 제도가 정형화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제도는 일정하되 겉감으로 사용된 견직물은 다양하였다고 이해된다. 19세기 여러 문헌기록에서 발견되는 “각색단피갑주(各色緞皮甲冑)”, 즉 여러 가지 단피갑주는 이러한 유형의 갑주를 통칭한 것이라 여겨진다.
(3) 단피갑 유형Ⅲ : 기타
<Fig. 20>의 17번 피갑은 육군박물관 소장 갑주로서 겉감과 심감의 손상이 매우 심해서 청색 안감만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겉감은 청색의 문양 있는 견직물이라 하였으나(CHA, 1987) 사진에서는 겉감의 홍색과 황색 실이 남아있으므로 단피갑 유형Ⅰ의 직금장화단처럼 화려한 직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손상이 심할 뿐 아니라 진동보다 수구가 좁아져서 사선배래를 보이는 등의 특징으로 인해 기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마지막 <Fig. 21>의 피갑은 18번의 여반 장군(呂攀, 1699~1773) 갑옷으로 유일하게 착용자와 연대가 밝혀진 유물이다. 직사각형의 가죽 갑옷미늘을 겹치고 흑칠한 후 안감 위에 대고 겉감에서 두정을 박아 연결한 방식은 일반 피갑과 일치하나, 상의와 하의가 분리되어 구조는 전혀 다르다. 이는 1790년(정조 14) 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Fig. 22>에서 상의인 갑(甲)과 하의인 갑상(甲裳)으로 나뉘는 상하분리형 구조이다. 이와 유사한 구조의 갑옷이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나왔다고 하지만(‘Gabot ’, n.d.)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분석이 불가하므로 본 연구대상에서는 제외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조선후기 피갑 유물들은 『융원필비』의 피갑 도식과 상당히 부합되는 형태과 구조를 보이고 있다. 문헌기록과 유물을 비교하기 위해 20점에 가까운 피갑 유물 중에서 도식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국내에 소장되어 접근성이 높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피갑을 대표유물을 선정하여 <Table 6>과 같이 정리하였다. 이후 설명은 대표유물 뿐 아니라 다른 유물도 포괄하여 『융원필비』의 피갑 도식과 비교하였다.
Data | Leather Armor in Yungwonpilbi | National Museum of Korea’s Collection |
---|---|---|
Shape | ||
Slit | sleeve seam, side seam | sleeve seam, side seam, center back |
Fastener | button and button loop | button and button loop |
Trimming | narrowly binded | narrowly binded neckline with leather |
Sholder Strap | straight shape, 2 segments | straight shape, 3 segments |
Scale | black, rectangular, exposure of armor scales | black lacquered, rectangular, 3 ply, exposure of armor scales |
Rivet | horizontal evenly spaced, vertical evenly spaced | fixed one pair vertically, horizontal & vertical evenly spaced |
Metal Ornament | none | none |
Source | Yungwonpilbi, 1813, armor chapter | CHA, 1987, p. 212 |
피갑은 둥근 목둘레선에 깃과 섶이 없이 앞중심선이 맞닿는 합임(合袵)의 포(袍)로서, 길이가 짧고 소매도 짧으며 진동과 수구의 너비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직선배래이다. 왼쪽 도식은 앞품보다 도련이 조금 넓어서 살짝 퍼지는 형태이지만 유물은 한 폭의 천을 그대로 사용하여 품과 도련이 거의 같거나 짧고 작은 무가 달려 퍼지기도 한다. 트임을 보면 도식과 유물 모두 배래와 옆선이 트여 있다. 도식에서 배래선을 따라 단추와 고리가 그려져 있어 트여있음을 알 수 있고 옆선은 가장자리에 선(襈)이 둘러져 있어 트여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오른쪽 유물은 뒤가 짧게 트여있으나 뒤트임이 없는 피갑 유물이 더 많다. 앞여밈은 물론 배래와 옆선에도 단추와 고리가 달려있어 여며주었다.
도식에는 둥근 목둘레선, 앞여밈, 도련, 옆선, 소매 끝[袖口]과 같이 가장자리에 일정하게 좁은 선을 두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물은 목둘레선만 가죽을 대어 마무리하고 나머지 가장자리는 상침바느질을 하거나 다른 색 직물로 선을 둘렀다.
어깨에는 가로로 길게 일자형의 단순한 견철이 달려있다. 『융원필비』의 도식은 견철이 둘로 나뉘어 꺾이는 구조로 그려져 있으나, 유물은 셋으로 분절한 후 마디 사이에 금속막대를 꽂아 경첩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견철의 분절로 인해 어깨와 팔의 동작이 자유롭고 편리해진다.
일반적으로 갑옷미늘을 두정으로 고정하는 갑옷은 미늘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무명을 여러겹 겹쳐서 심감을 대고, 심감 위에 갑옷미늘을 올려놓고 겉감에서 두정을 박아 고정한 후 안감을 덮으므로 갑옷미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피갑은 갑옷미늘이 안감 위쪽에 달려 있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다. 도식은 앞중심이 벌어진 틈 사이로 검정색 직사각형의 갑옷미늘이 가로 세로로 겹쳐져 있으며 유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죽을 겹치고 그 위에 흑칠(黑漆)을 했기 때문에 도식에서 검정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갑옷미늘의 겹침방향은 중심선이 가장 위로 올라오고 중앙이 바깥쪽 미늘을 덮도록 좌우 대칭으로 겹치고, 위쪽 미늘이 아래 미늘을 덮도록 겹쳤다. 다만 합임으로 여미기 때문에 앞중심선이 벌어져 다칠 수 있으므로 앞중심에는 좌우 중 어느 한쪽에만 갑옷미늘이 옷의 바깥쪽으로 반쯤 나오도록 4~5단 가량 달았다. 이렇게 치밀한 제작으로 여밈 부분에서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 보호성을 높였다.
겉감에서는 머리가 둥근 못, 즉 두정(頭釘)만보이는데 도식은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로 배열되고 이러한 가로열이 다시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로 반복된다. 한편 실제 유물에서는 위아래로 1쌍을 이룬 두정이 가로로 배열되고 다시 세로로 반복되어 조금 차이를 보인다. 유물 중에서 간혹 등이나 도련에 지름이 넓은 두정, 광두정(廣頭釘)이 달리는 경우는 있으나 피갑에서는 견철과 두정 외의 다른 금속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융원필비』의 피갑도식과 전해지는 유물이 형태 및 구조에 있어서 거의 일치하는 것은 당시 피갑의 제도가 잘 정리되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제작되었고 그 제도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피갑의 특징 중 하나는 배래와 옆선이 모두 트여서 십자로 펼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Fig. 23>은 앞여밈을 조금 벌린 상태의 피갑이고, <Fig. 24>는 피갑의 앞판과 뒷판을 완전히 벌려서 펼쳤을 때 겉에서 본 모습, <Fig. 25>는 안에서 본 모습이다. 피갑은 갑옷미늘의 두께로 인해 앞과 뒤를 접으면 전체 두께가 너무 두꺼워서 바느질이 어렵고 입고 벗기에도 불편하다. 그래서 소매의 배래나 옆선을 막지 않고 전부 터서 만든 후 단추와 고리로 묶어 입도록 제작했으리라 판단된다.
다른 특징은 갑옷미늘이 안감으로 덮여 있지 않고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조선후기 피갑의 특징을 알지 못하는 해외박물관에서는 미늘갑옷(scale armor)이라 생각하고 안팎을 뒤집어서 공개하거나 보관한 경우가 있었다. <Table 4>의 3번 유물은 무기수집가인 George Cameron Stone(1859~1935)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기증한 피갑(유물번호 36.25.352)으로 그의 저서에서 “Korean Armor, a heavy blue cotton garment covered with scales of hardenedleather(한국 갑옷, 경화 가죽미늘로 덮인 무거운 푸른색 면직물 옷)”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Stone, 1999). 또한 <Table 4>의 6번,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서 기증한 목면피갑은 오랫동안 안과 밖이 뒤집힌 채로 보관되어 오면서 안감의 남염(藍染)이 겉감의 뒷중심부위에 이염(移染)되었다.
갑옷미늘은 <Fig. 26>과 <Fig. 27>처럼 가죽 3겹을 겹쳐서 붙인 후 양쪽 면에 검정색 옻칠을 하여 방호력을 증가시켰으며, 특히 옻칠은 방충 효과, 방부제 역할도 하였다. 이 방법은 조선초기 『세종실록』이나 『국조오례의서례』에 쓰여진, 철미늘을 그을린 사슴가죽으로 엮은 후 흑칠(黑漆)하여 만든 유엽갑(柳葉甲)의 유제(遺制)이기도 하다.
가죽 갑옷미늘을 옷에 고정시킬 때에는 위-아래 2개의 두정(頭釘)으로 고정하였다. 이로 인해 겉감에서 보았을 때에는 두정이 항상 상하 1쌍을 이룬다. 이는 갑옷미늘이 좌우로 돌아가지 않도록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서였으며, 때로는 ㄱ자를 이루도록 3개의 두정으로 고정시키기도 하였다. 갑옷미늘은 부위에 따라 규격에 차이를 두었고 모양도 다르게 재단하였다. 앞길과 뒷길에는 가로 6~7cm, 세로 9~10cm의 직사각형 미늘로 만들고 움직임이 많은 소매에는 좁고 길게 만들었다. <Fig. 25>에서 보듯이 겨드랑이 부분은 갑옷미늘이 비어있도록 모서리를 사선으로 잘라내었다. 모든 미늘은 가장자리를 따라서 일정한 너비로 눌러줌으로써 3겹을 붙인 미늘이 벌어지지 않게 하였다. 또한 갑옷미늘에 일부러 곡률을 주어 화살, 탄환 등의 입사각이 90도가 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관통을 막고 충격을 줄였다(Yoo, 2007; Kim, 2009).
조선후기 갑옷으로 널리 알려진 양식은 붉은색 바탕에 두정이 일정한 배열로 고정되어 있고 용과 봉황 등의 장식이 있으며 가장자리를 따라서 풍성한 모피가 둘러져 있는 화려한 갑옷이다. 함께 착용한 투구를 보았을 때 이마가리개 중앙에 원수를 의미하는 “元帥” 혹은 부원수를 의미하는 “副元”이 새겨지는 경우도 있어, 장관(將官)의 갑옷이라 추정된다. 반면 당시 문헌기록을 종합해보았을 때 피갑은 보군(步軍)의 갑주로서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두 가지 갑옷은 착용자 계급에 따른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 장관용 갑옷으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갑옷을, 보군용 갑옷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피갑을 대표유물로 선정하여 비교한 결과는 <Table 7>과 같다.
Class | Armor for Commander | Leather Armor for Foot Soldi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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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
Museum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Germany | National Museum of Korea |
Dimension | Length 100cm, Center Back to Sleeve End 54cm | Length 106cm, Center Back to Sleeve End 60cm |
Slit | Side Seam, Center Back | Sleeve Seam, Side Seam, Center Back |
Fastner | Amber or Metal Button and Button Loop | Metal Button and Button Loop |
Trimming | Trimmed with Fur | narrowly binded neckline with leather |
Shoulder Strap | Dragon Shape, 27cm, 4 Segments | Straight Shape, 21cm, 3 Segments |
Fabric | Outer: Red flannel, Inner lining: Blue cloud and treasure patterned satin | Outer: Yellowish cotton, Inner lining: Light blue cotton |
Armor Scale | Black Lacquered, Copper, Concealment of Armor Scales | Black Lacquered, Leather, 3 ply, Exposure of Armor Scales |
Rivet | Fixed One Pair Horizontally, Horizontal & Vertical Evenly Spaced | Fixed One Pair Vertically, Horizontal & Vertical Evenly Spaced |
Metal Ornament | Dragon, Tiger, Butterfly, Magic Pearl, Treasure, etc. | None |
Source | NRICH, 2013, pp. 566~567 | CHA, 1987, p. 212 |
장관용 갑옷은 길이 100cm, 화장 54cm이고 보군용 갑옷은 길이 106cm, 화장 60cm로 치수나 비율에 있어서는 두 유물의 차이가 별로 없다. 둥근 목둘레에 깃ㆍ섶ㆍ무가 없고 직선배래 구조도 큰 차이가 없으나, 트임에 있어서는 다른 양상을 보여서 장관용은 배래가 트이지 않았고 옆과 뒤는 길게 트여 있는 반면, 보군용은 배래와 옆선이 완전히 트여있고 뒤트임은 짧거나 트지 않았다. 이는 장관용은 갑옷미늘이 철(鐵), 동(銅) 등 얇은 금속제이거나 없어서 전체 두께가 얇으므로 배래를 바느질하는데 어려움이 적고 말을 타기 위해 옆과 뒤를 길게 터놓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보군용은 가죽을 3겹 겹쳐서 미늘을 만들다보니 많이 두꺼워져서 배래와 옆선을 바느질하는 대신 단추와 고리를 달아서 착용했다. 보군은 말을 타지 않을 뿐 아니라 뒤가 길게 트여있으면 보호성이 떨어지므로 뒤트임이 없거나 짧았다.
앞중심선을 맞닿게 한 후 왼쪽 길과 오른쪽 길에 단추와 단추고리를 2~3쌍 달아서 여미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단추의 재료에 차이가 있었다. 장관용 갑옷은 밀화(蜜花)나 황동 단추를 사용한 반면, 보군용 갑옷은 황동이나 매듭, 뿔 등의 단추를 사용하였다. 장관용 갑옷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색상과 깃, 여밈과 트임, 수구, 옆선, 도련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두른 모피이다. 그런데 보군용 갑옷에는 목둘레선에 가죽이 좁게 둘러져 있을 뿐, 다른 가장자리는 직물로 감싸거나 상침질만 했다.
견철도 큰 차이를 보여서, 장관용 갑옷의 견철은 용형태로 매우 정교하게 조각을 하고 약 27cm로 길고 크게 만들며 4절로 나뉜 반면 보군용은 일자의 직선형으로 단순하게 만들고 약 21cm 길이를 3절로 나누었다. 어깨와 팔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길이가 길수록 여러 마디로 나누어야하기 때문이다. 직물 역시 단추 재료와 마찬가지로 차이가 커서 장관용은 겉감을 홍색 융(絨), 안감을 청색 운보문단의 고급 견직물로 만든데 비해 보군용은 겉감을 황색 무명, 안감을 청색 무명의 질기고 오래가는 면직물로 만들었다. 배색과 직물 모두 장관용 갑옷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장관용 갑옷의 미늘은 대부분 철, 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다. 겉감, 심감, 갑옷미늘, 안감 순서로 겹쳤기 때문에 미늘 위로 안감이 덮여 있어서 갑옷미늘이 바깥으로 노출되지 않는 구조였고, 이로 인해 식양갑(飾樣甲)이라 하여 미늘없이 두정만 박아서 겉모양만 갑옷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보군용 갑옷은 가죽 3겹을 겹치고 흑칠한 갑옷미늘을 안감 위쪽에 달아서 바깥으로 드러났다. 미늘을 고정하기 위해 겉감에서 머리가 둥근 못인 두정을 박았는데, 장관용은 미늘 위쪽에 좌우 1쌍으로 고정하였고 미늘이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인 장식성을 위해 두정만 박은 경우도 있다. 보군용은 가죽미늘을 상하 1쌍의 두정으로 고정한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겉에서 두정의 배열만보아도 대체로 피갑 여부를 구별할 수 있다.
포의 길이에 비해 갑옷미늘을 고정시키는 부분은 짧으므로 갑옷 자락의 아래쪽에 장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늘 없이 두정을 십자로 박기도 하고 용, 호랑이, 나비와 여의주, 보문(寶紋) 등 금속장식으로 꾸며주었다. 목둘레선 주변에 두른 잎사귀 모양의 금속장식도 장관용 갑옷에만 있다.
이상의 비교들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장관용 갑옷은 고급 재료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들었고, 보군용 갑옷은 단순하지만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여 매우 실용적이고 기능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보군의 특성상 뒤보다는 앞을 가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Fig. 13>에서처럼 앞길이를 뒷길이보다 길게 만들거나, 옷의 길이는 똑같이 만들어도 갑옷미늘은 앞과 뒤를 다르게 달기도 하였다. 앞은 9~10단, 뒤는 7~8단으로, 보통 앞은 뒤보다 갑옷미늘을 2단 정도 더 길게 달았다. <Fig. 23> 사진을 보면 앞길을 좌우로 벌렸고 벌어진 사이로 앞길의 미늘이 뒷길보다 길게 달린 것이 확인된다.
피갑은 수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갑옷으로서 다수의 병력이 착용하였기에 확산 효과가 컸으리라 예상되고, 이러한 파급력으로 인해 변용도 있었다.
첫째, 문헌기록에서 보이는 “각색(各色)” 운문단피갑주(雲紋緞皮甲冑), 장단피갑주(漳緞皮甲冑), 목면피갑주(木綿皮甲冑), 단피갑주(緞皮甲冑)는 피갑의 직물 재료가 굉장히 다양하게 활용되었음을 시사한다.
둘째, 철제 갑옷미늘[鐵札]로 변용된 것이다. 피갑과 동일한 제도인데 갑옷미늘 재료만 가죽이 아닌 철로 바꾸어 제작한 유물이 몇 점 발견된다. <Table 8>에서 왼쪽의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 갑주 유물 중 2점은 목면피갑유형Ⅳ와 굉장히 흡사한 구조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양이 없는 남색 무명을 겉감으로 사용하고 배래와 옆선이 모두 트여있으며 앞은 길고 뒤는 짧은 전장후단(前長後短) 형식이다. 한편 표 오른쪽의 캐나다 로얄온타리오박물관 소장 갑옷은 목면피갑 유형Ⅲ을 보이고 있어, 앞에서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미늘의 재료만 제외하면 <Fig. 10>의 갑옷과 거의 일치한다.
Museum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Germany | 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Germany | Royal Ontario Museum, Can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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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
Catalogue No. | OAs 7763 b | OAs 7766 b | 912.36.1.A |
Length | Front: 111cm Back: 91cm |
Front: 106cm Back: 88.2cm |
100cm |
Center Back to Sleeve End | 46cm | 47cm | 58.5 cm |
Fabric | Outer: Navy blue cotton Lining: Light blue cotton |
Outer: Navy blue cotton Lining: Light blue cotton |
Outer: Yellowish cotton Lining: Light blue cotton |
Side Panel | ○ | ○ | × |
Slit | Sleeve Seam, Side Seam | Sleeve Seam, Side Seam | Sleeve Seam, Side Seam, Center Back |
Source | NRICH, 2013, pp. 598~599 | NRICH, 2013, p. 601 | OKCHF, 2018, p. 244 |
철로 제작된 갑옷미늘은 3겹을 겹친 가죽에 비해 매우 얇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Fig. 28>처럼 녹이 많이 슬었다. 왼쪽 유물 2점의 가슴과 등에는 <Fig. 29>와 같이 겉감으로 가늘게 만든 고리가 달려 있다. 가슴과 등에 가로방향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린 것으로 보아서 함께 소장되어 있지 않은 무언가를 매달았을 가능성이 있다. <Table 3>에서 1882년(고종 19) 『무위영각색군기완파구별성책』에 삼승피갑주의 부속품인 견철(肩鐵) 54건과 흉철(胸鐵) 50건 모두 파손 없이 온전한 상태였고, 단피갑주는 25벌 중에서 15벌만 흉철, 삼지창, 감투가 온전하였고 나머지는 파손된 상태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가슴과 등의 고리들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 위에 겹쳐서 착용했던 부속구, 흉철을 달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여겨진다.
셋째, 또 하나의 변용은 19세기 후반의 면갑(綿甲)이다. <Fig. 11>은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때 서구열강의 침략에 맞써 싸우면서 총탄을 막기 위해 새로이 개발된 면갑이다. 조선후기 보군에게 착용되었던 피갑(皮甲)은 화기(火器)의 발달로 실효성을 잃게 되면서 갑옷미늘을 철로 바꿔서 제작하기도 하고 가슴과 등에 흉철을 겹쳐서 부착하였으나 이 역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흥선대원군의 주도 하에 면포(綿布)로 배갑(背甲)을 만들어서 갑옷의 성능을 실험해보고 훈련하도록 하였고(Park, 1886), 갑옷 제도가 완성되면서 군영에 보관된 갑의문판을 활용하여 갑옷의 구조는 달라져도 같은 위치에 동일한 문양이 찍었다. 예를 들어 만사대길소원성취를 소원하는 옴마니반메훔 부적의 경우 포 형태의 목면피갑은 앞길 좌우 가슴부분에, 배자 형태의 면갑 일습에서는 허리띠와 가슴가리개에 동일한 문양을 날인하였다고 추정된다(Park, 2019). <Table 9>에서 옴마니반메훔 문양이 왼쪽 갑옷은 가슴부분에 좌우로 반반씩 찍혀있고, 가운데 갑옷은 허리띠에, 오른쪽 갑옷은 네모난 가슴가리개 위에 먹[墨]으로 찍혀있다.
Om mani padme hum |
Museum | Royal Ontario Museum, Canada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US | Pitt Rivers Museum, the UK |
pattern | ||||
No. | 912.36.1.A | 36.25.10 a~c | 1884.31.33.1~7 | |
Source | OKCHF, 2018, p. 244 | LaRocca, 1996, Back Cover | 1884.31.33 Suit of armour, n.d. |
국내와 해외에 소장된 조선후기 갑옷 유물은 겉감을 붉은 색 고급직물로 제작한 고위 장관용 갑옷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만기요람』의 군정(軍政) 관련 기록으로 보았을 때 피갑(皮甲)은 보군용 갑주로 착용되었으며 철갑(鐵甲)이나 단갑(緞甲)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군사들이 착용한 갑옷이었다. 따라서 피갑은 화려함과 위용에 있어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제작수량과 착용인구 면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피갑 관련 문헌과 유물을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19세기 고서와 고문서에 의하면 피갑은 훈련도감을 비롯한 여러 군영에서 보군의 갑주로 착용되었고 비단, 무명, 삼승으로 만든 포(袍)에 가죽 갑옷미늘을 대어 만든 갑옷이며, 구체적인 형태는 병서인 『융원필비』에 도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둥근 목둘레선에 앞중심선이 겹쳐지지 않고 맞닿게 내려오는 합임(合袵)이고 짧은 소매가 달려 있다. 배래와 옆선이 트여 있고, 단추와 고리로 여며서 착용하였으며 단순한 직선 형태의 견철이 양쪽 어깨에 달려있다. 목둘레선, 앞중심, 옆선, 도련, 소매부리 등 갑옷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일정한 두께로 좁은 선이 둘러져 있다. 안감 위로 직사각형의 검정색 갑옷미늘을 가로 세로로 배열하고 겉감에서 두정으로 고정하여 미늘이 겉으로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다.
『만기요람』에 의하면 순조대 훈련도감의 피갑만 해도 2,892벌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조선후기 피갑 유물은 국내는 물론 독일, 미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6개 국가의 소장품을 합쳐도 18점 뿐이다. 유물을 대상으로 치수, 미늘의 크기, 직물의 종류와 문양, 무의 유무, 트임의 위치와 유무 등을 비교해본 결과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우선 포를 만든 직물의 섬유에 따라 크게 면직물과 견직물로 나뉘고, 문양과 구조에 따라 다시 구분되었다. 면직물로 만든 목면피갑은 연화만초문을 인염(印染)한 유형Ⅰ, 만(卍)자문을 인염한 유형Ⅱ, 부적문양을 인염한 유형Ⅲ, 아무 문양이 없는 무명으로 제작된 유형Ⅳ로 나뉘었다. 견직물로 만든 단피갑은 직금장화단으로 만든 유형Ⅰ, 여러 가지 무늬와 종류의 견직물로 만든 유형Ⅱ, 앞의 분류에 해당되지 않는 기타는 유형Ⅲ으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특히문헌에서의 명칭을 생각하면 단피갑 유형Ⅰ은 장단피갑주(壯緞皮甲冑), 유형Ⅱ는 각색단피갑주(各色緞皮甲冑)로 연결해볼 수 있다.
문헌과 유물의 고찰을 종합하여 조선후기 피갑의 특징을 추출해보면 문헌기록과 유물의 합치성, 치밀하게 계획된 구조와 제작, 착용자의 계급으로 인한 실용성 추구, 피갑제도의 변용과 확산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융원필비』의 피갑 도식은 현재 전해지는 유물과 형태 및 구조에 있어서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로부터 당시 피갑의 제도가 존재했고 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피갑은 가죽 3겹을 겹쳐 붙인 후 안팎으로 흑칠을 하여 두정으로 포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너무 두꺼워져서 제작과 착용의 편의를 위해 배래와 옆선을 완전히 텄고, 갑옷미늘의 형태는 직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되 동작을 방해하지 않도록 부착 위치에 따라 너비와 길이, 형태를 조절하여 재단한 후 제작하였다. 겹침방향, 두정의 위치, 미늘의 가장자리 처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사전 계획 하에 진행되었다. 셋째, 피갑은 보군이 착용하는 갑옷이었으므로 고위 장관용 갑옷과는 재료와 장식성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형태, 치수, 구조는 유사하지만 갑옷미늘의 두께와 기마(騎馬) 여부에 따라 트임의 위치와 길이는 달랐다. 직물, 단추, 견철, 금속장식 등에 있어서 장관용 갑옷은 고급 재료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적으로 제작된 반면, 보군용 피갑은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보군의 특성에 맞게 갑옷의 앞길이는 길고 뒷길이는 짧게 만들거나 갑옷미늘을 앞쪽만 더 길게 여러 단 달았다. 넷째, 피갑은 수량적으로 절대우위에 있어 파급력과 확산효과가 컸고 변용이 있었다. 직물의 재료를 다양하게 제작하고 갑의문판(甲衣紋板)을 군영에서 구비하여 갑옷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동일한 형식에 미늘 재료만 철로 바꿔서 제작하기도 하였다. 후에 서양의 총탄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고 새로 개발한 배자(褙子) 형태의 면갑(綿甲)도 피갑의 재료와 문양으로부터 출발한 변용이었다.
조선후기 피갑의 제도와 구조, 유형, 특징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유물의 연대를 감정하거나 착용계급이나 병종에 따른 차이를 상세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제작과정과 방법, 인문 문양별 의미와 차이점, 유형에 따른 시대적 변천에 관한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를 계기로 조선후기 갑주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연구결과가 영상, 공연의상, 재현행사 등 여러 문화콘텐츠에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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